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04 11:48:33
12월 재개봉 영화 모음 zip.
당신이 기다리던 바로 그 영화!

바야흐로 재개봉 영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스크린으로 보지 못해 아쉬웠던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재개봉 영화 목록 및 일정은 변경,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극장별로 개봉영화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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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약돌로 마녀를 쓰러뜨릴 때
이 글은 영화 [블랙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예고편만 보면 공포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블랙폰]은 성장 드라마에 조금 더 가깝다.
그리고 이 성장 드라마의 공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모티브를 많이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크게 아이들, 어른, 그리고 탈출의 수단.
총 세 가지의 갈등 요소들을 등장시키고. 각자 충실하게 영화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발로 밟아대며 꾹꾹 다지려 애쓴다.
명절 시즌이면 예상되는 영화 장르로 극장계가 점령되기 쉬운데도, 통상적이지 않게 공포 영화의 가면을 쓰고 관객들을 맞이하는 영화 [블랙폰]의 요소들을. 헨젤과 그레텔의 형식을 빌어 리뷰해보려 한다.
아이들, 헨젤과 그레텔;ignition sequence starts.
사진출처:다음 영화
최근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블랙폰]은 아이들의 서사나 일상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덕분에 영화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로 이동한다. 아이들이 그 시기에 가진 가진 두려움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또한 남에게는 말하기 힘든 비밀도 등장인물들의 순수한 입과 행동을 빌어 아무렇지 않지만, 비밀스럽게 이미 어른인 관객들에게 털어놓는 것만 같다.
관심이 있는 여자아이 앞에서 큰 홈런을 맞는 모습을 보여줘 버린 피니(메이슨 템즈)는 이런 고민들 외에도 학대와 엄격의 기로에 서 있는 집안 환경에 대한 우려도 함께 갖고 있다.
언젠가는 스스로의 찌질한 모습을 벗어나 자신만의 창공으로 솟아오르겠다는 집념처럼. 피니의 손에는 늘 작은 로켓이 쥐어져 있다. 당장이라도 날아오르고 싶지만. 아직은.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몇 번이고 모의 비행을 해보는 것으로 피니는 현실로의 아주 짧지만 확실한 도피를 하며 일상을 지탱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스스로 믿었던 만큼. 이 유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맹목적인 집념은 한낱 유괴납치 피해자 정도에 머물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데에 많은 힘을 싣는다.
영화 속 인물들을 통틀어 최약체로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피니는 결국 스스로 원하는 때에 맞춰 자신의 로켓을 쏘아 올린다. 초식동물의 눈에서 벗어난 피니가 지독히도 두려웠던 지하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크다.
[마녀];큰 솥에 빠지고야 말 운명.
숨참고 솥 Dive사진출처:다음 영화
의심할 여지없이. 마녀 역할은 영화 속에서는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치고받는 싸움의 현장도. 그로인 해 생기는 상처도 숨길 마음이 전혀 없지만. 어른들은 반대로 상처 또는 치부를 숨기려 애쓴다.
딸 그웬(매들린 맥그로)을 때릴 때조차 최대한 가릴 수 있는 곳을 선택해 학대의 징후를 감추려 하는 알코올 중독자 미스터(제레미 데이비스)만 보더라도. 사회생활 속에서 “번듯한”이미지를 고수하려고 자신의 본모습을 얼마나 애써서 숨기려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등장하는 어른들이 숨기고 싶은 면이 있고. 그 부분이 어른들 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영화는 악역 더 그래버(에단 호크)의 다양한 가면을 통해 보여준다.
아이들은 참 궁금했을 것이다.
가면 뒤에 숨은 더 그래버의 얼굴이 “얼마나” 상처 투성이인지가 아닌. “왜” 상처 투성이의 얼굴을 드러내고 걸어 다니는 것이 “안 되는” 일인지를. 만약 더 그래버가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었다면, 아이들은 아마도 얻어터져 딱지가 겨우 앉은 주먹을 슬그머니 보여주며 나도 그래.라고 씩 웃어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그것이 살아있는 아이들이건. 혹은 결국은 게임에 패배해 죽은 아이들이건. 그들은 상처를 숨기는 것에 두려움 없이 영화 중간중간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니까.
애초에 숨길 것이 없는 아이들을 더 그래버가 이길 수 없는 이유다.
빵조각이 자갈로 바뀌는 순간;기꺼이 화자가 되겠다는 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단절이 등장한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그리고 어른과 아이들.
이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명해 보이건만. 영화 초반부는 스피커처럼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퍼붓는 식의 대화 방식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기회도. 마음도 사라질 수밖에.
이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가 등장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전화기의 존재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간극은 매우 컸다. 그들은 존재하거나 머무는 장소조차 같을 수 없었고. 더 그래버는 아이들에게서 이름도 빼앗았으며.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인 전화기는 선이 끊어져 고장 난 것으로 묘사된다.
피니는 우선 피해자 아이들에게 이름을 돌려주었다. “너”는 죽었다. 가 아닌. 너희는 나에게 “이런” 존재였다. 를 깨우쳐준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였음을 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었다. 또한 그들이 남겨준 단서들은 처음에는 발길질 한 번이면 엉뚱한 길을 알려주고도 남을 것 같은 빵조각처럼 보였다. 하지만 피니의 들으려는 태도는 결국 친구들이 짧은 생을 바쳐 놓아준 단서들을 빵조각에서 단단하고 확실한 조약돌로 바꿔주었다.
오빠가 망자와 살아 있는 자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그웬은 오빠를 살리기 위해 욕설에 가까운 말을 퍼붓던 경찰의 명함을 집어 든다. 자신이 깊은 골을 파 놓은 어른과의 갈등을 스스로 메우기 위해 힘쓰려는 듯이.
살아 있는 자들을 연결하는 방법은 그리도 쉽고 간단했다. 오빠의 전화기처럼 선이 끊어져 있지도. 그렇다고 원하지 않을 때 울리지도 않았다. 그저 전화기를 들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그웬은 피니와 고장 난 전화기로만 통화할 수도 있었을 기회를 기꺼이 버렸다.
대화의 수단이자 자신의 죄를 고해할 수단인 전화기의 존재를 애써 무시한 더 그래버의 최후는 어찌 보면 가장 정당하고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피니의 탈출 장면이 주는 쾌감은 크다. 그것이 피니의 눈빛이 주는 감정도 크지만. 피니가 맘껏 자신의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도록 수신호를 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작은 조약돌 때문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마치면서
겁쟁이 레벨 100인 사람의 입장에서. 일주일에 한 편 보는 영화의 장르를 공포로 고를 때까지 참 많은 시간과 고뇌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너무 과장된 공포를 주기 위해 쓰이는 점프 스퀘어가 이 영화에서는 꽤 적절하게 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안 놀랬다는 건 아니지만. 과하다. 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또한 이런 장르에서는 보통 어른들의 수단, 도구에 머물렀던 아이들을 영화 전면에 앞 세운 점도 좋았다. 피니가 계단을 올라올 때의 결의에 찬 눈빛이 너무도 강렬해서 이 아역(?) 배우의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더 그래버의 행동이나 대사가 마치 복선을 던지는 것 같았지만 완벽하게 처리하지는 못했다는 점과. 공포라기보다는 밀실 탈출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쪽으로 영화가 흘러가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또한 마지막에 가면서 여동생의 능력 하나에 급물살을 타듯 사건이 후루룩 해결되는 점도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게 하는 단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 시즌에 대담하게 공포라는 장르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글의 TMI]
1. 분명 한 분이 나 말고 예매를 하셨었는데. 안 오셔서 혼자 봄.ㅠ
2. 진짜 울 뻔했다.
3. 정말 심하게 깜짝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서 꽥하고 소리 지름.
4. 네. 팝콘도 당연히 던졌습니다.
#블랙폰 #스콧데릭슨 #에단호크 #메이슨템즈 #매들린맥그로 #제임스랜슨 #헐리우드영화 #공포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영화망상쌉가능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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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각종 위험에 맞서 떠나는 모험을 주제로 한 영화
총 디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모험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해적: 바다로 간 산적
ⓒ 네이버 영화
synopsis
조선 건국 보름 전, 고래의 습격으로 국새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찾는
해적과 산적, 그리고 개국세력의 바다 위 통쾌한 대격전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cine pick!
각기 다른 이유로 국새를 찾아 바다에 모인 개성 넘치는 12인은 영화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묵직한 감동과 더불어 강도 높은 액션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바다 한가운데, 좁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소년이 겪은 227일간의 놀라운
여정을 그려낸 영화.
cine pick!
얀 마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실사 촬영과 CG를 결합하여 환상적인 시각효과를
구현해냈다. 영화는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최초 상영 후 전세계 언론에서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캐스트 어웨이
ⓒ 네이버 영화
synopsis
페덱스 직원인 척은 연인 캘리와 만나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지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데이트
중 급히 호출된 척은 비행기 착륙 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잃은 후 무인도에서 눈을 뜬다.
cine pick!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음향상에 후보에 올라선 <캐스트 어웨이>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제작비로 9천만 달러가
소요되었지만, 월드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4억 2963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코렐라인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모님이 바빠 이사 후 혼자 집안을 돌아다니던 중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날 밤 우연히
문을 열어 본 코렐라인은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데...
cine pick!
세계 최초로 제작된 3D 입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재미있는
스토리 더불어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다. 귀여운 캐릭터에
반전 넘치는 무서운 스토리로 어른을 위한 공포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문라이즈 킹덤
ⓒ 네이버 영화
synopsis
12살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친 후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필사적인 수색을 그린 독특한 드라마 영화.
cine pick!
부드러운 색감, 대칭 구도, 매력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웨스 앤더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2012년 제 65회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많은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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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시린 겨울을 달랠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남겨진 사람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족 없이 독수공방 하는 역사 선생님 폴 허넘(폴 지아마티)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폴이 소속한 고등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고도 남았다. 텅텅 빈 학교. 학교가 비었다는 의미는 폴에게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튼 아카데미’엔 남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다른 주인공 앵거스(도미닉 세사)였다. 당연히 앵거스 혼자만 남은 건 아니다. 여러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학생과 걸핏하면 싸우는 앵거스. 앵거스는 여러모로 골칫덩어리였다. 크리스마스인데 내가 얘를 봐야 해? 폴에게 스트레스가 팍팍 쌓인다. 귀찮아 죽겠는 건 폴도 마찬가지지만 앵거스도 선생님이 좋진 않다. 학생들에게 있어 비호감덩어리인 폴 선생님. 귀찮은 사람 한명 더 추가다. 둘을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메리 선생님이 급식실에 있다. 메리 선생님도 딱히 방학 중에 일하고 싶지 않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메리, 앵거스, 폴은 서로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다. 과연 세 사람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느낌 알잖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서 맡아본 향기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런 영화 어디서 본 것 같다. 버려진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 (아예 딴판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생각난다. <브로커>같은 영화들 대안가족에 대해 다루고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연대와 유머, 감동을 갖춘 영화는 뭐 비단 두 영화와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아주 많다(크리스마스로 국한 짓지 않아도 있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우리가 아는 맛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적절하게 터지는 유머와 영화의 톤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충분한 것이다.
그 이면을 꾹 눌러보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견지해 온 필모그래피의 특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 특성은 깊숙한 인간관계 탐구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디센던트>가 생각났다. <디센던트>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두고 세 명의 딸과 아버지가 펼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부녀가 함께 힙을 합쳐 가족 간의 정을 교류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디센던트>가 마냥 연대만 강조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챙겼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이야기를 아이러니로 끌고 간다. <디센던트>와는 당연히 다른데, 대안가족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이 <바튼 아카데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의 엔딩이 묵직하게 다가가는 이유도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영화가 잘 고수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글쓴이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씨네랩 감사합니다!)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새로운 유형의 크리스마스 클래식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글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리 앞에서 파티를 여는 모습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키면 친구들이 스토리에 자기 나름대로 그 파티 현장을 올리기도 하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를 다루기도 했다. 영화는 그 두 가지를 다뤘다. 우선 전자, ‘우리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기본 설정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친구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이 다수인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라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외로움을 더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기본 설정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외로운 사람들의 내면을 다룬다. 그리고 폴과 앵거스가 이끄는 차의 뒷자리에 앉게 유도한다. 차에 동승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건 캐릭터들이 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음들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과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안이다. 또 후자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룬다. 이는 전자와는 반대되는 성격인데, 글쓴이는 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파티에 관한 부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급식실 아주머니, 도시락 반찬 가득히
그냥 일반적인 코미디, 가족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인 <바튼 아카데미>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바로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이다. 메리라는 인물의 아들과 관련한 설정을 제외하면 '그냥 2022년'이라고 하고 밖에서 마스크 끼는 인물들로 배경을 설정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근데 왜 하필 1970년대로 설정했을까? 바로 이 영화의 화면의 질감과 음향 연출을 통한 고전적인 향취 때문이다. 글쓴이는 보면서 왜 <황무지>와 <졸업>,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났을까? 그 이유는 화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에 있다. CG로 사람도 딥페이크로 구현하는 현세대에서 인간관계성을 탐구하는 것도 아날로그틱한데 영화의 형식까지 그 형태를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예고만 봐도 고전적인 향기가 짙은데 실제 작품 안에서도 이를 충분히 구현한다. 어떤 장면에서? 글쓴이는 이 영화 안의 눈밭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인물들이 눈밭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1970년대 할리우드의 향기 그 자체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와 장면의 형식을 일치하게 연출한 것이 이 <바튼 아카데미>를 두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룬 성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 거기 서라
이렇게 감독이 영화의 장면 연출과 촬영, 편집을 딱 맞게 만들었다는 뜻은 이 영화를 확실하게 통제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크다. 글쓴이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 감독이 만든 세계 하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 <바튼 아카데미>가 시네마의 의미 그 정확한 지점을 찔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오펜하이머>에서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에서 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규모의 관점에서 판이한 두 영화가 어떻게 공통점을 갖냐고? 바로 결과물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오펜하이머>에서 컬러로 된 이야기 / 흑백으로 된 이야기가 별개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부딪혀서 쾅 터지는 지점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은 <오펜하이머>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연출이었다.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판타지물이 많은 현대에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오리지널 한 인간의 감정들을 이야기로 삼겠다는 것이 영화의 포맷이다. 그러려면 1970년대 이야기를 갖고 오는 게 좋겠지? 이왕 아날로그를 다룬다면? 이에 대한 결론이 모인 집합체가 <바튼 아카데미>다. 이게 단순히 <오펜하이머>가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철저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바튼 아카데미> 최고야’라고 주장하는 걸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아쉬웠던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았을까? <바튼 아카데미>나 <오펜하이머>는 그런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모순(<오펜하이머>)과 사람 사이의 연대(<바튼 아카데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아카데미가 이 <바튼 아카데미>를 수많은 후보군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편집/각본상에 노미가 됐는데 뭐 모든 부분에서 시상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바튼 아카데미>가 받는다고 해도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대이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가지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작품/편집/각본이 아닌 두 분야는 남주/여조다. 각각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인데, 이 두 사람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여우주연상 후보인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다. 당장 강력한 상대는(글쓴이가 생각하기에)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조디 포스터다. 하지만 그나마 뽑자면 그런 거지 사실 거의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이 영화에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왜 유달리 든든할까'라는 점을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설득력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행보에 주목해서 영화를 본다면 큰 감동을 느끼실 것 같다. 남우주연상 후보인 폴 지아마티도 상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BAFTA(영국 아카데미)와 SAGA(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킬리언 머피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어떻게 해야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연기다. 앵거스 역을 맡은 도미닉 세사와 시시건건 충돌해야 강조되는 것을 잘 체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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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
가족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간다. 비록 조금 관점과 사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대화와 이해심으로 그 방향을 맞춰나간다. 어쩌면 태어나면서 맺어지는 가족과의 관계는 끊어지기 어려운 관계이고 그런 점에서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에게 가족이 생기는 건 엄마의 뱃속에 자리한 순간부터다. 일방적으로 생성된 그 관계는 출산의 과정을 거쳐 현실 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다 보면 큰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상실감은 가족 전체를 흔들고,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흔들어 놓는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은 어떤 경우에는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가족을 흩어놓기도 한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극복해 나가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가 그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직시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지를 결정하고 나면 그 뒤에는 천천히 그 어려운 상황을 회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은 더 단단해지고, 비록 다른 방향을 보았더라도 다른 곳에 서있던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잃은 부부의 상실감과 회복에 대해 다루는 영화
영화 <그녀의 조각들>은 출산 과정에서 아이를 잃은 부부와 그 주변 가족의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영화는 아내 마사(바네사 커비)와 남편 숀(샤이아 라보프)이 바라보는 길이 어떤 식으로 달라져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 출산일이 임박한 마사와 숀의 관계는 매우 좋아 보인다. 출산에 대한 기대감과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설레임으로 가득한 그들은 출산 신호가 오자 조산사를 집으로 부른다. 그들은 병원보다는 집에서 조산사와 가정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 30분 동안 그들이 진통과 출산하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출산의 과정은 대체적으로 안전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전문 인력이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개인적으로 출산을 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전문적인 조산사가 그 과정을 옆에서 돕는다. 출산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은 부부가 원하는 부분이 반영된다. 영화 <그녀의 조각들> 속 마사와 숀도 병원보다는 집에서 출산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방법을 부부가 선택했다. 그들의 방법 선택부터 출산의 최종 단계까지 무언인가가 잘못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원하던 조산사는 아니지만 꽤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다른 조산사가 왔고 단계별로 출산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마사와 숀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분 되지 않아 아이는 숨을 쉬지 못했고 구급요원을 불렀지만 아이가 거둔 숨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영화가 이렇게 초반 30분 동안의 출산 과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것이 주인공 마사와 숀의 심리상태를 변화하게 하는 아주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30분의 그 과정을 보고 나면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 일련의 출산 과정들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넘긴다.
비극적인 일 이후 서로 다른 대처 방식을 보이는 부부, 마사와 숀
출산 장면이 끝난 이후에야 영화 제목의 타이틀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던 이들은 안타까움을 먼저 느낀다. 그리고 나서는 앞에서 본 사건에 대한 잔상을 통해 그것에 대해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다음 이야기는 그 일의 원인 규명에 대한 일보다는 부부가 그 일이 벌어진 이후 대처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을 본다. 다르게 말하면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먼저 마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출산 전 하던 활동을 이어간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반면 남편 숀은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그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애쓴다. 그의 노력은 결국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책임을 돌리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대처하는 방식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일을 잊고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각자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에도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보고 혼자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마사는 아이의 사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부검의의 말을 그저 말없이 듣고 있지만, 숀은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냐면서 화를 낸다. 마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조각들을 맞춰가는 반면, 숀은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여러 번 충돌한다. 그러면서 이 둘의 관계는 깨질 듯 말 듯 아주 위태로워 보인다.
영화 속에는 또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마사의 엄마 엘리자베스(엘런 버스틴)가 그녀의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딸이 그 일의 책임이 마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책임을 조산사의 실수로 돌리려 애쓴다. 주로 법적 투쟁을 통해 조산사를 처벌하려는 노력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딸이 좀 더 편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숀과 함께 마사를 설득하려 애쓴다. 그의 이런 시선은 어쩌면 제 3자로서 자신이 지켜낸 소중한 딸의 아픔을 최대한 덜어내려는 엄마의 모습인지 모른다. 영화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엘리자베스와 마사의 충돌과 관계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
영화는 출산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중반에는 마사의 심리 상태와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준 후, 법정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마사는 긴 고민 끝에 그만의 해결방법을 찾는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관계는 깨지고 어떤 관계는 다시 더욱 단단해진다. 그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력이다. 그저 액션 블럭버스터 영화의 주연 정도로만 생각했던 바네사 커비는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눈물과 아픔을 억누르고 감정적인 반응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한 그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사실을 증명받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는 관객들도 회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완전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그다음 발걸음을 옮겨갈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영화가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마사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과향은 그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가 아프게 떠났다. 하지만 그 사과향은 완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 속에, 그녀의 사진 속에 그리고 그녀의 엄마인 엘리자베스의 기억 속에도 자리하며 마사의 다음 발걸음을 가볍게 할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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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조각들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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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짓>의 게오르그
매혹적인 은유 덩어리, <트랜짓>
"그러니까 내가 이 호텔에 머무르려면 이 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해야만 하네요?"
어렵게 마르세유에 도착해 호텔에 잠시 묵으려는 게오르그에게 호텔 주인은 체류 허가증을 요구하며 그가 잠시 머물다 갈 사람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머물고 싶어도 마음대로 머물 수 없고, 떠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떠날 수 없다. 영화 <트랜짓(Transit)>(2018)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방황을 거듭하는 자들의 딜레마를 조명한다.
<트랜짓>은 선명한 영화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기묘하게 점유하는 영화의 배경은 영화의 선명도를 한껏 낮춰 그 자리를 모호함으로 채운다. 선명하지 않다는 말은 곧 규정짓기 어렵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이 영화는 특정 관점을 견지한다기보단 복합성을 머금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트랜짓>은 그 자체로 시공간대를 중첩하고, 인간상을 교차하고, 다양한 실존적 딜레마 요소를 얽어내어 가공해낸 매혹적인 은유 덩어리에 가깝다. 모호한 기운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무정형의 덩어리 <트랜짓>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과정에서, 겹과 겹 사이의 공간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나타난 난민 문제는 오랜 기간 논의가 되어온 범세계적 사회 이슈다. 이때 나는 조금 디테일한 면에 주목하고 싶다.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오르그를 관찰하려고 한다. 그를 통해 영화에서 난민들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게오르그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 그는 죽은 바이델의 소지품과 편지들을 챙겨 마르세유로 떠난다. 상태가 위독한 동료 하인츠는 마르세유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다. 번듯한 신분증조차 없이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던 게오르그는 졸지에 두 남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삶에 직면한다.
두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오르그
누구의 신분도 빌리지 않은 게오르그의 민낯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오르그는 독일 출신의 난민이다. 하인츠의 아들 드리스가 골키퍼는 독일이 최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게오르그는 독일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현대 독일 국민의 스포츠 문화를 염두에 둔다면 독일인으로서 게오르그가 품은 정체성은 은근슬쩍 뭉그러진다. 영국, 스페인, 독일 등이 축구 문화의 선봉장인데다 자국민들의 관심도도 매우 높고 독일이 축구사에 있어 걸출한 골키퍼를 많이 배출한 국가라는 사실 등이 자연스레 뒤따라온다는 점에서, 게오르그는 분명 소속감이 결여된 타자다. 어쩌면 그에게 정체성이 지워진 껍데기로서의 삶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바이델의 신분으로 위장하거나 하인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은 상태의 게오르그는 피상적으로 존재는 하지만, 내면이 텅 비어버린 갈 곳 잃은 유령이다.
우선 게오르그에게 죽은 동료 하인츠의 삶을 대체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인츠의 아내 멜리사와 아들 드리스 역시 게오르그와 같은 불법 체류자로, 정착을 어려워하는 불안정한 존재들이다. 드리스는 게오르그를 통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한다. 멜리사에게 청각 장애가 있으므로 소통에 있어 제약을 받기 때문에, 게오르그와 드리스의 관계가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게오르그는 드리스와 유대를 쌓아가며 아이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의사 리처드가 볼 때 게오르그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의사는 게오르그에게 왜 그 아이를 사랑하는데 버리려 하냐고 추궁하지만, 정작 게오르그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상투적인 이유를 거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소속감이 없는 유령 같은 게오르그는 아무리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처럼 보여도 쉽사리 녹아들지 못하며, 이는 곧 게오르그의 텅 빈 정체성을 부각한다. 멜리사와 드리스 모자 역시 끝내 마르세유를 떠나 홀연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난민들의 처지에 대한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게오르그는 죽은 작가 바이델의 신분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멕시코 영사관을 떠올려보자.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게오르그는 바이델과 마리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는 오면서 읽었던 편지뿐인 상황에서 그는 “나는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남겨진 이가 먼저 잊을 거라는 암시를 날린다. 이 말은 마리의 말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그녀는 게오르그에게 “남겨진 사람에겐 슬픈 노래와 동정이 있지만 떠난 이에겐 아무것도 없다”라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영사의 질문은 남녀 관계의 딜레마를 건드리는 아련한 물음이지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 남편을 떠난 마리는 남편을 계속 그리워하며 찾으려 한다. 독일을 떠나온 게오르그 역시 라디오 수리를 하며 어렸을 적 엄마가 자장가로 불러줬던 노래를 부르며 추억에 잠긴다. 게오르그는 자국의 골키퍼가 유명한 지조차 모르는 독일인이다. 자국에서의 삶은 저 멀리 기억 저편에 묻어둘 법도 하다. 그런 게오르그가 아직도 자신이 떠나온 국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게오르그의 양가적 면모는 그를 스스로 모호한 존재적 잔상에 갇혀 있도록 만든다.
유령 난민 게오르그를 구속하는 경유지
게오르그라는 존재는 소속감 없이 부유하는 난민의 공허한 삶의 표상이다. 미국 영사관에서 자신의 신분을 의심하는 듯한 영사의 질문에 게오르그가 바이델의 유작 원고 일부를 읊는다. “여기가 지옥”이라는 그의 말은 비록 바이델의 표현을 빌렸음에도, 게오르그 본인의 처지를 강조하는 역설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지옥 그 자체인 셈이고, 정체성과 목적지를 모두 상실한 방랑자로서의 비참한 최후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옥에서의 삶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만 오히려 살아남는 건 아닐까. 재밌게도 게오르그의 곁을 떠나 마르세유라는 경유지(지옥)를 탈출한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거쳐가는, 그 누구도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는 경유지가 난민에게만큼은 운명적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씁쓸함이 몰려온다.
이제 게오르그는 지독한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돈도 있고 장비도 있으니 바텐더에게 게오르그는 산맥을 넘겠다고 말했지만, 모든 걸 포기한 채 마리의 잔상에 취해 있는 그의 뒷모습에선 탈출과 전진을 향한 동력을 찾을 수 없다. 비자도 없고, 점령군의 세력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으며, 사랑하는 이들도 전부 자신을 떠나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현실을 헤쳐나갈 힘을 상실한 채 공백에 사로잡혀 끝없는 표류의 세계로 침잠하다가 문득 유령 같은 마리를 마주하길 고대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그의 삶은 정상궤도에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트랜짓>의 모호한 기운을 빌려 말하자면,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경유지에 발이 묶여 허우적대는 유령만이 보인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드플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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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방법으로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영화 <도굴>
새로운 듯 새롭지 않았던 영화 <도굴>. 보는 내내 재밌었는데 재밌지 않았던 그 사이 어딘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도굴에도 굉장히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문화재에 상처를 내면 안되니까 기술이 필요한 건 맞지 하며 절로 끄덕여 졌던 작품이었다.
영화 <도굴> 시놉시스
“고물인 줄 알았는데 보물이었다?!” 땅 파서 장사하는 도굴꾼들이 온다!
흙 맛만 봐도 보물을 찾아내는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 자칭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리는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 전설의 삽질 달인 삽다리를 만나 환상(?)의 팀플레이를 자랑하며 위험천만하고도 짜릿한 도굴의 판을 키운다.
한편, 그의 재능을 알아본 고미술계 엘리트 큐레이터 윤실장은 강동구에게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황영사 금동불상, 고구려 고분벽화 그리고 서울 강남 한복판 선릉까지! 팔수록 판이 커지는 도굴의 세계! 급이 다른 삽질이 시작된다!* 해당 정보는 네이버 영화를 참조했습니다.
도굴로 선행이 가능하다니
영화 도굴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도굴이라는 개념을 조금 비틀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의 문화재들을 도굴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 문화재들을 도굴해서 다 국가로 반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선한~ 영화이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강동구의 입장에서는 도굴을 한 목적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회장에 대한 복수 였다. 문화재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회장에게 금동불상이 있다는 것을 흘리고 접근한다. 그렇게 수장고로 들어간 동구는 회장의 눈을 속여 선릉을 도굴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회장의 수장고를 털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들을 국가로 환수한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일본으로 도굴을 하러가는 데 그 이유를 우리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서라는 포부를 밝히며 끝이 난다.
도굴이 문화재를 빼돌린다는 사전적 정의를 비틀어서 불법이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개념을 비튼 소재는 인상적이었다.
장면의 위치를 적재적소에 넣은 작품
사실 영화 <도굴>의 전체적인 구성을 복수극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조금 집중해서 보다보면 어디서 한 번쯤은 다 봤던 내용이고 익숙한 장면들이다. 소재만 다를 뿐 특별한 점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 <도굴>을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한 번씩 다 봤던 장면들을 적재적소에 분할해서 위치시켰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구가 회장이 원하는 칼을 손에 넣기 위해 도굴의 판을 키우는 내용을 주테마로 가져간다. 하지만 그 중간 중간 플래시백으로 과거회상 장면들을 넣어주면서 장면 하나하나만 보면 시간대가 다른 장면들이 연이어져 있는 콜라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 스스로 해당 장면이 어느 시점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관객이 영화의 부분 장면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을 하면서 영화를 이해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시간의 퍼즐이 딱 완성되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흥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적당히 코믹함도 잘 살렸던 작품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평화로운 주말 시간을 보내면서 보기에 적합한 코믹영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싶긴 한데 무겁고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품은 한가로운 주말에 갑자기 숙제를 던져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벼운 느낌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영화 <도굴>은 이 요구존건을 잘 맞춰주는 작품이었다. 관랍등급이 12세일만큼 자극적인 장면이 많이 없을뿐더러 복수극이라는 통쾌함과 함께 도굴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들을 연출적으로 충분히 잘 녹여내주었다.
특히,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화려한 언변과 뻔뻔함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동구의 모습을 보면서 대본을 굉장히 잘 쓴 작품이라는 점이 느껴졌다. 나중에 위기 상황이 오면 써먹고 싶을 정도로 아주 유려해서 웃음이 나온 작품이었다.
여유로운 주말 가볍기 보기 적합했던 영화 <도굴>. 이제훈의 재기발랄함과 목소리를 한번에 만나보고 싶다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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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주 최신 개봉영화(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 사람, 내가 날 부를때)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건파우더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사람 #내가날부를때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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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 시나리오 - 니콜라스 케이지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투영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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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한심하고, 평범 그 자체여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감 없는 ‘폴’로 인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왜? 그가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 맞나요? 왜 당신 꿈을 꾸죠? 도대체 누구세요?” SNS 메시지 폭주, 인터뷰 출연, 광고 모델 요청은 물론, 심지어 꿈속 만남이 현실로 이어지는 기막힌 일까지! 꿈속 남자에서 모두가 꿈꾸는 남자로 거듭난 ‘폴’! 하지만 갑자기 그가 등장하는 모든 꿈들이 악몽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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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라더> 메인 예고편
정의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강력계 형사 ‘강수’.
어느 날 그에게 마약 밀수입 등의 악질 범죄를 일삼는
거대 조직의 정보가 담긴 발신자 불명의 제보가 들어온다.
범죄 소탕을 위해 조직에 위장 잠입한 ‘강수’는
회장의 오른팔 ‘용식’ 밑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하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묘한 우정을 느낀다.
“이런 일이 안 어울린다고, 강수 너한테는”
한편, ‘강수’는 계속되는 비밀 수사 중 신분 들통 위기에 처하고
사건을 파헤칠수록 조직과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는데…
복수와 배신이 교차하는 세계에 뛰어든 두 남자,
누구도 믿지 못할 팀플레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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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오비완 케노비> 티저 예고편
어둠과 패배 그 속에서도 희망은 살아남는다 [오비완 케노비] 티저 예고편 최초 공개! 디즈니+ 스타워즈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