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3-06-26 11:30:24
유럽영화의 단점
넷플릭스 'W살인사건' 리뷰
가끔 유럽영화를 보는 일을 곧잘 한다. 이번에 본 영화는 그저 새로운 추리가 끌려서 봤을 뿐이었는데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닌데 개연성이 모두 의도되었다는 것이 너무 잘 느껴진다. 그래서 매력이 반감된다.
1. 낯선 언어의 공격
이 영화는 모든 대사가 폴란드어이다. 그래서 단점까지는 아닌데 조금 낯설었다. 언어란 참 감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폴란드어는 어떤 intonation으로 감정을 표현하는지를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결국 표정으로만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듣는 재미는 있었다. 배우의 표정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악인의 표정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모든 일엔 장단이 있는 것이고 모든 일이 내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2. 개연성이 있긴 한데, 너무 의도성이 짙다
몇몇 유럽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지점들이 있는데, 개연성이 있든 없든 모든 사건들이 의도성이 많이 보인다. 액션영화도, 추리물도 긴장감이 중요하고, 관객들에게 이 사건이 왜 있어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하는데, 유럽 영화들을 보고 있으며 감독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이건 영화니까, 이 정도의 사건이 등장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맥락이 조금 이상한 거 같아도 이해해줘. 영화적 허용 같은 거 있잖아."
라고 말이다.
예전에 영화 '킬러 인 브뤼셀'에서도 느낀 지점인데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 없는 모든 사건들이 그저 배치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개연성이 중요한 나에게는 이 총질을 하는 이유가 뭔지 납득이 안되어 재미가 정말 없었다. 그런데 이 'w살인사건'과 같은 영화에서 또 그런 걸 느꼈다. 관객이 우선이 아닌, 감독의 의도가 우선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관객으로서 이해되지 않아 이잉?한 느낌.
3. 여러분도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추리물을 보다 보면, 범인이 그냥 보일때가 있다. 배경이 시골마을인만큼 나오는 인물들도 많지 않으니 다들 누가 범인일지 예상이 가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남편을 빨리 좀 버렸으면 했는데, 감독은 남편 캐릭터를 주인공의 성장으로 엮고 싶었던 듯하다.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 게, 그저 답답했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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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 리뷰
-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없는 시간을 쥐어짜며 두 차례나 볼 만큼 좋았고, 처음 울었던 것과 똑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영화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추천하지 못했다. 물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곳곳에 등장한 매니악한 개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엄청난 영화를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응축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더글라스 애덤스 식으로 요약하자면 '42'에 대한 영화라고 하겠지만.). 플롯을 설명하려 시도할 때마다 나는 항상 대단한 벽에 부딪혔다. 이 영화는 선형적이지도, 순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끝나지 않는 하나의 그물망과 같은 영화이므로. 설명하자니 고난 그 자체이지만,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오늘 감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 콴(양자경)은 일상에 지친 중년 여성이다. 남편 웨이먼드 콴(키 호이 콴)은 다정다감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은 영 떨어지고, 하나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대학교를 중퇴한 후 동성 연인 베키(탤리 메델)와 함께 집을 나가 산다. 에블린의 아버지(제임스 홍)는 자신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에블린을 조금쯤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보이는데, 콴 부부는 부유하고 여유롭게 살며 능력을 증명하긴커녕 세무조사로 인해 운영하는 코인세탁소마저 가압류 명령을 받을지도 모를 만큼 위태롭다. 설령 실망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에블린 자신이 거듭 선택하고 판단한 삶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피어날 듯 말 듯 한 상상력조차 에블린은 스스로 차단하며 삶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다른 우주를 살던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나 이렇게 속삭인 것이다. 거대한 악, 조부 투파키를 막아야만 해.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어.이미지 출처: IMDb가까운 사이가 친밀한 사이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건 이미 영화 <레이디 버드(2017)>가 짚었더랬다. 사랑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모녀, 그저 딸이 최고의 모습으로 살길 바라는 엄마 마리온(로리 멧칼프)을 떠올려보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에블린 역시 비슷한(그리고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다. 메인 우주 속 에블린은 딸의 동성 연인을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이미 상처 입어 뛰쳐나가는 딸에게 살쪘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부류의 엄마다. 그렇다면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에선 어땠을까? 그는 다중 우주를 넘나들 방법을 개발하던 도중 딸 조이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딸은 그렇게 모든 장소에, 모든 것을 경험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 ‘조부 투파키’가 되었다. 그러니 사건의 진원지는 알파 우주가 틀림없다. 그런데 영화는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를 주요 무대로 삼지도 않고, 조부 투파키의 역사를 구구절절 풀지도 않는다. 알파 우주는 순전히 뒷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파멸을 낱낱이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파멸처럼 보이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기실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세계의 조이를 조부 투파키가 깃들 수 있는 그릇으로 보지 않고 제 딸로만 바라보는 에블린이 있는 한 낙관적인 희망은 유효하다. 지금까지 에블린이 딸을 사랑한 방식이 지극히도 좁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조이를 계속 상처입혔을지라도.흥미로운 건 알파 웨이먼드가 묘사한 조부 투파키와 실제 조부 투파키 사이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조부가 목적도 욕망도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부 투파키가 행하고자 한 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악의에 가득 찬 시도가 아니었다. 조부 투파키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에블린을 찾고 있다고. 그렇다. 다중 우주라는 특수한 무대가 설정되어 있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지상에 발붙인 다른 흔한 모녀와 같이,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흉터에서 발을 구르는 퍽 평범한 사람들이었다.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표현하기야 했다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세대는 물론이요, 사용하는 모국어나 성장한 문화적 환경 역시 판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동시에, 에블린과 조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두 사람은 부모 앞에서 실패한 딸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이 씨앗은 두 사람의 심연에 항시 똬리를 틀고 있다. 생각해보자. 알파 우주에서 조이가 분열된 까닭은 에블린이 진행한 실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의 인정욕구를 간절히 바랐던 조이의 욕망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지만 두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알파 에블린은 목숨을 잃고 알파 조이는 조부 투파키로 각성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 뿐 모녀 사이의 교착상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러 우주를 전전하지만 조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한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음에도 상대는 변하지 않고 자신은 거부당한다는 결과패만 바라보게 된다. 실망은 축적되고 절망은 베이글을 통한 자기 파멸로 체현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실을 경험했음에도, 그러나, 조부는 여전히 에블린에게로 향한다. 어째서일까.이미지 출처: NY Times여기서 잠시 조부가 구현해낸 새카만 베이글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베이글이 아니라 도넛이었어도 상관없다. 그 형태가 어떻든 조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변함없을 테니. 모든 것을 올려놓자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베이글은 새하얗게 스러진 공허를 둘러싼 검은 한계이다. 조부가 외치는 것은 에블린과 함께 자신이 존속함으로써 계속되는 무의미한 세계를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기대, 새카맣게 타버린 가능성이자 한계를 없애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을 것이다.박종천(2020)은 논문을 통해 현상적 불화의 한계에 갇힌 개인이 비가시적인 사랑과 배려를 통해 구원받는 영화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조이-에블린의 관계가 제법 유사해 보인다. 방금 언급한 조부의 베이글은 영화 속에서 몇 차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연출되는데, 이는 알파 우주의 조이가 조부 투파키가 되던 순간 잃어버린 눈을 대체하는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고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조이의 여정은 자신이 잃어버린 남은 눈을 찾아 다니는 것일 테다. 영화는 조이가 잃어버린 다른 하나의 눈을 제시한다. 바로 에블린이 이마에 붙인 인형 눈이 그 해답이다. 에블린이 갖게 된 제3의 눈은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므로.알파 웨이먼드는 여러 우주를 넘나들고, 이 우주의 에블린을 각성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유능한 남자지만 조이를 이해하는 데엔 철저히 실패했었다. 하지만 여러 실망과 실패가 이끌었다는 우주의 웨이먼드는 조이를 아낌없이 포용한다. 그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Be Kind. 유약해 보였던 웨이먼드의 굳건한 강령은 에블린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우주를 넘나드는 싸움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던 교착상태는 웨이먼드 식의 다정함으로 무너진다(사실 이 영화가 불교적 연기론을 상당수 차용한 듯 보이기에 웨이먼드의 대사는 자비를 보이라는 말에 가까우리라 보인다). 갈등이 커지기 직전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추자 세무관인 디어드리 보베어드라(제이미 리 커티스)를 포함한 많은 문제가 싱거우리만큼 부드럽게 해결된다.게다가 Be Kind라는 강령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 무수한 우주를 유영한 에블린은 비로소 자기 자비를 실천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이는 너무도 어린 청년인 조이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남긴 자산이다-. 자신이 열망한 이상향에선 오히려 세탁소를 운영하며 징그러울만큼 아등바등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끔찍한 사고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는 등,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에블린의 시야가 확장되자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한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확장된 ‘모든 곳의 에블린이 가진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으로 집중된다. 놀라우리만큼 파괴적인 가능성을 찰나에 집중시키자 에블린이 발견하는 건 단 한 가지다. 가장 순수한 감정. 그러하므로, 한 줌의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에블린의 고백은 시간을 초월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이런 제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너와 여기서, 언제나.이미지 출처: Daily Sabah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책 제목,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친절은 우주를 막론하고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낸 건 우주를 한 번도 건넌 적 없는 웨이먼드였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얼마나 낙관적인 영화인지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단일한 정체성을 유동적인 정체성으로 변환하는 힘, 피를 나눈 모녀관계라 한들 완벽과 거리가 먼 미완의 관계로 남을 수 있음을 성숙한 자세로 선언하는 힘, 전 우주를 구하는 힘은 버스 점프를 익히지 못한 당신 역시 실천이 가능한 '친절, 다정, 자비, 그리고 공감'이란 테제다. 설령 우스꽝스러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핫도그 손을 가진 인류 진화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닐 테니!)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지 않은가. 아주, 아주 약간의 따뜻함만 있다면, 문제투성이인 삶조차 충분히 긍정함으로써 모두는 우주를 나를 그리고 당신을 구할 수 있다.<참고문헌>박종천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 국학연구 41 pp.493-535 (2020) : 493.양대종 "허무주의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 니체 철학을 중심으로" 철학탐구 35 pp.131-161 (2014)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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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온 넷없왓있! 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엔 있다!
요즘 급격히 날씨가 많이 더워졌는데, 여러분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저는 이렇게 더운 날에는, 침대에 누워서 선풍기 틀고 영상 보는 게 최고의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극장가는 서서히 활력을 찾아가는 듯 하지만, 여전히 OTT 플랫폼 시장의 인기를 이기긴 힘들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그리고 곧 들어올 디즈니 플러스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고민하고 계실 여러분들을 위해, 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엔 있다! 넷없왓있 콘텐츠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1.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1991) - 리들리 스콧
"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함께 휴가를 떠난 두 친구는 휴게소에서 그녀들을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즐거웠던 여정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도주가 되어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사막을 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녀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길목에서 매력적인 카우보이 ‘제이디’(브래드 피트)가 나타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델마’를 지켜보며 ‘루이스’는 조금씩 불안감이 커진다. 한편, 강력범으로 수배가 된 그녀들은 좁혀오는 수사망과 함께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프로메테우스>,<블랙 호크 다운> 등 여러 영화를 연출하며 영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3년 작, <델마와 루이스>는 여자 둘의 일탈을 다룬, 그녀들의 자유를 향한 여정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젊은 시절의 브래드 피트도 볼 수 있으니, 아직 안본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 추천드립니다.
2. 톰보이 Tomboy (2011) - 셀린 시아마
"새로 이사 온 아이, ‘미카엘’.
파란색을 좋아하고, 끝내주는 축구 실력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짧은 머리로 친구들을 사로잡는 그의 진짜 이름은 ‘로레’!
눈물겹게 아름답고, 눈부시게 다정했던
10살 여름의 비밀 이야기가 시작된다!"
★ 영화 제목인 '톰보이'는 "중성적인 매력을 띄는 여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영화 <톰보이>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을 연출한 셀린 시아마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녀는 어린 시절 짧은 머리와 말괄량이 모습 때문에 종종 남자아이로 오해 받았던 경험을 영화에 녹여냈다고 합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 특유의 세심한 연출이 담겨있는 <톰보이>입니다.
3. 우리집 The House of Us (2019) - 윤가은
" 매일 다투는 부모님이 고민인 12살 하나와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싫기만 한 유미, 유진 자매는 여름방학,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풀리지 않는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터놓으며 단짝이 된 세 사람은 무엇보다 소중한 각자의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 <우리집>의 감독 윤가은 감독은 전작 <우리들>로 데뷔하여 백상예술대상 영화 시나리오 상등 여러 상들을 휩쓸었습니다. 현실적인 내용이 영화에 잘 어울려, 영화를 보는 내내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잘 담겨있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단편영화 <콩나물>, <우리들>을 재밌게 보셨다면, 영화 <우리집>, 추천드립니다.
4. 그녀 Her (2013) - 스파이크 존즈
"다른 사람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고 있는 ‘테오도르’는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인 채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어느새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 영화 <그녀>는 개봉 후, 인공지능과의 사랑 감정을 다룬 충격적이고 신선한 소재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재도 특이하지만,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그리고 영상미, OST가 전체적으로 영화를 명작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한 후,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로 감독, 베니스 필름 페스티벌 경쟁부문 특별상으 수상하여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 또한 인정 받은 감독입니다.
5.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 고레에다 히로카즈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 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배우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페르소나인 키키 키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릴리 프랭크, 등 신인 배우와 히로카즈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들이 나온 영화입니다. 원제는 <만비키 가족> 즉, <도둑 가족>이었는데 한국어 제목은 <어느 가족>으로 바뀌어 많은 관객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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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화이트베어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극이 시작되면, 한 여성이 고요한 집안에서 깨어난다. 여자는 두통을 호소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목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고 주변에는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들이 널브러져 있다. TV 화면에는 이상하게 생긴 표식이 떠 있다.
모든 기억을 잃은 듯 황망하게 집안을 헤매던 여성은 거실에서 딸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짧은 기억을 떠올린다. 여자는 아이의 사진을 가지고 집을 나서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여자를 촬영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다 TV에 있던 심볼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 가면을 쓴 사람이 총을 들고 쫓아오게 된다. 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망을 다니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해서 촬영을 한다.
한참을 달리다 도착한 한 상점에서 두 남녀가 여자를 도와준다. 총을 피하다 남자는 죽게 되고, 조력자와 여자는 함께 도망친다. 조력자는 여자에게 TV 화면에 떠 있는 신호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해졌고, 우리와 같이 신호에 면역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상황을 설명해 준다. 둘은 계속해서 도망치지만 곧 총을 든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또다시 쫓기게 된다. 그러다 한 남성의 차량에 동승하게 되는데, 같은 편처럼 보였던 남자는 사실 총을 든 이들과 한패였고, 둘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남자는 이들을 죽여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이들을 쫓아다니며 촬영을 한다. 그러나 조력자는 남자가 한눈을 판 틈을 타 총을 빼앗고 다행히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조력자는 남자의 차량을 몰고 '화이트베어'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화이트베어'라는 말을 듣고 불길함을 직감하고,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조력자는 멈추지 않고 화이트베어로 향한다. 화이트베어에서 송신기를 불태우면 이상한 신호를 멈출 수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여자를 설득한다.
둘은 화이트베어에 도착해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지만, 총을 든 사람들이 쫓아와 이들을 방해한다. 여자는 총을 빼앗아 그들에게 쏘게 된다. 그러나 그때, 총에서는 폭죽이 발사되고, 무대가 열리며 객석의 사람들이 환호한다. 여자를 도와줬던 조력자와 총을 든 사람들이 배우가 무대에서 하듯 관객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하고, 여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사회자가 여자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겠다며 뉴스 영상을 재생한다. 뉴스에서 여자와 여자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를 납치 살해했으며, 남자친구가 아이를 살해하는 동안 여자는 살해 현장을 촬영하였다고 말한다. 뉴스에서 공범인 남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는 죄를 회피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객석의 사람들은 여자를 살인자라며 비난한다.
여자는 의자에 묶여 어딘가로 실려 가고, 사람들은 이 모습을 촬영한다. 여자는 용서를 빌지만, 처음 깨어났던 곳으로 돌아가 또다시 기억이 지워진다. 한편, '화이트베어' 공원의 관리자들은 이 쇼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게 여자와 절대 대화를 하지 말고 열심히 촬영해 달라고 당부하고, 배우들은 여자를 속이기 위한 연기를 펼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베카리아의 종신 노역형의 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살인자에게는 사형보다는 종신 노역형이 더욱 올바른 형벌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형 반대의 입장이다. 수형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구경꾼들은 그에 영향을 받고, 형벌 수행에 대한 억제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형은 한순간에 집행될 뿐이지만, 종신 노역형은 생이 다할 때까지 가해지는 지속적인 행위이므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근거이다.
베카리아의 논거대로, 여자는 평생을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나 또한 베카리아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화이트베어'의 방문객들은 진심으로 이 쇼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범죄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다. 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허구이고, 여자에게만 공포스러운 상황이겠으나, 상대방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재미를 느낀다면 해당 형벌이 적합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설령 아동을 잔혹하게 납치 및 살해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여자의 기억을 다시 지우고 매일 똑같은 일을 겪게 하는 것보다는, 끔찍했던 그날 하루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쇼는 그가 저지른 일을 몹시 비슷하게 재연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납치한 것을 반영해, 여자의 기억을 지우고 차에 태워 숲으로 데리고 갔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남자가 갑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이를 '소풍 가는 것'이라고 속여 숲으로 데려간 후 살해한 것을 반영했다. 아이가 죽어가는데 태연하게 촬영을 했던 여자를 반영해 수많은 구경꾼들을 배치했다. 이 쇼를 통해 여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에 대해 느꼈을 것이다.
범죄자에게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양측 누구에게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그에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은 점차 무뎌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스너프 필름을 보고도 쾌락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블랙미러> 시리즈의 엔딩이 늘 어딘지 모르게 소름 끼치게 꺼림칙한 것이겠지만.
Netflix Black mirror - White 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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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마이 웨이> 티에리 테스톤 감독 인터뷰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가 클로드 프랑수아라는 프랑스 가수의 ‘습관처럼(Comme d’habitude)’라는 샹송이었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감을 투영해 ‘마이 웨이’를 불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노래 한 곡의 여정을 따라간 동명의 이 영화는 단순히 노래를 넘어 더 넓은 의미와 시대를 우리에게 전해왔다. 리자 아주엘로스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이 풍성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 티에리 테스톤 감독을 만나 보았다.
<마이 웨이>가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데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요?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어요. 그것도 영화를 소개하러 온 자리라니 너무 감동적이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쁜 기회 같습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작업하게 되셨는지 들려주세요.
프로듀서가 <마이 웨이> 노래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사실 저는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특히나 흥미로운 지점은, 누가 리메이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을 때에는 백인 남성이 은퇴를 고민하는 순간의 매력적이고 감상적인 노랫말인데, 니나 시몬이 부르면 70년대 미국에서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서 그가 해온 투쟁이 가사에서 느껴집니다. 심지어 음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적이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이 노래는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고, 리메이크될 때마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마치 노래가 사람인 것처럼, 이 영화를 <마이 웨이>라는 노래의 전기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내레이션은 노래의 시점에서 쓴 것입니다. 노래가 화자 역할을 하는 거죠.
노래의 관점에서 쓴 내레이션을 미국 배우 제인 폰다가 맡았습니다. 어떻게 제인 폰다를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캐스팅 과정의 에피소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제인 폰다의 인생 또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측면이 강하죠. 제인 폰다의 목소리가 실리면서 이 영화에 페미니즘적 가치가 부여되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그동안 남성 위주 리메이크 역사를 갖고 있었거든요. 스트롱맨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 즐겨 부른 곡으로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특히 제인 폰다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되살려냄으로써, 이 노래의 소유를 뒤집는 의미가 있습니다.
노래 역할로 어떤 목소리가 어울릴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노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일찍 정해져 그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영어 버전에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미국 쪽 제작자가 전화를 해서, “지금 우리 사무실 옆방에 제인 폰다가 와 있는데, 제인 폰다는 내레이터로 어떨 것 같냐”고 물어 왔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제안을 듣는 순간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자가 단박에 옆 사무실로 가서 제인 폰다에게 부탁을 했죠. 제인 폰다는 전설적인 대배우지만 마음이 매우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즉각 승낙을 받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다음 월요일에 바로 녹음을 했습니다. 6-7시간씩 녹음하는 강행군이었는데, 힘들다는 기색 하나도 없이 말끔하게 진행해 주었습니다. 제인 폰다라는 대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한 기억입니다.
영화 속에 <마이 웨이>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담겼는데요. 최근 프랑스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이 노래가 불렸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도 이 노래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혹시 이 영화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중, 편집 과정에 담지 못했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찾아보니 녹음된 앨범으로 남아있는 <마이 웨이>만 4,500개 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만 170시간 정도의 분량이 되더라고요. 전 세계의 영상인데 저작권 문제도 있고 여러 이유로 사용이 어려운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똑 같은 노래를 여러 언어 버전으로 이어 붙이면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노래를 너무 많이 듣게 되다 보니 그 중 일부를 골라내야 했습니다. 또 이 영화의 다른 편집 버전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 들어갈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그리고 올림픽 폐막식에 이 노래가 불린 일은 저희 영화 소개를 앞두고 너무 좋은 타이밍이라 꼭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니, 실제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이 노래만큼 적합한 선택이 없었죠. 사실 옛날 노래다 보니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되겠어?”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올림픽 덕분에 화제성을 얻게 된 거죠.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건 어떤 버전인가요?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을 제일 좋아해요. 시나트라가 이 노래를 선택한 당시 그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마피아에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들끓고,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등장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가수들의 노래는 한물 간 장르 취급을 받았죠. 결정적으로 배우 아바 가드너와의 사랑이 끝나 깊은 슬픔과 실패감에 빠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에서는 아바 가드너의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바 가드너의 사랑 이야기가 제 마음에 그만큼 오래 남았습니다. 물론 니나 시몬, 섹스 피스톨즈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부르는 것도 좋고, 이 영화에 나온 벤 하퍼(Ben Harper)와 클라라 루시아니(Clara Luciani)의 노래도 제 눈앞에서 펼쳐져 유난히 좋았습니다. 결국 다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벤 하퍼와 클라라 루시아니 두 아티스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다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매우 아름답고 흡입력 있었습니다. 수많은 뮤지션 중 이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클라라 루시아니는 프랑스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런데 11살에 이미 키가 176cm까지 자라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슬프고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힘들었던 성장기를 생각할 때, 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죠. 치열하게 싸워 왔고 지금은 충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클라라의 삶 자체가 노래와 많이 닮았습니다.
벤 하퍼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열성 팬입니다. 모르는 노래가 없고, 시나트라와 똑 같은 반지를 끼고 다니기도 해요. <마이 웨이>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저희한테 연락을 먼저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본인의 의지로 참여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이 웨이>라는 노래에 대해 또 하나의 기억을 가져가실 관객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남겨 주세요.
2년 반 전에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노래 얘기를 지금 하는 게 맞아?” 하는 우려의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노래를 되살려내려 애쓴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죠. 다시 말해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옛날 노래가 되어 간다는 거겠죠.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프랭크 시나트라도 잘 모르죠.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훌륭한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이 노래와, 이 노래가 담긴 한 세대의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나면, <마이 웨이> 노래를 검색해 보시고, 전세계에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래할 만큼 많이 공유된 음악이라는 걸 함께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래 한 곡의 풍성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한 자리였는데, 한 세대의 문화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까지 받았다. 페퍼톤스의 노래 가사처럼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또 여기에 이른다. “수많은 날들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던 뒷모습” 같은 <마이 웨이>를, “서툰 첫 인사로 다시 만나기를 또 빛나기를 눈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들어 본다. 이 마음이야말로 음악의 힘, 영화의 힘일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정유선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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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뛰어넘어 너에게 갈게
시간을 뛰어넘어 너에게 갈게
넷플릭스 <상견니>, <다크>
더 이상 SF는 그 이름과 달리 공고한 과학적 상상(이라 쓰고 현실에서 증명된 과학 이론에 기반한 여러 가지 변형물들)이 중요하지 않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의 기계 문명이든 우주 어딘가에 있는 가상 행성의 왕족이든 그냥 현실에 없는 것을 아무거나 상상해도 SF다. 실제로 2019년 휴고상(Hugo Award)은 2019년 팬픽션 플랫폼인 AO3을 '변형적 작품 단체'로 정의하며 최고 참고문헌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크>나 <상견니> 같은 타임슬립 물들을 볼 때에도 세계관의 촘촘함이나 과학적 설정의 논리성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상견니>는 시간대의 이동보다는 영혼이 빙의한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 설정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두 작품 모두 리니어 시간대의 일정 지점들로 이동하니까 타임슬립 물이라 치고 공통된 부분을 살펴보면, 두 시리즈의 주인공들 모두 크게 두 가지 목적을 띄고 타입 슬립을 하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동시에 어떤 멸망(세계나 어떤 사람의)을 막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명료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타임슬립이지만 주인공들이 놓쳤던 세부 사항이나 다른 인물들의 행동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 속 인과 관계의 흐트러지며 상황은 주인공들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고 이런 형식의 갈등 양상을 주제로 회차가 전개된다.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어떤 요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주요 얼개인 이런 장르 물든 '타임 라인 정리'나 '해석' 같은 이름으로 블로그 포스팅 혹은 트위터 타래를 만들기 좋아하는 덕후들에겐 최적의 장르다. 두 드라마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면 내용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놓은 게시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장르물에 대해 크게 조예가 깊지는 않아서 내용을 따라잡는 데에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면 굳이 분석하며 세계관의 순차성이나 인과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보지는 않았기에 그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는 못 하겠다.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보자면 <다크>는 비교적 초반에 인물과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밝히고 그에 따라 인물들 각각의 서사가 전개되는 방식이다. '이 관계들이 어떻게 정리되는 걸까?'란 시즌1에서 의문을 시작하고 시즌2에서는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풀어 나간다. 두 주인공의 액션 아이템이 정리된 시즌3에 접어들면서, 점점 타입슬립-미션 수행-실패 이 일련의 과정이 동어 반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상견니>는 초반에 플롯을 밝히지 않고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며 중반부부터 인물들의 배경과 서사가 서서히 밝혀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중반부에는 불필요한 설정, 특히 남자 빌런의 출연에 할애된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 느껴지는데 한국이나 중국 드라마는 편성된 에피소드 수가 많다 보니 종종 이렇게 필요 이상의 과한 설정이 많고 쓸데없는 배경 설명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하는 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장편 드라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을 배제하고 본다면 두 주인공의 관계의 애절함을 보여주는 데에는 두 드라마 모두 무리가 없다.
사랑에는 장애물이 필요하다. 얄궂지만 순조롭기만 한 관계는 지루함이나 의심을 사게 된다.
요즘 들어 드라마들을 보며 느끼는 것인데,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옛날이라 봤자 한 10년 정도 전이지만) 비현실적 세계관 설정이 없이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이 그 자체로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다. <파리의 연인>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들을 되돌아보면 여자 주인공의 신데렐라 서사를 포함해 지금 다시 나온다면 사람들에게 절대 군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설정이 많다. 2020년에는 아무리 잘생긴 남자라 하더라도 무례하고 돈밖에 모르는 남자에게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가난하지만 밝은 여자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싶은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계급을 제외하고 사랑에 눈이 먼 두 젊은이를 떼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벽은 '죽음'이다. 사실 이것도 옛날 드라마에서는 많이 쓰인 소재긴 하다.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이 백혈병이나 희귀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된 내용의 드라마와 영화를, 95년 이후로만 나열해도 아마 몇십 개가 나올 것이다. 당대의 센세이셔널한 인기 가수였던 조성모를 필두로 한 발라드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에는 꼭 누군가가 총에 맞거나 차에 치이거나 하는 이유로 죽고 슬퍼하는 연인의 눈물이 클로즈업되곤 하는 레퍼토리도 있었고 말이다.
<다크>와 <상견니>에서도 결국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도 있는데, 연인의 상실에 대처하는 전제 자체가 이런 과거의 신파극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움에 못 이겨 연인을 찾아간다는 식의 신파가 아니라, 알고 보니 연인이 서로 이어질 수 없었던 이유가 어떤 타임라인 혹은 인과관계의 균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균열을 바로 잡으면 연인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식의 문제 해결적 플롯이다.
하지만 갈등이 고조되고 관계의 애절함이 극대화되려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두 사람이 쉽게 만나선 안 된다. 엄청나게 많은 엇갈림과 자신들이 초래한 서사의 균열을 겪어내야만 한다. 앞서 말한 분량을 채워내야 하는 장편 시리즈들의 고충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시청자들도 과연 두 남녀 주인공이 언제쯤 이어지는지, 이어지기는 이어지는 것인지 애가 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특히 상견니는 남국의 정취가 있는 타이난을 배경으로 교복을 입은 등장인물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아시아 시청자들의 '학교에서 보낸 여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제는 관계 자체가 주는 자극보다는 어떤 설정이나 세계관에서 오는 물리적 장벽들이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플롯이 더 쉽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게 됐다. 한 마디로 '너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해'보다 '네가 다른 세계에 존재해도 너를 사랑해'가 훨씬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력을 전시하기 위해 쓰이던 SF 세계관들이 이제는 현실의 관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됐다. 무엇이 됐든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만이 로맨스의 농도를 짙게 하는 법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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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922억이란 숫자
- 근현대사는 관련 인물들이 실존해 있을 정도로 현재와 밀접한 역사이기에 교과서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글로만 읽었던 1212사태가 지금의 60대들이 청년기에 겪은 일이라 생각해 보면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불과 2년 전에 사망한 전두환이 신군부세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훗날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까지의 시발점이 된 1212사태가 교과서의 한 줄로 남기에는 애석하다. 영화 <서울의 봄>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아로새겨야 할 역사를 예술을 도구삼아 설파한다.영화 <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배경으로 주요 인물들을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어 마치 픽션처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와 주인공들의 이름들을 보노라면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초하였음을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같은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주로 아름답게 표현되던 수식어가 이토록 소름끼치는 것이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역사적 실화를 기초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관련인들이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1212사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그 현재진행형을 교과서 한편에 문장으로 남겨두지 않도록 애쓰는 노력이자 운동이라 볼 수 있겠다.실화를 기초로 각색한 영화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온갖 신파를 끼얹어서 마치 눈물을 억지로 뽑아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화의 기능을 충실히 만들기만 했을 뿐인데도 피가 거꾸로 솟아날 것 같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가히 후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데, 영화가 꽤나 박진감 넘치지만 실은 담백하게 그려내려 애썼다는 것(오진호소령의 이야기는 놀랍지만 실제로도 총을 쏜 박종규 중령과 막역한 사이였다)이 그 이유이다. 배우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것과 화면분할 연출을 통해서 통화내용임에도 마치 액션장면과 같이 박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 등에서 영화적 재미와 문법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다만 극 중 야망과 자격지심 등이 고루 보이던 악역에 비하여 선역으로 표현되는 이태신의 캐릭터가 다소 단편적인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긴 러닝타임 내에 주인공들이 수행해야 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분명히 나아감에 있어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을 보아 이는 실수보다는 감독의 선택에 가깝다. 더불어 이태신을 이순신에 투영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가져왔을 뿐 이태신은 그 당시 존재했어야 하는 올바른 인간상을 함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다. 영화 <도가니> 등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를 통하여 법이 개정되기도 하며 <남산의 부장들>들과 같은 영화들을 통해 근현대사를 다시 조망하기도 하고 <명량>을 시작으로 한 이순신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인물을 다시금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대중예술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방해가 되지 않을 때 비로소 관객은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영화 <서울의 봄>은 기능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잘 만든 영화라 할 수 있겠다.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태신과 전두광은 선악으로 대비되면서도 그 시대의 인간군상에 대한 적나라한 분류로도 보인다. 더군다나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희성(변요한)이 카메라 셔터를 마치 총성처럼 누르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극 중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인물들과 다르지만서도 그들의 이력은 실제로 알림으로써 영화 <서울의 봄>은 자신의 마지막 기능을 다하고 막을 내린다.파주에 전두환의 유해가 안치되는 것과 관련하여 파주시장과 시민들은 학살자가 누울 곳은 없다며 적극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웠다. (갈 곳 없는 '서울의 봄' 전두광…파주시장 "전두환 유해 안장 결사 반대" - 뉴스1 (news1.kr)) 전두환에게 채 받아내지 못한 922억의 추징금을 가히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쏘아 올린 포탄이 1212사태를 잘 모르는 연령층에게 불씨로 남아 선대가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과오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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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비한 동물사전(2016)
2.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2018)
3.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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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지고 옮겨지는 삶의 흔적을 담은 [#봉명주공]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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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낡은 삐삐를 발견한 ‘벨’은 이후 무언가에 홀린 듯 기이한 행동을 보이고,
‘보움’은 딸에게서 죽은 ‘이브’의 흔적을 느끼며 점점 공포에 휩싸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