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03-03 22:22:30
사랑으로 점철된 봉준호식 살아남기!
<미키 17> 리뷰
<기생충> 이후 약 5년 만의 신작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사회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도 그러한 듯하다. <기생충>을 통해 한 줌의 빛도 행복도 허락하지 않았던 감독은 <미키 17>을 통해 희망을 얘기한다. 그것도 사랑으로 점철된 희망을. 물론, 그 도착 지점까지 가는 과정은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세상의 불합리함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힘 없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달라졌다. 이게 관객들에게 덜컹거림으로 작용할 듯 하지만 어쩌면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건 희망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더 확고해보인다.
인생은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매듭을 풀기 어렵다.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인생이 그렇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의 꼬드김에 마카롱 사업을 하다가 폭삭 망한 그는 무서운 사채업자를 피해 티모와 함께 지구를 떠나려 한다. 외계 행성 개척 우주선을 타기로 마음먹은 것도 잠시, 미키는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가장 고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이 비인간적 기술로 반복 재생되는 미키는 부속품처럼 우주선 내 노동자로 살아간다. 17번째 복제로 태어난 미키는 얼음 행성 생명체인 ‘크리퍼’를 만나 죽을 위기에 놓인다. 다행히 살아 우주선으로 복귀한 안도감도 잠시, 왓더~~ 자신의 옆에 미키 18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법규를 위반한 ‘멀티풀’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럼 누가 죽어야 할까? 17? 18? 에잇 신발~~
| 이름 없는 노동자의 이름(실존)찾기
미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수없이 등장하는 이 질문. 어쩌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키는 이 질문을 매번 듣지만, 대답을 피한다.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죽음을 반복하는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운명을 가진 이에게 죽음의 개념은 우리와 좀 다르다.
그런 그에게 미키 18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한다. 미키 17은 큰 범주안에서는 본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객체로 받아들인 미키 18을 본 후, 자신의 삶이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멀티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미키 17은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동안 바보처럼 수동적인 삶을 택했던 미키 17은 이 상황을 통해 비로소 능동적인 삶을 취한다. 그는 장대한 미래를 위한 목적으로 실험 쥐처럼 쓰이고, 부속품처럼 사용됐던 자신의 삶이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의 삶은 어떤 의미고, 나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 그것.
극 중 되풀이되는 그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지 않다. 죽는 게 직업이지만, 다수의 이익과 생명을 위한 목적에 사용되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건 참혹할 따름이다. 복제품임에도 생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독재자 케네스(마크 러팔로)는 보란 듯이 그 생명을 박탈까지 한다. 일말의 존중 없이 그게 직업이니 그 본분을 다하라는 말뿐이다. 이는 위험하고 질 낮은 노동 현실에 놓인 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SF 장르를 뚫고 현실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통해 펼쳐지는 후반부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미키 17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복제 인간이지만, 어엿한 생명체로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그 노력과 결단의 값은 다행히도 긍정적이다.
|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집대성, 복제품?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는 <설국열차>의 사회와 비슷해 보이고, 행성의 원래 주인인 크리퍼는 <옥자>의 슈퍼 돼지를 연상시킨다. 나사 빠진 듯한 미키의 모습은 <괴물>의 강두(송강호)를, 크리퍼와의 대화를 위한 통역기는 <설국열차>의 통역기의 초기 버전처럼 보인다.
그동안 쌓아 올린 봉준호 감독의 이력, 그리고 영화 속 장치들이 이 영화 곳곳에 보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독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어서 만든 게 영화라면, 제목처럼 이 영화는 ‘봉준호 8’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 8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미키 17>에는 그동안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비판, 계급에 따른 불평등, SF 설정을 가져와 희망 없는 현실을 빗댄 이야기 등이 들어있다. 이런 소재와 주제 이곳저곳에 섞여 있는데, 이를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그 활용 면에서는 물음표다.
<기생충>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번 영화는 사회 문제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은 우려 때문인지, 웃고 넘어간다. 때때로 깊이 들어가도 될 듯한 부분도 살짝 발만 담근다. 물론, 이 부분이 크게 모난 구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생충>을 생각하고 온 관객들이라면 아쉬운 지점인 건 맞다.
|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봉준호식 일갈, 흘러넘치는 건 흠!
아쉬움을 메우는 건 동양인으로서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비판 의식에 있다. <미키 17>은 우주선 내 개척 사회를 이끄는 케네스와 일파(토니 콜렛) 부부를 통해 멍청한 독재자의 민낯을 보여주고, 정치와 종교(특히 개신교)와의 결탁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지를 오롯이 보여준다. 이는 현 미국 사회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얼굴 마단인 케네스와 뒤에서 조종하는 일파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떤 부부가 생각난다.
우주 행성을 개척한다는 목적으로 모인 독재자와 그를 신봉하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행성 주인인 크리피를 열등한 벌레로 보고 이들을 말살하려는 모습은 개척이라는 목적 아래 영토 및 물적 확산을 위해 식민지를 단행했던 서구 사회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존중 대신 하대하고, 약탈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매스껍다. 특히 크리피 꼬리를 잘라 믹서기에 갈고 최고의 소스라 칭하는 일파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 중요한 건 이들의 만행을 정작 자신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3자의 시선이자, 동양인의 시각으로 서구 사회를 그린 영화는 객관성을 확보하며 비판 어린 시선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에 때때로 고민과 통쾌함을 번갈아 갖는 재미가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앞서 미키를 통해 하위 계층 노동자의 현실과 권력과 종교의 결탈, 독재자의 만행, 서구 사회의 어두운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137분에 넣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 보기보다 인풋이 많고 그에 따른 생각이 번지다 보니 순간순간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 파워 오브 러브, 사랑만이 살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줄을 남길 수 있는 건 ‘사랑’ 덕분이다. 영화에서 ‘사랑’은 그 중요성이 크다. 먼저 감독의 첫 번째 멜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많은 이들에게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미키지만, 오로지 나샤에게는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다. 복제 번호는 다르지만 그 또한 미키로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 시험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쩌면 미키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 주는 이가 바로 나샤다.
이들의 멜로 라인을 견고하게 쌓는 건 이 힘든 시기에 필요한 건 ‘사랑’이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극 중 관계를 맺는 이들은 각자 필요에 의해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미키와 나샤는 무조건적인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독재자 및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없는 그 마음이 이들에게는 있다.
후반부 크리퍼와 전쟁을 치를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를 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미키 17, 18과 나샤 등이다. 마음속에 사랑과 존중이 있는 이들이기에 비로서 크리퍼와 소통을 할 수 있고, 참혹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극 중 산재한 문제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손쉽게 해결한다는 생각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혼탁한 현실 사회가 더 심화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사랑’의 의미는 위대하고 더 커 보인다. 사랑 또는 존중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크다. 이 잔혹한 사회 실상이 염세적이었던 감독의 마음마저 바꾼 듯하다. 그만큼 사랑은 위대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덧붙이는 말: 극 중 미키의 삶을 바꾼 매개체로 빨간 버튼이 나온다. 그 버튼을 누른 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그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빨간 버튼이 있을 터. 그 버튼을 또 한 번 누를 때가 오기 마련인데, 두렵지만 막상 누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자아가 보인다. 미키처럼 말이다. 생존 자체가 힘든 세상에서 자신만의 빨간 버튼을 찾고 눌러보면 어떨까! 사랑도 하고!
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
평점: 3.5 / 5.0
한줄평: 사랑으로 점철된 봉준호식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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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키 17"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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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카메라 Summer's Camera
Korea | 2024 | 83min | Fiction | 전체관람가 | Asian Premiere
▶Director
성스러운 Divine SUNG
▶Cast
김시아 이은솔 유가은 배영란 곽민규
▶시놉시스
아빠를 따라 사진을 찍던 여름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런 여름이 축구부 에이스인 연우에게 첫눈에 반해 고등학교 때 아빠가 쓰던 카메라로 홀린 듯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현상하자 그 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여름은 사진들 속에서 아빠의 비밀을 보게 된다. 과연 여름은 첫사랑을 이루고 아빠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결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억의 파편이자 그중에서도 필름은 직접 감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여름의 카메라>는 그런 기억의 파편을, 어느 ‘여름’의 기억을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이어서 사용하는 여름은 현상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빠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의 사랑은, 그리고 여름이 마주하는 아빠의 사랑은 필름과 참 닮아있다. 여름이 마주하게 되는 아빠의 사랑은 뜨거웠던 그의 계절 중 일부일 뿐이고, 그 사랑의 주인인 아빠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파편은 이제 필름이라는 물질을 통해 딸 여름에게 전해져 그녀의 관점에서 새로이 감각되고, 재생될 뿐이다.
기억의 파편, 감각되는 물질을 통한 이러한 연결은 <여름의 카메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나 홀로코스트의 기억처럼 역사적 기억이 후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중요히 언급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당사자, 체험의 당사자가 사라졌을 때 그 기억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여름의 카메라>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임흥순 감독의 <기억 샤워 바다>에서는 ‘옷’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한 사람의 삶이 후대로 전승되고 있고,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영화 필름이 과거 단절된 영화와 인물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은 필름을 통해 아빠와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과 연결된다. 그렇게 아빠가 쓰던 여름의 카메라는 하나의 매개로서 여름을 곳곳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다.
#매개체로서의 필름과 여름의 연대
<여름의 카메라> 속 인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끈끈하게 연대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애썼다기 보다 그들의 첫 만남은 모두 의도치 않은 우연함으로 시작된다. 여름은 우연히 축구부 연우를 만나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필름을 현상하여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진에 의해 아빠의 과거 기억과 마주하게 되며, 그 기억을 따라가다가 마루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우연한 만남은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이때 여름의 중요한 매개체는 ‘필름 카메라로, 여름이 사진을 찍어주고 현상하고, 그 실물을 다시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을 직접 실천하며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여름의 카메라>에서 필름이 인물들 사이를 연결하고, 단절된 무언가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의 커밍아웃과 정체성 또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름이 가장 가까운 절친인 민정에게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 민정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하며, 여름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현상된 사진 덕에 마루에게는 의도치 않게 첫 만남부터 연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이것은 당혹스럽거나 난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루와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고, 여름 자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함으로써 연우와 마음을 트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의 정체성은 인물들 간의 연대를 더욱 견고하고 단단히,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때로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때로는 유일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되며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며 순수하고도 뜨거운 계절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과 다양한 형태의 연결을 꿈꾸게 한다.
감독은, 5/5일 진행된 <여름의 카메라> GV에서 ‘밝은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여름의 카메라>는 감독님이 목표하신 바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푸르른 배경과 따스한 색감은 주인공들의 통통 튀는 말투와 어우러져 햇살 같은 그들의 청춘을 돋보이게 하고, 인물들이 내뱉는 툭툭 내뱉는 진솔한 마음들은 숨기거나 걱정하고, 끙끙 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와 나눌 수 있는 것,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인물의 성장과 미래를 향한 여정에 기여한다. 여름의 사진처럼 그들의 사랑과 아픔, 청춘과 우정은 이내 지나가 붙잡을 수 없겠지만, 그들이 나눈 설렘과 기억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 4. 30. ~ 2025. 5. 9.
▶상영일정
2025. 05. 03 (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 (GV)
2025. 05. 05 (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4:00 (GV)
2025. 05. 06 (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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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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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 둘의 광기
그토록 기다리던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나서 '아 언제 개봉날 오냐'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소처럼 일하는 근면성실함 덕에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또 <문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디즈니 시리즈도 있었다! 오스카 아이작의 1인 다역 연기 보는 맛에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뭐 같은 사회복무요원 노예생활에서도 마블 덕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야에 무려 오후 반가를 쓰고 갔던 극장! 영화 자체는 나에게 엄청 재밌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은 기대치를 충족한 느낌이 좋았다. 샘 레이미 감독의 필모그래피 <드래그 미 투 헬>, <이블데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몇 군데 보여 보는 재미도 좋았다. 만약 안 본 분이 있다면 난 추천하고 싶다.
아. 안 본 분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완다 비전> 시리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없고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기 싫다 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내용 요약이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크 홀드의 존재와 비전의 존재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웬만하면 <완다 비전>을 구독해서 보는 걸 추천드린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요약본 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브루스 캠벨'이라는 배우가 감독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피 단골손님이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이 뭐 영화 자체에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배우의 등장이 갑자기? 싶은 구석도 있을 것 같다. 사전에 알려진 대로 호러 맛 첨가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또한 샘 레이미의 이름값과 어울리는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올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엄청났다! 아,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고 싶다. 이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읭? 싶으실 수도 있는 부분을 글로 풀어쓰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의 폭넓은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스칼렛 위치
이게 <완다 비전>을 봤는지 유무가 극 이해에 영향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다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봤겠지? 잠깐 언급하자면, 비전은 완다에게 타노스의 마인드 스톤 회수 방지를 위해 자기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한다. 완다와 비전은 서로 연인관계였기에 완다는 당연히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을 결심하는 완다. 어벤저스를 위해 자기 손으로 연인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타임 스톤을 활용해서 비전을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머리에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죽는다.
다시 <완다 비전>으로 돌아간다. 완다의 시트콤은 끝이 났다. 연인이 떠난 세상을 받아들이는 완다. 자기기만의 원인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에는 소드가 있었다. 실드와 유사한 조직인 소드. 소드의 국장이라는 놈은 비전의 몸을 오체 분시 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원 때문에 다. 고작 돈 때문에 내 연인을 죽이려고 한다. 국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한다. 완다의 동의도 없이 비전을 무작정 끌고 갔다. 그리고 그 해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완다. <시빌 워>에서 부터 시작해, 온 세상이 그녀에게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다. 멘토였던 스티브 로저스와 호크아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닉 퓨리? 의무만 주고 혜택은 뭐 준 게 있었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희생해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던 완다. 그녀에게 행복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에 돌아가려고 애쓴다. 굴곡진 그녀의 삶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유일한 전성기였다. 현재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돌리는 완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완다 비전>의 빌런 아가사가 말해준 다크 홀드를 꺼내는 완다. 그렇게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 전우주적으로 강력한 마법사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완다는 이 힘을 이용해 멀티버스를 파괴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고 싶어 한다.
짧게 완다의 서사를 써 봤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완다 비전>과 인피니티 사가의 모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하나라도 안 본 분은 영화의 갑작스러운 호러영화 전개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과수원이 지옥도로 변한다고? 갑자기 완다가 스티븐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고?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오기 이전에 완다는 이런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봤던 스타크 폭탄. 너무 어릴 때 하이드라와 엮여 생겼던 능력. 이 덕에 날 괴물 취급하는 세상. 히어로 노릇하다 떠난 오빠와 비전. 마음 둘 데 없이 자기 인생 찾아 떠난 선배들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녀가 희생해야 할 건 많았는데 세상이 해준 게 있을까? 솔직히 소드/실드/어벤저스가 도움 된 거라곤 비전의 오체 분시 직관이었다. 뭐 <시빌 워>에서도 그녀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전 세계가 두들겨 팼으니 어느 정도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그녀의 흑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크 홀드를 펼치기 전에 슈퍼히어로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내면이 뒤틀린 인간이다. 유일한 행복이라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인데, 히어로 짓 해서 얻었던 것도 없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적인 내면묘사로 인해 인물의 성격이 뒤틀렸고 이는 곧 <완다 비전>으로 이어진다. 아마 슈퍼 히어로서의 선함이 내면에 우세하다면 웨스트뷰 마을 주민들을 세뇌시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본작에서의 살육극은 완다가 MCU에 존재하며 갚아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전체에 대해서는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 이유
극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다. 슈퍼 히어로서의 닥터 스트레인지이며, 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마블의 영화를 꾸준히 정주행 했다면 그의 서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초반부다. 이상한 아저씨가 스티븐에게 스윽 나타나서 '정말 그것 빼곤 방법이 없었냐?'라고 묻는다. 스티븐은 대답한다. '응. 그거 빼곤 없었어'라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크리스틴과 대화한다. 그녀가 스티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어차피 우리는 안 됐을 거야'라고. 크리스틴 역시 '그 방법 빼고는 없었다' 식의 답을 한 것이다. 사랑에 미련이 남은 스티븐에게 비수가 꽂힌다. 그리고 마음이 깨진다. 마치 유리가 깨진 시계처럼. 정말 그 방법 빼곤 없었을까?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한 듯 보인다.
다른 스트레인지는 디펜더 스트레인지(꽁지머리 스트레인지)이다. 아메리카 차베즈와 멀티버스를 여행하다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사망하는 스트레인지. 그는 아메리칸 차베즈의 능력을 뺏으며 '이것 빼곤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차베즈를 살상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 스트레인지는 시체가 된다. MCU로 시체가 이송되고, 이 꽁지머리 스트레인지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극후 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슈프림 스트레인지다. 슈프림 스트레인지는 본인을 희생해서 타노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이언맨이 메인 세계관에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가 추앙받는다. 그러나 슈프림 스트레인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다크 홀드를 이용해서 멀티버스를 여행했고, 이 덕에 타노스 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내 기억상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 빼곤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의 행적을 뒷받침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변종 크리스틴이다. 크리스틴은 스티븐에게 '그 역시 독선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언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믿지 않았다.
네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역시 독선적인 판단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틴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한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이것에 대현 여파로 그 역시 흑화 했다.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수도 없이 밀어 죽여왔으며 메인 유니버스의 스티븐에게도 다크 홀드를 이용한 교환을 요청한다. 당연히 거절하는 스티븐. 이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요약하자면 역시 타인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역시 자기가 선택한 해결책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네 명의 스트레인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틴의 대사 '모든 스트레인지는 다 똑같군요'로 다시 재현된다. 그리고 이 독선적인 선택을 다른 주요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바로 완다다. 사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완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크리스틴/완다의 두 아이)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해 흑화 했으며 역시나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아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 이름이랑 외모만 다르다 뿐이지 완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MCU 스티븐의 대결이 완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완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인가? 와도 닿으며, 부제에 Madness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스티븐은 완다만큼 미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크 홀드가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역시 그걸 이용해서 스칼렛 위치를 저지했다. 그럼 그게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아닌가? 그가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그의 이런 광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변종 크리스틴과 변종 스트레인지를 투입해서, 자기가 쌓아놓은 이 '내로남불'과 마법사의 운명론을 서서히 깨트린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을 거라 믿었던 스티븐.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웠던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해 이제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그가 슈퍼히어로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유이며, 그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네 명의 스트레인지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변종 스트레인지의 모순이 완다와 유사해져 그의 성장 서사를 만든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빠른 퇴장?
극에 흥미로운 집단이 나왔다. 바로 일루미나티다. 일루미나티는 원작에서 굉장히 똑똑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변종 모르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잔인하게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특히 캡틴 카터와 변종 미스터 판타스틱은 어린이날 전날에 나온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잔인하게 죽었다. 찰스 자비에는 X맨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강력함 절반도 못 갔다. 얼핏 보면 슈프림 스트레인지가 다크 홀드를 써서 타노스를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 어느 정도는 이 일루미나티의 퇴장이 허무했다. 다른 세계의 어벤저스 같은 존재들이 마법사 한 명에게 먼지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난 이게 필요한 연출이라고 봤다.
첫 번째. 클리셰 뒤집기다. 우리가 익숙하던 사람들이 나왔다. 변종 모르도, 찰스 자비에, 변종 캡틴 마블, 캡틴 카터, 미스터 판타스틱 모두 사실 <왓 이프..?>와 <인휴먼즈>, X맨 시리즈 등 기존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집단이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찰스 자비에의 경우 본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세계관에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종 모르도도 소서러 슈프림이고. 캡틴 마블은 그냥 세고. 블랙 볼트는 입 열면 엄청 강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인물들이 스티븐과 차베즈, 웡과 동맹을 맺어서 완다를 상대하면 사실 좀 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이 평이하게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인피니티 워>가 생각난다. 이미 뒤집는 이야기를 몇 번 썼던 샘 레이미가 이걸 눈 뜨고 패스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완다가 울트론이고 뭐고 다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맨몸 히어로가 스티븐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들과 비등하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두 번째. 후반부에 드러나는 맥거핀 '비샨티'의 존재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에서도 썼듯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성장 서사가 중요한 영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오케이. 어느 세계관이던 궤변이 심한 스트레인지는 넣었어. 그리고 그 아치 에너미로 완다도 넣었어. 그러면 완다가 엄청 세야겠지? 그럼 그 완다가 세진 이유는 뭐야? 다크 홀드겠지? 근데 다크 홀드가 중요해? 아니야. 결국 중요한 건 다크 홀드를 쓰는 스티븐의 모순이야.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쓰게 만들어야 해. 멀티버스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완다가 아바타를 조종하듯 스티븐도 마찬가지의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 이를 위해서 비샨티의 존재에 힘을 점점 더 주게 된다. 비샨티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사용하는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완다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크 홀드에 의해 강해진 완다. 일루미나티를 바사삭 가루로 갈아버린다. 그럼 이 강해진 완다와 상대하기 위해서 비샨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비샨티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일루미나티는 필요했다. 스티븐의 모순을 보여주는 도구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일루미나티 역시 스티븐과 똑같은 모순을 범했다. 일루미나티는 스티븐에게 '완다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는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그들 역시 스티븐과 같은 실수를 범했고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난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 때문이라도 그들이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각본상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완다의 사망?
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도 모른다. 난 안 죽었다에 건다.
일단 배우가 마블과 재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고또 <호크아이>의 킹핀처럼 일부러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후속작과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나와주세요.. 히히..시계의 의미?
이 시계라는 매개체는 사실 영화 리뷰계의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다 근데 이 시계가 깨졌다? 당연히 그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븐에겐 미련이 있다. 크리스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질해진 스티븐. 사랑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전해지 못했던 마음을 크리스틴에게 전한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고치는 신이 나온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싸우는 자아에 대한 꿈을 꾸고 시계가 부서진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신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타났다. 내적인 성장 이후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마법사의 예언이 아닌, 나와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믿으니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슈피 히어로서의 성장이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의 진보와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언맨 2>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샘 레이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호러 분위기였다. 완다가 거울에 갇히는 장면 인상 깊었다. 또 어디에선가 좀비같이 튀어나오는 장면, 물웅덩에 눈 하나 짠 나오는 장면, 자비에의 죽음, 메이크업까지 섬세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하이라이트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가 영혼을 가지고 망토처럼 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멀티버스 내부 묘사나 가르 간 토스 외면까지 판타지에 의존하는 부분도 꼼꼼함이 가득했다. 샘 레이미라서 가득한 CG 느낌? 또 사운드도 몰입하기 좋았다. 아마 피아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감이 단 1도 없다. 고전적인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과연 1등 공신인 셈이다. 이 외에도 초반부 가르 간 토스를 사살하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엔딩신에선 <드래그 미 투 헬>이, 좀비 비주얼은 <이블데드>가 생각났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음표 전투신 좀 오그라들었다. 너무 샘 레이미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다. 굳이 음표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주변 물건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완다 비전>이 강제되는 부분은 라이트 하게 즐기는 분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뭐 뭘 만들든 제작자들 마음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두 마법사의 광기를 보여주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 잘하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1인 4역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미묘하게 달라야 한다. 그냥 대놓고 다른것도 뭐 어렵겠지만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신기할 정도. <문나이트>의 오스카 아이작을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냥 빙의한 사람 같았다. 특히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변종 크리스틴과의 대화신이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건 누가 보면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다른 배우 중 놀란 사람은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분노. 슬픔. 당황. 행복회로 굴리는 모습. 광기. 눈물. 모든 것을 소화하는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또 일단 비주얼적으로 너무 예뻤다. 피칠갑을 해도 미모는 못 숨겼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스타성 만으로도 티켓값을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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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2호
📮 6월 2주차 2번째 씨네뉴스가 도착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7월에 제작 시작!
한 인터뷰에서 에밀리 블런트가 드디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관한 소식을 조심스럽게 밝혔는데요!
올해 7월부터 제작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2026년 5월에 개봉 예정이니
20년만의 귀환인데요…
개인적으로도 너무너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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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호아킨 피닉스 주연, 아리 애스터의 ‘Eddington’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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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명작] 맞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내가 앉은 카페 맞은편에는 '풍천장어 직판점'이 있다. 그리고 그 비가 오는 길거리에 한 남자 전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다. 저 사람은 누구와 통화하고 있을까? 조잘조잘 웃으며 환하게 웃는다. 마스크가 없는 얼굴에 미소가 더 잘 보인다. 왠지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하고 있을 것 같다. 그냥 친구랑 통화하는 거면 저렇게 환하게 웃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카페에 앉아서 늘 먹는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또 옆에는 화분이 덩그러니 있다. 그 화분에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으른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초딩입맛인 나. 이 카페는 large 사이즈가 4천 원 언저리라서 부담 없이 오기 좋다. 사회복무요원의 신분 덕에 돈이 없어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맞지만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크고 싸게 한다. 카페모카 류의 커피가 들어간 음료들도 비슷한 가격대지만 난 단 것만 판다. 딱 이런 것만 보면 청승맞은 이유가 있다. 적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와도 난 역시 단 게 좋고 군것질이 좋다. 내 연인이 마이구미를 좋아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그걸 매일 먹으면 한 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금세 비가 오는 밖의 모습이 보인다. 우산 한 개를 가지고 두 커플이 손 꼭 잡고 걸어가고 있다. 내 우산은 누가 갖다 줄까?라고 자신에게 반문한다. 확실한 건 뭔가 으-른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난 추적추적 비 맞으며 그냥 뛰어가야겠다. 2001년의 한국 어느 곳에서도 우산을 혼자 쓴 남자가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왓챠로 달려가 보자.
행복 회로 위이잉
우리의 주인공 봉수는 그냥 직장인이다.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주인공.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좀 질렸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봉수. 봉수는 고민이 있다. 바로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다. 나는 왜 결혼을 못하는 걸까? 마음이 답답해진 봉수. 나 정도면 직장도 있고 성격도 괜찮아서 할 만하지 않나? 사실 아내는 고사하고 여자 친구도 없는 봉수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다 평생 혼자 사는 것 아닐까?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된다고 봉수의 불안은 점점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우 이 끔찍한 이 기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 옆구리가 시린 느낌이 평소 때보다 더한 것 같다.
이 외로움을 친구에게 주절주절 터놓는 봉수.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나만 빼고 사람들이 통화하는 꼴이 처량했다. 친구는 곧바로 답한다. “나한테 하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속을 몰라주는 것이 답답하다. 그래도 봉수의 삶에 다행인 것이 있다. 바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친구였다. 그래도 너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가 독신주의자인 너보다 먼저 할 테니까. 친구는 곧이어 대답한다. “너 민정이 알지? 걔 결혼한대.” “누구랑 해?” “나랑.” “그날 네가 사회 봐라” 알고 보니 기만자였다. 진짜 너무한다. 사회 보라는 말이 없었다면 비교적 덜 염장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으아!!!!!! 나같이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왜 결혼을 못하는 거야? 세상은 역시 미스터리 투성이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결혼이거나 연애다. 나만 왜 못하는 걸까? 절규를 우아아아아악 내지르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봉수.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맑게 웃는 여자와 뭐든 해내는 남자의 사랑이야기
영화는 봉수와 원주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우리가 아는 사랑 영화는 다양하게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맛이다. 귀여운 주인공들, 엇나가는 마음, 풋풋한 내면까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에 갖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바로 타격감이다.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가 섬세한 느낌이다. 특정 장소 앞에서 내면을 털어놓는 장면, 형광등 가는 장면, 원주의 성격 묘사까지 영화는 파릇파릇한 장면으로 러닝타임을 채워놓았다. 그중 생각하는 최고의 풋풋함은 봉수가 마술을 배우는 장면이다. 현대 2022년으로 치면 MBTI쯤 될 마술. 사랑을 위해 마술을 배운다는 게 왠지 우리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라 귀엽다. 근데 이런 자질구레한 소심함 설경구 배우가 캐릭터를 잘 살려서 귀여운 요소로 작용한다. 헤어스타일 + 코디 + 왠지 짠내 나는 성격 + 말투까지 실제로 이런 사람이 꽤나 많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여주인공 원주의 캐릭터도 귀엽다. 원주는 보습 학교 선생님이다. 제법 따뜻한 선생님인 원주. 아이 한 명이 엉엉 울고 있어 ‘무슨 일이니’ 묻는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하다. “애들이 선생님 닮았다고 놀려요!" 예전에 기타리스트 조정치 님이 나와서 '같은 반 애들이 조정치 닮았다고 놀려요'라는 고민상담을 들어주던 짤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원주는 그것보단 유연하게 대처한다. 착한 원주. 우리가 아는 전도연 배우의 비주얼에 그런 캐릭터를 부여한 게 솔직히 납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준다. 원주는 그렇게 내면이 깨끗한 사람이다. 영화는 이렇게 파릇파릇한 캐릭터들로 러닝타임을 끌고 간다.
풋풋한 이 느낌
두 주인공 설경구-전도연 배우의 이 작품 전작 <박하사탕>과 <해피엔드>가 생각난다. 광기가 폭발하던 <박하사탕>이나 불륜을 다뤘던 <해피엔드>까지 이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상큼 발랄한 모습이 보인다. 특히 전도연 배우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전도연이란 사람을 실제로 아는 건 아니지만 왠지 이 배우는 상상력으로만 연기를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이런 상큼 발랄한 성격이 내면에 있을 것 같다. 근데 설경구 배우의 짠내 나는 모습은 정말 새롭다. <킹메이커>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나 <네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뒤틀린 내면까지 요즘 관객들은 모를법한 인물 연기가 재밌었다. 뭔가 왓챠라는 OTT의 순기능 같은 느낌?
있을 때 잘해라 인마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얼굴에 또박또박 적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런 미래를 예지 하는 능력 따윈 없으니 사랑에 울고 웃는다. 이 울고 웃는 것에서 오는 난제는 역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일 것이다. 영화는 이 난제에 대한 묘사도 빼먹지 않았다. 막상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남자 주인공의 욕심은 사실 우리와 그렇게 차이가 있진 않다. 나도 주말마다 카페에서 궁상과 주접을 떨지만 '아무나랑 사귀어라'라고 하면 싫다. 좀 별 것 아닐 것 같은 상황과 처지지만 이런 구석구석 디테일한 인물 묘사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미묘한 내면묘사는 '뒤돌아 본다'라는 행동이다. 내내 사랑스러운 톤과 분위기로 이끌어가지만 상실과 부재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이 있으니 이 부분도 관객에게 강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있을 때 잘해라. 그리고 현재의 네 삶을 사랑하라'라는 고루한 주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마음과 정서가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이유는 각본의 꼼꼼함 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엔딩이다. 두 주인공의 성격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래서 로맨스 영화를 보나 싶다.
깨알같이 담겨있어
어느 각도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에 진전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잔잔하다!'라고 생각하실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소소한 디테일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왠지 점점 이뻐지는 듯한 원주, 우산으로 시작한 첫 장면, 봉수의 찌질한 대사 톤까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랑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좋은 대리만족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작품들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연애 빠진 로맨스>같이 19금 코드가 적절히 들어있는 게 떠오르지 극장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제 안정세에 접어든 만큼 우리 한국영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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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프랑스] 5시부터 7시까지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씨네랩 크리에이터 챌린지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프랑스>
많은 사람들에게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키워드는 단연코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일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를 비롯해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의 걸출한 영화 감독들을 주축으로 일어난 프랑스 영화 사조를 지칭하는 누벨바그는, 영화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를 주축으로 활동했던 영화인들에 의해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식 할리우드 영화의 범람과 고전적 기성 영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작가주의적이고 전위적인 촬영 기법들을 활용하며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씨네랩에서 보내주신 추천작 리스트에서 프랑스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등의 누벨바그 작품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쩐지 샛길로 새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지라, 괜시리 리스트에 없는 감독들의 이름을 하나 둘 떠올리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활동한 감독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단편 영화와 기록 영화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 좌안파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를 골라보았다.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리는 아녜스 바르다는 단편으로 시작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4), <방랑자>(1985),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해온 벨기에 출생의 프랑스 감독이다. 누벨바그의 흐름에 동참해 관습적인 영화 구조를 해체하고, 여성 감독으로서 주체화 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전면적으로 등장시켰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주인공 클레오 또한 주체성의 렌즈에 포착된 여성 캐릭터이다. 가수로서 활동을 이어가던 클레오가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며 죽음의 불안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그녀가 파리 시내를 배회하는 시간의 흐름을 러닝타임과 거의 일치시키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관객은 클레오와 함께 그녀가 경험하는 순간의 인상들을 흡수하고, 그녀의 불안을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클레오는 불길한 점괘 하나를 받는다. 병으로 죽음이 찾아온다는 뜻일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뽑아든 타로 카드는 13번의 Death, 죽음이다. 절망한 클레오의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거쳐 완전한 타인에게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을 영화는 13개의 장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클레오에게 죽음이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하는 공포와 두려움, 불운의 대상이지만 마지막 13번째 장을 지나서야 죽음(Death) 카드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영화의 색채 대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대립쌍으로서의 삶, 그리고 흑백 영화의 검은색과 하얀색이라는 대립적 색채 구조는 노골적으로 삶과 죽음의 메타포를 형성해 나간다. 거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대립쌍 또한 중첩된다. 점괘를 받고 나서는 클레오는 ‘추함이야말로 죽음을 뜻하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난 살아있는거야.’라며 자신을 위안한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그녀가 상점에서 고른 모자는 검은색의 겨울용 털모자다. 죽음의 색과 계절. 고심 끝에 고른 모자를 쓰고 나서려던 그녀의 바람이 ‘화요일에 새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재수가 없다’는 알젱의 일축으로 무너진다. 그러나 정작 알젱이 고른 ‘재수가 좋은’ 택시의 번호는 새로 받은 번호라는 아이러니. 이후 그녀는 동료 작곡가들과 발매할 곡을 고르다, 장송곡과 같은 비장한 노래를 검은 배경으로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하고 부르게 된다. 관객과 마주치는 그녀의 시선과 고조되는 현악기의 배경음이 초현실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 없이는 Sans Toi>
아름다움은 황폐해지고
잔인한 겨울 속에 버려진 나는 빈 껍데기일 뿐이에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절망에 갇힌 채로 투명한 관 속에 누워 내 몸은 썩어가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이 오는 그 날 까지
나는 가만히 기다릴 거에요
나 홀로 창백하고 외롭게
노래가 끝나자마자 화면이 줌아웃되고, 클레오가 꿈에서 깨어난 듯 관객을 현실로 불러온다. 잠시 잊고 있었던 절망에 다시 사로잡힌 그녀는 온통 검은색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친구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 카메라는 어둠이 가득한 다리 밑을 지나가는 클레오를 비춘다. 이렇게 클레오를 따라다니는 검정-겨울-어둠의 이미지는 7시를 향해 가며 중첩되고, 더욱 짙어진다.
전환은 흥미롭게도 친구의 애인이었던 라울이 보여준 영화를 통해 일어난다. 라울은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이라는 짧은 영화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조심하시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영화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연인을 배웅하던 남성이 계단에서 넘어져 영구차에 실려가는 연인을 목격하고는 슬퍼하다, ‘선글라스 때문에 세상이 까맣게 보였던’ 것임을 깨닫고는 멀쩡한 모습의 연인에 안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을 찾아보는 것은 덤.) 영화를 보고 친구와 헤어지는 길, 클레오는 상점에서 샀던 검은 겨울용 모자를 친구에게 선물로 주어 보낸다. 클레오가 죽음의 불안에서부터 처음으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인간이 탈피하는 계기가 ‘영화’라는 감독의 연출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인간의 유한성을 망각하고 뛰어넘게 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계 상황 앞에 클레오와 같이 인간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정작 죽음은 선글라스와 같이 한꺼풀 벗겨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결국 클레오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수용이었다. 앙투안느를 만나 두려움에 피하고만 있던 의사와의 면담을 가질 용기를 얻게 된 그녀는 의사로부터 두 달간 화학치료를 받으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답변을 받는다. 완전히 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닌 조건부의 상태에 놓였음에도 그녀는 행복함을 느낀다. 우연히 의사를 만나기 전부터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는 대신 앙투안느와의 현재를 즐기기로 한 순간부터, 클레오는 플로랑스로 변화한다. 봄이라는 뜻의 그녀의 본명처럼, 겨울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시작. Death 카드의 진정한 의미이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의 이어짐을 의미한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인간이 이겨내는 법은 영원한 생이 아니라, 죽음의 수용으로 주어지는 남은 삶의 찬미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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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13구 리뷰 - 올해 가장 감각적인 멜로 로맨스 영화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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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운 도시, 파리 13구.
낭만을 잃었다 생각한 그 곳에서 불현듯 사랑을 만났다.
사랑을 원하는 에밀리
사랑이 두려운 노라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
사랑을 몰랐던 카미유
흔들리고 불안했던 그 사랑이, 우리는 전부라 생각했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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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다운 SF 신작 "미키 17" / 로버트 패틴슨 / 인류의 미래와 존재 윤리 / 대한민국 평행이론 / 분노 유발 가능성 주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키 17"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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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씽2게더> 1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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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카터> 공식 예고편
지워진 기억, 단 하나의 미션. Skip 불가! 멈출 수 없는 논스톱 리얼타임 액션 《카터》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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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대와 마음
여름의 카메라 Summer's Camera
Korea | 2024 | 83min | Fiction | 전체관람가 | Asian Premiere
▶Director
성스러운 Divine SUNG
▶Cast
김시아 이은솔 유가은 배영란 곽민규
▶시놉시스
아빠를 따라 사진을 찍던 여름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런 여름이 축구부 에이스인 연우에게 첫눈에 반해 고등학교 때 아빠가 쓰던 카메라로 홀린 듯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현상하자 그 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여름은 사진들 속에서 아빠의 비밀을 보게 된다. 과연 여름은 첫사랑을 이루고 아빠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결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억의 파편이자 그중에서도 필름은 직접 감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여름의 카메라>는 그런 기억의 파편을, 어느 ‘여름’의 기억을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이어서 사용하는 여름은 현상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빠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의 사랑은, 그리고 여름이 마주하는 아빠의 사랑은 필름과 참 닮아있다. 여름이 마주하게 되는 아빠의 사랑은 뜨거웠던 그의 계절 중 일부일 뿐이고, 그 사랑의 주인인 아빠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파편은 이제 필름이라는 물질을 통해 딸 여름에게 전해져 그녀의 관점에서 새로이 감각되고, 재생될 뿐이다.
기억의 파편, 감각되는 물질을 통한 이러한 연결은 <여름의 카메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나 홀로코스트의 기억처럼 역사적 기억이 후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중요히 언급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당사자, 체험의 당사자가 사라졌을 때 그 기억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여름의 카메라>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임흥순 감독의 <기억 샤워 바다>에서는 ‘옷’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한 사람의 삶이 후대로 전승되고 있고,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영화 필름이 과거 단절된 영화와 인물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은 필름을 통해 아빠와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과 연결된다. 그렇게 아빠가 쓰던 여름의 카메라는 하나의 매개로서 여름을 곳곳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다.
#매개체로서의 필름과 여름의 연대
<여름의 카메라> 속 인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끈끈하게 연대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애썼다기 보다 그들의 첫 만남은 모두 의도치 않은 우연함으로 시작된다. 여름은 우연히 축구부 연우를 만나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필름을 현상하여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진에 의해 아빠의 과거 기억과 마주하게 되며, 그 기억을 따라가다가 마루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우연한 만남은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이때 여름의 중요한 매개체는 ‘필름 카메라로, 여름이 사진을 찍어주고 현상하고, 그 실물을 다시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을 직접 실천하며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여름의 카메라>에서 필름이 인물들 사이를 연결하고, 단절된 무언가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의 커밍아웃과 정체성 또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름이 가장 가까운 절친인 민정에게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 민정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하며, 여름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현상된 사진 덕에 마루에게는 의도치 않게 첫 만남부터 연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이것은 당혹스럽거나 난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루와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고, 여름 자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함으로써 연우와 마음을 트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의 정체성은 인물들 간의 연대를 더욱 견고하고 단단히,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때로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때로는 유일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되며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며 순수하고도 뜨거운 계절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과 다양한 형태의 연결을 꿈꾸게 한다.
감독은, 5/5일 진행된 <여름의 카메라> GV에서 ‘밝은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여름의 카메라>는 감독님이 목표하신 바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푸르른 배경과 따스한 색감은 주인공들의 통통 튀는 말투와 어우러져 햇살 같은 그들의 청춘을 돋보이게 하고, 인물들이 내뱉는 툭툭 내뱉는 진솔한 마음들은 숨기거나 걱정하고, 끙끙 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와 나눌 수 있는 것,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인물의 성장과 미래를 향한 여정에 기여한다. 여름의 사진처럼 그들의 사랑과 아픔, 청춘과 우정은 이내 지나가 붙잡을 수 없겠지만, 그들이 나눈 설렘과 기억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 4. 30. ~ 2025. 5. 9.
▶상영일정
2025. 05. 03 (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 (GV)
2025. 05. 05 (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4:00 (GV)
2025. 05. 06 (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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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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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 둘의 광기
그토록 기다리던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나서 '아 언제 개봉날 오냐'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소처럼 일하는 근면성실함 덕에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또 <문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디즈니 시리즈도 있었다! 오스카 아이작의 1인 다역 연기 보는 맛에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뭐 같은 사회복무요원 노예생활에서도 마블 덕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야에 무려 오후 반가를 쓰고 갔던 극장! 영화 자체는 나에게 엄청 재밌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은 기대치를 충족한 느낌이 좋았다. 샘 레이미 감독의 필모그래피 <드래그 미 투 헬>, <이블데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몇 군데 보여 보는 재미도 좋았다. 만약 안 본 분이 있다면 난 추천하고 싶다.
아. 안 본 분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완다 비전> 시리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없고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기 싫다 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내용 요약이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크 홀드의 존재와 비전의 존재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웬만하면 <완다 비전>을 구독해서 보는 걸 추천드린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요약본 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브루스 캠벨'이라는 배우가 감독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피 단골손님이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이 뭐 영화 자체에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배우의 등장이 갑자기? 싶은 구석도 있을 것 같다. 사전에 알려진 대로 호러 맛 첨가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또한 샘 레이미의 이름값과 어울리는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올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엄청났다! 아,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고 싶다. 이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읭? 싶으실 수도 있는 부분을 글로 풀어쓰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의 폭넓은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스칼렛 위치
이게 <완다 비전>을 봤는지 유무가 극 이해에 영향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다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봤겠지? 잠깐 언급하자면, 비전은 완다에게 타노스의 마인드 스톤 회수 방지를 위해 자기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한다. 완다와 비전은 서로 연인관계였기에 완다는 당연히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을 결심하는 완다. 어벤저스를 위해 자기 손으로 연인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타임 스톤을 활용해서 비전을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머리에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죽는다.
다시 <완다 비전>으로 돌아간다. 완다의 시트콤은 끝이 났다. 연인이 떠난 세상을 받아들이는 완다. 자기기만의 원인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에는 소드가 있었다. 실드와 유사한 조직인 소드. 소드의 국장이라는 놈은 비전의 몸을 오체 분시 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원 때문에 다. 고작 돈 때문에 내 연인을 죽이려고 한다. 국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한다. 완다의 동의도 없이 비전을 무작정 끌고 갔다. 그리고 그 해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완다. <시빌 워>에서 부터 시작해, 온 세상이 그녀에게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다. 멘토였던 스티브 로저스와 호크아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닉 퓨리? 의무만 주고 혜택은 뭐 준 게 있었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희생해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던 완다. 그녀에게 행복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에 돌아가려고 애쓴다. 굴곡진 그녀의 삶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유일한 전성기였다. 현재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돌리는 완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완다 비전>의 빌런 아가사가 말해준 다크 홀드를 꺼내는 완다. 그렇게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 전우주적으로 강력한 마법사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완다는 이 힘을 이용해 멀티버스를 파괴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고 싶어 한다.
짧게 완다의 서사를 써 봤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완다 비전>과 인피니티 사가의 모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하나라도 안 본 분은 영화의 갑작스러운 호러영화 전개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과수원이 지옥도로 변한다고? 갑자기 완다가 스티븐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고?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오기 이전에 완다는 이런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봤던 스타크 폭탄. 너무 어릴 때 하이드라와 엮여 생겼던 능력. 이 덕에 날 괴물 취급하는 세상. 히어로 노릇하다 떠난 오빠와 비전. 마음 둘 데 없이 자기 인생 찾아 떠난 선배들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녀가 희생해야 할 건 많았는데 세상이 해준 게 있을까? 솔직히 소드/실드/어벤저스가 도움 된 거라곤 비전의 오체 분시 직관이었다. 뭐 <시빌 워>에서도 그녀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전 세계가 두들겨 팼으니 어느 정도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그녀의 흑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크 홀드를 펼치기 전에 슈퍼히어로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내면이 뒤틀린 인간이다. 유일한 행복이라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인데, 히어로 짓 해서 얻었던 것도 없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적인 내면묘사로 인해 인물의 성격이 뒤틀렸고 이는 곧 <완다 비전>으로 이어진다. 아마 슈퍼 히어로서의 선함이 내면에 우세하다면 웨스트뷰 마을 주민들을 세뇌시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본작에서의 살육극은 완다가 MCU에 존재하며 갚아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전체에 대해서는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 이유
극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다. 슈퍼 히어로서의 닥터 스트레인지이며, 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마블의 영화를 꾸준히 정주행 했다면 그의 서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초반부다. 이상한 아저씨가 스티븐에게 스윽 나타나서 '정말 그것 빼곤 방법이 없었냐?'라고 묻는다. 스티븐은 대답한다. '응. 그거 빼곤 없었어'라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크리스틴과 대화한다. 그녀가 스티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어차피 우리는 안 됐을 거야'라고. 크리스틴 역시 '그 방법 빼고는 없었다' 식의 답을 한 것이다. 사랑에 미련이 남은 스티븐에게 비수가 꽂힌다. 그리고 마음이 깨진다. 마치 유리가 깨진 시계처럼. 정말 그 방법 빼곤 없었을까?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한 듯 보인다.
다른 스트레인지는 디펜더 스트레인지(꽁지머리 스트레인지)이다. 아메리카 차베즈와 멀티버스를 여행하다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사망하는 스트레인지. 그는 아메리칸 차베즈의 능력을 뺏으며 '이것 빼곤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차베즈를 살상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 스트레인지는 시체가 된다. MCU로 시체가 이송되고, 이 꽁지머리 스트레인지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극후 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슈프림 스트레인지다. 슈프림 스트레인지는 본인을 희생해서 타노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이언맨이 메인 세계관에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가 추앙받는다. 그러나 슈프림 스트레인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다크 홀드를 이용해서 멀티버스를 여행했고, 이 덕에 타노스 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내 기억상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 빼곤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의 행적을 뒷받침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변종 크리스틴이다. 크리스틴은 스티븐에게 '그 역시 독선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언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믿지 않았다.
네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역시 독선적인 판단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틴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한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이것에 대현 여파로 그 역시 흑화 했다.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수도 없이 밀어 죽여왔으며 메인 유니버스의 스티븐에게도 다크 홀드를 이용한 교환을 요청한다. 당연히 거절하는 스티븐. 이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요약하자면 역시 타인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역시 자기가 선택한 해결책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네 명의 스트레인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틴의 대사 '모든 스트레인지는 다 똑같군요'로 다시 재현된다. 그리고 이 독선적인 선택을 다른 주요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바로 완다다. 사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완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크리스틴/완다의 두 아이)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해 흑화 했으며 역시나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아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 이름이랑 외모만 다르다 뿐이지 완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MCU 스티븐의 대결이 완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완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인가? 와도 닿으며, 부제에 Madness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스티븐은 완다만큼 미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크 홀드가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역시 그걸 이용해서 스칼렛 위치를 저지했다. 그럼 그게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아닌가? 그가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그의 이런 광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변종 크리스틴과 변종 스트레인지를 투입해서, 자기가 쌓아놓은 이 '내로남불'과 마법사의 운명론을 서서히 깨트린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을 거라 믿었던 스티븐.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웠던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해 이제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그가 슈퍼히어로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유이며, 그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네 명의 스트레인지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변종 스트레인지의 모순이 완다와 유사해져 그의 성장 서사를 만든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빠른 퇴장?
극에 흥미로운 집단이 나왔다. 바로 일루미나티다. 일루미나티는 원작에서 굉장히 똑똑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변종 모르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잔인하게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특히 캡틴 카터와 변종 미스터 판타스틱은 어린이날 전날에 나온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잔인하게 죽었다. 찰스 자비에는 X맨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강력함 절반도 못 갔다. 얼핏 보면 슈프림 스트레인지가 다크 홀드를 써서 타노스를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 어느 정도는 이 일루미나티의 퇴장이 허무했다. 다른 세계의 어벤저스 같은 존재들이 마법사 한 명에게 먼지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난 이게 필요한 연출이라고 봤다.
첫 번째. 클리셰 뒤집기다. 우리가 익숙하던 사람들이 나왔다. 변종 모르도, 찰스 자비에, 변종 캡틴 마블, 캡틴 카터, 미스터 판타스틱 모두 사실 <왓 이프..?>와 <인휴먼즈>, X맨 시리즈 등 기존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집단이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찰스 자비에의 경우 본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세계관에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종 모르도도 소서러 슈프림이고. 캡틴 마블은 그냥 세고. 블랙 볼트는 입 열면 엄청 강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인물들이 스티븐과 차베즈, 웡과 동맹을 맺어서 완다를 상대하면 사실 좀 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이 평이하게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인피니티 워>가 생각난다. 이미 뒤집는 이야기를 몇 번 썼던 샘 레이미가 이걸 눈 뜨고 패스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완다가 울트론이고 뭐고 다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맨몸 히어로가 스티븐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들과 비등하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두 번째. 후반부에 드러나는 맥거핀 '비샨티'의 존재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에서도 썼듯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성장 서사가 중요한 영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오케이. 어느 세계관이던 궤변이 심한 스트레인지는 넣었어. 그리고 그 아치 에너미로 완다도 넣었어. 그러면 완다가 엄청 세야겠지? 그럼 그 완다가 세진 이유는 뭐야? 다크 홀드겠지? 근데 다크 홀드가 중요해? 아니야. 결국 중요한 건 다크 홀드를 쓰는 스티븐의 모순이야.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쓰게 만들어야 해. 멀티버스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완다가 아바타를 조종하듯 스티븐도 마찬가지의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 이를 위해서 비샨티의 존재에 힘을 점점 더 주게 된다. 비샨티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사용하는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완다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크 홀드에 의해 강해진 완다. 일루미나티를 바사삭 가루로 갈아버린다. 그럼 이 강해진 완다와 상대하기 위해서 비샨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비샨티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일루미나티는 필요했다. 스티븐의 모순을 보여주는 도구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일루미나티 역시 스티븐과 똑같은 모순을 범했다. 일루미나티는 스티븐에게 '완다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는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그들 역시 스티븐과 같은 실수를 범했고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난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 때문이라도 그들이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각본상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완다의 사망?
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도 모른다. 난 안 죽었다에 건다.
일단 배우가 마블과 재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고또 <호크아이>의 킹핀처럼 일부러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후속작과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나와주세요.. 히히..시계의 의미?
이 시계라는 매개체는 사실 영화 리뷰계의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다 근데 이 시계가 깨졌다? 당연히 그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븐에겐 미련이 있다. 크리스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질해진 스티븐. 사랑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전해지 못했던 마음을 크리스틴에게 전한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고치는 신이 나온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싸우는 자아에 대한 꿈을 꾸고 시계가 부서진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신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타났다. 내적인 성장 이후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마법사의 예언이 아닌, 나와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믿으니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슈피 히어로서의 성장이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의 진보와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언맨 2>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샘 레이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호러 분위기였다. 완다가 거울에 갇히는 장면 인상 깊었다. 또 어디에선가 좀비같이 튀어나오는 장면, 물웅덩에 눈 하나 짠 나오는 장면, 자비에의 죽음, 메이크업까지 섬세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하이라이트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가 영혼을 가지고 망토처럼 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멀티버스 내부 묘사나 가르 간 토스 외면까지 판타지에 의존하는 부분도 꼼꼼함이 가득했다. 샘 레이미라서 가득한 CG 느낌? 또 사운드도 몰입하기 좋았다. 아마 피아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감이 단 1도 없다. 고전적인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과연 1등 공신인 셈이다. 이 외에도 초반부 가르 간 토스를 사살하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엔딩신에선 <드래그 미 투 헬>이, 좀비 비주얼은 <이블데드>가 생각났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음표 전투신 좀 오그라들었다. 너무 샘 레이미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다. 굳이 음표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주변 물건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완다 비전>이 강제되는 부분은 라이트 하게 즐기는 분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뭐 뭘 만들든 제작자들 마음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두 마법사의 광기를 보여주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 잘하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1인 4역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미묘하게 달라야 한다. 그냥 대놓고 다른것도 뭐 어렵겠지만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신기할 정도. <문나이트>의 오스카 아이작을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냥 빙의한 사람 같았다. 특히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변종 크리스틴과의 대화신이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건 누가 보면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다른 배우 중 놀란 사람은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분노. 슬픔. 당황. 행복회로 굴리는 모습. 광기. 눈물. 모든 것을 소화하는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또 일단 비주얼적으로 너무 예뻤다. 피칠갑을 해도 미모는 못 숨겼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스타성 만으로도 티켓값을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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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2호
📮 6월 2주차 2번째 씨네뉴스가 도착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7월에 제작 시작!
한 인터뷰에서 에밀리 블런트가 드디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관한 소식을 조심스럽게 밝혔는데요!
올해 7월부터 제작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2026년 5월에 개봉 예정이니
20년만의 귀환인데요…
개인적으로도 너무너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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