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24 16:51:07
인생의 다음 챕터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라우더 댄 밤즈>, <델마>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유명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벌써 내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후보로
올라가며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했는데요. 개봉 전부터 SNS에서 화제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 유명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하며 해외 유수 언론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더 자세히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율리엘 | 레나테 레인스베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어떤 영향력 (2020)
빌마르크 어사일럼 (2015)
AWARDS
Cannes Film Festival, 2021
Critics Association of Central Florida Awards, 2022
악셀 | 앤더스 다니엘슨 리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베르히만 아일랜드(2021)
오슬로, 8월 31일 (2011)
AWARDS
International Cinephile Society Awards, 2022
International Online Cinema Awards (INOCA), 2022
Kosmorama, Trondheim Internasjonale Filmfestival, 2012
에이빈드 | 할버트 노르드룸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포노펑 (2013)
AWARDS
Best Supporting Actor (Årets mannlige birolle), 2014
Kosmorama, Trondheim Internasjonale Filmfestival, 2014
어떤 내용인가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진학한 율리에.
하지만 '마치 목수가 된 것 같다'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서점 알바를 하며 적성과 맞는 사진을 배우게 된다.
그런 율리에는 우연히 파티에서 유명 만화가 악셀을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둘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다.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가는데...
TMI
첫 번째,
주인공 율리에 역을 맡은 레나테 레인스베와 악셀 역을 맡은 안데스 다니엘슨 리 배우 모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8월 31일>에 출연했다.
두 번째,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에 이어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제작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3부작 중 마지막을 장식했다.
세 번째,
원제목인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의 의미는 ‘율리에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한 것 같은 말이다’고 감독은 밝혔다.
지금까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궁금하시다면 8월 25일 극장으로 당장 고고!!
그럼 우리 모두 안전하게 극장에서 만납시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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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기계가 못 하는 일도 있지
기술 혁명의 양면성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졌고, 혁신을 이루어냈다.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편리해졌다.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속 월레스도 덕분에 매일 아침 루틴을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단순노동을 대신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무조건적으로 편리함만을 생각하지 말고 적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을 위협하는 존재도, 그들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존재도 모두 ‘노봇’이었기 때문이다.
'노봇'의 흑화
월레스의 발명품 ‘노봇’의 흑화는 기술 발전의 양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처음에는 월레스의 친구 그로밋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노봇은 뛰어난 실행력으로 순식간에 가지치기 임무를 완수하고 잔디를 깎으며 정원을 ‘깨끗이’ 손질한다. 노봇을 창조한 월레스는 매우 기뻐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그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노봇을 대여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노봇을 이용한 보수 서비스 사업을 통해 밀린 청구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로밋은 노봇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유심히 지켜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밋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노봇들의 허점을 처음부터 알아차린다. 단순히 울퉁불퉁 튀어나온 잔디와 잡초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노봇은 그로밋이 가꾸던 꽃과 나무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 방도가 없기에 모조리 잘라버린다. 흑화되기 전의 노봇도 기술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노봇을 무조건적으로 편애하는 월레스와 노봇 군단이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노봇의 흑화를 가능케했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격 조정하는 것을 넘어서 성격 세팅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에 연동하여 해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악용하는 것은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빌런 페더스 맥그로이다. 그는 인터넷에 연결된 노봇을 '사악함'으로 세팅하고 월레스 집에 있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칠 계획을 펼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로봇 혹은 AI 서비스를 왜곡하여 설정하거나 해킹하는 등 기술을 악용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술의 (불)편함
‘사악함’ 모드로 설정된 노봇들이 페더스 맥그로의 명령에 따라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이 영화의 ‘위기’ 단계의 주를 이루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장면을 고르라면 노봇들이 월레스가 그들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잠에 들게 하는 장면을 꼽겠다.
월레스 역시 이 부분에서는 노봇들에게 “이게 다 뭐야?” 라며 되묻고 “천천히” 하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노봇들의 수면 유도 ‘서비스’에 정신을 빼앗긴다. 월레스가 원하지도 않았던 마사지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음냐음냐 코코아’를 마시게 하는 노봇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필요성을 느껴서 기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 대신 자체적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일상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린 이미 그렇게 시스템화된 삶에 적응해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 불가한 무언가
그러나 영화는 노봇들을 악하게만 그려내지 않고, 결점과 비례하는 장점도 있음을 보여준다. 디폴트 값인 ‘착함’ 모드의 노봇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을 절체절명의 순간 구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월레스도 노봇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개조하여 정원일을 돕는 방법을 택한다.
발명품을 만드는데에만 몰두해 있던 월레스가 기계 중심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아날로그함을 받아들이면서, 소소하지만 소중한 ‘인간적인’ 따뜻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쓰담쓰담 기계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로밋을 쓰다듬어주는 장면으로 우리는 기술을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의 미학
자칫 무겁고 교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메시지가 호러와 액션 스릴러의 색채가 더해져 마냥 잔잔하지 않고 몰입감 있게 전달된다. 진지해지다가도 페더스 맥그로의 허접하면서도 귀여운 변장술과 계략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노봇들이 지하실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장면과 페더스 맥그로와 그로밋의 추격전을 그려내는 방식이 인상 깊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가 전하는 아날로그의 미학과 기술 발전에 대한 메시지가 더욱 와닿는 이유는 제작 과정에도 숨겨져 있다. 합성이나 AI와 같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톱모션 형식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제작 방식을 유지함에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지켜내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어있지 않았을까?
아날로그에 “느리고 불편한” 아니라 “섬세하고 정밀한”이라는 수식어가 더욱 강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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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를 입은 허수아비는 어떻게 자유를 되찾는가?
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스펜서>를 본 후의 감정은 이렇다. 한 움큼의 답답함과 불안함 그리고 약간의 상쾌함. 감독은 극이 시작하기 이전에 앞서 “비극”임을 일러둔다. 실제 다이애나 스펜서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많은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선뜻 비극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이애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뜻을 고집했고 자유를 꿈꿨다. 나는 이러한 삶을 ‘모난 돌이 정 맞은’ 것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올곧게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세상이 뒤틀려 있기에 장애물이 많았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3일간의 샌드링엄 별장 생활은 다이애나에게 비극이다. 찰스 왕세자의 외도와 삭막한 영국 왕실의 예법은 쉴 틈 없이 다이애나의 목을 조여 온다. 그러나 자신을 해치기보다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스펜서>는 깊은 불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을 포착하며 비극 속에서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드레스를 입은 허수아비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위한 만찬은 마치 군인들의 특별작전처럼 비밀스럽고도 엄격하게 준비된다. 왕가 사람들의 임무는 삼시 세끼 그 음식들을 먹고 연휴를 즐기는 것. 그 증거로 별장에 들어올 때 잰 몸무게보다 체중이 늘어나면 된다. 정해진 음식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옷을 입고 모여 정해진 일을 하면 된다. 이들은 로열 패밀리로서의 기품을 보여주며 얌전히 일을 수행하면 된다. 영국 왕실의 체면과 품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왕실의 예법에 맞게 모든 것의 쓰임과 용도는 촘촘하게 정해져 있다. 사냥용 꿩, 애완용 강아지는 각자의 용도와 쓰임이 분명하며 그에 걸맞은 의무도 있다. 의상조차 아침식사용 의상, 저녁식사용 의상, 외출용 의상 등등 용도에 따라 계속 갈아입어야 한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이애나 역시 그레고리를 향해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이냐고. 그레고리는 ‘감시자’다. 그렇다면 다이애나의 역할과 쓰임은 무엇인가? 왕실에서 바라는 것은 촘촘히 정해진 임무를 얌전히 수행하는 인형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스스로를 ‘왕세자비’가 아닌 ‘엄마’로 규정한다.
고루하고 엄격한 전통의 집안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찰스 왕세자의 외도는 암묵적으로 용인되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지정된 옷을 바꿔 입는 것만으로 말이 나돈다. 파파라치는 언제나 렌즈를 겨누고 있고 소문들은 언제나 뒤를 쫓아온다.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에게 기대한 건 예쁘게 차려 입고 얌전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비추는 인형이었지만, 다이애나는 독립적이고 당당하며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역할과 상충하는 자아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비극의 시작이다.
불안한 내면의 아름다운 시각화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다이애나에게 가장 고역은 식사시간이다. 최고급 요리들이 즐비해 있지만 한 입 뜨는 것조차 어렵다. 다이애나를 옥죄어 오는 차갑고 숨 막히는 시선들 속에서 남편이 준 진주 목걸이, 내연녀에게 준 것과 똑같은 그 목걸이는 더 깊이 다이애나의 목을 조여 온다.
다이애나의 처절한 내면적 정신적 불안과 공황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통스럽게 목걸이를 뜯어버리려 할 때도, 진주를 으득으득 씹을 때도 심지어 그것을 토해낼 때도 의상과 미술에 눈이 갈 정도로 완벽히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화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을 때 다이애나는 말한다. “아름다움 따윈 쓸모 없”고,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스펜서>의 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훌륭하지만, 관객에게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그의 내면에 집중해 주기를 호소한다.
한순간에 외부에서 왕실로 편입된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과 관심은 사랑과 미움을 모두 담고 있다. <스펜서>는 거대한 구조와 억압 속에서 한 여성이 지워지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완벽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KFC
크리스마스이브, 한참 동안 길을 헤매던 다이애나는 겨우 길을 찾는다. 약속시간에 늦었음에도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가는 여유를 부린다. 해야 할 일을 앞두고 걱정만 하면서 딴짓을 하는 것처럼 왕가와 만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유예해 보려는 듯 말이다. 마침내 다이애나가 직접 운전하는 차가 아름답고도 완벽한 균형과 대칭으로 조각된 샌드링엄 별장의 정원에 들어선다. 카메라는 높은 부감 숏으로 정원에 들어서는 다이애나의 차를 따라가고 타이틀이 떠오른다.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 시퀀스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윌리엄은 왕실의 전통에 따라 꿩 사냥을 해야 한다. 다이애나는 이를 막기 위해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낡은 스펜서 가의 유물을 입고 총성이 빗발치는 사냥터로 뛰어든다. 결국 윌리엄의 꿩 사냥은 무산되고 다이애나는 두 아이와 함께 별장으로 돌아간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전통에 맞선다. 세 모자는 차를 타고 별장을 떠나 KFC를 사 먹는다. 그 어떠 만찬보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이들에게는 분명한 해방이자 탈출이다.
딱딱한 대칭의 정원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들어온 다이애나는 두 아들과 노래를 부르며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따라 나아간다. 자신이 정한 길을 자신의 리듬대로 나아간다.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자 한 다이애나의 선택은 ‘기적’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유의미한 한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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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언제 진짜입니까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미국 / 드라마 / 96분
감독: 코고나다나는 언제 진짜입니까, <애프터 양>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4인 이상 가족만이 도전할 수 있는 월례 댄스 대회에 참가 중인 가족들. 그중엔 제이크의 가족도 포함되어있다. ‘제이크’와 ‘키라’가 입양한 딸(‘미카’)과 미카의 문화와 유산을 잇기 위한 안드로이드 ‘양’으로 구성된 4인 가족. 안드로이드가 가족 구성원이라는 설정에서 느껴지듯, <애프터 양>의 세계관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테크노 사피엔스 말고도 많은 복제인간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인간은 위대한 종족으로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과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안정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우리가 단순히 필요 때문에 무선 로봇청소기를 사는 것처럼, 그들도 같은 목적으로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을 구입하고 사용한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들에게 원하는 서비스엔 ‘가족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양이 문화와 유산을 이을 미카의 동반자이자 보디가드, 베이비시터, 그리고 둘도 없는 친오빠로 사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가족이 되는 데 필요한 요소는 <애프터 양>에서만큼은 조금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혈연? 그런 건 처음부터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의미 없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양은 항상 바쁜 키라와 제이크를 대신해 미카의 옆을 지켜준다. 입양아란 사실에 미카가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단단한 뿌리가 미카에게도 존재함을 알려준다. ‘진짜’ 아빠, ‘진짜’ 엄마가 가진 의미를 다시 정의해주며 미카에게 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카에게 양은 안드로이드 그 이상의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양이 댄스 대회를 마친 후 깨어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양의 고장으로 제이크는 당황한다. 학교를 잘 다니던 미카는 등교를 거부하고, 아내는 늘 언급했던 문제를 다시 또 꺼내 든다. 양에게 의존했던 부모의 역할을 이젠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미카가 잊지 말아야 할 문화와 유산을 계속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양이 없어도 되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양을 고치는 걸 택한다.
출처: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다음)새 제품으로 샀다고 생각했던 양은 사실 쓰였다가 온 제품이었다.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채 수면 모드 상태에서 여러 고객의 '무엇'으로 살았던 것이다. 제이크는 너무 비싼 수리비에 고민하다 양의 중심부가 문제라는 말에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으로 향한다. 관장은 양의 중심부에 들어있는 기억장치를 발견하고, 귀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며 제이크에게 양을 기부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이크는 확답을 미뤄두고 양의 기억장치를 들고 집에 온다. 홀로 소파에 앉아 양의 비밀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제이크. <애프터 양>의 진짜 이야기는 그가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화면 가득 채워진 검은 하늘과 산발적으로 퍼진 빛나는 별들. 끝없이 아름다운 우주에서 각각 독립된 세계로 살아있는 기억들. 양의 과거는 그 추억 속에, 시간 속에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이크는 별 하나하나에 깃든 양이 담은 시선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몰랐던 양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양과 함께한 시간을 의미 있게 생각했는지 깨닫는다.
양의 기억의 조각들엔 공통적인 물음이 들어있다.
계속 눈으로 세상을, 사람을,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유를 찾고 있다는 것. 양은 틈만 나면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란 존재를 마주했다. 차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좋다는 제이크의 말에 “제게도 차가 그냥 지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툭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끝은 시작이란 말을 믿는지 묻는 키라에 “모르겠어요, 그런 믿음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아서”라며 인간의 씁쓸함 같은 것을 표현한다. 솔직히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며 웃지만, 슬픈 적도 있었냐는 물음엔 자신이 느낄 수 없는 슬픔에 대해 고심한 흔적을 보인다. 슬픔, 기쁨, 외로움, 허망함, 분노‥ 그에게 인간의 감정은 딱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아무리 찾아봐도 안드로이드가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출처: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다음)
“‥ 무가 없으면 유도 없으니까요.”
고민하다 키라에게 답한 양의 말. 그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에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생산한다.
양은 ‘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 아무것도 없음이, 단순히 손에 잡은 게 없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주입된 정보였을까? 그는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양은 왜 갑자기 멈췄을까. 스스로의 의지였을까? 그게 가능은 한 걸까? 테크노 소재를 다루는 영화와 비교해 <애프터 양>이 훨씬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양의 목적이 ‘인간으로 살고 싶다’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양은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양은 끊임없이 ‘진짜’를 찾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만의 언어로 말이다. 그만의 시선으로, 그만의 기억법으로, 그만의 관계로 ‘내’가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진짜’를 발견하고자 했다. 테크노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거나, 사랑을 할 수 있냐는 물음은 인간의 관점에서 출발해 인간의 관점 밖으로 나가지 못한 질문일 뿐이었다. 에이다가 제이크에게 인간만이 가진 마땅한 우월함을 꼬집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양은 인간으로 사는 일을 열망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진짜를 찾는 ‘방법’을 궁금했다. 존재의 의무만으로 인간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듯, 양에게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했다. “행복해?”란 질문이 자신에게 맞는 질문인지 되묻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비를 좋아하는 중국인이라서 나비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나비를 수집하고 싶은 것처럼. 양은 자신이 저장한 기억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떤 감정으로 저장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감정의 총책인지, 덩어리인지 그리하여 진짜 피부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인간 같은 테크노여서가 아니라, ‘양’이란 유일무이한 개체로서.
출처: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다음)
왜? 양은 어느 순간부터 누가 묻지도 않은 것들에 의심하기 시작했고, 의문을 품고서 자꾸만 안드로이드인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의심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의심으로 인해 생긴 믿음으로 진짜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짜는 평생 나의 존재를, 의미를 만드는 데 계속 작용된다. 거울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고, 가족사진을 찍기 바로 직전 어딘가를 응시하던 순간, 복제인간으로 탄생한 에이다의 웃음, 새벽마다 속삭이는 미카의 목소리, 제이크와 키라의 물음이었을 수도 있다. 우린 무엇이 양의 기억장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양이 진작부터 사진만 찍어대는 셔터의 역할에서 이탈해 있었다는 걸 인지할 뿐이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양이 미카에게 좋은 오빠가 되어준 것처럼, 자신과 아내에게도 좋은 아들, 나아가 친구였다는 걸 몸소 체감한다. 마치 진짜 가족을 영영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는 키라와 함께 양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논의한다. 양의 기억은 인간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면서,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양을 주지 않으려는 기술자에게 내 것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딱 잘라 말했던 제이크가 변한 것이다. 미카가 양이 테크노여서 사랑한 게 아닌 것처럼, 양이 미카에게 저장된 뿌리가 아니라 진정한 뿌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처럼. 두 사람에게 양은 테크노로 기능하지 않은 순간부터 귀중해졌다.
본래 양은 인간이 원했기에 만들어졌다.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이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 한계를 거뜬히 뛰어넘는 힘, 테크노와 복제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분명한 목적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손을 떠난 것들을 결코 좌지우지할 수 없다. 만들고 생산하고, 세상에 내놓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이후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어떠한 말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출처: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다음)
양의 중심부에 문제가 생긴 건 인간의 계획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발생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양은 죽었지만, 양의 언어론 그는 살아있다.
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의 가슴에 귀를 대보는 에이다의 행동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도 그래서 당연하다. 양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를 두고 우린 또 우리의 언어로 해석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 방식과 같다 하겠지. <애프터 양>은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양의 기억을 끄집어낸 게 아니다. 인간의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해서 인간의 시각으로 읽히는 게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양만의 이야기와 양만이 해내고자 하는 지점이 충분히 존재함을 알려주고자 한다. 양은 독립된 대상으로서 나의 진짜를 찾고 싶은 테크노이자, 테크노가 아닌 ‘양’이다. 양의 기억장치는 기계적으로 ‘저장’한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품고’ 있었던 감정의 소용돌이고, 그 속으로 <애프터 양>이 관객을 초대한 것이다.
감독은 <콜럼버스>를 통해 비대칭에서 각자의 균형을 찾는 법을 공유했었다. 그 안에서 각자의 치유의 공간을 찾기를 바랐다. <애프터 양>을 통해선, 존재의 다름과 존재의 존재 이유를 함께 고민해보길 원한다. 코고나다 감독만의 낯설지만, 감각적인 표현방식이 한층 더 세밀하고 섬세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진짜’를 갈망하는 양의 우주가 내게로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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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름을 끌어안는 바다 위 무지갯빛 베스파는 사랑을 싣고
※영화 〈루카〉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 포르토로소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오랜 이야기가 있다. 조업을 위해 바다로 나선 어부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인근 해안가에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종종 사진에 찍히는 미지의 존재를 가십거리 삼고, 괴물에 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일부는 직접 사냥꾼이 되어 마을의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 그리고 바다 밑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장 일을 돕는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인간들이 말하는 바로 그 ‘바다 괴물’ 중 한 명이다. 이들은 물고기와 자신들을 잡아가는 바다 위 ‘육지 괴물’을 두려워하며 철저히 그들에게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간다. 여느 때처럼 물고기를 기르던 양치기 루카는 바닥에 떨어진 바깥세상의 물건을 발견하고, 자신과 같은 ‘바다 괴물’이지만 육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알베르토’(잭 딜런 블레이저)를 만난다. 호기심 많은 루카는 절대 육지에 올라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에도 물 밖으로 나가 인간으로 변신하고, 알베르토와 함께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꿈을 키운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투사하는 스크린 밖 어른
어린이가 서사의 중심인 작품에서는 종종 주인공을 어리석은 어른이 망가뜨린 세계를 구원하고 행복을 되찾을 유일한 존재로 그린다. 세상의 갈등과 모순을 발견하고 악당을 물리쳐 모두를 구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영웅 서사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었던 어린이의 성장담과 결합한다. 둘의 결합은 외면받던 소수가 거대한 상대방과의 대결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통쾌한 역전극이 되어 주인공을 응원하는 독자의 감정적 동요와 쾌감을 자아낸다. 또한 창작자는 더 나아가 기성세대가 초래한 사회의 병폐를 폭로하고 변화를 원하는 주제의식을 서사에 주입한다. 어린이의 이야기로 사회적 메시지를 스크린에 가장 잘 구현하는 감독 중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반전과 환경오염,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의 모순에 목소리를 내 온 그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으로 어린이를 중심에 내세운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를 창조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이를 바꿀 미래세대의 낙관적 희망을 담아낸다. 굳이 어른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갑작스레 주어진 사건들을 헤쳐나가며 미래의 구원자가 된다. 그들은 절멸을 초래하는 거대한 살상과 전쟁의 위기에서 지구를 구해내고, 사악한 마법사가 건 저주를 풀어내기 위해 길을 나서며, 실수로 접어든 신들의 세계에서 부모님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 그렇다고 마냥 큰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만 하지 않는다. 지브리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남매와 요괴의 우정이나, 육지로 가출한 바다 소녀가 경험하는 세계를 그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에 일상은 언제나 커다란 모험과 같다. 이를 가능케 하는 순수한 상상력을 애니메이션 영화는 스크린에 구현해주며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 관객에게 또 다른 인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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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메이션에 깊은 영향을 받은 〈루카〉의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작은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인간에게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던 한 소년이 가두었던 장막을 걷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바다 괴물 루카의 우정과 성장을 담은 소소한 일상의 풍경 안에는 혐오와 배제가 일상인 반목의 시대에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살면서 바다를 떠난 적 없던 루카는 누구보다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색칠할 캔버스와 같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루카의 상상 장면은 알베르토와 줄리아를 만나면서 다양하고 정교해진다.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루카의 세계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확장한다. 알베르토가 알려준 별과 달의 모습은 줄리아를 거치며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달라진다. 그렇다고 알베르토의 이야기가 무의미한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루카는 어떤 설명이든 그 자체를 사랑하고 보듬는다. 이것이 영화가 강조하는 시대의 미덕이자 상대를 대하는 관점이다. 알베르토가 알록달록 꾸민 베스파 그림에 루카는 줄리아가 알려 준 천체망원경을 추가한다. 둘의 관계를 질투한 알베르토는 툴툴대지만 루카는 개의치 않고 최고의 그림이라고 칭찬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토바이의 엔진 구조나 천체물리학 같은 정확한 사실과 지식이 아닌 알베르토와 줄리아와 함께하는 즐거운 순간이다. 야생의 베스파가 들판에서 뛰노는 상상도, 저 하늘의 빛나는 물고기를 만나는 꿈도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절에서 파생되었고, 이들 없이는 무모한 상상도 없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함께 대회를 준비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때로는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불같이 화내기도 한다. 둘의 정체를 알게 된 줄리아는 짐짓 당황하지만 마지막에는 당당히 그들의 편에 선다. 알베르토는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루카를 외면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용기를 내어 루카를 도와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워 보이는 어른들에게 ‘언더독’ 3인방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너덜너덜하고 테이프 범벅인 베스파 그림처럼 찢기고 상처 받아도 모두를 담은 본질은 그대로라는 진리는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혐오를 딛고 공존을 이뤄내는 포르토로소
차별의 공포와 싸우며 닫힌 문을 열어가는 모두를 응원하는 영화는 사랑과 꿈, 우정과 용기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바다 괴물이라는 특수한 소재로 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는 루카와 알베르토의 이야기는 자칫 납작해질 수 있을 권선징악의 이야기에 부피감을 부여한다. ‘평범한 일반인’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며, 실제와는 달리 상대방에게 불안과 위협의 존재로 낙인찍힌 이들은 현대 사회에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당하는 모든 소수자를 대입할 여지를 남긴다. 바다 괴물을 묘사하는 마을의 여러 상징물과 이미지는 타인을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기저에 담긴 공포와 분노가 이유 없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수의 권력은 소수자의 왜곡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며 공공연히 전시한다. 차이를 유희와 가십의 대상으로 보는 배타성은 소수자에게 폭력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바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육지 괴물’로 부르며 피한다.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과 차별을 거듭하는 설정은 인종과 국적, 성별과 장애, 경제적 조건을 망라한 혐오의 기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소수자의 존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줄리아는 궁핍한 형편에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도우며 ‘아웃사이더’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방인인 알베르토와 루카와 함께 ‘언더독’ 소리를 듣고 이상하다는 눈총을 받는다. 관객은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의 첫 등장과 함께 거대한 덩치와 벽면에 걸린 커다란 작살, 그리고 능숙한 칼솜씨에 어떠한 고정관념을 떠올린다. 그가 오른쪽 팔이 없다는 설정은 여러 해적 모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거친 선원들의 세계에 몸담다 일말의 사건에 휘말린 끝에 불의의 사고로 상실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시모는 루카에게 오해와는 달리 그의 팔이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바다 괴물 사냥꾼이며 남성적 외모를 지닌 마시모에게 흔히 부여하는 설정을 비틀어 선천적 장애를 지닌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영화는 다양성의 외연을 넓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들은 하나의 유사가족으로 뭉치며 세상의 편견에 대항해 변화를 가져온다.
영화의 유일한 악당인 에콜레는 자신이 가진 물리적, 경제적 권력으로 타인을 지배하며 자신의 사상을 강요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작살을 들이밀고 싸움을 걸어오는 그는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이들이 가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구체화한다. 애니메이션에 담기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장면임에도 영화는 가해자의 폭력이 끼치는 심각성을 강조하듯 가시적인 위협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수자가 느끼는 폭력과 혐오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창작자의 배려와 이해를 느끼게 한다. 이런 상황에도 그의 존재는 마을 사람들조차 눈엣가시이며 성가실 뿐이다. 에콜레와 동조하던 일부 무리도 실은 그의 폭력에 품은 불만을 견디다 못해 그를 응징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가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그들이 엄청난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별것 아닌 소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혐오의 스피커를 키워 과대평가된 에콜레는 줄리아가 그를 향해 외치는 ‘당연하고 옳은 말’에 줄곧 지겹다는 주장만 반복한다. 하지만 당연한 진리는 현실이 되어 무논리의 허상을 폭로한다. 영화는 지겹도록 똑같지만 모두의 삶을 지지하는 유일한 진리를 반복하는 꾸준함이 갖는 힘을 유일한 빌런의 패배로 보여준다.
루카의 사랑이 혐오를 이기는 순간
영화의 중심 주제는 단연 LGBTQ를 고려한 퀴어 서사다. 감독은 부인했다고 하지만 〈루카〉의 서사를 퀴어 영화로 구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디즈니 픽사는 그간 수많은 게이 캐릭터를 등장시켰지만 명시적으로 확인해준 바는 없다. 최근에서야 단편 애니메이션 〈Out〉으로 동성애자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장편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직 없었으며, 〈루카〉 역시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커뮤니티와 평론가들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만들어진 성 소수자 캐릭터인 루카와 알베르토를 인정하고 있다. 영화의 중심 플롯은 루카와 알베르토의 사랑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알베르토와 루카는 청소년기에 겪는 사랑과 우정, 선망과 질투 같은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관계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감정적 교감을 하는 두 소년의 사랑을 이해하지 않고는 일견 평이한 성장 이야기에 담긴 서사의 담론을 이해하기 어렵다.
바다 괴물이라는 설정은 정체를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성적 지향과 연결되기 충분하다. 알베르토는 루카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살아가지만 아버지와의 이별과 세상과의 단절로 높은 담의 성벽 위에서 홀로 지낸다. 성 소수자의 현실과 감정적 혼란을 상징하는 노골적인 설정이다. 또한 아버지와의 이별 역시 그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지 못한 부모와의 갈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롭던 알베르토 앞에 등장한 루카는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 된다. 영화는 서로를 친구 이상으로 느낄 수 있을 장면들을 여럿 보여준다. 줄리아와 가까워지는 루카를 보고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결국 둘 간의 다툼으로 홧김에 알베르토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머뭇거리던 루카가 끝내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가슴 아픈 장면은 잘못된 아웃팅으로 상처 받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영화 속 주변 인물로 지나쳤던 두 할머니 캐릭터마저 바다 괴물이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 역시 사회 속에서 숨기고 지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상징이며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알베르토의 시선에서 영화는 거대한 성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자신과 닮은 존재와의 교감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는 퀴어 서사의 기본을 따른다. 루카를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자신 역시 루카의 인도로 바깥 세계의 인정을 받는다는 점은 연대와 사랑의 감정이 서로에게 준 긍정적 영향의 결과다. 이렇게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따스한 햇볕이 가득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은 모두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여러 영화의 레퍼런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영화는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 속 노르망디 해안이나,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더 네임〉의 짧은 한때처럼 푸르르게 성장하는 ‘여름 바다 퀴어’의 명맥을 이어가며 따뜻한 작화로 모두에게 다가가고 있다.
우정과 사랑, 자유와 용기가 모두의 인정을 받는 포르토로소의 여름은 차이를 이해하는 이들은 반드시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풍부한 스토리나 캐릭터의 서사보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그 안에 숨은 관계성과 상징이다. 오늘날 애니메이션은 누군가에게는 머릿속 꿈을 스크린에 구현해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고, 다른 이에게는 잊었던 동심을 찾고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당면 과제를 티 없이 맑은 이야기로 구현한 아름다운 영화는 단연컨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에 개봉하기에 더없이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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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룰라
탈룰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섬세하고 짜임새 있으며 대화의 중심이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여성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관객은 이 영화가 해피엔딩일 거라고 어느 정도 알고 본다. 최소한 싸이코, 스릴러, 범죄, 호러 영화는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낡은 밴을 끌고 다니며 전국을 떠도는 젊은 연인 루(탈룰라)와 니코는 소소한 도둑질도 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떠돈다. 그렇게 약 2년을 떠돌다보니 니코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루에게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결혼도 하고, 취업도 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루는 한심하다는 듯 니코를 바라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그런 미친 짓을 하느냐며 타박한다. 밴을 끌고 전국을 다니며 사는 것이 자유롭게 보이고, 니코가 훔쳐온 엄마의 신용카드로 기본 생활은 영위하고 있으니, 이들이 밥을 굶는 경우는 없었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며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니코는 뉴욕에서 루를 만나 불쑥 집을 떠난 것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생겼고, 루가 꿈에서 무중력 상태에 있다가 놀라서 깨던 날, 니코는 말 없이 루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혼자 남게 된 루는 낡은 밴을 몰아 니코의 집이자 니코의 부모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간다. 가장 먼저 니코의 엄마 마고를 만나지만, 마고는 루를 의심한다. 마고도 남편과 이혼 수속 중이어서 마음이 복잡하다. 루는 거리를 떠돌다 호텔에 몰래 들어가 객실 문앞에 놓인 음식 찌꺼기를 훔쳐 먹다 한 여성에게 들킨다. 이 여성, 캐롤린은 루를 호텔 직원으로 착각하고, 외출할테니 아기를 봐달라며 팁을 100달러나 준다. 캐롤린은 아기가 싫고, 아기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불평을 털어 놓는다.
그렇게 하룻밤 아기를 봐주고, 새벽에 돌아온 캐롤린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잠을 자고, 아침에 호텔을 나가려는 루는 아기가 너무 애처럽게 울어 하는 수 없이 아기를 데리고 나온다. 루는 아기를 데리고 다시 마고의 집으로 가고, 아기를 니코의 아이라고 거짓말한다. 마고는 어쩔 수 없이 아기와 루를 집으로 들이고, 세 사람은 함께 생활한다.
잠에서 깬 캐롤린은 아기와 루가 사라진 것을 보고, 루가 아기를 납치했다고 생각하고, 호텔과 경찰에 알린다. 경찰이 등장하고, 이제 아기 납치 사건이 된 상황에서 캐롤린은 이 일이 너무 크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호텔 직원의 제보로 언론에 보도되고, TV 뉴스에도 아기 납치 사건이 보도된다.
캐롤린은 부자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아기를 낳으면 남편의 관심을 받을까 생각해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지만,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처량하다. 아기는 보모가 대신 키워주고 있었다.
마고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루와 아기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루는 아파트 앞에서 레모네이드 장사를 해 돈도 조금 번다. 하지만 마고는 이런 루의 모습이 마땅치 않다. 마고는 지식인이고, 살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는 중산층 엘리트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여성이다. 마고는 거의 웃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차갑고 쌀쌀 맞게 대한다. 그렇다고 그의 내면까지 나쁜 인성의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마고는 자기를 잘 도와주고, 볼 때마다 친절하게 대하는 아파트 수위 마누엘에게 호감을 갖고, 마누엘을 집으로 초대해 와인을 마시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때 마고는 남편과의 이혼 스트레스, 게이로 커밍아웃한 남편에 대한 복수심 같은 것들이 있었겠지만, 마누엘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마고의 남편이자 니코의 아빠인 스티븐이 마고와 루를 초대해 점심을 같이 먹는다. 스티븐은 몇 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고, 다른 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이 게이 커플은 아이를 입양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캄보디아의 고아를 입양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한다. 캄보디아는 돈만 주면 쉽게 아이를 입양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고아가 아닌 아이도 입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고는 스티븐에게 거의 20년 동안이나 자기를 속였다고 비난한다. 즉, 성정체성이 다른 것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와 결혼했으며, 결혼 기간 내내 자신(스티븐)의 성정체성을 고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마고의 비난에 스티븐은, 자기가 게이라는 걸 마고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반박한다. 20년 전, 마고는 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고, 스티븐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고 역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자기의 삶 - 학문 - 에 충실하다보니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고 후회한다.
이쯤에서, 관객은 루와 니코가 왜 집을 뛰쳐나와 집시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철없는 어린 집시인줄 알았던 두 사람에게 깊고 큰 마음의 상처가 있었고, 그것은 모두 부모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게 된다.
니코는 아버지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걸 보면서 크게 충격 받았을 것이고, 오랜 동안 엄마와 아버지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서적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루 역시 어렸을 때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마음에 남아 있다. 이 두 청년이 그나마 잘 견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 이들이 마약을 하거나, 마약중독자가 아니라는 것, 니코의 경우 언제든 돌아갈 집(엄마)이 있다는 것이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었기에 범죄자나 마약중독자가 되지 않았다고 보여지고, 그보다 더 직접적 원인으로는 이 청년들이 아직은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다.
캐롤린은 호텔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택시에서 우연히 거리에 있는 루와 아기, 마고를 발견한다. 막 지하철을 타려는 그들을 쫓아가지만 놓치고, 집에 돌아온 캐롤린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경찰, 아동보호국 직원 앞에서 남편의 비난을 들으며 괴로워한다.
캐롤린이 본 장면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경찰은 곧바로 루와 아기를 추적하고, 이때 마침 경찰에게 신원을 알 수 없는, 그러나 관객은 다 아는, 제보가 들어온다.
루는 아기와 둘이 처음 니코를 만났던 뉴욕의 부둣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때 니코가 다가왔고, 두 사람은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간다. 아기가 아프다고 생각한 루는 병원에서 아기를 치료하려 하지만, 의료보험도 없고, 신원도 명확하지 않아 치료를 거부당하는데, 마고의 집으로 갔던 경찰은 루와 아기가 병원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마고와 캐롤린은 영화 거의 마지막에 만난다. 마고의 주방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캐롤린은 자기가 얼마나 형편 없는 여자인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엄마인지 처음 본 마고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아기를 낳고도 남편이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자, 아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아기가 미웠다고 말한다.
마고는 캐롤린의 처지를 충분히 공감하면서, 자기도 아들 니코가 아기였을 때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고가 임신한 것은 대학원 때, 박사 논문을 쓰던 당시였고, 마고는 모성애를 느낄 여유도 없이 출산하고, 논문에 매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아이와 충분한 교감을 나누지 못했고, 아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키웠다.
병원에 있던 아기와 루와 니코는 달려온 경찰에 체포되고, 아기는 캐롤린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제 캐롤린은 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기가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루는 경찰에 체포당하고, 마고는 걱정말라고 다독인다. 루는 경찰차에 실려가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뿌듯한 기쁨을 느끼며 혼자 슬며시 웃는다. 루는 자기가 세상에 혼자 버려진 외로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마고 역시, 혼자 공원을 산책하다 문득 중력이 사라지며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본능적으로 나뭇가지를 붙잡는다.
마고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다시 지상(과거의 현실)으로 내려올 것인가, 아니면 나뭇가지를 놓고 중력이 없는-새로운 세상-삶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느낀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 여성의 입장에서 모성애,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여성은 무조건 모성애를 가져야 하고,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거나, 모성애가 없으면 비난받아야 하는가. 캐롤린의 경우, 남자(남편)에게 종속된 수동적 삶을 살아간다. 남편에게 관심을 끌어야 하고, 성적 매력을 잃지 않도록 외모를 꾸며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서 날씬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자기가 낳았지만, 아기는 보모가 키우고, 자기는 그 시간에 몸매 관리, 피부 관리를 해야 하고, 남편에게 잘 보이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어 살아왔다. 그럼에도 남편은 자기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아기의 육아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고 아내 캐롤린을 비난한다.
대부분의 남성(남편)이 비슷하다. 육아는 아내(여성)가 전적으로 하는 것이며, 남편이 조금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꽤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캐롤린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었지만, 자기가 산후우울증을 겪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출산과 육아에 무지하다. 산후우울증이 심하면 산모는 아기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캐롤린이 삶의 의미, 자기 존재의 가치를 남편의 사랑에 두었다면, 마고는 자기의 학문적 성취에 두었다. 둘은 형식적으로는 다르지만, 본질에서는 같다. 즉,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와 정서적 결합을 해야 할 시기에 아이보다 자기의 욕망에 더 충실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건 자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서적 방임이자 아동학대다.
여기에 남성(남편)이 육아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 것도 정서적 방임과 아동학대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마고의 남편은 게이로 커밍아웃하면서 자기의 성정체성, 자기의 삶을 당당하게 드러내지만, 정작 아내 마고와 아들 니코의 삶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성소수자는 항상 사회적으로 약자이므로 보호받아야 하는가의 딜레마가 있다. 니코의 아빠는 마고와 니코에게는 약자가 아닌, 강자로 군림하는 존재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고, 남성이며, 사회적 기득권에 속하는 백인이다. 그가 단지 게이라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인 마고와 소년인 니코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루, 마고, 캐롤린은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 이미 사회적 약자다. 감독은 세 명의 여성을 각각 사회적 범주의 대표적 캐릭터로 설정한다. 루는 부모의 학대와 방임 속에서 버림받은 여성으로, 마고는 지식인이고 지성인이지만 남성권력 -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사회 -의 사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 캐롤린은 미인이어서 남성에게 인기가 많지만, 돈 많은 남성과 결혼해 남성(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속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대표한다.
이들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 시도는 성공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성이 현재의 사회 구조인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늘 소수자, 약자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생기고, 그런 여성들이 연대해 사회의 조직으로 발전하고, 힘을 갖게 된다면, 여성의 삶은 물론, 모든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세 명의 여성이 지향하는 삶을 중심으로 보여주었다면, 여성과 가족이라는 두번째 주제도 눈여겨 볼 내용이다. 영화에서 '정상적인 가족'은 없다. 여기서 '정상'이라는 말은, 기존의 사회질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말하고, 교육하는 '가족'의 의미를 뜻한다. 즉, 이성애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족 단위를 말한다.
루는 어려서 가족이 해체되었고, 엄마가 자기를 버렸으며,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험이 없다. 그래서 니코가 '정상적인 삶'을 살자고,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했을 때, 진심으로 짜증을 낸다. 루에게 가족은 트라우마다. 자기가 아이 때 버림받은 것처럼, 자기가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생기면, 또 그런 일이 발생할 것 같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마고에게 가족은 불행하다. 남편은 커밍아웃하고 떠나가고, 아들 역시 갑자기 집을 나갔다. 그는 이혼하자는 남편의 요구에 몇년째 합의하지 않고 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캐롤린은 다른 사람이 보면 행복한 가족이었지만, 그는 자존심도, 자기애도 없어서 한 가족을 이끄는 '엄마'의 역할을 알아서 포기한다. 즉,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지만, 그의 정신적 단계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마고는 루가 아이를 데리고 오자, 그렇게 함께 살면서 한 가족을 이루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루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고는 루와 아이를 사랑한다. 루는 돌발적으로 캐롤린의 아이를 호텔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기를 키우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인지 깨닫는다. 루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임신, 출산도 하지 않았지만, 아기를 키우는 마음은 진짜 엄마만큼이나 애틋하다.
캐롤린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나서부터 진짜 엄마가 된다.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을 걸 알고 있지만, 그런 결말과 관계 없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모성이 살아나고, 자신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이혼당하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오히려 독립적이고 자존감 있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세 명의 여성은 아기를 중심으로 만나게 되었고, 어쩌면 이들은 세 명의 엄마와 한 아기가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마고의 남편이 다른 게이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가정을 꾸린 것처럼, 인간 집단의 최소 단위인 가족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를 띄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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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북미에서 57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을 꾸준히 자치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국내 개봉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번째 시리즈인 <에놀라 홈즈 2>의 공개까지!
그럼 11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5분
감독: 올리비아 뉴먼
출연: 데이지 에드가 존스, 테일러 존 스미스 등
개봉: 2022.11.02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줄거리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 카야가 자신이 자라온 공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감성 드라마
관전 포인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성장과 치유를 담은 웰메이드 영화로
1억 불에 가까운 오프닝 수익을 달성했으며, 로튼토마토 관객 지수 96%를 달성하였다.
고속도로 가족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9분
감독: 이상문
출연: 라미란, 정일우, 김슬기 등
개봉: 2022.11.02
배급: CJ CGV줄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를 따라 캠핑 같은 노숙생활을 하는 한 가족과 우연히 그들의 손을 잡게 된
부부의 만남과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관전 포인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와 함께 흥미로운 전개와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상영 직후 많은 호평을 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알카라스의 여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스페인 | 120분
감독: 카를라 시몬배우: 조르디 푸홀 돌체트, 안나 오틴 등
개봉: 2022.11.03
배급: 영화사 진진줄거리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3대에 걸쳐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솔레 가족의 찬란한 여름을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견 없이 황금곰상 수상이 확정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알카라스의 여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초청되었으며,
3번의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탑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8분
감독: 홍상수배우: 권해효, 이혜영, 송선미 등
개봉: 2022.11.03
배급: (주)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줄거리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
관전 포인트
홍상수 감독의 28번째 작품으로 한 건물을 주 무대로 촬영된 흑백 영화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긴 롱테이크 씬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에 배우들의 열연과 홍상수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볼 수 있다.
분노의 추격자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96분
감독: 브라이언 굿맨배우: 제라드 버틀러, 제이미 알렉산더 등
개봉: 2022.11.03
배급: 와이드 릴리즈(주)줄거리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귀갓길, ‘윌’이 주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 ‘리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소한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한 ‘리사’
‘윌’이 그녀를 찾기 위해 분투할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관전 포인트
영화 <오페라의 유령> <300> <드래곤 길들이기>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제라드 버틀러가
영화 <분노의 추격자>에서 주연을 맡았다.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영화이다.
OTT 공개 영화
에놀라 홈즈 2
ⓒ 넷플릭스
개요: 모험 | 영국 | 129분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헬란 본햄 카터 등
공개: 2022.11.04
스트리밍: 넷플릭스줄거리
날카로운 추리력과 당찬 의지로 가득한 셜록 홈즈의 막내 여동생 에놀라가 탐정 사무소를 열고
맡게 된 첫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가득한 모험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관전 포인트
1편 공개 당시 공개 후 28일간 7,600만 가구에서 시청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편이 공개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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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결말포함]군필이라면 다 아는 그 영화 분대장 교육장에서 틀어주는 바로 그 영화
#군대영화#밀리터리영화#전쟁영화
영화 ' 위 워 솔저스 ' 2002년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무비워크 #영화리뷰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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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의 화려한 피날레 / 파이널 레코닝 / 톰형의 씹어먹는 액션 / 톰형이 찢었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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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라더> 메인 예고편
정의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강력계 형사 ‘강수’.
어느 날 그에게 마약 밀수입 등의 악질 범죄를 일삼는
거대 조직의 정보가 담긴 발신자 불명의 제보가 들어온다.
범죄 소탕을 위해 조직에 위장 잠입한 ‘강수’는
회장의 오른팔 ‘용식’ 밑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하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묘한 우정을 느낀다.
“이런 일이 안 어울린다고, 강수 너한테는”
한편, ‘강수’는 계속되는 비밀 수사 중 신분 들통 위기에 처하고
사건을 파헤칠수록 조직과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는데…
복수와 배신이 교차하는 세계에 뛰어든 두 남자,
누구도 믿지 못할 팀플레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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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파이더헤드> 공식 예고편
뛰어난 과학자(크리스 헴스워스)가 운영하는 최첨단 교도소. 이곳에서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감정을 조절하는 신약 임상 실험이 이루어지는데. 실험에 자원한 두 재소자(마일스 텔러 & 저니 스몰렛)가 각자의 과거와 싸우며 연대를 맺는다. 조지프 코신스키(《탑건: 매버릭》 《트론: 새로운 시작》) 연출. 《뉴요커》에 실린 조지 손더스의 단편 《Escape From Spiderhead》에 바탕을 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