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09-10 00:57:38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영화 <딸에 대하여>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 엄마와 딸의 위치, 심경 변화
- 수박의 의미
-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의외의 인물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202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개봉일 : 2024.09.0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이미랑
출연 :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본문에서 인물의 이름은 극 중에서 사용되는 이름인 그린, 레인, 제희(노인)와 엄마로 표기 (엄마의 이름이 잠시 스쳐 지나가듯 나오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엄마의 이름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져 그대로 ‘엄마’로 표기하겠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른 것 같지만 닮아있는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과 유한한 삶의 끝에 서있는 노인. 네 여성들의 아픔과 사랑을 재료로 찍어낸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영화는 외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없이 주인공인 엄마의 내면에 집중하며 진득하게 나아간다. 외부 사건의 자리를 대신 채운 짧은 침묵과 방문 사이를 들여다보는 눈, 사랑 위로 자라난 아픈 말들엔 엄마의 두려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다.
<딸에 대하여>의 주인공인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의 딸인 그린은 7년 동안 만난 동성 연인 레인과 동거를 하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수박은 숟가락으로 대충 떠먹으면서도 딸이 먹을 수박은 예쁘게 썰어 준비하는, 딸을 사랑하는 엄마지만 딸이 함께 데려온 동성 연인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엄마는 인생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며 살고 있다. 그녀는 연고 하나 없이 요양원에 방치되어 있는 노인 제희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희는 한 어린이 제단의 설립자로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희생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제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다. 제단 사람들과 언론인들의 관심이 끊긴지는 한참이고 가정을 이루지 않아 찾아올 자식도 없다. 제희에게 남아있는 건 작은 손가방 하나와 곧 끊길 예정인 제단의 지원금뿐이다.
엄마는 이런 제희가 가엾다. 그리고 제희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 자신과 그린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두렵다. 남편, 아이 하나 없이 버려진 노인의 미래가.
그래서 엄마는 딸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반대한다. 딸을 사랑한다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차분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엔 엄마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극 중에서 엄마는 그린의 엄마, 요양보호사 여사님으로만 그려진다. 그녀의 이름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 서서히 나를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불안감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 앞에서 더욱 짙어진다. 영화는 떨리는 중년의 마음을 따라가며 엄마와 딸의 두려움.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것을 재조명한다.
<딸에 대하여>는 동성 연인과 엄마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늙어감과 외로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모녀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으니 꼭 성소수자인 딸이 아니어도 20대 이상의 딸이 있는 모녀관계라면 혼자보단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어린 딸과 엄마보다는 어른인 딸과 엄마에게 추천!)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엄마는 딸이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길 바란다.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엄마의 바람대로 그린은 자신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투쟁한다.
엄마의 눈엔 딸의 사랑과 정의감이 소꿉장난과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동성연애에 관계도 없는 다른 강사의 부당 해고 집회에 얼굴을 팔고 다니다니. 엄마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붙잡고 대체 왜 그러냐며 소리친다.
그린은 엄마가 자신에게 부당한 거, 싫은 거는 말하라고 가르쳤다고 답한다. 엄마는 몰랐지만 딸은 엄마의 가르침대로 잘 자랐고 엄마도 여전히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손발이 묶인 제희와 그것을 방관하는 동료를 향해 소리친다.
“어떻게 저게 남의 일이야. 우리라고 저렇게 안 될 줄 알아?”
부당 해고 사건에 대해 말하던 그린도 엄마와 똑같이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전여전 그 자체인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한숨 쉬어가며 나와 우리를 이해하다.
문밖을 서성이던 엄마, 문안에서 자고 있던 딸. 두 사람의 위치 변화 / 결말 해석
요양원 과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던 엄마는 제희와 함께 요양원에서 쫓겨난다. 엄마는 제희를 찾아 깊은 산속 병동을 방문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엄마보다 더 어린 딸들은 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구를 받아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희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그린, 레인은 함께 장례식을 진행한다. 엄마는 제희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지독하게 붙잡고 있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린이 어르신이나 자신처럼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고.
그런데 엄마는 이제 인정하려고 한다. 그린의 곁에는 레인이 있고 두 사람과 함께 웃고 싸워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딸이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는 것을.
그린은 엄마 대신 상주에 이름을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킨다. 그 덕분에 항상 문밖에서 전전긍긍하며 딸의 방을 바라보던 엄마는 이제 방 안에서 편하게 잠에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횡단보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또 다른 딸들의 앞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엄마는 딸에게 예쁜 수박만 주고 싶다
수박의 의미
엄마는 그린이 집에 오기 전, 그린을 위해 커다란 수박을 산다. 엄마는 홀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겹게 수박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박을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예쁘게 썰어 그린을 위해 남겨두고 절반은 TV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대신해 홀로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푹푹 파먹다 금세 비어버린 수박처럼 어느덧 엄마의 인생도 탄생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다다른다. 엄마는 이제 나이 먹는다는 게, 혼자가 된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2층 집에 사는 세입자 가족처럼 이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할 딸이 걱정된다.
내 수박은 아무렇게나 팍팍 퍼먹어도 괜찮지만 딸은 예쁘게 썰어진 수박을 먹이고 싶은 게, 내 삶은 모나게 흘러가도 괜찮지만 딸의 인생은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게 엄마다. 엄마의 말대로 그린과 레인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결혼, 법적 보호자, 아이를 가진 가정.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엄마는 동성애자의 삶이 이성애자의 삶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린을 말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어른이자 믿음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린과 레인은 커다란 수박을 반반 나눠 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설령 무겁고 쉽지 않은 인생이라 해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인생의 무게를 나눠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엔 그린과 레인이 들고 온 수박이 부서지거나 소비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필요 없어서 해당 장면을 넣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이유 삼아 영화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고 갈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레인
치매 증상이 심해진 제희는 수시로 배변 실수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기저귀를 차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다. 엄마는 어르신이 편한 게 제일이라며 귀찮은 빨래와 목욕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요양원 과장과 관계자들은 비품을 너무 많이 쓰고 빨래도 너무 자주 한다며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눈칫밥을 먹던 엄마는 제희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채우는데 제희는 그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몰래 침대를 벗어나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실수까지 한다.
엄마의 2층 집에 세 들어 사는 부부는 여전히 싱크대 위에서 물이 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전에 불렀던 분들 말고 진짜 전문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엄마는 그들의 요청대로 다시 전문가를 부르고 물이 새는 걸 잡으려면 천장을 다 뜯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억지로 채워놓은 기저귀, 임시로 해결해 놓은 누수는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과 사이의 문제도 그렇다. 평범하지 않다고, 나와 다르다고 억지로 막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마음도 바뀔 거라고 대충 덮어놓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다.
그린은 몰라도 레인은 이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떠밀려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레인이 엄마와의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한 건 말씀해달라, (그린에게) 우리만 참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하는 거다. 관계에 확신을 갖고 있다.. 레인은 차가운 엄마 앞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갑작스레 등장한 제희를 정성껏 보살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마 레인이 없었다면 엄마는 더 오래 아니 어쩌면 평생 딸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레인은 미움이 뚝뚝 새어 나오고 있던 모녀 관계를 지붕부터 뜯어 싹 고쳐낸다.
처음엔 당연히 엄마와 딸 그린의 갈등이 중점으로 그려지고 레인의 비중이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레인이 모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봉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져 더 좋았다.
생각보다 더 곱고 어른스러웠던 레인과 빛나는 눈으로 레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하윤경 배우의 모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느끼게 해준 오민애 배우와 반질반질하고 예쁘고 단단한 자갈 같은 그린을 보여준 임세미 배우도 함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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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이 같은 재료로 다르게 끓여낸 이 영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라는 영화가 오픈했다. 제목만 보고 감이 왔는데, 이 영화는 일본에서 한 차례 개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내용이 같을 텐데, 한국판만 보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둘 다 봤다. 결론적으로 두 영화 모두 소재와 플롯 진행만 비슷하고 세부적인 것들은 판이하게 다르게 세팅되어 있는 극본이다. 하지만 두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같은데, 두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자.
1. 등장인물의 배치가 같지만 역할이 다른
이 시나리오에는 공통적으로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고, 그걸 줍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떨어뜨리는 사람 주변에 그를 사랑하는 애틋한 관계의 사람들이 더러 등장한다.
일본판에서는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것은 남자이고, 그걸 주운 범인은 떨어뜨린 당사자의 폰을 해킹하며 그의 여자친구를 노린다. 성적인 도착증이 있는 남자의 성범죄임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관계가 핸드폰을 떨어뜨린 마코토와 그의 여자친구 아사미의 굳건한 사랑이다. 아무리 해킹을 통해 범인이 이들을 교란시켜도 결국 이들을 구해내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판으로 오면, 마코토와 아사미 vs 범인의 구도가 달라진다. 애초에 범인이 한 여성이 떨어뜨린 핸드폰을 줍는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여성인 나미와 범인의 1:1 대결이 눈에 띈다. 일본판에서는 여성 혼자 범인을 상대하는 것은 힘이 드니 그를 지키는 남자가 필요한 것 같았다면 한국판에서는 그저 피해자와 범인의 한판 승부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였을까 개인적으로는 남녀에 대한 구분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직접 대결이 돋보이는 만큼 한국판이 한층 더 빠르고 시원한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본판에서는 엄마의 학대로 인해 성적인 도착이 생긴 범인을 그렸다면, 한국판에서의 범인은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그를 사회 안전망으로 이끌어줄 참된 어른이 없었음을 암시하긴 하지만 특별히 성적인 도착증이 보이진 않는다.
2. 범인은 추적해 내는 과정
일본판에서는 범인이 누구일지 추적하는 과정이 메인 플롯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범인이 누군지 등장하는 전통적인 추리 전개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며 놀라움을 자아내게 되긴 하지만 그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무리수가 보이기도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것이 영화를 보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중간에 범인일 법한 인물들을 낚시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신입 경찰인 마나부이다. 그가 범인과 똑같이 여성의 긴 머리칼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범인일까'하는 의심을 심어주는데, 그 모습이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 오히려 범인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들게 한다. 엄마에게 학대를 당해 사랑받지 못한 유년에 대한 보상 심리로서 여성의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모습을 가졌다는 범인과의 공통점으로 범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경찰이 있다는 설정이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사미가 범인을 인식하는 것은 납치되고 나서이기 때문에 아사미와 마코토는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그저 범인에게 당하기만 한다.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래서 범인이 어떻게 나미를 농락하는지 보여준다. 범인을 초반부터 의도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범인의 교활함과 잔인성이 부각된다. 한국판에서는 일본판과 다르게 몰카도 등장하는데, 범인은 철저히 사이버 범죄가 인간의 삶에 해할 수 있는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는 나미의 생활 전선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극단에 몰리자, 나미는 범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범인을 교란하기에 이른다. 일본판과는 달리 피해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고 발버둥 치는 부분이 매력적인 서사 포인트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미를 각성시키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점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 소재로 한 일본판과는 다르게 한국판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이 두드러진다.
3. 궁극적인 두 영화의 공통점
두 영화 모두 현대 사회에서의 SNS로 다져진 사랑, 신뢰, 우정 등은 알량한 말에 불과하고 끝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유야 어떻든 두 영화 속 범인들은 극단의 외로움에 지쳐 복수 심리로 자신처럼 나미도 철저한 외로움의 세계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고 그 절망의 순간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만의 쾌락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SNS의 얄팍한 관계성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는 1:1 만남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SNS 속 관계도 인정받을 만한 관계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갈수록 위험해져 가는 사회의 안전망이 되어줄 정도인지 반문하게 되는 영화이다. 두 영화 모두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스마트폰의 분실이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내 정보는 언제든 털릴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가 마음만 먹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4. 총평
둘 중에 하나를 봐야 한다면 한국판만 봐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한국판이 가진 서스펜스가 더 밀도 있고 일본판 특유의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려는 구구절절한 대사가 없어서 빠르게 몰입할 수 있다. 전개와 결말이 완전히 다른 영화지만 결론적으로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기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한국판을 추천한다. 아, 그리고 임시완 배우의 연기는 너무 잘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 맑은 눈이 살인자 연기에까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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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했기에 지킬 수 있던 이름들
<페르시아어 수업>은 한 사람이 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거짓말로 인한 후폭풍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똑같이 벌어졌을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배경으로써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풀지 않을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질'은 유대인이지만 나치군에 끌려가는 과정에서 물물교환으로 우연히 얻게 된 페르시아 책을 증거로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 주장하며 목숨을 구한다. 한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알려줄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목숨을 건사하게 된 질이 자신이 한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장교도, 그를 데려온 군인들도 그가 페르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군인들은 사례품을 받기 위해 그를 데려오긴 했지만 유대인의 외모를 가진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장교는 그에게 매일 페르시아어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가 가짜인지 확인하기 위한 덫을 파둔다. 질은 장교의 앞에서 '레자'라는 이름의 완벽한 페르시아인이 되어야 한다. 페르시아어라고는 책을 받을 때 들은 '아빠'라는 단어 정도만 알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낸다. 가까스로 전혀 다른 체계의 단어 조합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할 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한계를 체감하게 되기 마련이다. 기록을 남길 수 없는 환경에서 질이 써오던 입으로 외우고 머리로 기억하는 방법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이때 질의 눈앞에 펼쳐지는 묘수는 질에게 주어지던 우연 혹은 행운의 연속으로 보이면서,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필연처럼도 느껴진다. 어느 군인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해 못마땅해하던 코흐가 질에게 맡기는 '수감자 명단 작성' 업무를 질이 보란 듯이 해내는 것은 질이 유대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군인들은 장교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그가 못마땅해 함정을 파고 그가 거기에 빠지길 여러 차례 기다리지만, 질은 그들이 만든 난관들을 위태롭고도 무사히 통과하며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그곳, 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에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을 거쳐가는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고, 수용소는 그런 그들이 거쳐가는 경유지 중 일부다. 질은 이들과 같은 처지에 처해 있지만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자신을 점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핍박의 체제를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런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을 한탄할 여유는 수용소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죽음을 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질이 가지는 감정은 반복되는 분노와 허탈감이다.
페르시아어 수업과 함께 질과 코흐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질은 더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에는 둘 사이의 미묘한 유대가 우정과도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영화는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음을 질의 울분에 찬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고, 코흐는 더 비겁한 사람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백이면서, 코흐가 애써 보지 않던 현실을 보게 만들며 그를 찔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비겁했던 사람과 그보다 더 비겁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는 말은 살지 못한 자들의 눈에는 변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건들을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겪어냈고, 다른 이유는 그 시작에 있지 않았다. 외웠던 수많은 단어들도,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는 순간의 거짓말도,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때, 아마도 당신은 2,8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끄럽고 비겁했던 자가 자신을 위해 행했던 일이 모두를 위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목도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있기에' 증명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더해져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씨네랩으로부터 초대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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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기억할 또 하나의 삶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2014년 봄, 침몰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희생자들을 가족 품으로 데려온 민간 잠수사 나경수는 고통스러운 잠수병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 해경이 민간 잠수사 대표 류창대를 참사 현장에서 사고로 죽은 동료 잠수사에 대한 과실치사죄로 넘기며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게 된 경수의 마음은 더욱 황폐해져 간다. 하지만 자신들을 이용한 후 폐기한 비정한 국가를 상대로 무죄를 증명하고 짓밟힌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재판! 경수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지만 거대한 배 안의 미로 같은 지옥을 홀로 헤매며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는데… 고개를 높이 들어라.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바다호랑이> 줄거리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혹시 당시 배 안을 오고 가며 시신을 수습하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나. 현장에서 누구보다 쉼 없이 구조에 힘쓰던 그들을 국가가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는 전부 알고 있나. '바다호랑이'는 참사 수습 당시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 잠수사에 대한 책임으로 기소된 류창대의 재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재판을 이어가면서 끊임없이 고통을 되짚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민간 잠수사들의 모습은 그날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국가가 세월호와 관련된 인물들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바다호랑이'는 국가가 덮은 과거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고 아물지 못한 상처를 꺼내드는 동시에 치유와 화합으로 나아간다. 그 삶을 담아낸 카메라는 무거운 사실을 날카롭게 파고들면서도 구조에 힘썼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어버린 잠수사들을 따스히 비춘다.
영화는 연극적 요소를 차용한 실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제한된 공간인 무대를 주로 사용하며 배우의 연기, 설명만을 통해 여러 공간을 연출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실제가 아님에서 오는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게 되는데, 이는 세월호 수습 현장, 공격적인 재판 과정 등 자칫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배제하면서도 배우의 연기와 관객의 상상이 더해져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몰입감은 우리의 마음속에 왜 아직도 세월호가 남아있는지, 왜 기억하며 애도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참사 이후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봐야 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날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기억하며 연대를 이어나가야 한다. '바다호랑이'는 그런 연대를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 밖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로 지금, 그날 이후의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이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바다호랑이>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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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는 왜 다시 돌아와야만 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있다. 이 균형은 사실 평등하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열악한 조건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만족스러운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무언의 동의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조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규약과 법률을 만들어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가끔 그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그 평화는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그 평화와 균형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저항하고 평화를 위해 그대로 머무르자는 자들을 설득하려 무던하게 애쓴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어쩌면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업데이트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선악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 내부에 갈등은 다음 세대의 나은 삶을 보장하고, 사회의 암적인 어떤 존재를 제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또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사회적 평화와 균형이 유지되기도 한다.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후속편
영화 <매트릭스:리저렉션>은 사회적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그 평화를 깨더라도 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견 대립을 담은 영화다. 과거 1999년에 시작된 <매트릭스> 시리즈는 3편까지 진행되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종결시킨 듯 보였다. 기계가 지배하는 지구에 시온이라는 소수의 인간사회가 대립하는 구도였고, 인간은 거의 기계에 종속되어 살거나 의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구원자라고 불리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등장과 그의 희생으로 시온은 기계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고 둘 간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실 이전 세 편의 영화의 결말만 놓고 보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는 여전히 기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인간은 소수만을 제외하면 인큐베이터에서 전기 생산으로 소비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 평화는 기계와 소수의 인류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인류의 온기는 기계에 의해 그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채 착취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 시리즈의 결말은 시리즈의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결말이지만, 좀 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결말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 틈을 좀 더 파고들어 4편이 기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리저렉션>은 과거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60-7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야기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건 벅스(제시카 헨윅)와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다. <매트릭스 1>의 맨 처음 장면을 살짝 비틀어 보여 주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이후 과거의 기억을 잃은 네오를 등장시키면서 시리즈 1편의 주요 장면들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바꿔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은 과거 시리즈의 초반 주요 내용을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기 때문에 4편을 보면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상기시키거나 이해하면서 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런 이야기 전개는 새로운 팬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기존 팬들에게는 자칫 지루한 동어반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패치처럼 구성된 이야기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은 기계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추가 패치를 하여 새롭게 구성되는 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매트릭스와 살아있는 인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와 인류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네오는 여전히 그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드러난다. <매트릭스:리저렉션>에서의 네오는 다시 기억 찾지만 그에게 던져진 화두를 완전히 풀어낼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 보다 진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벅스다. 그는 그의 팀원들과 함께 인류가 좀 더 대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평화 주의자 이자 리더인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대립한다. 그는 아주 작은 기회이고, 평화를 깨더라도 대다수 인류가 기계에 착취당하고 있는 그 상황을 깨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네오를 찾아내고 그를 다시 논쟁의 중심으로 불러내게 되는데, 네오에게 중요한 존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도 현실로 다시 불러들이면서 인류와 기계의 상황을 바꾸게 된다.
기계와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바뀌었다. 애널리스트(닐 패트릭 해리스)라는 프로그램의 우두머리가 등장하고, 그는 네오와 스미스 요원(조나단 그로프)의 기억을 지우고 모달이라는 시뮬레이션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같이 넣어두고 운영해왔다. 그건 벅스 일행에 의해 깨지게 되고 네오와 스미스의 대립과 이어진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인 애널리스트는 과거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아키텍트에 비해서 똑똑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운영방식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서 온 작은 구멍은 그가 유지해온 평화와 시스템을 다시 한번 혼란 속에 밀어 넣는다.
새로운 화두를 던짐에도 많이 아쉬운 영화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한 환상을 택할 것이냐, 아픈 현실을 택할 것이냐를 질문으로 먼저 던진다. 거기에 더해서 소수와 시스템을 위한 평화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기계에 종속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느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앞의 질문에 영화가 어떤 선택을 택하는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각자가 가진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평화 주의자인 니오베의 논리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보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틀림없다.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리저렉션>의 러닝타임은 147분이다. 영화 초반 시리즈의 이해와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장황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늘어졌다. 또한 과거 센세이셔널하게 보였던 액션과 CG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세월 동안 더 뛰어나고 발전된 액션을 우리는 많이 접해왔다. 그래서 이번 신작에 포함된 액션 장면들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후반부에 피치를 높여 속도감을 높이지만 그 속도감이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되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사회적, 철학적 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새롭고 혁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순 없다. 또한 너무 복잡한 이야기 구조 상 이전 시리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번 신작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아쉬운 점이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네오와 트리니티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벅스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스미스 요원이나 모피어스는 배우가 바뀌어 동일한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두 캐릭터 모두 이야기 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많이 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점도 아쉽다.
영화를 연출한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과거 시리즈를 릴리 워쇼스키와 함께 연출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라나 워쇼스키 혼자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그러니까 자매가 만든 이야기에 라나 한 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후속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러 가지 전편에 대한 오마주나 대사들, 액션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리즈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속편을 만들기보다 리부트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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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3년만에 세상 밖으로
3년만에 세상 밖으로, 이은정 감독의 '오랜만이다'
개막식부터 이어진 비소식과 더운 날씨에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주는 관객들이 많다. 이은정 감독은 첫 장편영화이자 음악영화를 선보이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2020년 팬데믹과 맞물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과 ‘연경, 음악, 그리고 이은정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소개와 함께 간단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를 연출한 이은정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는 오랫동안 가수의 꿈을 꾼 연경이 서른 초반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꿈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기타 하나가 첫사랑 현수로부터 배달되며 다시금 떠오른 첫사랑, 꿈과 현실 사이 청춘들의 고민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제작사 대표님이 ‘지하철에서 첫사랑을 만나 보내는 하루’를 음악 영화로 오랫동안 기획하셨는데요. 제가 연출을 맡았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을 1년 정도 멈추었어요. 그때 절반가량의 시나리오도 다시 썼거든요. 처음에 작성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촬영을 중단한 1년의 기간이 감독님께는 더욱 깊이 있어진 시간이 되었을까요?
영화 속 연경이도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자꾸만 벽에 가로막히고 좌절하고 어쩌면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실 촬영이 중단되니 연경과 감정이 동일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바뀐 시나리오를 감독님과 배우님들께서 좋아하셔서 나머지 절반을 새로운 시나리오와 합쳐 완성했어요. 기존의 시나리오는 로맨틱 코미디 성향이 강했다면 완성작은 훨씬 차분하고 음악인으로서 연경의 성장담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이 영화 자체가 연경이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작업하는 가운데 촬영이 계속 중단되다 보니 “아냐 넌 할 수 있어, 될 수 있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연경이가 마지막에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데 울컥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곡 추천 부탁드립니다.
여고생 연경과 잘 어울리는 곡인 '천문학은 모르지만', 현대에서 부르는 '무지개'라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무지개'를 들을 때 각자의 느낌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감성인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처음입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어요. 저 혼자 3년 가까이 영화 '오랜만이다'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언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다 영원히 안 되면 어쩌지 불안감도 생겼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저의 불안을 해소해 준 느낌이에요. 처음으로 극장에서 상영한 것을 보게 되어 의미가 있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감동이었습니다.
8월 12일, 이은정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 상영 후 곧바로 음악 공연을 하는 ‘히든트랙’에 참석했다. 당시 관객과 가까이에서 만나 영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진짜 음악영화제’라 마음에 와닿았다고 전했다. 이은정 감독은 연경과 음악의 연장선에 서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은정 감독은 영화 '오랜만이다' 음악들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음원도 나오고 나중에 노래방에서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싶다는 즐거운 꿈을 밝혔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에디터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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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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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임시완·천우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넷플릭스 공개
ⓒ 네이버 영화
배우 임시완과 천우희 주연의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2월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영화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스릴러다.
배우 윤여정, CAA와 계약
ⓒ 후크엔터테인먼트지난 10일, 배우 윤여정이 미국 할리우드의 대형 연예 기획사인 CAA와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CAA는 배우 이정재, 강동원, 정호연과도 계약을 맺은 기획사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3월 개봉
ⓒ (주)더쿱디스트리뷰션/워터홀컴퍼니(주)
골든글로브 수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오스카 시즌을 향해가는 지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양한 캠페인과 함께 이벤트 등을 정비하여 메이킹 영상을 포함한 버전으로
3월에 재개봉한다고 밝혔다.
<서치2>, 개봉 확정
ⓒ 소니픽쳐스
신선한 연출 방식으로 호평 받은 <서치>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서치2>가 2월 개봉을
확정 짓고 티저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을 공개했다. <서치>에서 편집을 담당했던 니콜라스 D.
존슨과 윌 메릭이 연출을 맡았으며,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각본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외
<델마와 루이스>, 뮤지컬 영화로 제작
ⓒ 네이버 영화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된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뮤지컬 버전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뮤지컬 버전 영화에서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에반 레이첼 우드 배우가 주인공을 맡는다고
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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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끝장리뷰 | 개구리들의 연대 | 적색 vs 청색, 숲속 vs 도시 | 부성애의 세계 | 결말해석 | 술래, 숲속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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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개구리들의 연대
Chapter 2 부성애의 세계, 숲속 vs 도심, 적색 vs 청색
00:00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00:52 아쉬운 지점들
02:16 개구리들
05:16 술래 의미
06:04 부성애의 왕국
06:46 숲속 의미
09:22 적색 vs 청색
10:29 별점 및 한 줄 평
10:4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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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늘봄가든> 메인 예고편
대한민국 3대 흉가 곤지암 정신병원, 경북 영덕횟집, 그리고... 늘봄가든 소희는 언니 혜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한적한 시골의 저택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을 방문한 후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당장 그 집에서 나와! 늘봄가든 괴담의 실체를 밝힐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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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텔라> 메인 예고편
악으로! 깡으로! 달려라! 스텔라! 옵션은 없지만 사연은 많은 1987년식 자율주행차 스텔라의 유쾌한 웃음 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