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0-07 09:07:22
[BIFF 데일리] 맨 앞에 있었으나 조명되지 않았던 예술가들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리뷰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올데이시네마 상영작
*시놉시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피터 가브리엘 등 세계 최고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를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 영감에 한계가 없던 두 천재 디자이너의 무모한 작업 스토리, 그리고 시대의 아이콘이 된 명반들의 탄생 뒷이야기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음악이 상품이 아닌 예술이던 시대, MTV가 도래하기 이전 음악이 메시지를 던질 수 있던 시대, 록 음악이 가장 대중적이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 이야기다. 그러나 뮤지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가 협업하고 싶어 한 LP 커버 예술가 ‘힙노시스’의 이야기다.
스톰과 포 두 사람이 힙하고, 쿨하고,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단어의 글자 일부를 따서 설립한 힙노시스는 LP 커버 이미지를 전문으로 제작한 회사다. 더불어 당시 사람들이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던 LP 커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회사다. 골방에 모여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던 이들이 예술가가 되던 시대, 스톰과 포 역시 이들과 같은 궤적을 따라 LP 커버의 세계로 진입했다. 영화는 힙노시스가 걸어온 파격적 예술의 궤적을 당사자, 그들과 협업한 뮤지션의 회고를 통해 복기한다. 앨범과 커버의 ‘의미’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음악과 커버로 메시지를 던지며 매 순간 혁신을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인 흡인력을 뿜는다. 커버 방향성을 놓고 비틀즈와 자존심을 건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은 스톰과 포가 어떤 태도로 커버 작업에 임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1968년부터 록의 시대가 저문 8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힙노시스는 록의 쇠락과 함께 커리어의 절정에서 수직 낙하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전과 같은 명성을 누리지 못했고 록 음악 팬들의 기억 속에서만 예술적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더는 힙하고, 쿨하고, 지혜롭고, 현명할 수 없었던 이들은 되돌릴 수 없는 실패로 예술의 역사에서 퇴장했다. 고급 예술품을 소장할 수 없는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이자 앨범 정체성의 표현으로서의 LP/커버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이야기’가 된 지난 시절의 매력에 몰입시켜줄 영화다. 표지가 갖는 중요성이 점차 중요해지는 도서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음악과 LP 커버를 동등한 예술로서 존중하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깊기도 했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의 올데이시네마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후, 호밀밭 출판사 장현정 대표의 사회로 장정일 작가와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대담에서 장정일 작가는 자신이 록과 팝을 거쳐 재즈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영화와 연계해 들려주었다. 그는 80년대가 민중 문화의 시대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가공된 현실일 뿐이라 일갈했다. 대학 운동권은 ‘탈춤’과 ‘김민기’를 시대의 문화로 제시했지만, 정작 ‘민중’들은 고고장에서 춤을 추었고 나훈아와 이미자를 들었다. 록과 팝은 대학에서 드러낼 수 없는 ‘죄스러운’ 취향이었다. ‘의식’이 부재하다는 가혹한 비판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정일 작가는 자신이 대학을 경유해 팝과 록을 듣지 않은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회고한다. 대학에 진학했다면 ‘민족 문화’의 세례에 굴절된 상태로 팝과 록을 뒤에서만 몰래 즐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 영국의 풍요와 반항을 대변하는 음악이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감상되었나에 관한 장정일의 설명은 그 문화를 향유했거나 사후적으로 회고하는 모두에게 문화의 수용에 둘러싼 물음을 촉발한다. 장정일의 해설은 낭만적 흡인력의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에 ‘제3세계’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더해 낭만 이면의 다층적 맥락에 주목하게 한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커뮤니티 비프 관련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iff.kr/kor/addon/10000001/page.asp?page_num=8624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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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구아다니노의 반짝이는 여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샤이닝>, <캐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취향이 변덕스러운 탓에 장르가 완전히 다른 작품들이지만 하얗게 내리는 눈과 찬 공기를 가르며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감화되고,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가 하면 날이 더워지면서 떠오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톤먼트>, <위대한 개츠비>, <아가씨>, <해변의 폴린>… 여러 작품들이 보고 싶어지지만 내게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서스페리아>이지만, 그가 담아낸 여름이 스크린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은 2017년 개봉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물 속에서 막 건져 올린 듯, 매끈한 빛이 나는 첫사랑의 기억과 겨울을 맞음으로써 상실되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인생 영화’처럼 각인되었다.
미묘한 감정들을 아주 세심하게, 어느 순간엔 재치있게 묘사한 만큼 여운도 길게 남는다. 길게 누워 그리스 신전의 프리즈를 장식한, 디오니소스이 조각상 같은 티모시 샬라메의 외형, 그리고 꾹꾹 눌러 쓴 세심한 편지 같은 그의 연기가 영화에 힘을 실어 준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것은 집 앞 작은 수영장 끄트머리에 기댄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으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악보를 애써 내려다보는 장면, 자전거를 타고 뒤돌아 가려다 아쉬운 듯 한번 더 던지는 눈길 같은 이미지이다.
엘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찰랑이는 물 밖으로 건져 낸 미술품,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식사, 열리고 닫힌 문들이 내리쬐는 햇빛과 더운 공기를 화면 밖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첫사랑의 설렘과 혼란과 같은 감정으로 변모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가진, 화면을 채우는 요소와 색채를 감정과 감상으로 변환시키는 솜씨는 그가 다른 예술이 아니라 영화감독이기에 발산할 수 있는 멋진 능력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첫사랑의 가슴 뛰는 감정과 성장통에 집중한다면 진실된 자아와 욕망의 발견을 다룬 이야기는 <아이 엠 러브>이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윤이 나는 바닥이 깔린 저택, 엠마(틸다 스윈튼)가 저녁 만찬을 위해 손님 자리를 배치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우뚝 선 저택에서 사람들은 스포츠와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은 유산을 상속받을 가족들, 접시를 들고 카펫 위를 걷는 가사도우미들, 고가구, 벽에 걸린 그림들로 채워졌지만 가장 빠르게 와닿는 감정은 만족과 평안이 아니라 공허함 또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다. 예컨대 틸다 스윈튼이 밀라노 대성당의 공중부벽 사이를 지나는 장면에서 감독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성당의 장식 안에 그를 가둔다. 한겨울의 저택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아치와 높은 첨탑마다 서 있는 조각상에 갇혀 있다. 엠마는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텅 빈 삶에서 걸어나온다.
그의 사랑은 어떤 건축물에도 둘러싸여 있지 않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작은 그늘조차 없는 잔디며 풀 위에서 피부를 마음껏 드러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욕망과 해방의 감정이 몰려든다. 단순히 감각적인 장면의 연속이 아니라 영화 전후의 배경의 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종국엔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 그 자체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여름에 시작한 사랑이 겨울에 이르러 끝나고, 벽난로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반면, <아이 엠 러브>는 겨울에서 시작해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가는 엠마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영화에 담은 여름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가 곧 계절 그 자체가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를 헤치며 걸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사랑이 강령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반짝일 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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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리 스튜디오 버전 이상형 월드컵
여러분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보았습니다.
많고 많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남자 주인공 중,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사실 에디터는 캘시퍼를 좋아했답니다… )
이 외에 다른 버전으로도 보고 싶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줄거리
수백년전 야마토 조정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북쪽 변방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 에미시 일족. 평화로운 마을 부근의 숲에 어느날 갑자기 타타리가미(재앙신)가 나타난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가득찬 타타리가미는 마을로 돌진하고, 에미시의 차기 족장(族長) 아시타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앙신에게 활을 날린다. 결국 재앙신을 쓰러뜨린 아시타카는 그 대가로 오른팔에 죽음의 각인이 새겨지고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다. 아시타카는 마을의 무녀 히이사마로부터 서쪽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죽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는 서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줄거리
10cm 소녀 아리에티,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들다! 교외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는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 쓰며 살아가는 소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 세계의 철칙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그 집을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 14살이 된 10cm 소녀 아리에티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홀로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든다.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으면 작업 준비 완료! 작업 첫 날, 인간 소년 쇼우에게 정체를 들키다! 첫 작업 목표는 각설탕. 생쥐와 바퀴벌레의 방해 공작에도 무사히 주방에서 각설탕을 손에 넣은 아리에티는 두 번째 목표인 티슈를 얻으러 간 방에서 저택에 요양을 온 인간 소년 쇼우의 눈에 띄게 된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쇼우의 다정한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리에티. 마루 밑 세계의 규칙을 어기고 쇼우에게 다가가던 어느 날, 아리에티 가족에게 예기치 않은 위험이 찾아온다.
줄거리
중학교 3학년 시즈쿠는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소녀이다. 여름방학, 매번 도서카드에서 먼저 책을 빌려간 세이지란 이름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날 아버지의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혼자 탄 고양이를 보게 된다. 신기하게 여긴 시즈쿠는 고양이를 따라가다 골동품가게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게 된다. 그 손자는 다름 아닌 아마사와 세이지, 사춘기의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시즈쿠는 바이올린 장인을 자신의 장래로 확실히 정한 세이지를 보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후 이탈리아 연수를 간 세이지가 돌아 올 때까지 작가가 되고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소설을 쓰게 된다.
줄거리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된 소녀 '소피' 절망 속에서 길을 걷다가 거대한 마법의 성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법사 하울의 계약을 깨주면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불꽃악마 캘시퍼의 제안을 받고 청소부가 되어 ‘움직이는 성’에 머물게 되는데…
줄거리
금지된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오게 된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린다. “걱정마, 내가 꼭 구해줄게…”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은 치히로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사상 초유의 미션을 시작하는데…
줄거리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줄거리
사랑스러운 초보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련을 떠난다. 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키키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지만, ‘배달’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본격적인 마법 수련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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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없는 할리우드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9편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5월 19일 국내에서 최초로 개봉됨과 동시에 공휴일 효과에 힘입어 개봉일 관객 수만 40만 명을 끌어모으며 흥행 초대박을 예견했는데요. 역시나, 개봉주 주말 관객 수 62만 명을 모으며, 개봉 5일 만에 관객 수 100만을 훌쩍 넘겨 오랜만에 코로나 이후 최고 흥행작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뛰어넘는 흥행을 기대해 볼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분노의 질주 9> (이하 F9)의 흥행 돌풍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5월 19일, 한국과 동시에 개봉한 홍콩과 더불어 5월 21일 개봉을 택한 중국까지 총 8개의 시장에서 1억 6200만 달러 (한화 약 1830억 원)을 끌어모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최고 흥행을 일궈내 할리우드의 체면을 살려주었습니다.
이번 F9의 흥행은 극장 최대 성수기인 여름 시장을 시작함에 있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데요. 특히, 팬데믹 이전의 <분노의 질주> 전작의 개봉주 박스오피스 성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해외 수익 전체 162만 달러 중 135만 달러의 수익을 낸 중국 시장의 경우, 2017년의 <분노의 질주 8>이 세운 개봉주 수익 185만 달러에 이은 시리즈 2위에 달하는 기록이고, 최근 2년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100만 달러 수익을 돌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6월 25일 자국인 북미 개봉과 60개국에서의 개봉을 앞둔 F9는 할리우드 내 여타 대작들이 디즈니+ 등에서 동시 개봉을 택한 것과 달리, 극장에서 단독으로 개봉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직 F9가 상륙하지 않은 할리우드 시장은 새로운 공포 시리즈를 써 내려갈 영화 <스파이럴>이 개봉 2주 차인 현재까지 총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이로써, 공포 대작 <쏘우> 시리즈는 전세계 10억 달러를 넘긴 시리즈 반열에 당당히 오르게 되었습니다. 2004년, <쏘우> 제 1편과 창대한 시작을 함께한 ‘제임스 완’ 감독은 F9의 전작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감독이기도 한데요.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한 시리즈 제7편은 어벤져스를 뛰어넘는 전세계 수익을 올린 대작입니다. 그런 제임스 완 감독이 써내려간 또다른 공포 세계관, <컨저링> 시리즈 제3편 또한 6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와 해외 박스오피스 시장이 이를 기점으로 더욱 살아나길 바라며,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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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예수님까진 아니고 테레사 수녀쯤?
패트와 매트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고차 딜러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이다. 슈퍼히어로 같은 건 이미 은퇴했다. 웨이드를 떠난 바네사. 웨이드와 함께라면 재미는 있을지언정 위험한 일이 많았다. 진중하지 못한 웨이드에 모습에 실망한 걸까? 웨이드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는 점 하나를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은 웨이드의 생일이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웨이드는 정말 기뻤지만 은근히 소심한 탓에 고마운 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음을 숨기는 웨이드. 생일 파티에 온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보면서도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들려오는 벨소리. TVA라는 곳에서 왔다고 한다. 얘네 뭐야? 맞대결을 펼칠 준비를 하기도 전에 TVA가 웨이드를 끌고 가버렸다. TVA에 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패러독스(매튜 맥퍼딘)이었다. 패러독스가 건네는 제안. 웨이드에게 본인 세상과 친구들을 구하고 싶다면 특정 멀티버스의 중심인물을 만나 여기로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그 중심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데드풀. 패러독스의 입에 나온 이름은 '울버린(휴 잭맨)'이었다. 울버린? 내 친구 울버린? 설마 로건? 근데 걔는 이미 죽지 않았나? 하지만 괜찮다. 여기는 마블이고, 한참 멀티버스 세계관을 좌우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멀티버스의 울버린을 만나면 되는 일 아니겠어? 데드풀은 울버린을 만나, 울버린은 데드풀을 만나 지독하게 티격태격한다.
히어로로 어떻게 살 것인가
우선 이 영화의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MCU 4,5 페이즈에서 작동하는 핵심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이 뭐야? ‘어떻게 주체적으로 슈퍼히어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대를 <어벤저스 : 엔드게임> 직후로 돌린다. <블랙 위도우>는 스칼렛 요한슨이 다시 출연하며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알렸다. 나타샤와 같은 주연이었던 옐레나(플로렌스 퓨). 블랙 위도우들의 일환으로 활약하다 언니에게 자극받아 히어로가 된다. 블랙 위도우가 본질적으로 암살자들의 집단이고 나타샤 본인부터가 SHELD에 입사하기 전에 나쁜 짓을 일삼던 캐릭터였다. 빌런에서 히어로가 됐다는 의미인데 이 흐름은 사실상 이후 영화들에게 핵심으로 작동한다. 애 같은 무책임함을 보여줬던 스파이더맨, 친구의 희생을 뒤로하고 각성하는 이터널스, 존재감이 부족했지만 정복자 캉과 처음으로 정면대결했던 앤트맨, 스티브가 아닌 진짜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팔콘이 그랬다. 글쓴이가 이 문단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마블의 드라마나 영화들도 다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히어로, 자연인으로서 단단해지는 플롯을 중심으로 담았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이 발표한 영화/드라마가 담고 있는 핵심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데드풀이 갖고 있는 히어로로서의 개성만으로도 ‘어떻게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플롯에 넣기 쉽다. 어떤 특성? 그것은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속성이다. 보통 이야기를 통제하는 것은 감독이거나 제작진이다. 하지만 데드풀은 그 경계선을 넘으며 본인(캐릭터)을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과 같은 입장에 등치 시킨다. 이야기를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1차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이 캐릭터에 닿아있는데, 영화의 플롯도 ‘데드풀이 바네사에게 어떤 자극을 받고 특정한 위치에 있고 싶어 한다’니 사실상 ‘데드풀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란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울버린 역시 ‘어떻게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사실 울버린은 <로건>이라는 영화에서 장중한 마무리로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영화 외적인 맥락에서 이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고민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왜? 그거야 마블은 ‘판타스틱 4’나 ‘엑스맨’ 같은 엑스맨 유니버스의 등장인물들을 mcu로 편입시키기 위해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더 마블즈>의 쿠키영상이나 mcu의 핵심인 완다의 역할 같은 것이 아직도 Mcu에 남아있다. 그리고 내년즈음에 mcu판 <판타스틱 4>가 발표된다는 말이 있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월 28일) 닥터 둠 역할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했다는 속보가 있으니 마블이 현재 울버린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블이 울버린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외적인 맥락이라 울버린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이야기에서 겉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미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점에서 어색함을 줄였고, 마블의 멀티버스 사가는 이런 서사의 뒤엉킴을 해소하는데 적합하다. 데드풀의 파트너로 울버린을 선택한 것이 영화 외적인 근거가 되는 셈이다.
한번 더
이 영화에서 글쓴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 같은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이게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처럼 누가 어떻게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놉시스나 예고만 본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하나 예상외의 캐릭터 터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중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울버린과 관련된 카메오였다. 글쓴이는 ‘엑스맨’을 다 보지도 않았어서 휴 잭맨하면 사실 울버린부터 생각나지 않는다. 휴 잭맨 연기 잘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울버린과 관련된 캐릭터 하나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울버린에게 있어 이질적인 이미지라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됐던 캐릭터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 캐릭터가 왜 등장하고 어떻게 퇴장하는지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갖췄다.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데드풀과 울버린에게 적용된 모티브가 여전히 작동한다. 이 인물에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 역시 중요한데 이 인물이 보여주는 영화의 몇 장면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이번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 최고의 강점. 세 사람의 등장이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 이 세 사람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 없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예상하지 못하다는 점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예상한 바다. 이 인물들은 코믹스가 영화화된다는 관점에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끝마무리 짓지 못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인물은 ‘오직 나 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특정 캐릭터는 굳이 그 인물이었어야 했으며 그 나머지 캐릭터는 굳이 특정 히어로를 언급했다. 심지어 세 캐릭터가 특정 캐릭터의 어떤 행동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넣으면서 이 영화의 핵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조/카메오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아마 글쓴이만 이 캐릭터가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생뚱맞으니까. 이 캐릭터가 이렇게 중요할 일인가?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영화 후반부에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주목하니 흥미로웠다. 영화가 '어떻게 영웅으로 살 것인가'라는 점을 살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 역시 극의 내적 논리를 철저하게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A vs B
이 영화에서 처음과 끝이라는 모티브가 작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두 세계의 충돌이다. 우선 영화 안의 두 주인공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야기 안에서 내내 티격태격한다. 우악스러운 데드풀이나 성격 더러운 울버린이나 다들 각자 주장이 세다. 내내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재미가 없다. 그럼 내내 싸울 수밖에 없는데, 이 다투는 이유를 주목해 보면 영화가 두 인물의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주안점으로 뒀다. 이 주안점은 영화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첫 번째는 TVA의 존재) <데드풀과 울버린>의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데드풀이 여자친구를 잃었는데 케이블 덕분에 어찌어찌 잘 산다 같은 거 말고, 왜 이 영화가 기획됐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왜 따뜻함이 있을까? 바로 폭스가 디즈니에게 인수합병됐기 때문이다. 이거 과정 엄청 복잡했고 기사도 여러 개 나왔다. 애초에 마블 코믹스가 원작인데 다른 회사가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으니 대략적으로 유추해도 이 과정이 가볍지는 않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상황은 두 세상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극 중 데드풀-울버린과의 관계와 겹쳐 보인다.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이야기의 안과 밖이 하나의 모티브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이라는 키워드는 플롯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첫째. 두 주인공의 액션은 정말 대단하다. 액션의 다이내믹함이 과하면 과할수록 두 인물 간의 충돌이, 또 감정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테이크를 길게 뺀다던가 무기도 비슷하게 배치하면서 긴박감을 늘린다. 두 번째. 영화의 두 빌런은 충돌이라는 모티브를 전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첫 번째 빌런 미스터 패러독스는 캐릭터 명부터가 ‘패러독스’다. 패러독스는 직역하면 역설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충돌을 일으키기 위해 세상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충돌한다. 어떤 인물이 되고 싶은 데드풀과는 다르게 카산드라는 무의미함을 좇는다. 두 상황이 충돌한다는 모티브가 빌런을 때려잡는다는 장르의 특징이 빌런과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크고 작게 대립하는 영화의 상황들, 다른 시리즈를 가져온 측면이나 멀티버스를 활용한 방식이나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중반부의 두 캐릭터나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박력이 돋보였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마지막 직전
이 영화의 단점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으면 글쓴이는 준비물이 너무 많다는 점을 뽑고 싶다. 글쓴이는 이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데드풀 2>를 봤다. <데드풀 2>를 보고 느낀 점. 이걸 어떻게 지금의 MCU와 연관 짓지? 글쓴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 지금의 MCU와의 큰 연관점을 가지는 건 '로키' 시리즈의 TVA다. 이 집단이 범우주적으로 수많은 시간선을 관리한다는 집단이라는 걸 모른다면 '쟤들은 뭐야?'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 알고 난 다음이 문제다. 이야기 전개 상 감독이 영화를 전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후반부에 좀 있다. 이 구멍을 영화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코미디로 돌파하는 감이 있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의 맥이 쉽게 빠질 것이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단점이라고 보는 것은 극후반부의 전개다. 이 영화가 이 MCU의 시리즈물에 편입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단점이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끝마무리가 확실하지 못했다. 두 빌런 카산드라 노바와 미스터 패러독스의 끝마무리도, 울버린과 데드풀도 이야기에서 더 설명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카산드라 노바는 인물의 능력에 비해 설명하는 것이 게을렀다도 생각한다.
생명 연장?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고 꽤나 만족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점이 들었다. 마블 시리즈 보면서 좋았다고 느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 지난 것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스파이더맨이 돌아온다던가. mcu의 원년멤버인 로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짓는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랬다. 대중적으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가 흥행한 걸 생각해 보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마찬가지다. 잊혀 간 것들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임과 동시에 지나간 것에 예우를 갖추는 영화다 보니 마블의 동력이 정말 다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우려와는 별개로 이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 휘둥그레 놀라는 전개, 멀티버스 활용법, 라이언 레이놀즈의 기획자로서의 역할, 숀 레비의 역량과 휴 잭맨의 카리스마까지 신나는 오락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에겐 기대치를 충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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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감이 되거나 사냥꾼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굉장히 오래전 일이다. KBS의 <해피 투게더>에 나와서 모 래퍼가 어떤 분에게 랩을 한다. "인생의 진리지!" 이 한 줄은 많은 커뮤니티를 오고 가며 밈이 된다. 약간 모든 게 완벽한 너. 너는 인생의 진리지!라는 식의 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랩을 했던 사람이 자기 계발에 진심인 분이었어서 그 분 특유의 오그라드는 감성과 잘 맞았다.이 깔끔한 캐릭터성은 지금 봐도 웃긴 코미디 소스다. 그런데 코미디는 코미디고 완벽한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비단 나만 해도 머리가 안 좋고 키가 작다. 그리고 소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과는 머리가 먼 느낌이다. 나도 다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노력은 하는데 이상과 현실이 괴리가 있는 느낌.. 하하..
이정재 배우 역시 찾아보면 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사가 편하게만 전개되지는 않은 것 같긴 하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았던 적도 있으니 지금까지도 유효한 비판일 거라 생각한다. 근데 이 이정재 배우는 작년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중년 운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관상>으로 재기의 시발탄을 쏘아 올리면서 그의 커리어가 다시 시작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포스 있는 액션 연기로 무비스타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다음 작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국제적으로 가장 흥한 드라마인 이 작품. 미국의 어느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마블과의 링크도 뜨고 있는 건 정말 신기하다. 엥? 더 잘 될 수가 있나? 우리나라에선 이미 탑스타가 된 이정재 배우. 이 이정재 배우가 연출에 도전한다. 그리고 엄청 성공적인 것 같다. 웰메이드 스릴러 한 편이 등장했다.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에 이은 올해 한국영화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헌트>다.
복잡한 1983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4년이 지났다. 1983년 워싱턴. 두 안기부 차장이 대통령을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원래 대통령이 오기로 했던 건물 밖에는 성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 어수선한 건물 밖 분위기. 건물 위층에는 CIA 인사와 안기부 부장 강 부장이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과열되는 시위. 하지만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하는 일정에 차질은 없다. 그런데 CIA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을 노리는 저격수가 있다는 소식이다. 어디에? 안기부 국내팀/국외팀 차장 박평호와 김정도는 무장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건물 안에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긴박한 지금. CIA와 안기부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임무 도중 박평호가 인질로 잡히게 된다. 고민하는 안기부.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때 김정도는 테러 용의자를 사살한다.
뭔가 안 맞는 것 같은 둘. 사실 테러범을 생포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하고 싶었지만 김정도가 가차 없이 사살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긴 어렵게 됐다. 김정도의 발령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호흡이 영 안 맞는 둘. 두 사람이 이끄는 안기부에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안기부 안에 북한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있다는 소식이다. 이름은 동림. 이 스파이가 주요 정보들을 그동안 북측에 정보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를 놔둔다는 것은 한국의 안보에 거대한 구멍을 만드는 셈이 됐다.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림. 안기부의 윗동네가 아니라면 유출이 안 될 정보들이 퍼지고 있다. 과연 동림의 정체는 누구일까? 두 남자는 처절하게 대립하며 스파이의 정체를 점점 알게 된다.
독보적인 느낌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정재 감독은 보통 배우로 유명하다. 작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이 그의 대표작이다. 드라마로 국제적인 인기를 끌기 이전에 사실 충무로에서 굵직하게 이름을 날리던 게 이정재 배우였다. <도둑들> <암살>로 천만배우 주조연도 해보고 <관상>의 수양대군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레이, <신세계>의 이자성 역으로 개성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레이 역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 처음 등장할 때 ‘그것이 나의 방식이야’하던 장면을 글쓴이는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정말 이정재 배우의 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뭔가 스타성이 강하지 예술가적 창의성이 뛰어나다고는 생각 안 해봤다. 맡는 역할도 왠지 제한된 느낌?
그러나 이 영화는 그동안의 영화를 봤던 분들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놀라게 하기 충분하다. 이 신인 감독의 연출기법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다. 일단 이 영화는 세 작품과 비슷하다. <원스 어픈 어 타임 할리우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공작>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를 살짝 비틀었다는 것이 아마 세 작품과의 유사점이 될 것이다. 근데 유사점을 떠나 세 작품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살짝 다른 느낌이다. <원스 어픈 어 타임 할리우드>보단 어둡고 빠르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첩보물의 형태를 가져왔지만 주인공의 입장 처지가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 <공작>과도 비슷하지만 더 처절하고 끈적끈적하다는 지점이 세 영화와 같지만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액션신 연출 방식이 여태까지 나왔던 다른 장르물과 다르다. 이 <헌트>에서의 액션신은 분출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시퀀스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내면에 품고 있는 특정한 감정으로 영화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짜여있다. 가령 첫 번째 도입부를 보면 그렇다. 김정도는 그냥 사살하는데 박평호는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인물 간의 입장 차이를 위해 장면 장면을 넣은 것이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의 총격전은 어수선하고 난잡하면서도 장르적인 특성과 하고 싶었던 말을 분명하게 삽입했다. 불필요한 장면 삽입 없이 시퀀스를 경제적으로 활용한 이정재 감독의 뚝심이 돋보였다.
이렇게 이야기와 드라마 사이를 잘 조절해서 빠르게 전개하다 보니 보는데 이물감이 없다. 굉장히 빠른 이야기 전개에 변박을 부여해서 정서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인물 간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연출에도 유효한다. 극 중 김정도와 박평호는 비슷한 점이 많다. 같은 안기부 차장이라는 점, 부하 직원이 있다는 점, 또 뭔가 약점이 있다는 점 이런 것들에서 비슷하다. 이렇게 비슷한 게 두드러지도록 잘 짜여있기 때문에 엔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구멍이 없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면 '아 이래서 그랬겠구나'이해가 쉬울 것이다. 일부러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목표로 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신의 쾌감이 잘 느껴진다. 이런 방식은 어디에서도 못 봤다. 신인 감독의 독창성이 그대로 묻어 나온 영화였다.
엄청난 퍼포먼스
이정재와 정우성은 충무로의 큰 이름들 중 하나다. 그만큼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이에 호응하게 둘의 인맥은 넓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정재 배우의 '방위 시절'에 만났던 유재석,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이미 모델로 월드클래스였던 정호연 배우, 송강호 배우 등 충무로 마당발 중 하나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마찬가지로 정우성 배우 역시 곽도원 배우나 주지훈, 전도연 배우 등등 청담동 부부는 덕을 잘 쌓았는지 인맥이 넓다. 이를 보여주듯 이 영화에선 씬스틸러들이 잘 나온다. 그리고 이 씬 스틸러 중 몇몇 배우는 물리적인 분량이 짧아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단 어떤 카메오들은 잠깐 샤샥하고 스쳐 지나간다. 초중반부쯤 총격전 신에서 양 갈래로 나뉜 국정원 요원들의 얼굴을 잘 확인해보시면 누가 나왔는지 파악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상기했던 '엄청나게 중요한 카메오'에 대한 이야기다. 네 배우다. 일단 ~장 전문 배우 송영창 배우는 극에 보이는 대로 이해해도 뭐 큰 스포일러가 아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이 배우의 출연 사실만으로도 반전이 있거나 이러지는 않다. 나머지 세 배우다. 이 세 배우중 두 사라는 주체적인 연기를 잘 소화했다. '주체적인 연기'라고 하는 것은 인물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인물의 처지를 결정짓는다는 이야기다. 회사 대표로 나왔거나 안기부 요원 중 한 사람으로 나온 두 사람은 자기 몫을 충분히 잘 해냈다. 극 중 인물들이 '이래서 이렇게 행동했다'를 설명하기 위해 굉장히 중요했던 두 사람은 눈빛과 표정으로도 그 개연성을 성립시킨다. 아. 세 신스틸러 중 나머지 한 배우가 있다. 이 배우에 대해서는 어떤 역을 맡았는지 서술하지 않겠다. 이 배우는 극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천재성을 선보이며 극의 휘발유를 부었다. 이 인물이 이야기 전개에서 핵심이 되는 두 번째 발화점이라는 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압도적인 긴장감을 조였다가 푸는 광기 어린 퍼포먼스를 소화해낸다. 금세 이 배우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아. 카메오들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디렉팅이 깔끔했다는 느낌이 든다. 전혜진 - 허성태 배우는 박평호 - 김정도의 곁에서 조수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두 배우는 성격이 극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혜진 배우가 맡은 방주경 역은 비교적 덜 감정적이면서 여유가 있다. 이 여유가 있는 일처리 방식은 주요하게 작동한다. 또 허성태 배우가 맡은 장철성 역은 들끓어 오르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내면 역시 극에서 중요하게 작동되며 이야기에 영향을 끼친다. 두 배우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두 남자에게 신뢰관계를 형성하며 안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두 배우가 워낙 경험이 많아서인지 이 두 과제를 잘 이해하고 수행한 듯 보인다. 둘 다 정말 좋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정우성 배우는 이 영화에서 경력의 최고점을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난 이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를 보여주듯 불안에 떠는 내면과 많은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드러냈다. 김정도와 박평호에게 중요했던 것은 거리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두 사람 사이에도 그게 느껴져야 하고 관객들 입장에서도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글쓴이는 두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정재 배우는 뭐 본인이 감독이니만큼 극의 배경이자 설정이 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또 고윤정 배우와 임성재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임성재 배우가 어떤 역을 맡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이 배우가 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어딜 갖다 놔도 어울리는 비주얼과 연기를 보여준다. <언프레임드>에서 찌질한 느낌도 잘 살리고 이런 역도 잘하는 거 보면 연극 판에 오래 있던 분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다. 뭐 지금 제일 인기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나온다고 하던데 잘 되셨으면 좋겠다. 또 고윤정 배우는 이름만 몇 번 들어보고 실제로는 처음 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배우 역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정재 감독이 좋은 원석을 잘 섭외했다.
알고 가면 더 효과적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리고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기도 했다. 일단 전두환 누군지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다. 1980년 광주를 위시한 수많은 학생운동을 탄압하며 많은 분들을 희생시킨 인물이다.
다음 두, 세 번째는 '장영자 사기사건'과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이다. 일단 전자. 장영자 사기사건은 1980년대 초반 장영자라는 인물이 전직 안기부 요원이었던 이철희와 함께 도합 6천억 원가량의 어음사기를 벌인 일이다. 이 사건으로 관련된 5 공화국 인물이 많이 구속됐다. 이 사건이 극에서 어떤 사건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후자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 역시 극에서 나름 중요하다. 북한의 공군이었던 이웅평 대위가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제트기와 함께 남한으로 무작정 투항한 사건이 이 일이다. 1983년 이 일이 있고 나서 남북관계가 불안정했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다. 이근안은 5공화국 당시 유명했던 고문기술자다. 주로 심문하는 사람들에게 팔을 꺾거나 사람을 통닦처럼 묶어 고문을 하는 등 현재까지도 많은 영화에서 사용한 방식 몇 개를 이근안이 고안해냈다고도 한다. 이 이근안이 암시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다음은 조총련이다. 간단하다. 북한의 사회혁명 단체다.
또 가장 중요한 아웅 산 묘소 테러사건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3년 아시아를 순방 중이었다. 이때 미얀마를 방문해 이 나라의 민주투사들에게 참배하는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은 폭탄을 설치해 아웅 산 묘소에 있던 13명의 정부 관료를 사살했다. 전두환을 목표로 한 테러였지만 주요 행정부 관료가 사망했기 때문에 5공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엄청난 치명타를 가한 셈이 됐다. 전두환은 묘소에 도착하기 이전에 차가 고장 나서 수리하는 바람에 도착이 지연됐다. 이 일은 전 대통령에게 행운으로 돌아왔다. 이 덕에 전두환 대통령은 생존해서 1987년까지 정권을 이끌게 된다.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될 듯
한 3주 지났다. <외계+인> 1부로 시작한 여름 빅 4 레이스가 <헌트>를 끝으로 마무리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이 <헌트>가 최종 승리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부를 위한 준비물이었던 <외계+인>, 깔끔하지는 않았던 <한산>,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비상선언>은 뭔가 아쉬운 지점이 있다. 그런데 이 <헌트>는 강강강의 템포가 강점으로 발휘돼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릴러 장르영화로서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뭔가 오그라드는 느낌도 없고 위험한 지점도 없으며 결과를 이미 알고 있지도 않는 좋은 영화다. 한국의 현대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가장 티켓값을 할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 중 높은 순위권에 안착할 작품이 나타났다.
총성으로 되묻다
우리나라는 참 상처가 많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독재자 세 명이 등장한 탓에 많은 분의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영화화될 소재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 <헌트>도 이를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헌트>는 사실 관객에게 질문하는 영화다. '동림'이 누구라고 생각해? 와한 문장이 더 있다. 후반부에 주요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오기도 하고, 여러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짜인 장르적 특색이 메시지와도 이어지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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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라는 미래
민주적 제도로 선출되지 않은 근현대 국가의 왕족 중 다이애나 스펜서만큼 전 세계적 이목을 끈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1년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1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낳고 1996년 이혼한 그녀는, 이혼 후 1년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외도, 왕가 사람들과의 불화, 비극적 죽음 등 다이애나 스펜서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왕실을 둘러싼 권위와 절제라는 암막을 뚫고 나왔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왕실의 고상함·비밀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다정함·활력·봉사활동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그녀에겐 ‘왕실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스펜서〉는 왕실의 권위에 짓눌려 질식해가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자신을 되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왕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한 별장이다. 별장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별장에 들어갈 때부터 그렇다. 여왕을 포함한 모든 이는 별장 입구에서 몸무게를 재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는지를 ‘1.4kg 증량’으로 추후에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다이애나에겐 누군가의 ‘위트’로 시작된 이 ‘전통’이 버겁기만 하다. 매 식사에 입을 옷이 정해져 있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보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왕실의 의무, 권위, 품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모든 일에 그녀는 숨이 막힌다.
다이애나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할수록, 그녀를 옥죄는 보이지 않는 사슬도 더 강해진다.* 그리고 끝내 다이애나가 ‘미쳤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미쳤다’라는 혐의는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굴복‧소외시키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방법이다. 그녀가 왕실의 권위와 의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해왔던 모든 저항과 이로 인한 균열이 광기의 징후와 그 파괴적 결과물로 독해되기 시작한다. 다이애나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헨리 8세에 의해 간통‧근친상간 혐의를 받고 처형된 앤 불린의 환영을 마주하는 장면도 이 연장에 있다. 앤 불린의 환영은 다이애나에게 왕실의 의도를 체현하지 못하는 여자는 실제적 혹은 상징적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아왔음을 일깨워준다. 다이애나의 첫째 아들 윌리엄의 말(“모두를 위해 잠깐 마음을 꺼줘”)도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어린이에서 소년으로 성장 중인 그는 어머니가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다이애나에게 ‘마음을 끄고’ 자신의 곁에 머물러달라고 애원한다.
다이애나가 윌리엄의 요청에 따라 마음을 끄고 왕실의 질서에 굴복해야만 할까? 그때 다시금 앤 불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앤 불린의 환영은 다이애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아들이자 왕자인 윌리엄은 ‘마음을 끄고’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왕비인 동시에 자기 의지를 가진 여성이었던 앤 불린은 도망가라고 조언한다. 연대하는 자의 목소리가 피를 나눈 자의 목소리보다 강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앤 불린과의 조우 이후, 다이애나가 춤을 추는 장면, 자전거를 타는 장면, 어딘가를 향해 뛰는 장면이 뒤따른다. 춤, 자전거, 달리기는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위다. 움직이는 자는 어딘가에 묶여 있을 수 없다. 다이애나가 그러했듯이.
영화는 사슬을 자르고 나온 다이애나의 움직임이 어디로 귀결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가 내면의 죽음을 거부하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 큰 용기 덕에 어떤 가능성을 얻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가능성의 크기는 그녀가 두 아들을 위해 들른 햄버거 가게 직원에게 자신을 ‘다이애나’가 아닌 ‘스펜서’로 소개하는 장면에서 가늠할 수 있다.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아닌 자기 내면에 솔직한 ‘스펜서’가 품은 가능성의 크기 말이다.
유폐된 과거‧현재로부터 벗어나 ‘스펜서’라는 미래로 나아가는 그녀의 여정이 불의의 사고로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는 게 아쉽다. 나는 영향력 있는 실존 인물이었던 스펜서에게 어떤 공과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펜서가 왕실의 권위‧품위와 여성 혹은 전통과 여성이 맺는 관계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의 영역을 극적으로 넓혀줬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펜서의 삶을 담은 책 《나, 다이애나의 진실》에 나오듯, 그녀는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열었다. 여전히 강력한 권위와 전통의 질곡 속에서, 많은 사람이 다이애나가 스펜서로 나아가는 과정의 감동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감독이 다이애나의 고통을 어떻게 조명할지 많이 고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에는 다이애나가 왕실 구성원과 있는 자리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장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신 홀로 있을 때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다이애나의 표정과 감정을 그만큼 밀착하여 담는다. 얼굴 클로즈업 장면마다 절망과 고독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를 본 후, 기자 출신의 작가 앤드루 모튼이 쓴 《나, 다이애나의 진실》을 읽었다. 다이애나가 책을 낸다는 걸 왕실이 알아서는 안 됐기에 간접 인터뷰, 비대면 인터뷰, 서신 교환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비밀리에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다이애나의 삶을 포괄적·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시종일관 다이애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인 책이어서 이 책만으로 그녀의 성취와 그 위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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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마스터 오브 제로 시즌 3>
[2021년 5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 드니즈와 아내 얼리샤의 이야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두 사람.
하지만 그 관계에 균열이 싹을 틔운다.
의심과 상처를 딛고, 그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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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울림의 탄생> 30초 예고편
소아마비 고아. 한쪽 귀의 청력마저 상실한 그를 품어 준 북 만드는 장인.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북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이 악물고 버텨 온 60년.
이제 일흔을 앞둔 임선빈 악기장은 다른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게 될 거라는 비보를 접하고,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북소리를 담은 대작을 만들기 위해
23년을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낸다.
그러나 날씨도, 몸도, 전수자인 아들 동국과의 협업도 마음 같지만은 않은데...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
그 울림이 담긴 북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