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03-17 23:48:47
3억 2천만불짜리 특색없는 SF 가족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리뷰
굿 한 번 해야 하나! <어벤져스> 시리즈의 루소 형제와 넷플릭스와 궁합이 너무 안 좋다. 전작 <그레이 맨>도, 이번 작품인 <일렉트릭 스테이트>도 하나같이 이들이 연출한게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특히 3억 2천만불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번 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1990년대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진다. 남과 북이냐고? 인간 vs 로봇이다. 인간을 위해 봉사하던 로봇이 자유를 외치며 반란을 일으킨 것. 하지만 전쟁의 승자는 인간이 되고, 패한 로봇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추방 구역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모여 산다. 한편, 교통사고로 부모와 남동생을 잃은 미셸(밀리 보비 브라운)은 목적없이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다 동그란 얼굴의 노란 로봇 ‘코즈모’가 그녀를 찾아온다. 인간 세계에서 로봇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법범행위. 본의 아니게 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동행하게 되고, 괴짜 밀수업자 키츠(크리스 프랫)와 로봇 동료 허먼과 함께 일렉트릭 스테이트로 들어가게 된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시몬 스톨렌하그의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영상화 했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이버펑크 장르인 원작의 세계관은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우울하고 공허한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작은 로봇과의 여정을 통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건 첨단 기술 사회가 무너진 황폐한 모습이다. 전쟁 이후 방치된 로봇 잔해, TV 대신 가상현실 기술인 뉴로캐스터에 의존하는 사람들 등 어쩌면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될 지 모르는 모습을 그린다.
루소 형제에게 이 원작 세계관은 흥미로웠을 터. 감독은 기본 원형과 주요 소재는 가져오되, 영화적 재미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들을 대거 투입한다. 무엇보다 너무나 무거운 분위기를 살짝 업 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하는데, CG와 모션캡쳐로 구현한 다양한 종류의 로봇들과 흡사 만담군처럼 보이는 키츠와 허먼 콤비가 그 요소다.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레트로 로봇들의 향연 그 자체로 시선을 모으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통해 증명한 크리스 프랫의 실없는 농담은 어느 정도 들을만 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극 중 세계관은 매력적이지만 새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SF 장르 영화에서 숱하게 봤던 요소들이 자꾸 겹치는 건 물론, 인간 캐릭터들의 매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미셸과 키츠는 물론 빌런 들도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라 너무나 예상 가능한 모습으로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 문제라기 보다는 가족 타깃 취향에 맞추다 보니 생긴 문제로 보인다. 액션 수위 조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캐릭터와 로봇들의 이야기와 매력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예상 가능한 지점까지만 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후반부 대규모 액션도 그렇고 적절히 순화하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온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제작비의 향방만 찾는 자신을 발견한다.
극 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영화는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연결과 접촉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 장애물이 뉴로캐스터로 나오는데, 영화 속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이 장비에 의존한채 살아간다. 두려움에 휩싸여 전자 기기에 의존하는 삶을 택한 사람들은 더 외롭고 고립되어 가는데, 이는 SNS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더불어 로봇과 인간의 대결은 흑인과 백인, 이민자와 미국인의 대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 영화 취향에 너무 맞춘 탓일지 이런 현실적인 메시지는 너무 가볍게만 담긴다.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루소 형제와 넷플릭스의 협업은 잠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제작비를 최대한 적절히 배치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제작비는 너무 과해보인다. 부족한 완성도가 계속 눈에 밟힌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평점: 2.0 / 5.0
한줄평: 너무 과한 제작비, 너무 부족한 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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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나 미국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에요.
마치 예전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흑백영화 특유의 화면 질감과 음향이 완벽히 재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맹키위츠가 보고 들었던 그 당시의 할리우드 권력과 정치인들의 위선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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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선택한 소녀
모아나
줄거리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드넓은 바다가 사방 천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 모투누이.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유일하게 쫄지 않았던 아이이기도 하다. '테 피티'여신의 심장을 훔친 '마우이'라는 영웅을 찾아서 '테카'를 잠재우고 심장을 돌려놔야 한다는 옛 이야기. 사람들은 다 그거 헛소리라고 해도 할머니는 모아나에게 너가 바로 바다에 선택된 아이라며 얼른 배 타고 나가라고 꼬신다.(물론 진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을 뿐.) 할머니는 모아나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도, 그러면서도 바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망설여도 그저 바라보고 모아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모아나는 물론 너무나 바다로 나가고 싶지만, 완강한 아버지는 모아나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책임감 스웩 넘치는 아빠도 언젠가부터 섬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감지한다. 할머니는 이 때다 하면서 심장을 돌려놓지 않아서 저주가 온 거라고, 모아나에게 원래 이 부족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뭐, 예상하겠지만 결국 모아나는 바다로 떠난다. 바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하여
숨은 의미 찾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고전적 공주들로 큰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 공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주의 상은(이보시오, 관상쟁이 양반. 내가 공주가 될 상인가? feat.이정재)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법답안처럼 여겨지는 옛 공주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공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 벅스라이프의 개미공주' 같은 공주들 말고도 '타잔의 제인/ 인어공주의 딸/ 인크레더블의 헬렌' 처럼 여러 여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공주들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의 공주들이었다. 여기서 잭팟 터진 게 바로 '겨울왕국의 엘사(feat.레리꼬)'였던 것이고. 그러나 디즈니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숨어있는 더 많은 공주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모아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를 잇거나, 가문을 책임지거나, 책임을 지는 것은 보통 남성의 역할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극성 부모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다. 마치 모아나처럼.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모아나는 분명 '디즈니가 최종적으로 다다랐던 공주들'과는 다르다.
보통 주인공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면 '책임 vs 자유'의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책임을 분배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엘사와 모아나의 구도를 비교해보자면,
엘사 :'왕국에서 자신의 힘을 숨기고 훌륭한 여왕이 되는 것 vs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
모아나 :'족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지켜서 책임지는 것 vs 바다로 떠나 섬의 저주를 풀어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엘사와는 달리 모아나는 '책임 vs 책임'의 구도를 갖는 것이다. 거기에 바다로 떠나는 것이 자신의 자유임과 동시에 부족의 정체성을 찾는 모험이기도 하다. 모아나는 아빠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책임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인크레더블 2를 리뷰할 때, 제작진이 세대교체를 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특이한 것은, 모아나를 격려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할머니라는 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모아나를 흔드는 것이 바로 아빠다. 이로써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른은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결국 공생하며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지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변한다. 문제에서 도망쳐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참기만 하던 옛날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딪히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전세대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자리를 양보하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게 아니다
감상평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단연 90년대생이다.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세대를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 방식이 설령 믿을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전세대의 권력남용이다. 늘 새로운 것은 비난받았지만, 세상을 바꾼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우이'는 '모아나'와 같은 처지이다. 전설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모아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동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결말을 만들어낸다. 뱃머리가 약간 삐그덕거려도, 거센 물살에 가끔은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배가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모아나는 관객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가끔은 큰 파도를 만나서 다치기도,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배를 만나고 무인도를 찾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항해를 멈출 수는 없다. 가끔씩 지독한 인생의 파도에 너무나 지쳤을 때, 내가 발견했던 땅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물론 너무 마음에 드는 땅이 생긴 사람은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뭍보다는 파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바다로 내몰 수도, 땅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뭉친 소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바다라는 모험을 즐기고, 그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모아나가 책임진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우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때로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바다 위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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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신세(身世) 지기 싫다!” 나이 들면 자식들이나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말은 아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시니어들이 가진 공포 중 하나는 바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일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열패감과 두려움은 아래 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떻게 단정 짓냐고? <소풍>을 보면 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이 두려움과 싸우며,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때문. 영화는 신세 지기 싫어하는 노인들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 선택을 따라간다.
요즘 은심(나문희)은 걱정이 많다. 파킨슨병이 날로 심해지고, 현실인지 꿈인지 돌아가신 엄마가 자꾸 눈앞에 보인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웅(류승수)은 돈 문제로 속을 썩인다. 이때 고향 절친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이 집에 찾아오고, 이들은 오랜만에 고향인 남해로 향한다. 부모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은심은 하나둘씩 이곳의 추억을 음미하던 중, 과거 자신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난다.
<소풍>은 제목이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란 소절처럼, 이들의 고향 나들이는 그 자체로서의 오랜만에 떠나는 소풍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소풍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후, 노년이 되어서야 누리는 이 소풍의 분위기는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 따뜻함이 가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부각되는 건 생의 마지막이라는 지점에 있다.
영화는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노인이 겪는 신체적 아픔을 즉시 한다. 파킨슨병에 의한 손 떨림은 물론, 허리가 아파 거동 자체를 못하는 모습, 뇌종양 등 질병으로 인한 고충 등을 가감 없이 전한다. 특히 금순이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소변을 실례하는 장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한다. 이처럼 노인들의 치부를 전시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들의 아름답고도 행복한 짧은 여행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신세 지는 일 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을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존엄사라는 뜨거운 감자를 수면위로 올려놓은 영화는 윤리적인 잣대가 아닌 당사자들의 고통과 공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감독은 중반부에 은심과 금순의 미래를 보여준다. 자식이 걱정할까봐 병을 숨기고 살아온 친구의 죽음은 은심의 미래를, 요양병원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친구가 죽은 듯 사는 모습은 금순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 장면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노인들이 가진 고통과 공포다. 두 친구는 이런 공포에 휘감겨 살다가 가느니, 차라리 존엄을 택한 것. 후반부는 이들의 존엄 투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소 아쉬운 지점은 이 문제의식이 개인만의 문제로 그친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노인들이 겪는 다수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하고 존엄으로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각 자체가 이들에게만 국한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플랜 75>의 경우 고령화 사회 문제를 사회적 시각으로 넓혔던 것에 비해, <소풍>은 그 부분이 다소 약하다. 물론, 은심과 해웅 사이에 빚어진 중산층 가족의 민낯, 리조트 개발 위기에 놓인 시골 마을 등 가족 및 사회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이 부분마저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구실로만 작용한다. 더불어 특별함 보단 안전함을 택한 듯 너무나 밉지만 그럼에도 도와주는 어미의 모습, 그 모든 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지켜보게 하는 건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노배우들의 연기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실제 은심, 금순, 태호로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존재감은 영화의 빈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세 배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80대 노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연기로 승화시킨다. 여기에 요양병원에 갇혀 사는 이들의 친구 청자 역에 최선자, 은심을 질투하는 맹희 역에 이용이, 마을 터줏대감 영배 역에 한태일 등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연기를 수행하는 노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다.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지만, 마치 이 영화를 위해 탄생한 곡처럼 은심과 금순의 이야기에 잘 스며든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아등바등 가열차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모래 알갱이처럼 홀연히 떠나며 건네는 이들의 인사. 이 노래와 함께 마주해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0 /5.0
한줄평: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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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봤던] 아주 NICE
예전에 입에 달고 살던 말은 "재미와 흥행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흥행을 하더라도 맞지 않는 영화가 있듯이 자신이 꼭 직접 확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인데, 이젠 옛말이 되는 느낌이다.
23년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주가 되었음에도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사전 시사 - 무대인사"까지 합친다면 14주가 지났음에도 거론되고 있다! - 이젠, 재미와 흥행은 비례한다.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국내에서 2만명 남짓한 흥행 성적을 거뒀고, 북미에서도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평단과 관객의 반응들은 뜨거웠다. - 실제로, 이후 88년과 99년을 배경으로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영화는 사설탐정인 "힐리"와 "미치"가 포르노 스타 "미스티"의 죽음을 조사에 기업과 정부가 얽혀있음을 알게 되는데...※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평범한 오락 영화로만 봤는데?
1977년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은 작품이다.
'1977년'이라는 미국 당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사설탐정"이라는 설정에서 "필름 누아르"라는 영화적 이해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외부적으로 본다면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연령가에 맞춰 야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는 성인 오락 영화로 비칠 수 있지만 그만큼 알면 알수록 재밌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나이스 가이즈>는 몰라도 모르는 대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크게 어렵지 않아 극과 극의 캐릭터들이 부딪히는 "버디 무비"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라이언 고슬링"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연기인데, 그는 어딘가 모자란 역할 "미치"를 맡았다.
극 중. 유리창을 깨다가 손목을 부여잡는다든지 나무에 기대어 담뱃불을 붙이다가 옆의 시체에 소리도 못 지르는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는 장면들이 이번에 개봉하는 <바비, 2023>를 기대케한다.앞서 "라이언 고슬링"만을 언급했지만, "러셀 크로우" 역시 만만치 않는 매력을 선보이며 눈썰미가 좋은 팬들이라면 <LA 컨피덴셜>의 "킴 베이싱어"도 확인할 수 있다. - <스파이더맨>시리즈의 "앵거리 라이스"도 나온다!
이런 기라성과 같은 라인업을 갖추고도 평범한 팝콘 무비로 그친 건 아쉬운 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재미가 보장된 것만으로도 '아주 NICE' 아닐까?· tmi. 1 - 1977년 본편을 시작으로 1988년과 99년을 배경으로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앞서 말한 흥행으로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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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지옥의 화원(2021)> 리뷰
작년 이맘때의 나는 옛 홍콩 영화를 탐닉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기가 자신의 찬란했던 시절과 맞닿아 있던 아버지는 이 소식을 꽤 반겼으나, 곧 반가움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깔깔거리며 보고 있던 영화는 아버지의 취향과 완전히 다른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와호장룡(2000)>이나 <영웅본색(1986)>, <아비정전(1990)>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꽂힌’ 건 <소림축구(2001)>는 물론, <도성(1990)>, <도학위룡(1991)>부터 <007 북경특급(1994)>, <홍콩 레옹(1995)>과 같은 영화들, 그러니까 주성치의 손이 닿은 코미디물이었다. 나는 러닝타임 내내 과장된 현실을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이어나가는 그 특유의 우직함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병맛 액션 영화’라고 소개하는 <지옥의 화원(2021)>은 내게 있어, 102분이 10분처럼 느껴진 영화였다.
세키 카즈아키 감독의 <지옥의 화원(2021)>은 앞서 말한 코미디 특유의 뻔뻔함을 이어나가면서도, 미묘하게 제 4의 벽을 뚫을 듯 말 듯 한 대사를 시도한다. 짧게 말하자면 클리셰를 비트는 시도를 간간히 하는, 코미디/액션 장르 영화란 소리다. 기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소위 ‘일진 만화’의 뼈대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오죽하면 등장인물들조차 너무나 만화 같은 상황이지 않냐고 투덜댈 정도이니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각본가는 <지옥의 화원>이 기존 장르 영화와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요 인물의 성별과 무대를 혁신적으로 바꿨다. 그렇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비를 걸고 상대방의 ‘구역(회사)’을 차지하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싸우는 이들은 모두 여성 회사원, 그러니까 ‘OL’ 이다. 잠깐,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일단 현실에서 사용하는 이성은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 잠시 내려놓는 편이 좋다.
※ 스포일러 주의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보자. 나오코(나가노 메이)가 근무하는 미츠후지 상사는 언뜻 우리네 회사처럼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어디든 ‘파벌’이 존재한다는 나오코의 말마따나, 이곳은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했다. 미츠후지 내부엔 타케 시오리(카와에이 리나)가 이끄는 영업부의 광견파, 안도 슈리(나나오)가 이끄는 개발부의 악마파, 그리고 칸다 에츠코(오오시마 미유키)가 이끄는 제조부의 대괴수파가 존재하는데, 한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인지라 격투와 혼란이 계속되는 실정인 거다. 이 혼란을 잠재우려면 압도적인 강자가 필요했고, 정의로운 싸움꾼인 란(히로세 아리스)이 입사한 순간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런데 아뿔싸. 란이 그 근방에서 최강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다른 도전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주인공 나오코는 란과 친해진 상황이었던지라 자꾸만 ‘그쪽 세계’와 조금씩 연루되기 시작한다. 특히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 레이나(코에키 에이코)가 있는 톰슨과의 싸움이 붙었을 때 나오코는 인질이 되고야 마는데, 이 지점에서 나오코는 마치 만화처럼 ‘등장인물의 친한 친구’정도의 입지에서 벗어나 ‘숨은 실력자’로 각성한다. 이러한 줄거리를 듣다 보면 <지옥의 화원>이 전반적으로 대단히 신선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야망이나 목표가 있지 않은 회사원의 피 튀기는 싸움, 좁았던 여성 코미디의 입지를 넓히는 발상, 경계를 넘나드는 대립 구조와 같이 클리셰를 비틀며 따라가는 특유의 우스꽝스러움이 끝내, 폭소를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을 답습한 스토리텔링과 일본식 만담
영화 내 주인공이 만화책을 독파하며 자랐다는 설정 때문일까. <지옥의 화원>은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애니메이션풍 스토리텔링과 액션, 캐릭터 설정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캐릭터는 입체적 인물형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개는 평면적이되, 각자의 특성을 크게 부풀린 성격을 띤다. 이러한 설정의 연장선으로, 많은 캐릭터가 당연한 상식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듯 보인다. 카페에서 다짜고짜 싸움을 걸고,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며 산에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드라마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철저하게 도식화된 캐릭터성은 코믹 장르 영화와 성공적으로 결합하며 웃음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영화 내에선 싸움이 계속되어도 각각의 갈등이 가진 깊이는 놀라우리만큼 얕고 가벼워,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대단한 기능을 하는 위기나 전환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장은 102분에 걸쳐 탄탄히 다져진 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단, 몇 개의 계기를 기준점으로 폭발할 뿐이다.
또한 <지옥의 화원>은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2021)>나 애니메이션 짱구 시리즈 등을 비롯한, 일본 문화산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담’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만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엉뚱한 한 명과, 그 한 사람에게 바른 상식으로 딴지를 거는 스탠딩 개그의 일종인데, 한국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고 알고있는 일본식 개그의 한 형태이다. 예컨대 란이 음료수 캔을 찌그러뜨리고 탕비실을 떠났을 때, 시오리나 아츠키가 란의 손이 끈적해지진 않았을까 걱정하거나, 캔을 제대로 분리수거하지 않은 사실을 걱정하는 모습 등이 해당될 터다. 여러 변형을 주며 고조되는 분위기를 잠시 꺾어주는 일본식 만담은 영화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긴장을 한 풀 꺾는 개그 스타일은 취향을 심하게 타고, 이따금은 사회적 맥락을 알아야 더 크게 웃을 수 있어 추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지옥의 화원>에 등장하는 만담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정서 내에서라면 쉽게 웃을 수 있을 듯 했다.
코미디가 그려내는 사회의 단면
코미디 장르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가볍게 여겨지긴 하지만, 문화를 담아내는 하나의 장르이기에 본질적으로 삶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 등을 통해 사회나 권력자를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저 웃음을 전달할 뿐이라는 편견을 매개로 삼아 작가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을 통해 소피스트를 풍자하지 않았나.
어쨌든 이는 코미디에서도 해당 문화권의 사회를 살필 충분한 단서가 마련되어있다는 뜻이다.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지옥의 화원>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가 수많은 여성이 등장해 코믹 액션을 벌이는 활극임에도 우리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역추적할 수 있다. 란이 최고의 OL이 되겠다며 수련하는 장면에서 무수히 연습하는 것은 복합기 사용법과 전화를 받는 것이고, 지상 최고의 OL이라는 호칭을 가진 여성조차 C레벨에 이르지 못한다. 회사에서 혈투를 벌이는 여성을 그린 영화조차 OL의 성취에 대해선 별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화려한 색감을 통해 란과 나오코의 삶이 어떻게 교차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나오코가 꿈꾸던 ‘평범한 삶’ – 즉 싸움 없는 삶과 평범한 사랑의 획득으로 귀결되는 엔딩을 ‘승리’라고 못박는 모습은 영화 내내 힘으로 대표되던, 어떠한 전복적 가능성을 말소시킨다. 이수현(2018)은 여성 코미디에 대해 인용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위반적인 여성들의 반란은 단순히 젠더 간 가부장적인 관계를 도치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남녀의 구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Rowe, Kathleen).” 그저 ‘웃고 끝내면 되는’ 코믹 액션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전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에서의 ‘코미디’가 무엇을 대상화하며 웃었고, 사회적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창작물이 담아낸 웃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것이 정말 가볍게 다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창작 윤리 형성에 대해 논의할 수 없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옥의 화원>은 한 해가 저무는 연말, 연이은 약속으로 지쳐가는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웃음 종합선물세트였던 것 같다. 작품 외적으로는 자막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한들, 말도 안되는 세계에 빠졌다 돌아올 수 있었던 102분이 어디 쉽게 구해지던가? 소년만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10대의 내가 이런 열정으로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괜스레 생각하며 더 웃었다. 엄동설한 속, 일상을 잊을 만큼 뜨거운 웃음을 원한다면 정말이지 꼭 봐야 하는 영화.
참고문헌
유양근 "일본 코미디영화의 웃음 코드와 기능 ―2013~2014 흥행작을 중심으로―" 日本學硏究 53 pp.171-194 (2018) : 171.
이수현 "장르로서의 한국 코미디영화와 코미디 감수성/관객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한국극예술연구 61 pp.371-381 (2018) : 371.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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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돈키호테, 귀도
이 글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한데 워낙 유명한 영화가 재개봉한 거니까 스포일러라고 하지 맙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귀도(로베르토 베니니)를 향한 나의 감정은, 영화를 볼 때마다 변해간다. 사실은 '변해간다.'라는 말보다는 더해진다.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그의 인생은 남루하다거나 볼품없다는 말 외에는 수식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달걀 몇 알 만으로도 적을 만들기 딱 쉬운 성향을 가졌기에 오늘만 살겠구나라는 한심함도 그 위에 한 겹. 그걸 돈과 시간을 들여 지켜만 봐야 하는 내가 느끼는 아슬아슬한 위기감도 한 겹. 항상 실없고, 때로는 사기꾼처럼 보였으며 임기응변이라 부르기엔 하찮아 보이는 잔기술에서 오는 어이없음도 한 꼬집.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쌓아 올리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연민과 쓰라림, 안타까움을 합친 그 무언가로 가득 차서 한동안 영화관 의자에 깊게 파묻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압도되곤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분명 아들인 조슈에(조르지오 칸타리니)에게 하는 모든 말이 거짓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풍자하고 있는 이 현실이 아비인 자신은 겪어 나가야만 한다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늘 나를 울린다. 이 거대한 연극이 사실은 아들만을 위한 것임이 아닌, 자신 또한 인생을 살면서 겪어와야 했지만 외면할 수 없어 다른 것으로 치환해야만 버틸 수 있을 만큼 절실했을 삶을 향한 그의 태도에 언제나 난 패배한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속속들이 다 보여주지 않는, 그가 겪고 있는 아픔들을 보는 나의 마음마저도 핏기를 잃는다. 목숨의 연명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처절함을 한낱 수수께끼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무심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단 한마디의 불평도, 불만도 소리 내지 않는 의연함에 어쩐 일인지 힘이 빠진다.
분명 귀도라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돌을 던졌을 때 마치 오백 마리 쯤의 개구리가 튀어 다니는 것 마냥 파닥파닥 거리는 자잘하고 얕은 파문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거늘. 어쩐 일인지 내가 던진 돌은 한참이나 군소리 없이 떨어진 후에야 툭. 하고 이미 누군가 너무도 많이 던져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자리 잡은 다른 수많은 돌들 사이에 파묻혀 버린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제야. 아니 또 한 번 귀도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작품의 제목부터 그의 인생에 이르기까지 거짓말로 점철된 채 변명만 하는 삶이 아닌. 인생의 무게에서 도망치느라 수세에 몰린 궁지속의 삶을 사는 것 마저도 아닌. 겁도 없이 탱크에게 몇 번이고 달려들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는 돈키호테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또 눈물짓고 반성하며 그에게 용서를 빈다.
그는 또 언제든 내게 다가와서, 그가 늘 그랬던 것처럼. 눈 한번 질끈 감고 맞서봐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마치 최후의 돈키호테인 마냥 돌진할 것이다. 알고 보니 진실과 진심으로 가득 찬 그의 인생이 실제로도 아름다웠음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그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서.
[이 글의 TMI]
1. 이젠 귀도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서 배가 고플 지경이었음.
2. 상 받을 때 모습 마저도 귀도 그 자체였던 감독님.ㅠㅠ
3. 델리만쥬 들고 영화관 오지 말랬지!! 하나 주던가!!
#인생은아름다워 #로베르토베니니 #니콜레타브라스키 #조르지오칸타리니 #귀스티노두라노 #이탈리아영화 #코미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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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가는 총탄과 폭탄으로 개연성을 무마한 영화 《베를린》
하정우와 전지현의 투닥거리는 연기를 좋아하는데 영화 《베를린》을 보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봐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 볼 때부터 그렇게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저 멋지고 예쁜 배우들의 연기를 그저 감상하면 되는 영화였으니 말이다.
영화 《베를린》 시놉시스
거대한 국제적 음모가 숨겨진 운명의 도시 베를린.
그 곳에 상주하는 국정원 요원 정진수는 불법무기거래장소를 감찰하던 중 국적불명, 지문마저 감지되지 않는 일명 ‘고스트’ 비밀요원 표종성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뒤를 쫓던 정진수는 그 배후에 숨겨진 엄청난 국제적 음모를 알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한편 표종성을 제거하고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해 파견된 동명수는 그의 아내 연정희를 반역자로 몰아가며 이를 빌미로 숨통을 조이고, 표종성의 모든 것에 위협을 가한다. 표종성은 동명수의 협박 속에서 연정희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녀를 미행하게 되지만, 예상치 못한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베를린》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액션은 정말 멋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글을 쓰자면 액션신은 정말 멋있었다. 화려한 멋으로 치장된 액션이라기 보다는 정말 저 상대방을 빠른 시간 안에 죽이겠다는 최적화된 동선으로 액션합이 맞춰져 있어서 굉장히 멋있게 다가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 2가지가 있는데 하정우가 끌려가는 전지현을 구하기 위해 승합차에 매달렸을 때, 두 사람의 감정이 애틋한 상태에서 구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전지현이 총상을 입어서 도망갈 수 없게 되자 쫓아오는 류승범을 없애버리는게 낫다고 판단한 하정우가 성치 않은 몸으로 들판에서 싸우는데 그 장면 역시 멋있었다. 약간 서부영화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언제부터 애틋했더라?
정말 궁금한 점은 하정우와 전지현, 언제부터 영화 속에서 이렇게 애틋했을까? 하정우와 전지현은 극 중에서 결혼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게 알콜달콩 서로가 죽지 못해 안달난 사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내 기준 둘이 정략결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정우를 처리하러 온 공작원들을 피해 둘이 도망가는 과정에서 뭐,,, 전우애??? 사선에서 같이 살아남아야한다는 그런 동지애가 발동한 것일까? 아니면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갑자기 솟아난 부성애와 모성애 때문일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의심하고 믿지 못했는데 갑자기 서로만을 믿기 시작하고, 죽을거 뻔히 알면서 구하러 가고, 전지현이 죽자 처절하게 울고,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한석규는 어쩌다 동료가 되었나
또 하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남한의 한석규는 언제부터 하정우를 그렇게 챙겼나?다. 내가 영화를 대충 본 것일까? 아니 분명히 첫 장면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심지어 방아쇠까지 당겼던 사이인데, 하정우가 전지현 구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뒤에서 엄호를 해주질 ksg나 둘이 도망가는 거 류승범이 못쫓아오도록 총알까지 박혀가며 도와주질 않나, 그리고 총상을 입은 전지현을 마지막까지 간호한 것은 한석규였다.
그래서 약간 개연성 무엇? 영화 다시보기를 해야되나? 근데 그렇게까지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감정이 든 채 영화는 마무리되고 말았다. 전반적으로 베를린은 액션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보니 개연성에는 크게 중점을 안 둔 것 같아서 아쉬웠다.
개연성이 아쉬웠던 영화 《베를린》. 하지만 그 아쉬움이 느껴질 때마다 폭탄 펑~ 총알 피슉!! 날아가서 보는 데에는 재밌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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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낼 시간 - 어떤 여행은 캐리어가 없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어요
평균 나이 약 26살! 전 재산은 98만 원? 우리는 시끌벅적한 여행을 계획했다! 주목받지 못해 은퇴한 아이돌 ‘러브앤리즈’의 수민과 사랑,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학창 시절에 갈 수 없었던 수학여행을 뒤늦게 떠나 보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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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0] 각본가 맹키위츠가 바라본 그 시대의 위선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맹크가 넷플릭스에 공개 되었습니다.
고전 영화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가 시민 케인을 쓰게 된 이유나 쓰는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영화사나 미국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에요.
마치 예전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흑백영화 특유의 화면 질감과 음향이 완벽히 재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맹키위츠가 보고 들었던 그 당시의 할리우드 권력과 정치인들의 위선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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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터(애덤 샌들러).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을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무작정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NBA의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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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메인 예고편
코 끝에서 시작되는 달콤한 사랑?!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 ‘창수’(윤시윤) 낯선 이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자마자 여자들이 달려든다?! 가족에 치여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여자 ‘아라’(설인아) 어느 날, 매일같이 타던 버스에서 나는 향기에 두근대기 시작한다 ‘창수’에게 이끌린 ‘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서툴러도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던 그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 애인 ‘제임스’(노상현)가 폭로한 ‘창수’의 비밀! 내가 사랑에 빠진 게, 향수 때문이라고? 2023년 2월, 마법 같은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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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선택한 소녀
모아나
줄거리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드넓은 바다가 사방 천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 모투누이.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유일하게 쫄지 않았던 아이이기도 하다. '테 피티'여신의 심장을 훔친 '마우이'라는 영웅을 찾아서 '테카'를 잠재우고 심장을 돌려놔야 한다는 옛 이야기. 사람들은 다 그거 헛소리라고 해도 할머니는 모아나에게 너가 바로 바다에 선택된 아이라며 얼른 배 타고 나가라고 꼬신다.(물론 진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을 뿐.) 할머니는 모아나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도, 그러면서도 바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망설여도 그저 바라보고 모아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모아나는 물론 너무나 바다로 나가고 싶지만, 완강한 아버지는 모아나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책임감 스웩 넘치는 아빠도 언젠가부터 섬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감지한다. 할머니는 이 때다 하면서 심장을 돌려놓지 않아서 저주가 온 거라고, 모아나에게 원래 이 부족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뭐, 예상하겠지만 결국 모아나는 바다로 떠난다. 바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하여
숨은 의미 찾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고전적 공주들로 큰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 공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주의 상은(이보시오, 관상쟁이 양반. 내가 공주가 될 상인가? feat.이정재)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법답안처럼 여겨지는 옛 공주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공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 벅스라이프의 개미공주' 같은 공주들 말고도 '타잔의 제인/ 인어공주의 딸/ 인크레더블의 헬렌' 처럼 여러 여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공주들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의 공주들이었다. 여기서 잭팟 터진 게 바로 '겨울왕국의 엘사(feat.레리꼬)'였던 것이고. 그러나 디즈니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숨어있는 더 많은 공주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모아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를 잇거나, 가문을 책임지거나, 책임을 지는 것은 보통 남성의 역할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극성 부모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다. 마치 모아나처럼.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모아나는 분명 '디즈니가 최종적으로 다다랐던 공주들'과는 다르다.
보통 주인공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면 '책임 vs 자유'의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책임을 분배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엘사와 모아나의 구도를 비교해보자면,
엘사 :'왕국에서 자신의 힘을 숨기고 훌륭한 여왕이 되는 것 vs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
모아나 :'족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지켜서 책임지는 것 vs 바다로 떠나 섬의 저주를 풀어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엘사와는 달리 모아나는 '책임 vs 책임'의 구도를 갖는 것이다. 거기에 바다로 떠나는 것이 자신의 자유임과 동시에 부족의 정체성을 찾는 모험이기도 하다. 모아나는 아빠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책임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인크레더블 2를 리뷰할 때, 제작진이 세대교체를 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특이한 것은, 모아나를 격려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할머니라는 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모아나를 흔드는 것이 바로 아빠다. 이로써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른은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결국 공생하며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지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변한다. 문제에서 도망쳐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참기만 하던 옛날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딪히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전세대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자리를 양보하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게 아니다
감상평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단연 90년대생이다.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세대를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 방식이 설령 믿을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전세대의 권력남용이다. 늘 새로운 것은 비난받았지만, 세상을 바꾼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우이'는 '모아나'와 같은 처지이다. 전설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모아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동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결말을 만들어낸다. 뱃머리가 약간 삐그덕거려도, 거센 물살에 가끔은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배가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모아나는 관객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가끔은 큰 파도를 만나서 다치기도,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배를 만나고 무인도를 찾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항해를 멈출 수는 없다. 가끔씩 지독한 인생의 파도에 너무나 지쳤을 때, 내가 발견했던 땅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물론 너무 마음에 드는 땅이 생긴 사람은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뭍보다는 파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바다로 내몰 수도, 땅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뭉친 소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바다라는 모험을 즐기고, 그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모아나가 책임진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우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때로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바다 위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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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신세(身世) 지기 싫다!” 나이 들면 자식들이나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말은 아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시니어들이 가진 공포 중 하나는 바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일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열패감과 두려움은 아래 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떻게 단정 짓냐고? <소풍>을 보면 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이 두려움과 싸우며,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때문. 영화는 신세 지기 싫어하는 노인들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 선택을 따라간다.
요즘 은심(나문희)은 걱정이 많다. 파킨슨병이 날로 심해지고, 현실인지 꿈인지 돌아가신 엄마가 자꾸 눈앞에 보인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웅(류승수)은 돈 문제로 속을 썩인다. 이때 고향 절친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이 집에 찾아오고, 이들은 오랜만에 고향인 남해로 향한다. 부모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은심은 하나둘씩 이곳의 추억을 음미하던 중, 과거 자신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난다.
<소풍>은 제목이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란 소절처럼, 이들의 고향 나들이는 그 자체로서의 오랜만에 떠나는 소풍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소풍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후, 노년이 되어서야 누리는 이 소풍의 분위기는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 따뜻함이 가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부각되는 건 생의 마지막이라는 지점에 있다.
영화는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노인이 겪는 신체적 아픔을 즉시 한다. 파킨슨병에 의한 손 떨림은 물론, 허리가 아파 거동 자체를 못하는 모습, 뇌종양 등 질병으로 인한 고충 등을 가감 없이 전한다. 특히 금순이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소변을 실례하는 장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한다. 이처럼 노인들의 치부를 전시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들의 아름답고도 행복한 짧은 여행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신세 지는 일 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을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존엄사라는 뜨거운 감자를 수면위로 올려놓은 영화는 윤리적인 잣대가 아닌 당사자들의 고통과 공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감독은 중반부에 은심과 금순의 미래를 보여준다. 자식이 걱정할까봐 병을 숨기고 살아온 친구의 죽음은 은심의 미래를, 요양병원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친구가 죽은 듯 사는 모습은 금순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 장면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노인들이 가진 고통과 공포다. 두 친구는 이런 공포에 휘감겨 살다가 가느니, 차라리 존엄을 택한 것. 후반부는 이들의 존엄 투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소 아쉬운 지점은 이 문제의식이 개인만의 문제로 그친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노인들이 겪는 다수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하고 존엄으로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각 자체가 이들에게만 국한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플랜 75>의 경우 고령화 사회 문제를 사회적 시각으로 넓혔던 것에 비해, <소풍>은 그 부분이 다소 약하다. 물론, 은심과 해웅 사이에 빚어진 중산층 가족의 민낯, 리조트 개발 위기에 놓인 시골 마을 등 가족 및 사회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이 부분마저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구실로만 작용한다. 더불어 특별함 보단 안전함을 택한 듯 너무나 밉지만 그럼에도 도와주는 어미의 모습, 그 모든 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지켜보게 하는 건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노배우들의 연기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실제 은심, 금순, 태호로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존재감은 영화의 빈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세 배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80대 노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연기로 승화시킨다. 여기에 요양병원에 갇혀 사는 이들의 친구 청자 역에 최선자, 은심을 질투하는 맹희 역에 이용이, 마을 터줏대감 영배 역에 한태일 등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연기를 수행하는 노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다.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지만, 마치 이 영화를 위해 탄생한 곡처럼 은심과 금순의 이야기에 잘 스며든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아등바등 가열차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모래 알갱이처럼 홀연히 떠나며 건네는 이들의 인사. 이 노래와 함께 마주해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0 /5.0
한줄평: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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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봤던] 아주 NICE
예전에 입에 달고 살던 말은 "재미와 흥행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흥행을 하더라도 맞지 않는 영화가 있듯이 자신이 꼭 직접 확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인데, 이젠 옛말이 되는 느낌이다.
23년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주가 되었음에도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사전 시사 - 무대인사"까지 합친다면 14주가 지났음에도 거론되고 있다! - 이젠, 재미와 흥행은 비례한다.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국내에서 2만명 남짓한 흥행 성적을 거뒀고, 북미에서도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평단과 관객의 반응들은 뜨거웠다. - 실제로, 이후 88년과 99년을 배경으로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영화는 사설탐정인 "힐리"와 "미치"가 포르노 스타 "미스티"의 죽음을 조사에 기업과 정부가 얽혀있음을 알게 되는데...※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평범한 오락 영화로만 봤는데?
1977년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은 작품이다.
'1977년'이라는 미국 당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사설탐정"이라는 설정에서 "필름 누아르"라는 영화적 이해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외부적으로 본다면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연령가에 맞춰 야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는 성인 오락 영화로 비칠 수 있지만 그만큼 알면 알수록 재밌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나이스 가이즈>는 몰라도 모르는 대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크게 어렵지 않아 극과 극의 캐릭터들이 부딪히는 "버디 무비"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라이언 고슬링"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연기인데, 그는 어딘가 모자란 역할 "미치"를 맡았다.
극 중. 유리창을 깨다가 손목을 부여잡는다든지 나무에 기대어 담뱃불을 붙이다가 옆의 시체에 소리도 못 지르는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는 장면들이 이번에 개봉하는 <바비, 2023>를 기대케한다.앞서 "라이언 고슬링"만을 언급했지만, "러셀 크로우" 역시 만만치 않는 매력을 선보이며 눈썰미가 좋은 팬들이라면 <LA 컨피덴셜>의 "킴 베이싱어"도 확인할 수 있다. - <스파이더맨>시리즈의 "앵거리 라이스"도 나온다!
이런 기라성과 같은 라인업을 갖추고도 평범한 팝콘 무비로 그친 건 아쉬운 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재미가 보장된 것만으로도 '아주 NICE' 아닐까?· tmi. 1 - 1977년 본편을 시작으로 1988년과 99년을 배경으로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앞서 말한 흥행으로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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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지옥의 화원(2021)> 리뷰
작년 이맘때의 나는 옛 홍콩 영화를 탐닉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기가 자신의 찬란했던 시절과 맞닿아 있던 아버지는 이 소식을 꽤 반겼으나, 곧 반가움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깔깔거리며 보고 있던 영화는 아버지의 취향과 완전히 다른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와호장룡(2000)>이나 <영웅본색(1986)>, <아비정전(1990)>도 인상깊게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꽂힌’ 건 <소림축구(2001)>는 물론, <도성(1990)>, <도학위룡(1991)>부터 <007 북경특급(1994)>, <홍콩 레옹(1995)>과 같은 영화들, 그러니까 주성치의 손이 닿은 코미디물이었다. 나는 러닝타임 내내 과장된 현실을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이어나가는 그 특유의 우직함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병맛 액션 영화’라고 소개하는 <지옥의 화원(2021)>은 내게 있어, 102분이 10분처럼 느껴진 영화였다.
세키 카즈아키 감독의 <지옥의 화원(2021)>은 앞서 말한 코미디 특유의 뻔뻔함을 이어나가면서도, 미묘하게 제 4의 벽을 뚫을 듯 말 듯 한 대사를 시도한다. 짧게 말하자면 클리셰를 비트는 시도를 간간히 하는, 코미디/액션 장르 영화란 소리다. 기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소위 ‘일진 만화’의 뼈대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오죽하면 등장인물들조차 너무나 만화 같은 상황이지 않냐고 투덜댈 정도이니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각본가는 <지옥의 화원>이 기존 장르 영화와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요 인물의 성별과 무대를 혁신적으로 바꿨다. 그렇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비를 걸고 상대방의 ‘구역(회사)’을 차지하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싸우는 이들은 모두 여성 회사원, 그러니까 ‘OL’ 이다. 잠깐,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일단 현실에서 사용하는 이성은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 잠시 내려놓는 편이 좋다.
※ 스포일러 주의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보자. 나오코(나가노 메이)가 근무하는 미츠후지 상사는 언뜻 우리네 회사처럼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어디든 ‘파벌’이 존재한다는 나오코의 말마따나, 이곳은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했다. 미츠후지 내부엔 타케 시오리(카와에이 리나)가 이끄는 영업부의 광견파, 안도 슈리(나나오)가 이끄는 개발부의 악마파, 그리고 칸다 에츠코(오오시마 미유키)가 이끄는 제조부의 대괴수파가 존재하는데, 한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인지라 격투와 혼란이 계속되는 실정인 거다. 이 혼란을 잠재우려면 압도적인 강자가 필요했고, 정의로운 싸움꾼인 란(히로세 아리스)이 입사한 순간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런데 아뿔싸. 란이 그 근방에서 최강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다른 도전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주인공 나오코는 란과 친해진 상황이었던지라 자꾸만 ‘그쪽 세계’와 조금씩 연루되기 시작한다. 특히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 레이나(코에키 에이코)가 있는 톰슨과의 싸움이 붙었을 때 나오코는 인질이 되고야 마는데, 이 지점에서 나오코는 마치 만화처럼 ‘등장인물의 친한 친구’정도의 입지에서 벗어나 ‘숨은 실력자’로 각성한다. 이러한 줄거리를 듣다 보면 <지옥의 화원>이 전반적으로 대단히 신선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야망이나 목표가 있지 않은 회사원의 피 튀기는 싸움, 좁았던 여성 코미디의 입지를 넓히는 발상, 경계를 넘나드는 대립 구조와 같이 클리셰를 비틀며 따라가는 특유의 우스꽝스러움이 끝내, 폭소를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을 답습한 스토리텔링과 일본식 만담
영화 내 주인공이 만화책을 독파하며 자랐다는 설정 때문일까. <지옥의 화원>은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애니메이션풍 스토리텔링과 액션, 캐릭터 설정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캐릭터는 입체적 인물형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개는 평면적이되, 각자의 특성을 크게 부풀린 성격을 띤다. 이러한 설정의 연장선으로, 많은 캐릭터가 당연한 상식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듯 보인다. 카페에서 다짜고짜 싸움을 걸고, 지상 최고의 여직원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며 산에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드라마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철저하게 도식화된 캐릭터성은 코믹 장르 영화와 성공적으로 결합하며 웃음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영화 내에선 싸움이 계속되어도 각각의 갈등이 가진 깊이는 놀라우리만큼 얕고 가벼워,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대단한 기능을 하는 위기나 전환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장은 102분에 걸쳐 탄탄히 다져진 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단, 몇 개의 계기를 기준점으로 폭발할 뿐이다.
또한 <지옥의 화원>은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2021)>나 애니메이션 짱구 시리즈 등을 비롯한, 일본 문화산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담’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만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엉뚱한 한 명과, 그 한 사람에게 바른 상식으로 딴지를 거는 스탠딩 개그의 일종인데, 한국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고 알고있는 일본식 개그의 한 형태이다. 예컨대 란이 음료수 캔을 찌그러뜨리고 탕비실을 떠났을 때, 시오리나 아츠키가 란의 손이 끈적해지진 않았을까 걱정하거나, 캔을 제대로 분리수거하지 않은 사실을 걱정하는 모습 등이 해당될 터다. 여러 변형을 주며 고조되는 분위기를 잠시 꺾어주는 일본식 만담은 영화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긴장을 한 풀 꺾는 개그 스타일은 취향을 심하게 타고, 이따금은 사회적 맥락을 알아야 더 크게 웃을 수 있어 추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지옥의 화원>에 등장하는 만담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정서 내에서라면 쉽게 웃을 수 있을 듯 했다.
코미디가 그려내는 사회의 단면
코미디 장르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가볍게 여겨지긴 하지만, 문화를 담아내는 하나의 장르이기에 본질적으로 삶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 등을 통해 사회나 권력자를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저 웃음을 전달할 뿐이라는 편견을 매개로 삼아 작가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을 통해 소피스트를 풍자하지 않았나.
어쨌든 이는 코미디에서도 해당 문화권의 사회를 살필 충분한 단서가 마련되어있다는 뜻이다.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지옥의 화원>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가 수많은 여성이 등장해 코믹 액션을 벌이는 활극임에도 우리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역추적할 수 있다. 란이 최고의 OL이 되겠다며 수련하는 장면에서 무수히 연습하는 것은 복합기 사용법과 전화를 받는 것이고, 지상 최고의 OL이라는 호칭을 가진 여성조차 C레벨에 이르지 못한다. 회사에서 혈투를 벌이는 여성을 그린 영화조차 OL의 성취에 대해선 별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화려한 색감을 통해 란과 나오코의 삶이 어떻게 교차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나오코가 꿈꾸던 ‘평범한 삶’ – 즉 싸움 없는 삶과 평범한 사랑의 획득으로 귀결되는 엔딩을 ‘승리’라고 못박는 모습은 영화 내내 힘으로 대표되던, 어떠한 전복적 가능성을 말소시킨다. 이수현(2018)은 여성 코미디에 대해 인용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위반적인 여성들의 반란은 단순히 젠더 간 가부장적인 관계를 도치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남녀의 구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Rowe, Kathleen).” 그저 ‘웃고 끝내면 되는’ 코믹 액션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전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에서의 ‘코미디’가 무엇을 대상화하며 웃었고, 사회적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창작물이 담아낸 웃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것이 정말 가볍게 다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창작 윤리 형성에 대해 논의할 수 없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옥의 화원>은 한 해가 저무는 연말, 연이은 약속으로 지쳐가는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웃음 종합선물세트였던 것 같다. 작품 외적으로는 자막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한들, 말도 안되는 세계에 빠졌다 돌아올 수 있었던 102분이 어디 쉽게 구해지던가? 소년만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10대의 내가 이런 열정으로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괜스레 생각하며 더 웃었다. 엄동설한 속, 일상을 잊을 만큼 뜨거운 웃음을 원한다면 정말이지 꼭 봐야 하는 영화.
참고문헌
유양근 "일본 코미디영화의 웃음 코드와 기능 ―2013~2014 흥행작을 중심으로―" 日本學硏究 53 pp.171-194 (2018) : 171.
이수현 "장르로서의 한국 코미디영화와 코미디 감수성/관객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한국극예술연구 61 pp.371-381 (2018) : 371.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