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05-01 08:12:25
과연 유아인만 문제였을까
드라마 '종말의 바보' 리뷰
배우 유아인의 마약류 투약 혐의 건으로 인해 그가 출연하는 작품들은 비상에 걸렸다. 특히 촬영 완료하고 공개를 앞둔 작품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인데,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가 그중 하나다. 한동안 공개 보류했으나 고심 끝에 지난 26일에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종말의 바보'에게서 '유아인 리스크' 여파가 느껴지긴 한다.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를 걷어낼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걷어냈지만, 유아인이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하윤상 역을 맡았기에 흐름이 툭툭 끊기는 부분도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유아인 탓만 하기엔 '종말의 바보'의 전반적인 퀄리티에 물음표가 붙는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되, 긴박한 상황 전개보단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감정호소하는 듯한 휴머니즘으로 풀어내려고 한 것이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1, 2회에서 '종말의 바보'는 임팩트를 심어주기는커녕 다소 산만하고 루즈하게 풀어냈다. 시작부터 대한민국의 소행성 충돌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소식과 함께 곧장 시위 및 폭동으로 연결해 개연성이 부족했다. 이런 점 때문에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는 반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오류를 많이 범했다. 예를 들면, 데이터센터 폭파 이후 통신 장애와 동영상 송출 등이 막혀있다는 설정인데 해적 라디오를 통해 동영상을 송출하거나 실시간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은 모순이다. 이를 포함해 허술한 설정들이 다수 존재하기에 디테일함에 민감한 시청자들에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엔 충분하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대부분이 바싹 건조하리만큼 무겁고 진지하다. 분위기 전환용으로 시도한 지점도 있긴 하나, 오히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에 불필요하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소주연(서예화)의 닭 키우기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안 하느니만 못한 유머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결국 '종말의 바보'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력만 아깝다. 진세경 역을 맡은 안은진은 '연인'을 기점으로 확실히 중심축을 잡아주는 주연배우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스토리라인의 또 다른 중심인 전성우(우성재 역), 김윤혜(강인아 역)도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갔다. 여기에 김영옥, 김여진, 박혁권, 신은정, 차화연, 백지원, 박호산 등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의 시너지도 꽤나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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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미래일까 현재일까, 상상일까 현실일까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가 새로운 작품과 함께 돌아온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설레었던가. 회갈색 빛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에 찝찝함을 더하고 현실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품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재치를 던져줌으로써 자칫하면 질척 질척 무겁기만 할 수도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유하게 이끌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창조해 낸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가 애써 모른 척 해왔던 무언가와 눈을 맞춘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로버트 패틴슨과 만났다. <트와일라잇>으로 한국 대중에게 익숙할 로버트 패틴슨은 사실 그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으로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구상하며 주인공 역으로 바로 로버트 패틴슨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미키 17>을 통해 자신의 연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은 ‘아카데미 위원회는 로버트 패틴슨에게 주연상과 조연상 두 개를 주어라!’라는 평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오랜만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돌아다는 소식에 설레며 개봉일만을 기다려왔다. 그렇게 개봉일 아침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 마주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미래와 사회에 대한 고찰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미키 17>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 (C) Warner Bros Korea
영화 <미키 17>은 2050년,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영화다. 지구에서 사채 빚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당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가 새로운 행성의 개척 프로젝트에 지원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무 기술도 능력도 없던 미키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지원할 수 있던 유일한 직군은 ‘익스펜더블 expendable.’ ‘소모용’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직군에 지원하기 전 미키는 지원서의 세부사항을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직군의 주요 업무는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복제당하고 또 죽음을 겪는 실험체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는 어느 날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귀환한다. 그런데 힘겹게 몸을 누인 자신의 침대에는 또 다른 미키가 있었다. 둘의 미키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키 17>은 그린다.
이번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첫 우주 공상과학 영화, 우주 SF 영화다.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일까, <미키 17>에서는 지구가 미래 직면하게 될 모습과 과도하게 발전하는 기술이 마주할 이슈 등을 그린다. 복제 인간 미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또한 바로 그 이슈 중 하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독창성은 원작소설 《미키 7》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원작소설에 그만의 각색을 더해 <미키 17>을 완성해 냈다. 원작이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면, 봉 감독은 각색을 통해 인간냄새나는 SF 영화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각색 포인트는 바로 원작에서보다 주인공 미키를 10번이나 더 죽였다는 점이
“미키는 불쌍하고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봉준호 감독 -그럼 영화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간략하게 하고, 이제는 영화 속 세계를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 포인트들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부디 여기서부터 등장할 내용을 읽기 전 영화를 만나고 왔기를 바라며 말이다.
*본 게시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복사할 수 있는 미키는 '죽어도 또 만들면 그만'인 존재로 취급당한다. (C) Warner Bros Korea
무뎌지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
미키는 실험을 위해 반복해서 복제되는 존재다. 그의 몸은 가장 처음 실험을 위해 스캔해 둔 몸을 복제하여 만들어지고, 그의 기억은 가장 마지막 기억을 데이터로 불러와 새로운 몸에 심으며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복제를 통해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미키를 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를 두고 무생물체보다 못한 취급을 하기도 하며, 인류사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를 불필요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발전하는 기술 앞에 점차 무뎌지는 인간성을 그린다. 영화 속 미키는 ‘실험 인간’이다. 주인공인 그의 역할과 감정에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되는 관객들은 자연스레 반복되는 실험의 잔혹함과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더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대상이고 그 실험이 ‘카메라 앞’에 비쳐 우리에게 영화라는 ‘가상의 이야기’로 공개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러한 실험은 과거와 현재에 존재해 왔다. 물론 그 시간과 장소에는 미키의 곁을 지켜준 나샤 같은 따뜻한 인간 또한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말 이처럼 무뎌지는 인간성은 그저 공상과학 영화, 가상의 이야기 속 상상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까.
지난 날의 '나'가 눈 앞에 있다면, 부끄러울까 안타까울까 자랑스러울까 사랑스러울까 (C) Warner Bros Korea
미키, 같은 듯 다른 나와 나
미키는 같은 형태의 몸으로 복제되지만, 그 기억은 데이터로서 백업되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처음과 같은 미키가 복제되는 게 아닌 지난 미키에서의 죽음을 품은 다음 세대의 미키가 태어난다. 그래서일까 모든 미키는 조금씩 달랐다. 미키 A는 소심했고, 미키 B는 멍청했다. 미키 17은 순한 맛이었으며, 미키 18은 매운맛이었다. <미키 17>에서 주로 등장하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 둘은 번갈아 가며 전혀 다른 특성의 대화를 던지는 모습이 마치 천사와 악마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미키는 미키였다. 단지 경험한 죽음과 기억이 조금씩 달라 그 시점의 행동이 조금씩 다르게 드러났을 뿐, 모두가 미키였다. “I hate you. 나는 네가 싫어.” 화가 많고 반골 기질이 강한 미키 18은 모든 걸 좋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려는 유순한 미키 17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신에게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꽤나 잔혹하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걸듯, 과거의 자신을 두고 미래의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그가 지난 시간 받은 상처와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답답함의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결말에 다다라 미키 17이 미키 18처럼 생각하고 던지는 대사가 있다. 거기서 볼 수 있듯, 미키 18은 기존의 미키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키가 아니었다. 미키 17이 살다 보면 마주했을 미래의 미키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책에서 챕터를 넘어가듯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미키는 그렇게 ‘죽음’이라는 다소 강제적인 요소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의 챕터를 넘겨왔다. 물론 그렇게 넘어간 다음 장이 과거보다 나을지, 혹은 많은 걸 포기하거나 놓은 상태로 과거보다 더 못한 미래였을지는 미키만 알 테다. 과거의 자신을 바로 두 눈앞에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험 또한 미키만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감옥 같은 우주선 속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독재자의 모습은 공상과학일까 현실일까 (C) Warner Bros Korea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과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논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주요 배경 사회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키우려 하는 우주선 속이다. 이러한 사회를 주도하는 이는 지구에서 정치 활동에 실패한 정치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 역)이다. 그가 이끄는 우주선 속 사회에는 그를 쫓아온 열렬한 지지자들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 지구를 떠나고 싶어 도망 온 사람 등이 섞여 있다. 그들은 모두 ‘인류 번영을 위한 신 행성 개척’이라는 마샬로 인해 주어진 사명 아래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이어간다. 음식은 칼로리를 채워 살기 위해 주어지는 연료 따위의 수준이며, 조금만 실수해도 심한 질책을 당하며, 우주선 속 환경은 감옥을 연상시킨다.
우주선의 리더 케네스 마샬은 가히 독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신은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일꾼이자 우주선 속 사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지와 행동은 철저히 통제된다. 그의 주장과 연설은 허술하고 허황하기 짝이 없으며, 자신의 아내와 비서에게 휘둘리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샬 역의 마크 러팔로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두고 “봉준호 감독에게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도대체 왜 이런 악역을 나에게 주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마샬을 두고 세계 각국의 인터뷰에서 각 나라의 특정 독재자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관해 특정 인물이 모티브가 되었냐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샬은 과거 독재자들의 모습을 따와서 만든 캐릭터입니다.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현재의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속 우주선은 행성 개척을 위한 탐사선이기도, 일터이기도, 감옥이기도 해. 그치, 미키? (C) Warner Bros Korea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에 관해서는 물론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듯하다. 영화의 서사가 되새기게끔 하는 식민지화의 잔혹함과 독립의 이야기는 한국인 혹은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 국민이라면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이다. 죽음을 피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의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삶에서의 선택을 되돌아보게끔 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리게 하는 OST에 미키를 쫓아오는 보이지 않는 마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며, <미키 17>을 보며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 <괴물>, <설국열차> 등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으리라. 물론 SF 영화라는 점에서 비슷한 요소를 지닌 다른 영화 혹은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점에서 우리는 또 깨닫는다.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짙은 회갈색 빛 거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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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은 시인에게> -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나의 작은 시인에게 (The Kindergarten Teacher)
개봉일 : 2019.04.04 (한국 기준)
감독 : 사라 코랑겔로
출연 : 메기 질렌할, 파커 세바크,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마이클 체너스, 로사 살라자르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꿈을 꾸었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에 내려앉은 사람에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유치원 교사 ‘리사’와 가만히 있다가도 별안간 아름다운 시를 읊어내는 5살 소년 지미의 이야기다.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기 힘든 ‘작가’라는 꿈 대신 유치원 교사가 된 리사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바쁘게 일을 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고등학생 졸업반까지 키우고 나니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틈이 난다. 리사는 이제야 깊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그리고 그녀의 한숨 속으로 짙은 공허함이 파고든다.
남편은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은 또래와 어울리기 바쁘다. 리사는 붕 떠버린 시간과 접어두었던 꿈을 붙잡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등록하지만, 리사의 글에 대한 수업 교사와 동료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열의는 있으나 딱히 눈에 띄진 않는 실력.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과 센스’는 없는 사람인 리사는 어딘가 모자란, 아쉬운 글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마치 신이 보낸 신호 같은 천재 소년 지미가 나타난다.
힘없는 걸음을 떼다가도 별안간 감정을 담은 시를 창조해내는 소년. 리사는 지미를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자 자신이 가공해야 할 의무를 진 소중한 원석처럼 느끼게 된다. 부러움과 질투, 애정.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집착. ‘너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너를 지키기 위함이야’라는 단단한 변명과 함께 시작된 리사의 엇나간 애정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아이를 대상으로 질투와 집착을 느낀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반쯤은 이해가 갈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빛나는 것을 가진 아이. 그 반짝임은 누군가의 눈을 멀게 만든다.
사회의 그늘에 가려져 꿈을 빛내본 적 없는 어른이 재능을 가진 아이를 만나며 대리만족에 대한 집착, 질투심을 느끼는 과정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라 더욱 슬프고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되바라진 집착을 가진 어른 한 명마저도 없어진다면 아이의 재능을 마음에 담아줄 어른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 사회의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시놉시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리사’는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통해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연히 자신의 학생 다섯 살 ‘지미’가 시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이의 시를 자신의 시수업에서 발표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 자신을 더 투영해야 해.”
영화의 주인공 리사는 이제라도 꿈을 이뤄보겠다고 다짐하며 시 쓰기 수업을 신청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어딘가 모자라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럴싸한 단어의 집합. 딱 거기서 그쳐버리는 애매한 시. 그게 리사의 시다. 본인도 알고 있다. 나의 시가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손을 들고 발표할만한 대단한 시는 아니라는 것을. 열정과 꿈을 안고 수업에 들어왔지만 리사에게 수업은 즐거움과 두근거림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명분, 딱 그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미라는 아이가 리사의 눈에 들어온다. 좀비처럼 어슬렁 어슬렁 걷다가도 감정이 가득 담긴 시를 읊조리는 5살 아이. 태양의 반짝임과 사랑의 두근거림을 담아낼 줄 아는 5살 아이라니. 사랑이 뭔지는 알까? 싶은 나이지만 지미의 시는 그 안일한 생각을 모두 물리칠 만큼 아름답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적어 수업에서 발표한다. “정말 좋았어요.” 리사를 향해 여러 형태의 칭찬들이 쏟아진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시에 대한 칭찬. 내가 쓴 것이 아님에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리사는 그 아름다운 시를 어떻게 썼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진 알고 있다. 작은 시인, 지미를 통하면 된다.
그 후로 리사는 지미에게 더 큰 기대와 집착을 갖게 된다. 새로운 시선으로 글을 써야 할 땐 지미를 번쩍 들어 높은 곳에서의 시선을 만들어주고, 지미가 나쁜 말을 쓸 때면 아이의 언어습관을 관리한다. 낮잠을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옅은 집착과 열망의 냄새가 풍겨온다. 리사는 아이를 위해 시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녀의 행동이 지미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분명 리사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떳떳한 행동은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시가 떠오르면 보모인 베카에게 말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고, 휴대폰 번호를 저장해 주겠으니 전화하라는 약속. 그리고 이름 전체가 아닌 L로 저장된 전화번호. 보모의 자격을 얻기 위해 꿈이 있는 젊은 보모를 몰아내려 행한 이간질. 리사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겠다는 괘변 아래 자신의 집착을 합리화한다.
무대 위 마이크보다 작은, 너무도 여리고 작은 나의 시인. 리사는 지미의 빛나는 재능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지미의 아빠는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가족들은 아이에게 무관심하다. 모차르트급의 천재적 재능이 있는 아이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재능을 알지 못하고, 발견하려 하지도 않는다.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아이의 재능은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리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지미의 재능을 빛내주기 위해 낭독회에 지미를 데려가지만 지미의 아빠는 아이의 재능엔 관심이 없다. 물론 리사가 아빠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고 아이를 데려간 것부터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 해. 나 같은 그림자가 되면 안 돼.”
리사가 지미를 향해 처음으로 가진 감정은 놀라움이었고 애정이었다. 그리고 선을 넘은 애정은 집착이 되어버린다. 지미의 등굣길을 뒤따라간 리사는 잠겨진 문을 열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그녀는 철창 안에 갇혀있던 작은 시인을 품에 안고 드넓은 호수로 향한다. 불안감이 가득 차오르는 오후를 보내고 몸에 붙은 것들을 씻어내는 순간. 지미는 기지를 발휘해 욕실의 문을 잠근다. 리사는 욕실 문에 붙어 앉아 지미에게 가졌던 애정과 집착을 풀어낸다.
아이와 어른이기 이전에 같은 시를 창작해내는 사람으로서 리사는 지미를 질투하고 또 사랑했다. 리사는 지미의 입을 떠나 공중에서 분해되는 아름다운 시들을 받아 적으려 노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미의 주변 어른들은 지미의 시를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뱉어내는 몇 마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리사는 달랐다.
“시가 떠올라요”
지미는 리사를 만나고 “시가 떠오른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새로 떠오른다 한들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던 작은 시인의 시. 그것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은 리사뿐이었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에 집착한 유치원 선생님이자 납치범이지만 그녀만큼 지미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납치범을 벗어나 안전한 경찰차 안에 앉게 된 아이가 말한다. “시가 떠올라요. 시가 떠올랐다고요.” 하지만 경찰은 아이의 말을 궁금해하기보단 아이스크림을 갖다주겠다며 무심하게 차 문을 닫는다. 두꺼운 유리창을 뚫지 못한 아이의 말은 그대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지미가 아름다운 시를 읊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 그 순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깊은 열등감과 집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에 조금씩 동화되어 갔던 시간이었다. 빛나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차가운 세상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리사는 나쁜 어른이었던 걸까. 완벽한 잘못도, 완벽한 애정도 아니었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 아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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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라마와의 랑데부> 작업 중인 것은 사실이고, 그 각본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어요. <클레오파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듄: 메시아>도요. 다시 카메라 뒤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죠.”
-드니 빌뇌브-
최근 빌뇌브 감독은 <라마와의 랑데부>를 ‘강화된 <컨택트>’라고 묘사했는데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창조자인 클라크가 원작자이기 때문에, 이 작품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줄 만한 SF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9월 2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더 룸 넥스트 도어> 황금사자상 수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어 장편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줄리앤 무어와 틸다 스윈튼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안락사와 여성의 우정에 대해 다루며 영화가 상영됐을 때 18분간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고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세상에 존엄하게 안녕을 고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 권리”라며 “안락사는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고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드니 빌뇌브 <라마와의 랑데부> <클레오파트라> 프로젝트 “천천히 진행중”
드니 빌뇌브 감독은 <라마와의 랑데부>, <클레오파트라>, <듄: 메시아> 프로젝트를 모두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그는 <라마와의 랑데부>를 ‘강화된 <컨택트>’라고 묘사했으며, <라마와의 랑데부> 각본은 <듄>을 작업했던 에릭 로스가 맡고 있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1917>의 각본가 크리스티 윌슨-케언스가 각색을 맡았으며 캐스팅 목록이 유출되며 젠데이아가 ‘클레오파트라’역을 맡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12분간 기립박수 받은 <조커 폴리 아 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 폴리 아 되>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2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였으며, 새로운 인물들과 깊어진 서사가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는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를 재해석하며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로 오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 시리즈 확정 송강호 주연
영화 <내부자들>이 배우 송강호 주연의 시리즈로 만들어집니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내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시리즈 <내부자들>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드라마에서 송강호는 백윤식이 연기했던 ‘이강희’ 역을 맡아 대한민국의 판을 짜고 조직하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부부의 세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연출한 모완일 감독이 연출을 맡고, <모가디슈>와 <암살>의 이기철 작가가 극본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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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근데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혼자 잠도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 하는 것뿐이지."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1인 가구 비율이 31.7퍼센트(2020,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가 된 세태를 중심으로 거기 속한 인물들의 군상을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여성)이 마주하는 여러 종류의 불안감과 1인분의 삶을 소화해내느라 분투하는 이의 외강내유한 내면을 살피는 작품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프란시스 하>(2012)에 대한 김혜리 기자의 평문 중 "일상을 열심히 전시한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자랑할 만큼 인생을 만족스러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족하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라는 문장에 오래 머문 적 있다. 어쩌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혼자 해결하는 사람에게도 이것은 비슷한 종류일 것 같다. 가령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은 그것이 좋거나 편해서이기보다 타인과의 식사가 불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불편해서.
'진아'(공승연)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곁에 사람이 아닌 기계적 장치로 '혼자가 아닌 것처럼 혼자 보내기'를 행한다. 거기에는 주로 이어폰과 같이 자신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하는 수단이 자리 잡는다. 점심시간마다 홀로 찾는 국숫집에서, 혹은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진아'는 예능이나 먹방을 보고 있다.
그러니, 식사를 같이 하자고 살갑게 따라오는 신입 직원 '수진'(정다연)이나 자신에게 신입 교육을 떠맡기는 사수이자 팀장 '해나'(김해나)나 교회에 나오라고 별 용건 없이 전화하는 아빠(박정학)는 '진아'에게 불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실도 아닌 방 안에 모든 살림을 밀어 넣은 '진아'가 혼자의 일상을 간신히 살아내는 동안 영화 안에서는 조금씩 그 일상을 뒤흔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진아'의 태도에도 일말의 변화가 생겨난다. 그가 누군가에게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라고 어떤 순간에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불과 90분밖에 되지 않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섬세한 연출과 각본으로 (1인 가구라는 삶의 형태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혼자인 채로 사는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과 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혹은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떤 장면에서 '진아'는 더 이상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다. 그건 삶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의 일상을 좀 더 잘 보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에서 업로드한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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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속 '드 윈터 부인'을 닮은 <레베카>(2020)
소설 속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나', 1940년 영화에서는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라고 명명하는 주인공. 2020년 작품에서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한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레베카> 속 화자는 이름이 없다. 이렇게 작품 밖에서부터 레베카의 위력이 느껴진다.
작품 특성상, 이 글에서 작중 화자를 지칭할 때 결혼 전은 '나', 결혼 후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지칭하겠다.1. 순진함: 4점 _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2. 매력: 2점_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3. 로망: 4점_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4. 자존감: 0점_ 유령은 믿지 않지만
5. 서포트력: 5점_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순진함,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화자는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이자 길동무로 동행할 때도 순진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맥심 드 윈터'와 몬테카를로의 호텔 인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들이었다.반 호퍼 부인 말마따나, 정말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던 걸까?
옆방에 있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까내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동무로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없었다니.
좋게 말하면 순진함, 나쁘게 말하면 눈새.
매력,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1940년 작 <레베카>에서 맥심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반한 건 당신의 외모가 아니라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서였어"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뻥 치시네. 저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해? 못 믿을 사람이네.1940년 작에서 '나'는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맥심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그러나, 2020 작에서는 '드 윈터 부인'의 외모가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퍼 먹이듯 답답한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레베카와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는 맥심의 말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다이아 수저에게만 예뻐 보이는 매력인가 보다.
난 도무지 부인이 왜 매력적인지 모르겠어....
로망,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부인이 되기 전, '나'는 호텔에서 맥심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 날 이래로 황홀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 로비며 테라스로 향하면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맥심의 쪽지를 건네준다.
쪽지에는 오늘의 데이트 코스가 적혀 있다. 그러고 나서 맥심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나'가 맥심과 시간을 보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가본 곳보다 많고, 해본 것보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맥심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모아 두고 다시 쪽지를 받을 때로 돌아간 듯, 행복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나'.
"For me?(저한테요?)" 하고 쪽지를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예측해볼 수 있다.
'나'는 귀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구나. 꿈꾸는 듯하겠구나.
자존감, 유령은 믿지 않지만
맥심을 따라 맨덜리 저택으로 간 드 윈터 부인은, 유령 따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별한 전 부인 '레베카'에 대해서는 도통 말해주질 않는 맥심, 드 윈터 부인 앞에서 레베카를 회상하고 비교하듯 언급하는 고용인들과 맥심의 친척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에 압도된다.무엇보다도, 저택에 처음 왔을 때부터 위기 상황이거나 평화로운 분위기이거나 상관없이 레베카의 이니셜 "R"이 표기된 물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저택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레베카와 마주하는 드 윈터 부인은 시종일관 주눅 들어있다. 자신이 아닌 레베카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하는 집사 '댄버스'에게도 "이젠 내가 드 윈터 부인이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서포트력,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드 윈터 부인의 전 직업은 나이 든 귀부인의 말동무 겸 심부름꾼. 그래서였을까?
맥심과 결혼한 후, 저택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드 윈터 부인이 영화 후반부에는 돌변한다.
맥심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화끈한 행동력까지 보여준다.
영화를 직접 감상하실 분들을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때에만 초능력처럼 발휘되는 냉철함, 판단력, 행동력. 그 모든 능력들이 드 윈터 부인을 더 이상 무기력한 인물이 아닌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로 자리 잡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 1940년 작 <레베카>,
그 영화의 원작인 소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위협적인 아우라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
그리고 이 작품,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 영화 <레베카>.1940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품을 깐깐한 시선으로 감상했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1940년 작과 비교하며 혹평만 가득 담은 리뷰를 작성하게 되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작을 리메이크할 때 느꼈을 법한 고충을 상상해봤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요소인 발생 에피소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상황. 더군다나 스산한 스릴감을 멋지게 전달해준 작품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겠지.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풍성해진 사운드와 볼거리
인물들의 대화 뒤에 잔잔히 깔리는 파도소리, 드 윈터 부인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비트 등 청각 효과가 풍성해져 상황 전달이 잘 된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볼거리도 굉장히 많아졌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덜리 저택 가면무도회 장면이었다.
레베카를 아는 듯 한, 저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유일하게 레베카를 모르는 드 윈터 부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함, 불안함을 1940년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유일하게 옛 영화보다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는다.
훨씬 친절해진 상황 설명, 그러나 비교적 약해진 스릴감.
줄거리를 완전히 혹은 대충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감상할 때 연출, 즉 상황 표현에 집중케 된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 1940년 작에 비해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1940년 <레베카>에서는 댄버스의 침묵과 시선처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화면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비해, 2020년 <레베카>에서는 침묵, 화면 연출보다 인물들의 대사 비중이 늘었다.
말이 많아진 댄버스, 처음 보는 캐릭터인 시할머니 등 여러 인물들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주니 편리하다.
하지만,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작중 화자와 시선과 정보 공유를 함께하며 느끼던 스릴감은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컬러, 사운드 등의 기술적 발전은 했으나 연출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스릴러도 로맨스도 아닌 채 어중간한 곳에서 오락가락하는 영화.
그래서, 언제나 맨덜리의 파도소리가 따라다닌다는 음향 표현이 이해는 가도, 인상 깊지 않았다.
오히려 뮤지컬 음원을 통해 듣는 파도 소리가 훨씬 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에서는 파도 소리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새>를 오마주한 듯한 '철새들의 움직임'이 더 인상 깊었다.
시대 배경 표현에 있어서 안 꾸민 듯, 꾸민 듯?
초반부를 감상할 때는 시대 배경을 현대로 재해석한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등장하는 자동차 디자인과 '얼마 전 찍었다'는 결혼사진이 흑백 가까운 세피아 빛인 것을 단서로 삼아, 소설 레베카의 시간을 따르고 있다고 이해했다.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단서를 몇 가지 발견한 뒤에도 어색함이 느껴져 이상했다.
고전영화 <레베카>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가? 하고 반문해보다가 떠오른 영화가 있다.바츠 루어만 감독의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유행했던 재즈 음악들을 2013년에 맞추어 리메이크했다.
또한, 당대 파티 문화, 의상, 배경이 되는 공간들과 소품들까지 '이 시대가 아니라 그 시대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줬다. 영화가 컬러인가 아닌가는 아무 상관없었다.
시대 배경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그에 반해 2020작 <레베카>는 시대 표현이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당대 시대상이 개츠비만큼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도, 지금과 다른 시대적 특성을 더 살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리뷰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레베카>가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 되어 버렸다.
작중 '나' 또는 '드 윈터 부인'처럼, 2020년 <레베카>는 1940년 <레베카>와 힘겨운 싸움을 했다.취향 따라 결과 판정은 달리 할 수 있지만,
일단 내게 있어서 이 싸움의 결과는 1940년 작품의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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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디오니소스와 함께 술 마시며 춤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촉망받던 역사학도였으나 지금은 일상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고교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각각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함께 한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가설을 듣는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정도를 채워주면 더욱 편안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직접 실험에 나선 마르틴은 음주가 지루한 수업과 가족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후일담을 전해준다. 이에 네 친구는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 뒤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에서 탈피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현대 사회로 오면 올 수록 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精)이여! 너에게 아직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너를 악마라고 부를 테다"라고 외친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2011년에 술은 세계보건기구(WHO) 선정 1급 발암물질이 되기도 했다. 특히 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구하기 쉽다는 접근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오래도록 쓰인 문화적 특징과 결부되어 사회적, 개인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서인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술은 흔히 파국을 불러오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반면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고, 지난 19일에 개봉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이 다소 다르다. 덴마크 대표 배우인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더 헌트> 이후 처음 합작한 이 영화의 종착역은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처럼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술 내음이 가시지 않는 데도 말이다. 실제로 술이 등장하기 전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의 일상은 잿빛이다. 그러나 보드카·와인·샴페인 등이 등장하자 스크린에는 활기가 돌고, 색채가 살아난다. 왜 그럴까? 이는 <어나더 라운드>가 단지 술 문화 그 자체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술을 매개로 흔히 간과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나더 라운드>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신의 이름을 빌려 술을 둘러싼 네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폴론은 시와 음악의 신이자, 빛의 신이고, 또 질서와 진리의 신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폴론의 신격은 그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통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이 문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서 신들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알라는 격언으로, 인간의 본성적 한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아폴론은 한계와 한도를 통해 무질서에 맞서 질서를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관장하는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정한 한도와 질서라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 즉,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그의 역할은 개인적으로는 몸을 훈련시키는 체육처럼 영혼을 갈고닦는 교육의 기능에 속하고, 더 넓게는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성적 목적을 갖는다.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아폴론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학교인 것만 해도 그렇다. 학교라는 공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대학교 정장에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네 친구가 각각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 등 그의 신격과 관련된 영역의 교사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서와 진리를 강조하는 신의 가치가 지배적인 공간과 직업답게, 그 안에서 지내는 구성원들에게도 강력한 규칙과 규율이 적용된다.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면 교사들은 면담을 통해 학부모들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들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학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학생은 졸업 대신 재수강을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술의 존재 역시 학교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질서가 확고한 공간 안에서 작중 구성원들은 행복해지는 대신 오히려 피폐해진다는 점이다. 교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사는 그 무기력함이 가족 관계로 번지는 것마저 막아서지 못한다.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졸업 시험에서 거듭 낙제를 경험했던 학생은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며, 축구팀 내에 스며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어린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러한 공통의 좌절감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학교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처럼 강력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는 기반이 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술을 매개로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 광기, 야성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불러온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이끌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게 하면서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신이다. 그는 질서와 같은 이성적 틀이 사람들의 삶에 가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춤과 노래의 인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삶의 생명력으로부터 반지성적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다. 이는 그가 포도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인 도취 상태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인 이유다.
그래서 <어나더 라운드> 속 술 역시 단순한 일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형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그 의지를 일깨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마르틴이 술을 마신 이후로 크게 세 가지의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선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이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마치 젊은 적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한다. 다음으로는 그간 손 놓고 있었던 관계다.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거나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마지막은 잃어버렸던 열정이다. 수업 진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제 출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마르틴. 그러나 그는 이제 실험적인 강의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과거의 본인이 품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신격과 그 함의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분출된다. 고대에 이루어지던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는 “코레이아”(choreia)라고 불리던 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해당 장면이 바로 시, 음악, 무용의 원시적 융합 형태였던 코레이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코레이아가 춤추는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마르틴의 춤은 더욱 인상적이다. 매즈 미켈슨이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재즈 발레를 추는 사이, 무기력했던 마르틴의 삶에는 활력이 돌고, 그의 무채색 일상에는 빛이 들어오며, 그의 삶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간다. 술로 인해 인생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처럼 아폴론의 가치에 눌려 있었던 디오니소스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에 비로소 완결된다. 이는 영화 속 술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대신, 영화가 끝날 때 제목대로 “한 잔씩 더(Another Round)!”를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다.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마냥 술과 디오니소스가 대변하는 삶의 태도를 긍정하지는 않는다. 네 친구의 실험은 그들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그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사고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굳이 점차 터부시 되는 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때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본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결여될 경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술과 같은 쉼터, 혹은 탈출구를 경시하지 않고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술과 술의 신의 이름으로 통찰하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준다.
A(Acceptable, 무난함)
아폴론의 빛을 견디기 힘들 때면, 디오니소스와 함께 마시고 춤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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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2 3화 감상해보았습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3화 리액션 리뷰 SQUID GAME Season 2 Ep. 2 RE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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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애나 델비가 누구냐고? 실화에 기반한 진짜 가짜의 이야기. 《애나 만들기》, 2022년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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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소닉2] 초특급 히어로들을 소개합니다 ? 소닉&테일즈 VS 로보트닉과 너클즈! 볼거리가 한가득? 4월 6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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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미래일까 현재일까, 상상일까 현실일까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가 새로운 작품과 함께 돌아온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설레었던가. 회갈색 빛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에 찝찝함을 더하고 현실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품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재치를 던져줌으로써 자칫하면 질척 질척 무겁기만 할 수도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유하게 이끌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창조해 낸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가 애써 모른 척 해왔던 무언가와 눈을 맞춘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로버트 패틴슨과 만났다. <트와일라잇>으로 한국 대중에게 익숙할 로버트 패틴슨은 사실 그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으로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구상하며 주인공 역으로 바로 로버트 패틴슨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미키 17>을 통해 자신의 연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은 ‘아카데미 위원회는 로버트 패틴슨에게 주연상과 조연상 두 개를 주어라!’라는 평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오랜만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돌아다는 소식에 설레며 개봉일만을 기다려왔다. 그렇게 개봉일 아침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 마주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미래와 사회에 대한 고찰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미키 17>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 (C) Warner Bros Korea
영화 <미키 17>은 2050년,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영화다. 지구에서 사채 빚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당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가 새로운 행성의 개척 프로젝트에 지원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무 기술도 능력도 없던 미키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지원할 수 있던 유일한 직군은 ‘익스펜더블 expendable.’ ‘소모용’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직군에 지원하기 전 미키는 지원서의 세부사항을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직군의 주요 업무는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복제당하고 또 죽음을 겪는 실험체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는 어느 날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귀환한다. 그런데 힘겹게 몸을 누인 자신의 침대에는 또 다른 미키가 있었다. 둘의 미키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키 17>은 그린다.
이번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첫 우주 공상과학 영화, 우주 SF 영화다.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일까, <미키 17>에서는 지구가 미래 직면하게 될 모습과 과도하게 발전하는 기술이 마주할 이슈 등을 그린다. 복제 인간 미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또한 바로 그 이슈 중 하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독창성은 원작소설 《미키 7》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원작소설에 그만의 각색을 더해 <미키 17>을 완성해 냈다. 원작이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면, 봉 감독은 각색을 통해 인간냄새나는 SF 영화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각색 포인트는 바로 원작에서보다 주인공 미키를 10번이나 더 죽였다는 점이
“미키는 불쌍하고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봉준호 감독 -그럼 영화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간략하게 하고, 이제는 영화 속 세계를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 포인트들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부디 여기서부터 등장할 내용을 읽기 전 영화를 만나고 왔기를 바라며 말이다.
*본 게시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복사할 수 있는 미키는 '죽어도 또 만들면 그만'인 존재로 취급당한다. (C) Warner Bros Korea
무뎌지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
미키는 실험을 위해 반복해서 복제되는 존재다. 그의 몸은 가장 처음 실험을 위해 스캔해 둔 몸을 복제하여 만들어지고, 그의 기억은 가장 마지막 기억을 데이터로 불러와 새로운 몸에 심으며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복제를 통해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미키를 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를 두고 무생물체보다 못한 취급을 하기도 하며, 인류사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를 불필요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발전하는 기술 앞에 점차 무뎌지는 인간성을 그린다. 영화 속 미키는 ‘실험 인간’이다. 주인공인 그의 역할과 감정에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되는 관객들은 자연스레 반복되는 실험의 잔혹함과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더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대상이고 그 실험이 ‘카메라 앞’에 비쳐 우리에게 영화라는 ‘가상의 이야기’로 공개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러한 실험은 과거와 현재에 존재해 왔다. 물론 그 시간과 장소에는 미키의 곁을 지켜준 나샤 같은 따뜻한 인간 또한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말 이처럼 무뎌지는 인간성은 그저 공상과학 영화, 가상의 이야기 속 상상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까.
지난 날의 '나'가 눈 앞에 있다면, 부끄러울까 안타까울까 자랑스러울까 사랑스러울까 (C) Warner Bros Korea
미키, 같은 듯 다른 나와 나
미키는 같은 형태의 몸으로 복제되지만, 그 기억은 데이터로서 백업되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처음과 같은 미키가 복제되는 게 아닌 지난 미키에서의 죽음을 품은 다음 세대의 미키가 태어난다. 그래서일까 모든 미키는 조금씩 달랐다. 미키 A는 소심했고, 미키 B는 멍청했다. 미키 17은 순한 맛이었으며, 미키 18은 매운맛이었다. <미키 17>에서 주로 등장하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 둘은 번갈아 가며 전혀 다른 특성의 대화를 던지는 모습이 마치 천사와 악마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미키는 미키였다. 단지 경험한 죽음과 기억이 조금씩 달라 그 시점의 행동이 조금씩 다르게 드러났을 뿐, 모두가 미키였다. “I hate you. 나는 네가 싫어.” 화가 많고 반골 기질이 강한 미키 18은 모든 걸 좋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려는 유순한 미키 17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신에게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꽤나 잔혹하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걸듯, 과거의 자신을 두고 미래의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그가 지난 시간 받은 상처와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답답함의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결말에 다다라 미키 17이 미키 18처럼 생각하고 던지는 대사가 있다. 거기서 볼 수 있듯, 미키 18은 기존의 미키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키가 아니었다. 미키 17이 살다 보면 마주했을 미래의 미키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책에서 챕터를 넘어가듯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미키는 그렇게 ‘죽음’이라는 다소 강제적인 요소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의 챕터를 넘겨왔다. 물론 그렇게 넘어간 다음 장이 과거보다 나을지, 혹은 많은 걸 포기하거나 놓은 상태로 과거보다 더 못한 미래였을지는 미키만 알 테다. 과거의 자신을 바로 두 눈앞에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험 또한 미키만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감옥 같은 우주선 속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독재자의 모습은 공상과학일까 현실일까 (C) Warner Bros Korea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과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논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주요 배경 사회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키우려 하는 우주선 속이다. 이러한 사회를 주도하는 이는 지구에서 정치 활동에 실패한 정치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 역)이다. 그가 이끄는 우주선 속 사회에는 그를 쫓아온 열렬한 지지자들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 지구를 떠나고 싶어 도망 온 사람 등이 섞여 있다. 그들은 모두 ‘인류 번영을 위한 신 행성 개척’이라는 마샬로 인해 주어진 사명 아래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이어간다. 음식은 칼로리를 채워 살기 위해 주어지는 연료 따위의 수준이며, 조금만 실수해도 심한 질책을 당하며, 우주선 속 환경은 감옥을 연상시킨다.
우주선의 리더 케네스 마샬은 가히 독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신은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일꾼이자 우주선 속 사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지와 행동은 철저히 통제된다. 그의 주장과 연설은 허술하고 허황하기 짝이 없으며, 자신의 아내와 비서에게 휘둘리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샬 역의 마크 러팔로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두고 “봉준호 감독에게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도대체 왜 이런 악역을 나에게 주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마샬을 두고 세계 각국의 인터뷰에서 각 나라의 특정 독재자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관해 특정 인물이 모티브가 되었냐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샬은 과거 독재자들의 모습을 따와서 만든 캐릭터입니다.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현재의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속 우주선은 행성 개척을 위한 탐사선이기도, 일터이기도, 감옥이기도 해. 그치, 미키? (C) Warner Bros Korea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에 관해서는 물론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듯하다. 영화의 서사가 되새기게끔 하는 식민지화의 잔혹함과 독립의 이야기는 한국인 혹은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 국민이라면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이다. 죽음을 피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의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삶에서의 선택을 되돌아보게끔 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리게 하는 OST에 미키를 쫓아오는 보이지 않는 마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며, <미키 17>을 보며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 <괴물>, <설국열차> 등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으리라. 물론 SF 영화라는 점에서 비슷한 요소를 지닌 다른 영화 혹은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점에서 우리는 또 깨닫는다.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짙은 회갈색 빛 거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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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은 시인에게> -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나의 작은 시인에게 (The Kindergarten Teacher)
개봉일 : 2019.04.04 (한국 기준)
감독 : 사라 코랑겔로
출연 : 메기 질렌할, 파커 세바크,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마이클 체너스, 로사 살라자르
‘너를 위해서라는 가장 단단한 변명’
꿈을 꾸었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에 내려앉은 사람에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유치원 교사 ‘리사’와 가만히 있다가도 별안간 아름다운 시를 읊어내는 5살 소년 지미의 이야기다.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기 힘든 ‘작가’라는 꿈 대신 유치원 교사가 된 리사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바쁘게 일을 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고등학생 졸업반까지 키우고 나니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틈이 난다. 리사는 이제야 깊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그리고 그녀의 한숨 속으로 짙은 공허함이 파고든다.
남편은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은 또래와 어울리기 바쁘다. 리사는 붕 떠버린 시간과 접어두었던 꿈을 붙잡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등록하지만, 리사의 글에 대한 수업 교사와 동료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열의는 있으나 딱히 눈에 띄진 않는 실력.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과 센스’는 없는 사람인 리사는 어딘가 모자란, 아쉬운 글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마치 신이 보낸 신호 같은 천재 소년 지미가 나타난다.
힘없는 걸음을 떼다가도 별안간 감정을 담은 시를 창조해내는 소년. 리사는 지미를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자 자신이 가공해야 할 의무를 진 소중한 원석처럼 느끼게 된다. 부러움과 질투, 애정.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집착. ‘너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너를 지키기 위함이야’라는 단단한 변명과 함께 시작된 리사의 엇나간 애정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아이를 대상으로 질투와 집착을 느낀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반쯤은 이해가 갈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빛나는 것을 가진 아이. 그 반짝임은 누군가의 눈을 멀게 만든다.
사회의 그늘에 가려져 꿈을 빛내본 적 없는 어른이 재능을 가진 아이를 만나며 대리만족에 대한 집착, 질투심을 느끼는 과정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라 더욱 슬프고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되바라진 집착을 가진 어른 한 명마저도 없어진다면 아이의 재능을 마음에 담아줄 어른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 사회의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시놉시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리사’는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통해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연히 자신의 학생 다섯 살 ‘지미’가 시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이의 시를 자신의 시수업에서 발표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 자신을 더 투영해야 해.”
영화의 주인공 리사는 이제라도 꿈을 이뤄보겠다고 다짐하며 시 쓰기 수업을 신청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어딘가 모자라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럴싸한 단어의 집합. 딱 거기서 그쳐버리는 애매한 시. 그게 리사의 시다. 본인도 알고 있다. 나의 시가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손을 들고 발표할만한 대단한 시는 아니라는 것을. 열정과 꿈을 안고 수업에 들어왔지만 리사에게 수업은 즐거움과 두근거림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명분, 딱 그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미라는 아이가 리사의 눈에 들어온다. 좀비처럼 어슬렁 어슬렁 걷다가도 감정이 가득 담긴 시를 읊조리는 5살 아이. 태양의 반짝임과 사랑의 두근거림을 담아낼 줄 아는 5살 아이라니. 사랑이 뭔지는 알까? 싶은 나이지만 지미의 시는 그 안일한 생각을 모두 물리칠 만큼 아름답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적어 수업에서 발표한다. “정말 좋았어요.” 리사를 향해 여러 형태의 칭찬들이 쏟아진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시에 대한 칭찬. 내가 쓴 것이 아님에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리사는 그 아름다운 시를 어떻게 썼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진 알고 있다. 작은 시인, 지미를 통하면 된다.
그 후로 리사는 지미에게 더 큰 기대와 집착을 갖게 된다. 새로운 시선으로 글을 써야 할 땐 지미를 번쩍 들어 높은 곳에서의 시선을 만들어주고, 지미가 나쁜 말을 쓸 때면 아이의 언어습관을 관리한다. 낮잠을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옅은 집착과 열망의 냄새가 풍겨온다. 리사는 아이를 위해 시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녀의 행동이 지미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분명 리사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떳떳한 행동은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시가 떠오르면 보모인 베카에게 말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고, 휴대폰 번호를 저장해 주겠으니 전화하라는 약속. 그리고 이름 전체가 아닌 L로 저장된 전화번호. 보모의 자격을 얻기 위해 꿈이 있는 젊은 보모를 몰아내려 행한 이간질. 리사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겠다는 괘변 아래 자신의 집착을 합리화한다.
무대 위 마이크보다 작은, 너무도 여리고 작은 나의 시인. 리사는 지미의 빛나는 재능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지미의 아빠는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가족들은 아이에게 무관심하다. 모차르트급의 천재적 재능이 있는 아이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재능을 알지 못하고, 발견하려 하지도 않는다.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아이의 재능은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리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지미의 재능을 빛내주기 위해 낭독회에 지미를 데려가지만 지미의 아빠는 아이의 재능엔 관심이 없다. 물론 리사가 아빠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고 아이를 데려간 것부터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 해. 나 같은 그림자가 되면 안 돼.”
리사가 지미를 향해 처음으로 가진 감정은 놀라움이었고 애정이었다. 그리고 선을 넘은 애정은 집착이 되어버린다. 지미의 등굣길을 뒤따라간 리사는 잠겨진 문을 열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그녀는 철창 안에 갇혀있던 작은 시인을 품에 안고 드넓은 호수로 향한다. 불안감이 가득 차오르는 오후를 보내고 몸에 붙은 것들을 씻어내는 순간. 지미는 기지를 발휘해 욕실의 문을 잠근다. 리사는 욕실 문에 붙어 앉아 지미에게 가졌던 애정과 집착을 풀어낸다.
아이와 어른이기 이전에 같은 시를 창작해내는 사람으로서 리사는 지미를 질투하고 또 사랑했다. 리사는 지미의 입을 떠나 공중에서 분해되는 아름다운 시들을 받아 적으려 노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미의 주변 어른들은 지미의 시를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뱉어내는 몇 마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리사는 달랐다.
“시가 떠올라요”
지미는 리사를 만나고 “시가 떠오른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새로 떠오른다 한들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던 작은 시인의 시. 그것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은 리사뿐이었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에 집착한 유치원 선생님이자 납치범이지만 그녀만큼 지미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납치범을 벗어나 안전한 경찰차 안에 앉게 된 아이가 말한다. “시가 떠올라요. 시가 떠올랐다고요.” 하지만 경찰은 아이의 말을 궁금해하기보단 아이스크림을 갖다주겠다며 무심하게 차 문을 닫는다. 두꺼운 유리창을 뚫지 못한 아이의 말은 그대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지미가 아름다운 시를 읊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 그 순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깊은 열등감과 집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에 조금씩 동화되어 갔던 시간이었다. 빛나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차가운 세상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리사는 나쁜 어른이었던 걸까. 완벽한 잘못도, 완벽한 애정도 아니었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 아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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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라마와의 랑데부> 작업 중인 것은 사실이고, 그 각본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어요. <클레오파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듄: 메시아>도요. 다시 카메라 뒤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죠.”
-드니 빌뇌브-
최근 빌뇌브 감독은 <라마와의 랑데부>를 ‘강화된 <컨택트>’라고 묘사했는데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창조자인 클라크가 원작자이기 때문에, 이 작품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줄 만한 SF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9월 2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더 룸 넥스트 도어> 황금사자상 수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어 장편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줄리앤 무어와 틸다 스윈튼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안락사와 여성의 우정에 대해 다루며 영화가 상영됐을 때 18분간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고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세상에 존엄하게 안녕을 고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 권리”라며 “안락사는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고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드니 빌뇌브 <라마와의 랑데부> <클레오파트라> 프로젝트 “천천히 진행중”
드니 빌뇌브 감독은 <라마와의 랑데부>, <클레오파트라>, <듄: 메시아> 프로젝트를 모두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그는 <라마와의 랑데부>를 ‘강화된 <컨택트>’라고 묘사했으며, <라마와의 랑데부> 각본은 <듄>을 작업했던 에릭 로스가 맡고 있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1917>의 각본가 크리스티 윌슨-케언스가 각색을 맡았으며 캐스팅 목록이 유출되며 젠데이아가 ‘클레오파트라’역을 맡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12분간 기립박수 받은 <조커 폴리 아 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 폴리 아 되>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2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였으며, 새로운 인물들과 깊어진 서사가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는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를 재해석하며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로 오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 시리즈 확정 송강호 주연
영화 <내부자들>이 배우 송강호 주연의 시리즈로 만들어집니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내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시리즈 <내부자들>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드라마에서 송강호는 백윤식이 연기했던 ‘이강희’ 역을 맡아 대한민국의 판을 짜고 조직하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부부의 세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연출한 모완일 감독이 연출을 맡고, <모가디슈>와 <암살>의 이기철 작가가 극본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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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근데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혼자 잠도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 하는 것뿐이지."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1인 가구 비율이 31.7퍼센트(2020,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가 된 세태를 중심으로 거기 속한 인물들의 군상을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여성)이 마주하는 여러 종류의 불안감과 1인분의 삶을 소화해내느라 분투하는 이의 외강내유한 내면을 살피는 작품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프란시스 하>(2012)에 대한 김혜리 기자의 평문 중 "일상을 열심히 전시한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자랑할 만큼 인생을 만족스러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족하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라는 문장에 오래 머문 적 있다. 어쩌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혼자 해결하는 사람에게도 이것은 비슷한 종류일 것 같다. 가령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은 그것이 좋거나 편해서이기보다 타인과의 식사가 불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불편해서.
'진아'(공승연)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곁에 사람이 아닌 기계적 장치로 '혼자가 아닌 것처럼 혼자 보내기'를 행한다. 거기에는 주로 이어폰과 같이 자신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하는 수단이 자리 잡는다. 점심시간마다 홀로 찾는 국숫집에서, 혹은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진아'는 예능이나 먹방을 보고 있다.
그러니, 식사를 같이 하자고 살갑게 따라오는 신입 직원 '수진'(정다연)이나 자신에게 신입 교육을 떠맡기는 사수이자 팀장 '해나'(김해나)나 교회에 나오라고 별 용건 없이 전화하는 아빠(박정학)는 '진아'에게 불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실도 아닌 방 안에 모든 살림을 밀어 넣은 '진아'가 혼자의 일상을 간신히 살아내는 동안 영화 안에서는 조금씩 그 일상을 뒤흔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진아'의 태도에도 일말의 변화가 생겨난다. 그가 누군가에게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라고 어떤 순간에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불과 90분밖에 되지 않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섬세한 연출과 각본으로 (1인 가구라는 삶의 형태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혼자인 채로 사는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과 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혹은 혼자이기를 택해야 했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떤 장면에서 '진아'는 더 이상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다. 그건 삶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의 일상을 좀 더 잘 보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에서 업로드한 게시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