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27 15:02:10
미래가 될 수 없는 어떤 과거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리뷰
SYNOPSIS.
천재 피아니스트,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책으로 담으려던 기자 ‘제프 해리스’.
우연히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매료된다.
하지만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제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음악가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데...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되었다는 것!
POINT.
✔ <치코와 리타>에서 쿠바를 배경으로 재즈와 사랑을 얽어 보여주었던 바로 그 감독이,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피아노 연주자의 실화를 담아 왔습니다
✔ 보사노바 재즈 아티스트를 좋아한다면 놓치기 아쉬운 이름들이 숱하게 지나가는 작품
✔ 화려한 색감과 보사노바 재즈 음악으로 우리의 감각을 두드리는 작품
✔ 동시에, 한 시대의 어둑한 이야기를 조망하는 작품
✔ (요즘 왜 자꾸 이런지 모르겠지만~ 알겠기도 하고~) 지금 이 시국에 보면 섬뜩해지면서 더 의미를 품고 다가오는 작품
✔ 1월 29일 개봉

한 장르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준다. 모든 부와 시선이 집중되어 미친 듯이 빛나는 시기를 보는 일은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지만, 그 결말 혹은 명암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의 입장에서 소위 황금기 혹은 전성기였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 노스탤지어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빌론>, <맹크>, <헤일, 시저>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

보사노바의 물결을 타고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제프 해리스라는 작가가 재즈 관련 칼럼으로 유명세를 얻고 새 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들었던 앨범 속 피아노 연주자 테노리우 주니오르(Tenorio Junior)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패럴림픽 마스코트 이름에까지 쓰였던 조빔이나 비니시우스의 명성에 비해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브라질에서 태동한 보사노바 재즈의 물결, 그 원류를 마주하게 된다.
보사노바의 창시자처럼 여겨지는 작곡가 조빔과, <이파네마의 소녀> 작사가이기도 한 시인 비니시우스의 만남. <슬픔이여 안녕(Chega de Saudade)>라는 전설적인 곡의 탄생, 엘라 피츠제럴드가 자기 공연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가던 클럽의 존재까지... 브라질이 세계 음악의 중심지처럼 여겨졌던 그 시절.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단어 뜻 자체도 뉴웨이브, 누벨바그와 똑같다는 지점에서 더더욱) 영화로 치면 누벨바그 같은 시절이었다. (그 과정에서 엘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 기쁨과 위대함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보사노바가 널리널리 알려지던 그 전성기는 상처와 함께 이어진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년 간 이어진 브라질의 군부 독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살해와 실종으로 이어졌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독재 세력은 사람들이 함께 음악을 듣는 행위를 싫어한다. 예술가들도 탄압을 받았고, 많은 브라질 뮤지션들은 때마침 무르익은 보사노바 음악과 함께 북미권에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살해당하고 실종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예술가가 있었다.

영화는 재즈 애니메이션에 담근 다큐멘터리로, 애니메이션 작화 이전에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했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그들의 말은 다소 반복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부분이 내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무수한 피해 증언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거대한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테노리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여전히 괴로워했고,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의 면면은 조금도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고, (거의 불교도 같았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는 달리) 곧 태어날 아이까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애인을 동행해 투어를 떠날 만큼 그다지 도덕적인 현자도 아니었으며, 다만 그가 남긴 악보만으로도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을 남긴 훌륭한 음악가였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정치적'이 되었다.

미래가 될 뻔한 과거를 타고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스친, 오래도록 좋은 기억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살해되었다는 소식... 그것도 마땅히 국민을 지키고 삶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가가 주도하여 살해했다는 소식은 언제나 끔찍하다. 내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딘가에서 학살 당하는 세상이라니. 독재 정권이란 뭘까. 왜 음악가와 학생과 시인과 주부와 어린아이를 죽일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기관총과 군인, 검열이 거리 곳곳에 깔려 있는 당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비니시우스와 피아졸라도 있었던 도시는 그들로 인해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영영 안 돌아"오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풍경. 그건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되었을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비록 국회와 시민들에 의해 막히기는 했으나, 우리도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으며, 누군가를 "계엄법에 의해 처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문건이 발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것이다.

"(...) 선량한 일반 시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하겠다지만, 그런 도시에서 과연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나. 음악도, 북적이는 사람들도, 예술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화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을 "브라질 음악의 죽음의 메타포"라고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으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사회에서 예술은 온전히 피어오를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예술'적인 이 영화의 화려한 색감과 리드미컬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거기 실려 전해진 지구 반대편 나라의 근대사가 단순한 과거로만 느껴지지 않아 극장에서 섬뜩함을 몇 번이나 느껴야 했다.

테노리우가 2024년 12월 3일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알 수 없다.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서술되듯, 그는 자신이 두고 간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비롯해 그 어떤 미래도 보지 못했으므로. 죽은 자를 떠올릴 때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이유다. 내 기억 속 그들은 너무 생생한데, 그는 모른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로 지하철을 타는 세상도, 한국에서 칸영화제와 오스카영화제를 석권한 영화가 나오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나의 모습도.
테노리우의 음악은 좋은 음악이 줄줄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도 손 꼽히게 아름다워 전곡을 따로 듣고 싶어질 정도였으나,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테노리우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죽음 혹은 한 장르의 죽음에 대한 메타포 이전에, 국가폭력의 희생자는 사실 "아직 우리 곁에 있었어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수많은 상상을 발휘하게 한다. 어쩌면 윤동주가 전태일에 대한 시를 썼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군부 독재에 희생된 젊은이들 중 누군가가 세월호를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우리가 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너진 자리에 우뚝 설 기록을 타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짧게는 국가가 행한 폭력의 기록을 보관하는 이들에서부터, (이와 비슷한 이들의 존재감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두드러진다) 좀더 확장하자면 제프가 글을 쓰게 하는 뉴욕의 편집자 제시카와 브라질 현지 친구 주앙도 그렇다. 이들은 계속해서 제프에게서 글을 끌어내고 그를 조력하여, 제프가 글을 완성하게 한다.
독재 정권들이 마치 짠 것처럼 싫어하는 대상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뿐만이 아니다. 폭력에 물들고 깨진 이들의 사고는 온건한 언어를 견디지 못하여, 언어를 무너뜨린다. 고문을 기다리는 통로는 "행복의 길"로 불리고, 영원한 실종은 "수송 작전"으로 불린다. 아이히만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래가 되어서는 안될, 결코 미래가 될 수 없을 어떤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 방법은 기록과 기억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일에 많은 부분을 기댄다. 영화 속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은, 죽음 이후 테노리우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배턴을 이어받듯 여기까지 기록되어 왔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를 보는 당신을 통해, 또 한 번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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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인간의 온기
푸른 장벽 Green Border
Director
아그네츠카 홀란드 Agnieszka HOLLAND
Cast
Jalal ALTAWIL, Maja OSTASZEWSKA, Behi Djanati ATAI, Mohamad Al RASHI, Dalia NAOUS, Tomasz WŁOSOK
Program Note
2021년 하반기 벨라루스가 중동에서 흘러 들어온 난민들을 인접한 폴란드로 보내면서, 푸른 숲으로 우거진 국경 지대에서 양국의 군인들과 중간에 낀 난민들이 충돌하게 된다.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최신작 <푸른 장벽> 은 철저한 조사에 기초해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때로는 현실이 픽션보다 참혹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지만 우리 세상 모든 면이 정치적”이라 했던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새우등 터지는 난민, 그들을 도우려는 인권 단체,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주민,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국경 수비대의 다양한 시점을 통해 우리가 선택을 내리는 순간, 그 희미한 선악의 경계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짧은 에필로그에 이르러, 불과 일 년 후 폴란드의 또 다른 국경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박가언)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리뷰를 쓸 수 없어, 며칠 동안 새문서를 열어 놓고 커서가 깜박거리는 빈 종이를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씨네랩 크리에이터 중 한 분이 하셨던 말처럼 언제쯤 글이 애정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게 될까.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써야지 누가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난민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재정착이 필요한 난민은 140만 명 이상에 달하며, 특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등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난민에 대한 영화도 다수 제작되고 있어, 난민이라는 소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과정에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황을,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밀도 있게 만든 영화가 있었던가? 떠올려 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았던 <하얀 천국> 역시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탈출기를 다루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뒤, 일곱 살 난 딸을 홀로 키우는 사무엘이 이탈리아의 오두막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온 체흐레의 여정을 돕게 된다. 영화에서는 선과 악이 분명했다. 난민을 잡으려는 자와 돕는 자. 악인은 광기 어릴 만큼 인간성이 없는 모습이었고, 추격전은 너무도 가슴 떨리는 스릴러에 가까웠다. 영화는 누군가를 도우며, 스스로 구원받는 사무엘과 스스로의 삶으로 굳건히 나가는 체흐레. 관객은 마침내 각자의 해피엔딩을 맞은 두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었었다.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온 난민들이 유럽을 가기 위해 벨라루스 국경으로 향하고, 유럽의 첫 관문은 벨라루스에서 철조망 하나를 넘으면 되는 폴란드가 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 다른 유럽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폴란드 정부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수비대를 배치하여 보수적인 정책을 멸치다. 폴란드로 넘어왔다. 드디어 유럽이다.라는 기쁨은 잠시 국경수비대에 의해 다시 벨라루스로 보내지고 그곳에선 폭력이 난무한다.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고, 때때로 사망자도 나온다. 영화는 벨라루스와 폴란드 사이의 국경, Green Border에서 일어 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흑백영화지만, 그래서 참혹한 실상에 몰입이 되었다. 영상미가 아닌 상황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누리의 가족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들의 안녕을 바라며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때로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괴로웠던 것은 영화 <하얀 천국>에서는 이탈리아에서 눈 덮인 산을 넘어가면 된다는 어떤 목표 지점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이 국경에서는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폴란드에서 벨라루스로 공깃돌을 던지듯 난민을 주고받는 것이 무한 반복으로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지, 방법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에 난민과 관객을 함께 던져 버린다. 영화가 한 시간쯤 진행되었을 때, 나는 이 참담한 현실을 한 시간 반이나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워서 눈물이 났다. 고작 한 시간으로 이렇게 참담한 마음인데, 벨라루스 국경의 난민은 ,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저 가족은 어떨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탈출하던 난민의 말처럼 그저 자신의 죄는 ‘최악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인데.
영화는 절대적인 악인을 찾기 힘들다. 수비대도, 활동가도 모두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모두의 상황이 안타까운 지점을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이를 잃어 천 번 죽는 기분이어도, 결국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을 향한 애정임을 말하고 있다. 주어진 일과 해야 하는 일과 마음이 시키는 일 그 지점 사이에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작은 온기가 모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푸른 장벽의 깊은 숲의 냉혹한 현실에서 나아가도록 실낱 같은 희망이 되어준다. 오늘 국경에서 난민을 추방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수비대도 곧 아버지가 되고, 자신이 눈 한번 감으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검은 마스크와 군복을 천천히 옷을 벗고, 맨 몸으로 거울 앞에 선 자기의 얼굴을 마주하고 임신한 아내 옆에 웅크려 눕던 장면을 통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벗으면 우리는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권이나, 옷으로 규정 되는게 아닌 온기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 다는 것을.
Schedule
10월 7일 09: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10월 9일 12:30 CGV 센텀시티 6관
10월 12일 15:30 영화의 전당 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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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땅에서 서로의 온기로 살아남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
ⓒ넷플릭스 <로기완>
좋아하진 않아도 그 배우의 연기력이나 안목이 좋아 출연작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겐 그런 배우 중 하나가 ‘송중기’다. 달달하고 로맨틱한 이야기의 주인공보단 매번 척박하고 험난한 장르물의 주인공이기를 자처하는 배우.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도 그런 마음에서 보게 되었다.
로기완 줄거리 #1
탈북 청년의 냉혹한 벨기에 생존기
ⓒ넷플릭스 <로기완>
<로기완>은 탈북한 청년이 벨기에라는 낯선 땅에서 견디고, 버티고, 살아남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기완(송중기)은 탈북 후 중국 연길에서 숨어 지내던 중 공안에게 발각이 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언제든 자살할 수 있도록 옷소매에 면도날을 감추고 다니던 그 삶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쓰레기통을 뒤져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고, 엄동설한에 화장실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삶.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를 떠나 긴 방랑을 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먹먹함을 넘어 보기가 고통스러운 수준이었다.
로기완 줄거리 #2
난민정착지원금과 조선족
ⓒ넷플릭스 <로기완>
벨기에에서는 탈북민을 위한 난민 정착 지원금이 나온다. 기완은 그 정착지원금을 받기 위해 스스로 탈북민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참 녹록지가 않다. 탈북인의 신분으로는 취업도 힘들어 조선족이라고 속여 취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또 기완의 발목을 붙잡는다. 탈북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조선족의 신분으로 취업한 사실이 탄로 나기 때문이다. 탈북인인 동시에 탈북인이면 안 되는 기완을 보며 느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은 무게의 삶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냉혹한 사실을.
로기완 줄거리 #3
마리와의 로맨스, 그리고 선주
ⓒ넷플릭스 <로기완>
ⓒ넷플릭스 <로기완>
그래도 죽으리란 법은 없다고, 기완의 삶에도 온기는 찾아온다. 기완의 돈을 훔치려고 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인이 되는 ‘마리’, 그리고 기완에게 동족으로서의 곁을 따뜻하게 내어주는 ‘선주’다. 나는 그들의 존재가 너무 기쁘고 애틋했다. 엄마를 여의고 삶의 의미를 잃은 ‘마리’가 연인이 되어주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팍팍한 처지에 기완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던 ‘선주’가 없었더라면 기완은 과연 그 차가운 세상을 버틸 수 있었을까.
《로기완을 만났다》
원작 소설과의 차이, 뭐가 다를까?
ⓒ넷플릭스 <로기완>
원작소설로 알려진 <로기완을 만났다>와는 줄거리에 큰 차이가 있었다. 소설이 오롯이 기완의 생존과 성장을 담았다면, 영화에서는 마리와의 러브라인과 선주라는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두 캐릭터 다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원작과는 너무 다르게 각색이 이루어져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첨예하게 갈리는 그 호불호 의견 속에서 나는 ‘호’였노라고 조심스레 피력해 본다. 맘 붙일 곳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기완이 그래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기완의 곁에 드리운 ‘사람의 온기’ 덕분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로기완 결말,
호불호 갈리는 이유
ⓒ넷플릭스 <로기완>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역시도 뻔하고 재미없다는 의견이 왕왕 있지만 나는 그 뻔한 결말 역시도 좋았다. 기완도 행복해지고, 마리도 행복해지는 이야기. 힘들고 고통받던 사람이 구원받는 이야기라서. 비록 원작이 추구했던 ‘기완’의 처절하고 비참한 생존기는 비중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기완이 불행한 채로 이야기가 끝날까 조마조마했던 한 관객으로서는 행복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노력한 누군가에게 봄이 왔음은 얼마나 따뜻한 결말인가.
로기완의 두 배우, 최성은 송중기.
그리고 넷플릭스 순위
ⓒ넷플릭스 <로기완>
배우 송중기 역시 호불호 의견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 영화를 7년 전 처음 제안받았을 때, 기완이 사랑을 하는 게 사치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했을 땐, 남녀와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사람이니까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마리’ 역의 최성은 배우 역시 같은 입장이다. 두 배우와 같은 시선이라면, 관객 역시 비견 이 영화가 와닿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 톱10에 따르면, ‘로기완’은 지난 1일 공개 후 넷플릭스 영화 비영어권 5위에 올랐다.
로기완 관람평,
제 솔직후기는요ⓒ넷플릭스 <로기완>
영화가 끝나면 괜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낯선 땅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내 안온한 삶이 참 감사하구나. 더불어 사람은 아무리 혹독한 환경이라도 그저 어깨를 맞댈 수 있는 관계만 있다면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새삼 깨닫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에 의해 강한 자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출시일 : 2024. 03. 01
장르 :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31분, 원작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채널 : NETFLIX
감독 : 김희진, 출연 : 송중기, 최성은, 와엘 세르숩,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이상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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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만 같았던 9월의 아름다운 추억
*스포주의*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로봇 드림>은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그와 로봇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굳이 '개'가 아니라 '도그'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실 도그가 사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들은 사람을 동물로 표현한 것뿐이다. 거대한 도시, 뉴욕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물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TV를 보며 맥 앤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도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생기 없는 눈동자와 축 처진 입꼬리. 얼마나 돌려먹었을지 모르는 냉동 맥 앤치즈와 혼자서 하는 2인용 게임. 풍요 속의 빈곤이랬던가.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도 도그는 혼자다.
도그의 일상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외로움에 익숙해진, 현대인들.
그런 도그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단짝이 바로 로봇이다. 감상 포인트에서 언급한 'september'라는 노래는 둘이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가서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 처음으로 흘러나온다. 둘은 흥겹게 춤을 추며 주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노래 가사처럼 즐겁고 행복한 9월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수욕장에 갔다가 일어난다. 로봇의 배터리가 다 되어버린 것. 사람이 텅 빌 때까지 잠들었던 둘은, 도움을 청할 길이 없다. 도그 혼자 끌어보려고 해도 로봇이 너무 무거워 데려갈 수 없는 상황. 하는 수없이 홀로 집에 갔다가 다음 날 찾아가 보지만, 해수욕장은 문을 닫는다. 다음 시즌에나 열린다는 말에도 도그는 포기하지 않고 로봇을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경찰서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집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제목인 <로봇 드림>의 의미를 알게 된다. 로봇은 혼자 해수욕장에 누워 있으면서 끊임없이 도그에게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도와준다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도그에게 걸어가는 꿈을 꾸는 로봇의 표정은 늘 밝다.
로봇은 도그가 알려준 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현실에는 도그가 보여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누워있는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물상에 팔아넘기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집어던진다.
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던 로봇의 꿈은 점차 도그에게 버려지는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편, 도그는 로봇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컸는지 실감한다. 노래처럼 '구름 한 점 없던' 9월의 추억만으로 도그는 겨울을 난다. 마치 자신이 모았던 햇빛을 쥐에게 나눠주는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로봇은 도그에게 외로운 겨울을 보내게 해줄 추억의 힘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 친구의 온기를 느꼈던 도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고물상에 버려져 산산조각 났던 로봇은 너구리 아저씨로 인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미 망가져버린 부품 대신 너구리는 거대한 붐박스(카세트 플레이어)를 몸으로 개조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사람과 만난 로봇. 이 생활에 적응하면서 점차 너구리와 친근해지며, 여름이 찾아온다.
해수욕장이 문을 열자마자 입장한 도그. 땅을 아무리 파헤쳐 봐도 나오는 건 로봇이 잃어버린 다리 한 쪽뿐이다. 로봇을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도그가 찾은 곳은 로봇 가게다. 다리로 하소연해 보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결국 방법은 새로운 로봇을 사는 것뿐이다.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던 너구리와 로봇. 로봇은 냉장고에 케첩을 가지러 갔다가 창밖으로 도그와 새로운 친구, 로봇을 보게 된다. 충격에 빠진 로봇은 그대로 길가에 뛰쳐나가 도그를 붙잡는다. 도그와 로봇의 뜨거운 포옹. 하지만 그건 로봇의 또 다른 상상이었을 뿐이다. 로봇은 이대로 자신이 도그를 만난다 하더라도 너무나 바뀌어버린 몸과 이제는 자신의 친구가 된 너구리, 도그의 새 친구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망설인다.
결국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붐박스의 볼륨을 올려 도그와 자주 듣던 'september'를 트는 것뿐.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에 도그는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탄다. 로봇과 도그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을 때의 춤을 추며 하나가 되고. 둘이 함께 쌓았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둘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한때의 추억, 지금의 나를 만든 상대방. 지난 9월이 눈부시게 찬란했음을 기억하며 지금 옆에 있는 새로운 친구의 손을 잡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앞으로는 또 다른, 새로운 9월이 펼쳐질 것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 한 번 더 붙잡지 않았을까, 로봇과 도그가 다시 만날 순 없었을까? 하지만 곱씹다 보면 이해가 된다. 지나가버린 상대와 다시 시작하기엔, 지금 내 곁에 너무 많은 것이 있기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기에.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어른의 씁쓸함이 먼저 찾아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옛 친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찾아가는 로봇의 상상을 말한다. 그러면 제목이 내포하는 것이 '로봇 드림 어 도그'로도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로봇은 도그를 찾아가는 꿈을 꾼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그러니까,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일어날 리 없는 꿈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르게 보자면 '한때의 행복한 꿈'이라고도 보인다. 이건 도그와 로봇 모두에게 해당된다.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9월의 하늘 아래에서 흥겹게 추던 춤처럼, 함께한 시간들이 꿈처럼 아름다웠다는 의미인 것이다. 첫 번째 의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라, 나는 이쪽의 의미가 더 좋다.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꿈이라는 건 너무 슬프니까. 우리 모두 꿈처럼 아름다웠던 추억이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
인간은, 그 아름다웠던 한때의 조각으로 살아가니까.
*이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은 시사회를 보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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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인트빈센트’를 보고] 그럴 수 있지, 모든 행동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영화 초반 ‘세인트(Saint)란 호칭과 어울리지 않는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빈센트(Vincent)’를 마냥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빈털터리면서 도박과 유흥을 즐기고 상대방 기분을 생각하지 않으며 말하는 빈센트였기에 그를 싫어하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를 고약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인 초등학생 ‘올리버(Oliver)’와 엄마 ‘메기(Megi)가 그의 옆집에 이사오기 시작하면서 빈센트의 진짜 내면과 사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메기 대신 올리버를 돌봐주기 빈센트는 왕따를 당한 올리버에게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은 물론 ‘미움은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며 누구보다 온전한 인생의 가치를 알려줬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곁에서 지켜내고 자신은 정어리를 먹더라도 반려묘에겐 고급 사료를 먹이는 그의 행동에서 그는 그저 표현이 딱딱할 뿐 따뜻한 내면으로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밝게 채워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인생 좌우명이며 동시에 남을 이해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마법의 말이 있다. 바로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이다. 무심한 듯 다정하고 가벼운 듯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말은 상대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게 만들고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나 또한 그저 나와 성격이 다른 빈센트가 올리버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내 오해였음을 금방 알게 됐다. 나는 그저 빈센트의 성격 일부분만 보고 그의 모든 것을 본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게 아니다. 하나를 보면 단지 하나를 안 것 뿐이다. 어쩌면 타인의 인생에 대한 섣부른 편견이 우리가 더이상 인간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모든 이들에겐 무엇이든 배울 점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그만한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을 ‘세인트’로 바라보며 한 걸음 뒤에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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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DIRECTOR. 촹칭션(CHUANG Ching-Shen)
CAST. 천옌페이(Yan-fei CHEN), 항첩여(Chloe XIANG), 치우이타이(Yitai CHIU) 외
PROGRAM NOTE.
1997년. 제1여고 입학시험에 실패한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제1여고의 야간 학생이 된다. 같은 교복을 입지만 명찰의 색이 다른 주야간의 학생들은 교실을 공유하는데, 아이는 주간 학생 민과 책상을 나눠쓰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민과 함께 민의 교복을 입고 주간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던 아이는 어느 날, 루커를 만나 미묘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따른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 좌절과 성장의 스토리를 담백하고 솜씨 좋게 풀어 간다.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천앤페이)를 비롯한 대만의 연기파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선영)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교과서 속 혹은 박물관의 유리벽 속에나 존재하던 시절.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제일여고 학생이라면서 주간반과 야간반 학생들의 명찰 색깔을 다르게 하고, 거기에 굳이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 달이 발광체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똑같은" 것일 리 없다. 역시나 주간반과 야간반에게는 입학 첫 날부터 사뭇 다른 공지사항이 주어진다.
입시를 대하는 1997년 대만 풍경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구체적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큼직한 정서만큼은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 "여자는 사범대가 제일이야" 같은 말, 당시 훨씬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른이 되고, 그 시절 그 분들이 진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임을 이따금 실감할 때조차, 내가 아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이어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꾸 사춘기의 아이들을 채근한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당시 입시의 중요성이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로 보였을 테니까. 인생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그 계단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추후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요즘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90년대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학벌은 그런 의미로 많이 받아들여졌으니까.
대입도 아니고 고입 시험에서부터 그런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쌓는다. 그런 아이를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친구 민, 자꾸 설레는 대상 루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발돋움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거짓은 거짓이라, 결국 거짓들은 핑퐁핑퐁 튀어오르고, 누구도 못되게 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친한 두 (여성) 친구가 동일한 한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게 싫고, 그 과정에서 더 소중한 감정들이 배척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과하게 중심에 두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대신, 불평등한 현실의 감각과 퉁 부딪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고 탁구를 치며 90년대 청춘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보다 평등하지 못하다는 감각이 앞서는 슬픔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청춘이 드러난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청춘이 어디 있나.
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정서들을 충분히 가진 영화다. 동시에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산뜻하게만 그리며 얄팍해지는 대신,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난 경보가 울리는 시기라는 점도 명확히 짚는다.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긍정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그런 시기 아닌가.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할 일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은 따분함, 마음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의 껍질은 참 단단해 보이기만 해서 계속 느끼는 초라함과 질투,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어리고 서툴러 가끔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게 벅차서 폭발할 것 같은 마음들까지.
이 영화는 그 나이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듯이. 재난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아련함만 있는 시절도 아닌 그 시절에게. 때로는 거짓으로 위로 받은 마음조차 거짓은 아니었다고 끌어안으며, 영화에 나온 대사를 축복처럼 건넨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10/0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02)
10/06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64)
10/08 17:0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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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한 듯 새롭게
진부한 듯 새롭게
디즈니가 서사를 변형시켜 가는 방식에 대하여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남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디즈니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 탓에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된 픽사의 <소울>과도 비교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서사가 어떤 식으로 영화 안에서 작동하는지도 볼 수 있다. 서사는 비록 전형적이지만 서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의의는 조금 뻔하지만 짚고 넘어갈 만하다.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라는 점 이외에도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조력자가 전부 여성 캐릭터라는 점은 시사점이 있다. 서사 속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초반에 돌로 변해버린다. 그러면서도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전형적인 감정적인 모습도 크게 드러나지 않아, 라야(켈리 마리 트란 분)와 나마리(젬마 챈 분)의 멋진 격투신을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디즈니의 전작에서는 서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모두 여성인 적은 없었다(
인어공주 얘기하지 말구요..). 다만 동남아를 배경으로 한다면서도 메인 성우 대부분이 한국계 혹은 중국계라는 점은 여전히 헐리웃이 아시아를 세밀하게 구분해서 보지 않고(전문 용어로 '퉁쳐서')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도 한다. 참고로 주연인 켈리 마리 트란은 베트남계지만 시수 역의 아콰피나는 한국과 중국 혼혈계이며 벤자 역의 대니얼 대 킴, 비라나 역의 산드라 오는 한국계이고 젬마 챈은 중국계다.전형적인 디즈니 공주님 서사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디즈니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신뢰에 관한 이야기다. 말 그대로 속고만 살아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나로서는 으이그 저런 쯧쯧.. 싶은 장면이 많기는 했지만 기본 관객층이 어린 연령대를 향하는 만큼 세상을 향한 따스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디즈니의 진심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조력자로 나선 마지막 드래곤 시수는 속고 속아도 사람들의 진심을 믿는다. 디즈니 서사에서 순수한 캐릭터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에 학습 효과라고는 전무해 보이는 시수가 필요했겠지만 그 캐릭터 대부분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알라딘>의 지니, <인어공주>의 세바스찬, <겨울왕국>의 올라프 등 타인을 속일 줄 모르고 순수 그 자체에 가까워 보이는 캐릭터들은 디즈니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아니었다. 언젠가 동물 영혼은 너무 순수해서 인간으로 잘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다음 생에서는 다시 동물로 태어나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도 이렇게 생각하는걸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인간을 깨우치는 건 언제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노답(..)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는 시수도 올라프도 세바스찬도 없으니 디즈니랜드를 벗어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시수의 인간을 향한 믿음은 절대적으로 강력해서 자신의 남매들이 희생해서 만든 드래곤젬이 부숴지고 다섯 조각으로 나눠져 드룬을 도로 불러왔다는 말에도 굴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시수를 포함한 모든 드래곤들이 돌로 남아서 인간이 파멸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시수는 자신을 찾아낸 라야와 라야를 쫓는 나마리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다. 어쩌면 시수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 데는 신뢰란 결국 불신을 타파하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데 있을지 모른다. 분을 믿지 못하던 라야는 아기 사기단에게 속고 분과 사기단이 배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보고서야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라야가 태어난 시대는 드룬이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시대였으며 모든 드래곤이 돌로 변하거나 잠든 시대였다. 드래곤젬이 있었는데도 돌로 변한 드래곤이 돌아오지 못한 데는 인간들의 불신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젬이 작동되는 방식은 영화의 시작과 후반부가 동일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작동시키는 주체다. 서사적으로 라야에게 모험을 제공하기 위해 제작진은 라야가 어느 정도 평화로운 과거를 기억하되 죄책감에 기반한 동기를 제공해야 했고, 이를 위해 '드래곤은 없지만 드룬도 없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드래곤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같은 드래곤젬을 작동시키는 주체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서사구조가 완성된다.
때문에 서사는 진부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경과 주요 캐릭터들의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신선함을 더한다. 그럼에도 디즈니가 골라잡은 주제가 '신뢰'라는 데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지금껏 디즈니가 다뤄온 주된 주제는 <겨울왕국> 정도를 제외하면 모험과 (주로 이성간의)사랑이었다. 픽사와 결합한 초기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는 모녀지간의 사랑으로 살짝 변형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디즈니는 모험과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디즈니의 주인공이 대부분 공주(로 대변되는 여성)이기에 모험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 나름의 의의는 있지만 성인 관객에게 소구하기에는 진부한 주제다. <겨울왕국>에서는 자매애로 살짝 변형시켰지만 안나의 연애 서사가 빠지지 않았기에 엘사로 대변되는 능력녀는 그에 걸맞는 상대를 부여받을 수 없는지, 아니면 여성에게 연애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했다. 이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모든 메인 캐릭터에서 연애 서사를 제거하고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모두 왕국의 후계자이자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선으로 설정한다. 라야와 나마리는 왕국의 후계자이지만 후사를 걱정할 나이도 아니며 무너진 쿠만드라의 현실에 연애따위 걱정할 겨를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냥 라야랑 나마리가 사겨도 될듯하다..). 이렇게 연애 서사를 제거한 디즈니는 그 자리에 신뢰라는 새로운 주제를 위치시킬 수 있었다.라야의 출신지가 심장의 땅으로 설정된 데는 아마도 주제의식 강화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기관이자 감정을 느끼는 기관(실제로는 뇌지만)으로 상징되는 심장부는 쿠만드라의 재건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벤자에게 어울리는 출신지다. 그런 벤자를 닮은 라야는 처음 보는 나마리를 믿고 드래곤젬을 보여주지만 공격을 상징하는 송곳니의 땅 출신인 나마리는 보자마자 라야를 배신한다. 이 배신은 후에 시수를 통해 신뢰로 거듭나게 되는데 거시적으로 라야와 나마리의 불신과 신뢰 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래곤젬이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마리가 라야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시수는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라야가 죽을 때까지 쿠만드라는 분열된 채로 남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쿠만드라의 재건은 나마리의 배신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나이부터 배신이나 배운(..) 나마리에게 라야가 시수를 믿고 신뢰를 보여준다는 점은 드래곤이 실존한다는 것보다 더한 판타지에 가깝지만 디즈니 계열의 서사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시수가 나마리를 믿었다 한들 라야는 나마리에게 결코 신뢰를 보내지 않았을 테지만 드룬이 쿠만드라를 잠식해 라야에게(나마리에게도) 선택지가 남지 않은 상황으로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라야는 나마리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나마리만이 남은 상황에서 나마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만 이를 신뢰로 포장하는 것 또한 디즈니의 능력이리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디즈니가 아닌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인 마틴옹의 손에서 탄생했다면 쿠만드라는 결코 재건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장르가 판타지임에도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과 정치 풍자로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야와 나마리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었기에 서로에 대한 신뢰라는 순수한 믿음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대너리스는 설정상 소설 초반부 10대 초반의 소녀다. 디즈니의 순수한 서사는 현실에서 도피하기에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과의 괴리까지도 감싸안아야 한다. 디즈니의 서사는 현실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진부하지만 그만큼 서사의 기본 구조에 충실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금씩 다양성을 시도하는 디즈니가 언젠가 주어진 틀 안에서나마 새로움을 제시하길 기다려본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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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1-3 시리즈 초간단 요약 / 사진만 봐도 기억나는 듯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범죄도시 시리즈 요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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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래비티에 담긴 주제와 흥미로운 이야기들 #8
환몽(幻夢) CINE 리뷰 8화_ 영화 그래비티 해석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이번엔 왓챠 회원님들의 멋진 한줄평과 함께 했습니다!
이전까지 이런 우주영화가 없었기에, 개봉했을 당시 평단의 극찬이 엄청났었는데요.
있는 그대로 느끼고 체험해도 엄청나면서, 숨겨진 비유와 상징, 알고 보면 재미난 이야기까지 모두 준비해봤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래비티'
- 압도적인 오프닝
- 영화의 주제 : 중력과 삶의 의지에 관하여
- 영화 속 비유와 상징
- 알쓸신잡 : 과학적 고증 오류와 아닌강(?)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래비티 #그래비티해석 #알폰소쿠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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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티저 예고편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캠핑 여행을 떠난 ‘베가’와 ‘빌리’.
5살 나이에 딱 걸맞게 모든 게 신나기만 한 ‘빌리’와 달리,
9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베가’는
병원에 있는 엄마의 특명을 받아 아빠와 동생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가 강가 바위 틈으로 추락했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거슬러 가보지만,
곧 드넓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떠오른 엄마의 한마디.
“포기할 거야? 아니면 슈퍼히어로가 될 거야?”
내 안의 슈퍼파워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
다 함께 외쳐봐! 토~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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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메인 예고편
2025년을 열 최고의 판타지 로맨스 [말할 수 없는 비밀]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