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2 19:38:40
박찬욱이 사랑한 말러의 음악
영화감독이 사랑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영화감독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구스타프 말러'를 뽑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그의 음악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특히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말러의 음악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감정적 깊이와 철학적 주제를 담은 교향곡으로 유명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교향곡 제5번' 등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성악을 결합한 작품으로 독창성을 드러냈습니다. 생전에는 지휘자로 주목받았지만, 그의 음악은 후대에 재평가되어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박찬욱을 포함해 마틴 스콜세지, 짐 자무쉬, 알폰소 쿠아론 등 영화 감독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 말러의 음악이 흐르는 영화를 관람하러 떠나볼까요?
**말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10월 24일 (목)에 씨네픽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헤어질 결심>, 박찬욱

줄거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셔터 아일랜드>, 마틴 스콜세지

줄거리
보스턴 셔터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수사를 위해 동료 척과 함께 셔터아일랜드로 향한다.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이 병원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하는 병동으로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식 셋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여인이 이상한 쪽지만을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지고, 테디는 수사를 위해 의사, 간호사, 병원관계자 등을 심문하지만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꾸며낸 듯한 말들만 하고, 수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폭풍이 불어 닥쳐 테디와 척은 섬에 고립되게 되고, 그들에게 점점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브래들리 쿠퍼

줄거리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의 평생에 걸친 인연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

줄거리
세계 각지에서는 폭동과 테러가 비일비재해 지고, 대부분의 국가가 무정부 상태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은 국가 영국에는 불법이민자들이 넘쳐 난다.
한편, 아들이 죽은 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 따위는 모두 잃어버린 남자 ‘테오’ 그의 앞에 20년 만에 나타난 전 부인 ‘줄리안’은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 ‘키’를 그에게 부탁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눈 앞에서 마주한 ‘테오’. 그는 ‘키’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인간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만 하는데…
인류 종말의 끝, 기적이 다시 시작된다!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줄거리
시끄럽고 허름한 카페, 로베르토와 스티븐은 커피에 중독되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연신 진한 커피를 들이켜댄다. 커피와 담배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된 선문답은 희한하게도 계속 이어지고 로베르토는 어이없게도 스티븐의 치과 약속을 대신 가주려고 하는데….
<타르>, 토드 필드

줄거리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 욕망을 불태우는 괴물,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이 이야기는 그녀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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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게 나를 안아줄 날 위한 한마디
지난 10여 년간 서울에 집중된 산업 인프라에 제한받지 않고 전주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우직하게 개성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이어오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통해 그 역량을 인정받은 최진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죽었을 뻔한 여자가 자기의 자아와 마주하면서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벗어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전주영상위원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진영 감독만의 독특한 개성과 메시지가 담긴 로컬 작품으로서, 주인공 춘희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관객들을 향한 특별하고 따뜻한 위로를 담아내고 있죠. 더불어 2008년 ‘초감각 커플’로 데뷔한 이래 지난 많은 작품들을 거쳐 최근 ‘한강에게’에게서 인상적인 모습을 선사하며 독립·예술계 대세로 자리한 강진아 배우가 인정받은 연기력으로 주인공 춘희를 맡아 상처받은 개인이 치유되는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간결한 색채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인지 상당히 쉽고, 재미있었으며 상냥하게 풀어가는 전개 방식 또한 마음을 편하게 해줘서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태어나길 잘했어 정보
저는 좀... 쩔어있어요...
‘봄에 태어난 기쁨’이라 부르고 싶었지만, 출생 신고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봄에 태어난 여자’라는 이름을 가진 춘희, 1997년 중학생 열다섯 그녀는 부모님과 집을 한꺼번에 잃는 사건을 겪고 홀로 살아남아 외삼촌 식구가 사는 집으로 오게 됩니다. 달갑게 여기는 이 하나 없고,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한 더부살이 다락방 인생은 그렇게 시작이 되죠. 이십여 년이 지나 외삼촌 식구들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했고, 그녀는 홀로 집에 남아 사촌 오빠의 식당에 마늘을 까서 팔며 생활을 이어갑니다. 한 푼 두 푼 모아온 돈으로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였던 다한증 수술을 하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죠.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진짜 떨어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과거 중학교 시절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The Slug│감독·각본 : 최진영│출연진 : 강진아, 박혜진, 홍상표 외 │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00분│개봉일 : 2022년 4월 14일│국가 : 한국│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5.5, 왓챠피디아 3.1, IMDB 6.0│수상 내역 : 제16회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재능상)│시청 가능 서비스 : 현재 극장 상영 중(14일부터)
# 태어나길 잘했어, 어떤 이야기?
나를 온전히 구원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나일뿐
작품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최근 독립영화계의 흐름을 이어가듯 여성 주인공이 자신과 화해하고 긍정적인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오래된 가옥의 풍경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남매의 여름밤’처럼 관객에게 기분 좋은 토닥거림을 선사합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유명한 한 장면이 떠올려지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는 조금 진부할지라도 거짓처럼 들리지 않고, 20년 전 자신을 끌어안아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신의 슬픔과 트라우마를 지워내며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강진아의 믿음직한 모습은 빛을 발합니다. 일반적이라기보단 엉뚱한 매력과 발랄함을 간직한 채 본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물인지 모르는 춘희를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완성시켰다 볼 수 있죠. 더불어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어린 시절 춘희를 맡은 박혜진과 사랑으로 다가오는 주황의 홍상표는 그녀 옆에서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줍니다.
아마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닿는 것을 기피하는 다한증을 가진 춘희를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비유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고된 일상을 살아가며 끝까지 자신의 안식처를 지키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힘겹게 살아가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못난 것처럼 느끼며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가는 일반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용기를 얻으며 끝끝내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끼며 겁먹었던 과거를 감싸 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과정이 극적이거나 주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찾아올 법한 전환점을 담담하면서 조금은 유쾌하게 그려내주므로 꼭 빨리 가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가는 삶도 충분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죠.
사촌 오빠를 통해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몰리면서 울분을 터트리며 쌓아왔던 분노를 표출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한 번 더 밀어내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안아주는 계기가 되어 스스로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결국 남들의 시선, 주변의 도움이 아니라 올곧이 본인을 소중히 안아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이여 음 깨닫게 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잘 나가는 이들을 통해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현재의 세태를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못 났다고 생각한들 모두가 귀하게 태어나 누군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 걸 잊어먹었을 뿐이죠.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잊었던 마음들을 춘희라는 인물을 통해 조금은 엉뚱하고 투박하지만, 그 바탕만은 다가온 봄처럼 따뜻하게 위로를 전달해 줍니다.
엔딩곡이에요 강진아 배우님이 부르셨어요 :) 가사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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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극장가의 위기는 팬데믹 이후 매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근 극장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가 총 5,470만 달러로 올해 최저 주말 수익을 기록했습니다.파라마운트의 신작 <노보케인>이 누적 수익 870만 달러로 1위를,
<미키 17>과 <블랙 백>이 누적 수익 약 750만 달러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며
한 주말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도 1,0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썰렁한 극장가에 곧 개봉을 앞둔 디즈니의 실사영화 <백설공주>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펼친 인상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을 뽐낸 레이첼 지글러가 주연을 맡은 <백설공주>는
북미 개봉 첫 주 5,000만~5,6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대받고 있습니다.
국내 극장가 역시 한산하긴 마찬가지입니다.
1위를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주말 관객 수 32만 명을 불러들여 누적 관객 수 2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인기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제작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교황 선거를 다룬 <콘클라베>가 지난주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가장 최근 개봉했던 디즈니 프린세스 실사 영화인 <인어공주>가 국내 누적 관객 수 64만 명에 그친 가운데,오는 19일 개봉하는 새로운 프린세스 실사 영화 <백설공주>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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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는, 때론 최고의 상처 치료제
표면적이거나 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아이들보단 어른들이 상처가 빨리 아물고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래도 유년기, 청소년기에 접어든 이들보다 부서지는 상황을 더 많이 겪어왔고 이로 인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을 것이라는 경험적 측면 때문이다. 종종 연장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선경험했기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지 않은가.
일리 있는 말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추측이다. 어른들도,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들 중 상당수 이상은 몸만 컸을 뿐 여전히 유아기적 정체성에 머물러 미성숙하다. 일부 어른들은 자신이 한번 깨지고 부서지면서 큰 상처를 입고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라고 명명하는 마음을 갉아먹는 족쇄로 자라나 끝까지 고통받기도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으려고 상처로부터 멀찍이 회피하거나 분리하는 등 동떨어진 삶을 택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과 짐 캐리가 만난 드라마 '키딩'도 상처 입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키딩'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다들 어딘가 결핍, 상처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감정이입이 쉽게 됐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이 남자, 제프 피키릴로(짐 캐리).
제프 피키릴로는 어린이 TV쇼 프로그램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서 주인공 피클스 아저씨를 30년간 맡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종이접기 장인 김영만 아저씨가 오랜 세월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행사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을 보고 자란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추억을 선물했다.
정갈한 5대 5 가르마를 탄 단발머리, 단정한 초록색 넥타이와 흰색 셔츠, 항상 활짝 웃는 미소로 제프 피클스를 기억하고 있으나 이는 본체 제프 피키릴로를 가리고 있는 가림막이라는 걸 '키딩'이 보여주고 있었다. 본캐 제프 피키릴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태. 1년 전 교통사고로 일란성쌍둥이 아들 필을 잃었다. 불의의 사고는 아내 질(주디 그리어)과 이혼 위기로 몰아넣었고, 남은 아들 윌(콜 앨런)과 소통은 점점 어려워졌다. 본캐 제프의 삶은 엉망진창 망가지고 있어 한시라도 상처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제프는 상처 입은 자신과 감정들을 분리시키고 억눌러야만 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캐 피클스 아저씨로 출근해야만 했기 때문. 또 제프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 피클스 아저씨로 영원히 남기를 갈망해왔다. 그 결과 진작에 치료해야 할 자기 상처와 슬픔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피클스 아저씨로부터 격리시킨 부작용이 발생했다. 인형극장을 통해 아이들에게 슬픔과 죽음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간 평화로웠던 피클스 세계관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돌발행동을 하는 제프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걸 인지한 아버지 셉(프랭크 란젤라)과 누나 디어드러(캐서린 키너)는 대체물을 찾으러 나섰고, 제프가 부캐에 매달려있는 동안 집에서 그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갔다. 제프 피키릴로와 피클스 아저씨 세계관 둘 다 유지하려고 애쓰는 제프의 노력,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광대의 모순처럼 제프의 애환만 부각될 뿐이었다.
시즌 1 후반부가 돼서야 제프는 마침내 인간 제프 피키릴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필이 죽은 날 운전대를 잡았던 질에 대한 원망과 아내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했다. 또 세상을 떠난 필에게 자신이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오랫동안 신처럼 부각됐던 제프 피클스에 가려진 솔직함이었고,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키딩'에서 재밌는 건, 분노라는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분노와 평화를 이분법적으로 표현해 대립시켰고,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면 분노의 화신으로 탄생하는 것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키딩'에선 조금 달랐다. 그가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무작정 삐뚤어진 인간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인간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지다 터져버리는 고무풍선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시즌 1 마지막에서 제프가 질의 남자친구 피터(저스틴 커크)를 차로 들이받으면서 제프가 분노의 화신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 2에 접어들면서 제프의 극단적인 돌발행동은 단순한 폭발이 아닌 진심으로 피터를 싫어했고 가족을 아끼고 있었다는 걸 '키딩'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터에게 악의를 숨기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 것도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삐뚤어진 인간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키딩' 시즌 2 내내 제프는 자기 자신과 과오를 시인함과 동시에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와의 별거를 인정하고,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억누르고 괴롭혔던 문제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과거 질과, 쌍둥이 아들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왜일까.
변화를 받아들이고 보내는 것 또한 그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욕망과 이를 위해 '희생'으로 인식해서였을 것이다.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떠난 필은 아름답고 그리운 존재로 남아버렸고, 질을 놓아주는 건 여전히 그를 사랑하나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질의 새 출발을 하나의 권리로 존중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한 희생으로 남았다. 그렇게 자기 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원망하는 것'을 집어삼켰고, '나쁜 사람'들을 제거했다. 교통사고가 전부 아내 탓이라고 원망하기엔 너무나도 그를 사랑했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인위적인 평화는 결국 제프 피키릴로를 기괴한 제프 피클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프 또한 절대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시즌 2 후반부에 윌이 제프와 질, 그리고 필과 행복했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법에 집착하는데, 시즌 2 마지막에 일어났다. 그런데 되돌리는 게 아닌 시간이 멈췄다. 제프도 윌도, 괴로운 현실에서 회피해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판타지 원하나,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판타지는 무엇이든 가능하나 아무것도 이뤄주지 않는다는 한계도 알려줬다. 제프는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시계를 한 시간씩 앞당겨 가족들과 보내라고 하나, 아이들 또한 이 속임수를 깨달았다. 상상은 현실로 향해야 한다고 미셸 공드리가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프는 상처를 마주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떠나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면을 스스로 통제하고 마음을 붙잡고 있으면 고요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통제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갔다. 원망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을 드러냈고 아파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랑은 떠나가지 않고 남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 물건을 깨트려 다시 금으로 붙이는 예술 기법인 긴츠키처럼 치유된 것이다. 비로소 모든 걸 내려놓고,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며 새 출발선에 섰다.
내면의 상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좋았던 감정까지 잃어버리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들은 어떻게 해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기억이나 추억 등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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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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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 뭐길래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한국이 싫어서> 줄거리
팍팍하기만 한 한국에서의 삶. 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지, 행복한 인생은 도대체 뭘까. 이 영화의 주인공, 계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일상, 더 나아지고 있다지만 아직도 아득한 그놈의 행복. 언젠가 올 행복을 기다리다 지친 계나는 결심한다. 그 행복 내가 직접 찾아가기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 지긋지긋한 조국을 벗어나 계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바로 뉴질랜드에서!
다들 한 번쯤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길 원한적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낯선 타지에 대한 두려움, 한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 혹여나 다시 돌아온 후의 생활에 대한 걱정 등 불확실한 일에 대한 불안감에 한국이 편해라는 말로 위로하며 포기해버린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나의 행보는 어쩌면 다른 선택지의 결말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시작된 뉴질랜드에서의 생활. 어학공부와 대학 공부는 계속되고, 동시에 돈도 벌어야 한다. 한국에서보다 더 빠듯해진 생활 그래도 계나의 얼굴은 좀 더 편안해 보인다. 이곳이 계나의 진정한 행복인 걸까?
뉴질랜드에서 계나의 삶은 웃고 울고 화내며 목표에서 멀어지거나 다른 길로 가야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게 행복인 것 같은 느낌이다. 계나가 이대로 새로운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데 성공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계나의 마음을 비웃듯 상황은 다시 계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선택지. 다시 한국에서 남들이 말하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거나 아님 뉴질랜드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거나.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나기 이전과 같은 선택지 앞에 선다. 진짜 행복은 뭘까? 그 행복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해온 계나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진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껏 계나가 지나온 나날들은 헛된 실패였을까? 그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생애에 하는 선택들을 어떻게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을까.
행복은 너무 과장되어 있는 것 같아.
이 대사가 정말 공감되는 영화였다. 행복은 고단한 삶에 반드시 올 보상도 아니고 특정한 장소, 시간에서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기도 하고 좋은 영화를 봄으로써 행복해지기도 한다. 목표로 잡은들 이루는 게 아니기에 달성해낼 수도 없다. 계나의 여정은 이걸 알아차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계나가 얻고자 했던 행복은 사실 별거 아니라고. 이미 계나가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갖고 있던 것이라고. 행복이 더이상 압박이 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게 된 계나의 삶이 궁금해진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한국이 싫어서>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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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조2> 잘못된 첫 단추가 굴려 보낸 스노우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북미 수교를 앞두고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명준(진선규)'이 '잭(다니엘 헤니)'이 이끄는 FBI에 의해 뉴욕에서 검거되자, ‘림철령(현빈)'은 그를 인도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장명준은 호송 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그가 남한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되자 철령도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는다. 한편 수사 실패 이후 광수대 복귀를 노리던 '강진태(유해진)'도 또 한 번 철령과의 공조 수사에 자원한다. 한 층 더 돈독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의심하면서 공조 수사를 펼치던 철령과 진태. 그러나 눈앞에서 장명준을 놓친 잭이 남한에 오면서 세 형사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장명준의 진짜 계획이 드러나면서 공조 수사는 위기에 봉착한다.
2017년 설 연휴에 개봉해 781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조>는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일구어냈다. 현빈과 유해진의 케미가 돋보이는 가운데 짧은 분량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윤아의 푼수 연기, 강렬한 악역의 존재감과 나름 짜임새 있는 액션의 조합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편의 성공방식을 고스란히 취하되, 규모를 착실히 키우며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로 잔뜩 무장한 종합 선물세트로 돌아왔다.
성공 공식을 답습한 <공조2>의 명암
실제로 <공조2>는 전작에 비해 한층 돈독해진 림철령과 강진태의 케미에 새로운 인물인 잭을 더해 더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민영과 철령의 로맨스 코미디도 잭 덕분에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뉴욕에서의 총격전처럼 한층 커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장면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결과물은 전편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선택이 상업적으로 적중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메가폰을 잡은 이석훈 감독이 <댄싱퀸>, <히말라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을 흥행시킨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명절 연휴를 겨냥한 흥행이 점쳐지는 것과는 별개로 <공조2>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동일한 성공 방정식을 활용했지만 전편에 비해 영화의 톤과 분위기는 일정치 않다. 많은 이들이 좋아할 다양한 상차림을 펼친 것과 달리 정작 메인 디쉬는 없는 듯 보이고, 깊은 맛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하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장명준과 림철령이 있다. <공조2>는 새로운 인물인 장명준의 서사를 펼쳐 보이면서 스타트를 끊는데, 첫 단추에서 시작된 불협화음이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어진다.
<공조>와 <공조2>의 결정적 차이
당장 오프닝 장면부터 <공조2>는 전작과 매우 유사하다. 일전에 '차기성(김주혁)'의 범죄를 막으려다가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던 림철령은 이제 장명준의 범죄와 탈출을 막는 데 실패하고 아끼는 동료를 잃는다. 이후 차기성처럼 남한으로 향한 장명준을 쫓아 철령은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고, 진태를 만나 공조 수사를 펼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조2>는 전편이 개척한 길을 착실히 뒤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극의 주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공조>는 한 마디로 말해 림철령의 복수극이다. 자신이 신뢰했던 상관의 손에 아내를 잃은 철령의 복수심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령의 시점에 몰입한 관객들은 자연히 차기성을 응징하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감정의 밀도가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공조2>는 장명준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외화를 벌기 위해 당의 명령을 따라 군인의 명예도 버리고 마약 밀거래를 시작한 장명준.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어온 외화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범죄자의 길을 택한다.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이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서는 북한 측 10억 달러의 비자금을 훔쳐 복수를 실행할 미끼로 삼는다.
따라서 작중 모든 사건과 에피소드는 장명준에 의해 발생하며, 공조를 펼치는 세 형사는 그 사건들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명준이 숨기는 진짜 목표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 그의 큰 그림과 동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그 결과 뉴욕이나 폐공장, 클럽 VIP룸과 북한 대사 숙소처럼 장명준과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거나 충돌하는 시퀀스를 제외하면 이들 간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명준과 세 형사의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로 긴밀하게 엮이는 대신 다 따로 노는 듯 보인다.
달라진 주도자가 밀어버린 스노우볼
물론 장명준을 스토리텔링의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각 캐릭터에게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티키타카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를 오가는 <공조2>의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장명준을 매개로 잭이 공조수사에 투입되어 림철령과의 라이벌리를 조성한 결과 강진태의 큰 형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 대표적이다. 또 빌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혹은 복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기에 림철령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철령과 진태의 관계에서는 익숙한 듯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이에 더해 조연이었던 민영의 역할이 늘어나 로맨틱 코미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해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간의 집약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장명준은 철령에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비록 뉴욕에서 철령이 동료를 잃기는 하지만, 눈앞에서 아내가 살해된 것에 비하면 정서적인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료가 죽는 것은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기제라고 보기 어렵다. 즉, <공조2>는 전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동기를 대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했다. 이때 영화는 굳이 장명준과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장명준이라는 빌런의 캐릭터성을 강화하여 옅은 관련성을 가리려는 듯 보인다. 악역의 잔혹함이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각인시켜 주인공들과의 대립에 개연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 밀수를 통해 북한 정권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복수하려는 장명준의 서사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차기성에 비해 꽤나 상세하게 제시된다. 전편의 철령만큼이나 장명준은 절박하고 다급해 보이는 캐릭터로 비친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의 포커스는 진태, 철령, 잭에게 쏠려 있고 장명준은 국면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는 언밸런스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민영이 호감을 느끼자 잭을 질투하는 철령이나 국정원 요원들과 갈등을 빚는 진태처럼 부차적인 장면들이 거듭 더해지다 보니 장명준의 존재감과 복잡한 서사를 소화해낼 충분한 비중과 분량은 미처 주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서브플롯 중 무엇을 희석시키고 무엇을 농축시켜야 할 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림철령과 잭이 아니라 현빈과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심심할 때마다 등장하는 슬로 모션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편을 좋아했을 관객들에게 추파를 보내기에 바빠 극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산만함
결국 전편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액션과 코미디를 활용했다면, 이번 편은 액션과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짠 것처럼 보인다. 액션이 등장할 때, 민영과 함께 코미디가 나올 때, 강진태의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고 장명준의 범죄 행각이 묘사될 때마다 영화의 톤과 템포가 전혀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 널 뛰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악역인 장명준은 망설임 없는 잔혹한 악행과 독특한 비주얼, 림철령에 견줄 만큼 날렵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전편의 경우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이나 구조가 월터 힐 감독의 1988년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레드 히트>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속편은 그보다도 못한 부실한 서사를 선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조2>는 산만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영화가 중심을 못 잡는 사이 커진 스케일 사이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장면도 발견된다. 새로운 캐릭터인 FBI 형사 잭을 투입하기 위한 배경 설정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남북 공조에 미국을 개입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북미 관계의 개선이라는 소재를 끌고 온다. 북한과 미국이 안정적으로 정식 수교 관계를 맺기 위해 잭이 뉴욕에서 검거한 북한 측 범죄자 장명준을 림철령에게 인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했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이나 평창올림픽 당시 김영철의 방남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공조2> 배경의 시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북미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2022년 현재 시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러한 배경 설정은 무리수로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이를 그저 영화 전개를 위한 가상의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터내셔널' 대신 촌티가 느껴지는 '인터내셔날'이 부제목인 데에는 첨예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스크린 속으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또 명절에 걸맞게 웃기는 액션 영화로 남겠다는 <공조2: 인터내셔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다. 비록 코미디가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고 휴지 대신 파리채를 쓰는 액션씬이 인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쁜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이기는 액션은 <공조2>가 목적을 이루는 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조2>의 완성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을 겨냥한 장르물이 OTT로 공개되는 가운데 명절 영화라는 이유로 못 만든 영화라는 비판을 피해 가는 기획과 제작에 어떤 의의가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 털이에 가까운 <공조2>의 성공 역시 과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 그 의문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D(Dreadful, 끔찍한)
흥행만을 노리는 선물 세트에 담긴 한국 상업 영화의 절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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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루프를 이렇게 빠져나오다니/로맨틱 코미디/ 어제도 오늘 내일도 오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팜 스프링스” 후기입니다. 엔드 크레딧 직전 훈훈한 짧은 쿠키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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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웨이의 연기가 돋보이는 원더랜드 속 감정 🌟 #영화원더랜드 #탕웨이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이번 원더랜드의 평가가 좋지는 못한 상황인데요. 😢🔍
영화 속에 담긴 감정은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탕웨이 #영화리뷰 #원더랜드 #영화감성 #레빗구미 #감정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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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또카지? 귀여워서 오토입니다" 전 세계가 기다려온 미니언즈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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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휴대폰 가게에서 총기 강탈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들은 가기라는 여자의 집에 침입하여 몸을 숨긴다.
평소 죽고 싶던 가기는 죽이고 나가라며 범인들을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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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서산 대교에서 조직폭력배와 학생들 간에 패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총기를 찾으러 갔다가 구급차에 실리게 되고, 그곳에서 총기 강도 사건의 범인들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