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5-04-21 17:53:46
즐겁고 사랑스러운 게임들
<곤돌라> 리뷰
곤돌라가 교차하는 찰나에 서로에게 공연을 선사하는 것은 그들만의 게임이었다.
처음엔 도착지에 체스판을 두고, 말을 잡을 때마다 그것을 창 밖으로 흔들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새 직원은 어느 날 그녀의 형편없는 도시락을 몰래 가져다 근사한 샌드위치를 넣어 두었다. 사물함 자물쇠를 뚝딱 열어 버리는 기술은 대체 어떻게 터득한 건지, 싱싱한 야채는 어떻게 고른 건지, 그녀는 그런 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체통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서류 합격 통보 때문이었다.
그녀는 깩깩거리는 기침을 쏟아내는 낡은 곤돌라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목베개를 옆구리에 낀 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페이퍼백 소설이 진열된 서점, 물 한 병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보안요원과 나이 든 승객들… 그 안에서 기꺼이 피로하고 싶었다. 탈의실을 흘끔대고 제 기분에 따라 급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곤돌라 역장이 아니라.
대사 없이 극 전체를 진행하는 <곤돌라>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풍경을 떠올리면서 언어로 그들을 묘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인물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순간도 있고, 말이 필요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면들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영화의 만듦새와는 상관 없이, <곤돌라>가 보여 주는 낭만과 친절, 관능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익살스러움을 만들어내는 쇼트들부터, 조금은 유치해도 결국은 로맨스가 되는 사건까지. 관객은 그냥 그들만의 언어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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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환경!'을 외치는 악당 나자연
<짱구는 못말려>의 TV 시리즈는 어린이를 위한 것 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극장판은 어른이들의 눈물도 뺄 만한 스토리가 많다. 그래서 많이 챙겨보는 편이고, 즐겨보는 편이다. 그래도 주 타겟층은 어린이겠지만 말이다.
짱구 극장판이 판타지적인 스토리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처럼 <포효하라! 떡잎 야생왕국>은 어떠한 약을 먹으면 인간들이 동물로 변하는 것이 메인 스토리로 다뤄진다. 약을 먹은 여러 사람이 조금이지만 에너지를 아끼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끝난다. 짱구 극장판은 TV에 나오면 거의 챙겨보는데 처음 접한 편이라서 더 유심히 봤던 것 같다. 다 보고 리뷰를 찾아보니 팬들 사이에서 그다지 평이 좋지는 않았다.
<포효하라! 떡잎 야생왕국>에서 눈여겨볼 캐릭터는 마을회장이자 악당인 나자연 씨다. 날씨가 푹푹 찌는 것이 지구온난화(물론 지금은 기후위기라고 부른다) 때문이라고 짱구 엄마가 말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
나자연 씨의 첫 등장은 급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짱구 엄마 봉미선 씨를 만나면서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여기에 버리시면 안 돼요~ 얼마 전에 마을 회의에서 쓰레기를 세분화해서 버리기로 정했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환경운동가의 관점에서 그는 악당이 아니어야만 했다.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사람들이 '환경! 환경!'이라고 외쳐가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좀 웃겼지만 말이다. 그는 만남 직후 봉미선 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지구환경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쓰레기 분리, 재활용, 에너지 절약, 전 세계 사람들이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환경보호운동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지구를 지키자! (환경환경) 자연을 지키자! (환경환경)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남겨줘야지 않을까요?”이 이야기를 계기로 봉미선 씨는 집에서 할 수 있는 환경운동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의 스케일이 커졌다고 짱구 아빠 신영만 씨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각자의 실천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나자연 씨의 유치원 교육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지구의 환경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환경의 심각성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환경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어른들 때문에 강은 쓰레기장으로 변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하나로 모으면 커다란 힘이 됩니다.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나자연 씨는 열정적인 연설을 한 뒤 유치원생들과 함께 강으로 가서 쓰레기를 주웠다. 그는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구두는 어디에 버려야 할지 헛갈려하는 훈이에게 (비록 무서운 표정이었지만)재활용과 재활용이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는 쓰레기에 정말 진심인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나자연 씨가 왜 악당이어야만 했을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마을회장 나자연 씨는 '지구를 구하고 자연을 구하자', 일명 지구자구의 수장이었다. 지구자구의 목표는 지구의 자연성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인간들을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지구를 대하고 있는 진심을 동물로 변한 봉미선 씨와 신영만 씨를 앞에 두고 한 말에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 추구한 나머지 모두 물질에 찌들어 있죠. 그런데 지구는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하고 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파멸을 길에 벗어나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하지 마! 그래 가지고 지구를 구할 수 있겠냐!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물질문명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대인!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식한 존재란 말이냐!”그와 지구자구는 마을회장이 되어서 분리 배출된 쓰레기를 팔아서 활동비용으로 충당했다. 길거리 모금을 통해서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환경단체 중에는 자원순환 사회적기업과 연관하여 활동하고 있는 곳도 있고, 운영을 위해서는 회원을 모집하여 후원금을 받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활동은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공금인 마을회비를 사용했다면 횡령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비난받아도 된다. 실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악당이 하는 행동'으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큰 우려가 된다. 현실 세계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악당으로 보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공개된 2009년 즈음 나는 봉사활동을 위해 일본에 두 달 정도 머무르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도 분리배출은 열심히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쓰레기를 한곳에 묶어서 배출하고 있었다. 재활용품 분리에 대한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고,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도 수분이 제거되면 작은 봉지에 밀봉하여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렸다. 나자연 씨가 마을회장이 되면서까지 분리배출을 하도록 결정한 부분은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동안 본인들이 막 버리던 쓰레기들이 실제로 자원화가 되고, 심지어 되팔아서 자금이 된다는 사실은 놀라워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자연 씨는 '흉악범' 취급을 당한다.
그는 본격적으로 인간들을 동물로 만들기 전에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쇼핑몰의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조도를 낮추는 일을 했다. 이 일이 기존의 익숙함에 비해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은 틀린 것도 없다. 물을 아끼기 위해 식수대를 잠그기도 했고, 마을의 음료수 자판기의 '차가움' 기능을 끄기도 했다. 석탄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동차의 엔진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은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발감을 사기 충분해 보였다.
나자연 씨가 지구자구를 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지키자고 말해도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환경은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지구와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는 그는 물벼락도 맞았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는 괜찮지만 구호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들에게 절망하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환경운동을 하다가 보면 결국은 인간이 멸종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자연 씨도 환경운동가가 겪는 산 하나를 만나고 만 것이다. 인류애가 사라지게 된다고나 할까... 결국 지구 바보 나자연 씨는 아름다운 지구를 되찾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 우연히 들어간 떡잎마을 지하 땅굴은 사람들이 없고 원시 자연이었으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지하를 지키려면 마을회장이 되어야만 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을 동물로 만드는 약을 연구했다. 인간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동물로 만드는 약을 만드는 것 자체가 그가 인간을 생각보다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방법이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 보고, 인간들을 조금이나마 믿어보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들은 요상한 옷을 입고 요상한 자세로 '환경! 환경!'을 외치고 다니지만 실제로 악당이 아니라 '급진적 환경운동가'일뿐이었다.
나자연과 반하는 인물로 빅토리아(코코)를 들 수 있다. 빅토리아는 히로인인데 매우 부자인 것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나중에 밝혀지지만)나자연의 부인이다. 무동력으로 추격전을 하고 있는 지구자구와 짱구네 가족들 사이에 엔진 빵빵한 자동차를 몰고 와서 수류탄을 마구 투척한다. 지구자구는 무기랍시고 본인들이 수거한 캔을 던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기름이 떨어져서 자동차가 멈추자 연비가 좋지 않은 차라면서 투덜거리기까지 한다.
지구자구의 본거지에 쳐들어왔을 때도 멋진 오도방구를 타고 바주카포를 날린다. 어느 누구의 위험과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쏘아댄다. 짱구 일행도 다칠 뻔했다. 이때도 지구자구는 화석연료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건물의 전기는 마당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로 충당하고 있었고, 그들은 탈 것 없이 뛰어서 빅토리아를 맞이한다. 무기는 옷걸이와 프라이팬 등이었다. 지구자구가 싸우는 중에도 분리배출을 하는 등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은 '싸움'에 주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가 지구자구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원피스, 구두, 가방 같은 본인을 꾸미기 위한 것들이 사라져서 허무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악당을 물리친다고 했지만 그녀는 지구자구가 말하는 현재 문명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었고, 자원과 에너지 절약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여러 의미로 환경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체계라면 '그런 방법은 옳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했어야 맞는 것일 텐데 '환경 그까짓 게 뭐라고'의 마음을 가진 히로인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러니 낭비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빅토리아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정강이를 까이는 나자연 씨에게 더 관심이 갈 수밖에. 그가 아내인 빅토리아를 동물화시키려고 했다가 인류까지 계획을 확장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빅토리아가 이상한 통에 갇혀서 데굴데굴 굴러갈 때 부딪히는 곳이 산꼭대기에 잔뜩 꽂혀 있는 송전탑인 것을 보고는 감독님의 디테일에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자전거와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모습 역시도 그랬다.
나자연 씨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 악당 같지 않았던 것일까? 막판에 그는 신념도 없는 이상한 사람처럼 그려졌다. 강력한 약어서 괴물로 변했고, 약병도 함부로 버렸다. 사랑 때문에 찌질하게 군 사람처럼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가 악당으로 변한 것은 살아온 역사를 본다면 당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들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짱구네 가족들도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로만 하고 '인간은 어찌 돼도 상관없냐'고 되물었으니 말이다.
결국 가족의 사랑이 지구의 사랑이라고 말한 나자연 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현실에 안주하기로 한 것 같다.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씁쓸한 말로였다.
팬들이 최악으로 뽑는 제일 큰 이유는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캐릭터였다. 나 역시 나자연 씨의 활동들에 매우 동의하며 감정 이입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무너진 캐릭터 때문에 당황스러웠기 때문에 그 평가에 매우 동의한다.
안타까운 상상이기는 하지만 나자연씨의 일과 가족이 현실이라면 빅토리아가 돈을 잘 쓰고 다니는 것은 잘 벌거나 집안이 좋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나자연 씨가 다른 돈벌이 없이 환경운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런 경제적인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등지고 나서는 쓰레기를 팔아서 자금을 모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부르니까 환경운동 한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환경운동은 가난한 활동이라는 것에는 매우 동의한다. 사실 환경운동가 중에 부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가난하든 부자든 환경보호는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환경운동 하기 어려운 것도 너무나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섯 벌 사던 옷을 세 벌로 줄인다는 약속은 남은 비용을 환경운동 하는 곳에 투자해 준다는 약속으로 확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그 비용은 나자연 씨의 환경보호활동을 덜 급진적이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무 속물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이러하니 안타까운 상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들이 환경보호를 하는 활동들이 나쁘고 하찮은 것이라고 여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뽀로로>를 보고 아이들은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크롱에게 가장 많은 감정이입을 한다고 하던데 <짱구는 못말려>의 악당에게 감정이입을 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현재진행형이라서 환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딱히 추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른이들은 이 안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의 나자연 씨는 인간을 동물로 만들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외쳐본다.
“환경! 환경! 지구자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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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달처럼 두둥실
개막작 <소나타> 리뷰감독] 바르토즈 블라쉬케Bartosz Blaschke
출연] Michał Sikorski, Malgorzata Foremniak, Lukasz Simlat
시놉시스] 조산아로 태어나 자폐 진단을 받은 그제고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집안에 있는 오래되고 고장난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뿐이다. 그가 15세가 되던 해 생일, 그는 자신의 고립이 사실 자폐증이 아니라 청각 장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카진스키 교수의 도움 덕에 인공 와우를 장착한 그제고즈는 말하기, 듣기 능력과 함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피아니스트가 되어 콘서트 홀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영화제가 시작된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운 날이다. 제천국제영화제 하면 휘영청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떠올리게 된다. 밤하늘이라니. 사실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였나 가물가물하고, 장마 소식이 있으니 오늘 밤 달이 뜰지 여부도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어땠든 제천의 밤이 주는 들뜬 분위기가 향긋하게 마음에 남은 탓이다.
올해 제천의 첫 밤을 여는 영화는 SONATA라는 제목을 둥글고 단선적인 필체로 띄우며 시작할 것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여서일까? 달을 닮은 글씨였다. 정직하고 투박하게, 오롯이 빛을 보내는.
달빛처럼 느린 걸음을 차분하게
영화 <소나타>는 얼마든지 뭉클하고 감동적인 톤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느린 걸음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곡조처럼 차분한 톤으로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귀여운 동요를 배우는 특수학급에 뚱하게 앉아 고립되어 있던 그제고즈가 본인의 문제가 청력 장애임을 알게 되고, 나아가 <월광 소나타>를 꿈꾸기까지… 그 길에 마법은 없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이 고립이 깨지긴 하는 걸까 싶은 지난한 걸음이다.
길이 쉽지 않은 대신, 영화가 메트로놈처럼 그제고즈의 속도에 관객을 맞추어 기어이 함께 걷게 만든다. 그제고즈의 ‘듣기’를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계산된 사운드 덕분에, 그의 세상이 한 번씩 새로워질 때마다 생생하게 함께 느낄 수 있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그 여정에 나란히 서 있다.
그제고즈의 여정은 묵묵히 혼자 달리는 마라톤보다는 이어달리기를 닮았다. 그제고즈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엄마와 아빠, 그제고즈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 우호적이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까지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바톤을 넘기듯 만나고 또 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순간 깨닫게 된다. 삶은 온전히 단단한 한 사람으로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가끔 서투르기도 하고 쉽게 지치기도 하는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선율 따라 기쁜 걸음을 다정하게
이어달리기 같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제고즈는 조금씩 성장한다. 물론 오랫동안 세상과 다른 속도로 걸어온 그가 템포를 맞추는 일은, 메트로놈의 박자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같이 걷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이름을 말해주고, 무엇보다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던 선 바깥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는 이들. 아니라는 가정을 한 번만 해보자는 이들. 무언가 더 나은 세상을 열고자 한다면 미지의 걸음을 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 내가 알아온 세상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
바로 이런 이들과 만날 때, 거칠게 비좁아져 있던 세상이 점차로 확장되어 간다. 그렇게 그제고즈는 성장하고,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동시에 그제고즈를 둘러싼 주변에도 성장에 뒤따르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점까지 세심하게 포착한다. 만남은 일방적일 수 없으므로.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제고즈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피아노와의 만남이다. 그동안 닿지 않았던 세상이 음악의 파동으로 열린다. 감지하지 못했던 파동을 처음 느낀 이후, 세상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고, 청각 보조 기구에 대한 만남과도 맞닿는다. 어떤 조우는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달라진 마음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
그제고즈의 피아노처럼 어떤 음악이, 어떤 영화가, 어떤 순간이,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가끔 새로운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황홀해지는 순간, 무심코 본 영화가 마음에 들어와서 나를 바꿔 놓고 마는 순간.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한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다정하게 새로운 힘을 건네 주니까. 내가 보고 듣고 알았던 세상 바깥으로 나를 이어주는 힘, 선명하다 생각했던 경계를 지워내고 그 바깥으로 걸음을 뗄 수 있게 이끄는 힘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천에서 당신은 어떤 음악을, 어떤 영화를, 어떤 순간을 조우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다만 그 순간이 그제고즈와 <월광 소나타>의 만남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면 참 좋겠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본 당신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원인지 눈치챌 것이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이 짧은 만남이 어떤 흔적을 남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제천을 즐기는 당신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달처럼 두둥실 차오르기를.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상영 시간
장소
CODE
2022-08-11 19:00
의림지무대
1
2022-08-14 17:00
CGV 제천 1관
324
2022-08-15 10:30
CGV 제천 1관
403
* 글 : 선이정
* 해당 글의 원글는 "선이정"님 브런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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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본 순일까?
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그리고그런패션은영원히유행하지않아,유행해선안돼.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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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않는 속편을 기다리며
다들 속편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그중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던 <콘스탄틴>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팬을 기쁘게 했는데요.
<콘스탄틴>처럼 다른 영화들도 하루빨리 속편이 제작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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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엄마는 엄마가 아니잖아
벌써 20년이 넘도록 은퇴를 번복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마 그의 최고 문제작이 될 듯하다. 난해하다는 평가부터, 최고라는 극찬까지 사람들의 해석도 제각각이다. 심지어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시사회에서 "나도 무슨 얘긴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언급을 했다. 그만큼 이 애니메이션은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숨겨진 뜻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애니메이션처럼 동화를 보는 기분으로 따라가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세계물일 뿐이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는 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싶어 지는 것들 투성이다. 특히 가장 중심인물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스튜디오지브리, 나아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하는 이야기들로 꽉 차있고 그 안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장부였지만 결핵으로 평생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어머니와,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대부분 애니메이션에는 그래서 마더 콤플렉스, 강인한 여성상, 20세기 초 전투기에 대한 로망 등이 가득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마히토는 엄마가 있던 병원이 불타 엄마가 돌아가시고, 도쿄대공습을 피해 시골 공장 근처로 이사 간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곳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도중, 집 근처 신비한 탑과 집 근처에 사는 왜가리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게 도쿄대공습을 피해 공장 근처 시골집으로 이사 가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시골집으로 가서 이상한 세계로 가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제 어머니는 병원이 불타 일찍 돌아가시진 않았고 오래 사셨다.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드는 아버지가 그대로 나오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마을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애니메이션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최대한 전쟁에 대한 언급이나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진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해를 했는데도 다른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 철석같이 믿는 아빠가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가져와 집안에 늘어놓는 비행기의 유리덮개들은 줄지어있는 유리관 같은 모습이다. 이렇듯 자국민들도 죽음으로 내몬 전쟁의 실체를 은근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로 종종 일본의 제국주의가 타국에 남긴 상처를 비판했고,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전쟁부역자라 부르며 싸우기도 했다.
스승과 친구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시대적 상황이 상황인지라 드러나는 정도일 뿐이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승이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인 스즈키 토시오에 대한 이야기다. 스즈키 토시오가 개봉 전 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본인이다. 자신과 했던 대화들이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녹아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는 애증의 관계다.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의 기자였던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기사를 내려고 찾아갔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시하며 문전박대한 일은 유명하다. 마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끈질기게 마히토를 찾아오는 왜가리와 흡사하다. 왜가리가 이상한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녀서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하다.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만든 <게드전기> 홍보를 할 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로 홍보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분노한 적이 있다. 여러 루머와 안 좋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 초창기 작품들을 히트시킨 프로듀서임에는 분명하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걸 알고 애니메이션 속 마히토와 왜가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자기 길을 가려는 감독'과, '감독을 속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이용해먹기도 하는 프로듀서'의 밀당이 느껴진다.
또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는 타카하타 이사오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토에이 동화'입사 선배로,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적인 내러티브와 훌륭한 미장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으로는 <반딧불이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 군>,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내러티브가 잘 잡힌 미야자키 하야오의 20세기 작품들은 전부 타카하타 이사오가 조언을 하거나 참여한 작품이다. 그만큼 그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구성 미장센 등의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령공주>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오로지 자기 멋대로 내달리는 작가주의적 작품이 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을 알고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의 대사나 행동을 잘 살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를 얼마나 존경했었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도중 사망했다.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탑 안의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키리코는 그의 그림스승이었던 천재 작화감독 오오츠카 야스오일 것 같다.(지브리의 채색 담당인 야스다 미치요라는 이야기도 있다) 키리코는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로 선을 그리며, 그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오오츠카 야스오도 단순한 그림 스승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험난한 애니메이터 인생을 이끌어준 선배이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숲으로 들어가 사라진 마히토의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마히토는 탑으로 들어간다. 불에 타 죽은 마히토의 엄마가 살아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왜가리를 따라서. 그 탑은 원래 우주에서 떨어진 물건으로,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한다. 큰 할아버지는 그 밖에다 건물을 만든 것이라고. 탑의 속 안으로 빨려 들어간 마히토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이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와 하녀 키리코도 만난다. 탑 속의 세상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스즈키 토시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인연을 담고 있는 만큼 이 세계가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황금문에는 '나를 배운 자는 죽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무덤이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상업미술 업계 중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같은 사람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려야 하는 일,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관객에게 이해시키도록 변형해서 멋있게 만드는 일, 내 그림이 아닌 그림을 수천 장씩 그려야 하는 고통,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중노동이다. 심지어 박봉. 나 역시 디자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므로 그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안다.
내가 대학생 때, 같이 날밤새며 과제를 해 추레한 모습으로 과실을 나서는데 원서를 내러 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난 친구들과 이렇게 소리쳤다. "여긴 지옥이야! 도망가려면 지금이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황금문의 문구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어리둥절하는 마히토는 펠리컨들에게 떠밀려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가지고 온 유일한 무기인 활은 다 망가져버렸다. 그래, 그렇게 멋모르고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되는 거야. 게다가 그 망가진 활처럼, 네가 기존에 배운 건 다 쓸모없거든. 다시 배워. 애니메이션을 배운다고? 넌 이제 죽었다.
젊은 키리코는 '와라와라'라고 하는 생명을 돌보고 있다. 이 세계에서 그가 하는 일은 무덤을 지키는 것과, 와라와라에게 먹을 것을 팔아 그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돕는 일이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게 생명을 주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반복된 그림 몇 장을 그렸을 뿐인데, 그 그림은 살아서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진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다. 비록 그 일을 배운 너는 죽겠지만. 응.
그러나 이 세계에도 위험한 존재가 있다. 펠리컨들과 앵무새들이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먹어치우는데 몰두한다. 펠리컨은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생명인 와라와라를 먹어치운다. 앵무새들은 뜨거운 숨을 훅훅거리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펠리컨은 갈라파고스화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한다. 후대 양성의 실패, 보수적인 정치환경, 국내 내수만으로도 돌아가는 경제, 오타쿠 문화의 확산 등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침체되게 만들었다. 와라와라처럼 생명력 있는 애니가 태어나는 것을 갉아먹는다. 80~90년대만 해도 정말 독창적이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예전 황금기 같은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 또한 제살을 깎아먹는 업계는 스튜디오 지브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수많은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를 키워냈지만, 정작 모회사나 제작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만 감독으로 원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는 늙고 죽어가고 있다.
앵무새는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존재다. 큰 덩치에 식욕에 침잠되어 훅훅거리는 모양새. 앵무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토록 혐오하던 오타쿠들과 흡사하다. 앵무새들은 '애니메이션을 배운자'즉 애니메이터들을 먹이로 삼는다. 그들의 삶을 갈아 만든 모에화, 먹잇감에만 관심이 있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업계가 똑같은 성적 모에화 대상물만 만들게 한다. 그리고 오타쿠는 대체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만든 것에 열광하고 남이 만든 걸 보고 만드는 2차 창작(팬픽)에 열광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타쿠를 치가 떨리도록 싫어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
하지만 이런 위태위태한 세상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균형을 맞추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큰 할아버지, 타카하타 이사오다. 돌들을 깎아 만든 블럭을 아주 세밀하게 쌓아 만든 균형. 타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은 그런 느낌이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그 블럭을 물려주고, 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균형을 지키게 하고 싶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멘토로 참여했던 작품들은 망상이나 상상보다는 현실적인 내러티브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잉꼬대왕, 오타쿠들의 대왕은 성격이 급해서 그 유산이 전달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결국 블럭을 쪼개버리고, 큰할아버지가 유지하던 세상은 무너져버린다.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한 유산은 사라져 버린다. 스튜디오 지브리도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물려받지 못해, 지난 9월 닛폰 테레비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사람들은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하지만, 둘은 연출방향 자체가 다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참여하지 않은 후기작들이 급격히 망상적인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타카하타 이사오가 물려주려고 한 것들을 다 물려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큰 할아버지가 물려주려고 한 블럭들 중, 그 난리통에 한 개만 겨우 가지고 나왔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전 세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지 못한 불완전한 세계였던 셈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자신의 친구와 스승들이 죽어가고 자신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마땅한 자신의 후계자가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자신의 블럭을 펠리컨과 앵무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팬들은 또 다음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느꼈던 생명과 감동을 느껴야 할까. 이것에 대한 답은 바로 새엄마 나츠코와의 일화가 말해준다. 마히토는 엄마가 죽고, 엄마의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새엄마로 들어온 나츠코와 데면데면하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새엄마를 엄마로 인정하고 엄마라고 부르는 일은 쉽지 않다. 마히토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츠코는 이미 아버지의 아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나츠코가 숲 속 탑 안으로 들어가 산실에 들어가 힘들어하고 있는 장면은, 아직 관객들에게 '진정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래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만든 첫 작품 <게드전기>는 엄청난 혹평속에 팬들은 그 작품을 인정조차 하기 싫어한다. 게다가 최근 고로의 작품은 3D 애니메이션이었다.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선 정말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
위에서 말한 애니메이션 업계의 펠리컨들, 여러 사정으로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은 아버지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미야자키 고로밖에 없게 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사망한 지금 앞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마저 사망하게 된다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으로 나올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고로가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행보를 보니 3D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그것을 지브리의 팬들이 받아줄 것인가? 고로의 애니메이션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라 인정할 것인가? 엄마가 죽어서 갑작스레 새엄마가 된 나츠코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죽은 엄마를 살릴 수는 없다. 죽음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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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새엄마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고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흉내 내는'것을 싫어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격을 존중한다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도 역시 이전 세대의 유산을 다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전하게 애니메이션 세상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좋든 싫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떠나게 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 그대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자, 그대들이여.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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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나오는 리뷰들을 보니, 충격적 이게도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 미화로 알려지는 것 같다. 일단, 지브리의 타카하타 이사오는 일본 공산당 출신으로 제국주의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인물이다. <반딧불의의 묘>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내용을 보면 일본의 제국이 '자국민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공산당원은 아니지만, 공산당지에 만화를 연재한 경력이나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일본의 좌파는 자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지브리의 두 거장이 그런 성향이니 지브리 전체는 사실 말할 것도 없다. 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역시 도쿄대공습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거나 무서운 모습보다는 병원이 불타는 모습이 보일 뿐이고, 도쿄대공습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전쟁에 대한 피해나 반성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냥 반전영화가 되어버리므로, 그걸 최대한 피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에 집중한 것이다. 다음 장면은 그것을 더 잘 드러낸다.
마히토가 이사 간 시골 학교의 아이들과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가 죽을뻔했다는 피해를 강조하기 위해 돌로 자기를 쳐서 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한 게 아니라 넘어져서 그랬다고 하지만, 군수공장을 하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장면은, 도쿄대공습이나 원폭이 일본의 자해와도 같은 원죄이며 제국이 그것을 남탓하고 있고,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변명하지 않는 일본국민을 비유하는 장면이다. 마히토는 아니라곤 하지만 거기서 더 강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마히토는 상처를 스스로 냈다고 큰할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이런 지브리가 제국주의 미화라니, 그건 좀 억측이라 생각한다. 전작 <바람이 분다>도 일본 내부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것에 전쟁미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오히려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전쟁무기 광인 자신을 비판한 내용이다.
진짜 제국주의 미화는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을 은근하게 깔고 있는 <크리에이터>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슈도 안되었던 점이 사실 더 의아하다.
*키리코 캐릭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오오츠카 야스오이길 바랬으나, 이전 스즈키 토시오의 언급에 의하면 지브리 채색 담당이었던 야스다 미치오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우'라고 부르기도 했던 야스다 미치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바람이 분다>까지 거의 모든 지브리의 작품에 채색을 담당해왔었다. 사실 오오츠카 야스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스승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맞으나, 지브리가 만들어질 때 합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이 일하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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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무진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감독: 김수용
출연진: 신성일,윤정희,김정철,이낙훈
시놉시스
서울에서 제약회사의 전무로 있는 윤기준은 직장 일의 피로 때문에 1주일 휴가를 내고 무진으로 내려간다. 무진은 안개가 자욱한 곳인데 그 동네는 윤기준이 6.25 전쟁 때 있었던 고향이다. 무진에 도착한 윤기준을 반기는 건 중학교 동창이자 성공한 세무서장인 조한수였고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임 자리에 가게 된다. 그 모임 자리에서는 서울에서 예술 대학을 나와 무진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는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처음 보게 되고 윤기준과 하인숙은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는데...
윤기준은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떠올린다. 현재의 자신에게 독백으로 말하며 지금은 무진에서 가장 성공한 동창들 중 한 명이지만 과거에는 초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복잡하고 심리적인 압박이 있다. 그런 윤기준에게 하인숙이라는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불안정한 욕구를 채워줄 여자였던 것이다. 둘은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가 있던 그에게도 이 여자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였고 그의 이모에게도 자신의 아내라고 칭할 만큼 한마디로 말하자면 두 번째 아내였다.
그런데 하인숙의 입장은 과연 어땠을까? 윤기준에게 서울로 같이 데려가달라고 하고 오빠라고 친근감을 보이면서 무진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심정 말이다. 서울의 예술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지만 무진으로 내려와 모임자리에 나가면 주야장천 유행가만 부르는 자신이 필자가 봐도 윤기준과 상황이 똑같았다. 그런 답답함에 접점이 있었던 걸까? 영화 안개는 복잡한 내면의 심리 관계를 해결하고픈 윤기준과 하인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복잡한 내면으로 인한 사랑 그리고 성찰
2023. 10.06 (금) 12:00 CGV 센텀시티 2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23. 10.04 (수)~ 2023. 10.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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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도깨비 깃발 - 전체적으로 직무유기인 영화
“가자, 보물 찾으러!”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한효주).
한 배에서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권상우)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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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메이크 마이 데이> 공식 예고편
3월 1일, 가장 유쾌한 집사 면접 시작! #청년경찰 김주환 감독의 [멍뭉이]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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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메인 예고편
‘한 장의 잔혹한 아름다움으로 덧칠하다’
20세기 초반, 중년의 사진작가 ‘페드로’는
정체 모를 지주 ‘포터’의 결혼식 사진을 찍기 위해
설원으로 둘러싸인 칠레의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하지만 소녀 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어린 신부만이 나타나고
‘페드로’는 그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집착하다
결국 ‘포터’의 부하들에게 끌려가고 마는데…
세상 끝에 선 사진작가,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