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2-06 09:29:35
각자가 원하는 걸 얻었다
- <히든 페이스>(2024)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어디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자신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은 무척 어렵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어려운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가장 쉽게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높은 지위나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의 도움이 있다면 그 과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영화 <히든 페이스>는 세 인물이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기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사회적 지위를, 누군가는 상대방의 감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각자가 어떤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을 때 그 얼굴에 나타나는 진실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닐까.
[첫번째 감정] 성진의 욕심

주인공 성진(송승헌)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그는 고생 끝에 지휘자의 직업을 얻었지만, 더 큰 성공을 향한 욕구가 여전히 강하다. 성진은 차분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면이 있다. 아내인 수연(조여정)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감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아내의 살가운 접근에도 성진의 반응은 냉담하며, 그 미소조차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성진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 수연의 집안이 가진 힘을 은근히 이용하려 한다. 이런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은밀하게 드러나지만, 성진의 얄팍한 속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아내 수연이 사라지고 나서 곧바로 낯선 여자 미주(박지현)에게 빠져들 때이다. 수연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얇고 가벼운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성진의 마음은 미주와의 관계를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성진의 얄팍한 욕망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그는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는 욕심이 많은 인물이지만, 사실 수연의 집안의 지원이 없이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무기력함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더 짙어진다.
[두번째 감정] 미주의 사랑

미주는 어린 시절 수연을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같은 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그 사랑을 공개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오랜 세월 수연을 위해 헌신해왔다. 약한 노예와 주인의 관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 중반 이후 미주의 행동들은 그녀의 사랑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의 폭발적인 반응처럼 보인다. 마치 그 인정받지 못한 감정을 성진에게 풀어놓는 듯한 그녀의 행동은 버림받은 사람의 일탈처럼 느껴진다.
영화 초반의 미주는 비밀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의 비밀은 대부분 수연이 가진 비밀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객에게 놀라움을 준다. 이후 미주는 수연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 성진을 이용한다. 성진이 아내 수연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듯, 미주 역시 수연을 상처 주기 위한 도구로 성진을 활용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미주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살짝씩 보여주면서 이 인물이 가진 의도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미주가 가진 진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그 내면을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미주라는 인물의 서사와 미스터리함은 결국 그녀가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깊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관객은 그녀를 쉽게 판단할 수 없고, 그 점이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세번째 감정] 수연의 자신감

수연은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수연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수연은 하나도 잃은 것이 없다. 중반부에서 그녀가 모든 것을 잃을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연이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인물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그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진과 미주는 수연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완전히 그녀를 밀어낼 수도 없다. 결국 그들은 수연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취하며 살아간다. 수연은 자신의 의도를 철저히 감추고 성진과 미주를 이용하면서 모든 것을 조종한다. 마치 악마처럼 보이는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며,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취하며 살아간다.
고급스러운 치정극
영화 <히든 페이스>는 고급스러운 치정극이다. 아름다운 화면과 잘 짜인 집의 구조는 이 영화의 중요한 매력 요소 중 하나다. 집의 독특한 구조는 숨겨진 방과 한쪽만 볼 수 있는 거울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진다. 어쩌면 그 특이한 집의 구조는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인물관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쪽에게만 그 관계의 진실이 보이는 관계, 그러니까 숨겨진 얼굴을 힘을 가진 한 쪽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 중 관객이 응원하고 싶은 인물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욕심과 욕망에 눈이 먼 인물들이고,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조종하는 사람은 수연이다. 그래서 세 인물은 서로의 나쁜 의도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살아간다. 결국에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인지 희극인지조차 모호해진다.
특히 미주 역을 맡은 박지현 배우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다.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고, 어떤 일이든 다 꾸며낼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없는 느낌을 잘 살렸다.
범죄와 치정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히든 페이스>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각자의 욕망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전과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며, 그들 사이의 긴장감이 영화 내내 유지된다. 당신도 이들의 숨겨진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은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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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엄마들의 헌사와 희생에 바치는 아름다운 이야기
엄마의 고생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을 위해 대가 없이 헌신하는 존재이다. 여기 <딸에 대하여>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나오는 엄마라는 역할은 몹시 고달프고 슬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픔을 홀로 껴안고 누구에게 말하면 치부가 될까 봐 꼭꼭 숨기고 다닌다.
요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도 일단 자신의 외로움을 달랠 재희라는 간병 대상을 꼼꼼히 챙기며 아끼고 간병인으로서 사랑을 베푼다. 일단 여기 요양원에서도 재희는 후원 재단까지 세울 정도로 젊은 날을 힘차게 살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을 그저 노인네라고 여기고 있다.
간병인으로서 또는 외로운 존재로서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도 재희처럼 독거노인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가족의 울타리라는 안정감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고집을 피우고 말썽까지 피우는 재희를 섬세히 돌본다. 요양원의 과장에게도 핀잔을 들으며 일을 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가진 존재이다. 자신의 딸이 대학교의 강사지만 해임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성애자였다는 것도 안다. 그린과 레인 둘은 동성 커플이다. 서로 잘 살아보려 했으나 그게 어려운 현실이기에 그린은 레인과 함께 자신의 엄마 집에서 얹혀 살아간다. 그리고 그린은 대학 강사 해임을 대학교에 따지며 복직시켜달라는 시위에 동참한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마음이 찢어지고 산산이 조각난다. 자신의 딸이 적당한 남자와 만나 결혼하고 가족을 만들어야지 재희나 자신처럼 혼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우리들의 일상에 늘 존재하고 필요로 하는 엄마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키며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의 버팀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으로서 늘 혼자만 문제를 안으며 살아가려는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엄마가 있기에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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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3월 2주 개봉영화!
도어맨 The Doorman , 2020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컴백
영화 "도어맨"은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미술품을 노린 무장 괴한들에 맞서 홀로 반격에 나선
전직 해병대 출신 도어맨 알리의 올 킬 액션 영화 입니다.
‘레지던트 이블6’ ‘존 윅-리로드’ 등 다양한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며
새로운 액션 마스터로 주목받고 있는 루비 로즈와 할리우드 베테랑 장 르노가 만나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요.
또한 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으로 영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컴백작으로
뉴욕 아파트에 세기의 작가들의 미술품이 숨겨져 있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카타르시스 넘치는 액션 연출로 극장가를 사로잡을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액션 마스터 세대의 주역 ‘루비 로즈’의 매력을 담은
첫번째 추천영화 "도어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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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미 Marry Me , 2021
선결혼 후 연애
영화 "메리미"는 선결혼 후연애를 시작하게 된 슈퍼스타 '캣 발데즈'와
슈퍼노멀 수학 교사 '찰리'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드라마 입니다.
제니퍼 로페즈와 오웬 윌슨, 말루마 까지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에게 떠밀려 '캣 발데즈'의 콘서트에 가게 된 '찰리'는
'Marry Me'라고 적힌 플랜카들르 들고 있다가 '캣 발데즈'와 무대에서 즉석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슈퍼스타와 수학 교사의 만남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댈르 모으고 있습니다.
슈퍼스타와 슈퍼노멀 수학 교사의 로맨틱 드라마!
두번째 추천영화 "메리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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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폴 Moonfall , 2022
2022년 인류 최후의 재난, 달이 지구와 충돌한다!
'투모로우'와 '2012'에서 자연재해와 이상 기후로 인한 인류멸망을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과 스펙터클로 구현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영화 "문폴"을 통해 우주로 무대를 확장하여 이제껏 본 적 없는 재난을 관객들에게 선보입니다.
영화 "문폴"은 달이 궤도를 벗어나 지구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재난 속 인류의 마지막 생존기를 다룬 재난 블록버스터인데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숨쉴 틈 없는 우주적 스케일의 재난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만의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신선하고 낯선 달의 모습을 보여줄
세번째 추천영화 "문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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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SPENCER , 2021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
영화 "스펜서" 는 왕실 가족이 별장에 모여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 3일 동안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재키' '네루다' 등을 통해 거장으로 우뚝 선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스크린에 되살려냈습니다.
커튼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고, 의상 순서까지 정해놓은 폐쇄적이고 고루한 왕실 문화 속에서
남편의 외도와 끝없는 감시까지, 모든 상황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다이애나의 심리를 내밀하게 담았냈습니다.
영국 왕세자비 다이내나 스펜서의 3일!
네번째 추천영화 "스펜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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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러브 송 你的情歌 , Your Love Song , 2020
'상견니' 가가연 스크린 복귀작
영화 "유어 러브 송"은 서로 다른 꿈과 비밀을 가진 세 남녀가 만나면서 겪는 사랑과 아픔, 성장을 그려낸 청춘 뮤직 로맨틱 코미디 입니다.
가가연이 연기파 배우 부맹백과 슈퍼 아이돌 최연소 우승자로 첫 연기 데뷔한 이슨시에와 함께 선보일 로맨스 케미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풋풋했던 시절 사랑에 아파해본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예정입니다.
국내에도 수많은 팬을 양산한 메가 히트작 '상견니'에 이어,
가가연의 첫 차기작으로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유어 러브 송"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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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즘을 내세우다 길 잃은 수녀들!
수녀가 구마를 한다? <검은 수녀들>은 이 콘셉트만으로도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비슷한 이야기 루트로 흘러간다고 해도 신부가 아닌 수녀가 악령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건 관객으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검은 사제들>의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파묘>가 불을 지핀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붐을 또 한 번 이어 나가겠다는 영화의 야심은 그 당위성이 충분한 듯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 초반 가져간 특장점을 오롯이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검은 수녀가 뜨면 악마도 벌벌 떤다. 일명 검은 수녀라 불리는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에 숨어든 악령에게 성수를 들이부으며 한판 대결을 벌였지만,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소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 확신한다. 어떻게든 희준의 몸에서 악령을 쫓아내려는 유니아와 달리, 구마를 믿지 않는 소년의 담당 의사인 바오르 신부(이진욱)는 과학과 의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더 이상 지체하면 소년의 몸이 악령에게 잠식되는 건 시간문제. 유니아는 바오르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와 함께 직접 구마를 하기 위해 우진을 빼돌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가장 중요한 건 휴머니즘이라 생각했다”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이 장르의 외피를 쓴 휴머니즘 영화다. 연출을 맡은 권혁재가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듯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중점은 악령과의 힘겨루기가 아닌 악령에 사로잡힌 이를,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고군분투에 있다.
유니아 수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바로 ‘살려야 한다’다. 그녀가 구마 의식을 직접 거행하는 것도, 연이 있는 무당에게 데려가 굿을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아는 그녀는 소년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진한다. 소년만 살리는 건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미카엘라도 살린다. 귀태(鬼胎)로 태어나 원혼이 보이는 그녀는 이런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았는데, 유니아를 만난 뒤로 지우고 싶은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영적 능력을 받아들인다. 유니아 또한 악령의 소리가 들리는 영적 능력자로서 미카엘라를 본연의 삶으로 회귀시키고, 구원의 시간을 마련한다.
이렇듯 유니아를 통해 영화 전반에 깔린 건 모성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희생을 담보로 한 모성애다. 신부가 아닌 수녀라는 점,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감독은 유니아를 통해 이 부분을 강조한다. <검은 사제들>은 물론, 여타 오컬트 영화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이같은 주제를 강조했는데, 이를 잘 활용했는지는 의문이다.
감독은 모성애를 근간으로 한 휴머니즘을 부각하지만 일차원적인 여성성에만 의존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모습, 같은 위치에 놓인 여성들의 연대를 이야기 하는 건 좋지만, 수녀(또는 여성)라서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새로움은 덜하다. 더불어 악령의 입에서 내뱉는 여성 비하적인 발언 등 또한 구마 의식의 긴장감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컬트 장르적 재미도 덜하다. <검은 사제들>과 비교했을 때, 구마 의식 자체가 너무 느슨하고, 성수를 들이붓는 것 외에 특이점이 없는 행동들은 박진감을 떨어뜨린다. 수녀가 행하는 구마 의식이라는 특장점을 좀 더 다양하게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속신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은 있지만, 활용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나마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 건 송혜교, 전여빈의 연기다. 1.66대 1로 좁게 찍은 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은 보다 더 크게 보이는데, 이에 따라 두 배우의 감정 연기는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종교적, 사회적 억압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행하는 송혜교의 강단(물론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생각나지만), 내·외면의 공포와 사투를 벌이는 전여빈의 감정 연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시감은 들지만, 무당 역을 맡은 김국희 배우의 연기도 인상깊다.
오컬트 무비, 특히 엑소시즘 영화에서 두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부분이 잘 살지 못하고, 평이하게 흘러가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아쉽다. 구마의식을 하는 수녀들은 흔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검은 사제들> 이후 이 세계관이 계속 이어 나간다면 다음 구마 의식은 아가토 신부(강동원), 미카엘라 수녀가 담당하게 될 듯. 다음 작품엔 꼭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사진 제공: NEW
평점: 2.5 /5.0
한줄평: 휴머니즘을 내세우다 길 잃은 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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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밍숭맹숭한 삶 속 잠깐의 반짝임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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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재미있는 것들은 대개가 우연의 산물이다. 우연히 들은 음악, 아무 생각없이 고른 영화나 책, 맛집을 검색하지 않고 들른 식당, 너무 취향에 딱 맞는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상상한다.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날을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그려본다. 상상이라는 건 동물 중에서 하등 보잘것 없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고, 그렇기에 인간이 문명을 이루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우연에 기대어 살아갈 수도 없고, 한량처럼 상상만 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한번 해봄직하지 않을까?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3부작 옴니버스로 우연과 상상을 시각화한다.
우연한 마주침
제1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제2화. <문은 열어둔 채로>, 제3화. <다시 한번>까지, 이 이야기들은 관계에 관해서 보여준다. 노래에서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마주침은 우연이다.
내 절친이 사랑에 빠진 남자가 내 전남친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 인생을 나락으로 보낸 남자를 버스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20년 동안 그리워하던 사람을 전철역에서 만날 확률은?
이 우연한 만남들이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사전에 계획된 길로만 간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한정적이다. 우연히 메이코의 친구와 전남친이 썸을 타지 않았다면 2년 전의 관계를 다시 되돌아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오가 파트너를 위해 교수를 곤경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면 어떨까. 그냥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흐지부지 이어가면서, 육아와 가사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나오는 욕망이 강한 여자다. 나오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만학도가 되었다. 동기들은 나오를 끼워주지 않는다. 파트너인 남자만 유일하게 나오와 이야기를 하지만 단지 섹스파트너일 뿐이다.
본인의 자아실현이라는 나오의 욕망은 뒤틀리고 왜곡되어 웬 남학생이랑 불륜을 저지른다. 불륜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남학생은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나오는 그에게 의존적이었다. 남학생은 모두가 나오를 싫어한다며 나오를 가스라이팅하고, 나오는 그런 남학생을 위해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한다.
곤경에 처한 나오를 무참히 버린 남학생은 졸업 후 출판사에 편집자가 되어 살아간다. 곧 결혼도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이 순간에, 버스에서 우연히 제 손으로 인생을 망쳐놓고 모른 체한 여자를 만난다면, 이 남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제3부는 '우연과 상상'이라는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들이다. 전혀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이 20년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나고 너무나 반가워한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상상했던 것처럼.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평생 기다려온 것만 같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동창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한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익명의 타자는 기꺼이 그 역할을 해준다. 꼭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금쪽이들에게 질문하는 코끼리 같다. 우연과 상상,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왔나.
잘 실패하기
안타깝게도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실패했다. 전남친을 붙잡는 데 실패하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학교도, 가정도 모두 풍비박산나고, 그토록 오랫동안 만나기를 기다려왔던 사람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전남친을 붙잡는 대신 친구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자기를 망쳐놓은 옛 파트너 앞에 당당히 나타나고,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묻어두었지만 이제 그 사람을 보낼 것이다.
제2화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나오가 접근했던 세가와 교수는 연구실 문을 닫지 않는다.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강박도 있다. 사실은 외로운 인물이고, 타인과의 접촉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타인과 가까운 사이가 될 수는 없다. 단지 소설가로서, 작품으로만 만날 뿐이다(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두려움은 우리를 자꾸만 가로막는다.
실패가 너무도 두려웠다. 운이 좋은 편이라 내 재주에 비해 대단한 실패를 겪지는 않았지만, 20대 때는 실패할까 싶어 시작도 하지 못했다. 조금 해보다 재빨리 포기하고, 합리화하다 보니 내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대차게 실패를 했더라면 술 마시고 술안주로라도 쓸 텐데, 실패마저도 실패한 이야기는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우연이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주듯이, 실패 역시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갈지도 모른다. 성공하면 더 좋긴 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이유를 찾아 헤매었다. 나의 문제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내가 힘들게 했던 사람들, 그런 이유는 결국 내가 싫겠지, 뭐 그런 쪽으로 가곤 했다. 하지만 사실 꽤 많은 경우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필연적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일들 역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영혼의 쌍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와도 다시 만나기 싫을 정도로 멀어지기도 했다.
우리의 성공이 모두 우리의 덕이 아니고, 우리의 실패가 모두 우리의 탓이 아니다. 세상 많은 일들이 우연과 상상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삶은 밍숭맹숭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별사탕이 있다. 사실 이런 마음을 먹는 것도 나는 자주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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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포인트 : 블록버스터가 스크린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거대서사와 화려한 CG 없는 용감한 영화. 별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웃는다. 그러면 그냥 같이 웃게 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도 그렇게 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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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어떠한 정보도 없이 조승우가 나오는구나! 사극이구나! 라는 점만 알고 왔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 작품이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이야기인 줄 꿈에도 모르고 봤다. 극이 시작하면서 민자영이 어쩌고 이래서 민,,,자영,,? 명성황후? 하고 뒤늦게 깨달았고, 역사왜곡은 이해하더라도 과연 그 입장 차이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 불안해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시놉시스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왜곡이야 그렇다치고,, 그럼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재현은 언제나 역사왜곡 논란이 거듭된다. 왜냐면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정책을 한 왕후를 좋게 보기도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 방법은 옳지 못했기에 나쁘게 평가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을미사변으로 시해됐을 때 목격자들 마저 모조리 몰살당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소재는 미디어 재현으로서 굉장히 적합한 소재이면서도 역사 왜곡이 너무나도 쉽게 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처럼 논란이 많은 명성황후, 민비를 소재로 택햇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왜곡을 한다 하더라도 그 왜곡된 내용 안에서는 개연성이라도 갖춰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내내 도대체 저 둘은 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봤는데...? 수애 정도의 미모면 물론 한 눈에 반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목숨바쳐 사랑할 일인가? 저렇게까지 식음을 전폐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큰 주제 자체에서 이미 개연성을 잃어버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던 작품
주제 자체로도 개연성이 없는데 장면장면도 개연성이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무명이 자객이고 무술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굳이 저렇게 티나는 CG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휘영청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 위 쪽배에서 칼로 싸우는데,,, 무슨 만화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물 마시며 보다가 사례 들릴 뻔 했다. 그리고 연희장에서 뜻하지 않게 펼쳐진 대련에서 갑자기 빙판 CG라니.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격동적이고 화려한 무술을 보여주고 싶다면 저런 CG 말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게 훨씬 더 임펙트가 있었을텐데 안타까웠다.
또한, 무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고종이 무명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일부러 무명을 침실밖에서 호위를 하게 하고 자영과 관계를 갖는다. 굳이,,? 이런 질투유발작전을 펼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렇게 정말 쓸데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잇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이렇게 안타까운 작품에서 더 안타까웠던 점은 저렇게 평면적인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진짜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조승우, 수애를 데리고 와서 이런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었을까? 솔직히 조승우, 사극, 액션, 멜로 이 조합을 보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손발이 오글거리고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이 맞을까? 어디 누구한테 협박당해서 출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와중에 배우들은 무명과 자영의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들어서 그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난다고 해도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킬링타임용으로도 아까운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조승우 필모 깨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작품이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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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록 | 용두사미로 끝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질을 놓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관점에 따라 종교의 정의는 달라지지만, 크게 두 가지의 공통된 조건은 꼽을 수 있다. '초월적 존재'와 '직관'이다.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 존재나 현재 살고 있는 세상과는 별개인 초월적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대한 직관적 경험을 토대로 믿음을 갖는다는 것. 이때 주관적인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되거나, 여러 사람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술 또는 관찰될 수 되는 경험이나 사건이 있다면 이를 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의를 따르면 종교는 일반 사회, 세속과 긴장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종교적 경험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와 세상의 질서와 규칙에 근거하는 한, 일반 사회의 범과 규범에 어긋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속의 관점에서는 시민적 합의 대신 초월적 존재에 근거하는 종교적 규범이나 질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슬람 전통과 민주주의 체제가 쉽사리 융화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계시록>은 바로 이 간극과 긴장 상태에 주목했다. 사회의 규칙과 다른 차원의 질서 간에 존재하는 갈등을 한 성범죄자를 추적하는 목사와 형사의 스릴러 내에 녹여낸다. 문제는 종교적 소재를 다른 메시지를 꺼내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하는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이 도졌다는 것. 그로 인해 <계시록>은 종교적 통찰과 메시지도, 미스터리 스릴러다운 장르적 쾌감도 놓치고 말았다.
종교 vs 사회
<계시록>의 전반부는 예상외다. 그간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데 미숙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이>, <선산>에서도 반복되는 문제였다. <계시록>은 다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자로 합류한 효과인지는 몰라도, '성민찬'(류준열)과 '이연희'(신현빈)의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그 덕분에 두 주인공이 속한 전혀 다른 세계도 직관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민찬의 세계는 종교적이다. 계시를 따르면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반복된다. 딸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은 민찬은 교회에 방문했던 성범죄자 '권양래'(신민재)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그의 뒤를 밟는다. 미행을 들킨 민찬은 몸싸움 끝에 양래를 산비탈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런데 민찬의 살인미수는 밝혀지지 않는다. 양래의 집 앞 CCTV가 고장 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현장도 폭우 때문에 증거가 사라진 행운이 뒤따른 덕분이다.
이에 민찬은 양래를 밀어버린 뒤 목격한 예수의 얼굴이 계시라며 그를 단죄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 그 이후로 민찬에게는 행운이 이어진다. 새로 생길 대형 교회 담임 목사직도 제안받고, 우연히 방문한 양로원에서 겨우 살아난 양래를 발견해 그를 완전히 단죄할 기회도 잡는다. 민찬이 차 안에서 아내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하라고 외치는 기괴한 장면은 그의 세상이 직접 경험한 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희의 세계는 정반대다. 그녀가 양래를 죽여야 할 동기는 누구보다도 명확하다. 복수다. 여동생 '연주'(한지현)가 그에게 강간당했고, 그가 정신병력을 이유로 감형받자 연주는 자살했으니까. 연희 본인도 여동생의 환시와 환청을 겪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회의 질서를 준수하고, 법의 처벌을 믿는다. 여동생 사건을 겪은 후로도 연희가 경찰복을 벗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롱테이크 액션에 담긴 함의
민찬과 연희의 세계는 양래를 기점으로 충돌한다. 그들은 양래가 흉악범죄자이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민찬은 신의 뜻대로, 신의 정의대로, 신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율에 따라서 양래를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본 계시에 따르면 살인이 사회적으로 살인이 금지된 행위일지언정 신의 정의에는 부합한다.
연희는 민찬의 세계를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그 의도나 목적이 선하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이니까.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충돌은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세속의 질서, 윤리나 선악의 기준이 초월적인 존재의 규범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 양래의 서사가 더해지면 <계시록>의 종교적, 윤리적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양래는 이미 계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한 차례 감형을 받은 바 있다. 출소한 후에도 연주에게 했듯이 '아영이'(김보민)에게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계부 핑계만 늘어놓는다. 속죄하지 않는 그를 보다 보면 '그에게 과연 법의 처벌만으로 충분히 정의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까?' '민찬의 방식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민찬이 법의 잣대를 어긋나도 그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버려진 건물에서 펼쳐진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가 <계시록>의 하이라이트인 이유다. 물론 액션 연출 자체도 박진감 넘치고, <그래비티>와 <로마>에서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을 보여준 알폰소 쿠아론의 존재감도 인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악인을 두고서 전혀 다른 정의와 질서, 우주와 세계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을 고스란히 액션에 담아냈기에 이 시퀀스는 특히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계시라는 신기루
하지만 이 액션 시퀀스 이후로 <계시록>은 급작스레 길을 잃는 듯하다. 정신과 의사를 등장시키고, 그의 입을 빌려서 명확한 답을 알려주며 손쉽게 갈등을 매듭짓는다. 민찬의 계시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인 '아포페니아(Apophenia)'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믿는 존재와 그가 사는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두 우주, 질서의 충돌을 무마한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민찬을 양래와 같은 범주의 인물로 묶고, 그들과 연희의 차이점을 부각해 상술한 딜레마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위해 <계시록>은 민찬이 본 계시를 일종의 신기루로 취급한다. 양래가 자신의 성범죄를 계부의 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변명하듯이, 민찬도 계시라는 합리화 기제를 통해서 살인미수를 신의 정의라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연희는 다르다. 자신의 행동을 신과 계부의 탓으로 돌린 두 사람과는 달리 자기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려 한다. 복수심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의지로써 동생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영이의 안위를 우선순위에 두려고 애쓴다. 이들의 차이를 통해 <계시록>은 한 인간을 악과 선으로 가르는 건 자신의 생각이고 의지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계시록>이 포기한 것
위와 같은 <계시록>의 결론은 윤리적으로 깔끔하다. 일반적인 상식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메시지의 설득력, 당위성과는 별개로 <계시록>의 답변은 영화적으로 영리하지 않다. 중반부까지 <계시록>은 민찬이 본 환시가 그의 합리화일지 아니면 진짜 계시일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았는데, 이 장점과 특색을 스스로 포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민찬과 연희의 추격전에는 이중의 긴장감이 감돈다. 연희가 스릴러의 서스펜스를 담당할 때, 민찬은 다른 결의 긴장감을 쌓는다. 신의 정의를 내세우는 민찬에게 맞받아치는 양래의 하소연에 철학적 논쟁이 담겨 있기 때문.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어린 양래가 계부에게 학대당할 때 신이 무엇을 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신이 회개하는 죄인을 사랑한다면, 민찬이 신의 계시를 잘못 이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민찬의 계시를 허상이라고 결론짓는 순간, 그의 서사는 그저 비겁한 정신이상자의 틀 안에 갇힌다. 종교적 현상에 기대어 쌓아 올린 신비로운 분위기와 상이한 질서의 충돌이 빚어낸 긴장감도 한순간 허물어진다. 그렇다고 복수심을 극복하는 연희의 이야기만으로 그 공백을 채우지도 못했다. 인간의 의지가 선과 악을 가른다는 주제의식은 <다크 나이트>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다뤄진 만큼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한 용두사미로 끝나다
더 나아가 연희가 극을 주도하는 후반부에서는 신비한 분위기와 미스터리에 가려졌던 부족한 완성도도 두드러진다. 사실 <계시록>은 첫 10분 정도만 보더라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연희가 아영이를 구해내는 후반부 전개는 그 예측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히 <계시록>의 결말은 범죄 스릴러 작품에게 기대할 법한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또 종교적 미스터리를 포기하고 범죄극을 취했지만, 정작 범죄 드라마로서의 특별함도 부족하다. 양래가 아영이를 숨긴 위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가해자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상징과 범죄 장소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는 <마인드헌터>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같이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범죄 심리극의 패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종교를 이용해 판을 깔지만, 정작 종교를 깊이 못 다루는 작법은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처럼도 보인다. 전작 <선산>에서도 선산에 얽힌 오컬트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결국 가족 관계의 비밀을 풀어내기 바빴으니까. 즉, 좋게 말해 예상외의 전개가 주는 재미가 있고, 나쁘게 말해 소재의 잠재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없는 스토리텔링이 연상호 감독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임을 <계시록>이 확언해 주는 듯하다.
Poor 형편없음
연상호의 트레이드마크는 용두사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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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X환몽씨네, 채널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feat. 최민식, 김윤석, 이병헌 외)
중앙사랑과 함께한 예능형 콜라보 콘텐츠입니다!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학교를 떠나기 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겨 주신 중앙사랑 27기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본 영상은 지난 2월에 촬영한 콘텐츠입니다.)
#중앙대학교 #중앙대 #중앙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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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가디언즈를 마주할 시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티저 예고편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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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면 믿어줄래요?
닿을 수 없는 편지로
그 시절, 전하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과 마주한 이들의
결코- 잊지 못할 한 통의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