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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072025-06-30 03:20:22

여름과 사랑의 빛

영화 <녹색광선> 리뷰


여름과 사랑의 빛

 

 

 

<녹색 광선>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중 하나인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이다. 1990년 국내 개봉 이후 예술 독립 영화관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녹색 광선>은 여름 휴가 동안 사랑을 찾아 나서는 델핀의 이야기다. 여행지에서 운명을 만난다는 낭만은 어느 시대에나 통한다. 특히 배경이 아름다운 휴양지라면 더욱 그렇다.

 

한 달여 간의 휴가 동안 파리 근교를 떠도는 델핀을 따라 펼쳐지는 유럽의 여름 풍경은 아름답다. 작열하는 햇빛은 눈부시고, 여름을 머금은 나무는 푸르르다. 그러나 델핀은 우울하다. 그녀는 때때로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원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Fernweh and The Green Ray – Celluloid Wicker Man

 

 

델핀은 혼자가 싫지만 가벼운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노력하지 않는 거라고 비난하거나 그녀 탓으로 돌린다. 혹은 그녀가 마음을 닫았다고 단정 짓는다. 델핀은 그들의 말에 흔들린다.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델핀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휴양지를 옮기며 사람들을 만난다. 델핀은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려 애써보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은 그녀를 자신들만의 이성 체계 안에서만 판단하려 한다. 동물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식물을 친구처럼 여기는 그녀는 그들과 섞이지 못한다. 그녀 자신의 다름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들에게 친절해지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혼자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이 주는 행운의 기운을 믿기 때문이다. 운세에 따르면 녹색은 올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행운은 때때로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그녀를 찾아온다. 그녀의 감각 기관은 무의식적으로 녹색을 발견한다. 델핀은 우연히 쥘 베른의 동명 소설 <녹색 광선>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쥘 베른은 해가 진 후에 수평선 위로 나타나는 녹색 광선을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제목처럼 그녀가 만난 젊은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여름에는 안개가 짙어 녹색 광선을 보기 힘들다. 비아리츠에서 만난 남자도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 도망가는 그녀를 쫓아와 같이 놀자고 말한다. 하룻밤의 오락 같은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델핀은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역 안에는 각기 다른 행선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여행의 일시적인 흥분은 가라앉고, 모두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 일상적 공간에서 델핀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본다. 델핀은 처음으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남자와의 대화는 어딘가 다르다. ‘재밌지 않다는 말에 남자는 냐고 묻는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델핀은 낯섦과 동시에 끌림을 느낀다. 델핀은 남자와 함께 생장 드 뤼로 가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델핀과 남자가 대화하는 기차역의 의자와 배경은 녹색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식당의 테이블도 녹색이다. 길에서 마주친 상점의 이름은 녹색광선이다. 남자와 함께하는 델핀의 주위에 온통 행운의 상징이 가득하다. 델핀은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기 위해 일몰을 보러 간다. 그녀는 이제까지 주변인들과 다름을 느끼고 융화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진실한 자아와 거짓된 자아는 계속 충돌하고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지칠 때까지 말을 쏟아내도 남자는 여전히 델핀을 알아가고 싶어한다. 같이 바욘으로 가자는 남자의 말에 델핀은 망설인다. 이번에야말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날이 맑다. 거짓말처럼 녹색 광선이 선명히 빛난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을 찾는다.

 

 

The Green Ray (1986) | MUBI

 

 

 

사람들은 쉽게 페르소나를 만들어 살아간다. 혼자가 두렵고 외롭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지 않은 척 무리 안에 섞여 들고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사랑은 본래 한 사람의 세계와 또 다른 한 사람의 세계가 만나, 각자의 치부가 보일 만큼의 정서적 연결을 맺을 때 가능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비슷한 상태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우선 자신을 가볍게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 델핀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었다.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대의 세계를 배우고, 그 빈자리에 타인을 채워 넣는 일.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다.

 

 

작성자 . 여름07

출처 . https://blog.naver.com/dreamingink/22391608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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