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8-15 21:33:54
훌륭한 첩보 액션 그리고 캐릭터로 담은 변혁의 과정
-<헌트>(2022)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에 맞추어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암울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힘을 저금이나마 보탠다. 그 방식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 힘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사회를 바꿀 행동을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반전의 에너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회를 바꾸려 애쓴다. 학생, 직장인, 주부 같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의 각기 다른 목적이 하나로 모이면서 사회 변혁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한국사회가 정치적인 혼란기에 있었던 1980년대는 전두환이라는 인물의 군부독재가 계속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런 암울한 시기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힘이 빠져간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독재라는 껍질을 조금씩 벗을 수 있었다.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했고 일상 속에서 변화의 기회를 만났다. 그 변화의 기회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목적을 만들어주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각자의 목적이 같다는 걸 깨닫기까지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속 가상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헌트>에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안기부 안으로 카메라를 비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 사건들은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대체적으로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해외팀 박평호 차장(이정재)과 국내팀 김정도 차장(정우성)도 허구의 인물들이다.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두 인물이 영화 초반 가지고 있는 공통의 목표는 대통령 암살을 막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부터 두 인물은 껄끄러운 관계를 드러낸다.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처음엔 두 인물 모두 대통령을 보호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안기부라는 조직이 원하는 것이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안기부 내부에 ‘동림’이라는 첩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동림을 찾기 위한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과정이 이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동림이라고 의심하고 총구까지 겨누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건 조직인 안기부의 목적에 더 가깝다. 두 인물은 그 조직의 목적인 ‘첩자 색출’ 임무에 부합하기 위해 서로 감찰을 피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게 된 상황 자체는 안기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팀장 중 누가 하나가 죽거나 조직을 떠나더라도 첩자를 찾아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사람은 대체적으로 안기부의 목적에 충실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필사적으로 첩자 동림을 찾아내기 위해 매달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의심을 시작하고 파국 직전까지 가는 과정을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첩자 동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각 인물들이 상대방을 추적할 때 전달되는 서스펜스가 끝까지 시선을 잡는다. 여기에 대규모 자동차 추격 장면과 총기 액션 장면을 넣으면서 더욱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준다. 박차장과 김차장이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영화가 하는 이야기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흥미진진한 첩자 동림을 찾는 과정
영화에서 더 훌륭한 건 후반부다. 후반부에는 첩자 동림이 누군지 드러나고 박차장과 김차장의 목적도 선명해진다. 결과적으로 두 차장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영화는 그렇게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영화 초반에서 후반으로 오면서 드러나는 과정을 세밀히 보여준다. 영화 안에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교차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때는 김차장의 목적과 박차장의 목적이 정반대인 것 같아 보여 특정 인물을 의심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만큼 영화는 각 인물이 어떤 곳을 보는지에 따라서 섣불리 첩자가 누군지 추측할 수 없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스파이 장르의 특성을 과거 한국 현대사의 한 지점에 적용하여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인물은 국내팀과 해외팀을 맡고 있는 팀장이다. 완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방법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목적이 같은 곳으로 모이는 모습은 마치 그 당시 사회 변혁을 시도하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군부독재를 끝내려 했지만 그들의 다양한 시도는 오히려 하나의 방법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목적은 마지막 순간 갈라져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몇 년이 지난 이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그것이 결국 이루어진다. 영화 속 박차장과 김차장이 서로를 바라보고 대립하며 만들어낸 것들을 결국 후대에서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영화 <헌트>는 그 귀결적인 결과까지 보여주진 않지만 관객들이 충분히 그 이후의 일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두 인물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박진감 넘치게 구성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꽤 오랜 시간 앉아서 두 인물이 지나온 길이 어땠을지, 그 이후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의 거울처럼 느껴지는 박차장과 김차장 대립의 결과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무척 박진감이 넘친다. 10,000발 이상의 총알과 520대의 차량을 이용해 만들어진 전투 장면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심한 미장센과 로케이션을 통해 보다 사실성을 높였다. 그렇게 탄생한 카체이싱과 총기 액션은 무척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중반 중반 배치된 액션 장면들은 영화가 늘어질 때즘 한 번씩 등장해 관객이 끝까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를 연출한 이정재 감독은 이번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오랜 배우 생활에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카메라의 구도나 인물 배치 같은 사소한 것도 무척 완성도 높게 구성하였다. 촬영 전문 감독인 이모개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의 장면들은 무척 공들인 티가 난다. 또한 공동 주연인 정우성 배우를 몇 년 동안 설득한 끝에 캐스팅하였는데 김정도 차장 역할에 무척 잘 어울린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한 화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 <헌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파이 액션 장르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군부 독재 하에서 사회 변혁을 위해 애썼던 다양한 인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갈등을 무척 잘 담아냈다. 현재에도 정치적인 갈등 속에는 다양한 목적들이 섞여있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 모아질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다. 군부독재를 하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좀 더 나은 나라로 만들어내려는 일은 현재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현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이 현재의 거울처럼 느껴지게 하는 부분도 있다.
여러모로 영화 <헌트>는 이정재 감독의 훌륭한 데뷔작이다. 액션도 이야기도, 캐릭터도 무척 생동감 있는 영화다. 그 당시의 시대상과 북한과의 관계 등도 효과적으로 포함시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고 있다. 올해 공개된 여름 기대작 중 가장 기대받지 못했던 영화였지만 가장 좋은 완성도와 재미를 가진 영화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정재 감독의 다음 연출작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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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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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스는 인재(人災) 영화다
줄거리
애미티는 여름 피서객을 상대로 한철 장사를 하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그러나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의 마을에 비상등이 켜진다. 바다에서 상어한테 물어뜯긴 듯한 시체를 발견한 것. 바다를 싫어하는 경찰서장 브로디는 당장 해수욕장을 폐쇄하지만, 시장은 장사를 해야 한다며 경비를 강화하고 그대로 해수욕장을 열기로 한다.
결국 한 소년이 상어의 습격을 받게 되고, 시장은 그제야 상어를 잡아야 한다는 브로디의 말에 따른다. 많은 상어 사냥꾼이 몰려오지만, 브로디의 눈에 띈 건 딱 두 명. 상어를 연구하는 박사 '매트 후퍼'와 마을의 어부인 '퀸터' 선장. 세 사람은 함께 상어를 사냥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감상 포인트
1. 눈썰미 좋은 사람들한테는 티날 수 있지만, 나 같은 막눈에게는 상어가 제법 리얼하다.
2. 언제 일이 터질 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공포감으로 보는 영화.
3. 죠스는 과연 천재(天災)일까, 인재(人災)일까.
감상평
'빠밤~ 빠밤~'
지금 아무런 음이 없는데도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죠스]라는 영화에서 이 음악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려준다.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평화로운 화면에서조차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마력의 음악이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컨저링이 개봉할 당시에 포스터에 적혀있던 말이다. 이 말의 시초가 바로 죠스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영화 [죠스]는 상어에 관한 이야기지만 상어가 나오는 장면은 손에 꼽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완벽한 상어 모형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봇까지 만들었지만 물에 들어가니 고장 났다고.
오히려 그게 감독에게 발상의 전환을 안겨준 셈이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상어 나오는 장면 없이 무서운 상어 영화"를 만든 셈이다.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다리, 그런 사람에게 다가오는 지느러미, 상어 시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여기에 깔리는 음악까지. 더할 나위 없이 무섭다.
게다가 실제로 상어 사냥을 나갔을 때는 그들의 배에 접근하는 노란 부표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감을 보여주고, 부표의 거센 움직임으로 긴박한 전투를 보여주었다. 천재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옛날 작품이다 보니 모형이 리얼하진 않다. 전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을 볼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왜 이 모형을 숨기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은.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막눈이라서 그런지 '그래도 제법 리얼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같이 보던 동생은 모형인 게 너무 티 나서 순간 긴장감이 확 죽어버렸다고. 눈썰미 좋은 살마들은 웬만해선 흐린 눈 하고 보기를 추천.
상어보다도 내가 더 관심 있었던 것은 인간의 욕망이었다.
서장이 자신의 권위와 장사 수익만을 위해 해수욕장을 열었기 때문에 어린 소년이 희생당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이건 인재(人災)였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검은 장례식 복장을 입고 우는 장면에서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한 영화인데, 왜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까.
게다가 그런 어머니를 옆에는 버젓이 거짓말하는 인물들이 서 있다. 바로 상어 사냥꾼들. 영화 내에서 유추해 보자면, 그들은 상어를 직접 잡은 게 아니라 어디서 가져온 상어를 잡아온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소년을 잡아먹은 그 상어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서장은 이 거짓된 사진을 앞세워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생각밖에 없다. 결국 희생자의 부모 앞에서도 욕망에 젖은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은 상어의 모습보다도 소름이 끼친다.
영화 [죠스]는 이런 인물들 간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어 사냥을 나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더 집중적으로 비출 뿐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를 주류로 다룬다고 한다.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건 영화를 보고 알았는데, 오히려 영화보다 책이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다.
더불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상어를 잡는 사냥꾼들이나, 퀸트 선장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고 할까. 특히 퀸트 선장의 배에 수많은 상어 이빨을 보며 역겨웠다. 그냥 해수욕장을 비워서 먹이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상어는 다시 해안가로 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당초 상어가 해안가로 온 이유도 먹이가 부족해서는 아니었을까.
여러 이익이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답은 없겠지만, 상어가 갑자기 나타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변했을 때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우린 때론 그 이유를 찾기보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해결하는 데에 더 목을 맨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왜?'를 묻는 것이다.
영화 [죠스]에서도 사람들이 조금만 더 '왜'를 물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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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아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그렇게 다정하게만 대해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에게 내린 저주
리는 자신이 퀴어인 것은 ‘저주’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조각처럼 전시된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며 되뇌는 환상, “나는 퀴어가 아니야.”.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한다. “이제 갈게”는 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리는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곁에 있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퀴어,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의 ‘이상함’을 견디지 못한 채 고독 속을 버텨낼 뿐이다. 그리고 그 고독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 아편 중독으로 범죄가 되는 국가에서 도망쳐 살아간다.
육체적 접촉 행위가 아니라면, 타인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리는 성관계에 집착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술과 약물로 버텨낸다. 그 고독한 삶 속에서 리의 바람은 단 하나, ‘텔레파시’이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리의 꿈이다. 그래서, 신비의 약물 ‘야헤’를 찾아간다. 진정한 연결 찾아서. 그렇게 리는 유진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모든 비용을 대줄 테니 자신과 함께 야헤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고. 그리고 단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유진이 없으면, 완전히 무너질 준비가 된 리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린다.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둘은 야헤와 의식을 통해 ‘텔레파시’ 그 이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리는 알고 있음에도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유진의 고백을 듣는다. “나는 퀴어가 아니에요.” 유진은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알아.”라고 담담히 말하는 리. 리의 사랑은 일방적이다. 유진은 리를 사랑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부유한 중년 남성을 통해 스스로는 닿을 수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를 경험을 해보려는 것뿐이다. 여행을 제안한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첫날밤에서부터 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유진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에게 빠져든 건 그의 젊음도, 그의 찬란함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결국 리는 죽을 때까지 유진을 지켜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던 유진의 형체에 권총을 겨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리를 보며, 관객은 두 겹의 감정 사이 놓인다. 노인이 될 때까지 유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리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죽음을 통해 마침내 정서적 해방에 도달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영화는 말한다. 텔레파시를 넘은 진정한 연결, 그곳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도 고독과 공허는 결국 채워지지 못한다고. 그리고, 나 자신이 퀴어라는 감정은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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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과 경찰보다 기자가 중요한 스릴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코드 아메리칸 신문의 기자 ‘로레타 매클로플린’(키이라 나이틀리). 생활부 소속으로 토스트기 리뷰나 쓰던 그녀는 어느 날 보스턴 일대에서 세 명의 여성이 목 졸려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세 사건 간의 연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범죄부 소속이라는 아니라는 이유로 '로레타'가 취재를 못하는 사이, 네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다. 이에 '로레타'는 베테랑 기자인 '진 콜'(캐리 쿤)의 도움을 받아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고군분투한 두 기자는 마침내 결정적 용의자 '앨버트 데살보' (데이빗 다스트말치안)를 발견해 낸다. 그 순간, 이들은 이 살인 사건이 더 중요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목숨을 건 취재에 돌입한다.
범죄 사건의 영화화
영화가 범죄 사건을 다루는 시점은 다양하다. 가해자의 관점에서 범죄의 앞뒤 맥락을 살피거나,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시점에서 사건을 파헤칠 수도 있다. 또 복수를 다짐하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범죄의 잔악성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각기 다양한 특성과 매력을 지닌 이들의 관점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자칫 잘못하면 작품이 과도하게 선정적이거나 감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밀접하게 엮인 관계자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 형사나 경찰이 분노하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혔을 때,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할 때 언제든 선을 넘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디즈니플러스의 신작 <보스턴 교살자>는 흥미롭다. <보스턴 교살자>는 1960년대 보스턴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끔찍한 범죄 실화 사건을 다룬다. ‘보스턴 연쇄살인사건’은 <살인의 추억> 제작 당시 봉준호 감독이 참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연쇄살인범은 홀로 사는 여성을 교살하고, 기괴한 리본 모양의 시그니처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엄청난 공포를 안겼다.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고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이 형사의 시각으로 1968년에 <보스턴 교살자>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영상화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션>, <에이리언: 커버넌트>,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이번 영화는 동명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다. 범죄자도, 경찰도 아닌 기자의 눈으로 살펴보기 때문이다. 영화의 포커스는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두 기자에게 철저히 맞춰져 있다.
안갯속 유일한 내비게이션, 기자
<보스턴 교살자>는 추적극이다. 실존인물인 '로레타'와 '진'은 화면상으로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치열하게 뒤쫓는다. 두 저널리스트가 넘어야 할 산은 살인범만이 아니다. 범죄부 소속 기자가 아니었던 '로레타'는 회사 내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 그들이 쓰는 기사에 불만을 품은 경찰의 비난도 거세다. 안전을 위협받는 가족의 원망 섞인 눈초리도 따갑다. 하지만 두 기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맷 러스킨 감독은 그 원동력을 저널리스트만의 특징에서 찾는다. 특히 영화는 복잡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정확하게 사건을 명명해야 하는 기자의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이 기자와 함께 사건을 파악하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셈이다.
실제로 작중 사건의 실체는 안갯속에 빠져 있다. 일례로 살인범은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징에 부합하는 용의자는 여럿이다. 집에 혼자 있는 여성을 노린다는 특징은 같지만, '폴 뎀프시'처럼 나이 든 여성만 노린 용의자도 있고, 젊은 여성만 노린 용의자도 있다. 성폭력을 저지른 전과가 있는 '데살보'도 살인범과 유사한 범행 수법을 지녔다. 그들 모두 아파트 정비공이나 모델 에이전트로 위장해 여성들의 집에 손쉽게 들어가 범죄를 저지른다. 또 '데살보'와 같은 정신 병원에 있었던 다른 용의자도 리본 모양 시그니처를 남기는 범행 패턴을 보여준다. 이 안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걷히지 않는다. 영화는 '데살보'가 마지막 살인이자 13번째 살인의 범인으로 밝혀진 것 외에는 범인이 특정된 바 없다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범인을 헷갈리게 만든다. 실제 사건 기록을 참고한 세트 디자인, 의상 등을 통해 1960년대 보스턴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리얼리티도 큰 몫을 맡는다.
그렇기에 짙은 안개를 투시할 수 있는 기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찰도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할 때 '로레타'와 '진'은 명백한 사실에만 집중하며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는 길을 발견한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소피'의 이웃으로부터 확보한 증언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그들의 노력은 더욱 분명해진다. 살인범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던 그녀는 신뢰할 수 있고, 또 간과할 수 없는 목격자다. 그런데 경찰은 그녀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녀가 지목한 범인과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레타'와 '진'은 다르다. 그들은 증언을 토대로 상황을 재검토한다. 다른 용의자가 있거나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까지 살피면서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다른 장면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다수의 보스턴 지역 언론은 사건 초기에 범죄자를 '보스턴 유령(phantom)'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로레타'는 그를 '보스턴 교살자(strangler)'라고 명명한다. 그가 목을 졸라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만 건조하게 담는다.
살인범의 정체보다 중요한 것
더 나아가 영화는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자의 역할을 묘사한다. 바로 감시자다. 경찰과 은연중에 협력해 범인을 추적하면서도, 경찰이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는지 늘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중 경찰은 연쇄 살인 사건을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이에 경찰은 유력 용의자인 '데살보'의 자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침내 경찰에게 자백하기로 결심한 '데살보'. 그런데 그의 변호인은 한 가지 조건을 건다. 자백 내용을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경찰은 어떻게든 연쇄 살인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변호인의 조건에 동의하고, 그를 살인이 아닌 다른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한다.
'로레타'는 한 명의 용의자에게 모든 살인 혐의를 넘기고 사건을 종결하는 경찰의 조치에 분노한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살보'는 갑작스럽게 스타 변호사를 고용한다. 변호인은 그의 자백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려 한다. '데살보'만큼이나 유력한 다른 용의자는 그와 같은 감방에서 모종의 회의를 연다. 이들은 마치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는 하나의 커넥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로레타'는 사건을 덮으라는 편집장의 지시도 거부한 채 계속해서 취재를 이어나간다.
마침내 '데살보'의 자백 녹음을 구하는 데 성공한 '로레타'는 경찰의 구체적인 사건 조작 정황을 발견한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을 묘사할 때 '데살보'가 횡설수설하자 경찰은 피해자의 집 구조와 사진을 보여준다. 그 순간 그의 자백은 오염됐고, 남은 자백 내용도 무의미해진다. 살인범의 기억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진위 여부를 알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보스턴 교살자>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저 한 범인만 쫓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적 문제를 찾아내는 것. 살인 사건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살인 사건이 가능했던 경찰의 무능함과 구조적 오류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로레타'와 '진'이 함께한 작업의 진짜 가치라고 강조한다.
웰메이드 스릴러의 탄생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두 기자의 노력은 그들 본인도 구조적 차별의 희생양이었기에 더 인상적이다. 여성이 기자가 되는 게 매우 어려웠던 시절에, 그들은 언론사 안에서도 치열하게 투쟁했기 때문이다. 특히 극명하게 갈리는 두 주인공의 태도 덕분에 그들의 싸움은 더 흥미롭다. '로레타'는 사내에서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는 지시가 있으면 편집인과 사주에게 직접 항의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지졌다. 반면에 연차가 더 많이 쌓인 '진'은 회사 내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 기사 밑에 기자 이름 대신 사진을 넣자는 상부의 제안에 '로레타'가 화를 내자 '진'은 회사도 신문을 더 팔아야 한다며 설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진 때문에 '로레타'의 신상이 공개돼 그녀가 위협을 받자, '진'은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상사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관계는 <이미테이션 게임>, <비긴어게인> 등에 출연한 ‘키이라 나이틀리’와 <나를 찾아줘> 등의 작품에서 호평받은 ‘캐리 쿤’의 열연 덕분에 인상적이다.
사실 <보스턴 교살자>가 다소 정적이고 건조하다고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가급적 제외하면서 정확하게 사건을 묘사하려 노력하다 보니 다른 스릴러 영화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범인이 한 노인을 살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욕조에 물을 받던 노인은 벨소리를 듣고는 손님을 보러 간다. 문을 열자마자 범인은 노인을 공격하고, 살해한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은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카메라는 노인이 만지던 수도꼭지를 계속해서 비춘다. 마침내 집안이 조용해지고, 범인의 손이 나타나 물을 더 세게 틀고 손을 닦으려 하자 그제야 사건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은 영화가 범죄자의 시선이 아닌 기자의 시선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스턴 교살자>를 마냥 지루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묵직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디테일 덕분에 여전히 스릴러 장르다운 긴장감과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화 사건을 저널리즘적 마인드로 풀어낸 대목에서는 의미와 재미를 모두 붙잡으며 극찬을 받은 톰 매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가 순간적으로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A(Acceptable, 무난함)
기자의 시선이 돋보이는 진중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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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의 고루한 예술론
5★/10★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이리스의 교수법은 독특하다. 단어장도, 문법책도 없다. 수업은 이런 식이다. 수강생이 피아노를 치고 나면 이리스가 무엇을 느꼈는지 묻는다. 처음에는 행복을 느낀다고 답한 수강생은 이리스가 또 무얼 느꼈느냐고 캐묻자 멜로디를 느꼈다고 말하고, 그다음에는 짜증이 났다고 말한다. 자기 생각만큼 연주가 되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짜증 말이다.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빌라 근처 석비 앞에서도, 또 다른 수강생이 기타를 연주한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이리스는 계속 수강생에게 진짜로 무엇을 느꼈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고는 그 내용을 카드에 적고 상대에게 건네주며 지금의 감정을 말하는 법을 연습해오라 한다. 이렇게 해서 언어가 늘겠느냐는, 제대로 된 교수법이 맞느냐는 수강생의 질문에는 외국어로도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고안한 방법이라고 답한다. 검증된 적이 없는 교수법이라는 소리다. 자연스레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이리스는 누구이고, 무엇을 대변하는가?
홍상수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가를 이리스 캐릭터에 구현한 듯하다. 이 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다. 중년의 프랑스 여자 이리스는 젊은 남성 시인인 인국의 집에서 살고 있다. 인국은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피리를 부는 이리스의 모습에 이끌려 그녀와 대화했고, 그녀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그러던 중 인국의 어머니가 급작스레 집을 방문하고 아들이 낯선 외국 여성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장광설이 시작된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는 아느냐, 네가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등등. 어머니의 말은 구구절절 합리적이다. 하지만 시인인 인국의 관점은 어머니와 다르다. 그는 벤치에 앉아 피리를 부는 모습만으로 이리스를 ‘안다’. 인국은 어머니에게 이리스가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삶은 진지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인국은 곤란해하며 머뭇거리지만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는 않는다. ‘엄마는 열심히 사는 것이고, 이리스는 진지하게 산다.’ 이것이 인국의 답이다.
이리스와 어머니는 각각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시민을 대변한다. 이리스의 프랑스어 교수법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는 표층이 아닌 심층의 진실이 궁금하다. 그래서 연주 후 ‘행복’했다는 수강생 마음속에 실은 ‘짜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끌어낸다. 즉 이리스는 자신조차 몰랐던 내면의 진실을 발굴하고 일깨워주는 사람, 사실에 근거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사람이다. 이리스의 교수법이 검증된 적 없는, 최근에 직접 고안한 방법이라는 점도 그녀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유형의 사람, 즉 예술가임을 알려준다.
이리스의 진실은 ‘열심히’ 삶을 사는 인국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인국을 거듭 다그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리스와 인국의 어머니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즉,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시민의 거리는 서로 조금도 맞닿지 않을 만큼 멀다. 자기 어머니의 아들임에도 이리스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인국이 ‘시인’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진지한 태도로 삶을 사는 예술가의 유대는 핏줄을 넘어선다.
홍상수 감독은 두 세계 사이를 균형 있게 다루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노골적, 편파적으로 예술가와 그의 세계를 옹호한다. 인국의 어머니는 이리스와 살며 ‘빵과 샐러드’를 주로 먹고 그 생활에 만족하는 인국에게 끝내 ‘김치찌개’를 끓여 먹인다. 그러고는 네가 어릴 때 매운 음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상기시키고, ‘빵과 샐러드’만 먹고서는 도저히 살기가 어렵다고 또 한 번 강조한다. 감독은 예술가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위협당하고 회유당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인국은 고뇌에 빠진다. 계속 이리스가 집에 머물도록 할 것인가(즉 예술가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리스의 삶 궤적을 캐묻고 심문할 것인가(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이 그려낸 예술가와 시민의 불화라는 구도가 과연 얼마나 적확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동시대의 명망 있는 창작자 대부분은 영화가 그려내는 예술가와 같이 창작하지 않는다. 예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산업 기반 자체가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시민의 구도로 단순화할 수 있을 만큼 예술가가 예술을 생산하는 조건이 단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이 집요하게 이리스의 길을 걸어와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예술/가 일반에 적용할 구도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창작하는 특정 예술가 부류만을 옹호하고자 했다고 변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영화가 이리스와 그녀가 놓인 상황을 재현하는 방식이 시종일관 단호하다. 즉, 우리는 이리스를 통해서 다른 예술/가 유형을 상상할 수 없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이리스와 인국 어머니가 각각 대변하는 세계의 경계선이 더욱 깊고 짙어질 뿐이다. 이런 양자택일의 세계에서 관객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번에도 영화가 제시하는 정답은 정해져 있다).
과연 이런 주제 의식이 거장이 던질 만한 화두일까? 나는 부정적이다. 이 영화에는 동시대 예술 지형에 대한 통찰이나 물음이 담겨 있지 않다. 심지어는 그저 자기변호를 위한 영화라고도 보인다. 어느 모로 봐도 홍상수 감독이 ‘머물 집이 없는 예술가’는 아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이 이와 같은 예술가 자아상을 내비친다니 조금은 당혹스럽다. 준국과 이리스의 나이와 성별이 감독 개인사를 교묘히 뒤집은 듯 보이는 것도 이 영화가 자기변호의 수단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어쩌다 보니 홍상수의 영화를 보지 못하다가/않다가 최근에야 〈물안에서〉(2023)를 보고 윤리적‧영화적으로 커다란(그리고 생산적인)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실망감은 더욱 크다.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천착한 주제를 조망하려면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찬찬히 읽어보는 게 훨씬 낫다. 100년도 더 전에 쓰인 이 책이 같은 주제를 훨씬 더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다룬다. 물론,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생존한 이 고전에서도 예술가와 시민의 불화라는 구도가 단조롭다는 느낌은 떨칠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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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피커 인터뷰] 프로덕션 대표 / 풀림필름, 창업
Q. 프로덕션 창업 계기는?
A. 영화과를 졸업을 하고 나서 오랫동안 영화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는데 영화라는 직업이 사실은 그렇게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다 보니까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 제가 영화를 만든다고 그래서 당장 누가 돈을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뭔가 그렇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학교에서 영상 만드는 걸 배웠고 영화 찍었던 버릇이 있으니까 이걸 살려서 영상 프로덕션을 한번 창업을 해보자. 그때 시작할 땐 인맥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친구들이랑 해보자 해서 시작을 했었습니다.Q. 친구들과 함께 창업하게 된 계기는?
A. 동네 친구들 3명이랑 같이 창업을 했는데, 그렇게 거창한 의미에서 시작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때마침 또 친구들도 다 군대 전역을 했고 저도 졸업을해서 고민을 하던 찰나에 프로덕션을 할 건데 혼자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곤 옆에 딱 봤더니 친구들이 있고, 사실 친구들은 그 당시에는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영상 쪽을 아예 시작을 안 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하자 했죠.
Q. 풀림필름이 하는 일은?
A. 일단은 모든 영상들을 제작을 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주로 웹 드라마 제작을 많이 하고 있고 행사 스케치 영상, 기업 홍보 영상, 인터뷰 영상,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들을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웹 드라마로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고요. 나아가서 ott가 되었든 혹은 영화가 되었든 구분 없는 이야기가 있는 영상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Q. 친구랑 창업해서 좋은 점은?
A. 좋은 점이요? 일하는 게 재밌습니다. 일하는 게 재밌고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체력적으로는 힘든데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렇게 막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습니다.
Q. 친구들은 전공이 아닌데, 역할 분담을 어떻게 했는지?A. 일단 제가 연출을 했었고, 이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면 전공이 아닌 친구 중에 한 명이 갑자기 유튜브에서 편집을 해보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넌 편집을 해라 그렇게 된 거고, 다른 친구는 예전에 잠깐 문창과 입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럼 너는 글을 써보고 나랑 같이 연출 쪽을 하자', '그럼 일단 넌 조 감독으로 시작을 하자' 그래서 시작을 했었죠.
Q. 프로덕션에서 안소회 감독님의 역할은?
A. 영업이랑 미팅 같은 것들이 있을 때도 제가 하고, 영상 의뢰가 들어오면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고 구성안이 될 수도 있고 연출까지 제가 하고 있고요. 연출이자 CP자 PM이자 EP이자 그런 것들 다 제가 하는 거죠. 나중에는 저는 제작을 하고 연출 감독을 따로 두는 메커니즘도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계속 연출을 하고 싶고, 사실 나눌 만한 정도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서 계속 연출을 할 것 같아요.
Q. 프로덕션 운영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A. 돈이죠, 돈. 사실은 이게 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돈이 없는 게 제일 힘든 거죠. 일을 할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고, 업계 자체가 그렇게 호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영상 업체가 너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퀄리티 경쟁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퀄리티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의뢰가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오리지널을 만들자니 그것에 대해서도 투자 자본금이 필요한 상황이고, 돌고 돌아서 돈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게 돈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시작한 프로덕션인데 오히려 더 하고 있는? 그런데도 또 같이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뭔가 한 건, 한 건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얻는 보람 같은 것들 때문에 놓지 못하고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Q. 프로덕션에서 하고싶은 작업이 있다면?
A. 요즘에 워낙 또 버추얼이라든지, 그동안 좀 쉽게 접하지 못했었던 기술과 예술이 종합하는 결과물들이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영역들의 한계가 좀 없어지는 느낌인 것 같아서, 아직 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시도를 해보고 싶은 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Q. 감독님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A. 처음에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 프로덕션의 목표와 제 목표를 나눠서 고민을 했었어요. 나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고 프로덕션에서는 돈만 벌어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한 지가 4년 차거든요.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그게 조금씩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아요. 내가 이곳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지금의 제 목표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어떤 매체가 되었든 ott가 될 수도 있고 tv가 될 수도 있고 영화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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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사는 진정으로 '존엄'한 것인가
글로벌 프로젝트인 10년 프로젝트를 아는가?
2015년 홍콩에서 시작되어 대만, 태국, 일본에서 진행된 글로벌 제작 프로젝트이며 10년 후의 각자의 나라를 감독들이 단편으로 만들어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수입 및 개봉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플랜 75>는 이 중 동명의 단편을 동일한 감독이 장편화한 영화이다.
멀지않은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가 되면 국가에서 안락사를 권장 및 지원하는 "플랜 75"라는 제도가 생기게 된다.
플랜 75 제도를 활용해 안락사를 준비하는 노인들과 속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안락사, 존엄사는 현재 일부 국가에서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에 한해 실행되기도 하는 만큼 현실에 대입해 많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국가 체제에서 엄연한 죽음을 권장하고 지원하며, 그로 인해 무언으로 안락사를 떠미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공포영화 그 자체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존엄사가 진짜 존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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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콩 영화 후기 / 몬스터 세계의 통합 / 새로운 몬스터버스의 탄생 / 고질라와 콩의 역대급 맞짱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고질라 VS. 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있을법한데, 쿠키영상이 없더라구요~#고질라, #콩, #몬스터버스, #블록버스터, #액션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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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큰> 메인 예고편
소설에 예고된 동생의 죽음 과연 그 날 밤의 진실은? 하정우 X 김남길의 소름 MAX 진실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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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로스> 런칭 예고편
[서울의 봄] 황정민X [밀수] 염정아 대세 콤비의 2024 완벽 흥행 크로스! 설 개봉 확정! [크로스] 런칭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