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9 18:55:12
토대를 잃지 않기
영화 <총을 든 스님> 리뷰
SYNOPSIS.
2006년의 부탄 왕국.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다. 국왕이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정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파란당, 빨간당, 노란당 선거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선거 감독관은 마을의 존경을 받는 큰 스님이 총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POINT.
✔️ 건재한 왕이 직접 전제 왕권을 내려놓고 도입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화. "투표가 뭔데요? 우린 폐하가 좋은데?" 상태의 국민들 실화. 거기서 스님이 갑자기 총을 찾는다? 부탄이기에 가능한 매력적 시놉시스
✔️ 도르지 감독에게는 부탄 관광청이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부탄은 안 줄 것 같지만) 아름답게 펼쳐지는 부탄의 풍광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는, 이 시국에 알맞은 작품
✔️ 중간중간 짤막하게 나오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신스틸러.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 새해 당신의 마음을 맑게 해줄 작품. 1월 1일에 개봉했습니다!

행복한 부탄에 찾아온 변화
부탄은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국민행복지수'를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오래 전 교과서 한귀퉁이에 소개된, 그래서 어쩐지 샴발라 같은 낙원의 이미지로 막연하게 그려질 만큼 잘 모르는 나라다. 나는 부탄 영화감독도 딱 한 명밖에 모른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몇 년 전 <교실 안의 야크>로 우리를 찾아왔던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을 통해 우리에게 그려진 부탄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부탄의 이미지처럼 맑고 청량했다. 루테인과 지아잔틴 섭취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과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부드럽게 그리기 때문이다. <교실 안의 야크>만 해도 야심만만하고 젊은 교사가 산간벽지 학교로 부임해 가면서 겪는 일들을 사랑스럽게 담았다. 그런데 차기작 제목에 총이 들어간다고요. 그것도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인 스님과 함께? 궁금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부탄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당연스럽게 왕이 갖던 권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과연 선출은 무엇이고 투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선거 사무원들은 전세계가 주목할 상황 앞에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지역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선거의 개념을 알리고 모의 선거를 치르고자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넌센스한 상황들이 계속 펼쳐진다. 애초에 행정적인 이름과 생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선거 명부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사람들을 크게 옭아맨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그 권력을 억지로 쪼개 경쟁을 붙여야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투표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뱃속을 불리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가 뭔데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큰스님의 "총을 구해 오라"는 발언일 것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어서 그런가 우리는 좀더 세속적인 상상을 하게 되지만... 흠흠. 아무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반응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여기까지 이루었고, 지금도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의 원리를 통해 우리를 지키는 중인 한국 사회는 영화 속 부탄과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우리에게도 유효타로 날아든다.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배신처럼 간주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제도를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제도 그 이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남들이 목숨 걸고 갈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도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 손으로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

자본주의도 통역이 되나요?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하필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런 때에 숙고하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민주주의만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주주의의 좋은 짝, 자본주의다. 영화에는 총을 둘러싼 대화가 영어-부탄어 통역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문장들은 단순히 말뜻을 옮기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통역자 '밴지'는 단순하게 말을 비슷한 단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표현과 그 의도까지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칠을 해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내어 놓는다.
자본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어와 어찌 보면 그 대척점 비슷한 곳에 가 있는 언어를 옮기는 것은, 발화된 말 뒤에 있는 마음까지도 적절히 분칠을 해서 내어 놓아야만 하는 일이 된다. 밴지가 통역한 것은 영어와 부탄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적절히 양념을 치고 거짓도 보태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약간씩 괴리가 발생한다.
이 괴리는 작지만 흥미로웠는데, (이 영화에서는 작은 수준으로만 등장하지만) 이러한 괴리가 자라고 자라면 우리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되는 거구나 싶어서였다. 이미 죽어 있는 마음의 시체 비슷한 것에 분칠을 해봤자 악취를 가릴 수 없다. 가치를 상실한 말은 언어의 거죽을 뒤집어써도 언어를 파괴할 뿐이다. 아무리 주절주절 단어를 끌어 모아 가려봐도 기표 뒤의 기의는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지만 명확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두 제도. 잘 발휘될 때의 장점과 잘못 발휘될 때의 해악도 명확한 이 제도 앞에서, 시스템 이면의 가치를 잊지는 않았는지, 잃지는 않았는지. 제도 이전에 우리 마음의 토대에 놓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양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어쩐지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는 백석의 시구가 떠올랐다. 우리 같이 쪼이고 싶은, 따뜻한 모닥불 같은 영화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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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찾아 헤맬 너에게
나는 상당히 만화에 보수적인 편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소위 대작들에 길들어져서인지. 새로운 만화를 알게 되더라도 한 권이라도 꺼내보지 못할망정, 사람들의 평가만 한참을 뒤적이다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읽을 마음을 단념한다.
애니메이션은 더욱 심하다. 제대로 다 본 애니메이션이 한 편도 없고,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가 진짜라는 얄팍한 신념 때문일까. 혹은 위 대작들의 애니메이션이 썩 좋은 결과물이라 할 수 없어서 그럴까. 차차 하더라도 영화와 같은 롱폼을 한 번의 온전한 집중으로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 넷플릭스를 틀은 채 밥을 먹고 떠들며 시리즈물을 챙겨보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주위에서 <진격의 거인>을 꼭 보라는 말의 등쌀에 밀려서. 그리고 나의 행동들이 편견이 아닌 기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벼룬 듯 음침하게 시즌1 1화를 켰다. 결과는? 그 순간부터 결말까지 누워있어도, 앉아 있어도, 밥을 먹어도. <진격의 거인>을 봤다. 대작 앞에서 나는 그저 알량한 편식쟁이였고, 대작은 그런 나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그러니 심장을 바칠 수밖에.
워낙 이야기가 방대하고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내용을 요약하지는 않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한 QnA 형식으로 본문을 이끌겠다. 무엇보다 시리즈 전체 리뷰가 아닌, 최종장 극장판인 <더 라스트 어택>의 리뷰인 만큼 이 이상의 이야기는 가능한 지양하도록 하겠다.
Q.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A.시리즈 전체를 통틀면 엘빈 스미스. 극장판 한정으로 지크. 둘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지만, 두 캐릭터의 사상은 극과 극이면서도 가장 맞닿는 지점이 있다. 엘빈은 대의를 위해 사익과 공익을 가리지 않고 불사르는 캐릭터이다. 거인에게 자신의 팔이 물렸을 때도, 날아오는 돌들을 향해 희생을 자처했을 때도. 어린 신병들에게 죽음을 강요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도. 그는 대의를 위해 전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대의가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크는 정반대이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 지크를 허무주의의 길로 빠지게 했다. 그렇게 본인의 사상을 위해, 그 믿음을 사실로 실현하기 위해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살인을 일으켰다.
가장 양극에 도달한 두 캐릭터이지만 믿음의 노예라는 점에서 비슷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이라도 믿음의 족쇄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더욱 온정이 간다. 결국 세상에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사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온전히 대입하지 못하기에 집착이 생기고 상처는 곪는다.
Q. 결말에 대해
A.땅울림이 많은 비판을 받는 듯하다. 이는 선뜻 에렌이 인류의 80퍼센트를 죽이고 동료를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관 속에서 좌표라는 개념이 있다. 2000년간 정해진 역사에서 에렌은 그 사실을 알고만 있을 뿐,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죽는다는 운명에서 발버둥 친 에렌이지만 거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에렌이 동료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목숨은 부지해 줄 테니 막으러 올 테면 와봐라. 그들이 인류 대학살 속 겨우 건져낸 목숨을 스스로 걷어차게 한 힘이 무엇일까.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목숨과 증오의 반격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목숨과 연쇄의 단절을 택할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고, 마치 이 모든 서사가 지금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이 마음을 다잡으며 에렌을 막았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가 누군가에게 자유를 선물한 채 세상을 떠난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로 철학적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답이 없는 논제처럼. 극과 극은 서로를 낳고 대립하며, 그 과정을 어쩌면 역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Q.가장 좋았던 장면은?
A.지크가 아르민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장면. 이후 지크는 쿠사바와 제회해 묻어놓았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당신과 캐치볼을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고. 결국에는 모든 원흉이었던 아버지도 용서한다. 탐구의 주체인 인간이 그저 번식의 부산물이면 행복 역시 부산물에 그칠 뿐이다. 사소하더라도 소중한 일상이면 그것이 곧 삶의 의미라는 깨달음은 왜 항상 한발씩 늦을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Q. 추천하는가?
A.올해 1분기에 본 모든 드라마, 영화, 만화를 통틀어서 가장 추천하는 작품. 나의 편견을 뽑아버린 건 시즌 1에서 이미 끝나버렸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전개되는 반전과 감동에는 깊이가 있었다. 물론 이 글에 언급되지 않은 주요 캐릭터와 사건이 셀 수 없이 많으니,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이해하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안 봤더라면 꼭 보고, 한 번 봤으면 두 번 볼 것. 일단 나부터. 신조 사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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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개수작을 부리는 감독이 있다?
나는 가끔 글을 쓸 때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로 쓸 때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한다. 정성일 씨가 와도 절대 쓸 수 없는 그런 것을 추구한다. 근데 막상 까 보면 타인의 것들과 별 다를 것 없다. 예를 들어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리뷰한 글을 보자. 나는 이 영화를 '아무것도 없는 영화'라고 썼다. 정말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는 이 문장을 쓰고 '와 진짜 전다. 내가 천재긴 해. 이거 아무도 생각 못할 듯.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쓴 거 읽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안 했다. 이미 알고 있거든. 영화 보고 느끼는 감정이야 사람들 간에 별 다를 바 없고, 홍상수 감독도 이걸 의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글은 별로 특별한 것 없을 거라는 그런 불안감 때문에 타인의 리뷰들을 읽지 않았다. 내 글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오로지 내 욕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 스스로가 특별해지고 싶은 순간을 나는 찌질함이라 부른다. 이 감정은 멀지 않은 곳에서 또 찾을 수 있다.
난 어디에서 자기 계발서를 대차게 깐 적 있다. 근데 사실 내가 영화를 보고 쓰는 글은 크게 보면 자기 계발서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라 느끼는 외로움이나 자아 찾기 뭐 그런 것들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의 책들 중 몇몇 권은 이런 것들을 토픽으로 삼지 않는가? 또 나는 1달 전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일상 속 대화에서 소통능력이 구린 나는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리면서 양심에 심각하게 찔린 나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이 좋다고 주변인에게 칭찬했다. 이렇게 나에게 합리화의 이유를 붙인다는 걸 뻔히 아는 것 역시 찌질함이라 부른다. 가끔 내 머릿속에서 내가 해온 허튼짓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 머릿속에 딱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 나에게서 이 두 가지의 찌질함을 빼놓으면 시체라는 것이다.
<옥희의 영화>는 찌질함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다. 이 네 편에 세명의 주연인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배우가 나온다. 지금이야 정유미-이선균 배우가 인기도 제법 있고 우리에게 친근하지만 이때의 이들은 풋풋한 모습이다. 풋풋함. 감독 홍상수는 이 풋풋함이라는 감정 머리 위에서 관객을 갖고 논다. 네 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20대거나 대학 교수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지만 행동하는 건 초등학생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을 보자. 주인공 영화감독 진구는 송 교수에게 '당신 소문이 안 좋은 걸 아느냐?'라고 묻는다. 근데 곧이어 있을 GV에 누가 나타나서 '당신이 내 친구의 인생을 망쳤다.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질문을 듣는다. 전자 상황에서 진구는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선 '이 상황에서 이 질문이 맞냐?'라고 역정을 낸다. 자기 자신을 위해 합리화를 한 것이다. 두 번째. 키스왕이다. 친구 옥희를 좋아하는 진구. 진구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숙맥이지만 아무튼 옥희가 좋다. 옥희는 이런 진구의 마음을 전해 듣는다. 송 교수와 진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옥희. 친구에게 송 교수와 함께 있을 때 즐겁다고 말해 이쪽을 택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진구와 함께한다. 엔딩부에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옥희가 진구에게 말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나는 네가 착해서 좋아'라는 말에 '착할게'라고 답한다. 아무튼 나는 너를 위해 착해질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 쪽도 자기 스스로를 위해 합리화를 했다. 세 번째. 폭설 후는 굉장히 짧다. 송 교수는 누구보다 수업에 진심인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학생이 안 오니 우웨엑 토와 함께 애정을 뱉어낸다. 이 단편에도 스스로를 위한 합리화가 이뤄진다. 네 번째. 이 영화의 제목이 된 <옥희의 영화>다. 주인공 옥희는 젊은 남자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나이 든 남자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옥희는 나이 든 남자를 고르지 않았다. 산을 왔다 갔다 하는 거 빼곤 별거 없었던 추억이지만 옥희는 함께 했던 시간을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관객이 보기엔 그냥 진구와 송 교수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 떠나가는 추억을 회상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옥희는 스스로에게 특별했으면 하는 순간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영화는 4편의 이야기를 연달아 붙이며 인간이라면 있을법한 찌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타 감독들이 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이 찌질함과 합리화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한다. 남은 이해하지 못해도 나 자신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로남불'이 찌질함이라는 것의 본원이겠지. 첫 번째 <주문을 외울 날>은 이 자기모순에 대한 이야기다. 소문은 근본적으로 내가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기의 소문에 관해 들을땐 이게 뭔 소린가? 싶다. 자기는 자기가 제일 잘 알거든. 근데 또 막상 믿기는 쉬워서 타인을 어렵지 않게 의심한다. 나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 때 특정한 가치관 아래에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나? 아닐 것이다. 내가 직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살고 거기에 우리 스스로는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서 산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자기모순에 익숙해지는 것이겠지. 이런 모순은 <키스왕>에서도 나타난다. 어쩔 줄 몰라 옥희의 집 앞에서 소주를 마시는 진구. 이 앞에서 했던 말이 재밌다. '나는 너랑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아'와 '착할게' 이 두 마디다. 이 말과 진구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거면 성격이 잘 맞는 거고. 착할 게는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맞춰주겠다는 것 아닌가? 이 말을 들으면 진구는 옥희를 배려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진구는 타인을 존중하고 그런 거 없다. 숨기고 그럴 것도 없이 옥희와 입을 맞춘다. 연애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진구의 이런 화법과 행동은 개연성을 갖긴 하지만 그냥 주인공은 무작정 옥희랑 사귀고 싶은 거다. 그래서 앞 뒤가 다른 행동을 일단 저지르고 본다. '내가 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지'같은 체계가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는 확실히 대비가 된다. 그러니까 소문의 속성과 짝사랑-연애로 이뤄지는 과정을 대치시킨 셈이다. 난 이 지점이 분명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모순을 느끼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앞 뒤 다르다. 신나게 전 애인 험담하다 그들의 전화에 혹하는 게 우리 똑은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 아닌가? 또 남을 욕할 때의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남 험담하는 사람이라고 욕먹는 주위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타인과 갈등하거나 자기혐오의 빠질 때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살다 보면 이 경험들 한 번씩은 해봤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 인생에서 절대 별개가 아닌 이기심이란 감정을 일상의 에피소드로 표현해 공감을 얻는다. 즉 구로사와 기요시는 인간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큐어>를 썼고 봉준호 감독은 어머니의 모성에 관한 작품으로 <마더>를 만들어 관객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면 홍상수는 인간의 이기심을 통한 코미디를 그냥 배우 세명에 4천만 원 제작비가 든 4편의 단편영화로 끝내버린 것이다. 일상 속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영화로 다가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500%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완전히 미쳐버린 천재성인 셈이다.
이 천재성은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에서 더 뒷받침된다. 진구가 묻는다. '무얼 원하고 사세요?' 송 교수가 답한다. '오늘의 내가 원하는 것과 내일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은 앞에서 내가 썼던 이야기와 공통점이 있다. (그러고 바로 다음 장면에 '학교 때려치우기 잘했다'라고 말하는 송 교수의 대사가 웃겼다.) 네 번째 이야기는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냥 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가 끝이다. 근데 이 등산과 하산만으로도 영화라는 예술의 전부를 보여준다. 남이 보기엔 그냥 에피소드인 이야기를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무언가와 비교한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골라 다른 것과 작별한다. 이걸 겉으로 드러내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티를 내면 찌질함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것을 보며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며 자위한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공감을 얻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주인공의 행동이 나와 닮았기 때문에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영화에서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그 상황이니까 하는 것이다. 즉 다른 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우리라고 해서 꼭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찌질해서인지 그 영화의 장면과 과거의 에피소드 하나를 같다고 여기거나 '내가 저거보다 낫지'라며 조소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위한 합리화를 해 버리는 것이다. 또 내 어떤 것과 현재의 어떤 것을 비교해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네 번째 영화의 등산과 하산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왜 홍상수의 영화 내지는 영화라는 장르를 보며 공감하는가?라는 질문과도 닿아있다. 제목이 <옥희의 '영화'>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의 답은 굉장히 쉽다. 우리는 대체로 못나고 찌질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모두에게 소심한 구석 하나쯤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거나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라고 여긴다. 잠깐, 이거 우리 모르나?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상처를 호소하며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공감을 얻는다. 그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스스로와 합리화를 한 채로 무언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또 영화를 본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것들을 떠나보낸다. 무한 반복이다. 우리는 이 지루하고 귀찮은 일상 속에 산다. 내가 찌질하지 않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감독 홍상수는 이렇게 모순적인 우리의 모습을 포착해 또 네 개의 단편영화로 접근한다. '너 이런 거 내가 다 알아!'라는 말과 함께 관객의 마음을 얻는다. 하나의 장편이 아닌 네 가지의 단편을 통해 전체로서의 의미는 버리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공감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개수작 같은 영화다. 사실 까고 보면 되게 별거 없는데 그저 이성을 꼬시기 위해 사용하는 개수작 화법인 셈이다. 영화 전면에 주제의식은 사실 별거 없고 느끼는 감정만을 따르라는 대사가 나온다. 난 그것마저도 개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나 너희들 마음 다 알아.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안다고. 그러니까 내 영화에 의미 같은 거 찾지 마. 이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영화가 아니니까. 그냥 니들 이야긴 거 아니까 너희들 마음은 이미 내 거야.' 뭐 이런 식의 개수작인 셈이다. 우리 대부분의 영화 아니 문학작품은 메시지란 게 있지 않은가? 근데 홍상수는 감독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있어 보이는 말로 주류와는 다른 본인의 세계를 확고히 한다. 내가 만든 세계를 관객에게 주입시켜 '와 이 사람 전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는 이 논리에 설득당하는 바보들이다. 조명도 별로고 화장도 안되어있고 관통하는 서사도 심심하며 예산도 작은 그의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꼬인 물고기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이기적인 우리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무엇을 비교하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신다. 홍상수는 우리에게 좋은 솔루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나도 그에게 설득당했다. 아마 신작을 우리 지역에서 볼 수 있다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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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어느 누가 1년을 기분 좋게 더 수험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좀비가 창궐하는 대한민국의 수능 날 아침을 보여주고 있다. 밤에만 활동하는 좀비들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수능은 정상적으로 치뤄지고 아이들은 좀비를 걱정하면서 수능장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밤에만 등장한다는 설정은 금방 영화 속에서 깨지고, 낮에도 좀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승합차로 이동하던 수험생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이를 저지하려던 기사님이 좀비에게 당하고, 승합차에 남은 사람은 고3 수험생 4명이다.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경찰을 부른다던지, 구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던지와 같은 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수능을 반드시 치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직접 승합차를 몰고 수능장으로 향한다.
수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과연 이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자연스럽게 상상을 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수능장으로 향하는 길에 좀비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이는 없고, 경찰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수능을 보지 않으면 1년이라는 수험생활을 더 해야한다는 그 절망감 속에서 수험생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직접 운전을 해서 수험장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능을 본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이들이 참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네 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내가 그 상황이고 다른 사람들은 수능을 보는 데 나만 좀비 때문에 덩그러니 도로 한 가운데에 남아 수능을 못본다고 생각하면 무슨 수를 쓰든 수능을 보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고3 수험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잘 풀어내고 있었다.
과연 고3 수험생만 맹목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영화 수능을 치려면에서 결국 5명의 아이들은 직접 운전을 하고 수험장 안으로 들어간다. 수능을 치르기 위해 의도치 않은 무면허 운전이라는 범법행위를 하고 온 것이다. 이를 두고 수능에 ‘미친’ 너무나도 맹목적인 행동이라고 이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수능을 치르면은 영화 말미 좀비들이 수능장으로 습격하는 와중에도 감독관들이 그 모습을 블라인드로 애써 가리며 고개를 돌리면 부정행위이니 시험에 집중하라고 말을 한다. 이 장면을 통해 맹목적인 것은 고3 수험생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부정행위라며 학생들을 다그치고, 주위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리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수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주변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맹목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차를 운전해서 온 ‘유리’는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벌떡 일어서지만 그녀를 향해 감독관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퇴실 조치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학구열에 대해 넌지시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좀비 호러 장르와 고3 수험생의 웃픈 무면허 운전이라는 코미디가 합쳐져서 ‘수능’제도에 대한 맹목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었다. 호러와 코미디를 통해 문제점을 통쾌하게 찔러주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3. 9. 16.(토) 19:30 롯데시네마 은평 3관
2023. 9. 19.(화) 20:00 롯데시네마 은평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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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발하고 발칙한 모든 순간의 상상
‘해피 아워’,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 까지 특별한 주제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만나는 캐릭터 간의 긴 대화만으로 서사를 이끄는 역량과 그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재미를 주는 자신만의 색깔로 하나의 장르화를 이루며 세계 유수의 시상식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영화 우연과 상상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작년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해외 평단의 호평을 받은데 이어 지난 BIFF에서도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좋은 평이 이어졌기에 여느 때보다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죠. 에릭 모레르 감독의 1994년 옴니버스 ‘파리의 랑데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번 작품은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우연이라는 리얼리티적 요소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세 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제목처럼 불쑥 찾아온 그 순간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고 소재가 가져올 수 있는 희극성으로 남다른 재미를 줍니다. 역시나 그만의 스타일이나 특징은 확연히 드러나기에 이번에도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의 장르적 신드롬은 이어질 거로 추측되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우연과 상상 정보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걸 믿어볼 생각 있어?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메이코는 패션 화보 촬영으로 만난 절친 츠구미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그녀의 새로운 남자에 관해 첫 만남부터 하룻밤 동안 함께하며 나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에 부푼 츠구미를 내려주고 메이코는 어느 한 건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2년 전에 헤어졌던 자신의 전 남친이자 절친의 썸남 카즈아키를 마주합니다. 두 번째 ‘문은 열어둔 채로’는 교수 세가와가 취업 때문에 학점을 원복 해달라는 사사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며 시작됩니다. 시간은 흘러 사사키와 잠자리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늦깎이 대학생활 중인 유부녀 나오가 뉴스를 보던 중 최근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세가와 교수의 인터뷰가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이에 사사키는 그녀에게 교수를 유혹하고 녹음해서 과거 자신의 복수를 하자고 이야기하고 그녀도 좋아하는 작가인 교수를 만나자는 마음에 수긍하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 ‘다시 한번’에서는 희귀한 바이러스로 인해 통신 두절이 된 세상에서 고등학교 동창회를 찾은 나츠코,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역 앞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동창 아야을 마주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偶然と想像, Wheel of Fortune and Fantasy│감독·각본 : 하마구치 류스케│출연진 :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 모리 카츠키, 시부카와 키요히코, 카이 쇼우마, 우라베 후사코, 카와이 아오바 외 多│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 121분│국가 : 일본│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8.4, 왓챠피디아 예상 5.0, 로톤 토마토 신선도 99%, IMDB 7.6, 메타 스코어 86점│수상 내역 :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시청 가능 서비스 : 개봉일 2022년 5월 4일
“우연은 드라마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일상에 흔한 것이기도 하죠. 우연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이고, 반대로 말하면 이 세계를 그리는 것은 우연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우연이 넘쳐요. 이야기 측면에서 그걸 살리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보람 있는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 하마구치 류스케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밝힌 주제에 대한 생각들이 이미 영화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간에 직접적인 접점은 없지만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 모두가 기막힌 우연을 마주하면서 삶이 변화하는 순간을 담아내기 때문이죠. 흔히 일종의 운명이라는 그럴듯한 연결을 이끌어내는 스토리들은 이미 식상하기 그지없지만, 실제 일상에서 우리는 무수한 찰나의 순간과 마주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들이 때로는 우리 삶에 큰 파장을 일으켜 방향을 전환하기도 하기에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에 매력에 빠져드는 부분이 있죠. 그렇게 영화는 갑자기 다가온 선택의 순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대신 상상을 펼쳐주고 이를 이끄는 도구로 인물 간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건을 만들고, 에피소드를 구축하며 벽돌을 하나씩 쌓아 집을 짓듯 관객에게 40분 동안의 부담 없는 동행을 제시합니다.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요.
이번에도 하마구치의 드라마는 한번 시작한 장면의 편집을 최소화하며 각 에피소드별로 20여 분간의 기나긴 대화를 통해서 모든 순간의 행동들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많이 언급되는 바와 같이 소설 작가와 같은 흐름을 이어가는 형태는 세 편의 연극을 차례대로 보는 기분을 들게 하고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들이 모여주는 우연의 가능성과 이어지는 전개, 그리고 마지막 결과에 대한 섬세한 표현은 관객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들죠. 이것은 작품의 주제인 우연이라는 이름의 운명이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더 자주 마주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성은 탄탄하게 짜 맞춰진 개연성보다 좀 더 느긋한 리듬을 타고 있는 그의 연출에 더 빠져들게 만듭니다. 첫 번째에서 메이코 혼자만의 망상, 두 번째 나오와 세가와의 서로 간의 상상, 세 번째 두 사람의 공통된 착각까지 무언가 연결점이 없는 듯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형태의 변화만 있을 뿐 그 우연이 가져다주는 개개인의 머리 속을 그대로 들춰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주고 그때마다 나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깔리며 묘한 웃음을 전달해 줍니다.
이러한 감독의 뚜렷한 색깔은 참으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걸 넘어서 현재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나왔던 그의 실제 리딩 방식은 책을 읽는 듯 감정을 빼고 단어 하나하나에 포인트를 주며 실제 촬영에서 배우들이 이루어내는 일상의 감정들을 일정한 리듬과 높낮이로 더욱 풍성함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굉장히 긴 시간을 끝없이 이어가는 배우들의 대화는 그저 친구들과 나누는 소소한 교류처럼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마주하는 우연에 왠지 나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시그니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라는 소통 행태에 대한 감독의 남다른 접근은 옴니버스로 분리된 단편들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고, 단 1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도 화질, 색감에 있어서 올드함이 묻어나지만 그 투박함마저도 전체적인 색감에서 잔잔함과 따스함을 드러내줘서 일상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 것 같습니다.
짧게 줄이자면 마음을 열고 다시 한번 마법보다 불확실한 것을 느끼며 우리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일상의 놀라운 순간들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말하고 싶습니다.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세 개의 단출한 이야기는 뜻밖의 웃음도 주고 마지막엔 왠지 모를 애틋함도 남기며 우리가 놓쳤던 그 우연한 순간들이 있었던 삶을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그가 선사하는 남다른 대화의 결을 따라 그린 스케치 위에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무언가 하나의 일상이 꾸려지는 느낌, 어쩌면 전작처럼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한 공상을 해보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찌 되었건 일종의 트렌드처럼 맞춰가는 하마구치의 스타일은 굉장히 참신하기도 하고 인상 깊다고 확언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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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일요일에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바람이 많이 차네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
그럼 오늘은 지난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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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첫 주말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주말 스코어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 역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차지하며 극장가의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슬램덩크는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데 이어 400만 관객 돌파까지 이뤄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사이 한국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간신히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대외비>는 이번 주말 3위로 순위가 떨어졌고, 김주환 감독의 <멍뭉이>, 권혁재 감독의 <카운트>는 각각 박스오피스 5위와 9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관객 수 역시 한참 뒤처지고 있어 이번 주말 동안 세 편의 한국영화의 관객 수를 모두 합쳐도 <스즈메의 문단속>의 관객 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15일에 개봉하는 신작 한국영화 <소울메이트>가 과연 극장가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1. <스즈메의 문단속>(⬆︎8)
지난 수요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주말 관객 수 69만 4251명을 기록하며 개봉 첫날부터 5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2023년 개봉 영화 중 최고 주말 스코어 기록으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59만 228명, <교섭>의 30만 9315명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3월 13일 오전 7시를 기준으로 실시간 예매율은 33.4%로, 예매율 1위의 자리 또한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집필한 동명의 소설의 판매 역시 크게 늘었다는 소식입니다. 소설은 영화에 소개되지 않은 캐릭터의 감정과 더 정밀한 세계관의 묘사, 감독이 작품을 창작하며 느낀 감정과 창작 동기 등까지 수록되어 있어 인기몰이 중이며, 최근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7위, 예스24 종합 1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스즈메의 문단속>은 오는 22일부터 4D 특별 포맷 상영을 확정해 전국 CGV 4DX관, 롯데시네마 슈퍼 4D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바람, 진동, 섬광, 모션 등의 다채로운 효과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1)
지난주 박스오피스 3위로 떨어졌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대외비>를 누르고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 관객 수는 9만 9592명에 그쳤지만 누적 관객 수가 드디어 400만을 돌파해 2023년 개봉작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에 등극했습니다.
3. <대외비>(⬇︎2)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영화 <대외비>는 두 계단 떨어진 3위에 머물렀습니다. 관객 수는 9만 7050명으로 지난주보다 무려 62.2% 감소한 수치이며, 누적 관객 수는 총 68만 8468명을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3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
씨네픽의 이번 주 143회 예측 이벤트는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 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 볼 텐데요,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스즈메의 문단속>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5%, 여성 35%로 남성이 여성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대가 가장 많이 관람하였고, 그 뒤를 30대, 40대, 10대, 50대가 차례로 이어갔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것은 17-19세 여성(562,137명)이었으며, 전체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0.7%를 기록하였습니다. 더불어,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참가자 수와 남녀 비율은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4.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2)
개봉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2위를 기록했던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는 두 계단 내려와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습니다. 주말 관객 수는 7만 8785명, 누적 관객 수는 총 44만 4837명을 기록한 한편, 지난 토요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네즈코'의 성우 키토 아카리와 프로듀서 타카하시 유마가 참석한 월드 투어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5. <멍뭉이> (⬆︎2)
김주환 감독의 영화 <멍뭉이>는 주말 관객 2만 5181명, 누적 관객 14만 7611명으로 박스오피스 순위 5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한편, 주연을 맡은 배우 유연석은 지난 일요일 'TV동물농장'에 출연해 경기도의 한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 150여 마리의 개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유연석은 2021년 국내 최대 유기견 보호소인 애린원이 철거할 때 그곳에서 방치됐던 개들 중 하나인 리타를 입양해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작년에 개봉한 5편의 성공으로 1년 만에 후속 편으로 돌아온 공포영화 <스크림 6>가 록키 시리즈 최고 오프닝을 기록하며 지난주 1위를 기록했던 <크리드 3>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크리드 3>는 주말 매출액 2717만 3천 달러를 기록하며 2위로 떨어졌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제작진과 샘 레이미의 합작에 더불어 아담 드라이버의 신작으로 이목을 끌었던 <65>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3위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역시 4위로 떨어지며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뒤이어 엘리자베스 뱅크스 감독의 <코카인 베어>가 주말 매출액 620만 달러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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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스크림 6> 4,450만 달러 (누적 4,450만 달러)
2. <크리드 3> 2,713만 달러 (누적 1억 135만 달러)
3. <65> 1230만 달러 (누적 1230만 달러)
4.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7천만 달러 (누적 1억 9797만 달러)
5. <코카인 베어> 620만 달러 (누적 5166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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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3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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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너 혼자 있기 싫다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특별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죽음'은 모두 시한부 삶으로 나타난다. 태구의 누나도 태구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다른 남매라서 가능하지 않았고, 그마져도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재연도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10%에 불과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에 미련이 없다.
태구 역시 누나와 조카를 죽인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조직 두목인 양사장의 지시로 제주도로 몸을 숨기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인물들 사이를 들여다보면 이 사건이 오래 전부터 시작된 두 조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느와르 장르를 보여주려 하지만,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농담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다.
태구가 찾아간 제주도의 쿠토는 한때 태구의 조직에서 최고 실력자였고, 상대 조직과의 전쟁에서 잔인하고 무서운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 조카인 재연이다.
재연은 학생 때 부모와 동생이 살해당한 장면을 봤으며,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힘들어 한다. 재연은 삼촌인 쿠토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을 갖는 양가 감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데, 이건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감정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삼촌 쿠토는 사실상 재연의 아버지다.
북성파의 마이사는 재연이 중학생 때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때 마이사와 쿠토가 같은 조직에서 일했다는 것을 뜻하며, 어떤 사건으로 쿠토가 북성파 조직을 떠나 양사장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쿠토는 제주도에서 농장을 하며 무기 밀매를 한다. 러시아에서 밀반입한 총기를 국내 폭력조직에 판매하는데, 이 총을 구입하는 조직은 서울의 조직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제주도의 독자적 조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힘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어들어가서 북성파의 마이사 쪽으로 붙는다.
사건은 크게 서울과 제주도에서 발생한다. 태구가 서울에서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제주도로 내려올 때까지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된다. 거대 조직인 북성파는 양사장 조직을 찍어누르는 상태였고, 양사장은 조직 2인자인 태구가 도회장 쪽으로 빠져나갈 것을 몹시 걱정하고 있다. 이때 태구의 누나와 조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양사장은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양사장을 '양아치 새끼'로 부를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데, 그런 양사장에게 자기가 모시는 도회장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 이를 간다. 조직의 크기나 인물의 배포, 성격에서 양사장은 마이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양아치'가 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양사장은 경찰의 고위 간부에게 줄을 대고 있고, 폭력조직을 관리하는 경찰 간부 '박과장'은 마이사와 양사장을 불러 화해시킨다.
그 조건은 도회장과 북성파 조직원을 살해한 태구 하나를 없애는 것이다. 태구를 없애는 것은 마이사가 하되, 뒷처리는 양사장이 하는 것으로 세 사람은 합의한다. 이렇게 태구는 자신의 운명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모른 채 제주도에 남아 있게 된다.
쿠토에게 무기를 사가던 지역 조직원들이 러시아 마피아와 직접 거래를 하겠다며 쿠토를 살해하자 재연과 태구가 이들을 전부 살해하고 농장을 떠난다. 이들은 이제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가 되었는데, 평소 잘 알던 펜션하는 부부에게 펜션을 빌린다.
서울에서 양회장이 태구에게 전화해 자신도 쫓기는 몸이라 제주도로 내려오겠다고 말하고, 공항으로 마중나오라고 한다. 재연과 태구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를 안쓰럽게 여긴다. 태구는 재연이 불치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자신의 누나를 떠올린다. 그래서 재연이 맛있게 먹는 '물회'를 처음에는 먹지 못하지만, 재연과 함께 떠돌이가 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물회'를 맛있게 먹는다.
재연은 태구가 여느 깡패처럼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태구의 눈빛에서 서늘하고 처연한 감정을 공감한다. 태구는 말하지 않았지만, 바로 얼마 전, 누나와 조카를 잃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태구의 눈빛은 제주의 바다만큼 짙고 푸르다.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그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두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치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심한 척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짧은 삶을 남겨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농장에서 재연을 인질로 잡은 마이사가 태구에게 전화해 '너 혼자만 죽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태구는 재연과 조직의 동생 진성을 살리려고 마이사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재연 앞에서 죽게 된다는 것, 재연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재연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태구가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누나와 조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연은 이미 삼촌 쿠토로 인해 부모와 동생이 억울하게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마이사를 찾아 농장에 온 태구는 처음부터 죽도록 맞는다. 그런 태구에게 마이사는 누나와 조카를 죽인 놈이 누구인가를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태구를 죽이려고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도회장을 죽이려는 의도로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이고, 태구에게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태구의 두목 양사장이라고 말한다. 이때 옆에 있던 양사장도 그 말을 듣지만, 부인하지 않는 걸로 봐서 마이사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태구는 양사장을 죽이려 하지만, 마이사는 박과장과의 약속 때문에 양사장을 살리고 태구를 죽인다. 태구는 죽어가면서도 재연에게 농담을 건넨다. 두 사람만 아는 농담은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연결된다.
폭력조직에 몸담은 깡패 태구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리다. 재연과 만나면서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진다. 태구는 그동안 연애를 한 적이 없었을까. 아니, 마음을 울리는, 사랑의 감정으로 심장이 뛰는 그런 여성을 만난 적이 없었을까.
재연을 만나고 태구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한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깨닫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애쓴다. 재연도 평범한 여학생에서 권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단단한 여성이 되지만, 그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오히려 재연이 냉정한 킬러로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어땠을까.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태구와 재연의 캐릭터는 잘 구축되었고,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은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느와르를 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한데, 중간에 가끔 나오는 코믹한 대사는 느와르의 긴장을 풀고, 호흡을 쉬어갈 수 있는 여백이면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블랙코미디의 떠올리게 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오히려 농담을 할 수 있게 되는 부조리는 현실에서 종종 일어난다.
다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리얼리즘의 느와르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잔혹하되 인물의 부조리를 드러낼 것인지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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