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08 15:18:33
[BIFF 데일리] 느릿한 이별을 이해하는 마음
영화 <나 홀로 여행하기> 리뷰
[BIFF 데일리] 느릿한 이별을 이해하는 마음
영화 <나 홀로 여행하기> 리뷰
감독 : 이시바시 유호
출연 : 오카모토 레이, 오사무라 코키, 사카노우네 아카네, 이와타 카나데
나 홀로 여행하기>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로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이시바시 유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너무 소중하기에 오히려 자주 열어볼 수 없었던 기억의 서랍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가 그늘에서 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영화였다면 <나 홀로 여행하기>는 그 햇빛 아래서 묵은 이불 먼지를 털어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도쿄에서 10년 동안 바쁘게 일만 해온 주인공 미사키는 일과 사랑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사키는 동료들이 준 꽃다발 속 카드, 끝이 좋지 않았던 전 애인과의 연결고리들을 모두 도쿄에 버려두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고향에 도착한 미사키는 여전히 그대로인 장소들을 누비며 가족,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마침 중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미사키는 첫사랑 소년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중학생 미사키와 어른 미사키를 설레게 만든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그가 사고로 죽었다는 동창들의 대화만 들려온다. 미사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소년을 잊지 못하고 소년과 함께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는다.

미사키의 이야기엔 빈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미사키와 소년이 사귀었다고 생각할 만큼 두 사람은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의 공유 받지 못하고, 미사키가 소년에게 어떤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는지 소년은 미사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은 그저 미사키의 마음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그가 상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간혹 지난하고 느리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하기>는 이에 개의치않고 정직하게 나아가며 끝내 그 빈 부분을 채워줄 다양한 상상과 감정들을 손에 쥐어준다.
[상영 시간]
10월 3일 (목) 16:3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10월 5일 (토) 17:00 CGV센텀시티 5관
10월 6일 (일)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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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즈 앤 판처 최종장 - 4DX의 기술적인 혁신으로'만' 주목할만한 영화
필자는 개인적으로 4DX를 좋아하는 편이다. 1회차로는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N차 관람을 할 때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4DX 여부에 따라 영화의 몰입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수준의 영화도 존재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작사가 철저하게 관여해서 4DX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이번에 리뷰할 "걸즈 앤 판처 최종장"도 이런 경우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타겟층은 확실하다. 전형적인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워 오타쿠층을 노린 것과, 탱크, 전함 등 밀리터리 요소들을 이용해 일명 "밀덕"들을 노린 작품이다. 일반적인 대중에게(필자를 포함한) 매니악한 요소들은 다 모아둔데다가, 본 작품 역시 TVA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다보니, 이미 원작을 보았고 전체적인 내용을 이미 감상 및 이해하였다는 전제하에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로서의 독립성은 매우 낮다고 평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필자도 기본적인 영화 스토리를 보고 "아니 3학년 한 명이 유급당하는 거 가지고 왜 전교생이 나서서 도와주는거지? 라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니. 사실 애초에 전차를 이용한 가상의 무도 전차도(戦車道)가 여자로서의 소양이라 여겨지는 세계관이라는 것 부터가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하다. 독립적인 서사가 아닌 원작과 전작 극장판을 봐야 이해가 간다는 점에서 본 영화의 입문 난이도와 더불어 영화로서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혹평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4DX 기술 활용의 혁신". 2017년에 나온 극장판의 경우에는 필자는 보지 않았지만 그 당시 4DX가 매우 호평이었다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상술하였듯이 대부분의 4DX는 제작 후에 효과를 이식하는 방식인데, 이 작품은 철저하게 관여해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이 영화의 본질은 4DX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스토리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전차 전투씬이기 때문에, 훌륭한 효과들이 지속적으로 알차게 나온다. 전차포의 포격, 전차의 궤도 움직임, 심지어 비와 눈, 번개와 같은 기상 효과까지. 4DX 효과의 대부분을 경험해볼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 알고 등장인물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필자 마저도 몰입해서 봤을 정도로 4DX 효과의 힘이 정말 강력하게 발휘된다. 영화의 자체적인 작품성이라면 몰라도 4DX 영화가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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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의 꿈도 현실도 따뜻하게 품는 <미나리>
캘리포니아를 떠나 미국 아칸소로 이사한 '제이콥(스티브 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 공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것에 학을 뗀 제이콥은 공장일과는 별개로 바퀴 달린 집에 딸린 농장에서 한국 농산물을 길러 팔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긴다. 반면 처음부터 여건이 좋은 대도시를 떠나 농장을 하겠다는 남편의 선택을 탐탁지 않아하던 모니카는 자신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이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을 위해 엄마 '순자(윤여정)'를 집으로 부른다. 그러나 순자가 도착한 후 농사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제이곱과 모니카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앤과 데이빗도 좀처럼 순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데이빗네 가족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거대한 불평등(Great Divide)' 출간 당시 “선진국 중 미국은 소득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고 경제적 신분 상승을 위한 공평한 기회가 최악인 나라 중 하나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가면 갈수록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서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미국의 정체성이기도 한 '아메리칸 드림'이 이제 무의미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티글리츠 교수의 비판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어의 비중이 50%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이견의 여지없이 미국 영화임을 확인해 준다. 한국 이민자 1세대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과 희망을 스크린에 불러오면서도 그 꿈의 아픈 현실까지 끌어안는, 지극히 미국적인 감성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정겹다. 정이삭 감독의 유년기 시절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 차 뒷자리에 탄 데이빗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오프닝도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사실 분위기와 별개로 작중 데이빗네 가족은 그들의 관계와 생활기반에 위협을 느낄 만한 사건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데이빗의 시점과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영화는 햇빛을 받은 파도치지 않는 바다처럼 따뜻하게 빛난다.
이러한 영화의 스탠스는 제이콥과 모니카가 이사 직후 말싸움을 벌이는 순간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부부의 갈등은 마지막까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적인 구도다.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굳이 열심히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부부가 부엌에서 말다툼을 시작하는 순간 카메라는 돌연 방에 들어가 있는 앤과 데이빗의 모습을 비춘다. 울리는 부부의 목소리를 통해 말다툼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며 현실과 적당한 거리감을 둔다.
그러다 보니 흔한 악역 하나 등장하지 않은 채 가족들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로만 내용을 구성하는 의외의 선택을 해도 영화는 어색함이 없다. 부부간의 다툼보다 순자와 데이빗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도, 일꾼 폴과 같은 주변 이웃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흔히 볼 법한 인종 차별 문제가 등장하지 않아도 이들의 이민 적응기는 미소를 품고 보게 만드는 흡입력을 갖는다. 책임을 도맡는 아버지와 모든 불안을 어떻게는 받아내는 강인한 어머니라는 다소 전형적인 인물상도,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도 진부함보다는 공감을 위한 보편성에 한 발짝 더 가깝다. 그렇게 영화는 큰 굴곡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이민 가족이 써 내려가는 한 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미나리>가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을 좋은 추억으로만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 판매장 앞에서 두 부부가 벌이는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이 함께 건강하게 지내는 것보다도 농사를 짓고 판매처를 확보하는 게 더 우선인 듯한 제이콥에게 모니카는 믿음이 사라졌다며 차갑게 화를 낸다. 이는 힘겨운 이민 생활에 먼저 순응하고 교회처럼 눈에 보이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일상을 이루려는 사람과 이민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개인의 성취 안에서 일상을 회복하려는 사람 사이의 대립이다. 곧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에 충실하려는 이와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에 헌신하는 이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모든 미국의 이민자들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이자 역사이고, <미나리>가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때 영화는 부부간의 다툼을 아이들의 시점에서 보여주었던 초반부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싸울 때 아이들의 시선, 아이들의 존재는 카메라 밖으로 밀려나 버리고, 영화 전반을 감싸던 동화적 분위기도 자취를 감춘다. 그 결과 중간중간 공장 동료나 이웃들의 말을 통해 암시되어 있던 한인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한인 사회 안에서의 갈등과 대립, 인종차별의 흔적을 포함한 현실의 어두움이 창고를 집어삼키는 불길처럼 뛰쳐나온다. 아이들은 듣지 못하도록 배려했던 어른들의 현실이 한 데 응축되어 폭발하고, 이민 가족의 현실이 스티븐 연과 한예리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한순간 드러나는 임팩트는 더욱 강렬해진다. 이처럼 잔잔한 바다는 순간적으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성난 바다로 돌변한다.
사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현실의 갈등, 아픔, 상처를 그려내는 것은 자칫 영화 내용과 분위기 사이에 괴리가 생길 위험성을 내포한다. <미나리>처럼 영화의 분위기를 갑작스럽게 전환시키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순자의 존재 덕분에 <미나리>는 내용과 분위기 사이의 간극을 유려하게 이어 붙이는 데 성공한다. 순자는 보따리 안에 싸온 짐들을 통해 자칫 무너질 법한 가족의 관계, 현실에서 부딪히고 열패감에 무너질 뻔했던 가족의 일원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이때 가장 빛나는 것은 당연 영화의 제목인 미나리다. 영화는 물을 정화시키고, 생명력이 강하며, 한국적인 특유의 향을 내는 미나리의 특징을 스토리텔링에 영리하게 써먹는다.
우선 물을 정화하는 미나리는 가족이 해체될 뻔한 위기를 막는다. 작중 가족의 갈등은 물로 표현된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대립은 폭풍우로 인해 새 집에서 물이 샐 때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우물의 물이 마르자 수돗물을 농수로 돌린 결과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그 둘 사이의, 이민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때 데이빗네 가족은 이때 순자의 미나리가 정화한 냇가의 물을 덕분에 물 부족을 버텨낸다. 또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는 데이빗과 나머지 가족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설사 큰 농장에서 관리받는 농작물처럼 대도시에서 한인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야생의 냇가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미나리처럼 역경을 이기고 원하는 꿈을 향해 한 발짝을 더 내딛는다.
다른 채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나리 특유의 향은 순자가 가져온 한국적인 선물들과 더해져 가족들이 미국 땅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향수병에 걸린 듯 보이던 모니카에게는 멸치와 고춧가루를 주며 위안을, 데이빗에게는 한약과 함께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을 건넨다. 또 화투는 데이빗이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할 때 사용되며, 그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두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순자 본인도 제이콥과 모니카가 화해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처럼 미나리를 비롯한 다양한 모습으로 치유제와 접착제로서 역할을 다하는 순자를 보다 보면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가 자연히 납득된다.
미국은 그 시작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그래서 흔히 미국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로 샐러드볼을 많이 거론한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라는 채소들은 미국이라는 그릇 안에서 뒤섞이면서도 각각의 고유한 맛과 향을 잃지 않는 사회가 미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채소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온, 기어코 살아남은 미나리도 역시 미국이라는 샐러드의 한 재료로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할 따름이다.
<미나리>는 빈 땅을 개척해 성공을 일구려는 꿈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다. 한국어와 한국인 배우가 나오고,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기저에서는 미국 땅을 밟고 있는 이들이 오랜 기간 보편적으로 공유해온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목적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적인 맛과 향,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하더라도 <미나리>는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아픈 현실을 감싸 안는 따뜻한 가족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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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성과 연결, 마블의 분위기 전환
우리는 살면서 계속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처음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주변 가족들을 만난다. 그러다 자라면서 친구와 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는 관계는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멀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한다.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을 만드는 일은 현재에는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와 강한 연결관계가 되어간다는 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리고 각자가 서로 연결되어있을 때 그 힘은 막강해진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가까운 곳의 관계뿐 아니라 먼 나라의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를 만들었다. 인터넷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여러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먼 곳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있다. 그 관계에는 높고 낮음이 없고 다른 인종이라고 할지라도 강한 연결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그렇게 다양한 연결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때다. 어려움이 있으면 연대하고 서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 힘을 얻어 행동으로 이어나간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서로 연결된 힘이 있으면 쉽게 그것은 깨지지 않는다.
다양성과 연결에 대한 이야기
영화 <이터널스>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마블의 새로운 영화다. 영화 속 이터널스 주요 인물들은 포식자인 데비안츠를 막기 위해 지구로 온 히어로들이다. 7천 년 전 지구에 온 이후 주요 지역에 지구인과 생활하면서 주변에 나타나는 데비안츠를 사냥했고, 그 포식자들이 모습을 완전히 감춘이후에는 각자의 삶을 지구에서 보내게 된다. 그들은 우주와 이터널스를 창조한 '셀레스티얼'이라는 존재를 따르고 있으며, 지구로 와서 데비안츠를 사냥하는 것도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터널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인 에이작(셀마 헤이엑)은 셀레스티얼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그의 말에 따라 지구에서의 생활을 리드한다.
<이터널스> 안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다양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르시(젬마 찬), 이카리스(리처드 매든)를 비롯해 테나(안젤리나 졸리), 길가메시(마동석),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마카리(로렌 리들로프), 파스토스(브라이언 다이리 헨리), 드루이그(베리 케오간) 그리고 스프라이트(리아 맥휴)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숫자도 많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도 다양하다. 백인, 아시아인, 남미인 등 인종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양성애와 동성애 같은 성향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그 어떤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구성 자체에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태계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성은 생명을 순환의 고리에 넣어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다양성으로 인해 여러 포식자들이 등장하고 때론 그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지만 여러 아픔과 복잡한 사건들이 벌어진 이후에 좀 더 나은 존재가 탄생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세상을 번성하게 할 아이디어들도 등장한다. 그래서 이터널스의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성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되고 동기가 된다. 그들이 포식자가 된 데비안츠를 물리치는 일도 결국에는 지구 생명체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지구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지구로 온 이터널스
그들이 맨 처음 지구에 왔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힘을 합쳐 괴물 데비안츠를 물리친다. 꽤 긴 시간 동안 그들은 함께하며 공통의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데 힘을 모은다. 그들이 가진 각자의 특성은 지구 안에 존재하고 있는 데비안츠들을 물리치는 일이 원활히 진행되게 만든다. 결국 지구 안의 데비안츠를 모두 물리친 이후 목적을 잃은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며 각자가 가진 의견이 달라졌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달라졌다. 그렇게 따로 생활하게 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가진 힘도 서서히 약해진다. 개개인의 능력은 여전할지 몰라도 이터널스라는 집단의 힘은 줄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판단했을 때 자신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는 시기가 도래했고 이에 그들 스스로 자신의 힘을 내려 놓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데비안츠라는 파괴적 존재와 비교 했을 때 좀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지구에 머물렀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이것은 그들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힘을 주는 또 다른 근원이 된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말할 수 있을 그 애정은 지구인들이 싸우고 서로 칼을 찌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적인 존재인 그들이 지구인들을 돕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왜인지 그들을 이끄는 셀레스티얼은 지구인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다. 역사 속에서 수없이 잔인한 전쟁과 질병이 지구인들을 괴롭혀도 이터널스는 그것에 개입하지 못했다. 그것이 전 우주적으로 벌어졌던 이벤트인 악당 타노스의 악행에도 이터널스가 개입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영화는 이터널스 멤버들 간에도 지구인의 일에 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 내내 멤버들은 하나로 뭉치는 모습이 아니라 계속 서로를 의심하고 밀어낸다. 영화 <이터널스>에는 셀레스티얼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고, 어떤 이유로 엄청나게 진화해버린 데비안츠가 등장함으로써 기본적인 긴장감을 바탕에 깐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높은 긴장을 불러오는 것은 이터널스 멤버들 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때다. 실제로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도 이 구도는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까지 서로 간을 설득하며 연결을 시도하려는 모습은 마치 현재 다양한 인종들이 뒤섞여사는 현실에서 다양성의 융합을 통해 힘을 극대화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닮아있다. 결국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수없이 발현된 다양성을 하나로 모아 융합하는 것이다.
영화는 과거에서 현재가 되기까지 각 구성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보여주며 영화의 중반까지 진행해 나간다. 그들 각자가 가진 사연이 결국 후반부에 이어지게 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봐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하다. 15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서 너무나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모든 인물들은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기존의 히어로들이 아니어서 그들에게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시간에는 한참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존 마블 영화에 비해 그 안의 캐릭터와 공감하고 그들의 행동에 의한 감정적 울림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인다. 그래서 결말부 몇몇 캐릭터들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기존 마블 영화와 차별화되는 이 영화의 메시지
하지만 이터널스 멤버들의 각기 다른 특성과 능력이나 그들이 향하는 방향 속에 포함된 영화의 주제의식은 다른 마블 영화에 비해서 또렷한 편이다. 여러 가지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나 캐릭터 행동의 변화 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터널스 멤버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떤 방향인지, 그리고 향후 이어질 마블 영화가 어떤 주제의식 안에서 진행될지를 보여준다는 개괄적인 의미는 가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다양성과 그 다양성이 한곳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뚜렷한 주제의식이고 그것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영화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 로 베니스 황금사자상,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는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여러 수상을 했다. <노매드랜드>에서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 연결과 우정,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줬는데, 그런 감독이 가진 자신만의 이야기가 영화 <이터널스>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전혀 성향이 다른 두 영화지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서 조금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마블 영화라는 조금은 특이한 영역에서도 클로이 자오 감독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그가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마블 히어로 영화에서 오롯이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이터널스> 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해 한국 배우인 마동석은 길가메시 역으로 등장해 그가 가진 특유의 타격감 있는 액션을 펼친다. 젬마 찬, 리처드 매든, 셀마 헤이엑, 쿠마일 난지아니 등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출연하여 그들이 가진 특유의 감성과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영화가 가진 주제와 맞닿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기존 마블 영화와 같은 밝고 오락적인 영화는 아닐지라도 앞으로 개봉할 마블의 다양한 영화들이 어떤 곳으로 향할지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마블의 분위기 전환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다. 또한 아쉬움은 있더라도 영화에 포함된 다양한 액션 장면은 여전히 이 영화가 마블 영화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이터널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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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두 교황 - 넷플릭스의 한계를 깨부순 영화
<줄거리>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르골리오'는 '바티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가 차기 교황이 된다.
때는 2013년 '베르골리오'는 추기경 은퇴 고민을 앞두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어 전전긍긍 하던 도중 '로마'로 갈 생각을 하게 된다. 시기적절 하게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를
'로마'로 오라고 연락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만나, 현재의 카톨릭 교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골리오'의 은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임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바티칸에선 다양한 비리가 있었고, 결정타로 성 추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야기를 '베르골리오'에게 이야기 하며, 고해한다.
그 후,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로 떠나며, 1년 후 교황이 된다.
과연 그 둘이 나누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공개된다.
"실화에서 시작된 위대한 이야기"
<예고편>
<제작진&배우>
감독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필모그래피 : 눈먼 자들의 도시, 두 교황, 사랑해 리우, 콘스탄트 가드너, 시티 오브 갓
브라질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로
'시티 오브 갓'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브라질 영화제가 출품을 거부함에도 오스카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잡은 앞으로를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입니다.
이름 : 안소니 홉킨스
극중 역할 : 베네딕토 16세
필모그래피 : 양들의 침묵, 한니발, 토르 시리즈, 남아있는 나날, 두 교황 등 다수
'양들의 침묵'에서 표정 연기와 특유의 기분나쁜 연기는 지금 봐도 어떤 악역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소름끼치고 기분나쁘게 잘 하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는 배우입니다.
이름 : 조나단 프라이스
극중 역할 : 프란치스코
필모그래피 : 두 교황, 캐링턴, 왕좌의 게임 5, 우먼 인 골드, 더 와이프 등 다수
미국 영화나 드라마 종종 보시면 많이 본 배우로,
‘지아이조 시리즈’에 미국 대통령 역할로 나왔으며, 미국의 이경영 같은 느낌의 배우입니다.
‘캐링턴’ 으로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진짜 프란체스코 교황 그 자체였다고 말 할 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여담으로 ‘왕좌의게임 시즌5’ 에서 ‘칠신교’의 수장 ‘하이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다.
총 평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가치와 넷플릭스 영화는 그저 재미 위주라는 고정관념과
작품성과 예술성이 없다고 하며, 평가절하하는 평론가들과 아카데미의 편협한 생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시발점과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자진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플롯의 형태를 띄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교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아깝지만, '천문'이 있습니다.
처음 저는 이 영화를 보기전에 이 영화의 장르는 브로맨스 인 줄 알았지만,
이 영화는 브로맨스를 가장한 정치 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티칸'을 위해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사이의 밀약과 정치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루며,
우리가 잘 아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아닌 ‘베네딕토 16세’는 어떤 사람이며,
그 사람의 성향과 인자함, 관용, 생각 등을 보이며 대립과 타협을 잘 이끌어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단순하게 배우 둘이서 영화를 이끕니다.
그 말은 즉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이 이 모든걸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시퀀스는 사실 바티칸 하나로만 봐도 무방합니다.
영화에서 시퀀스는 대게 영화의 박진감 혹은 긴장감 또는 몰입도를 높이는데에 사용됩니다.
시퀀스가 적으면, 관객의 눈을 다른데에 못 돌려서,
배우의 연기력과 영화 그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 점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말하자면,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페인 축구의 장점은 '티키타카' 전술입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대사 하나를 짧게 던지거나 툭 치면
바로 ‘조나단 프라이스’가 흐름이 안 끊기게 바로 받아서 툭 받아치고,
그 분위기에 걸맞게 이용하는 감독의 연출이 더해져서
완전 유리한 홈경기와 같이 보여집니다.
연기를 잘해도 이렇게 티키타카 하는 건 상당히 힘듭니다.
‘천문’을 보면, 분명 '최민식’과 ‘한석규’가 정치를 위해 둘이 밀약을 하며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근데, 중간에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초점이 더 '한석규’에 맞춰지다 보니,
영화는 장영실을 메인으로 다루지만, 세종이 더 조명되며,
내가 세종대왕 이야기를 보는지,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보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두 교황에선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 둘다 같이 어느 한쪽에만 몰리지 않고,
서로 어색함 없이, 실제 친한 느낌처럼 대화를 주고 받는 느낌이라
전혀 어색한 느낌도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술술 풀어갑니다.
영화의 연출은 상당히 심플하다. 사실 연출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카메라는 그 둘만 비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카메라에는 진짜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체스코가 살아 숨쉬는 듯한 연기력을 담고,
그걸 매끄럽게 잘 이어붙인 감독의 실력이 깃들 뿐 입니다.
진짜, 잘 만들었고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못 받은 것은 아쉬운 따름입니다.
2019년 제가 본 넷플릭스 영화 중 단연 탑 3안에 뽑으라면 뽑을 영화였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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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한스의 선택
<거대한 자유(Grosse Freiheit)>(2021, 세바스티안 마이저)
* 위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1969년 서독, 몇 번째인지 모를 옥살이를 하던 한스 호프만은 ‘175조’ 폐지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보게 된다. 출소한 후 어느 바 앞에 다다르고, 두 남자가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며 그곳을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간판에 적힌 이름은 ‘거대한 자유’. 들어가 홀로 있던 한스는 낯선 남자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미로같은 공간, 남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들을 비추지만 집중조명하지는 않는다. 꿈꾸는 듯한 시선과 리듬으로 한스를 따라간다. 이내 미로를 빠져나온 그는 자판기에서 담배를 뽑고, 밤거리로 나와 상점 쇼윈도를 깨 물건을 대강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여유롭게 서성이다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번의 카메라는 길 건너편에 고정된 채 먼발치에서 원테이크로 그를 담는다. 화면은 어둡고,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바 시퀀스에서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은 멎은 채다. 단조로운 경보음이 귀를 파고든다. 엔딩크레딧에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는다.
침묵 속에서 관객은 생각에 빠진다, 한스는 왜 교도소로 돌아가기로 했을까. 그에 대한 두 갈래의 해석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포스터 아트 또한 다른 정서로 읽히게 될 것 같다.
먼저, 13년 동안 여러 번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더 나은 삶을 바라기를 포기하게 됐고, 머릿속 감옥에 갇혀버렸다고 보는 방향이 있다. 앞서 한스는 레오를 교도소에서 내보내기 위해 그의 거짓 진술을 인정했었다. ‘왜 그랬냐’고 묻는 레오에게 ‘너와 달리 나는 이미 희망이 없다’며 자조했었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대사는 오스카와의 미래를 꿈꾸던 십 년 전과 대조된다. 연인을 향한 열정으로 반짝이던 눈은 이제 생기를 잃고 일시적인 위안을 찾는다. ‘거대한 자유’에서 마음껏 서로를 탐하는 남자들을 지나며 제가 속할 곳이 아니라고 느꼈고, 자유를 반납한 후 ‘안락’하고 익숙한 생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자판기에서 담배를 뽑은 것은 영혼이 억압에 중독되었음을 상징한다. 마침내 ‘거대한 자유’가 ‘(부분적으로)허용’됐을 때, 한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린 채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 더 힘을 싣고 싶은 것은 두 번째 해석이다. (배우의 얼굴에 담긴 것이 이에 가깝다고 느꼈다.) 한스는 변한 적이 없다, 늘 사랑의 자유를 위해 망설임 없이 다른 모든 자유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 이였다. 십 년 전 오스카에게 동독으로 넘어가자고 말했던 그는, 이제 빅토르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은 익숙한 억압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빅토르와 같은 중독자의 패턴을 보인 것도, 체념하거나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한스는 자신이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대한 자유’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자들을 지나치며 그가 느낀 것은 몸의 자유, 그리고 ‘너’의 부재. 그래서 쇼윈도에 돌을 던졌다. ‘너’와의 추억이 담긴 담배에 불을 붙이곤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네가 나올 수 없다면 내가 들어갈게.’, 그에게 자유는, 머무는 장소에 있지 않았다. 사랑에 있었고, 상대방에 있었다.
너무 낭만화한 것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이라 해도- 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려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늘 확실하지만은 않은 말과 행동, 몸짓과 표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뒤따르는 감상은 달라질 테다. 내가 한스 호프만의 눈빛에서 읽은 바는 위 두 문단 중 후자에 가까웠고, 그를 바탕으로 아래 문장들을 적었다.
1945년, 한스 호프만은 수용소에서 교도소로 ‘옮겨진’다. 파시즘 체제가 내린 형을 2차대전 후에 ‘이어’ 살게 된 것이다. 독일 제국 때 확립되고 나치가 강화한 ‘형법 175조’를 서독이 그대로 따르기로 해서다. 영화가 이 이상한 시대와 국가와 법을 고발하는 방법은, 한스라는 인물로 중심을 잡는 것, 그의 눈에 세계를 담고 세계가 그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허구적 ‘위인’의 (자서전보다는)전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계의 상대방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 역시 그를 관찰하고, 시선으로 그에 대해 말한다. 1968년, 재판을 받고, 옷을 벗고, 신체 부위를 내보이는- 그의 행동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익숙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종종 자조와 체념을 내보이기는 하지만 한스의 태도는 늘 당당하다. 잘못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늘 방법을 찾아낸다’. 한스 호프만은 그 한결같음으로 주변의 폭력성과 비정상성을 선명히 드러내는, 드물게 빛나는 사람이다. (해선 안 될 것은 한스를 밀어낸 오스카나 거짓 진술을 한 레오를 섣불리 평가하는 행위. 레오를 비난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한스 뿐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저화질 필름에 담긴 비디오였다. 장소는 공중화장실, 카메라는 고정된 채 그곳에서 성행위를 하는 남자들을 촬영한다. 서독 경찰이 숨겨놓은 카메라에 찍힌 영상으로, 재판장에서 공개되어 한스가 ‘175조’를 어겼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로 쓰인다. 그러나 영화는 먼저 관객에게 그 자체만을 보여주길 택했다. 촬영된 까닭과 재생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본다면, 영상에 담긴 것은 그저 (불법이 아니어야 할 일이 불법인 세상에서) 순수한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일 따름이다. 오스카와의 추억 역시 유사한 비율과 톤의 프레임에 담겨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교도소 문에 달린 반입구가 있다, 빅토르가 한스에게 불을 붙여주던. 독방에서 한스가 피운 성냥의 불빛이 꺼지며 1945년으로 연결되는 연출은- 긴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옥살이를 하며 그가 찾은 자유가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듯하다.
작품이 1945년이나 1969년이 아닌 1968년을 오프닝에 배치한 까닭은, 또다른 시작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사랑의 상대방으로서 재회한 해. 오스카의 죽음을 알고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빅토르가 십 년 후 마약중독으로 괴로워할 때, 한스는 그 포옹을 돌려준다. 당신의 괴로움을 다 내 피부에 새기겠다고, 내가 붙잡을 테니 당신은 놓아도 괜찮다고 선언하듯 촘촘하고 단단한 그 포옹들. 작품은 빅토르와 한스의 관계를 ‘편견을 넘어선 우정’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히 로맨스에 다다르도록 했다. 거기엔 빅토르가 처음부터 틀렸다는 암시가 있다. 어쩌면 먼저 상대를 좋아하기 시작한 쪽이었던 그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꺼내어 준 한스의 사랑에 구원받았다. 구원은 (차별적 억압의 근거로 이용되곤 했던) 십자가와 성경에 있지 않았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남자와 데이트하는, 성경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러브레터를 쓰는, 그것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우는 한스의- 조그마한 신성모독, 위대한 사랑에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가끔 <거대한 자유>의 포스터를 들여다봤다. 누군가의 머리에 나 있는 문, 그 프레임 안엔 아마도 그 자신일 남자가 갇혀 담배를 물고 있다. 밖에서 불을 붙이는 손은 누구의 것일까, 어쩌면 그역시 자신의 손일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히 짐작하기도 했다. 영화를 관람하며 손의 주인이 빅토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기억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손은 그 자신의 것이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957년, 컴컴한 독방에서 한스는 오스카와의 추억을 재생했다. 성냥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13년 동안 교도소와 독방을 들락거린 그를 살아남게, 아니 살게 한 것은 그 성냥불이었다. 찰나를 태우고 사그라들지만 기억 속에서 반복해 빛을 내는 그것은, 특정한 대상인 빅토르보다는 모든 사랑과 상대방들을 상징함에 더 가깝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한스는 사랑의 감정과 기억에서 얻은 연료로 삶의 불을 붙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둠 속 잠깐의 빛에 홀려 중독된 것이라 해도, 그 길에 사랑이 있다면- 나는 한스의 마지막 선택을 감히 안타까워하고 싶지는 않다.
<거대한 자유>는 실재했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고발, 빅토르와 한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스 호프만과 그가 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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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2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의 실사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가 2차 포스터, 2차 예고편 공개와
함께 오는 6월 극장 개봉을 확정 지었습니다.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의 3부작을 모두 연출한 딘 데블로이스 감독을
비롯해 함께 했던 제작진이 모두 참여해 원작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원작인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는
바이킹 소년 히컵과 드래곤 투슬리스의 우정과 모험을 다루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습니다.
<콘스탄틴>의 속편 제작 진행되나
많은 팬이 고대해 온 <콘스탄틴>의 속편 제작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콘스탄틴>을 연출한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최근 ‘Collider’와의 인터뷰에서“속편을 제작할 가능성이 지금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는 것은 정말멋진 일이다. 정말 멋진 것이 진행 중이다.”라며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속편 제작과 관련해 각본가 아키바 골즈먼이 해당 시나리오를 마무리하였고, J.J. 에이브람스가 제작자로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 <애프터>, 2025년 말 촬영 예정
2018년 <살인마 잭의 집> 연출 이후, 신작 소식이 들리지 않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2025년 말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2022년 8월 파킨슨병 진단 소식을 밝힌 바 있는 그는 신작에서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며,
파킨슨병과 그의 유한성이 영화의 중심이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프로듀서 피터 알베이크 옌센은 “현재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창작에 통합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개최일 공개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개최일을 공개하였습니다.
오는 5월 16일 금요일부터 5월 20일 화요일까지 인천광역시 일대에서 진행되는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는기존 상영관이었던 애관극장과 인천아트플랫폼 등과 더불어 지역극장인 인천 미림극장까지 확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민이 시작된 도시인 인천을 배경으로 개최되는 아시아 유일 디아스포라 전문 영화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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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해리포터 : 호그와트 토너먼트> 예고편
해리포터 덕후들이 들으면 가슴 설렐 소식 도착. 기숙사의 명예를 건 호그와트 토너먼트. 토너먼트 참가자들은 기숙사의 명예를 걸고 해리포터 퀴즈에 도전하게 되는데.. 과연 최종 우승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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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티저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