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23 12:40:21
1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감독 2월 내한한다

지난 12월 25일 4K 리마스터링과 새로운 장면을 추가해 재개봉했던 <더 폴: 디렉터스 컷>이 누적 관객 수 7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이 내한 일정을 알려 영화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국내 관객, 언론과의 만남을 가질 타셈 감독은 “한국 관객의 사랑과 응원에 큰 감동을 받았고 바쁜 일정을 조정해 방한을 결심했다.규모보다 작품성을 지지하는 문화 대국의 국민성에 반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첫 공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최근 모든 촬영을 마치고 첫 스틸컷을 공개하였습니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긴 시간 가장 만들고 싶어 한 작품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이 원작으로,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회사원 '유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되자, 가족과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고자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차기작 <Traveler> 확정

<미나리>, <트위스터스>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이 SF영화로 돌아옵니다. ‘Deadline’에 의하면, 스카이댄스와 계약을 체결해 조셉 에커트의 SF소설 ‘Traveler’을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47세의 생물학 기술자인 스콧 트레더가 자신도 모르게 시간 여행을 겪게 되며 변화하게 되는 삶을 다루고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저스틴 로즈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배우 손석구, 최희서 미국 독립영화 동반 출연

배우 손석구, 최희서가 나란히 미국 독립 영화 <베드포드 파크 Bedford Park> 출연 소식을 알렸습니다.
<베드포드 파크>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는 전직 레슬링 선수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개인적인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를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편집자인 스테파니 안의 연출 데뷔작으로, 내년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올해 봄에 촬영 예정이며, 제작에는 배우 마동석과 함께 여러 편의 영화를 개발 중인 매니지먼트사 겸 제작사 B&C 콘텐츠가 참여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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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끊어내지 못한 과거
지금의 나는 어떤 것들로 만들어진 걸까.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것들은 DNA라는 틀을 따라 계속 이어져온 것이어서 무척이나 분명하다. 하지만 그 외에 우리는 꽤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집안 환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어져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그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모든 것들 속에 작게나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함께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든다.
이 모든 연결고리의 시작은 결국 과거다. 과거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결국엔 영향을 받으면서 현재를 만들어간다. 우린 미래에 내가 어떤 결과를 받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씩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조상의 역사를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다르게 갈 방향이 어떤 쪽인지를 생각해 본다. 때론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 현재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영화 <파묘>는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화림은 그의 일을 돕는 봉길(이도현)과 함께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고 있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 가족에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3대째 이어내려오고 있는데, 무당인 화림은 이 병이 조상의 묫자리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병은 이 집안의 미래를 막고 있는 병이면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 과거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집안의 장손은 네 사람을 고용해 파묘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감정 - 화림의 두려움
화림은 무당의 관점에서 본능적으로 이 모든 문제가 묫자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건 그의 몸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묫자리의 위치는 무척 좋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화림은 관객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묫자리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감지할 수 있는 화림은 이 영화 안에서 만큼은 초능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내내 초자연적인 것들을 감지해 내고 그걸 다른 인물들에게 설명해 나간다.
여러 인물들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화림은 사실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힘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초반에는 자신만만하게 굿을 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다른 인물들을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좀 더 강한 존재가 등장했을 때,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가 두려움에 풀썩 주저앉는 순간, 그걸 보는 다른 인물들과 관객들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를 느낀다. 달리 대항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엄청난 존재가 화림의 두려움 때문에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사실 젊은 무당인 화림을 겉으로 보기엔 무서워하는 것이 없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화림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공포스러운 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과거의 존재다. 이미 육체가 없는 과거가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화림은 자신의 미래마저 잡아먹어버릴 듯한 힘을 느낀다. 이 영화가 이야기 전반부에 감추고 있는 과거는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청산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화림은 그런 청산되지 않았던 과거에 짓눌린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나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무당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춘다.
두 번째 감정 - 영근의 체념
무당 화림이 파묘를 위해 찾는 인물은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다. 그중에서 영근은 아주 평범한 장의사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무덤에 묻히거나 화장하는 순간까지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인 영근은 풍수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풍수사 상덕도 마찬가지지만, 상덕은 적어도 풍수지리라는 지식을 공부하고 배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영근은 그야말로 평범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영근은 큰 능력이 없지만 화림, 상덕, 봉길과 함께 파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빨리 상황이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반부 엄청난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본 이후 영근은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에게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빠르게 그 상황을 체념해 버린다.
그의 체념은 과거를 끊어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다치고 힘든 상황에 놓여서야 움직이는 영근은 끝까지 그에게 찾아온 과거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그저 옆의 사람을 돕는데만 급급해있다. 그는 비록 모든 상황을 체념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저버리진 않았다. 끝까지 과거를 끊어내려는 사람들 옆에 서서 작은 힘이나마 돕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근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일반 국민들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체념은 했지만, 돕는 걸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감정 - 상덕의 집념
상덕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의 말들은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왠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 편으론 그의 말에 신뢰가 가는 느낌도 있다. 아마도 그가 그 일을 하는 껄렁하고 대충 하는 듯한 태도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이야기 내내 상덕은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무당 화림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고, 상덕의 말이나 입장은 한 번 걸러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공포스러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 존재와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는 건 상덕이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역할이기도 한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과거 모습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는 걸 느끼면서 상덕의 집념은 점점 더 커진다. 특히나 영화의 말미 그의 집념이 폭발하듯 몰아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의 집념이 폭발하는 그 순간은 바로 나쁜 과거를 청산하고 끊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꽤나 통쾌하게 느껴진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몰랐던 과거를 찾아내고 그 당시의 잘못된 무언가를 벌하고 끊어내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상덕의 집념은 무당 화림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과거 청산의 힘이다. 그가 힘껏 과거를 내리칠 때 모든 것이 바로잡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영화 <파묘>는 우리 모두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오컬트 장르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부 이후 그 장르를 공포로 완전히 바꾼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꽤나 쉽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는 공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좀 더 쉽고 대중적으로 역사적인 문제들을 엮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포스러운 과거와 그것을 끊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유산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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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Heretic, 2025)>, 종교는 거들 뿐인 밀실 탈출 스릴러
A24에서 또 한 번 강렬한 공포 영화를 내놓았다. <유전>, <미드소마>, <톡 투 미>와 같은 특유의 신선한 호러 감각이 이번엔 종교를 만났다.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야기, <헤레틱>이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씨네렙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를 통해 <헤레틱>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헤레틱'은 영어로 '이단'이라는 뜻이고, 바로 내일(2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 기본 정보
제목: 헤레틱 (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휴 그랜트
장르: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1분
국내 개봉일: 2025년 4월 2일
제작/배급: A24
줄거리: 어느 눈 오는 날, 몰몬 선교사 자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는 전도를 위해 한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주인 리드(휴 그랜트)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맞이하며 날씨가 궂으니 잠깐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규칙상, 여성이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가 있다'는 말에 두 자매는 의심 없이 문을 넘는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남자의 대화는 점차 묘하게 불편한 질문들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이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는 탈출을 감행한다.
1. 믿음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
최근 공포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서스펜스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헤레틱>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낯선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점진적으로 쌓아올린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종교'라는 소재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무섭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섭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관객을 믿음과 의심 사이 긴장으로 이끈다. 궤변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시험 속에서,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시험대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철학적 긴장감만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궂은 날씨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외딴집, 그 안에 두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과 함께 있다는 상황만으로 관객은 익숙한 불안을 감지한다. 이 상황 속에선 성별에 따른 물리적 힘의 위계가 힘의 비대칭을 만든다. 이는 남성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성, 그리고 관객이 처음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정체이다. 중년 남성 리드가 정말로 겉모습처럼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곧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역할에 ‘노팅 힐’로 유명한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그는 젠틀하고 따뜻한 미소의 리드를 연기하며, 두 여성이 기꺼이 스스로 낯선 남자의 집 안으로 향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리드가 ‘집 안에 아내가 있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리드는 부인이 낯을 가린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장을 지연시킨다. 리드라는 인물에 대해 신뢰를 거둘지에 대한 판단은 영화 초반부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두 자매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들의 본래 목적대로 리드에게 전도를 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점차 리드에게 넘어간다. 그는 점점 종교적 신념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드는 계속해서 두 여성의 신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여성은 점점 그가 만들어낸 심리 게임의 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리드의 질문에 동참하게 되고, 함께 시험을 받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헤레틱>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존적인 위협에 기반한 상황을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심리 게임을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설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2. 치밀한 설계
영화는 상당히 치밀히 짜여져 있다. 결말에서 치밀한 설계는 단순히 장르의 플롯을 넘어서 주제의식으로 발현된다. 동시에 관객으로서 이 치밀함 덕분에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먼저 캐릭터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팩스터와 반스는 모두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다. 그들은 속옷마저 교회가 규정한 의상을 입고, 교회의 공동체에 기반하여 생활한다. 반스는 현실감이 없이 순진한 전형적인 신자처럼 보인다. 반면, 팩스터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팩스터는 리드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일방적으로 리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고 탈출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상당히 실행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심이 거두어진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저건 믿으면 안 될 거 같은데’하는 답답함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인물들도 움직여준달까. 그런데 그 순간마다 절묘하게 새로운 변수나 불가항력적 상황이 또 던져진다. 결국 그들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빈틈 없다고 느낀 부분은 대사이다. 감독들의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 아래 대사를 최소화하며 긴장을 유도했다면, <헤레틱>은 그 정반대 지점에서 대사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독들 역시 이런 극적인 대비를 하나의 창작 실험으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말맛'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즉흥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모든 대사가 계산된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리드가 반스에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자 반스는 ‘스파이더맨’이 말한 것이라고 받아친다. 리드는 이를 ‘볼테르’가 말한 것이라 정정한다. 처음 이 장면에서 이 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기 때문에, 자그마한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반복적으로 원형과 복제, 신념의 계승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선 대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조이고, 이후 그 대사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올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심지어 음악마저 아무 의미 없이 삽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지점들이 감상 이후 곱씹을수록 서늘함을 안겨준다.
3. 총평
<헤레틱>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고,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이 있어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극의 대부분이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과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리드라는 인물의 특성상 몇몇 장면은 마치 신학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대사의 길이나 논리적 구성이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다시 보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이 ‘강의 장면’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리드가 주도하는 그 ‘강의’가 실제로는 힘의 위계와 물리적 위협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그의 논리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장르적으로는 훌륭한 장치지만,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적 메시지(믿음과 확신에 대한 탐구)와는 결이 어긋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시험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만 주던 초반부에서 다소 노골적인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매력이 한풀 꺾인다. 결말 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여러 버전의 결말을 놓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덧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결국 캐릭터가 가진 ‘선(善)’의 속성에 기대어 마무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하는 리드가 실은 누구보다 믿음을 갈구하는 인물처럼 마무리되는 아이러니도 다소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휴 그랜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과도 같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에서 기민하게 비틀었다. 그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변신한 것은 아닌, 기존의 친근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미묘하게 왜곡해 섬뜩한 설득력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알고 있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팩스턴을 연기한 소피 대처는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다 싶었는데, 제나 오르테가와 안야 테일러 조이를 반씩 섞은 것 같다. 실제로 과거 몰몬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도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작품도 꼭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패니언>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스를 연기한 클로이 이스트는 <파벨만스>에서도 얼굴을 비췄던 배우다. 그녀 역시 몰몬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다른 삶을 살았으면 자매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모두 2000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 나이와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탁월하게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재밌게 감상했다. 필자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처음엔 관람을 망설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종교적 맥락보다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와 장르적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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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5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주지훈 배우 주연 범죄 오락 영화 <젠틀맨>의 개봉부터
제주의 전설과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 <아일랜드>의 공개까지!
그럼 12월 다섯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젠틀맨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123분
감독: 김경원
출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등
개봉: 2022.12.28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줄거리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
관전 포인트
색다른 설정과 스피디한 전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매력인 영화 <젠틀맨>은 연기력부터
화제성까지 다 잡은 배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이 출연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크레이지 컴페티션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스페인, 아르헨티나 | 115분
감독: 가스톤 두프라트, 마리아노 콘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개봉: 2022.12.28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한 억만장자가 80세 생일 기념으로 자신의 명성을 더 널리 알릴 불세출의 걸작 제작을 기획하고,
이에 천재 감독, 월드 스타, 연기 거장이 모여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관전 포인트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아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정식 상영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을 때 뛰어난 영상미와 OST로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메모리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콜롬비아, 타이 등 | 136분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배우: 틸다 스윈튼 등
개봉: 2022.12.29
배급: 찬란줄거리
알 수 없는 소리에 이끌린 한 여성의 여정을 그린 시네마틱 사운드 오디세이.
관전 포인트
제74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자 국내 영화제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한 영화
<메모리아>. 거장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8년 만에 국내에 선보이는 신작이라
관객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아일랜드
ⓒ 티빙
개요: 판타지 | 한국 | 12부작
연출: 배종배우: 김남길, 이다희, 차은우, 성준 등
공개: 2022.12.30
OTT: 티빙줄거리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 판타지
액션 드라마
관전 포인트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주도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이다. 화려한 영상미부터
각양각색 개성으로 중무장한 캐릭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매력을 더하였다.
화이트 노이즈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35분
감독: 노아 바움백배우: 아담 드라이버, 그레타 거윅 등
개봉: 2022.12.30
OTT: 넷플리스줄거리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관전 포인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매력인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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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신 존재들의, <보호자>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온라인 및 오프라인 상영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자 Brother's Keeper(2021)
터키 외, 드라마, 85분
감독: 페리트 카라한
성가진 존재들의, <보호자>
조각난 비누를 하나씩 든 아이들이 속옷만 입은 채 줄을 지어 좁은 복도를 걸어간다.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리지만, 누구도 줄에서 벗어나지 않고,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공용 샤워실로 들어간다. 한 부스에 세 명이 짝을 이뤄 한 바가지를 번갈아 사용해 샤워하는 아이들. 빠르게 머리에 비누를 문지르고 물을 끼얹으며 씻는 유수프. 잡담은 필요 없다. 15분 안에 씻지 않으면 다음 조를 위해 무조건 나가야 한다. 이들을 긴 막대기를 들고 감시 중인 감독관. 그는 보일러실이 있는 벽 맞은편에 서서 큰 소리로 뜨거운 물을 틀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날카로운 목소리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감독관, 그는 유수프와 같은 또래다.
정신없이 물을 머리에 끼얹던 유수프는 맞은편 부스에서 씻고 있는 절친 메모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메모가 실수로 비누를 물을 받는 통에 떨어트리면서 함께 씻던 두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구가 훨씬 작은 메모와 말다툼이 일어나면서 샤워실이 소란스러워지자, 도끼눈을 한 채 등장하는 함자 선생님. 그는 감독관을 먼저 혼내고, 샤워시간에 싸움을 한 세 명에게 강제로 찬물로 샤워할 것을 명한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앞에 서 있는 감독관 때문에 뜨거운 물을 틀 수가 없던 그들은 결국 영하 35도에 15분간 얼음장 같은 물로 목욕을 마친다. 이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던 유수프.
다음날 아침, 유수프는 메모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발견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린다며 서 있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는 친구를 부축하는 유수프. 유수프는 메모를 보건실로 힘겹게 데려간다. 전쟁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고자 필사적으로 그를 끌고 가는 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영화 <보호자>는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산맥에 위치한 남자 공립 기숙학교를 다니는 유수프에게 일어난 일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터키 기숙학교에 얼마나 폭력과 억압이 만연해 있는지를 고발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자신이 누굴 책임져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선택사항이란 착각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굳이 도덕적, 윤리적 측면으로 생각을 바꿔 이해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의무'니까.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보호자>엔 너무나 당연하듯, 우리가 기대한 '보호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수프의 성장을 위해 그의 정감 있고 따뜻한 멘토 역시 없다. 대신 눈도 뜨지 못한 채 색색거리며 누워있는 메모를 '성가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다. 열한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이다, 학생을 책임질 '의무'를 가진.
"공립학교를 다니는 덕분에 여기서 자고, 배불리 먹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하고 매달 용돈도 받는데 왜 불평불만이 많아!
용모는 청결하게 복장은 단정하게 자세는 바르게!
100m 밖에서 너희를 봐도 '우리 학교 학생이다' 할 수 있게, 밖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국가의 자산이자 건실한 시민이 되어라!!"매일 아침 운동장 강단 위에 서서 대놓고 자기 얼굴에 침 뱉지 말라고 학생들을 협박하는 교장선생님. 그는 유수프가 메모를 보건실로 데려가 준 날에도 학교 교칙을 어긴 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이발기로 그의 머리 반을 밀어버렸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이발기를 드는 일이 교장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 이를 보는 유수프의 눈빛엔 깊은지 짐작할 수도 없는 두려움과 터트릴 수 없는 울분이 가득했다.
점심시간, 배식 줄 앞에 서서 아이들의 식판을 검사하는 셀림 선생님은 유수프의 앞에 가던 학생을 불러 세운다. 그가 유수프와 같이 빵 두 개를 챙겼기 때문이다. 급식실이 떠나가듯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선생님. 빵 하나론 부족했다는 학생의 말에, 다른 친구의 식량을 훔쳤으니 오늘 점심을 굶으라 명령한다. 예외는 없다. 유수프는 재빨리 메모를 위해 집은 빵 하나를 놓고 셀림 선생님을 지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모든 학생이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야만 기도를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유수프는 선생님 몰래 자신의 빵을 반 잘라 주머니에 숨긴다. 메모를 주겠다고 식판 위에 빵을 올려놓고 나가는 순간, 또 뺨이 날아가고 말 테니까.
그러나 메모는 빵을 먹지 못한다. 유수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다시 셀림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선생님은 이미 약을 먹었고 열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는 듯 짜증을 낸다. "그럼 됐지. 더 할 거 없잖아." 그는 늘 바쁘다. 교육자로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다른 선생들과 순번을 돌아가며 기숙사 당직을 서야 하고, 고집 센 교장선생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아이들에게 폭력을 써서라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셀림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환장 쇼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밥도 먹지 못하고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메모의 상태를 세 번째 보고 받은 셀림은 그제야 보건실로 향한다. 직접 메모의 상태를 보고 나니 심각해지는 그.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엄청난 눈과 산맥 안에 고립된 학교에서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사람도 방법도 없다. 더구나 핸드폰 신호로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황. 보건실 안에 나뒹구는 빈 약통을 보던 셀림은 유수프에게 '목욕시간에 있었던 벌' 이야기를 듣자마자 함자 선생님을 찾는다.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에, 메모와 유수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책임전가 현장은 영화 내내 놀라울 만큼 계속된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함자 선생님은 찬물로 목욕을 시킨 걸 인정하지만, 늘 그렇듯 말썽꾸러기들의 탓을 한다. 감독관을 불러 싸대기를 날리며 "너 때문에 친구가 아파서 누워있잖아!"라고 윽박지르는 건 서비스랄까. 교장은 학생이 알려준 핸드폰 신호 찾는 방법을 이용해 119와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물론 중간중간 함께 샤워했던 두 친구를 불러 "쓸모없는 것!" 책임 전가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어젯밤 기숙사 당직을 섰던 케냔 선생님이 합류하면서, 아파 보였던 메모를 그냥 자게 한 사실이 알려진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은 교사지 경비원이 아니라 못 박고, 다른 선생님들 역시 유일하게 차가 있는 직원을 도시로 치즈를 사 오라 시킨 교장의 얘길 꺼내며, 교장에게까지 책임이 있음을 피력한다. 유수프는 이 난리부르스를 눈도 뜨지 못한 메모를 보며 듣고만 있을 뿐이다.
마침내 교장은 가끔 보일러 실에서 몰래 샤워하는 학생들이 있단 말에, 보일러 담당자인 '아카프'를 호출한다. 그가 맘 놓고 비난하고 힐난할 수 있는 대상은 학생들 말고 더 있었다. 자신의 권력 아래 있는 모든 이 중 가장 하찮다고 여기는 보일러 담당자. 비로소 아카프의 입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메모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엔 분명한 사건이 또 있었다.
차가운 물로 목욕해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친구를 위해, 아카프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보일러실에 들어가 함께 목욕한 절친 유수프. 유수프는 자신을 둘러싼 선생님들에게 어젯밤 저녁에 있었던 이야기를 울며 털어놓는다. 메모와 장난치다 실수로 쇠로 된 파이프를 샤워기로 건들었고, 그 파이프가 메모의 머리에 떨어졌다는 것.
파이프가 빠지는 바람에 그날 아침부터 보일러가 고장이 났던 거였고, 메모는 쓰러져버렸으며, 그렇게 자부했던 공립학교의 시스템이 사실 탈이 날 수밖에 없던 휴짓조각이었음이 밝혀졌다.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병풍 신세로 전락하고, 선생님들의 불만과 교장의 불편함과 귀찮음이 뒤섞여 있던 보건실 안에서 마침내 어른들은 책임자를 선정한다. 유수프 역시 더 이상 눈발을 해치며 선생님과 학생들을 호출하지 않아도 된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았나.
오직 이 아이만이 '골치 아픈 사건'을 '철없는 애들의 실수'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일주일에 딱 한 번 샤워를 하는데, 15분 동안 세 명이서 한 바가지로 물을 써야 하고, 급식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서 모두 같은 양의 밥을 먹어야 한다. 짓궂은 호기심 따위로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순간 일렬로 서서 뺨을 맞거나 이발기에 머리를 맡겨야 한다. 자,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다. 보일러실에서 몰래 샤워를 하는 아이들이 메모와 유수프가 처음이 아니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쓰러지는 메모와 같은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다. 그럴 때마다 책임질 자는 사건 당사자나 주변 아이가 될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전부 학생들로 판명될 것이다. 보건실을 담당하는 감독생은 아픈 아이들에게 평생 해열제만 처방할 거다.
그것에 이 학교에 사는 아이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보건실 창문에 달린 안전 창살이 감옥의 창살로 변해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삶은 결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거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공부하고 밥 먹고 잠을 자면서 위대한 시민으로 크겠다는 우렁찬 학생들의 목소리만 담 넘어 들려오겠지.
<보호자>에서 유일하게 창살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유수프뿐이었다. 미끄러운 보건실 문 앞에서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바로 유수프였다. 보건소 바닥이 눈이 녹아 미끄러워 매번 들어올 때마다 중심을 잃고 마는 선생님들과 아이는 달랐다. 그들은 유수프와 메모의 이름을 수없이 까먹어 다시 물어보는 것과 같이, 너무나 간단한 보건실 바닥 문제조차 해결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직접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 없는 어른으로 인해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곧 나를 살리기 위한 열망이었음에도, 아이는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와 창백한 입술, 짙은 다크서클과 폭 들어간 두 눈, 그리고 불안한 검은 눈동자. 유수프는 눈을 힘겹게 뚫고 온 구급차에 실려가는 메모를 홀로 보건실 안에서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시 돌아온 샤워실 안, 물을 머리에 뿌리는 유수프의 옆모습, 그의 머리 한가운데가 쭉 길이 나있다. 이발기로 유수프의 목덜미를 잡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그를 '메모를 죽인 장본인'으로 선포했을 교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소름 끼치는 상상을 길게 할 수 없다. 엄마에게 매몰차게 '버텨라'란 말을 들으며 숨죽여 울던 유수프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더는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이나 원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을 넘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유수프의 텅 빈 눈. 사랑도, 우정도, 희망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아이가 자신의 영혼마저 버린 것 같은 공포, 이 공포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더 섬뜩한 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이 전부 아이들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샤워실 통로를 돌아다니며 윽박을 지르는 감독관과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건실 선생님 노릇을 하는 감독생을 봐라.
그래, 유수프가 사는 세상은 원래 이랬다. 다른 세상은 없다.
<보호자>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고통은 아이들의 몫이겠지.
누굴 탓할 수조차 없게 만든 강압적인 통제와 억압,
<보호자>는 보여줬을 뿐이고, 난 순식간에 끌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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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 되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전화기. 컴퓨터. 팩스. 모니터. 프린터. 우리 집이나 회사에서 쓰는 기계는 아주 많다. 작게는 스마트폰 충전기도 있고 좌변기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컴퓨터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게임도 할 수 있고, 지금의 나처럼 글도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으로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도 있고, 전화도 할 수 있으며 카카오톡도 할 수 있다. 프린터는 또 얼마큼 중요해? 우리 일상의 중요한 문서들을 뽑으려면 프린터기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발달한 현대문명 덕에 우리는 편한 생활을 살고 있다.
근데 이렇게 발달한 현대문명 때문에 많은 문제들에 부딪힌다. 난 감성적인 사람이라 '이거 예쁘다' 싶으면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 얼굴이 보이면 그것이 안 나오게 비스듬히 찍거나 아예 촬영을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게 불편한 건 아니다. 모두의 얼굴은 소중하지 않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기 때문에 뭐 귀찮다 말다 할 것도 아니다. '난 이래서 이런 이유가 있어'라고 주장하기보다 타인의 존재부터 인식하는 것이 이 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렇게 누군가의 얼굴을, 또 신체를 찍어 올리는 것이 본능적인 선에서 꺼려지기도 한다. 나만 이렇지는 않겠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이런 특성을 가진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름 현대문명이 만든 일상 속의 싫지 않은 페널티쯤 되겠지. 당연한 상식이기도 하고. 자.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이 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보기 드물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색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 번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보자.
1.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제목이 <복사기>인 것과는 다르게 스마트폰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극 내내 스마트폰이 굉장히 중요한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있는데 이게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연극 팀이 흥행에 성공함에 따라 열린 파티다. 주인공 수르는 이 연극팀의 웹사이트 디자인 팀이었다. 팀원들과 파티에서 함께 노는 주인공 수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있는 학교의 장학금 심사에 겨우겨우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심사장에 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신은 자격에서 탈락했습니다. 왜냐고요? 인스타그램에 술 먹고 노는 사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다. 근데 이게 그러다 못해 가족들에게 알려지고 수르는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와 수르는 베프 아민과 함께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우리에게 진짜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지 반문한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1)에서 쓴 시놉시스를 보면 미스터리/스릴러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맞다. 이것은 스릴러 영화가 맞다. 그리고 후반부의 전개를 통해 이 영화가 통념이 만든 혐오와 사회 시스템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활에서 벌어지는 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근 몇 년간을 관통했던 세계의 핫 토픽으로 결론을 마무리짓는다는 뜻이다. 또한 연대. 통념. 혐오. 억압. 보수성. 빈부격차에 의한 권력 차이. 이런 것들에 의해 꽉 잡혀있는 한 국가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탁월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 영화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면 웅장해지는 기분도 느껴질 것이다. 난 감독이 성격이 따뜻한 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사실 장르영화서도 탁월하기 때문에 어렵다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배드 지니어스>를 재미있게 본 분들이라면 코드가 맞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 중반부에서 사건의 전말이 역전되기까지 살짝 전개가 루즈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형식이 좀 해석이 필요한다던가 그렇지는 않다.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구멍은 없으니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듯.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없으니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극장과는 다른 되감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으니 모바일 시청이 가능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4.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가요?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언어를 쓰는 나라라고 한다. 난 이 인도네시아를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나에게 있어 언어는 영화를 보는데 살짝의 비중이 있다. 한글이나 영어를 쓰는 배우들의 대사는 이해하기가 쉬운데 나머지 영화들은 나에게 있어 몰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난생처음 보는 인도네시아어가 낯설기는 했지만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아. 조연급의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엄청 이질적인 느낌은 아니라서 보는데 역시 이상은 없을 듯. 굳이 저예산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감독의 연기 디렉팅은 충분히 좋았다.
5. 플롯 외의 부분은 어떤가요?
이게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미장센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촬영을 한 티가 팍팍 나긴 한다. 메시지, 연기 빼고는 이런 점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듯. 아, 스마트폰의 영화라고 해서 제목 <복사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복사기도 나름 핵심 키워드로 작용한다.
6.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아마 엔딩부의 사건에서 연상되는 몇몇 사건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그거 굳이 뭐다 설명 안 해도 다들 알고 있잖아? 재미있게 볼 각오만 장전되어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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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페셜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박강아름과 정성만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사진을 찍는다. "보리야 이리 와"라며 들뜬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부르는 아름의 모습은 달달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결혼은 아름의 표정처럼 달지 않았다. 가끔은 삼키기 힘들어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아름과 성만은 진보 정당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다. 당시 아름은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며 영화감독의 길을 밟고 있었고 성만은 정당 활동가이자 식당 종업원이었다. 남는 시간 글을 쓰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프랑스에서 예술을 배우고 싶다는 아내 박강아름에 의해 프랑스로 떠났다. 아름은 성만에게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당신은 요리를 공부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성만은 아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름과 달리 성만은 프랑스로 날아가서 이룰 꿈이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 타의로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간 개구리는 마치 소중한 서식지를 잃어버린 존재처럼 시들어간다. 박강아름은 그런 성만이 신경 쓰이지만 출산과 학교 생활로 지쳐 본인 몸을 돌보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경제와 행정 담당 아내 박강아름과 집안일과 육아 담당 정성만의 현실적인 결ㅁ혼 생활을 담아낸다.
집밥으로 만나는 집 밖 사람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름은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요리사였던 성만의 특기를 살려 주말에만 한국식 집밥을 파는 식당을 열게 된 것. 부부의 식탁은 어느새 유학생이나 교포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공유 식탁이 되었다. 성만의 우울한 마음은 집밥으로 만난 집밖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했지만 그들의 경제 사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만은 좋은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내놓는 걸 좋아했고 집안의 경제를 맡고 있는 가장 박강아름은 그 모습이 아니꼬왔기 때문. 첫 번째 '외길식당' 프로젝트는 오래 가지 못해 마무리됐다.
박강아름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고립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찍자고 제안했다. 영화의 초중반을 촬영하고 나서 성별의 역할이 바뀐 가부장제를 인식했다. 사실 매일 서포트를 받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서 제가 '오늘은 나 서포트해줘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덧칠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 본인의 시각이 가미됐을 카메라. 그 카메라가 자신의 가부장성을 담은 것이다.
아름은 가부장성을 인식한 이후에도 쉽게 본인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경제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사회적 성 역할이라는 게 바뀔 수 있음을 두 부부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주부우울증에 걸린 성만은 토마토 대신 체리토마토를 사왔다고 타박하는 아름의 말에 하루 동안 가사 파업에 들어간다. 흥청망청 돈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겨우 3유로 커피 프라페를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또한 외관상 특별해보이는 그들마저 여느 부부처럼 끝없이 갈등한다. 아름은 결국 '외길식당'이 아니라 본인들의 결혼에 대해, 더 나아가 결혼의 의의에 대해 주제를 확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외길식당>이 아니라 <박강아름 결혼하다>인 것. 박강아름 시각에서 장면들이 보이니 <박강아름과 정성만, 결혼하다>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성만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더욱 어렵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달리 아름은 원래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신 초기 아름은 나흘 연속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속을 게워냈다. 막달에는 한 달 내내 변비에 시달려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고통은 계속됐다. 그는 용변을 볼 때 성기가 흘러내릴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출산 후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 내내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출산 직후 여성을 위한 책은 없었다고 회의를 표했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었던 암스테르담 영화제에 본인의 작품이 초정작으로 선정됐지만 그는 결국 가지 못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각 아름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접근하기도 한 아름.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름 대신 육아를 책임진 성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니던 어학원까지 잠시 휴학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름도 성만도 딸 보리를 사랑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출산 또한 그들에게 유쾌하고 행복하기만 한 경험은 아닌 것이다.
지켜야 하는 생명부터 생활비, 챙겨야 할 서류까지 늘어났다. 아름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두 번째 외길식당을 열고 다양한 커플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혼과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의 차이는 뭘까. 본인의 꿈 대신 사랑만 선택해 해외로 이주한, 소위 '결혼망명'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화가 오갈수록 질문들은 더 많아진다. 아름은 다시 연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표현했다. 목이 붓도록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지만 궁금증은 당최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보며 고민해보는 것이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이 영화의 끝부분, 아름-성만 부부와 반려견 슈슈, 딸 보리는 덩케르크 해변을 찾는다. 아름이 본인의 카메라에 그 바다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파도는 없다. 파도는 무겁게 오간다. 유모차는 모래 위에서 매끄럽게 밀리지도 않는다. 성만은 몸이 아프다며 투덜댄다. 아름은 그래도 이왕 온 것이니 비를 맞으면서라도 바다 가까이에 가보자고 우긴다. 결국 그들은 보리가 탄 검은색 유모차를 함께 들고 기어이 모래를 밟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다.
영화 출연은 물론 촬영부터 편집까지 담당한 박강아름. 그가 이 부분을 영화의 엔딩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 터다. 그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을 결혼이지 않을까 짐작했을 것이다. 부부가 들어야 되는 건 유모차가 아닐 수도 있다. 생활비일 수도, 챙겨야 할 서류일 수도, 서로의 꿈과 인생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건 보기보다 무겁고 손이 저린 일이다. 한 명이 독박 운반하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두 명이라도 쉽지 않은 행위인 것. 심지어 그게 진정 의미있는 일인가는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몇 번이고 대답이 달라질 터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아름-성만 부부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개인의 일기이자 결혼에 대한 묵직한 물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박강아름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내가 결혼하고 해외로 떠나자 해도 나 잡을 거야?", "결혼은 확실히 연애랑은 다른 것 같아", "팍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재미와 만듦새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박강아름은 성공했다. 그들도 박강아름처럼 결혼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오늘(19일) 정식 개봉한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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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고, 특히 류승룡 배우의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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