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09-18 20:21:30
지금의 '정의'는 안녕한걸까?
-<베테랑2>(2024)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경찰이 있다. 범죄자가 잡히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다. 살인을 저지르면 살인에 맞는 형량을, 성폭행을 저지르면 성범죄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이를 재판하는 판사와 사법부를 믿고 신뢰하려 하지만, 종종 판결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형량이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며, 사회적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간다.
피해자들은 평생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공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죄를 지은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량을 채우고 나면 죗값을 다 치렀다고 착각한다. 이런 괴리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범죄자가 더 이상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음에도, 피해자는 여전히 그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조두순의 출소 사건이 있다. 그의 출소 직후 집 앞에 몰려든 유튜버들과 취재진은 지금의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장면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시리즈 <비질란테>, <노웨이아웃 더 룰렛>, 영화 <무도실무관>, 그리고 최근 개봉한 <베테랑2>에도 비슷한 장면이 묘사된다. 이러한 출소한 범죄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에 대한 응징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회적 현상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범죄와 처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문제로 자리잡았다.
[첫번째 감정] 서도철의 정의감
서도철(황정민)은 사실 단순히 올바르기만 한 경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강력계 형사로서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서왔고, 그 과정에서 다소 거친 언행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자들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협박이나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남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가족에게도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서도철의 내면에 깔린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그가 항상 법을 준수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관객들은 이러한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그가 과연 진정한 정의의 구현자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도철의 정의는 단순한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제압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 한다. 물론 분노에 휩싸여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만, 그의 팀원들이 그를 제지하며 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이는 서도철이 제도 내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의 강한 언행과 행동 뒤에는 법과 질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숨어있다. 서도철은 자신의 감정에 휘말릴 때가 많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범죄자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서도철의 정의는 때로는 삐딱하고 비뚤어져 보일 수 있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서도철은 이상적인 정의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의 거친 정의는 때로는 불안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과 맞서 싸우려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도철은 결국 제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투박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감정] 해치의 정의
해치(정해인)는 서도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그는 경찰이지만, 그가 경찰로서의 공권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복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해치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직접 처단한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 그는 범죄자들을 법에 맡기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런 모습은 서도철의 방식과 대조적이며, 해치의 정의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러나 해치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복수를 실천하며, 그 자신 또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다.
해치가 처단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사회에서 적은 처벌을 받고 풀려난 자들이다. 해치는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전에 그들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관객들은 해치가 처단하는 장면을 보며 그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해치가 대신해주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해치의 처단은 우리가 실제로 법적 제재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범죄자들에게 통쾌한 대리 복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치의 행동은 때로는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정의는 많은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해치의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 그의 방식은 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사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해치의 정의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선다. 그는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범죄자들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함으로써 자신이 피해자를 대신해 그들에게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그의 처단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정의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해치의 정의는 법적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의 잔인한 복수는 우리가 바라는 정의와 어긋나지 않지만, 그 방법론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관객들이 느끼는 정의
<베테랑2>는 관객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정의의 방식을 제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정의가 더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서도철은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는 인물이고, 해치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해치의 복수가 더 통쾌하고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나 약한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 범죄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해치의 처단은 일종의 대리 만족을 제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서도철의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치의 복수는 사법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방식이지만, 그가 처단하는 범죄자들도 결국 법적으로는 처벌을 받았다. 해치는 그 처벌이 약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판사이자 집행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이는 사법 체계의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치가 지속적으로 범죄자를 처단할수록, 그가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정의 역시 범죄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관객들은 해치의 처단이 통쾌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한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서도철의 정의가 옳다는 결론을 내린다. 서도철은 때로는 법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고 노력한다. 해치가 기괴한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동안, 서도철은 그 시스템을 지키며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 영화는 관객들이 해치의 처단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기울게 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도철의 정의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사법 시스템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 문제와 출소 이후의 사회적 반응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진다. 이는 1편에서 권력자와의 대결을 주제로 삼았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2편은 더욱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범죄자들의 처벌과 형량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다양한 정의의 형태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이전 작품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서도철과 해치의 대립을 통해 사법 시스템 내에서의 정의와 사적 복수 사이의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황정민은 서도철이라는 인물을 거칠지만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정의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표현해낸다. 반면 정해인은 해치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와 정의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차갑고 날카롭게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실현하려는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력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들이 이들의 정의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베테랑2>는 단순히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빌런을 점점 더 강력하게 그려내는 것과는 다르게, <베테랑> 시리즈는 보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며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976nBHtE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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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최초의 여성감독, 사라 고메스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 칼럼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이 없어 언급이 잘 안돼는 감독이나 한국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감독을 다시 주목해보자는 취지로 적는 칼럼입니다.
본 칼럼 시리즈를 통해,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들에 대해 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사라 고메스 감독의 이름은 한국에서 비교적 생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주류 영화계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쿠바 영화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영화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비교적 다른 대륙에 비해 소개가 덜 되고 특히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소개되는 경우는 영화제에서도 드문 것이 사실이니.
그 뿐만이 아니라, 사라 고메스 감독은 장편이 딱 한편 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
바로 급진적이며 혁신적인 다큐멘터리, <어떤 방법으로> 이다.
사라 고메스 감독은 쿠바 대중 문화의 중심지인 과나바코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성차별과 인종 차별을 겪었다.
그녀의 이런 어린 시절은 이후 감독이 되어 만든 작품들에서 크게 드러난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며 여러 기사들을 투고하기도 했으며, 여러 감독들과 함께 설립한 쿠바 영화 예술 및 산업 연구소(ICAIC)를 설립하고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쿠바의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장편 영화를 위한 토대를 쌓아왔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쿠바 최초의 여성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인 <어떤 방법으로>는, 1974년 ICAIC에서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영화다.
영화는 쿠바 사회를 교사 욜란다와 공장 노동자 마리오의 로맨스와 갈등을 담음과 동시에, 단순히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교육과 아동복지, 노동자 인권으로도 담론의 폭을 넓힌다.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와 우월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지향하는 다큐멘터리로서 모범적이라 평할 수 있으며,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이 선구적인 작품이다.
1977년 개봉 후, 인종과 젠더 갈등을 탐구한 최초의 영화라는 평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사실, 이 작품은 사라 고메스 감독이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영화다.
왜냐하면 영화 제작중이던 1974년, 천식 발작으로 인해 3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후반 작업 중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ICAIC에서 함께 근무하고 작업한 다른 스태프의 마무리로 1977년에야 개봉하게 된다.
이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이후로 많은 언급이 되지 못했는데, 이후 ICAIC의 조직 개편과 여전히 존재하던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등 여러가지 이유로 그녀의 작품들이 검열되며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 영화 연구소에서도 1989년에 그녀의 영화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나서야 등재가 되었으며, 단편들은 2007년에야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어 ICAIC 아카이브에 묻혀 있던 영화들이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어떤 방법으로는 바로 작년인 2021년이 되어서야 아스날 영화 및 비디오 아트 연구소에서 리마스터링 되었다.
사라 고메스 감독은 2011년까지 ICAIC에서 장편 영화를 감독한 유일한 쿠바 여성 감독으로 남았으며, 또한 현재까지 유일하게 본 기관에 소속된 흑인 여성이다.
그녀의 이런 사회적 활동과 영화 작품들의 시선은 당시 페미니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작품은 젠더 뿐만 아니라, 노동자, 아동 복지와 같은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과 차별에 맞서 싸운 영화라 말할 수 있다.
현재 페미니즘의 주류가 급진적인 레디컬 페미니즘이고, 이러한 성향의 작품들은 대부분 특정 계층의 혐오와 우월을 내세운다는 비판점이 많다는 점에서 1970년대에 이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은 정말 시대를 앞서갔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영화가 비록 영화사의 변방에 존재하는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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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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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더 큰 도시로 거처를 옮겨다녔다. 서울에는 고향을 떠나 온 수많은 '레이디 버드'들이 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난 이유는 아마도 소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이고,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고향에 갔을 때 느끼는 갑갑함 때문일 테다.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지만 아마 다시 귀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도시 사람들은 건너건너 다 아는 사이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야자를 째고 놀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우리 엄마한테 일러바쳤다는 걸 나는 몇 년 전에 알았다. 그러니까, 딴짓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지 않으면 너무 튀어서 온 동네에 소문이 쫙 퍼진다는 거다.
아마 내가 고향에 있었으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게 뻔하다.
"그집 딸은 대학 나왔으면서 취직도 안 하고 시집도 안 가고 어쩌고 저쩌고."
그렇기에 수많은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몰린다. 그 돈이면 고향에 집을 살(이제는 아니지만) 만큼의 돈을 내고 콩만한 방에서 해로운 음식을 먹으며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떠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따금은 가정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택하는 여자 아이들도 있다. 내 가까운 친척도 그리하였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 아이의 삶이 너무 아깝고 아쉬웠는데, 그 생각 또한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의 아버지의 말처럼,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떠난다. 더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내 고향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 엄마, 이모, 고모, 숙모, 옆집 아주머니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 존재들은 외로움에 직면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휘몰아치는 존재의 고독을 고작 이십대 초중반의 우리가 어찌 견뎌내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몇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장 쉽고 빠른 돌파구가 연애가 되겠으며 나와 몇몇 사람들처럼 술을 비롯한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한편으로는 연애도 중독이라 볼 수 있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애에 중독된 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옆에 누가 없으면 못살겠어서, 혼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못난 나를 바라보는 게 불편해서. 아주 쉽게 자존감을 채워주는 사람, 응당 나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같이 있어 주는 사람을 찾아 온 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나는 그쪽보다는 감정과 생각을 마비시키는 편이 더 좋았으므로 술을 선택했겠지만 그것 역시 연애중독자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못난 나를 바라보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 역시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미국 브루클린으로 돈을 벌러 떠난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에일리스는 언니 로즈가 아는 신부님의 도움으로 미국에 간다. 아일랜드에서는 소매점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할 자리밖에 없다. 하지만 때는 1950년대, 기회의 땅 미국에는 일자리가 차고 넘친다.
에일리스를 태운 배는 몹시 흔들릴 예정이지만, 에일리스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본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로 혼자서 저녁식사를 한다. 결과적으로는 속에 든 걸 다 게워내고 배에 탄 그 누구보다 심하게 멀미를 한다. 그때, 에일리스와 같은 호실을 쓰는 여자는 에일리스를 돌봐주고, 미국에 입국할 때의 자세를 알려주고, 옷차림을 고쳐준다.
에일리스는 아일랜드 여자들이 모여 사는 하숙집에서 살면서 미국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에일리스는 낯가림이 무척 심한데, 별안간 친절하고 다정한 점원이 된다. 이탈리아 출신 남자 토니와 연애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자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에일리스를 가족에게 소개시키고 싶어 하고, 가족을 소개하자 마자 결혼하고 싶어하고, 롱아일랜드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같이 살고 싶어 한다. 공교롭게도 롱아일랜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다.
에일리스는 백화점 점원보다는 언니 로즈처럼 회계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낮에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며 경리 자격증을 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때, 언니 로즈가 갑자기 죽는다. 영화에서는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하지만, 글쎄, 언니가 스스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한 집안의 장녀가 살아온 삶을 상상해보자. 열심히 돈 벌어서, 둘째 에일리스에게는 결혼하라고 여기저기 남자들과 연결하고 일부러 자리 만드는 동안 로즈의 애인에 대한 소식인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드림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보내고, 자기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삶.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여러모로 아일랜드와 한국은 비슷한 궤를 가졌다. 섬나라의 식민지로 수탈을 당한 것도 그렇고, 독립 후 경제성장도 그렇고,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민성도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아일랜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K-장녀로서 I-장녀를 이해하는 게 어려울 것도 없다.
아무튼, 언니가 죽고 에일리스는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오는데, 아일랜드로 간다고 하니 토니가 자기랑 결혼을 하고 가란다. 혼인신고까지 마치고 가라는데, 에일리스는 또 그렇게 하겠단다.
아일랜드에 갔더니 가장 친한 친구가 남자 하나를 붙여준다. 부잣집 아들에다 외모도 미국 토니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서 에일리스는 고민하는 눈치다. 게다가 언니의 후임으로 회계 일을 할 자리도 얻었다.
여기서, 예의 아르바이트하던 소매점 주인이 어디에서 건너건너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녀가 미국에서 이탈리아계 성을 가진 남자랑 혼인신고 했다는 걸 안다고 약간의 협박을 한다. 그렇다. 그것이 작은 마을의 특징이다. 건너건너 건너면 바다 건너 소식까지 다 아는 것이다.
잠시 고향의 안락함에 젖었던 에일리스는 당장 짐을 싸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에일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뉴욕으로 가는 배에는 갓 미국행 배를 타고 설레하는 어린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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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스가 토니와 사랑에 빠진 것이 과연 진짜 사랑이었을까. 에일리스는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토니를 만난 것도 겨우 몇 번에 불과하다.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와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해진 것. 토니 역시 에일리스를 정말 사랑한다면 아일랜드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굳이 혼인신고까지 해서 여자를 밧줄에 묶어둔 채로 보내준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전근대적이다.
그러나 에일리스가 아일랜드 남자와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되면 에일리스의 삶은 어머니의, 할머니의, 옆집 아줌마의 삶과 똑같아진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아가는 것. 에일리스는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에일리스는 자신만의 삶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나의 친구들, 친분은 없지만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자기만의 삶을 위해 집을 떠났다. 안락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고향을 두고 머나먼 타지로 올라와 서러운 삶을 견딘다. 우리의 서러움은 반드시 외로움을 동반한다. 분명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지만, 사랑으로 구원받으려고 하지 말자. 정확히는 사랑도 아니면서 사랑인 척하는 것들을 경계하자.
끝내 에일리스가 토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뉴욕을 활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영화 너머에 시골에서 뉴욕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이가 꿈을 이루면서 멋지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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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4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3월 4주 개봉영화!
뜨거운피 Hot Blooded , 2020
정우와 느와르의 만남!
영화 "뜨거운 피"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입니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건달들의 표적이 된 부산의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다룬 스토리인데요
정우를 비롯해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등 인생 캐릭터로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를 기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 "뜨거운 피"는 베스트셀러 작가 천명관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한국형 스릴러의 대가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이 갖고 있는 강렬한 스토리와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에 천명관 감독의 섬세한 표현력과 특유의 통찰이 더해져
근래 본 적 없는 웰메이드 작품을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2022년 가장 치열한 액션 느와르!
첫번째 추천영화 "뜨거운피" 입니다.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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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밍 러브 Redeeming Love , 2022
로맨스 소설의 대가 프랜신 리버스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 "리디밍 러브"는 로맨스 소설의 대가 프랜신 리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15년간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라 3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돼 화제가 됐었죠
프랜신 리버스는 미국 최고 로맨스 소설 작가에게 수여 되는 리타상 3회 연속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번 영화에 직접 각본 작업에 참여한 것은 물론 캐스팅 과정까지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1850년대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를 배경으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엔젤이 한 남자를 만나며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는 완성형 감성 로맨스 영화!
두번째 추천영화 "리디밍러브" 입니다.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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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 Eiffel , 2021
타이타닉, 노트북, 이프 온리, 이터널 션샤인을 이을 또 한편의 영화
영화 "에펠"은 전세계가 몰랐던 에펠의 또 다른 이야기로 천재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운명적인 사랑과 에펠탑의 완성을 그린 멜로 드라마 입니다.
첫사랑이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서로에게 전부가 되어버린 두 사람 그리고 애절함까지,
자유의 여신상, 에펠다리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을 설계한 실제 인물, 구스타브 에펠의 사랑이야기!
'무드 인디고', '사랑은 타이핑 중!'의 로망 뒤리스와 '나일강의 죽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에마 매키가 세기의 멜로 로맨스 펼치는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가슴 아픈 로맨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에펠탑이 완공된 1889년 당시의 프랑스 사회, 파리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세번째 추천영화 "에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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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리차드 King Richard , 2022
세계 최강 테니스 제왕 윌리엄스 자매 실화
영화 '킹 리차드'는 무려 20여년간 세계 최강의 테니스 제왕으로 군림한 비너스,
세레나 월리엄스 자매와 딸들을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그리고 기꺼이 한 팀이 되어준 가족들의 감동적인 여정을 그린 실화 가족 드라마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를 비롯해 윌리엄스 가족들이 제작에 참여해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며 완성도를 높였는데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 78페이지 가량의 챔피언 육성계획을 짠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백인 스포츠로 불렸던 테니스 를 빈민가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이야기
네번째 추천영화 "킹리차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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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 Belfast , 2021
전 세계가 응답한 가장 사랑스러운 가족 영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벨파스트"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집 앞 골목과 짝사랑하는 소녀,
사랑하는 가족이 전부였던 소년과 사랑스런 가족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 위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고, 마침내 삶의 일부이자 하나였던 벨파스트를 떠나야 할 것인지
그 기로에 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사랑과 유대, 그리고 시대의 낭만과 변화의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습니다.
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음향상까지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주목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75회 영국 아카데미에서 영국 작품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2022년 가장 사랑스런 영화의 탄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담긴 가족영화!
다섯번째 추천영화 "벨파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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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한 번 살고 한 번 죽지
SYNOPSIS.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POINT.
✔️ 파독 간호사 다시 말해 이민자, 노년의 퀴어 커플.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들의 이야기 자체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 많은 이야기가 사랑이 가장 화려하게 무르익는 시절을 주목하는 세상에서, 이미 무르익고 단단해져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일상 톤으로 담은 이야기는 늘 귀합니다.
✔️ 짧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더 깊은 사랑과 더 넓은 돌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반박지은 감독이 처음 두 사람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손을 단단히 맞잡은 사진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한때 파독 간호사라는 사회적 호칭으로 묶여 불리며 독일에 당도했고, 지금까지도 베를린에 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사자들에게 처음인 오늘을 살뜰히 함께 보내고 있다.
모든 삶은 일면적이지 않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존재하는 나, 교실에서 학생으로 있는 나, 직장에서도 상사와 있는 나와 후배와 있는 나는 각각 다르다. 다른 역할, 다른 위치의 면면에서 '소수자성'이라는 말도 이따금 교차한다. 어떤 순간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면서 불편을 경험하지만, 또 어떤 순간 이성애자여서 사회에서 '정상성'으로 규정되어 아무 불편을 못 느끼고 넘어가는 순간도 있다.
이민자, 노인, 퀴어. 사회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고 이따금 논리 없는 혐오의 말조차 쏟아지는 단어들이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을 이 정체성 안에서 규정하기보다 그냥 "두 사람"인 인선과 수현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 물론 두 사람의 삶에 이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범주화되는 단어가 아닌, 개인의 삶을 가장 앞에 그려내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인지되는 것은 두 사람의 일상 노동이다. 한 명이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옷을 다리고 있다. 병에 살뜰히 담긴 피클과, 베를린에서도 콩나물을 준비해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 둘 중 한 명이 더 강단 있는 성격이라는 점은 이내 드러나지만, 그런 성격의 차이가 노동의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내 식사를 준비하고 전등을 고쳐 달고 깃발을 수선하며 두 사람은 일상을 일상답게 만든다.
두 사람의 살뜰한 손길은 자신들의 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은퇴한 간호사의 지식과 실력을 십분 살려 이웃집 노인을 방문해 그의 상처를 돌본다.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지하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살피고 돕는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계속해서 돌봄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는 두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깃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수고를 당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일일이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한다. 내 마음 같지 않아 서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의견 차이가 있고, 나는 같이 하고 싶은데 상대는 아닐 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귀엽게 표현할 뿐 상대와 끝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쿨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두 사람의 삶을 보며, 성숙한 관계의 일면을 어깨 너머 배운다.
두 사람은 나가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같이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장을 봐서 들어와야겠다며 따로 걷기도 하고, 교회에 따로 가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집 노인을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더없이 일상적인 이러한 순간들이 영화에서 올망졸망 예쁘게 맺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영제이기도 한 unrehearsed life, 누구도 연습이 없이 단 한 번 사는 것임을 두 사람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적당히 굴리는 게 아니라, 유일한 하루하루를 알뜰살뜰 채우며 살아가는 것. 그럴 때 일상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온기를 품는다. 보라색 부분이 뜯어진 무지개 깃발을 수선하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엮어 빈 자리를 메운 세심한 마음처럼. 일상은 이러한 모양이어야 할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 삶은 하루하루 계속되고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 안에는 모두에게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만 있지 않다. 유럽이고 독일이니까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는 편안하려니 싶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하는 가족이 있고, 손을 잡고 걷는다는 가벼운 행위조차 혹시라도 유별나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던 시간이 있다.
아마 영화에 비추어지지 않은,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스피스 리더가 될 만큼 타향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인선 씨가 어떤 시간을 보내 왔는지. 두 사람은 교회 신도 모임에서 만났고 지금도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 많은 번민이 있었음이 암시되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 왔는지. 영화가 주목하지 않기로 결정한 뒷단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더 들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일상을 주목하기로 했다 해도, 두 사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켜켜이 쌓여야 하는데, 중간중간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 관객에게는 듬성듬성 전달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예컨대 두 사람 다 파독 간호사인 것도 자료에서 읽은 것이지, 영화만 보면 앞부분에서는 둘 중 한 사람은 파독 간호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남편을 잘 만나 공부만 하던 사람처럼 오독되기 쉽다. 두 사람이 어디 갈 때 왜 가는지도 모르고 시선으로 따라가는 장면들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산뜻했던 것은, "아픈 데 약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는 이러한 날들을 찬찬히 보여주는 기획 의도가 선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장과 희화화 없이 동성애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 숭늉처럼 깊고 산뜻한 이야기는 얼마나 속을 따뜻하게 하는가. 더 많고 다양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 세상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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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만에 엄마의 첫사랑에게서 편지가 왔다
요즘 날씨를 보면 곧 봄이 올 것 같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올 겨울의 끝에 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를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모’의 임 대형 감독이 한국과 일본 오타루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윤희에게’입니다
영화 ‘윤희에게’에서 윤희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
이야기는 윤희(김희애 분)의 집으로 온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이 편지는 윤희의 딸 새봄(김소혜 분) 이 먼저 발견 하 죠.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라고 시작되는 이 편지에 새봄은 별안간 엄마가 궁금해졌습니다. 사진관을 하는 삼촌과 이제는 이혼해 따로 사는 아빠에게 차례차례 엄마에 관해 묻죠. 엄마와의 이혼 사유를 묻는 딸에게 아빠는 “너희 엄마는 사람을 참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라고 알 수 없는 대답을 합니다.
한편 윤희는 사내 식당에서 일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견디며 사는 듯 삶에 지쳐버린 중년 여성인데요. 그런 자신에게 날아든 편지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졌죠. 직장 상사에게 밀린 휴가 좀 쓰겠다며 넌지시 묻었지만 책임감 운운하며 못 기다려준다는 말에 그만둬 버립니다.
극 중 윤희의 딸로 등장하는 새봄 역의 김소혜 배우(왼쪽)와 새봄의 남자친구 경수 역의 성유빈 배우(오른쪽).
윤희는 딸 새봄과 함께 일본 오타루로 향합니다. 이는 편지를 먼저 읽어본 새봄의 계획된 여행이었는데요. 남자친구 경수(성유빈 분)를 대동하고 엄마 몰래 개인 미션을 수행합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쥰(나카무라 유코 분)을 찾기로 하죠. 편지에 적힌 주소대로 찾아간 새봄은 경수의 도움으로 쥰의 고모 마사코(키노 하나 분)가 하는 카페까지 알아내는데요. 새봄은 마사코에게 쥰을 직접 만나보겠다는 의사를 전
다음날 카페에서 쥰을 만난 새봄은 그녀에게 같이 저녁 먹자는 제안을 하는데요. 동시에 엄마에게도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죠. 오작교가 된 새봄 덕에 만나게 된 윤희와 쥰.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던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새봄이의 계략으로 20년 만에 만나게 된 쥰(나카무라 유코 분)과 윤희.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윤희 역의 김희애 배우는 감독이 이 영화 대본을 쓸 때부터 생각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엄마 이야기보다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윤희만의 개성과 취향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김희애 배우가 표현한 윤희는 윤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 윤희의 삶이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면 쥰을 만나고 온 뒤 달라진 그녀의 상반된 모습을 잘 담아냈습니다.
아이돌 그룹 IOI 출신인 새봄 역의 김소혜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시니컬 하면서도 통통 튀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잘 살렸습니다. 영화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서 사실 그녀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으면 그냥 연기 잘하는 신인 배우가 나타났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윤희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쥰 역의 배우 나카무라 유코
좋았던 장면은 너무 많아서 그냥 이 영화 전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중에서도 윤희와 새봄이 노천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싸움을 하는 장면. 윤희가 새봄에게 불을 빌려달라 하고 새봄은 윤희에게 담배 한 개만 달라는 장면 등 엄마와 딸의 케미가 돋보인 소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힐링 포인트라 한다면 사람 키만큼 쌓인 눈 사이를 걷는 소리나 눈의 도시라 불리는 오타루 곳곳을 화면을 통해 둘러보는 것도 대신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랜 시간 동안 꺼내볼 수 없었던 윤희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 화를 추 천해 드 립니다.
추신. 이 영화를 볼 예정이시라면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실내온도를 약간 서늘하게 맞춰주세요.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무릎 담요와 함께 플레이 버튼을 누르신다면 최상의 상태로 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수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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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폭력의 낭만화, 낭만의 폭력화, 예쁜 영화는 아니야
예쁜 영화는 아니야 (Not a Pretty Picture,1976)
이 작품은 마샤 쿨리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간 기록이자 ‘강간’이라는 폭력이 어째서 문화가 되었는지에 공론을 시도한 작품이다. 2022년 복원되어,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샤 쿨리지 감독은 미국에서 영상 창작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이다. 72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감독 조합에서 최초의 여성 조합장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미국에서 ‘여성 창자가’로서의 위치를 계속 지킨 선배인 것이다.
영화의 계기는 시작과 동시에 바로 밝혀진다. 쿨리지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재현하여, 이를 통해 당시의 감정과 이유를 찾아보고, 이 경험을 나눔으로써 ‘강간 문화’를 공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강간’에 관한 ‘피해자-가해자’의 구조를 분해하고, 피해자의 수치심에 이의를 제기한다. 또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오류를 짚어내며 (당시) 현대의 뒤틀어진 성문화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고발하는 모습을 띄기도 한다. 이는 기존에 갖고 있던 사고의 흐름과 다른 방식의 해석을 제시한다. 더불어 만티 배우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쿨리지 감독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여 객관성을 찾고, 내가 갖고 있던 주관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시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한계가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트라우마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힘이 어느 정도 부축될 수 있어야 실현 가능한 급진적인 치료법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실제로 재현(연극)을 통하여 나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 전에 다른 사례를 보면서 미리 괴로움의 타격감을 낮춰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재현의 방식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므로, 우리는 이런 방안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른 시선의 해석을 고려해 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구조가 독특한데, 쿨리지 감독의 실제 있었던 강간의 경험과 미셸 만티 배우의 경험도 포함하여 이루어진 ‘믹스-다큐멘터리’이다. 픽션이기도 하면서 논픽션이며, 다큐멘터리이면서도 극이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다큐멘터리에서 ‘극(재현)’과 ‘내레이션’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 ‘극’에 해당되는 장면은 예시로서 등장하고, 이후 내레이션이 설명과 전개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재현’을 극의 밖으로 꺼내온다. 허구성을 최대한 덜어내고, 객관성을 살리고자 하는 방식이지 않았나 싶다. 제4의 벽이 눈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극에 관한 이입에 방지턱을 넣어주는 역할이 되어준다.
‘강간’이라는 주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낯설고, 피해자에게 부당한 감정을 당연시되는 고질적인 폭력 중 하나다. 그래서 그런 만큼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서 쉽게 가해자를 동조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구조에 응할 수 있다. 가해자의 폭력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피해자의 수치심은 반비례하게 된다. 여전히 사건의 연장선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인 부당한 폭력인 ‘강간’에 관하여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재현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라는 장치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쿨리지 감독은 극과 다큐멘터리의 틀을 깨트리고, 간섭하고, 혼합하여 새로운 구조를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통일되지 않는 비 완성성이 안정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래서 내게 구조적으로도 참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수록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여 순응 대신 어떻게든 반기를 들겠다는 강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이런 강렬한 도전은 파격적인 형태로 비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강력히 파고들어가 인식해 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된 계기는 요 근래 내가 ‘섹스-강간’에 관한 주제에 관심 많았고, 이에 걸맞은 영화라 안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낭만, 설렘이라는 낭만, 성(SEX)라는 낭만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낭만이 폭력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폭력’이라 인지하기가 어렵다. 언뜻 ‘낭만’이란 포장지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아예 사건을 파악할 수 없도록 교란시킨다. 우리가 사랑하던 낭만이 어째서 폭력이 되는 걸까. 이는 ‘성(SEX)’의 문화가 치밀하게 권력구조를 계속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극중 강간의 장면을 재현하면서 가해자를 맡은 배우와 피해자를 맡은 배우 그리고 그 사건의 당사자인 쿨리지 감독은 중간중간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각자의 의견에 반응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남성에게는 ‘강간’이란 심각하게 다가와서는 안 되는 성취이자 달성 목표이고, 여성에게 ‘강간’이란 남성의 성취욕을 방해한 치욕의 대가로 작용한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악습인데, 여성과 남성이란 성별 이분법의 권력구조가 ‘강간 문화’를 용인해 줬다. 이 문화를 통해 사건의 제공자는 분명하게 남성이지만, 여성이 자초한 일로 해프닝으로 정리되고, 걸맞지 않은 고통을 부여받는다. 이는 피해자인 여성에게 수치심이라는 잘못된 감정을 심어주고, 불쾌감이라는 권리를 놓쳐 버리게 된다. 이렇게 낙인은 계속 유지되고, ‘강간 문화’는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비키지 않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 쿨리지 감독은 ‘직시하기’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오류를 파악하고, 놓쳐버린 권리를 깨닫는다. 우리가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권리, 우리가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낭만을 즐길 권리를. 남성은 가해자지만 동시에 그들도 받은 피해가 있다. 그들은 사회가 부여한 가부장에 ‘폭력’이란 잘못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해, 이내 저지르게 한다. 폭력을 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늘 ‘성범죄’와 관련하여 끝마무리를 할 땐, ‘성교육’을 빼놓기가 어렵다. 만약에 남성들이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여성들은 폭력 이후의 거듭되는 폭력에 벗어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사회는 피해자에게 범죄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예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전에 가해자가 가해를 저지르지 않게 알리는 것이 피해를 줄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낭만이란 허울에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폭력의 재생산을 방지한다. 폭력이란 피해를 대처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예방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부디 폭력의 발생부터 짚어지길 바란다.
영화를 보면서 ‘피해자’의 생각뿐 아니라 ‘가해자’의 생각도 함께 듣게 됨으로 전체적인 틀을 바라보고, 더 큰 시야에서의 불합당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공론을 시도한 쿨리지 감독의 용기와 도전에 인상이 참 크다. 미시적인 출발이 거대한 가시성을 이뤄냈다. 개인에서 사회 전체로까지 생각을 폭을 넓힐 수 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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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메인 예고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꿈의 프로젝트,
그 시작에는 두 천재가 있었다!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의할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부임한 이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멜 깁슨). 그는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로부터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전국에서 편지가 빗발치던 어느 날, 머리는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 예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숀 펜),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엔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윌리엄이 정신병원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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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쿠라우> 30초 예고편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