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18 11:50:45
1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속편으로 돌아온 글래디에이터, 국내 박스오피스 1위

24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Ⅱ>가 주말 관객 수 31만 명, 누적 관객 수 44만 명을 기록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약 4,300억 원의 높은 제작비 대비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제작된 <글래디에이터 Ⅱ>가 과연 기존 시리즈와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오는 22일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지난 6일에 개봉했던 <청설>이 누적 관객 수 52만 명을 돌파하며 여전히 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배우 박신양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사흘>은 누적 관객 수 15만 명으로 3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애초 '오컬트' 영화로 홍보가 된 것과 달리, '부성애'에 초점을 맞추어진 내용이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에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강세입니다.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5만 명에 그쳤던 <레드 원>이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레드 원>은 드웨인 존슨을 비롯해 크리스 에반스, 루시 리우, J.K. 시몬스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하며 제작비가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영화입니다. 북미 프리뷰 당시 250만 달러라는 저조한 수익을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현재 누적 수익 약 3,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1, 2위를 차지했던 <베놈: 라스트 댄스>와 Ever>은 한 계단씩 내려와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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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찌개와 어항의 소리
감독] 김수인
출연] 장서희, 강안나, 최소윤, 윤준원 외
프로그램 노트]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댔지?” “알았어, 알았어.” 학교에 데려다주던 엄마의 잔소리를 적당히 웃어넘기는 듯하던 고등학생 딸은 그날 세상을 영원히 등지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학교폭력,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 등 통상적인 청소년 문제를 중심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주변인 증언을 확보하면서 처음에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오묘하게 뒤틀린 모녀 관계를 발견하게 되는데….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서희가 딸 인생의 성공을 위해 그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표독스러운 엄마 역을 맡아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친다. 고생스러웠던 지난 삶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식의 인생을 통제하고드는 폭압적인 부모의 행동이 얼마만큼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현실 밀착 스릴러로, 관객에게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박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참으로 기묘하다. 코앞에서 싸우지 않아도 갈등은 감지되고, 통화의 일면만 듣거나 인사치레 같은 말만 들어도 상대와 관계의 거리감을 쉬이 가늠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펼쳐지는 엄마 혜영과 딸 유리의 대화처럼, 유리와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처럼.
혜영은 일에 바쁜 와중에도 자녀 교육을 끔찍하게 챙기는 엄마다. 학원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따뜻한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밥상에 내놓는다. 딸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꽁치찌개를, 두뇌 발달에 좋다는 이유로 늘. 꽁치찌개가 끓는 소리는 어쩐지 거실 어항의 산소 발생기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기른다는 것과 잡아먹는 것의 소리가 같아진다는 것,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독친은 그 소리가 들리는 지점을 포착한다.
*이하로 영화 <독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배우 장서희는 얼굴 가득 표정을 잘도 담아낸다. 피로와 짜증, 노력과 애착, 불안과 추궁, 아집과 독선 같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인 혜영의 얼굴을 하고, 그 감정들의 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모든 것을 수치화해 등급을 매기는 일터에서 듣는 닦달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지친 노동자의 것인 동시에, 자식을 향한 지독한 마음이 뒤섞인 것이다.
호러 영화가 아님에도, 엄마 혜영의 표정에서, 딸 유리의 표정에서, 냉한 기운이 자꾸 읽힌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 영화에서 목격한 것이 애정을 가장한 폭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놓고 펼쳐지는 폭력도 소름 끼치지만, 애정을 가장할 때 더욱 교묘하게 피부 바로 아래 끼치는 소름이 있다.
애정을 가장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상대를 직시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면서, ‘너를 위해’라는 말로 칭칭 동여맨 폭력에 몇 번 타격감을 느끼다 보면, “내가 잘못된 건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폭력의 가해자를 탓하지 못하는, 그러다 또 그런 스스로를 탓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무력해지기 쉽다.
그럴 때 무심한 말들은 아프게 와 닿는다. 무심하다는 건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거기에 진심 어린 애정은 없으므로. 담임 기범과 주변 친구들이 유리를 볼 때 집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애, 비뚤어질 이유도 없고 우울할 이유도 없고 그냥 반듯하고 행복한 애일 거라고만 봤듯이. 그러나 친구들은 이후 형사들의 질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이상했다고 말한다. 학교에 찾아와 예나를 찾는 혜영을 보며, 불쾌를 기민하게 감지하고 자리를 피했던 아이들이다. 결국 갈등은, 아픔은 어렴풋하게나마 감지될 수 있다. 누구도 유리를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에야 유리에 대한 기억들을 조각조각 모으다 보면, 사랑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다면 거기서 인간이 죽어가도 우리는 모르겠구나 통감하게 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버티다 무너지기도 한다. 라이터로 마시멜로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속눈썹을 올릴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담배를 의심하는 시선을 던지는 것은 어른들이다. 의구심의 시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짐을 얹었다. 글만 보면 다 안다던 국어 교사는 결국 끝내 아무 것도 몰랐고, 정작 영화 후반부 유리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것은 철저한 타인의 몫이다.
사랑은 결국 직면하는 일이다. 예나는 직면했다. 유리를, 그리고 자신을. 그 결과 깨닫는다. 내가 주는 사랑이 상대에게 행복을 줄 거라는 오만,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편견. 예나는 그 결론에 이르게 한 마음을 “믿음”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그 믿음이라는 말은 사실 “속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 섣불리 내린 결론을 믿은 것이므로. 예나는 속단의 위험을 깨달았고, 속단하지 않고 깊이 애정을 품으며 앓기도 했으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공교롭게도 예나가 지망하는 직업 세계에서 꼭 필요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유리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 친구들 사이, 영화과 입시생이라며 옛날 영화에서 흰 우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분위기를 가볍게 털고 넘어간 일화지만, 어쩌면 그의 말에도 일말의 진실은 묻어 있다.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진실이 들어있다. 이 영화에도 그럴 것이다.
극화되긴 했지만 혜영의 초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헬리콥터맘’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라며 신문에 나왔던 것도 옛날 일이 되었으니까. 사실 요즘은 혜영과 정반대 유형, 그러니까 자식에게 모든 걸 허용하는 방식의 양육자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곤 한다. 인터넷에는 10년 이상 교사 혹은 강사로 살아온 사람들의 고충담이 넘쳐나고, 전문가들은 그렇게 ‘건강한 거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작은 거절에도 위축될 것을 지적한다. 아이를 잘 양육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상이 될 수 없다.
유리의 행적을 담은 CCTV 속 날짜는 2024년 6월, 지금으로부터 1년가량 남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 유리는 ‘빅 스튜던트’라는 애칭의 커다란 백팩을 메고 움직인다. 항공모함처럼 물건이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무거운 가방이다. 학생 유리의 가방이 그렇게 무거워지기 전에, 민준이가 힘차게 동화책을 읽는 걸 끊지 않아도 될 기회가, 아직 1년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혜영과 유리처럼 달려가는 현실 속 수많은 곳에, CCTV 속 숫자가 작은 희망의 이스터에그가 되길 바랄 뿐이다. 끝까지 사랑의 시선 하나로 버티던 아이들의 마음이, 어딘가에는 가 닿길 바랄 뿐이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중 상영일정
7월 1일 19:30-21:14 CGV소풍 4관 (상영코드 338)
7월 4일 19:30-21:14 CGV소풍 4관 (상영코드 634)
7월 6일 11:00-12:44 CGV소풍 10관 (상영코드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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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운명처럼 찾은 제천
운명처럼 찾은 제천, 영화 '오늘의 장내' 이호현 감독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충청북도 출신 혹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제작자가 만든 제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 4편을 ‘메이드 인 제천’ 부문으로 선정하였다. ‘오늘의 장내’는 4편 중 유일한 장편영화로,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하면서도 극적으로 담아내었다. 지난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오늘의 장내’의 이호현 감독님을 만나 영화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메이드인제천’ 부문에선정었는데, 소감한말씀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전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게 영화 음악이 아니라서 출품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요. 이 작품을 제천에서 촬영하게 되고, 출품할 영화제를 찾아보던 중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메이드 인 제천’ 부문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생각입니다.
영화의 배경을 제천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장소만이 가진 고유의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어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하는데요. 예전에 제천에서 조수 생활을 하면서 머문 적이 있었어요.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수도권의 배경들이 아닌, 세월이 묻어나 있는 건물, 제천이 갖고 있는 역사가 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제천을 영화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상은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시작해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인트로 장면을 쉽게 썼었어요. 하나와 전화 통화를 하며 버스를 내리는 장면으로 썼는데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게 들어간 거 같아 고민했죠. 상은이와 딱 맞는 장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던 중 ‘오디션’이라는 소재가 생각났어요. ‘상은이가 어떤 대본을 갖고 오디션을 볼까?’ 상은 역할의 지홍 배우와 함께 계속 고민하다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과 오늘의 장내 ‘상은’이가 닮아있다고 생각해 쓰게 되었습니다.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그곳’ 이라는 곡을 직접 작사하셨어요.
건방진 생각일 수 있는데, 저는 영화 음악이 들어가지 않고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관객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음악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음악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엔딩곡만큼은 이 영화를 대변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작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관통할 수 있는 가사를 며칠 동안 고민해서 보내드렸어요. 음악 감독님이 마음에 드셨는지 제 가사를 보고 5분 만에 데모를 보내주셨어요. (웃음) 남자 보컬의 목소리를 얹으니, 마치 상은이가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등장인물이 상영, 상일, 상이, 상삼까지 있는데 왜 상은이만 ‘상은’일까요?
‘상은’이라는 이름은 제 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이름이에요. 매번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은’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등장하죠. 저만의 재미입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돌림자를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어요. 상영, 상일, 상이, 상삼 친구들과 달리 상은은 조금 사람다웠으면 하는..? (웃음) 나머지 사촌들과 다른 캐릭터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은 감독님의 이스터에그인거네요. (웃음) 그러면 마지막으로 짐프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발리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도 좋은 평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제천에서 상영하며 한국 관객들은 어떤 반응일까 해서 긴장이 많이 되었어요. 너무 많은 분이 재밌게 봤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런닝 타임이 길지 않아 즐겁게 보실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제천 영화제에서 미처 못 보신 분들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된다면 꼭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을 다룬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영화,’ 오늘의 장내’. 비 오는 날 제천에서 관람하면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은근한 웃음과 파도치는 감동, 영화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음악 ‘그곳’까지.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제 막을 내리지만 ‘오늘의 장내’가 주는 감동은 계속될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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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본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개인이 겪은 끔찍한 일들도 아주 세세하게 전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대중적으로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다시 그것을 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아마도 현대 사회의 매체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고 인간이 가진 호기심이 더더욱 그것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사건사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이고 완전히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고나 참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 끔찍한 일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 진실을 찾아낼 때 영상이나 음성 같은 물리적인 증거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일을 직접 경험했거나 옆에서 보게 된 사람들의 증언은 중요하다. 수사기관들이나 기자들이 관련자들을 만나고 그때의 일을 들으려고 하는 노력은 진실을 찾으려는 가장 보편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증언을 하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밀실 살인 사건 피의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
영화 <자백>은 어떤 사건과 관련 있는 한 남자와 그가 고용하려는 변호사가 주고받는 대화로 구성된 이야기다. 한 호텔 방 안에서 세희(나나)가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방에 같이 있던 민호(소지섭)는 범행을 부인하지만 그 방 안에는 두 사람만 있었고 다른 문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민호는 실력 좋은 변호사인 신애(김윤진)를 고용해 자신의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 영화는 민호와 신애가 한 별장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바탕으로 사건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차근차근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알리바이나 증언을 말하고 있는 민호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다. 민호는 사건의 처음부터 세희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초반에는 민호가 하는 증언은 한줄기뿐이다. 그래서 민호의 말은 아주 강한 신뢰를 가진다. 그러다 중반부부터 증언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민호의 이야기는 점점 신뢰를 잃어간다. 그러니까 영화는 대부분을 민호가 이야기하는 증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말의 힘이 점점 빠져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 힘을 빼는 건 숨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변호사 신애의 힘이다. 정곡을 짚어내며 이야기의 약점을 보강하려는 신애의 노력은 고객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파악하여 변론에 활용하려는 것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힘이 된다.
진실이 바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은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다. 민호가 가지고 있는 진실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무척 생동감 있고 설득력 있지만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야기의 허점이 보일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일단 민호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볼 수밖에 없다. 관객들에게는 일차원적인 정보가 먼저 주어지고 영화 상영시간에 순차적으로 제공되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겹쳐지는 영화의 이야기
최근 한국에 큰 참사가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에서 보게 되었다. 그 참사가 왜 일어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증언과 재구성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영화 <자백> 속에서 증언하는 사람은 한 명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많은 순간 혼란스럽다. 참사 일어난 직후 그런 증언이나 정보들이 적었다. 그 순간에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현실에서는 다양한 목격자와 증언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일의 이면에 있는 일들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현실에서는 그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진실이 드러나고 명확하게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나온다. 영화 <자백>의 이야기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영화의 초반에는 진실이 모호하고 어떤 사람이 그 사건에 죄가 있는지 알 수없다. 하지만 서서히 그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그 진실의 대가를 누군가가 치른다. 여전히 모호한 현재의 상황과 무척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스페인 영화는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과 동일하게 진행되는 초반과 중반은 크게 다른 점을 느낄 수 없다. 적절히 어울리는 한국 배우들을 각 캐릭터에 캐스팅했고, 그들의 연기가 주는 생동감도 영화에 힘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조금 더 박진감이 넘치게 재구성되었다. 이야기의 반전을 일찍 공개하고 그 이후에 다른 작은 반전을 추가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꽉 끌어당긴다. 원작에서 다소 약했던 권선징악의 강도를 좀 더 센 방식으로 재구성하면서 관객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좀 더 극대화시켰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스페인 원작의 담백하지만 임팩트 있는 결말을 좋아했던 관객들에게는 한국식 스릴러의 긴박하고 박진감 있는 결말이 너무 나갔다거나 다소 번잡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한국식 클라이막스로 변형된 리메이크 영화
대체적으로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역할에 잘 맞는데, 특히 세희 역을 맡은 나나의 연기가 무척 좋다. 민호의 이야기에 따라 인물의 성향이 상반된 형태로 화면에 등장하게 되는데 그 분위기에 따라 딱 맞는 연기 변화로 극에 설득력을 높여준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연기 모두를 소화하는데 전혀 이질감이 없이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 최근에 시리즈 [글리치]에서도 자연스럽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나나는 향후에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봉한 지 한 주가 지난 영화 <자백>은 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통쾌함이 있다. 10.29 참사 이후 벌어지는 일들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이 영화에서의 민호가 하는 행동이 현실에서 다른 증언을 하고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는 가해자가 그가 한 짓의 대가를 치루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누구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직 진행 중인 현실의 이야기도 영화의 결말처럼 진정한 사과와 대가가 내려지길 기원한다. 그것이 그 일에 희생당한 사람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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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함의 위대함이 담긴 따뜻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개봉 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잘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을 찾는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그 무언가를 빨리 찾은 사람들은 그 길을 자신의 길이라 믿고 최선을 다해 그 능력을 배우려 노력하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 능력을 이용한 직업을 찾아서 생활을 해나간다. 그 특별한 재능은 한 사람을 특정 짓는 것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찾는 과정은 삶에서 꽤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재능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특별한 무언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많은 일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을만한 일을 찾는다. 그렇게 자신만의 직업이 생기고 그것을 해 나가지만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모습을 동경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팬이 되기도 하고, 그들과 가까워지고 힘이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재능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꿈꾸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열등감이 싹트기도 한다. 그런 나쁜 생각들을 억누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정적 감정은 겉으로 표출되기보다 안에 쌓여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그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이다.
마법능력을 가진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개개인이 각기 다른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그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마법의 힘을 얻지 못한 미라벨(목소리:스테파니 비트리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드리갈 가족은 할머니 아부엘라(목소리: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가 얻은 촛불의 마법 덕분에 모든 가족들이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마법의 문을 열어 자신만의 능력을 얻는다. 미라벨도 그 시기가 되어 마법의 문 앞에 서지만 그에게는 마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의 능력은 다양하다. 미라벨의 엄마 훌리에타(목소리:앤지 세페다)는 음식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언니 루이사(목소리:제시카 다로우)는 힘이 세서 무엇이든 들고 옮길 수 있다. 또 다른 언니 이사벨라(목소리:다이앤 게레로)는 자유자재로 아름다운 꽃을 만들 수 있다. 그 밖에도 날씨를 조절하거나 작은 소리를 잘 듣고, 미래를 보는 등의 능력을 가진 가족들의 모습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실제로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마드리갈 가족은 그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마드리갈 가족을 신성하게 여긴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미라벨이 등장할 때, 그의 모습은 그저 밝아 보인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마드리갈 가족들이 가진 마법을 하나씩 설명할 때 그의 얼굴은 자랑스러움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하지만 그가 특별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의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하고 실제로 미라벨의 표정도 작은 아쉬움이 보인다. 이내 다시 미소를 되찾고 자신의 가족들의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미라벨의 말은 그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 잘 보여준다.
가족 중 유일하게 평범한 미라벨, 그가 가진 감정
<엔칸토:마법의 세계>의 초반, 극을 이끄는 주된 감정은 아쉬움이다. 주인공 미라벨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마법에 대한 아쉬움과 약간의 열등감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굉장히 낙천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건 미라벨이 가진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그가 가진 가족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중반 이후 미라벨의 행동을 이끄는 건 아쉬움과 열등의 감정이라기보단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염려다.
마드리갈 가족의 집에 생기는 균열과 파괴는 미라벨에게만 보인다. 그 균열과 파괴가 왜 일어나는지, 왜 미라벨에게만 보이는지 같은 미스터리가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이야기의 동력 중 하나다. 이 단순한 미스터리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이 애니메이션 안에는 특별히 악당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나 얄미운 캐릭터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적 긴장감이 끝까지 잘 유지된다. 특별한 악당 하나 등장시키지 않고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디즈니의 힘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초반 관객은 미라벨의 어려움과 아쉬움을 보게 되지만 각 가족 구성원들의 감정과 진심이 드러나게 되는 중반 이후에는 그들이 가진 감정과 고충을 알게 된다. 미라벨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알게 되고, 결국에 할머니가 가진 생각들까지 알게 된다는 측면에서 다르게 보면 가족의 감정을 알게 되는 어드벤처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결국에는 각 가족 구성원들까지 세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 자체가 많다.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캐릭터는 총 12명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등장인물이 많기도 하다. 이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색깔로 표현해 가족들의 특징을 뚜렷하게 담았다.
아름다운 색감과 음악으로 가득 찬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무엇보다 <엔칸토:마법의 세계>는 화려한 색감을 가진 영화다. 각 가족 구성원들의 색깔을 다르게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물들과 건물들의 색감은 화려하다. 또한 뮤지컬 장면에서 등장하는 폭죽 장면과 축제 모습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디즈니의 다른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 제작진들이 다시 모여 만든 영화라서 아름답고 화려한 화면이 돋보인다. 또한 이번 영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지점이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과 음악들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기 뮤지컬 <해밀턴>의 작사/작곡/주연을 맡았고, 디즈니 <모아나> OST에 참여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음악 작업에 참여하여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가 좋은 돌비 시네마에서 관람한다면 더욱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한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현대 확장된 가족의 의미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비록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고, 친구들과도 그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 구성원들 간에도 평범한 사람과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뿐만 아니라 개인의 주변부로 이야기를 확대해도 충분히 공감 갈만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 캐릭터인 미라벨은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화합과 치유의 정서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면 이 영화는 평범함이라는 위대한 마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 포스팅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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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오늘은 천재적인 지능을 가졌지만, 서번트증후군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동생과 불편한 동거를 하며 다룬 이야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가지고 왔어요!
연기 천재 박정민과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의 주연으로
이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지!라는 생각을 가지며
즐겁게 본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살펴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코미디, 드라마, 스포츠, 가족, 음악
감독 / 각본 : 최성현
출연진 : 이병헌, 윤여정, 박정민
개봉일 : 2018년 01월 17일
평점 : 9.17
스트리밍 : tvN ,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한때는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오갈 데 없어진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원).
우연히 17년 만에 헤어진 엄마 인숙(윤여정)과 재회하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따라간 집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뜻밖의 동생 진태(박정민)와 마주한다.
라면 끓이기, 게임도 최고로 잘하지만 무엇보다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서번트증후군 진태, 조하는 입만 열면 '네~'타령인 심상치 않은 동생을 보자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경비를 마련하기 전까지
꾹 참기로 결심한 조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불편한 동거 생활을 하기 시작하는데...
여담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으로 인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병헌의 찌질한 동네 백수 캐릭터와
박정민의 서번트 증후군의 연기와 더불어 피아나 연주까지.
두 사람의 케미가 환상적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극중 피아 노신은 CG 없이
박정민이 직접 3개월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하며 소화해냈다고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결말을 살펴보자면...
지방으로 떠나 일을 한다던 엄마(윤여정)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조화(이병헌) 17년에 다시 만났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으로 원망과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올라온다.
조화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캐나다로 떠나려고 했지만
눈에 밟히는 진태(박정민)곁에 남기로 한다.
결국 엄마는 돌아가시지만, 진태의 옆에는 든든한 형 조화가 남아
든든한 형이자 보호자가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기 잘하는 사람 옆에
또 연기는 잘하는 사람이 모여 뻔하지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민의 피아노 연기와 더불어 서번트증후군 연기...
진짜 최고인 것 같다!!
한줄평 : 뻔한 이야기, 다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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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드>, 안전이라는 이름의 폭력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탤릭체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네모 칸의 타이포와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학생들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장면들을 제시한 후, 카메라가 비추는 밤의 풍경에서 학생들의 실루엣은 사라졌지만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학생들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온다. 영화의 타이포에 반듯하고 굵은 이탤릭체가 눈에 먼저 들어오고 카메라가 학생들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듯, <해피엔드>는 주체의 시선으로 선택한다. 오프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말하는 화자 대신 듣는 청자를 비추거나, 전혀 상관없는 배경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림자를 찍기도 한다. 이런 카메라의 규칙은 교장과 그 옆의 선생들 등 권력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화면의 정중앙에서 말한다.
또한 시위나 지진의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데모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지진의 상황에서는 소리 없이 흔들려 떨어지는 물건만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교장실 칩거 농성도 처음 교장실을 점거할 때의 장면이 아닌 이후 교장실에서 대치하는 장면을 선택한다. <해피엔드>가 주체의 시각을 선택했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에 있다. 인물들이 다니는 학교는 하얗고, 24시간 돌아가는 감시카메라와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안전’한 곳이다. 뉴스 속 총리는 시만들의 안전을 주장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엄중한 배제를 약속한다. 언뜻 보면 ‘안전’해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근간에는 소수자들에 대한 ‘타자화’가 깔려있다. 카메라가 시위와 지진을 숨기듯 세상또한 시위와 지진을 숨기며 ‘안전’한 사회처럼 보이게 만든다. 소수자인 문제아, 이민자, 재일외국인들은 학교와 세상 속 권력의 시선을 피해 숨거나, 숨겨져야 한다.
깔끔한 건물과 좋은 차가 있는 만들어진 사회와 달리, 진짜 사회는 어둡고, 구름 가득한 하늘에는 붉은 글씨의 뉴스가 뜨며 매일 지진 재난 문자가 날아든다. ‘안전’의 이면에서 사는 학생들이기에 학교, 사회가 애써 감추고 있는 부조리함을 본다. 그러나 같은 문제아로 치부되어도 유타와 코우는 동일한 선상에 서 있지 않다. 유타가 교장의 차를 보며 같이 장난을 치자고 권유할 때, 학교에서 야타와 경찰을 주제로 농담을 할 때 유타는 고개를 들고 서있지만, 코우는 허리를 굽히고 있다. 유타와 코우가 클럽이 있던 장소에서 말다툼을 할 때도 코우는 서있는 반면 유타는 고개를 숙이고 디제잉에 집중한다.
초반의 장면, 경찰의 단속으로 사람들은 클럽에서 빠져나가고, 코우도 사람들처럼 클럽을 떠나려하지만 음악에 심취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유타를 보고 돌아온다. 또, 유타의 집에서 제일 먼저 집밖을 나가는 건 코우다. 아이들은 코우를 선두로 차례차례 집을 떠나지만 유타는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다. 위 장면들은 유타와 코우의 성격을 보여준다. 코우는 재일외국인으로 엄중한 잣대 위에서 살아간다. 유타가 경찰에게 잡히면 단순한 학생의 일탈로 치부되지만 코우는 자신의 존재와 삶을 위협받는다. 교장의 차에 장난을 치려는 유타를 말리거나, 교장실 점거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도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타는 동아리실을 폐쇄하고 음악 기기를 창고에 옮기자 혼자서라도 그 기기들을 훔쳐오는 즉흥적인 인물이다. 코우의 시선으로는 같은 짓을 해도 유타와 자신에게 다른 결과가 따르는 현실과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기는커녕 아무 생각 없어만 보이는 유타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반면 유타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바뀌지 않았으나 한마음 한뜻으로 어울리던 친구들이 점차 흩어지고,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가는 것에 소외를 느낀다.
이 둘의 갈등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해소된다. 유타는 악기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시위하는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다 경찰에 붙잡혀 끌려 나가는 장면을 본다. ‘안’이라는 유타의 공간에 ‘밖’이 침범하게 되고, 이후 같이 서드 앰프를 옮기던 코우또한 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찰에 잡혀 끌려가는 것을 본다. 이는 유타가 코우가 서 있는 위치가 자신과 다른 ‘밖’임을 인식하게 되는 장면이다. 영화의 후반부, 교장실 점거 농성이 있은 후 교장의 연설에서 학생들은 교장의 감시카메라 철폐에 환호하는 쪽과 ‘예방’의 효과가 있다며 반대하는 쪽으로 나뉜다. 이때 환호하는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코우와 달리 유타는 반대편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위치한다. 자신의 차에 장난을 친 범인을 고발하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교장의 조건에 유타는 범인이 자신임을 고백하고 퇴학당하며, 비로소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게 된다.
코우는 후미와의 만남으로 성장한다. 후미는 일본인이지만 재일외국인들이 받는 차별에 관심을 가지고, 시위에도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다. 후미와 만나며 코우는 시위에도 참가하는 등 방어적인 기제를 조금씩 벗어가지만, 시위 사실을 학교에 들키고 장학금을 빌미로 협박받는다. 이런 일들이 있고, 코우는 후미를 필두로 교장실로 점거 농성을 하러 가는 무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헬멧을 쓰고, 김밥을 챙겨 교장실로 들어간다. 코우가 일본인과 재일외국인이라는 차이로 유타에게 일방적으로 가졌던 질투와 억울함을 후미의 존재를 통해 해소하고, 밖에서 안으로 이동한다.
<해피엔드>에 나오는 지진과 EDM, 시위는 모두 ‘흔들림’으로 묶인다. 사람들은 지진을 재난으로 보고, EDM을 불량하고 방탕하다 여기며, 시위를 폭력적이라 여긴다. 그러나 유타가 세워놓았던 교장의 차가 지진으로 전복되어버리고, 점거 농성이 인권을 침해하는 감시카메라 철거를 이룬 것처럼 이런 흔들림들은 해방과 저항으로써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 한 번의 흔들림이 기분 좋은 결말을 가져올 수 없음을 시시한다. 유타와 코우의 갈등에서도 해소와 성장의 암시만 있을 뿐, 직접적인 장면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코우가 여전히 유타를 두고 먼저 계단을 내려가듯, 둘이 완전히 동일 선상에 서게 된 것도 아니다. 영화의 결말부, 코우가 대학 장학금을 받고 손님들이 환호하는 장면에서 가만히 멈춰져 있던 전등은 환호하는 손님의 머리에 부딪치며 다시 요동친다. 지진은 완벽한 사회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 일어난 후에도 새로운 부조리함은 생겨난다. 그러나 적어도 지진을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는 잉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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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면 구속되던 시절
책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꿈에 새로운 도시를 희망한 건축가들이 동참했다
위험한 계약이라 불리던 ‘위대한 계약’
그리고 세계 어디에도 없던 도시의 탄생!
책과 영상과 예술의 문화 허브에서
새로운 미래를 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