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5 17:45:58
[BIFF 데일리] 돌고 돌아 마음이 전해지면
영화 <아이미타가이> 리뷰
DIRECTOR. 쿠사노 쇼고
CAST. 쿠로키 하루, 나카무라 아오이, 후지마 사와코 등
PROGRAM NOTE.
인생의 어떤 갈림길은 찰나의 순간 결정된다. 몇 초 사이로 생사가 갈리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의 어떤 행동이 내 삶의 현재를 바꾸기도 한다. <아이미타가이>는 그런 인연의 연쇄 작용에 주목하는 영화다. 아주사와 카나미는 여고 시절부터 단짝인 친구. 카나미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뒤에도 아주사는 카나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외로움을 달랜다. 카나미의 부모는 아주사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죽은 딸이 마음을 쏟았던 고아원을 찾아 딸의 선행에 감동받는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않지만 그 흔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작은 선행들이 모여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든다. 『중쇄를 찍자』(2016), <오키쿠와 세계>(2023) 등에 출연했던 쿠로키 하루가 주인공 아주사의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2021)을 연출했던 구사노 쇼고의 정교한 화법이 매력적인 영화다. (남동철)

이 영화의 각본은 <칠석의 여름>으로 부산과도 인연이 있는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사사베 키요시 감독이 썼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생전 인연도 없던 쿠사노 쇼고 감독이 그 각본을 세상에 데려온다. 그 작품이 바로 이 <아이미타가이>다.
얼핏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이지만, 일본어를 직역하는 대신 음차로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미타가이’라는, 현대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아 거의 사어가 되었다는 이 말은, 직독직해 혹은 사전적 설명으로 가 닿기보다 이야기로 풀어질 때 훨씬 더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영화는 쿠로키 하루가 연기하는 ‘아즈사’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편의상 설명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중점을 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친구 ‘카나미’가 사진 촬영 차 갔던 해외 출장에서 사망한 후 괴로워하는 아즈사, 아즈사의 남자친구 스미토, 카나미의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점점이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어 낸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친절하게 여러 차례 겹치는 지점들을 보여 주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모세혈관처럼 사방으로 가늘게 퍼져 있는 이야기들이 드러날 때마다,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온기가 느껴진다. 영화는 카나미의 죽음과 아즈사의 직업 안에서 새롭게 이어지고 또 확장되는 관계를 보이고, 그 안에서 관계의 면면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다. 뒤늦게 도착한 편지, 몰랐던 사실의 발견, 오래 간직했던 소중한 사실… 같은 것들이 우연처럼 보이는 인연을 드러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수 없는 이런 우연과 인연은, 관점에 따라 무리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연의 형태를 질고 질긴 끈 모양보다 민들레 홀씨 같은 모양으로 이해한다면 납득이 된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씩 만들어내는 언행이 있으니까. 친구에게 가볍게 한 말, 매일 혼자 했던 일,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한 성취, 가벼운 선행… 수많은 언행이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다 멀리까지 전해지고 가 닿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믿고 싶어진다.

때로는 내가 뻗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손 끝이 우연히 상대에게 닿아 온기가 전해질 때도 있고, 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조차 뒤늦게 어딘가에 닿아 그 응답이 훗날 멀리서 공명해올 수도 있다. 못 전한 마음이라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이어질 수 있다. 각본을 쓰고 사망한 사사베 키요시 감독의 마음이,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쿠사노 쇼고 감독의 마음으로 이어져, 지금 여기 당도한 것처럼.
이 마음을 받아 들고 나온 후, 어쩐지 세상에 조금 더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등을 든든하게 받쳐 주며 깊은 신뢰를 주고받고 싶고, 아무 바라는 것 없이 다정을 건네고 싶다. 그런 관계야말로 생의 선물 같다.
그런 관계의 빈자리는 절대 채워질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사람의 흔적은 남고,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인연의 홀씨로 피어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꺾인 꿈도, 갑작스러운 비보도, 우연한 만남도. 그 모든 걸 모아 이 영화가 든든하게 등을 떠밀어 주는 걸 느끼며, 이제 앞으로 갈 시간이다.
10/03 20:0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상영코드 014)
10/04 09:00 CGV센텀시티 5관 (상영코드 089)
10/06 09: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상영코드 255)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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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과 동시에 펼쳐지는 밀실의 공포
개봉 당시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영화였던 ‘겟 아웃’. ‘놉’이 개봉한다는 소식에 미루고 있던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을 보게 되었다. 충격적이고 소름 끼치며 공포를 넘어선 놀라움이라는 말로 포스터가 장식되어 있는 이 영화는 직접적인 공포보다는 소름 끼치는 스릴러에 가까운 영화다. 인종차별을 필두로 가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곳곳에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어떤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욕망이 펼쳐질 이 곳은 ‘겟 아웃’ 이다. 흑인인 크리스와 백인인 로즈는 연인 사이이고 로즈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로즈의 집, 직접적인 인종차별은 아니었지만 걱정했던 대로 여러 곳에서 묻어나는 편견들로 인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로즈와 함께하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딘가의 밤에 빠져든다. 꿈같은 순간에서 빠져나온 크리스는 집에 빠져나가고 싶어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백인 손님들로 가득한 파티에서 크리스는 관심의 중심이 되고 흑인 손님에게는 흑인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러운데, 카메라를 꺼내 들면서 크리스의 혼란은 더욱 커진다. 그가 겪는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온 걸까.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사실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 공포 영화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진부한 결말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모두 부수고 들어오며 어떤 장면도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겉보기에 사라진 편견들이 어떻게 곳곳에 파고들어 있는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고 영화 자체에서도 소름끼치는 요소들로 펼쳐내는 마법을 펼친다. 특히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된 보이는 존재들에 의한 욕망으로 인해 더욱 몸서리 쳐진다. 무서운 장면들 없이도 무서울 수 있는 이 영화를 만나고 싶다면 추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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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보다 느린 사람을 위한 사랑법
6★/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분실물: 어제’. 얼굴이 벌겋게 탄 한 남자가 경찰서에 들어온다. 부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신고 양식에 분실물을 적는다. 그가 잃어버린 건 ‘어제’다. 말 그대로다. 그는 어제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얼굴이 왜 발갛게 탔는지, 오늘이 왜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인지 알 길이 없다. 어제를 잃어버렸다는 남자도, 그를 바라보는 경찰도 아리송한 표정이다. 더 심각한 건 ‘어제’의 중요성이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하지메는 잘생긴 얼굴로 늘 여자가 먼저 다가오지만 얼마 못 가 결별을 통보받는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한 여자가 다가온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가수 지망생 사쿠라코다. 아름다운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 무엇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운명적인 이끌림. 하지메가 잃어버린 일요일은 그가 사쿠라코와 데이트하며 둘의 관계를 진지하게 발전시키기로 한 날이었다. 어쩌면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런 둘을 지켜보는 또 다른 여자, 레이카가 있다.
이쯤에서 이 영화가 스릴러, 범죄물이 아니라는 점을 일러둬야겠다. 〈1초 앞, 1초 뒤〉는 로맨스, 멜로, 코미디, 판타지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기 위한 범죄, 끈적이다 못해 질척거리는 치정은 이 영화에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 멜로, 코미디 특유의 엉뚱한 웃음으로 가득하다(혹 낯설더라도 초반 30분만 넘기면 금세 적응된다!).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기막힌 상상력을 갖춘 영화이기도 하다.
상상력의 키워드는 바로 시간이다. 하지메는 늘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이런 식이다. 친구들이 시험지에 이름을 쓰는 동안 6번 문제를 풀고 있고, 재밌는 연극을 봐도 남들보다 몇 초 빨리 웃는다.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다 과속을 하도 많이 해서 면허가 정지돼 내근직으로 바뀌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안타깝게도 그의 빠른 속도는 연애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늘 남들보다 빨라서 그런지, 밝고 쾌활해 보이는 하지메는 어딘가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과는 달리 늘 여유 있고 꿈 많은 사쿠라코에게 그가 온 마음을 빼앗겼다는 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레이카는 정반대다. 그녀는 늘 남들보다 조금 느렸다. 친구들이 시험지를 열심히 푸는 동안 겨우 이름을 쓰고, 재밌는 연극을 봐도 남들보다 몇 초 늦게 웃는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느릿한 동작 때문에 움직이는 대상은 찍지 못한다. 하지메와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느린 속도 역시 연애에서 걸림돌이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좋아해왔지만 마음을 전하지 못했고, 연락이 끊긴 그 남자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는 레이카가 사랑해온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레이카는 하지메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하지만 하지메는 어릴 때 만났던 레이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여러 여자와 짧게만 사랑하는 데 지친 남자와 오랫동안 사랑한 남자에게 말도 못 붙이는 여자.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답은 시간에 있다. 하지메와 레이카는 남들과, 무엇보다 서로와 다른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살아간 적이 없다. 하지메는 늘 빠르게 앞으로 나갔고, 레이카는 종종 길을 잃으며 하지메를 좇았다.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지메의 시간이 멈추고, 레이카의 시간만 흐르는 것. 그리고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남들보다 느린 사람들이 손해 보며 살아온 시간이 조금씩 모여 하루(24시간)가 되면 세상이 멈춘다. 그러나 모두의 시간이 멈추는 건 아니다. 레이카, 즉 남들보다 느리게 산 사람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선물처럼 주어진 이 시간에 레이카는 많은 것을 바로잡는다. 사기꾼 사쿠라코를 하지메에게서 떼어놓고, 어린 시절의 실현되지 못한 약속을 현실화한다. 레이카는 자신에게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하지메를 위해 쓴다. 하지메를 아끼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기분 좋은 몽글몽글함이 솟아난다.
하지메와 레이카가 만날 수 있도록 도착한 선물 같은 시간! 배려심이 가득 담긴 상상력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흐르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간은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시차’가 생긴다. 하지메와 레이카가 그러했듯 앞에 있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이 나뉘고, 둘은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시차는 사랑에만 있지 않다. 영화의 상상력은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 무한히 적용할 수 있다. 느린 사람을 뒤에 남겨 두지 않고, 그들이 마음과 역량을 온전히 쓸 수 있도록 주어지는 시간의 멈춤은 드라마, 멜로, 코미디뿐 아니라 SF, 스릴러, 액션, 공포에도 쓰일 수 있다. 사랑뿐 아니라 우정, 연대, 저항, 평화의 이야기에도 활용 가능하다. 이 모든 장르와 이야기에서도, 느린 자를 위한 시간의 멈춤이라는 상상력은 엉뚱하고 따뜻한 〈1초 앞, 1초 뒤〉에서만큼이나 어울릴 것이다. 느린 사람을 위한 사랑법을 모두의 모든 것에까지 확장한다면? 〈1초 앞, 1초 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상상력을 품고 있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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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공개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11번째 한국을 방문한 톰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오는 12일 개봉한다고 합니다. 사전 시사회 역시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이번주 개봉작 같이 보실까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Mission: Impossible - Dead Reckoning - PART ONE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모험 | 미국 | 163분
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
출연: 톰크루즈, 헤일리 앳웰, 빙 라메스 등
개봉: 2023.07.12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가장 위험한 작전, 그의 마지막 선택 모든 인류를 위협할 새로운 무기를 추적하게 된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IMF팀은 이 무기가 인류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 세계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가운데, 이를 추적하던 에단 헌트에게 어둠의 세력까지 접근하고 마침내 미스터리하고 강력한 빌런과 마주하게 된 그는 가장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생명과 중요한 임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CINE PICK!
영화 ‘미션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원’(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이 12일 개봉을 앞두고 압도적인 예매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전 예매량만 16만이 팔렸으며 이전 톰크루즈의 작품 <탑건: 매버릭> <미션임파서블: 폴아웃>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엘리멘탈 이후 극장가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조디악
Zodiac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 미국 | 157분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제이크 질렌할,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재개봉: 2023.07.12.
배급: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1969년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 앞으로 날아온 연쇄살인범의 편지와 암호문. 그렇게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조디악 킬러'. 하지만 이 희대의 살인마를 잊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을 건 추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CINE PICK!
조디악 사건을 다룬 영화는 꽤 많지만, 실화를 충실히 다루며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입니다.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으며, 많은 걸작들이 있지만 조디악은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중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꽤 긴 러닝타임을 하고 있지만 봉준호 감독님은 이에 대해 "느리게 서서히 스며드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 천천히 스며드는 공포감과 무력감 같은 게 있어요.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은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을 덧붙인 바 있습니다.
디어 마이 러브
My Sailor, My Love
ⓒ 네이버영화
개요: 멜로, 로맨스 | 핀란드, 아일랜드, 벨기에 | 103분
감독: 클라우스 해로
출연: 제임스 코스모, 브리드 브레넌 등
개봉: 2023.07.12.
배급: ㈜뮤제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아일랜드의 바닷가 마을, 딸 ‘그레이스’가 소개한 가사도우미 ‘애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하워드’ 두 사람은 삶도 사랑도 처음인 것처럼 서로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딸 ‘그레이스’는 ‘애니’에게 아버지를 떠나 달라 부탁하는데...
CINE PICK!
은퇴한 선장 그리고 가사도우미로 만난 두 사람이 바닷가 외딴집에서 다시 삶과 사랑을 시작하는 영화 <디어 마이 러브> 핀란드 감독 클라우스 해로가 <원스> <내 사랑> 제작진과 만나 아름다운 아일랜드 바닷가 풍광을 배경으로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담아내었다고 합니다. 인생 막바지에 찾아온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에 로튼토마토 100%를 기록하며 전 세계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정원
Little Garden
ⓒ 네이버영화
개요: 다큐 | 한국 | 86분
감독: 이마리오
출연: -
개봉: 2023.07.12.
배급: (주)시네마달
시놉시스
“평균 나이 75세, 영화 좀 찍는 언니들이 온다!” 강릉의 대표적인 구도심 명주동의 이웃 모임 ‘작은 정원’ 언니들은 3년간 배워오던 스마트폰 사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평균연령 75세,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극영화 <우리동네 우체부>가 영화제에 초청이 되고 수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다큐멘터리 영화 만들기이다! 과연 언니들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CINE PICK!
이마리오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에 사는 할머니 8명이 단편 극영화 한 편과 장편 다큐 한 편을 제작하는 이야기를 담아내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모임 이름인 <작은 정원> 모임은 2011년 텃밭 가꾸기를 함께하며 만들어져 2016년부터 지역 영화인들이 결합하면서 스마트폰 사진 촬영과 영화 제작을 배우는 모임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작한 영화들이 서울노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이마리오 감독은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공동체도 필요하다... 영화 제작은 그들이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라고 말을 덧붙였습니다.
극장판 피노키오 위대한 모험
Pinocchio: A True Story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가족, 판타지, 모험 | 헝가리 | 84분
감독: 바실리 로벤스키
출연: -
개봉: 2023.07.13.
배급: 와이드 릴리즈㈜, 태양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외로이 살던 제페토 할아버지가 남자아이 모습의 나무 인형을 만들고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구경하고 싶던 피노키오는 우연한 기회에 서커스단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벨라’라는 친구를 만나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 ‘벨라’의 관심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좌절하고 그녀에게 인정받는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 위대한 모험을 떠난다! 피노키오는 과연 진짜 인간이 되어 ‘벨라’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CINE PICK!
피노키오의 위대한 모험을 담아낸 영화 <극장판 피노키오 위대한 모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떠나는 피노키오의 위대한 모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공개된 포스터는 영화의 주인공인 피노키오를 중심으로 각각의 캐릭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피노키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성격의 사람이 되고 싶어 모험을 떠나는 목각 인형이고 유머러스하고 말이 빠른 말 ‘티볼트’ 그리고 마음에 늘 그늘이 있는 피노키오가 사랑하는 ‘벨라’, 피노키오를 만들어서 아들로 여기는 자상한 ‘제페토’ 할아버지까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모여 만들어낼 이야기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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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이야기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왜 날 연기하고 싶어요?” “전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좋아요”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찰스 멜튼).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메이 디셈버> 줄거리
그레이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런 면모가 자신의 자아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진짜 튼튼해서 하는 말이 아닌 세뇌에 가깝다. 그레이시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통제하려 한다. 딸의 졸업식 드레스를 칭찬인 것만 같은 말로 자신의 취향으로 바꾸게 만들고, 조의 스케줄을 직접 관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신의 주변을 휘젓고 다니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해하고 케이크 주문이 취소되자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해낸다. 이런 그레이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레이시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자신 주변의 환경들을 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데, 자신과 조의 과거 역시 벗어날 수 없다. 온갖 것들을 견딜 수 없는 그레이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현재 가족들과 행복하다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주변과 자신을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런 그레이시의 통제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인물은 바로 '조'이다.
20년 전 성인인 그레이시가 미성년자인 조와 사랑을 한 것은 분명 범죄이고 조는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조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레이시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그는 더이상 '그레이시'와 밀회를 나누던 중학생이 아니다. 그 사건 당시의 '그레이시'의 나이가 되었고, 세 아이들을 곧 독립시킬 예정인 아버지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른인 '그레이시'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허락해 줘야만 움직인다. 그레이스의 허락 내에서 살아가는 그는 아직까지도 중학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그런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바로 자식들의 독립이다. 곧 세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그레이시와 둘만 함께하는 미래를 고민한다.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그때의 중학생에서 성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그레이시라는 책임이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후의 삶도 그레이시와 함께 이곳에서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오고 그와 계속 부딪히며 조는 과거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는 정말 선택권이 있었을까, 이전까지의 삶이 어땠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등등 진작했어야 할 고민들을 이제야 하며 멈춰있던 20년의 세월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삶의 변화로 인해 더이상 제 안에 가둬둘 수 없는 상황은 그간 억눌려왔던 것들을 다 뱉어내듯 요동친다. 그레이시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조와 그레이시가 만들어둔 삶에서 벗어나 과거를 파헤치려 드는 조를 견딜 수 없는 그레이시는 부딪히고 균열된다. 그레이시가 꾸려낸 삶은 더이상 그레이시 본인조차도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그레이시는 그것이 진짜라 믿고 조와 엘리자베스 등 외부에 존재하는 돌발 현상들에도 꿋꿋이 서있는다. 그리곤 비로소 자신이 맡을 역할인 그레이시를 전부 이해했다 여긴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들었던 나의 이야기는 거짓이며 나의 자아는 튼튼하다고.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인물 자체가 되기 위해 작품에서 다루는 실제 사건의 인물들인 그레이시와 조를 관찰하러 간다. 그는 그들의 바로 옆에서 질문하고 경험하며 그레이시의 전부를 자신에게 빙의시키려 한다. 엘리자베스는 끊임없이 '그레이시'를 아는 사람들, '그레이시'가 자주 다녔던 장소들을 계속 들쑤시고 다니며 그레이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 한다. 그레이시가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끼어들고 사건 외의 자신의 모든 삶을 알아내려는 엘리자베스를 경계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기어코 조지에게서 그레이시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알아내고 자신이 비로소 그레이시를 완벽히 이해했다 여긴다. 하지만 떠나는 엘리자베스에게 그것은 거짓이라 말하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스의 속내와 실제 상태는 이러할 것이라 단정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의문에 빠지게 만든다.
촬영을 하며 계속해서 다시를 말하는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메이 디셈버>를 보던 관객들도 순식간에 의문에 빠진다. 방금 위에 쓴 글처럼 그레이시가 이러한 인물이라 결론 내렸는데, 이제는 의문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왜 이 영화가 단순히 실화를 다시 재연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실화 속 인물들의 역할을 맡은 캐릭터가 그들을 관찰하고 따라가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잠깐 본 그레이시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이해했다 말하는 엘리자베스는 영화 속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준 그레이시를 전체인 양 해석하고 그의 모든 것을 재단해버린 관객들과 같다.
왜 우리는 쉽게 단정 지어버렸을까. 영화 내에서 조는 그레이시와 자신의 일을 이야기라 말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건 우리들의 진짜 삶이라고. 남의 삶을 흥미로운 호기심이 드는 이야깃거리 취급해버렸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그레이시를 이해했다 여기고 관객들은 영화 속의 정보만으로 그레이시의 삶을 판단해 버린 것이다. 결국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그레이시의 범죄만으로 그의 삶을 떠들어대던 언론과 다를 바 없다. 짧은 글 하나로 전체를 판단하고 모든 삶이 이야기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다른 이의 삶을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메이 디셈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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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가족이란
이 영화는 부국제에서 봤던 영화인데, 생각보다 볼 만했어서 수면으로 끌어올려 볼까 한다.
마야는 오래 전 가족들과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덴마크의 한 섬을 친구 부부와 다시 찾는다. 가족간의 정을 다시 다독이기 위해서.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아들들이 친 사고로 한 순간에 무너지고야 마는데....... 이들은 산재해 있던 가족간의 갈등을 잘 봉합하고 온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부터 그녀의 심리를 세 번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1.문제의 발단
가족의 갈등은 마야 친구 부부의 아들이 마야의 막내 아들을 성추행하면서 발생한다. 마야는 이 일로 자신이 완벽을 기하며 살아온 엄마의 역할을 잘 수행해 왔는지에 대해 반추한다. 다들 그녀에게 진정을 요구하고 아이들의 성장의 일부로 치부하고 추궁하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마야가 과민반응보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혼 후 가정 주부로 살아온 그는 사회적 커리어를 완벽한 가족의 모습으로 대신했기에 자신의 가족에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친구 부부의 재혼 문제 등 가정사로 인한 아이의 교육 문제인 줄 알았지만 그는 문제가 자신의 가정에 있음을 깨닫고 또 한 번의 무너짐을 겪는다.
2.남편의 배신
그런 성적인 것들을 어디서 보고 배웠느냐는 추궁에 아이들은 사건의 첫 제안은 마야의 첫째 아들이 주도했고, 마야의 남편의 야한 동영상에서 찾아 봤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마야의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무심한 데 이어 친구 와이프를 탐하는 등 점점 찌질한 모습들로 명치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지만 마야에게 실패한 자식 교육의 원인을 몰아세워 다시 한번 완벽한 가족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가스라이팅으로 마야의 마음을 계속 긁는다. 도대체 너는 뭔데 아빠 소리를 듣고 싶은 거냐 싶었다. 거기에 이혼 경험이 있는 그의 친구는 그를 '완벽한 엄마'로 추켜세우면서도 사랑을 갈구한다. 이 영화 속 남자들은 정말 가관이다. 해야할 의무는 안하면서 우쭈쭈안해줬다고 삐지는 아이 같은 인간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마야는 돌아버리겠는 상황에서 탈피한다.
3. 그녀의 해방
그는 친구의 아내와 함께 근처 바에 가서 낯선 남자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온 마야를 이해하지 못하고 밥 안차려줬다고 징징대는 그를 보며 마야는 한 차례 더 그 남자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 것이다. 엄마라는 그늘에 갇혀 분출하지 못한 감정을 표출하며 바다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몸을 맡긴다. '자유 여인'이 된 마야는 해방을 맛보며 자신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와이프 없이는 등신이신 남편께서는 마지막까지 차는 마야 것이지만 텐트는 자신 것이란 유치한 의견 충돌을 벌이다 마야에게 버림받는다. 결국 마야는 남편과 함께 끔찍한 기억이 담긴 모든 것을 섬에 버리고 온 것이다. 끝내 배에 타지 못한 그의 처량함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4. 총평
이로써 마야는 인생 공부를 한 셈이다. 결혼한 여자는 나를 지켜줄 남자가 있는 여자가 아니라 결혼 생활 중에도 여자도 자신을 지켜내야한다는 것을. 욕망을 억누르고 엄마라는 잣대에 가려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건 남자들이 만들어낸 아내, 엄마라는 판타지에 굴복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그녀도 뼈저리는 시간을 통해 경험한 것이다. 그러니 '빌어먹을 휘게'가 아니라 '신이 주신 귀한 깨달음'인 셈 치자. 그러니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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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몰락과 사소한 구원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시사회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한번쯤은 처절한 비참을 경험한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비극은 해일처럼 밀려오고, 밑바닥이 없는 것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그런 우울한 날들을. 나 자신의 다른 이름이 패배자, 실패자인 것만 같은 그런 순간들. 그 내용은 제각기 다를 테지만, 어쨌든 '밑바닥을 찍는다'는 것은 꽤나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런 지극히 '평범한 몰락'의 한복판에 있을 때, 우울의 파도는 사람을 집어 삼키고 그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더 나아질 길은 요원할 것만 같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 비참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지는 않는다. 밀물이 왔다면 썰물이 가는 법이며 고통스러운 우울이 지난 길에는 환희가 싹트기 때문이다.
물론, 운명이 우리에게 짊어지우는 과업들은 적지 않은 경우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설령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버거운 비극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서 그러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게 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달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설 힘이 있음을 속삭여 줄, 아주 사소한 구원자로부터.
1. 어느 평범한 몰락
영화 <레슬리에게>의 주인공, 레슬리는 복권 당첨자다.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얻었고 친구들과 메스컴은 이제 '팔자 펼' 일만 남았다며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레슬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 막대한 돈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가게를 내겠다는 소박한 꿈도 손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짜릿한 행복 뿐일 것이라고.
그러나 손쉽게 얻은 돈은 손쉽게 떠났다. 술과 도박이 그를 장악했고, 그 손쉬운 쾌락을 쫒는 사이, 레슬리는 사랑하는 아들과 친구들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촌구석에서 난 '행운아'는 상종하기 힘든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2. 구제 불능 알콜 중독자의 방랑
레슬리는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 돈도, 사람도, 그 자신을 지탱하는 어떤 힘조차도. 현실은 비참했다. 술을 마시면 잠시라도 그 비참을 잊었고, 레슬리는 더더욱 그것에 매달렸다. 그것이 그를 망가트린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을테지만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 지 오래였으리라. 술을 끊겠다는 숱한 다짐은 그 자신의 충동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을 것이다.
갈 곳이 없고, 잘 곳도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들과의 추억을 담은 작은 분홍 가방 하나 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장성한 아들을 찾지만,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기여코 고향으로 돌려보내진다. 그의 행운과 불행이 싹텄던 가장 원점으로.
3. 갈 곳 잃은 자를 구한 사소한 관심
고향 사람들은 레슬리의 몰락을 모두 알았다. 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잘나가는 젊은이였는지를 아는 만큼,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벗이요, 엄마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않았다. 소위 '막나가는' 알콜 중독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조소 뿐이다. 레슬리도 나아지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정신 차리고 보면 술을 사 마셨다. 얼큰하게 취하고 나면 그가 조금이나마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쳇바퀴 돌듯이.
고향 땅에서조차 부랑자 신세를 면치 못한 레슬리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일면식도 없던 남자, 스위니였다. 친구와 함께 변변찮은 모텔을 운영하던 그는 충동적으로 레슬리에게 제안하고 만다.
"좋아요, 당신을 채용하겠어요. 일당은 7달러, 숙식도 제공하는 조건으로요."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알콜 중독자에 부랑자이기까지 한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채용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다. 스위니도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레슬리를 채용했다. 차마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으므로. 어쩌면 그건, 스위니가 '자기도 모르게' 레슬리의 결함 너머에 있는 어떤 진실됨을 발견하고 말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 레슬리의 홀로서기
알콜 중독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타인의 호의에만 기대는 습관을 벗어야만 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슬리는 온갖 실수와 만행을 반복했다. 스위니는 그런 여자를 채용한 것을 수없이 후회했다. 둘 사이는 삐걱거렸다. 스위니의 구원은 얼마든지 무색해질 수 있었다. 다행히 레슬리는 변하고자 했고 스위니는 그런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었다. 레슬리는 아들 제임스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연료 삼아 오래도록 벗했던 술과 결별하고 소위 '착실한' 삶을 살고자 했다. 여전히 그를 둘러싼 시선들은 따갑고 매섭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서 몇 번이고 그 지독스러운 술에 다시금 입 댈 뻔 했지만, 레슬리는 그럼에도 그 가시밭길을 나아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들에 대한 절실한 애정과 그를 보통 사람처럼 대하는 스위니의 평범한 관심이었다. 레슬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구했다.
레슬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글쎄,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이제 막 지옥으로부터 걸어나왔고 인생에는 언제나 부침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레슬리는 그것을 이겨낼 것만 같다. 그는 이제,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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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에게>는 마냥 우울하게 치달을 수도 있는 '알콜 중독자'의 이야기를 때론 덤덤하게, 때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주 입체적이다. 완전한 악역도, 완전한 선역도 없는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만 같다. 인물들은 선을 베풀면서도 고뇌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을 후회한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사이 그들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어떤 형식으로든 변한다. 카메라는 그런 사람들의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누군가가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아주 평범한 관심의 한 조각과, 그 관심으로 말미암아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 용기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군가의 재기는 더욱 눈부시다는 것. 이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교훈일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이 사실을 꼭 알아주길 바란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다. 눈가리개를 풀고 당신 안을 들여다보라. 변화의 씨앗은 언제나 그 안에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걸 싹틔우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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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본인 출연, 제리> 메인 예고편
부국제 화제작 〈본인 출연,제리〉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이 이야기는 실화이자, 당사자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한 작품이다. 40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대만에서 미국으로 온 평범한 아저씨 '제리'. 은퇴 후 플로리다에서 지내던 '제리'는 어느 날 중국 본토 경찰의 전화를 받고, 그가 대규모 국제 돈세탁 사건의 주요 용의자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일로 중국으로 송환되어 체포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제리'는 혐의를 벗기 위해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경찰 임무에 뛰어드는데... 몇 주 동안 지속되는 고된 임무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과연 '제리'는 임무를 완수하고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본인 출연,제리〉 11월 13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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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투 핫!> 공식 예고편
《투 핫!》이 시즌 3로 돌아왔다! 더 위태로운 유혹과 함께. 일생일대의 뜨거운 휴가를 누리기 위해 모인 섹시한 싱글 남녀. 하지만 '투 핫' 별장에서는 규칙이 있었으니. 키스는 물론이고, 어떠한 성적인 접촉도 금지. 이를 어기면 20만 달러의 상금을 잃을 수도 있다. 와일드한 싱글들이 그 유혹을 참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뜨거운 유혹에 넘어가고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