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2-03 11:29:42
전근대의 질곡, 그리고 근대의 ‘예수’가 된 여자
영화 〈노스페라투〉

8★/10★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질곡, 누군가는 이를 끊어내야만 한다. 1838년 독일, 엘렌은 성적 환희에 젖은 표정으로 악마와 교합한다. 이날 이후, 엘렌은 악몽을 꾸고 심신미약에 시달린다. 한편, 엘렌의 남편 토마스는 거액의 부동산 계약을 위해 타지에 있는 올록 백작에게 향한다. 토마스가 떠나자 엘렌의 불안 증세는 점차 심해진다. 의사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도록 엘렌에게 코르셋을 입으라 권한다. 발작 증세를 억누르기 위한 결박도 권한다. ‘예민한’ 여성에 대한 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처방이었다. 그러나 엘렌의 증세는 악화일로다. 의사는 고민 끝에 한때 촉망받는 의료인이었던 미치광이 연금술사에게 엘렌을 데려간다. ‘현대식’을 표방하는 의사의 자기 패배 선언이다.
한편 엘렌의 고통이 점차 가중되는 동안, 토마스 역시 올록 백작과 만나 진이 빠지는 경험을 한다. 내내 그에게 끌려다니던 토마스는 마침내 올록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쳐 나온다. 올록은 그런 토마스를 뒤따른다. 올록은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다. 엘렌을 비롯한 또 다른 수하가 있는 도시로 향해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을 확립할 때를.

올록이 도착하자 도시에는 금세 전염병이 퍼진다. 엘렌의 증세를 처치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충돌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이 전염병을 악마의 영향력이라 진단하고, 누군가는 그런 해석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은 죽을 쑨다. 전근대에 대한 근대의 연전연패다.
이제 올록이 온 도시를 지배하기 직전이다. 엘렌이 나선다. 그녀는 내내 자신이 더는 올록을 섬기지 않는다는 점을, 이제는 올록이 아닌 남편을 사랑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결국 올록의 강요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진심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만이 올록을 전근대의 세계로 완전히 퇴장시켜 봉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연금술 대 의학, 악마의 재림 대 전염병. 즉 전근대와 근대의 패러다임 전쟁에서 후자는 번번이 패배했다. 전근대의 질곡으로 표상된 악에 완전히 잡아먹힐 위기다. 그러자 근대적 분류‧인식 체계에서 늘 뒤처져 있다고 모욕당해온 여성인 엘렌이 그 모욕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악마 올록과 성적으로 교합해 해가 떠오르면 올록이 돌아가야만 하는 관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번다. ‘마녀(악마에 대한 성욕)’, ‘히스테리(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여성)’라는 낙인을 기꺼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악마에게 소멸을 선사해 근대를 온전히 열어젖히는 예수로서 희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엘렌이 숭고한 희생을 결심하는 결정적 동기가 남편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문, 경제적 필요에 얽매이지 않는 두 개인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근대적인 현상이다.

이 영화는 최초로 뱀파이어가 등장한 동명의 영화(〈노스페라투〉(1922))를 리메이크한 것인데, 100여 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를 넉넉히 견딜 만큼 깊이 있는 상징을 적확하게 활용한다. 클래식한 연출을 동시대적으로 갱신해 몰입감을 유지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숨 막히게 몰아붙이거나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공포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은근하게 장악하여 곱씹게 한다. 이전에 〈라이트하우스〉에서 본, 로버트 에거스가 그려낸 미지의 것에 대한 열망과 공포의 메타포가 더욱 세련되게 발전해 계승되었다는 데에 대한 반가움도 크다. 가히 ‘걸작’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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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기울어진 세상을 헤엄쳐
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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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하우스 노하우 활용의 잘못된 예!
‘블룸하우스 = 호러 명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궁금증을 갖게 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더 퍼지> 시리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메간>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 최근에는 홀로된 아이들 곁을 지키는 친숙한 것(장난감, AI 로봇 등)의 이면을 통해 공포감을 전했고, 그 전략은 시쳇말로 1~20대 관객에게 먹혔다. 젊은 세대 관객의 소구 포인트를 안 이상 제작사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매지너리>도 곰 인형이라는 친숙한 장난감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기획은 좋다. 문제는 블룸하우스의 여러 작품에서 봐왔던 요소들이 이곳 저곳에 덧칠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시카(드완다 와이즈) 자주 거대 거미에 쫓기는 악몽을 꾼다. 그 거미를 소재 삼아 만든 그림책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그녀는 돌싱남이자 두 딸의 아빠인 맥스(톰 페인)와 결혼을 한다. 남편과 두 딸이 생긴 제시카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 집으로 이사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딸 앨리스(파이퍼 브라운)는 지하실에서 홀로 외롭게 앉아 있는 곰인형 ‘천시’를 발견한다. 이후, 앨리스의 상상 속 친구가 된 천시는 이 순수한 소녀와 재미있고도 무서운 놀이를 시작한다.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 공포감을 극대화하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공감을 뒤틀면 관객이 불편함을 갖는다. 관객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비틀고, 거기서 공포와 서스펜스를 전한다.
<이매지너리>는 블룸하우스 대표 제이슨 블룸이 말하는 이 방법을 오롯이 반영한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나 유년 시절 갖고 놀았던 인형, 또는 상상의 친구를 데려와 공감을 갖게 하고, 이를 뒤트는 방식을 취한다. 일명 '큐렌들리(Cute+Friendly) 호러'라 불리는 영화의 중심에는 곰 인형 ’천시’가 있는데, 초반에는 외관상 귀여운 존재로만 각인된다. 감독은 반전 트릭을 강조하기 위해 천시의 정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마치 관객에게 안전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상의 친구가 모두 ‘빙봉’은 아닐 터. 천시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작은 디테일에서 출발한다. 보통의 곰 인형처럼 보이는 천시는 감독의 말에 따라 5%가 부족해 보인다. 눈과 귀 크기가 다른 것은 물론, 점차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 특히 앨리스에게 현실보다 더 나은 환상의 나라에 데려가 주겠다는 달콤한 말을 하며 위험한 미션을 하게 만드는데, 이를 발견한 제시카가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천시의 위협이 더 거세지면서 잊었던 제시카의 진짜 유년 시절이 밝혀지고, 영화는 보다 호러 장르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익숙한 소재 활용법과 기시감 짙은 장면들의 나열이다. 지하실 공간, 벽에 남겨진 의문의 낙서, 수상한 이웃의 출현, 현실과 상상의 공간 등 기존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서 봐왔던 소재들이 즐비하다. 차별화 포인트 없이 각 장면의 호러 요소로만 이 소재들이 사용되다 보니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 이보다 더 아쉬운 건 블룸하우스의 성공한 영화의 장점들이 대거 활용되었는데,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고, 기시감만 든다. 천시의 활용은 <메간>, 지하실 파란 문과 그 안의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누군가를 구출해 오는 것은 <인시디어스> 시리즈, 잊고 지냈던 과거 속 공포의 근원을 찾는 과정은 <프레디의 피자가게>의 요소와 오버랩된다. 제작사의 노하우를 재활용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고민해서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든다.
표면적으로 이런 약점이 노출되다 보니 공포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하루아침에 두 아이를 키워야 하고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계모로서의 현실 공포,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며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의미 또한 잘 살지 못한다. 올해 여름 시즌을 마무리하는 호러 영화로서 장르 팬들은 기대보단 실망이 더 클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평점: 2.5 / 5.0
한줄평: 검증된 소재, 게으른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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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월드컵을 기념해서 축구 영화를
총 여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축구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소림축구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한때 황금의 오른발로 명성을 날렸던 축구선수 명봉. 그는 부정시합 제의를 거절한 후 폭행을
당해 오른발을 잃지만, 넝마주이 씽씽 그리고 소림사에서 무공을 익히던 친구들과 함께
축구팀을 꾸린다.
cine pick!
주성치의 첫 번째 단독 연출작이자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홍콩 영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N차 관람을 하는 영화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이다.
선데이리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인생의 가장 완벽한 한 ‘골’을 위해 왕년에 피땀눈물을 꽤 흘려도 봤지만 끝내 좌절하고, 지금은
더 이상 완벽해지려는 시도조차 멈춘 이와, 못내 이루지 못한 꿈줄을 붙잡고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축덕 어른이들의 눈물 핑, 콧물 찡 흐르는 풋풋살벌 코미디 영화
cine pick!
재기발랄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코미디이자 가슴 뭉클한 성장 드라마로 공감의 웃음과 감동을
안겨준다.
골!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산티아고 뮤네즈의 아버지는 빈곤한 그의 가족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왔다. 그런
산티아고의 유일한 관심은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지역 시합에서 축구를 하다가
스카우트 담당인 글렌 포이에 의해 발굴되어 영국 프리미어 클럽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을 앞둔 중요한 게임을 앞두게 되고,
화려한 세계 축구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끝없는 노력이 계속된다.
cine pick!
<골!>은 3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영화의 첫 번째 시리즈이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사람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는 영화이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으며, 축구를
좋아한다면 꼭 봐야하는 영화다.
맨발의 꿈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직 축구스타 원광은 동티모르에서 사기를 당하고, 맨발로 공을 차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팔기로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축구화가 비싸 사지 못하고, 원광은 다른 결심을 한다.
cine pick!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을 결성하여 히로시마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끈 한국인 감독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이다. 아이들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이 나오고,
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그들만의 월드컵
ⓒ 네이버 영화
synopsis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축구 스타 대니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명예가 실추되고 급기야
음주운전에 경관 구타로 감옥에 가게 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감옥에서 간수로부터
축구팀을 훈련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따돌림을 피할 수 있는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간수 대 죄수 축구 시합을 벌여 죄수들이 이기게 하려는 것이다.
cine pick!
1974년에 개봉한 <더 롱기스트 야드>를 각색한 <그들만의 월드컵>은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매력적인 영화이다.
베른의 기적
ⓒ 네이버 영화
synopsis
2차대전 후 독일의 어느 탄광촌, 마테스는 마을 출신 축구선수 '란'을 영웅 삼아 살아간다.
아버지가 수용소에서 풀려나고, 냉담하던 아버지는 그를 월드컵 결승에 데려간다.
cine pick!
축구를 좋아하는 사라마과 스위스 월드컵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본다면 재미와 감동이 배가 될
영화이다.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독일의 흥행작으로 꼽힌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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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차이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차이
: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
1. 들어가며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와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2017)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그려낸다. 약 40년 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나, 개봉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후속작에서 다루는 소재는 모두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논하기 전에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17-18세기의 근대 혁명은 근대적인 개인과 사회를 탄생시켰고, 이로 인해 개인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인 휴머니즘이 태동한다.[1] 포스트휴머니즘은 역사적으로 휴머니즘 이후에 등장한 사상적 조류이고 휴머니즘의 핵심 전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거나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2]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21세기도, 현재 인간이 몸담은 2020년에도 모두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을 무시해서는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탈경계화는 다방면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나 인간과 기계로 대표되는 인간-비인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대 사회는 포스트휴먼과 관련한 사안들이 대두되는 사상적 전환기이자 과도기에 직면해 있다. 포스트휴먼은 말 그대로 인간 이후 등장하게 된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 정립된 전통적 개념의 인간이 아닌, 기존 인간을 대체하게 될 존재이고 인공지능이나 유전적 변이를 통해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되는 미래적 인류인 셈이다.[3]
두 편의 영화에는 ‘레플리컨트(Replicant)’가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한 로봇이 아닌, 유전적 기반이 인간과 동일한 복제 인간이다. 이 글에서 다룰 두 영화는 이 레플리컨트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통해 드러나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데는 다른 접근 양상을 보인다. 두 영화의 서사적 설정은 모두 비인간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여 또 다른 인간적 면모를 생산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촉발된 근대적 인간 중심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이때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 중심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해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을 최우선으로 하여 휴머니즘을 재생산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결국, 이 글은 유사한 소재와 주제 의식을 공통적으로 내포한 두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풀어내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2.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2.1 <블레이드 러너>: 인간 중심 사고에서의 탈피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복제 인간 레플리컨트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1984), <엑스 마키나(Ex Machina)>(2014), <조(Zoe)>(2018) 등 많은 영화에서 다뤄왔던 인간형 로봇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외연은 인간과 같거나 비슷하지만 신체 내부를 기계로 채운 로봇들과 다르게,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컨트는 DNA 염기 서열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인간처럼 혈액과 근육 등을 지닌 유기체이다. 레플리컨트는 포스트휴먼으로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행위를 통해 관객은 ‘인간다움’에 관해 고찰할 수 있고, 인간이라는 관념을 재정립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제 <블레이드 러너>를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앞서 나는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 중심의 사고를 탈피하려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 주장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하여 극중 주요 인물인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통해 구체화된다. 우리는 <블레이드 러너>와 당대 유행하는 SF 영화들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F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기계 등의 미래 기술과의 대립을 주 소재로 삼는다. 이때 ‘비인간적 존재가 구현하는 인간다움의 궁극적 승리’라는 아이러니로 수렴시키는 전략[4]을 사용하여 인간 중심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이 선호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비인간의 갈등을 드러내지만, 두 세계를 동시에 점유하는 데커드가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다. 즉, 대립 구도의 강화보다는 그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데커드는 그 존재를 규정지을 수 없는 모호한 인물이다. 데커드는 불법으로 지구에 들어와 있는 레플리컨트를 처단하는 일종의 형사 같은 존재(블레이드 러너)다. 그가 만약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는 레플리컨트라면 동족을 살해하는 존재인 셈이고, 인간이라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데커드를 끊임없이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두 영역을 동시에 점유하도록 유도한다.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와 싸울 때 대등하게 겨루지 못하고 인간처럼 연약해 보일 때도 있지만, 화면 속 단서를 찾을 때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중적으로 표현되는 데커드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척도와 기준을 재검토하고 인간 중심적인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전통적인 인간-비인간의 관계를 해체하는 포스트휴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커드는 포스트휴머니즘 시각으로 볼 때 중요 임무를 맡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2.2. <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 중심 주의의 재생산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와는 다소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30년이 지난 세계에서는 인간과 레플리컨트가 표면적으로는 공존하고 있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이 세계의 블레이드 러너 레플리컨트 K(라이언 고슬링)는 각성을 통해 새롭게 자아를 확립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K는 전작의 데커드나 베티(룻거 하우어)와 다소 다른 속성을 내포한 존재이다.
전작의 베티는 수명이 다 되어 뒤틀리는 손에 주변에 있던 대못을 꽂아 발작을 진정시킨다. 이후 스스로의 죽음을 온전히 수용하는 그의 모습과 비둘기와 같은 상징적 요소들까지 종합하여 고려한다면 영화에서 그는 마치 예수처럼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 기존 담론에서 충분히 도출되어 온 텍스트이다. 비인간인 베티를 예수로 읽어낸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로 점철된 서구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도이다. 초월적 존재가 포스트휴먼 격인 베티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가. 데커드는 포스트휴먼으로서 인간의 존재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존재로 그려지고, 베티는 서구권의 인간 중심 사고와 그 근간을 파고드는 표상으로 자리매김한다.
K는 사실 지극히 평범한 신모델 레플리컨트였으나, 우연한 계기로 인간-비인간으로 이분화된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가 된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마치 베티와 같은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 데커드를 살리고 그의 딸을 지켜내는 K의 행동은 이분화된 세계의 논리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는 단지 본인이 생각했을 때 더 인간적인 방식이 적합할 것이라고 여겨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닌가. 오히려 K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가족성의 회복과 인간을 최상층의 존재로 전제하는 휴머니즘의 재생산이다. 데커드와 레이첼(숀 영)의 딸인 스텔린(카를라 유리)은 레플리컨트에게서 태어났다. 스텔린은 인간-비인간의 대립 상황에서 비인간의 지위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존재이다. 생식이 가능한 레플리컨트를 통해 생명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보유한 근본적인 시스템과 동일하다. 즉, 비인간이 인간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스트휴머니즘을 비인간이 인간화를 겪은 뒤 전개되는 새로운 인간 중심의 근간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기초하여 바라본다. 레플리컨트 K의 각성은 두 세계를 동시에 꿰뚫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기존의 논리 속에서 확장 및 변주를 통한 휴머니즘의 새로운 재생산을 유도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베티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스텔린
3. 나가며
이 글은 두 편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다루는 소재나 설정, 주제의식과 관련하여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두 영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두 영화는 동일한 세계관과 인물 설정에서 비롯된 공통적인 주제 의식을 담고 있지만 영화 속 텍스트를 포스트휴머니즘적 시선으로 파고들었을 때는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 명확하게 포착된다. 그 차이를 이 글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베티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 스텔린의 사례를 통해 구체화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나 베티는 포스트휴머니즘적으로 보면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배제하려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들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영화의 서사적 방향성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를 맞이한 현실 속 인류에게 일종의 판단적 준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처럼 문화적, 정치적, 윤리적 행위의 원동력을 비인간도 인간과 동일한 수태(受胎) 능력을 갖게 된다는 데서 찾는 서사적 가정은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자못 퇴행적으로 보인다.[5] 결국, 전작과 다르게 이 작품은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념 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보다는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를 유지한 채로, 여전히 인간의 지위를 우선하여 담론을 형성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 레플리컨트는 포스트휴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이들을 통해 인간은 휴머니즘의 구조화된 틀 속에 머물 것인지 벗어날 것인지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하여, 21세기에 들어서는 관련 논의들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는 이러한 변화의 동향과 더불어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는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참고문헌
[1] 강미정 외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머니즘』, 이중원 엮음, ㈜이학사, 2020, p.5.
[2] HORIZON, https://horizon.kias.re.kr/12989/ (검색일자: 2020년 12월 18일)
[3] 강미정 외, op. cit., p.133.
[4] 김소연, 「포스트휴머니즘 영화에서 (탈)육체성과 기술-환상의 문제설정: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제33호,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9, p.18.
[5] Ibid.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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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남긴 어떤 것
올해 봄에 팀 마샬의 <지리의 힘> (원제: Prisoners of Geography)을 읽었다. 책 내용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영어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리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동의하는 주장이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대해 다루는 부분에서는 특히 유럽인들이 억지로 그어버린 직선의 국경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프리카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이 통치 편리성만 중시하면서 멋대로 국가의 경계를 만들어버렸다. 둘 중에서도 아프리카는 더 심각한 편이라 아프리카 고유의 기후에 직선의 국경선에 의한 분쟁이 더해져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 중에 하나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언제쯤 개선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프리카 지도 출처: maps.com
이런 아프리카의 가나 아크라와 케냐의 나이로비가 내 첫 출장지였다.
(Borading Pass와 Kenya Airways)
친구들은 위험한 것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나는 철없이 가보지 못한 대륙,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에만 설레 들떠있었다. 입사 약 1년 만에 떠난 첫 출장, 그리고 안전을 고려해 묵게 될 비싼 5성급 호텔, 아프리카 내에서 이동할 때만 탈 수 있다는 비즈니스석. 철없는 신입 직원을 설레게 할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부끄럽지만 ‘일은 선배가 많이 하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과 함께. 그리고 중남미 배낭여행하면서 워낙 열악한 환경은 많이 접해봤으니 딱히 걱정이 되거나 두려울만한 것도 없었다.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대표 도시이다. 심지어 유엔본부가 있는 이 도시는 아프리카에 대해 가질만한 나의 선입견을 다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무소 소장님께서 좋은 식당, 비싼 카페에 데려가 주신 것을 안다.
(같은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는 상반된 풍경)
출장 마지막 날, 사무소 소장님께서는 출장 소감을 물으셨다.
“이주임, 아프리카 와보니까 어때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발전하기도 했고 훨씬 좋은데요?”
“사실 이주임이 호텔이랑 사무실만 왔다 갔다 했는데, 사무실이나 호텔이나 다 여기서 제일 동네에 있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뭐라 반박할 만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정말 일부분의 모습만 보고 좋다고 말해버렸다.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매우 낯 뜨거워지는 대답이다. 할리우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내게는 낯 뜨거워지는 대답이다. 영화는 커피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 덴마크에서 온 카렌과 그곳에서 만난 데니스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케냐에서 현지 촬영을 했다는 이 영화는 드넓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보여주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준다. 흥행에도 성공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의 상까지 탔다.
그런데 이게 이 영화의 전부일까? 커피 농장은 거기 원래 살던 사람들이 경영해야 맞을 텐데, 왜 덴마크인이 여기까지 와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커피 농장을 운영한 걸까? 러브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유럽인들의 제국주의, 케냐 침략을 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전역이 엄청 찌듯이 더울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나이로비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날씨가 한국보다도 훨씬 좋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중에서 특히 케냐에 많이 몰려왔던 데에는 이 기후도 한몫했을 듯하다. 영화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실제 주인공인 카렌의 농장이 위치했던 지역도 케냐에서 가장 서늘하고 커피 농사에 좋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 곳에서 살던 원주인들은 유럽인들에 쫓겨나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카렌이 케냐를 떠나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제목을 Out of Africa라고 지은 걸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제목처럼 유럽인들은 결국 아프리카에서 떠나야(Out)했다. 삶의 터전을 뺏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케냐와 아프리카에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서로 다른 부족을 인위적인 국경선으로 하나의 국가로 묶어놨기 때문인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 이런 상흔만을 남기고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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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홍수에 깃든 파괴적 창조의 에너지
워터|El Agua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Elena LÓPEZ RIERA
Spain|2022|105 min|DCP|Color|Fiction|15|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여름철의 스페인 남동부 작은 마을, 폭풍이 몰아치자 마을을 지나는 강이 또다시 범람하려 한다. 이번에도 해묵은 미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여자들은 물을 품고 태어나 홍수가 나면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녔다. 마을 십 대들은 여름의 따분함을 달래려 담배를 피우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폭풍 전의 흥분되는 분위기 속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나, 그리고 호세는 사랑에 빠진다.
프로그램 노트
일련의 유명한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 감독의 대망의 장편 데뷔작. 이 영화는 고대만큼이나 신화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한 마을의 여성 세계에 주목한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한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새로운 홍수가 발생하면 ‘몸속에 물을 지닌’ 선택받은 여자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다음 폭풍이 다가올 징조가 보이고 소문이 대물림되는 한 가족(할머니, 어머니, 딸)은 다시 한번 과거의 명령과 조상의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리얼리즘과 신비주의 중간쯤에 있는 <워터>는 여성, 연대와 저항, 사랑의 이야기와 성장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성경)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강가에 모인 아나와 친구들. 철없는 장난을 치다가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대화를 나눈다. 작은 소도시를 떠나 마드리드 야경을 즐기고, 공부도 하고, 꿈을 이루자고. 그러나 강물에 떠밀려 온 염소 시체가 나타나자 화기애애한 대화는 뚝 끊긴다. 대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스크린을 장악한다. 홍수와 강, 그리고 몸에 물이 깃든 여자에 대한 불길한 전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워터>의 오프닝은 일견 아무 맥락이 없다. 일상적인 수다와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전설을 억지로 붙인 듯 보인다. 전설 때문에 불안해하던 아나와 호세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랑에 빠지고 키스하고 있으니 더 당황스럽다. 대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오프닝은 달리 보인다. 오히려 본본에 충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색하다고 생각한 오프닝 안에는 영화가 보여주려 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나 일행의 대화와 마을의 오래된 신화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을 억압하는 힘의 정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망갈 곳은 없다
아나와 친구들의 대화를 되짚어 보면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갈망. 그런데 이는 역으로 현재 상황에 종속되어 있는 그들의 현실을 강조한다. 아나의 남자친구, 호세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과수원집 아들인 그는 자기가 런던에서 유학하다가 돌아왔다고 떠들고 다닌다. 아나에게도 템즈 강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의 말은 현실과 다르다. 아버지의 강한 권유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가업을 배운다. 나무에게 물 주고 열매를 수확하는 법, 호우에 대비하는 법을 충실히 익힐수록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 그의 일상과 현실은 다양한 잠재력과 젊은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설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신화는 젊은 여성을 억누르는 힘이다. 홍수와 강에 대해 듣고 자란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 운명과 죽음이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면 내 딸이 강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니까. 물론 전설 따위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설이 마을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나의 할머니가 샤먼 마냥 주술로 갓난아이를 치료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워터>의 도입부는 젊은이들을 억누르는 현실적인 이유와 비현실적인 이유를 한 번에 암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물어 탈출구를 뚫다
이때 로페스 리에라 감독은 아나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탈출구 하나를 열어준다. 현실과 신화, 현재와 과거라는 경계 사이에서 좁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방법은 간단하다. 통상 엄격하게 구분되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 된다.
실제로 영화는 현실적인 기법을 활용하되, 신화적인 내용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달리 말해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다. 영화는 아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마을 여성들의 인터뷰를 삽입한다. 강과 홍수, 여성에 대해 묻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결과 신화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현실감이 더해진다. 한 명의 입이 아닌 여러 입을 거치다 보니 사실을 증언한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우와 홍수도 생동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목격자들이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제보 영상을 통해 불어난 강과 마을을 점령한 물을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역사적인 맥락을 더하기도 한다. 17세기 이후로 기록에 남을 만큼 컸던 홍수의 이름을 연이어 호명한다. 그렇게 하여 터무니없는 것과 이성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근거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현실도 아니고 신화의 세계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홍수의 파괴적 창조
그저 공간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그 공간을 도전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춘이다. 정해진 길을 따르라는 현실적인 압력과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활력을 보여준다. 아나와 호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순간. 둘이 함께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장면. 홍수를 알리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스크린을 가득 매운 클럼의 젊은이들. 그 순간 <워터>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오프닝에 등장한 아나와 호세의 키스는 단순한 키스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정해져 버린 삶의 방향을 바꿔보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힘은 여성들의 연대다. 홍수가 임박하자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는 여인들. 아나가 무슨 선택을 해도 막지 않고 기다려주는 엄마와 할머니. 홍수가 나면 강에 몸을 던졌던 여인들. 그들은 아나가 암울한 죽음을 걱정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강에 몸을 던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의 힘을 빌려 그녀를 괴롭힌 현실과 신화의 억압과 압력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노아도, 데우칼리온도, 우트나피쉬팀도 홍수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한 것처럼. 그래서 <워터>는 염소 시체를 비춘 도입부와는 달리 밝은 햇빛을 받으며 강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나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영화 <워터>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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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센티네오 출연의 넷플릭스 공개 예정 시리즈 《더 리크루트》의 공식 예고편을 시청하세요. CIA의 신출내기 변호사가 위험천만한 국제적 파워 게임에 휘말린다. 한때 CIA에 협력했던 여자가 중대 범죄 혐의를 벗겨주지 않으면 오랫동안 CIA와 어떤 관계였는지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인데. 모든 에피소드,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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