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04 11:30:29
1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박스오피스

<베놈: 라스트 댄스>가 개봉 2주 차에도 국내와 북미에서 주말 관객 수 1위를 지켰습니다.
이전 시리즈보다 다소 낮은 오프닝 스코어로 출발해 향후 성적이 주목되었으나,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이 2억 달러(약 4,143억 원)를 돌파하며 우려를 잠재웠습니다.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였고, 북미에서는 9,000만 달러의 누적 수익을 거두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주에는 프랑스에서 650만 달러(약 89억 7,650만 원), 일본에서 380만 달러(약 52억 4,780만 원), 중국과 멕시코에서 각각 7,060만 달러(약 974억 9,860만 원), 1,340만 달러(약 185억 540만 원)의 수익을 거두며 시리즈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타 슈퍼히어로 영화들보다 적은 예산인 1억 2,000만 달러 (약 1657억2000만원)로 제작된 <베놈: 라스트 댄스>는 이러한 흥행에도 시리즈 1, 2편의 성적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극한직업> 이후, 류승룡, 진선규가 의기투합한 <아마존 활명수>와 <보통의 가족>이 주말 박스오피스 2, 3위를 기록했으나, 각각 누적 관객 수 36만 명, 59만 명에 그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북미에서는 <와일드 로봇>이 다시 2위를 탈환하며 장기 흥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스마일 2>가 3위로 내려왔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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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리 정주행 특집 ②] 마루 밑 아리에티 (The Borrowers, 2010)
- 지브리 정주행 특집 두 번째 영화-
"넌 내 심장의 일부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
마루 밑 아리에티, 2010
우리 집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소인이 살고 있다면?
심장이 아픈 인간 소년과 소인족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
<귀를 기울이면>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SYNOPSIS
심장이 아픈 소년 쇼우는 수술을 앞두고 엄마가 어릴 때 지냈던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골집에 머물기 위해 내려온다.
그 집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바로 마루 밑에 인간의 물건을 몰래 빌려쓰며 살아가는 소인족 가족이 있다는 것!
어느 날, 소인족 소녀 아리에티는 아버지를 따라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생필품들을 빌리던 도중 밤 잠 이루지 못한 쇼우와 눈이 마주친다.
인간에게 들키면 위험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아리에티는 없었던 일인 척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전날 흘린 각설탕과 함께 몰래 쪽지를 건네주고 계속해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쇼우의 집에 같이 사는 가정부가 소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아리에티의 엄마를 찾아내 유리병에 가둬두게 되고
아리에티는 엄마를 찾고 이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유일한 인간인 쇼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REVIEW
1. 소인들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생활들
쿠키와 각설탕은 빻아서 밀가루와 설탕으로 쓰고, 작은 집게는 머리끈으로, 옷 시침핀은 호신용 무기로 쓰고!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고 사용하는 일상의 모든 물건들이 소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되고 또 어떤 도구로 활용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재밌고 사랑스러웠다.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많이 느껴졌다.
우리가 평소에 잃어버린 물건을 소인들이 빌려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네이버 평점을 읽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면서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어른이 되어서 발견한 너무나 아름다운 동화라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센과 치히로 다음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지브리 작품이었다.
(미안 하울.....)작품을 보기 전에 어렴풋이 어떤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한번 놀랐고, 다 보고 나니 이런 작품이 왜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았을까??에 또 한번 놀랐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제발 한번 꼭 보시길! 내용도 좋고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풍경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2. "빌린다"는 표현
이 작품은 소인들이 인간의 물건을 가져와 쓰는 것을 "빌린다"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 표현을 듣고 뭐지? 싶었는데 생각할 수록 너무 귀여운데다가 조금은 짠하기까지 했다.
사실은 허락 없이 가져오는 거라 빌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소인들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빌린다는 표현이 이 작품에서는 꽤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참 여러모로 정성이 많이 담긴 작품이다.
3. 잃어버린 물건, 각설탕
아리에티가 전날 밤 쇼우에게 들켜 떨어트리고 온 각설탕을 돌려주러 온 쇼우.
너에게 소중한 물건인 것 같으니 가져가, 라는 뜻과 동시에 아리에티가 그토록 모른 척 하고 싶었던 '인간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비록 직접 만난 것도 아니고, 말 한마디 없었지만, 비 오는 날! 쪽지를 적어! 그 위에 각설탕을 예쁘게 놓고 간! 이 모든 것들이 정말이지 너무너무 설렜던 명장면.... 이 작품이 하울을 제치고 어떻게 내 마음속 2위에 올랐냐고 묻는다면 조용히 이 장면을 보여줄 것 같다...!
(p.s. 자매품 꽃송이도 있어요.. 이 스윗한 사람...)
4. 쇼우의 세계
심장이 아픈, 병약미 넘치는 미소년 쇼우.
나는 쇼우의 세계가 궁금했다.
극 중에서 쇼우는 심장이 약해 크게 놀라면 안되기 때문에 조용한 곳으로 온 거라고 하지만, 사실 쇼우는 그 어떤 일에도 왠만큼 놀라지 않는 덤덤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인족인 아리에티와 눈이 마주쳤을 때에도 놀라지 않고, 아리에티를 위해서 방충망에 머리가 끼인 까마귀를 내쫓는다거나, 아무 도움 없이 지붕 위를 걸을 정도로 대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알고 보면 조금 슬프다.
극 중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너희 종족은 곧 멸망할거야'라는 모진 말을 하는데,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아리에티의 얼굴 한 번 보는 것조차 허락을 구할 정도로 심성이 착한 쇼우에게서 들을 거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게 상처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아주 담담하고 평온한 어투로 얘기한다. 아리에티는 그 말을 듣곤 자신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쇼우는 곧 '미안해. 사라지고 있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나야.'라는 말을 한다.
즉, 쇼우는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죽음을 눈 앞에 둔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러했던 거다.
어느 것 하나 크게 놀랄 것이 없으며 그저 죽기 전 만난 새로운 인연을 조금 더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세계. 저 한 외로운 소년이 죽음과 멸망에 대해 그토록 담담하게 얘기하기까지 얼마나 혼자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했을까. 어쩌면 아리에티의 "우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라는 스스로를 지키려던 말 한마디가 되려 쇼우에겐 가장 필요한 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5. Arrietty's Song
이 작품이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과는 (아마도) 별개로 ost가 너무나 명곡이다. 듣고 있으면 약간 '첨밀밀'같은 중국풍 느낌도 나는데, 또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 검색하니 작품이 그닥 유명하진 않아서인지 커버곡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 원곡보다 더 많이 들을 정도로 정말정말 잘 부르신 유튜버분이 있어 가져와봤다. 아리에티가 부르는 노래지만, 쇼우의 관점으로 봐도 해석이 되는 가사인 것 같다.
▶ BEST QUOTES
1.
위험은 멀리할수록 좋은 거야
2.
네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
3.
넌 내 심장의 일부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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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연기력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개봉작 3편
미친 연기력으로 동료 배우들에게 호평을 받은 '레슬리'역 '안드레아 라이즈 보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는 물론, 제35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제38회 필름인디펜던트스피릿어워드 여우주연상,
제60회 히혼국제영화제 여자배우상까지 거머쥐었는데요.
이번 주는 특히! 놀라운 연기력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영화들이 개봉했는데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연출한 마이클 모리스 감독의 <레슬리에게> /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 <마션>, <글래디에이터>등 수많은 명작을 뽑아낸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까지 놓쳐서는 안 될 영화 신작 세편 같이 한번 만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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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인 난맥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법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승패를 가리는 장소라고 믿으며 각종 꼼수와 편법에 능통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그는 감옥에서 암에 걸린 아버지의 가석방을 약속받자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 대령의 변호를 맡기로 결정한다.
군인 신분 때문에 재판 기회가 한 번 밖에 없는 박태주. 하지만 그는 변호인에게 쉽사리 협조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인 그의 눈에 정인후는 양아치니까. 그가 내란을 사전에 공모했는지, 아니면 위압에 의해 명령을 따랐는지가 재판의 쟁점인 가운데 박태주는 거짓 혹은 편법 증언을 요구하는 정인후와 거듭 부딪힌다.
한편, 10.26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겠다는 야욕을 품은 합수부장 '전상두'(유재명). 박 대령 재판을 자기 발판으로 삼기로 결정한 그는 실시간으로 재판관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재판을 도청 및 녹음하며 정인후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무위에 그친 역발상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경호원들은 박정희 대통령 외 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다룬 <행복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어중간하다. 사건의 전후사정이 이미 영화화돼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의 동기를, <서울의 봄>은 사건 이후 12.12 군사반란을 영화화했다. 심지어 둘은 장르도 달랐다. 전자는 누아르를, 후자는 전쟁 영화의 속성을 강조했다.
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년의 밤>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역발상을 했다. 10.26 사태나 주동자인 김재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공범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에게 주목했다. 특히 그들의 인생사를 각색해 극명하게 반대되는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게 되는 과정을 법정물로 포장해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는 역발상의 힘을 스스로 포기했다. 신념과 규칙에 충실한 삶 대 생존을 위해 유연해야 하는 삶이라는 대립 구도를 깊게 파고드는 대신 쉬운 길을 간다. 무조건적인 악역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워 스케일을 키우고 군사 정권과 민주 시민의 대립을 강조한다. 문제는 같은 이야기로 천만이 넘는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 선배들이 있다는 것. 결국 노선을 바꾼 순간 <행복의 나라>는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다.
거대한 사건 속 개인적인 이야기
장르만 놓고 보면 <행복의 나라>는 <변호인>과 비슷해 보인다. 둘 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법정물이니까. 하지만 두 영화의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변호인>은 분노를 연료로 삼아 달리는 작품이었다. 무고한 피고인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군사정권의 무도함과 그에 맞서는 변호인의 투쟁. 이 명확한 선악 구도에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더하니 마치 들끓는 불과도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행복의 나라>는 다르다.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있는 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성이 핵심이다.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두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인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을 꿈꾸며 판검사가 되려다가 실패한 변호사다.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곳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곳이라는 대사에는 그의 인생이 축약되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박태주 대령이 앉아 있다. 그는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인데도 판자촌에 집이 있을 정도로 청렴한 군인이다. 요직에 있지만 권력을 마다하고 최전방 전출을 거듭 요청한 참군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10.26 사태를 매개로 완전히 다른 두 삶을 충돌시킨다. 배경은 대한민국의 향배를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지만, 정작 내용은 철저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감독의 전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도 유사하다. <광해>도 중심 사건은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정치극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된 내용은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충(忠)으로 무장한 유학자 '허균'(류승룡)이 광해군으로 위장한 광대 '하선'(이병헌)과 지내면서 자기 신념과 사상의 문제를 깨닫고 새 나라와 새로운 왕을 꿈꾸게 되는 티키타카야말로 천만 관객을 휘어잡은 원동력이었다. <행복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두 인생의 충돌로 빚은 법정극
전혀 다른 삶의 궤적과 신념을 지녔다 보니 정인후와 박태주의 첫 만남은 엉망이었다. 정인후는 철저한 원칙주의자 군인 박태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관등성명, 상명하복이 권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다며 비웃는 사람이니까. 박태주도 다르지 않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법정에서 온갖 편법을 써가며 승리를 추구하고, 정의가 아니라 돈과 이익을 위해 변호를 맡는 정인후는 단지 변호사일 뿐, 신뢰할만한 변호인이 아니다.
1차 공판만 해도 정인후는 자기 의도대로 재판에 임한다. 군인이니 군법에 따라 단심제 군사 재판을 받겠다는 박태주. 정인후는 그를 설득하는 대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 군사 재판은 받지만, 단심제는 3심제로 바꿔달라며 위헌심사요청을 한다. 위헌심사요청이 기각되자 재판관을 교체해 달라며 재판을 여론 싸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2차 공판부터는 다르다. 정인후는 점차 피고인의 입장과 신념이 녹아든 전략을 수립한다. 군인에게 명령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저 명령을 따른 박태주의 책임을 부정하는 식이다. 대통령을 살해한 후 정보부가 아니라 육군본부로 가자는 의견을 박태주가 냈다는 진술에 착안해 내란죄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태주도 정인후를 만나 변한다.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재판을 포기하려던 그. 그는 군인이고 원칙주의자면 규칙대로 재판장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서 책임을 지라는 정인후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는다.
이는 법정극 특유의 쾌감으로 이어진다. 감정 호소로 일관한 <변호인>과 달리 <행복의 나라> 속 재판씬은 판세가 거듭 뒤집히다 보니 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에 더해 흐름을 가져오려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변호인과 피고인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팀이 되는 이야기가 병행되니 복합적인 재미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인권변호사가 되어가는 정인후를 보면서 박 대령이 웃음과 하이파이브로 화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익숙한 맛으로 돌파하는 고구마
정인후와 박태주가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칫 고구마일 수 있다. 비록 역사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박태주라는 캐릭터가 다소 과하게 올곧은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 자기는 죽고, 아내와 두 아이만 남아 험난하게 살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 신념을 좀처럼 꺾지 못한다. 상관도 못 버리고, 명령에 충실한 군인이라는 자부심도 저버리지 못하고, 대통령을 살해했지만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도 내려놓지 못한다.
추창민 감독은 고구마를 익숙한 맛으로 뚫어버린다. 정인후의 아버지와 박 대령을 겹쳐 보이게 한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돕다가 수감되고, 가족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 정인후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야 하는 아버지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해도 가슴으로 이해해 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박태주를 만나는 장면과 이어진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뻔한 전개는 가족애로 변환되어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물론 다소 양식적인 스토리텔링이기는 하다.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통해 시대적 사건에 접근하면서 특히 감정선을 자극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발하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화법이니까. 야매 변호사였다가 사건을 맡은 후 진정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는 정인후나 <변호인>의 송우석이나 다를 바 없다. 또 정인후와 아버지의 관계성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신파를 의도한 구조 배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욕과 함께 무너지다
하지만 과욕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행복의 나라>는 이내 본연의 색을 잃는다. 의외로 초중반부까지 이 작품은 10.26 사태의 배경이나 실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부마 민주 항쟁이 대학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김재규의 결단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애초에 핵심 플롯 자체가 정인후와 박태주 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는 의도적인 공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12.12 군사반란을 필두로 실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역사적 맥락의 공백이 서서히 두드러지면서 영화의 만듦새도 무너진다. 배경이어야 할 사건이 돌연 주인공이 되다 보니 묻어 두었던 의문점이 한 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 일례로 중반부까지만 해도 매력적이었던 입체적인 인물상은 중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정인후의 경우 단지 박태주를 살리려는지 민주주의 투사가 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박태주도 명령에 의한 피해자인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투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가 청렴한 군인이고 신념에 맞는 명령을 따랐으니 민주주의 투사로 여겨야 하는지, 군사 정권에 협력한 군인을 살리는 게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10.26 사태의 본질과 맥락을 외면한 채로 시작한 미시적인 이야기를 무리하게 거시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장르적으로도 균형을 잃는다. 12.12 군사반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서울의 봄>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 과정을 자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10.26 사태는 지우고 12.12 군사 반란을 부각한 선택은 법정극이라는 장점도 희석시키고, <행복의 나라>만의 개성을 깎아먹는 악수가 되고 만다.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마지막으로는 극 중 전상두, 곧 전두환을 다루는 방식도 <서울의 봄>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황정민의 전두광과는 달리 유재명의 전상두는 상대적으로 일차원적이다. 전자는 들끓는 성공욕,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스 기질, 위기 때마다 빛나는 간교함이 어우러진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반면에 전상두는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살인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절대악으로만 묘사된다.
그 결과 전상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영화는 편의적으로 느껴진다. 전두환이 의문의 여지없는 악역이기는 하나, 그를 덮어두고 비난하면 메시지가 뻔해지고 재미도 덜해지기 때문. 정인후가 전상두 면전에서 욕을 하는 골프장 시퀀스가 통쾌하거나 희열이 느껴지는 대신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슈퍼맨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를 잘못 활용해 액션의 긴장감과 쾌감을 모두 놓친 <저스티스 리그>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행복의 나라>가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포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유독 짙다. 악명 높은 한 인물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이들의 서사에 우직하게 집중했다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전 시대극들과는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조정석과 이선균,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두 주연의 연기도 함께 빛이 바래기에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시대의 그림자에 가려진 개인을 비추기에는 조명이 너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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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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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다. 지루한 고향을 벗어나 창의적인 도시로 대학을 가는 게 목표다. 고향에는 그녀가 싫어하는 것투성이다. 철로변에 있는 집과 수많은 규칙들. 그녀는 별다를 것 없는 인생을 만드는 건 이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을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이름은 나름대로 괜찮을 인생의 첫걸음이다. 남들과 같지 않을 무언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일상 속에 내가 정한 무언가였으니까. 이름 정도면 다른 특별한 무언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그건 공짜니까. 끊임없이 그 이름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엄마가 화날 때면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또박또박 부르는 건 변함없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지은 이름만은 나의 영토니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정한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사회의 규칙에 맞춰 살기 바쁜 나이에는 본인이 원하는 이름 하나 정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건 자라는 내내 배워가지만 배운다고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때로 불합리한 일들은 논리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재난처럼 벌어지는 일은 그저 감당해야 한다. 몸에 익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은 견디다 보면 조금씩 그 한계치가 늘어난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깨우쳐간다.
어른의 길목에 선 이들이 겪는 희로애락은 몇 마디 말로 서술하기엔 역부족이다. 끝없는 우울감과 고민은 존재를 뒤흔든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0 아니면 1밖에 없었다. 보통은 제 성질에 못 이겨 감정을 터뜨리고 결과물은 어디 한 군데 깁스를 하거나 사건의 주역이 되는 식이다. 충동은 감정을 가속하고 내리막의 끝에 나오는 말들은 곱지 않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고 싶은 마음은 종종 주변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은 어렵지만, 주변을 낮춰보는 일은 훨씬 쉬우니까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건 번번이 엉뚱한 곳에 날아가 꽂힌다.
한 꺼풀 내 생각을 벗겨내면 타인의 의외성에 감화되는 순간이 온다. 진심으로 아끼고 속 깊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의 축이 움직인다. 영화에서 전하지 못한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틋하다. 쓰려다 말고, 다시 쓰려다 접어버린 편지에 진심이 있다. 진심은 못다 끝낸 문장 안에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편지를 읽고 크리스틴으로 전화를 건다.
봄은 마냥 행복한 계절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노란 꽃가루가 일렁이는 세계가 한참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봄에 태어났는데 꽃가루 알레르기를 겪는 아이러니라니 거 참. 봄을 생각하는 시기, 사춘기도 꽃가루 알레르기 같다. 마음에서 뭐든 밀어내는 계절, 한철 왔다 가고 고통스러운 증상도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하기보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격정을 인내했던 시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지나쳐갔다.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사춘기의 끝은 가까웠다. 여드름만 남기고 떠나진 않았다. 관계와 존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어쩌면 저 시절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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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믿음으로 무너지는 권력자를 그려내다
영화 <검은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었던 영화 <사바하>. 영화 <검은사제들>을 나름 재밌게 봤기에 영화 <사바하> 역시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 <사바하>에 대한 평이 많이 갈렸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사바하> 시놉시스
사람들은 말했다. 그때, 그냥, 그것이 죽었어야 한다고.
그것이 태어나고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다.한 시골 마을에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태어난 금화와 모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언니 ‘그것’. 하지만 그들은 올해로 16살이 되었다.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종교문제연구소 박목사는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 중이다.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이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쫓던 경찰과 우연히 사슴동산에서 마주친 박목사는 이번 건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 터널 사건의 용의자는 자살하고,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실체를 알 수 없는 정비공 나한과 16년 전 태어난 쌍둥이 동생 금화의 존재까지 사슴동산에 대해 파고들수록 박목사는 점점 더 많은 미스터리와 마주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사바하>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종교적인 지식은 덤
크리스찬에서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을 해놓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 속 드러나는 불교에서는 선과 악은 없으며 짐승이나 악귀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천왕을 데마로 소년원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소년들을 김제석이 자신을 수호하는 사천왕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점에서 크리스찬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종교적인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일반적인 상식과 그 상식에 반하는 종교적인 믿음, 그 종교적인 믿음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 구현이 됐는지 캐치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불교에 관련된 지식이 많은 사람이 봤다면 영화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불교의 색채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목사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반전스토리
솔직히 초반 영화를 보다보면 도대체 박정민의 캐릭터는 무엇일까?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하는 굉장히 모호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쌍둥이 언니가 악의 온상처럼 그려지는 듯하고 사슴동산을 구축한 인물이 도대체 누구이며, 박정민은 왜 갑자기 등장해서 자살을 권유하는 것인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박목사의 내면심리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시선 자체가 박목사의 생각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처음에 사슴동산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관객들도 충분히 같이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있었다.
솔직히 박목사보다 사슴동산에 대해서 노출도는 정보의 양은 관객이 더 많다. 박정민의 존재, 경찰의 수사반경 등 박목사의 시선에서 분리되는 컷들이 중간중간 등장하지만 그 컷들이 박목사의 생각을 앞서나게끔 만들지는 않아서 더욱 혼란스러움을 많이 야기했고, 그로 인해 결말의 반전이 나름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자의 잘못된 신념
옛날 옛적 진시황 때부터 영생은 사람들이 이루고 싶은 마지막 소원이었다. 그래서 사슴동산의 종교적인 신이었던 김제석 역시 영생을 꿈꾸며 자신의 영생을 위해 99년에 태어난 여자 이이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여기서 종교적인 요소를 떠나 일반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어긋난 신념과 욕심 때문에 무너진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네팔의 승려는 김제석에게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아이가 99년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사실 김제석은 이 예언 전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로 살아왔다. 깨달음을 얻은 자였지만 예언에 흔들려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깨달음대로 살아가고 예언에 흔들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정말 불로불사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최고의 권력에 오른 자들이 한 순간 잘못된 믿음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화 <사바하>는 굉장히 새로운 시각이었고, 나름의 작품성과 교훈성을 지닌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긴 하지만 종교가 없는 필자도 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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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 (2019)
* 이 리뷰는 영화 <레 미제라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레 미제라블> 정보
감독: 래지 리
출연: 다니엥 보나드, 알렉시스 마넨티, 제브릴 종가 등
장르: 범죄, 드라마
러닝타임: 104분
수상: 201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개봉일: 2021.04.15 (한국 개봉일)
<LES MISERABLES>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영화 제목에 그대로 반영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2019년에 개봉한 본 작품은 직접적으로 소설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해당 소설과 일정 부분 연결고리를 갖는다. 우선 극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몽페르메유는 200년 전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쓰기 전 영감을 받은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작가의 소설 속 등장한 혁명의 모습처럼 분노와 폭력이 들끓고 긴장과 불안이 도사린다. 맥락은 다르지만, '장발장'을 대입시킬 수 있는 소년 캐릭터도 한 명 등장한다. 이 소년 역시 아주 사소한 것을 훔쳤다는 이유로 경찰의 과잉 대응과 폭력적 진압에 희생되며 훗날 혁명의 주동자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 속 주인공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그렇다면, 200년 전 소설 속 프랑스의 모습은 2018년의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일까.
뿌리깊은 불신과 폭력, 터질 수밖에 없던 폭탄
영화는 프랑스가 최종 우승을 차지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거리 응원을 하며 프랑스인들이 하나로 화합된 평화의 장면들을 그린다. 하지만, 곧바로 장면 전환이 이어지며 그 화합의 순간은 잠깐이었을 뿐 프랑스의 허상을 비춰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월드컵 응원 시퀀스가 끝나고, 주인공 '스테판 루이즈'가 등장해 몽페르메유의 경찰서로 전입한다. 그는 '크리스'와 '그와다'가 이끄는 강력반에 합류하게 되는데, 흑인 하층민들을 상대로 강압 수사를 펼치고 함부로 대하는 두 명의 베테랑 강력반 형사들과는 성향이 딴판인 경찰이다. 세 사람은 함께 몽페르메유 구석구석을 순찰하는데, 서커스단을 이끄는 집시와 시장을 주름쥐고 있는 흑인들 간의 싸움을 목격한다. 누군가가 서커스단의 아기 사자를 훔쳐간 것. 아기사자를 훔쳐간 범인은 '이사'라는 동네 사고뭉치 소년이었는데, 아이를 쫓는 과정의 혼란 속에서 이성을 잃은 그와다가 이사의 얼굴에 고무탄을 쏴버린다. 이 상황이 '뷔즈'라는 소년의 드론에 찍히면서 갈등은 극화되고, 이 사건은 결국 관계의 깊은 골을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되어버린다.
불친절한 전개, 외부인의 시점에서 방관
<레 미제라블>은 보통의 영화에 비해 극의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인물 개개인의 서사와 캐릭터 간의 관계를 조명하지 않고 관객이 철저하게 제 3자의 입장에서 극을 바라보게끔 한다. 여러 개의 파편처럼 나뉘어져 있는 스토리의 구조는 사건이 심화되고, 갈등이 극에 달할수록 빌드업이 되면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던 분쟁의 촉발을 이해시킨다. 전개상 주인공 위치에 놓인 '스테판 루이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스테판을 일반적인 영화 속 주인공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어디까지나 극중 배경에 갓 입성한 외부인이다. 외부인으로서 이 지역의 잔재된 뿌리깊은 갈등의 구조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는 동일한 입장에 놓여 있는 관객을 대변한다.
이러한 관점은 극에서 인물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뷔즈'의 등장 이유를 설명해준다. 뷔즈가 등장하는 초반부의 장면들은 영화의 내용과 굉장히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드론을 사용하여 몽페르메유의 곳곳을 풀샷으로 조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뷔즈는 스테판과 달리 내부인이지만, 역할의 기능으로서는 외부인의 포지션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뷔즈와 스테판의 기능이 아예 동일하지는 않다. 뷔즈는 폭동의 주동자가 되는 '이사'를 비롯한 아이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함께 무자비한 공권력에 맞서 싸우거나 저항 의식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편에 서서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뷔즈는 폭력과 분노가 오가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 상황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지켜만 보는 방관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관객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방관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터져버린 폭력의 씨앗, 누구의 잘못인가
<레 미제라블>을 보며 작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떠올랐다. 이 역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것으로 인해 혁명의 움직임이 발생했던 것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10대 흑인 아이들이 분노한 것은 고작 새끼사자를 훔쳤다는 이유로 얼굴에 고무탄을 맞고, 폭력적인 행위와 겁박에 노출되었던 '이사'의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시켰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더 이상 이러한 사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리고 훗날 자신들이 이사처럼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인 것이다. 크리스를 비롯한 경찰들이 극중 시종일관 취하는 태도들을 보면, 지역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오랫동안 쌓여왔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잉 진압한 경찰에게 무조건적인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이 또한 무리가 있는 관점이다. 크리스의 비인간적인 태도와 그와다의 과잉 진압은 분명 잘못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무리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흑인 아이들이 경찰에게 먼저 폭력을 행했기 때문에 경찰로서 진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관객 개인의 입장에서도 크리스의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경찰로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하다가 벌어진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 명의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아이들의 폭동에 무자비하게 공격당한다. 이사의 사건이 안타까운 건 맞지만, 경찰을 두고 집단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누구의 편을 들기도 어렵다. 흑인 사회와 공권력의 관계가 악화된 원인이 무엇이며, 이 모든 서스펜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원인은 알지 못하지만, 결과는 참혹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극중 프랑스 사회 계층의 구조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극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화약탄을 든 이사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스테판이 대치한다. 그리고, 집 문을 열어 경찰들을 구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방관하고 있는 뷔즈의 시선도 함께 그려진다. 대치 상황의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세 사람 중 누군가는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 어떠한 경우의 수에도 긍정적인 결말은 없다는 것. 영화는 그렇게 붕괴된 사회의 시스템을 생생하게 전달만 해준 채 갈 곳 잃은 관객의 사고에 찝찝한 불편함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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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룸2 : 노 웨이 아웃' 관람에 앞서 복습하는 '이스케이프 룸'입장료 없다는 말에 덜컥 들어와버린 방탈출게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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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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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티저 예고편
모두가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한 발 뒤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둘.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고
‘아카리’와 ‘유나’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을까…?”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가는 길
열일곱, 우리들의 성장형 청춘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