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26 09:51:40
검은 수녀들 | 길 잃은 오컬트와 빛바랜 여성 서사
<검은 수녀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희준’(문우진)은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에게 숨어든 악령을 내쫓기 위해. 하지만 악령은 좀처럼 희준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구마를 시도하던 장미십자회 소속 '안드레아 신부'(허준호)도 악령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이 악령이 12 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하고, 구마 사제가 없더라도 구마 의식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준은 곧 죽을 테니까.
하지만 희준의 담당의 ‘바오로 신부'(이진욱)는 구마의식을 의심하며 정신과 치료만으로도 차도가 있다며 유니아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는 바오로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가 자기처럼 악령을 느낄 수 있다는 비밀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도움을 요청한다. 미카엘라는 자기 과거를 희준에게 투영하며 유니아를 돕기로 결정하고, 두 수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구마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또 실패한 한국 영화 속편
한국 영화의 속편 제작 소식은 그렇게까지 기대받는 뉴스가 아니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호평받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적 2>, <국가대표 2>, <강철비 2>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작품들의 속편만 보더라도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유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신과 함께>,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애초에 시리즈물로 기획되는 경우가 예외일 뿐이다.
전편의 성공을 이어받지 못한 속편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목 외에 연속성이 없다. 이름만 같을 뿐, 배우부터 캐릭터와 감독까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만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부각된다.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기대하는 관객이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 음식점으로 치면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지점마다 메뉴도 레시피도 다른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검은 수녀들>도 염려가 컸다.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은 같지만 감독, 배우, 캐릭터가 달라졌으니까. 특히 장재현 감독의 부재가 걱정이었다. 아무나 오컬트의 장르적 쾌감과 대중성을 조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 안타깝게도 <검은 수녀들>은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했지만, 오컬트를 살리지 못한 나머지 여성 서사만의 매력을 놓쳤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도구로만 소모되고 말았다.
가톨릭과 여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검은 수녀들> 속 여성 서사는 예상된 수순이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꽤 흥미롭다. 여성과 종교의 관계성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영성을 이중적으로 대했다. 성모 마리아 공경 교리나 성모 발현 기적 사례는 교회 내에서 강력한 종교적 상징으로 기능한 여성의 영성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영성은 상징성이 큰 만큼 경계의 대상이었다. 교회 제도 내에서 수녀로서 영성을 발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와 사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이는 중세 시기에 교회가 민간 신앙 혹은 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전통을 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권력이 약화되자 굳이 '마녀'를 외부의 적으로 상정한 역사 역시 여성의 영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방증한다.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가톨릭과 여성의 관계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이 정통성 있는 구마의식을 다뤘다면, <검은 수녀들>은 그 이면에 존재한 비정통성을 다룬 셈이다. 영화 곳곳에 그 의도가 녹아 있다. 중세 시기라면 마녀로 몰렸을 정도로 특별한 영성을 두 주인공이 소유한 설정이 대표적이다. 바오로 신부와 같은 일반 사제들이 구마의식의 효용성을 부정하거나 수녀의 구마의식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무속도, 타로도, 자궁 타령도 억지는 아닌 이유
그렇기에 자칫 뜬금없을 설정도 <검은 수녀들>에서는 마냥 작위적이지 않다. 여성의 영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당이 등장하고, 굿으로써 악령을 쫓아내려 하고, 수녀가 타로 점을 보는 전개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정통 제도 종교의 영역의 밖에서 이어져온 여성의 여성을 한국이라는 공간적 맥락 안에서는 무당과 무속 신앙이 상징하기 때문이다.
악령의 존재를 남들과 다른 청각과 시각으로써 인지할 수 있는 두 수녀의 특별한 능력도 좋게 말하면 영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미친 것이고,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신내림을 받은 셈이다. 미카엘라가 타로 점을 볼 줄 아는 것 또한 제도 종교 외부에서 생명력을 유지한 종교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 간의 접점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구마 방식도 마찬가지다. 악령은 유니아를 창녀라고 모욕하면서 자궁을 영영 못 쓰게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그녀는 실제로 자궁암을 앓는다. 하지만 그녀는 악령을 자궁에 가둔 뒤에 파괴하면서 그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마녀가 악마와 성교를 하고, 악마의 아이를 낳는다는 중세 시대의 소문과 전승을 뒤집은 이 전개 역시 제도 밖에서 유지된 여성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극 중 구마 의식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두 수녀는 구마의식을 같이 진행하면서 신뢰를 쌓기 전까지는 세례명이 아닌 본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는 게 구마의식의 핵심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두 수녀가 스스로를 가톨릭 교회 속하지 않는 괴물, 마녀, 악마로 여겼음을 암시하니까. 즉,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악령 들린 학생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구마하고 치유한 셈이다.

오컬트 없는 여성 오컬트
이처럼 종교사 이면에 숨은 여성의 영성을 중점적으로 묘사했기에 <검은 수녀들>의 스토리텔링은 흥미롭다. 문제는 차별화된 주제 의식과 소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하지만, 정작 오컬트가 없다. 드라마에만 힘을 준 나머지 오컬트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대가로 종교적 맥락과 깊이 연관된 서사도 덩달아 힘을 잃는다.
우선 오컬트 분위기를 조성할 디테일이 부족하다. <검은 사제들>은 치밀했다. 의식의 순서마다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구마 사제는 여성의 분비물을 몸에 뿌린다. 본래 수컷이라서 남자 육신을 취하려는 악령에게 성별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에 반해 <검은 수녀들>에서는 두 수녀가 하는 행동, 외우는 기도문, 준비한 성물 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구마 예식은 지나치게 가상적으로 느껴진다.
디테일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누가 됐든 악마를 못 이길 것 같으면 성수를 잔뜩 쏟아부은 후에 예식을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파묘>에서 '이화림'(김고은)이 여러 형태의 굿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오컬트 특유의 재미가 현저히 부족하다. 악령의 권능도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된다. 주변 사물로 구마자를 해하거나 겁 주고, 구마의식을 방해하기 위해 쥐를 풀어서 도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정도다.
구마의식은 스토리텔링을 이끌지도 못한다. <검은 사제들>의 구마의식은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악령은 여동생과 관련된 '최준호 아가토'(강동원)의 트라우마를 악용했고, 그는 간신히 악령을 이겨냈다. <검은 수녀들>은 다르다. 미카엘라는 자기처럼 영성을 지닌 친구가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악령은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유니아 역시 별다른 약점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은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된다.

스스로 맥을 끊다
그 결과 종교적 맥락 내에서 전개돼야 할 여성 서사는 부자연스럽고, 오독될 소지도 크다. 사제들이 수녀라는 이유로 유니아를 억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본래 의도대로라면 종교 내에서 여성의 영성이 경계받는 미묘한 긴장감이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오컬트 분위기가 약하다 보니 이 장면은 여성 차별적 구도 안에서 여성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평면적이고 편의적인 연출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검은 수녀들>은 바오로 신부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희준이 겪는 일련의 현상이 악령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정신병인지 유니아도 확신하지 못하는 식으로 초중반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의 갈등은 일차원적 남녀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정통성과 비정통성의 충돌이라는 종교적 맥락을 입체화하고 강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가 결국 협력하게 되는 전개를 더 극적으로 꾸미고, 원칙주의자인 바오로 신부의 매력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검은 사제들>과는 다른 과점에서 구마의식을 조명하며 세계관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이 무위에 그친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의 결과물은 지나치게 <검은 사제들>을 의식한, 전작 주인공의 성별만 뒤바꾼 열화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기술적 완성도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왕왕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운 컷 전환은 오컬트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긴장감 조성을 방해한다.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음향 문제도 재발했다. 구마의식 중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사 내용이 들리지 않을 정도다. 배우들도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수녀복, 사제복을 입은 채로 이전 캐릭터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세계관은 커졌지만
결국 <검은 수녀들>은 한 가지 미덕만 남긴다. 바로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것. 성공한 작품의 외피만 빌려 쓰는 대신 두 작품을 엮어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야심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미십자회의 존재와 역할을 더 부각하고, 12 형상이라는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속편의 토대를 다진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최준호 아가토의 재등장도 단순한 팬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또한 일장일단이 있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 세계관을 위한 발판, 그 이상 그 이하의 인상을 주지 못한다. 마치 <아이언맨> 이후 <어벤져스> 개봉 전까지 <아이언맨 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를 공개한 MCU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만약 속편이 나오더라도 유니아의 빈자리가 그리 커 보이지 않다는 점, 그리고 최준호와 미카엘라의 향후 활약상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Poor 형편없음
방향은 맞았으나 길을 잘못 들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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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를 오마주한 영화 9선
[오마주 | hommage]
프랑스어로 '존경'을 의미하는 단어
영화는 영화를 오마주하기도 하지만
명화에서 영감을 받거나 오마주 하기도 한답니다.
오마주한 장면은 다시 명장면으로 탄생하기도 하는데요.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 속 장면들
명화를 오마주한 영화 같이 만나보아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코끼리
어바웃 슈미트 | 마라의 죽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넓은 지평선
더 셀 | 새벽
인히어런트 바이스 | 최후의 만찬
인셉션 |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 어린 옥수수
문라이즈 킹덤 | to prince Edward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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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가르는 사람이 필요하다.
거제도. 내가 사는 부산에서 한 시간반. 2015년 처음 방문한 거제는 식당마다 사람이 가득하고 활기 가득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오토바이 행렬이 끝나지 않게 쏟아지던 곳이었다.
“거제의 거지들은 천 원짜리를 안 받는다.
거제의 개들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정도로 지역 경제에 활력이 넘치던 그 시절. 요즘 출산율 높다는 세종보다 더 출산율이 높았던 그런 도시 거제. 그러나 급작스레 찾아온 조선업의 위기. 거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간접으로 조선업에 기대어 살아가던 그들에게 조선업의 몰락은 곧 거제시의 인구 절감으로 드러났다. 한 때 3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이미 5만 명 넘게 줄었고, 집값은 반 토막 난 지 오래고, 끊임없이 지어지던 아팥트는 미분양 사태가 속출되었다.
이런 거제의 어려움이 한참 시작되던 2016년 무렵. 블랙홀 같이 빨아들이는 조선업의 몰락 속에 노동자들의 아픔을 렌즈에 담으려 했던 KBS 이승문 PD. 연일 계속되는 어려움에 다른 직장을 구하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예상치 쫓겨난 사람들. 그들의 힘듬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바로 자녀들이었다. 특히 취업의 전선에서 가장 큰 타격을 경험하고 있는 거제 여자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PD는 취업의 불안함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댄스 스포츠 동아리 일명 ‘땐뽀반’을 만나게 되었다.
다수의 학생들이 불안함에 무기력해 있거나, 벌써부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모습들이 속에서 한 선생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취업에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도, 시험기간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도, 변함없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런 상황 속에 평소에 지각하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뗀뽀반’을 통해 학교에 적응해 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다 지쳐 무기력한 아이들이 ‘뗀뽀반’에서 만큼은 춤 선을 위한 힘을 내고, 손동작에 각이 생긴다.
때로 밤늦게 연습이 끝난 뒤 집에 가는 아이들에게 교통비를 쥐어주고, 전날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온 아이에게 숙취해소제를 내미는 선생님. 영화는 이 선생님을 과장하지도, 또 축소시키지도 않게 보여준다. 때로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게도 너무 들이밀지도, 또 애매하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규호 선생님의 모습은 굉장히 신선하다. 아이들을 향해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끊임없는 지지로 아이들을 대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들은 선생님이 깔아놓은 사랑 가득한 무대에서 꿈과 미래, 비전과 목표는 내려놓고, 춤이 가져다주는 힘과 즐거움에 매료되어, 땀을 흘리고, 집중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제자들과 친해지려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나 된 모습이 녹아져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한 대목 중에 후배 교사가 이규호 선생님에게 물었다.
“승진은 이제 생각은 아예 접으신 거예요?”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우리가 승진하려고 선생 아는 건 아니다.아이가. 맞제? 아들 가르칠라고 하는 거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규호 선생님의 가르침과 사랑은 한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배움들은 늘 삶으로 가르쳐주신 분들로 인해 형성되었다.
나도 그분들 처럼, 이규호 선생님처럼.
삶으로 가르치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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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5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주지훈 배우 주연 범죄 오락 영화 <젠틀맨>의 개봉부터
제주의 전설과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 <아일랜드>의 공개까지!
그럼 12월 다섯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젠틀맨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123분
감독: 김경원
출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등
개봉: 2022.12.28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줄거리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
관전 포인트
색다른 설정과 스피디한 전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매력인 영화 <젠틀맨>은 연기력부터
화제성까지 다 잡은 배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이 출연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크레이지 컴페티션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스페인, 아르헨티나 | 115분
감독: 가스톤 두프라트, 마리아노 콘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개봉: 2022.12.28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한 억만장자가 80세 생일 기념으로 자신의 명성을 더 널리 알릴 불세출의 걸작 제작을 기획하고,
이에 천재 감독, 월드 스타, 연기 거장이 모여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관전 포인트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아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정식 상영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을 때 뛰어난 영상미와 OST로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메모리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콜롬비아, 타이 등 | 136분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배우: 틸다 스윈튼 등
개봉: 2022.12.29
배급: 찬란줄거리
알 수 없는 소리에 이끌린 한 여성의 여정을 그린 시네마틱 사운드 오디세이.
관전 포인트
제74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자 국내 영화제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한 영화
<메모리아>. 거장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8년 만에 국내에 선보이는 신작이라
관객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아일랜드
ⓒ 티빙
개요: 판타지 | 한국 | 12부작
연출: 배종배우: 김남길, 이다희, 차은우, 성준 등
공개: 2022.12.30
OTT: 티빙줄거리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 판타지
액션 드라마
관전 포인트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주도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이다. 화려한 영상미부터
각양각색 개성으로 중무장한 캐릭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매력을 더하였다.
화이트 노이즈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35분
감독: 노아 바움백배우: 아담 드라이버, 그레타 거윅 등
개봉: 2022.12.30
OTT: 넷플리스줄거리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관전 포인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매력인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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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 : 재차의] 초간단 3분 리뷰
줄거리
방법사 '소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어느덧 3년.
사회부 기자였던 '진희'는 3년 전 취재로 알게 된 '필성'과 함께 '도시 탐정'이라는 독립 뉴스채널을 설립한다. 책을 출간하고 인터뷰를 다니는 바쁜 와중에도 진희는 소진을 걱정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3개월 된 시체가 살인을 저지르는 해괴망측한 사건이 발생한다. 급기야 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힌 자가 공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이 일어나는데...시청 포인트
1. 드라마 [방법]을 보지 않아도 내용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재미를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보는 것이 좋음.
2. 더 강해진 소진과 든든한 팀을 꾸린 진희의 만남.
3. 조종당하는 '재차의'들의 액션.감상평
드라마를 재밌게 봤던 1인이었기에 영화도 기대됐다. 방법 2편을 만들지 말지를 두고 tvN에서 투표를 했었는데, 그때 후속편을 만들어달라는 쪽으로 투표율이 많이 기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그때의 투표가 영향을 미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의문점은 '더 끌어낼 이야기가 있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음 편을 낸다면야 땡큐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드라마를 끝낸 마당에 더 할 이야기가 뭐 있다고. 애초에 독특한 소재였기에 신선한 이야기일 수 있었으니 재탕도 안 될 것이고. 처음부터 2편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가, 상당히 의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재차의'라는 소재만 빼면 전체적으로 특별할 게 없었다.
이전 편의 악당이었던 '진종현'이나 '진경'은 편을 들 순 없어도 매력적인 악역이었다. 게다가 소진과 대적하는 능력을 갖췄기에 대립 구도와 신선한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재차의'라는 소재에 집중하느라 인물들이 다소 진부해졌다. '진종현'은 권력자이자 주술사였는데, 이번 편에서는 권력자와 주술사가 두 갈래의 구조로 나누게 되면서 그 매력이 나눠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액션이 무쟈게 좋았냐, 그건 또 애매하다. 재차의들이 단체로 뛰어가고 계단을 오르다 뛰어내리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긴 했지만. 자동차에 달라붙어서 주먹으로 창문을 마구 내리칠 때 맥이 탁 풀리면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저씨의 원빈처럼 총을 쏘거나, 전우치의 요괴처럼 한 방에 창문을 깨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인 건데... 이건 그냥 내가 액션을 잘 안 봐서 그런 걸지도.
사실 이 정도의 스토리를 조금 더 섬세하게 다루려면 드라마가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각각의 인물들도 잘 살리고 전개에도 긴장감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로 이 소재를 살리려니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고 다 버릴 수밖에 없었겠지. 아쉽긴 하지만, 영화로 이 정도 살린 건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내 느낌이지만 이번 편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한 중간 고리라서 힘을 빼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끝에 '진경'의 조수였던 '천주봉'이 등장하면서 후속편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히려 이 장면 하나가 재차의들이 뛰어오는 것보다 훨씬 압도적인 느낌을 주었다. 다음 편은 왠지 드라마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별점
★★★(3.5 / 5.0)
방법을 봤던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 것이고, 아닌 사람도 무난하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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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씽2게더 (2021)
** 본 리뷰는 <씽2게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씽2게더 (2021)
감독: 가스 제닝스
출연: 매튜 맥커니히,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요한슨, 테런 에저튼, 할시, 보노 등
장르: 애니메이션, 뮤지컬, 코미디
러닝타임: 110분
개봉일: 2022.01.05
우리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1편에서 무사히 극장을 살리는데 성공한 '문(매튜 맥커니히)'은 뛰어난 가창력의 '미나(토리 켈리)'와 '조니(테런 에저튼)'을 데리고 뮤지컬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전석 매진이 될 정도로 나름 지역구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대형 연예기획사 '크리스탈'의 스카우터 '수키'로부터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으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스스로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대담해지라는 할머니의 조언에 자극을 받아 '미나'와 '조니', 그리고 '로지타(리즈 위더스푼)', '군터', '애쉬(스칼렛 요한슨)'를 모두 불러모아 무작정 오디션을 보러 크리스탈 엔터테인먼트에 잠입한다.
크리스탈 엔터테인먼트의 악명 높은 수장 '지미 크리스탈'은 참가자들을 모두 광탈시키던 와중 '군터'의 SF 뮤지컬 아이디어에 큰 관심을 보이며 '문'의 팀이 레드 쇼어 시티에서 공연할 것을 허락한다. 대신 자취를 감춘 왕년의 로커 '클레이 칼로웨이(보노)'를 출연시키라는 강력한 지시와 함께. '버스터 문'은 '군터'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극본을 완성해 나가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번번이 발생하며 공연을 열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과연 '문'은 '지미'로부터 무사히 그들의 공연을 지켜낼 수 있을까..?
캐릭터보다는 뮤지컬 넘버에 주력
도시로 공간적 배경을 옮기고, 대형 엔터테인먼트가 소재로 등장한만큼 1편에 비해 전반적인 스케일이 커졌다. 초라한 길가의 극장에서 공연을 펼쳤던 지난 시즌과 달리 대형 극장에서 수많은 장치들과 무대 장식들을 갖춘 SF 뮤지컬을 핵심 플롯으로 택하며 굉장히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후반부 공연의 클라이막스 장면들은 공연이 아닌 판타지에 가까운 이미지들을 동원하며 각종 특수효과를 활용한 대형 콘서트장의 분위기를 방불케한다.
반면 스케일이 커지고 등장인물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의 깊이는 얕아졌다. 1편의 경우, 소심한 성격 탓에 무대공포증이 있던 '미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주요 캐릭터에게 개별적인 스토리를 부여하여 후반부의 음악을 통한 극적 효과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2편은 그러한 개개인의 서사가 배제된 채 공연을 준비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만이 전부인 듯 스토리가 흘러가 캐릭터들의 성격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스케일이 커지고, 음악이 가져다주는 파워는 더욱 강력해졌다는 건 분명 긍정할 만한 부분이나 1편의 강점이었던 캐릭터성이 미약해진 점은 아쉽다.
모든 약점도 압도하는 음악의 힘
<씽> 시리즈가 가장 잘하는 것은 바로 유명한 팝 음악의 활용이다. <씽1>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팝송들을 사운드트랙으로 활용했듯 <씽2게더>에서도 어김없이 수십 가지의 익숙한 노래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엘리베이터 신에서 절묘하게 등장한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나 이번 시즌에 처음 등장한 '포르샤'의 성우로 참여한 '할시'의 목소리를 각인시켜준 '알리샤 키스'의 'Girls On Fire'는 잠깐 등장했을 뿐인데도 임팩트가 컸다.
절정은 후반부 공연 장면에서 펼쳐진다. 15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록스타 '클레이 칼로웨이'의 목소리를 연기한 '보노',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함께 듀엣으로 부른 '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는 꽤나 감동적이기도 하다. 동물 캐릭터로 귀엽게 그려지긴 했지만, 음악을 애써 지우고 살았던 과거의 스타와 그에게 영향을 받아 꿈을 키웠던 젊은 뮤지션의 세대 간 화합을 통해 연출한 아름다운 피날레였다. 황홀한 우주 세트장을 배경으로 20분 가량 펼쳐진 뮤지컬 신은 미약한 캐릭터성, 탄탄하지 못한 서사 등 극이 가진 단점을 단번에 압도한다. 그야말로 모든 약점을 초월하는 음악의 힘이 발현된달까.
현실보다는 낭만적인 꿈을 택하다
캐릭터의 서사가 부족해진 점은 아쉽지만, '버스터 문'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어떠한 시각에서 보면 그는 굉장히 무모하고 현실감각이 떨어진 인물처럼 비춰진다. 낭만적인 꿈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기도 하고, 숱한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끝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뤄낸다. 그는 분명 마을에서 충분히 성공을 거둔 공연 기획자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모험을 통한 더 큰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는 영역에 도전을 하고, 강압적인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대개 주변인들로부터 무모하다거나 몽상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멋진 예술 작품이나 기발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신의 재능을 믿고 도전에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씽2게더>는 그와 같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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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살 생일에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오늘부로 75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습니다. 당신은 과연 죽음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반드시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권리란 어떤 일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자격이니까요. 다만, 여러분은 앞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그러므로 돈을 벌 수도 없고, 그래서 집도 구하지 못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궁지에 몰린 기분으로 죽음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과연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근미래를 그린 영화 <플랜 75>의 세상으로 떠나보겠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플랜 75>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플랜 75>는 2024년 2월 7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플랜 75
Plan 75
Summary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하야카와 치에
출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카와이 유미 외
노인을 위한 정책, 노인 혐오를 위한 정책
피가 낭자한 바닥에 널브러진 휠체어와 지팡이들, 그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한 청년. 그의 손에는 산탄총이 쥐여 있습니다. <플랜 75>는 노인 혐오 범죄가 일어난 사건 현장을 묘사하는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로 영화의 막을 엽니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죽음의 권리를 제공합니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플랜 75'를 신청한 노인에게 정부는 10만 엔의 준비금을 지급합니다. 제휴 화장터를 이용한 합동 장례 서비스도 무료로 지원합니다. '플랜 75'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한 할머니는 "이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죽음을 선택할 것을 권합니다.
노인의 존엄한 죽음을 지원하는 서비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정책 안에 노인의 존엄을 위한 혜택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죽기로 결정하면 지급되는 준비금 10만 엔부터 그렇습니다. 자유롭게 쓰라고는 하나, 곧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는 큰돈을 쓸 만한 곳이 없습니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특대 초밥을 시키는 것이 고작이죠. 합동 장례 서비스도 그저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무료 서비스인 양 홍보할 뿐입니다.
극 중 '미치'는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습니다. 부동산에서는 집을 구하려면 2년 치 월세를 미리 내거나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치'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상태였죠. 백방으로 일자리를 수소문해 보지만, 결국 일도 집도 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랜 75'를 신청합니다. 만약 정부가 10만 엔을 죽음의 준비금이 아닌 삶의 준비금으로 지급했다면, '미치'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미치'를 일자리에서 내쫓지 않았더라면, 그는 집을 구해 계속해서 살아갔을 겁니다.
우리는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것을 선택이라 부릅니다. '플랜 75'는 언뜻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인들 앞에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후보가 하나뿐인 선택은 더는 선택이라고 할 수 없죠. 그저 강요와 압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순간 관객은 '플랜 75'가 오프닝 시퀀스에 담긴 노인 혐오 범죄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총으로 노인들을 잔혹하게 쏴 죽이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하게 노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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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소풍>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나문희 배우가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영화에 노인네들만 나온다고 하니까 투자자가 없었어요." 언론배급시사회 영상이 게시된 유튜브 채널 아래엔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안 본다, 다 늙어서 웃겨."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노인 경시 문화가 만연해졌습니다. 마치 노인은 젊음과 함께 인간의 존엄과 가치까지 잃은 것처럼 대하죠. 하지만 극 중 노인들의 모습은 꼭 청년들과 같습니다. 간소하게 밥을 차려 먹고, 친구들과 맛집을 가고, 수다를 떨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일하고, 촌스러운 건 싫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자고 갔으면 좋겠고, 누군가와 함께 자는 밤은 덜 무섭죠. 영화 초반부에 한 할머니는 동료들과 모양이 조금 망가진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 대사를 뱉기도 합니다. "모양은 달라도 맛은 다 똑같아."
영화 <소풍>이 위대한 배우들의 출연에도 투자에 난항을 겪었듯이, 자본은 슬프게도 사회적 권력을 따라 흐릅니다. 그 때문에 지배 권력과 떨어져 있는 소수자들은 <플랜 75>의 타이틀 디자인처럼 그 존재가 흐려지기 쉽죠.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쉽습니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자신은 평생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약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지요. 최근에는 이러한 태도가 표현의 자유와 이기심을 만나 극도의 혐오로 표출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노인 혐오 역시 그중 하나이고요.
그런데 여러 소수자 차별 문제 중에서도 노인 혐오는 어쩐지 조금 더 무섭습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늙어가는 운명을 타고났으니 말입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두면 "나와 너는 다르다"에서의 '나'는 금세 '너'가 됩니다. 자신이 흔적을 지우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죠.
영화는 '플랜 75'라는 가상의 정책을 통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는 미래를 경고합니다. 이미 망가져버린 세상이 더는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플랜 75>의 메시지를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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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황혼을 비추며 끝맺습니다. 단 한 번도 황혼 이후의 시간이 없는 하루를 상상해 본 적 없습니다. 오로지 새벽, 아침, 오후뿐인 나날을 살아야 한다면 아마도 삶은 불행으로 가득하겠지요.
One-Liner
선택지가 하나뿐인 질문 앞에서 선택의 '권리'를 주겠다는 어폐. 혐오는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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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빈의 소원> 30초 예고편
2014년 8월 11일.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관객을 울고 웃게 하며
꿈과 희망의 아이콘 같았던 배우였기에 전세계 영화 팬들은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무성한 소문과 다르게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던 진짜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이제 그의 죽음에 둘러싸인 소문과 진실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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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강릉> 30초 예고편
강릉 최대 조직의 ‘길석’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며 질서 있게 살아가던 그의 앞에
강릉 최대 리조트 소유권을 노린 남자 ‘민석’이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서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둘,
‘민석’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두 조직 사이에는 겉잡을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데..
거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자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