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2-15 21:05:40
우리는 모두 한 번 살고 한 번 죽지
영화 <두 사람> 리뷰
SYNOPSIS.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POINT.
✔️ 파독 간호사 다시 말해 이민자, 노년의 퀴어 커플.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들의 이야기 자체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 많은 이야기가 사랑이 가장 화려하게 무르익는 시절을 주목하는 세상에서, 이미 무르익고 단단해져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일상 톤으로 담은 이야기는 늘 귀합니다.
✔️ 짧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더 깊은 사랑과 더 넓은 돌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반박지은 감독이 처음 두 사람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손을 단단히 맞잡은 사진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한때 파독 간호사라는 사회적 호칭으로 묶여 불리며 독일에 당도했고, 지금까지도 베를린에 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사자들에게 처음인 오늘을 살뜰히 함께 보내고 있다.
모든 삶은 일면적이지 않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존재하는 나, 교실에서 학생으로 있는 나, 직장에서도 상사와 있는 나와 후배와 있는 나는 각각 다르다. 다른 역할, 다른 위치의 면면에서 '소수자성'이라는 말도 이따금 교차한다. 어떤 순간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면서 불편을 경험하지만, 또 어떤 순간 이성애자여서 사회에서 '정상성'으로 규정되어 아무 불편을 못 느끼고 넘어가는 순간도 있다.
이민자, 노인, 퀴어. 사회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고 이따금 논리 없는 혐오의 말조차 쏟아지는 단어들이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을 이 정체성 안에서 규정하기보다 그냥 "두 사람"인 인선과 수현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 물론 두 사람의 삶에 이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범주화되는 단어가 아닌, 개인의 삶을 가장 앞에 그려내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인지되는 것은 두 사람의 일상 노동이다. 한 명이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옷을 다리고 있다. 병에 살뜰히 담긴 피클과, 베를린에서도 콩나물을 준비해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 둘 중 한 명이 더 강단 있는 성격이라는 점은 이내 드러나지만, 그런 성격의 차이가 노동의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내 식사를 준비하고 전등을 고쳐 달고 깃발을 수선하며 두 사람은 일상을 일상답게 만든다.
두 사람의 살뜰한 손길은 자신들의 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은퇴한 간호사의 지식과 실력을 십분 살려 이웃집 노인을 방문해 그의 상처를 돌본다.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지하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살피고 돕는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계속해서 돌봄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는 두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깃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수고를 당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일일이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한다. 내 마음 같지 않아 서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의견 차이가 있고, 나는 같이 하고 싶은데 상대는 아닐 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귀엽게 표현할 뿐 상대와 끝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쿨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두 사람의 삶을 보며, 성숙한 관계의 일면을 어깨 너머 배운다.
두 사람은 나가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같이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장을 봐서 들어와야겠다며 따로 걷기도 하고, 교회에 따로 가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집 노인을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더없이 일상적인 이러한 순간들이 영화에서 올망졸망 예쁘게 맺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영제이기도 한 unrehearsed life, 누구도 연습이 없이 단 한 번 사는 것임을 두 사람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적당히 굴리는 게 아니라, 유일한 하루하루를 알뜰살뜰 채우며 살아가는 것. 그럴 때 일상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온기를 품는다. 보라색 부분이 뜯어진 무지개 깃발을 수선하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엮어 빈 자리를 메운 세심한 마음처럼. 일상은 이러한 모양이어야 할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 삶은 하루하루 계속되고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 안에는 모두에게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만 있지 않다. 유럽이고 독일이니까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는 편안하려니 싶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하는 가족이 있고, 손을 잡고 걷는다는 가벼운 행위조차 혹시라도 유별나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던 시간이 있다.
아마 영화에 비추어지지 않은,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스피스 리더가 될 만큼 타향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인선 씨가 어떤 시간을 보내 왔는지. 두 사람은 교회 신도 모임에서 만났고 지금도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 많은 번민이 있었음이 암시되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 왔는지. 영화가 주목하지 않기로 결정한 뒷단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더 들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일상을 주목하기로 했다 해도, 두 사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켜켜이 쌓여야 하는데, 중간중간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 관객에게는 듬성듬성 전달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예컨대 두 사람 다 파독 간호사인 것도 자료에서 읽은 것이지, 영화만 보면 앞부분에서는 둘 중 한 사람은 파독 간호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남편을 잘 만나 공부만 하던 사람처럼 오독되기 쉽다. 두 사람이 어디 갈 때 왜 가는지도 모르고 시선으로 따라가는 장면들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산뜻했던 것은, "아픈 데 약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는 이러한 날들을 찬찬히 보여주는 기획 의도가 선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장과 희화화 없이 동성애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 숭늉처럼 깊고 산뜻한 이야기는 얼마나 속을 따뜻하게 하는가. 더 많고 다양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 세상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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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 셋째 주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2022년 1월 셋째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선정하는 콘텐츠입니다.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되고있는 <미션 임파서블1>과
좀비영화의 레전드 작품인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새벽의 저주>
그리고 디즈니플러스에서 서비스 중인 <토이스토리 3>입니다.
그럼 씨네랩이 각 작품을 선정 및 추천하는 이유와
간단한 작품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시네마작을 시청하면서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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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미션 임파서블>
영화 - 액션ㅣ110분
- 콘텐츠 소개 : 지난 2년간 IMF에서 기획 수행하는 작전들의 실패확률이 높아졌다.
IMF 지휘부는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덫을 놓는다.
CIA 해외비밀요원 NOC리스트를 미끼로 하고 의심스러운 요원들로 가짜작전을 수행할 미션임파서블팀을 꾸린다.
이단 헌트는 미션임파서블팀의 팀장으로 임명되고 팀은 미션 수행 중 함정에 빠져 모두 다 죽게 된다.
생존자 이단 헌트는 미션이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되지만 동시에 스파이로 지목당하고 쫓기게 된다.
- 선정 및 추천 이유 : 스파이 영화에서 <007>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레전드 작품입니다.
<007> 시리즈는 세월을 오래한만큼 007역할의 배우도 여러번 바뀌었는데요.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는 우리의 톰 아저씨, 톰 크루즈 배우가 굳건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스턴트 장면을 대역없이 직접 소화하는 걸로 유명한 배우 톰 크루즈.
비행기에 직접 올라타거나 엄청난 고층빌딩에서의 액션, 수중장면 등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엄청난 스케일의 고난이도 액션 장면이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천만한 장면을 대역없이 배우가 직접 연기했다고 하면? (물론 전부 다 스스로 하진 않았겠죠?)
더욱 영화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도 하고, 또 고생하고 노력한 배우에게 호감이 가기 마련이겠죠. :)
<미션 임파서블 1>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이단 헌트가 동료들과의 케미에서 엄청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감동스럽기도 하죠!
액션영화의 아드레날린을 느끼고 싶다면 다시 한번 <미션 임파서블 1> 시청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2. 넷플릭스 <새벽의 저주>
영화 - 공포ㅣ100분
- 콘텐츠 소개 : 어느날 새벽, 간호사 '안나'는 느닷없이 나타난 옆집 소녀에게 남편이 물어 뜯겨 죽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다.
슬퍼하거나 놀랄 틈도 없이 죽었던 남편은 다시 되살아나 안나를 공격하고 안나는 급히 집 밖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집밖에도 이미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세상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어디서 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산 시체 들에게 한번 물리면 그 순간 물린 사람도 좀비로 변하고,
이런 연쇄작용으로 인해 도시는 혼이 없는 시체들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안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한 쇼핑몰 안으로 피신한다.
- 선정 및 추천 이유 : 좀비영화의 바이블이라고 평가받는 작품.
지금은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단히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2004년 작의 <새벽의 저주>는 많은 영화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좀비물의 레전드 작품인데요.
영화라는 매개체는 취향에 따라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좀비/액션 영화를 좋아하시는 영화팬들은 <새벽의 저주>가 지루할 틈이 없는 긴장감과 통쾌하고 잔인한 장면도 여과없이 보여주는 액션,
그리고 스릴이 넘치는 주연배우들의 탈출과정 등을 매력 포인트로 꼽습니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지금은 영화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안나 역의 '사라 폴리'와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의 조력자인 루터 역을 연기한 '빙 라메스'의 풋풋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좀비들을 피해 은신하고 있는 쇼핑몰에서 차를 타고 탈출을 강행할때 엄청난 좀비떼들이 차로 모여 길을 막는 장면은
지금봐도 엄청난 명장면인데요!
<새벽의 저주>는 아무 생각없이 좀비/오락액션을 즐기시고 싶을 때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
3. 디즈니플러스+ <토이 스토리3>
영화 - 애니메이션 ㅣ 102분
- 콘텐츠 소개 : 모든 장난감들이 겪는 가장 슬픈일은 바로 주인이 성장해 더이상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는 것.
우디와 버즈에게도 그 위기가 찾아온다. 앤디가 대학에 진학, 집을 떠나게 된 것.
헤어짐의 불안에 떨던 토이들은 앤디 엄마의 실수로 집을 나오게 된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탁아소에 기증되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오마이갓, 어린이집 애들 장난이 아니게 난폭하고 험하다.
그리고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음모까지 숨겨져 있는 어린이집 장난감의 세계.
그러다 앤디가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토이 군단은 앤디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애 가장 큰 모험을 결심한다.
우디를 중심으로 똘똘뭉친 토이들 과연 이들의 위대한 탈출은 성공할 것인가!
- 선정 이유 : 83회 미국 아카데미 주제가상,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작.
64회 영국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작. 6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
16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 등 다수의 수상작.
<토이 스토리3>는 북미 개봉 당시 픽사 최고의 오프닝 기록을 기록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픽사가 가장 잘하는 남녀노소 모두를 공감하게 만들고, 감동을 주는 스토리 라인으로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사로잡는 재미와 감동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손에 꼽히는 작품입니다.
메인 캐릭터 '우디'와 '버즈'뿐만 아니라 장난감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다 개성있고 특색있으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장난감의 세계가 이처럼 장대하고 살아숨쉬고 찬란할 수 있을까?
특히 <토이 스토리3>의 메인 스토리 라인은 장난감들과 주인과의 이별의 순간일텐데요.
담담하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3>를 다시 한번 시청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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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만큼 노골적으로, <지옥>처럼 추접하게
윤여정 배우가 작년인가 청룡영화상에 나와서 한 말이 있다. "몇 주 전 가디언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왜 한국의 콘텐츠들이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있었다. 세계가 단지 지금 우리에게 주목할 뿐이다."라고 모두발언에서 말했다. 굉장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이 굳이 잘 나가지 않아도 나는 한국에서 좋은 콘텐츠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벌새>나 <꿈의 제인> 같은 영화들, 되게 한국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벌새>는 작품 자체만 보면 한국인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기억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봐도 충분히 짠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인 셈이다.
이렇게 <벌새>와 같이 우리는 충분히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찍어내고 있다. 작년 국내 여론으로는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던 <DP>가 있고, 김다미-최우식 배우의 좋은 케미를 볼 수 있는 <그 해 우리는>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나의 아저씨>나 <비밀의 숲>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한국의 시청자들은 사실 눈이 높은 게 맞다. 이렇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해 OTT가 발달하고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 세태에 K-아포칼립스 드라마물이 하나 등장했다. <부산행>의 좀비, <오징어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 <지옥>의 디스토피아 묘사까지 한국형 스릴러물의 좋은 본보기가 나온 셈이다. 5일 걸쳐있는 설 연휴기간, 넷플릭스로 달려가 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드라마인가요?
1화 도입부에 한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울며불며 사정하지만 가해자들에게 그딴 건 없다. 몇 번 몸싸움을 벌이다 피해자 학생이 옥상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한 3층 정도 되는 높이에 부딪힐 때 간판에 맞고 떨어졌기 때문에 최소 중상이다. 피해 학생은 병원으로 실려간다. 아버지와 대면한 피해자. 아버지는 피해 학생에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지만 아들은 상처가 깊은 듯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상처에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한다. 마치 과학자가 테스트용 실험쥐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극이 시작된다.
드라마는 빠르게 한국사회를 훑는다. 학교폭력. 유튜브에 의해 뽑히는 자극적인 썸네일. 왕따. 미투 운동. 전염병이 창궐하고 나서의 한국사회. 현재 한국의 징병제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 많은 순간을 지나쳐왔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부조리까지. 뭐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대한민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한국 드라마들이 세태를 공격했던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시스템에 대한 비유를 극으로 제시한 부분이나 쉽게 타인을 혐오하는 <지옥>에서의 새 진리교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좀비라는 장르적인 소재도 위화감 없이 잘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1화의 첫 줄에서 썼듯 학교폭력이라는 소재가 영화의 중심축을 이끈다. 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였다는 점이 어떤 연출 의도를 담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또 극을 보다 보면 왕따 피해자-가해자-그 외의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극을 보다 보면 감독이 필연적으로 약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해 어떤 조소를 건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차가운 냉소를 보면 이들에게 우리가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코로나19가 창궐한 세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헬스장을 갈 때 시간제한이라는 게 생겼다. 원래 나는 모든 일과를 끝마치고 외로운 몸을 침대에 누워 1시간은 쉬었다가 운동하러 간다. 그런데, 9시까지 가는 통금 제한이 생겨 행동에 강제가 생겼다. 그러면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느냐. 헬스장에 사람이 많이 보인다. 10시~11시에 갈 때보다 작은 시간에 회원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것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쉬운 조건 아닌가? 어떤 정파에 휩쓸려서 생각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모두 안다고 여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단 매일 운동하러 가는 일개 사회복무요원인 나도 '왜 내가 적어도 8시까진 운동하러 가야 하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이건 어떤 정당이 대선에서 이기든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냥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정보를 통제하며 부조리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거라는 도구도 단순히 몇몇 정치인을 끌어내릴 수는 있었지만 이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나쁜 짓을 벌이는 것을 견제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이 모습을 '재난에 극복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극화해서 제시한다. 이게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여러 방역수칙과 전염병 대응방안이 유사하게 떨어지며 극의 몰입을 더한다.
3.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첫 번째, 조연진의 연기 퍼포먼스가 어마 무시하다. 특히 이유미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유미 배우는 현재 1994년 7월생이라고 한다. 13학번이니까 지금 29살이다. 근데 이 사람이 10대 배역을 맡았다. 솔직히 이거 티 좀 난다. 살짝 비주얼 상으로는 안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혼자만 선생님 포스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게 상쇄된다. 극의 초중반부는 이유미 배우의 카리스마로 이끌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또 다음은 윤귀남 역을 맡은 유인수 배우다. 이 역은 연기 조건이 다른 역들에 비해 많다. 좀비가 튀어나와야 하고. 액션도 해야 하고. 일진 역할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전제조건을 살기 어린 액션으로 소화한다. 또, 이 인물을 관통하는 내적인 콤플렉스가 있는데 이를 소화하는 데 있어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박미진-장하리 두 역을 맡은 배우들도 퍼포먼스가 좋았다. 특히 장하리 역을 맡은 배우는 내면의 고독함과 똑 부러져야만 하는 현실을 감내하는 그 기분과 감정이 잘 느껴졌다.
다음은 액션과 촬영이다. 사실 윤찬영 배우가 대사 하는 데 있어 좀 잔잔한 감이 있다. 굳이 고등학생이 아니더라도 감정적으로 고양될 수밖에 없는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너무 점잖다. 근데 액션 연기는 진짜 미쳤다. 중반부 액션신 롱테이크는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이 기대해도 좋다. 깔끔하게 잘 뽑혔다. 또 이수혁 역을 맡은 배우의 맨몸액션도 잘 뽑혔다. 피지컬이 되게 좋은 것으로 보이는데 팔다리가 길쭉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이 액션 하나만으로도 극의 퀄리티가 업그레이드됐다고 생각한다.
4. 난이도가 있는 드라마인가요?
일단 12부작이다. 도합 709분이 걸린다.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좀비가 나오기 때문에 잔인한 편이다. 이 외에는 극을 보는데 크게 어렵다고 느낄 부분은 없을 듯하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사실 주연진 이유미/윤귀남 배우를 제외하면 학생들의 연기가 어색하다. 특히 윤찬영-박지후 두 배우는 뭔가 감정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낀 부분인 것 같다. 둘이 처하고 있는 상황에 비해 너무 나긋나긋한 느낌? 근데 크게 막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박지후 배우 좋아하는데 욕 안 먹었으면 좋겠다.6.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일단 이 드라마에 질병관리청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감독이 현 한국사회에 대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어떤 인물이 소외되었는가? 와 그 소외된 인물이 어떤 선택지를 고르며 어느 위치에 있는가? 도 중요하다. 또 학교 구성원 중 누가 제일 먼저 좀비가 되었는지도 확인한다면 극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당연히 설 연휴 코시국에 나가기엔 심심한 분들이 아닐까? 킬링타임 용으로 딱 좋다!
난 이거 국제적으로 꽤 히트칠 것 같다!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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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웡카 | 초콜릿은 본디 달콤하고, 씁쓸하고, 따뜻한 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술사이자 초콜릿 메이커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가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꿈은 백화점 안에 웡카 초콜릿 가게를 열고, 홀로 연구한 세계 최고의 초콜릿을 선보이는 것.
하지만 의식주는 물론 인맥도 없는 웡카는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그는 온갖 진귀한 재료를 배합해 만든 특별한 초콜릿으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한다. '슬러그워스'(패터슨 조지프)를 필두로 한 초콜릿 카르텔 삼인방과 카르텔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서장'(키건 마이클 키)이 그를 방해하기 때문.
심지어 여인숙 주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맨)과 ‘블리처’(톰 데이비스)의 농간에 놀아난 나머지 웡카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밤마다 초콜릿을 훔치는 도둑 ‘움파룸파’(휴 그랜트)도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웡카는 같은 꿈을 지닌 소녀 '누들'(칼라 레인)과 여러 친구를 만난 후 여러 난관을 기어코 돌파해 내고, 다시 한번 초콜릿 가게를 열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몽상가 윌리 웡카를 노래하다
윌리 웡카. 범인은 이해 못 할 괴짜, 천재 발명가, 수완 좋은 사업가. 그는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세계 최고 초콜릿 공장의 주인으로, 누구나 한 번쯤 보거나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다.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을 통해 영상화되기도 했다. 전자에서는 진 와일더의, 후자에서는 조니 뎁의 연기가 주목받았다.
그런데 그의 과거는 유명세에 비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원작 소설에서 짧게 언급될 뿐이다. '찰리'의 할아버지인 '조'에 따르면 윌리 웡카의 첫 공장은 피켈그루버, 프로드노스, 슬러그워스라는 경쟁사의 계략 때문에 망했다. 이후 몇 년간 잠적했던 그는 돌연 움파룸파 사람들을 데려와 다시 공장 문을 열였다. 이게 전부다. 그나마 팀 버튼의 작품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간략하게 등장했다.
<패딩턴> 시리즈의 폴 킹이 메가폰을 잡은 뮤지컬 영화 <웡카>는 베일에 싸인 그의 과거를 풀어낸다. 전체 줄거리는 소설 내용을 따른다. 대신 세부 상황과 캐릭터를 각색해 이전 두 영화와는 또 다른 모습의 윌리 웡카를 만들었다. 진 와일더의 웡카가 자상하면서도 섬뜩한 괴짜, 조니 뎁의 웡카가 반쯤 미친 '어른이'라면, 세 번째 웡카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몽상가에 가깝다.
밀크 초콜릿처럼 달콤한 몽상
윌리 웡카의 몽상은 두 가지다.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겠다는 야심, 그리고 어릴 때 죽은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염원. 이 둘은 별개가 아니다. 윌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선보일 때, 그의 옆에 있겠다고 엄마가 약속했기 때문. 이는 윌리가 엄마의 마지막 초콜릿을 차마 못 먹고 오래도록 간직하는 이유다. <웡카>는 두 매개체를 이용해 이 웡카의 몽상을 성공 신화로 탈바꿈한다.
첫 번째 매개체는 뮤지컬이다. 윌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몽상이 노래와 춤을 통해 화려하게 뿜어져 나온다. 윌리가 달콤 백화점에 처음 발을 디딘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 영화는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뮤지컬과 백화점 한가운데서 윌리 혼자 미친 듯이 춤추는 코미디를 교차해 보여준다. 이는 몽상에 불과한 그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처럼도 보인다.
윌리가 처음 만난 친구 누들은 자칫 불가능해 보이는 그의 꿈을 현실로 끌어당겨 준다. 누들은 스크러빗 부인 밑에서 하인처럼 길러진 고아로, 친부모와 재회하는 꿈을 꾼다. 윌리와 누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친구가 된다. 또 윌리는 누들 덕분에 초콜릿 카르텔의 방해를 피할 사업 전략을 떠올리기도 한다. 불우한 성장 환경 때문에 실용적으로 사고하는 누들이 그의 몽상에 현실감을 불어넣기 때문.
이는 <웡카>에서 현실과 몽상 사이를 넘나드는 뮤지컬 장면이 유달리 돋보이는 이유다. 그의 몽상 중 초콜릿처럼 달콤한 대목만 모은 듯하다. 윌리와 누들이 경찰을 피해 온 시내를 누비며 초콜릿을 파는 장면, 윌리와 엄마의 추억을 가득 담아낸 웡카 초콜릿 가게를 마침내 오픈하는 시퀀스처럼. 윌리와 누들이 서로의 꿈을 지키고, 함께 이루자고 다짐하며 밤하늘을 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다크 초콜릿 마냥 씁쓸한 현실
그러나 초콜릿이 항상 달콤하지는 않은 법. <웡카>가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한 순간도 적지 않다.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에 찌든 어른과 아이들이 그들을 닮아가는 세태를 풍자한 원작 소설과 맥을 같이한다. <웡카>는 윌리 웡카와 초콜릿 카르텔의 갈등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욕망과 부정부패를 비판한다.
초콜릿 카르텔은 새 초콜릿 메이커의 등장을 제도적으로 막아 독과점 시장을 유지한다. 초콜릿 판매법이 그들의 무기다. 법에 따르면 초콜릿은 가게에서만 팔 수 있다. 그 때문에 윌리는 난관에 부딪힌다. 거리에서 초콜릿을 팔지 못해 돈을 못 벌고, 돈이 없어서 가게를 못 구하고, 가게가 없으니 결국 초콜릿을 못 팔기 때문. 이는 초콜릿 카르텔이 몰래 빼돌린 초콜릿을 뇌물 삼아 경찰서장과 주교 등을 구워삶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가족 영화이기 때문인지 비판적인 메시지가 직설적이지는 않다. 악역을 동화 속 욕심 많은 빌런처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게 그 일환이다. 초콜릿 카르텔은 느끼하다고 느껴질 정도고 끈적한 노래를 부르고, 초콜릿을 뇌물로 받은 경찰서장은 자기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체중이 불어난다. 하지만 그들이 잔혹한 계략을 꾸미는 대목 등에서는 새 도전자를 쳐내는 각계의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핫초코처럼 따뜻한 프리퀄
다만 씁쓸함 덕분에 <웡카>의 끝은 핫초코처럼 따뜻하다. 관객의 마음을 녹여준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왕 윌리 웡카를 보다 보면 자연히 위로와 응원을 받을 테니까. 윌리가 만들어 준 특별한 초콜릿을 먹은 후, 가난하면 항상 질 수밖에 없다고 자조하던 누들이 한줄기 희망을 맛보듯이.
영화의 교훈에도 힘이 실린다. 엄마의 마지막 초콜릿을 마침내 먹는 순간, 윌리는 그녀의 편지를 발견한다. 남과 함께 나누는 초콜릿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이라는 내용의 유언을 읽는다. 이 메시지는 예상 못한 감동을 선사한다. 윌리가 초콜릿을 독점하려고 갖은 수를 쓰던 초콜릿 카르텔과 치열하게 싸운 후이기 때문. 그에게 엄마와 초콜릿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관객이 충분히 인지하기도 했고.
원작과의 연결고리라서 더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윌리 웡카는 찰리 버켓을 자기 후계자로 지명한다. 가난에 쪼들리는 와중에도 초콜릿을 욕심내지 않은 찰리에게서 웡카는 엄마의 유언을 발견했을 테니까. 더 나아가 곳곳에 숨은 오마주도 빛을 발한다. 웡카가 왜 하필 황금 티켓을 만들었는지, 공장에 왜 거대한 초콜릿 강이 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어떤 초콜릿이든 많이 먹으면 질린다
다만 초콜릿을 한 번에 많이 먹으면 금방 물리듯이, <웡카>도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장르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웡카>는 팀 버튼의 2005년도 영화보다는 1971년도 영화의 오마주에 가깝다. 윌리 웡카의 의상, 세트와 움파룸파 족 디자인, 주연 배우의 외형만 봐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 <웡카>는 1971년도 영화처럼 뮤지컬 판타지 영화이자 아동 겸 가족 영화로 기획됐다.
그러다 보니 위기를 거쳐 절정에 다다르는 대목은 성인 관객 기준으로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케이퍼 무비의 플롯을 차용해서 윌리와 초콜릿 카르텔의 갈등을 풀어나간다. 그런데 윌리와 누들이 초콜릿 카르텔의 비밀 사무실에 침투하고 빠져나오는 과정에 운과 우연이 자주 끼어든 나머지 극의 짜임새가 느슨해진다.
여기에 뮤지컬 시퀀스를 초중반부에 집중한 선택도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짜임새가 벌어지는 가운데, 이를 상쇄할 뮤지컬 장면도 없다 보니 빈 공간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이처럼 한 번 떨어진 극의 밀도는 휴 그랜트의 움파룸파가 등장하는 장면처럼 코믹한 연출로도 미처 채워지지 않는다. 초반 씬스틸러인 스크러빗 부인과 블리처의 등장 횟수가 줄어든 것도 한 몫한다.
Acceptable 무난함
남녀노소 모두 꿈꿨을 바로 그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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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죽었다 살아난 스팸의 이야기
* 영화 줄거리, 결말 스포일러 포함
우선, 쓰기 전에 사담이지만 이 영화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씨네랩에서 쓰는 첫 리뷰이다.
블로그에는 여러 영화 리뷰들이 있지만, 어쩐지 첫 리뷰는 새 마음으로 새로 적고 싶었다.
영화를 본 후 딱 드는 감상은, 이 영화 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는데?였다.
내가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를 다 그리고 자세히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봉준호 하면 기대하는 스토리의 깊이감, 숨 막힘이 이 영화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설국열차도 그렇고, 최근 흥행한 기생충도 그렇고 초반에는 조금 라이트 하게 시작하여 주제를 이끌며 더욱 깊게, 깊게 들어가지 않는가.
내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낀 점은 봉준호는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아주 작은 초점을 통해 더 깊이깊이 끌고 가며, 결국엔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경계하거나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생충은 "지하철 냄새" 같은 부분에서, 괴물은 장소인 한강에서 특히나 한국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맞물리며 울리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다만 미키 17은 장르부터 배경까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SF의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흔히 내가 보던 봉준호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 미키 17에도 우리가 알던 봉준호의 것은 존재했다. 미키 17은 어쩐지 우리가 전에 봤던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가 많이 섞여있는 세미 통합판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주제의 포괄성
이 영화에서 어라라? 했던 것은 한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노동계층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듯싶다가, 어떤 섣부른 과학기술의 발전과 윤리의식의 부재도 다루고, 인간성, 악독한 권력 계층 후에는 생명권과 동물에 대한 존중도 주제로 나온다. 한 영화에 많은 내용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그만큼 한 얘기에 다양한 주제를 넣은 지루할 틈 없는 영화라고도 생각되는데, 또 다르게 보면 조금은 복잡하거나 정신없게 느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 같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리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보아서 더 그랬는데 그래서 지금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어야 하지?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노동계층과 미키 17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 미키 17이 노동계층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다. 나는 원작인 미키 7을 보지 않았고, 또 영화를 볼 때 원작과 영화 사이 연결고리를 찾는데 열중인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짚는 부분이 원작과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에서 미키 17이 노동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현대의 노동자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재밌는 포인트였다.
특히나 미키 17은 다른 미키들에 비해서(잘 나오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인지하는 노동 계층과 닮았는데, 돈을 못 벌었으니 이것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벌이라고 여기는 부분이나 권력자에게 의견을 표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부분,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현대 사회의 수긍하는 노동자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래서 체제에 반항하는 미키 18이 더욱 이질적이거나 독특하게 그려진 것 같았다. 미키 17은 자신을 맛있는 고기라고 표현한다거나 죽어도 되는 존재라고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소모품, 대체품 등으로 부르곤 한다. "죽는 기분은 어때?" 가끔은 조롱이고 가끔은 진심인 이 말은 미키가 저 우주선에서 가장 하층의 소모품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정작 미키가 없으면 우주 밖으로 나갈 염두도 못 냈을 거면서. 유일하게 이를 막거나 안쓰럽게 보는 것은 그의 여자친구인 나샤 뿐이다.
미키가 돈이 없다고 해서, 혹은 그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해서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꼭 실험 쥐처럼 혹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스팸으로 취급된다. 나는 "스팸"이라는 이 단어가 미키를 그리고 노동자를 권력자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너무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 불량 식품이지만 삶에서 필요한 것. 후에 권력자가 그에게 "너도 죽는 것이 무섭니? 그럼 너도 인간인 거구나."라는 말에 미키 18의 표정이 흔들린 것도 평소엔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았음을 그리고 은연중에 미키 자신도 자신을 리필돼도 되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현대의 노동계층을 투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애초부터 미키가 노동자이기도 하고. 특히나 전문직이나 기술직보다는 우리가 블루칼라라고 부르는 육체노동자들의 모습과 같다. 어느 목적을 위해서 미키를 소모품 즉 스팸으로 생각하며 갈아치우려는 권력자 그리고 그 밑 연구직, 기술직의 모습이 노동자가 죽어도 나 몰라라 하는 현대의 누군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티플을 경계하는 모습조차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미키를 방사능에 노출시키고, 제일 먼저 바이러스를 마시게 하고 정체 모를 외계 생물체가 있는 곳에 던졌음에도 그가 인간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최후에야 안 권력자가 우스울 뿐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원 앤 온리 엘리트 제시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미키가 몇 번째 미키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일 테다.
누가 원주민인가이 영화에서 다음으로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이 대사다.
"얘네가 망할 외계인인 게 아니라 우리가 외계인인 거지!"
어디에나 통용될 법한 뼈가 있는 대사다. 특히나 이 영화가 할리우드를 겨냥하고 나온 영화인 것을 생각하자면 "원주민" 대사에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우리가 알법한 고생대...? 그전으로 되돌아가서 곰 벌레 같은... 그런 생물체를 닮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메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물론 인간이 그들을 말살시키자고 마음먹은 것은 그 때문이 다는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타 생물에 대한 존중이 없는지는 괴물이나 옥자에서도 충분히 봉준호가 다룬 내용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도 마음먹고 다루어졌다. 특히나 지구의 환경을 망친 주범이 다른 행성까지 가서 그 나라의 환경을 다 망친다는 것은 꼭 <빠삐용>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인간이 만든 SF 영화에서 나오는 흔한 전개다. 인간은 늘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더욱 판타지같이 그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이 사는 모든 터전에 공생은 없다. 우리의 지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얼마나 많은 전쟁과 학살을 겪고도 그 조그마한 자원을 위해 무의미하고 잔인한 사투를 벌이는지 알고 있다. 미키 17에 마샤와 카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그 인류라면 그 세계는 얼마 안 가 망가질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더욱 SF처럼 와닿았다. 미키의 트라우마로 남은 빨간 버튼이 엔딩에서는 제대로 미키의 복사 기기를 터트렸듯이, 그들은 인간사에 남은 트라우마를 동화처럼 터트렸다. 인류가 아직 발전하지 않았을 때의 터전인 동굴에서 그곳의 원주민과 농사를 가꾸며 사는, 꼭 책 <사피엔스>의 예정된 절망이 오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 같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꼭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권력자 부부가 기어코 그 생물체를 학살하기 시작해서 인류나 그 외계인 둘 중 하나는 멸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예정된 시나리오인데 영화는 아주 화목하게 권력자의 목을 베고서 아기도 엄마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그들은 생각 외의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관객이 생각하는 스토리를 엉성하게 만드는 포인트라 하더라도 만족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영화에서는 그 권력자가 당선에 실패한 것으로 나오지만, 현실은 그런 권력자들이 깃발을 잡는다. 사람들은 허황되고 편향된 것에 쉽게 홀리고 영화 속 마샤만큼 이성을 잘 잡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기생충의 기우가 꿈꿨던 꿈이 실현된 영화도 몇 개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의 조그마한 소망이 있었나 보다. 심신이 지치니 해피엔딩이 좋다. 그들이 언제까지 해피할지는 모르지만 영화관에서 한대 맞은 머리로 나오는 멍한 기분을 느끼지 않은 것이 내심 좋았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스토리와 결말 그럼에도 이러한 주제들을 다뤄줬다는 것부터 고맙다. SF라는 장르가 쉽지 않은 것을 모두가 알고 특히나 자연스러운 CG를 만들어내는데 들인 공, 그리고 매끄러운 연출과 지루할 틈 없는 전개까지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참 좋았다. 이런 평 조금 저급할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는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젊은 배우들의 비주얼이 훌륭해서 눈이 즐거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심 사심이 들어간 평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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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춘희는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외가 식구가 사는 외삼촌 집 다락방에 얹혀살고 있다. 외삼촌네 가족이 그 집을 떠나고 한참 지난 후까지도 그 집의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삼촌 내외, 사촌이 생색내듯 베푸는 선의에 기 한 번 제대로 못펴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간 춘희는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과거의 춘희가 현재의 춘희를 신경쓰이게 한다. 과거의 춘희는 왜 계속 등장해 현재의 춘희를 흠칫거리게 하는 걸까?
1.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망각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춘희에게는 다락방의 존재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
춘희는 자신의 엄마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그 집은 삼촌 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엄마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가족들은 춘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식구, 눈치를 봐야만 하는 아이로 몰아간다. 딸에게 집을 주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그 딸이 낳은 춘희는 이 가족이 사는 집에 지분을 행사할 자격은 없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들의 논리가 무엇이든 춘희는 상처를 받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에게 그 집을 잘 지키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다른 집으로 이사갔어도 춘희는 여전히 그 집의 객식구처럼 행동한다. 눈치주는 외삼촌네 가족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다락방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춘희의 영혼은 십 몇 년동안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표출되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방치되어 곪아 터질 뿐이다. 춘희도 그렇다. 외삼촌 내외에게서 짐짝 취급받던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춘희는 그저 애써 묻은 것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외면했던 상처는 잊혀진 것은 아니기에 춘희의 앞날에 꾸준히 걸림돌이 된다. 춘희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상처를 마주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정당한 사유없이 핍박하는 외삼촌 가족들에게 한 번은 소리쳤어야 했다.
2. 다한증, 춘희의 지문
춘희는 자신의 다한증을 컴플렉스 쯤으로 여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손의 땀을 더러워하던 선생님의 반응, 그리고 땀 때문에 못마땅해하던 외삼촌의 짜증 섞인 표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겨버리는 이 땀 때문에 더 구박받는 것 같아 춘희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살거라면, 난 왜 태어난 걸까, 내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객식구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걸까 싶은 자기비하적 생각이 춘희의 머리를 지배한다. 그 자기비하는 춘희의 삶의 디폴트값이 되어 춘희는 그 어디에도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장점인 손재주를 특화시킬 생각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없앨 생각부터 한다.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단점을 가리기 급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손재주로 마늘 까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재능을 펼칠 만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마늘 까는 이유도 사실 다한증 수술 받고 싶어서였기에
춘희의 이런 단점 지양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날렸던 그들만의 상식이 불러온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춘희가 객식구라는 것은 당연한 취급이었을지 몰라도 춘희는 평생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다락방에 영혼을 가둬버린다.
3. 상처받았다는 사람들에 관한 이중적 시선
영화를 보면서 가해와 피해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춘희인지 외삼촌네 가족인지. 나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었는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했다. 외삼촌네 가족의 매정함이 그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춘희의 순함은 그들이 춘희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허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를 두고 보여준 위선은 우리네의 삶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위선이었다. 위선은 종이 단면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팍팍했던 그들에게 춘희의 존재는 짐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매정함에 박수쳐주고 싶진 않지만 무자비하게 욕만 하기에 나도 저런 위선적인 모습이 있을 것 같아 찔린다.
상처란 주관적이라서 시각을 바꾸면 극복할 수 있다. 춘희는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 자신의 단점인 다한증에 집착하는 바람에 자신의 손재주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촌에 매정한 말에 매몰되어 숙모의 츤데레를 주목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릴 시간에 자기자신부터 사랑하자. 남을 위해 날 가꾸지 말고, 내가 즐겁고자 나를 가꾸자. 춘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총평
영화가 자칫 루즈하고 뻔할 수 있는데 춘희의 썸남이 있어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춘희의 썸남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귀엽다. 오글거리는 건 관객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조금만 참으시라. 광명과도 같이 개그가 찾아올 것이다.
※해당 영화 시사회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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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열기를 이어받아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6일만에 200만 명의 관객수를
돌파했습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오는 25일까지 성탄절 연휴 동안 관객 몰이를 이어갈것으로 전망됩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노량: 죽음의 바다>는 12월 25일 오전 10시를 넘어가면서 누적 관객수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2위로 오른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수를 기록하면서 황정민은 <국제시장> <베테랑>에 이어 <서울의 봄>으로 3번째
천만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해양 액션 블록버스터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이 개봉 첫날 전체 외화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습니다. 전 세계 흥행 수익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호평받았던 <아쿠아맨>과 달리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흥행 전망이 밝지 않아보입니다. 북미에서 1위에 올랐지만 레드 카펫이나 프리미어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았고, 만듦새도 아쉽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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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완벽정리:한국 현대사의 비극,효자동 이발사
#효자동이발사#송강호#419혁명
4.19혁명 60주년,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이해를 돕는목적의 역사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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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트래커> 예고편
한계를 넘어선 액션이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 갱단의 납치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하칸슨. 10년 후 이탈리아 형사로부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곧장 이탈리아로 떠난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했던 형사는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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