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6-12 12:46:57
최후의 돈키호테, 귀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이 글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한데 워낙 유명한 영화가 재개봉한 거니까 스포일러라고 하지 맙시다(?).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를 향한 나의 감정은, 영화를 볼 때마다 변해간다. 사실은 '변해간다.'라는 말보다는 더해진다.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그의 인생은 남루하다거나 볼품없다는 말 외에는 수식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달걀 몇 알 만으로도 적을 만들기 딱 쉬운 성향을 가졌기에 오늘만 살겠구나라는 한심함도 그 위에 한 겹. 그걸 돈과 시간을 들여 지켜만 봐야 하는 내가 느끼는 아슬아슬한 위기감도 한 겹. 항상 실없고, 때로는 사기꾼처럼 보였으며 임기응변이라 부르기엔 하찮아 보이는 잔기술에서 오는 어이없음도 한 꼬집.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쌓아 올리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연민과 쓰라림, 안타까움을 합친 그 무언가로 가득 차서 한동안 영화관 의자에 깊게 파묻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압도되곤 한다.
분명 아들인 조슈에(조르지오 칸타리니)에게 하는 모든 말이 거짓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풍자하고 있는 이 현실이 아비인 자신은 겪어 나가야만 한다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늘 나를 울린다. 이 거대한 연극이 사실은 아들만을 위한 것임이 아닌, 자신 또한 인생을 살면서 겪어와야 했지만 외면할 수 없어 다른 것으로 치환해야만 버틸 수 있을 만큼 절실했을 삶을 향한 그의 태도에 언제나 난 패배한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속속들이 다 보여주지 않는, 그가 겪고 있는 아픔들을 보는 나의 마음마저도 핏기를 잃는다. 목숨의 연명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처절함을 한낱 수수께끼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무심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단 한마디의 불평도, 불만도 소리 내지 않는 의연함에 어쩐 일인지 힘이 빠진다.
분명 귀도라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돌을 던졌을 때 마치 오백 마리 쯤의 개구리가 튀어 다니는 것 마냥 파닥파닥 거리는 자잘하고 얕은 파문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거늘. 어쩐 일인지 내가 던진 돌은 한참이나 군소리 없이 떨어진 후에야 툭. 하고 이미 누군가 너무도 많이 던져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자리 잡은 다른 수많은 돌들 사이에 파묻혀 버린다.
그제야. 아니 또 한 번 귀도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작품의 제목부터 그의 인생에 이르기까지 거짓말로 점철된 채 변명만 하는 삶이 아닌. 인생의 무게에서 도망치느라 수세에 몰린 궁지속의 삶을 사는 것 마저도 아닌. 겁도 없이 탱크에게 몇 번이고 달려들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는 돈키호테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또 눈물짓고 반성하며 그에게 용서를 빈다.
그는 또 언제든 내게 다가와서, 그가 늘 그랬던 것처럼. 눈 한번 질끈 감고 맞서봐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마치 최후의 돈키호테인 마냥 돌진할 것이다. 알고 보니 진실과 진심으로 가득 찬 그의 인생이 실제로도 아름다웠음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그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서.
[이 글의 TMI]
1. 이젠 귀도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서 배가 고플 지경이었음.
2. 상 받을 때 모습 마저도 귀도 그 자체였던 감독님.ㅠㅠ
3. 델리만쥬 들고 영화관 오지 말랬지!! 하나 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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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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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대만 드라마 속 역사 이슈
동명 게임으로부터 확장된 스토리에 흥미가 있다면, 그리고 학교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원작 게임으로부터 3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원작보다 스토리에 힘이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게임상의 스토리만 기억하기를 원한다면, 비추한다!또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호러/공포' 장르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공포물을 기대한다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대만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
아픈 역사는 오래 기억된다. 보통의 사람을 등장인물로 내세워도 '어쩔 수 없는 시대상'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이며, 그 역사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녹아들어 있다.
<반교:디텐션>은 자국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대만이 만든 게임을 원작으로 하며, 게임이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었다.
<반교:디텐션>의 줄거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소녀 '팡루이신'의 원혼 덕분(때문)이다.
원작 게임과 이 드라마를 연결하는 주인공, 팡루이신이 생전에 추이화 학교를 다니던 때는 1960년대로, 당시 대만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밀린 국민당이 이주해와서는 대만을 압박 통제하던 시기였다.
이 전에 있었던 2.28사건으로부터 국민당의 계엄령 시기까지는 대만의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드라마와 게임 실황을 보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 여러 민주화운동들, 제주 4.3 사건 등을 소재로 만든 콘텐츠를 볼 때와 유사한 기분이 든다.
아마 외국인이 영화 <1987>을 본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이토록 끔찍한 이야기가 나온 시대적 배경, 역사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대학 재학 중, 중국 천안문 사태를 소재로 한 연극 <차이메리카>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당시 연극 홍보 페이스북에서 본인이 중국인 유학생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의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중국의 어린 세대들은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연극을 중국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드라마 <반교 디텐션>을 보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중국은 이 콘텐츠를 차단했을까, 아니면 '역시 공산당이 더 낫다'며 시청을 권했을까?
현재 국제사회에서 파급력을 갖는 대만과의 수교 이슈
드라마 감상 후, 호기심이 생겨 조금 조사를 해보니, 대만과 중국의 갈등은 '역사 속 이야기'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대만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중국에 속한 구역으로 인식했다.
다른 나라, 예를 들어 미국도 이를 받아들이며 1978년에 대만과 단교를 선언했고, 1979년 1월부터 중국과 공식 수교를 하기도 했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4025306, 중앙일보, 2021.4.1, 서유진 기자)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대만과 미국의 외교 상황이 다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미국 NASA 홈페이지에서 대만이 독립국가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전에는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에, 단교 42년 만에 대만 대표가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10121074200009?input=1195m, 연합뉴스, 2021.1.21)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행보도 보인다. KOTRA의 2018년 뉴스를 보면, 중미 국가들이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교류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한다.
*이 후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여전히 친중 행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또한, 이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중 전선을 구축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4월 3일에 한중 외교회담을 진행했다. 4월3일 이전, 이 회담에 대해 보도한 기사에 웃픈 표현이 나와 있다.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훈수를 듣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회담 참석자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외교 안보에서 중요한 동맹국으로, 중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최대 교역국으로 칭하며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22K0TIBZR9, 서울경제, 2021.3.31, 강동효 기자)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택 '하지 못하는'상황에 처한 우리나라 상황이 안타깝다.
조사하다 보니, 타국의 과거 역사 못지않게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외교상황의 문제도 난감하다.
OSMU, 원 소스 멀티 유즈
세계적으로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로 뻗어나가는 방식. 웹툰의 영화화와 완구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가 활발하다. 영화 오리지널 콘텐츠보다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 콘텐츠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그 예로 애니메이션 <신의 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 <미생> 등이 있다.
웹툰 활용 활성화를 계기로, 일진 미화가 아닌 다양하고 매력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작품화되고, 웹툰 시장에서도 주류 장르의 변화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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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탄한 서스펜스로 빚은 올해 최고의 엔딩
외롭다. 씁쓸하다. 우울하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단어들은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그래서 그 어렵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같은 예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분명하게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모호하니까 다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예술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거 아니겠어?
스릴러라는 장르는 참 든든하다. 서스펜스라는 영화의 요소가 있다. 긴장감을 부여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운 이 것. 참 어렵지만 장르적인 쾌감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잘 넣으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알든 모르든 참 재미있는 범죄/스릴러 영화. 나의 취향이 이거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 중 한 60%은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영관이 없어 짜증이 났었다. 근데 vod가 일찍 풀려서 빠르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암튼 이번 6월에도 잘 만든 스릴러 영화가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질주하다 달성한 탁월한 엔딩으로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을 수작이다. 탁구의 대명사가 될 영화 <실종>이다.
없어지니 보고 싶었던
어디론가 뛰어가는 주인공. 카에데는 어떤 연락을 받고 후다닥 달려가고 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빠가 좀 모자라서요.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쳤다. 화가 난 카에데. 여러모로 밉상인 아빠에게 한번 시원하게 짜증을 냈다. 그래도 둘은 부녀관계다. 아빠와 딸 아니랄까 봐, 둘은 친구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아빠 하라다는 딸 카에데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나 누구 본 적 있는 것 같아." "누구?" "연쇄살인마. 그 요즘 현상수배 걸린 그놈."
탁구장을 운영했던 사토시 가족. 사업에 실패하고 여러모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탁구장을 재개하기 위해 드는 돈은 그 연쇄살인마의 현상금으로 충분했다. 신고하고 포상금을 타겠다는 하라다. 뭔 소린가 싶은 카에데. 그러나, 그다음 날에 일이 벌어졌다. 아빠 하라다가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없이. 카에데는 사라진 아빠를 찾기 위해 추적에 나선다. 아버지가 일했던 공사장에 가 본 딸. 거기서 하라다가 봤다던 연쇄살인마 야마구치 테루미를 보게 된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남자는 살인마가 맞았다. 딸은 사라진 아빠의 행적을 찾기 위해 연쇄살인마를 쫓는다. 숨겨져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정통파 스릴러
이 영화는 근본이 탄탄한 스릴러다. 범죄 수법 잔혹하고. 범인 캐릭터 확실하고. 추격극 서스펜스 꼼꼼하고. 정말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탄탄히 짜여있는 영화다. 일단 범죄 수법이다. 어디선가 본 범죄 방식일 수도 있다. 약간 애니메이션 코난 시리즈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긴 한다. 근데 기시감이 들어도 그 방식이 특이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중반부쯤에 굉장히 중요한 살인 장면이 있다. 이 살인 장면 자체의 수위가 그렇게까지 세진 않다. 근데 엄청 자극적이다. 순수 연출 방식으로 끌어낸 잔혹함이다. 아마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살인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살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전후의 살인사건 수위는 세다. 근데 이 수위가 센 것만으로 이 영화의 서스펜스가 유지되지 않는다. 전반부의 추격전이 후반부의 어떤 갈등구조로 이어지는 방식은 이야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전반부의 추격전에는 인물의 특성을 경제적으로 활용한 느낌이다. 츤데레인 카에데. 겉으로는 아빠에게 툴툴대지만 아빠에게 의지하고 있다. 근데 여자 중학생쯤 되는 나이다. 여자 중학생이면 사춘기다. 이성에 눈을 뜬 시기다.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스멀스멀 접근하는 동급생 친구와의 로맨스 코드가 재밌기도 하고 긴장감도 유발하며 극을 이끈다. 또 물리적으로 이 사람은 성인에게 이길 수 없다. 정면대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여러 수를 둔다. 이 수를 둔 방식이 후반부에게도 작용하며 경제적인 효과를 낸다.
후반부는 잔혹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악역의 시점에서 극을 이끈다. 이때 앞에서 썼던 살인 장면을 위시로 악역의 인물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당위성이다. 이 당위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적으면 스포일러다. 다만 확실한 건 전반부의 추격극과는 다른 방식의 정통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추격하는 사람이 누구고,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바꾼 시점 전환은 탁월했다. 아직도 후반부의 장면이 기억난다. 과연 내가 어느 쪽을 응원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이런 영화의 구성은 왠지 모르게 <셔터 아일랜드>와 <세븐>, <사이코>가 생각난다. 히치콕과 핀처, 스콜세지의 손맛이다. 물 흐르듯이 샤샤삭 지나가는 각본의 몰입감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왠지 모르게 잘 안 보이는 것 같은 정통파 스릴러다. 근데 이 영화는 뭔가 잊히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부처 아저씨
이 사람을 예전에서 짤로 본 적 있다. 바로 사토 지로다. 시트콤에서 부처로 분장해서 웃기는 역할을 했었다. 이게 일본 특유의 유머 감성이 있다. 이 유머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 톤과 비주얼이다; 한국인인 나는 일본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볼 일이 없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던 나. 이 영화에서 아마 선명하게 이 캐릭터가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 인물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그렇게 보이지?'다. 사실 아닌 거 같지만 이 인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끊임없이 감독이 연출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소화해야 하는 인물의 내면을 복사+붙여 넣기 하듯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번 <큐어>에서 야쿠로 쇼지를 일본 송강호라고 했듯 이 아저씨는 과연 일본 최민식인 것 같은 느낌이다. 연쇄살인마 역을 맡은 배우보다 더 개성이 강한 역할을 보여주는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 카에데 역을 맡은 배우도 귀여웠다. 초중반부에 이걸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신이 있다. 이때 은근슬쩍 넘어가는 영화의 연출을 살리는 좋은 표정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면 연기를 잘 소화했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과 잘 맞는 것 같았다. 또 액션부터 감정연기까지 폭발하는 연기를 잘 이행한다. 그리고, 엔딩 신에서 이 배우의 잠재력은 폭발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엔딩
엔딩에 대한 해석을 어느 정도 써도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예상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글쓴이가 보고 나서 헉?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급부를 찔렀다. 그리고 설마 그게 아닐 거야 생각했다. 엔딩으로 신이 전환된다. 두 인물을 보여주고 엔딩으로 마무리짓는다.
이 엔딩을 묘사해보자면 텅 비었다. 이 텅 빈 의사표현을 이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으로 성사시켰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지나치면 지치다는 느낌이 든다.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치밀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재 일본의 세태는 비어버린 영화의 정서를 느끼기 충분하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다시 합치고 싶었던 가족. 가본 적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 방법이 없는 일본 사회가 융합되어 웰메이드 스릴러의 저력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아마 올해 개봉된 외국영화들 중에서 손 꼽힐 것 같다. 얼마 없던 상영관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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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하는 리부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 우주의 행성을 집어삼키는 ‘유니크론’을 섬기는 ‘스커지’(피터 딘클리지). 그는 ‘테러콘’을 이끌고 '맥시멀' 행성을 급습한다. 맥시멀이 지키는 '트랜스워프 키'를 확보하면 유니크론이 은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 이에 '옵티머스 프라이멀'(론 펄먼)과 맥시멀은 지구로 도망친 후 키를 숨긴다.
어느 날, 고고학자 '엘레나'(도미니크 피시백)는 트랜스워프 키를 우연히 찾아낸 뒤 실수로 키를 작동시킨다. 이에 지구에 피난 온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컬런)과 오토봇은 새로운 친구 '노아'(앤서니 라모스)와 맥시멀의 도움을 받아 키를 찾기 시작한다. 고향 행성 사이버트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키의 위치를 알아낸 스커지가 지구에 도착하자 오토봇과 맥시멀은 위기에 처하고, 그들은 운명을 건 전투에 돌입한다.
리부트 시리즈의 본격적인 시작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흥행한 이후 할리우드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매료됐다. 새롭게 출범하는 시리즈도, 기존의 프랜차이즈도 마블의 발자국을 따라가기 바빴다. 일례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톰 크루즈가 출연한 <미이라>(2017)로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렸다. '해리포터'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도 '위저딩 월드'로 재편됐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5편인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북미에서도, 한국에서도 흥행에 실패했다. 월드와이드 흥행도 4편의 절반 수준이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 계획은 취소됐다. 본래 스핀오프로 기획된 <범블비>가 급하게 리부트 시리즈의 첫 타자로 낙점됐다.
<범블비> 이후 5년 만의 속편인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리부트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을 알린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범블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로봇과 인간의 교감에 주목하는 가운데, 간결해진 시나리오와 액션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아직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욕심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계인과 인간의 교감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소수자라는 특징에 주목해 인간과 외계인의 관계를 풀어낸다. 노아는 히스패닉이다. 그는 미국 주류 사회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미 육군 출신인데도 취업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오토봇도 지구에서는 소수자다. <범블비>에서 사이버트론을 탈출해 지구로 피신한 오토봇. 그들은 전편에 인간에게 쫓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숨어 지낸다.
양측이 처음부터 협력하지는 않는다. 노아는 유니크론이 트랜스워프 키를 이용해 지구를 파괴할 거라고 우려한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트랜스워프 키를 활용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노아는 키를 파괴하려 하고, 옵티머스는 지키려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공통점을 계기로 둘은 힘을 합친다. 가족애다. 노아에게는 아픈 동생이 있다. 돈이 없어 병원 진료를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범죄를 저지른다. 옵티머스에게는 말을 못 하는 범블비가 있다. 자기를 믿고 지구에 온 동료들도 있다. 고향에 대한 집착은 리더의 책임감처럼도 보인다. 이 부담과 책임감은 노아와 옵티머스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기점이 된다.
인간을 지렛대 삼아 트랜스포머를 살리다
그 결과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핵심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의 존재감이 극대화된다. 물론 마이클 베이 버전에서도 옵티머스는 멋진 캐릭터였다. 정의롭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하지만 동시에 일차원적이었다. 무조건적으로 인간 편을 들며 지구를 수호하려 했다. 4편에서는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와중에도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의 말 몇 마디에 설득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옵티머스는 인간을 불신한다. 맥시멀이 트랜스워프 키를 숨기는 대신 한 인간 부족에게 맡겨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란다. 인간에게 쫓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처지를 노아에게 오버랩하고, 맥시멀과 인간의 동맹을 목격한 후 생각을 바꾼다. 마음을 열고 인간을 돕기로 한다. 이 전개가 예상보다 설득력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옵티머스는 어느 때보다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리더로 보인다.
트랜스포머에만 집중하라
노아와 옵티머스의 교감은 간결해진 시나리오 덕분에 더욱 빛난다. 이전과 달리 음모론이나 가상역사의 비중은 줄었다. 페루 구스코 신전과 잉카 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딱 잘라 선을 긋는다. 달 착륙 음모론이나 아서 왕 전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전편들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한다. 엘레나가 나스카 지상화도 너희(맥시멀) 작품이냐고 묻자 프라이멀이 아니라고 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트랜스워프 키를 찾는 오토봇, 테러콘, 맥시멀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다. 트랜스포머보다 인간 주인공과 미군에 주목한 이전 시리즈의 잘못을 피해 간다. 사실 초반에는 인간 캐릭터 비중이 크다. 다만 노아, 엘레나, 오토봇이 한 팀을 이루는 순간부터는 확실히 트랜스포머가 주인공이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프라이멀이 스커지와 대립하고, 노아와 엘레나가 양념을 친다. 덕분에 '미라지'(피트 데이비슨) 같은 오토봇이나 '에어레이저'(양자경) 같은 맥시멀이 자기 매력을 발산할 공간도 충분하다.
액션도 간결해진 각본과 조화를 이룬다. 트랜스포머의 특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단 모습을 자유롭게 바꾸는 트랜스포머의 특징을 적절히 활용한다. 일례로 미라지는 쓰레기차로 변신해서 박물관에 잠입한다. 페루에서도 오토봇은 자동차 상태를 유지하며 퍼레이드 쇼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자동차라는 한계가 명확한 오토봇과 지상과 수중, 공중을 오가는 테러콘도 명확히 대비된다. 마치 <트랜스포머> 1편 속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대결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부메랑이 된 장점
문제는 장점이 부메랑 마냥 단점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장점은 확실하나, 장점을 어떻게 살릴지 판단의 묘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에만 집중한 각본은 좋다. 그런데 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냈다. 범블비의 죽음과 부활이 대표적이다. 예측 가능하지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작위적이다. 편집도 부자연스럽다. 박물관 전투 후 스커지가 유니크론을 만나는 장면은 앞뒤 흐름에서 다소 유리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액션씬에서도 간결함이 독이 된다.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이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쏟아지던 마이클 베이 표 액션에 비하면 이번 편은 심심하게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액션 구성이나 스타일이 <트랜스포머> 1편과 유사하다 보니 아쉬움이 더 클 수 있다.
인간과 오토봇의 교감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일부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문제도 있다. 엘레나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박물관 인턴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한 그녀. 엘레나는 맥시멀이 숨긴 트랜스워프 키의 절반을 우연히 발견해 연구하다가 노아와 함께 온 오토봇과 조우한다. 즉, 그녀는 오토봇과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엘레나의 역할은 노아나 오토봇이 막다른 골목을 마주했을 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그친다. 트랜스워프 키의 남은 반쪽을 찾을 장소나 유니크론을 막을 시스템 입력어 모두 그녀의 연구 노트에서 운 좋게 튀어나온다. 1편의 여주인공 '미카엘라'(메간 폭스)와 비교하면 더 몰개성적이다. 미카엘라는 범블비나 오토봇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러나 액션씬에서 '자동차'라는 포인트를 살려 활약한 바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욕심
무엇보다도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향한 욕심이 문제다. 당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만 봐도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미라지가 마지막 힘을 짜내 변신한 슈트를 입은 노아. 그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 옆에서 함께 싸우며 유니크론을 패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스토리 전개만 놓고 보면 그의 활약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다. 아이언맨과 앤트맨을 연상시키는 슈트 때문은 아니다. 트랜스포머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가 갑작스레 활약하다 보니 다음 영화에서 트랜스포머가 다시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아이.조'의 등장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은 이 우려를 재확인한다. 트랜스포머와 지.아이.조의 크로스오버는 예견된 일이었다. 두 프랜차이즈 모두 제작사 해즈브로의 주력 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심지어 마블도)가 위기에 빠진 현황을 고려하면 무모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이 아쉬움 속에서도 여러 장점을 보여줬지만, 리부트 시리즈의 미래가 여전히 어두워 보이는 이유다.
Poor 형편없음
다음 기회를 얻기에는 충분하지만, 이내 불안감이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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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전주에서의 그림 같은 시간
2015년 시작된 영화 포스터 전시 겸 이벤트인 ‘100 Films 100 Posters’는 매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00편에 대해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본인만의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 영화제 기간에 갤러리 및 영화의거리 등에서 전시하는 행사입니다. 100 Films 100 Posters는 여타 영화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계와 그래픽 디자인계의 주목할 만한 협업 이벤트로서 영화인과 디자이너는 물론 관객의 많은 관심을 끄는 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상징하며 영화제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선보이는 전시이자 행사 프로그램인 100 Films 100 Posters가 올해 10회를 맞아 관광거점도시 전주시 사업과 연계하여 기존 영화제에서 진행한 방식에서 공간과 기간을 넓게 확장하여 특별전 형식으로 ‘100 Films 100 Posters X 10’을 개최하였다고 하여 씨네랩 기자단으로서 놓칠 수 없는 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았습니다.
100 포스터숍: 100 Films 100 Posters 2015-2024
일시 : 5월 2일(목) - 6월 16일(일) 10시-18시
*5월 13일(월) - 6월 16일(일) 기간에는 월, 화요일 휴무
장소 : 문화공판장 작당
올해는 특히 남부시장 2층에 위치한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6월 16일 일요일까지 열리는 1000 포스터숍이 인상적인데요. 10년간 100 Films 100 Posters 기획 전시를 통해 출품된 1,000종의 포스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A1 사이즈의 포스터를 3,000원에 구입할 수 있어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주문 용지를 활용해 원하는 포스터 연도 및 번호에 동그라미를 체크하고 직원분께 보여드리면 방꾸템 구매 완료! 지관통은 별도 구매지만 비닐 포장은 무료로 진행해 주셔서 비오는 날에도 포스터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포스터 미리보기.zip
발췌된 한글들: 100 Films 100 Posters 2015-2024
일시 : 5월 2일(목) – 5월 10일(금) 10시 – 18시
장소 : 완판본문화관 야외마당
전국제의 최대 장점은 바로 상영 중간중간 도보 여행이 가능하다는 건데요. 영화의거리에서 20분만 걸어가면 한옥마을 근처에 위치한 ‘완판본문화관’에서도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역대 100 Films 100 Posters 전시 포스터 중에서 주목할 만한 조형을 보여 준 ‘한글’을 추출, 컬렉션 형태로 배열한 전시로, 여기 모인 ‘한글들’은 포스터에 삽입된 기능적인 문자였지만 포스터로부터 ‘발췌’되어 정렬됨으로써 한글 조형의 동시대적 풍경이라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시 공간의 장소성에 유의해 큐레이션 한 이 전시는 한국의 유구한 기록 문화를 빛낸 문화유산 ‘한글’을 오마주 하는 의미도 각별히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볍게 둘러본 후 전주천길을 따라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드립니다.
이 외에도,
제10회 100 Films 100 Posters 전시
일시 : 5월 1일(수) – 5월 10일(금) 10시 – 18시
장소 :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홀
그린 라이브러리- 그린 포스터 컬렉션: 100 Films 100 Posters 2015-2024
일시 : 5월 1일(수) – 6월 13일(목) 평일 9시 – 19시 / 주말 9시 – 17시
*매주 금요일 휴관
장소 : 전주시립인후도서관
인덱스 라운지: 100 Films 100 Posters 2015-2024
일시 : 5월 1일(수) – 5월 10일(금) 10시 – 18시
장소 : 인덱스 라운지(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5길 64)
특별 전시를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 확인해 보시고 영화제 기간 동안, 혹은 그 이후에 관광도시 전주에서 그림 같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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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그보다 늦게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7★/10★
영화만큼이나, 때로는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 음악(혹은 음악 감독)이 있다. 영화를 본 후 누가 연출했는지보다 음악 감독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엔리오 마리꼬네야 말로, 이 두 사례의 가장 적합한 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는 2020년 타계한 전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 엔리오 마리꼬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고백하자면,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해 2017년까지 엔리오가 음악 작업을 한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시네마 천국〉, 〈헤이트풀 8〉 두어 편에 불과하다. 내겐 곱씹다 보면 여운을 자아내는 그와의 추억이 없다. 그러나 156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현대 영화 음악이 그에게 빚진 것이 너무나도 많고,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음악이 그의 성과라는 점을 새로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엔리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작곡을 배웠다. 엔리오가 ‘순수 음악’의 테두리 아에서 음악을 배웠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장점은 탄탄하고 체계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영화 음악을 작업해 다채로운 작업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단점은 동료들이 엔리오의 영화 음악 작곡을 하찮게 대했다는 것이다. 영화 음악은 순수 음악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장르로 여겨졌다. 엔리오가 동료들에게서 고립된 이유다. 더불어 그는 늘 예술적 정체성과 ‘순수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배신자’, ‘매춘’, ‘천박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순수 음악계 출신으로 이와 같은 시선을 어느 정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엔리오는 오랜 세월 이 문제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 음악 쪽에서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영화 음악은 천편일률적인 배경 연주곡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엔리오는 전통적인 사운드에 실험적인 요소를 결합해 영화 음악을 별 의미 없는 부가 요소로 취급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캔 소리, 첨벙거리는 소리, 휘파람 등을 음악에 더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었고, 영화는 그 덕에 더 큰 몰입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에는 그가 작업한 영화 음악과 해당 음악이 사용된 장면이 여럿 소개된다. 본 적도 없는 영화의 짧은 장면이, 마찬가지로 짧은 음악과 함께 소개될 뿐인데도 배우의 감정과 영화의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엔리오의 음악이 화면 속 여러 요소와 만나 극적인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미처 영화 음악인지 몰랐던, 귀에 익숙한 곡도 꽤 많다. 엔리오의 작업이 얼마나 큰 문화적 파급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그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7,000만장, 한국에서는 200만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작업한 영화마다 자신의 인장을 새긴 엔리오. 엔리오는 이내 영화 음악계의 스타가 되었다. 보통 음악 감독이 영화를 먼저 보고 그에 맞는 음악을 작업하는 데 반해, 엔리오의 음악을 먼저 들은 몇몇 감독은 자신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요소를 그로부터 찾아내 이를 보완하는 연출을 하기도 했다. “영화 음악은 감독의 역량 바깥에 있다”, “곡 자체가 의미가 있어야 영화에 기여할 수 있다”라는 엔리오의 말에서 자기 일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늘 혁신의 전위이기를 멈추지 않은 엔리오. 그의 이런 면모가 ‘영화 음악에 관한 영화’를 가능케 한다. 때로는 관객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누군가는 장인정신을 발휘해 영화에 기여하고 있고,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가 입증하듯 이런 헌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영화를 아끼는 동시대 관객이 이 위대한 장인보다 뒤늦게 태어나 그가 이뤄놓은 것들을 누리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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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싱> 삼중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두 여성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0년대 뉴욕, 남달리 밝은 피부색을 가진 '아이린(테사 톰슨)'은 이를 활용해 백인 전용 호텔이나 헤어숍을 드나드는 패싱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더위에 지쳐 들어선 한 호텔에서 어린 시절 친구였던 '클레어(루스 네가)'를 만난다. 자신처럼 밝은 피부색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백인 남편 '존(알렉산더 스카스가드)'과 결혼한 후 흑인이지만 백인으로 살아가며 경제적으로도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클레어. 그런 클레어를 보면서 아이린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클레어 역시 아이린을 보면서 마음만큼은 편했던 흑인으로서의 활기찬 삶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며 두 여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패싱>은 1929년에 발간된 넬라 라슨의 소설 <패싱>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아이언맨 3>, <트랜센던스>, <고질라 VS. 콩> 등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레베카 홀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패싱>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은 바 있다. 이처럼 <패싱>이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제목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흔히 '패싱'(passing)은 흑인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패싱을 원래 자신의 소속과 다른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양 행동하는 일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하며, 정체성을 구분하는 경계들과 그 경계를 넘어설 때 발생하는 불안감을 차분하게 펼쳐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크게 인종, 성별, 그리고 계급이라는 세 가지 경계를 오가는 패싱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스터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는 패싱이다. 작중 흑인에서 백인으로의 자아 변화를 경험하는 인물, 곧 백인으로 패싱 가능한 중산층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인물은 아이린과 클레어 두 명뿐이다. 흥미롭게도 <패싱>은 단 둘 밖에 없는 여성을 여러 측면에서 대조하며, 그것만으로도 98분 동안 극을 전개할 원동력을 이끌어낸다.
우선 아이린을 보자. 중산층의 흑인 남편과 결혼한 아이린은 시내에 나갈 때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백인으로 패싱하지만, 흑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백인으로 행세하는 클레어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출신과 인종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고 비판하는 기만적인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는 그녀가 패싱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인종의 구분과 차별을 내면화하고, 그 틀 내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보수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아이들의 선물을 사러 간 서점이나 더위 때문에 잠시 들린 호텔 카페, 심지어 길가에서까지 항상 자신이 사실 백인이 아닌 흑인임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남편과 함께 있거나 무도회에서 춤출 때 성적인 매력을 숨길 생각이 없고, 금주법이 있는 시대에 술을 언제 어디든 갖고 다니는 클레어는 아이린과 정반대인 이국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과거사를 꾸며내고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절단한 후 백인으로 살아왔지만, 공허한 삶에 지쳐 다시 흑인 사회에 편입되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즉, 본인도 패싱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백인과 흑인의 이분법적 구분을 떨치지 못한 아이린과 달리 클레어는 정해진 인종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으며 그 틀까지도 극복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린에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적 기준을 전복하고 교란될 수 있는 클레어의 유동적인 정체성은 다양한 감정 안에서 인식된다. 분명 클레어는 호텔 카페와 스위트 룸, 그리고 아이린이 주최한 무도회 등에서 주변인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그들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는 위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린은 같은 조건 속에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클레어를 보면서 부러움과 질투심, 또 앞서 본 것처럼 경멸감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불편해진다. 영화는 이처럼 패싱을 두고 비슷한 듯 서로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차이로부터 부각되는 미묘한 긴장감과 감정선을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이에 더해 아이린의 복합적인 감정선은 성적인 기제와 계급적인 차원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이야기를 층층이 쌓는다. 클레어와 아이린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동성애적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인 '브라이언(안드레 홀란드)'에게 클레어를 설명할 때 아이린은 그녀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얼버무리며, 남편이 그녀를 멀리 하라고 눈치를 줘도 식사나 무도회에 계속해서 초대며 클레어의 존재를 쉽사리 삶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지 못한다. 남편이 클레어와 친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가정부와 클레어가 따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 굳이 가정부를 다시 일하도록 시키는 것 역시 클레어에 대한 애정이 단순한 우정 이상의 성적 매료 내지는 욕망으로 읽힐 수 있다.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아이린에게 보낸 연애편지에 가까운 내용으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거나, 그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아이린을 갑자기 방문해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는데 이 대목 역시 상당한 성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또한 영화는 계급적 차원에서의 패싱도 간과하지 않으며 특히 계급 이동의 열망이 인종적, 성적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을의 한 흑인이 백인들에게 맞아 죽었고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브라이언은 아이들에게 흑인으로서 1920년대 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다. 반면에 아이린은 철저히 그 현실을 아이들로부터 감추고자 한다. 흑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듯 보이면서도 필요에 따라 백인이 될 수 있기에 그녀에게는 흑백의 구분보다도 안정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시급한 것이다. 본인이 비난하던 클레어조차 흑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상황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신적 유산을 상실한 아이린의 이러한 패싱은 이 작품이 단순히 피부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자칫 100여 년 전을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에 그칠 뻔했던 영화는 더욱 현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중 삼중의 패싱은 인종 정체성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성과 계층적 정체성의 구분을 가로지르면서 아이린과 클레어가 확신하고 있던 자아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든다. 곧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 정의와 정체성을 결정해 온 기존의 사고방식에까지 의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의 결말은 그 질문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클레어를 향한 아이린의 감정이 어떤 의미로든 나날이 강렬해지고 격화되는 가운데, 영화는 끝내 흑인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 채 끝나버린 클레어의 비극이 누구의 탓인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클레어에 대한 어떤 진실도 명료히 규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추측만 가능하도록 심증이 될 법한 장면들을 열거하고, 하얀 눈이 내리는 뉴욕이 내려다 보이는 가운데 눈송이가 화면을 가득 채워 온전히 하얗게 만들면서 끝난다. 마치 인종, 젠더, 계급과 그 외의 경계선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도화지에서 개인의 온전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그려보라는 듯이.
따라서 영화 <패싱>은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된 획일적이고 안정된 자아개념을 부정함과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고, 더 나아가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다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나날이 한 개인을 규정하고 그에게 덧입혀지는 정체성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제제기와 메시지는 꼭 흑인이나 여성이 아니더라도 <패싱>을 곱씹어 볼만한 이유가 된다.
<패싱>의 이야기는 이 작품이 그 미묘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방식 덕분에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우선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1.33:1 비율을 선택한 것이 눈에 띈다. 이 화면 비율은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을 오롯이, 또 집중적으로 가득 담아내면서 그들의 내적 혼란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또한 테사 톰슨과 루스 네가의 절제되어 있지만 깊이 있는 퍼포먼스가 유달리 빛나는 배경도 되어준다.
흑과 백을 외에 그 어떤 색채도 더하지 않은 연출도 1920년대 미국을 살아가는 흑인의 삶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조명의 위치와 광원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순간마다 두 여성의 피부색을 조정하면서 패싱이라는 행위가 한 명의 개인에게나 사회적 차원에서 갖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단순히 피부색을 조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극명히 대비되는 명암의 효과를 활용해 아이린과 클레어의 빛과 그림자로 가득한 심정을 끄집어 내 보여주기까지 한다.
사실 <패싱>을 오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와 경제 대공황 사이의 미국 역사, 사회, 경제에 대해 알아야 하듯이, <패싱> 역시도 대략적인 사전 정보를 요구하기에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드라마틱한 전개 대신 일상의 모습을 담는 구성도 한몫하며, 설명보다는 관조가 주를 이루는 화법은 영화를 루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영화 기법이 주는 인상과 영향에 시선을 맡기다 보면 <패싱>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두 여성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그들의 급변하는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공감하면서 스스로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고전적인 작법과 시대를 타지 않는 메시지의 조화로 되살려낸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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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주 최신개봉영화(경관의 피, 씽2게더, 해탄적일천, 전장의 피아니스트, 원샷)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경관의피 #씽2게더 #해탄적일천 #전장의피아니스트 #원샷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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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백설공주> 티저 예고편
디즈니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바로 그곳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모두가 기다린 환상적인 이야기, [백설공주] 🍎 2025년 3월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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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글 크루즈> 어드벤처 비하인드 영상
<캐리비안의 해적> 디즈니 제작! 이번엔 아마존이다!
미지의 세계 아마존에서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스릴을 선사하는
재치 넘치는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쫓아 영국에서 온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면서,
순탄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아름답지만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열대우림으로 함께 모험을 떠나고
수많은 역경과 초자연적인 힘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 나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날수록 릴리와 프랭크는 더욱더 커다란 위험에 처하고
인류의 운명도 위태로워지는데…
전설을 믿는다면 저주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