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4-09-08 21:52:51
[SICFF 데일리] 사과의 무게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 리뷰
[SICFF] 사과의 무게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 리뷰
감독] 에이릭 새터 스토르달
시놉시스] 11살 아만다는 새로 전학 온 다운증후군이 있는 라스를 특별히 돌봐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놀랍게도 아만다는 라스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지만, 친구들 사이에 속하기 위해 라스를 배신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만다는 라스와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잃게 된다. 용서 받기 위해, 아만다는 용기내어 자신을 드러내고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스포일러 유의#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
영화 라는 웃음버튼에서 아만다는 새로운 학기를 맞이해 고학년으로써 신입생과 짝꿍이 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색다른 제안을 받는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라스라는 친구가 전학을 오는데 아만가가 짝꿍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처음에 아만다는 이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한다. 또래 집단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이 시점에서 자신과 조금은 다른 라스가 자신의 짝꿍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벌어질 미래의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 앞에서 라스의 짝꿍을 아만다라고 소개하며 아만다와 라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해리포터를 좋아하니 친해지기 쉬울 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서로 짝꿍이 된 라스와 아만다. 아만다는 라스에게 곁을 내주려 하지 않지만 라스는 천천히 아만다에게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집에서 같이 놀자며 집을 초대를 하고, 그곳에 라스의 아빠와 라스의 행복한 마법 놀이를 보며 아만다도 그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리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라스와 아만다. 아만다는 라스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라스의 언어인 마법언어로 라스와 소통을 시작했고, 라스의 세계에서 라스의 시각으로 그와 함께 놀이를 시작한다.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은 아만다와 라스가 친해지는 이 모습을 통해 우리가 누군가와 친해질 때 각자의 세계가 융합되어감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과의 무게
서로에게 편안하고 함께 있을 때 즐거운 존재가 된 라스와 아만다. 하지만 라스는 자신의 마법 언어를 학교에서도 사용하길 바랐고, 아만다와 이 과정에서 조금씩 부딪히게 된다. 아만다의 입장에서는 마법 언어가 학생들의 놀림을 받을 것이라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난 라스는 춤을 추다가 마법언어를 외쳐버리고, 흥분한 라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만다는 어쩔 수 없이 자신 역시 마법언어를 쓰고 만다. 그래서 모두의 웃을 사버리게 되고, 이 보든 상황이 영상으로 녹화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완지라는 폐쇄형 블로그에 그동안 라스의 모습을 올리고 있었다. 사이버불링이 시작된 것이다. 아만다는 이를 알게 되자 선생님에게 말을 하겟다며 당장 그 블로그를 없애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라스와 함께 노는 아만다의 사진과 영상을 게시하겟다며 협박을 한다. 또래집단으로부터의 배척이 무서웠던 아만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영상을 그들에게 넘기게 되고,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찍은 라스의 웃긴 사진이 공개되며 라스에게도, 학교의 모든 이들에게도 실망을 안기게 된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아만다. 그녀는 오랜시간 라스에게 전화도 하고, 집에도 직접 착아가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진심을 전할 방법은 라스의 언어로 라스의 방식대로 그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위해 일단 아만다의 오랜 친구들에게 찾아가 그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성탄제에서 라스가 만든 마법의 언어로 된 공연을 하면서 라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얼마나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잇었다. 그저 말 뿐인 ‘미안해’가 아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그 표현의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무게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에 사과의 무게를 알려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은 어린 아만다의 진심어린 사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되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뻔뻔함에 부끄러운음 느끼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4. 9. 5. (목) 19:00 롯데시네마 은평 1관
2024. 9. 8. (일) 14:00 롯데시네마 은평 6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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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비저블맨 -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졸라온다는 것
의외로 고전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많다. 옛날 영화는 진부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편견과는 다르게 지금 봐도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다. 특히 공포 영화들이 그러한데, 개인적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나, 무성영화로 가보면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지금봐도 보는 이들을 진정한 공포에 빠지게 하는 걸작들이다. 유니버설의 다크 유니버스는 고전 공포가 가진 창의력의 힘을 빌려온 것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인비저블맨은 1933년의 "투명인간"의 리메이크 영화이다.
필자가 이번에 리뷰하는 영화 "인비저블맨"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공포를 보여주는 방식의 능숙함에 있다. 한국 공포 영화 중 개인적으로 졸작으로 평가하는 "곤지암"과 비교해보자면, 곤지암은 그냥 유령의 집처럼 점프스케어 요소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만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걸로 그치는데 반해, 이 영화는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후반부에 분출해낸다. 투명인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여러가지 힌트로 제공하면서 보이지 않는 이가 스크린에 존재한다는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인간은 붕대를 두르고 모자를 쓴 그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는 리메이크를 하면서 투명인간을 현대화 시켰다. 바로 투명 슈트라는 SF적 요소를 차용함으로서 말이다. 현대 시대는 옛날과 달리 초현실적인 요소가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 현대화를 한것이라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미래공학적인 느낌을 주어 더 긴강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다크 '유니버스' 작품 답게 후속 작품과의 연계성을 제공하고 납득할 수 있는 엔딩까지 보여줌으로서 다크 유니버스의 첫작품인 "미이라"의 심각한 부진을 충분히 회복하고도 남을 영화라 평할 수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공포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매우 기분 좋게 생각한다. 이번 인비저블맨의 흥행과 비평의 긍정적 모습을 보아, 다크 유니버스의 후속 작품들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공포 매니아라면 꼭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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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온 이들의 아름다운 견고함이 바벨탑을 세워 올리다.
브루탈리스트. 이는 건축계의 한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20세기 초부터 그 인기가 시작된 브루탈리즘은 건축에 사용된 자재들을 전부 노출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해 흉물스럽다거나 아름다워야 할 건물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노출 콘크리트, 노출 인테리어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브루탈리즘의 시대적 인정을 반증할 것이다. 필자는 이 브루탈리즘을 '솔직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콘크리트, 철골, 대리석 등 사용하는 자재들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인 구조와 함께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 마천루와 같은 건물을 휘황찬란한 유리로 꾸며낸 것만큼이나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영화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멋있고, 사람들이 감탄하고, 좋아할 부분만을 채용하여 그를 빛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즐기게 하여 관객 스스로가 인물에게서 희노애락의 복합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그 사조처럼 인물과 그 인물을 뒷받침해주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서사적 구조 그리고 메시지까지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아주 솔직하면서도 맹렬하게 향해간다.
- 철골만큼이나 단단하지만 그만큼 차가운 영화적 구조
영화는 '서막 -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 - 인터미션 -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보존 - 에필로그'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마치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데, 특히 본 작품의 유별난 특징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바로 인터미션이다. 본 작품의 경우 러닝타임이 215분인데, 본 작품만큼이나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마저도 별개의 인터미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 왜 인터미션이 존재하는지는 꽤나 중요하게 보여지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서사의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서막과 제1막은 가족들 품에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게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작품의 주인공 "라즐로"의 고군분투 적응기를 비춘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수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은 관객들이 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한 재능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2막에선 "라즐로"가 "해리슨"을 만나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해내는 과정, 그 안에서의 갈등, 그 속에 비춰지는 인간의 본질과 아이러니함을 비추면서 에필로그에선 그 이야기들을 모두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정리한다. 위 설명에서 느낄 수 있듯, 각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도 깊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영화적 미장센마저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소화해내기엔 관객 이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깊이감을 보존하기 위해 인터미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인터미션 자체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화면을 유지한 채 무(無)의 상태로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 "라즐로"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조카딸을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동시에 누군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는 것만 같은 ost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터미션이라는 시간을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체험의 시간으로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별난 특징은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작품이 시작되고, "라즐로"가 미국에 도착해 연줄이 있는 기회의 땅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버스를 타면서 타이틀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선 타이틀,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들, 유명 배우 몇 명의 이름들이 디졸브되는 식으로 간단하게 비푼다. 그러나 본 작품의 경우엔 로우 앵글로 저무는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1인칭 시점을 스크린에 띄운 채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여주게 되는데, 한 두명의 이름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의 이름을 보여준다. 또한 엔딩 크레딧의 경우, 화면이 암전된 후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좌측에서부터 우상향하는 식으로 엔딩크레딧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이러한 특징들의 이유엔 첫 번째, 작품의 전반적인 유별난 특징,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들을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암시하는 역할을 위함이고, 두 번째, 작품 내 이야기의 주축인 건축에 있어서 사선과 수평이라는 개념을 서사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해나가는 전반에 걸쳐 드러내고자 함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유대계 헝가리인인 천재 건축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부자의 이야기를 작품에선 다루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배경사를 빼놓고 서사를 풀어나가기엔 한계가 존재해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과거사를 스스로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드러내게 하고, 결코 플래시백과 같은 부연의 영화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길을 달려가는 버스, 나아가는 기차, 앞으로 향하는 배 등의 수평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로우앵글과 롱테이크를 곁들여 계속해서 찍듯 이야기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아가게끔 펼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들이 앞으로만 달려나간 후 남은 그 흔적들, 그 발자취들이 곧 과거이자 역사였고, 영화는 현재와 앞으로의 지향점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합쳐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처럼 영화의 본격적인 서사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굉장히 많은 요소의 특징들을 캐치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이들 모두는 본격적인 서사와 그 장대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는 데에 탁월한 역할들을 해나간다.
- 튼튼한 시멘트벽도 연약한 액체였던 것처럼 - 영화 속 주 인물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영화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걸까 아님 다른 뜻이 있는 걸까?" 그 인물이 칭찬 받아 마땅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법한 장면들까지도 서슴없이 보여주는 인물 중심 작품들이 꽤나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을 볼 때면 필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본 작품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은 것만 같다.
필자의 답은 '인물 중심 영화라고 해서 그 인물을 예찬하기 위해서만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물을 구사하는 방식마저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브루탈리즘'스럽게 표현하였다.
1. 라즐로 토스
작중 주인공이자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즐로 토스"는 헝가리에서도 시립 도서관을 지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해 그의 프로젝트는 모두 무산되었고, 가족들과도 강제로 생이별하게 되어 도망치던 중 그의 선택으로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쇼트 이후 곧바로 "라즐로"를 등장시킨다. 어둑한 어딘가, 잠에서 깬 그는 급하게 자신의 짐을 챙긴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너무도 어둑해 이곳이 어디인지 쉽사리 분간이 안 되던 그때, 그는 밖으로 향하였고, 그제서야 관객들은 그곳이 이민선임을 알게 된다. 이후 카메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는데, 이를 뒤틀린 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마치 미국으로 온 "라즐로"를 향해 미국은 환한 미소보다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작품이 "라즐로"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즐로"가 비운의 천재 건축가로서 그의 고단한 삶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만 담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게끔 제작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도착하자마자 한 그의 첫 행보는 다름 아닌 사창가에서의 성행위였다. 또한 이민선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도 꼭 보자는 약속을 서로에게 연거푸 했음에도 그 이후 그에 대한 언급도, 만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지고 그의 인성적인 부분을 질타를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무례하게 작업 인부를 쫓아낸다거나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불쾌한 눈빛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반대의 면 또한 비추는데, 그의 독창적인 브루탈리즘 건축법을 활용한 건축물들을 통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그가 출신, 종교, 외양, 성격 등으로 천대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동정심이 가게 했고, 그가 건축에 몰입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마저 들게 했다. 이렇듯 영화는 한 인물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뤄, 한 인간에게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강직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한 지식인에 대해 관객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했고, 영화는 그의 복합적인 면모가 어떤 식으로 그의 건축에 담겨지는지를 엿볼 수 있게끔 치밀하게 계산되어 표현했다.
2. 해리슨 리 밴 뷰런
영화 속 악역이자, 동시에 영화 내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은 "라즐로"가 "해리슨"의 아들 "해리"에게 청탁을 받아 "해리슨"의 서재를 공사하던 중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마주한 아수라장이된 집에 화가 나 "라즐로"를 쫓아낸 "해리슨"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다소 다혈질적스러워 보이고,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후 "라즐로"에 대한 사회적 평판, 공사된 서재의 상태 등을 미루어 보아 그에게 사과 겸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해리슨"은 그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파티 이후 "라즐로"와의 독대를 통해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 속엔 "해리슨"도 "라즐로"가 겪은 고통과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해리슨"이 작중 인물들 중 가장 입체적인 특징을 지닌 데에는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해리슨"이 없었다면 "라즐로"는 스카우트될 수도,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겐 다른 직장을 추천해줬으며, "라즐로"가 다른 이들과 스타일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면 언제나 "라즐로"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해리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기업의 후계자가 된 가족경영의 수혜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사로 말했듯 전쟁 중에 선박을 만드는 사업을 했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어 이득을 본 자수성가형 부자로 추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행위를 다시 관찰하면, 다소 어색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그의 아들의 소개와는 달리 책을 읽는 장면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라즐로"가 만들어준 멋진 서재와 독서용 의자 또한 독서용이 아니라 면도용 의자로 사용되었다. 그의 서재의 책들 또한 모두 초판본이라는 점 그리고 "라즐로"가 만든 서재에 대해 최초엔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외부에서 칭찬이 일자 그제서야 "라즐로"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점 또한 그의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엔 다소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된다. 또한 "라즐로"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중후반부 있었던 일을 미루어본다면 영화는 "해리슨"에 대한 인물 관객 평가를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영국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자 그는 돌연 "라즐로"에게 그의 구두닦이 같은 영어 발음이나 고치라고 농담한다. 어쩌면 그저 웃자고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엘리자베스"를 처음 맞이한 자리에서 "라즐로"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려는 태도 그리고 농담 후 급기야 그에게 동전을 던지고, 다시 주워달라는 그의 행동엔 그의 경박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양질의 교육, 화목한 가정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영화는 그의 이러한 점을 그의 경박스러운 태도를 통해 표출시켜 했고, 이를 구체화시켜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어쩌면 이는 "라즐로"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자수성가하기 위해 지나온 세월들과 그 속의 시련과 아픔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도 보여진다. 결국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은 그와 프로젝트를 재개하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에서 그를 강간하는 것으로서 폭발하고, 이는 "엘리자베스"에 의해 고발되어 그는 행적을 감춘 채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3. 엘리자베스 토스
서막-제1장과 제2장-에필로그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유무이다. 서막과 제1장에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지 않은 채 "라즐로"에게 그녀가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만 그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부에선 그녀가 고국에 남은 채 얼만큼 "라즐로"를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녀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등으로만 그녀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 우린 곧바로 "라즐로"가 승강장을 찾아 "엘리자베스"와 조카딸 "조피아"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영양실조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다리의 상태만큼이나 그녀의 표정과 몸 상태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초반부 등장 방법 그리고 그녀의 전반적인 연약한 외양은 2부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 역전이 되고, 어쩌면 그녀는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강직한 모습을 지닌 인물로서 이후 장면들을 휩쓴다.
그녀는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되어 힘들어 하는 "라즐로"에게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그간의 노력과 고생을 충분히 이해하려 했으며, 어쩌면 "라즐로"는 건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가족과의 또다른 이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녀만큼은 가족의 이별에 극렬히 반대했고, 가장 가슴 아파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재벌가 사이에서도 그녀의 지식 수준은 전혀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해리슨"은 그녀에게도 지적 대화에서 밀려 "라즐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녀에게서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상태의 그녀가 보인 강직한 행보는 오히려 "라즐로"의 강직한 재능과 건축가로서의 재능에 비해 한 없이 연약하고, 나약한 내면과 비교된다. 그녀의 이러한 강인함은 결국 영화의 종반부 "해리슨"에 대한 폭로로 증명된다.
"라즐로"에게 그동안 미국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아왔고, 어떤 고통을 품어왔는지 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해리슨"과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가 강간당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물론 그의 아들 "해리"마저도 이에 반발하여 그녀를 쫓게 되고, "해리"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으려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다. 이 일련의 장면, "엘리자베스"가 집에 도착해 "해리슨"에 대해 폭로하고, 쫓겨난 후 "해리"가 "해리슨"을 찾는 그 과정을 영화는 롱테이크로 촬영했고, 인물의 시점쇼트가 아니라 각 장면 속 중요한 인물이나 행동하는 인물만을 카메라 안에 담아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이는 마치 그 사건 속 모든 인물들을 카메라가, 영화가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고, 이는 결국 답을 내릴 수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혼란한 인물들을 대변하고, 동시에 자격지심의 폭발, 그로 인해 벌어진 폭로, 또 그로 이어진 가족들의 분열을 일련의 연장선에 두어 관객들이 직접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게 촬영하였다.
- 레지스탕스의 염원이 모인 청회색 대리석처럼 모두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인스티튜트
미국에서 고난에 빠진 "라즐로"를 빼어내 새로운 일자리, 아메리칸 드림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한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담은 건물을 지어달라 부탁했다. 그 부탁이 바로 '밴 뷰런 인스티튜트',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건축물이다. 영화는 그 인스티튜트를 만드는 제작하는 과정부터 디자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발표함으로써 허가받는 과정들을 모두 세밀하게 담아냈는데, 이 전 과정을 보고난 후면 이 인스티튜트는 그저 서사의 배경이나 건축물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처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해리슨"은 몇가지 사항을 첨언한다. 도서관, 체육관, 예배당, 강당이 모두 모인 공간이었으면 하고, 특히 체육관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 시절 레슬링 경기를 하러 다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꼭 포함시켜줬으면 한다는 점이다. "해리슨"이 건물을 만들고 싶어했던 최초의 이유엔 자신만의 원초적 바람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장면들에서 "해리슨"은 "라즐로"의 건축에 대해 그리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주위 평가에 매료되어 그를 예찬하기 바빴고, 이후 장면에서도 술을 모으던 그가 술 수집 취미에 한계를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자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건축에 이해나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한 이유는 바로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술 수집 취미를 말하는 대사에선 결론적으로 "해리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고, 그제서야 하늘을 바라볼 건물을 짓겠다고 말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는 자신만의 바벨탑을 통해 유한한 삶에 대한 욕망을 건물로써 풀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는 "라즐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면 "조피아"의 연설을 통해 "라즐로"가 어떻게 건물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라즐로"는 인스티튜트를 제작할 당시, 자신과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수용된 수용소의 크기, 사이즈, 소재 등을 차용하여 제작하였고, 인스티튜트를 통해 그 당시의 고통과 상처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건축에 담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나의 공통된 건물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생각, 다른 염원을 가진 두 인물이 모여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결국 인스티튜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화물을 옮기던 열차가 폭발하여 공사가 중단되었고, 공사 중 "해리슨"의 실종과 "라즐로"의 알 수 없는 행방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조피아"의 연설 중 그녀는 인스티튜트가 1972년까지 제작이 멈췄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인스티튜트 공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중단되는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꽤나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를 재개시킬 수 있었던 과정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등은 다루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실패와 극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실패를 비중있게 다룬 만큼 극복 또한 신중히 다루지만, 영화는 그 사이를 생략시킨 후 "해리슨"의 변호사가 "라즐로"를 다시 찾는 씬, "조피아"의 연설씬을 통해 관객이 그 전 과정을 스스로 상상하게끔 했다.
인스티튜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십자기 형상 빛 또한 이 점을 공유한다. 시민들에게 건물을 소개해주기 위해 마분지로 만든 모형 건물에 빛을 쏘아 재현하는 씬이 있으나 관객에겐 그 빛이 어떤 형상으로 그려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이후 장면에서도 언급 정도로만 알 수 있었는데, 영화는 "해리슨"이 사라져 건물 안을 살피던 극의 종반부에서 십자가 모양의 빛 형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이의 중간부를 생략하고, 종반부에서 모든 실마리를 푸는 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건물을 제작하게 된 계기도, 만드는 과정 속 고난을 이겨낸 과정도,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형상마저도 말이다. 영화가 이렇게 생략을 한 이유엔 영화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지 않는다. 과거사가 장황할 것만 같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오히려 그 과거사에 대해 씬적으로 다루지 않느다. 영화는 당시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적응의 시련과 고통, 차별을 담아냈고, 특히 한 명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또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 프로젝트를 수행해내기 위해 수 많은 시행착오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종반부 에필로그에서 "라즐로"의 조카딸 "조피아"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이전 배경,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통해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속에 인간으로서 겪는 아이러니함과 복잡한 심적 요소들을 담아 인간 삶의 의미와 그 한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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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 Sudan, Remember Us
France, Tunisia, Qatar | 2024 | 78min| Documentary |12세 이상 관람가| Asian Premiere
▶Director
힌드 메데브 Hind MEDDEB
▶시놉시스
그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수단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혁명은 시적이며, 말의 힘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의 이야기가 얽히는 가운데, 영화는 군부 권력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혁명의 파편을 재조립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특별 섹션 ‘다시, 민주주의로’는 2024년 12월 3일, 다시 위기에 봉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마주하고, 그 혼란과 후유증 속에서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다룬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하고자 기획된 섹션이다.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는 ‘다시, 민주주의로’ 섹션을 통해 소개된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들 중 한 작품으로, 2019년 군부 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섰던 2019년 뜨거웠던 수단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시민의 참여와 민주주의를 향한 항쟁으로써 과거 우리의 민주화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힌드 메데브 감독의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는 젊은 청년 세대, 특히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군부 독재에 맞서기 위해 용감하게 거리로 나섰던 2019년 수단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오마르 알 바시르 정권은 무려 30년 동안 독재를 지속하였으며 2019년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이때 정권 교체에는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수단 시민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청년들은 단순히 거리로 나서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템포와 장르의 노래와 영화의 도입부, 긴 벽을 따라 등장하는 벽화, 그리고 시 등 다양한 예술을 활용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인권과 평등을 주장한다. 뜨거운 시민들의 마음은 과거 80년대 광주에서 일어났던 바와 유사하게 군인과 정부에 의해 짓밟히기도 하고, 죄 없는 시민들이 무자비한 탄압과 제지, 폭력을 경험한다.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는 이런 상황을 리얼하게 담는다. 이는 초점이 나간 채로 촬영된 풍경이나 흔들리며 요동치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전해진다.
영화 속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용감한 걸음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 듯, 그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염원이 담긴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 등 다양한 형태로 목소리를 내는데, 작년 말, 서울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응원봉이 등장하고, 우리의 염원과 유사한 가사가 담긴 대중가요를 함께 부르거나 개사하기도 했던 광경이 떠오르며 청춘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함께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음악,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직접 신체를 거쳐 소리를 내는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과정이 전제되므로 악보에 단순히 박제된 음악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청각적 원리로써 그 어떤 것보다 감정적인 연대를 구축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렇게 다수가 함께 부르는 것을 ‘유니즈넌스’ 라고 하는데, ‘유니즈넌스’ 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 사이에 하나의 이념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념을 실천하도록 하는 원동력을 제공함으로써 그 효과가 더욱 막강해져 권력층을 위협하기에도 충분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음악의 활용(제창)은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에서 시민들의 연대와 마음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를 통해 관람자 또한 화면 속 그들과 연대하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와 더불어 ‘나’라는 1인칭 시점의 나레이션의 등장은 영화가 마치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영화와 관객 간의 거리, 영화 속 등장인물과 관람자의 내면적 거리를 좁히며 친밀감을 준다.
‘다시 민주주의로’ 섹션의 소개처럼, 자유와 권리, 혹은 인종과 차별, 난민과 전쟁 등을 둘러싼 수많은 내전과 분쟁, 분열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만연하며, 알려지지 않은,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에서 다루어진 그들의 이야기 역시 그러한 이야기들 중 하나다.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는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기회를,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우리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타국과 연결되고, 그들과 우리가 걸어온 길에 관심을 갖고 기억할 기회를 말이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 4. 30. ~ 2025. 5. 9.
▶상영일정
2025. 05. 01 (목)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7:30
2025. 05. 04 (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13:30
2025. 05. 06 (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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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의미
미니언즈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영화 《슈퍼배드》를 봤다. 이 귀여운 친구들을 그동안 외면했다니,, 옛날에는 왜 사람들이 미니언즈에 열광하는 줄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냥 귀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여움을 봐보고자 미니언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섭렵중이다.
영화 《슈퍼배드》 시놉시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한 번에 훔쳐버린 기상천외한 주인공 그루. 그는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절대 훔칠 수 없는 것을 하나 훔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것은 바로 달!!!달을 훔치기 위한 최신식 장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아원의 세 소녀들을 맡게 된 그루는 세 소녀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소녀들을 키우는 일임을 알게 된다.
소녀들에 의해 점차 사랑을 배우고 변화되어 가는 그루. 과연 그는 달을 훔칠 수 있을 것인가? 소녀들과 그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슈퍼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니언즈 이렇게 어른스러울 일이야?
사실 영화 《슈퍼배드》에서 미니언즈는 그렇게 큰 역할이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미니언즈가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기에 그 의의가 있는 정도다. 여기서 인기를 얻은 미니언즈가 미니언즈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나나~나나나나~ 미니언즈들의 그 노래만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얼마나 귀여운 악당일까 기대하면서 봤는데 굉장히 어른스러운 생명체였다. 그루가 은행의 대출이 막히자 파산할 처지에 놓이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미니언들에게 말을 한다.
하지만 미니언들은 나 이만큼 돈있어!! 이것도 팔면 되지 않을까? 하는 티끌모아 태산 정신을 실천하며 그루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저 장난기 많고 어린아이 같았던 미니언들의 모습에서 그루를 살리고자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랑이 필요했던 그루
그루는 사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그루의 어머니는 니가? 라는 말을 하며 그루의 호기심과 성장동력을 무참히 짓밟은 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루가 정말 슈퍼배드보이, 저암ㄹ 나쁜 사람이 되고나서야 그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루가 실제로 피라미드를 훔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돌아서고 만다.
그저 결과로서만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밑에서 그루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악당과 대적하기 위해 아이들을 입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점차 물들어가면서 ‘같이’의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점차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해간다.
난자리의 공허함
있을 때는 귀찮고 성가셨을지 모르지만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든자리를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라는 속담이 있는 것 같다. 그루 역시 아이들을 입양하고 나서 물론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 입양한 것이 아닌 달을 훔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입양한 것이지만 입양 후 아이들이 이곳저곳 허락도 안받고 쏘다니며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모습에 굉장히 짜증낸다. 하지만 박사의 결단으로 아이들을 파양한 뒤 그는 달 포획에 집중하면서도 굉장히 공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결국 그 빈자리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아이들의 공연장을 찾아가고 아이들이 납치되자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걸어가며 아이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정을 주지 않겠다며 굿나잇 키스를 하지 않던 그가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주며 아이들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게 된다.
영화 《슈퍼배드》 속에서는 가족이 구성됨에 있어서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반목이 일어나고 그 반목을 얼마나 잘 풀어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하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악당의 이야기라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악당 아닌 악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퍼배드》. 미니언즈의 매력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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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해 꿈꾼 적은 없다. 굳이 따지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평생 흔들리지 않고 혼자 살 때보다 둘 이상일 때 조금 더 든든하지 않을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눠먹고 대화를 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찌감치 행복한 가족이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믿지 않았다. 결혼식이 해피엔딩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둘이서 여행만 가도 한 번은 싸우는데 결혼이 그렇게 좋기만 할리가. 결혼을 계약처럼 연장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가족과 결혼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슬픈 사실을 한 가지씩 깨달았다. 가족은 생각보다 그렇게 화목하고 평화롭지 않다. 잘 사는 집이든 못 사는 집이든 어느 집에나 속 썩이는 사람이 있고, 콩가루가 솔솔 날리는 듯한 분쟁이 있기 마련이다.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다. 결혼에 대해 놀랐던 점은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생각하는 그때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결혼에 수많은 조건이 있다면 사랑 역시 그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좋고, 사랑이 없으면 정으로 산다고 하더라. 그래도 반평생을 함께 할 텐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해버리냐고? 막상 결혼의 압박이 들어오는 나이가 되니 이해는 된다.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눈초리나 말소리는 지겹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니 혼자만 사는 삶은 자신이 없다. 해치워버리듯 해도 비난하지 못하겠다.
과거와 확연한 차이점은 요즘 결혼은 과거만큼의 인내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지 않아도 된다. 헤어져도 된다. 이혼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의무감으로만 지속했던 결혼이야말로 나쁘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혼하는 시기는 인내심이 어디까지 발현되었느냐 정도의 차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자리를 잡고 나서 황혼에 이혼하거나 졸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헤어질 수 있다. 나조차도 정말 밥맛 떨어질 때면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게 말이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의외로 그래도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을 내릴 때는 아빠와 가치관이 비슷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인가. 정말 중요한 50%만 맞으면 나머지는 맞추면서(혹은 어차피 맞추지 못할 테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라던 말씀이. 그게 엄마의 결혼 철학이었는지도.
<결혼 이야기> 속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 없이, 소송 없이 '둘만의 원만한 합의'로 이혼하기를 꿈꿨다. 바람대로 되면 좋았겠으나 애초부터 둘의 입장 차이는 너무나 명확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고 공감되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둘의 감정이 극도에 치달았을 때 말다툼을 보고 확실해졌다. 찰리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그의 희생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니콜은 찰리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았다. 찰리의 말에 말문을 잃은 건 니콜만이 아니었다. 헨리만 괜찮다면 병에 걸리거나 차에 치여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니. 내가 당신을 더 사랑했다는 니콜의 말에 그게 LA에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반응은 맥빠졌고, 같은 극단 메리 앤과의 외도에도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졌다. 결혼 생각도 없고, 나에게 바라는 게 많은 당신 때문에 내가 수많은 유혹을 젊은 나이부터 얼마나 피하느라 힘들었는지, 당신이 나를 먼저 거부했으니 바람이 아니란다. 유혹에 관해서라면 니콜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찰리는 이기적이다. 본인이 아프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버린다. 총알이 살을 뚫고 나서도 회전을 하면서 몸속에 파편을 남기듯이. 후벼파는 것 이상의 말을 쉽게 하더라. 그가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지 않았다면 고개를 저으면서 그를 선택했던 니콜을 처량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상처받은 눈이면서 미안하다며 찰리를 꼭 안아주는 그녀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게 사랑인 걸까. 내가 상처받아도 그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걸, 그 말을 하면서 본인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안아줄 수 있는 게. 사랑을 하기엔 나 역시 너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영화를 봤다. 찰리를 정말 이해할 수 없을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은 없다. 찰리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 다시 보니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왜 뉴욕을 놓을 수 없었을까? 뉴욕이 집이고 자신의 가족은 '뉴욕'의 가족이라고 무척 강조한다. LA는 왜 안 되는 걸까. LA의 변호사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도 넓고 살기 좋다는데도, 니콜의 가족을 좋아하면서도, LA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심지어 그가 사랑하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았던 니콜이 원하는데도. 뉴욕이 대체 그에게 뭐길래. 'LA'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뭐길래.
니콜이 변호사 노라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찰리는 이혼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니콜의 의사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말이다. 니콜은 LA에서 살고 싶었고 다양한 장르에 참여하는 배우이자 감독이 되고 싶었다. 지금처럼 '찰리의 극단'에서 '찰리가 가장 아끼는 배우'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 종횡무진하고 싶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사이 마침 LA에서 하는 드라마가 기회처럼 찾아왔다. 찰리의 응원을 기대했건만 그는 쓴소리만 뱉었다. 그가 LA에 잠시라도 살려고 시도했다면, 그가 함께 극단에서 공동 감독을 맡아 공연을 준비했다면, 니콜에게 네 생각은 어떤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을 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법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니콜은 결혼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은 찰리와의 이혼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니콜이 '찰리의 아내'로 살기로 체념하는 것 말고, 찰리가 막무가내로 뉴욕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고, 그를 설득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영화를 살펴봐도 찰리의 이야기는 니콜의 이야기만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찰리도, 그의 변호사도 그런 이야기를 터놓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추측할 뿐이다. 니콜이 찰리에 대한 장점에 썼던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했다. 누구보다 뉴요커 같다. 직업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집이 생겼다. 뉴욕은 그의 마음의 고향이다.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좋은 기억이 없는 어머니와 태어난 고향은 뒤로했다. 그는 소중한 니콜과 아들 헨리, 인턴마저 가족 같은 극단 사람들을 만났다. 좁고 경적소리가 넘치는 뉴욕에 스스로 가족을 만들었다.
찰리 입장에서 LA는 어디까지나 니콜의 고향일 수밖에 없다. 찰리의 뉴욕은 흔들려도 이상할 것 없이 뿌리가 얕다. 10년을 넘게 산 니콜은 뉴욕보다 LA를 그리워하지만 찰리에겐 10여 년 된 뉴욕이 전부다. 그 뉴욕엔 편히 볼 수 있는 부모님, 형제 같은 혈연이 찰리에겐 없다. 은연중에 니콜과 그녀의 가족을 보면서 LA의 넓은 공간만큼이나 휑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LA에 있는 니콜과 헨리는 찰리가 없어도 자연스럽다. 헨리를 너무나 쉽게 LA에, 니콜의 손에 맡긴다면 그는 그의 부모님과 그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가 힘들게 만든 가족이 무너졌을 때조차 그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아무것도 없이 뉴욕에 와서 자수성가한 뉴요커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채 마음에 담아둔다. 대체로 진심과 좋은 말은 담아두었을 것이다. 니콜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뉴욕을 떠나면 이 가족이 부서질 것 같은 걱정도, 그녀의 연기를 비평하지만 감동받았던 마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배우가 자신을 떠나 LA로 난생처음 활동을 하러 간다니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 가 버려. 갈 테면 가. 그러고도 당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누굴 만나도 불행할 거야. 그녀가 떠나가 버리기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하진 않았을까? 둘 중에 이혼을 먼저 이야기한 건 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도록 니콜을 몰아붙였든지. 초반에 이혼 준비로 성질을 내고 눈물을 보이는 니콜의 모습에 비해 침착한 찰리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이혼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좋은 사람, 좋은 부모인지 시험받았다. 추억은 무능과 부도덕의 증거가 되었다. 찰리는 조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니콜이 늘 잘라주던 머리는 이발소에 가서잘라야 하고, 빨래방에서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3800km를 날아 뉴욕에서 LA로 와야 헨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양육권도 45:55의 비율로 손해를 봤다. 영화의 끝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살아있는 것(Being Alive)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나를 필요로 하고, 상처 주고,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이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니콜이 이긴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솔직했고 더 많이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니콜의 눈빛 역시 종종 촉촉해진다. 니콜이 읽지 못했던 편지를 찰리가 읽었을 때, 'I'll never stop loving him, even though it doesn't make any sense now'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서로를 축하하고 싶지만 예전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을 때. 찰리가 UCLA 전임으로 오게 되어 한동안 여기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쓸쓸했다. 이혼하기 전엔 왜 그럴 수 없었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변호사나 판사에게는 지지부진한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결혼 이야기든 당사자에게는 며칠 밤낮을 해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헨리라는 아들을 둔 찰리와 니콜 커플의 이야기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결혼이었다. 보기 좋았다. 서로의 장점을 읊는 장면으로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이 반대라서 보완해주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진흙탕 싸움을 하지 말자던 사람들이 진흙탕에 빠져들어 이혼을 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진흙탕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서로 약점을 아는 사람들끼리 일부러 급소를 건드리면서 상처를 내는 다툼. 그 말이, 그 행동이 이렇게도 쓰인단 말인가? 놀라진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은 칼질하듯 날카로운 단면으로 잘리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이, 사랑이 남아있다. 다만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도 남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단 한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누구와도 헤어질 수 있다. 당신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엉켜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부른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결혼은 이래서 해볼 만하고, 이래서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혼 역시 그래서 희망찬 행동이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결혼은 사랑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절절한 둘의 눈빛과 별개로 그들은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그들이 수많은 결혼의 위기를 넘겼음에도 이번에 정말 이혼을 했다는 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풀린 신발 끈은 묶어주지만 같은 방향을 볼 수 없고 나란히 걸을 수 없다. 잔잔한 오보에 소리에 서로에게 등진 채 자신이 갈 곳으로 걸어가는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떠올랐다. 둘에게 들려준다면 아마 눈이 빨개진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찾을 때의 마음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 김광석 <사랑했지만>
-
- 멀티버스라는 늪에서 악전고투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통해 바네사를 되살리고 일상을 되찾은 '데드풀/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데드풀은 이제 어벤져스에 가입해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어벤져스로부터 거절당하고, 그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와도 이별한 후 '피터'(롭 딜레이니)의 도움을 받아 중고차 딜러 일을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온다. '울버린'(휴 잭맨)의 죽음과 함께 엑스맨 유니버스가 소멸될 상황이 되자, TVA에서 데드풀을 MCU의 일원으로 캐스팅한 것. 데드풀은 '마블의 예수'가 될 것이라 들뜨지만, 흥분도 잠시. 그는 엑스맨 유니버스를 곧장 파괴하려는 '패러독스'(매튜 맥퍼딘)의 음모를 눈치채고, 자기 우주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모든 면에서 상극이고, 자기 우주를 구하는 데 실패한 또 다른 '울버린'과 함께.
MCU의 예수는 되지 못하다
2024 슈퍼볼에서 처음 공개된 <데드풀과 울버린>의 티저 예고편. 2분 남짓한 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개 24시간 만에 3억 6,5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기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의 3억 5,550만 조회수를 뛰어넘었다. 특히 한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바로 마블의 예수님이야"라는 데드풀의 대사는 MCU와 멀티버스 사가에 신선한 피가 수혈될 거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데드풀과 울버린>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미치 못했다. 데드풀과 멀티버스 사가의 만남 자체는 인상적이다. 데드풀만의 특색과 입담을 살려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 사가를 작품 내에서 풀어냈다. 엑스맨 버전 <노 웨이 홈>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엑스맨>, <판타스틱 포>, <데어데블>, <블레이드> 등 2000년대 초중반을 수놓은 과거 마블 캐릭터들에게 명예로운 엔딩을 안겨 주었다.
다만 MCU 멀티버스 사가의 문제점은 여전하다. 멀티버스 캐릭터에게 내준 공간만큼 데드풀과 울버린의 자리가 줄었다. 그 결과 데드풀도, 울버린도 각자의 서사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냉정히 말해 휴 잭맨이 복귀했다는 것 외에 의의가 없을 정도다. 프로모션 과정 내내 강조한 데드풀과 울버린의 버디 무비라는 개성도 덩달아 옅어진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이 MCU의 구세주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폭스의 <노 웨이 홈>
데드풀의 가장 큰 개성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는 작품 내외를 오가며 히어로 영화의 금기를 전부 다 깨버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엑스맨 유니버스에 속하면서도 따로 노는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MCU는 이를 엑스맨 유니버스와 MCU의 가교로 삼았다. 데드풀의 입담과 액션을 활용해 작품 외적인 이유로 퇴장했던 캐릭터에게는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주고, 세계관 자체는 멀티버스 속에 남겨두며 미래를 기약한다.
당장 기본적인 스토리부터가 현실의 은유다. 데드풀이 자기 우주를 파괴하려는 TVA에 맞서는 것은 디즈니의 폭스 인수로 인해 종료된 엑스맨 유니버스의 상황을 보여준다. 자기 우주에서 엑스맨을 구하지 못한 울버린의 모습도 마치 엑스맨 유나버스의 종료를 막지 못한 현실의 울버린을 보는 듯하다. 그들이 과거 마블 영화 캐릭터를 지배하려는 카산드라 노바와 싸우는 것 또한 MCU에 병합돼야 할 엑스맨 유니버스의 현실을 은유한다.
그 덕분에 영화는 다시 못 볼 캐릭터로 가득하다. 촬영은 완료했으나 공개되지 못한 채닝 테이텀의 갬빗과 <로건> 속 로라를 비롯해 파이로, 토드, 아자젤, 저거너트 같은 조연이 재등장한다. 이에 더해 크리스 에반스의 휴먼 토치, 제니퍼 가너의 엘렉트라,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 등 과거의 영웅도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즉,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 버전의 <노 웨이 홈>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비롯한 예전 마블 영화의 추억을 지키려는 메타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다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MCU 멀티버스 사가 중 진입장벽이 가장 높다. 일단 엑스맨 유니버스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판타스틱 포>, <블레이드>, <데어데블>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등장인물조차 알 수 없다. 또 <로키> 시즌 1을 보지 않으면 TVA, 보이드, 알리오스와 신성한 시간대 같은 설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갬빗의 경우에는 디즈니-폭스 인수 사가와 관련된 뒷이야기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되지 못한 울버린
그러나 <데드풀과 울버린>의 완성도는 <노 웨이 홈>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핵심적인 전제 하나를 놓친 까닭이다. <노 웨이 홈>의 힘은 과거의 두 스파이더맨에서 비롯했다. 그들이 과거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모습이 시간을 뛰어넘는 감동의 원천이었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그린 고블린을 치료하고,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가 추락하는 MJ를 구해내는 모습은 팬들의 상상과 염원을 스크린에 펼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데드풀과 울버린>도 비슷한 방식으로 울버린을 활용하려 한다. 엑스맨을 구하지 못한 멀티버스의 로건을 기존의 엑스맨 유니버스로 불러와서 그가 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 울버린이 지난 20여 년간 엑스맨 시리즈에서 활약한 울버린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예전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이번 울버린은 관객과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교류할 길이 없다.
불친절한 전개는 문제를 더 키운다. 멀티버스의 울버린이 좌절한 이유나 정황은 실감하기 어렵다. 흔한 플래시백 하나 없이 대사로만 제시되기 때문. 그가 엑스맨으로 나서기를 주저하는 이유도 알기 어렵고, 로라가 멀티버스의 로건에게 그의 본성과 영웅성을 일깨우는 대화도 임팩트가 부족하다. <노 웨이 홈>에서 과거의 스파이더맨이 MCU의 스파이더맨에게 조언을 건네는 장면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백하다.
이 괴리감은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암시된다. 데드풀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로건>에서 묻힌 울버린의 무덤을 파헤친다. 그러고는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뼈를 이용해서 자신을 뒤쫓아온 TVA 요원들을 때려잡는다. 물론 분위기나 연출 자체는 데드풀답게 유쾌하고, 데드풀도 관객에게 사과를 건넨다. 하지만 <로건>의 결말을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즐기기 어렵고, 이번 울버린과의 거리감이 더 멀어지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울버린과 함께 무너지는 데드풀
이에 더해 <데드풀> 영화인데도 데드풀의 서사를 살려내지 못했다. <데드풀> 시리즈의 매력은 평범한 주제나 메시지를 데드풀스럽게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1편은 로맨스 영화를, 2편은 가족 영화를 B급 유머로 범벅해 흥미롭게 풀어낸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친구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2편 이후로 무언가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데드풀. 그는 MCU의 어벤져스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어벤져스로부터 거절당한 후 크게 좌절했고, 평범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헤맸다. TVA에서는 마침내 MCU의 예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그 꿈도 포기한다. 친구들과 그들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새롭게 만난 친구인 울버린을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분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화는 울버린과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 결과 데드풀의 서사는 직접적인 묘사 대신 상황 설명 대사로 자주 대체된다. 일례로 데드풀의 우주가 위험하다는 상황 설명도 패러독스의 대사로만 언급되니 실감하기 어렵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의 끝에는 데드풀다운 유머만 남는다.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내레이션 없이는 데드풀만의 서사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데드풀도, 울버린도 없는 버디 무비
전반적인 만듦새도 덩달아 미흡해진다. 두 주연 개개인의 서사가 부족하니 버디 무비인데도 둘의 호흡은 매끄럽지 않다. 예를 들어 울버린은 갈수록 데드풀에게 끌려다니는 듯하다. 새로운 울버린에게 마음을 주기 어려운 가운데 시리즈 내내 데드풀을 봐온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시퀀스와 시퀀스의 연결도 부자연스럽다. 꼭 보여줘야 할 멀티버스 이벤트를 먼저 설계한 뒤, 데드풀과 울버린의 행적을 짜 맞춘 듯 보인다.
그래서 클라이맥스가 뒤바뀐 듯 보이기도 한다. 중반부 보이드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작중 가장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여러 돌연변이와 히어로들이 뒤엉켜서 각자의 능력을 뽐내는 이 장면은 마치 <엑스맨: 최후의 전쟁> 속 알카트라즈 시퀀스를 보는 듯하다. 과거 시리즈와 캐릭터들에 대한 헌사가 가득하기에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데드풀과 울버린이 데드풀 군단을 마주하는 시퀀스는 임팩트가 부족하다. 물론 <올드보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를 연상시키는 액션 자체의 쾌감은 나름 인상적이고, MCU의 멀티버스 설정을 비꼬는 대사는 유쾌하다. 하지만 데드풀과 울버린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단순한 팬서비스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시퀀스를 들어내더라도 스토리 전개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악역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면 상술한 문제는 다소 가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는 능력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 그녀는 '보이드'로 떨어진 모든 캐릭터를 지배하고, 그러기 위해 모든 시간선을 붕괴시키려 한다. 이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역의 클리셰를 비튼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개인사마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그녀가 울버린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마음을 바꾸는 전개 또한 다소 급작스럽다.
MCU의 고질병이 또 도지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은 MCU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등이 줄곧 노출한 문제점의 연장선이다. 이번에도 세계관 정리에는 성공했다. 꼬여버린 엑스맨 유니버스에게 깔끔한 엔딩을 선사하고, 이전 마블 영화와 MCU의 관계를 정리했다. 추후 MCU가 선보일 <엑스맨>과 <판타스틱 4>, <블레이드>, <데어데블> 등을 위한 길은 닦은 셈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매력은 잃어버렸다. 더 나아가서는 데드풀이나 울버린이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 가능성도 제시하지 못했다. 즉, 지반을 정리하고 기초 공사까지는 완료했지만, 정작 그 부지 위에 무슨 건물을 올릴지 조감도조차 못 보여줬다. 그러니 MCU의 구세주라고 부르기에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남긴 아쉬움이 너무나도 크다.
Acceptable 무난함
데드풀과 울버린도 빠져나오지 못한 멀티버스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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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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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3 | 매트릭스 인문학적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3
*후속영상
#1 [네오는 테스형♪] https://youtu.be/gckW2TYRFMc
#2 [현실은 진짜일까?] https://youtu.be/wfvqm5HBRb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추천영상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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