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3-06 12:38:38
변화의 바람에 몸을 맡기다.
영화 [콘클라베] 리뷰
이 글은 영화 [콘클라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 단절, 내부의 적.
사진 출처:다음 영화
차세대 교황 프로듀스 101을 진행하는 동안, 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스)를 비롯한 추기경들은 성당에 갇혀 있게 된다. 공명정대한 결과를 위해 엄격한 과정을 견뎌내는 추기경들의 여정이 사뭇 답답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하며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견고해야 할 설정인 이 "단절"은 (물론 제목 자체에서도 쉽게 알 수 있지만) 굳게 닫힌 문으로 대변되고, 물 샐 틈 하나 없이 모조리 굳게 닫혀 있다 못해 봉인까지 되어 있는 문들을 보고 있자면, 알게 모르게 인물들이 겪고 있을 긴장감이 얼마나 클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은 외부와의 단절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고립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회의들은 거의 모두 밀실(?)에서 이뤄지는 반면 로렌스가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은 복도에서 이뤄지는 것 또한 그러하고. 비밀을 가진 후보들과의 진실게임(?)이나 서거한 교황의 숨겨둔 진실을 파헤치는 일도 모두 방으로 침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영향을 받을 만한 외부와의 단절을 위해 등 뒤로 세상을 가린 채 문을 쾅하고 닫았건만. 진정 자신들이 조심했어야 할 것들은 그 안에 함께 있는 추기경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목을 옥죄며 천천히 함께 썩어가고 있었지만. 로렌스마저도 그 냄새가 자신들의 갇힌 세계에 퍼질 때까지 알지 못했다.
냄새를 감지한 된 순간부터 로렌스의 귀에는 누군가 문을 쾅쾅 쳐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에 갇힌 자신들인지. 아니면 밖에 있는 자신들인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다수와 소수, 차별을 그리는 법
사진 출처:다음 영화
또한 영화는 다수와 소수로 대변할 수 있는 메시지를, 아름다움이라는 치사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주로 인물들의 배치, 움직임의 방향, 혹은 의복으로 이뤄진다. 이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전해지는 메시지 덕에 영화를 보는 동안 그들의 입장차이, 의견의 일치 정도 등을 헷갈리지 않게 습득하고 따라갈 수 있다.(오히려 여러 버전으로 불리는 이름이 더 헷갈릴 지경)
이 아름다운 선물을 보는데서 오는 기쁨이 매우 커서, 종잡을 수 없는 추기경들 사이의 암투 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틈이 충분히 생긴다. 마치 크게 내뱉은 심호흡 후에 다시 잠수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와중에도 직업병이 도져버린 내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차별 혹은 구별을 볼 수 있는 장면을 말하라 한다면, 가만히 서 있는 추기경들 사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수녀들의 모습을 비출 때 라고 할 것이다.
마치 적혈구와 백혈구 사이를 조심해서 돌아다니는 수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낼 수 없는 수녀들의 처지도. 단 한 번의 눈길도 그들에게 주지 않는 추기경들의 모습도. 그러면서도 정적임과 동적임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움직임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점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 신(Scene)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바람, 이 모든 폭발의 시작.
사진 출처:다음 영화
폭동에 의해 이 완벽하다 생각했던 밀실(?)에 틈이 생기고 난 후. 가장 먼저 이곳으로 넘어온 것은 다름 아닌 바람조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로렌스는 크고 견고한 문으로 성추문이나 매점매석 같은 큰 것들만 막아내면. 교황이 될 자를 쉽게 고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썩은 냄새들을 품에 안고 유유히 등을 보이고 멀어지면서 그에게 큰 물음을 던졌다.
자격. 그리고 변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극 중 로렌스는 콘클라베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공적인 임무는 물론이고 자신이 성직자로서 가진 의심까지 안은 채 그 어떤 인물보다도 쓸쓸하며 갇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작은 공기의 날갯짓 덕에,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 단언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로렌스는 묘하게 안정되고 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분명 불청객이라 생각했을 바람이었지만. 그 덕에 자신이야 말로 스스로가 갇혀 있는 콘클라베 안에서 두꺼운 문을 부수고 나올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거북이를 고이 풀어(?) 주고, 수녀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모습에서. 로렌스의 성직자 생활이 다시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확신을 의심하는 과정에 언제나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제목인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글 수 있는, 혹은 잠근 방을 의미한다.
[이 글의 TMI]
1. 어제 산 타는 바람에 몸살 나서 오늘 하체 못함.
2. 이틀만 회사 나가면 이번 주 끝!!
3. 당근 5킬로 샀음. 라페 가즈악!!
#콘클라베 #영화리뷰 #최신영화 #랄프파인즈 #에드바르트베르거 #영화리뷰어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Relative contents
-
- 영화 <3000년의 기다림(2022)> 리뷰
이야기는 매혹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체 없는 것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변형되고, 반복되며, 이따금 자신의 꼬리를 잃더라도 이야기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과학이 없던 시절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신화이든, 자신의 지혜를 전할 방법이 없어 구전으로 이어져 온 민담이든 간에. 오죽하면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기록이고, 공동의 기억이자 역사라고. 기록할 수 없었던 자들이 해낼 수 있던 최후의 반향이자 상실에의 저항이라고 말이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로 유명한 조지 밀러 감독의 2022년 작품이다. <옥자(2017)>, <설국열차(2013)>로도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자,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 <콘스탄틴(2005)> 등을 통해 20여 년 전부터 판타지에 자주 얼굴을 비친 바 있는 근사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어벤저스> 시리즈의 헤임달, BBC 드라마 <루터> 등을 통해 우아한 카리스마를 내비친 배우 이드리스 엘바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A.S. 바이엇이 199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나이팅게일의 눈 속의 정령>을 원작으로 삼는다. 생소한 제목이더라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알라딘’에 등장하는 지니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니’에 대한 언급을 했으니, 3,000년 동안 자유를 갈망한 정령 진(이드리스 엘바)과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면히 흩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채집하며 살아온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의 첫 만남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다. 알리테아는 유리병을 닦아내며 거대한 정령을 마주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불의 정령 진. 그는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알리테아는 열망하던 것을 손쉽게 이루고, 진은 오랜 세월 바라 마지않던 자유를 이룰 수 있으니 너무도 완벽한 윈윈의 거래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하나 있다. 알리테아가 자신은 현재에 더없이 만족하여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심지어 알리테아는 이렇게 지적하기까지 한다. 소원을 비는 이야기의 교훈은 언제나 경고로 끝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진은 이러한 알리테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있음과 욕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진은, 열망하는 것이 없다는 관조적 자세는 개인의 본성 혹은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행위이며 삶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리테아가 특별한 추진력 없이 관성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가 학자로 살며 쌓아온 시간이 멈춰있었다고 말하는 건 틀림없이 실례일 터다. 다만 알리테아는 개인의 삶에서 일정 부분을 단념한 인물이라고 묘사된다. 아이를 잃은 이후 슬픔을 비롯한 그의 감정은 전반적으로 정지한 상태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절제의 미덕(진은 어리석음이라 일갈하는)을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초조함은 분명하게 표시된다. 그러하므로 진과 영화 내 카메라의 시선에 따르면, 알리테아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생(生)에의 원초적 욕구는 체념과 같은 그 어드매의 방향으로 휩쓸려 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리테아는 빠르게 공감하지 못한다. 둘의 몰이해는 불에서 태어난 정령과 흙으로 빚어진 인간 사이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두 인간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헤어지고 끝났을 텐데 3,000여 년의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진은 절박하다.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알리테아의 허락을 구하고자 애쓴다. 자신이 갇히게 된 사연과 자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을 볼 수 있었으나 보지 못한 자,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려는 만남이었으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풀어내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주요한 축인 영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진을 거쳐간 이들이 아무도 그에게 물질적 풍요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을 만났던 이들이 모두 특권 계층이어서 여유로운 삶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이 이야기의 원형일 『천일야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조차 우리는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의 욕망을 찾아낼 수 있다. 끊이지 않는 파티, 무한할 것만 같은 부와 명예, 갖가지 음식과 사치품.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때로는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장면이, 영화 <3000년의 기다림>에선 모조리 생략된다. 진에게 소원을 빈 여성들은 각기 다른 것을 원하는 듯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자신이 지닌 한계점을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필멸자가 바라는 초월에의 의지는 다양하게 나타나며 인물이 있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노예로 살던 귈텐은 사랑을 통한 생명의 초월을 소망하여 아이를 임신했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진출에 한계를 절감했던 제페토는 지식을 끝없이 흡수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명예와 공적을 원했다.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둘은 신분의 벽과 성별의 벽에 막혀 갇혀 있었으니 병 밖에 있더라도 병 안에 갇힌 진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신세였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알리테아, 진실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그는 무얼 갈망하는가?
인간은 사회적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존재이니 타자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개인이 바로 서도 사회가 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탈취한다면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테아는 이전의 여성들과 다른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으니 그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며 들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역사이다. 사회가 관심 없지만 자신만큼은 들었어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그러하므로 알리테아가 발견한 자신의 소망은 고독에의 초월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3000년은 언뜻 진의 시간처럼 보이지만 내겐 보다 알리테아의 것, 아니 알리테아로 대표되는 인간 여성 전체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진의 시간은 추후의 인간들이 발명한 시간에 따라 계산된 것이지 그가 타인과 교류하며 쌓아온 역사의 시간이 아니다. 그가 소비한 대부분의 시간은 신에게 자신의 자유를 갈구하며 기도했던 것으로, 홀로 있어 셈하기조차 어려웠던 공백 그 자체이다. (환상으로 구성되었고 타자의 계산으로 보충된 그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 시간 간의 간극을 생각한다면, 사실 진이 경험한 시간은 3,000년이 아니라 30,000년, 혹은 3억 년에 조응할지도 모른다.) 반면 그가 병 밖에서 만나던 여성들의 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사회와 시간은 3천여 년의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르고 변화해 왔다.
알리테아와 진이라는 두 존재가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예정된 만남 –한 단어로 줄여야 한다면 운명-처럼 보인다. 끝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 인간, 종말이 예정된 인간이 욕망 없음의 상태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가 끝을 맞이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인간의 존재, 역사,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정령의 종막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립과 고독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과 정령을 다시 잇는다. 신비를 지우고 합리에 의지해 지어진 현대사회다. 이곳에서 순식간에 멸종될 뻔한 정령은 이따금 나타나 개인의 감성과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힘을 다시금 얻는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지혜이며 예술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이지 않을까. 그러한 점에서 <3000년의 기다림>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우화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굳이 ‘초월’이라는 단어와 함께 읽어내고자 한 건, 여성 주안공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붙이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고집 때문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읽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매끄러울 것이다. 다만 알리테아의 서사가 아이를 잃은 여성에서 출발하여 진과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영화의 짜임새가 구시대적이라고 느끼게 될 수밖에 없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2022년에 나온 영화를 2023년의 시청자가 독해하는 자세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사랑이란 기실, 가장 값지고 쟁취하기 어려운 가치인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국 락밴드 퀸Queen이 자신들의 노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에서 “사랑이란 구시대적 단어이기 때문에Be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라고 노래했듯 나는 이 단어의 오용, 사랑 앞에서 수동적으로 변해버리는 여성의 태도를 반성 없이 관습적으로 찍어내는 미디어에 반대하기보단 그저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더없이 손쉬운 방향을 선택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사랑을 대체하거나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단어를 발명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선함과 다정함의 가치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한 명의 작은 개인일 뿐이지만, 이런 고민을 가진 인간의 발버둥이 쌓인다면 3,000년 후의 사람들에겐 내 고민이 모조리 옛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감히 가져 보겠다.
★★☆
-
- 물약을 마시지 않은 자만이 웃을 것이다!
줄거리
스포일러 있음
한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이름을 떨쳤던 매들린은 공연이 끝나고 오랜 친구이자 앙숙이었던 헬렌을 만나게 된다. 매들린은 함께 찾아온 멘빌이라는 헬렌의 약혼자를 꼬셔 결국 결혼하게 되고, 이 때문에 충격을 받은 헬렌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매들린에 대한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정신을 차린다.
그로부터 7년 후, 매들린과 멘빌 부부는 헬렌에게서 출판 기념 파티 초대장을 받는다. 매들린은 축 처지는 피부와 늘어나는 주름살에 스트레스를 받고, 멘빌은 촉망받는 박사에서 장의사로 일하며 부부 관계가 틀어진지 오래였다. 그런데 출판 기념회에서 오십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워진 헬렌을 보고 멘빌은 마음이 흔들린다. 이 상황에 초조해진 매들린은 자신이 다니던 숍에서 소개했던 '리즐 폰 루만'이라는 여자를 찾아가게 된다.
리즐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십 대처럼 보이는 비결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하는 젊음의 묘약 덕분이라 말한다. 비싼 가격에 묘약을 마신 매들린은 다시 젊음을 되찾지만, 리즐은 몸을 아끼라며 경고한다. 집에 돌아간 매들린은 멘빌과 티격태격하다가 계단 아래로 떨어지며 사지가 부러져 죽고 만다.
그러나 더 이상 뛰지 않는 맥박에도 불구하고 리즐은 목이 돌아간 채 멀쩡히 움직인다. 리즐이 말한 약의 부작용이란 죽어도 죽지 않는 것 즉, 죽은 시체의 몸을 한 채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집에 찾아온 헬렌 역시 매들린이 쏜 총을 맞아 배에 구멍이 뚫린 채로도 멀쩡히 일어난다. 두 사람은 서로가 똑같은 약을 마셨다는 걸 알게 되고 싸우다가 옛 오해를 풀고 화해하게 된다.
두 시체는 사정을 알고 있는 멘빌에게 자신들을 고쳐달라 요구한다. 멘빌은 장의사로서의 실력을 살려 둘을 감쪽같이 고쳐놓지만, 자신은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헬렌과 매들린은 문득 자신들에게 마네킹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눈동자를 색칠할 수 있는 사람은 멘빌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둘은 멘빌을 리즐에게 데려가 자신들과 똑같은 약을 먹이려 하지만, 멘빌은 끝내 약을 거부한다. 가까스로 그곳에서 도망친 멘빌은 37년 후, 어떤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그의 장례식에 찾아온 두 구의 시체. 헬렌과 매들린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으로 겨우 걸어 다니며, 서로의 얼굴에 스프레이를 칠해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했다'.
감상 포인트
1. CG는 옛날 작품인 거 감안하고 봐야 한다. 그 시대에 이 정도 CG 면 놀라운 기술이 아니었을지.
2. 목이 돌아가고 배가 뚫리고... 잔인한 설정이지만 어색한 CG와 분장 덕분에 잔인함은 높지 않다.
3. 특별히 교훈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처참한 결말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느낌이다.
감상평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는 목이 부러지거나 배가 뚫리는 등 말로만 들으면 잔인한 장면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 볼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추석 연휴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으면서 보기에는 약간 거북함이 들 수도 있겠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약간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키는지라... 비위 약한 분은 웬만하면 밥 다 먹고 소화 시킨 후에 보세요.(?)
아무튼, 결말이 시니컬해서 더 좋았던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마네킹처럼 산산조각난 시체 둘이 기괴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은 허탈한 웃음조각이 목 뒤에서 툭,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결국 끝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멘빌의 장례식도 교훈적이거나 심오하게 들리지 않았다. '인생은 50부터'(자신이 매들린과 헬렌에게서 도망쳐 새로운 아내를 만난 나이가 50이니까), '비벌리힐스의 산 주검'(실제로 겪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했음), '결혼 상담 클리닉과 여성 연구소'(자신이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결혼 상담을 해준 것은 알겠는데 과연 여성의 무엇에 대해 연구했을까? 아마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헬렌과 매들린에 대한 궁금증이 연구로 이어진 게 아니었을까?) 등등. 멘빌이 자신의 과거를 숨긴 탓인지 생애가 과하게 포장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멘빌의 비밀을 잘 모르는 산 사람들은, 그에게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이분에겐 그만이 간직한 영원히 사는 비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밀은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있죠.
영원한 젊음의 비밀은 바로 우리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랑하는 어니스트는 그렇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
누군가에게서 기억되는 것, 잊히지 않는 것. 그래서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 사랑.
뻔하디 뻔하고 흔한 이 이야기는 매들린과 헬렌의 삶을 통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리즐은 묘약을 마실 때 매들린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약을 마시고 십 년 정도는 활동해도 되지만, 그 이후에는 반드시 종적을 감추고 묘약의 비밀을 숨겨야만 한다고. 그래서 리즐의 파티에는 앤디 워홀, 엘비스 프레슬리 등 일찍 죽거나 생사가 불분명한 유명인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에게서 잊혀야만 한다. 자신들만의 영생을 누리기 위해 탐욕을 감추고 숨어 살아야 한다. 멜빈은 약을 먹지 않고 도망친 후 자신의 삶을 살다가 죽었지만, 헬렌과 매들린은 평생 자신들이 시체라는 사실을 숨긴 채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이다. 진정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멜빈이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는 사실 우리에게 웃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묘약을 던진다. 그리고 진정 웃을 수 있는 자는 그 묘약이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사람뿐일 것이다.
당신은 묘약을 마실 것인가? 웃을 것인가?
-
- 미쳐야만 알 수 있는 본질, 그 끝에서 무너지다
애국은 무엇일까. 애국(愛國) : 자신이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것, 이는 사전적 의미로서 국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포괄적 해석이 가능한 애국이라는 단어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이 영화에서의 애국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애국이 주는 어떤 영향까지도 세세하게 바라보면 더 곱씹으며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공(功)과 과오(過誤)는 어떤 나라에도, 어떤 시대에도 존재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제국주의는 세상을 덮었다. 모두에게 강요된 체제임에도 누군가는 순응하며 살았고 또 누군가는 체제에서 맞서고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모두가 바란 일이 아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륙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게 된 유사쿠와 후미오는 지금의 삶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와 맞서게 되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내용이 스파이의 ‘아내’인 사토코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유사쿠가 행하는 애국의 과정에서 사토코는 사소한 오해를 갖게 된다.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던 유사쿠의 행동에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졌던 가토 코는 사람 자체에 믿음을 가지며 믿음의 뿌리를 어렵사리 내린다. 사회 전반에 깔린 감시는 사회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의심을 뻗치게 했다. 사회가 만든 감시와 침묵, 그 침묵의 대가는 방관이 되어 신뢰보다는 불신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침묵은 그의 편안한 삶을 위한 거짓말이 된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지금 일본의 모습이 이때 정착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깥세상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투명창과 체스판의 말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건의 참혹함을 목격해도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른 걸까?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꽤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자국을 위해 무한의 충성을 행하는 이들과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비친다. 하지만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치우치지 않는 사토코와 같은 사람은 그 안에서도 길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쉽지 않은 일들이 빠르지도 않게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진다. 패망과 체제의 무너짐 앞에서 슬픔 속의 기쁨이 소용돌이 침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큼은 놓지 않는다.
“난 절대 미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난 미친 거예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 만큼은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각본으로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한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인해 장소에 대한 한계는 있었으나 영화 특유의 잔잔함과 일본의 과거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자국의 모습을 색채 가득한 모습으로 미화하기보다는 스파이의 ‘아내’의 모습으로 투영하는 영화의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외부의 변수로 생략된 부분들이 아쉽게 느껴졌는데, 사회적 제약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영화가 탄생했을까. 일본이 행했던 전쟁의 참혹함이 주변의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의 일본은 어떤 모습인지도 동시에 비추면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시원하게 드러낼 그때를 기대해본다.
-
- 어린이날에 봐야하는 영화는 단연 이거지
다음 주 목요일, 신나는 어린이날이다! 난 지금 26살 사회복무요원이다. 일개 공익인 나. 어린이 었던 적이 거의 13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은 왠지 신난다. 노예 생활 도중 하루 꽁으로 쉬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항상 어린이날에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간단하게 옷을 입고 제주 동쪽 바다를 구경 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노는 걸 구경하면 행복해진다. 사람이 행복한 걸 구경하기만 해도 즐거운 게 사람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도 결혼할 수 있을까' 아득해지지만 그래도 즐거운 건 즐거운 것이 아닐까? 하하.
그런데 보기만 해도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도 나 초등학교 때 어떻게 엄마 아빠가 감당했지? 싶은 부분이 있다. 가령 아이들이 생일파티랍시고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무작정 찾아온 적도 있다. 예고도 없었어서 엄마는 맛있는 걸 준비해야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좀 짜증 날 것 같다. 이처럼 집에 아이가 있는 집안은 감당해야 할 게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각자가 맞이하는 짜증남이 다 다른 것처럼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성적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은 초등학교. 인간관계가 중요한 비중인 학교에서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폭넓게 우리들을 이해하는 영화가 2015년에 있었다. 우리나라 독립영화 <우리들>이다.
우리가 되고 싶은 우리, 둘
주인공 선우는 깍두기 같은 존재다. 체육 시간 피구 하다 주장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선이. 선의의 학교 생활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다. 선을 밟지 않았음에도 아무튼 금을 넘었다고 우기는 아이들. 주눅이 든 선이는 그냥 수그리고 만다. 선이는 왕따다. 그것도 많이 외로운 왕따다. 어느 만큼이냐면, 생일파티에 들어간다는 핑계로 애들의 청소를 죄다 독박 써서 하는 정도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게도 단순히 그냥 혼자 다니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무리에 어울리고 싶어 비굴한 행동까지 하는 선이. 선 이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그렇게 전학생 지아가 눈에 들어왔다. 금세 한 두 마디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지아와 선. 오래 지나지 않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지아. 마음에 그늘이 있다는 상처를 나누니 인간관계도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좋아하면 퍼주는 것 밖에 몰라 직진밖에 모르는 선이지만 그게 뭐 나쁜가. 고작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서툴다 말다 나누기에는 어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친해지는 둘. 여름방학을 지나 개학이 된다. 뭔가 예전 같지 않다. 지아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 개학을 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선을 보고도 지아는 선을 거리 두게 된다. 같은 상처가 반복되는 두려움이 작동한 것이다. 이 이후 선이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위태위태한 인간관계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모두가 다 그렇지만 꼰대라는 말은 정말 정말 싫다. 나도 꼰대 되기 싫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생긴 요즘이다. 나는 젊은 사람이고 싶지 꼬장꼬장하게 사는 건 아무래도 싫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어서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아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자칫 아이들이 너무 어리숙한 존재로만 묘사될 수도 있어서 '고통과 아픔이 장난이냐?' 싶을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윤가은은 왠지 영화를 만들 때 꼰대의 마음가짐으로 감독한 게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 영화는 리액션이 많이 나온다는 걸 뽑고 싶다. 아이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자주 나온다. 이는 아이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뜻으로 통할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 서사를 통해 멋진 사람이 되는 걸 묘사했다면 지나치게 교훈적인 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의 부족함에 대해 오롯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 입장은 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어른이랍시고 '그냥 이렇게 해라'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 생각이다. 그 솔루션이 그 사람 인생 전부를 관통하는 해결책일 수도 있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고통을 이해하는 키다리 아저씨를 원할 수도 있다. 영화는 이런 태도를 내내 견지하며 아이들의 마음에 사려 깊게 다가간다. 이에 덧붙이듯 선의 어머니 캐릭터를 비롯한 어른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엄청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건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꼰대라는 말을 떠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은 다른 역할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가 성인인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극의 내용 전개는 간단하다. 왕따인 선이 지아를 만나서 인간관계에 닳고 닳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정서는 외로움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다. 간단한 이야기가 간단하게 감정이입을 돕는 것이다. (심지어 러닝타임도 짧다) 이는 곧 이 외로움이라는 정서에 집중하니 사람이 공감하기가 쉬워진다. 쉬운 내러티브로 관객에게 공감대를 쉽게 갖다 주는 좋은 한 수였다.
원래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야
난 왜인지 '네가 그렇니까 친구가 없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느 한 구석에는 반 사회적인 행동을 하던 나 자신에게 파운딩을 꽂아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들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 유치원생처럼 따돌림을 하고 뭐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로운 척하던 내 대학생활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피해의식이 쌓이면 앞, 뒤가 안 보인다. 근데 가만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 것에 예외인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 몇몇을 들여다보면 지금 생사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감정, '삶을 지나 보며 바뀌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뤘다고도 생각한다. 이는 종반부에 나타나는 인물의 처지와도 관련이 있다. 또 제목이 <우리들>인 것과도 관련 있다. 이 영화의 목적지가 외로움에 대한 위로라면 <벌새>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벌새>와는 살짝 다르다. 결말부에는 <벌새>와는 다른 부분이 분명 있다. 또, 제목이 <우리들>인 것도 '우리'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이야기를 적용시킬 수 있다. 우리가 되고 싶은 선과 지아의 이야기인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러나 쉬운 이야기를 전개했던 이 영화다. '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 친했음'이라는 정서가 반복되는 이 영화. 이런 박탈감과 외로움은 나이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무슨 말이냐? 이 영화는 우리 마음을 작게 묘사하기도 했다. 영화 제목 해석의 클리셰(?) 같긴 하지만 이 <우리들>은 성인인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거 다큐 아냐?
이 영화의 배우들은 완~전 신인 아역 배우들이다. 선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장혜진 배우 말고는 2022년이 된 지금까지도 익숙하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연기 잘했다. 간단하고 깊게 이야기를 쓰는 거랑 쉽게 연기하는 거랑 다른 차원의 문제일 텐데 반복되는 박탈감에 대한 표정연기가 좋았다. 극에 쉽게 이입한다는 건 그만큼 극에 매끄럽게 잘 스며들었다는 뜻도 되니 아역 배우들의 발연기는 아예 없는 편이다. 사실적이라서 오히려 다큐 같은 느낌이 있을 정도다;
또 촘촘한 연출이 장점이었던 영화다. 일단 주요 소재 피구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이 구기종목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운동이다. 공을 맞춰 사람이 아웃되면 피해자의 입장이 될 일이 없다. 이건 한 무리에 속하면 무리 지어 피해자를 양산시키는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다른 비유다. 이 구기종목의 속성으로 영화의 연출을 잘 녹여든 섬세한 연출이었다. 또 다른 설정으로는 자격지심에 대한 묘사다. 이 자격지심에 대한 묘사는 휴대폰이라는 소재에서 나타난다. 선과 지아 중에서 지아만 휴대전화가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랑 직간접적으로 통화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만 소통하는 소도구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지아의 상처를 묘사하는 기능으로도 휴대전화가 쓰이는데, 이 상처가 공개되고 지아가 했던 말들이나 표정을 보면 이런 꼼꼼함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곳곳이 박아놓았으니 과연 따뜻한 작품이다.
어린이날에 봐야 할 영화
이 글을 쓰는 나에게 어려운 게 뭘까. 난 잊히는 게 두렵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냥 단적으로 이 글도 잊히는 게 두렵기 때문에 쓰는 것도 있다. '짠! 나 이렇게 잘 나간다!'식의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0.1% 정도 있는 것이다. 아 아이들도 뭐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고 겪어온 세월이 깊다고 해서 비슷한 마음이더라도 내가 더 무게가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애들은 애들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사려 깊은 태도로 아이들이 지니는 삶의 무게에 대해, 그리고 어른에게도 적용되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해서 다뤘다. 단순히 인간관계에 대한 공감만 얻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날에 과연 최적화된 영화다. 연휴에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할 일이 없는 왓챠 구독자 분들에게 이 영화 추천한다. 아마 아이들에게, 동생에게 폭넓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왓챠영화추천
TRANSLATE withx
EnglishTRANSLATE with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mize widget: Bing Webmaster Portal
-
- 5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1977년도의 컬러 방송 송출이 시작된지 얼마 안된 시점의 배경,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이 번갈아 진행되며 노이즈와 고르지 못한 화면으로 빈티지한 호러를 느낄수 있는
<악마와의 토크쇼>!항상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의 주연 영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강의 공포를 선사한다고 하는데요. 이번주 개봉예정작 함께해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개요: 액션, SF | 미국 | 145분
감독: 웨스 볼
출연: 오웬 티그, 프레이아 앨런, 케빈 두런드 등
개봉: 2024.05.08.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인류의 시대는 끝났고,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는 완전한 군림을 위해 인간들을 사냥하며 자신의 제국을 건설한다. 한편, 또 다른 유인원 '노아'는 우연히 숨겨진 과거의 이야기와 ‘시저’의 가르침을 듣게 되고, 의문의 한 인간 소녀와 함께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악마와의 토크쇼
Late Night with the Devil
개요: 공포 | 오스트레일리아 | 93분
감독: 캐머런 카이네스, 콜린 카이네스
출연: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잉그리트토렐리, 로라 고든 등
개봉: 2024.05.08.
배급: (주)올랄라스토리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미지수
Unknown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가족, SF, 판타지 | 한국 | 6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5.08.
배급: 인디스토리
시놉시스
헤어진 연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지수’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붕괴 직전인 ‘우주’ 우주선 발사 뉴스에 집착하는 ‘기완’ 비가 오면 발작하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인선’ 베란다에 장총을 두고 살아가는 ‘신애’ “나 혼자 우주를 떠다니고 있어. 나 좀 꺼내줘”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다섯 인물들의 미지의 슬픔 그리고 미지의 시간
목소리의 형태
A Silent Voice : The Movie
개요: 애니메이션, 멜로/로맨스 | 한국 | 130분
감독: 야마다 나오코
더빙: 이리노 미유, 하야미 사오리 등
재개봉: 2024.05.09.
배급: (주)디스테이션
시놉시스
“다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너와 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활발한 성격의 ‘이시다 쇼야’의 반에 어느 날 청각장애를 앓는 소녀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온다. 반 아이들은 청각 장애가 있는 ‘쇼코’를 귀찮게 여겨 따돌리고, 그 주모자로 ‘쇼야’가 지목 된다. 그의 괴롭힘에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고 ‘쇼야’는 일순간 왕따가 된다. 6년 후, 여전히 따돌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등학생이 된 ‘쇼야’는 사과할 마음으로 ‘쇼코’를 찾아가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쇼야’와 ‘쇼코’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하는데…
-
- 고질라 마이너스 원 | 괴수물은 합격, 시대극은 불합격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카미카제 파일럿으로 출격한 '시키시마'(카미키 류노스케). 그는 살아남으라는 부모님의 애원에 명령을 지키는 대신 오오도 섬에 비상착륙하지만, 바로 그날 고질라가 섬을 습격한다. 그나마 전투기에 달린 기관총이 유일한 희망인 상황. 그러나 시키시마는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끝내 사격하지 못하고, 종전 후 일본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 전우를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고향에 돌아온 후 '노리코'(하마베 미나미)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꾸린 시키시마. 돈이 부족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동안 설치된 기뢰를 제거하는 일에 자원하고, 새로운 동료 '아키츠'(사사키 쿠라노스케), '노다'(요시오카 히데타카), '미즈시마'(야마다 유키)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시키시마와 동료들은 파괴되어 뒤집힌 전함을 목격하고, 곧이어 방사능 때문에 더 거대해진 고질라를 조우한다. 이에 시키시마는 결심한다. 고질라를 죽이고,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를 끊어내겠다고.
준수한 첫인상, 찝찝한 뒷맛
한국에서 가장 찬밥 대우받는 영화 장르를 하나 꼽으라면 당연 괴수물이다.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보다도 심하다. 그나마 스페이스 오페라는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으고 관심을 환기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MCU와 결합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듄> 시리즈, 이정재가 출연한 디즈니+ <에콜라이트> 등.
그에 반해 괴수물은 반등 포인트조차 잡지 못하는 중이다. 봉준호의 <괴물>, 피터 잭슨의 <킹콩>,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정도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흥행 성적을 낸 경우가 많지 않다. 이름값으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고질라>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할리우드가 만든 몬스터버스의 <고질라> 시리즈만 해도 최근에는 100만 관객 돌파도 버거워한다.
그래서일까? 고질라 시리즈 70주년 기념작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국내 개봉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시각효과상을 받고, 북미에서만 5,642만 달러를 벌며 역대 북미 개봉 비영어권 작품 사상 3위의 흥행을 기록했는데도.
그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6월 1일에 느닷없이 한국에 상륙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첫인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괴수물로서의 매력은 출중했다. 괴수물이 흔히 간과하는 인간 캐릭터의 스토리도 몬스터버스가 배워야 할 정도로 탄탄했다.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가 않다.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가 의심을 자꾸 키우기 때문이다.
괴수물로서는 합격
괴수물로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합격점을 주고도 남는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수상작이라기에는 어색한 CG가 종종 보인다. 일례로 긴자 습격 장면에서는 고질라가 배경과 분리되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숨겨지지 않는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내뿜기 전에 등지느러미가 발광하면서 돌출될 때도 미니어처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질라의 외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할리우드 표 고질라는 동물의 움직임을 본 딴 모델링을 토대로 움직임을 구현했다. 반면에 이번 고질라는 특촬물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지는 두 발로 직립 보행한다. 할리우드의 자연스러운 CG를 선호하느냐, 아니면 일본의 고질라 시리즈를 오마주 했다고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지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색한 CG는 금세 잊힌다. 비록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고질라의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 오오도 섬에서의 첫 조우, 긴자 습격 시퀀스, 바다에서의 마지막 결전까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꺾을 수 없는 괴수의 아우라를 제대로 각인시킨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처럼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쏜 후 열폭풍과 검은 비가 이어지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가장 고질라스럽다. 본래 고질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비키니섬 핵실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존재니까. 모든 <고질라> 시리즈가 핵을 비롯해 인류가 개발한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실제 핵폭발을 보는 듯한 경험은 이 메시지에 다시 한번 힘을 더해준다.
드라마는 기대 이상
인간 캐릭터들의 서사도 기대 이상이다. 보통 괴수물에서는 인간 캐릭터가 잘 안 보인다. 괴수와 인간을 이어 줄 관계성을 부여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 액션을 보는 쾌감만 남는 반쪽짜리 영화인 경우가 잦은 이유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다르다. 고질라 그 자체보다는 고질라라는 자연 현상을 주인공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덕분에 물리적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괴수와 인간 사이에 갈등 구도가 만들어진다.
카미카제 파일럿 시키시마는 비상착륙한 오오도 섬에서 고질라를 만난 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빠져 전투기 기관총 한 번 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일본군들이 고질라에게 무참히 학살당했기 때문.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고질라는 시키시마를 괴롭힌다. 간신히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일상을 재건하지만, 이내 일본에 상륙한 고질라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즉, 시키시마에게 고질라는 좀처럼 떨치지 못하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PTSD를 형상화한 존재다. 따라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는 고질라의 액션을 즐기는 단순한 쾌감 대신 아직 끝나지 않은 자기만의 전쟁을 시키시마가 어떻게 끝내는지 지켜보는 맛이 있다. 다만 후반부 전개는 물음표다.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오는 전개처럼 해피엔딩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신파를 남발하기 때문.
극우는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흠잡을 데 없는 괴수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영화 전체의 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일본이 배경인데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이 극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일본군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드러내면서 군국주의를 비난하고 반전주의, 생명 존중 사상을 강조한다.
전쟁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미즈시마의 말에 시키시마가 멱살을 잡을 정도로 분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군부나 정치인의 입장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관점에서 전쟁을 조명하며 시키시마의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일본군은 카미카제처럼 생명을 경시해 왔지만 고질라와의 전투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노다 박사의 대사, 전쟁 중과는 달리 전투기에 낙하산과 탈출 장치를 달아주는 정비대 모습 등등.
고질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불길한 암시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사로잡은 군국주의 광기가 언제든 고질라처럼 부활할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러지 못하면 카미카제나 옥쇄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를 전쟁 이후 세대도 살아가야 할 테니까.
시대극으로서는 불합격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마지막까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회피한다. 영화는 일본 군부와 민간인을 철저히 분리한다. 도쿄 대공습으로 고통받은 민간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역사적 책임을 슬그머니 감춘다. 당연히 설득력은 없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 주민까지 징병, 징용한 군국주의 국가였으니까. 고질라 격퇴 작전을 입안한 노다 박사만 해도 일본 해군 소속으로 무기를 개발했는데, 그를 평범한 민간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 결과 영화 자체가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라는 제목은 전쟁 때문에 일본이 제로(0)가 된 상태에서, 고질라가 등장해서 -1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라는 걸 고려하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고질라의 습격은 그저 합당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도쿄대공습을 당하고 원자폭탄을 맞은 게 자업자득이듯이.
그러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전쟁 이후 일본인의 집단적 트라우마만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맥락과 시점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해피엔딩은, 특히 과거 식민지 사람 입장에서, 그리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과거사와 절대 떼 놓을 수 없는, 고질라라는 복어를 제대로 요리할 용기까지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게 없었던 셈이다.
Acceptable 무난함
고질라는 훌륭하다. 고질라와 태평양 전쟁을 떼 놓을 수 없을 뿐.
-
-
- 「인질」황정민이 납치당하자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ㅣ중국 실화 한국판 리메이크 영화화ㅣ인질 황정민ㅣ세이빙 미스터우 결말포함 영화리뷰ㅣ
?인질(2021) 영화 예고편 분석
- 원작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 소개
- 중국 배우 납치 사건 소개- 영화정보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 각본: 필감성
제작: 강혜정
출연: 황정민
제작사: 외유내강
배급사: 대한민국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촬영기간: 2019년 5월 15일 ~ 2019년 8월 13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1년 8월
제작비: 80억 원
#인질 #영화인질 #인질예고편
-
- 넷플릭스 <퍼스트 킬> 공식 예고편
누구나 처음은 잊을 수 없는 법. 첫 희생자를 찾아야 할 때가 된 십 대 뱀파이어 줄리엣. 새로 전학 온 칼리오페를 노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칼리오페는 뱀파이어 사냥꾼. 이제 둘은 서로가 죽이기는 쉽지 않고, 빠져들기엔 너무나 쉬운 존재란 걸 알게 되는데.
-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전드 뮤직 예고편
"역대 최고 훌륭한 뮤지컬 음악!" 감미로운 선율과 따뜻한 로맨스가 담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전드 뮤직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