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27 15:02:10
미래가 될 수 없는 어떤 과거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리뷰
SYNOPSIS.
천재 피아니스트,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책으로 담으려던 기자 ‘제프 해리스’.
우연히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매료된다.
하지만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제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음악가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데...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되었다는 것!
POINT.
✔ <치코와 리타>에서 쿠바를 배경으로 재즈와 사랑을 얽어 보여주었던 바로 그 감독이,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피아노 연주자의 실화를 담아 왔습니다
✔ 보사노바 재즈 아티스트를 좋아한다면 놓치기 아쉬운 이름들이 숱하게 지나가는 작품
✔ 화려한 색감과 보사노바 재즈 음악으로 우리의 감각을 두드리는 작품
✔ 동시에, 한 시대의 어둑한 이야기를 조망하는 작품
✔ (요즘 왜 자꾸 이런지 모르겠지만~ 알겠기도 하고~) 지금 이 시국에 보면 섬뜩해지면서 더 의미를 품고 다가오는 작품
✔ 1월 29일 개봉

한 장르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준다. 모든 부와 시선이 집중되어 미친 듯이 빛나는 시기를 보는 일은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지만, 그 결말 혹은 명암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의 입장에서 소위 황금기 혹은 전성기였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 노스탤지어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빌론>, <맹크>, <헤일, 시저>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

보사노바의 물결을 타고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제프 해리스라는 작가가 재즈 관련 칼럼으로 유명세를 얻고 새 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들었던 앨범 속 피아노 연주자 테노리우 주니오르(Tenorio Junior)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패럴림픽 마스코트 이름에까지 쓰였던 조빔이나 비니시우스의 명성에 비해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브라질에서 태동한 보사노바 재즈의 물결, 그 원류를 마주하게 된다.
보사노바의 창시자처럼 여겨지는 작곡가 조빔과, <이파네마의 소녀> 작사가이기도 한 시인 비니시우스의 만남. <슬픔이여 안녕(Chega de Saudade)>라는 전설적인 곡의 탄생, 엘라 피츠제럴드가 자기 공연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가던 클럽의 존재까지... 브라질이 세계 음악의 중심지처럼 여겨졌던 그 시절.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단어 뜻 자체도 뉴웨이브, 누벨바그와 똑같다는 지점에서 더더욱) 영화로 치면 누벨바그 같은 시절이었다. (그 과정에서 엘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 기쁨과 위대함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보사노바가 널리널리 알려지던 그 전성기는 상처와 함께 이어진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년 간 이어진 브라질의 군부 독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살해와 실종으로 이어졌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독재 세력은 사람들이 함께 음악을 듣는 행위를 싫어한다. 예술가들도 탄압을 받았고, 많은 브라질 뮤지션들은 때마침 무르익은 보사노바 음악과 함께 북미권에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살해당하고 실종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예술가가 있었다.

영화는 재즈 애니메이션에 담근 다큐멘터리로, 애니메이션 작화 이전에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했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그들의 말은 다소 반복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부분이 내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무수한 피해 증언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거대한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테노리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여전히 괴로워했고,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의 면면은 조금도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고, (거의 불교도 같았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는 달리) 곧 태어날 아이까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애인을 동행해 투어를 떠날 만큼 그다지 도덕적인 현자도 아니었으며, 다만 그가 남긴 악보만으로도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을 남긴 훌륭한 음악가였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정치적'이 되었다.

미래가 될 뻔한 과거를 타고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스친, 오래도록 좋은 기억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살해되었다는 소식... 그것도 마땅히 국민을 지키고 삶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가가 주도하여 살해했다는 소식은 언제나 끔찍하다. 내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딘가에서 학살 당하는 세상이라니. 독재 정권이란 뭘까. 왜 음악가와 학생과 시인과 주부와 어린아이를 죽일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기관총과 군인, 검열이 거리 곳곳에 깔려 있는 당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비니시우스와 피아졸라도 있었던 도시는 그들로 인해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영영 안 돌아"오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풍경. 그건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되었을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비록 국회와 시민들에 의해 막히기는 했으나, 우리도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으며, 누군가를 "계엄법에 의해 처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문건이 발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것이다.

"(...) 선량한 일반 시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하겠다지만, 그런 도시에서 과연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나. 음악도, 북적이는 사람들도, 예술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화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을 "브라질 음악의 죽음의 메타포"라고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으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사회에서 예술은 온전히 피어오를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예술'적인 이 영화의 화려한 색감과 리드미컬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거기 실려 전해진 지구 반대편 나라의 근대사가 단순한 과거로만 느껴지지 않아 극장에서 섬뜩함을 몇 번이나 느껴야 했다.

테노리우가 2024년 12월 3일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알 수 없다. 영화에서도 몇 번이나 서술되듯, 그는 자신이 두고 간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비롯해 그 어떤 미래도 보지 못했으므로. 죽은 자를 떠올릴 때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이유다. 내 기억 속 그들은 너무 생생한데, 그는 모른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로 지하철을 타는 세상도, 한국에서 칸영화제와 오스카영화제를 석권한 영화가 나오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나의 모습도.
테노리우의 음악은 좋은 음악이 줄줄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도 손 꼽히게 아름다워 전곡을 따로 듣고 싶어질 정도였으나,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테노리우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죽음 혹은 한 장르의 죽음에 대한 메타포 이전에, 국가폭력의 희생자는 사실 "아직 우리 곁에 있었어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수많은 상상을 발휘하게 한다. 어쩌면 윤동주가 전태일에 대한 시를 썼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군부 독재에 희생된 젊은이들 중 누군가가 세월호를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우리가 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너진 자리에 우뚝 설 기록을 타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짧게는 국가가 행한 폭력의 기록을 보관하는 이들에서부터, (이와 비슷한 이들의 존재감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두드러진다) 좀더 확장하자면 제프가 글을 쓰게 하는 뉴욕의 편집자 제시카와 브라질 현지 친구 주앙도 그렇다. 이들은 계속해서 제프에게서 글을 끌어내고 그를 조력하여, 제프가 글을 완성하게 한다.
독재 정권들이 마치 짠 것처럼 싫어하는 대상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뿐만이 아니다. 폭력에 물들고 깨진 이들의 사고는 온건한 언어를 견디지 못하여, 언어를 무너뜨린다. 고문을 기다리는 통로는 "행복의 길"로 불리고, 영원한 실종은 "수송 작전"으로 불린다. 아이히만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래가 되어서는 안될, 결코 미래가 될 수 없을 어떤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 방법은 기록과 기억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일에 많은 부분을 기댄다. 영화 속에서 테노리우의 죽음은, 죽음 이후 테노리우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배턴을 이어받듯 여기까지 기록되어 왔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를 보는 당신을 통해, 또 한 번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밥친구의 정석, 음식 일드의 맛!
맛있는 음식 X 맛있는 드라마 = 음식 맛이 두 배
’밥친구‘의 정석!
일드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 즐겁고 사랑스러운 게임들
곤돌라가 교차하는 찰나에 서로에게 공연을 선사하는 것은 그들만의 게임이었다.
처음엔 도착지에 체스판을 두고, 말을 잡을 때마다 그것을 창 밖으로 흔들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새 직원은 어느 날 그녀의 형편없는 도시락을 몰래 가져다 근사한 샌드위치를 넣어 두었다. 사물함 자물쇠를 뚝딱 열어 버리는 기술은 대체 어떻게 터득한 건지, 싱싱한 야채는 어떻게 고른 건지, 그녀는 그런 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체통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서류 합격 통보 때문이었다.
그녀는 깩깩거리는 기침을 쏟아내는 낡은 곤돌라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목베개를 옆구리에 낀 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페이퍼백 소설이 진열된 서점, 물 한 병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보안요원과 나이 든 승객들… 그 안에서 기꺼이 피로하고 싶었다. 탈의실을 흘끔대고 제 기분에 따라 급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곤돌라 역장이 아니라.
대사 없이 극 전체를 진행하는 <곤돌라>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풍경을 떠올리면서 언어로 그들을 묘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인물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순간도 있고, 말이 필요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면들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영화의 만듦새와는 상관 없이, <곤돌라>가 보여 주는 낭만과 친절, 관능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익살스러움을 만들어내는 쇼트들부터, 조금은 유치해도 결국은 로맨스가 되는 사건까지. 관객은 그냥 그들만의 언어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
-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딸을 도와주세요
줄거리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보육원에 맡겼던 어린 딸, 도도를 데리고 온 리뤄난.
하지만 딸은 계속해서 무언가 보이는 듯 행동하고, 리뤄난은 이 모든 것이 6년 전 사건 때문이라고 말한다.
금기를 깬 자신들에게 저주가 내린 것이라며,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뤄난.
과연, 도도는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감상 포인트
1. 최상은 아니지만 잔인함 수위가 꽤 높은 편이다.
2. 결국엔 대만식 오컬트 물.
3. 페이크 다큐 형식이라서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감상평
영화 [주]는 여름에 한창 공포 영화 많이 볼 때 봤던 영화다. 리뷰를 쓰려고 했다가, 정말 할 말도 없고 개인적으로 재미없다고 느껴서 리뷰를 포기했었다. 그래도 봤던 영화들은 기록을 위해서라도 남기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이렇게 결국 리뷰를 쓴다.
영화 [주]의 가장 소름 돋는 공포 포인트는 잔인한 장면이 아니라, 평범한 장면에서 오는 기괴함과 압박감이다.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주인공의 표정이나 눈동자 움직임에서 긴장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 압박감을 계속 느끼다 보니 약간 피곤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놀래주는 타이밍이 좀 느리다고 해야 하나? 찬찬히 쌓아가다가 느리게 터트려주니까 조금 지루해진다. 이건 페이크 다큐라는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보다가 좀 졸았다는 리뷰를 종종 읽었는데, 나도 졸았음...
기괴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오컬트 영화 특유의 찝찝함도 잘 느껴진다. 주인공이 계속해서 보호 주문을 외워달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 주문이 자신에게 저주를 거는 주문이었다든지. 이 영상을 봤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든지. 근데 이런 부분은 좀 반칙 아닌가? 싶다. 이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 나쁜 말에 불과하잖아.
개인적으로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오컬트 영화를 딱히 안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기분 나쁜 포인트까지 있어서 더더욱 리뷰하기 싫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이게 실화 바탕이라길래 찾아봤는데,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부모가 자기 자식을 학대해서 경찰에게 잡혔다는 이야기가 실화라는데... 그럼 이건 이 영화랑 너무 연관성이 없잖아요. 그냥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지, 이런 걸 두고 우리는 실화 기반이라고 하진 않아요... 감독님.
재밌다고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약간 기대했는데, 찝찝함만 남기고 사라진 영화. 랑종과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같은 이유로 랑종도 초반에 보다가 꺼버린 사람이라서... 오컬트가 정말 재미있으려면 분위기와 캐릭터 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나의 취향에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의외로 즐길 것 같아서 호불호의 차이인 걸로...
-
- 지친 삶속의 힐링 영화
여기! 본격 퇴사 권장 영화가 있습니다.
고단한 도시의 삶이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지친 정신과 마음을 치료받는 힐링 영화!
무엇보다, SBS 방영 중인 '악귀'에서 너무나도 무서운 분위기 속의
미친 연기력을 보이고 있는 김태리의 힐링 가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감독 : 임순례
각본 : 황성구
출연진 :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개봉일 : 2018년 02월 28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tvN, Wavve, 쿠팡
기획 의도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의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데...
여담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만들었다.
작품은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농촌에서의 힐링을 보여주며 영화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및 군위군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영화의 힐링 때문일까, 개봉해 인 2018년도 최고의 한국 영화로 뽑히기도 하였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결말을 살펴보자면...
편지 하나만 남기고 달랑 떠나버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진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보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뭔가를 해내야 하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갑갑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낸 혜원(김태리)은
동네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에게
쪽지 하나 남기고 다시금 조용히 고향을 떠난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집에는 문이 열려있겠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다소 잔잔한 듯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있는 결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잔잔한 결말이라서 더욱더 영화가 잔잔하게
끝나지 않았나 싶다.
힐링 가득, 사계절을 보내며 만든 음식을 보면서
웃음과 치료를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상을 지내고 싶은 분들에게
숲속의 초록이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한줄평 : 퇴사각, 시골로 떠나자!
-
- 전라좌수사 이순신 그의 난중일기
책 한 권을 빌렸다. 바로 호란과 임진왜란에 대해 조사한 책이었다. 갑자기 자타공인 역덕이 되고 싶은 나. 냅다 깊게 파는 나의 역사덕후적 호기심이 빛을 발한다. 아니. 역사 이야기 능수능란하게 푸는 사람들 멋있지 않아? 어느 년에 뭐가 일어났고 어떤 것 때문에 발생했고 이런 거 줄줄줄 설명하면 왠지 모르게 멋지다. 역사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거의 모든 것이 약점이라는 말을 한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난다. 그래. 맞는 말인 것 같아. 왠지 이 부분을 파면 다 잘 풀릴 것 같다.
풀릴지 안 풀릴지는 미래의 내가 아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다. 어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굴러다니는 짤들 보다 책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아닐까?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 지성에 그나마 다가가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는다. 이 영화라는 문화예술도 사실 이 '지성'이라고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를 봐도 역사적 맥락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대극 만들기 좋다. 위대하고 극적인 인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이 시대극 만들기 좋은 한국사를 소재로 했다. <외계+인> 1부에 이은 여름 대작 두 번째, <한산 : 용의 출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1달 후의 조선으로 가보자.
해저 괴물 복카이센
문제가 뭘까? 다 알 것도 같았다. 일본의 장수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전쟁. 이웃나라 조선은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전쟁에 대한 대비가 단 조금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아쉽다.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난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머리가 아프다.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복카이센이 전장을 휩쓸고 있다는 말에 여러 번 생각을 되뇌인다. 할 수 있어. 전염병 같은 두려움만 이긴다면.
‘해저 괴물 복카이센’을 이끌던 장수의 관점으로 돌아간다. 전쟁 중이었던 해전. 거북선이 일본의 배에 부딪혔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조선의 거북선. 일본의 배와 조선의 거북선이 붙은 상태에서 백병전이 열렸다. 거북선에서 배를 이끌던 장수 나대용은 방패 하나와 무기를 들고 들이받은 배의 일본 장수 둘을 제거하려 배의 위로 올라간다. 조총이 빗발치던 전장. 방패로는 한계가 있었다. 왼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힌 나대용. 위기의 순간, 일본 장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이 나대용을 구해줬다. 나대용을 구한 사람은 이순신이다. 처절한 전투 끝에 부하를 구한 이순신. 그렇게 임진왜란의 어느 전장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1달 후를 비춘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심문하다 왜나라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이순신은 열세의 전장을 뒤집어 조선을 구할 수 있을까?
자주 봤었지
사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다들 알고 있다.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소’부터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의 위대한 전쟁영웅 하면 늘 들어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라는 소재는 적지 않게 사용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들어갔던 것이 <명량>이다. 또 내 나이 또래라면 다들 기억하는 <불멸의 이순신>도 있다. 굳이 영상매체가 아니더라도 한능검이나 교과서에서도 임진왜란 이야기는 자주 본다.
전쟁영웅의 이야기라 봐도 봐도 좋은 이야기겠지만 이는 곧 창작의 어려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관객에게 어필하지?를 생각해보자. 여러분과 내가 각본가라고 해보자. 이야기를 2시간가량으로 구성하고자 하면 뭔가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1)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일으킴 2) 한산도, 노량, 명량 해전에서는 조선이 승리한다" 같이 두 결론을 내고 논리관계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어렵다. 근데 이에 틀어맞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난이도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거 또 봤던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 또 전작 <명량>에서 흔히 말하는 ‘국뽕’ 마케팅은 이런 우려에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단점들을 적당히 잘 보완했다.
좋은 기획
일단 영화는 조선의 관점에서 풀지 않는다. 전적으로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의 간단한 배경과 결말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바로 한산도 대첩은 조선의 압승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일의 긴장감은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느껴진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버키와 캡틴이 맨몸액션을 벌인다. 둘 다 호각세의 능력자들이기 때문에 합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결론으로 향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결과를 알 수 없음’의 서스펜스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 대신 후반부 하이라이트 신을 위해 최대한 반대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 기획하고 싸운 전쟁영화임에도 주인공이 두 명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물리적인 분량은 와키자카 쪽이 더 많다.
이렇게 되면 갖는 이점이 생긴다. 앞에서 썼듯 왜 나라의 관점에서 이순신의 지략가적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 덕에 같은 소재의 전쟁영화가 있더라도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보다 신선하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반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일어나는 게 반전이다. 당시 일본의 관점에서는 이 전쟁이 불가사의했다. 조선은 거의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는 대사도 나온다("전쟁은 금방 끝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전쟁 준비 잘해간다. 이를 일본 관점에서 풀어가니 그 준비성이 더 도드라진다. 그렇게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관점에서 철저한 전쟁 서사를 묘사하면 '와 이걸 어떻게 이기지?'싶은 의문점이 든다. 또 이순신에 대한 정보가 일본 내부에는 거의 없다 보니 와키자카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같은 느낌? 영화 전체적으로 이순신을 깨러 가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는 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이순신에 대한 미스테리를 후반부의 해전 신을 위해 쓰고 있다. 이야기 구성에 있어 보다 신선한 접근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초중반까지 일본 내부의 권력투쟁과 첩보 대결만 봐도 이야기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이 영화가 전작 <명량>과 다른 지점이 있어 비교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 이 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의'를 표현하기 쉬운 것도 이 영화의 형식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일본 관점에서 전개해야 내적 논리의모순을 관객이 알 수 없다. 이를 통해 일본의 입장에서도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용이하다. 일단 영화 초반부에 왜 '의'가 중요한지 제시된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이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다. 이 '의'라는 것이 어디 쪽에 있는 걸까? 쉽다. 이순신에겐 있고 일본의 장수들에게는 없는 것이 이 '의'일 것이다. 흰 종이에 붓 한번 살짝 찍어보자. 그럼 그 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의와는 거리가 먼 일본 내부의 상황을 조명하다가 조선을 쨘하고 보여주면 두 나라의 내부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 장수들이 하는 말을 잘 보면 거의 명분이 없다. 누가 싫거나. 그냥 꼴 보기 싫어서. 아래 군사들 죽든지 말든지 알바 아니니까. 거의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의가 없는 왜의 명분과 이에 물든 일본 장수들의 냉정함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전작 <명량>이 민족주의(속칭 '국뽕')를 위해 영화 전반적인 장면을 희생한 것과는 다르게 뾰족한 기획을 통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무언가를 위한 발상이 아니라 '이런 영화를 만들 거야!'라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좋은 선택이었다.
이를 위해서
이 신선한 방식의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역시 배우들이 영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일단 박해일-변요한-김성규-박지환 네 배우의 극 이해도가 굉장히 뛰어났다. 일단 박해일 배우는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할 때 그 '기라성'을 담당하고 있는 박해일 배우. <살인의 추억>, <국화꽃 향기>, <연애의 목적>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올해가 그의 경력 중 최고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상대역의 변요한 배우가 섬뜩한 연기를 워낙 잘해서 좀 심심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박해일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느낀 것이, 1) 가벼워 보이지도 않으면서 2) 뭔가 고뇌하고 있는 내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3) 조선 내부의 상황으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심리상태까지 극의 배경이 되는 좋은 연기를 수행했다. 비교적 와키자카에 비해 물리적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존재감이 후반부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박해일 배우의 눈빛, 표정, 발성이 이 영화에 잘 어울리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과 <명량>까지 참 좋은 배우다.
다음은 변요한 배우다. 앞 문단에서도 썼듯 이 와키자카가 영화의 진주 인공이다. 물리적으로 분량이 아마 제일 많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박해일 배우는 잔잔한 파도처럼 극을 이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요한 배우는 감정적으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머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단 갖고 있던 감정선이 다양했다. 전쟁 준비는 또 착착 잘 되어가고 있다. 근데 반대쪽에서 승전보를 울렸던 이순신에게 묘한 열등감을 품고 있다. 또 이순신이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감까지 있다. 선조의 입장 변화를 위시한 조선의 내부 상황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또 일본 내부에서 권력 교통정리가 안 됐다. 이를 묘사하는 연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전반부의 감정연기를 넘어가면 하이라이트가 있다. 중반부가 넘어가서 이순신과의 한바탕에서 이 사람의 처지는 여러 번 바뀌게 된다. 이때 분출했던 감정표현들이 선명해서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주체로 이끄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변요한 배우는 정말 열 일했다. 아마 이 배우의 최고작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규-박지환 배우도 기억에 남는 연기를 했다. 두 배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조연이다. 이 역할을 살리는 좋은 연기였다. 일단 김성규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범죄도시> 시리즈였다. 그리고 <악인전>에서도 봤었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연기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악인전>에서는 뭔가 난잡한 이야기 톤 사이에서도 빛났던 기억이 있다. 이때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똑똑한 배우라는 점이다. 이 준사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점에서 이순신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리액션 연기가 좋아야 한다. 몸짓 하나, 눈빛 하나가 무언가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박지환 배우 역시 뛰어난 연기였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이수 캐릭터로 유명한 이 박지환 배우. 솔직히 영화 보면서 '내 아임다'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 캐릭터를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만 딱 잘라서 보여준 느낌?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싶었던 캐릭터 연출법이었다.
단점이 없지는 않아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시사회 평을 몇 개 봤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명량>의 단점을 극복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 좀 하고 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극복하긴 했다'다. 영화에는 엄청 큰 단점은 없다. 그 대신 아쉬운 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역시 극 중에서 옥택연-김향기 배우가 연기하는 임준영-보름 역의 서사 전부다. 난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단 영화 안에서 스파이가 있어서 얻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이 스파이가 단지 <명량>의 프리퀄이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할당받는 게 그게 완성도에 도움이 되는가? 는 의문이다. 조선 측의 특정 인물과의 대비를 이루기 위해? 굳이? 일본의 스파이가 있는 것까지 대칭을 이룰 필요가 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부까지 이순신-와키자카의 전략적 선택이 재밌다가 임준영이 나오면 산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배우의 퍼포먼스와도 연관이 있다. 음.. 잘 모르겠다. 이 배우를 캐스팅한 게 좋은 선택인지. <외계+인> 1부의 썬더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그리고 후반부 하이라이트 해전 신에서 CG 티가 난다. 아마 바다와 실제 배에서 찍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그랬던 건 이해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신 정도는 실물로 찍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초중반부는 일본의 관점에서 전개하지만 중후반부는 조선의 학익진과 거북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전반부의 살짝 느리더라도 신선한 템포가 후반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오잉?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가 식상한 촬영기법으로 치환되니 뭔가 김샌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영화 전반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척임이 있다. 분명 전작에서의 '국뽕'요소를 많이 뺀 것도 안다. 불필요한 사족 많이 쳐냈다. 근데 살짝 유치하고 예전 느낌이 나는 연출법이 장면 장면마다 보인다. 완성도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아니나 확실히 아쉬운 지점이다.
그래도 좋았어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좋다. 잘 만들었다. 일단 두말할 필요 없는 후반부 해전 신은 쾌감이 대단하다. 부분 부분마다 꼼꼼하게 동선을 잘 짜 놔서 보는 맛이 있다. 이 액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운드와 표정이 될 것이다. 적의 변수에 당황하는 일본군, 급변하는 전쟁 상황, 포격 소리까지 CG를 많이 사용한 만큼 소리에 집중해야 현실감이 든다. 이 현실감은 유효하게 작용한다. 후반부 전투 신에서 우리나라 말도 자막처리를 할 정도로 집중했던 소리 연출은 러닝타임의 반을 할애한 만큼 제 몫을 다한다. 티켓 가격이 많이 오른 극장가 이 액션신만 봐도 가격 값을 한다.
또 영화에서 묘사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극에서 나오는 군사집단은 이순신의 수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특별한 존재들이 조선의 땅을 지키며 왜적과 항전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인 것도 맞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개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이 한산이다. 이 한산도대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온 만큼 이들을 조명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좋은 방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볍지 않은 톤으로 배우들의 연기까지 깔끔하니 임진왜란의 무게감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극장가, 두 번째 여름 대작으로 부모님과 함께 가는 건 어떨까?
-
-
-
-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메인 예고편
불안이 X 당황이 X 부럽이 X 따분이 등장? 올여름, NEW✨ 감정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라일리 작전이 시작됩니다? [인사이드 아웃 2] 6월, 극장에서 만나요!
-
- 영화 <챔피언> 예고편
<오베라는 남자><12번째 솔저>제작진의 감동전쟁실화
노르웨이 복싱 챔피언 브라우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베르그수용소에 끌려간 그의 앞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48시간 내로 오슬로의 모든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브라우데의 가족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챔피언의 감동 생존기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