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21 10:51:13
시와 영화를 함께 사랑하는 법
'세계 시의 날'을 기념하며

오늘 3월 21일은 ‘세계 시의 날’입니다.
시를 읽다 어느 한 구절에서 불현듯 영화가 떠오르는 경험, 해본 적 있나요?
씨네픽지기는 종종 그러고는 하는데요.
‘세계 시의 날’을 맞아 여러분에게 영화와 함께 읽기 좋은 시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어떤가요?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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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까지 적시는 우중 영화 8선
비가 오면 고민이 더 깊어지기도, 오히려 마음이 환기되기도 하는데요.
영화에서도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극적인 장치로 사용하기도 한답니다.마음까지 적시는 우중 로맨스 영화 8선을 소개합니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상상해 봐요 막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 센트럴 파크 델라코트 시계 아래 누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재즈를 사랑하는 ‘개츠비’(티모시 샬라메) 영화에 푹 빠진 ‘애슐리’(엘르 패닝) 뉴욕이 좋은 ‘챈’(셀레나 고메즈) 매력적인 세 남녀가 선사하는 로맨틱 해프닝!
폭풍의 언덕
영국 요크셔 지방, 황량한 들판의 언덕 위 외딴 저택 워더링 하이츠가 있다. 그곳의 주인 언쇼는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고아소년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일방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지만, 딸 캐시는 마치 운명처럼 히스클리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언쇼가 죽은 후 힌들리의 학대가 시작되고 캐시가 근처 대저택의 아들인 에드가와 결혼하게 되자, 히스클리프는 말없이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몇 년 후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를 결심하는데…
언어의 정원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 ‘다카오’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도심의 정원으로 구두를 스케치하러 간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유키노’라는 여인과 정원에서 만나게 되고, 예상치 못한 만남은 비가 오는 날이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비록 이름조차 모르지만 걷는 법을 잊어버린 그녀를 위해 ‘다카오’는 구두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장마가 끝나갈 무렵, 그들 사이에는 뭔가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는 듯한데…
제인에어
그녀, 제인에어!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19세기 귀족사회에서 가난한 고아로 태어난 제인 에어! 여인의 교양이 아닌 지성을 택한 그녀는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 곳에서 저택의 주인 로체스터에게 영혼이 통하는 운명 같은 사랑을 느끼는 제인! 그, 로체스터! 정해진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제인에게 매혹되는 로체스터! 그는 끊임없이 제인의 사랑을 시험하고 갈구한다. 신분과 계급차이에도 불구하고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두 사람! 그리고 시작된 운명적인 사랑!! 하지만 시대는 그들의 사랑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저택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 밝혀지면서 결국 로체스터를 버리고 손필드를 떠나는 제인! 하지만 로체스터와 제인의 운명적인 사랑은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오웬 윌슨)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세기를 초월한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쉘부르의 우산
프랑스 노르망디 해협의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 어머니의 우산가게 일을 돕는 ‘쥬느비에브’와 자동차 수리공 ‘기’는 사랑에 빠진다. 팍팍한 현실과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어린 연인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의 군 입대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
4월 이야기
도쿄 근교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 우즈키는 홋카이도에 있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마친 뒤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무사시노라는 한적한 동네에 거처를 정한 후 그녀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생활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고 작은 모험과 경험들을 하게 하고 동시에 시련을 겪게 한다. 비현실적인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고, 이웃집 여자와 이상한 만남을 갖는 등 생소한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우즈키는 동네에 있는 서점에 자주 들리게 되는데.. 마침내 동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 그녀가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 점차 밝혀진다. 과연 우즈키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헤어질 결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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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기를 어긴 자, '이것'을 벗어날 수 없다
- 저는 머리를 감을 때 절대 눈을 감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머리를 감으면 귀신이 자기 머리카락을 갖다 댄다는 속설을 믿거든요. '죽을 사'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 4와도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혹시 모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괜히 흠칫하게 되는 금기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세이레>는 바로 이러한 금기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금기를 어긴 자는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1월 17일(목)에 진행된 <세이레>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세이레>는 2022년 1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세이레Seire언뜻 다른 나라 말처럼 보이는 영화의 제목 '세이레'는 아이를 낳고 21일째 되는 날을 이르는 삼칠일의 순우리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이 세상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삼칠일 동안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금기를 지켜 왔습니다. 외부와의 통로에 고추와 숯을 엮은 금줄을 쳐 두고선 말이죠.'우진'의 부인 '해미'는 이 금기를 철석같이 믿고 따르지만, 이를 미신이라고 여기는 '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금기를 어깁니다. 그리고 금기를 깬 '우진'의 주변에서는 자꾸만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정말 그가 금기를 깼기 때문에 불길한 기운이 '우진'의 근처를 맴도는 걸까요? <세이레>의 서스펜스는 미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간극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금기를 깬 인물 주변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일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민속 신앙을 믿으며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 ⊙사실 '우진'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진'의 전 연인 '세영'이 임신한 후 아이를 유산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죠. 과거 '우진'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심경의 변화였는지, '우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아내 '해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세영'과의 아이는 그토록 거부했으나 '해미'와는 아이를 낳은 '우진'. '해미'의 만류에도 금기를 깨고 기어코 '세영'의 장례식장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영'을 향한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우진'은 표면적으로 삼칠일에는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겼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자신의 금기를 깼죠. 금기를 어기고 파멸에 이르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흔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기를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이 아닙니다. <세이레>는 금기를 어긴 자가 겪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죠. 사람들은 금기를 어긴 대가를 피하고자 금기를 지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금기를 어긴 자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금기의 대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금기를 깨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진'은 착시와 착란을 겪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섬뜩한 교차를 경험합니다.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과는 '우진'에게 내재한 죄의식을 상징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윤기가 나는 멀쩡한 사과지만, 그가 자르는 사과는 모두 속이 까맣게 썩어있습니다. 단순히 썩은 수준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피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에는 '세영'의 유산이 '우진'의 책임이라는 암시도 슬쩍 엿보입니다. '우진'은 자주 건강원에 방문해 즙을 사 먹거나 선물하는데요. 건강원 주인 내외의 대화를 통해 '애를 붙이는 약'과 '애를 떨어뜨리는 약'이 있고, 두 약이 실수로 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임신한 '세영'은 '우진'이 준 즙을 먹었고, 훗날 '세영'은 유산 소식을 전하죠. '우진'은 그 소식에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뱉었고요. '우진'이 어긴 금기가 또 있는 걸까요? 해석의 여지를 두는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의 미스터리함을 한층 더 높여줍니다.⊙ ⊙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민속 신앙에 관한 색다르고 신선한 접근은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해미'가 다소 비이성적인 인물로만 그려진 것은 씁쓸했습니다. 또 죄의식에 사로잡힌 '우진'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울먹이며 죽은 '세영'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의 절정을 꼭 건장한 남성이 죽은 여성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표현했어야 할까요? '우진'이 '세영'의 유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인해 이 장면은 더욱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하지만 배우들의 호연은 아쉬움을 초월하는 만족감을 선사했습니다. 죄책감, 두려움, 혼란에 점점 더 강하게 사로잡히는 '우진' 역의 서현우 배우, 그의 비밀을 쥔 쌍둥이 자매 '세영'과 '예영' 역의 류아벨 배우, 민속 신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아내 '해미' 역의 심은우 배우는 영화 <세이레>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속 신앙과 미신을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 <세이레>를 통해 오싹한 겨울이 오기 전 극장에서 서늘한 기운을 먼저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Summary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초보 아빠 우진(서현우)은 현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육아를 도와주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우진에게 과거의 연인 세영(류아벨)의 부고 문자가 도착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21일 동안은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다녀온 우진. 그날 이후,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가는데… (출처: 씨네21)Cast감독: 박강출연: 서현우, 류아벨, 심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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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잊지 못할 어느 나바호의 여름날
감독: 빌리 루터 (나바호, 호피, 라구나 푸에블로 아메리칸 원주민, 감독 겸 제작자)
출연진: Kier TALLMAN, Charlie HOGAN, Sarah NATANI, Martin SENSMEIER, Kahara HODGES
시놉시스: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혹시 그런 적 있는가?
너무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느날 돌연 조부모님의 손에 떠맡겨지거나 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필자 개인이라든가 한국에서만 공감을 얻는 국지적인 경험은 아닐 것이다.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맡겨지는 경험은 인류가 가부장제를 따르기 이전 시절에서부터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므로.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대리로 가장 적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또다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더듬어 올라가면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할머니 집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 없는 그곳은 마냥 낯설기만 하고, 그들의 살뜰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겉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순간.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고립된 것만 같고 막연한 불안감이 휩싸였던 어린 나의 모습 같은 것들. 명절에나 가끔 보는 할머니는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것 같고, 나의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은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필자에게는 할머니집에 맡겨지던 그 때의 기억이 어렴풋하면서도 강렬한 한 장면으로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나의 뿌리와 마주치게 되는, 일종의 문화 충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구 반대편, 1990년의 어느 나바호 땅에서도 이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경험담이 펼쳐진다.
1. 나바호의 길 잃은 어린 양
나바호(아메리카 원주민 중 미국 남서부에 뿌리를 둔 한 부족)의 후예인 베니는 어느날 황량한 나바호 들판에 다다른다. 베니는 정말이지 그런 시골 구석에는 머물고 싶지 않았지만 이혼을 앞두고 정신 없을 엄마에게는 오래 전 떠나온 고향 말고는 달리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황량한 들판의 어느 낡은 집. 이 집 자식들(그러니까 삼촌과 이모들)은 죄다 고향으로부터 도망쳤다는데 유일하게 하나 남아 자리를 지킨 삼촌은 심술맞기만 하고 가끔 오는 이모는 영 소문이 나쁘다. 양들을 가두는 울타리는 허구한 날 망가진다. 부모님의 이혼 소식은 자꾸만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데, 하필 수중에는 샌디에고로 돌아갈 39달러가 없다.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아오던 땅에서 소년은 자꾸만 겉돈다.
바로 그 즈음에, 동병상련의 처지인 소녀가 나바호 집에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새벽(Dawn)', 어쩐지 가족들 사이에서는 본명보다도 '빵떡 소녀'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사촌이다.
빵떡 소녀는 여느 십대들과는 다르다. 교도소에 간 삼촌을 대신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다시피한 그는 나바호의 전통을 할머니만큼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나바호 방식으로 머리를 길러 묶고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나바호 말을 고집하는 그에게서는 백인들의 삶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할머니의 완고함이 묻어난다.
록밴드와 파우와우(아메리칸 인디언의 연례 축제 행사)만큼이나 다른 삶을 살아온 베니와 새벽은 한솥밥을 먹으며 그 황량한 시골땅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양을 잃어버리고 삼촌 차를 훔쳐타고, 그 양을 다시 되찾아와 울타리를 제대로 고치는 법을 알게 되는 사이, 베니는 미처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고향, 조상들의 삶에 대해 배운다.
그는 여전히 나바호어는 모르지만 양 목장 울타리를 고칠 줄 알고, 엉터리지라지만 전통적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출 줄도 안다. 백인의 샴푸가 아니라 나바호의 방식으로 머리를 감고 길게 기른 머리에 지혜가 흐른다는 것도 알게 된 베니는 그 여름날 나바호에 갓 발을 디디던 베니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다. 소년의 눈에 드리우던 방황의 그림자는 가시고 얼굴에는 미소가 꽃핀다. 마침내 뿌리 뻗을 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사람처럼.
2. 어떤 문화의 전승
이 영화는 한 어린 소년이 그의 방황과 상처를 딛고 일어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그러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바호라는 생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색다름을 선사한다. 실제로 나바호이자 호피, 그리고 푸에블로의 후예인 감독 빌리 루터는 그의 유년 시절을 이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하는데,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진솔하게 담아낸 장면과 장면들이 백인들의 사회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그 중 나바호의 후손들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영화 속의 나바호들은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베니의 삼촌과 이모, 엄마에게 나바호는 그리운 고향땅이면서 도망치고 싶은 가난의 터전이다. 원 주인을 몰아내고 백인들이 세운 자본주의의 제국에서 나바호의 방식은 이질적이고 '돈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 곳에 살아온 자들의 후예이면서 바로 그 땅을 떠나 배회하는 방랑자가 되고, 그들은 원주민이면서 이민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을 산다.
나바호 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만 같던 베니가 외할머니와 사촌, 그리고 다른 친척들을 만남으로써 나바호들의 삶을 배워가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더 뜻깊다. 나바호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전승될테니까. 할머니의 양탄자와 그에 담긴 이야기들을 전수 받은 손주가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 시절 나바호에서 여름날을 보낸 '베니'는 필름을 베틀 삼아 그 옛날의 이야기를 새겨넣었지 않나. 나바호 할머니가 들려주는 어느 고집스럽고 지혜로운 전통의 단편은 스크린과 스피커 너머로 오래도록 이어지리라. 바다 건너, 나바호가 아닌 또다른 손주들의 입을 통해서.
09-17(일)20:00 - 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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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한 이야기 2
가만한 이야기
왓챠- <나의 눈부신 친구>, HBO 제작
내가 생각하는 픽션을 가장 잘못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는, 한 마디로 압축되는 교훈 혹은 주제 의식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난 것처럼 자신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주제 의식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로 픽션의 존재 의의를 평가하는 것 말이다.
개인마다 감상이 다른 것인데 왜 ‘잘못' 이해한다고 말하느냐고? 아예 용도가 틀린 사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손톱깎기를 가지고 종이를 자르겠다고 하면 그걸 본 사람은 옆에서 틀렸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픽션은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픽션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본인이 그 픽션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가치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를 못 했다면 애초에 평가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왓챠에 등록된 <나의 눈부신 친구> 시즌 1, 2에 대한 감상평들을 읽고 한 생각이다.
많은 감상평들이 레누가 짜증 난다, 릴라 같은 친구는 곁에 두어선 안된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혹은, 서로 간의 경쟁심을 통해 각자 발전하는 아름다운 우정이다 같은 말을 하거나. 그러니까 그들은 어느 쪽이든 한 마디로 <나의 눈부신 친구>가 친구 관계에 대해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엘레나 페렌테의 원작 “나폴리 4부작”을 토대로 한 이 드라마는 처음 몇 분간은 이태리어라고 구분조차 못할 정도로 독특한 나폴리 지역의 투박한 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남부 이태리의 찬란한 태양이 아닌, 무채색의 건조한 모래 바람이 몰아치고 폭력이 일상인 다세대 주택이 몰려 있는 동네에서 시작된다.
레누와 릴라는 현실 속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다면적인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이 픽션 속의 캐릭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짜증이 나서 싫다고 말할 때마다 흥미롭게 지켜본다. 왜? 저 캐릭터들은 누구보다 현실의 당신들을 닮아 있는데 말이다. 오히려 그래서 그렇게까지 싫은 걸까?
레누와 릴라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기도 하다. 둘은 서로 너무 다른 성격으로 태어났지만 뛰어나게 똑똑한 여자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며 공부를 계속하도록 권유받았지만,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가정환경 때문에 두 사람의 진로는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고등교육까지 마친 레누도, 부모의 반대 때문에 공부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릴라도, 그렇게 서로 다른 공동체 환경에서 강요받는 같은 억압 때문에 서로에게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다른 환경에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견뎌야 하는 시련의 맥락은 같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의 삶이라는 그 맥락 말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남자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서 지혜로워야 하고, 동시에 아름다워야 하고, 또 남자들에게 욕망(desire) 되어야 하고, 그다음엔 아이를 낳아야 하고, 하지만 남편의 돈만 축내면 안 되며 자신의 생활력이 있어야 하고,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당하며 모든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우리 은하계에 대통령이 생긴 대도 그보다는 할 일이 적을 것 같은 모순적이고 숨쉴틈 없이 촘촘한 그 압박 말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조혼인 결혼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야 했던 릴라는, 결혼식 전 자신도 곧 학업을 그만둘 것이라는 레누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레누, 넌 나의 눈부신 친구야. 꼭 모두 A를 받고 졸업하겠다고 약속해. 넌 누구보다도 똑똑해야 해, 남자들보다 더.”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한 선택 — 그것이 온전히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의 경과가 으레 그렇듯, 결혼의 시작과 함께 불행으로 치닫는 자신의 삶 속에서 고등학생 레누의 일상의 단편(선생님의 고급 아파트에 모여 이데올로기와 세계정세에 관해 토론하는 고등학생들)을 본 릴라는, 열등감과 질투심에 휩싸여 일부러 악의적으로 레누에게 상처를 주고자, 너희는 모두 껍데기만 흉내 내는 우스꽝스러운 루저들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해 말한다. “좋든 나쁘든 그래도 나에겐 남자가 있어.”
둘 중 어느 것이 릴라의 진심일까? 물론 둘 다 그녀의 진심이다. 레누가 누리는 것들을 간절히 원했던 릴라는 좌절된 자신의 꿈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애썼고, 그녀의 가족과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필요를 자신들을 위해 이용하며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자기가 손 쓸 새도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자신의 인생을 보는 릴라의 절망을, 그저 지켜보기 짜증 난다거나 못 됐다는 말로 정리해 버릴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신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여자로서의 성공(돈 많은 남자의 부인이 되는 것)을 성취했다고 스스로 합리화해야만 하는 그 쓰디쓴 마음이 정말 진실된 만족이겠는가.
하지만 레누 또한 이런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릴라가 결혼했을 때 그들은 겨우 17살이었다. 릴라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을 보며 레누는 자신이 어떤 남자에게도 욕망되지 않는 ‘쓸모없는' 여자가 되어 버릴까 두려움에 떤다. “모두가 릴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그 작은 조각을 얻어가려고 애쓸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거나 노력해도 릴라가 가진 위대한 매력을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 가장 동경하는 것을, 릴라는 남성들에게 원해지는 여성으로 태어난 천부적 능력으로 손쉽게 채 가 버린다고 생각한다. 전혀 사실이 아닌 명제들이지만 지금의 레누에게 중요한 것은 냉정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가져본 적 없는 실체 없는 매력에 대한 초조함 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엔 서로만 이해할 수 있는 친구인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박탈감에 대한 사색과 열망을 원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 주변의 어떤 여자들도, 자신이 갖지 못한 다른 차원의 충족감에 대해 그들만큼 아쉬워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리 최선을 다 해 타협하고 순응해도 헐거워지지 않는 억압 속의 삶을, 계속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레누와 릴라의 세상은 다르다. 그들은 숨통을 죄어오는 억압들을 피하거나 반사해 내며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쉴 틈 없이 튕겨져 나간다.
HBO에서 제작된 <나의 눈부신 친구> 시리즈는 영상매체 연속극이라는 장편의 장점을 최대치까지 살린다. 모든 상황과 관계에 대한 심리 묘사를, 가능한 시청각 요소를 총동원 해 세밀하게 그려낸다.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뿐 아니라 의상, 배경, 화면 연출까지 모든 요소가 한 컷 한 컷 스무스한 앙상블로 이어진다. 이야기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만큼 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에도 집중해야 하고, 그러데이션처럼 모노톤에서 점점 풍부해져 가는 화면 속 색채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그렇게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막스 리히터의 음악이 시리즈 내내 돕는다.
그러니 이렇게 셀 수 없이 많고 작은 요소의 입자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성긴 체에 그냥 부어 버린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그냥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앞서 포스팅 한 ‘가만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픽션에 너무 가혹하고 자신에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픽션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얼마나 훌륭한지 혹은 얼마나 별로인지 이야기하고 싶다면, 일단은 본인이 먼저 촘촘한 체를 준비해야 한다. 별점 매기기와 한 줄 평 쓰기는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하는 평론가들이 하도록 놔둬도 된다. 일단은 걸러진 자신의 체 위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부터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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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8월 신작!
넷플릭스 8월! 신작 추천5편
키싱부스3
런닝타임: 1시간 53분
8월11일 공개
장르: 로맨스, 코미디
감독: 빈스 마셀로
출연: 조이 킹, 조엘 코트니, 제이컵 엘로디
절친이 있는 버클리? 남친이 있는 하버드?
둘 중 어디에 입학할지 못 정한 엘, 역대급 여름을 위한 버킷 리스트부터 세운다
근데 구 썸남의 등장으로 묘해진 이 분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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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8월27일 시리즈 공개
장르: 드라마, 웹툰 밀리터리
크리에이터 : 한준희, 김보통
출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이등병 준호에게 떨어진 새로운 임무
그는 탈영병을 추척하며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몬스터헌터
런닝타임: 1시간 43분
8월24일 공개
장르: 액션, 어드벤쳐
감독 : 폴 앤더슨
출연: 밀라 요보비치, 토니 자, 론 펄먼
실종된 팀원을 찾아 나선 아르테미스 대위와 부하들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어느 순간 이상한 세계에 와 있다.
초강력 거대 몬스터가 급습하는 이곳을 벗어나려면 몬스터와 싸워 이겨야 한다
예고편 보러가기▼
해피 데스데이
런닝타임: 1시간 36분
8월24일 공개
장르: 코미디, 호러
감독 : 크리스토퍼 랜던
출연: 제시카 로스, 이즈리얼 브루사드, 루비 모딘
오늘은 내 생일 그리고 내가 죽는날이다
생일날 가면을 쓴 의문의 인물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대학생
그런데 눈을 뜨니 같은 날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죽어야 하는 것인가?
예고편 보러가기▼
빅토리아&압둘
런닝타임: 1시간 51분
8월23일 공개
장르: 드라마
감독 : 스티븐 프리어스
출연: 주디 덴치, 알리 파잘, 팀 피곳 스미스
빅토리아 여왕에게 전달할 선물을 들고 영국에 상륙한 인도 청년
존엄하신 여왕 폐하와 눈을 마추져버렸다
유쾌하고 순박한 이 청년, 81세의 고독한 여왕과 우정을 쌓기 시작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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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절망에 감염된 사람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전염성이 있다.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나쁠 때 그리고 우울할 때 느끼는 감정들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까지 전달된다. 내가 가진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도 있지만 표정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그 감정은 은은하게 주변에 스며든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되지만 잘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 감정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일상에서는 그것을 느끼기가 조금 어렵겠지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방문하는 스포츠 경기장이나 공연장은 감정이 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그런 장소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질감은 굉장히 빠르게 전체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그렇게 희로애락은 강하게, 때론 조금 은은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영향을 주고 있다.
여러 감정 중 우울과 절망은 꽤 전파력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어두운 기억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그것이 잘 나오지 않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런 안 좋은 기억과 감정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이성적이고 밝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잠시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온 우울한 감정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고 그것을 보는 상대방에게도 우울의 감정이 옮겨갈 수 있다. 좋게 보면 같은 감정을 주고받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모두가 우울의 구덩이에 빠져 괴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우울과 절망은 자신이 오염시킬 누군가를 찾는다.
우울과 불안이 전염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스마일>
영화 <스마일>은 우울과 불안이 전염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포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즈(소시 베이컨)는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다루는 모습과 간호사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무척 이성적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에 그가 등장하는 모습들에서 우울함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볼 수 없다. 아마도 로즈는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보다 좀 더 이성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적절하게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앞에 환각과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여자 대학생이 나타난다. 로즈는 그 응급환자에게 똑같이 이성적으로 접근하지만 그 환자는 어느 순간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로즈의 앞에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한다.
로즈는 그 환자의 우울과 불안을 고스란히 경험했고 그 우울과 불안이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경험하면서 전달된 우울과 불안은 이성적이었던 로즈의 마음을 조금씩 들쑤신다. 영화는 로즈가 조금씩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별일 없는 듯 넘어가고 주변과 교류도 하지만 이상한 환영을 보고 놀라면서 조금씩 평상심을 잃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우울증 환자들의 초기 모습처럼 느껴진다. 본인도 그 증상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어느 순간 예민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가 그 증상이 심각해질지 아니면 다시 원래의 감정으로 돌아올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문법을 사용하는 이야기인 만큼 사람들이 죽는 법칙을 만들어두고 있다.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은 그 저주가 전염된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일종의 저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도 누군가의 자살을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우울과 불안을 야기한다. 그건 실제로 저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목격한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오랜 시간 남고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 <스마일>을 다 보고 나면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인 변화가 일종의 저주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우울과 불안이 폭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그가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는 과정이 무척 실감 나게 담겼다.
그렇게 점점 우울해지는 주인공 로즈의 주변에 있던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은 하나둘씩 멀어져 가고 등을 돌린다. 그리고 로즈는 시간이 갈수록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절망은 커지고 상황은 안 좋아진다. 한 사람 정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생기지만 로즈가 외치는 도움의 외침은 외부로 강력하게 분출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갑갑하고 불안해진다. 영화 속 인물의 불안한 감정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된다는 이야기다.
정통 공포영화보다는 심리 호러에 가까운 이야기
이 영화를 연출한 파커 핀 감독은 <잠들지 못하는 로라>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2020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된 이 단편 작품에서도 감독은 불안과 공포를 무척 효과적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계속 악몽을 꾸는 주인공이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과정을 무척 실감 나게 묘사했으며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영화 <스마일>은 파커 핀 감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불안의 잠식 과정을 그대로 장편 영화에 녹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답게 영화에는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나 기괴한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몇몇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그렇게 공포스러운 장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 하드 한 공포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심리적인 공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가 꽤 무섭게 느껴질 것 같다. 가장 이성적으로 보였던 주인공이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듯한 묘사는 충분히 공포스럽다.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보면 저주가 옮겨간다는 측면에서 영화 <링>을 떠올리게 한다. <링>은 녹화된 영상을 보면 일주일 안에 죽는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스마일>도 저주에 걸린 사람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면 일주일 안에 죽는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링>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주의 원인까지 파악은 못하지만 그 저주의 법칙을 알아내고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일종의 오마주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는 제목인 <스마일>처럼 웃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모습인 우울과 불안은 영화 내내 등장해 관객에게 공포를 선사한다. 기괴한 웃음도 소름 끼치지만 점점 고립되는 주인공의 모습과 내면의 불안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더 큰 공포를 전달한다. 정통적인 공포영화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을 공포스럽게 담았다는 측면에서는 꽤 훌륭한 공포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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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과 달 리뷰 - 상실의 고통을 가진 두 여자의 러블리한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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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남편의 첫사랑이 목하 열애 중이었던 곳으로
나 홀로 뚝 떨어지게 된다면?
남편과 사별 후 평소 남편이 살고 싶어 했던 제주도로 이사 온 민희는
성격 좋은 동네 이웃 목하와 그의 음악하는 아들 태경을 만나 친분을 다지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목하가 남편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상실의 아픔을 분노 게이지로 다스리게 되는 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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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예측 불가, 밀고 밀리는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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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팔콘앤윈터솔져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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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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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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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타임라인*
00:00 클라이막스로 향해중
00:49 예상했던 짭틴아메리카
02:26 캡틴의 향수를 뿌린 샘
04:16 5화 카메오?
06:12 새로운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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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바이킹스 : 발할라> 공식 티저 예고편
런던 브리지가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핏빛 전설을 예고하는 <바이킹스 : 발할라>.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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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체이탈자> 캐릭터 예고편
“누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요”
교통사고 현장에서 눈을 뜬 한 남자.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과 이름,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바뀌었어. 낮에도 바뀌더니 밤에도 또”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 남자.
그는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가 12시간마다 몸이 바뀌었던 사람들,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의문의 여자까지,
그리고, 이들이 쫓고 있는 국가정보요원 ‘강이안’.
“이제 알게 됐어.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모두가 혈안이 되어 쫓고 있는 ‘강이안’이 바로 자신임을 직감한 남자,
자신을 찾기 위한 사투를 시작하는데…
진짜 나를 찾기 위한 본능적 액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