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02 16:00:02
11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전한 저력 보여준 <모아나 2>

<모아나 2>가 국내 누적 관객 수 100만, 북미 누적 수익 2억 달러를 가뿐히 돌파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반기 최대 기대작이었던 <위키드>가 북미에서와는 달리 국내 개봉 성적은 누적 관객 수 65만 명에 그쳐, 과연 <모아나 2>가 얼어붙은 국내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걱정과 기대를 모았는데요. 그런 기우를 싹 지우듯 <모아나 2>는 국내 개봉 첫날부터 2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였습니다. 개봉 닷새 만에 누적 관객 수 136만여 명을 돌파하며 아쉬웠던 전 편의 성적(231만 명)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개봉 2주 차를 맞은 <위키드> 역시 119만 명을 기록하며 2위를, <히든페이스>가 72만 명의 관객으로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두 영화 모두 입소문으로 꾸준한 관객 유입이 예상됩니다.

한편, 북미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많은 관객이 극장가를 찾아 4억 2천만 달러의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습니다.
<모아나 2>는 개봉 이후 2억 2,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추수감사절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는 2019년 <겨울왕국 2>(1억 2,500만 달러)와 2013년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1억 900만 달러)가 세운 기록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은 수치라고 합니다.
<모아나 2>로 인해 2위로 밀려난 <위키드> 역시 연휴 기간 1억 1,800만 달러를 추가하며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현재까지 북미에서 2억 6,2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3억 5,9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4억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미 누적 수익 1억 1,200만 달러에 이른 <글래디에이터 Ⅱ> 역시 한 계단 내려와 3위를 기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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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가문의 영광: 리턴즈
23.09.21 개봉
코미디, 15세 관람가
한국, 99분
감독: 정태원, 정용기
출연: 윤현민, 유라, 탁재훈 등
너무나 유명한 코미디 영화 시리즈인 가문의 영광!
11년 만에 시즌6 , '가문의 영광: 리턴즈'로 돌아왔는데요
시사회 때부터 평이 너무너무 안 좋았고
현재 네이버 평점도 6점대로 떨어졌는데 ㅋㅋ
전 네영카에서 나눔 받아 공짜로 봐서 그런지
재미없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싶었어요
당연히! 15,000원 주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넷플릭스 같은 데 뜨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볼 만한 영화랄까요?
그도 그럴것이 촬영 기간이 올해 7~8월이더라구요?
추석 연휴를 노리고 급하게 제작한 영화 같은데
딱 그 정도 퀄리티가... 눈에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아! 노파심에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추석 연휴 때 가족이랑 볼 만한 영화 절대 못 됩니다,,,
애초에 스토리부터가
진경과 대서의 원나잇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단어가 나와서...
특히 애들 데리고 가지 마세요 절대절대절대로
줄거리 요약은 이제야 봤는데......
왜 기껏 정해 놓은 로그라인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네요
저대로만 진행했어도 평점 7점 정도는 땄을 것 같은데요
비혼주의를 선언한 막내딸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대작전?
-> 진경이 비혼주의라는 건 캐릭터들 대화 중에 등장하지
처음부터 그녀는 비혼주의! 절대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음!
이라고 못을 박아 놓진 않아요...
애초에 첫 씬부터가 클럽 가서 남자가 주는 술 마시는 건데,,
대서와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장씨 가문의 음모?
-> 그게 에필로그 가서야 겨우 나와요
전 정말 이런 음모였던 줄 모르고 오 생각 외로 반전도 있네 했는데
그걸 줄거리에 이미 오픈해 놓다니...... 무슨 생각이지
어쩐지 왜 장씨 가문이 자꾸 대서에게 집착하나 했네요
리뷰 쓸 때야 그 비밀이 밝혀지다니 최악...... ㅋㅋ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한 줄 평으로 남겨 보자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누렸던 영광을
꽁으로 또 먹고 싶어 리턴즈 한 영화 같다는 거예요
심지어 가문의 영광에서 활약하던 기본 캐릭터들도 안 나오고
윤현민, 유라 님이 주인공 격으로 흘러가는 거라서
걍 다른 영화 같아요
등장하는 캐릭터 많은데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스토리는 어딜 향해 가는 건지 정립되지 않았고
나름 웃겨 보겠다고 만든 몸개그도 생각보다 안 웃겨서 실망했어요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서는 진경과 원나잇(실은 아니지만 보이기론 그렇게 보이니까)을
한 것을 여자 친구 유진에게 바로 들켜요
그런데 유진 역시 남자 돈 빼먹는 여자라서
남자 친구인 대서의 원나잇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후반부로 가서는 유진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대서가 보는데
처음엔 뒤에만 숨어 있다가 (대사 칠 타이밍 기다렸다가)
"니가 왜 여기 있어?" 라며 되도 않는 모습을 보여요
감독님이 상황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눈에 보이죠
호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 거였으면
남자 주인공인 대서가 무조건 여자 친구가 없어야 하고
혹시 있더라도 찌질+댕청한 너드남 콘셉트,
그리고 여자 친구인 유진을 많이 사랑하며
유진은 뒤로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나쁜 여자였어야 해요
걍 여기 아메리칸 그잡채임,,,,,, 서로 꺼리는 게 없어요
이렇게 혹평을 했음에도 웃긴 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단 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ㅋㅋ
영화 시간 자체가 짧아서 그런가
이제 30분 지났을까 하고 시계를 봤는데
20분 남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김
암튼...... A부터 Z까지 잘 만든 구석은 없지만
혹시 특전 준다면 영화관 가서 봤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걍 아무도 안 볼 것 같다는
그런 후기입니다
*스토리: 1/5점
*연출: 1/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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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각이라는 소재를 매력적으로 잘 활용한 영화 <향수>
동명의 소설로 먼저 접했던 영화 <향수>. 근데 나는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더 매려걱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모든 것을 상상하는 재미였다면 영화에서는 일부분 제시가 되면서 그 사이사이 틈새를 메꾸는 재미가 굉장히 쏠쏠했다.
영화 <향수> 시놉시스
천재의 광기 어린 집착, 사라진 13명의 여인들… 그에게 향기는 전부였고, 살인은 운명이었다!
18세기 프랑스 생선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사생아로 버려진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불행한 삶 속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천재적인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파리에서 운명적인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리게 된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로 들어간다.
뛰어난 후각으로 파리를 열광시킬 최고의 향수를 탄생시키지만,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던 그는 해결책을 찾아 ‘향수의 낙원, 그라스’로 향하게 된다. 마침내 그곳에서 그는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 한편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의문의 사건이 계속된다.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카메라 무빙
영화 <향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카메라 워킹이 굉장히 탁월했기 때문이다. 영상 매체는 아직까지 기술력으로 후각적인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영화 <향수>를 보면서 저 향수에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그 여인의 몸에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당시 파리의 악취가 어땠는지가 오롯이 다 느껴질 정도로 카메라 무빙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여인의 뒤를 똧아가는데 풀샷을 잡는 것이 아니라 향이 흘러나오는 곳을 과도하게 클로즈업을 해서 마치 그 향이 퍼져나가는 길을 하나의 시퀀스로 집중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그 후각적인 자극이 굉장히 많이 됐던 것 같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자 하는 주인공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체취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영화 <향수> 속 주인공 그르누이는 무취의 존재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음에도 정작 그는 아무런 냄새를 갖지 못한 무취의 존재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살인을 계속해서 저지르고 마지막 군중신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태초의 향을 몸에 뿌리며 사람들을 홀리지만 한 순간일뿐 향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외면하고 만다.
이 과정이 약간 라캉의 논리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르누이는 태어나면서 무취 즉, 향기를 잃어버리고 태어난다. 그리고 향수를 제조하면서 가지지 못했던 것을 쟁취하는 듯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실재계로 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상징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인정과 사랑을 헷갈려하다
영화를 보면서 그르누이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체취가 없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존재를 인식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향을 갈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알고보니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르누이가 느끼는 죄책감과 공허함을 보는 내가 같이 무너지는 듯한 감정을 받았다. 자신의 향기를 얻기 위해서 사람을 죽여왔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었고, 잘못된 방식으로 그 사랑을 취해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너져내리는 그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하다.
영상에서 후각이 느껴지는 영화 <향수>. 색다른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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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서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콘텐츠
요즘은 신비주의보다 솔직함,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대중에게 더 호응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콘텐츠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주 소재로 풀어내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음악 프로그램<테이크 원>_넷플릭스
뮤지컬과 연극 등을 공연하는 공연장에서는 백스테이지 투어를 이미 예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성된 콘텐츠만을 보여주던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주 내용을 공연 준비과정으로 다룬 것이 독특하고 재밌다.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이 공연하거나 발매했던 곡 중 단 한 곡으로만 무대를 꾸미라는 미션을 준다.
제목인 테이크 원은 영상 촬영을 할 때, 슬레이트를 한 번 치는 것을 의미한다.
아티스트와 공연 크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대를 단 한 번의 슬레이트로 촬영을 끝낸다는 것이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공연 준비 제한 시간이 있다.
어떤 곡으로 어디에서 공연할지, 무대는 어떤 식으로 꾸밀지, 관객은 어떤 분으로 모실지 기획해야 한다.
특히 조수미 아이스트의 무대 준비 과정을 담은 시리즈가 인상깊었다.
조수미 아티스트는 365일 중, 300일 가량을 고국인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국 음식이나 문화보다 타국의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 하나의 공연을 준비할 때, 오페라에 한국 전통 음악과 의상을 접목시키려 노력한다.
오페라와 국악을 연결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고 조율해가는 과정도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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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켄 로치는 끝끝내 희망을 길어냈지만…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United Kingdom, France, Belgium/2023/113
켄 로치 감독/‘아이콘’ 섹션
나눌 게 고통과 슬픔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켄 로치는 〈나의 올드 오크〉가 이러한 질문을 고민하는 영화라 말한다. 영국의 한 폐광촌.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집값은 나날이 떨어진다. 어떤 회사는 방문 한 번 하지 않고 수 채의 빈집을 사들인다.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져가고, 자신들이 정부와 자본에게서 버려지고 발로 차이는 삶을 산다고 여긴다. 그런 마을에 모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그러나 그들은 환대받지 못한다. 그들이 시리아 난민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마을이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다며 분노하고 영국 정부의 허가로 마을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다. 긴장이 감돈다.
밸런타인은 광부의 아들로 오랫동안 마을에서 펍을 운영해왔고, 야라는 따뜻한 마음씨에 똑똑한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다. 약자들을 돕는 자선 봉사활동을 해왔던 밸런타인은 친구들이 야라에게 저지른 무례에 유감을 표하며 그녀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적대 관계가 자리 잡은 마을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건 기존 친구를 잃는다 의미다. 밸런타인은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에서 점점 난처해진다.
영화는 시리아 난민에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 무엇도 제공받지 못하는 마을 주민의 분노·박탈감은 시리아 난민들이 모든 인간이 누려 마땅할 권리를 최소한으로나마 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다만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켄 로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능숙하고 촘촘한 솜씨로 서로 다른 두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저항, 연대의 계기를 모색한다. 밸런타인과 야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난당하고 파괴되는 모두를 위한 식사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론장은 이미 무너졌다. 그럼 희망은 어디서 길어올 수 있는가? 켄 로치는 두 공동체가 가진 공동의 경험에 카메라를 갖다 댄다. 대처 시대의 광부와 망명을 선택한 난민에게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연대를 해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을의 청소년이나 난민의 자식들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상실한 채 집에만 머물며 우울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로의 공통된 경험에 접속하게 해줄 계기다. 영화는 말한다. 거창하거나 혁신적인 답은 없다고. 몸을 부대끼며 타자를 향한 적대적 감정을 성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다고. 켄 로치는 이번에도 ‘연대’의 내용을 단단하게 채워 넣으며 희망을 말한다.
절망의 시대에 이토록 품위 있는 인간애를 여전히 고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말은 그가 그려내는 희망이 절망보다 더 작아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절망의 순간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결말부의 희망은 다소 극적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희망이 작위적이거나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처럼 쉬이 도래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수치심을 잃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그 정도로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과연 이런 모습일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켄 로치는 그가 잘하는 것을 이번에도 잘해냈다. 다만 그의 영화를 보는 나의 감각이 지난 몇 년간 바뀐 듯하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말하는 희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는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절망 속에서도 켄 로치가 끝끝내 길어낸 희망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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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던걸 모던보이는 다 독립군이 되는 것일까?
또다시 김남길 때문에 본 영화로 실망을 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한 사람의 리뷰를 시작한다,,, 김남길이 나온 작품을 찾다가 대학원 시절 학기말 페이퍼를 제출하기 위해 그 교집합을 찾던 중 발견한 작품이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영화 중 모던걸, 모던보이를 테마로 한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작품이었다. 정말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잠이 들 정도였는데 쓰고자 했던 페이퍼의 방향과 너무나도 일치해서 꾸역꾸역 분석하면서 봤던 영화였다.
영화 《모던보이》 시놉시스
1937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 이해명은 단짝친구 신스케와 함께 놀러 간 비밀구락부에서 댄서로 등장한 여인 조난실에게 첫눈에 매혹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꿈같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행복도 잠시.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에서 폭발하고, 그녀는 해명의 집을 털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난실을 찾아 경성을 헤매는 해명. 그가 알게 되는 사실은 그녀가 이름도 여럿, 직업도 여럿, 남자마저도 여럿인 정체가 묘연한 여인이라는 것! 밀려드는 위기감 속에서도 그녀를 향한 열망을 멈출 수 없는 해명.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선 그는 또 어떤 놀라운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인가! 사랑과 운명을 건 일생일대의 위험천만한 추적이 펼쳐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조명하다
모던보이 영화의 의의라고 한다면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경성의 거리를 조금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존재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을 극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받았던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인물군상이다. 역사 교과서에는 친일파와 독립군의 일부만 선택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는 이렇게 역사에서 배제되었고 망각된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고 공식 영삭의 틈을 메꿔주는 문화적 기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고보니 독립군, 갑자기 독립군이 된 그들
나름 의의가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점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알고보니 독립군이었고,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 모던보이와 보던걸들을 보면 일부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유행을 쫓고 신식의 것을 몸에 두르느라 세상 정세에는 관심도 없는, 즉 독립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는 대중가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대부분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라는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인의 영향으로 독립에 투신하는 경우로 그려지는 거시 대부분이다. 영화 《모던보이》 역시 로라이자 조난실은 알고보니 독립군의 주요 요원이었고, 조난실을 사랑한 이해명은 그녀의 죽음으로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 모던보이라는 컨셉을 전면에 놓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모던보이》 역시 알고보니 조선의 독립을 그리기 위해 하나의 장치로서만 활용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영화가 넘어야할 민족주의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그 당시 실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온상을 그려내기 보다는 우리가 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 바라는 것을 투영시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는 지나간 과거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이기에 현재와도 같은 과거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 민족투사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그들의 삶이 비극적이면서도 독립을 위해 살신성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런 민족주의가 영화 스토리의 틀을 정해버리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은 왜 영화 속에서 다 죽어야 하는 것일까? 폭탄 날리고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 잘면 안되는 것일까? 왜 그런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화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분석용으로는 꽤나 분석할 거리를 제공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시기에 관련된 영화 작품에 대한 공부용(?)으로는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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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실패한 아들'의 분노
7★/10★
갈비, 잡채, 각종 전, 김치…… 정성스레 요리한 맛깔스러운 요리가 하나둘 식탁에 오른다. 창래와 누나가 종일 요리한 음식이다. 가족들이 격식 있는 옷을 갖춰 입고 식탁에 앉아 있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창래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한 해 마지막 날의 저녁 식사, 그리고 어쩌면 영영 마지막일지 모를 가족의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엄마는 감동한 표정으로 음식을 둘러보고는 창래가 가위로 잘게 자른 갈비를 입에 넣는다. 그러나 바로 뱉어낸다. 위암 투병과 항암 치료로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엄마는 자식들이 준비한 음식을 넘기지 못한다. 창래는 자책한다. 갈비를 이렇게 달게 요리해서는 안 됐다고, 이건 실패한 요리라고. 엄마가 그런 창래를 나무란다. 그렇지 않다고, 정말 잘 만든 요리라고. 그러나 엄마는 끝내 아무것도 삼키지 못한다. 창래가 옳다. 그의 요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죽임이 임박한, 극도의 고통을 겪는 엄마 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와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창래는 간병을 위해 뉴욕의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라면 하나 끓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를 위해 요리하고, 병간호하고, 청소하고, 갈라지고 떨어진 거실의 내벽을 새로 칠한다. 창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수없이 해줬던 요리를 떠올린다. 부엌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엄마가 종종 차근히 설명해주었던 레시피를 천천히 복기한다.
엄마는 한국에서 실력 있는 농구선수였다. 아빠를 만나 결혼한 후에는 그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창래가 엄마의 삶이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자 엄마는 부드럽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아빠와 달리 엄마의 영어는 서툴다. 영어가 그녀의 모국어가 아님이 단번에 드러나는 발음이다. 그래서 엄마는 종종 창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를테면 카드사에 전화해 대금이 잘못 청구되었다고 묻는 일 같은 것들. 창래는 엄마가 이 문제를 회피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더 연습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고, 어쩌면 게으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엄마는 그 말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고, 창래는 뒤돌아선 엄마에게 용서를 구한다.
같은 이민자지만 엄마와 아빠/누나/창래의 세계는 다르다. 학자인 아빠는 엄마가 겪는 문제를 겪지 않는다. 창래와 그의 누나 역시 엄마의 집요한 노력으로 아빠의 세계에 진입했다. 엄마는 자식들이 자신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상승’한 데에 크게 만족한다. 그러나 동시에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죽을 걸 알았어도 아들을 기숙 학교에 보냈을까? 그 시기가 아들과 함께할 마지막 시간임을 알았더라도? 창래를 향한 엄마의 모순적 애착이 창래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아빠의 세계에 진입했으나 엄마와 그녀의 세계가 소외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창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 대한 아빠의 무지로부터 그녀를 옹호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창래의 귀환은 실패했다. 어머니는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창래는 엄마의 세계로 회귀하지 못한다. 실패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coming home again)’이 ‘엄마에게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데서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창래에게 엄마/집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고정된 장소다. 그러나 실재하는 엄마/집은 창래의 기대와는 다르다. 엄마와 그녀가 꾸리는 공간인 집은 그녀의 상황과 욕망에 따라 매 순간 재구성되는, 생동하는 무언가다. 창래의 성공을 기뻐하는 동시에 그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데 아쉬움을 느끼는 엄마의 모순적 애착이 보여주듯, 엄마의 욕망과 기대는 창래(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이되어왔다. 그녀의 욕망과 기대가 투영된 집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창래가 돌아가고자 하는 장소의 좌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창래가 자꾸 미끄러지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 요리의 맛과 자신이 직접 요리한 음식의 맛이 다르다는 데 분노하며 책상을 내리친다. 저녁 식사를 망친 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나서는 엄마를 꽉 끌어안는데, 엄마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창래의 거친 포옹은 엄마에게 고통만 준다. 창래의 괴로움은 진짜다. 엄마를 향한 그의 마음도 진짜다. 문제는 창래의 진심이 젠더화된 가족의 의미망을 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엄마가 자기 말은 안 들어도 네 말은 듣지 않느냐는 누나의 말이 알려주듯, 창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수혜자다. 창래와 엄마가 오랫동안 기대온 이 관계망의 문법이 창래의 진심을 가로막는다. ‘엄마-아들’의 기존 관계망에서 아들은 엄마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할 때 발생하는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창래에게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개인에게 새기는 비참함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창래는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는 ‘좋은 아들’이지만, 가부장적 가족주의 앞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는 ‘무능한 아들’이기도 하다.
엄마가 죽은 뒤, 창래는 그녀가 쓰던 물건을 무심하고 거칠게 쓰레기통에 담는다. 그는 여전히 분노한 상태다. 창래는 왜 엄마/집으로 돌아오려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는지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조차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다.
우리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애절한 진심이라도 그 진심이 전달되는 구조적 통로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다. 창래의 의도하지 않은 무능은 ‘효도’와 ‘돌봄’ 어딘가에 내재한 공허함을 보인다. 이 공허함을 직시하지 않고 ‘진심’만을 강조하는 한, 우리는 끝없이 실패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커밍 홈 어게인〉은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창래가 《뉴요커》에 기고한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합니다. 아래는 에세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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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바디 리뷰 - 영화 노바디의 4가지 감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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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시작에 앞서...
01:21 1. 액션
03:10 2. 사운드 트랙
04:48 3. B급 유머코드
06:03 4. 떡밥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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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다. 참으려고 했다.
이제 나 건드리면 X된다!
비범한 과거를 숨긴 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한 가정의 가장 ‘허치’
매일 출근을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일과 가정 모두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아들한테는 무시당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강도가 들고 허치는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당한다.
더 큰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모두 무능력하다고 ‘허치’를 비난하고,
결국 그동안 참고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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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아는 남자와 대통령이 되고 싶은 남자가 만났다!
영화 킹메이커가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로 불렸던 엄창록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된 영화인데요.
영화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습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우정과 관계도 눈에 들어오는데요.
대선이 다가오는 요즘 이 영화를 본다면, 정치란 무엇이고 또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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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배우들은 연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상에선 내가 톱스타! <OK,탑스타> 녹색창에 떠야만 배우인가요? <31,내리다> 감독님, 제 메일은 언제 확인하실까요? <오디션>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나는 연기가 고프다 <언젠간 터질 거야> 오디션, 아빠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클라운> 이들은 그토록 바라던 연기의 꿈을 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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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호러블리 아담스 패밀리에게 닥친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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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쩐지 태생부터 남달랐던 ‘웬즈데이’의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면서
‘웬즈데이’의 사춘기는 절정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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