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12-19 11:43:40
사자왕이 걸어온 반듯한 왕도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 리뷰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끈 명작 '라이온 킹'이 탄생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9년에 선보였던 실사 영화에 이어 새로운 시리즈를 공개했다.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의 이야기를 담은 '무파사: 라이온 킹'(이하 '무파사')을 내놓았다.
실사 영화 '라이온 킹'처럼 '무파사' 또한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일부 다른 설정을 갖췄다. 프라이드 랜드의 왕인 무파사가 알고 보니 왕의 혈통이 아닌 점, 친형제였던 무파사와 스카는 의붓형제로 변경됐다. "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듭난다"는 메시지에 맞춰 무파사의 서사를 극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심바(도널드 글로버)와 날라(비욘세)의 딸 키아라(블루 아이비카터)가 동생을 출산하기 위해 떠난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라피키(존 카니)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이는 무파사에서 심바로, 심바에서 키이라로 유산(왕의 자질)을 물려주는 걸 암시하며 3대를 하나로 연결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전설의 낙원 밀레레를 찾아 이동하던 무파사(에런 피에르/브레일린 랭킨스)는 대홍수를 만나 다른 곳으로 떠밀려 왔고, 왕의 혈통이자 예정된 후계자 타카(스카, 켈빈 해리슨 주니어/테오 소몰루)를 만나면서 의형제처럼 지낸다. 어느 날 '외부자들' 백사자 무리의 습격 때문에 무파사-타카는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속했던 무리를 떠나 밀레레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암사자 사라비(티파니 분)와 개코원숭이 라피키를 만난다.

'무파사'의 스토리 구조는 기존 '라이온 킹'과 비슷하나, 전작과 달리 용기와 지혜로 왕이 되는 무파사의 모습을 그리며 현대적으로 표현한다. 이때 '라이온 킹'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생명의 순환'을 부각하고자 새로운 빌런인 키로스와 외부자들의 폭력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초원의 밑바닥부터 모든 종이 '생명의 순환' 속에 놓인 동일한 존재라는 걸 모든 동물들에게 전파하고 독려하는 무파사의 리더십을 그린다.
이 영화의 주체가 무파사-타카 두 사자인 만큼, 어렸을 때 친형제처럼 지냈던 이들이 어쩌다 파국으로 치닫게 됐는지 관계성 변화로 영화의 살을 붙인다. 특히 '라이온 킹' 빌런 스카의 타카 시절은 흥미로웠다. 새로운 형제가 생겨 행복해했던 타카는 위기를 맞이하면서 고뇌하다가 어느 순간에 질투심을 느껴 배신하기도 한다. 비겁하고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정 앞에 용기 내는 순간도 있다. 그에 반해 무파사는 심바와 다르게 완성형 캐릭터로 구축되어 있다 보니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실사 영화 '라이온 킹'에서 진일보한 VFX(시각특수효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스케일과 영상미를 자랑했으나, 동물을 의인화하는 과정에서 대사 싱크로율이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고 이 때문에 감정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파사'는 전작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드넓은 초원부터 폭포, 설경까지 아프리카의 장엄한 대자연부터 다채로운 감정 표현하는 동물 묘사, 디테일한 동물 털 표현까지 리얼하다. 흡사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기술력은 확실히 진화했으나, 무파사, 타카, 사라비가 함께 있을 때에는 조금 헷갈린다. 캐릭터별 특징을 다르게 표현하긴 했지만, 한 앵글에 잡혀있을 때 구분하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그 외 완벽한 동물 묘사에 비해 물을 표현한 CG의 완성도는 옥에 티다. 물론 이 부분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데 크게 불편함은 없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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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어트랙션이 영화로! <정글 크루즈>
북미 기준, 30일 금요일 개봉을 앞둔 디즈니의 <정글 크루즈>가 박스오피스 1위에 손쉽게 다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드웨인 존슨과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판타지 모험 <정글 크루즈>는 주말 동안 4200개의 북미 지역에서 최소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매체는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지 않고 제작비에만 2억 달러가 투입된 영화로서는 ‘쾌조의 출발’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글 크루즈>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극장 흥행 수익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디즈니 플러스에 프리미엄 가격과 함께 동시 개봉하는 만큼, 디즈니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소비자 지출’에 대한 부분도 감안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디즈니 플러스 프리미어 액세스에서는 엄선된 영화를 월 30달러에 구입하며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는,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상륙이 지연되었기에 그림의 떡과 같을 수 있겠네요.
디즈니는 7월 초, <블랙 위도우>를 통해 디즈니 플러스에서 첫 주말에만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는 디즈니가 스트리밍 서비스와 관련된 재무 수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첫 사례였는데요. 이러한 점으로 보아, <정글 크루즈>의 디즈니 플러스 판매량도 공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서비스 초기 단계이기에, <정글 크루즈>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어느 정도의 수치를 달성할지는 불확실합니다. 디즈니 테마파크 놀이기구를 기반으로 한 이 PG-13 영화는, 마블 영화를 따르는 충실한 팬들과 같은 팬덤이 없기에 <블랙 위도우>를 필적할만한 결과를 보여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디즈니 플러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진행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과 <크루엘라>를 통해 창출한 수익은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글 크루즈>는 코로나로 인해 몇 번의 개봉 연기를 끝으로, 크고 작은 영화관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코로나 유행이 다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확진자가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영화 상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죠. 이러한 가운데, <정글 크루즈>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정글 크루즈>는, 영국에서 온 용감한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와 그녀의 제안을 받아 함께 모험을 시작하게 된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커뮤터>와 <언더 워터>를 감독한 자움 콜렛 세라가 이 영화를 연출했는데, 현재 <정글 크루즈>는 엇갈린 평을 받으며 로튼 토마토 평균 66%를 기록하고 있죠.
국내 29일 기준,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한 <정글 크루즈>는 <모가디슈>와 <보스 베이비 2> 그리고 <방법: 재차의>까지 다양한 작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 중인데요. 8월 4일 개봉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과연 <정글 크루즈>가 박스오피스 경쟁 속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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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코모레비’를 찾아서
인생은 한 편의 시와 같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자체로 멋지지만 가슴에 오롯이 새겨지지 않았던 이 말은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기여이 내 마음에 들어 앉았다. 평범한 일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 속 찰나와 같은 ‘코모레비(こもれび,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순간은 시처럼 담백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을 그려낸다. 비록 평범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날이라 말하는 영화는 관객 모두에게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어쩌면 이 작품은 그 물음의 답을 찾는 우리들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씻고, 식물에 물 주고,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신 그는 차를 끌고 일터로 나간다. 출근길 동반자는 이른 아침 도심 풍경,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로 들리는 올드 팝이다. 이곳 저곳 화장실 청소를 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사진기로 하늘을 찍는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귀가 후 목욕탕에 가서 말끔히 씻고, 지하철 역사에 있는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기울인다. 캄캄한 밤이 되면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을 청한다. 매일 이 똑같은 일상을 사는 그는 누가 뭐라 하던 간에 묵묵히 자신의 루틴대로 일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조카 니코(나카노 이리사)가 찾아오고, 그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를 통해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보여주며,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히라야마는 매일 똑같은 일을 열심히 한다. 극중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화장실을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냐는 동료의 핀잔에도 히라야마는 닦고 또 닦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순간을 줄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매번 그의 바람처럼 세상 일이 돌아가지는 않지만, 그 또한 인생이라고 믿으며 감내하고 또 다시 일을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히라야마는 고단한 삶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처럼도 보인다.
영화는 히라야마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 특히 매번 그 자리에 항상 있는 사람들을 주시한다. 공원에 있는 나무, 공중 화장실, 집 주차장 캔 커피 자판기 등 무심코 지나가지만 꼭 있어야 하는 존재처럼 서점 주인, 식당 사장, 사진관 사장, 공원 노숙자 등을 히라야마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들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책으로, 술 한잔으로, 사진으로, 존재 자체로 위안과 행복을 주는 이들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평범한 모습과 일상을 담은 건 이 영화의 시작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빔 벤더스 감독은 도쿄의 공공 화장실들을 수리하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리한 화장실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다면 관련된 작품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노 감독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도쿄의 화장실 그리고 이 도시의 사람들 일상을 지켜보며,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히라야마처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다른 이들이 잠시나마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예로 히라야마가 동료 다카시(에모토 도키오)에게 썸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주거나, 조카 니코에게 잠시나마 휴식처를 제공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영화는 감독의 시선처럼, 극중 인물과의 거리두기를 한다. 히라야마라는 인물의 감정이나 과거 이야기를 보여주고 설명하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마치 그가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고, 공원 노숙자를 지켜보고, 동이 트는 도심 풍경을 바라보듯 말이다. 이를 통해 생긴 여백은 아이러니 하게도 관객이 주인공의 일상에 더 집중하고, 미세하게 변하는 그의 감정과 태도를 확인하게 만든다.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바라보는 시점샷으로 변주를 주는데, 이를 통해 히라야마의 감정선과 그날의 온도차를 유추할 수 있다. 장면마다 흐르는 올드 팝 또한 말 수가 적은 그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퍼펙트 데이즈>가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야쿠쇼 코지의 연기 덕분이다. 빔 벤더스 감독이 카메라로 써내려 간 영상 시에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격렬하게 운율을 행하듯 보여주는 연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대사가 아닌 표정과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몇 마디 말보다 임팩트가 더 강하다. 특히 극 후반부 아쿠쇼 코지의 마지막 표정은 압권이다.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처럼 하루 하루 쌓아온 모든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위해 2시간 내내 절제 연기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극 중 다카시의 대사처럼 10점 만점에 10점. 아쿠쇼 코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듯 제76회 칸영화제, 제47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관객이라면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을 보며 삶이 고되기에 찰나의 행복을 느끼는 건지, 찰나의 행복이 크기에 삶이 고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정답은 없기에 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철학적 사유를 할지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닐까. 고단한 삶을 깨우는 소리와 음악, 햇빛, 목욕, 사진, 술 한잔, 책 등 작지만 소중한 것들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니까 말이다. 부디 이 영화를 보고 고단한 삶을 잠시 잊게 만드는 자신만의 ‘코모레비‘를 찾길 바란다. 우리들의 퍼펙트 데이즈를 위해~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고 극장 밖에 나오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꼭 들게 될 것이다. K-pop 대신 올드팝을 듣는 자신에게 너무 놀라지 말고, 두 곡을 포함한 명곡 향연에 푹 빠지길 바란다. 빔 벤더스 감독님! 플레이리스트 좀 공유해주세요~
사진제공: (주)티캐스트
평점: 4.0/ 5.0
한줄평: 단조로운 일상에 스며든 특별하고도 가치있는 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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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애니메이션들 사이에 묻히면 속상할 이 한국 영화
첫인상
“미소야, 인사 제대로 해야지!” 담임 선생님이 미소를 다그친다. “안미소.” 짧은 답변만 툭 내던진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미소. 미소는 제주의 어느 초등학교에 전학 왔다. 낯을 엄청 가리는 미소. 사실 그 이전에 뭐만 하면 전학 가던 탓에 학교에 가는 일이 좀 귀찮게 느껴졌다. 어쩔 줄 몰라하는 미소. 수업 첫날에 엄마를 뒤로하고 갑자기 도망쳐 버린다. 그 짧은 순간에 눈이 마주쳤던 건 원래 짝꿍이 될 예정이었던 하은이었다.
오늘 하은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쟤는 뭘까? 처음 내뱉었던 미소의 인사는 하은이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집에 가는 길.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집에 도착했다. 하은이 가족은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 타지에서 온 어머니와 찐 제주도민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하은. 식탁에서 나오는 대화도 그렇게 무겁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대화 소재가 하은이의 인간관계였다. “얘 친구 없어서 어떵(떡)하지?” 성격도 착한 하은이지만 외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런 하은이에게 갑자기 한 손님이 찾아온다. “안녕! 나는 미소야. 오늘 네 짝꿍이 될 뻔했던.”
어디서 본 것보다 나았어
이 영화는 대만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당시 주연배우였던 주동우의 ‘연기 차력쇼’를 바탕으로 살짝 다크 했던 분위기를 잘 끌고 갔던 원작. 영화를 볼 때 기억에 남았던 것은 글쓴이가 전부터 잘 알던 대만 청춘영화의 연출 방식이 살짝 보인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부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까지 이 대만이라는 나라에 있던 영화들은 어느 장르를 품고 있는 듯하다. 본 작은 이 특성을 잘 소화한다. 나라가 바뀌었는데 대만 청춘영화 특유의 청량감이 살아있는 것이다. 어떻게?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영화의 주요 공간은 제주와 서울이다. 영화의 특성상 전자 제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당위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듯이 영화에서 위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어느 장면에서는 공간 안에 갇혀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바다를 바라보는 데 밍밍하게 바다만 있으면 뭔가 맛이 없다. 그럼 예뻐야 한다. 이런 특성을 살리는데 제주 서귀포시의 어느 공간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뿐일까? 미소와 하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달려가는 것도,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는 일도 색감과 인물들의 분위기를 설정하기 위해서 제주는 필수적이었다. 또 영화 초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후관계도 걸어 다녀야 하는 제주의 특성을 살리기도 했고, 토속적인 장소를 구현한 좋은 수가 됐다.
글쓴이는 제주도 사람이다. 많은 영화들이 제주를 공간으로 사용했단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계춘할망> 같은 경우는 공간을 제주로 설정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주인공이 해녀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도연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인어공주>가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제주로 가서 전원생활을 해야 했던 이유가 있다. 이런 인물의 서사와 함께 제주도 사투리가 들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소울메이트>에서 제주 사투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억지로 막 욱여넣지 않았다는 것이 글쓴이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 차이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이면으로 깔고 표면적으로는 이 공간을 묘사한 감독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반복과 차이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반복과 차이에 있다.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보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는 ‘영혼을 공유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영화는 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우선 미소의 서사다. 미소의 가족 특성은 초반에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에 정확히 반복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내지는 구성요소를 생각해 보면 감독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 영화에서 대놓고 핵심처럼 보이는 미술이라는 소재 역시 감독이 설정한 반복이라는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다. 뭐 이렇게 핵심으로 작동되는 키워드가 아니더라도 영화 대사에서 두 사람의 처지를 관통하는 대사가 나온다.
이렇게 두 사람의 처지를 엇갈려서 제시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주제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퀴어 로맨스를 다룬 영화일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영화가 그 소재를 다룬다고 보지 않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처지를 병치시켜서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있다. ‘너는 내가 살아온 걸 이해 못 해’라는 것이다. 영화는 사실 어떤 인물이 고른 선택지를, 다른 사람이 사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지사지의 영화인 셈이다. 이 세상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면 모든 갈등과 헤어짐이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런 줄 알았는데 상대는 이랬고. 나는 그때 몰랐지만 내 생각보다 상대방이 날 더 좋아했고.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인간은 지루한 인간관계를 반복한다. <소울메이트>는 이를 잘 이해하듯 이 사랑이 왜 우리들에게 공감을 살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성을 인물 간의 관점을 혼합시켜서 부여한 것이다.
K-레이첼 맥아담스
글쓴이는 영화를 보면서 김다미 배우가 정말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전부터 연기했던 몇몇 클립들을 봤었다. 드라마를 즐 안보는 글쓴이지만 <이태원 클라스>나 <그 해 우리는>의 활약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김다미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그동안의 필모를 집대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다미 배우가 지금 1995년 생으로 27세다. 글쓴이랑 두 살 차이 난다. 글쓴이가 지금 교복 입고 고등학생 연기하면 민원 들어올 것 같은데 이 배우는 어떤 헤어스타일로든 찰떡같이 소화한다. 비주얼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 인물은 나이대에 맞는 인물의 행동을 잘 연기한다. 10대 때는 10대답게, 20대 초 불안한 일상을 보내는 청춘으로서의 일상, 악착스럽지 않으면 낙오되는 삶, 30대가 되고 나서 겪는 다른 인생까지 한 사람이 한 인간의 일생을 바탕으로 매번 다른 처지에 적응하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이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매 번 다른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호소력, 눈물연기의 빈도는 뭐 말해 뭐 해? 수준이다.
하은 역을 맡은 전소니 배우도 연기가 좋았다. 하은 캐릭터는 감정적으로 입체적인 측면이 미소보다 넓어야 한다. 하은이가 받아들이는 것이 미소의 서사에서 핵심이고, 또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이런 사랑이 있나요?’라는 질문과도 닿아있다(심지어 영화의 촬영 자체도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많이 짜여 있다). 전소니 배우를 이를 잘 이해하듯 중요한 부분마다 표정연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후반부에서 인물이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 각본이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듦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없으면 영화의 엔딩이 성립되지 않을 수준이다. 이 장면에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애정과 증오를 눈빛으로 보여준다. 전소니 배우의 이름은 몇 번 들어봤어도 실제로 연기하는 건 처음 봤다. 이 배우의 얼굴을 효과적으로 연기를 이끌어낸 좋은 연출이 돋보였다.
작위적이긴 해
영화 장점 정말 많다. 글에서 크게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역시 촬영이다. 제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영화가 유지하는 색감과 구도가 작품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괜히 대만 청춘영화의 업그레이드라고 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까지 전소니, 김다미 배우의 표정연기로 이야기의 작위적인 느낌을 끌고 갔다는 점은 아쉽다.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서로 아끼는 친구 관계가 균열이 일어나는 기점이 있다. 이를 시작으로 후반부와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몰입할만한 요소가 살짝 적다는 느낌이 든다. 충분히 이 전에 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뭐 영화를 보시는데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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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I am Here 범죄 스릴러 속 휴머니즘
불량 남녀와 브라더를 감독했었던 신근호 감독이 12일 개봉을 앞둔 ‘나는 여기에 있다’로 새 작품을 내놓았는데,
주연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VIP 시사회 이벤트에 선정되어 서울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티켓팅을 한 뒤 브릿지 연결 없이 버스 이동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제주항공은 최근 국내선 항공의 운항 편수를 102편으로 늘렸는데, 제주 도민들의 도외 지역으로의 이동을 편리하게 돕고자 만들어진 제주항공은 해외 운항 노선 또한 늘려가며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요금 금액대와 상관없이 포인트 적립이 모두 이루어지고, 마일리지 좌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적립한 포인트 사용이 비교적 쉬운 편으로 포인트로 티켓 구입 시 부족한 포인트는 현금으로 즉시 보충할 수 있다. 포인트 구매 시 공항 이용료나 유류할증료 부분은 포인트로 구매가 불가하며, 별도로 결제를 해야 한다.
다만 적립된 포인트는 유효기간이 있어 그 기간이 만료되면 사라지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라고요.
드디어 제주 땅을 벗어난 비행기는 제주의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도에 진입했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건물들이 무척이나 많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휴양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비행기는 순항을 하며 1시간여를 상공을 날아 서울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관광을 다닌 뒤 시사회가 진행될 건대입구 롯데시네마까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갔다.영화관으로 들어가니 입구 쪽에서 바로 시사회 티켓을 배부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현장 티켓 수령은 별다른 기다림없이 바로 진행된다.
연락처 뒷자리와 이름, 선정 채널 등을 이야기하니 티켓을 나눠준다.
좌석은 임의 배정이다.
VIP 시사회라면 당연히 무대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뷰피였지만, 단순 영화 상영만을 두고도 시사회 진행이 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하고 나니, 참석 신청에 신중이 기해지던 차에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함께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 신청 후 선정되기를 무척이나 바래오던 차에 선정이 되어 더욱 소중하고 값진 순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영화관 내에서뿐 아니라 영화 상영 전 영화관의 한쪽 공간에서는 출연 배우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될 조한선과 정태우 배우 등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기도 했다.
이제는 중견 배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두 배우의 연기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기념 사진 촬영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좌석을 배정받은 2층으로 올라가 무대인사를 기다리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고조된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
요즘 한국 영화의 흥행 실적이 저조한 편인데,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러닝타임은 82분으로 억지로 스토리를 질질 끌고 가지 않으며 포인트를 잡으며 깔끔하게 진행되어 가는 작품이었던 터라 짧은 시간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으셨던 분들에게도 괜찮을 듯싶었다.
7시가 되니 신근호 감독과 조한선, 정진운, 정태우, 노수산나 배우들이 무대로 와 인사를 했다.
범죄, 액션, 스릴러 장르의 ‘나는 여기에 있다’는 2023년 4월 12일 대개봉 예정으로 경찰과 범죄자가 동일한 공여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은 스토리가 가미되었다.
장기를 기증받은 후 예전 성격이나 생활 패턴이 아닌, 공여자의 성격과 생활 습관으로 반응하며 지내는 경우가 종종 의학계에 보고되곤 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언급됩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 말미에 그러한 실제 스토리를 감안해 만든 작품은 아님을 밝히는 문구가 나온다.
신근호 감독 조한선 정태우 정진운 배우 주연 나는 여기에 있다 VIP 시건대 입구 롯데시네마 ‘나는 여기에 있다’ 무대인사 VIP 시사회
무대인사를 위해 상영관 안으로 입장하는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그들의 무대인사가 담긴 동영상을 첨부한다.
영상에 담긴 배우들의 바램처럼 ‘대박’나시길 바란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느낄 수도 있겠다.
긍휼한 시선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는 형사의 마음과 심리를 표현하는 조한선 배우와 아역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이제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낯설지 않은 정태우 배우의 연기가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왼쪽 눈 밑이 떨리는 조한선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
영화 관람이 끝난 뒤 밖으로 나왔는데, 무대인사를 했던 배우들 외에도 영화에 출현한 배우들 또한 눈에 들어옵니다.
무대인사가 있었던 VIP 시사회라 영화 관계자들도 많이 참석했던 자리였다.
티켓값이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오른 편이라 극장가를 찾는 것에 대한 부담과 망설임이 있는 요즘이지만, 공여자의 삶이 장기를 기증받은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친 부분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연출을 한 ‘나는 여기에 있다’를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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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선,변요한 배우의 역량으로 미스터리를 이끌다
취미는 훔쳐보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다. 얼핏 보기엔 그냥 잘생긴 남자다. 하지만 구정태에겐 은밀한 취미가 있다. 바로 훔쳐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타인을 훔쳐보면 왠지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다는 쾌감이 든다. 멀리서 보면 그냥 나도 똑같은 사람일 뿐이잖아? 조용히 취미생활을 가지면 사람들도 모르게 되어있다. 심지어 직업이 공인중개사다. 이 말은 즉슨 타인의 집에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정태에게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여자는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 한소라(신혜선)다. 예쁜 외모를 가진 한소라. 한소라가 소시지를 먹는 모습에 구정태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곧 두 사람과의 만남과도 이어진다. 어렵지 않게 한소라의 집 키를 얻은 구정태. 이번에도 몰래 한소라의 집에 침입한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럼 아무도 없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집 키도 한소라가 줬다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구정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한소라가 칼에 찔린 채로 발견된 것이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경찰에 신고하기엔 변태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되니 난처하고, 혼자 살인마를 잡기엔 너무나도 어렵다. 정태 곁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고들. 안 그래도 잡혀갈까 무서운데 하나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데, 정태는 과연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몰입감은 뛰어나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플롯이다. 왜?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많은 부분을 하나의 동력으로 치환시켰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루고 싶었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셜 미디어의 폐해다. 일반적으로 ‘소셜 미디어의 폐해’하면 뭐가 생각날까? 금세 <더 글로리>에서 최혜정 캐릭터가 보이는 것에 대해 과하게 신경 쓰는 장면이나 <댓글부대>에서 관심을 감당하지 못한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이런 류의 소셜 미디어 묘사는 그동안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소셜미디어 묘사가 들어가기는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로 채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물에 있어 이야기가 갑자기 폭발력을 가지는 지점이 어디일까? 이야기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흘러가야 한다. 그럼 영화가 플롯에서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앞 상황을 중심으로 뭐가 진짜인지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서스펜스에 대한 부분을 영화가 만들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서스펜스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미디어의 단점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영화가 플롯으로 실체화시킨 것이다. 핵심 플롯뿐만 아니라 곁가지가 되는 부분도 미디어가 발전했기 때문에 따라왔던 단점을 묘사하고 있다. 가령 여성 스트리머/BJ/유튜버가 인터넷 방송을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이 부분에 대한 문제나 그럴듯한 구색을 갖췄지만 타인에게 얼마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언론의 역할까지 영화가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현 세태의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 좋은 각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층적으로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하나하나 세세하게 들어가면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몇 있다. 가령 이 영화에서 경찰의 역할은 애매하다. 왜?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전면에 드러나있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초반부부터 목적을 대놓고 드러내고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의 생동감과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이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의 역할이 들어가야 할 때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유명무실하기까지 하다. 설정을 편의적으로 쓴 것이다. 대표적으로 첫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문제제기가 우리 현실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사가 영화 안에서 빛을 발한다면 경찰 캐릭터가 좀 더 유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문제상황이 영화 전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냥 단순히 특정 누군가와의 대립에서만 끝났다는 점이 이 캐릭터를 왜 이렇게 묘사했어야 하는지의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또 이 인물이 영화 안에서 제기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합리적인 지적이 되려면 이 인물이 경찰로서 핵심 플롯이 다루는 사건에 유의미하게 접하는 모습이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은 애매하다는 점에서 아쉽다. 왜 이런 캐릭터가 들어갔을까? 이는 영화의 다른 캐릭터들을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어떤 인물은 미디어의 병폐를 보여주다가 이야기의 방향키를 틀어서 혼자 사는 여성이 가진 어려움을 암시한다. 다른 캐릭터는 빈곤한 인간 내면을 표현함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문제 해결을 구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목적 이전에 캐릭터의 생동감을 먼저 고려하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찰들은 플롯 안에서 겉돌면서 극후반부가 아니면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된다.
수많은 혼잣말
글쓴이 입장에서 영화에서 두드러졌던 요소는 나레이션이다. 나레이션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바로 형식의 가장 기본요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영화는 어떤 장면이 있고 그 모습을 특정 인물이 해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형식을 이끄는 인물은 구정태다. 구정태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 뭘까? 바로 누군가를 염탐한다는 것이다. 구정태는 어떤 장면을 보고 그것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인물의 이 특성을 영화의 성격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염탐한다’라는 행위는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과도 이어지는데,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일상 내지는 일대기를 지켜보는 것이 영화 아닌가? 그리고 대화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하는 행위이며 구정태는 나레이션을 통해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이 두 전제라면 이 영화는 대화를 통해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전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그녀가 죽었다>는 관객을 구정태를 지켜보는 인물임과 동시에 그와 같이 타인들을 지켜보게 하는, 일종의 염탐꾼으로 만들어버린다. 구정태가 대화하는 대상이 우리 관객이라면 영화가 고의적으로 구정태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을 동일시시킨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라는 두 딜레마가 주인공 두 사람의 핵심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가리키는 대상이 관객을 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우리도 이들을 훔쳐보는 염탐꾼인 것과 동시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인물이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레이션이 너무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는 점은 영화의 단점으로 뽑을 수 있다. 이 영화가 관통하고 지나가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은 다 중요한 것들이다. 퇴색되지 않고 오롯이 전달하려면 감정적이지 않는 톤으로 전달하는 게 그 효과를 더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내레이션이 이렇게까지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인물의 내면을 통해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내레이션이 따로 있고, 관객을 극으로 초대하는 내레이션이 따로 있다. 그래서 어느 내레이션은 좀 사족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쯤 되면 이 내레이션 연출에 통일성이 깨진다. 기획의도를 살리는 연출이라면 엔딩부에 누군가가 등장할 필요가 없다. 왜? 그 대사의 내용은 관객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혼자 마무리지어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감이 없었는지 톤을 해치는 장면을 넣어 더 쉬운 접근법을 택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장면이 직접적이라서 좋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글쓴이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이야기의 형식에 측면에서 이 부분은 혼자 마무리지어도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장 마지막 장면과 어울리기도 하고.
어느덧 베테랑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변요한 배우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구정태가 맡은 과제는 두 가지다. 거리감과 박진감이다. 전자 거리감에 대한 부분은 간단하다. 이 영화에서 구정태가 벌이는 범죄행위는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고 하면 싫을 것이다. 이 싫은 느낌을 영화가 부지런하게 묘사하기 위해 변요한 배우는 사소한 차이로 기괴함을 불어넣는다. 가령 초반부 캐릭터를 설명할 때 혼자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의 차이를 두며 인물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후반부가 되면 이 인물의 내면이 사실상 이야기의 중심이 되며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게 된다. 여기서는 자유롭게 감정연기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데 후술 할 신혜선 배우가 뛰어놀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됐다.
다른 주인공을 맡은 신혜선 배우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일단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개성이 있는 캐릭터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한소라 캐릭터가 약간 클리셰를 따른 감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신혜선 배우의 얼굴을 반대로 활용한 데에서 개성이 생긴다. 신혜선이라는 배우의 이면을 활용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연기를 빛내주는 연출도 큰 도움이 되는데, 코디나 메이크업 같은 것도 선을 굵게 그려 한소라라는 인물이 가진 화려함과 허술함을 강조했다. 글쓴이가 감탄했던 부분은 목소리 톤을 변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들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보이는 것 중 무엇이 진짜인지 묻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 대해 한 단어로 요약하면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로움을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장르적인 원동력으로 바꾸어 팽팽한 이야기를 만든 영화가 이 <그녀가 죽었다>다. 외롭기 때문에 인간들이 벌이는 행동이 예상하지 못할수록 더 특이점을 갖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가득한 버스에서 인스타그램을 켜 나는 조금 달랐으면 한다는 이상한 바람. 지금 당장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사고 싶다는 허영심. 영화는 이 수많은 모습들을 외로움으로 꿰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과연 당신의 하루를, 또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요? 답은 여러분이 내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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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이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비하는 방법이 있을까?
우리는 늘 속수무책으로 찾아오는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해 보는 딸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자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커스틴 존슨
은 아버지인 딕 존슨이 여러 유형의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카메라를 드는 것이 일임에도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전, 총명하고 따뜻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고, 갑자기 찾아올 아버지의 죽음에 무뎌지기 위해서 죽음을 리허설하는 것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처음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손자들의 그네를 밀어주던 딕 존슨이 위에서 떨어진 물건에 머리를 맞고 처참하게 쓰러진 장면이 그것이다. 손자의 그네를 밀어주던 다정한 할아버지이자 유쾌한 인물이 어떠한 주의도 없이 머리에 물건을 맞아 쓰러지는 장면.
이를 보고 놀라 멍하니 있을 관객들에게 영화는 쓰러진 딕 존슨이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는 광경을 보여주며 그의 죽음이 허구적 연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해서 딕 존슨이 죽는 여러 사고를 허구적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특징이다. 죽음을 당하는 딕 존슨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멀쩡히 일어서거나 자신으로 분장한 스턴트맨의 죽음을 바라보는 딕 존슨의 모습을 담아내며 관객들을 다시 안심시킨다.
사실, 허구를 다루는 영화에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은 허구적 상황을 관객이 믿도록 만드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극 영화의 대부분이 그런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이 허구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도록 한다. 이로써 관객들은 죽음에 무뎌지게 된다. 처음 그려지는 죽음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죽음에, 그리고 그 죽음이 계속해서 허구임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에 우리는 적응하게 된다. 즉, 영화가 어느 정도 전개되었을 때는 딕 존슨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는 모습을 보여줘도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다 예측 가능하게 관람하게 된다. 물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한다’라는 주제 덕에 이러한 문제점을 피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에 장난처럼 반응하던 딕 존슨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가상에 죽음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점차 진지하게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딕 존슨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더 이상 공포나 스릴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에 감정에 공감하며 지루
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허구적 연출임을 관객들에게 계속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
한다. 이렇게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게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와 몰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몰입을 방해당함으로써 영화 외부의 시선으로 딕 존슨의 죽음과 그에 대한 그의 반응올 목격할 수 있다. 딕 존슨에게 몰입하게 되면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두려워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고, 감독인 커스틴 존슨에게 몰입하게 되면 다가올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시선에서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넓은 키워드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딕 존슨’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보편적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자신에게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즉,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딕 존슨이 누군가의 이름 000으로 바꿔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와 같이 말이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특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감정이 굉장히 처절하고 마음 아프게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가상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약간은 유쾌하게 다루고 있으며 죽는다는 것 자체를 무섭고 슬픈 일만으로는 그리고 있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천국에 가 있는 듯한 딕 존슨의 모습이 종종 중간에 삽입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찍어 먹기도 하고 아내와 춤을 추기도 하며 아픔이었던 자신의 발가락이 펴지기도 한다. 우리는 모르는 죽음 뒤에 벌어질 상황, 즉 사후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은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후세계를 천국이라는 긍정적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운 상황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유쾌하고 발랄하게 표현한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서 ‘000이 죽었습니다‘를 마주하게 될, 그리고 그 000에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게 될, 더 나아가 000에 내 이름이 들어갈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게 될 어느 날,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주변에 누군가가, 혹은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죽음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려 낸 영화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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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조용한 가족"에서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조용하고 소박하게 운영할 산장을 오픈한 가족
하지만 자꾸 시끄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외부로 새나갈 잡음 차단을 위해 노력하는데...산장내 비친된 유머와 상상력을 키워줄 그 시절 잡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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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의 만남고 ㅏ결혼부터 우디 앨런의 아동 성폭행 의혹까지 다룬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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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얻은 명성과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은 리치가 자신을 폭행한 십대들을 찾아 밤거리로 나선다는 내용의 극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