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댕이2023-07-05 00:54:05
[BIFAN 데일리] 밀실의 서스펜스
영화 <네버 파인드 미> 리뷰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 장편 - <네버 파인드 미>
감독: 조시아 앨런, 인디아나 벨
출연: 조던카원, 브렌던 록 등
시놉시스: 폭우가 쏟아지는 밤, 한 젊은 여자가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린다. 홀로 살고 있던 노인은 그녀를 친절하게 돕는다. 천둥번개와 폭풍우에 집에 갇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에 잠식된다.
<네버 파인드 미>는 한정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는 서스펜스를 극한으로 가져가는 밀실 스릴러 영화다. 영화에서 패트릭의 집 내부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장소는 집 근처를 밖에서 찍는 정도가 전부다. 한 여자와 한 남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그리고 인적 드문 곳에 덩그러니 있는 집. 무척 간단하면서도 익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화는 낯선 이에게 느끼는 미지의 경계심을 상기시키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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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를 액체를 주시하며 긴장한 듯 보이는 패트릭의 집에 한 여자가 문을 마구 두드리며 전화를 쓸 수 있는지 묻는다. 패트릭은 처음엔 여자를 경계하는 듯하나 이내 여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하며 호의를 베푼다. 그러면서 비가 많이 와 밖에 나가기 힘들뿐더러 자신은 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며 비가 그치면 함께 차를 타고 공중전화로 가자고 설득한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건 집주인인 패트릭만이 아니다. 여자 또한 패트릭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호의들이 무척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재밌게 느껴진 건 이런 여자의 태도였다. 보통의 영화를 생각한다면, 호의를 바라며 누군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상황에서 을이 되는 건 으레 방문자의 입장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서 방문자는 젊은 여성이고, 집주인인 패트릭은 나이가 있다고 해도 꽤 건장해보이는 남성이다. 이미 집에 들어왔고 궂은 날씨에 쉽게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남자의 심기를 거슬러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에서 거침 없이 말실수를 하며 빈틈을 보이고, 결국 남자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다. 조금 과장한다면 마치 일부러 그러려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밀실에 함께 갇혀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의로든 타의로든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카드 게임을 시작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를 깨닫고 미묘한 유대감이 생기는 장면은 마치 감독이 관객과 천연덕스럽게 밀당 게임을 하는 건가 싶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낯선 이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낸 말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탄로 날 수밖에 없고, 서스펜스를 격화시키며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관객을 밀어붙인다. 관객은 두 사람에 대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단서들을 조합해 추리를 하면서 보겠지만, 아마도 그 추리는 번번이 빗나갈 것이다.
빌드 업에 상당 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마지막에 몰아치는 십여 분 남짓의 시퀀스를 위해 존재하는 영화라 볼 수도 있겠으나, <네버 파인드 미>는 그만큼 러닝타임 내내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몰아붙이는 영화다. 99분의 시간 동안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부천 초이스 섹션에 선정된 이유를 톡톡히 보여준다. 조시아 앨런, 인디아나 벨. 두 감독의 이름을 미리 눈여겨봐야 함이 분명하다.
상영일정
7/2 20:00 - 21:39 CGV 소풍 11관
7/6 16:30 - 18:09 CGV 소풍 5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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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정말이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각종 활동을 해보기 위해 몇 장의 자기소개서, 몇 차례의 면접 등을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있다. 바로 객관성. 사실을 전달하고, 팩트를 체킹하는 일에는 물론이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작성하는 일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장착해 주관성이 만들어낸 억측의 구렁텅이에 빠져선 안 된다. 이런 객관성과 주관성을 이야기할 때에 꼭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을 순전히 객관성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엔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창의력과 독창성의 의미가 퇴색된다. 또 예술을 오로지 주관성의 영역이라 하기엔 예술을 창작자들을 비롯한 전체 예술 비평가들의 존재가 무안해지며, 그들의 평가 또한 예술의 한 분야로 평가되는 요즘, 예술의 객관성을 빼놓고 예술을 거론하기엔 무리이다. 이렇듯 예술을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분법적 논리로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영화 <위플래쉬> 내의 대사에도 이런 관점이 등장해 더욱 재밌었다. 영화 속 "앤드류"가 한 말, 예술과 음악엔 객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편견을 갖지 않을 수 있고, 주관성을 가진 무언가에 내 식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위플래쉬>를 전부 관람한 후 필자의 머릿속엔 단 한가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객관성을 잃었다.' 영화 <위플래쉬>를 분석하고, 나만의 평을 내려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잃었다는 사실은 필자의 뼈 아픈 실수이지만 또 그런 실수를 유도하게끔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뜻으로도 생각된다.
영화 <위플래쉬>는 끌어들임과 매혹 그리고 빨아들임을 영상화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화예술의 미학적 진수를 담아내 모든 이들의 객관성을 무너뜨리는 굉장한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굉장히 무난한 하얀색의 폰트로 작성된 타이틀이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보여지고 뒤에선 본인이 음악 영화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드럼 영화임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스네어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모두 거치고, 어두운 복도 끝엔 빛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좁은 방 안에서 연주하는 한 남자, 주인공 "앤드류"가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달리 인과 줌 인을 통해 카메라는 그에게 다가갔고, 이후 숏에서 그 시점은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 "플래처"의 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위플래쉬>는 시점과 구도의 미학을 완벽히 이해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프레임 속 황금 비율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프레임의 대각선이 모이는 중앙점과 그 위 쯤일 것이다. 영화는 그 점보다 더 놓은 지점에 인물을 어두운 복도와 외로운 불빛 하나로 이루어진 공간에 배치하여 의도적으로 인물을 작아보이게 하고 연약한 존재로 비춰지게끔 연출했다. 이후 등장한 "플래처"의 시점을 통해 보이는 당황한 "앤드류"의 당황한 눈빛과 불안정한 몸짓, 아직 부족해보이는 연주 실력은 그를 더욱 작게 만들었고, 관객은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각 인물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고, 무슨 입장에 처해있는지 별다른 대사 없이도 눈치챌 수 있다.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모든 배경과 사건의 조짐을 시작과 동시에 암시한다.
어떠한 부분을 연습해야하는지 어느정도 알려준 "플래처" 교수의 힌트에 따라 "앤드류"는 더블 타임 스윙을 연습한다. 결국 그는 찾아온 기회에 가뿐히 스카웃되어 "플래처" 교수의 '스튜디오 밴드'로 입성하게 된다. 영화 속엔 재즈 밴드라 일컬을 수 있는 밴드가 총 4개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두 밴드가 바로 "앤드류"의 첫 밴드인 '나소 밴드'와 '스튜디오 밴드'이다. 물론 두 밴드 사이엔 어느 정도 수준 차이가 존재하지만, 실력 차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밴드 구성의 의미이다. 두 밴드 모두 젊은 20대 청년들이 모여 이뤄진 밴드이기에 교수가 자리에 없을 때나 학교에 도착해 본인 연주를 준비할 때면 공간은 떠드는 소리에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채워진다. 하지만 교수가 들어왔음에도 전혀 그 태도가 변치 않고 유지되며 문제있는 실력에 따끔히 지적하지 않는 교수로 구성된 나소 밴드와 달리 지정된 시각이 되자 문이 부숴져라 세게 열면서 들어오는 "플래처" 교수와 만반의 준비를 끝맺히고 교수의 콜싸인에만 집중한 학생들로 구성된 스튜디오 밴드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표한다. 문제되는 사항이 있는 경우, "플래처" 교수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욕설과 분위기로 학생을 압도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인공 "앤드류"의 시선을 따라가고, 전지적인 시점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다 하더라도 "앤드류"의 관점과 입장을 따라 움직인다. 이런 카메라의 움직임과 구도는 스튜디오 밴드의 공포서린 분위기를 "앤드류"의 관점에서 담아내 그가 느낄 두려움과 불안함을 관객이 피부에 와닿게끔 유도한다.
영화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인물 구도는 바로 상하 관계이다. 영화 <기생충>이 보이는 선이나 보이진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무언의 선으로 인물 간의 구도를 설정하고, 그 구도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출했다면 영화 <위플래쉬>는 두 인물이 잡힌 투 샷 속 각 인물의 고개와 몸이 쏠린 정도 등의 움직임과 서 있는 인물과 앉아있는 인물의 수직적 위치를 통해 상하 관계를 구사하여 인물 간 주종관계를 설정한다. 상대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위치와 발성으로 묵직하게 누르는 "플래처" 교수의 공포스러운 교수법은 영화 <위플래쉬>가 당시 교육계에서 화제의 영화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플래처"라는 인물을 그저 악마의 인간화로만 비춰지게 방치하지 않았다. "앤드류"가 첫 합주를 앞두고 복도에서 대기를 할 때 찾아와 부모님과의 관계를 묻고,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생애 그리고 그 생애 중 가장 인상깊은 사건인 '심벌 던지기'를 말하는 씬을 볼 때면그는 굉장히 좋은 사람, 친절한 교수처럼 보여진다. 물론 이에 대해 양의 탈을 쓴 늑대, 착한 척하는 괴물이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후 경연장에서 동료 지휘가의 딸을 만나 친절히 대화하고,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에 아이와 약속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좋은 사람이다. 영화는 공간을 기준으로 "플래처"를 구분한다. 자신의 밴드원들이 존재하는 공간, 음악이 존재하는 공간에선 그 누구보다 치밀하고, 날카로우며, 프로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지만, 이후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제자의 죽음, 제3의 공간에선 굉장히 따뜻하고, 온화한 인물이다.
"플래처"라는 인물이 그저 화가 많고, 다혈질적이며,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걸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영화는 답한다. 물론 이를 표출하고 행하는 방법은 충분히 잘못되었지만 영화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재즈와 음악에 진심인 면을 강조했고, 이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씬의 존재적 의미를 강화시킨다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보조 자리에서 메인 자리로, 갖은 고생과 수 많은 일들이 지나고 나서야 그토록 원했던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럼을 꿰찰 수 있었다. 이 점에도 의심쩍은 부분은 있다. 이후 장면에서 언급되듯 "앤드류"가 스튜디오 밴드에 입성할 수 있었던 데엔 "플래처" 교수의 힌트가 있어서였고, 메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도 타인의 귀책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런 고생 끝에 차지한 메인 자리도 새로운 곡, 새로운 드러머의 합류로 위태로워지기 시작하고, 본인이 자리를 꿰차게 되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던 난항들이 겹쳐 노력과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앤드류"는 그동안의 설움이 터져 경연장에서 "플래처"를 덮쳤고, 결국 퇴학당한다.
"앤드류"는 흔히 말하는 아웃사이더 중 하나이다. 영화의 초반부 혼자 연습실에 남아 외로이 연습하는 씬에서도, 연습을 마치고 향한 자취방에 가는 길, 파티 중인 옆 방을 뒤로한 채 쓸슬히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그의 등에서도 그리고 어느 밴드에 가서도 인정받지 못해 그저 불안한 눈동자만 돌리는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위플래쉬> 내엔 보통의 타 영화들처럼 대화가 영화의 전반적인 씬을 지배하거나 서사를 담당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씬, 음악만이 존재하는 씬, 연주하는 씬들이 그 역할을 대체한다. 하지만 그 몇 안되는 대화씬, 세기 좋은 수량의 소통 장면이 영화 전체에 주는 영향력은 수와 반비례한다. 작품 속 대화 씬을 모두 종합해 보면 뮤지션으로서 최선을 다 하고, 죽을 힘을 다해 분투하는 "앤드류"의 노력들을 어쩌면 부정하거나 거부하거나 그 노력들과는 반대되는 이들과 나눈 대화들이 전부다. 여자친구 "니키"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 영화를 관람하고, 아버지의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하는 그 모든 씬들엔 "앤드류"가 걷고 있는 길들을 무시하려는 눈빛 내지는 음악으로서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권유하고자 하는 시선만이 존재한다. 또한 대비되는 점은 음악이 존해하고, "앤드류"가 드러머로서 존재하는 공간엔 항상 침묵, 압박, 공포만이 존재하지만 인간 "앤드류"로서 존재하는 공간엔 위로, 환영, 평안의 말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앤드류"가 가고자 하는 길엔 대화보단 행동, 위로보단 압박, 평안보다 음악이 더욱 중요해보이고, 이는 영화의 구조 전체를 구성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영화의 종반부 "앤드류"가 내린 선택으로 귀결된다.
영화 <위플래쉬>엔 음악 영화답게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음악을 업으로 하는 이들을 담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들의 퍼포먼스 또한 빈번히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위플래쉬>는 음악을 뮤지컬 영화 속 음악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앤드류"는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인물로 보이고, 다른 이들과도 막역한 사이로 못 지내는 성격인지라 주인공 치고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의 심정, 배경, 분위기 등을 행동과 눈빛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데, 이에 도움을 주려 영화는 인물의 심정이 중요히 드러나야 하는 씬에서 재즈 음악을 들려주어 음악의 분위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앤드류"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들 뿐만 아니라 "앤드류"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영상들 또한 관객에게 소리와 함께 보여주게 되는데, 이 때 등장하는 연주법은 영화의 종반부에 나올 연주의 복선이기도 하다. 영화 <위플래쉬>는 이렇듯 음악 하나, 영상 하나 허투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등장할 모든 씬, 모든 장면들을 위해 초반부부터 빌드업을 이런 방식으로 쌓아가기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 내에서도 이 지점들을 통해 설명하게 된다.
더블 타임 스윙. 파라디들. 300 비트.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가 이런 음악 용어들을 관객들에게 잘 설명하는 건 아니었을까. 마치 메디컬 장르 영화나 드라마의 좌우측 하단엔 의학 전문 용어에 대한 해설이 등장하게 되는데, 영화 <위플래쉬>는 행동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대답을 이었다. 영화는 그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전 철저한 빌드업을 통해 등장을 대비했고, 등장을 더욱 화려하게 하면서 관객을 설득시켰다. 심지어 영화는 연주를 하는 인물이나 연주를 하고 있지 않는 보통의 인물이나 가리지 않고 그들의 손과 귀 그리고 입에 집중하게끔 유도했다. 손의 방향, 손가락의 움직임 그리고 귀 장식과 귀의 모양 등 신체를 지속적으로 비추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훈련시켰고, 이후 등장하는 연주씬에서 그 모든 요소들을 풀어내 긴장감과 흥미진진함 모두를 겸비한 장면으로 만들어내었다. 연주곡으로 선정한 곡들 또한 예사롭지 아니하며, 굉장히 인상적이다. 재즈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고, 각 종류별 구사할 수 있는 음악적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그 많은 선택지 중 드럼, 일렉 기타, 스케일 별 트럼펫 등의 관악기로 구성된 빅 밴드 음악, 그 중에서도 드럼 연주가 귀에 꽂히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각 악기별 독특한 등장 타이밍과 솔로로 만들어진 악기 라이벌링까지 겸비된 음악. 이 모든 재즈의 매력적인 점들을 모인 곡이 바로 영화 <위플래쉬>의 대표곡인 'Whiplash'와 'Caravan'이다. 영화는 이 악기 라이벌링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각 파트별 솔로를 담당하는 악기를 클로즈업하여 비추고, 솔로가 타 악기로 변경하게 되는 때가 오면 샷을 끊지 않고 스위시 팬을 통해 촬영하였으며, 각 악기별 연주자들의 손, 관악기의 경우 입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해 황홀한 연주의 황홀한 연출을 구사했다. 모든 솔로가 모두 마쳐져 다시 모든 악기가 하나가 되는 때면 팬을 통해 구성원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마침내 멈춘 카메라는 드럼에 포커스를 맞춰 연주자의 고된 표정, 현란한 손놀림과 발놀림 그리고 앞에서 압박을 주고 있는 지휘자 "플래처" 간의 알 수 없는 신경전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일련의 사고가 있고 난 후 모든 드러머로서의 삶을 접고 평범한 한 20대 청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다 우연히 한 재즈 바에서 피아노를 치는 "플래처"를 만난다. 그는 "앤드류"의 증언과 함께 학부모들에게 그의 폭력적인 교수법이 고발되어 교수직에서 쫓겨나 모 프로 밴드에서 지휘를 맡는다고 한다. 그는 "앤드류"를 만나 그 교수법에 대해 스스로가 내린 결론을 이야기한다. 그 때 등장한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 "세상에서 제일 나쁜 두 마디가 있다. 그정도면 됐어."
"앤드류"의 아빠는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아들 "앤드류"에게 음악이 아닌 평범한 삶도 생각해볼 것을 은연 중 틈틈히 주입시켰다. "앤드류"의 여자친구인 "니키"도 평범히 대학교를 다니지만 아직 본인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영화 <위플래쉬> 속 오직 "앤드류"만이 최고가 되기 위해, 위대해지기 위해 아둥바둥, 손이 찢어지는 것도 참아가며 연습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이 과연 "플래처"를 만나 생긴 것일까? 그의 욕망, 링컨 센터에서 연주를 하겠다는 의지, 침대마저 연습실로 옮기고 만나는 여자친구마저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 헤어지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플래처"를 만나 더욱 강화되었다면 몰라도 그의 집착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 대답한다. 어쩌면 "플래처"와 "앤드류"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고가 되기 위해 집착하려는 남자와 최고를 만들기 위해 집착하는 남자가 만났고, 알 수 없는 신경전과 밀당이 오고 갔기에 모종의 동질감이 생기지 않았을까?'그정도면 됐어'의 보통 수준이 아닌 최고가 되기 위한 두 남자의 끝이 다가온다.
"플래처"의 권유로 치웠던 드럼을 다시 꺼내어 그의 공연을 도우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잘만 하면 이전의 모든 사건, 사고들을 묻을 수 있을 만큼 큰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플래처"는 "앤드류"에게 다가갔고, 모든 일들의 원흉은 "앤드류"라 지목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사실 그 공연엔 "앤드류"가 연습하지 않은 곡들이 선정되어있었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곡들에 "앤드류"는 함정에 빠져 결국 공연장에서 이탈하고야 만다. 공연을 보러와 준 아버지에게 안긴 "앤드류". 포옹도 잠시 결의에 찬 눈빛을 한 그는 앉음과 동시에 신 들린 연주를 펼친다.
영화의 종반부, 영화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이자 러닝타임 내내 공들여 쌓아올린 바벨탑을 화룡점정할 시간이다. 영화 <위플래쉬>는 가장 중요한 그 순간, 대사를 모두 삭제하고 오로지 음악 그리고 "앤드류", "플래처"만 남겨둔다. 초중반부부터 복선으로 이어졌던 버디 리치의 연주와 결을 같이하는 드럼의 현란한 솔로가 이어진다. 그동안 연습해왔던 더블 타임 스윙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소리를 구사한다. 영화는 초중반부에 <Whiplash>와 <Caravan>을 조금씩 들려주기만 할뿐 전체를 들려주거나 연주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곡 전체가 궁금했던 찰나 영화는 그 답답함에 시원한 사이다라도 되어주듯 현란하게 칼춤을 춘다. 이미 곡이 끝났어야 할 타임인데도 "앤드류"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플래처"도 그에게 와 협박을 하고, 방해를 하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연주가 지속되자 "앤드류"에게 다가간 "플래처". 영화는 "플래처"의 눈을 바라보게끔 유도한다. 그의 눈엔 어느새 최고의 뮤지션을 찾았다는 기쁨과 제자의 몰입된 그 순간을 완성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진정한 광기어린 자가 풍기는 아우라에 눌린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마구잡이처럼 이어질 수 있었던 "앤드류"의 연주는 "플래처"의 지휘로 데크레센도 형태를 취하다 "플래처"의 지휘로 다시 크레센도되어 완벽한 드럼 솔로로 변주한다.
해당 씬엔 특별한 대사나 감정을 유발하는 특별한 연출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앤드류"의 연주다. 슬로우 모션, 손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트래킹 샷, 계속해서 튀겨지는 피와 땀만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한다. 영화 <위플래쉬>의 종반부가 훌륭한 이유는 말로써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서 그간의 설움, 과정, 노력, 애환, 고통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내었기 때문이다. "앤드류"와 "플래처", 곡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서로 콜싸인을 맞추려 눈을 마주한다. 상하관계, 주종관계처럼 수직 위치로 배치되었던 눈은 동등한 수평선의 위치에 놓여진다. 비록 눈에 익스트림 클로즈업되었지만 우린 "플래처"가 "앤드류"에게 어떠한 말을 전한 걸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 순 없지만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니코"를 만난 씬을 제외하고 거의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엔딩을 화려히 장식하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100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어떨 때엔 더 도움이 되고,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영화는 더 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가 아마도 영화의 진수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 <위플래쉬>는 그 진수의 향연이지 않았을까? 본 작품에 대한 평가 내지는 한줄평을 보면 "플래처"의 악랄한 교수법을 비판하고 이를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로 생각해 평가한 평들이 많다. 물론 그 지점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필자의 생각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에 그 요소를 결코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만 작품을 관람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재즈와 드럼, 밴드가 운용되고 연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감독이 만들어낸 너무도 아름답고도 체계적인 연출 그리고 이를 더욱 빛내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적인 영화음악이 존재하는 영화가 <위플래쉬>이다. 그 어떤 요소로도 본 작품은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도, 윤리가 무엇인지도, 내 귀에 들리는게 무엇인지도 잊고 그저 즐기게, 미치게 한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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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인 척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수학 천재라서 문제는 다 풀어놓고, OMR카드에 1번으로 찍는 도라이, 정준경. 그는 통학 하는 데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시골마을에 산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기찻길이 다니는 통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 통로를 건너다가 기차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준경은 간이역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을 청와대에 보낸다. 하지만 청와대는 답이 없고, 준경의 마음은 애타는데, 과연 준경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혹시 영화를 보러 가실 분들이 있다면, 도움이 될 만한 포인트를 최대한 스포없이 제공해보고자 한다. 과연 그게 될까? 근데?
출처 네이버 영화
1. 트레일러에 속지 말 것
처음에 이 영화의 트레일러만 보면, 준경과 라희의 풋풋함으로 승부하려는 청춘 영화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간이역을 만들고자 하는 준경의 마음은 그저 시골 소년의 이웃을 위하는 훈훈함으로 포장되고, 결국 메인 스토리는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는 러브 스토리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 영화 예상가능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으니, 내가 이 영화를 본다면, 배우진들에 대한 팬심으로 보거나 아니면 자극적이고, 숨쉴 틈 없이 흘러가는 플롯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현 시점 영화관 개봉작들 중에서 조금 따뜻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보다 강력하다. 뭐랄까, 반전이 있다. 트레일러만 보면, 이 영화는 장르가 코미디 영화인가 싶지만 이 영화는 신파극이라고 본다. 사실 나조차도 신파라면 애초에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어느 순간부터 신파에 대한 이미지가 참 많이 훼손된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 느꼈던 점은 신파도 결국 빌드업을 잘 해 놓으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으로 승화된다는 점이었고, 내가 신파를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잘 만들어진 신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파극이란 이래야 한다고 본보기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감독이 의도한 감정적 코드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2. 준경을 만든 두 여자, 보경과 라희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임윤아 배우가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임윤아 배우는 비중으로 따지면, 비중있는 조연에 가깝다. 영화 상에서 라희는 자신의 꿈은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것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딱 뮤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사람. 준경의 첫사랑 상대라고만 하기에는 준경의 부족한 사회성을 채워주는 엄마같기도, 누나같기도 한 다면적인 해석이 가능한 역할이라서 좋았다. 자신만의 섬에 갇혀 살던 준경을 사회로 끌어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경을 이해하려면 보경을 이해해야 한다.
보경은 준경에게 엄마 대신이라면, 라희는 친구 대신이다. 보경은 준경을 아이가 엄마에게서 느낄 정과 사랑을 준 사람이었다면, 라희는 사춘기 준경을 어른으로 한 뼘 더 자라게 한 사람이었다. 보경의 희생적인 사랑은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 그를 착하고, 올바르게 키워내긴 했지만 그를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데에 일조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라희는 보경과의 삶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던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꾸준히 노크해준 사람이다. 하지만 보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준경은 계속 간이역에 집착하면서 라희의 노크를 애써 무시한다.
준경에게 보경은 준경의 패쇄적인 마음을 대변한다. 준경에게 보경은 보호해야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준경의 보호 심리는 누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나에 대한 보호 심리를 핑계 삼아 떠나지 못하는 아이같은 마음이 남아있는 준경의 자기보호임을 알 수 있다. 준경은 그저 누나를 방패삼아 자신의 마음 속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3. 모두가 몸만 큰 아이들이었음을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어른들도 어른인 척 하고 살아간다는 것. 사실 마음 속에 어린 아이가 하나씩 자리잡고, 어찌해야할 할 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한 척 하고 살아가는 것이구나 했다. 준경의 아버지가 딱 그렇다. 자식들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준경에 대한 무심함으로 표출되었다. 제 3자가 본다면, 미안할수록 더 잘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너무 미안하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 그 당황스러움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자신의 커진 몸과 비례하지 않는, 자라지 못한 마음, 자신의 죄책감이 들키는 순간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닐까.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다. 어른들은 그저 자신의 약한 부분들을 적당히 감추면서 사는 법을 터득한 것 뿐이지 어른들이라고 마음의 나이는 자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결국, 마음의 나이는 성숙한 척하는 겉모습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솔직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라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모두 어른인 척하는 어른이들이었음을 인지하고 나자, 라희가 그렇게 성숙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겉모습은 왈가닥이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 그녀가 철부지 같아 보여도 오히려 가장 성숙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되새겨본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오해가 없게끔 소통에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에서 마음의 나이는 가장 어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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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안되는 소리 같은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없는 영화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여러분, 혹시 최근에 웃었던 적이 언제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22년 1월 2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언제 웃었어요?'나 '혹시 어제 웃은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답을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웃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애인이 있거나 자제분들이 있는 집안이라면 쉽겠지만 나 같은 솔로남들에겐 웃기란 더더욱 어렵다. 생각해보면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끼는 것도 어렵지 않나? 비단 작년에 봤던 <랑종>의 경우 나는 극장에서 뛰어나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서웠다. 근데 누구는 안 무서웠다고 말하는 걸 보니 감정은 이렇게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이건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까 필연적이다. 또 인간사에 당연하게 통하는 공식이란 없잖아? 무조건 웃기고 무섭고 이런 건 웃음의 신이 와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분노와 공감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기 마련이다. 이 말은 사람마다 관심 있는 사회문제가 다를 수밖에 없단 것을 의미한다. 나 역시 관심 있는 사회이슈가 있겠지? 만약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을 반영해서 '치매 환자분들과 가족들의 처우를 더 낫게 개선해준다'라고 한다던가 '사회복무요원 월급 인상과 복무기간을 단축해준다'면 내 표가 올해 대선에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회로 반영되는 과정이란 가지각색이라 당연히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근데 가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가치관에 의해 일상을 사는 게 아니라 하루가 일상에 잡아먹히도록 놔두는 것 같다. 가령 정치인들이 하는 심한 욕설이나 막말, 위선들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가.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 같은 뭐 그런 것들 말이지. 이런 안타까움은 단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저 멀리 있는 미국에서도 정치현실에 사고방식이 잡아먹힌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짱짱한 배우들과 아담 맥케이라는 나름 굵직한 감독이 이 미국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뇌 비우고 볼 수 있는 코미디를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하는 작품이다.
1. 무엇에 대한 작품인가요?
서두에서 쓴 바와 같이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그 전의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에피소드를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얼굴 빨개진 게 상수가 돼서 망언을 늘어놓았다는 기사가 하나, 둘이었나? 그의 어록들 중에 나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코로나19를 무시하고 백신 접종도 안 하다 전염병에 걸렸다는 일화다. 자기만 병에 걸리면 뭐 크게 피해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걸 나라 전체의 의사결정에 반영해 미국의 경제산업에 참사를 일으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영화는 (내 기준에) 코로나19와 유사해 보이는 재앙을 보여준다.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우리가 사는 이 터전이 파괴될 수도 있음을 예견하는 랜디와 케이트. 그러나 이 둘은 백악관과 방송계의 헛스윙 때문에 경고를 전하는데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는 이때 '어떻게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가?'와 '이때 만난 사람들이란 어떤 종자들인가?'를 보여준다. 이 인물을 보고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분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머지 않아서 머릿속에 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비슷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히 위에서 비슷해 보이는 재앙을 대처하는 두 대통령을 대비시킨 것은 아니다. 이렇게 바보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며 취하는 스탠스는 무엇인지, 모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쥐고 흔드는 쇼츠 문화가 낳는 단점은 무엇인지 지적한다.
2. 배우들의 연기 합은 어떤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조나 힐,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살라메, 메릴 스트립까지 할리우드의 국밥 같은 배우들이 나온다. 얼굴만 봐도 든든해지는 배우진들이 모여 잘 짜인 코미디 한 편을 만들어냈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미남 배우'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오르지 않나? 그는 이번에 살짝 다른 역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나 <캐치 미 이프 유 캔>같이 대놓고 방탕한 캐릭터가 아닌 소심한 과학자 역할을 맡았다. 얼굴이 그냥 딱 봐도 조각미남인 사람이라 처음에야 살짝 엥? 이런 역도 하나? 싶었지만 꽤나 잘 맞는다. 그리고 이런 소심한 캐릭터가 후반부의 어떤 결정에 영향이 가는데,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라고 납득이 갈 정도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뭐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은 제니퍼 로렌스다. 돌아이 연기 권위자답게 그녀 다운 역을 잘 소화해낸다. 또 다른 배우 케이트 블란쳇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아빠한테 서운한 게 많은 신(토르 : 라그나로크), 레즈비언 로맨스(캐롤), 사회성 떨어지는 건축가(어디 갔어, 버나뎃) 등등 다양한 역을 맡았던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역할에 비해 '섹시한 뉴스 진행자'는 좀 덜 개성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 배우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긴 했지만 뭐 연기를 잘했으니 미스캐스팅이라고 보기 어렵겠지. 이 외에도 메릴 스트립 역시 베테랑답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대통령 연기를 잘 해냈다. 근데 이런 기라성 같은 배우들 만큼이나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배우가 있다. 나는 이 것을 조나 힐로 꼽고 싶다. 점점 장면이 쌓이고 러닝타임이 지나가면서 얼굴만 봐도 웃기는 과정을 여러분도 겪게 될 것이다. 별 대화 안 하는데 그냥 웃긴다. 이 조나 힐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으로 영화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3. 이해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이게 어떻게 설명해야 맞냐면, 대사의 양이 많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줄거리는 어렵지 않은데 말이 많아서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나 같은 분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극이 어렵다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또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바일 환경에서만 이 작품을 볼 수 있지 않나? 재생 바가 왔다 갔다 하니 모바일 환경에서 보는 것도 그렇게 썩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4. 보기 전에 알고 가야 할 지식이 있나요?
사실 있지만 내가 서두에 써버렸다(ㅋㅋ).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이다. 그 외적인 건 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떤 층이 지지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미국의 백인 남성이 그에게 표를 줬다는 말이 많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 다문화 사회를 표방했던 미국에 불만이 많았던 미국 국민들은 백인 중심으로 사회를 재건하겠다!라고 말한 그에게 표를 줬다. 이런 투표의 작동과정이 영화 내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면에 난 단순히 이 공화층 지지자들만 비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성이 날아오는 걸 세상에 알리고 백악관이 어떤 태도를 견지하려고 하는데, 이 관계자들이 '특정한 논리'를 내세워서 반대한다. 난 '특정한 논리'가 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몇 정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풍자라고 생각한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네이버 들어가서 시사 뉴스 몇 개 보고 가면 될 것 같다. 그럼 알 것이다. 감독이 사회의 어떤 모습을 공격하고 싶었는지를. 아, 이 외에 알고 가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영화에 크리스 에반스 나온다. 한번 찾아보시길.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어 여행이고 나발이고 발이 묶인 요즘이다. 백신이 보급화되서 해치웠나? 싶었지만 오미크론이 확산되며 전염병 문제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에 따라 각국의 정부의 리더십이 비판대에 올랐다. 영화는 이 지도자들의 위선을 웃음으로 삼는 작품 아닌가? 당연히 이 사회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라면 속이 엄청 시원할 것이다. 이게 나쁜 것도 아니고 충분히 그들의 주장이 일리 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야말로 사이다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지점이라면 역시 그냥 뇌 뺀 코미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데 그 안에 코미디도 담겨있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도 있는 그런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때 후자, 그러니까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살짝 우선순위가 덜해 보여서 그렇지 영화는 오락성의 측면에서 좋은 기능을 한다. 넷플릭스에서 할 거 없을 때 보기에 좋은 작품이란 뜻이다. 아, 티모시 살라메 좋아하는 분들 많지 않나? 팬들은 이 영화 보면서 만족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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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가문의 영광: 리턴즈
23.09.21 개봉
코미디, 15세 관람가
한국, 99분
감독: 정태원, 정용기
출연: 윤현민, 유라, 탁재훈 등
너무나 유명한 코미디 영화 시리즈인 가문의 영광!
11년 만에 시즌6 , '가문의 영광: 리턴즈'로 돌아왔는데요
시사회 때부터 평이 너무너무 안 좋았고
현재 네이버 평점도 6점대로 떨어졌는데 ㅋㅋ
전 네영카에서 나눔 받아 공짜로 봐서 그런지
재미없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싶었어요
당연히! 15,000원 주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넷플릭스 같은 데 뜨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볼 만한 영화랄까요?
그도 그럴것이 촬영 기간이 올해 7~8월이더라구요?
추석 연휴를 노리고 급하게 제작한 영화 같은데
딱 그 정도 퀄리티가... 눈에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아! 노파심에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추석 연휴 때 가족이랑 볼 만한 영화 절대 못 됩니다,,,
애초에 스토리부터가
진경과 대서의 원나잇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단어가 나와서...
특히 애들 데리고 가지 마세요 절대절대절대로
줄거리 요약은 이제야 봤는데......
왜 기껏 정해 놓은 로그라인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네요
저대로만 진행했어도 평점 7점 정도는 땄을 것 같은데요
비혼주의를 선언한 막내딸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대작전?
-> 진경이 비혼주의라는 건 캐릭터들 대화 중에 등장하지
처음부터 그녀는 비혼주의! 절대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음!
이라고 못을 박아 놓진 않아요...
애초에 첫 씬부터가 클럽 가서 남자가 주는 술 마시는 건데,,
대서와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장씨 가문의 음모?
-> 그게 에필로그 가서야 겨우 나와요
전 정말 이런 음모였던 줄 모르고 오 생각 외로 반전도 있네 했는데
그걸 줄거리에 이미 오픈해 놓다니...... 무슨 생각이지
어쩐지 왜 장씨 가문이 자꾸 대서에게 집착하나 했네요
리뷰 쓸 때야 그 비밀이 밝혀지다니 최악...... ㅋㅋ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한 줄 평으로 남겨 보자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누렸던 영광을
꽁으로 또 먹고 싶어 리턴즈 한 영화 같다는 거예요
심지어 가문의 영광에서 활약하던 기본 캐릭터들도 안 나오고
윤현민, 유라 님이 주인공 격으로 흘러가는 거라서
걍 다른 영화 같아요
등장하는 캐릭터 많은데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스토리는 어딜 향해 가는 건지 정립되지 않았고
나름 웃겨 보겠다고 만든 몸개그도 생각보다 안 웃겨서 실망했어요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서는 진경과 원나잇(실은 아니지만 보이기론 그렇게 보이니까)을
한 것을 여자 친구 유진에게 바로 들켜요
그런데 유진 역시 남자 돈 빼먹는 여자라서
남자 친구인 대서의 원나잇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후반부로 가서는 유진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대서가 보는데
처음엔 뒤에만 숨어 있다가 (대사 칠 타이밍 기다렸다가)
"니가 왜 여기 있어?" 라며 되도 않는 모습을 보여요
감독님이 상황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눈에 보이죠
호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 거였으면
남자 주인공인 대서가 무조건 여자 친구가 없어야 하고
혹시 있더라도 찌질+댕청한 너드남 콘셉트,
그리고 여자 친구인 유진을 많이 사랑하며
유진은 뒤로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나쁜 여자였어야 해요
걍 여기 아메리칸 그잡채임,,,,,, 서로 꺼리는 게 없어요
이렇게 혹평을 했음에도 웃긴 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단 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ㅋㅋ
영화 시간 자체가 짧아서 그런가
이제 30분 지났을까 하고 시계를 봤는데
20분 남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김
암튼...... A부터 Z까지 잘 만든 구석은 없지만
혹시 특전 준다면 영화관 가서 봤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걍 아무도 안 볼 것 같다는
그런 후기입니다
*스토리: 1/5점
*연출: 1/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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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두 교황 - 넷플릭스의 한계를 깨부순 영화
<줄거리>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르골리오'는 '바티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가 차기 교황이 된다.
때는 2013년 '베르골리오'는 추기경 은퇴 고민을 앞두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어 전전긍긍 하던 도중 '로마'로 갈 생각을 하게 된다. 시기적절 하게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를
'로마'로 오라고 연락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만나, 현재의 카톨릭 교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의 은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임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바티칸에선 다양한 비리가 있었고, 결정타로 성 추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야기를 '베르골리오'에게 이야기 하며, 고해한다.
그 후,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로 떠나며, 1년 후 교황이 된다.
과연 그 둘이 나누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공개된다.
"실화에서 시작된 위대한 이야기"
<예고편>
<제작진&배우>
감독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필모그래피 : 눈먼 자들의 도시, 두 교황, 사랑해 리우, 콘스탄트 가드너, 시티 오브 갓
브라질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로
'시티 오브 갓'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브라질 영화제가 출품을 거부함에도 오스카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잡은 앞으로를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입니다.
이름 : 안소니 홉킨스
극중 역할 : 베네딕토 16세
필모그래피 : 양들의 침묵, 한니발, 토르 시리즈, 남아있는 나날, 두 교황 등 다수
'양들의 침묵'에서 표정 연기와 특유의 기분나쁜 연기는 지금 봐도 어떤 악역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소름끼치고 기분나쁘게 잘 하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는 배우입니다.
이름 : 조나단 프라이스
극중 역할 : 프란치스코
필모그래피 : 두 교황, 캐링턴, 왕좌의 게임 5, 우먼 인 골드, 더 와이프 등 다수
미국 영화나 드라마 종종 보시면 많이 본 배우로,
‘지아이조 시리즈’에 미국 대통령 역할로 나왔으며, 미국의 이경영 같은 느낌의 배우입니다.
‘캐링턴’ 으로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진짜 프란체스코 교황 그 자체였다고 말 할 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여담으로 ‘왕좌의게임 시즌5’ 에서 ‘칠신교’의 수장 ‘하이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다.
총 평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가치와 넷플릭스 영화는 그저 재미 위주라는 고정관념과
작품성과 예술성이 없다고 하며, 평가절하하는 평론가들과 아카데미의 편협한 생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시발점과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자진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플롯의 형태를 띄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교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아깝지만, '천문'이 있습니다.
처음 저는 이 영화를 보기전에 이 영화의 장르는 브로맨스 인 줄 알았지만,
이 영화는 브로맨스를 가장한 정치 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티칸'을 위해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사이의 밀약과 정치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루며,
우리가 잘 아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아닌 ‘베네딕토 16세’는 어떤 사람이며,
그 사람의 성향과 인자함, 관용, 생각 등을 보이며 대립과 타협을 잘 이끌어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단순하게 배우 둘이서 영화를 이끕니다.
그 말은 즉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이 이 모든걸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시퀀스는 사실 바티칸 하나로만 봐도 무방합니다.
영화에서 시퀀스는 대게 영화의 박진감 혹은 긴장감 또는 몰입도를 높이는데에 사용됩니다.
시퀀스가 적으면, 관객의 눈을 다른데에 못 돌려서,
배우의 연기력과 영화 그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 점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말하자면,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페인 축구의 장점은 '티키타카' 전술입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대사 하나를 짧게 던지거나 툭 치면
바로 ‘조나단 프라이스’가 흐름이 안 끊기게 바로 받아서 툭 받아치고,
그 분위기에 걸맞게 이용하는 감독의 연출이 더해져서
완전 유리한 홈경기와 같이 보여집니다.
연기를 잘해도 이렇게 티키타카 하는 건 상당히 힘듭니다.
‘천문’을 보면, 분명 '최민식’과 ‘한석규’가 정치를 위해 둘이 밀약을 하며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근데, 중간에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초점이 더 '한석규’에 맞춰지다 보니,
영화는 장영실을 메인으로 다루지만, 세종이 더 조명되며,
내가 세종대왕 이야기를 보는지,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보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두 교황에선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 둘다 같이 어느 한쪽에만 몰리지 않고,
서로 어색함 없이, 실제 친한 느낌처럼 대화를 주고 받는 느낌이라
전혀 어색한 느낌도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술술 풀어갑니다.
영화의 연출은 상당히 심플하다. 사실 연출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카메라는 그 둘만 비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카메라에는 진짜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체스코가 살아 숨쉬는 듯한 연기력을 담고,
그걸 매끄럽게 잘 이어붙인 감독의 실력이 깃들 뿐 입니다.
진짜, 잘 만들었고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못 받은 것은 아쉬운 따름입니다.
2019년 제가 본 넷플릭스 영화 중 단연 탑 3안에 뽑으라면 뽑을 영화였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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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스타의 성공, 그리고 실패, 그리고 지금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베러맨> 포스터 [출처: 씨네랩, 네이버 영화]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슷하지만 다른
<베러맨>은 영국의 국민적인 가수로 유명한 로비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이다. 포스터에도 쓰여 있듯, 퀸의 이야기를 그렸던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교되는 지점이 많다.
다만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이라는 밴드와 음악 자체에 집중했다면, <베러맨>은 로비 윌리엄스라는 ‘한 사람’에게 훨씬 더 밀착한다. 그의 전성기와 몰락, 스캔들과 자학, 그 모든 내면을 무대 위의 ‘퍼포먼스’로 다시 연출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꽤 낯설고, 동시에 신선하다.
또한 시대 배경 면에서도 둘은 확연히 다르다. 퀸이 70~80년대를 대표하는 락 밴드였다면, 로비 윌리엄스는 90년대 아이돌 그룹의 아이콘이었다. 록과 팝, 밴드와 아이돌, 창작자와 엔터테이너를 오가며 그는 훨씬 더 상업적이고 정제된 음악 산업을 경험했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특히 아이돌 그룹 Take That에서 시작해 솔로 가수로 나서는 과정에서 보여준 감정의 굴곡, 그리고 팀과 팬, 언론 사이에서 무너지듯 흔들리는 장면들은 오늘날 K팝 아이돌의 이야기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그가 겪은 연애 논란, 멤버 간의 거리감, 끝없는 비교와 기대는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이야기가 “그들은 위대했고, 그래서 그 음악은 불멸이다”라는 찬양의 구조를 갖고 있다면, <베러맨>의 이야기는 “이 못난이는 이렇게 튀었고, 이렇게 망가졌고, 그럼에도 결국 나아졌다”라는 굴곡의 구조를 따라간다. 이 차이만으로도 두 영화의 결말이 남기는 감정은 전혀 다르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파격적인 그리고 극심한 반항과 방황
로비 윌리엄스는 어릴 때부터 스타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의 ‘성공’보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정신적인 무게에 더 집중한다. 그는 무대 뒤에서 불안했고, 충동을 제어하지 못했으며,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자의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방황할수록 커리어는 더 높아졌고, 성공은 커졌다. 수많은 히트곡과 팬, 엄청난 부와 명예, 언론과 대중의 관심까지 모두 쏟아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동시에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사랑했던 사람들과 멀어졌고, 팀과도 어긋났으며, 자신조차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밀려났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영화는 그의 파괴적인 선택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혼란스러운 내면은 종종 몽환적인 뮤지컬 연출로 표현되며, 그의 고통은 설명 대신 이미지와 리듬으로 조용히 전해진다. "성공 + 마약 = 슈퍼스타"라는 공식이 낭만처럼 소비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암울하고 무서운 공식인지,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온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보여준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주인공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로비 윌리엄스는 이 영화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CG로 구현된 침팬지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침팬지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극 중 모든 사람들은 그를 사람처럼 대하고, 관객만이 그가 사람 아닌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이 설정은 굉장히 기묘하지만, 동시에 강력하다. 그는 늘 퍼포먼스를 해야 했다. 가족 앞에서도, 친구 앞에서도, 팬들 앞에서도 언제나 “로비 윌리엄스”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원숭이처럼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쇼를 위해 훈련된 존재, 웃고 춤추는 무대 위의 동물. 영화는 이 자조적인 고백을 상징으로 바꾸고, 침팬지라는 얼굴에 그를 담아낸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하필 침팬지였다는 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이자, 동시에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다. 로비는 그 중간 지점에 오래 머물렀다. 모두가 그를 보면서도, 아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는 그를 얼굴 대신 침팬지로 보여준다. 낯설고 이상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 잘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다 알지 못해도, 전해지는 것들
나는 로비 윌리엄스를 잘 모른다. 그의 시대를 살지도 않았고,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놓친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이 낯설고, 감정선의 흐름이 익숙하지 않아 몰입이 끊기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그의 음악을 잘 모른다면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분만으로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들었다는 건 꽤 큰 성과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특히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노래는 로비의 곡이 아니라, 어릴 적 그가 가수라는 꿈을 품게 만들었던 곡이다. 영화 초반에 나왔던 장면과 조용히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끝으로 엔딩 크레딧에는 영화 속 장면과 똑같은 실제 사진이 이어진다. CG로 구성된 이야기에서 현실로 천천히 전환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현실의 로비 윌리엄스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의 전환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연히 실제 무대 영상들을 보게 됐다. 그가 했던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들이 영화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걸 알면 더 재미있고, 몰라도 크게 방해되진 않는다. 로비 윌리엄스를 잘 아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영화다.
<베러맨> 스틸컷 [출처: 씨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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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우스 리뷰 - 베놈2의 단점을 답습하다 (스포일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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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합니다]
1. 베놈, 모비우스는 마블의 작품이지만 MCU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01:25 ~ 01:27 01:53 ~ 02:02
2. 제가 러프하게 마블의 작품이라고 한 부분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을 말씀드리며 다음번엔 조금더 검토를 하고 영상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상 시청에 불편함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분명 영화 모비어스에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정말 박쥐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적인 효과도 인상적이었고, 액션씬 중간중간에 나오는 슬로 모션도 기억에 꽤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흔히 말하는 겉멋 가득한 무의미한 연출들은 아쉬웠고, 샹치 텐 링즈의 전설에 이은 갑작스러운 에너지파 결말은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습니다.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들었던 블랙위도우, 베놈 2, 샹치, 이터널스로 인해 식어가던 마블에 대한 애정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다시금 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모비우스가 그 불씨를 다시 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쉬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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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최신 개봉영화(이터널스, 세버그, 시그널X, 크림, 퍼스트 카우)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1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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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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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티저 예고편
무너진 서울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내가 사는 아파트?..?! 이병헌 X 박서준 X 박보영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번 여름, 극장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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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야차> 공식 예고편
전 세계 스파이들의 최대 접전지에서 전쟁 같은 첩보 작전이 시작된다!
무자비한 스파이들의 전쟁
<야차> 4월 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