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2025-03-23 21:46:03
청춘의 즉흥 연주, 스윙걸즈
<스윙걸즈> 재개봉을 기다렸다!
때론 가장 우연한 순간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일본 영화 <스윙걸즈>는 단순한 선택이 어떻게 열정이 되고, 결국 한 사람 그리고 모두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일본 시골 마을의 여고생들이 엉겁결에 빅밴드 재즈를 시작하면서 펼쳐진다. 여름방학, 수학 보충 수업을 피하려던 토모코와 친구들은 급식 배달을 맡게 되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기존 밴드 멤버들이 빠지면서 얼떨결에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재즈였지만, 점차 리듬에 빠져들며 그들만의 소리가 만들어진다.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고, 동기가 쌓여 몰입이 되고, 결국 ‘더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들은 재능이 넘치는 천재들이 아니다. 실수하고, 좌절하고, 악기를 제대로 살 돈조차 없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진짜 밴드가 되어간다.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며 실수를 웃어넘기고, 허름한 창고에서 땀을 흘리며 연주를 맞춰가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악기를 구하는 장면들은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직접 연주할 수 있고, 스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빅밴드 재즈를 사랑하지만 한 번도 무대에 서지 못했던 수학 선생님, 처음엔 재즈가 뭔지도 몰랐지만 점점 빠져든 주인공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모두가 ‘스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찬란하고 순수해서 더욱 여운이 남았다.
한 여름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때묻지 않은 감성과 마음들이 한 데 모여 빅밴드를 이룰 때의 그 리듬감과 흥겨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윙걸즈>는 특별하다. 재즈를 몰라도,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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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사랑은 어려워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주인공들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들을 알아차리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어른들의 욕망 가득한 눈빛이 아니라, 세상에 진짜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확인해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으른의 연애'라는 것들이, 때로는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는 얼마나 상큼한가.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청량감 같은 것들을 느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여름밤에 평상에 앉아서 수박을 퍼먹었던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열대야를 견딜 수도 없고, 평상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며 수박은 한 통에 2만 원 한다.
이따금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 왠지 죄스러웠는데, 죄의식의 근원은 당연히 모른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대사가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너무도 추상적이다. 어쩌면 나는 죽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일찍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안우연 학생은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여자들에게 거절만 당해왔다. 이럴수가. 맨날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인다. 어른인 나의 눈에는 왜 차이는지 알 것 같은데... 안우연 학생은 모르는 듯하다.
혼자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주고, 웬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주고... 스크린 밖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스웨덴에는 수네(sune)가 있다. 수네는 거의 아기 때(?)부터 소피와 연인사이이다. 소피와 수네의 가족은 미드소마 기간에 미슐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름축제를 즐기기로 한다. 미슐트는 여름축제가 유명하고, 메이트리에 링을 만들어 운명의 짝을 찾곤 한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에 감화를 받아 소피를 찾아가는데, 영화처럼 샴페인과 굴을 싸들고 간다. 하지만 소피는 피자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우리의 우연이가 일방적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가듯이. 그래서 "이거 네 거야." "내 거 아니야." "네 거라니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차이듯이 수네 역시 장렬하게 차인다.
우연이는 어딘가에 운명 같은 사랑이 우연이를 기다리고 있어, 그 사랑을 만나기만 하면 상처받지도, 헤어지지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수네는 소피와 결혼까지 할 마음으로 여름축제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엄마아빠가 여름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여름축제에서 소피를 고리에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연이가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수네도 운명을 믿는다.
우연이는 운명탐지기를 만든다(엄청난 실력자이다). 운명탐지기는 운명의 신호를 따라 우연을 인도한다. 우연은 우연히(아마도 그런 이유로 작명한 듯하다)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탐지기가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운명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이 여자아이는 이유도 없이 우연을 따라나선다.수네는 소피의 떠난 마음을 돌려보고자 미슐트에 사는 아이 알렉스와 작당모의를 한다. '질투심 유발' 따위의 뻔한 술수이다. 알렉스는 당뇨 환자이고, 마을의 지분을 각각 1/3씩 가진 레즈비언 엄마들이 있고, 그들은 지금 이혼한 상황. 알렉스는 수네를 돕는 대신, 나머지 지분 1/3을 가진 수네의 엄마가 알렉스의 엄마들 중 누구에게도 집을 팔지 말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여름축제를 열어야 소피를 잡을 수 있다고 크게 착각한 수네는 엄마에게 축제를 열어주는 쪽에 집을 팔라고 설득하는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모든 것이 들통나고, 소피는 축제를 다른 친구네 집에서 보내겠다며 떠나버린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처럼 소피를 따라가지만 소피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하이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엔 다 잘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연에게 운명적인 사랑이 곧 찾아올 거라는 것도 알고, 수네와 소피가 화해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 그리고 순수하고 풋풋한 장면들이 하이틴 영화의 묘미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나!'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해 주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사랑일 것이다. 청소년기는 더욱이 자기중심성이 강한 시기라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 제일가는 절절한 사랑인 줄 안다. 자기 마음대로 학을 접어주고, 케익을 만들고, 좋아하지도 않는 굴을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고,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연이도, 수네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두 영화를 보면서 여러모로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어른이지만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사랑이 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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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영화 9선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디터는 가족도 인간관계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
피를 나누었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타인에게서 가족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들은 가족의 의미와 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탐구한 작품들입니다.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한 <어느 가족>과 <가족의 탄생>부터,
가족 내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 <로얄 테넌바움>과 <결혼 피로연>까지
‘가족’에 대한 고민이 깊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영화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감사합니다.
가족의 탄생
미라와 형철은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다정한 남매로, 5년간 소식 없던 형철이 나이 많은 연인 무신과 함께 미라를 찾아온다. 미라는 동생과 그의 연인 무신과의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고, 한편, 선경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 때문에 연애와 일상이 항상 시끄럽다.
경석과 채현 커플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의 차이로 갈등을 겪으며 관계에 위기를 맞는다. 사랑과 스캔들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복잡한 이야기에 예상치 못한 비밀이 드러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과연 이들의 복잡한 사랑과 갈등 속에서 행복이 탄생할 수 있을까?
결혼 피로연
대만 출신의 웨이퉁은 뉴욕에서 애인 사이먼과 동거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부모님은 결혼과 손주를 바라며 압박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웨이퉁은 세입자 웨이웨이와 영주권을 위한 위장결혼을 계획하고, 그녀는 제안을 수락한다. 부모님은 뉴욕까지 찾아와 전통 혼례식과 피로연을 제안하고,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완벽해 보였던 위장결혼은 피로연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로 인해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지고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 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로얄 테넌바움
로얄 테넌바움과 그의 아내 에슬린은 세 명의 천재적인 자녀를 두었지만, 별거로 인해 자녀들은 각기 흩어져 살게 된다. 채스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마고는 극작가이며, 리치는 주니어 테니스 챔피언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의 충격과 비극으로 인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든 실패를 아버지 로얄의 탓으로 여긴다. 가족은 로얄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20년 만에 한 집에서 다시 모여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 캔 카운트 온 미
여덟 살 아들 루디를 혼자 키우며 뉴욕 근처 스코츠빌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새미는 지역 은행에서 일하고 교회 활동도 한다. 새미의 남동생 테리는 방랑 생활을 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어느 날, 테리가 돈을 빌리러 스코츠빌을 찾아오면서 새미의 평온한 생활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새미는 테리가 아들 루디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랐지만, 테리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가족의 기대를 저버린다. 결국, 테리는 루디를 친아버지에게 데려가게 되고, 이로 인해 루디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토니 에드만
“가족이란 누가 안 본다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아버지는 더 그렇다!” 농담에 장난은 기본, 때론 분장까지 서슴지 않는 괴짜 아버지가 인생의 재미를 잃어버린 커리어우먼 딸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드라마.
다즐링 주식회사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전하기 위해 인도에 있는 엄마를 찾아 1년 만에 뭉친 3형제. 맏형 프랜시스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서먹한 형제 사이가 돈독해지길 바란다.
항상 이혼생각에 잠겨있던 찰라 아내가 임신하자 구체적으로 이혼을 계획하는 둘째 피터, 헤어진 애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막내 잭. 선로가 있어도 길을 잃어버리는 대책 없는 인도기차 ‘다즐링 주식회사’를 탄 채 세 형제의 사고만발 인도여행이 시작되는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광고 회사에 다니는 남편 테드와 일곱살난 아들 빌리를 뒷바라지하며 살던 조안나는 어느날 새 인생을 찾겠다고 부자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간다. 가정일이라곤 해 본적도 없는 테드는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애키우랴,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18개월이 지난 어느날 테드와 빌리가 나름대로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을때 조안나는 빌리를 데려가겠다고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분노한 테드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그동안 빌리를 키우느라 회사 생활이 소홀해 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회사측에 의해 해고를 당하는데..
어느 가족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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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리가 전하는 관계의 회복에 대한 냉혹한 통찰
▷한줄평 :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네 인생을 반추하는 잔혹한 통찰
▷평점 : ★★★★
▷영화 : 내 말 좀 들어줘(Hard Truths), 2025.8월
※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기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한 한 중년 여인이 있다.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어.’라는 그녀의 고백은 절망 속 깊이 빠져 있는 현재의 심리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이 여인을 보듬어 줄 사람은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관찰자 시점으로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간극을 유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불만으로 가득한 여인 ‘팬지’ -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로워”
이 영화의 주인공 팬지(마리안 장 밥티스트)는 날선 독설가로 통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마트 계산원이든 치과 의사든,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녀는 날카롭고 거침없는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거리에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초반부 내내 그런 팬지의 동선을 따라가며 그녀의 배설을 영상속에 채워 담아낸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팬지’는 늘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우선 가장 가까운 가족들인 아들 모지스(트웨인 배럿)와 남편 커틀리(데이비드 웨버)가 타깃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 작은 흠집이라도 생기면 잔소리와 힐난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식탁위에 식빵 부스러기를 깨끗이 치우지 않고 일어선 아들이, 먼지투성이 신발을 신고 집을 돌아다니는 남편이 불만족스럽다.
그녀의 잔소리에 익숙해진 탓인지 가족들은 어떤 말대꾸도 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회피하고,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너는 도대체 뭐하고 살래?’라고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조차 차단하려는 듯
아들은 방에 틀어박혀 헤드셋으로 세상을 가려버린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아들과 남편은 늘 그녀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집밖에서는 더욱 거침이 없다.
이런 성정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은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엔 그녀의 감정의 배설을 받아내는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가구점에서 소파를 둘러보던 팬지에게 점원이 다가와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단박에 거절해버린다.
소파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들에게는 ‘당신들의 지저분한 DNA가 묻은 소파를 사 가라는 거냐?’며 생트집을 잡는다.
마트 계산원에게는 ‘표정이 왜 그래? 얼굴 좀 펴!’라며 대뜸 공격해 대고,
이를 말리는 뒷 손님에게는 ‘타조같이 생겼다’며 인신공격성 말도 서슴지 않는다.
치과병원에 가서는 자신을 내버려 두고 장례식을 간 담당의사가 제정신이냐며 비난을 퍼 붓는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마트 계산원에게 독설을 남기는 장면
이쯤되니 그녀가 반사회적 편집적 인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짐작된다.
세상에 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차츰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남모를 불안과 외로움을 안고 살얼음 위를 걷듯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진다.
기어이 내 주변에 있는 어떤 한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일에서조차 고집스러워지는 나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숨겨진 발톱을 한두번은 드러낼 때가 있지 않았던가?
뭔가 정신과 진료나 심리치료가 필요해 보이던, 나와 아주 다른 성정의 팬지에게서 문득 숨기고 싶은 나의 정서적 결핍이 거울에 비춰지는 듯하다.
어느새 툭 치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끊어져 버릴 것 같은 팽팽한 고무줄의 한쪽을 맞잡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젠, 그녀의 삶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뿔싸, 감독 마이크 리의 전략에 걸려든 것 같다.
집요하게 그려낸 그녀의 불안과 불평, 그리고 분노는 이제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스크린 밖 나와 정서적 연대를 이루었다.
이젠 어쩌지? 아직 영화 초반이니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겠다.
대화의 기술자 ‘샨텔’ – “언니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해”
반면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샨텔(메셀 오스틴)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대화의 고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배려하는 대화의 기술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다.
미용실에서는 손님의 머리를 매 만지면서, 집에서는 식탁에 앉아 그녀의 두 딸들과 깔깔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를 닮았는지 딸들도 애써 직장에서 받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직장 상사의 비난의 화살을 온 몸으로 받아 의기소침해져 있을 법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활기찬 에너지가 넘쳐난다.
지나칠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고 깔끔해서 오히려 경직되어 보이는 팬지의 집과 달리
샨텔의 집은 비좁고, 어수선하지만 따뜻한 온기와 아늑함이 느껴진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샨텔은 두 딸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눈다
샨텔은 언니 팬지가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래서 지금 왜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도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언니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가려고 애쓴다.
그래도 세상 하나뿐인 언니 아닌가.
5년전 돌아가신 어머니 기일을 맞이하여 그들은 함께 어머니가 안장되어 있는 묘지로 향한다.
몇번이고 함께 가자는 동생의 요청에 확답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당일에서야 못이기는 척 팬지는 동생을 따라 나선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기억은 서로 사뭇 달랐다
이 자리에서 팬지는 어린시절 자신이 겪었던 아픈 상처의 기억들을 격정적으로 토로해 낸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는 동생과 달리,
팬지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던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결국 묘비를 어루만지던 팬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무관심, 그리고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했던 책임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녀의 지금의 불평, 불만으로 가득차 보이는 행동과 말투는 긴 시간동안 퇴적되어 온 정서적 상처들의 표출일 뿐이었다.
흐르는 눈물은 그녀가 짊어져온 무거운 과거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동생 샨텔은 그런 ‘언니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웃음은 눈물로, 희망은 현실로 – 끝내 좁혀지지 않는 거리
또 마지못해 참석하게 된 ‘어머니의 날’. 샨텔의 집에서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 앉았다.
즐거운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도 팬지는 왠지 낯선 이방인처럼 이 자리가 불편할 뿐이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온가족이 모인 모임에서조차 팬지는 불청객처럼 외롭다
그러던 중 아들 모지스가 어머니의 날을 맞아 집에 꽃을 배달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팬지는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이어 큰 울음으로 변하고 만다. 만감이 교차하며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오랜 고립과 깊은 외로움 속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나는 듯 싶다.
이제서야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깊은 슬픔의 찌꺼기를 걷어내고 희망을 만끽하는 ‘행복’한 가족 으로의 회복을 선물을 하려는 것일까?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팬지는 식탁에 앉아 물끄러미 거실 밖 안뜰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어두움으로부터 밝고 화사한 세상으로 나갈 것을 다짐이라도 한 듯 팬지는 아들이 사다 놓은 꽃을 꽃병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 놓는다.
단정하고 깔끔한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 소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은 어쩌면 팬지의 변화의 의지를 암시한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스틸컷 / 뭔가 실마리가 될 듯 싶었던 꽃은 끝내 버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뿌리 깊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법, 단 한번의 눈물로 일순간에 모든 것이 변할 수 없다.
잠을 청하기 위해 침실로 들어간 사이, 남편은 식탁 위 꽃을 냅다 내다 버린다.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가 있기는 한거냐?’는 팬지의 독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테리어 일을 하다가 허리가 삐끗하여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내가 더욱 미워 보인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버린 서로의 간극은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날’을 기점으로 그동안 쌓였던 불만들이 해소되고 변화가 모색될 듯싶던 ‘팬지’의 가족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팬지는 침실에서 이불을 감싸고 웅크린 채 침묵을 응시하고, 남편 커틀리는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삼킨다.
마이크 리가 전하고 싶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통찰
어쩌면 근원적인 관계의 회복은 이제는 가끔씩 일이 있을 때에나 만나는 동생 샨텔이 아니라
매일 함께 숨쉬는 공간에서 마주해야 할 남편 커틀리와 아들 모지스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샨텔이 과거의 가족이라면, 현재의 가족은 남편과 아들이다. 과연 이들은 미래도 함께할 수 있을까?
이미 나락 깊숙이 떨어져 상할대로 상한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한다. 이 결말이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현실이라면 현실이다.
그래서 영화의 원 제목은 ‘Hard Truths’ – ‘불편한 진실’ 또는 ‘냉혹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81세 나이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인생의 참혹한 통찰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포스터
202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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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물랑 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를 연출한 바즈 루어만은 화려한 비주얼과 극적인 드라마를 결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런 그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렸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니 당연히 많은 영화 팬이 그 결과물을 기대했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 〈로켓맨〉(2019), 〈주디〉(2020) 등 가수·배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근래에 계속 제작되어왔다는 점도 호재였다. 이전 작업을 비판적 참조물 삼아 자신만의 개성인 더 화려한 볼거리, 더 진득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엘비스〉는 엘비스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 오스틴 버틀러를 캐스팅해 엘비스의 노래와 춤, 비주얼 등을 재연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리하여 엘비스를 다시 무대로 올려놓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장기인 드라마의 농도는 형편없다.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비주얼과 치명적 드라마를 적절히 맞물리게 연출했기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여러 등장인물 간의 갈등, 사랑, 우정 등 다양한 요소를 가장 본질적이고 주가 되는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해 영화의 핵심 감정선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엘비스〉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 영화에는 여러 드라마 요소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을 뿐이어서 무엇이 메인 드라마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각각의 요소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다 금세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내레이터의 대사로 어떻게든 여기저기 널린 드라마 요소를 갈무리하려 하지만 유기적 연결 없이 대사만으로 이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신의 산만함을 자백하는 꼴이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드라마는 팬들을 향한 엘비스의 사랑인 듯 보인다. 죽기 얼마 전까지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엘비스, 가족의 친밀감보다 공연할 때 팬과 호흡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더 아끼는 엘비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업주의적 착취를 거스르는 엘비스의 열정과 의지,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끝내 메인 드라마와 결합하지 못한 다양한 드라마 요소가 남아 있다. 엘비스의 재능(혹은 ‘상품성’)을 알아보고 매니저가 되어 그를 착취하는 톰 파커, 러브 스토리, 극적인 상승과 하강, 사치와 약물중독, 흑인 뮤지션과의 관계 등등. 이 중 몇몇은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와 어우러지지만, 대개는 다소 튀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진지한 대사를 하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싶었는데 그 부분은 살짝만 비추고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식이다. 이와 같은 유기적이지 못한 이야기의 반복은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내내 반복되어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 요소를 갖추었다고 감동이 더 커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밀도와 농도다. 영화의 헐거움은 자신이 발견한 엘비스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한 바즈 루어만의 욕심이 패착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의 얼굴과 대사가 떠올라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과 맺었던 긴장 관계를 재현하는 영화의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가정 형편상 흑인 마을에서 자란 엘비스는 어릴 때부터 흑인 커뮤니티에서 그들 음악의 수혜를 입으며 자랐다.* 백인 가수 중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흑인 음악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편에는 영화 〈드림걸즈〉(2006)에 나오듯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도둑질해갔다며 잔뜩 분노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가 아니었으면 흑인 음악이 주류로 부상하지 못했을 거라며 엘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구심이 들었던 건 엘비스가 보수주의적 검열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장면을 인종 정의와 연결한 연출이었다. 바즈 루어만은 엘비스를 흑인을 위해 싸운 투사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엘비스가 인종 간 교류 등 변화하는 시대의 정수를 체화하여 보수적 연예계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왔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를 엘비스의 의식적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엘비스의 문화정치적 의미는 그가 흑인 음악을 차용해, 딱 달라붙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으로 소화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엘비스를 인종 정의를 위한 활동가로까지 만들었을 필요는 없단 소리다.
영화에는 엘비스가 ‘발이 없어 땅에 앉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끊임없는 날갯짓은 새를 더 높은 곳에 올려주기도 하지만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의 삶을 잘 압축한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탁월한 비유에 맞춰 엘비스 삶의 다양한 요소를 조율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의 과잉 나열에 그치고 만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바즈 루어만의 다른 히트작과는 달리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엘비스는 당시 보수적인 백인들이 ‘여성스럽다’고 느낄 만한 패션과 몸짓을 체화한 자이기도 했다. 엘비스의 흑인성과 여성성은 곧 그의 ‘상품성’이 되었다.
**영화를 본 후 찾아보니, 로튼 토마토에 비슷한 평이 있었다. 평론가 Marcelo Stiletano는 “루어만은 모든 실존적 디테일에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은 끝내 허위의 제단에 희생되었을 뿐이다(Even though Luhrmann seems really interested in all the existencial details, they end up sacrificed on the altar of pretension)”라고 이 영화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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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다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다
영화 <유포자들> 리뷰
감독] 홍석구
출연] 박성훈, 김소은, 송진우
시놉시스] “핸드폰이 사라지고, 나는 N번째가 되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남자 도유빈. 자신의 오랜 친구 공상범의 유혹에 이끌려 클럽에서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사라진 전날 밤의 기억과 핸드폰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수화기 너머 범인은 3천 3백만 원을 구해오지 않으면 그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오늘 밤, 숨기고 싶었던 모든 것이 잠금해제 된다.
몰카범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영화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 <유포자들>이 비슷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영화관을 찾아갔다. 사실 뻔한 내용이기에 이미 그동안 많이 접했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피해자의 성별을 교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질감을 전해주어서 새로웠던 작품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압박감을 표현하다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나갈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인 학교. 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이는 교사다. 그렇기에 모범을 보여야하고 위험한 행동을 해선 안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적인 선생님의 상이 있기에 이에 벗어나면 시정 요청이 쉽게 들어오는 직업군 중 하나다. 그래서 일까? 몰카 유포와 관련된 다양한 영화들에서 피해자로서 종종 볼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교사였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인 유빈의 직업이 고등학교 교사다.
교사로서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유빈은 동영상이 언제 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동영상이 공개되는 망상을 겪기도 하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것까지 상상을 하며 힘들어한다. 모범을 보여야하는 직업에서 스스로의 행동이 그렇지 못했다는 자책과 빠르게 자신의 행실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집단이라는 공포감이 주는 압박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는 직업군이라는 점이 이번 영화에서도 잘 표현이 되고 있었다.
피해자에는 성별이 없다
이제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피해자는 여성,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 피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유포자들>에서 몰카 피해자로 남성과 여성 모두를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범죄의 피해자에는 성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방법이 바로 주인공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물로 설정한 것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유빈의 성적 취향은 관계를 가지면서 영상을 찍는 것이다. 그런 그의 취향을 알았던 친구 상범은 유빈의 핸드폰을 고쳐준다는 핑계를 가지고 유빈의 핸드폰에 있었던 동영상들을 불법 음란 사이트에 업로드했고, 여자친구는 이로인해 일상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여자친구에게 유빈은 3,000만원이라는 돈을 내밀며 ‘우리 인간적으로 해결하자’라며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유빈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찍힌 몰카 동영상으로 인해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 과연 유빈은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러한 몰카 동영상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흔들릴 것이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자신이 여자친구와의 관계 영상을 찍으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도, 절대 피해자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에 더욱 멘탈이 붕괴되고 정상적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진범을 잡고 자신의 몰카를 유포한 이와 마주본 장면에서 ‘인간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을 들으며 과거 자신이 했던 말과 똑같음을 깨달은 유빈은 얼굴이 일그러진다. 가해자의 얼굴에서 피해자인 자신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가해자 유빈과 피해자 유빈이 서로 마주보며 마무리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에는 정해진 성별이 없으며, 가해자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한 작품이었다.
영화 <유포자들>은 불법 촬영이라는 무거운 소재였지만 기존에 통용되던 성별을 역전시킴으로써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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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일어나는 지옥
부럽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한 말이다. 보통 취업준비로는 타인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런 기분이 많이 든다. 450여 일의 노예생활이 지나면 자취도 하고 내 돈으로 월급도 벌어서 효도도 하겠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야.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아. 나 진짜 열심히는 했는데 말이지." "야. 네가 안되면 누가 안 되냐?" 친구는 나를 위로해줬다. 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온갖 혐오가 판치고 취업난 구직난이 바글바글한 우리나라에서 1인분 하며 일상을 버틴다는 것은 참 많은 것들을 수반하는 일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한참 하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지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미지와 첫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주욱 말했다. 그게 뭐야라고 대답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귀결 지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누군지만 아는 그 사람이 구린 이유는, 예민한 게 너무나도 많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라서 내가 뭐라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멀리 오기는 했다. 사람같이 살려면 참 많은 게 필요하니 말이다. 16년 전 한 신인 감독이 한국사회의 단면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가져와 오싹한 공포영화를 만들어냈다. 한국 호러 영화의 수작, <불신지옥>이다.
영화 개요로 다 함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이야기
동생이 사라졌다. 언니 희진이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아빠는 없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희진. 희진은 곧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 태환은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태환은 부랴부랴 희진을 만난다. 태환은 그렇게까지 희진에게 협조적이지 않다. 동생 소진의 실종이 단순 가출로 가정하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을 취재하는 태환. 점점 이상한 게 눈에 띄기 시작한다. 태환은 경비 아저씨부터 옆집 아줌마 경자까지 '그 집에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증언을 듣게 된다. 태환의 조사는 점점 진행되고, 희진에게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 과정 속에서 두 영화는 이 희진과 소진 자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일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 볼 수 있겠다.
과연 어떤 것이 지옥인가
여러분은 무속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자 생각하는 무속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각각 다를 것이다. 영화는 두 종교가 제시했던 지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무속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차용해서 역시 초자연적인 두려움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둘이 갖고 있는 신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 안에서 묘사하고 있는 다른 지옥들이 몇 개 있다. 하나는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어떤 공포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 쓰면 깊이에 지장이 갈 것 같아 더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영화 내적으로 묘사하는 인물 갈등이 탁월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진과 엄마와의 대립, 또 경비 아저씨와 태환과의 대립, 태환과 희진의 갈등까지 누군가가 어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를 묘사하는 꼼꼼한 인물 구성이었다.
또 영화가 조명하는 이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아파트라는 건물 속성 자체가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서 빼곡히 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덕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도가 높다. 영화 안에서 이웃이 태환에게 소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보면, 이 고밀도에 의해 쉽고 가벼운 말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외에도 군인 출신들의 사회 적응, 대학생이 살기 너무나도 어려운 사회 현실, 타인을 이용하기 충분한 한국사회,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위치까지 신의 존재로 넓은 이야기 범주를 호러라는 키워드 안에 무리 없이 담는다.
깔끔하게 짜인 무서운 이미지
흔히 호러 영화의 클리셰로 '점프 스퀘어'라는 말을 쓴다. 갑자기 유령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것이 그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점프 스퀘어가 한 번도 안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공포를 만드는 방식은 이와 살짝 다른데, 이 작품은 이미지를 사용해서 무서움을 만들어 낸다. 영화 초중반부 어떤 인물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태환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인물이 대사를 치며 하는 표정, 그 말의 내용, 이 인물의 다음 처지까지 감독은 자칫하면 뻔할 수도 있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또 이 인물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받아주는 태환이라는 인물의 성격도 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신들림'의 이미지 역시 탁월했다. 신들림은 현실과 신 사이의 3의 존재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인물이 빙의되며 변하는 표정연기나 기타 미술까지 현실감 있는 두려움을 묘사했다. 이 신들림과 비슷한 느낌이 운명적인 죽음 아닌가. 특정 인물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 역시 여태까지 봤던 공포영화의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런 강력한 이미지들이 인물의 행동으로만 쨘하고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니 만큼 특정 쇼트들이 관객에게 제시되는데 이 역시 탁월했다. 감독 이용주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종교적인 이야기?
<불신지옥>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 작품이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읽힐 수도 있다. 난 영화의 소재가 한국사회의 이기주의라고 본다. 그러니까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닌 셈이다. 영화는 두 가지 종교를 키워드로 전개한다. 바로 무속과 기독교다. 이 영화가 반종교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캐릭터가 어떤가에 대해 써야 하는데, 극을 보다 보면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종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파트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물론 극단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끔찍한 이야기라는 데에는 여지가 없으나, 난 이 영화의 주요 갈등은 '타인에 대해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본다. 이 폭력적인 시선이 아파트라는 고밀도의 장소에서 바글바글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이 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소진이 실종했던 것도, 태환이 출동했던 것도 다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다들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쉽게 보고 가볍게 이용한다. 영화 끝까지 반복되는 '맹신'의 모티브가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후반부 특정 두 인물 간의 갈등을 굳이 묘사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장면이 굳이 있어야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굳이 그렇게까지 장면을 만들지 않아도 그런 느낌은 충분히 줄 수 있다. 근데 굳이 그 장면과 대사를 넣은 이유는 그럴 위치에 있음 안 되는 사람 역시 뒤틀렸을 정도로 한국사회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잘했나 싶어
심은경 배우가 1994년생이니까 지금 스물아홉이다. 이 영화 개봉 연도가 2009년이니까 정확히 15살 즈음에 작품을 찍은 것이다. 15살 때 나는 방구석에서 소설책 읽기 바빴는데 이 배우는 극의 설정이 되는 빙의 연기를 해냈다. 또, 영화의 주요 인물인 김보연-문희경-장영남-이창직 배우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네 명의 배우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아침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배우들이었다. 특히 문희경 배우는 너무 자주 나와서 얼굴만 봐도 '이렇겠네'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패턴들에서 더 깊은 퍼포먼스가 나온다. 각본의 힘으로만 묘사되기 어려운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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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괴물이 등장했던 그의 영화에 이번에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데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한 인간의 욕망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겼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참 아름답고 몰입감있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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