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31 15:06:22
1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뮤지컬 리메이크 영화 <위키드> 첫 공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위키드>가 개봉 전 북미 시사회에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총 두 편으로 나누어 제작되었고, <위키드>는 그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큰 스크린에서 즐기는 환상적인 오즈의 마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가장 훌륭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중 하나”, "두 주인공의 완벽한 연기" 등 영화뿐만 아니라 주연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기 역시 호평받고 있습니다.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이번 영화는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를 원작으로 하여, 오즈의 마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한다고 합니다. 에리보는 엘파바를, 그란데는 글린다 역을 맡았습니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작가 위니 홀즈먼과 다나 폭스가 함께 각본을 맡았으며, 스티븐 슈와츠가 영화용 음악을 새롭게 편곡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1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량> '에이스메이커' 영화 투자 중단

<노량>, <악인전>, <댓글부대> 등 복수의 작품들을 투자했던 영화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설립 6년 만에 영화 메인투자·배급사업을 중단한다고 알렸습니다. 2022년부터 단 한 편의 투자작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본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입니다.
대신 향후 드라마 제작 사업에 주력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종속기업으로 보유하고 있는 ‘에이스메이커스튜디오’를 통해 제작한 첫 작품 ‘러닝메이트’는 현재 ‘티빙’과 방영 시기를 조율 중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신작 <배심원 2번>,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남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상 받는 <배심원 2번>이 LA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AFI FEST에서 처음으로 상영됩니다. ‘워너 브라더스’는 <배심원 2번>을 제한적으로 50개 미만의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니콜라스 홀트, 토니 콜렛 등 화려한 출연진이 출연하고, 현재 로튼 토마토 94%, 메타크리틱 76점을 기록하며 강력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 이러한 결정에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2024 캐나다 영화제' 개최

11월 7일(목)부터 20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2024 캐나다 영화제'가 개최됩니다. 21년도에 작고한 장 마크 발레의 대표작, 최근 높은 평가를 받은 캐나다의 동시대 영화들, 그리고 캐나다 다큐멘터리의 역사와 성취를 돌아보는 작품들이 상영됩니다.
특별히 <여기 사람이 산다>(2023)를 연출한 잭 러셀 감독이 영화제 동안 서울과 부산, 두 지역을 모두 방문하여 한국 관객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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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가족끼리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적과의 동침'은 친밀한 관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에 대해 다룬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바로 생각난 드라마가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드라마화한 '빅 리틀 라이즈'였다. 우선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로라의 남편인 마틴은 결혼 전 로라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로라를 때리고 협박하며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전직 변호사였던 셀레스트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남편을 보살피는데 조금이라도 남편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 마찰 등을 겪으면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고 셀레스트는 으레 그렇다는 듯 그 폭력을 견딘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며 피해자가 발생한다. 법적인 제도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범죄가 존재하고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그 원인과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는 법의 허점과 법에 명시된 사항들이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가정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배우자 폭행, 아동방임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법률적으로 명시된 정의가 아니다.
가정폭력은 범죄로 인정되긴 하지만 그 처벌법에 의하면 가정보호법으로 처리되어 크게 형사처리사건과 가정보호사건으로 구분된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해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사건을 진행하지만 가정폭력으로는 경미하다고 판단되어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가 되는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건으로 진행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가 성립된다. 이 경우 피해자가 고소 의사를 밝히고 사건이 기소된 후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야 가해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으며 피해자는 언제든 다시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피해자가 더 불리한 입장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느껴야 할 주거공간이 공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가정폭력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폭력의 가해자가 퇴거명령을 받고 법원에서 개입 후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가해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가 집을 떠나 쉼터로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난다. 이는 근본적으로 현 사회가 가정폭력을 '폭력'보다는 '가정'에 방점을 찍어 가정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둔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1997년 제정되어 그 이후 5번 정도 개정되었는데 20년이 넘는 법의 역사 속에 아직도 숱한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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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에 나타난 역사적 특징은 1930년대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 초반부 폭발로 인해 도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며 사이렌이 울리는 장면은 대공습이 일어난 그 시대 도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사극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전쟁 시기를 가져왔을 뿐 사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상상력이 주가 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르가 애니메이션인 만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에는 역사적 요소보다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한 판타지적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만큼 영화의 주인공인 마히토의 나이는 고작 11세로 직관적인 성장에게 있어 중요한 나이대의 인물로 설정되었다. 판타지는 공상 혹은 상상의 산물로 이루어지는데 마히토가 머리를 다치고 난 이후 왜가리를 만나는 장면을 통해 마히토의 무의식 세계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된다. 가장 큰 판타지적 요소는 바로 주인공인 마키 마히토가 새엄마인 나츠코를 찾으러 그의 큰할아버지가 주인인 ‘낙원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낙원 세계’는 대공습으로 인해 한창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며 성장할 나이에 엄마를 잃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새엄마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낙원은 어린아이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현실 세계에서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 찾고 싶었던 마히토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 아니었을까.
왜가리와 펠리컨, 앵무새 등 특정한 조류들의 반복적인 등장은 판타지적 장르의 도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중심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왜가리는 사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마히토를 낙원으로 이끌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
마히토가 나츠코를 발견해 내며 그녀와 같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어 위험요소(앵무새 관문 등)와 고단했던 여정, 어린아이에게 주어진 선택(낙원의 주인을 이어받기를 원하는 큰할아버지의 권유)은 모두 마히토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 요소들이다. 낙원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순환되는 것인지 직접 경험하고 낙원 세계만의 관습을 알아가는 마히토는 이러한 과정 속 자신을 도와주는 조력자 왜가리, 히미, 젊은 키리코를 통해 위험을 해결하고 관문을 통과하며 마히토가 점점 성장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새엄마를 받아들이며 마음을 열어간다.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성장하는 마히토를 통해 이 모든 것들이 성장 서사를 이루는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성장 서사의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히토의 낙원은 어린아이의 무의식일 뿐이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극악무도한 현실(전쟁 시대) 속에서 우리는 과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고 더 나은 방향인가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며 우리만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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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튼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All of Our Heartbeats are Connected Through Exploding Stars
감독: 제니퍼 레인스포드 Jennifer Rainsford
시놉시스:
2011년 3월 11일에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30분 후 검은 쓰나미가 해안을 덮쳐 차와 집, 사람들을 바닷속으로 내몰았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으려 100번도 넘게 다이빙하는 남자, 실종된 남편에게 아직도 편지를 쓰는 사치코, 쓰나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토코를 만난다. 이들은 바다 건너 하와이 카호올라웨섬에서 쓰나미의 잔재를 청소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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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는 이따금 지나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가령 그토록 많은 재해가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인간에 의한 각종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 위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우리의 일상과는 별개의 일로 생각하곤 한다. 이는 대단한 오만이자 착각인데, 그 까닭은, 실상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떤 것도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은 우리 중 많은 수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직시하지 않았던 해양 오염과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 탁월하게 그려낸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 파도가 휩쓸고 지난 자리
영화는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막이 오른다. 아내 잃은 남편은 죽은 아내의 유해를 찾기 위해 다이빙을 시작했고, 어머니 잃은 딸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 잃은 부인은 남편의 몫까지 살아가고는 있지만, ‘매일이 이어질수록 더 외로워’진다.
압도적인 재앙에 의해 소중한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른바 ‘상심 증후군’에 시달린다.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를 수축시켰는데, 이 중 편도체의 경우 대재해 이후 1년이 지난 후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기억의 일부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은 해류를 타고 흐른다
쓰나미의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파도는 일본을 휩쓴 후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나왔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섬을 형성한 것이다. 2011년 말, 하와이 북부에는 날마다 밀려드는 쓰레기로 고통을 겪고 있고, 거대한 그물 따위가 서로 뒤엉켜 만들어진 ‘유령 그물’은 상어, 돌고래, 물고기들 따위의 ‘죽음의 섬’이 되어 그들의 삶을 위협한다. 이것들이 부서지면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그 플랑크톤은 생선이 먹고, 그것은 결국 다시 인간의 밥상에 오른다.
놀라운 사실은, 사실 쓰나미 역시 인간의 산업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지구의 자연스러운 매커니즘이지만, 인간이 지난 250년 간 석탄과 석유로 말미암아 공장을 가동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상승했고, 이러한 이산화탄소의 1/3은 소위 지구의 ‘다른 쪽 폐’ 역할을 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바다는 점차 따뜻해졌고,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상승했으며, 그로 인해 바닷물이 ‘넘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된 것이다.
3.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트고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관객을 단순히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에 있지는 않아 보인다. 카메라는 플랑크톤들의 가장 미시의 세계에서부터,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거시적인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세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삶을 비춘다. 감독은 특유의 조근조근하고 명확한 내레이션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또 다른 시작의 밑거름이 되노라 이야기한다. ‘유령 어망’ 위에 거북손이 자리를 움트고, 쓰나미가 지난 자리에 ‘1000개의 거품’이라는 풀이 자라나듯이, 거대한 초신성이 폭발한 후 그에서 파생된 원자들이 새로운 별들의 바탕이 되듯이 말이다. 이것들은 쓰나미를 통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렇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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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냥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참한 절망론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차분히 세계가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관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저마다 영화가 던지는 단서들을 짜맞출 수 있게끔 넛지nudge한다. 또한 독특한 시각적 상상력이 인상적이기도 한데, 이는 감독이 시각 예술에 상당한 조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적인 메시지를 한번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2022.09.25(일) 10:30 메가박스 백석점 8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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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키리에의 노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리에의 노래 KYRIE, 2023
일본 / 드라마 / 119분
감독: 이와이 슌지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키리에의 노래>
여기, 이름을 버린 두 소녀가 있다.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실패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로 살기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름을 잊기로 했다. 이름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되는 명칭으로, 우린 이름을 갖게 된 순간부터 대체 불가한 단 한 명으로 살다 죽는다. 이름, 고작 한 단어지만 삶을 지칭하는 동시에 지탱한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름값'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인생값'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소녀가 버린 건 이름이 아니라 자기 삶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온 시간과 그만큼 쌓인 기억,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 자신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마오리는 형형색색 가발과 선글라스 없인 살 수 없는 잇코가 됐고, 발레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던 어린 루카는 노래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 키리에가 됐다. 마오리와 루카, 잇코와 키리에. <키리에의 노래>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지만, 끝내 본래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하는 이들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자연의 순리처럼 필연적이라,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어느 날, 거리를 걷던 잇코는 노상에서 버스킹 중인 루카를 한눈에 알아본다. 루카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은 잇코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마오리임을 알아차린다. 이미 과거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한다. 대학생을 꿈꾸던 마오리가 왜 자신을 감추고 살게 됐는지, 루카가 어쩌다 노래할 때만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들이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와 그녀의 매니저 잇코로 만났다는 게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은 삶의 기준을 가수와 매니저로 잡고 함께 나아가려 한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만 했던 것처럼, 운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주기적으로 과거 조각들을 끼워 넣는다.
시련과 고통의 집합체인 조각의 역할은 단순하다. 가수와 매니저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는 두 사람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의도는 없다. 단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는 소녀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이도록 노출할 뿐이다. 목적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겼으나, 이미 영화는 결정했다. 나아가 그 결정은, 이야기 내내 진득하게 깔린 키리에의 노래처럼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며 자리한다. (참고로, 그녀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의 이름은, 과거 루카의 언니 이름에서 왔다. 루카의 언니, 키리에에겐 약혼자(나츠히코)가 있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던 나츠히코는 고심 끝에 임신한 키리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지만, 쓰나미로 인해 약혼자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키리에의 동생이 살아있단 소식에 루카만큼은 꼭 지키겠다 다짐하지만, 그마저도 꺾이고 만다. 자연재해만큼이나 단호하고 냉혹한, 법 때문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는 어린 루카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후 루카가 나츠히코를 찾아오면서, 다시 그에게 루카를 돌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또다시 현실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루카는 혼자가 됐고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키리에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다 마침내 잇코와 재회하게 된다. 키리에의 공연은 잇코의 뛰어난 매니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점차 키리에는 거리의 가수들이 찾는 아티스트로 소문나고 각자 따로 노래하던 이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공연하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영화는 <키리에의 노래>란 제목처럼 키리에(루카), 단 한 사람만 중심에 세운다. 키리에가 만나는 사람들의 서사는 주인공 성장 서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뿐이다. 특히 잇코와 나츠히코의 과거와 현재는 키리에의 '과거가 된 오늘'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제 몫을 다하는데,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영향을 적지도 과하지도 않게, 딱 '적절하게' 준다는 점이다. 키리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다. 그들은 키리에에게 선뜻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같이 아파하며 삶을 긍정한다. 악심을 품은 사람은 소녀의 곁에 다가오지도, 쫓아오지도 않는다. 그 힘으로 키리에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 슈퍼스타가 되는 것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똑같이 보내고 싶어 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규칙은 서로 주고받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환대에 대한 보답을 받았을까? 글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영영 모르는 일로 남는다. (영화가 의도한 각자의 몫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리에는 바다 위에 뜬 부표 같은 존재다.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치여도 절대 뒤집히지 않는 불굴의 신념을 품고 있는 자. 나츠히코가 그동안의 일에 대해 루카에게 간절히 용서를 구할 때도, 사기 결혼으로 수억 원의 피해액을 낸 잇코가 한 피해자의 칼에 맞고 쓰러질 때도,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축제가 아수라장이 되어도 키리에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물론 키리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다. 그럴 정신도, 마음도 가질 수 없는 친구니까. 하지만 그녀는 성공적으로 모두의 부표가 된다. 오직 주인공에게만 한정된 '적절하게'의 효과다. 노골적인 따뜻함과 노골적인 치유과정‥ 전부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코가 시큰해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거란 감독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잇코의 생사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키리에는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홀로 버스킹을 한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다시 매니저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이젠 그녀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굳이 않아도 된다. 뒤집히지 않은 부표의 비밀은 쓰나미가 무서웠냐는 잇코의 물음에 답한 키리에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왠지 바다는 그리운 느낌이에요. 모두가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쓰나미를 용서할 수는 없다. 마치 내 이름을, 내 삶을 버릴 수 없고,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지문을 남길 수 없는 것처럼. 키리에는 모르겠단 표정과 그립다는 노래로 받아들였다. 마오리가 잇코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루카는 본능적으로 키리에를 품었다. 앞서 말한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과 함께 필연적인 과정을 걷기로 했다. 깊은 트라우마가 자신을 삼키는 것을 용인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자신을 치유하고, 각자의 슬픔을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치유의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 마침내 키리에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이야기. 흘러가는 강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텁텁한 뒷맛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별개로, 완벽한 결말이란 외피 안에 숨긴 의도적인 결말이, 너무나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그렇다. 키리에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잡았을 거다.
키리에는 노래한다.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 같은 날을 맞닥뜨릴 거라고, 그런데도 우린 자유로울 것이라고. 그녀의 울부짖음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작은 신사 앞에 서서 기도했던 그녀의 기도 내용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오리의 말처럼, "그래 기도는 기도지. 더는 묻지 않을게." 가 <키리에의 노래>를 유일하게 대변한다는 점에서 설원을 걷는 루카와 마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름값을 남겼음을 밝힌다.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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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수유천이 도망친 레베카에게 뭐라고 하니
<그 자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스크린 뒤쪽의 힘이다. 이 영화에서 동화의 아버지와 오령의 어머니는 대화 속에서 언급되기만 할 뿐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으며 그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기 싫어한다. 동화가 화를 내는 부분도 능희가 ‘뒤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할 때이다. 오령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오령은 동화와 달리 공간을 통해 어머니를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집 뒤편에 어머니의 무덤도 만들어두었고 직접 가꾼 흙길을 걸으며 매일 어머니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오령의 어머니는 영화 전반에 걸쳐 흥미로운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그 방식은 히치콕의 <레베카>나 PTA의 <팬텀 스레드>와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오령의 집은 죽은 어머니의 기운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레베카>적 설정을 떠올렸을 때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힘이 주인공에게 작용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레베카>적 설정이 적용된 영화들에서 통상적인 경우라면 주인공은 집에 서린 죽은 어머니의 기운에 불안함을 느낄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 동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화는 어머니에 대한 오령의 효심에 감복하며 무덤에 절을 올리기까지 한다. 대신 그 불안은 집안의 다른 인물들로부터 발현된다. 우선 능희. 영화 초반 준희가 쭈뼛거리며 제공하는 그녀에 대한 설명, 멀리서 들리는 가야금 소리와 같은 정보들은 어딘가 께름칙한 분위기를 풍긴다. 능희가 등장한 뒤에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대화들은 언젠가 터질 듯 위태롭고, 결국 실제로 능희는 후반부 저녁 식사 장면에서 갈등을 촉발하기도 하다. 다음으로, 영화의 첫 숏에 등장하는 선희는 이후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저녁 식사 장면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얼굴을 비추는 인물이다. 그동안 오령은 전화를 통해 꾸준히 그녀의 복귀를 예고하는데, 말하자면 어머니의 복귀 불가능함을 선희가 대신 채우게끔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실 선희로부터 야기되는 불안은 더 은밀하다. 동화를 자극하는 말을 뱉으면서도 그것은 악의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능희와 달리, 저녁 술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이후 오령과의 대화를 통해 동화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직접적으로 뱉는 인물은 바로 선희이다. <레베카>의 집에 없는 어머니로부터 오는 불안은 이 영화에서 집에 상주하나 늦게 도착하곤 하는 다른 여자들로부터의 불안으로 분산, 변주되는 양상이다. 홍상수의 자연에 대한 매혹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홍상수가 자연의 아득함에 매혹되는 순간들은 이전에 비해 소박해지고 감성적으로 변한 2020년대 영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빈번하게 등장하고(특히 영화의 마지막에서), 사실 2008년작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주인공이 아득히 바라보는 바다를 비추며 마무리했다(<도망친 여자>의 마지막에서 감희가 보는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자연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언급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이 영화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이 자연에 매혹되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자연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자연에 매혹되는 주체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인공 동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종종 아웃포커싱된 저화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밝은 녹음, 보여주지 않을 줄 알았던 붉게 저무는 노을까지 카메라에 정말 아름답게 담아내지만 그 자연을 철저하게 매혹의 피사체가 아니라 배경으로서만 다룬다(이를테면 <인트로덕션>과 <물안에서>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순간이 이 영화에는 없다. 또 이 영화에서는 나무나 풀, 혹은 풍경에 줌인을 가하는 순간이 없다). 그런데 이 자연은 단지 배경으로서만 치부하기엔 비중이 꽤 커서, 혹은 그 자연에 대한 동화의 반응이 너무나도 커서 종종 장면 전체를 장악하곤 한다. 배경의 위치에 있으나 그 힘이 튀어나와 스크린을 지배하는 이 영화의 자연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곳에 없으나 공간과 상황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들, 즉 오령의 어머니와 동화의 아버지의 존재를 환기한다. 그렇다면 <그 자연>의 뒤쪽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근원은 무엇인가? 위에서 이 영화는 스크린 뒤쪽에서 작용하는 힘의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힘의 근원을 프레임 안의 후경이나 서사의 뒤편을 넘어서 말 그대로 스크린 너머에서 찾아보자면, 홍상수의 다른 영화들, 그중 특히 <도망친 여자>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그 자연>은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이 산에서 오령은 산길을 가꾸고 닭도 키운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보면 이 영화는 마치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망친 여자>의 저편에서 일어난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극중에서도, 엔딩크레딧에서도 경기도 여주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도망친 여자>의 각 챕터가 시작할 때 느린 줌아웃으로 비춰지는 창밖의 산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서울 북촌과 여주 산속에서 벌어지는 두 이야기는 닭으로 매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서울 북촌에서 창문 너머 여주 산속으로까지 힘을 뻗치고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도망친 여자>에는 있고 <그 자연>에는 없는 것, 바로 김민희다. 김민희는 서울 북촌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므로 여주 산속에 있을 수 없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이번 영화까지 세면 홍상수는 총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 12편의 영화에 김민희가 주연으로든 조연으로든 등장한다. 김민희가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신얼굴 앞에서>, <탑>, <여행자의 필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까지 총 5편으로 생각보다 꽤 있는 편이고, 그러므로 김민희 없는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이 사실 그리 낯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그 자연>에서는 유독 김민희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들은 특수하고도 흥미로운데, 우선 첫 번째로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김민희가 있었더라면 맡았을 배역이 꽤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박미소가 연기한 능희는 평소 홍상수 영화에서 김민희가 맡던 역할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시종일관 은은한 불안감을 풍기는 이 능희라는 인물은 술자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히스테리와 약간의 표독스러움으로 영화 전체에 지속되던 평화를 깨는 인물이다. <풀잎들>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같은 영화들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인물을 떠올려보면 <그 자연>에서 이 점은 꽤 분명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은 결말인데, 결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자연’은 동화에게 상처만 남길 뿐 뭐라고도 하지 않는다. 고장나버린 낡은 차 안에서 쓸쓸히 담배연기를 뿜는 동화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의식에 가득찬 채 낡은 차를 마냥 찬미하는 동화의 태도는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태도와 동일시되므로 거창해보이는 이 영화의 제목은 사실 자조 섞인 맥거핀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인트로덕션>, <물안에서> 같은 영화들의 결말과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이 점에서 <그 자연>은 최근작인 <수유천>과 궤를 같이 한다. <수유천>의 마지막에서 전임은 수유천의 발원을 찾겠다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프레임에서 사라지지만 곧이어 환한 미소를 띤 채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프레임 안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전임의, 혹은 김민희의 그 해맑은 미소에서 일시정지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 자연>의 결말을 <수유천>의 결말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에 감도는 불안감의 근원이 사실은 후경으로서의 자연, 혹은 극중에서 부재한 인물을 넘어 영화 자체의 바깥에 있다는 것과 그것의 정체가 김민희의 부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유천>의 개봉 이후 홍상수 영화 속 김민희의 존재에 대해서 흥미로운 담론들이 오갔다. 그의 영화에서 김민희는 점점 정물화되어가고 있고 <수유천>은 그 흐름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 자연>은 홍상수 필모그래피 안에서 <도망친 여자>, <수유천>과 이을 수 있는데, 자연에 대한 태도와 김민희의 존재 여부라는 두 축을 세 영화를 동시에 관통하며 또 각 영화들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삼아볼 수 있다. <도망친 여자>는 자연을 긍정하면서 영화 표면에 항상 존재하는 김민희에 의해 작동되었고, <수유천>은 자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면서도 정물로서의 김민희는 무한 긍정했다. 이번 <그 자연>은 자연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김민희마저도 없는 상태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텅 빈 자연, 분산된 불안, 한숨 쉬는 남자라는 증상으로 발현된다. 그래서 <도망친 여자>와 <수유천> 이후 <그 자연>은 정물화에서 블랙코미디로의 회귀, 몇몇 부분은 탈속에서 세속으로의 회귀이고, 역설적으로 김민희 없는 김민희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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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감정과 양말 한 짝은 잃어버리는 것
첫 번째 키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결혼에도 해피엔딩이 있을까. 사랑해서 한 결혼은 늘 각기 다른 이유로 장애물에 부딪힌다. TV 프로그램 속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을 볼 때면 저들은 저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함께 살게 됐을까 궁금해진다. 같이 사는 것이 그토록 괴롭다면 일찌감치 갈라서는 게 낫다라는 미혼다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첫 번째 키스>에는 대화가 없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고 숨 막히도록 무미건조한 부부. 그런데 이혼 서류를 들고 나간 날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남편 카게루를 하루아침에 잃은 아내 칸나는 혼자가 된 채 자신의 삶에 집중해 나간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터널을 지나게 되고, 거짓말처럼 15년 전 남편을 처음 만났던 시절에 당도한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었기에 칸나는 싱숭생숭한 와중에도 어떻게 해야 미래의 카게루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몇 번씩 터널을 오가면서 서로의 첫 만남을 리셋하고 감정을 쌓아간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가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갖은 수를 써도 소용이 없자 칸나는 자신과의 인연 자체가 시작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15년이나 어린, 과거 속 남편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지만 결국 카게루는 칸나가 미래에서 왔고 둘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음을 알게 된다.
결혼은 희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카케루와 칸나 사이에 대화가 끊기기 시작한 것은 그가 꿈을 포기하고 아내와의 안정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러한 경위를 깨달은 칸나는 더더욱 그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좀 달랐을까라고 삶을 돌아본다.
가까울수록 정작 필요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하거나, 모든 건 다 우리를 위한 거라 치부하며 참고 견디는 나날의 연속이다. 쌓이는 오해와 깊어지는 감정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손쓸 겨를이 없다. 서로가 너무 달라서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만 발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다수의 부부는 왜 수건을 구겨서 걸어 놓을까, 치약을 왜 중간에서부터 짤까 등 사소한 단점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있다. 영화 속 칸나의 말처럼 결혼하면 해상도가 올라간다. 콩깍지는 벗겨지고 4K로 안 좋은 점을 보게 된다. 카게루는 둘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지만 두 선택지 모두 동일하게 택한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칸나와의 결혼 생활이다. 대화 없이 차가운 공기만 오가던 부부가 아니라 각각 빵과 밥 다른 메뉴를 먹으면서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떠든다.
그렇게 영화의 엔딩에서는 건조함 대신 사람 냄새 나는 밝은 분위기가 가득한 집안이 스크린을 채운다. 다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톡톡히 잘 활용해 낸 것이다. 이따금 지나간 연인이 그립고 놓친 기회에 애달파하며 밤을 지새울 때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건 과연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스스로 가늠해 본다. 그렇게 혼자 내린 결론은 이렇다. 다시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드는 일이라 원하지 않는다 싶다가도 놓친 인연, 설렜던 감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속는 셈치고 한번쯤 뛰어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반했던 순간은 생각보다 더 강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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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 드림 - 소심한 강아지와 순수한 반려로봇의 우정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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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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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의 오류
최신 한국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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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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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 공식 예고편
가난과 학대를 벗어나려 세상에 몸을 던졌다. 모진 역경을 이겨내며 마침내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한 어느 싱글맘. 이것은 생존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스테퍼니 랜드의 회고록 《조용한 희망》 원작, 《쉐임리스》 《프라미싱 영 우먼》 제작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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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위쳐: 늑대의 악몽> 티저 예고편
[2021년 8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려 했다.
스스로 위쳐의 길을 택한 베스미어, 돈을 위해 괴물을 사냥하는 사내.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협과 더불어 과거의 어둠이 그를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