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1-04-16 01:58:33
인비저블맨 -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졸라온다는 것
의외로 고전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많다. 옛날 영화는 진부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편견과는 다르게 지금 봐도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다. 특히 공포 영화들이 그러한데, 개인적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나, 무성영화로 가보면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지금봐도 보는 이들을 진정한 공포에 빠지게 하는 걸작들이다. 유니버설의 다크 유니버스는 고전 공포가 가진 창의력의 힘을 빌려온 것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인비저블맨은 1933년의 "투명인간"의 리메이크 영화이다.
필자가 이번에 리뷰하는 영화 "인비저블맨"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공포를 보여주는 방식의 능숙함에 있다. 한국 공포 영화 중 개인적으로 졸작으로 평가하는 "곤지암"과 비교해보자면, 곤지암은 그냥 유령의 집처럼 점프스케어 요소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만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걸로 그치는데 반해, 이 영화는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후반부에 분출해낸다. 투명인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여러가지 힌트로 제공하면서 보이지 않는 이가 스크린에 존재한다는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인간은 붕대를 두르고 모자를 쓴 그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는 리메이크를 하면서 투명인간을 현대화 시켰다. 바로 투명 슈트라는 SF적 요소를 차용함으로서 말이다. 현대 시대는 옛날과 달리 초현실적인 요소가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 현대화를 한것이라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미래공학적인 느낌을 주어 더 긴강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다크 '유니버스' 작품 답게 후속 작품과의 연계성을 제공하고 납득할 수 있는 엔딩까지 보여줌으로서 다크 유니버스의 첫작품인 "미이라"의 심각한 부진을 충분히 회복하고도 남을 영화라 평할 수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공포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매우 기분 좋게 생각한다. 이번 인비저블맨의 흥행과 비평의 긍정적 모습을 보아, 다크 유니버스의 후속 작품들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공포 매니아라면 꼭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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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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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오는 사람 없지만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 않지만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창석"이 사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스토리를 엮어낸 영화입니다.
그 안에서 창석은 여러 그리움과 기다림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를 처음 만난 장소에 항상 있는 창석의 어머니 "미영"은
그 곳에서 창석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때를 항상 회상합니다.
창석은 아버지인 척하며 어머니의 회상을 도와주죠.
어머니에게 창석의 아버지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작가인 창석의 후배이자 편집자인 "유진"은 전에 헤어진 인도네시아 남자친구를 추억하며 담배를 핍니다.
유진은 얼마 남지 않은 인도네시아산 담배를 피우며 그와 있었던 일을 덤덤히 말합니다.
사진작가 "성하"는 아내가 아픈 상황에서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만 아내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텐더 "주은"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었고, 현재는 손님들의 이야기로 시를 쓰고 있죠.
그런 그에게 창석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주은은 창석을 기다린다고 말했기에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시를 씁니다.
그렇게 모두와 만난 창석은 혼자 남게 됩니다.
혼자 남은 시간동안 그는 여러곳을 다니면서도 그리움과 공허함에 휩싸이죠.
누군가를 잃어버린 충격과 아픔으로 공허한 일상을 살아가는 창석은
결국 오늘도 혼자 남아있습니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연우진 배우가 연기한 "창석"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총 4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겪는 그리움과 공허함을 보여주는데요.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가 어렵다는 평이 많습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 특유의 잔잔한 스토리와 영화 자체의 분위기만은 이 영화의 확실한 장점이 되었는데요.
지친 일상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누군가를 추억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이상,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없는 곳" 이었습니다.
* 본 콘텐츠는 임범영(크랭크 위드 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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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코엔 형제 작품. 다시 봤다. 다시 보고 또 놀랐다. 먼저, 영화 제목을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코엔 형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영화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알았다.
예이츠의 시 가운데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가져온 구절로 원래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예이츠의 시를 읽어보자.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노래하고 있는 저 죽어가는 세대)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늙은이란 하찮은 것)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리라)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왔다)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아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죽어갈 동물성에 매어)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련다.)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련다)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다. 어느쪽이든, 이 영화를 상징하는데 있어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원작 소설을 쓴 코맥 맥카시는 미국 작가로 하드보일드한 액션 스릴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액션 스릴러'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하드보일드한 것만은 틀림없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사막 근처에 살고 있는 주인공 모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약 거래 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돈가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냉혹한 살인자 안톤 쉬거에게 쫓긴다.
돈가방을 갖고 도망다니는 주인공, 그를 쫓는 살인마 안톤 쉬거, 두 사람을 추적하는 지역보안관. 여기서 '노인'은 지역 보안관 에드를 말한다. 삼대를 이어 지역 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 에드는 노련한 경찰이지만, 무차별,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옛날을 그리워한다.
영화 제목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영화 끝부분에 에드와 다른 보안관이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품위와 존경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노인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을 끄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개성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때로 엉성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하는 대사는, 웃음과 함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칼슨 웰즈를 보자. 그는 최근에 HBO의 미니시리즈 '참 형사(트루 디텍티브)'에도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인 우디 해럴슨인데, 여기에서는 겉멋든 킬러로 등장한다.
살인마 안톤 쉬거를 처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등장해서 뭔가 멋진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짧은 시간에 무수한 대사를 늘어 놓지만 결국 안톤 쉬거에게 맥없이 죽고 만다.
또한 주인공 모스 역시, 거의 살인마를 따돌리고 한숨 놓기 직전에 어처구니 없게도 멕시칸 갱에게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장모 때문이다. 살인마 안톤 쉬거 역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모스의 아내 칼라를 찾아가 죽이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뼈를 감싸고 사라진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는데, 보안관 에드 역시 퇴직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노인은 입을 닫는다. 즉, 돈과 마약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는 총이 필요 없던 과거의 보안관 선배들 이름을 나열한다. 그때가 그래도 인간적인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미치광이의 시대라고 말하며. 그리고 곧바로 안톤 쉬거가 보안관에게 붙잡혀 경찰차에 태워지고, 수갑을 찬 채 보안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전화로 보고를 끝낸 보안관을 목졸라 죽이는 안톤 쉬거. 그의 두 팔목에 수갑에 긁힌 핏자국이 선명하고, 발버둥친 보안관의 발쪽으로 어지러운 흔적이 가득하다. 보안관 차를 훔쳐타고 나온 안톤 쉬거는 앞서가던 자동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살해한다. 그의 살인에 동기가 있을까.
텍사스주 테럴 카운티의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모스는 우연히 갱들이 서로 죽고 죽인 현장을 발견한다. 다섯 대의 트럭과 주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사람들. 그는 한 트럭에서 가득 찬 마약을 발견한다. 아마도 마약 거래를 하던 자들이 서로 총질을 해서 모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이다. 모스는 분명 근처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 아래 죽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가방이 있고, 그 가방 안에 2백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모스는 돈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트럭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물을 달라던 말을 기억하며 내키지 않지만, 물통을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한밤중, 물을 달라던 멕시코인은 이미 죽었고, 모스는 다시 돌아가려하지만, 갱단의 일행이 도착하고, 모스는 쫓기게 된다.
모스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다. 범죄 현장에서 돈가방을 발견한 것은 행운일지 모르나,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사람이 그냥 죽는 걸 지켜보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가 물을 가지고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부자로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신의 의지이며, 그 선택에 따라 다시 운명이 갈리는 아이러니는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도망하고, 아내는 오데사로 보낸다. 범죄 현장에 차를 두고 도망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정체는 드러났고, 돈을 찾기 위해 범죄조직에서 자기 뒤를 쫓아 올 거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안톤 쉬거는 사막의 주유소 매점에 들르고, 매점 주인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매점 주인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살인마 안톤 쉬거는 차를 뺐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패스인데, 매점 주인과의 동전 내기에서 매점 주인의 선택이 맞자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매점을 나간다. 이건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안톤 쉬거는 두 남자를 만나 범행 현장에 도착하고, 돈가방 안에 들어 있는 추적기를 찾을 수 있는 송신기를 받는다. 그리고 두 남자를 살해한다. 양복을 입고 추적 송신기를 들고 나타난 두 남자를 미루어 짐작하면, 마약범죄조직을 체포하기 위한 위장 거래를 하던 경찰 수사관 또는 마약단속국(DEA), FBI 요원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돈가방을 지닌 채 죽은 사람은 경찰이거나 FBI 요원 또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비밀요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안톤 쉬거는 모스의 트레일러 집을 찾아가고 그곳을 샅샅이 살펴본다. 트레일러 관리실에 가서 모스의 행방을 묻지만, 관리실 아주머니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때 안톤 쉬거는 말 없이 사무실을 나간다. 그의 행동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싸움에서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안톤 쉬거가 트레일러에서 나가고 뒤 이어 보안관들이 트레일러를 찾아온다. 보안관은 아무 단서를 찾지 못하지만, 안톤 쉬거는 집안에 있던 우편물에서 모스의 처가집 전화번호를 찾아내 확인한다.
모스는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경계인 '델 리오'에 도착해 허름한 모텔인 델 리오 레갈 모텔 138호에 묵는다. 방의 환풍구에 돈가방을 숨기고,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다른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와 138호 맞은편 37호실을 하나 더 빌린다.
안톤 쉬거는 멕시코로 가는 길에 '델 리오 레갈 모텔'을 지나다 수신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모텔에 모스가 있다는 걸 확신한다. 모스는 37호에서 환풍기에 올려 놓은 돈가방을 끌어당기고, 안톤 쉬거는 총과 산소탱크를 들고 맨발로 138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대결은 조용하면서도 긴장감 높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138호를 급습한 안톤 쉬거는 그 방에서 세 명의 멕시코인을 발견하고 살해한다. 멕시코인들은 마약 범죄조직원들이고, 이들이 쉽게 모스의 행방을 알 수 있었던 건 돈가방에 든 송신기를 찾을 수 있는 수신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칼슨 웰스의 등장은 하드보일드한 영화에 약간의 유머를 넣으려는 코엔 형제의 의도로 보인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안톤 쉬거를 제거하려고 살인청부업자 칼슨 웰스를 고용한다.
레갈 모텔에서 도망한 모스는 이글 패스 호텔 213호에 묵는데, 이때 카운터를 보는 사람에게, 자기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잠을 자려고 누운 모스는 돈가방을 살펴보다 송신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살인자가 매우 가까이 있다는 걸 직감한다.
모스와 안톤 쉬거는 여기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총을 쏜다. 둘 다 만만찮은 상대였고, 둘 다 총상을 입는다. 총상을 입은 안톤 쉬거는 사라지고, 모스는 피를 흘리며 멕시코 국경을 걸어서 넘는다. 다리 중간에서 돈가방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 무사히 국경을 지나 멕시코로 들어가는 모스. 이제 악몽은 끝난 걸까.
다리에 총을 맞은 안톤 쉬거는 약국 앞에 주차한 차에 불을 지르고,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훔쳐 나온다. 그는 총상이 심했지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꿰맨다. 그는 확실히 보통사람과는 다른 인간이다.
그 사이, 병원에 입원한 모스를 찾아온 사람은 칼슨 웰스. 겨우 3시간만에 모스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보안관 에드는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오데사에서 만난다. 칼슨 웰스는 국경 다리에서 모스가 던진 돈가방을 발견하지만, 호텔로 쫓아온 안톤 쉬거에게 당한다. 안톤 쉬거가 칼슨 웰스를 죽인 직후, 모스와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 두고 보자고 벼른다.
안톤 쉬거는 모스가 병원에 있다는 것도 알지만 찾아가지 않고,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모스는 병원에서 나와 다시 미국 쪽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돈가방을 찾아 아내에게 전화한다.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로 오라고. 엘 파소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도시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모스의 장모에게서 정보를 얻고,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은 보안관에게 남편 모스의 행방을 알려주고, 안톤 쉬거는 모스를 쫓는다. 이들은 모두 엘 파소에서 맞닥뜨린다. 보안관이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전이 벌어진 뒤였고, 모스는 죽어 있었다.
모스의 장례를 치르고 곧 이어 칼라 진의 어머니도 암으로 사망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칼라 진은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톤 쉬거를 만난다. 안톤 쉬거는 이번에도 동전을 던져 정하라고 칼라 진에게 말한다. 칼라 진의 집에서 나온 안톤 쉬거는 무심한 상태로 운전하다 다른 차와 부닥치고,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보안관 에드는 퇴직하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를 봤고, 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오솔길을 앞질러 가시면서, 횃불을 들고 있었노라고 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안톤 쉬거가 살해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살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서 만난 닭장차 운전수와 마지막 장면의 칼라 진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테럴 카운티에서 시작해 델 리오, 오데사, 엘 파소로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도시와 연결된다.
보안관 에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지역은 과거와는 너무 달라졌고, 사람들이 돈과 마약으로 타락했으며, 도덕과 상식이 사라진 현실이 개탄스럽다. 늙어가는 에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느끼고 은퇴한다.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르며, 불투명해서 행복한 삶이란 마치 파랑새를 찾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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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린 시아마 유니버스
셀린 시아마 감독이 〈쁘띠 마망〉으로 또 한 번 해 냈다. 여성들의 내밀한 감정‧관계를 섬세한 시선으로 탁월하게 연출해 왔던 셀린 시아마가 이번에 주목한 건 모녀 관계다. 넬리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엄마 마리옹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이 판타지 영화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여성 경험‧관계에 주목한다. 〈쁘띠 마망〉에서 시작해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를 거슬러 읽음으로써 그녀가 구축한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가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온 넬리는 숲에서 놀다가 자신과 닮은 또래 친구를 만난다. 그녀는 넬리의 엄마 마리옹이다. 마리옹과 친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던 넬리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임을 알아차린다. 우연히 만난 어린 시절의 엄마는 유전병을 예방하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 넬리는 그녀의 수술이 잘 될 것임을, 건강이 좋지 않은 넬리의 외할머니(마리옹의 엄마)가 앞으로 오랫동안 살아 낼 것임을 마리옹에게 알려 주고 싶다.
여기서부터 셀린 시아마의 강점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엄마 마리옹 앞에 꽤 괜찮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려 노력하는 넬리의 말‧행동‧마음을 담아내는 영화의 시선은 관객에게 서로 연결된 존재에게 주어진 책무를 환기시킨다. “네 뒤로 난 길을 따라왔어.” “이미 내 마음속엔 네가 있거든.” 각각 넬리와 마리옹의 말이다. 저 말로써 넬리는 자신이 엄마 마리옹으로부터 기인한 존재임을, 마리옹은 미래에 출산할 넬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음을 선언한다. 시차를 가진 두 존재(엄마와 딸)의 동시대적 포개짐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어느새 희미해진 타인과 나의 근본적 연결성이 복원되는 것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
〈쁘띠 마망〉은 셀린 시아마가 지금껏 만들어 온 영화의 궤적 속에서 더 적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셀린 시아마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맺는 관계와 감정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워터 릴리스〉(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의 여성 주인공들은 우정, 사랑, 정체성 등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이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셀린 시아마 영화 속 여성들의 여정을 좇다 보면, 〈쁘띠 마망〉이 여성 관계의 세대적 확장임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워터 릴리스〉의 주인공은 사랑‧욕망에 눈 뜬 여성 청소년 마리와 안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두 친구의 소중한 마음은 안타깝게도 대상에 도달하지 못한 채 착취당하지만, 아픔 이후 이들은 자기 옆에 같은 상처를 지닌 친구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항상 옆에 있었기에 특별함을 상실했던 마리와 안나는 사랑‧욕망의 좌절이라는 공통의 테마를 바탕으로 단단한 우정을 만든다.
〈톰보이〉도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를 다룬 수작이다. 주인공 미카엘은 축구와 수영을 잘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친구들에게 ‘로레’가 본명임을 들키기 전까지는 그랬다. 미카엘이 로레임이 드러난 후, 미카엘은 ‘남자같이 구는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친구들에게 모욕적인 방식으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신문당한다. 리사는 그런 미카엘에게 손을 내민다. 미카엘은 자신이 미카엘인 동시에 로레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리사로부터 배운다. 리사는 자신이 좋아했던 ‘미카엘’이 ‘로레’였다는 사실, 즉 자신이 ‘역겨운’ 동성애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불쾌해했다. 하지만 이내 미카엘과 연인이 될 수 없다면 로레와 친구로 지내면 되지 않겠냐는 듯 마음을 연다. 이번에도 미카엘/로레의 마음속 깊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건 여성들 사이의 관계다*.
리사와 미카엘/로레(〈톰보이〉).
앞의 두 영화가 관계로 서로를 보듬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걸후드〉는 이를 밑절미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경제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 청소년 마리엠은 폭력적인 오빠와 삶에 지친 어머니 대신 또래 여성 친구들과 어울린다. ‘비행 청소년’처럼 굴며 큰 해방감을 맛보는 마리엠을 묘사하는 장면은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재(가난한 자, 흑인, 여성)가 어디서 자유를 느끼는지를 비꼬듯 질문한다.
하지만 마리엠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녀는 친구들이 선물해 준 자유를 바탕으로 다른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흑인 여성 청소년으로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가? 해결되지 않을 혼란을 품은 채, 마리엠은 다부진 표정으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 어설프고 어리숙한 일일지라도, “네가 원하는 걸 해”라는 말을 믿는 마리엠. 그녀가 과거를 품은 채 도달할 미래가 어떤 곳일지는 모른다. 다만 도래할 미래가 그녀가 꿈꾸던 것과는 다를지라도, 마리엠은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자유를 바탕으로 당당히 삶을 살아 낼 것이다.
〈걸후드〉의 마리엠.
마지막으로 여성 서사와 레즈비언 서사가 강렬하게 결합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시선의 평등이 곧 관계의 평등임을 증명하는 대단히 인상적인 영화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마리안느는 기존의 관습(남성의 시선)으로는 엘로이즈의 생명력을 그림에 담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에겐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선은 마리안느의 화두만이 아니었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 그림의 객체이지만 동시에 마리안느를 관찰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엘로이즈는 화가와 대상이라는 관계의 일방향적 문법을 거부하고,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무의미한 곳으로 마리안느를 인도한다. 쌍방향적이고 평등한 시선의 결과는 사랑일 수밖에 없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레즈비언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성취한다. 사랑의 범주에서 배제된 자들이 도달한 압도적 사랑이라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테마는 익숙한 젠더 문법에 기댄 어쭙잖은 멜로 영화와 이성애규범적 편견에 휩싸인 세상에 대한 가장 고상한 조소다. 이성애자들이 낡은 관습에 무덤덤해져 사랑에 실패하는 동안, 레즈비언은 그 실패한 사랑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가 사랑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서로를 보듬고, 북돋아 주고, 응원해 온 셀린 시아마의 여성들이 사랑의 관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는 동안, 스스로를 ‘정치적 레즈비언’이라 선언했던 페미니스트들이 꿈꾸고 갈망했던 여성들의 관계가 셀린 시아마의 영화 궤적에 온기를 품은 유려함으로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아 황홀했다.
여기까지가 〈쁘띠 마망〉의 계보다. 〈쁘띠 마망〉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관계‧감정을 나누며 버티고 성장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엄마와 딸, 즉 세대의 문제에까지 확장된 결과물이다. 〈걸후드〉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말마따나 “셀린 시아마의 세계에서 십대 여성은 망하거나 죽지 않고 성장해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확장해 낸다. 셀린 시아마의 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그녀의 모든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차근히 진행되며 펼쳐지는 셀린 시아마의 촘촘하고 단단한 세계관이 마블 유니버스나 가수 에스파(aespa)의 세계관만큼이나 많은 팬덤을 거느리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관계는 평등해지고, 우리는 단단해지며, 세계는 다채로워질 것이다. 여성의 경험에서 출발해 성별 권력을 넘어 모두에게 다정한 세상에 대한 상상력으로 나아가기. 셀린 시아마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열어 보자.
*영화는 미카엘/로레가 트랜스젠더인지 레즈비언인지 단정 짓지 않음으로써 어떤 미래든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다만 여기서는 미카엘에게 ‘원래 이름’이 뭐냐고 묻는 리사의 질문, 즉 미카엘/리사를 관계 내부로 호명하는 리사의 질문에 초점을 맞춰 미카엘/로레의 성별을 여성으로 독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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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웨어 스페셜>,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아빠의 편지
영화에 대한 내 소감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울었다.
영화 속에 담긴 현실과, 이를 마주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
하도 많이 울고, 감정소비를 심하게 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의 여운을 즐기지도 못하고, 슬픈 감정을 추스르느라 바빴다.
'눈빛'만으로도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행동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배우가 있다.
<노웨어 스페셜>의 주인공 '존' 역할을 맡은 제임스 노턴이 내겐 그런 배우로 다가왔다.
눈앞에 닥친, 그리고 곧 다가올 현실을 바라보는 제임스 노턴의 눈빛과 표정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렸다.
영화는 암에 걸려 살 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청소부 '존'과 그의 4살짜리 아들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은 자신이 떠나고 혼자 남겨질 아들을 위해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기로 한다.
존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아들'을 위한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신중하려고 한다.
마이클에게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려고 한다.
"아직 어린애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훌륭한 애라고 칭찬도 많이 들어요.
사랑이 많고 다정한 아이예요. 행복한 어린아이죠.
저 아이에겐 평범한 가족이 필요해요.
아빠, 엄마가 있는 사랑이 넘치는 집과 전 가져본 적 없는 기회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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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이클의 새 입양가정을 찾아주려고 하지만 역시나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여러 가정을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이클의 반응을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남은 시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더 고민되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존의 눈에는 자꾸 엄마와 함께 있는 마이클 또래의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사실 마이클의 엄마는 마이클을 낳고 얼마 후, 존과 마이클을 떠났다. 아이를 낳고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존은 계속 마이클에게 '평범한 가족', '아빠와 엄마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처음에 존은 아들에게 '아빠가 곧 죽는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 아들이 너무 어리기에.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에.
- 애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걸 원치 않아요.
아직은 아니에요. 너무 어리다고요.
새 가족과 자기 주변에 또 그런 일이 생기고 자기도 죽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건 애답지 않잖아요.
이런 이유로 '기억상자'에 훗날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담을 것을 권유하는 사회 복지사의 의견을 거절한다.
하지만 마냥 숨길 수만은 없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마이클이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고 아빠에게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
존은 조금 주저하다가 그 딱정벌레는 죽은 것이라고, 죽는다는 것은 몸은 그대로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의 의도와는 다르게 죽음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 트럭은 짐을 잔뜩 싣고 여기저기 다니고,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친구 만나러 멀리 갈 때 차를 타고 다니잖아.
마이클, 나중에 다른 마을에 가서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어?
- 우리 집이 좋아.
육교 위에서 수없이 많은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존은 마이클에게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마이클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우리 집이 좋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마이클이 '입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존은 애써 담담하게 입양은 다정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이클도 은연중에 아빠와 함께 여러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고, 만나보는 이 과정들이 단순히 놀러가는 것은 아님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이클은 대답한다. 자기는 아빠랑 살고 싶다고.
많은 대사도 없는 장면이다.
소파에서 존이 자고 있고, 마이클은 그런 존에게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담요를 덮어준다.
서툴게 담요를 덮어주는 손길에 잠에서 깬 존은 그런 마이클을 꼭 안는다.
정말 이별이 코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존은 마이클이 훗날 볼 수 있는 '기억상자' 속에 아빠를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을 담는다.
차에서 발견한 엄마의 장갑, 아들이 막 태어났을 때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아들이 아빠의 생일날 준 빨간색 초 하나, 아빠와 아들의 손을 대고 그린 그림, 그리고 나중에 운전면허를 땄을 때 읽으라고 쓴 편지와 같이 아들이 한 해 한 해 커가면서 차근차근 볼 편지 등의 물건을 담는다.
존이 자신의 사정을 아는 친한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되는 것이라고. 공기 중에서 남은 사람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한참 전에 사별한 남편의 칫솔을 최근에서야 버렸다고.
아직 마이클은 온전히 그 감정을 이해하진 못 했을 것이지만, 존은 마이클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 아빠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뜻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널 적시는 빗속에서도 널 지켜볼거야.
(아빠가 죽어도) 너는 아빠에게 말할 수 있어.
아빠는 안 보일 테지만 너의 말을 들을 수 있어.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마이클이 있는 모든 공간에서 계속 그를 지켜볼 것을 약속한다.
아마 마이클은 이런 아빠의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그리고 아빠의 물건들을 오래오래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항상 그의 주변에 있는 아빠처럼, 그도 항상 아빠의 존재를 상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찾는 어느 순간에 존은 바람이든, 빗방울이든, 눈부신 햇살이든, 그 어느 것을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대답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존과 마이클이 찾아간 수많은 가정 중에 어릴 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친 사이에서 임신했다가 주변 어른들의 권유로 반강제로 아기를 없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임신을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아이는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입양아는 못 키우겠다고 떠났고,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존의 결정은 그녀의 가정이었다.
그녀의 집에 마이클을 데려가고, 아들과 아빠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에 아빠에게 보내는 마이클의 눈빛은 마치 '아빠 걱정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테니, 이런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는 걱정하지 말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영화다. 2021년의 마무리에 생각나는 영화를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 이 영화가 먼저 생각날 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하려고 하는 존과 마이클의 이야기를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조용하게 그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인지하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잔잔히 계속 찾아오는 파도가 더 눈에 아른거리듯이, 극장을 떠나서 집에 가는 시간 내내 그저 이 영화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영화의 이야기를 집까지 가져오며 누군가의 현실일지도 모를 이 상황들에 대해 혼자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이 상황을 풀어헤쳐 나가는 아빠인 존, 존이 떠나고 그의 빈 자리를 종종 마주할 아들 마이클, 그런 마이클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새 가정, 이런 이별을 수없이 마주했을 사회 복지사 등.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움, 벅참, 슬픔, 감동 등의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먼저 떠난, 내겐 매우 중요한 존재였던 그 사람이 혹시 가끔씩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라고 내뱉은 내 말을 듣고 혹시 내게 찾아와 주진 않았을지.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가벼운 대답을 해주진 않았을지.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조금의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꾸준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전의 일들에 대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는 내게, 그리고 항상 보고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내게 일말의 대답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공기 속에서 항상 아들의 주변에 있을 것을 약속하며, 아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의 이별편지와 같은 영화인 <노웨어 스페셜>은 오는 12월 29일에 개봉한다.
다들 2021년을 꼭 이 영화로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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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강력한 귀여움으로 무장한 이 영화
어젯밤의 나로 시간을 돌린다. 김승옥의 <생명연습>을 읽다 책장을 닫았다. 10시에 약속이 있었다. 정확히 2시에 잤다. 새롭게 글을 쓰려고 했는데 뭔가가 생각나지 않아 노트북의 키보드를 치는 게 어려웠다. 화면을 켜놓고 정신 말짱한 채로 두 시간쯤 누워있었다. 웃긴 유투버의 영상을 보며 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근데 생산적인 뭔가를 또 한다기엔 한국사 공부가 머리 안으로 안 들어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무튼 늦게 잤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일(그러니까 오늘) 약속이 있으니 일찍 일어나야 했다. 6시간 넘게 좀 자서 8시 30분에 일어났다.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머리를 감아서 버스에 탔다. 식사는 어제 사놓은 빵으로 대체했다.
10시 약속인데 10시 10분가량에 도착했다. 일행 둘에게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한다. 2주 전에는 글을 안 쓰고 왔는데 이번엔 지각까지 했다. 발바닥이 다쳐서 후다닥 뛰지를 못해 답답했다. 이 덕에 최대한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느린 듯 빠른 속도로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단톡방을 확인했다. 아무 말도 없다. 어? 일단 자리에 앉아서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10시 20분이 됐다. 이상했다. 왜 아무말도 없고 아무도 없지?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거 오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로. 친구들에게 답장이 왔다. '바보야 다음 주 12일이잖아'라고 한다. 하. 나의 정신머리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오랜만에 없는 이런 정신 빠짐은 늘 느껴도 새롭다. 그렇게 뭐하지 싶다가, 어제 밤에 읽던 김승옥의 소설집을 꺼내 <건>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생각났다. 김형은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시오? 나의 일상도 그런 꿈틀거림의 연속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상도 어떤 관점에선 꿈틀거린 것 중 하나겠지. 집에서 잉여롭게 과자나 먹으면서 시간 보내는 게 싫어서 이 아침에 밖에 나온 것 아닌가? 그렇게 머릿속을 둥둥 떠나는 생각을 흘려보내니 습관이 된 글쓰기에 이 영화를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심심하고 외로운 나의 단면이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극히 나스러운 시트콤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감독 웨스 앤더슨이 더욱 업그레이드된 덕후력(?)으로 작년에 신작을 발표했다. 자기만의 시각을 오롯이 다룬 채로 말이다. 제주는 상영관이 없어 디즈니 플러스로밖에 볼 수 없어 씁쓸했다. 그래도 ott에 풀리는 기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비행기로 13시간 걸리는 프랑스로 날아가자. 이번엔 가상의 도시 앙뉘다.
1. 어떤 것에 관한 영화인가요?
영화는 한 기자의 부고로 시작한다. 그 기자는 미국인 기자 아서였다. 미국에 살던 기사 아서는 프랑스의 도시 앙뉘에서 50년 전에 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잡지사의 이름은 '프렌치 디스패치'다. 좋은 필진들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아서. 50년 동안 열심히 잡지를 운영해왔지만 당연한 끝을 마주하게 된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서. 아서는 유언으로 신문사를 폐업하라는 말을 남겨놓는다. 이에 대한 결과로 마지막 최종본 인쇄본 발간만을 남겨놓고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 이를 위해 에디터들이 모여 자기가 잡은 소재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어떻게 세상에 대해 조사해온 바를 어떻게 창작자들이 자기만의 코드로 소화해냈는지에 대한 영화라는 뜻이다.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영화의 명대사 같은 영화다. 당연히 명대사가 시네마의 속성 전부인 건 아니다. 뭐 연출력도 있고 개연성도 있고 이런저런 부분에서 좋은 작품을 각자가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할 것이다. 근데 대사를 잘 못쓰면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들을 예술가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잘 못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대사와 같이 인물과 감독이 어떻게 세상을 극화시키는지를 소재로 삼는다.
다른 지점은 감독의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전적으로 과거의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나. 이 잡지사에서 어떤 것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기자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내용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근데 그 기사를 쓰는 소재는 전적으로 저널리스트들에 따라 달려있다. 이 뿐인가?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창작자에 따라 달라진다. 기삿거리로 삼을 수 있는 몇몇 에피소드는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 가령 첫 번째 일화에서 화가는 자살하기 싫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만약 기사를 '이 화가는 매일 어두운 생각만 하는 범죄자'라는 기사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딱히 틀린 말은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근데 이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처럼 말을 전달한다면 약간 다른 뉘앙스로 접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창작자, 예술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대로의 세상을 보여준다. 때에 따라서는 그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도 있다. 감독은 이 부분을 노렸다. 세 에피소드의 변용에 자기의 최대 장점을 활용하며 아름답게 이야기를 극화시킨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된다. 웨스 앤더슨이 지나간 것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정말 지나간 시간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게 멋진 걸까?라는 의문을 던진다는 걸.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 영화의 연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아니라서 말할 수 있지만- 영화는 컬러와 흑백 연출을 통해 말하는 이와 극의 주인공들을 별개로 구분해놨다. 이때 컬러로 처리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웨스 앤더슨이 어느 쪽에 중점을 더 두고 있는지, 또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다음 두 번째는 창작자의 결과물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가?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사 아닌가? 이 잡지사의 직원들이 취재한 걸 기사 쓰는 것 역시 창작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다. 또 나머지 두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화가/요리사다. 이 둘도 창작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화가는 재료로 그림을 만들고 누구는 음식으로 행복을 준다. 기자와 같이 이 세 직업군은 어떤 것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근데 이게 나는 ~~ 다라고 말하면 독자들이, 소비자들이 그렇게 곧이곧대로 해석하나? 당연히 아니지. '그 어떻게 세상과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가?' 역시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미장센. 끝.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분들 중에 그라운드 시소라는 곳에서 열렸던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란 전시관에 가본 적이 있는 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제주에 살아서 이 전시관에 가지 못했다. 검색해보니 <그란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문라이즈 킹덤>에서 나올법한 영감을 전시관에 전시했다고 나와있다. 이렇게 관련한 전시관도 열릴 정도로 웨스 앤더슨은 현대미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에게 따라오는 이런 칭찬을 동의하는 바다.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연출했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이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름다운 색감과 귀여운 유머가 재밌다. 어떤 느낌이냐면. 극에서 등장하는 도시 앙뉘는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일주일에 사체가 8.25구나 발견되고 지하철은 쥐가 많으며 아이들에게 노인공경 같은 건 없다고 초입부에 나온다. 딱히 영화로 삼을만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나라면 거기서 안 산다. 근데 영화의 미장센과 장면 하나하나마다 있는 소소한 유머로 마을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쓴 비율에 색감 덕에 영화를 보는 게 지루하지 않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막 엄청난 비유를 쓴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 근데 어렵긴 하다. 후술할 6번에서 알 수 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티모시 샬라메. 프랜시스 맥도먼드. 레아 세이두, 에드리언 브로디, 빌 머레이 등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호화 출연진이 총 줄 동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극의 연기 퀄리티가 확 올라가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좋은 배우라는 것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특유의 웨스 앤더슨의 귀여운 세계관을 배우들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낸다. 분명 <듄>과 <노매드랜드>, <007 : 노타임 투 다이>에서 본 사람들인데 그냥 어딘가에서 데리고 온 다큐멘터리 같다. 난 영화언어에 놀랐다.
6.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네. 있다. 이거 이 부분 모르고 가면 보는데 지장 있을 수도 있다. 대사량이 엄청 많다. 그래서 난 극장보다 디즈니+로 보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7. 어떤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 있지 않나? 소소하게 귀여운거 좋아하는 사람. 지치는 경쟁에서 벗어나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좋을 것이다. 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위시한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무. 조. 건. 필견이다. 나는 이 작품이 이 감독의 최고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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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크리처> 파트 1 |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성에서 제일가는 전당포 주인 '장태상'(박서준). 경성 최고 셀럽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던 그는 1945년 봄, 느닷없이 역경에 빠진다. 경무국장 '이시카와'(김도현)가 그의 목숨과 재산을 뺏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 그의 아내 '마에다 유키코'(수현)가 숨긴 자기 애첩 '명자'(지우)를 벚꽃이 질 때까지 찾아내지 못한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장태상은 모든 연락망을 동원해 명자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좀처럼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한다. 결국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그는 만주에서 제일가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과 '윤중원'(조한철) 부녀와 계약을 맺는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일본군 병원인 옹성병원에 명자가 갇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태상은 직접 그녀를 빼내오려 한다. 병원 지하실에 일본군이 만든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크리처물의 딜레마
괴수물, 넓게는 크리처물은 언제나 딜레마에 직면한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과 일반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엇갈리기 때문. 전자는 괴물이 얼마나 강하고 독특한지, 괴물 혹은 인간과의 싸움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지를 따진다. 등장인물의 서사, 인간 캐릭터의 완성도는 뛰어나면 플러스 알파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반면에 일반 관객은 크리처물이나 괴수물을 볼 때 당황하기 쉽다. 일반적 작법을 자주 벗어나니까. 서사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과하게 부족하거나, 인간 캐릭터가 단지 괴물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식이다. 일례로 괴수들의 액션에 집중한 <고질라 VS. 콩>은 일반적 관점에서 완성도를 등한시한 범작이다. 반면에 장르 팬이 보기에는 더 바랄 것 없는 선물이다.
시즌 1과 2를 통틀어 제작비 700억을 투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도 딜레마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과 <스위트홈>을 섞으려 했다. 1945년 봄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의 애환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물과의 싸움을 그려냈다. 하지만 파트 1만 놓고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는 실패에 가깝다. '경성'은 살렸지만, '크리처'물로서의 정체성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1945년 경성 사람을 그려내다
<경성크리처>의 기초공사는 일견 착실하다. 참신하다고는 못해도, 시기의 특수성을 나름 적절히 활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제의 침입이 본격화된 1900년대 초나 일제의 수탈이 한창인 1920년대나 3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기에 용이하므로.
<경성크리처>는 다르다. 1945년의 봄을 보여준다. 일본의 패망이 임박한 시기가 배경이다. 물론 화려한 금옥당을 비롯한 거리 모습은 물자 배급이 시행되던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시대의 사람들을 그려내려고 애쓴다. 옹성병원에서 붙잡힌 장태상과 거래하는 일본군 장교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성에서의 삶이 이미 익숙하다며, 태상을 풀어주는 대신 일제의 패망 이후 조선 정착을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이에 더해 <미스터 션샤인>처럼 독립운동을 묘사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캐릭터가 당연히 조선 독립을 원하는 뻔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처럼 조선을 증오하거나 방관하던 이들이 고애신의 조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였기에 흥미로웠다.
<경성크리처>의 주인공 장태상도 마찬가지다. 그는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는 '권준택'(위하준)의 제안을 항상 거절한다. 일본의 일부인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에게 독립운동은 설령 옳더라도, 자기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의열단의 조력자였던 어머니의 생전 마지막 말이 "살아남아라"이기에 더더욱. 이처럼 <경성크리처>에서는 선과 악을 딱 잘라 말할 수 없게 된 일제 치하의 세월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역사를 붙잡은 괴물
그 덕분에 시대극과 크리처물의 조합도 어색하지 않다. 패망 직전이기 때문에 괴물을 만들겠다는 일본군의 발악에는 설득력이 깃든다. 단순히 한 과학자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 하에서 이뤄지는 실험이기 때문. 병원장이 괴물을 길들이거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묻고, 결과를 천황에게 보고할 것이라는 장면만 봐도 일본군이 이 괴물을 태평양 전쟁 전황을 바꿀 신무기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성크리처>의 상상력은 역사와도 부합한다. 하얼빈에 위치한 731 부대는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조선인 대상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전쟁 말기에는 실험 기록과 시설을 없앤 후 일본으로 도주했다. <경성크리처>는 이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했다. 만주를 떠나 경성에서 실험을 이어가거나, 웅성병원 건물 디자인이 731 부대 건물을 닮은 점이 대표적이다.
물론 국내 드라마 기준으로는 클리셰에 가까운 대목일 수 있다. 다만 거시적으로는 인상적인 시도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는 비밀무기를 개발하거나 찾아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꿈꾸는 나치 독일을 자주 등장시켰다. <인디아나 존스 5>에서는 나치 잔당이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로 역사를 바꾸려 했다. <캡틴 아메리카> 1편에서도 나치 소속인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가 테서렉트를 이용해 승전을 꿈꿨다.
반면에 같은 추축국이었는데도 일제가 주체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종전 직후 냉전에서 미국이 일본을 우방국으로 두기 위해 전쟁 범죄를 눈감아 준 역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731 부대의 연구 성과를 이용하려고 731 부대원의 전범 재판 기소를 면제하거나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 그저 괴물만 괴물은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경성크리처>는 승전국이 아닌 과거 식민지의 콘텐츠라서 가능한,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문제는 괴물 활용법
하지만 <경성크리처>는 '경성'을 살려낸 것에 비해 '크리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괴물의 등장부터 호불호의 여지가 크다. <경성크리처>는 2014년도 <고질라> 같다. 이 영화는 고질라가 파괴한 도시, 공항, 함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위용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클라이맥스가 돼서야 고질라를 전면에 등장시켜 방점을 찍었다.
<경성크리처>도 마찬가지다. 괴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참혹하게 살해되는 일본군과 조선인 희생자들의 리액션을 비춘다. 괴물은 중후반부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일장일단이 있다. 극의 속도를 조절하며 서스펜스를 강화할 수 있지만, 괴물의 활약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감질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일행과 일본군의 비중도 감점 요소다. 괴물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빈 분량을 드라마는 장태상, 윤채옥과 일본군의 병원 내 추격전으로 대신한다. 크리처물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만하다. 마치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싸움 대신 미군과 디셉티콘이 싸우는 장면만 나오는 <트랜스포머>를 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괴물 묘사도 일관적이지 않다. 초반부에 괴물은 수많은 일본군을 손쉽게 제압한다. 초인적인 속도와 먼 거리를 넘나드는 촉수 앞에서는 어떤 무기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정작 두 주인공을 마주한 순간부터 괴물은 속도도, 촉수도 활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기를 쓰거나 몸을 숨기기에 충분한 시간을 준다. 자연히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괴물과 윤채옥의 신파가 더해지면 극의 전개는 더욱 억지스러워진다.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주요 플롯 중 하나인 장태상과 윤채옥의 로맨스도 덩달아 부자연스럽다. 극 중 로맨스는 우연적 요소에 기대 급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장태상이 윤채옥의 외모 때문에 첫눈에 반했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이는 경성 배경 시대극과 크리처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방증이다. 드라마가 크리처물 플롯을 살리기 위해 로맨스에 할애할 분량을 줄였기 때문.
결국 <경성크리처>는 무엇을 기대했는지에 따라 첫인상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경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역사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는 나름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크리처'를 기대했다면 속 시원하지 못한 전개와 억지스러운 묘사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과연 <경성크리처> 첫 시즌의 남은 에피소드 3개는 첫인상을 바꾸고, 시즌 2의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까?
Poor 형편없음
'경성'크리처냐, 경성'크리처'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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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넷플릭스 19금 드라마 솔직리뷰(*스포없음)ㅣ무브투헤븐
? "무브 투 헤븐" 넷플릭스 드라마 리뷰영상(*스포없음)
- 솔직한 한줄평: 스위트홈보다 낫다야, 진작에 좀 이렇게 만들지- "무브투헤븐" 정보
장르: 드라마
공개일: 2021년 5월 14일
러닝 타임: 시즌 1 (총 10화, 505분)
제작: 넘버쓰리픽쳐스, 페이지원필름
채널: 넷플릭스
제작: 김미나, 정재연
연출: 김성호
극본: 윤지련
원작: 김새별, 전애원의 논픽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출연: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 외
시청 등급: 영등위 18세이상 청소년 관람불가- 시놉시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김새별, 전애원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원작으로 한다
감옥에서 갓 출소한 상구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조카
그루의 후견인이 되고 유품정리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무브투헤븐 #넷플릭스드라마 #무브투헤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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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멜로무비> 티저 예고편
사랑도 하고 싶고 꿈도 이루고 싶은 청춘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영감이 되어주며 각자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영화같은 시간을 그린 로맨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멜로무비》 2월 14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