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2-19 20:41:00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영화 [더 폴]리뷰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Relative contents
-
- 공작인지 자작인지 뭣이 중헌디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이름마저도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영국 출신!'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19세기 영국판 <가십걸>이라고 해서 시대극이나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루팡>을 보고 넷플릭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포함 모두들 시즌 2가 얼른 다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시즌 1의 여덟 편을 보는 내내, 나는 브리저튼 집안 8남매 중 다섯째인 엘로이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래와 같은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결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왜 남자들은 저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데 여자들은 못하지?'
언니인 다프네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참아내는 것을 보며 엘로이즈는 언니처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고, 결혼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대가 시대이고 고증을 착실히 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근데 그래 놓고 왜 굳이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함) 수많은 무도회에서 여자들은 춤을 신청하는 카드를 받아야지만 남자들과 춤을 출 수 있다. 남자들만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 물론 남자들에게 '어서 나에게 춤추자고 신청해!' 압박을 넣을 수는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남자들만 여자의 집에 방문할 뿐, 여자들이 먼저 발을 떼는 장면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장면들은 특정 문화나 관습, 풍습이 후대까지 굉장히 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줬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은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먼저 고백을 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서 위의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낼 만큼 매력이 없다거나, 혹은 멋지다거나라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그 기저에는 아무래도 호감의 표시나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생각들이 혹시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절대 빼낼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결국 우리의 1등 신붓감 다프네는 왕족 다음으로 높다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조건만 최고인 게 아니라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기까지 하니 일단 다프네의 결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계속 보다 보니 당시 귀족 여성들이 왜 그렇게 결혼에 목을 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공작부인 혹은 자작부인, 이렇게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릴 뿐이다. 쓰고 보니 '취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니 앞서 가졌던 의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실제 그 시대에 영국에서 살며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와 그녀의 자매들도 처음에 편견 때문에 남성 이름의 필명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녀들을 정상 참작해주자.
우리나라는 은장도가 있을 정도로 여성이 순결이나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게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국 귀족 사교계에서도 떠받들어지는 가치였다. 미혼 여성들은 정원에 남자와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에 휩싸여 혼사길 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아닌 첫째 아들인 점, 귀족 여성들의 생계와 삶의 질은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점, 혼전임신이 굉장한 흠으로 여겨지는 점 등 여러 가지들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관습이나 풍습이 19세기와 21세기, 영국과 한국이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듯하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비슷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다프네는 본인을 괴롭혔던 가면을 벗고, '척'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진실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쓴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프네는 물론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만, 나름 주먹도 날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 남편이 공작인지 자작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프네에게는 본인의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엘로이즈는 피아노와 자수를 배우는 대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프네와 엘로이즈처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내 해답도 찾아가고 있는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스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었다. 얼른 시즌2가 나오길!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윤캔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품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서서히 드러나는 악을 처단하러 함께 떠나는 여정은 늘 흥미롭기 마련이다. 이러한 퇴마사의 모험담이 사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90년대 한국의 오컬트 장르에서 독보적이었던 소설 <퇴마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당시 많은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며 익숙하게 만났던 이름들, 박신부, 현암, 준후, 승희의 이야기가 이제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작품은 소설 ‘국내편’의 첫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상처를 지닌 퇴마사들이 우연히 만나 ‘악의 교주’를 물리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첫번째 감정] 박신부의 상실감
영화에서 절대 악이 먼저 화면에 소개된 이후, 그 다음 장면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인물이 바로 박신부다. <퇴마록> 전체 서사에서 그는 리더 역할을 맡으며, 팀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런 박신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상실감이 도사리고 있는데, 바로 과거에 구하지 못했던 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다. 악귀에게 빙의된 아이를 제때 구해내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이 사건 이후, 박신부는 ‘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전부 바쳐가며 악령을 찾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다.
영화에서 이 상실감은 박신부가 다시 한 번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게 되는 동기로 드러난다. 파면된 신부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동밀교의 스님 요청에 응하여 본산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악령을 막고, 같은 상황에 처한 준후를 구해내려 한다. 결국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두 번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며, 그 강인한 의지가 이번 영화에서도 핵심적으로 부각된다.
무엇보다 박신부의 상실감은 그가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칠고 처절한 기도를 올릴 때, 또는 심한 부상을 입고도 다시 일어나 방어막을 펼칠 때, 우리는 그가 겪은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 애니메이션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게, 그의 고뇌를 스크린에 옮겼다. 그래서 박신부의 상실감은 단지 과거를 후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팀을 이끄는 진정한 동기가 된다. 이처럼 박신부는 아픔을 동력 삼아 누군가를 살리려는 ‘주체적 신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이야기 전반에서 든든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두번째 감정] 현암의 상실감
현암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불같이 무공을 펼치는 ‘행동파’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의 강인함 뒤에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다. 물에 빠져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물귀신’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집념은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가 외형적으론 분노를 뿜어내지만, 사실 그 분노의 기저에는 상실감이 깔려 있는 셈이다. 무공을 배워나가면서 분노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지 몰라도, 동생을 잃었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적 배경 덕분에 현암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정의감이 넘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동밀교를 찾다가, 그곳에서 악령에 씌인 교주의 끔찍한 실상을 발견한다. 이때 우연히 마주한 박신부와 준후와 함께 ‘지금 당장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며, 공략법을 논의하기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불같은 성격 탓에 충돌도 자주 일으키지만, 결국 그의 저돌성과 능숙한 무공은 팀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현암이 무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상실감이, 누군가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가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이는 적에게도 거침없이 달려드는 것은 ‘누구 하나 더 잃을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현암이 분투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호쾌한 액션 쾌감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슬픔과 트라우마가 녹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 덕분에 현암은 단순히 ‘센 무공인’이 아니라, 깊은 상실감에 갇힌 채로도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된다.
[세번째 감정] 준후의 상실감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준후는 무척 밝고 쾌활한 아이다. 어린 외모와 철없는 모습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잠재력은 해동밀교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묘사되며, 특히 술법과 관련해선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 능력을 어설프게 사용하며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준후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상실감이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교주의 폭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준후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물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토록 밝았던 준후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강력한 술법을 폭발적으로 각성해낸다. 하지만 막강한 힘을 쏟아낸다고 해서, 잃어버린 이를 되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상실감은 준후에게 ‘내가 가진 능력이 때로는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결과적으로 준후는 가장 어린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다. 이는 단순히 슬프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준후가 보여주는 철없던 표정이,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는 비장함으로 물드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준후의 상실감은 아이 같은 순수함마저 침식해버리는 폭력적인 감정이지만, 동시에 그가 ‘다시는 소중한 이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토대가 된다.
이게 바로 성공적인 영화화
<퇴마록> 애니메이션은 ‘정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짧은 에피소드 안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 퇴마사라는 설정은 과장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각 인물이 지닌 상실감과 트라우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고뇌를 반영한다. 박신부, 현암, 준후가 힘을 합쳐 교주의 폭주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곧, 이들이 스스로를 추스르고 더 큰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정의의 구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극복하려고 하는 악은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힘에 도취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도덕적 시사점을 던진다.
그렇기에 이번 애니메이션판 <퇴마록>은 원작 소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새로운 시청자에게도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들이 늘 그렇듯,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프로젝트지만, 이번 결과물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퇴마록> 영화다’라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만족스럽다. 특히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화려한 작화로 되살아나, 각자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꽤나 장쾌하고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저 한 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기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원작에서 다뤄졌던 수많은 사건과 캐릭터의 서사가 이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어떻게 풀려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박신부, 현암, 준후 외에도 함께 맞설 승희의 활약, 그리고 더 거대한 악령들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직접 이 세계에 빠져드는 일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 <퇴마록>을 추억하는 분들이라면, 그때의 감성과 긴장감을 다시금 되살려볼 좋은 기회다. 또 원작을 모르는 처음 관객이라도, 박신부, 현암, 준후가 보여주는 진솔하고 때론 처절한 사투를 통해 오컬트 판타지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명작의 재탄생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품은 영웅들의 여정이 보고 싶다면, 이번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적극 추천한다. 과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상실감과 싸워나가며 앞으로 펼쳐질 시리즈를 이끌어나갈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
- 으깨진 살점 위에 짓는 집
영화 <사상, 2020>은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부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먼저, 부산에는 사상구(沙上區)라는 지역이 있는데,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부제처럼 한자 역시 모래 사, 위 상을 쓰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 지역과 오랜 인연이 있는 장제원 국회의원이 세 번째 당선되어 직무 수행 중인 곳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환경정비지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추진되는 만덕5지구는 사상구가 아니라 북구에 속한다.
영화 <사상, 2020> 포스터
<사상 공단과 성희의 살>
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한 성희는 사상 공단에서 열심히 일했다. 사상 공단은 낙동강 주변 저지대에 조성된 공업단지로 1970년대 중반부터 부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계획적으로 공장들을 모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업체들도 열악한 환경이었고, 난개발로 심각한 도시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성희는 이곳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의 이름값을 치르고자 환갑이 가까운 나이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집 한 채도 손에 쥐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사상 공단은 성희의 손가락까지 잡아먹었다. 무시무시한 기계가 깨문 자리는 살점이 으깨져 이어 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이 있던 빈자리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둥둥 떠 있다.
성희는 사상 공단에서 열심히 일했다.
<만덕5지구와 수영의 살>
수영이 사는 만덕5지구는 북구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사상 공단이 형성되던 시기 동구와 영도구에 살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만든 동네이다. 변두리 지역의 땅을 겨우 얻은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 집을 직접 짓고 제반 시설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나고 보니 소위 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은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 지저분한 것이 되어있었다. 새롭고 깔끔한 아파트는 헌 집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헌 사람들까지 밀어낸다. 때때로 이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수영은 굴삭기를 돌리는 생업을 포기한 채 위태로운 탑을 쌓고 그 위에서 빠진 앞니로 치킨을 뜯으며 개발 논리 앞에 묵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결국 만덕5지구는 수영의 허리를 비틀어놓았다.
수영은 만덕5지구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으깨진 살점과 도시의 불협화음>
만덕5지구를 비롯한 모든 개발은 으깨진 살점 위에서 이루어진다. 곳곳에 설치된 지뢰처럼 영화 속 공간의 살점을 밟을 때마다 작품은 비명과도 같은 불협화음을 내지른다. 창문 프레임으로 보여주는 색 빠진 그림도 어딘지 모르게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성희와 수영처럼 쇠를 주무르고, 땅을 파며 이 나라에 돈이 잘 돌게 했던 아버지들의 몸은 지난 시간을 담은 하나의 기록이자 증거가 되었다. 사상구가 아니더라도 으깨진 살점의 비명은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면 으깨진 살점의 비명이 들린다.
132분의 러닝타임 속에 9년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의 이야기로 쭉 연결되는 서사보다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조각난 파편을 모으는 작업으로 구성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으깨진 살점처럼.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활동, 10년의 기록 <오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온라인 기획전이 10월 27일 수요일까지 열린다. 성희의 아들, 박배일 감독의 다른 작품도 감상해볼 수 있다.
https://www.indieground.kr/indie/notice.do?mode=view&articleNo=1189
[인디그라운드X오지필름] 오지필름 10주년 기획전 '오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10.14(목)~10.27(수)) |
인디그라운드의 사업 소식, 공지사항, 뉴스레터를 제공합니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 폭력 대신 음식으로 인간의 상실을 따뜻하게 케어해 준다
상실감을 잊기 위한 폭력 대신 이해와 포용, 과거는 과거일 뿐
모든 인간은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신의 무언가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실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는 몸속에서도 가장 깊숙한 부위에 위치해 있어 쉽게 낫지도 않습니다. 상처가 주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기에 이 고통을 피하고 회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다 그 고통에 잠식되어, 어딘가 뒤틀린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이때 상실로 인한 고통을 앓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하지 못할까요? 상실을 다루고 있는 많은 영화들 중에서, 어떤 영화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주먹질을 비롯한 폭력으로 그 고통을 잊으려는 듯한 모습을 비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그>는 상실을 경험한 자가 또 다른 상실을 경험한 자에 대해 이해와 더불어 위로를 건네며, 깊은 부위에 숨어 있는 상처를 드러내게 하여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영화입니다.
1시간 30분이란 짧은 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영화 <피그>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인물이 어떠한 인물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나레이션이나 대사는 일절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러 은유가 담긴 영상을 통해 어렴풋이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힘겹게 걸린 시동과 함께 잠깐 움직이고 퍼져버린 낡은 트럭과 동일한 듯하게, 롭을 녹슬어버린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연출이 그 예 중에 하나입니다. 이처럼 좋은 의미로 불친절한 인물 묘사가 이어짐으로써 롭이 과거에 범상치 않은 존재였음을 관객들이 짐작할 수 있지만, <피그>는 과거의 인간관계가 어떠했는지가 중요한 영화가 아닙니다. 상실이란 공통된 공감대를 중심으로 롭과 아미르,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의 현재 관계를, 그로 인해 변화하는 본인의 감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상실에 대한 따뜻한 우화, <피그>
불친절하지만, 은유로 가득한 캐릭터 소개
상실이 만든 상처와 고통을 안고 가는 법, 이 또한 자신의 일부일 뿐
세 인물 간의 관계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롭과 아미르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만남을 비출 때, 오직 아미르만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더불어 롭이 자신의 납치된 돼지를 찾으러 아미르의 도움을 받아 도시로 이동할 때에도 그는 아미르의 차 안에서 틀어놓은 클래식을 꺼버리는 등 무례한 행동을 합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에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든 기행을 벌이는 롭, 마치 세상과 담을 쌓고 마음을 닫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돼지를 찾는 여정을 거치면서 그들 간에 오가는 대화가 점점 길어지고 많아지는, 소통이 오간다는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롭은 아미르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건네며, 요리도 가르쳐 주기까지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이르러 롭은 돼지를 찾기 위한 출발점이었던 식당에서 헤어질 때, 처음과 달리 아미르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오두막으로 복귀하며, 아미르는 본인이 직접 클래식을 꺼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이 여행을 통해 둘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고 상실이란 공통된 상처로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이를 극복하는 성장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엮어냈습니다.
두 번째로 롭과 아미르의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식사보다 돼지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만큼 롭에게 있어서 돼지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도시의 모든 이들과 연을 끊었음에도 소중한 돼지를 납치한 자를 찾기 위해 그 도시로 다시 발을 들이게 됩니다. 돼지의 소재를 수소문한 끝에, 납치한 장본인은 포틀랜드에서 트러플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는 롭의 아버지였습니다. 롭의 돼지를 별거 아닌 듯이 말하며 은연중에, 아니 대놓고 그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은 그의 화를 돋우고도 남을 법 합니다. 하지만 롭은 말없이 그의 집을 나오고 아미르와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아내에 관한 과거를 아미르를 통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롭 역시 사랑하는 자를 잃은 고통을 피하고 싶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음을 오두막에서 끝까지 재생하지 못하고 중단시켜버리는 씬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롭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자에 대해 폭력 대신, 그와 아내 사이의 소중한 추억을 장식했던 음식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마치 자신 또한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였으며,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주는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더불어, 아미르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롭 또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바라보며, 그 고통을 안고 가는 듯한 성장한 모습을 마무리에서 보여줍니다. 초반에는 끝까지 재생하지 못했던,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끝까지 재생하는 씬을 통해서 말입니다.
영화는 크게 세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챕터의 제목은 모두 음식의 이름으로 붙여졌습니다. '시골식 버섯 타르트', '엄마표 프렌치토스트와 해체주의 가리비 요리', '병, 새, 그리고 소금 바게트'와 같이 특이한 음식의 이름들은 각 챕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음식들이기도 합니다. 마치 음식에 이야기를 담아내어 그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으로는 음식을 주제로 하는 일반적인 영화들과 달리, <피그>는 음식을 요리하고 식사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비추지 않고, 비추더라도 흐릿하게 비추기만 할 뿐입니다. 마치 이 영화는 음식을 보여주고 그 음식을 즐기는 게 주가 아닌 영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피그>는 인간관계에 관해, 그리고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인물이 치유받는 과정을 멀리서 보여주기만 할 뿐입니다.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식을 주로 하지만 음식이 주가 아니라고 말하는 연출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자를 통한 한 인물의 성장 이야기
그리고 이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각자의 이야기는 각자가 써나가는 법
어두운 기운 가득한 배경과 아쉬운 촬영,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부활
영화 <피그>의 배경이 되는 숲과 포틀랜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어두운 강물과 광활한 숲을 비추는 오프닝 시퀀스는 평화로운 분위기라기보다는 긴장감이 역력해 있습니다. 영화의 포스터와 첫 시퀀스를 보면 마치 이 영화 역시 피비린내 풍기는 복수극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극이 진행되면서 복수와는 거리가 먼 영화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어두운 분위기는 좀체 가시지 않습니다. 상실이 주는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여전히 그 상처는 몸에 남아있으며 결코 희망차게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치유와 성장의 힘이 그 어두움 속에 따뜻함을 담아내었습니다. 이처럼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니다 식의 밝은 분위기가 아닌, 어두움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배경을 영화의 주로 삼고 있는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불어, <피그>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력 역시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명품 연기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최근 파산 위기에 몰려 필모그래피를 신경 쓰지 않는 다작으로 인한 평판의 추락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고 다시 재기할 날이 오기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그>는 그 재기의 발판이 되어준 영화였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모든 이야기가 롭을 중심으로 따라가고 있는 만큼 배우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상실과 슬픔에 빠진, 회한 가득한 눈빛을 중심으로 니콜라스 케이지가 보여주는 연기는 오랜만에 과거 전성기 시절의 그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만, <피그>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카메라 워킹과 관련된 부분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피그>에서는 유독 핸드헬드로 촬영한 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정 장르의 영화에서 생동감을 주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카메라 기법이 정적이고 가볍지 않은 영화에서 사용되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핸드헬드가 어울리는 특정 씬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여백을 관객들이 체감하고 채워나갈 수 있도록 가만히 비춰주어야 함에도 화면을 고정시키지 않고 핸드헬드로 느리지만 끊임없이 흔들어대어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한두 번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다만, 이러한 촬영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이해를 넘어 짜증을 불러일으키까지 하였습니다. 정말 이러한 촬영 의도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거 전성기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연기의 재림
어둡지만 따뜻함이 숨어 있는 배경, 그리고 그 배경이 가지고 있는 여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끔찍한 핸드헬드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피그>는 여러모로 이전에 리뷰했던 영화 <애플>을 떠오르게 합니다. 두 작품 모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며, 상실이라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애플>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함을 <피그>는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해 주며, 처음 보는 배우들보다는 좋아했던 배우의 등장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피그>에 더 후한 평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첫 장편 영화 치고는 정말 나쁘지 않았고 흥미로웠던 작품을 탄생시킨 마이클 사노스키,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궁금합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프랜차이즈>를 마무리하고 어떤 신선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지 기다려집니다 :)
당신이 늘 하고 싶다던 가게가 뭐였지?
★★★★
-
- 더 참혹하고, 가슴 아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는 오리지널 영화가 아니다. 1929년 소설 원작을 비롯 이미 1930년대와 1979년에 영화화한 작품이고, 이번 2022년에 한 번 더 리메이크화 된 작품이다. 20세기 영화들과 크게 변화된 줄거리 없이 이어지는 플롯과 대비된 더 생동감 있는 미장센이 1차 세계대전 속 참담함과 잔혹함을 부각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스틸컷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지방 동북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참호전 중 독일 병사 시선에서 플롯이 진행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치열한 참호전의 실태와 현실을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고작 몇 백 미터 땅을 진전하고자 백병전과 인해전술을 동원해 몇 백만 명이 희생되는 1차 세계대전 속 참혹함을 너무나도 훌륭한 미장센을 통해 표현한다. 색조 효과는 참호전에 띄는 푸른빛은 전쟁의 차갑고 냉담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경기관총과 수류탄이 쏟아내는 난사로 푸른빛의 전장이 곳곳에서 터지는 갈색 먼지바람과 병사들이 흐르는 피로 붉그스름하게 섞이며 공기가 변화한다. 이 뿐만 아니라 오블리크 샷(oblique shot), 클로즈 업(close up)을 이용해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롱 샷(Long shot)을 통해 격전으로 죽거나 다치는 병사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가 혹은 전쟁으로 떠들썩한 환경에 맞지 않는 주변 자연경관을 조용히 보여주며, 조용하지만 늘 불안함을 안고 있는 1910년대 풍경을 보여준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가 세 번째 영화화를 할 정도인 이유는 역시 뛰어난 원작의 내용 덕분이다. 참혹한 참호전의 표현, 인간의 윤리 배반, 1분에 1명 꼴로 죽어나가는 전쟁터가 익숙하듯이 사람이 죽는 게 낯설지 않다는 뉘앙스가 강렬한 영화 제목 등이 있다. 특히, 프랑스나 여타 연합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전쟁 속에서는 서로가 피해자만 되는 꼴인 의미 없는 희생과 불필요한 싸움으로밖에 없는 아픔을 영화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하기에 원작이 칭송받지 아니한가. 그러나 흑백영화와 당시에는 대단했지만 지금 들어서는 아쉬운 사운드 연출을 이번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에서 완전히 업그레이드하여 더 강렬하게 전쟁을 느끼게 해 준다.
-
-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스크린 너머의 자유
� 스크린 너머의 자유, 서울에서 만나다
– 제5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소개
‘자유·정의·인권’이라는 가치를 담아, 영화로 세상과 대화하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가 2025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개최됩니다. 일반 시민과 더 가까이, 더 깊이 소통하는 국제 영화제! 함께 알아볼까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Seoul Larkspu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SLIFF)는 ‘자유, 정의,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국내외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토론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공유하는 국제 인권 영화제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영화제 이름 ‘락스퍼(Larkspur)’의 의미
‘락스퍼’는 자유와 정의, 긍정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꽃 이름입니다. 이 꽃의 의미를 영화제에 투영해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적 불의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 서울락스퍼가 특별한 이유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상업성과 흥행 중심의 영화제들과 달리,
영화를 통해 '가치'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공익 중심의 영화제입니다.� “스크린에 비친 작은 진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의 철학� 작년 영화제, 하이라이트만 골라보기!
– 2024년 제4회 영화제 돌아보기
개막작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마리우폴에서의 20일.
제96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와 20여 개국 외교 사절단이 참석한 개막식은 서울락스퍼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 영화제의 주요 특징
1. 인권과 사회 정의를 중심 주제로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특정 국가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세계 곳곳의 인권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다룬 영화들을 초청합니다. 특히 북한 인권, 전쟁과 평화, 난민, 젠더, 표현의 자유 등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2. 개방성과 시민 참여 중시
전문 관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 학생, 외국인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영화제 문턱을 낮췄습니다.
단편영화 공모전, 관객과의 대화(GV), 포럼, 워크숍 등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합니다.
3. 국제적 네트워크 확대
매년 해외 대사관, 국제기구 관계자, 해외 감독 및 작가 등이 참가해 국제적인 소통과 연대를 이룹니다.
수상작은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기회를 얻으며 국제적 확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 뭐가 열릴까? 2025 락스퍼 영화제 핵심 프로그램 총정리!
– 올해의 주요 행사 한눈에 보기
� 단편영화 공모전
주제: 자유·정의·인권(북한인권)
장르 제한 없이 30분 이내
접수: 4월 1일~30일 / 이메일 제출
� 7개 부문 시상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정부기관장상, 기업상 등 외부 수상도 포함
� 해외 상영 기회 제공
수상작은 해외 영화제 진출 기회까지!
�️ 자유를 말하고, 인권을 비추는 영화제
스크린 위에 담긴 이야기들이 당신의 일상에도 울림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25년 5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함께하세요!-락스퍼 서포터즈 후기
‘자유, 정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주제로 한 락스퍼 영화제는 사회와 관객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하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 시민과의 거리감을 좁히며 인권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 락스퍼의 취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영화제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데 제 역량을 보태 콘텐츠 제작, 행사 운영,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영화와 사회,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SLIFF2025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국제영화제 #영화제
-
- 이번엔 괴도 키드가 주인공? / 명탐정 코난 극장판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 핫토리와 카즈하의 연애사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후기입니다.
*평소 코난 극장판처럼 쿠키영상이 나옵니다.
-
-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영국 역사 속 실제 기록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역사ㅣ킹스맨 프리퀄ㅣ
? 영화 '킹스맨:퍼스트 에이전트 (King's Man, 2020)' 예고편 분석영상
- 스태프
제작사: 20세기 폭스, 마브 스튜디오, 클라우디 프로덕션
배급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매튜 본
제작: 매튜 본, 데이빗 리드, 애덤 볼링
각본: 매튜 본, 칼 가이듀섹
원안: 매튜 본
출연진: 해리스 디킨슨, 레이프 파인스,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자이먼 혼수, 스탠리 투치 외
음악: 헨리 잭맨
개봉일자: 2020년 9월 18일-킹스맨 시리즈 프리퀄
1차 세계대전 배경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 #킹스맨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예고편
-
- 영화 <비밀의 정원> 메인 예고편
“네가 괜찮은지 알고 싶어”
이사를 준비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정원과 상우 부부
다정하고 든든한 이모와 이모부
10년 전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와 동생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원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평화롭던 가족들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
- 영화 <교섭> 30초 예고편
사상 최악의 피랍 사건! 목표는 전원 생존!? ⭐30초⭐ 안에 200% 몰입하는 황정민 X 현빈 X 강기영 의 숨막히는 교섭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