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2-09 08:09:24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법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늘 시사회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다룬 작품이니, 오셔서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쓰려면, 12월 4일 오전 9시 49분에 발송된 문자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초현실적인 내란 획책이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지금 ‘영화 따위’가 문제냐며 퇴근 후 곧바로 어느 집회 현장이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문자를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가 떠올랐다. 참사 후 가수들이 예정대로 콘서트를 진행하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때, 한 음악 평론가가 말했다. ‘그럴 거면 앞으로 음악으로 위로받았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우리는 지금 예술이 ‘하찮아지는’ 시국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실이 예술을 초월하는 기막힌 상황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술에서 이 시국을 헤쳐 나갈 용기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며, 나는 내란범과 그에게 동조하는 세력에 맞설 ‘사소한’ 방법 중 하나를 떠올렸고, 되새겼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펄롱의 걷는 장면이다. 그의 걷는 모습을 비추거나, 그가 걸으면서 마주했을 법한 풍경을 비추는 장면 말이다. 펄롱이 일상적으로 걸으며 마주하는 그 모든 사람과 풍경에서, 그는 정동 소외자다. 펄롱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지 못한다. 펄롱은 학대당한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동전을 건넨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그들이 학대당한다는 낌새를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펄롱을 나무란다. 퍽퍽하지만 그런대로 소박한 현재의 안온한 삶을 잃지 않으려면 눈을 감고 그들에게서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펄롱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펄롱은 종종 그 길을 오르며 헉헉거린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석탄을 배달하는 펄롱은 거친 솔로 손가락과 손톱 구석구석에 낀 석탄 가루를 닦아낸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흔적도 없이 닦아내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펄롱은 헷갈린다. 수녀원에서 본 소녀들에게서 사랑하는 딸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펄롱은 그들에게서 고아인 그를 조건 없는 선의로 돌봐준 어른들 덕분에 번듯하게 성장한 그가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본다.

이제 펄롱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에 솔직할 것인가, 모두의 요청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일에 눈감을 것인가. 펄롱은 이 문제를 거창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가 수녀원에서 마주한 소녀 세라와 함께 걸으며, 수녀원이 아닌 자기 집으로 걸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펄롱은 수녀원에 갇힌 ‘사고 치는 여자’와 ‘사랑스러운 딸’ 사이에 놓인 임의의, 우연적인, 불분명한 구분선을 지워낸다. 자기 자신의 경험과 감각, 감정과 정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펄롱은 그저 세라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음으로써 이 일을 해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아일랜드 수녀원에서 대규모로 자행된 소녀들의 노동력 착취 및 감금, 학대 사건에서 출발한다. 원작 소설을 쓴 클레어 키건에 따르면, 1996년에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기 전까지 수녀원에 감금당한 채 강제 노역에 시달린 소녀의 숫자는 최소 만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달한다. 9천 명의 소녀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금의 명분은 ‘타락한 여성’의 수용이었다.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이 사건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가?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질문해보면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고 맞서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압도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펄롱처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변화와 저항을 모색할 수 있다. 자기 감각과 경험을 믿는 것이 출발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감각과 경험이 누군가의 삶과 생명, 개별 인간들의 관계성,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규칙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밟는 것으로 지향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내란범들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중요할 것이다. 불완전하고 문제투성이일지라도, 우리 일상의 토대를 이루는 연결망을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지가 기준이어야 한다.
담담한 소박함으로, 평범한 소시민들이 각자와 서로의 삶을 꾸려온 방식으로 초현실적인 폭력을 거스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하는 듯하다. 내면에 침잠해 세상을 짊어진 펄롱의 용기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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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연대의 꿈틀거림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4번째로 다가간 작품이다. 두 작품 역시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이고, <아가씨> 역시 기대하며 봤다. 결과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꼈다. 아직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앞서 두 작품과 비교를 한다면 <아가씨>가 조금 더 위트 있는 재미를 던진다. 그러나 반대로 퀴어 요소와 귀족 남성의 모순을 꼬집는 주제, 어두운 필름 촬영기법으로 영화를 다 본 후 여운을 남긴다. 달콤한 막대사탕 같은 영화 같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가씨> 스틸컷
제작진
영화는 칭찬할 게 많다. 시나리오도 시나리오 이거니와, 시나리오 배경인 1930년대 일제시대 건축 양식과 실내 장식, 귀족 의상과 장신구 등 미술팀과 의상, 분장팀의 노력과 준비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도 뛰어났다. 히데코(김민희)를 씻겨주는 장면에서 숙희(김태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히데코의 모습과 같이 등장인물 시선으로 바라보는 촬영으로 영화를 흥미 있고 몰입도 있게 볼 수 있다. 카메라 렌즈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해 고풍스럽고 고급진 귀족 느낌을 내며 영화가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편집은 또 어떠한가. 제1부는 숙희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제2부는 히데코, 제3부에서 이 두 시선이 통일되어 현재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 둘의 시선을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영화는 몽타주 기법으로 편집한다. 덕분에 우리는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인물 관계도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 문제점들을 단번에 이해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종합예술의 마술이지 않는가!
비유와 상징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대사의 농담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상징물들과 비유 표현들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가령, 백작이 히데코를 다 넘어왔다는 신호로 "다 익은 거 같다"라는 대사와 함께 먹은 복숭아의 과즙은 백작이 히데코를 유혹해서 둘의 관계를 붙게 하겠다는 의미가 있다. 또, 숙희가 히데코 몰래 방을 뒤지면서 발견한 밧줄은 히데코를 챙겨줬던 죽은 이모를 히데코가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매개체이자 히데코가 이모와 똑같이 자살할 것이라는 앞으로의 예측, 실제로 자살하려고 끈을 묶었지만 숙희가 히데코를 붙잡으며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는 숙희와 진실과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연인이 되는 사랑의 매개체로 추측할 수 있다.
모순
<아가씨>는 크고 작은 모순으로 나뉘어 있다. 큰 모순은 당시 귀족 남성 사회의 모순이다. 귀족이라면 귀품 있고 매너와 지성이 풍부한 사람일 거 같지만 그들은 히데코(김민희)가 읽어 주는 야한 소설의 내용을 듣고 흥분하며 야한 소설을 사기 위한 경매장에 들락날락 거리는 불순한 존재들로 나온다. 특히 경매장을 운영하는 코우즈키(조진웅)는 어린 히데코를 협박하고, 추행하여 그녀가 강제로 야한 소설을 낭독하도록 만들게 한다. 그들의 모습들은 그저 발정 난 개처럼 야한 것밖에 모르는 불순한 귀족 남성들이기에 일반적인 귀족에 대한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 모순은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이다. 히데코 인생을 망치러 온 그녀의 구원자인 숙희는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백작(하정우)과 함께 히데코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워 히데코 하녀로 곁에 있는다. 하지만 점차 히데코와 숙희는 사랑에 빠지고 둘은 백작과 코우즈키를 피하여 사랑의 도피를 한다. 퀴어 요소는 이성애라는 범위에서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건 모순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건 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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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달러를 향한 질주
5월 19일 국내 개봉 이후 6주간 총 2,275,323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 매출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긴 기다림 끝에 찾은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개봉 3일 동안 7000만 달러 (한화 약 791억 원)을 모으며 팬데믹 이후 최고 수익 경신은 물론, 2019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래 최고 수익을 기록하였습니다.
개봉일이었던 6월 25일 당일에만 4,179개의 극장에서 3,000만 달러를 끌어모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 9편은 이전까지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 1위를 달리던 공포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기록을 큰 격차로 따돌리게 되었는데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북미 오프닝 스코어 : $47,547,231)
이 기록에 대해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역인 빈 디젤은 CTAOP(Charlize Theron’s Africa Outreach Project) 행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극장이 돌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그는 극장 단독 개봉을 택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결정을 높이 샀는데요.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택한 다른 스튜디오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유니버설은 매우 대담했으며, 이러한 극장 개봉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본 작품으로 시리즈에 귀환한 프로젝트 설립자 '샤를리즈 테론' 또한 분노의 질주의 '대박' 오프닝 기록에 대해 “엄청나다. 이번 작품이 시리즈 제 9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현재 약 80%의 극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캐나다’ 극장이 아직까지도 대부분 닫혀있기에 회복되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시리즈 제 9편이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이전작인 스핀오프 작품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오프닝 스코어였던 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북미 최종 수익 1억 7300만 달러, 전 세계 수익 7억 5900만 달러를 기록하였기에, 제 9편이 이를 뛰어넘는 기록을 달성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 가정이 사실이 된다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총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한 팬데믹 이후 첫 영화가 탄생하게 됩니다.팬데믹 이후 15개월 동안 42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말 그대로 "닫혀있던"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이 즉시 회복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많은 작품들이 개봉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개봉해주었던 고마운 영화들로 인하여 관객들의 꺼지지 않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다림’이 막연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회복될 극장을 기다리며,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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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웡카..이게 뭔카..
Wonka / 웡카
며칠 전 드디어 '웡카'를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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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여정 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법사이자 초콜릿 메이커 ‘윌리 웡카’의 꿈은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것.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모자 가득한 꿈과 단돈 12소버린 뿐이지만 특별한 마법의 초콜릿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낡은 여인숙에 머물게 된 ‘웡카’는 ‘스크러빗 부인’과 ‘블리처’의 계략에 빠져 눈더미처럼 불어난 숙박비로 인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른다. 게다가 밤마다 초콜릿을 훔쳐가는 작은 도둑 ‘움파 룸파’의 등장과 ‘달콤 백화점’을 독점한 초콜릿 카르텔의 강력한 견제까지.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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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웡카... 이게 뭔카... "
이게 영화 관람 직후 제 감상입니다.
20대중반으로서 '조니뎁'의 윌리웡카를 이 세상 최고의 웡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제게, '티모시 샬라메' 웡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너무나 밝은 긍정의 아이콘 '웡카'
이 영화는 티모시 샬라메의 노래로 막을 엽니다.
막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웡카는 다가올 자신의 미래에대해 희망찬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오프닝을 시작으로 이 영화는 줄곧 긍정적인 웡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설정이 '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서의 웡카의 모습과 사뭇달라 부조화를 일으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웡카(조니뎁)는 극중에서 외롭고, 우울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어릴적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멋진 성인이 된 현재에도 그를 괴롭힙니다.
이처럼,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웡카는 긍정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실제로 극중에서도 그의 대사를 통해 그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웡카'의 웡카는 너무 긍정적입니다.
너무.
그리고 극중에서 그의 유년시절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입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웡카의 모습과 상반된 이미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웡카'는 전혀 다른 영화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둘이 다른 영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설정을 이렇게 없애버릴 거라면 왜 '웡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아버지와 웡카의 트라우마는 극의 중심이 되는 요소들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삭제하고 웡카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해놓았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 팬들의 비판과 실망감은 감내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연출
이 영화를 보며 줄곧 했던 생각은
'굳이 노래를 불렀어야했을까....?'
입니다.
제작진의 의도, 알겠습니다.
웡카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는 긍정에너지 영화로 만들고 싶으셨던거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꼭 노래를 해야만 했습니까?
영화를 관람하며, 티모시 샬라메를 비롯한 배우들의 노래가 거슬렸습니다.
노래가 좋지도, 노래를 잘부르지도, 그렇다고 의미가 있지도 않은 노래들을 아쉬운 춤실력과 함께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머리를 짚게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주관적인 부분이니, 불편하신분들은 패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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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물설정도 아쉬웠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은데 그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잡혀있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들의 역할 또한 불분명했습니다.
티모시와 다섯친구들 중 '누들'빼고는 왜 있는지 모를..
심지어 움파룸파도 딱히 하는 것 없음..
+ 웡카랑 친밀감 형성도 잘 안되어있음.
그런데 냅다 도와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웡카와 초콜릿 대소동,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름다운 친구들과의 우정? (X)
웡카의 긍정 마인드? (X)
초콜릿은 최고?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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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저는 2.5/5점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준 초콜릿은 얼른 먹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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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아들의 두려움과 엄마의 조롱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아리 에스터 Ari ASTER
출연]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 네이단 레인 Nathan LANE, 에이미 라이언 Amy RYAN
시놉시스
'보 와서먼'(호아킨 피닉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철없는 남자다. 그는 아파트를 떠나 어머니 '모나'(패티 루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 하는데, 이때 모든 상황이 엉망이 된다. 고립되고 부상을 입는 등 갈수록 기이해지는 충격적인 그의 여정이 시작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옛날 집에 도착하게 된 보는 끔찍한 기억들과 추악한 비밀을 마주한다.
'아리 에스터'다운 난해함
자기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고스란히 품은 <유전>과 <미드소마>로 이름을 알린 아리 에스터 감독. 그의 작품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연출 면에서는 점프 스케어를 지양한다. 기괴한 영상미와 음악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하고, 이를 통해 관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내재된 집착을 공포와 미스터리의 소재로 사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수많은 상징 덕분에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다. 종합하면, 난해하다.
세 번째 장편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마찬가지다. 장르는 달라졌다. 호러가 아니라 판타지나 심리극에 더 가깝다. 그러나 난해함은 여전하다. 성기 괴물과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가 가득해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를 구성한 5개 챕터 사이의 연관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코미디, 연극, 로드무비, 심지어 좀비 영화(?)까지 섞여 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이야기의 힘이 그만큼 강렬하다.
의외로 단순한 얼개
하지만 첫 두 장면에 집중하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얼개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 입장에서는 단순하다고 생각한다"는 아리 에스터 감독 말대로다. 영화는 엄마 뱃속에 태아인 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보. 그런데 이때 분만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엄마는 아들이 울지 않는다고, 아들을 받을 때 간호사가 실수한 거 아니냐고 화낸다. 보를 울리려는 간호사에게 아들을 폭행한다고 소리 지른다.
영화는 곧장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보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다. 의사와 상담을 할 때 그와 그의 어머니 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 집에 찾아가는 걸 꺼리는 보. 가끔은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다는 심정도 들켜 버린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이야기의 주제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억압적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들에 대한 영화라고.
안 그래도 영화는 주제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상담을 마친 보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도 힌트를 준다. 한 남자아이가 광장 분수에서 놀고 있다. 보가 그 옆을 지나갈 때 아이의 어머니는 화를 내며 아들을 낚아챈다. 아이의 장난감은 그대로 분수에 버려진다. 보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도 똑같다. 엄마에게 혼나며 쫓기는 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관건은 집착하는 어머니를 아들이 떨쳐낼 수 있느냐다.
뒤틀린 모정의 파노라마
이런 관점에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일종의 정신 치료기처럼 보인다. 특히 영화의 각 챕터는 보의 정신 상태를 각각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죽거나 자기가 죽음에 가까운 충격을 받으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보. 그때마다 그는 자기도 미처 몰랐던 현실과 욕망, 상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성장한다.
첫 번째 챕터는 보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의 치마폭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 회사가 만든 냉동식품을 먹으며 엄마 회사가 지은 건물에서 산다. 또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도 못한다. 엄마 생일에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그는 성인답지 못하게 우유부단하다. 이는 그의 눈에 마약 중독자와 강도가 가득한 세상은 항상 위험하고, 보호막이었던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다.
두 번째 챕터에서 보는 모성애의 실체를 마주한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본가로 향하는 보. 도중에 그는 '로저(네이단 레인)'와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 부부 집에 잠시 머문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이 가족. 그러나 속은 썩었다. 뒤틀린 모성애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파병 나간 아들이 죽은 이후로 그에게만 집착한다. 잘못된 모정은 둘째 딸 '토니'(카일리 로저스)의 죽음을 초래한다. 엄마의 사랑을 잃은 그녀는 오빠를 미워한다. 오빠 방을 칠한 하늘색 페인트를 마시고 죽을 정도로.
세 번째 챕터는 연극이다. 이 연극은 보 자신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자기가 누릴 수도 있었던 이야기다. 엄마의 죽음을 해방으로 받아들였을 때 펼칠 수 있는 이야기다. 뒤틀린 모성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남자.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시련을 겪어 가족을 모두 잃지만, 끝내 다시 재회하는 해피엔딩. 보는 자기가 자기 삶의 운전자가 되는 삶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례식이 열린 엄마의 집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마침내 온전히 주체적인 성인이 되는 듯 보인다. 그는 첫사랑인 '일레인'(파커 포시)을 만난다. 엄마 회사 직원이었기에 늦게나마 장례식에 온 일레인. 보에게 그녀는 언제나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가 준 사진을 항상 간직하며 잊지 않았다. 죽은 엄마의 침실에서 그녀와 섹스하면서 그는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기가 본 연극처럼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원형에 가까운 정신과 치료기
아리 에스터는 이러한 보의 모험을 프로이트적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원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 과정을 '리비도(성욕)'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단순한 성욕 이상이다. 성적 에너지이자 동시에 정신 활동의 에너지다. 따라서 리비도를 제대로 다루는 것은 성욕 통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부모 자식 관계와 이성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유아기가 되면 아이는 자기 성기를 쾌락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때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아버지에 대한 적의를 품지만, 그 욕망을 억압한다. 그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긴다. 참았던 욕망은 사춘기를 맞이해 이성에 대한 성욕에 눈을 뜨면서 풀려난다. 이렇게 성적인 충동을 적절히 통제하고 해소하는 법을 배워야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리비도가 정상적인 과정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고착하거나 퇴행하며 정신적인 문제를 낳는다. 바로 보가 겪는 문제다. 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두 가지를 제거했다. 아버지와 애인이다. 그녀는 보의 아버지가 섹스 중에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유전병인 심장병이 도져서 죽었다고. 또 보가 크루즈 여행 중 일레인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 걸 싫어한다. 실제로 자기 회사에 일레인이 취직했는데도 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 결과 보에게는 온갖 문제가 생긴다.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초자연적인 이미지가 그의 성욕과 관련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이웃과의 소음 문제가 있다. 조용히 잠자던 보에게 옆집 이웃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음을 줄이라고 윽박지르고 보복까지 한다. 보가 일레인과 마침내 섹스할 때 큰 음악을 틀고 하는 걸 고려하면, 소음은 정상적으로 승화되지 않는 성욕으로 인한 문제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극을 보며 자기도 주도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빠진 보. 하지만 이내 그의 상상은 물거품이 된다. 가정을 이루려면 섹스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처럼 심장마비로 죽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를 덮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엄마가 진실을 숨겨둔 다락방에서 성기 괴물을 본다. 이 괴물 역시 어머니가 만든 존재나 다름없다. 자기 성욕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존재가 그 괴물이기 때문. 길거리에서 벌거벗은 채 칼로 보를 찌르는 남성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두려운 아들과 비웃는 엄마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의 정신 이상을 치료하는 이야기다. 일레인과의 섹스를 통해 그는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지극히 원형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아리 에스터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반전을 주며 영화 장르를 하나의 블랙 코미디로 전환한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살아 돌아오자 보는 모든 상황이 각본이라는 걸 깨닫는다. 엄마가 그를 집으로 부른 것부터 엄마가 죽었다는 뉴스, 장례식과 일레인이 늦은 밤에 찾아온 것까지. 그를 집으로 이끈 죄책감도 모두 다 모나의 계획이었다. 동시에 이는 엄마의 복수나 다름없다. 아들의 정신과 상담 내용까지도 입수한 그녀는 자기가 준 사랑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챕터인 재판장에서 모나의 의도는 더 분명해진다. 이 재판은 정당하지 않다. 철저히 보를 공격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장이다. 재판 증거는 철저히 보의 잘못된 행동, 어머니를 실망시킨 일로 가득하다. 보의 목소리는 어머니의 변호사 앞에서 묵살된다. 그의 변호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가 떨어져 죽는다. 결국 보는 타고 있던 보트의 모터가 폭발해 죽는다. 사인은 폭사가 아니다. 익사다.
그런 보를 보면서 모나는 눈물을 흘린다. 단지 슬픔 때문은 아니다. 이 모자 관계는 집착, 가스라이팅, 속박, 폭력으로 점철됐다. 어머니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려고 하면 구속했고, 아들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라지 못했다. 결국 이 재판은 어머니의 조롱이다. 아무리 아들이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절대 자기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조롱.
이는 익사의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상담사는 약을 먹을 때마다 항상 물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보는 물에 집착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의미심장하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아직 어머니의 몸과 자신의 몸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를 '대양적 느낌'이라고 지칭했다. 이렇게 보면 물은 모성애다.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다. 영화가 양수 속에 있는 보로 시작해 바다에 빠져 죽은 보로 끝나는 이유다.
이토록 불쾌한 블랙 코미디라니
그런데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장르 전환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관객은 모나가 아닌 보의 입장에서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줬다. 그가 바라보는 왜곡된 세계부터, 그의 희망까지 전부 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 순간 그를 조롱한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포장된 그의 희망과 상상은 다 부질없고, 그는 죽는 순간까지 어머니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그 순간 관객은 난 데 없이 함께 조롱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객은 보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해 그의 모험을 3시간 동안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익사하는 결말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블랙 코미디라기에는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보가 자기 자신을 유머 대상을 삼으면 모를까, 피폐하고 나약한 보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지점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에 아리 에스터는 보는 사람을 불쾌하고 찝찝하게 만드는 데 특별한 재주를 가졌으니까. 제목에 담긴 언어유희를 생각하면 철저히 계획된 블랙 유머이기도 하다. "소년은 두렵다(Boy Is Afraid)”라고도 읽을 수 있는 제목은 모든 남성이 품고 있는 두려움을 영화 시작 전부터 드러내고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연출.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원형적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미지로 색다르게 보여준 스토리텔링. 5개 챕터로 쪼개진 심리 서사극. 마지막 순간 모두의 예상을 엇나가는 반전까지. 아리 에스터에게 박수를 보내기 충분하다. 단지 블랙 코미디에 같이 웃느냐, 웃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물도 적당히 마셔야 살 수 있다
상영일정
6/29 13:00 - 15:59 한국만화박물관
6/29 19:00 - 23:19 부천시청 잔디광장 / 어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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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박성웅이 1인 7역을 소화한 <필사의 추격>이 오는 21일 개봉합니다.
할아버지 역할을 위해 무려 5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곽시양의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윤경호의 광둥어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 속 다채로운 볼거리를 예고했습니다.
필사의 추격
The Desperate Chase
개요: 코미디, 액션 | 한국 | 109분
감독: 김재훈
주연: 박성웅, 곽시양, 윤경호, 정유진, 박효주
개봉: 2024.08.21.
배급: TCO㈜더콘텐츠온
줄거리
완벽한 변장술로 형사들을 크게 뺑이 치게 만들어 빅뺑이라 불리는 사기꾼 김인해, 말보다 주먹이 빠른 분노조절장애 형사 조수광, 피도 눈물도 없는 보스 주린팡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제주도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한 세 사람! 도망칠 곳 없는 제주에 발을 디딘 그들의 쫓고 쫓기는 대환장 추격이 시작된다!
늘봄가든
SPRING GARDEN
개요: 공포, 스릴러 | 한국 | 90분
감독: 구태진
주연: 조윤희, 김주령
개봉: 2024.08.21.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줄거리
대한민국 3대 흉가 곤지암 정신병원, 경북 영덕횟집, 그리고... 늘봄가든
소희는 언니 혜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한적한 시골의 저택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을 방문한 후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당장 그 집에서 나와! 늘봄가든 괴담의 실체를 밝힐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
HERO: LIVE IN CINEMA
개요: 드라마, 액션, 뮤지컬, 공연실황 | 한국 | 159분
감독: 박재석
주연: 정성화, 정재은, 김도형
개봉: 2024.08.21.
배급: (주)위즈온센, 메가박스중앙㈜
줄거리
1909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은 단지 동맹으로써 독립운동에 결의를 다지고 명성 황후의 궁녀 설희 또한 독립운동에 동참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한일병합의 야망을 품고 하얼빈 역에 발을 내딛자 총성이 울려 퍼진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믿음직한 남편이었던 안중근은 민족과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을 빼앗은 적국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전쟁 포로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법정은 안중근을 국제법을 위반한 테러리스트라고 판결하며 사형에 처한다.
극장판 블루 록 -에피소드 나기-
Blue Lock The Movie -Episode Nagi-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89분
감독: 이시카와 슌스케
더빙: 시마자키 노부나가, 우치다 유우마, 오키츠 카즈유키
개봉: 2024.08.21.
배급: CJ CGV
줄거리
“귀찮아”가 말버릇인 고등학교 2학년, ‘나기 세이시로’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다. 축구로 전 세계 제패를 꿈꾸는 동급생 ‘미카게 레오’가 그의 재능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레오’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된 ‘나기’는 압도적인 축구 센스를 발휘하고 어느 날, 그들에게 ‘블루 록’ 프로젝트 초대장이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사기 요이치’, ‘바치라 메구루’, ‘이토시 린’ 등, 전국에서 선별된 스트라이커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한 꿈의 도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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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끝날 일들에 대한 작은 낙관, <해피엔드>
그래서 음악 연구 동아리 친구들은 졸업 이후에도 만났을까, 아니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아타(하야시 유타)와 밍(시나 펭)에게는 “우리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에게는 애써 그 문장을 내뱉지 않았던 이유는 무얼까.
우리는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알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친구 사이에서도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하는 미묘함을 우리는 분명히 느낀다. 그 감각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이제 이 관계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라는 어렴풋한 감각은 우리가 그 관계를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도 한다.
코우가 노란 보도블럭을 사이에 두고 유타에게 마지막 손길을 내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소모됐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그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는 상대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도 접어두게 된다. 친구가 언제든지 내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다시 잡을 것이라는 희망을 묻어두게 된다.
우리는 그 일종의 ‘포기’와도 같은 감정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해피엔드>는 관계의 끝에서 생기는 감정에 관해 그다지 부정적인 평가를 시도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풀리기 시작한 관계의 실타래를 강제로 다시 엮으려는, 애써 추스르려는 마음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 ‘해피엔드’인 이유도 어쩌면 그 마음에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끝맺음이 ‘새드엔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해피엔드’일 것이라고.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이런 이유에서 ‘작별에 관한 낙관’을 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는 결국 헤어질 인연이기에, 다시 볼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에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고 대해도 문제 될 일 없다는 사고를 경계한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절 인연’이래도, 서로에게 연대를 남기고 좋은 추억을 남기자는 인식을 보인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삶에 활기를 주고, 미래를 긍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끝나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 만나게 될 우리를, 그 막연한 미래를 축복하는 일과 같을 테다. 그래서 후미(이노리 카라라)가 앞장서서 학교의 통제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후미가 선봉장이 돼 교장실 점거 농성을 벌일 때, 교장은 후미에게 묻는다. “어차피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희의 일이 아니’게 되는데 왜 힘들여 이런 일을 벌이느냐”고. 결국, 그 저항의 이유는 ‘해피엔드’에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부조리한 규율과 통제를 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찜찜한 마음은 현세대에 남고, 해결되지 않은 통제는 다음 세대가 해결할 몫이 된다. 이 마음은 앞서 말한 ‘포기와도 같은 감정’에 보이는 낙관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다음 세대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포기하는 것일 테니까.
‘해피엔드’는 두 가지 방식의 형태와 의미가 있다.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을 빌미로 한, 사실상 ‘비상계엄 조치’인 긴급사태 조항 발령과 교내의 ‘판옵티’ 시스템 도입에 대한 저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저항하는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저항할 의지는 어떤 마음에서 발현되는가. 나는 어쩌면 그 마음이 ‘저항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온다고 본다. 올곧은 저항은 언젠가 그 부조리한 규율을 성공적으로 밀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일종의 미래를 향한 낙관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 저항이 왜 효용을 가져야 하는가. 그 본질에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 다른 이들이 저항하지 않더라도, 나만이 그 저항과 운동에 참여한다더라도 그 행위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억압받을 이들의 훗날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끝으로부터 올 행복에 관한 낙관, 넘어서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투쟁하고 쟁취함으로써 찾아올 그 모두의 효용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연대한다. 그렇기에 코우, 후미와 함께 자습실로 이동하던 학급 친구들이, 학생 투표에서 교장의 차를 세운 사람이 자신임을 밝히는 유타가 해낸 일종의 연대의 행위들은 ‘나’를 넘어선 ‘모두’를 위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두 의미를 모두 갖는 이야기들이 결국 우정으로 수렴되며 마무리된다. 한때는 함께 음악을 향한 꿈을 꾸면서 우정을 쌓아왔던 코우와 유타가, 졸업 이후에도 계속 함께하자고 했던 음악 연구 동아리 멤버들이 서서히 우정보다 자신의 삶과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 나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들의 관계도 끝날 것이다. 연극의 한 챕터가 막을 내리듯, 학창시절에서의 우정은 한동안 휴지기를 보내게 된다. 당연히 이 우정이 끝을 향해 간다는 데에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늘 그래왔듯 지지한다. 어느 순간부터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 우리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과정이 우리를 위한 길이니까. 저항하고 투쟁하는 친구의 곁에 서서 항상 도울 수는 없어도, 중요한 순간에 손을 포개어주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니까.
끝난 우정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가끔 생각날 것이고, “언제 한번 보자”라는 연락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추억과 그리움, 그 저변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한때의 연대를 위해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를 그 자체로 위해준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의 유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우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관심을 끌었겠지만, 영화 종반부에서는 각자의 방향을 굳이 미련 가지지 않은 채로 간다. 그게 정녕 우리의 끝이더라도, 완전히 끝나 돌아오지 않을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해피엔드’이니까. 아타와 밍, 톰(아라지)에게도 애달픈 미련을 던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우리의 해피엔드와 다시 만나게 될 훗날의 순간이 있을 것을 믿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피엔드>는 일말의 낙관을 초점화하는 영화다. 미래를 바라보는 낙관과 우리를 바라보는 낙관이 합쳐진다. 우리 국가가 결국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학교가 학생을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관계가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 낙관 덕에 살아가고, 그 희망 덕에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형태는 작아도 그 의미는 국가적 규모를 넘어서 세계적 규모로까지 퍼질 희망의 메시지가 <해피엔드>에 있다.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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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전설적인 왕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킹아더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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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테벨룸> 파이널 예고편
"주의! 예고편도 보지 말고 극장으로 갈 것" -Art House Film Wire- 보지 말라니까 더 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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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재개봉 예고편
램프 하나, 세면대 하나, 침대 하나…
감옥 같은 작은 방에 갇힌 24살 엄마와 5살 아들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