세라별2022-05-19 11:29:48
재즈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에게 빠진 세계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리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보고 띵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의 결합이 굉장히 탁월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와 재즈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시놉시스
재즈 아이콘이자 작곡가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사운드와 스타덤, 환상적인 연주를 통해 아티스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산을 탐구한 다큐 콘서트 <오스타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피카소나 모차르트처럼 독특한 천재성을 지닌 것은 물론, 거침없는 연주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천재 재즈 뮤지션의 70년 역사를 담은 영화는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완성된 트리오 시절의 녹음, 유명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전 세계를 누비며 펼친 솔로 공연뿐 아니라 미국 투어 시절 겪은 인종차별 속에서 그가 보인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곡 ‘자유를 위한 찬가’(Hymn to Freedom)까지 담고 있다.
* 해당 내용은 전주국제영화제 보도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음반을 사고 싶게 만들다
취미 중 하나는 집에서 LP를 듣는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LP를 들을 때 특히 아무일 없는 주말에 그러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LP로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르는 재즈였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잘 알지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스카 피터슨의 이야기를 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오스카 피터슨이 재즈씬에 데뷔한 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의 업적과 곡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그 연대기와 흐름을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피터슨의 명반을 구매해봐? 이러면서 바이닐 검색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곡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밴드로 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밴드 장면 전후로 이 곡이 만들어지고, 이 곡을 가지고 투어를 다닐 때의 피터슨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슨의 곡을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솔직히 음원이나 앨범에서 찾아 들을 수 있기에 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음악은 점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피터슨의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인터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접목되어서 솔직히 좋았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밴드음악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듣다보니 그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비를 뛰어 넘은 사람
오스카 피터슨이 언제나 전성기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기에 은퇴하는 그 날까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전성기 시절보다 떨어진 기량임에도 압도적이긴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발전적인 연주를 보여준 오스카 피터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체능계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피터슨의 경우에는 뇌졸증이 와 왼쪽 마비가 오면서 왼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졌음에도 이 과정에서 은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피터슨은 기존에 트리오 편성을 쿼터로 바꾸면서 자신의 떨어진 왼손 기량을 받춰줄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피터슨은 왼손으로 베이스를 다 만들었기에 다른 악기의 반주가 없이도 독주가 가능했었다. 이 지점이 다른 피아니스트와의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비 이후 기량이 떨어지자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쿼터에 도전함으로써 더 풍부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했다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간만에 음악다큐를 보고 그 명반을 찾아 들으면서 영화관을 기분 좋게 나왔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재즈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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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과 확신이 부족했던 항일운동의 재해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활동 중이던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 그는 새롭게 부임하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총독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까지 성공한다. 이에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박해수)'는 조선총독부 내에 숨어든 유령을 잡기 위한 덫을 놓는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비서 '요시나가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경호(서현우)', 통신과 직원 '이백호(김동희)'는 유령으로 의심고 벼랑 끝 호텔에 갇힌 채 추궁당하기 시작한다. 하루 안에 유령을 찾으려는 다카하라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유령은 호텔에서 탈출해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삼는 한국 영화가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어필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단 반일 정서를 겨냥해 관객들의 감정선을 공략하기 쉽다. 장르적으로도 운신의 폭이 넓다. 독립군을 다룬다면 블록버스터 영화를, 의열단이나 한인 애국단 같은 항일 운동에 초점을 맞추면 첩보 스릴러나 누아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봉오동 전투>가 전자라면, <암살>이나 <밀정>은 후자다.
특히 이야기의 기본적인 얼개와 제시되어 있어서 재해석이 용이하다. 역사적 사실을 도구 삼아 이야기의 구조나 흐름을 수월하게 조직하고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대개 특정 사건을 스크린에 옮기거나, 역사적 인물을 각색하는 팩션(faction) 영화다. 예를 들어 <밀정>의 모티브는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다. <암살>은 실제 인물인 김원봉과 염동진을, <영웅>은 안중근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이는 단점도 명확하다. 사건이나 인물의 재해석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전달의 수단으로 변질되면 재미와 완성도가 떨어진다. 언제나 고증과 역사 왜곡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부담도 피할 수 없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 <유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중국의 소설가 마이지아의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유령>에는 다른 작품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작중 익숙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흑색단이라는 이름의 항일 조직은 물론 신임 총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이 허구다. 흑색단의 첩자로 의심받는 주인공도 가상의 인물이다. 즉, <유령>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처럼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빌려 허구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데 주력한다. 이 발상은 꽤 흥미롭다. 스크린 위에 인상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마지막까지 부각할 뚝심은 부족해 보인다. 그 결과 <유령>은 신선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유령>은 역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실제 인물을 기록하거나 잊혀 가는 사건을 상기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시대를 재현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의 삶을 스크린에 띄운다. 재력가 딸이지만 조선총독부에서 암호문 기록 담당으로 일하는 박차경과 조선인인데도 정무총감의 직속 비서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유리코. 암호문 해독에 재능을 지녔지만. 결벽증을 지닌 채 소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천은호. 조선인 어머니를 둔 것을 부끄러워하며 유령을 잡아 공을 세우려는 데 혈안이 된 무라야마. 조선인 피가 섞인 학교 선배를 무시하는 다카하라까지. 영화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제각기 남다른 사정을 품고 있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다.
중요한 건 영화가 오프닝부터 누가 유령인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미 유령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캐릭터 사이에서 누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는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마피아 게임 같은 추리극이나 심리극을 예상케 만드는 포스터나 홍보 문구만 믿었다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각 인물의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에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는 매력적이지 않다. 또 다른 유령이 등장하는 반전도 효과적이지 않다. 총독부의 암호문이 흑색단의 극장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이미 또 하나의 유령이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인물 간의 관계는 눈길을 끈다. 유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카하라에게 결백을 주장해야 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기에 그들 간의 차이점은 자연히 두드러진다. 이 관계는 결국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수단이 된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인물은 누구보다도 '내선일체'라는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충실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은 그를 배척하기도, 포용하기도 한다. 조선인 중에는 온몸과 마음을 던져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시민적으로 항일과 친일을 모두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 중간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하기도, 순응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 덕분에 허구의 세계를 항해하는 <유령>은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면 살아있는 캐릭터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유령은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클라이맥스는 극장에서 펼쳐지고, 영화관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영화관은 허구의 공간이다. 스크린 위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온갖 사건이 벌어지지만, 스크린 속 주체와 사건은 물리적으로 실체가 없다. 반면에 극장은 실체가 있는 공간이다. 실제 인물인 배우가 무대 위에서 움직일 때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유령과 흑색단은 지령을 전달하고 비밀을 공유한다. 그들의 신념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만 존재할 뿐, 총독 암살과 같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면에 유령은 극장에서 직접 움직인다. 무대와 커튼 뒤에서 혈투를 펼친 끝에 자신의 희생과 피해가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덕분에 더 강한 의지로 영화관에서 지령을 내리며 총독 암살을 시도할 수 있다. 신념과 이념에만 갇혀 있지 않고 행동을 통해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유령>의 각오와 궤를 같이하는 듯 느껴진다. 기록과 영상으로 남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대신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을 앞세워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항일 투쟁을 다루는 영화인데도 담배를 매개로 연결된 두 여성의 처연한 사랑과 유령 간의 애절한 동지애가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유령>은 장르가 급변하는 순간부터 매력이 급감한다. <유령>은 감독의 전작인 <경성학교>처럼 중반부부터 장르를 전환한다. 추리극은 또 한 명의 유령이 정체를 드러내자 액션 영화로 탈바꿈한다. 그 이후로 영화는 철저히 액션의 쾌감에 집중한다. 두 유령이 힘을 합쳐 호텔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온갖 폭발음과 불길로 가득하다. 다카하라가 흑색단을 잡기 위해 함정을 펼쳐둔 극장에서는 치열한 총격과 저돌적인 맨몸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기관총을 든 박차경이 연인이었던 '난영(이솜)'의 못다 이룬 총독 암살을 대신하는 장면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난장판 마무리도 스쳐 보인다.
문제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낭비되는 캐릭터가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유령>만의 특색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장 보편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 천은호 계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령을 찾아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모든 상황을 외면하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두 유령의 활약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는 '평범한 시민 1'이 되어 바로 이야기에서 삭제되어 버린다. 무라야마의 후배 경관 역시 그 시대를 보여주는 독특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무라야먀의 어머니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이내 무라야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혈통과 관계없이 그를 좋은 선배이자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에는 유령과 흑색단을 잡겠다는 무라야마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허구의 시공간 안에서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역동적인 역사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꺾이고, 현란하고 단순한 쾌락이 그 자리를 대신해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잔뜩 준 액션 연출이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일례로 작중 일본군은 놀라울 정도로 무능하다. 그들은 박차경과 유리코의 액션을 빛내주기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할 뿐, 유령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거나 위기에 빠뜨리지 못한다. 붙잡은 포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탈출하는 걸 구경한다. 마치 <스타워즈> 속 제다이와 스톰트루퍼의 추격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이 위험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다만 <스타워즈>에서는 '포스가 함께 한다'는 핑계라도 있다면, <유령>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두 여성의 액션은 그 자체로 통쾌하거나 박력 있을지 몰라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은 뽐내지 못한다.
필요한 디테일을 지나치게 생략하기도 한다. 멋진 액션 시퀀스는 많은데, 그 사이가 비어 있어서 의문점을 남긴다. 후반부 극장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분명 관객의 이목을 끌만하다. 무라야마가 흑색단 총책과 연락책을 체포하여 남은 인원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대목,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루어진 유령들의 역습, 무대 뒤 커튼 사이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는 설명이 없다. 무라야마가 어떻게 흑색단 일부를 체포했는지, 유령들은 어떻게 그 타이밍에 발맞춰서 경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는지 등 액션이 등장하기 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이처럼 의문이 뒤따르다 보니 액션에 푹 빠져 즐기기도 어렵다.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쾌감만큼이나 극적 순간을 조성하려는 무리수가 커 보이는 이유다.
그 결과 <유령>의 도전은 끝내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장르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거부한 도전과 의도를 밀고 나갈 줄 아는 뚝심은 비록 산만하기는 해도 생동감 넘치는 영화의 전반부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더욱 드라마틱한 몇몇 순간을 꾸며내기 위한 변화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매력까지 까먹어 버렸다. 영화 중반부 이후 액션영화로의 전환이라는 변화구를 던지는 대신 캐릭터 간의 심리극이라는 직구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P(Poor, 형편없음)
변화구 대신 직구였다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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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스포일러가 다분하니, 보실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꼭.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시사회는 아니고, 이 영화가 강원도 올로케라 강원 특별 시사회를 진행했다. 원래는 감독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못 오셔서 자필의 편지를 제작사 대표님이 대독하셨다.
많은 분들이 홍종현배우, 정소민배우를 보고 싶어서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연주배우님이 궁금해서 갔다. SNL의 정연주배우님의 능청능청한 연기가 워낙 내 스타일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하면 귀신에 시달리던 어느 소녀, 아니 여성이 여성이 고모의 친구인 무당의 말을 듣고 어느 원더랜드라는 팬션에서 묵으며 벌어지는 호러? 스릴러? 로맨스? 뭐 그런거다.
사실 궁금했던 건 원더랜드와 소년의 조합이었다. 앨리스하면 당연히 '소녀'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소년이라니. 신박한데 싶었다.
영화 진행의 초반부터 '소년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해라~' 하면서 진행된다. 근데 이를 어쩌나.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알아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좀 불편했다. 아마 이것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배가 다른 남매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인 것을 무엇 때문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합방 장면이 심으로 불편했다. 가벼운 입맞춤 정도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무리 귀신이라도 남매간의 성행위라니 불편했다.
1살의 아이가 가지는 순수한 사랑(누나에 대한 애정)을 정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귀신과의 합방, 귀접이라고 하는 행위인데 이건 귀신이 인간의 기를 빼앗아가는 행위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왜?' 라는 것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면 재미 없는 것이 사실지만, 적당해야지 싶다. 아이가 누나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아주아주 많이 부족하다. 누나가 아이를 해치게 되었던 이유도 너무 간단해서 비극이긴 하지만 비극이 극대화 되진 않았다. 왜 그 가족이 그토록 정이 없게 되었던 건지도 안 나오고 여튼 너무 심하게 함축하고 줄였다 싶었다. 영화가 시는 아니지 않은데 말이다.
이승연배우(무당 역)가 말했던 게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잊으면 어쩌구 이랬다. 애초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잊는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건 '목숨이 죽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잊혀져서 죽는다'라는 원피스의 명대사와 일맥한 것 같다. 여기서 이해가 안 간 건,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귀신으로도 영영 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게 "너 때문에 죽어"라고 하며 분노만 내뱉었다는 것이다.
아이 이게 뭐야.
심지어 막판에는 죽은 사람이 실물 인간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럼 둘이 연애할거야? 남매인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나는 위안부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님이 아직 좀 불편하다)
너무 불평만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좋았던 것을 꼽자면 영상미.
청태산휴양림이 원래 좀 좋긴 한데, 그래도 정말 예쁘게 잘 찍었다. 숲도 예쁘게 나왔고, 꽃잎이 날리는 것 팬션 다 색감이 예뻤다.
한 두 발 양보해서 좋은데, 강원도 올로케인것도 좋고, 정연주님 나오는 것도 좋고, 예쁜 영상과 색감도 좋은데, 나한테 이 스토리는 영 안 맞았다.
혹시 원더랜드와 네버랜드를 헷갈려서 원더랜드라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그냥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이라고만 하지 왜 '앨리스'를 붙인건가 역시 헛갈린게 아니었구나 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세계로 간 여자 주인공 때문에 앨리스라고 한건가? 그렇다면 조금 이해를 해볼 수 있다.
여튼 그렇다. 영화보기 1년 전쯤 보았던 <좀비스쿨>이 생각나면서 몹시 안타까워졌다. 그래도 배우진들이 괜찮아서 볼 사람들은 좀 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 그래도 연기에 점수를 주자면 중간 점수만큼 줄 수 있을 듯 하다. 역할이 그래서 그냥 묻어갔지만 홍종현님은 연기 연습이 엄청 필요해보였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당시 정소민님의 연기도 그닥이었다. 아마 정연주님과 비교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지원했던 영화 중에 <조난자들> 같은 영화는 괜찮았는데 연달은 <좀비스쿨>과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정말 안타까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실무진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능력을 늘리던지,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서 로케를 제안하던지 해야하는 게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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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난 네가 달처럼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제주에 살아서 불편한 게 뭐예요?라고 물으면 '의외로 몇 가지 없어요'라고 답하고 싶다. 사실이다. 의외로 없다. 서울 드문드문 가보고 다른 지역은 경험이 아예 없는 수준이지만 불편한 게 없다. 글쓴이는 제주에 살다가 서울에 가면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들이 다양할 거라고 믿었다. 가령 '탐스' 초록색 맛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갔던 세운상가 근방의 GS에는 그 '탐스'가 없었다. 또 제주의 어느 동네 물가가 엄청 비싼 편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내가 일하고 있는 곳 근처 대학가 물가는 비싸다. 그런데 을지로 인근에서 평양냉면을 먹으려면 무려 12000원을 내야 한다는 점이 나의 입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제주 토박이 정식인데 반찬 많은 거 먹으려면 9천 원이면 되거든. 이렇기 때문에 누가 제주에 놀러 오면 저렴한 가격에 맛집 투어가 가능하다.
그 대신 분명하게 따라오는 단점이 있다. 바로 시사회를 못 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용산 아이파크몰 가보고 싶다. 돌비 사운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나도 홍상수 영화 극장에서 보고 싶다. 웨스 앤더슨 영화들 극장에서 보고 싶다. 이런 영화들 틀어주던 영화관은 도에서 사업한답시고 폐쇄됐다. 그래서 자의와는 상관없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가끔 나를 먼저 떠나는 사람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원래 살던 곳이 제주가 아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몇몇은 제주가 좁아서 더 큰 공기 마시려고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이상한 암흑기에 추스를 기간이 필요했던 나. 20대 내내 손가락 빨며 그 사람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럴 때는 살던 곳이 서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크게 상관없나? 분명한 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먼저 떠나가는 이들의 마음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 그 사람도 그럴 만한 입장이 있었겠지. 있으면 몰랐던 것들이 없었을 때 알게 되기 때문에 다치던 안 다치던 내 옆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만큼의 모든 걸 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치지 않은 멀티버스의 제주에 두 여자가 상실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낮과 달처럼 공존할 수 없는 사람 같다. 으르렁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낮과 달>이다.
떠나간 너의 뒷자리
먼저 언질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남편은 일찍 떠났다. 혼자 남겨졌다. 민희는 집 안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남편이 남긴 흔적 하나하나를 되짚어본다. 일기장. 수첩. 페이스북… 항상 투정만 부렸던 자기의 모습이 강박이 되어 돌아왔다. 민희는 스스로의 내면을 더 깎아 들어간다. 점점 그리움이 커지는 이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을 키는 민희. 남편의 피드를 봤다. 남편 경치는 아무렇지도 않게 ‘ 이 집에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홀린 듯 화면에 시선이 간다. 민희는 이사를 결심한다. 경치의 고향이었던 제주로.
그렇게 무작정 제주에 도착했다. 잠깐 쉰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제주. 어려운 것들은 뒤로 하기로 한다. 원래 라이프가드 일을 하던 민희. 쉬는 동안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같은 제주가 고향이었던 남편의 친구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타지에 왔다. 이제 혼자 사는 삶에 적응해야 하겠지. 부분 부분 떠오르는 옛 기억들을 뒤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는 민희. 남편이 페이스북에 썼던 집 근처를 지나가고 있는데, 그곳에 어떤 여자가 수강생들에게 요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잠깐 구경하다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강사가 민희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어디 가? 그 잠깐 수강료 내고 가야지!’ 싹싹한 미소로 요가 강사 목하는 민희를 맞이한다. 몇 마디 나누는 둘. 그렇게 대화가 통했다. 민희의 홀로서기 첫 시작이 좋다. 목하의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이야기를 펼치는 둘.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알지 말아야 할 것들을 눈치채 버렸다. 민희 옛 남편의 첫사랑이 목하였던 것이다. 좁디좁은 제주에서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기싸움을. 펼치는 둘. 민희의 제주 살이가 무탈히 지나갈 수 있을까?
제주 살이 26년 차
글쓴이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다. 일단 좋은 것은 공기 맑고 예쁜 곳이 많다는 것이다. 요즘 제주를 오는 사람들이 어떤 곳을 원해서 비행기를 타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 이 글을 읽는, 제주살이를 꿈꾸는 분들에게 '수월봉 알아요?'라고 물으면 아마 10분 중 1명만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슷한 질문으로 '평대리 알아요?' 물으면 거의 대답 못하실 것이다. 이렇게 세간의 여론을 뒤로하는 나만의 핫플을 알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강점이다. 바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테니까. 안 좋은 점도 사실 많다. 바로 상영관들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 영화 vod로만 보게 된다. 또 시사회 하면 거의 못 간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지리가 너무 좁다. 내가 어디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그럼 그 사람은 적지 않은 확률로 누군가의 지인이다. 이는 작은 마을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 마을에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이웃사촌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영화는 이런 제주의 특성을 잘 활용한다. 제주도민인 글쓴이가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이다. 처음에 주인공 민희가 착잡한 마음에 바다로 빠진다. 옷이 다 젖게 된다. 그때 만나는 젊은 남자가 있다. 바로 태경이라는 사람이다. 이 태경은 남편의 첫사랑으로 설정되어 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내 옛사랑의 첫사랑 아들'이 작위적인 설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제주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특히 태경과 목하처럼 그 마을에서 오래오래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러기 쉽다. 이런 제주라는 공간 세팅은 다른 요소로도 이어진다. 영화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제시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문어회, 동굴, 감귤나무라는 점이다. 문어회 먹는 장면 아직도 기억난다. 진짜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동굴과 감귤나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중요한 연출 지점으로 사용된다. 이 크고 작은 동굴은 제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오름 쪽을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동굴이 많이 있다.
그리고 제주를 활용한 방식 중 가장 화룡점정은 목하의 캐릭터 설정이다. 요즘, 그러니까 근 몇 년간 제주를 살다 보면 목하 또래의 여성분이 몇몇 보인다. 이 분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코디법이 그대로 나온다. 헤어스타일 하나, 액세서리 하나 다 찐 제주도민의 바이브가 느껴진다. 갈옷을 찾을 생각을 어떻게 했대? 감독이 제주도 분이 아니라면 찾을 수 없는 디테일이었다. 또 주인공 목하가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도 디테일함이 돋보인 수였다. 실제로 이주민분들을 대상으로 요가 가르치는 분들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말투랑 억양이 그 강사님 톤인 게 신기했다. 이 뿐만 아니라 목하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를 봐도 그렇다. 기억나는 것이 화분을 홍대 인근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감성이 아닌 아날로그틱한 것을 고른 것이었다. 뭔가 캘리그라피로 쓴 것 같은 간판은 실제로 제주도민 분들이 카페를 차릴 때 자주 쓰는 방식이다. 또 카페 안에 천으로 된 설치물(?)이 있다. 이 천으로 된 카페에서 요소들이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뭐 영화에서 옥에 티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태경이 어디에서 공연할 때 공연장이 '낮과 밤'이다. 이 '낮과 밤'은 제주시청에 있다. 그리고 이 '낮과 밤'에 나와서 자전거를 타는 신이 있다. 이때 자전거로 왔다 갔다 하는 길은 제주시 노형쯤에 있는 어느 곳이다. 뭐 영화라는 것이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 결함이라고 뽑기는 어렵겠지만 제주도민이 이 영화를 보기에 이런 점이 눈에 들어왔다.
과하기도 해
그렇게 제주라는 지역 특성을 잘 활용한 영화긴 하지만 과하기도 하다. 일단 영화의 설정이다. 솔직히 과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주인공의 옛 남편 경치가 인간적으로 너무 나쁜 사람이다.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라는 부분이 인물 간의 갈등과도 이어지고, 영화의 핵심 키워드 열등감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인물 간의 열등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설정을 넣었다면 사실 좀 아쉽다. 인물 간의 리액션이 들어간 부분을 조금만 들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그냥 단지 경치가 나쁘다!라는 것만 보여주는 것 빼고는 장면의 활용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또 이웃집이라는 설정에 과하게 기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목하라는 인물이 후반부에서 민하에게 어떤 행동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입장을 바꿔도 말이 된다. 목하의 아들 태경은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꿈을 목하는 반대 한다. 이 목하가 반대하고 반작용으로 태경이 어떤 일을 한다. 이웃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지만 단순히 열등감이라는 키워드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쓰인 지점이 되는 것이다. 또 유다인 배우가 맡았던 주인공 민희의 행보가 사실 좀 아쉽다. 유다인 배우가 사랑스럽고 귀엽게 이 캐릭터를 묘사해서 그렇지 행보 자체만을 보면 의문이 드는 것이 많다. 누군가에게 극언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극의 이야기 전개 하나 때문에 희생한 부분이 조금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는 '이 장면에 이 부분을 암시했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일단 주인공 둘의 이름이 목하, 민희인 것과 영화 제목이 <낮과 달>인 것이 그랬다. 전자는 이름의 이니셜이 같은 MH라는 것 때문에 만들었을 것이다. 또 제목이 <낮과 달>은 영화의 핵심 시퀀스와 이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공존하기 불가능하지 않은 두 사람의 처지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까진 괜찮아. 극후반부 가장 마지막 시퀀스에서 두 인물이 어디에서 있다 나온다. 또 갈등이 가장 고점을 찍는 순간에 두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한다. 또 목하의 어떤 대사가 수미상관처럼 반복된다. 이 후반부에 들어가는 대사가 흐름을 살짝 깨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영화 연출이 암시하는 선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그렇게까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장면은 사실 없어도 그만이다. 제주의 트레이드 마크로 소개됐던 지역 특산물이 있다. 이 특산물을 활용한 비유로 이미 내포했던 주제가 비유를 통해서 다시 제시되니까 살짝 진부하게 느껴지는 지점인 것이다.
재미있는 독립영화
근데 모든 영화를 도식화시켜서 볼 필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글쓴이가 감상을 글로 쓰기 위해 굳이 여러 번 생각해서 뽑은 것들이다.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면, 이 작품은 재미있는 독립영화라고 생각한다. 초반부 유다인 배우가 영화를 시작한다. 여기서 유다인 배우가 보여줬던 표정연기가 굉장히 탁월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연기를 그럴듯하게 품어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된 채로 시작한다. 이 감정이입은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영화가 보여준 연출이 이 감정의 흐름을 깨지 않기 때문에 러닝타임 끝까지 흐뭇하게 볼 수 있다. 이 감정선의 흐름에는 감독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와 관련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런 막장 치정극이 없다. 그러나 인물들이 생기 있게 살아 숨 쉰다.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도 있고 뭉클해지는 부분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독립영화를 볼 때 어떤 걸 기대하고 볼 수 있을까? <리멤버>처럼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비극에 대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외계+인> 1부처럼 휘황찬란한 시각적 쾌감을 느끼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독립영화를 볼 때 이런 영화들이 가지는 소소한 유머가 좋다. 예술가들 특유의 사랑스러운 기운도 좋다. 이 영화는 감독이 갖고 있는 인간사에 대한 관점, 또 관객들이 이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진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에너지가 엇나가지 않기 때문에 러닝타임까지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또 영화의 핵심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핵심 소재는 그리움과 회한일 것이다. 두 인물은 한 사람 경치에게 그리움을 품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미련이다. 그때 그럴 줄 알았으면 잘할 걸. 인물은 미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각자에게 열등감을 가진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람들은 과거에 매달려서 살고 있다. 후회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서 기인한다. 후회는 사람을 같은 지점에서 붙박혀서 머무르게 만든다. 그러나 인생에 되감기란 없다. 결국 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음엔 그러지 말았어야지를 되뇌는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의 인과관계를 알고 싶어 했던 두 사람. 영화는 러닝타임 후반부에 가서야 이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간을 제주로 세팅한 이유도, 아침드라마 같은 설정도 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가끔은 낮에 떠 있는 날처럼 새로운 각도에서 무언가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거 다들 다 알잖아? 다들 다 똑같이 산다고 믿고 있다. 무언가를 떠나보내게 만든 그것들이 미울 것이다.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무얼 해도 남겨졌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들려온다. 그런데 사람마다 빈 공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글쓴이도 독자분들도 다들 알고 있다. 떠난 이의 흔적 안에 살다가는 결국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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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당신은 매일 40개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마치 모국어인 것처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외워야겠지. 시험공부하듯 어디에 적을 순 없고, 머리에 담아 조그맣게 읊조리는 정도만 가능하다. 종일 외우는 데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설거지나 재료 준비 등 주방 일을 하며, 당신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잠들기 전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기도문을 외듯 나지막이 웅얼거리는 당신을 핀잔할, 당신과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수백 명의 질타를 견디면서.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수용소, 그리고 페르시안으로 위장한 유대인. 세 가지 키워드로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영화 초반부의 방점은 '페르시안'에 찍혔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상황은 나치 수용소로 잡혀간 한 유대인이 페르시아인인 척하며 독일군 장교에게 알려줄 페르시아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정확히는 '만드는' 과정. 그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모르지만, 순간적인 기지는 뛰어났다. 거대한 거짓에 그럴싸한 작은 사실 몇 개를 섞으면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인다던가. 앞으로 그가 겪을 일과 딱 맞는 말이다.
자, 어떻게 매일 40개의 단어를 만들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도망가는 건 방법이 아니다. 지뢰밭에 발을 디디거나 독일군의 총을 맞거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살고자 하는 당신이 택할 게 못된다.
다행히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실화를 기반에 둔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 불길에 그을리는 종이. 종이 위 까만 글자들이 사그라진다. 그 위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과 역할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한다. 암전. 이윽고 숲처럼 보이는 탁 트인 공간. 꼭 맞는 나무의 대칭 가운데,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절뚝이는 것도 같고, 무언가 위태로운 느낌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코트를 짊어지고서. 걸음은 투박할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 영화가 끝나고, 본 것을 되새기면서 깨닫겠지. 복선 그득한 장면들이었단 걸.
'페르시아어 수업' 타이틀이 뜨고,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맺힌다. 덜컹대는 트럭 안,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다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눈빛들. 키 큰 남자가 옆 사람과 작게 조잘거린다. 남자의 무미건조한 눈빛은 옆 사람이 샌드위치가 있다는 말에 마구 반짝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유서 깊은 책을 줄 테니, 이거랑 교환하자고.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을 얻는 거라며. 눈망울이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키 큰 남자는 제 몫을 제외한 남은 샌드위치를 책과 함께 넘긴다.
페르시아어로 된 책. 키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욱여넣으며 말한다. 훔친 거라고. 그건 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도적질 하지 말라
지적하자, 대수가 아니라는 듯이 남자는 마저 씹어댄다. 눈망울이 큰 남자,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질'은 뒤이어 딴지를 걸지 않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 수 없다고 받아들였을까. 훗날 자신도 율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도적질 하지 말라의 다음 37, 거짓증거 하지 말라.
트럭이 멈추고 독일군의 명령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소지품을 한 곳에 내려놔. 가방이 툭툭 바닥에 떨어지고 총살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가 아는 액션 영화 같은 드라마틱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 즉 우리 관객들이 보는 화면은 고정되었다. 정적인 프레임. 비명이나 절규가 나올 새도 없이 모든 일은 끝난다. 단 한 사람, 질을 제외하고.
그는 품에 있던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내밀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이 믿을 리 없는 소리다. 그러나 많고 많은 언어 중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그들은 혹한다. 페르시안이라니. 장교 '코흐'에게 데려가면 포상으로 통조림 열 개를 받을 것이다. 아니면, 죽이면 되고.
불신, 권위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 똑똑하다는 자만심. 이 모든 성질을 뭉쳐 사람으로 빚으면 코흐가 만들어지려나. 아니다. 이건 독일군 사령관도, 다른 장교들도, 다른 군인들도 충분히 될 수 있다. 다만 코흐만 가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간절함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이 있는 이란으로 넘어가 식당을 열 생각으로 그득하다. 독일을 벗어날 생각을 한다는 건 그가 당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패배를 예상하는 것이다.
질이 자신을 책의 주인인 '레자'라고 거짓말했듯 코흐 또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당에 충성하는 척 해왔다.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큰 틀에선 그들은 차이점이 없는 듯했다. 코흐도 결국 전쟁 통에서 살고자 했을 뿐 아닌가? 각자의 배경과 상황은 제각각이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무언가를 어기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매일 이어지는 교습. 하루에 4개로 시작했던 수업은 갑자기 하루 40개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질은 패닉 한다. 끝이라는 생각에 도망치려 든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기에 제 발로 돌아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며, 최선을 다한 거짓말로.
여기, 또 변수가 생긴다. 코흐가 명부 작성을 담당했던 '엘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질을 앉힌 것. 엘사와 달리 질의 글씨체는 명필이기도 하다. 그의 일터는 이제 주방이 아니라 명부가 펼쳐진 책상 앞이다. 질에게 주어진 건 45분의 시간, 명부, 만년필과 잉크, 그리고 독일어 40개가 적힌 종이 한 장. 질의 머릿속은 온통 단어 만들 생각뿐이긴 하나, 코흐가 시킨 일부터 하는 게 순서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꾹꾹 종이에 눌러 적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건 글자들. 독일군의 철저한 관리 하에 수감번호로 불리는 이름들. 이름은 곧 단어다. 그 이름들을 조금만 변형하면 금세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 이거면 살 수 있다. 질은 들뜬 마음으로 '페르시아어'를 조합해간다.
시간이 쌓일수록 몇몇 군인들은 질이 불만스럽다. 특히 주방을 감독하는 일로 쫓겨난 엘사와 그리고 처음부터 질이 유대인이라고 확신한 '맥스'가 보기에. 위계가 엄격하기에 그들의 농간에도 질은 레자로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교묘한 줄타기가 잘해가던 레자. 실수로 페르시아어 수업 첫날에 말했던 '빵'을 '나무'와 똑같은 단어로 발음한다. 그리고 끝난 줄만 알았던 레자는 사경을 헤매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건 코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레자가 만들어 낸 페르시아어였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자 더할 나위 없는 견고한 진실로 변모한다.
코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레자를 변호하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고 명한다. 내키지 않아도 그를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던 질, 아니 이제 레자라는 명명이 우리의 눈과 귀엔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이 엇비슷하게 뒤섞이던 순간, 전환점을 맞이한다.
독일군은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단체로 이송하고, 그럴 때마다 레자는 코흐의 보살핌으로 농장에 피신한다. 그는 마치 독일군의 아군 같다. 텅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코흐의 맞은편 침대는 이탈리아 형제가 차지했고, 저도 모르게 레자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형제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레자를 지켜낸다. 그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레자는 목숨 하나를 직접적으로 빚진 느낌이다.
레자는 그 죽음들을 지켜보며 가라앉는다. 진짜 페르시안이라서 죽임을 당한 사람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죽은 남자.
이 대목이 코흐와 그의 차이를 보여준다. 레자는 자신의 생존으로 직간접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 또한 죽음으로써 모든 잘못을 짊어지려 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애석하게도, 코흐는 제 부하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를 끄집어내어 곁에 둔다. 그에겐 아직 레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다. 코흐가 그토록 바라던 독일에서의 탈출 시기다. 처음 수용소에 왔을 무렵 질이 꿈꿨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 잡혀온 초반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는 홀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도망갈 기회가 생기자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듯이.
수용소 내 모든 문서들은 활활 타오른다. 레자의 손으로 적힌 무수한 이름들도. 이름의 주인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글자가 사라지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피해가 없어지면 가해 또한 잿더미가 된다.
코흐는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레자를 빼낸다. 자신은 공항에 가서 테헤란으로 넘어갈 거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자를 등진다. 레자는 뒤돌아 자신 앞에 놓인 광경을 본다. 눈으로 뒤덮인 곳.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만들 모든 발걸음이 곧 길이 될 테다.
당연히 코흐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벨기에인 행세를 하려 들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린다. 하지만 꿋꿋하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익숙하게 말한다. 그는 알 수 없었을 테지.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그가 말한 것들은 모조리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마지막.
질은 영국군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수용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수천 명이라는 답. 살아남은 다른 생존자들 또한 쉬이 답할 질문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이름이 있냐고. 기대가 담기지 않은 물음이다. 살아있는 게 기적인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있다. 2,840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2,840개의 이름들. 2,840명의 사람들이. 그는 머릿속에 빼곡한 명부를 읊는다. 천막 안이 점점 고요해지며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공간은 그의 목소리와 빠르게 놀리는 펜촉 소리만 들린다.
죄책감, 고통, 미안함, 고마움, 공포, 안도. 뒤섞인 감정은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진다. 그래도 그의 입은 계속 단어들을 뱉는다. 살기 위해 빌렸던 단어들에게 진실을, 원래의 이름을 돌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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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주 차 최신 씨네뉴스
7월 1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토퍼 놀란 신작 ‘오디세이’ 합류🎬
샤를리즈 테론이 한 행사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 ‘키르게’ 역으로 합류한 것에 대해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고 털어놨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엄청난 캐스팅까지..!
캐스팅 찾아보면서도 믿을수가 없었네요 🔥
맷 데이먼 - 오디세우스
톰 홀랜드 - 텔레마코스
젠데이야 - 아테나
로버트 패틴슨 - 헤르메스
샤를리즈 테론 - 키르게
루피타 뇽오 - 클리타임네스트라
베니사프디 - 아가멤논
지금까지 캐스팅은 이렇게 공개되었구요
이 밖에도 배우 존 번탈, 미아 고스도 합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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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원스 - 실현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독: 존 카니
출연: 글렌 핸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
개봉: 2007. 09. 20 / 2017. 11. 01 재개봉
줄거리
평범한 청소기 수리공인 '그'는 매일 저녁에 자작곡을 거리에서 부른다.
낮에 사람들은 아는 노래만 들을려고 하기 때문에, 밤에만 나와 부르는 ‘그'
어느 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의 음악성을 본 그녀.
그녀 역시, 음악을 좋아하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피아노 가게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음악성을 확인한다.
그런 그들은 서로 작업을 도와주며, 가까워진다.
더블린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 그녀.
서로 풍족하지 못하고, 늘 서툴던 서로.
닮은 부분이라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뿐인 그들.
그 둘의 부족함은 음악이 채워주고 둘의 이야기가 적힌 영화 속 스크린이 채워져간다.
Miluju tebe
감독&배우
이름 : 존 카니
필모그래피 :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등
특징 :
매번 음악 영화를 만들며, 원스에선 투박함과 어색함, 거친 영상을 다루어 만들었지만, 그런 어색함이 주는 감성을 잘 살리고,
비긴 어게인에선 몰락한 프로듀서, 바람난 톱 가수, 버림받은 연인의 이야기를 잘 다루었지만 원스의 색채는 잃어버린 듯 했으며,
싱 스트리트 에선, 청춘들의 음악이야기를 잘 다루었다.
매번 음악의 사운드트랙은 CD로 구매하여 소장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정도이다.
이름 : 글랜 핸사드
역할 : 그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커미트먼트 등
특징 :
긴박한 느낌을 잘 주는 노래 'falling slowly'를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여유로운 감성을 주며 적당히 긴박한 느낌도 잘 주면서 불렀습니다.
실제 아일랜드의 인디밴드 'The Frames'의 보컬로 활동합니다.
노래에서는 특유의 감성이 잘 묻어나며, 여유로운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름 : 마르게타 이글로바
역할 : 그녀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
총 평
★★★★☆ 9.5/10.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며, &표시가 있는 부분은 스포일러 주의 표시입니다.)
-짧은 평가-
'비긴 어게인'이 프로 가수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 안에 생기는 갈등과 음악을 담았다면,
'원스'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존 카니' 감독의 초창기 작품으로 구조만 보면 정말 단순하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갈등요소도 없으며, 사족이 하나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아무 소스도 없는 샐러드 같다는 느낌이 처음에는 강합니다.
하지만, 음악이 등장하면, 위에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듯 합니다.
역경, 갈등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강가에서 멀어저 가는 나뭇잎과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우리(관람객들)들이 그 나뭇잎처럼
잔잔히 흘러가며, 영화 원스라는 강의 한 가운대로 천천히 나도 모른체 가는 듯 합니다.
-더 현실적이라 여운이 남는 결말-
영화의 마지막을 달리다 보면, '그'와 '그녀'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그는 헤어진 전 애인을 잊지 못하였고, 그녀는 사실 이혼하여 아이가 딸린 엄마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자신을 사랑하냐 묻고,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체코말로 대답합니다. '너를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는 무슨 뜻인지 모른체..
그는 아침식사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은 둘 다에게 미련만 남고 돌아오지 못할 관계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내일 남편이 온다며 떠나고, 그는 그런 그녀에게 런던으로 작업을 하러 떠나기 전 피아노를 선물로 남겨주고 떠나며,
둘 다 자신의 바램과 서로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하였지만, 어느 한 편으론 둘다 실패했습니다.
분명 해피엔딩이지만,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과
항상 승승장구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면 잃는다는 일득일실의 느낌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다른 음악영화와의 차이점입니다.
그저 행복한 결말이 아닌 행복하지만, 현실적이며, 어딘가 쑤씨게 만드는 듯한 이 연출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10년 가까이 들어도 편안한 사운드트랙-
아마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게,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가족끼리 유럽 일주를 하며 유로스타 기차안에서 보았는데,
그 때는 다른 거는 잘 몰라도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 이 음악은 제 DAP와 아이폰,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글랜 핸사드의 부드러우면서 귀에 딱딱 박히는 듯한 보이스와
영화 특유의 감성과 여유로우면서 긴박한 느낌을 정말 잘 주는 듯한 노래입니다.
그 외로도 전체적으로 사운드트랙이 준수합니다.
-다소 특이한 연출-
이 영화는 꽤나 특이합니다.
주연인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캐릭터의 이름이 묘사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영화들을 돌려보며, 이름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이름은 누군가, 나 혹은 다른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빼았습니다.
하쿠는 이름을 잊으면 되돌아올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만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음악에 포커스를 더 두며, 둘의 애정은 음악을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이름은 정체성과 존재라고 했는데, 둘이 서로 이름을 말하며 애정을 나누고 한다면,
이 영화에서 둘의 관계는 밋밋하다 느껴졌지만, 그 느낌이 없어지고 연인같다는 느낌을 줄거 같습니다.
저는 '연인같다는 느낌 = 존재감'을 없애기 위해 이름을 안 주었을 수도 있겠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은유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음악을 표현한 영화인데, 둘은 실질적으로 애정을 나누거나 한 과정이 없습니다.
그저 말 몇마디와 음악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둘의 관계를 대충 유추하는 듯한 느낌의 연출도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뭔가 그냥 영상이 특이합니다
마치, 대학 동아리나 독립 영화나 다큐팀에서 찍은 듯 해서 현장감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소니의 6mm 캠코더로 촬영하여, 길거리 공연을 하며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는 것이
작위적인 것이 아닌 진짜 호응하는 것이 담겨 더 좋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방식-
우연히 그녀가 저녁에 지나가다 그가 자작곡을 부르는 걸 들었고,
우연히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렇게 둘은 서로 상부상조 하며 음악을 하며 사이가 가까워집니다.
그 후, 그녀와 작업을 하며 돈 문제와 프로듀싱 관련에서 서로 갈등이 없이 그냥 빠르게 해결됩니다.
다른 음악영화를 보면,
'비긴 어게인'에선 데이브가 그레타와 연인 관계지만, 음반회사의 직원과 바람을 피고, 둘은 헤어지게 되며, 그레타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댄은 원래는 그래미 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하고 유능한 프로듀서이지만, 영화에선 퇴물로 묘사되며 회사지분도 넘기고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되게 되며, 그러다 그레타의 음악성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영화에선 갈등요소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유심있게 볼 부분은, 두 남녀는 음악을 제외하곤 서로 접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국적도 아일랜드와 체코로 서로 다르며,
직업과 둘의 사회적 위치도 굳이 트러블이 생길 위치가 아닙니다.
그의 직업은 청소기 수리공이며, 그녀는 그저 직업이 묘사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는 아일랜드 토박이이며, 그녀는 체코 이민자입니다.
서로는 접점이 없으며, 접점이 없다 = 닿는 부분이 없다 =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닮은 부분도 비슷한 요소도 없는 둘이 친해지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음악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게 더 이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매번 다른 감정-
이상하게 이 영화를 매년 다시보면,
다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이 영화를 보면, 그저 심심하기 짝이 없었고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봤을 땐, 음악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중학생 시절엔 그저 사랑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1~2학년 시절엔 보다 더 현실연인이 헤어지는 듯 했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뚜렷한 목표에 다다를수록 무언가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와 그녀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는 뮤지션이 되러 런던에 가듯,
그녀는 가족이 다시 재결합 되듯,
여운이 계속 남게 되는 몇 안되는 음악영화 였습니다.
난 당신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당신을 원해요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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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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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Bouble 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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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Ca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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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형-chase 2(추격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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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F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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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Hell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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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J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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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MY MI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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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Ost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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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PING P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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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Put the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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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Think Of Konan(싱크 오브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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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Traffic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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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조-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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