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2021-04-16 04:19:50
하드코어 헨리
골 때리는 영화
이 영화는 뭐라 정의하기 힘든 영화이다.
진짜 FPS를 하는 기분이 드는 영화이다. 1인칭 게임 울렁증이 좀 있는 나로선 오묘했다.
콜 오브 듀티와 울펜슈타인을 3~4 시간하면 좀 어지러운데, 이 영화가 딱 그러했다.
액션은 상당히 시원시원 해서, 마치 '둠' 또는 '울펜슈타인'을 하는 느낌이다.
음악도 상당히 빠른 템포라서 액션이 더 시원하며, 루즈하다는 느낌이 없다.
이 영화의 특징으로는 1인칭 시점이라는 것이다.
(쉽게말해서 머리에 캠을 달고 찍었다는 소리다.)
영화는 FPS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시원하고 짧고 굵은 액션을 선사해서 좋아할 것이다.
스토리는 그냥 일반적인 액션영화 스토리이다.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점은 러닝타임 96분을 전부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점과 주인공의 대사 없이 유쾌하며, 시원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주인공만의 대사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 일품이다.)
1인칭 시점으로 액션영화를 보니, 사실감과 재미는 극대화됬다.
청불등급에 맞게 시원한 액션과 피튀기는 액션이 더해져서 영화는 충분히 과격하다.
3인칭 시점에 적응되있던 나라 그런지, 충분히 재미있고, 실험정신도 좋다.
그러나, 시원시원한 액션과 스토리랑은 별개로 그냥 안맞는 느낌이였다.
(아마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 접해서 그런 것 같았다)
영화 자체만 놓고보면, 러닝타임도 길지 않아 잠깐 즐기기에 제격이다.
다만 액션의 수위가 어느정도 있으니, 잔인한 영화를 못 본다면, 비추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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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웨일(2022)> 리뷰
※ 스포일러 주의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무척이나 따르는 8살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그가 매정한 선택을 한 이유는 바로 단 하나, 연인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독실한 남학생.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살 소녀는 장래 문제가 코앞에 닥친 청년이 되었고, 연인을 잃은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느리게 자살을 시도해 온 남자는 자문한다. 내가 이 삶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영화 <더 웨일(2022)>은 <블랙 스완(2010)>, <재키(2016)> 등으로 이름을 알린 대런 애로노프스키 신작이다. 감독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의 마지막 일주일을 조망하며 한 인간의 지극히 다면적인 면모를 스크린에 담아내며, 주인공이 역시나 입체적인 주변 인물과 맞물리고 부딪히는 장면을 통해, 끝끝내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약 120분에 걸쳐 풀어낸다.
연극을 원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메라는 주인공 찰리의 집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간이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배경이 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찰리는 멈춰있는 사람이다. 연인이 죽은 이후로 그의 시공간과 감정, 기억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찰리는 감히 죽은 연인 앨런 그랜트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고 보존하며, 온라인 강사로 근무하고 배달음식을 시키면서까지 집을 떠나지 못하고, 폭식을 통해 스스로를 학대한다. 심지어 딸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그가 기억하는 딸 엘리(세이디 싱크)의 집은 이미 몇 년 전에 이사를 간 과거의 장소이다. 게다가 그는 울혈성심부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초고도비만환자로 설정되어, 혼자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렵고, 큰 웃음을 내는 것조차 힘들어 능동적인 변화를 자아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하니 그는 늘 실내에 머문다.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다. 가장 내밀한 심장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이 면면히 이어져 오던 어느 월요일 찰리는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를 만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밖에서 찾아온 손님은 그의 기억을 들쑤시고, 고통을 나눈 친구이자 전담 간호사이기도 한 리즈(홍 차우)는 찰리에게 허락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는 고통스럽다. 낙담에 빠져 긴긴 세월을 보낸 탓에 그의 시야는 오로지 절망만 포착할 줄 안다. 찰리는 이혼 후 받아들였던 접근 금지 제약을 어기고 엘리에게 연락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순간을 앞둔 아버지의 부성애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은 아니다. 그는 세계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다. 자신이 이번 생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엘리를 만났을 때 찰리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딸의 근황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찰리는 엘리가 세계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만난 이후에 간신히 알게 되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상호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고자 자신을 먼저 내려놓는 시도를 하기보단 거래를 선택한다. 찰리는 이렇게 제안한다. 자신과 함께 있어 달라고, 그렇게 하면 돈을 주거나, 과제를 대신해주겠다고. 전 부인이었던 메리(서맨사 모턴)가 찰리의 장점 중 하나가 낙관주의였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찰리가 지나치게 큰 희망을 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딸 엘리가, 어릴 적 쓴 모비딕 독후감에서 보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은 어쩌면 딸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야속하지 않던가. 찰리가 8여 년 간 변했듯, 엘리 역시 변했다.
물론 찰리의 시간을 아는 관객에겐 그의 선택이 어색하게 보이진 않는다. 찰리는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엔 시간이 없다. 얼어붙은 현재를 사는 자에겐 과거로 귀환하는 것도, 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죽음을 앞두어 평소보다 거동이 어려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딸 엘리는 그러한 속사정을 모른다. 예전엔 아버지를 따랐던 딸은 이미 크게 상처 입었다. 오랜 기간 연락 한 번 없던 아비의 요청은 뻔뻔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엘리는 찰리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엘리가 최초에 내밀었던 패는 과제물이 아니었다. 찰리가 옛 추억에 젖어 당장의 거래를 요구했다면, 엘리는 찰리에게 외부 세계로의 물리적 확장을 요구한다. 자신의 두 발로 세계를 버텨낼 것을, 그리하여 끝내 자신에게 걸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엘리는 찰리에게 분노하면서도 거듭 아버지의 집에 온다. 그를 잠재우고 집의 구석구석을 탐독하며 멈춰있는 찰리의 시간을 본다. 그의 세계에 토마스를 끌어들이기도 하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찰리와 토마스를 폭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엘리는 차츰 알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절망에 빠질 수 있음을, 끊어진 애정은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음을, 그저 단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해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이 모든 과정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상당히 파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엘리는 결국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애정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일조했음을 배운다. 언젠가, 세상을 미워하기보단 모비딕의 인물을 향해 연민을 품었던 소녀가 되돌아온다.
엘리의 변화에 찰리는 화답한다. 그는 두 발로 세상에 선다. 모비딕 에세이를 읽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다. 변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찰리는 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 확신을 얻으며 스스로를 긍정했다. 원망이나 절망의 시간은 끔찍했더라도 결국은 오늘의 삶, 찬란한 마지막을 위한 삶의 여정 중 일부였다. 그것이 과정의 처절함을 모두 중화시켜주진 않겠으나 영화 말미 쏟아지는 빛처럼 작게나마 위로가 되는 듯하다.
<더 웨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너무도 쉽고 편리하게 타인에 대해 말을 늘어놓지만, 실은 타인을 그리 쉽게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너무도 복잡다단하며 그 삶이 촘촘히 쌓이고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회는 더더욱 복잡하고 다양하여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세계를 그 누가 감히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영화의 짧은 몇 장면이 더없이 빛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의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차마 모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앨런을 도운 메리나,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탕아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에 성공한 엘리에게서. 영화 속에서 실현되는 찰나의 완전함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일궈낸 기적적인 한 순간이었다.
찰리는 살아있으라는 생명의 본원적 명령을 거부하고, 삶이라는 운명을 수행하지 않는다. 악명 높은 미국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저축조차 딸을 위한 것이었다며 사용하지 않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딸 앞에서 죽는다. 이것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가를 떠올리다 보면 찰리의 선택은 낭만적 비극의 전형임과 동시에 너무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소망의 실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허나 영화는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지속적인 낙담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한 인간이 삶의 의지를 잃은 모습부터 최후의 구원까지 훌륭하게 연기한 연기자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박수를.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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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늦어버린 나의 사랑, <퀴어>
퀴어 Queer, 2025 / 137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이미 늦어버린 나의 사랑, <퀴어>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주인공 ‘리(다니엘 크레이그)’의 사랑은 난해하고 희한하며 불안하고 때때로 위험하다. 그가 퀴어이자 마약 중독자여서가 아니다. 평생 갈구하는 사랑을, 그 자신조차 확실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냄새가 나며, 어떤 촉감을 갖고, 어떤 단어들로 이뤄졌는지 도통 알 수 없다. 그저 끊임없이 원한다는, 반복적인 행위(중독) 말고는 누구도 리의 사랑을 명확한 형태로 느끼고 볼 수 없다. 오프닝을 수놓는, 그의 침대와 소파, 책상 위에 널브러진 책, 선글라스, 여권, 담배, 권총, 마약만 봐도 알 수 있다. 리가 하는 사랑이 얼마나 어지럽고 난잡하며 불길한지 말이다. 그러나 <퀴어>는 그의 사랑에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남성미 넘치는 패션과 멕시코시티 거리를 활보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혼란스러운 사랑을 독특한 미장센으로 치환한다. 인물과 환경, 인물 간의 관계를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도록 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같은 방식이다. 특별한 점은 아름답게 포장되었음에도 그의 사랑은 여전히 위태롭게 보인다는 점이다.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퀴어>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리의 불안정한 삶을 3부작 형태로 나눈다. 1부엔 유진에게 갈구하는 리의 사랑을, 2부엔 완벽한 유진과의 합일을 꿈꾸는 리의 모험을, 마지막 3부엔 모험의 시작이 곧 끝이었음을 리 스스로 선언하는 선택을 담는다. 특히 외적으로 뿜어내는 아름다움과 내적으로 곪아가는 추함의 간극을 직접 보여주면서 이에 따른 고통도 (타인의 관점은 철저하게 배제된) 리만의 관점으로 구성해 전달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적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관객에게 ‘리’란 사람 자체를 보여주는 일 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당연히 없다. 영화는 리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관객이 직접 <퀴어>를 통해 리를 해체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극적인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단 얘기다.
그렇다면 대체 그에게 사랑은 뭘까. 어떤 것을 정의하지 못해서, 영화 내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할까. 바로 그의 혼란한 정체성이다.
리는 자신이 퀴어임을 인정하지만, 절대 퀴어라고 소리 내 밝히지 않는다. 본인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떼어내려 애쓰는 데, 이를 ‘난 퀴어가 아니야,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거야’라고 표출하며 혼돈을 제어하기는커녕 합리화한다. 그리곤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루살이처럼 여러 술집(바)을 돌아다니며 퀴어를 찾아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외로워지면 새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길거리를 떠돈다. 이 역시 중독이 분명하지만, 리는 중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독은 곧 이상이고, 현실로부터의 완전한 도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 확립을 포기한 현실 속에서, 리의 자기 파괴적 행위는 자연스럽게 이상 세계와 연결되고, <퀴어>는 환영이 가미된 추상적 표현과 다양한 상징을 활용해,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인물이란 진실을 말이다.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일생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진정한 사랑(유진)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기 파괴를 일삼으며 유진에게 다가간다. 그의 손길을 느끼기 위해서, 몸도 마음도 돈도 다 내어주고, 가문의 저주가 자신에게 변태적 성향을 주입한 거라며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리는 유진에게 쉽사리 사랑받지 못한다. 그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가 퀴어인지, 아닌지 모르고 심지어 직접 묻지도 못한다. 유진도 자기 정체성을 결정 내리지 못한 듯, 모호한 태도를 보이지만, 리와는 다르다. 현실과 이상을 명확히 구분해 행동하는 유진과 그렇게 할 줄 모르는 리는 전혀 같은 인물이 아니니까.
리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조’는 하룻밤 상대들이 자기 물건을 도둑질하는 걸 알면서도, 호텔이 아닌 집에서 계속 데이트를 즐긴다. 그들이 아무리 내 것을 훔쳐 달아난다고 해도, 나의 자아와 신념, 삶은 결코 앗아갈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퀴어 커뮤니티(그린랜턴)를 이끄는 ‘두메’ 또한 본인 삶의 방식을 긍정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퀴어임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리만이 경계가 불명확하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자기를 ‘무엇’이라 창하며 정의할 때, 리는 끝까지 침묵한다.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절대 귀로 들을 수 없다는 듯 집요하기까지 하다. 그 결과, 리는 혼재된 두 세계에 갇힌 채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 유진을 원하는 갈망에 영혼까지 분리되지만 그를 만질 수 없고, 팔다리가 잘린 여성에게 툭하면 정체성을 고발당하고, 마약이 주는 황홀함 없이는 현실에서의 기다림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서로를 돕고 함께 하며 삶을 견뎌야 한다는, 어릴 적에 만난 현명한 퀴어의 가르침이 무색할 정도로, 리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심각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결국, 리는 유진을 데리고, 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한다는 미지의 식물(야헤)을 찾아 나선다. 정글에서 야헤를 연구한다는 식물학자에게 생필품으로 환심을 사고, 마침내 야헤를 접한다. 자기 심장을 토해내면서 시작된 환각은 리는 물론이고 유진의 존재론적 의구심과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을 붙인다. 강렬한 환각으로 자신이 구분한 세계에서 길을 잃은 유진은 리에게 고백한다. 자신도 퀴어가 아니며,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자라고. 텔레파시를 통해, 유진과 완전하고 안전한 사랑을 꿈꿨던 리는, 결정적인 순간 또다시 포기한다. 떠나는 유진을 잡지도, 완전히 보내주지도 못하는 악순환에, 제 발로 들어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리가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온다. 조는 리의 등장에 기뻐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친구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리에게 남은 거라곤 아무리 후회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현실과 숱한 후회로 만들어진 환각에 속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허우적대는 일뿐이니까.
<퀴어>는 리가 마지막까지 머뭇거릴 걸 확신했다. 그가 겪는 고독함, 외로움, 절망도 필연적이기에, 현실과 이상의 혼재도 변함없을 거라 장담했다. 야헤의 진실을 미리 경고해 준 직원의 말처럼, 야헤(사랑)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약물도, 텔레파시 능력을 주는 선물도 아닌, 이미 망가진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었으니까. 아름다움 위로 보이는 추함의 균열이, 거울 속에도 이토록 선명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이야기 끝에 선, 리는 혼돈 속에서 유진을 계속 그리워하다, 결국 자기 손으로 그를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유진이 죽기 직전, 눈물을 흘리며 자기 꼬리를 문 뱀(우로보로스)이 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한 장면으로 <퀴어>는 그간의 혼란스러웠던 리를 단번에 설명한다. 죽은 유진은 그의 사랑이기 이전에, 리가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순간 외면한 자아이다. 즉 유진을 죽인 건, 늙은 리의 육체지만 사실은 한참 과거의 젊은 리의 정신이란 점이다. 어지러운 사랑도, 중독 증상에 대한 합리화도, 그가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리는 그저 온전히 이해받고 싶었을 거다. 본인이 없애버린 사랑은 전혀 모른 채, 난해하고 복잡한, 그래서 자신조차 외면한 나를 사랑으로 꽉 채워줬으면 했겠지. 그러나 후회하기엔 이미 늦어버린(놓쳐버린) 사랑이고,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비극이다.
출처: 영화 <퀴어> 스틸컷혼자가 된 노년의 리가 쓸쓸히 침대 위에 눕는다. 눈을 감고 유진을 떠올리자, 어느새 나타나 리의 다리 위에 자기 다리를 살포시 올린다. 유진의 사랑일까, 그가 다시 불러온 이상인가.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자기 형태를 보이게 되었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고 <퀴어>의 의도는 변함없다. 리가 원한 게 마음 가득한 대화뿐이라고 하더라도.
어른 버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퀴어>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으로 자기 정체성을 깨닫게 된,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는 절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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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의 세계, 그 속의 감정들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속 감정 읽기] 라는 연재를 합니다. 영화리뷰안에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감정을 적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갓난아이들에게 옆에 있는 엄마는 의지해야 할 꼭 필요한 존재다. 먹을 것을 해결해 주고, 아직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엄마는 그 아이의 전부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의 세계다. 꼭 엄마만 그런 존재가 되라는 법은 없다. 아빠도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친척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이와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도움을 준다면, 그 자체로 아이의 세계에 포함될 수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좁고 작은 세계지만, 아이에게 그 세계는 무너지면 안 되는 무척이나 큰 세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주인공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를 어릴 적부터 키운 보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는 어쩌면 클레오의 전부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 고향으로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고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클레오의 반응과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겪는 상실감과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클레오는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슬프다. 흔들리는 클레오의 세계를 영화는 담담하고 강렬하게 담고 있다.
첫 번째 감정 - 클레오의 두려움
클레오의 세계에는 아빠도 있고,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도 있고, 보모인 글로리아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웃고 떠들면서 감정을 공유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적어도 클레오의 세계에 엄마는 없다. 그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하는 사람이 바로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엄마 같은 존재다. 같이 샤워를 하고, 같이 병원을 가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러니까 일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영화 초반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수다와 장난을 지나면, 고향에 계신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다. 그 전화를 받고 글로리아가 우는 그 순간부터 클레오에게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난다. 슬픔을 잠시 묻어둔 채 클레오를 챙기고 재우는 글로리아의 모습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어느 순간에 클레오에게 이제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해 버린다. 클로에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냐는 물음을 다시 던진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글로리아의 말에 클레오는 기운이 없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에겐 자신이 알던, 무척이나 친숙했던 큰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의 두려움은 학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운을 없애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지만 곧 그 세계는 무너진다. 아빠에게 위로받고 또 장난도 곧잘 치지만, 그런 아빠의 노력이 텅 비어버린 클레오의 세계를 전부 채울 수는 없다.
두 번째 감정 - 클레오의 질투
글로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클레오는 마음속에서 글로리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글로리아의 고향으로 놀러 가게 된다. 여기서 클레오가 겪는 일들의 대부분은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순간들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모든 세계인 글로리아를 만났고, 그의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클레오에겐 잃어버린 세계를 찾은 기쁨을 선사한다. 자신의 집이 있는 파리보다는 열악한 시골 섬의 작은 마을이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는 임신한 딸과 아들이 있다. 글로리아의 딸이 출산하게 되면서 그의 집에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이때부터 글로리아는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자신이 받던 글로리아의 사랑을 갓난아이가 빼앗아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느끼는 온 세상을 그 아이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작은 클레오의 마음속에 큰 질투의 불씨를 불어넣는다. 그가 글로리아의 손주에게 하는 어떤 행동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만 클레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클레오와 갓난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과 클레오가 하는 행동을 본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때부터 클레오는 달리기 시작하고, 해변까지 간 클로에는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폭발하는 질투심과 죄책감이 동시에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황한 클레오의 표정은 그 모든 붕괴를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의 감정은 그가 해변으로 달려가는 그 모든 순간에 완전히 방출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클레오의 질투는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일종의 파괴본능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악마가 되고 싶었던 클레오는 부끄러움에 바다로 몸을 던진다.
세 번째 감정 - 글로리아의 슬픔
이 영화가 클레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글로리아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클레오를 키워온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에게 많은 감정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서로 나눈 감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처럼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고향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에 글로리아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에 글로리아의 자리는 꽤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을 것이다. 담담히 그 상황을 설명하고 떠나는 글로리아는 자신의 힘으로 키워낸 작은 아이의 세계를 잠시 바라보고 돌아선다.
클레오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온 방학기간 동안, 글로리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하면서 딸의 출산을 돕고, 태어난 아이를 챙겨야 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잠시나마 찾아온 클레오가 너무나 반갑지만, 온전히 그에게만 신경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글로리아는 자신의 가족을 좀 더 신경 쓰며 챙길 수밖에 없다. 여전히 클레오에게 다정한 글로리아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지나면서 클레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엔 글로리아가 울음을 터뜨린다. 클레오를 공학까지 배웅하며 돌아서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결국 클레오와 완전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아마도 클레오의 방학기간 동안 클레오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클레오는 비행기로 향하며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글로리아는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은 클레오의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그 상황에 대한 슬픔이 담겨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상황들을 따라간다. 다양한 클로즈업을 통해 클레오가 진짜로 볼만한 장면들을 화면으로 담고, 느낄만한 감정들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전환 장면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클레오의 세계가 가진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은 아이 클레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한 작은 공간만 존재했던 클레오의 세계는 아마도 이 영화 속의 일을 겪고 나면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은 성장기처럼. 글로리아는 비록 엄마는 아니었지만 클레오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두 사람이 나눴던 감정의 교류는 모두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영화는 그 거대한 사랑을 클레오의 얼굴과 표정으로 잘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에는 보모의 이름인 글로리아 가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클레오의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클레오의 세계가 곧 글로리아였으니.. 어쩌면 이 상황을 잘 표현한 완벽한 번역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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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을 찾기 위한 네 친구의 모험
*개봉 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십 대 시절을 지나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부모과 가족의 영향을 받고, 더 크게 보면 국가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한국 부모 밑에 자란 한국 사람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정체성 인식과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간 경우나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경우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다른 나라인 미국으로 건너갔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일까. 아니면 미국 사람일까. 과거와 달리 다른 나라로 간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이민자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에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찾아가게 된다.
아시아계 미국 입양인 오드리의 이야기
영화 <조이 라이드>는 어린 시절 미국 부모에게 입양된 오드리(애슐리 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 중국에서 미국 부모님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된 중국계 이민자 가정의 롤로(셰리 콜라)는 오드리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주변의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같이 이겨내고 의지하면서 성공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학장시절의 주요 순간을 짧은 편집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아계 미국인이로서 겪게 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경험이 결국 그들을 어떤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인물은 오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알파걸이다. 그런 그는 상사로부터 중국에 있는 고객과의 계약을 따오라는 지시를 받고 친구 롤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롤로의 친척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와 오드리의 대학 친구인 캣(스테파니 수)도 동행한다. 오드리의 중국 고객은 가족의 존재를 강조하며 며칠 뒤에 있을 파티에 오드리의 엄마와 같이 참석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그 일이 실행되었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겠다는 답을 듣게 된다.
하지만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에 입양되어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때부터 오드리와 세 친구들은 오드리가 입양될 때 관여된 입양기관에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가 보여주는 네 친구의 여정은 무척 경쾌하다. 영화는 입양 기관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 미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믹한 설정과 약간의 성적인 코드를 이용한 웃음코드가 오드리의 무거운 상황을 희석시킨다. 또한 그들이 중국의 문화나 분위기를 관찰하고 본인들이 끌리는 이성과 어울리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도 다른 인종과 관계없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도 보여둔다.
네 아시아계 미국인의 로드무비
이들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다. 그중에서 오드리는 입양되어 진짜 부모를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그동안 무시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인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미국인 부모 밑에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오드리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가 중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끼는 모습에선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나게 된다.
오드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오드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확고하게 알고 있다. 중국에 친척이 있고 중국어도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드리는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낮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그의 부모가 어떤 모습일지, 그 부모를 만난 오드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는 미국에서, 중반부는 중국에서, 후반부는 한국에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데, 미국에서의 오드리는 그야말로 미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인의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가 느끼는 친근함 때문인지 중반부의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한없이 풀어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한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오드리의 생모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중국 친구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그렇게 나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후반부에서의 오드리는 한국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드리가 느끼는 정체성이 변화할 때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변하고, 그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은 이후에 그 모든 혼란은 정리된다. 영화 <조이 라이드>는 그런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오드리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편으로 영화 중반부에 포함된 성인 코미디 장면이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면서 여성인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고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당당함이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오드리의 정체성에 따라 변하는 친구들과의 관계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네 친구가 파리로 함께 여행을 가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 마지막 식사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중식과 한식 요리를 먹으며 한국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자신만의 정체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인종과 국가가 뒤섞여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알고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아델 림 감독은 과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각본을 썼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아시아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계속 작업해 온 것이다. 자신도 경험했을 정체성의 혼란을 영화 <조이 라이드>에 그대로 담았고, 그 혼란을 우울하게만 보여주지 않고 경쾌한 코믹 로드무비 형태로 설정하여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오드리 역을 맡은 애슐리 박은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으며, 캣 역의 스테파니 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주연을 맡았었다. 이 두 배우를 포함해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롤로 역의 셰리 콜라와 데드아이 역의 사브리나 우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시안계 미국인 네 명이 주연을 맡아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 속 오드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생모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만다. 영화에서 그가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과 발견 이후의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미국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조이 라이드>는 다양한 웃음코드를 보여주고 있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경쾌한 영화다.
*본 포스팅은 배급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틸컷은 [배급사]로부터 전달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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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잼바르는 백창기와 폴리스 다크 아미 장이수의 쉴 틈 없이 웃기는
유쾌 상쾌 통쾌 영화 <범죄도시4>. 3주 연속 1위는 물론 시리즈
최초 4000만 달성 까지 이뤄냈다고 합니다.범죄도시 시리즈가 한국영화 시리즈 최초 누적 관객수 4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범죄도시4>는 둘째 주 주말 누적관객수 970만 명을 넘어서며 조만간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주말 관객수 32만 명을 기록하며 2위, <쿵푸팬더4>가 누적관객수 175만 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개봉 첫 주 전 세계에서 1억 2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CG와 영상미에 대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어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1위를 지키고 있던<스턴트 맨>이 2위로 내려오고, <챌린저스>가 지난와 같이 3위를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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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1월 1주 개봉영화!
고속도로 가족 Highway Family , 2021
라미란 X 정일우 X 김슬기 X 백현진!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모두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휴게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고속도로 가족'이라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라미란, 정일우, 김슬기, 백현진 주연 배우 4인방의 열연은 물론,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과 연기 변신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추천영화 "고속도로 가족" 입니다.
옆집사람 Next Door , 2022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
영화 "옆집사람"은 원서 접수비 만 원을 빌리려다 시체와 원룸에 갇힌 5년 차 경시생 찬우의 하루를 그린 영화입니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을 달성했으며,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 중 하나인
제40회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해 제26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 제21회 뉴욕아시안영화제,
제42회 하와이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받으며 작품성과 화제성을 입증했습니다.
신예 염지호 감독은 "이기적이고 남에게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물질만능주의 같은 내가 보고 느낀 현대사회의 모습을 담아서 풍자해보고 싶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
재미와 더불어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루키 염지호 감독! 스릴과 위트 공존하는 올해의 데뷔작!
추천영화 "옆집사람" 입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 2022
북미에서 먼저 개봉하며 무려 57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 꾸준한 흥행!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비밀의 습지 소녀 카야가 자신이 자라온 공간에서 세상에 맞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원작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뉴욕 타임스 179주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등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로, ‘인생 작품’으로 불리며 특히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 여성의 다양한 감정과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
해외를 넘어서 국내 여성 관객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추천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입니다.
THIS WEEK MOVIE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돈을 빌려 캠핑하듯 유랑하며 살아가던 이들"
라미란 X 정일우 X 김슬기 X 백현진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과 낯선 얼굴!
영화는 모두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휴게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고속도로 가족'이라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지갑을 잃어버려 기름값이 없다'는 핑계로 2만 원씩 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 기우와
그의 가족이 우연히 영선과 얽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관객들은 두 가족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따라가게 됩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차가운 현실의 온도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상문 감독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자,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주 THIS WEEK MOVIE "고속도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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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인사이드 아웃2 속 감정 🌟 #인사이드아웃2 #픽사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인사이드 아웃2'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엄청난 흥행 속도를 보여주고 있죠. 1편에 이어 2편도 공감가는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픽사 #영화리뷰 #인사이드아웃2 #영화감성 #레빗구미 #감정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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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켓이 가지고 있던 '한(恨)'이 표출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Rabbitgumi 입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업로드 합니다.
지난 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어와 관객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죠.
다양한 관점의 리뷰도 이미 보셨을 거에요.
저는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로켓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과 그가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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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일로드 워> 메인 예고편
작업반장 ‘마위안’(성룡)은 함께 일하는 철도 노동자들과
항일 게릴라군 ‘비호’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어느 날 대원들은 부상당한 팔로군 병사 ‘다궈’(왕대륙)를 숨겨주고
그들이 완수하지 못한 항일 작전에 대해 듣게 된다.
평생에 한번 큰일을 해내고 싶었던 ‘마위안’과 대원들은
팔로군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리라 결심하는데…
자, 드디어 큰일 한번 해보자!
‘비호’의 대담한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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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퍼지: 포에버> 메인 예고편
매년 단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은 물론 어떤 범죄도 허용되는 미국의 연례 행사 ‘퍼지’ 데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정착한 멕시코 부부 ‘아델라’와 ‘후안’,
텍사스 부촌에서 마구간과 농장을 꾸리며 안락하게 살아가는 ‘딜런’ 가족까지
모든 이들이 긴장감 속에서 ‘퍼지’ 데이를 맞이한다.
다행히 큰 사고없이 ‘퍼지’ 데이를 보낸 이들은 공식적인 ‘퍼지’ 종료 사이렌이 울리자 일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영원한 퍼지’를 통한 ‘미국의 정화’를 외치는 추종자 세력이 등장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안전을 위해 멕시코 국경까지 이동해야 하는 ‘아델라’와 ‘후안’, 그리고 ‘딜런’ 가족은
과연 공권력과 법의 통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영원한 퍼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시작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퍼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