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31 14:31:54
운동 결심하게 해주는 스포츠 영화 7선
올해는 기필코 운동하리라!

"진정한 새해는 2월부터다!"를 외치는 건 에디터뿐이 아니겠죠...?
어김없이 올해도 신년 목표로 '운동'을 넣어두었지만, 에디터처럼 나약한 의지를 가진 동지들을 위해
단숨에 운동 결심하게 만들어주는 스포츠 영화 7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딱 1편만 더 보고 운동하러 가보자고요!









Relative contents
-
-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들
- 붕괴되는 부모
- 사건의 피해자들이 의미하는 것
- 거울 같은 연출
보통의 가족 (A Normal Family, 2024)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개봉일 : 2024.10.16.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허진호
출연 :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엔딩크레딧 시작 전에 하나
나는 보통 아주 재밌거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만나면 미쳤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미쳤다는 뭔가 한순간 강하게 후려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보통의 가족>은 미쳤다기보단 시종일관 우아하게 돌고 있는, 돌아있는 영화라고 표현하려 한다.
<보통의 가족>은 왈츠를 추듯 우아하게 합을 맞추는 배우들과 함께 부드럽게 턴을 돌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의 흐름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서서히 상승하는 대비감과 극 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우아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다.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보통의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의 이면을 거침없이 털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다른 성격의 두 형제,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내부인과 외부인 같은 두 여자,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사이에 얼룩진 거울 한 장을 대놓고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자, 이런 문제가 생겼어. 너는 어떻게 할래?”
동시에 튀어나온 각자의 응답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새로운 쟁점을 만들고 거울 앞에 앉은 인물들은 시시각각 태도를 바꾸며 식은땀을 흘린다. 땀이 지나간 자리엔 서늘함과 축축한 불쾌감만이 남는다.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자극적인 음식을 반복해 대접하며 그들이 언제까지 태평한 척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한다. 이들은 애써 꼿꼿한 자세와 평온한 호흡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결국엔 폭발하여 테이블을 뒤엎는다. 이제 이 가족의 테이블 위에 오가는 건 이기적인 합리화와 책임 전가, 추한 본성뿐이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어른 재완, 재규, 연경, 지수 역을 맡은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배우는 예리하게 갈아낸 각자의 캐릭터를 손에 쥐고 쉴 틈 없는 칼싸움을 펼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대립구도는 극의 텐션과 몰입력을 한도 없이 끌어올린다.
개인적으로 설경구, 장동건 배우의 경우 최근 필모그래피의 방향이 조금 아쉽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아직은 이 배우들을 더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른 신념을 가진 재완과 재규. 연경과 지수재완은 살아있는 멧돼지를 사냥하고 재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재완은 악질 가해자에게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냐’고 묻고 재규는 피해자가 병원 수납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그의 생명을 위해 우선 다음 수술 날짜를 잡는다. 돈을 좇는 재완과 돈보다 올바름이 중요한 재규. 재완과 재규는 형제지만 다른 신념을 갖고 있다.
재규의 아내인 연경은 재규와 비슷하게 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아동 복지에 힘을 보태는 어른이며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돌보는 착한 며느리다. 최근 가족이 된 재완의 아내 지수는 재완의 재력 덕분에 생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수는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는 연경과 약한 대립각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 가족과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붕괴되는 부모들
아이들 사건의 피해자, 노숙자가 의미하는 것재완은 나래 사건의 합의를 위해 가해자와 대화를 나눌 때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식 앞에선 약해지기 마련이죠.”
이 말은 혜윤의 부모인 재완, 시호의 부모인 재규, 연경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완, 재규, 연경은 자신의 삶에 있어선 각자 다른 신념을 가진다. 하지만 ‘내 아이가 죄를 저질렀다’는 문제에 있어선 각자의 신념을 무너트린 채 비슷하게 행동하고 결국 같은 결론을 낸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눈물 흘리고 싸운다. 그리고 붕괴된다.
억울한 피해자인 노숙자와 나래는 재완, 재규 형제의 신념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다. 노숙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폭행이라는 큰 신체적 충격을 받고, 나래는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재완, 재규는 아이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폭행 사건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노숙자는 혼수상태가 되고 나래는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삶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재완, 재규는 충격을 받은 후에도 아직 남아있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대로 숨길 수 있다’, ‘시호를 자수 시켜야 한다.’ 주장하며 옥신각신 싸움을 한다. 그러다 노숙자는 사망, 나래는 상태가 다시 나빠지게 되고 그 시점에 시호와의 진솔한 대화, CCTV 영상의 발견이라는 상황을 뒤집을 사건이 터진다. 이때 형제의 굳건했던 신념은 붕괴되고 뒤바뀌게 된다.
처음엔 피해자의 눈물에 공감하며 나래 엄마에게 예배당을 알려주던 재규는 그곳에 앉아 가해자인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피해자인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입맛이 돌기라도 하는지 식판을 싹싹 비워낸다. 아내인 연경은 시어머니의 냄새 나는 옷을 갈아입히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모로 깨끗하게 해결된 상황에 만족하며 웃음 짓는다. 반대로 돈을 위해 가해자를 옹호하던 재완은 복잡한 얼굴로 노숙자의 집에 찾아가 돈 봉투를 밀어 넣는다. 이후 세 사람은 바뀐 신념을 주장하며 더 강하게 충돌한다.
지수는 이 ‘신념의 붕괴’라는 사건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어른이다. 연경은 지수를 혜윤의 엄마가 아닌 사람, 외부인으로 반복해 칭하는데 지수는 여기에 열을 내기보단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수는 혜윤과 큰 친밀감이 없고 부모라기엔 조금 먼 느낌이 있다. 그래서 지수는 재완, 재규, 연경과는 다르게 객관적인 외부인의 시선으로 혜윤, 기호의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마지막엔 CCTV 영상을 공유하며 엇나간 재완의 신념을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숨겨둔 양면성을 꺼내놓다
인물들의 심경 변화, 거울 같은 연출사람에겐 한 가지 면만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추하고 부끄러운 면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를 뿐이다. 영화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실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론 턱에 초고추장을 묻히고 와인을 소주처럼 들이키는 지수,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고 꼿꼿하게 앉아있지만 사실은 꽉 끼는 옷에 숨도 못 쉬어 화장실에서 몰래 지퍼를 푸는 연경, 정정당당함을 이야기했으면서 시호를 위해 극단적인 사고를 치는 재규를 보여주며 완벽함 뒤에 숨겨진 부끄러운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완은 이들과 다르게 부끄러운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후반부에 들어 그 뒤에 있는 보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중에서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재규다. 그는 가족들 앞에서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뒤에선 아이들과 똑같은 일들을 저지른다. 그는 술을 먹고 노숙자를 폭행, 유기한 아이들처럼 술을 먹고 고라니를 친 후 사체를 유기한다. 두 사고 장면은 비슷한 연출 요소들로 채워진다. (피해자를 질질 끌고 가는 가해자와 바닥에 그려지는 피, 비슷한 카메라 구도)
노숙자의 소식을 듣고 시호와 대화를 나누며 포장을 걷어낸 재규는 CCTV 속 아이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결의 발언들을 내뱉고, 재완이 가해자를 옹호하며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그를 차로 쳐버린다. 이제 재규에게 남은 건 뻔뻔한 본성뿐이다. 흘러가듯 들렸던 ‘재규가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말, ‘너랑 나랑 진짜 나쁜 형제 새끼’라는 재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도 이래저래 떠들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통의 가족>이 딱 그렇다. 영화가 끝나면서 테이블 위 조명도 모두 꺼졌지만 극 중 인물들이 남긴 첫맛과 끝 맛은 여전히 입안을 맴돌며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아직 이 화려한 갈등의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인물들을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
-
- 우주가 내가 되고, 내가 우주가 되는
보름달이 뜨면, 사건이 벌어진다. 악마의 능력이 어떤 사람에게로 옮겨가기도 하고, 사람이 늑대가 되기도 하고, 외계인이 하늘로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밤, 어김 없이 달이 어둠을 환히 밝히고 있다. 달은 그냥 저렇게 가만히 있을 뿐인데, 우리는 다정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까운 우주의 이웃에게 온갖 서사를 부여하고 오명과 왕관을 씌우기도 한다. 눈에 담을 수 없는 태양과 달리, 가만히 청연하게 빛나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달과 마주 할 수 있기 때문일까?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두려움의 존재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는, 정형이지만 비정형인 것. 결국엔 나 자신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이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신비로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문샷>의 배경은 2049년 가까운 미래, 기술은 발달하고, 기계와 공존하는 사회다. 더불어 화성에도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화성에 거주하고 있는 세상이다. 남자 주인공 월트는 늘 화성에 가고 싶은 꿈이 있지만, 화성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쿨 하게 결제하기에는 우주선 티켓은 터무니 없이 비싸기 때문에, 대학생 선발단을 뽑는 심사에 지원하지만 번번히 탈락하게 된다. 여자주인공 소피는 자신의 가족과도 다름없는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화성에 가 살고 있다. 소피는 화성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되지만, 비행공포증으로 인해 지구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소피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화성에 있고,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낀 소피는 큰 용기를 내어 화성으로 향하게 되고, 월트는 불법으로 화성을 가려고 소피에게 접근해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몰래 숨어든다. 우주선이 이륙한 뒤, 소피에게 사실이 발각되지만, 자신도 공범이 될까봐 월트를 숨겨준 소피는 화성에 가는 36일간 월트와 가까이 붙어 다니게 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꿈에 그리던 화성에 도착했지만 월트는 곧 붙잡힌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화성이주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CEO 리언코비는 월터를 내 쫓는 대신 오히려 화성에 머물게 하고, 한편 소피는 남자친구와 다정한 그의 가족들과 재회 하고 행복함을 느낄줄 알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생활과 꿈에 여전히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다른 SF물 보다 웅장하지도 않고, 엄청난 서사가 펼쳐지지도 않는다. 가벼운 하이틴 로맨스인데 배경이 화성과 우주선일뿐. 대단한 철학적인 멋진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 뻔하다. 게다가 …화성으로 가는데 moonshot이란 말인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의 대사가 자주 생각났다.
화성에서 지내는 동안 우주선 캡틴이 월트에게 묻는다.
“화성은 지낼 만해?”
원대한 꿈을 가지고 우주선에 몰래타고 화성까지 온 월트가 대답한다.
“솔직히 다를 줄 알았어요 여기 오면 내가 바뀌거나 그럴 줄 알았죠. 하지만 여기 왔는데도 여전히 똑같아요.”
캡틴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월트 아무리 멀리 여행해도 너 자신에게선 절대 못 도망쳐.”
이 장면 하나로, 나는 우주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나인 것이 삶이라는 것을
오늘은 일년 중 가장 큰 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우리가 우주의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를 둘러싼 걱정 따위가 쓸모 없고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밤. 달이 뜬 밤의 고요는 그렇게 이번 보름에도 나를 토닥여 줄 것만 같다.
내가 좋으면 다 좋은거야. 라고
-
- 1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난 12월 25일 4K 리마스터링과 새로운 장면을 추가해 재개봉했던 <더 폴: 디렉터스 컷>이 누적 관객 수 7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이 내한 일정을 알려 영화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국내 관객, 언론과의 만남을 가질 타셈 감독은 “한국 관객의 사랑과 응원에 큰 감동을 받았고 바쁜 일정을 조정해 방한을 결심했다.규모보다 작품성을 지지하는 문화 대국의 국민성에 반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첫 공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최근 모든 촬영을 마치고 첫 스틸컷을 공개하였습니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긴 시간 가장 만들고 싶어 한 작품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이 원작으로,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회사원 '유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되자, 가족과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고자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차기작 <Traveler> 확정
<미나리>, <트위스터스>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이 SF영화로 돌아옵니다. ‘Deadline’에 의하면, 스카이댄스와 계약을 체결해 조셉 에커트의 SF소설 ‘Traveler’을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47세의 생물학 기술자인 스콧 트레더가 자신도 모르게 시간 여행을 겪게 되며 변화하게 되는 삶을 다루고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저스틴 로즈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배우 손석구, 최희서 미국 독립영화 동반 출연
배우 손석구, 최희서가 나란히 미국 독립 영화 <베드포드 파크 Bedford Park> 출연 소식을 알렸습니다.
<베드포드 파크>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는 전직 레슬링 선수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개인적인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를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편집자인 스테파니 안의 연출 데뷔작으로, 내년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올해 봄에 촬영 예정이며, 제작에는 배우 마동석과 함께 여러 편의 영화를 개발 중인 매니지먼트사 겸 제작사 B&C 콘텐츠가 참여합니다.
-
- 자고 일어났는데 코 끝이 시큰하다. (안녕, 나의 조제)
자고 일어났는데 코 끝이 시큰하다.
안녕, 나의 조제
울고 싶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혹은 알고 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혹은 보고 싶지 않아하는) 사회의 이면들을 비추며 시작된다. 걸을 수 없는 빈민층의 조제가 추운 날 자신의 다리나 다름 없는 휠체어에서 넘어졌을 때, 주위에 아무도 도움 줄 사람이 없었을 때, 얼마나 세상은 그녀에게 차가웠을까. 아니 어쩌면, 차가울 거라고 느끼는 건 관객인 나의 몫일지도. 내가 겪어 본 적 없는 불행 아니던가. 그녀의 마음은 이미 혼자인 세상 속을 유영하고 책들에게서 나온 상상의 나래 속에서 충분히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 견고한 유리 구슬 속 세상을 깬 것은 대학생 영석이다.
조제는 말한다. 누가 뒤에서 덥석 가슴을 만지려고 해서 피하다가 넘어졌다고. 장애인 여성을 범하려는 사람들은 추잡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건드리는 악인들은 어느 사회 뒷골목에나 존재할 터. 원작인 일본판에서의 조제는 영석 역의 츠네오를 연모하던 여대생에게 외친다. '이게 그 사람을 잡는 무기 같다면 너도 차라리 다리를 분질러 버려!' 라고. 한국의 조제는 조금 다르게 자신을 지킨다. 조금 더 삐뚤어진 듯한, 조금 더 어두컴컴한 세상 속에 갇힌 듯한, 조금 더 많이 현실 보다는 허구의 세상 속에 있는 그녀다. 신체가 자유롭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시선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조차 '정신과 다녀'라는 손가락질로 대하는 사람들인데, 원치 않았던 이유로 걷지 못하는 정신이 말짱하고 건강한 사람은. 어느 쪽도 불행하겠지.
(우에노 주리가 연기한 카나에가, 수경을 연기한 배우보다 좋았던 건 순전히, 그 전 부터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하고 잔망미 넘치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던 그녀의 모습이, 꼭 나의 20대 모습 같아서 좋았다. 곧 죽어도 직진하던 나는 어디에 있나)
이제와 생각해 보건데 내가 조제라는 영화를 참 좋아했던 이유는 지난 찬란한 사랑의 추억 속에서,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었던 순간들을 남기고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고요히 살아갈 '바다'를 발견한 조제의 마지막 미소 때문이었다. 영석 역의 츠네오는 다시 만나지 못하고 안지 못할 조제를 떠올리며 울음짓지만,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현실로 도피했다. 조제의 세상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그의 사랑은 그러나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츠네오가 조금 더 명민한 사람이었다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조제에의 호기심어린 마음에 취해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보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이, 사랑에 어떻게 금을 그어버리는지, 서서히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는지 잔잔하게, 위트있게,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여서, 참 좋았다.
나는 그래서 한국판 '조제'에서도 그런 미소와 상큼한 이별을 기대했다. 러시아산 권총보다 글렌리벳 위스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조제는, 좀 더 천천히 말하고, 좀 더 저온으로 사랑하는 듯한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의 전반에 걸쳐 호랑이와 물고기를 만나는 과정들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간다. 밤 늦은 시간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유원지에서, 관람차에 처음 올라타는 조제는 방금 전까지 남아프리카에서 열기구를 탔다는 허영은 온데간데없고, 난생 처음 올라와 보는 상공에서 미세하게 떨며 영석에게 의지한다. 그런 그녀를 업고 관람차에서 내리려는 찰나, 직원의 실수로 문은 열리지 않고 다시 관람차는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조제를 업어올린 영석을 바라보는 직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가 멀어져간다. 관객들은 영석과 조제를 바라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직원처럼, 그랬을까. 아렸을까, 아니면 아련했을까.
(관람차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시선은 시작점 부터 좀 다르다. 출처 포토뉴스. 관람차 안에서 조제를 업은 영석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물고기 대신 커다란 돌고래를 만나러 간 수족관에서 조제는 이별을 직관한듯 영석의 손을 잡고 '나는 괜찮아' 라는 말을 조용히 읊조린다. 둘의 대화는 많지 않다. 많을 필요가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영석이 말하는 '어떻게 그래...'의 눈물은, 큰 울음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한국 정서에서 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 한국 사회에 이렇게 냉소적이 되었을까? 나부터도 신체 부자유한 사람들에게 관심 조차 없지 않았나? 당연히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불친절한 내가 아니었나 싶다. 일본의 조제는 좀 더 생기발랄했다. 한국의 조제도 선방했다. 배우 한지민이 영석에게 말하는 대사 '독이라도 탔을까봐' 라는 말을 듣자니, 그녀가 영화를 위해 쌓아올린 그녀의 세상이 조금은 느껴졌다.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한 듯한 상상씬은 진짜 그랬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국판 조제의 당찬 마지막 모습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만의 방식대로 세상과 맞닥뜨리며, 영석을 만나기 전과 전혀 다른 조제의 마음으로 살아갈테니. 사랑과 성취의 경험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많이 사랑했고 또 이해받고 행복했던 기억은, 내 마음 속에 고요히 작고 예쁜 성을 만들어 준다. 가끔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외로울 때, 슬며시 들여다 보고 추억할 수 있도록, 그렇게 힘을 주는 것 같다.
(한지민 인스타그램에서 나온 비하인드 컷이라고 한다. '때로는 너와 함께 아주 먼 곳까지 가고 싶었어'라던 조제의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건 거의 한 달 만인 것 같다. 그 한 달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내 마음을 자꾸 두드리는 사람이 있고, 나는 아직 지난 사랑과 이별이 만들어놓은 우울의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만 같고. 오늘 두 시간 정도 요가를 하면서 여전히 가슴을 펴는 동작에서는 잔기침이 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욱하는 것들이 올라왔다. 비로소 내 안의 우울감 속에 편하게 오랫동안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의 견고한 세계를 부수고 다시 사랑하고 싶다. 눈이 부시도록. 마음이 터지도록. 끝을 예상하며 도망치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싶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아일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우주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우주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하류층 반영웅
참 이상한 결말이다. 외계인의 습격을 받은 듯 잔해와 낙엽만이 가득한 보스턴 거리에 레이가 딸을 안은 채 쓸쓸히 걷고 있다. 그런데 그의 처량한 모습과는 달리 그가 그토록 찾았던 전처는 집에서 평안히 걸어 나온다. 외계인과 싸우겠다며 달려나가 화염 속에 자취를 감춘 아들 로비도 그곳에서 별안간 튀어나온다. 외계인과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레이의 처절한 생존기는 그들의 알 수 없는 평안 앞에서 참으로 허망하고 우스운 일이 돼버린다. 말하자면 스필버그는 이 대목에서 영화의 근간을 형성하던 사실성을 느닷없이 전복시킨다. 여기엔 어떠한 현실적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이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조도다. 스필버그는 사물의 하이라이트가 하얗게 떠서 없어질 정도로 과다한 광량을 사용함으로써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면 이 비현실적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장면의 주인공이며 영화 전체의 주인공인 레이의 비극적 상상 혹은 악몽을 의미하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비극적 상상과 악몽을 떠올리게 한 걸까.
<우주 전쟁>에는 보통의 재난영화와 달리 영웅이 없다. 서사를 견인하는 주체인 레이는 스필버그 영화의 모든 주인공을 통틀어서 가장 마음을 주기 어려운 비호감 캐릭터다. 어린 소년처럼 자식을 이겨 먹으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에게 지나치게 무심하다. 그렇다고 천재 과학자라거나 고위 관직에 있는 상류층 인물도 아니라서 관객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이러한 반영웅적 면모와 하층민이라는 초라한 지위는 그가 외계인의 위협을 뚫고서라도 기필코 가닿고자 하는 전처의 세계, 즉 상류층의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화에서 레이와 전처가 같은 장면에 등장하는 대목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그녀가 레이의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장면뿐이다. 말하자면 상류층은 쉽게 하류층의 세계에 닿을 수 있지만, 하류층은 결코 상류층의 세계에 닿을 수 없다. 그 사이는 끔찍한 외계인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살상 기계, 그리고 정신 나간 사람들로 가득하다. 요컨대 <우주 전쟁>이 자아내는 실질적 위협은 외계인의 습격이 아니라 두 계층 사이의 끔찍한 불화다. 우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비호감 캐릭터 레이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건 그의 계층적 무력감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계층적 무력감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절망감이 표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로비의 귀환을 통해 은밀히 암시된다. 그는 분명 외계인과 싸우겠다며 언덕을 뛰어가다 화염 속에 사라졌었다. 그런 그가 주검으로 발견되기는커녕 머나먼 보스턴 집에서 평온한 얼굴로 나타난다. 돌이켜보면 로비는 누구보다 레이를 혐오하여 줄곧 어머니와 살고 싶어 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느닷없는 로비의 귀환은 레이가 자기 대신 전처와 살려고 했던 로비의 바람을 끔찍한 상상을 통해 대리적으로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조금 모자라긴 해도 레이는 작중 대사에서 언급되었듯 로비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스펙타클의 윤리
레이는 하늘에 소용돌이가 생기고 같은 곳에 벼락이 계속 내려치는 광경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아이처럼 해맑게 즐긴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건 그 위력이 점차 강화되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러한 구도는 교회 앞에서 트라이포드가 지반을 뚫고 올라올 때 다시 반복된다. 사람들은 생경한 미지의 기계가 산출하는 매혹 앞에서 넋을 잃는다. 그들은 일종의 황홀경을 경험하는 듯 무척 신이 나 있다. 그러다 잠시 후, 외계인이 조작하는 이 살상 기계가 그곳에 몰린 구경꾼들을 잔혹하게 죽이기 시작하면서 재난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공식이 성립된다. 스펙타클은 매혹적이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높은 확률로 죽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보는 행위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숨어서 보거나, 눈을 가려야만 한다.
외계인이 타고 다니는 살상 기계 ‘트라이포드’는 그 명칭과 기능, 그리고 형태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삼각대와 카메라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구분하자면 세 개짜리 다리는 삼각대를, 본체는 카메라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트라이포드는 압도적인 매혹을 뽐내는 스펙타클 자체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끔찍한 기계는 영화라는 매체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스펙타클로 구동되는 복합 기계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둘러싼 군중, 달리 말하면 관객이 트라이포드를 보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 보는 자는 권력을 쥔 자이고, 보이는 자는 그에 지배를 당하지만, <우주 전쟁>에서 이 시선의 권력 관계는 완전히 전복된다. 보는 자는 죽고, 보이는 자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파괴하며 시선의 독점권을 확보한다. 한마디로 스펙타클로서의 영화는 관객의 시선을 빼앗고 역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폭력의 주체가 된다.
스펙타클에 대한 위와 같은 경고는 조던 필이 <놉>에서 스펙타클을 다루는 방식과 같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된 시기를 고려하면 <우주 전쟁>을 단순히 영화와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스펙타클의 함정을 꼬집는 것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9‧11 테러 이후, 이 끔찍한 스펙타클을 보도하는 영상 매체에 대한 스필버그의 통렬한 성찰을 반영하는 것이다. 테러의 장면은 필연적으로 스펙타클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의 매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심어 놓는다. 때문에 스필버그는 이 죽음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전시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의 나머지 분량을 채운다. 그리고 그것을 볼 수 없도록 인물이 눈을 가리는 행위를 특정 대목마다 새겨넣는다. 딸이 강에 떠다니는 시체들을 보지 못하도록 레이가 그녀의 눈을 가리는 장면과 지하실에 은둔 중인 호전광을 살해하는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헝겊으로 딸의 눈을 가리는 장면이 그렇다. 이 논쟁에 관한 한 스필버그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테러라는 끔찍한 스펙타클을 보지 않는 것. 그것의 매혹을 참고 견디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그리고 최선의 윤리적 행동이라는 것을 스필버그는 타협 없이 끝까지 관철시킨다. <우주 전쟁>은 스펙타클의 윤리학을 말할 때 끊임없이 소환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
- 유년시절 꿈꿨던 환상 속 이야기 영화 《이웃집 토토로》
엄청나게 폭신폭신할 것 같은 영화 《이웃집 토토로》. 어렸을 적 토토로 같은 거대하고 폭식한 생명체 배 위에서 굴러다녀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던지라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언제나 나에게 유년시절을 기억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 시놉시스
숲속에 살고 있는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는 우연히 숲속에 살고 있는 신비로운 생명체 ‘토토로’를 만나 신비한 모험을 함께 한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병원에서 위태로운 소식이 도착하고 언니 ‘사츠키’가 정신없이 아빠에게 연락을 취하는 와중에 ‘메이’가 행방불명 된다.
유년시절의 환상을 표현하다
누구나 유년시절 숲속에서 놀아보진 않았더라도 학교 앞 운동장이나 공원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보물게임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놀다보면 무엇인가 만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같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겠지만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그 유년시절의 환상을 채워주고 있었다. 이웃집 토토로가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렸을 적 자신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작품이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는 정원에서 놀다가 귀여운 작은 토토로들을 만나 쫓아가면서 나무 동굴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 장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습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평소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좋아했다는 것을 보면 아마 이 장면을 통해 오마주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들의 불안을 다루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일상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영화 후반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불안감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긍정적일 것만 같았던 사츠키와 메이의 모습에서 엄마의 퇴원이 늦어지고 병원에서 엄마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전보를 듣자 ‘싫어!’, ‘안돼’, ‘무서워’ 등 부정적인 단어를 내뱉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는 듯 직접 찾으러 나가는 무모함까지 보인다. 부모의 존재가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것인지 부모의 부재가 아이들에게 분리 불안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언젠가는 부모와 분리될 아이들
메이의 불안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를 끝을 맺지 않는다. 메이를 찾은 사츠키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어마의 병원으로 향한다. 엄마의 부재로 불안감을 느끼던 자매는 엄마를 보러 바로 달려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토토로와 함께 나무 위에서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꽃을 창가에 선물로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의 부재로 분리불안을 느끼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한 자매들이 언젠가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렸을 적 봤던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그저 귀여운 토토로를 보면서 어쩜 이렇게도 귀여운 생명체가 있을까 했었는데 다시 보니 어린아이들의 감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
- 이터널스가 풀어줄 숙제들
#이터널스 #이터널스예고편 #마동석
2021. 05.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이터널스 궁금하지?
00:45 어벤져스와의 관계
02:42 아이언맨 in 인도
03:32 타노스급 뉴 빌런
04:47 타노스와의 관계
05:16 왕좌의 게임 삼각관계
06:14 이터널스가 가장 기대되는 이유
-
- [Movielog #8] 살인자와 몸이 바뀌었다구? 내 몸으로 살인을 하고 있어!
해피데스데이 1편과 2편의 감독이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프리키 데스데이라는 영화로 지난 영화들과 비슷하게 코믹호러에 드라마적인 요소도 가미가 되어 있는 영화에요. 전작들과 코드가 맞았던 분들은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잔인하고, 적당히 웃겨서 너무 타협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어요.
여주인공 릴리 역을 맡은 캐서린 뉴튼이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_^
-
-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티저 예고편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 12월 20일 큰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라! 올겨울 최후의 승리를 함께하라! ?개봉일 확정 기념? #노량죽음의바다 티저 예고편 공개!
-
- 영화 <청춘적니> 메인 예고편
17살, 빈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링이야오'에게 첫눈에 반한 '뤼친양' 그의 순수한 고백에 '링이야오' 역시 호감을 느끼며 두 사람은 사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던 10대와 달리 20대에 들어선 두 사람은 점차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가고, 마침내 두 사람이 사랑한 지 10년이 되는 날, '뤼찬양'은 '링이야오'를 위해 운명적인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되는데.. "내 청춘 속 누구보다 빛났던 너, 세상 끝에서 다시 함께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