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2-02-24 11:42:42
대낮에 경험하는 보험사기 스릴러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리뷰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많아서 희열을 느끼며 봤던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뻔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 한 방을 날리는 작품이었고, 환한 낮에 경험하는 스릴러다 보니 스릴러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에게 제격이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시놉시스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간단한 부탁에서 시작된 간단하지 않은 사건. 멋진 커리어우먼, 매력적인 아내, 아름다운 엄마,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한 여자 ‘에밀리’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는데요. 모든 것이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 에밀 리가 돌아온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플루언서를 보여주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속 스테파니는 브이로그 컨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로 나온다. 인플루언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 필자가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는 인플루언서인 스테파니가 자신의 친구인 에밀리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데 자신의 브이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SNS가 이렇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못했고, 물론 부산경찰SNS가 사람들을 찾는데 많이 활용된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브이로그로 찾고 경찰 관계자가 아닌 개인이 수사를 하는 모습에, SNS가 참 여러 가지고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파급력이 굉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귀신은 없는데 소름돋은 1인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에밀리의 옷장을 다 치우고 스테파니의 옷들로 다 채워넣었는데 그 다음날 다시 애밀리의 옷들이 옷장 속에 다 채워져 있어서 진짜 주스 먹다가 뿜을 뻔했다. 극중 스테파니와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에밀리의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깜짝깜짝 놀랐고, 갑자기 에밀 리가 쌍둥이라고 해서 작가... 천재인가? 하는 생각과 서로를 속고 속이는 계략 속에서 결국 스테파니가 에밀리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들을 보며 진이 빠질 정도였다. 반전이 적재적소에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고 텐션감이 높아 다른 생각할 틈 없이 영화에 빠져서 볼 수 있었다.
스릴러 보험사기
그렇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결론적으로는 보험사기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험사기를 소재로 코미디나 범죄물은 만들어도 이렇게 스릴러물로 만들어진 경우는 별로 없어서 색달랐다. 그리고 영화 장면들이 대부분 대낮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환한 빛 속에서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금 색다른 스릴러물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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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렷한 선과 악 그리고 수퍼 히어로 마동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악구도로 나뉘지 않는다. 물론 각자 가지고 있는 경계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나누어지지는 않기에 판사의 심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나 살인자는 물론 악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보단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고 사회적으로 동일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악인을 없애는 방법일 것이다. 그 모든 것 이전에 수많은 악인들을 잡아내는 형사들이 있다. 형사들은 판사의 판단을 받기 전에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를 가려내고 잡아낸다. 어찌 보면 악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범죄가 그들을 거쳐간다. 희미한 선악구도 속에서도 형사들은 최대한 그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 <범죄도시>는 마석도 형사(마동석)와 그 팀의 이야기를 담았던 범죄 영화였다. 선악구도가 꽤 분명하게 나뉘어진 이 영화는 약간은 때가 묻은 마형사를 등장시켜 최악의 악인을 쫓게 만든다. 깡패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마형사가 완전히 깨끗한 형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악인들이 더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정리했다. 여기에 아주 악독한 악인이 등장하면서 그는 모두의 영웅이 된다. 엄청난 덩치와 파워는 달려드는 악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악인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한 팀으로 만들었다. 결국에 가장 나쁜 악인 중의 악인인 장첸(윤계상)을 잡아냈을 때 관객들이 느낀 건, 악인을 처벌했다는 통쾌함이었다. 그게 후속 영화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편의 이야기를 변주해 만든 두 번째 시리즈
<범죄도시2>는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번에도 영화의 악인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이 그랬단 악인을 먼저 보여주며 영화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 영화의 악인 강해상(손석구)은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그 사람을 죽여 실종 상태를 만든다. 우연히 베트남 출장에 간 마형사가 강해상이라는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특히나 이번 영화는 선악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1편에서 약간은 때가 묻은 듯했던 마형사는 이번 2편에서는 좀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전편의 마형사가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마형사는 좀 더 수퍼영웅에 가까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전편과는 다르게 마형사가 크고 작은 범죄자들과 대결을 벌일 때 마형사가 상대를 가격하면 큰 음향효과가 추가되어있다. 그래서 마형사가 타격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면 느껴지는 관객들의 통쾌함도 극대화되어있다. 그러니까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고 마형사를 좀 더 선한 인물로 조정하여 선이 악을 물리칠 때의 쾌감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할 때 관객은 든든함을 느끼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악인들을 물리칠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타격감은 앞으로 이어질 <범죄도시>라는 시리즈가 좀 더 수퍼영웅 장르로 뻗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이야기적으로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베트남 로케이션을 활용하고 영화의 빌런을 바꾸었지만 악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한정된 공간에서 마형사와 빌런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도 1편과 거의 흡사하다. 그런 점을 본다면 이 영화는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전편의 구조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전편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의 빌런인 강해상은 전편의 장첸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만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첸보다 더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다. 강해상은 장첸보다는 좀 더 순하게 보이지만 한 번 돌진하면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빌런의 느낌은 장첸보다는 덜 인상적이지만 무섭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만이 가진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위해 몸을 키우고 서늘한 눈빛을 보여주는 배우 손석구의 연기가 강해상이라는 악인을 좀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인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빌런 강해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형사와 대적하게 되는 인물이다.
수퍼히어로 마형사가 주는 통쾌함
영화 <범죄도시2>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선이 악을 물리치는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성은 전편에 비해 조악해졌지만 선과 악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잔인함은 조금 덜어내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형사는 한국의 수퍼영웅으로 탈바꿈하였고 그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정의가 실현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에게는 꽤 위로가 되는 영화다. 현실에서는 애매한 선과 악의 구분이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명확하다. 이야기 구성 자체도 복잡하지 않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래서 더욱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마형사 역할의 배우 마동석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무서운 주먹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그가 맡은 한국영화의 배역 중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도시>의 마형사는 그가 맡은 여느 영화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캐릭터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상용 감독은 이번 영화가 연출 데뷔작이다. 과거 <범죄도시> 1편에서 조연출, <롱 리브 더 킹:목표 영웅>에서 조감독을 맡았었다.
많은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영화 <범죄도시2>는 절대 선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담는다. 마형사가 등장할 때 느껴지는 든든함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찰에게 느끼고 싶은 감정일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만은 선이 악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그 희열을 즐길 수 있다. 앞으로 꽤 많은 관객들이 마형사의 타격감을 즐기려 극장을 찾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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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범죄도시2>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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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속 가족에 관하여
한국 영화 속 가족에 관하여
엄마인데요 자식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그리는 가족은 주로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 두 종류로 나뉘곤 한다. 전자는 주로 윤제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가 있는 가족으로 서로 치고박고 다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자식은 부모만 생각하면 그리움에 눈물짓는 케이스다. 가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한국 상업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입양 등의 변주된 형태가 있긴 하지만 가족의 상봉 장면이 거의 반드시 등장하며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감정적인 장면이 필히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는 편부 가정보다는 편모 가정이 압도적으로 많고 차별당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며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성장하여 이해하고 눈물짓는다. 영화제목 하나 언급하지 않고 대충 썼는데 이 몇줄 쓰는 사이에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영화만 몇 편인지 모르겠다. 전자든 후자든 억지스러운 감동 장면이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가족은 가족이라는 진부한 서사로 마무리되는 통에 종종 대체 핏줄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묘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심지어 뛰어난 원작이 있는 경우에도 최루성 가족 서사를 위해 파괴된 원작의 팬들이 울부짖기도 하는데 신기한 건 그럼에도 높은 확률로 흥행이 보장된다는 점이다(예를 들자면.. <신과 함께>...). 소위 말하는 이런 노랑장판 감성은 인기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보다보니 익숙해진 관객이 볼 영화가 없어서 보는 것일까. 노랑장판 감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에도 한국 상업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가족 설정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레이디 버드>를 보며 부러웠던 건 모녀의 관계, 나아가 가족 설정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나이에 따른 수직관계가 아직까지 가족 내부에도 강하게 존재하는 동아시아 정서와 자녀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서구 사회의 정서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레이디 버드>에 그려진 모녀관계는 사뭇 달랐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엄마 매리언(로리 맷칼프 분)과 대립하면서도 사랑하고 매리언이 크리스틴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일은 없다. 극적인 사건 없이 담담하게 크리스틴의 성장담을 그려낸 <레이디 버드>는 모녀관계를 비틀거나 거대한 사건 없이도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자아냈다. 몇 년째 마냥 헐리우드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무렵 연초부터 <세자매>를 만났다.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라는 특이 조합이 무려 자매라니 그리고 셋이 주연이라니. 이 역시나 흔한 막장가족 서사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세자매>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자해를 일삼는 암환자이며 둘째 미연(문소리 분)은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막내 미옥(장윤주 분)은 누가 봐도 분노조절장애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미옥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숙과 미연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 세자매는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함께 성장한다. 가족을 향한 뒷담화와 애정이 공존하는 서사는 분명 한국 영화계에서는 드물다.
세자매 이외에도 세자매가 가진 각각의 가족도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모양새다. 희숙은 날라리 딸과 함께 살며 남편과는 별거 중인 것으로 보이고, 미연은 좋은 집에서 신실한 신자로서 교회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지만 둘째인 딸은 무슨 이유에선지 식사 기도를 하지 못한다. 미옥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혼남을 만났지만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는 소원하다(영화를 보면 안 소원한 게 신기하다). 묘사되는 특이 가족의 형태는 배우 김선영의 전작 중 하나인 <당신의 부탁>을 연상시키는데 전작에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선영은 이번에는 가족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당신의 부탁>, <세자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가족의 중심축은 엄마라는 역할이다(<당신의 부탁>의 영어제목은 <Mothers>다). 별의별 책임을 다 떠안아온 한국의 어머니들은(<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임수정 분)은 심지어 친자식도 아닌 사별한 남편의 아이 종욱(윤찬영 분)을 맡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의견을 말살당해왔다. 미옥의 캐릭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어떻게 본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 형태를 띠는 바람에 '엄마가 되는 것을 당하지 않은') 미옥이 유일하게 영화 내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희숙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울먹이면서밖에 말하지 못하고 보다못한 희숙의 딸이 욕을 해가며 대신 소리를 질러준다. 영화 내내 고상한 부잣집 사모님 코스프레를 하던 미연은 남편의 내연녀를 조용히 밟는 모습으로 성격을 드러내다가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고함을 지른다.
세자매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대단히 한국적이게도 무언가를 먹는 순간들이다. 희숙은 조촐한 밥상을 차려 마요네즈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조금씩 먹는다. 평생을 눈치보며 살아온 희숙은 식사마저 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지나 부잣집 사모님이 된 미연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든 포장하려는듯 식사를 정갈하고 풍부하게 차린 후 기도를 끝마치고서야 식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미연의 딸이 식사기도를 하지 못하자 결국 식사를 포기하고 딸을 방에 데려다 혼을 낸다(미연은 영화 내내 자신의 직계 가족들과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편의 내연녀에게 복수(?)를 한 이후 다음날 아침은 대충 가져온 식사로 때우는 모습으로 속내를 표출한다. 영화 내내 과자와 술로 식사를 때우던 미옥은 언니인 미연을 만나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후반부에는 엄마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어설픈 밥상을 차린다. 흥미로운 점은 자매들이 가장 잘 먹을 때는 서로를 만날 때이며 남이 차린 밥상이라는 점이다. 식사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희숙이 가장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은 미연을 만났을 때다. 서사에서 맥거핀으로 작용하는, 미연과 미옥이 여행가서 먹었던 식당은 결국 영화 내내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 미옥이 제대로 된 식사를 추억하려는 시도의 매개체다. 미연이 있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미옥은 그래서 어떻게든 식당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하며 끝내 그 장소를 찾지만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하지만 미연이 없어도 식사를 차릴 수 있게 된 미옥에게 더 이상 식당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세자매>의 서사는 어김없이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세자매가 뭉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묘사 양상은 파격적으로 다르다. 불우한 과거를 지닌 세자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영화상에서 피해의식을 간직한 약자로만 그려져 오곤 했는데 최소한 미연과 미옥은 변주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피해의식을 가진 채 평생을 사과하며 살아온 희숙에게 미연은 이제 그만 사과하라고 종용하고, 도리어 자식들을 평생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게 만든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가부장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자매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편을 들지만 아직 가부장제에 편입하지 않은 희숙의 딸 보미는 왜 어른들이 사과를 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막내 남동생이 갑자기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데서 시작한 이 장면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던 세자매가 합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세대를 건넌 여성들이 피해자의 위치를 부정하고 일어서는 장면이기도 하다. 각기 나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위치를 가지고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로 살아오던 여성들은 순간이나마 어머니라는 지위를 거절하고 보호받고 사랑받는 자식으로서의 위치를 돌려받을 것을 주장한다. 희숙은 동생들을 대신해 폭력의 제물이 되었던 전사였으며 미연은 막내동생을 보호하려 집 밖으로 도망나왔던 보호자였고 미옥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표출해왔던 예술가였다. 세자매가 서로를 피해자로서 연대하는 동시에 수직적인 가족관계에 맞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 장면은 세자매가 단순히 가족이 아니라 같은 피해를 공유한 동료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나 서로가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줄 것을 확인한 세자매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희숙은 암을 방치하는 대신 꾸준히 치료받을 것을 약속하고 미연은 별거한 남편을 무시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미옥은 미숙하지만 엄마의 역할을 해내기로 마음먹는다. 희숙이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암이 치료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미연이 남편없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지만 타버린 반찬과 간이 안 맞는 국을 차린 미옥의 밥상처럼 이들의 삶은 불완전하지만 제 기능을 할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그려지던 가족의 클리셰는 개성 강한 세 배우를 만나 흥미롭게 변주되었고 노랑장판이 아니라도 충분히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한 수많은 서사에서 엄마라는 역할을 강요받던 여배우들은 엄마를 넘어선 역할을 묘사해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자매>는 가족중심적인 최루성 억지감동 서사를 고집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드문 뒤틀린 가족영화지만 가족서사에서 여성서사를 추출하여 관객에게 신선한 서사를 선사했다. 이제 한국 영화계에서도 새로운 가족 서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
*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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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했던 비극보다 더 뜨거운 해방을 이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어색한 행동부터 불안한 눈동자까지 완벽하게 한 인물에 녹아든 포스터부터 해외 언론 매체들의 극찬까지 완벽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전 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27개를 석권하고 곧 있을 2022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열연이 빛나는 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스펜서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작품은 그녀 인생 전체가 아닌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노퍽 해안의 왕가 저택인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보낸 3일의 시간을 담으며, 가문의 성씨를 그대로 가져온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왕실의 강박적인 생활에 얽매인 채 고통받는 그녀가 한 사람으로 존엄성을 추구하며 스스로 나아가는 상징적 모습을 그립니다. 더불어 전형적인 전기 드라마의 형태보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심리 스릴러나 일종의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고, 그 외 주변의 소재나 인물들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녀의 마음을 투영해 보여줌으로써 상업성보단 예술성에 치중했다고 보시면 좋습니다. 만약 소재가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더 크라운’이나 ‘더 퀸’, ‘The Story of Diana’ 등 많은 영상매체들이 나와있으니 관람 전 미리 감상하시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다이애나 비, 어떤 모습이 담겼기에 많은 호평들을 받았는지 본격적인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스펜서 정보
그 누구도 전통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A fable from a true tragedy’이라는 문구와 함께 군사훈련을 방불케하는 분위기 속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식재료들을 옮기고
왕궁 수석 주방장 대런의 지시 아래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합니다.
1991년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디너가 진행되는 샌드링엄 별장,
왕실 가족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이제 남은 이는 엘리자베스 2세와 다이애나만이 남았습니다.
한편, 직접 운전해 오던 다이애나는 길을 잃고
주변 카페에서 들려 길을 물어보며 찾아오는 중이었죠.
묘연한 행방에 대런이 찾아 나서며 결국 만나게 되지만,
재촉하는 그에게 자신이 자란 곳에 헤맸다는 푸념을 하며
지각한 자신에 대한 식구들의 원망이 있을지 걱정하죠.
작은 해프닝과 함께 결국 가장 늦게 도착하며,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는 왕실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됩니다.
예고편│ Trailer
원제 : SPENCER │감독 : 파블로 라라인│각본 : 스티븐 나이트│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잭 파딩, 잭 닐렌, 프레디 스프라이, 스텔라 고넷 외 多│장르 : 전기, 드라마│상영 시간 : 116분│개봉일 : 2022년 3월 16일│국가 : 영국, 독일, 미국, 칠레│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4, 로톤 토마토 신선도 83% 팝콘 52%, IMDB 6.7, 메타 스코어 76점│수상 내역 : 34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여우주연상, 의상상) 포함 총 38개 영화제 수상(이 중 여우주연상 27개)│시청 가능 서비스 : 3월 16일 개봉 예정
# 영화 스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
저는 현미경 샬레 안에 놓인 곤충이에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단순히 다이애나와 왕실 가족들이
함께한 3일간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의 어지러운 심중을 대변하듯 부산한 재즈 멜로디의 오프닝부터
삭막한 저택 내부의 분위기는 답답한 공기에 둘러싸여
마치 공황장애를 겪는듯한 공포감마저 조성합니다.
왕실이라는 이름 아래 규율과 억압으로 각자의 개성은
말살당하고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박탈당한 채 시종일관
불안한 시선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처연함만이 상황을 대변할 뿐이죠.
빡빡한 일정에 맞춰 정해진 옷을 입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생활은
악몽처럼 묘사되고, 찰스 왕세자와의 갈등과 냉담한 왕가의 반응은
그녀의 섭식 장애와 공황 등의 병적 증세를 극심하게 만드니
이 자체만으로도 영국 왕실 안에서의 느꼈을 감정이 절실히 전해집니다.
작품은 이 같은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구속과 해방이라는 큰 주제를 두고
상당히 많은 은유적 표현을 곳곳에 뿌려두고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달려나갑니다.
왕실의 에스코트 없이 길을 헤매는 시작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벗어나고픈 열망을 드러내며
과거 자신이 입혀주었던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챙깁니다.
이는 결혼 이전 자유로웠던 자신을 되찾겠다는 행동으로,
결말에 이르러 왕실에서 주었던 옷을 걸어두며
허수아비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또 한 번 드러내죠.
이 같은 메타포는 왕실의 부속품으로 묶어두는 상징적인 진주 목걸이,
자신을 옭아맨듯한 옛집 사이의 철조망 등
여러 형태로 구현되는데 하나같이 왕실이라는 큰 규제에
억압되어 있는 자신의 불행함을 그리는 데 활용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자란 옛날 집을 향하면서 상황은 바뀝니다.
본인의 처지처럼 폐가로 변해버려 더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계단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앤 불린의 환영이
나타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성년의 그녀가 들판 위를 뛰는 장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들판이 존재하는 한 왕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자신처럼 사랑에 배신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가문의 옛집은 사라졌지만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죠.
그리고 다음날 이어진 꿩 사냥을 막아서는 순간을 통해
찰스 왕세자와 자신의 아들들을 분리시킴으로서
더 이상 지옥 같은 왕실에서의 성장을 목도하지 않겠음을 확연히 드러냅니다.
아마도 앤 불린과 다이애나라는 두 캐릭터가 가진 역사 속 상징성을 통해 그녀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발판이 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It's not just me who loves you!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등 연기력에서 정평이 난 배우들과의
호흡들이 든든히 떠받치며 때로는 주인공의 마음을 건드리고,
클래식과 재즈의 기묘한 만남이 돋보이는 조니 그린우드의 스코어가
올곧이 그 감정들을 탁월하게 표현해 주는 가운데, 역시나
불안과 혼란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다이애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왕실에서 느꼈을 모든 감정들을
대사나 작은 행동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며
왜 수많은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열연을 펼쳐줍니다.
일대기 전체를 바탕으로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과 불안정한 한 심리를 바탕으로 한 전개되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온갖 화려한 장식들과 음식들로 꾸며진 별장에서
그만이 느꼈을 불행과 외로움, 답답한 심정을 세밀한 연기를 통해
극대화하며 꾸며진 현실임에도 동조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깊게 남겨주죠.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특히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전날 밤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폐허가 된 옛날 집에서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되돌아가듯
과거 필름을 스쳐가는 독백 장면에서 두드려집니다.
여기에서 왕실의 아이가 아닌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은 물론,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꾸었던 삶에 대해
파노라마는 강한 여운을 남기고 이제 더 이상 억눌려사는 왕세자비가
아닌 다이애나로 돌아갈 것을 보여주죠. 이러한 함축적인 의미에서
클래식하게 드레스 입은 채 고개 숙인 포스터는 근래에 본 것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 영상에서는 힘겹고
버거운 가족 식사 후 구토하는 장면이지만, 결과적으로 왕가에 속한
모든 것을 뱉어내는 중의적 표현을 심고 있기 때문이죠.
정말 그녀의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 때문인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연출적인 특징이 큰 힘을
발휘한다기보단 원 맨 쇼를 묵묵히 지켜보는 관찰자의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재키’, ‘네루다’와 같이 실제 인물 그려왔던 전작들에서
보여준 대칭 구도의 촬영 기법이나 화면 질감과 색감을 활용한 연출,
과거처럼 느껴지는 그레인 필름 등은 오래된 동화 같은 영상미를
남기며 날카로운 현악기의 연주가 깔리는 음향과 함께
다이애나의 불안과 공포를 선명하게 대변해 주지만,
그녀의 연기를 뒤따라가며 앙상블을 맞춘다는 느낌이랄까요?
더불어 마지막 엔딩에 이르러 두 아들을 사냥터에서 구출한 뒤
도로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한 뒤 패스트푸드 KFC에 들려 드라이브스루 주문에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인 ‘SPENCER’를
당당히 외치는 모습은 해방이라는 묵직함으로 기억됩니다.
허수아비처럼 영국 왕실에 다 빼앗겼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그 자체를 되찾아 온 그녀, 슬프지만 그 고귀한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매기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처럼 그녀를 사랑하는 것 저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ps. 근래 대다수가 그렇듯 이것 역시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에 취중해있습니다. 그렇기에 취향에 따라 지루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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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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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도 겹치면 짙어질까
빗자루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 소박하지만 정리된 삶을 살아간다. 일반인들이 무시하는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닦고 청소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책을 읽다 잠든다. 항상 똑같은 조용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아저씨. 그런 그의 굳어진 얼굴이 풀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때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 그리고 코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히라야마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사람들과의 거리를 지키고, 자신의 작은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화장실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늘 깨끗하게 닦고 있다. 깨끗하게 콧수염 정리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또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혼이 녹슬지 않도록 가꾼다. 그런 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작은 소중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지 점점 깨달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깊은 사람은 그만큼 큰 상처를 지니고 있는 법이고,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히라야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 정도의 깊이에 도달했단 말인가. 삶의 모든 것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히라야마는, 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이리라. 그 음악과 햇빛 사이로, 히라야마의 깊은 상처는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삶 사이에 빛과 그림자가 가득한 꿈을 그려 넣는다. 시각세포는 두 가지가 있다. 색을 인지하는 세포와 빛과 그림자를 인지하는 세포. 밝은 곳에서는 색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빛과 그림자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코모레비에 대해 자막까지 넣어가며 설명을 했지만, 코모레비는 빛이 주체다. 빔 벤더스가 설명한 히라야마의 과거 깨달음의 시점에도 빛이 중요한 모티브라고 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바로 그림자다. 히라야마가 자기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 중에 '影(영: 그림자)'라는 한자가 유독 두드러지며,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서로 겹쳐진다. 코모레비는 일렁이는 햇빛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바로 일렁이며 겹쳐진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그림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자신의 과거를 딱히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과거를 입에 담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그런 깊은 상처일터다. 바로 히라야마가 살고 있는, 불에 탄 흔적이 얼핏 보이는 낡은 집처럼.
나에게도 그런 짙은 상흔의 과거가 있다. 삶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고, 원망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 위로의 말이나 손길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멀리 떠났던 시절. 그 달동네에는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쉬던 커다란 느티나무와 평상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 평상 나무 그늘에 누워서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코모레비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다. 일렁이는 햇빛은 마치 내 삶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위안과 희망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 시절을 견뎠다. 히라야마가 코모레비를 보며 잠시 평안해지는 그 미소는 바로 그 시절 나의 미소였다.
히라야마와 같이 맥주를 나누던 '그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물어본다. "그림자도 겹치면 짙어질까요?" 히라야마는 당장 해보자고 한다. 그 남자는 그림자가 똑같아 보인다고 하고, 그림자 전문가인 히라야마는 짙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빛은 파동이기도 하므로 회절현상이 일어난다. 광원이 완벽하게 1개라고 하고 반사하는 물질이 없어도, 그림자 속에 들어간다고 해서 완벽히 빛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림자 속에도 주변 빛의 회절현상으로 빛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회절되는 빛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겹치면, 점점 어두워진다.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겹쳐지는 그림자를 많이 본 히라야마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상처도 겹치면 짙어진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렇게 겹치고 겹친 그림자들의 사이가, 바로 코모레비처럼 빛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와 그림자의 틈, 상처와 상처의 틈, 아주 작은 공간들, 비어있는 줄 알았던 그곳이 희망이라는 걸,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순간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그의 삶은 코모레비와 같아졌다. 그가 항상 흑백 사진으로 남기는 그날그날의 코모레비는, 항상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 소중한 그의 일기인 것이다. 일기는 한자로 日記라고 한다. 히라야마는 말 그대로, 그날의 태양을 기록하고 있다.
깊은 상처는 히라야마에게 모든 날들이 완벽하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날도 모두가 완벽하다. 그림자의 뒤엔 빛이, 죽음 뒤엔 생명이, 이별 뒤엔 사랑이, 눈물 뒤엔 웃음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이 사라져가는 생의 한 뒤켠에, 빔 벤더스의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낡은 카세트 테잎의 노래처럼 탁한 빛으로 관객의 마음 속을 비춘다. 그러기에 모든 나날들은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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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함 뒤의 악의, 두 소녀가 갇힌 집
할리우드 제작사 A24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회사다. <유전>, <미드소마>, <펄>처럼 감각적인 공포 영화를 선보이는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언컷 젬스>, <더 웨일> 같은 드라마 장르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오락성과 작품성 중 하나만을 골라 집중하기보다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점이 A24의 강점이다. 그래서 A24의 로고가 뜨는 순간,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는 4월 2일 한국에 개봉 예정인 <헤레틱>도 그런 A24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나 피 튀기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A24가 제작한 영화 중 7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나, 정작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틱>은 두 명의 소녀 선교사가 외딴 지역에 사는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늘 그렇듯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 애쓰지만, 비오는 날 만나게 된 리드의 집은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거실의 불이 마음대로 꺼졌다 켜지고, 문이 잠기거나 창문이 어딘지 모르게 작고 답답해 보이며, 집주인 리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쩐지 기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첫번째 감정] 미스터 리드의 따뜻함
첫인상에서 리드는 순수하고 인자한 노인처럼 보인다. 팩스턴(클로이 이스트)과 반스(소피 대처)가 노크를 하자마자 그는 문을 활짝 열고, “얼마나 날씨가 험악하냐”며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감미로운 차와 파이를 내오며, 별안간 찾아온 두 선교사를 흔쾌히 환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누군가가 방문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소녀들은 ‘이 집에서 포교 활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나 리드의 친절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숨어 있다. 처음에는 소녀들의 종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질문이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교리나 신앙에 대해 묻는 것 같지만, 문득문득 끼어드는 리드의 말에는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이때 팩스턴과 반스는 말은 이어가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관객 역시 리드의 웃음 뒤편에 감춰진 음산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리드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처음엔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해석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마치 미로 같다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미소와 구불구불한 주름 사이 어디선가 악의가 비죽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이처럼 리드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라는 첫 이미지를 무기로, 두 소녀를 천천히 자기 세계로 끌어들인다. 관객에게도 그 과정이 기이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이는 휴 그랜트의 섬세한 연기가 만들어낸 섬뜩한 온기 덕분이다.
[두번째 감정] 반스의 의심
두 사람 중 먼저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쪽은 반스다. 팩스턴보다 한결 냉철하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스는, 리드가 내놓는 말들에 무언가 꼬투리가 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다. 영화는 반스가 아주 독실한지, 혹은 단지 친구를 돕기 위해 전도 활동을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상대적으로 세속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의심부터 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리드의 대화가 알쏭달쏭해질수록, 반스는 하나씩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조도가 계속 바뀌는 집 안에서 ‘혹시 우리가 갇힌 건 아닐까’라는 경계심을 키워나간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온 신앙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괴상한 현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이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이 단순한 신앙적 호기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인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의심이 모든 문제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이상한 낌새를 잡아도, 함정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반스는 분명히 “이 집은 위험해”라고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탈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리드가 던지는 미끼에 말려들면서, 불신이 불신을 낳고 갈수록 꼬여만 간다. 그렇다고 반스가 완전히 패닉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은 바로 반스이며, 관객은 그녀의 시선에 의지해 이 집의 이면을 함께 탐사하게 된다.
[세번째 감정] 팩스턴의 믿음
팩스턴은 두 소녀 중 좀 더 신앙심이 깊은 캐릭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진심으로 종교에 귀의했고, 그 믿음으로 포교 활동을 해내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리드의 호의에 별다른 의심 없이 순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반스가 불안감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팩스턴 역시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팩스턴은 가장 마지막까지 신앙적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려 든다. 반스가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면, 팩스턴은 종교적 신념을 통해 “끝까지 견디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이런 상반된 접근 덕분에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팩스턴이 보여주는 호기심과 집착은 더욱 흥미롭게 부각된다.
결국 팩스턴이 맞닥뜨리는 마지막 시점에서는, 리드가 유도해온 괴이한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차분하고 약해 보이던 팩스턴이 어떻게 반격에 나서는지를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과연 어떤 국면을 열어줄지, 그리고 그 믿음이 리드의 끊임없는 조작과 통제를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관객은 팩스턴의 시선에 몰입하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하게 되는 새로운 호러영화
<헤레틱>은 겉으로 보면 “종교와 신앙의 충돌”을 다룬 호러 영화로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리지널과 표절’에 대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소재—모노폴리와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의 역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립(Creep) 노래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설정—는 마치 하나의 ‘보드게임’을 펼쳐두고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집 안 곳곳에 배치된 기묘한 창문, 눈부실 만큼 화려한 벽지 등은 관객에게 소름 돋을 만큼 치밀한 미술 설계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 밀실 안에서 “이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질문이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예술, 창작, 인간관계 전반에 해당하는 주제로 확장된다.
특히 휴 그랜트가 맡은 리드 캐릭터는 이전에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영화 속에서 보여준 “스윗한 남자”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노팅힐>의 사랑스러운 남주인공, <웡카>에서 보여준 유쾌한 움파룸파의 일면이 여기서는 광기 어린 악역으로 돌변한다. 그의 많은 주름살이 처음엔 인자해 보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미로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 이중성에 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괴이한 플레이를 하는가”라는 의문이, 극의 긴장도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동력이다.
함께 출연하는 소피 대처는 <컴패니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이번에도 반스 역으로서 차분하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주며, 팩스턴 역의 클로이 이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두 소녀의 미묘한 대비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견인하는 만큼,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매끄럽게 형성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헤레틱>의 완성도에는 쟁쟁한 제작진도 한몫한다. 먼저 감독 스콧 벡 & 브라이언 우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각본을 맡아 호러 장르에 확실한 흥행력을 입증한 듀오다. 밀실 구조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연출, 사소한 디테일을 공포의 장치로 변환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촬영감독 정정훈은 <올드보이>, <웡카> 등을 통해 독특한 화면 미학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밀폐된 공간과 화려한 미장센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미술감독 필립 메시나는 <오션스> 시리즈의 세련된 스타일에 더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집을 지옥의 한 단면처럼 형상화했다. 이처럼 현장감 넘치는 세트 디자인과 공포를 야금야금 스며들게 하는 촬영 기법이 결합돼, 관객은 마치 보드게임 속 말을 움직이듯 기괴한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종합해보면 <헤레틱>은 단순한 호러영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종교와 믿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창작과 표절의 문제, 두 소녀의 우정과 의심, 그리고 휴 그랜트가 선사하는 서늘한 이중성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뒤섞여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A24 특유의 심리적 공포가 흐르니 “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꼭 챙겨볼 만하다.
4월 2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평소 A24가 만든 영화들을 좋아했다면 <헤레틱>도 분명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만약 기존 점프 스케어 위주의 공포영화가 식상해졌다면, 이 밀실 스릴러의 서늘한 재미를 통해 새로운 공포의 영역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집 안 가득 퍼지는 의심과 믿음의 대립, 그 끝에서 기다리는 무언가는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 묵직하다. 영화를 본 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신념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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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4]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액션의 타격감을 업그레이드해 돌아온 시리즈-고질라vs콩
고질라 시리즈는 2편이 개봉되었었고, 킹콩 시리즈도 2편이 개봉되었죠.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vs.콩은 고질라 시리즈의 연속선 상에 있습니다.
킹콩의 앞선 두 편은 무시되거나 가볍게 처리되고 있죠.
그런데 이번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킹콩이에요.
고질라는 사람과 소통을 하긴 어려운 괴수인데 반해 킹콩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화도 가능하죠.
그래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쪽은 킹콩 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메카 고질라가 등장하고 킹콩과 고질라가 대결을 벌여요.
이들이 싸울 때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그 타격감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죠.
과거 시리즈와 비교할 때 서사는 역시 엉망이지만, 액션이나 CG는 더 좋아졌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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