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10-02 16:54:19
가슴 울리는 사진 한 장, 그리고 하나
내 사진도 한 장 찍어주더라. <하나 그리고 둘>, 에드워드 양 감독
<하나 그리고 둘>A One and a Two, 2000
드라마 / 대만, 일본 / 173분
감독: 에드워드 양
가슴 울리는 사진 한 장, 그리고 하나
사람들은 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무한정 허비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대부분 어른에게 고민은, ‘결과적으론 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어린 양양의 사진을 통해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보는 이들의 두 눈을 뜨게 하고, 그동안 외면하기만 했던 진실을 깨닫게 한다.
주인공 양양은 하나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앞과 뒤를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보이는 것이 곧 전부인, 순수한 아이 덕에 가족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이면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린 아이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관객까지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영화다.

“아빠가 보면 내가 못 보고, 내가 보면 아빠가 못 봐요. 그럼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건가요?
양양의 삼촌은 길일에 결혼식을 올린 이유만으로 자신의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는다. 행복하게 잘 살아보려는 그의 노력엔 가장 중요한 점이 빠져있다. 그 점을 양양이 사진으로 찍어 그의 손에 쥐여준다. “삼촌은 뒤를 못 보니까 내가 찍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제때 쓰레기봉투를 버리지 않아 할머니가 쓰러졌다고 생각하는 양양의 누나, 팅팅에겐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팅팅에겐 참고 견디는 것이 그녀의 완전하고 진실한 삶의 자세다. 그러나 그녀 역시 고작 앞만 보고 있을 뿐이다. 누가 그녀에게 그런 자세를 강요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팅팅에게 자신의 뒤를 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녀가 하루아침에 당당하게 진실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본인이 아는 것도 직접 보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음에도 훈수를 두고, 핀잔을 주는 양양의 선생님 같은 어른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아빠(NJ)의 30년 전 실패한 첫사랑과 팅팅의 설레는 첫 연애가 교차편집되는 이유를 감독에게 묻지 않아도 관객은 알 수 있다. 옷깃만 스쳐 간 사랑도 사랑이라 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후회는 찾아온다. 후회는 삶을 되돌리기 위한 발판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이자 기회다. 과거의 선택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우린 꺾이지 않고 곧게 나아가야 한다. 유독 밝은 곳만 눈에 담으려는 몹쓸 고집들이 있기 때문이다.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앞에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양양의 엄마나, 가족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해 자꾸 거짓된 사랑만을 느끼는 옆집 소녀 리리의 뒷모습엔 어둠에 짙게 깔려있다. 우린 모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싶은 뒷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뒷면을 본인까지도 외면해 버린다면, 당신에게 완전한 ‘하나’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깨달은 건, 사는 게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거야. 왜 그걸 전엔 몰랐을까.”란 양양 엄마의 말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양양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각자가 가진 ‘모든 내면’이다. 반쪽짜리 진실만 갖고 타인을 비난하고,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쉽게 절망하는, 즉 한 인간이 가진 ‘수많은 나(자아)’ 말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다양한 인생을 담고 있다. 특정 인물의 이야기에만 치우쳐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들의 삶의 굴곡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어 천천히 풀어나간다. 감각적인 영상미부터 배우들의 명대사까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170분이 넘는 상영시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귀여운 나비넥타이를 하고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서서 편지를 읽는 양양의 모습은 <하나 그리고 둘>의 명장면이다. 그의 모든 말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이 말 한마디가 여전히 웃음을 나게 한다.
“… 아, 나도 이제 다 컸나 보다.”
많은 이가 꼭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린 양껏 크지 못했으므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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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New 피터팬의 시작! 영화 <웬디> 피터팬 110주년 기념 개봉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 네버랜드, 기억하시나요?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영화 <웬디>가 6월 30일 개봉을 확정지으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웬디>는 첫 장편 데뷔작 <비스트>로 제 65회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과 제 28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벤 자이틀린 감독이 무려 9년만에 선보인 신작입니다. <웬디>는 전 세계 독자들이 사랑하는 명작으로 끊임없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소녀 '웬디'가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를 만나 신비로운 섬에 표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과 성장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웬디> 메인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공개된 메인 포스터에는 익숙하게 떠올리던 '피터팬'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계가 펼쳐지며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기차 위를 거침없이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이 원작 속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기찻길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주위로 늘어선 나무들은 동화 속 판타지 세계보다 현실에 가까워, 이 모든 것이 원작 '피터팬'의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지워내고 있는데요. 벤 자이틀린 감독과 <노매드랜드>제작진이 새롭게 재창조한 '피터팬'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입니다.
<웬디> 메인 예고편
이 같은 <웬디> 속 '피터팬'의 새로운 세계관은 함께 공개된 메인 예고편을 통해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호기심 넘치고, 모험심 강한 '웬디'가 검은 피부에 레게 머리를 한 작은 소년 '피터'의 부름에 따라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기차 위로 몸을 싣게 되면서 예고편은 시작됩니다. 이들은 화산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는 자신의 의지로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매일 자유를 만끽하던 '웬디'는 '더글라스'가 사라진 후, 늙어가는 '제임스'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진정한 모험을 시작하고, "우리 인생은 그 무엇보다 더 멋진 이야기가 될 거야"라는 대사를 통해 영화 속에서 펼쳐질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하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벤 자이틀린 감독은 원작 '피터팬'을 "네버랜드를 경험했지만, 그것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웬디'의 이야기"로 각색하며, "성장하며 세상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 현실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삶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려는 것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웬디>는 해외 개봉 당시 '어른들을 위한 감동적이고 파워풀한 버전의 피터팬(Newsday)', '<비스트>에 이어 벤 자이틀린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New York Post)' 등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국내에서 역시 2021년 가장 주목해야 할 웰메이드 무비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현실이 판타지보다 더욱 가슴 설레고 또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요. 아마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닮아있는 무대 속에서 애정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조명하는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찬란하게 빛날 올 여름, 어른들을 위해 가슴 뭉클한 동화를 들려줄 영화 <웬디>와 함께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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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연인 부모, 그리고 그 무게
조연인 부모, 그리고 그 무게
영화 <애프터썬> 리뷰
감독] 샬롯 웰스
출연]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시놉시스] 영화 애프터썬은 캠코더 영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빠와 20여년 전 갔던 튀르키예 여행을 담은 영상이다. 소피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혼한 엄마, 아빠 사이에서 철이 빨리든 소녀다. 엄마와 함께 살다가 여름휴가 차 아빠와 함께 튀르키예로 여행을 오게 된다. 그 때의 영상을 살펴보는 31살의 소피는 회상에 잠기면서 지금의 자신과 같은 나이였던 그 때의 아빠를 그리워한다.
잔잔한 작품에서는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애프터썬. 필자 역시 감동, 신파로 눈물 콧물 빼내는 작품이 아니라 ‘잔잔’ 그 자체인 작품들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었으나 그리고 큰 울림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그 편견을 깨준 작품이 바로 영화 애프터썬이다.
같은 퍼즐조각으로 다른 작품을 만들다
영화 애프터썬은 보는 관객마다 이를 해석하는 것이 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명확한 답을 내리기 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영화는 사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왜 영화에서 사실을 운운하냐고 할 수 있을테지만, 등장인물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화의 이야기는 등장인물에게 있어서는 모두 사실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실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5개의 캠코더 영상 뿐이다. 그 외의 장면들은 어른이 된 소피의 기억과 상상이다.
5개의 캠코더 영상과 어쩌면 왜곡되었을지 모르는 소피의 기억이 조합되면서, 그리고 이 내용들이 시간 순서대로 배치된것도 아니다보니 이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이 영화를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하게 된다. 같은 퍼즐조각이 주어졌지만 사람마다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잔잔함 속의 격정
해석의 여지를 굉장히 많이 남긴 작품이기에 영화 애프터썬이 꽤나 잔잔한 영화지만 졸음이 찾아올 수 없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컷 구성이 관객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기본적인 서사를 따라간다거나 해당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서 시간순으로 배치하면서 인과를 설명해준다는 등의 친절함은 없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오후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든지, 분명히 앞에서 봤던 캠코더 장면인데 갑자기 다시 등장한다든지. 컷 구성이 굉장히 산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산발적인 컷구성 때문에 여유로운 여름휴가에서 자칫하면 느껴질 수 있는 무료함과 느슨함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컷구성들을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컷이 어디로 가야 맥락이 맞을까? 어?? 여기가 아니라 훨씬 전으로 가야 이게 설명이 되네?? 하면서 소피가 이 여름휴가를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들이 관객들에게 더 증폭되어 다가오면서 영화 자체는 잔잔하지만 그 감정은 폭풍이 되어 전해지지 않았나 싶다.
주변인이 된 부모에게서 느껴진 무게
11살의 소피는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이는 캠코더 영상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캠코더에 찍힌 주인공은 소피고, 아빠는 잠깐잠깐 등장할 뿐이다. 캠코더 속에서 소피의 감정을 알 수 있지만 아빠의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빠의 기분과 상태를 파악하고 아빠를 위로할 수 있는 철이 든 소피지만 결국에는 아빠가 어째서 힘든지 왜 울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하지 못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자식들은 언제나 그 세상의 중심에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 부모라는 무게에 대해서 큰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괴리감은 마지막 캠코더 영상에서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아빠와 헤어지면서 발랄하게 공항에서 인사를 하는 소피의 캠코더 영상.그리고 소피에게 인사하며 장난치는 소피를 사랑스럽다는듯이 웃는 음성이 영상에 담긴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캠코더를 접은 아빠는 터덜터덜 암흑의 공간으로 걸어나간다. 이 두 장면의 대비를 통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와 그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소피의 감정선대로 흘러가지만 영화 속에서 주변인으로 표현된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부모의 무게에 대한 울림을 더욱 효과적으로 줄 수 있었다고 느껴졌다.
영화 애프터썬은 잔잔함 속에서 카타르시스가 강력했던,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행복하지만 그리운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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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을 전설로 내버려둬야 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대학 교수 정년 퇴임을 앞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이 전설적인 모험가는 아들을 잃고 아내와 이별한 채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수였던 '바질 쇼'(토비 존스)의 딸이자 자기 대녀인 ‘헬레나’(피비 윌러-브리지)가 존스 앞에 나타난다.
불쑥 찾아와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에 대해 캐묻는 헬레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존스. 심지어 나치 출신 물리학자이자 오랜 숙적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의 부하들까지 자기와 헬레나를 습격하자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챈다. 이에 인디아나 존스는 마침내 중절모와 채찍을 챙겨 들고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이자 4편 이후 15년 만의 속편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하 <인디아나 존스 5>). 그간 시리즈를 책임진 스티븐 스필버그 대신 제임스 맨골드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역으로 복귀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는 공식이 있다. 귀중한 유물을 쫓는 액션으로 가득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일상에 복귀한 존스를 비춘다. 그는 이내 새로운 유물을 쫓아 집을 나서지만, 고난으로 가득한 모험 끝에 악역에게 유물을 내준다. 하지만 유물에 깃든 신비한 힘 덕분에 존스는 언제나 해피 엔딩을 맛본다.
시리즈의 최종장을 장식하는 <인디아나 존스 5> 역시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발전한 기술력 덕분에 비주얼은 화려해졌지만 내용은 예전 시리즈와 비슷하다. 이는 할리우드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최신 기술로 과거의 프랜차이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획이 유행이기 때문.
익숙한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하는 기획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탑건: 메버릭>처럼 올드팬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사로잡을 수도 있지만,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처럼 모두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인디아나 존스 5>는 후자다. 디즈니 & 루카스필름 조합의 선배인 <스타워즈>의 전철을 따라간다.
과거에 사로잡힌 고고학자의 은퇴
과거의 전설을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왔기 때문일까? <인디아나 존스 5>는 유달리 과거에 대한 고찰로 가득하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만 해도 그렇다. 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시간의 틈을 발견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시선도 과거에 고정돼 있다. 영화의 시점은 1969년이다. 온 세상이 달 착륙에 대해 떠들고, 도심에서는 우주 비행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하지만 존스는 고고학자답게 과거만 들여다본다. 그는 강의에서 달착륙 대신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를 공격하는 로마군을 격퇴한 방법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사이가 안 좋아진 아들은 다툼 끝에 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다. 이 때문에 존스는 아내 마리온과도 갈라섰다. 그래서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들에게 입대하지 말라고 간청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싶으니까.
제임스 맨골드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를 떠나보내고, 인간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를 살리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로건> 속 울버린의 은퇴와 비슷하다. 히어로의 소명을 다하고 로건으로서 퇴장한 울버린처럼 인디아나 존스도 마무리를 준비한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지켜내며 고고학자로서 소임을 다한다. 마지막 모험을 통해 학자로서의 꿈도 이룬다. 시라쿠사 공방전이 한창이던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아르키메데스를 직접 만난다. 이처럼 고고학자로서 후회 없는 경험까지 한 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마리온과 재결합하며 비로소 개인적인 회한을 떨쳐낸다. 스스로를 과거에 묻어 두었던 전설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명예롭지 못한 퇴장
그런데 이상하다. 감동적이어야 할 인디아나 존스의 은퇴는 큰 감흥이 없다. 2시간 3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마냥 지겹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각본의 문제다. '과거'라는 주제는 잘 잡았지만, 정작 그 주제를 살려줄 만한 이야기나 구도를 짜는 데는 실패했다
캐릭터들의 관계만 봐도 각본의 실패를 눈치챌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존스와 악역, 존스와 동료 간의 케미스트리가 유달리 안 느껴진다. 마지막 악역인 폴러는 나치 출신 과학자다. 그는 히틀러의 실책 때문에 나치가 패망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로 시간을 되돌려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 독일에게 승전보를 안기려 한다.
그런데 폴러와 존스의 대립은 대두되지 않는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같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 개인적인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적대시할 이유나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연히 과거로 가는 시간의 틈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크지 않다. 대신 영화는 나치 대 미국인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답습한다. 그 결과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긴장감이 부족하다.
존스와 헬레나의 호흡도 미묘하다. 그녀는 존스와 대립하는 반동인물이다. 유물 암거래상답게 고대 유물을 박물관이 보존해야 한다는 존스의 신념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스의 후계자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존스의 대녀일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고학에 매진한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찾아 나섰다. 즉, 그녀는 존스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서서히 그를 닮아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헬레나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다양한 사연은 착실히 제시되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 실패한다. 그래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헬레나라는 캐릭터는 돌변한다. 존스의 동료였다가, 대녀였다가, 암거래상이다. 긴 시간을 함께 붙어 있어도 존스와 헬레나 사이에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악역과의 혈투도, 낭만적인 은퇴도 아닌 채로 유야무야된다.
어드벤처 영화의 전설, 평범해지다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인 액션도 어설프다. 어드벤처 장르의 전설이자 효시인 <인디아나 존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는 40년 전에 스필버그가 맡은 이전 시리즈보다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나의 시퀀스 안에서도 리듬이 뚝뚝 끊기며, 고도의 기술력을 활용한 색다른 볼거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폴로 11 기념 퍼레이드를 배경으로 펼치는 추격전이 대표적이다. 폴러의 부하를 피해 도망치는 존스. 그는 말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다가 뉴욕 지하철 역에서 기차까지 맞닥뜨린다. 이 시퀀스는 분명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다.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 어설픈 유머가 끼어들며 자주 끊어지다 보니 박진감은 떨어진다. 또 말을 탄 채 오토바이와 자동차보다도 빨리 달려 그 좁은 도로에서 도망치는 상황의 맥락도 어색하다.
액션 하나하나의 시퀀스도 다소 길다. 오프닝 장면만 보더라도 기차 추격전이 끝날 법한 타이밍에 액션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욕심도 과하다. 액션 시퀀스 하나하나가 긴데, 숫자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영화는 여러 시퀀스가 얇은 줄거리에 의지해 겨우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팬서비스는 확실했다
<인디아나 존스 5>는 이 모든 단점을 팬 서비스로 무마하려 한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중절모와 채찍을 여러 번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에는 반갑다. 마치 잭 스패로우의 해적 모자나 스카이워커의 광선검을 보는 듯하다. 이전 시리즈의 소소한 재미도 살아있다. 동굴 벽에 가득 붙어 있는 벌레를 본 주인공들이 비명을 지리는 장면처럼.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그들도 더 이상 반갑지 않다. 부실한 내용물을 감추기 위해 중절모와 채찍,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에 의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에 대한 향수와 팬심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설령 고전 영화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팬서비스에 치중했다 하더라도 효과적이지는 않다. 최신 영화 못지 않은 비주얼 때문에 실망과 괴리감은 커진다.
다만 <인디아나 존스 5>의 의의는 확실하다.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를 마지막으로 만날 기회니까. 또 떠나야 할 타이밍에 품격 있는 작별 인사를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실제로 그는 세월이 깃든 얼굴로 최고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여준다. 칸 영화제가 그에게 공로상을 안겨 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Poor 형편없음
전설은 잠들어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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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붐바스틱 하면 떠오르는 영화
혹시 음악 중에 붐바스틱 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워낙 유명한 음악이라 딱 들으면 아?~ 이노래 하실거라고 생각이 돼요!
오늘은 붐바스틱하면 딱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서 가지고 왔어요~ 바로 영화 검사외전인데! 강동원이 신명 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유명해진 영화 검사외전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코미디
감독/각본 : 이일형
출연진 : 황정민, 강동원
개봉일 : 2016년 2월 3일
평점 : 8.56
스트리밍 : 티빙,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 왓챠
기획 의도
진실 앞에 무대뽀! 다혈질 검사,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다!
진실 따위 나 몰라라! 허세남발 꽃미남 사기꾼, 반격 작전에 선수로 기용되다
감옥에 갇힌 검사와 세상 밖으로 나온 사기꾼!
이들의 예측불허, 반격의 한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여담
전국 상영관에 검사외전을 가득 차지하며
2016년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대체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나눠지며, 스토리는 허술하지만 배우들의 인지도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평이 지배적입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검사외전 결말을 살펴보자면
재욱의 손아귀에 벗어나려던 치원은 결국 그를 돕기로 결심하며 현재는 정치인으로 활동 중인 재욱의 상사 우종길의 선거캠프에 들어가면서 그의 은밀한 비밀 장부를 손에 넣게 됩니다. 종길은 감옥에 투옥 중인 사람들을 사주하여 재욱을 재판에 못 오게 방해하지만 힘겹게 참석하면서 모든 증거와 더불어 녹음기까지 활용하며 종길의 그동안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면 재욱이 승소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영화 검사외전은 단순한 스토리지만 그 속의 황정민과 강동원의 투톱만으로 빛을 발휘하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는 영화입니다. 단순하고 심플하니 심심할 때 팝콘 영화로 검사외전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붐바스틱! 따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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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기록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일까, <저항의 기록>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또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저항의 기록>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의’에 관해 묻는 것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즉 문서화와 기록화에 중점을 둔 장르의 영화들은 여전히 국내에서 명확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기록할 것인가. 제작자의 관점이 개입된, 설득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실을 활용할 것인가. 그 질문 위에서 저마다의 필름을 찍어냈던 수많은 다큐멘터리 상영작의 감독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답을 내린다. <저항의 기록> 또한 그렇다.
저항의 기록
Resistance Reels
Cast
감독: 알레한드로 알바라도 호다르, 콘차 바르케로 아르테스
시놉시스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의 유일한 연출작 <로시오>(1980)는 민주주의 초창기 법적 검열의 대상이 된 후 많은 이들에게 저주를 받은 다큐멘터리다. 베르가는 그 이후 다른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우리는 이 실현되지 못한 영화들이 저항의 몸짓으로서 현재에서 생명을 얻기를 꿈꾼다.
<저항의 기록>은 파편화에 그쳤을까
이 영화는 베르가 감독이 끝내지 못한, 기획 단계에서 머무르다 피지 못한 이야기들을 그 뒷선에 선 감독들이 피워내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가장 큰 의미 관계의 대립으로 보이는 것은 저항과 그 반대에 선 이들이다. 이 영화의 제목과도 같다. 베르가 감독이 만들었던 <로시오>를 비롯해 기획 단계에서 그쳐 버린 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그 저항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기록을 이 영화가 신중히 담아 정리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다큐멘터리의 정의,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은 바로 <저항의 기록>이 가지는 특징에 있다. <저항의 기록>이 러닝타임 동안 보여주는 모습은 어쩌면 파편화에 가깝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잡동사니처럼 흩어져 있던 서류철들을 정리함에 꽂아 정리한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관객들의 부정적인 평이 있었다.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고, 설득하는 힘이 부족하며 이야기가 파편화되어 있다”라는 것이 중론으로 보인다.
짚어볼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영화는 베르가 감독이 구상 단계에 그쳤던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후발주자 격인 감독들이 ‘구현’하는 과정이다. 다큐멘터리의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영화가 담아내야 할 이야기가 대단히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이 가지는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베르가 감독의 일생도 짚어야 할 것이고, 탄압에 관한 베르가 감독의 시선이 담긴 영화를 구현해내고 그것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제목을 <저항의 기록>이라고 정해둔 것은 아닐까. 일일이 영화 내에서 마치 ‘챕터’의 개념처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닐뿐더러 모든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애초에 제작 과정에서 염두에 뒀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기록에 그 무게를 두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영화가 지니는 의의 또한 작품의 제목에서 미루어볼 수 있지 않을까. 저항한 이들을 기록하는 게 중점이었던 것은 아닐까. 베르가 감독과 감독이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구현된 다큐멘터리 속에서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모두 저항한 이들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이들이다. 챕터들마다 등장하는 이슈들, 그리고 인터뷰이들이 저항했던 모든 것은 면담과 사실 기록으로 구체화된다. 베르가 감독이 해내지 못했겠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을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전한 평가 중 ‘번잡스러움’에 관한 지적은 그럴듯하다. 충분히 그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별개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아 전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른다. 말 그대로 번잡스러워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독들은 그 부담을 짊어지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번잡스럽더라도, 베르가 감독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렇게나마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서류 정리함에 정갈하게 꽂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는 일종의 애도에 관한 개념으로 확장된다.
기록에서 애도까지의 확장
저항을 기록하는 것은 애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저항의 역사는 뿌리 깊다. 민주화를 위한 항쟁과 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수차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쓰러졌다. 국가 권력이 행한 국가 폭력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그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 과거가 있었다는 그 사실을 영상화하는 것은 일종의 애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항의 기록>은 ‘애도하는 기록’인 셈이다.
이는 또한 베르가 감독을 애도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베르가가 일생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탄압받으며 구차한 삶을 살다 끝내 생을 마감한 것은 일종의 저항이었다. 그런 베르가의 미완성된 작품들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저항이며 애도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저항의 기록>은 가치를 지닌다. 저항하는 이들을 담아내고, 저항의 순간들을 기록해냈으며 그와 동시에 애도해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또 세계 각지에서 시간의 흐름에 묻혀 그 생명을 잃었던 저항의 순간들이 되살아나기에 이른다.
다큐멘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단순히 사실들을 기록하고 나열하는 것은 진정으로 가치가 없는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모호한 존재다. 영화의 영역과 저널리즘의 영역까지 모두 아우르게 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다른 극영화처럼 영화로서 그 가치를 더 무겁게 지닌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더욱 가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저널리즘은 그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데에 주목한다면, 그 가치가 가장 중시된다면 <저항의 기록>은 그 자체로 가치 있을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의 기록들은 이제 베르가의 손아귀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만났다. 호다르, 아르테스 감독은 그 기록들에 마침내 생명을 주었다. 그 생명이 관객들 앞에서, 어떤 힘을 가지게 될지는 관람하는 관객들의 손에 달렸다. 평가의 여지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설득력인가, 사실에 관한 기록인가.
상영 일정
2025. 05. 01(목) CGV전주고사 7관 21:30
2025. 05. 04(일) CGV전주고사 7관 14:30
2025. 05. 06(화) CGV전주고사 7관 14:30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30일~5월 9일 동안 개최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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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영화의 매력
영화 <패싱>은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흑인들의 삶과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이린이 아들이 갖고 싶은 책을 사고자 뉴욕으로 가는 것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마침 어렸을 적 친구였던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클레어의 모습에 아이린은 단번에 눈치를 못 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러 클레어의 방으로 들어가 여태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를 나눈다. 얼마 안 있고서 클레어의 남편이 들어오는데 얘기를 하는 도중에 그는 흑인을 혐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임을 알게 되어 아이린은 걱정하며 불안해 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별 생각이 없는 듯이 이런 자기의 남편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내심 어렸을 적, 그 시절들을 그리워한다. 이후 클레어는 흑인복지연맹 위원회로 일하고 있는 아이린을 따라 무도회, 모임 등에 참석하며 사람들과 어울어진다. 하지만 클레어의 남편이 아이린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아내 또한 여태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클레어를 찾아가지만, 클레어는 자살하며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영화 제목인 '패싱'은 우리가 흔히 아는 '지나가다'라는 뜻은 아니다. 혼혈의 비율이 점점 늘면서 겉으로 봤을 때는 전혀 흑인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피하거나 고등교육을 받는 등 백인 행세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사실 <패싱>은 흑백영화이기 흑인과 백인, 자세히 어떤 점에서 패싱인지는 파악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다. 단순히 명도와 채도로만 구분이 가능하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클레어의 머리색이 금발이라고 하지만 '어 피부톤이 좀 밝네? 엇 이 사람은 조금 어둡네?'로 밖에 흑인인지 백인인지 알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는 흑백영화를 볼 때 답답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영상미와 연출이 둔탁한 느낌이 들고,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도 뚜렷하지 않은 것 같아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동주>란 영화를 봤을 때는 흑백 영화인 줄 모르고 봤는데 첫 장면부터 숨 막혔었던 것 같다. 하지만 <패싱>은 이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선 흑백으로 함으로써 인종차별을 조금 완화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흑백영화에서는 백인 또한 자신의 원 피부톤보다는 어둡게 나오니. 오직 밝고 짙은 무채색으로만 구별이 가능하고 빛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니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1.33:1의 비율로 인해 사람의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패드로 감상을 했는데 화면이 꽉 채웠다는 느낌에 몰입할 수 있었고 다른 영화, 드라마와 같이 가로로 늘려있는 화면이 아닌 타이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인물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고 배경에 감탄하거나 다른 부차적인 요소들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아닌 인물들의 표정과 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종차별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흑백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듯한 방식으로 연출하여 밝고 어두움, 이분법적으로 영화를 보게 되어 신선했다. 오히려 1.33:1 비율과 흑백, 이 둘로 인해 답답하거나 막혀있는 느낌이 아닌 인물의 마음과 표정에 더 초점을 맞춘 상태로 볼 수 있어서 긴장감과 초조함을 계속 유지한 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린과 클레어 간의 감정구도도 흥미로웠던 것 같다. 반감과 걱정의 감정들이 오고가며 누구에게는 끈끈한 관계 누군가에게는 끊고 싶은 관계. 자기 모순적이면서 위선적인 두 여성 인물들에 의해 계속 긴장감을 유지한 채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특히 테사 톰슨 배우의 진지하고 차분한 연기, 엘레강스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인종차별은 다양한 형식으로, 방식으로 과거에도 지금 현재에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조심스럽게 아마 미래에도 계속 끊임없이 언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으로서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 속의 내면에, 사람의 진심과 마음에 더 귀기울이면 어떨까 한다.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과 배경, 그리고 놓여있는 그 상황에 따른 개개인별의 문제해결 방법에 그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서로 간의 신뢰, 믿음과 배려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따뜻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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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저씨 명대사 모음
- BGM
Disappeared -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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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 너머에> 30초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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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메인 예고편
‘니키’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동의하고 별거 중인 ‘데이빗’은
우연히 아내의 연인 ‘데릭’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한편, 결혼과 육아로 단절되어버린 꿈을 이루기 위해 로펌에 취직한 ‘니키’는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데릭’에게 점점 호감을 갖게 되고
‘니키’와의 관계를 보다 발전시키고픈 ‘데릭’은
밤마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면서 그녀를 온전히 소유하고픈 욕망을 키워간다.
서로의 곁에 머물고 싶은 세 연인의 욕망은
그들을 위태로운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