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5 17:45:58
[BIFF 데일리] 돌고 돌아 마음이 전해지면
영화 <아이미타가이> 리뷰
DIRECTOR. 쿠사노 쇼고
CAST. 쿠로키 하루, 나카무라 아오이, 후지마 사와코 등
PROGRAM NOTE.
인생의 어떤 갈림길은 찰나의 순간 결정된다. 몇 초 사이로 생사가 갈리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의 어떤 행동이 내 삶의 현재를 바꾸기도 한다. <아이미타가이>는 그런 인연의 연쇄 작용에 주목하는 영화다. 아주사와 카나미는 여고 시절부터 단짝인 친구. 카나미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뒤에도 아주사는 카나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외로움을 달랜다. 카나미의 부모는 아주사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죽은 딸이 마음을 쏟았던 고아원을 찾아 딸의 선행에 감동받는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않지만 그 흔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작은 선행들이 모여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든다. 『중쇄를 찍자』(2016), <오키쿠와 세계>(2023) 등에 출연했던 쿠로키 하루가 주인공 아주사의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2021)을 연출했던 구사노 쇼고의 정교한 화법이 매력적인 영화다. (남동철)

이 영화의 각본은 <칠석의 여름>으로 부산과도 인연이 있는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사사베 키요시 감독이 썼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생전 인연도 없던 쿠사노 쇼고 감독이 그 각본을 세상에 데려온다. 그 작품이 바로 이 <아이미타가이>다.
얼핏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이지만, 일본어를 직역하는 대신 음차로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미타가이’라는, 현대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아 거의 사어가 되었다는 이 말은, 직독직해 혹은 사전적 설명으로 가 닿기보다 이야기로 풀어질 때 훨씬 더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영화는 쿠로키 하루가 연기하는 ‘아즈사’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편의상 설명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중점을 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친구 ‘카나미’가 사진 촬영 차 갔던 해외 출장에서 사망한 후 괴로워하는 아즈사, 아즈사의 남자친구 스미토, 카나미의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점점이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어 낸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친절하게 여러 차례 겹치는 지점들을 보여 주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모세혈관처럼 사방으로 가늘게 퍼져 있는 이야기들이 드러날 때마다,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온기가 느껴진다. 영화는 카나미의 죽음과 아즈사의 직업 안에서 새롭게 이어지고 또 확장되는 관계를 보이고, 그 안에서 관계의 면면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다. 뒤늦게 도착한 편지, 몰랐던 사실의 발견, 오래 간직했던 소중한 사실… 같은 것들이 우연처럼 보이는 인연을 드러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수 없는 이런 우연과 인연은, 관점에 따라 무리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연의 형태를 질고 질긴 끈 모양보다 민들레 홀씨 같은 모양으로 이해한다면 납득이 된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씩 만들어내는 언행이 있으니까. 친구에게 가볍게 한 말, 매일 혼자 했던 일,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한 성취, 가벼운 선행… 수많은 언행이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다 멀리까지 전해지고 가 닿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믿고 싶어진다.

때로는 내가 뻗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손 끝이 우연히 상대에게 닿아 온기가 전해질 때도 있고, 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조차 뒤늦게 어딘가에 닿아 그 응답이 훗날 멀리서 공명해올 수도 있다. 못 전한 마음이라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이어질 수 있다. 각본을 쓰고 사망한 사사베 키요시 감독의 마음이,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쿠사노 쇼고 감독의 마음으로 이어져, 지금 여기 당도한 것처럼.
이 마음을 받아 들고 나온 후, 어쩐지 세상에 조금 더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등을 든든하게 받쳐 주며 깊은 신뢰를 주고받고 싶고, 아무 바라는 것 없이 다정을 건네고 싶다. 그런 관계야말로 생의 선물 같다.
그런 관계의 빈자리는 절대 채워질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사람의 흔적은 남고,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인연의 홀씨로 피어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꺾인 꿈도, 갑작스러운 비보도, 우연한 만남도. 그 모든 걸 모아 이 영화가 든든하게 등을 떠밀어 주는 걸 느끼며, 이제 앞으로 갈 시간이다.
10/03 20:0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상영코드 014)
10/04 09:00 CGV센텀시티 5관 (상영코드 089)
10/06 09: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상영코드 255)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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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매력적이지만 다소 조화롭진 못한 영화
1. 영화 <외계+인>의 좋았던 점
1) 대한민국스러운 판타지 SF영화
- 도술이라는 소재가 잘 들어난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양한 도술에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동안 상상했던 모습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니 굉장히 재밌게도 느껴졌습니다. 특히나 염정아, 조우진 배우님의 후반부 도술 액션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다양한 배우님들의 케미스트리
-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 배우님 등 한국 앞으로 영화계를 끌고 가실 젊은신 배우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모이기만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고 각 배우님들의 연기력이 아주 상당했습니다. 오글거리고 유치할 수 있는 상황이나 대사를 배우님들의 연기력이 많이 커버합니다. 배우님들의 조합 역시 말할 것이 없었고요. 이런 와중에 다소 혼자 서사를 이끌어가시는 김우빈 배우님의 연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3) 화려한 액션과 CG
- 그동안 한국영화에선 보지 못 했던 독특하고 참신한 액션이 펼쳐집니다. 고려시대에 권총을 쏘며 외계인과 대결하는 모습은 그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매력을 자랑하죠. 최동훈 감독님이 그동안 상상하시던 모든 영화적 상상력이 한 곳에 모인 기분이 들어 영화 감상 내내 소재와 연출의 참신함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CG역시 조금 티나는 부분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요즘은 마블 영화에서도 CG가 티가 난다고 느낀 적도 많이 있어서 <외계+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영화 <외계+인>의 아쉬웠던 점
1) 다소 독특한 서사 진행 구조
-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1) 과거 _ 고려시대 (2) 현재 _ 2022년 입니다. 다만 영화의 서사 진행 구조는 현재 2022년에 일어난 사건 이후 과거 고려시대의 이야기로 흘러가죠. 서사의 진행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타임 워프에 익숙한 관객들도 많지만 그게 아닌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텐트폴 영화로 무려 70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으로 잡은 영화치고는 서사진행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은 전 연령대의 많은 관객들이 찾기는 다소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재미 여부를 떠나서요.
2) 많은 캐릭터 + 많은 소재 = 많은 관객?
-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등장하는 캐릭터가 정말 많습다. 거기에 소재 역시 '판타지'라는 장르 아래 정말 많은 장르적 요소들이 섞여 있습니다. 다만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진 않습니다. 이런 많은 요소 덕에 영화 타임라인이 142분이지만, 의도된 142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캐릭터의 특징은 살리고 각 장르의 특징도 살리다 보니 142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들어요. 142분이 마냥 즐겁진 않습니다.
3) 좋은 말론 '키치'한데..
- 영화의 분위기가 의도적으로 가볍고 키치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번에 나온 영화 <토르 : 러브앤 썬더>를 보는 기분과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무거워질법한 모든 순간에 시종일관 가벼운 대사와 BGM이 나오니 참 힘이 빠집니다. 영화 내내 이 가벼움이 유쾌함으로만 이어지진 분명 않습니다. 완벽하게 웃기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영화에 빠져들게 하지도 못했어요.
3. <외계+인> TMI 알아보기1) '썬더'의 정체는?!
- 이번 영화에서 귀여움을 담당한(?) 가드 김우빈의 도우미 '썬더'는 배우 김대명 님이 나레이션을 하셨습니다. 여오하 내내 AI스러운 목소리를 잘 표현하셨으며, 매력적인 감초역할을 해주셨죠.2) 김해숙 배우님과 최동훈 감독님의 인연..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김해숙 배우님은 2012년 최동훈 감독님이 연출하신 <도둑들>에서 부터 지금까지 쭉 감독님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시고 있으십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나름 반전 있는 역할을 또 맡으셨죠! (못 듣는 게 아니었죠!)
총평을 짧게 하자면 썩 만족스럽진 않으나 진심으로 이 영화를 응원합니다. 언제든 새로운 시도는 처음에는 빛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법이죠. 익숙하지 않을 뿐 이번 영화는 분명 특유의 매력이 분명 존재합니다. 2부가 나온다면 이 대서사가 어떻게 끝나는지 반드시 극장에서 확인할 예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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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대를 잃지 않기
SYNOPSIS.
2006년의 부탄 왕국.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다. 국왕이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정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파란당, 빨간당, 노란당 선거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선거 감독관은 마을의 존경을 받는 큰 스님이 총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POINT.
✔️ 건재한 왕이 직접 전제 왕권을 내려놓고 도입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화. "투표가 뭔데요? 우린 폐하가 좋은데?" 상태의 국민들 실화. 거기서 스님이 갑자기 총을 찾는다? 부탄이기에 가능한 매력적 시놉시스
✔️ 도르지 감독에게는 부탄 관광청이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부탄은 안 줄 것 같지만) 아름답게 펼쳐지는 부탄의 풍광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는, 이 시국에 알맞은 작품
✔️ 중간중간 짤막하게 나오는 아이들이 그야말로 신스틸러.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 새해 당신의 마음을 맑게 해줄 작품. 1월 1일에 개봉했습니다!
행복한 부탄에 찾아온 변화
부탄은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국민행복지수'를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오래 전 교과서 한귀퉁이에 소개된, 그래서 어쩐지 샴발라 같은 낙원의 이미지로 막연하게 그려질 만큼 잘 모르는 나라다. 나는 부탄 영화감독도 딱 한 명밖에 모른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몇 년 전 <교실 안의 야크>로 우리를 찾아왔던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을 통해 우리에게 그려진 부탄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부탄의 이미지처럼 맑고 청량했다. 루테인과 지아잔틴 섭취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과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부드럽게 그리기 때문이다. <교실 안의 야크>만 해도 야심만만하고 젊은 교사가 산간벽지 학교로 부임해 가면서 겪는 일들을 사랑스럽게 담았다. 그런데 차기작 제목에 총이 들어간다고요. 그것도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인 스님과 함께? 궁금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부탄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당연스럽게 왕이 갖던 권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과연 선출은 무엇이고 투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선거 사무원들은 전세계가 주목할 상황 앞에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지역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선거의 개념을 알리고 모의 선거를 치르고자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넌센스한 상황들이 계속 펼쳐진다. 애초에 행정적인 이름과 생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선거 명부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사람들을 크게 옭아맨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그 권력을 억지로 쪼개 경쟁을 붙여야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투표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뱃속을 불리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가 뭔데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큰스님의 "총을 구해 오라"는 발언일 것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어서 그런가 우리는 좀더 세속적인 상상을 하게 되지만... 흠흠. 아무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영화 속 인물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반응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여기까지 이루었고, 지금도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의 원리를 통해 우리를 지키는 중인 한국 사회는 영화 속 부탄과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우리에게도 유효타로 날아든다.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배신처럼 간주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제도를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제도 그 이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남들이 목숨 걸고 갈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도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 손으로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
자본주의도 통역이 되나요?
이 영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하필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런 때에 숙고하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민주주의만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주주의의 좋은 짝, 자본주의다. 영화에는 총을 둘러싼 대화가 영어-부탄어 통역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문장들은 단순히 말뜻을 옮기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통역자 '밴지'는 단순하게 말을 비슷한 단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표현과 그 의도까지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칠을 해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내어 놓는다.
자본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어와 어찌 보면 그 대척점 비슷한 곳에 가 있는 언어를 옮기는 것은, 발화된 말 뒤에 있는 마음까지도 적절히 분칠을 해서 내어 놓아야만 하는 일이 된다. 밴지가 통역한 것은 영어와 부탄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적절히 양념을 치고 거짓도 보태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약간씩 괴리가 발생한다.
이 괴리는 작지만 흥미로웠는데, (이 영화에서는 작은 수준으로만 등장하지만) 이러한 괴리가 자라고 자라면 우리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이 되는 거구나 싶어서였다. 이미 죽어 있는 마음의 시체 비슷한 것에 분칠을 해봤자 악취를 가릴 수 없다. 가치를 상실한 말은 언어의 거죽을 뒤집어써도 언어를 파괴할 뿐이다. 아무리 주절주절 단어를 끌어 모아 가려봐도 기표 뒤의 기의는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지만 명확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두 제도. 잘 발휘될 때의 장점과 잘못 발휘될 때의 해악도 명확한 이 제도 앞에서, 시스템 이면의 가치를 잊지는 않았는지, 잃지는 않았는지. 제도 이전에 우리 마음의 토대에 놓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양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어쩐지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는 백석의 시구가 떠올랐다. 우리 같이 쪼이고 싶은, 따뜻한 모닥불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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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 셋이 모이면 ‘걸작’이 나올까?
7★/10★
제약회사를 운영하며 큰 부를 모은 80대 노인. 그는 이제 물질적인 것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돈 밖에 모르는 속물 취급하는 게 걱정이다. 그는 ‘돈’이 아닌 ‘이름’을 남기고 싶다. 근사한 다리를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달고 정부에 기증하거나 역대 최고의 명작 영화를 만들어서 말이다.
이것이 돈을 잔뜩 투자한 영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제약회사 회장은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큰돈을 들여 노벨상 수상 작가의 판권을 구입하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유명한 괴짜·천재 영화감독 ‘롤라’를 섭외한다. 롤라의 제안으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이반과 월드 스타 펠릭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돈, 감독, 배우, 스타가 모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방귀 좀 뀐다는 콧대 높은 사람들은 협력하여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대신 자신의 관점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는 데 더 큰 힘을 쓴다. 젊은 감독은 롤라는 리허설에서 연기 거장 이반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대사만 열 번 가까이 시킨다. ‘안녕하세요’에 적합한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크레인에 커다란 바위를 매달고 그 아래에서 두 배우에게 대본 리딩을 시키기도 한다. 압박감과 작품의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연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롤라의 기상천외한 기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반과 펠릭스도 자존심을 부리는 데서 롤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반은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올리고 트로피에 집착하는 펠릭스가 가소롭다. 반면 펠릭스는 배우론 운운하며 자신을 배우 취급하지 않는 이반이 마뜩잖다. 이들은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고 물리는 기싸움을 이어나간다. 상대를 멸시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인물의 욕망이 블랙 코미디로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천재·거장들이 저럴까 싶어 무섭다가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다.
〈크레이지 컴페티션〉이라는 영화의 한국어 제목과 시놉시스, 화려한 출연진들을 보고는 대단히 정신없으면서 혼을 쏙 빼놓는 연출일 거라 짐작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출이 굉장히 정제된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등장인물도 별로 없어서 대부분 세 주인공이 대사와 연기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영화 속 캐릭터와는 별개로, 모두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오스카 마티네즈)들이다 보니 역설적으로 관객의 집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영화의 백미는 이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가치와 실제로 지향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풍자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고 주변인과 언론에도 이를 강조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조금 다른 구석, 그러니까 그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욕망이 내재한다. 즉 이들은 자기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서로에 젖어들다가, 종종 내파된다. 〈크레이지 컴페티션〉은 이를 굉장히 영리하고 품격 있으면서도 유쾌하게 폭로한다. 어찌 되었든 이들이 결국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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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1980년대 한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감독: 정이삭
프로듀서: 크리스티나 오,디디 가드너,제레미 클라이너
출연진: 스티븐 연,한예리,앨런 김,노엘 조,윤여정
시놉시스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들인 데이빗과 딸인 앤과 함께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칸소로 이사 오게 된다. 제이콥은 아내인 모니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금을 끌어당겨 아칸소에 있는 농지를 사들였고 그곳에서 큰 농장을 만들려는 목표를 세운다. 모니카에게 있어 불편한 건 자신의 아들 데이빗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 병원까지 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바퀴 달린 허름한 트레일러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반면에 데이빗은 아버지인 제이콥의 말을 잘 따르고 씩씩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자 데이빗과 앤은 내심 불편해한다. 그건 바로 자신들이 기대했던 할머니와의 모습과는 딴판이라는 것이다. 데이빗은 할머니인 순자에게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연 데이빗과 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어떤 존재이게 될까?
데이빗이 기대한 순자의 모습은 쿠키를 구워주고 욕설을 쓰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깨부순 순자는 손자인 데이빗에게 화투를 선물하고 험한 말을 쓰며 쓴 한약을 먹인다. 그래서 데이빗은 오히려 순자가 오는 걸 반대했고 아빠인 제이콥과 엄마인 모니카가 더 싸우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순자가 손자인 데이빗을 무척 아낀다는 걸 몸소 표현해 줬고 데이빗은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순자가 뇌졸중에 걸리고 난 후에 조금은 알게 된다.
한편 제이콥은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오직 한국 품종의 씨드로만 고집했고 가족들이 물이 안 나와 불편한데도 상수도에 있는 물을 농사에다 무리하게 썼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적인 목표를 펼치려고 하는 제이콥과 달리 모니카는 가족을 위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걸 원했기에 둘의 사이는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살기가 힘들어 미국으로 이민 온 제이콥과 모니카는 서로에게 도움이 돼주려고 했으나 무리한 빚을 안고 살아왔고 먹고살기 위해 병아리를 감별하는 일을 해왔다. 빡빡한 한국 이민자의 삶은 쉽지가 않았고 아메리칸 드림은 힘들어진다.
이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에 실패한 한국 이민자들의 모습과 그로 인해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아리를 감별할 때 수컷 병아리는 폐기하고 암컷 병아리는 쓰일 데가 많아 폐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면서 데이빗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쓸모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
영화 미나리를 보고서 필자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쓸모 있다는 게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매긴 걸까? 병아리를 감별하는 것처럼 사람도 감별되어 폐기되거나 쓸모 있게 되는 존재로 전략하고 만다. 오늘날에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에 가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사는 거는 과연 쓸모의 여지일지 생각해 봐야 된다.
병아리를 감별해 쓸모 있는 것과 폐기되는 것이 있다는 게 나름 놀라기도 했다.
2023. 10.06 (금) 20:00 영화의전당 중극장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23. 10.04 (수) ~ 2023. 10. 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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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청각 장애인 여성 복서.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영화 한 편이 그려졌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클라이맥스에서 멋진 승리를 거두고, 희망찬 미소 혹은 결연한 눈빛 같은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그러나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인가? 그렇다고 치더라도, 경기에 승리하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실 장애 유무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이런 스토리에 속절 없이 약하다. 그러니까 신체의 한계까지 몰아붙여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의 스포츠에,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삶에 매번 감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더 보고 싶은지 물어보면, 좀 망설여진다. 보기 전에도 다 본 느낌이 들어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씨네21> 인터뷰에서 “수많은 권투 영화 명작이 있다. 그들이 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건 큰 승리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시행착오 또한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 20대 후반쯤 되면 지금 삶의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도 될 것인가 점검하게 되지 않나. 케이코 역시 권투로 정점을 찍고 난 후 권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라고 밝혔으니까.
그 마음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메시지는 이를테면 분자 단위 정도의 크기로 잘게 곱게 분쇄되어 있었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내게 녹아 스며들었다. 연출도 연기도 모두 훌륭해서 그런가? 소리 없이 전해지는 말을 들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영화는 오가사와라 케이코라는 복서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우리는 어쩐지 ‘실화 바탕’이라는 말에 자꾸 집중하게 된다. 마치 거기에 단호하게 선을 긋듯이, 영화가 시작되면 오가와 케이코라는 복서의 기본 정보가 텍스트 자막으로 깔린다. 그리고 체육관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어쩐지 ‘여기까지 기본 정보는 줬으니, 이다음부터는 영화로만 집중해 줘’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 내리는 고요한 날, 체육관 바닥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낡은 운동기구가 삐걱거리고 줄넘기가 바닥에 탕탕 부딪는 소리가 우리를 영화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필름의 질감 안으로. 남녀 탈의실조차 분리되어 있지 않은 낡은 체육관에서, 필담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케이코의 세상으로.
필름에 담긴 도시 외곽은 어쩐지 채도가 낮다. 곳곳에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불빛들만 담겨 있는 시간 케이코가 달리기를 위해 집을 나설 때는 더욱 그렇다. 이른 새벽의 전등들은 왜 그리 피로해 보일까? 밝지 않은 불들이 서서히 켜지는 어슴푸레한 새벽은 왜 스산해 보일까? 그 도시에서 케이코는 채도가 낮은 푸른색으로 표표히 존재하고 있다. 체육관에서 입는 티셔츠도, 성실하게 훈련 일지를 기록하는 노트 옆의 파란 얼음 컵, 한 번씩 덧바르는 짙푸른 매니큐어도.
영화는 케이코의 푸르스름한 세상을 유난스럽지 않게 펼쳐 보인다. 한겨울에 웬 선풍기일까 하고 보면 이내 그 선풍기가 핸드폰과 연동된 아침 알람임을 닫게 되고, 초인종이 울릴 때 집 안에서 플래시가 번쩍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일터에 수어로 말을 걸어오는 동료도 있고, 케이코에게 살가운 수어로 다가오는 남동생도 있지만, 케이코의 언어는 수어만이 아니다. 케이코에게는 다양한 소통의 수단이, 다양한 언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싱이 그의 언어가 된다. 이 영화는 케이코가 복싱을 언어로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인전은 혼자 할 수 없다
케이코에게 다양한 언어가 있지만, 케이코는 그 언어들을 적극 사용해 외부로 나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케이코는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관장님 말대로 복싱에 재능은 없지만 (청각 때문이 아니라 “작고, 짧고, 주먹도 느리”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 왔다. 복싱은 원래도 개인 스포츠지만, 경기 중에도 아무 훈수를 들을 수 없는 케이코에게는 더더욱 철저하게 자기만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고민하는 중에도 케이코는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말하면 기분이라도 나아지지 않냐”는 남동생에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다”며 말하지 않으려 하고, 사람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고함이 케이코 나름의 강인함일 수 있을 것이다. 복싱은, 특히나 케이코의 복싱은 철저하게 혼자 하는 개인전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아무리 자기 세계가 견고한 사람이라도 혼자 살 수는 없다. 개인전인 복싱도 사실 상대와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혼자 할 수 없는 스포츠이다. 케이코의 세계에도 이런저런 고민들이 들어온다. 프로가 된 것은 대단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만류, 갑작스럽게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 귀가 들리지 않는 케이코를 모든 체육관에서 기꺼이 받아주는 것은 아니므로, 케이코는 복싱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관성과 타성을 뚫고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지점이다. 진짜 계속할 마음이 있는지. 계속할 것인지. 계속할 수 있는지.
가끔은 그런 질문들이 삶에 벼락같이 찾아오는 일도 있다. 어쩌면 체육관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기로 한 것 또한 그런 순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언젠가 올 날이 코로나19가 앞당겨 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도 있지만, 도시 외곽의 낡은 복싱 체육관의 경우처럼 이미 멀어져 가던 것들을 코로나19가 가속화한 것들도 있다. 마스크로 인해 입을 읽어낼 수 없어 언어 하나를 잃은 청각 장애인들의 일상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케이코와 부딪혔을 때 무례한 언사를 펼치던 어떤 행인처럼, 누군가의 언어 하나를 틀어막는 일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방향성인지 모른다.
그러니 코로나19는 특수 상황이었다고, 이 바이러스가 한물갔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길 수는 없다. 코로나19 없이도 언젠가는 왔을 날이다. 관장님의 육체처럼, 낡은 복싱 체육관처럼, 모든 것은 언젠가 쇠잔해지니까. 우리 삶은 날마다 쇠잔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몇 개의 선택지 사이 고민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완승하고 링 위에서 기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링에 오르기 위해 땀 흘리는 날이 있으며, 때로는 그조차 막막해지는 날도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어딘가에서
복싱은 무수한 반복이다. 고쳤다고 생각한 버릇을 또 고치고, 뛴 곳을 또 뛰고. 자꾸 힘이 들어가는 몸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하면서. 숨 하나씩, 주먹 하나씩, 쌓아 올리는 하루하루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힘들고 고단한 길이지만,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 영화의 엔딩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눈 부릅뜨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훅 다가와서. 세상은 복싱이 사장되어 간다고 하고, 사실 필름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지. 그밖에도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들 또한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 면면들은 어딘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았던 의사 역할을 나카무라 유코가 맡고 있어, 잠시지만 반가웠던 것처럼. 곳곳에, 어딘가에, 빛나는 면면들이 여전히, 있다.
영화 내내 도시의 불빛과 질감이 피로해 보이고 스산해 보이기만 했는데, 문득 그 불을 밝히며 하루하루를 쌓고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힘이 솟았다. 눈을 마주할 상대가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가장 좋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겁 많은 사람이 복싱을 하면 등을 보이고 도망갈 것 같지만 오히려 앞으로 뛰어든다. 몸을 숙여 피해야 하는데, 어쩐지 몸을 피하는 그 잠깐이라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불안해, 피하지 못하고 주먹만 휘두르면서 앞으로 나가곤 한다. 케이코는 프로 선수니까 나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점, 두려움으로 나아간다는 나쁜 습관 하나는 공통점이었다.
케이코가 배워야 했던 것은, 물러서지 않는 마음. 물러서지 않고 대신 가드를 든든하게 올릴 것. 세상에는 겁나는 일이 많지만, 도망치고 싶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진퇴양난에 빠지는 순간의 괴로움도 깊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물러서지 않기, 대신 가드를 올리기.
싸울 마음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는 게 복싱이다. 고민 끝에서 51:49의 아슬아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만드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삶에서 결정적으로 소중한 것들은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며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눈물 고인 눈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케이코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일 체육관에 가면 원 투 훅 투 어퍼 위빙, 케이코가 몇 번씩 하던 콤비네이션을 연습해 보기로 다짐했다. 이 동작을 잘하려면 어퍼와 위빙 사이에 몸을 잘 틀어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한쪽 발은 계속 단단한 축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마침내 계속 “할 마음(やる気)”이 생긴 케이코의 모습이 링 위에서 드러났듯이, 나 또한 한쪽 발을 단단한 축 삼아 또 계속해 보기로 한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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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를, 내가 짊어온 삶을, 들어준다면
보호자 대신 보호 시설 안팎에서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아이들의 불안정한 입지. 이곳, 벨기에 사람으로서 사업을 영위하는 어른은 겪을 일 없는 처지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주할 권리를 증명받지 못한 '로키타'와 체류권은 있어도 한낱 꼬마에 불과한 '토리'는 여전히 벨기에 시민에 속하지 못하기에 이 어른들의 이해타산과 딱 맞는다. 마약 거래상으로 뒷돈을 챙기는 일은 의심받기 쉬울뿐더러 시민인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에.
푼돈에 급급한 아이들은 군말 없다. 하물며 자신들이 수고스럽게 받아온 돈 뭉탱이에서 50유로 한 장을 받는다 하더라도. 기대나 실망이 담길 틈 없는 눈빛. 그러나 공허하진 않다. 토리와 로키타에겐 서로가 있기에.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건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유약하게 만든다.
다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 편입된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줄거리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어른의 삶은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정의할 말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타인을 간단히 가늠하는 것 아닐까. 생판 처음 보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가며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내며 인간 사회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으니까. 안타까운 건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엔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위여부를 가리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이 말이 진짜인지, 거짓이 섞인 건 아닌지, 과장한 거라면 어느 정도가 진짜일지.
로키타가 거쳐온 인터뷰도 비슷한 양상일 테다. 어른들은 로키타가 살아온 보육원에 대해 질문하고, 토리와 만나게 된 경위를 묻는다. 하지만 로키타의 답변엔 관심이 없다. 그가 진짜를 말하고 있는지, 우리 어른이 듣기에 납득할 만한 타당한 사실인지를 확실히 가리고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취조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잘못해서 불려 온 것도 아닌데.
마치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논리를 갖춘 구조로, 빈틈없이, 하나의 매끄러운 발표문처럼 말해야 하는 현실과 겹쳐진다. 일평생 더불어 살아온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소개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내가 겪은 한 사건의 특정 시점을 얼마나 명료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이가 만약 질문받는 입장이 느낄 당혹스러움과 혼란을 느껴봤다면, 결코 꼬투리 잡듯 묻지 못했을 거다. 결코 상대의 처지에 놓이리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뾰족하게 콕콕 찌를 수 있을 테지.
한편으로는 질문을 건네는 쪽의 최선이기도 하다. 비스름한 상황에서 엇비슷한 진술을 하는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어떻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진짜를 말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증거의 적확함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법이 그러하듯.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을 따라 모든 판단은 기출문제처럼 유형이 정해졌다. 그 형식에 능한 사람은 조금 더 유리한 판정을 얻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순서가 뒤로 밀린다.
로키타는 후자에 속했다. 쉽게 당황하고, 말주변이 없고, 금세 패닉에 빠진다. 어찌 보면 그는 유약할 수밖에 없다. 온갖 궂은일을 제가 다 처리해 가며 동생인 토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동생과 함께 일하지만 직접 마약을 건네고 고객을 상대하는 건 로키타가 전담한다. 와중에 토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며.
다소 강박에 가까운 애씀. 이 책임감은 엄마의 불신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과 뒤섞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와 동생이 하루하루 모은 돈은 엄마와 다른 동생들이 있는 쪽으로 보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보내려고 했다. 브로커들이 낚아채지만 않았더라면. 로키타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과정은 또다시 진술의 형태를 띤다. 피해 사실의 보고. 그리고 역시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일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 슬픔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그가 증거품목이라고 내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의 머릿속, 그의 마음속에 있기에 무엇도 증명할 수 없다.
로키타는 자신이 겪은 세계로부터 토리를 보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증명해야 하고, 거짓을 말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증명해야 하고, 그럼에도 반복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 나날에서. 이미 자신은 세상의 진흙탕에 굴러 너무 더러워졌다.
하지만 로키타가 토리를 신경 쓰는 만큼 토리 또한 로키타를 아끼고 챙기려 든다. 보호받는 동시에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로키타보다 토리가 유리하다. 남자 어른은 여자 아이를 건들 생각만 하지, 남자아이에겐 새로운 일감을 주니까.
욕구와 요구만이 가득한 주변에서 그나마 잠시 반짝이는 빛이 그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빛에 기대지 않는다. 우리를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도움은 측은지심에서 일어난 순간적인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낯선 느낌이 들면 내민 손을 금세 거둬들인다. 신기루에 이끌려 어느 하루를 버틸 생각보다는 서로에게 기대어 제 발로 이 땅을 디디고 서는 게 안정적이다.
살아가고자 하는 절박함과 간절함은 구린내가 나는가 보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모습이 그들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단 길들이고 사육할 동물로 보이는 것인지. 몇 마디의 협박과 위협적인 소음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이 예상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기죽지 않는다.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는 비합리적일지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필요한 것을 정확히 언급한다. 음식점의 남는 빵, 손님들을 위해 불러준 공연의 값, 하다못해 깨끗한 침대보라도. 최후의 보루였는지 모른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임을 증명받기 위한.
이마저 통하지 않자, 둘은 그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아낸다. 머리가 지끈할 만큼 무모한 선택이다. 하지만 무어라 나무랄 수 있을까. 그 길은 막혔으니 다른 길로 가라고, 가리킬 대안이 없다. 최선의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지 않다. 때로는 최선이기에 최악이다.
서로를 부르는 음성과 깊은 포옹. 그리고 목적지가 있을 수 없는 달음박질.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노랫말이 자꾸 귀에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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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필리아> 메인 예고편
“드디어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왔군요”
현명함과 자유로움을 지닌 오필리아는 왕비 거트루드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시녀가 된다.
왕실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오필리아에게 첫눈에 반한 왕자 햄릿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격차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국은 혼란에 빠지고,
오필리아는 이 사건의 배후에 커다란 음모가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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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기살인> 티저 예고편
[속보] 일상 속에 노출되어 있는 살인무기! 살殺균제 사건의 진실을 밝힐 대참사 재난실화 #공기살인 티저 예고편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