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4-08-24 17:20:49
✨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 북유럽 영화 추천! 🎬🇫🇮 🇸🇪 🇩🇰
북유럽의 세계로...!
안녕하세요, YELM입니다!
오늘은 북유럽 추천작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북유럽영화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잘 녹아있는 추천작 5개 빠르게 추천해드릴게요 :)
/ 순서는 순위가 아닙니다. /
사랑은 낙엽을 타고
Kuolleet lehdet (2023)
헬싱키의 외로운 두 사람이 우연히 카라오케바에서 마주치고, 서로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들에게 결코 쉽게 행복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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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특유의 차갑고 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이렇게 차갑고 소심한 사랑영화가 있을까요?
경계선
Gräns (2018)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냄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조금 독특한 외모에 사람들과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어느날, 티나는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남성 '보레'를 마주한다.
그가 들고 있던 수상한 짐때문인지, 모든 것이 수상하고 이상한 보레.
그녀는 그런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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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괴하고, 독특하고, 어쩌면 역겹기까지한 스웨덴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평단의 찬사가 이어진 작품으로서 새로운 영화적 충격을 받고 싶으시다면 주저 없이 추천드리고 싶네요!
라이카 시네마
Cinema Laika (2023)
핀란드의 한 작은 마을의 주조공장에 시인이자 작가인 미카 라티는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함께 영화관을 짓기로하고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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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영화관을 짓는 다큐멘터리로, 잔잔한 흐름의 영화입니다.
큰 사건사고, 흥미로운 전개, 독특한 캐릭터등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요소는 없지만, 관객들에게 영화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도그빌
Dogville (2003)
도망자 '그레이스'는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피해 작은 마을 '도그빌'에 도착합니다.
마을 주민 '톰'이 그레이스를 발견하게 되고, 톰은 주민들을 설득해 그녀를 마을에서 보호해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큰 보호의 대가를 그레이스에게 요구하게 되고, 작은 마을은 곧 그녀의 평온한 안식처가 아닌 감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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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의 영화는 항상 기괴하고, 혐오스럽고, 심오하죠.
그 중 '도그빌'은 가장 순한 맛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을 선으로만 표현하는 독특한 연출과 제한된 공간에서도 극중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멋진 작품입니다.
어나더 라운드
Dru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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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활력이 없는 중년 남성 4명이 '혈중 알콜 농도가 0.05%이 되면 더 적극적인 성격이 발현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합니다.
과연, 실험은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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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흥미로운 가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실험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주목해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떠올리면 인상깊은 결말이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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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린 독특한 감성의 북유럽 영화들 보시고 후기 댓글 남겨주세요!
이번주도 영화와 함께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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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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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리에게
내가 이 드라마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워낙 드라마를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이탈이 빠른 편이라 내가 이 드라마에 대단한 이입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방영 초반이라서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 드라마 예감이 좋아서 오늘도 주절거려본다.
우선 배우진들이 아주 탄탄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사람들의 수준은 아주 높아져서 캐스팅만으로는 그 드라마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기력은 알아주는 배우들이 나와주어 한 번은 기대하게 했다. 그렇다. 나도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본 것이다. 다만, 이 드라마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극본에 달린 듯하다.
다만, 이 드라마에 관심이 간 이유는 이 드라마가 해리성 장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 드라마의 소재가 정신적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비추는 경우가 많아져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리뷰한 적도 있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냥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긴 하다. 로맨스만 있는 장르였다면 볼 생각을 안했겠지만 이 드라마는 소재가 굉장히 흥미롭다. 여기에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으로 여자 주인공에게 서사를 부여하면 지금 현재 남주가 저렇게 까칠하게, 못되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될 것 같다. 현재 방영 시점까지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과잉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하는 행동이라기엔 과잉되어 있다는 뜻이다. 잠깐의 뇌피셜을 해보자면, 남주 현오는 여주 은호가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4화 엔딩에서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해리성 장애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추후 나올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과잉된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구나 느끼는 현 시점에 이런 드라마가 나와주어 고맙긴 하다. 주은호가 동생을 기억하며 동생이 사라진 들판에서 해매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은호는 마음 속에 그런 들판을 해매면서 동생 혜리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애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혜리를 기억하면서도 혜리가 해매던 들판에 자신을 몰아넣어 자신을 벌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야말로 지금 이 신선한 느낌에서 입덕까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이 드라마는 베이스는 로맨스이긴 하지만 약간 '나의 아저씨' 같은 힐링이 될 만한 여지가 있는, 필력이 좋은 드라마라고 느꼈다. 어느 순간 신혜선 배우가 오열하는 신이 한 번쯤은 나올 것 같은데, 그 때에 이 드라마를 보는 내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요새 볼 만한 드라마가 참 없다고 느꼈는데, 시작이 신선한 만큼 기대가 되는 드라마를 만나 기분이 좋아 이래저래 주절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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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2021)
개봉일 : 2021.12.15.(한국 기준)
감독 : 존 왓츠
출연 : 톰 홀랜드, 젠데이아 콜먼,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파브로, 제이콥 배덜런, 마리사 토메이, 알프리드 몰리나
쿠키 영상 : 2개
가장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처음 등장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개봉 2년이 지난 2021년 12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돌아왔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과연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래 기다린 만큼 팬들의 기대감도 컸기에 항간에 떠도는 소문도 참 많았다. 그 소문들을 믿거나 너무 기대하진 않으려고 했다. 기대하면 그만큼 실망할 이유들이 많아지니까.
처음 마블에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릴 때쯤, 나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푹 담가져 있었다. 큰 눈을 가진 앤드류 가필드의 인간미 넘치는 스파이더맨이 좋았고, 비록 악역이었지만 치명적이었던 데인 드한의 연기가 좋았다. 거기에 삼부작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바람에 아픈 손가락처럼 더 애착이 갔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류를 뒤로하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등장이라니. 기대도 됐지만 살짝 못 미덥기도 했다. “과연 어떤 스파이더맨이 나오는지 보자-”싶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톰 홀랜드는 자신이 가진 힘을 힘껏 뿜어내며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만들어갔고, 관객들은 자연히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3대 스파이더맨이 된 톰은 ‘아기 거미’와 ‘톰스파’라는 애칭까지 꿰차며 당당히 어벤져스에 합류했다. 특히 인피니티 워에서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눈물 줄줄 흘리던 관객들도 꽤 많았으니.. 스파이더맨으로서 그의 존재감이 꽤나 톡톡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성장
토니 스타크가 떠나기 전까지 어벤져스에서 스파이더맨의 이미지는 완전한 히어로라기보단 막내와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토니에게 수트를 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거나, 토니와의 만남에 신나 셀프 카메라를 찍는다거나, 짝사랑하는 MJ 앞에서 어버버 말을 흐린다거나.. 등등. 히어로 캐릭터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어렸던 스파이더맨은 항상 조금씩 어설펐다. 나쁜 뜻은 아니라 딱 그 나이대의 감성이 풍부한, 서툰 소년 같았다는 말이다. (역대 스파이더맨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대인 것도 한몫했다.)
<엔드게임>이후 개봉한 <파 프롬 홈>에서는 멘토였던 토니를 잃은 피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토니의 뜻을 이을 수 있는 ‘히어로’로서의 길을 선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 개봉한 <노웨이 홈>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눈앞에 닥친 위협 속에서,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라는 두 개의 인생을 두고 갈등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터 파커다운 스파이더맨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모두를 돕는 일이다.” 사실 이 두 마디 말이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살짝 잊어가던 참이었다.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비해 어벤져스 시리즈의 스케일이 범우주적으로 넓어지기도 했고, 상대하는 악당들과 스파이더맨의 슈트 능력치 또한 크게 상승했기에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내가 처음 접했던 스파이더맨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또한 매력적이었고, 가끔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느낌보다는 ‘우주를 구한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느낌이 강했다.
서서히 새로운 스파이더맨에 익숙해지고 있던 찰나, <노 웨이홈>은 피터 파커를 다시 피터 파커답게 돌려놓는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던 그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사람의 선함을 믿고, 이웃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소박하고 친절한 옆집 청년 같은 그 스파이더맨처럼 말이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
<노 웨이 홈>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의 마무리로서 완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시간 만나온 친구, 스파이더맨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했던 시절부터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와 오랜 시간을 쌓아왔기에 세 번째 마무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꾸준히 이야기를 진행해온 프랜차이즈 영화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준 캐릭터가 가진 가장 큰 메리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시간과 정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하다.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을 이렇게 한 번에 다시 선물 받다니. 이 영화를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을까?
사적인 감정을 모두 제외하고 본다면 영화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너무 많아 일회성으로 소모된듯한 빌런의 존재와 가장 임팩트 있어야 할 장면이 다소 심심하게 그려졌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의 포지션이 살짝 아쉬웠다는 것.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그게 대수인가! 스파이더맨이 이렇게 돌아왔는데. 실망할 시간 같은 것은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글의 상단에선 참겠다. 영화를 보기 전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라면 “그 어떤 스포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감상하라.”정도가 있겠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시놉시스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세상에 정체가 탄로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하루 아침에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각기 다른 차원의 불청객들이 나타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드디어 열린 멀티버스
앞선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어벤져스 시리즈>를 거치며 꾸준히 언급됐던 ‘멀티버스’. 그 멀티버스가 드디어 <노 웨이 홈>에서 열렸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포탈을 통해서 말이다.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란 사실이 온 세상에 퍼지고 피터는 스파이더맨인 자신이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다며 자책한다.
MJ와 네드의 대학 입시가 좌절되고 사람들은 피터의 집에 벽돌을 던진다. 죄책감에 마음 아파하던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기억을 지우는 주문을 부탁한다. 하지만 피터의 의도치 않은 방해로 인해 주문이 흩어지고 그 결과 평행 우주에서 ‘피터 파커’를 아는 온갖 인물들이 몰려오게 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타비우스, 샌드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 일렉트로와 리자드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대 스파이더맨 두 명까지. 빌런들이 우르르 등장할 때부터 이 둘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긴 했지만, 실제로 앤드류 가필드가 등장하는 순간 “내가 이걸 보려고 이 시간들을 견뎠나 보다..”싶으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끝나버린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걸 보려고 버텼나 보다.
삼 스파이더맨의 등장
(이하 톰 홀랜드 = 톰스파, 토비 맥과이어 = 샘스파, 앤드류 가필드 = 어스파로 표기)
메타버스를 통해 만난 스파이더맨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심장이 하늘로 솟았다 곤두박질치듯 강하게 뛰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 걸까. 벅차오른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 영화에 가득한 이전작들의 오마쥬 장면들과 고민하고 있는 톰스파에게 건네는 선배 스파이더맨들의 위로까지.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같은 고민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결국엔 성장하는 스파이더맨들
‘두 개의 삶’은 역대 스파이더맨 모두가 공통으로 고민했던 문제다. 히어로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삶 or 평범한 피터 파커로서의 삶. 스파이더맨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없고 피터 파커로 산다면 내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세상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거기에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험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선한 히어로이기 전에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의 본성까지 끄집어내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들 속에서 흔들리는 피터와 끝까지 피터를 잡아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가장 큰 감동 포인트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한 사람만 노력해도 세상은 달라진다.” 그리고 피터는 누구보다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응원까지. 피터는 사랑하는 이들의 말을 양분 삼아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과 선한 본성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샘스파는 벤 삼촌과 친구 해리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어스파는 아버지와 거미에 대해 얽힌 비밀과 두 개의 삶 중에서 고민을 반복하다 선택을 하는 순간에 사랑하는 그웬을 잃게 된다. 포탈을 타고 다시 등장한 그는 여전히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듯한 모습을 보인다. MJ와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톰스파를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한 장면처럼 먼 바닥으로 추락하는 MJ를 구해낸 어스파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온 죄책감에서 한걸음 벗어난다.
톰스파는 빌런들을 고칠 수 있다며, 인간의 선함을 믿다 메이 큰엄마를 잃는다. 선함을 믿고 모두를 도와야 한다던 메이의 말을 따르며 많은 이들을 도와온 피터의 믿음이 깨지고 그는 폭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앞서 같은 아픔을 겪어본 선배 스파이더맨들은 톰스파의 분노를 막고, 마음을 되돌려놓는다.
도덕성과 선함은 약점이 아니다
피터가 여러 평행 우주에서 온 빌런들을 되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사람의 본성과 운명은 바꿀 수 없다며 주문을 강행하려 하지만 피터는 달랐다. 피터는 메이 큰엄마의 말을 따라 빌런들을 고쳐놓기로 결심한다.
피터는 모두가 믿지 않고, 모두가 안될 거라 말한 일을 해낸다. 정확히 말하면 세 명의 피터 파커가. “너의 약점은 도덕성”이라고 비웃던 빌런을 고치고, 미스테리우스가 옳았다며 스파이더맨을 비난하는 세상을 한 번 더 구한다. 스파이더맨은 남들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선함’을 가슴 중심에 품고 오늘도 묵묵히 누군가를 구한다.
다시 처음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몰려오는 평행 우주의 존재들을 보며 피터는 큰 결심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멋진 슈트와 비록 익명이지만 우주를 구한 스파이더맨이라는 명성, 집과 친구들. 모든 걸 포기한 피터는 소중한 친구들이 남긴 흔적을 들고 작은 방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네드와 조립했던 레고 캐릭터와 MJ가 건넨 커피. 그리고 책상에 널브러진 천 조각들과 새로운 스파이더맨 슈트.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스파이더맨이 해야 할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보인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렇게 자연스레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의 세계관에서 퇴장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발로 뛰고 구르며 다시 어벤져스의 스파이더맨이 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3편을 추가 계약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 톰 홀랜드의 말을 보다 보면 그의 피터 파커를 보내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또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노웨이홈>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적절한 쉼표로 기억될 것이고, 이렇게 끝나게 된다면 아름다운 마침표로 기억될 것이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는 어째 항상 짠하고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초월적 힘을 가진 히어로라기보단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인간적이고 친절한 이웃의 느낌이 더 강해서 그런 걸까? 처음으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접한 지 10년이 더 지났다. 나의 첫 번째 히어로 스파이더맨, 그와 쌓아온 시간이 내 마음속에 이렇게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어떻게 될진 몰라도, 난 이 영화를 끊임없이 찾고, 또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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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구아다니노의 반짝이는 여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샤이닝>, <캐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취향이 변덕스러운 탓에 장르가 완전히 다른 작품들이지만 하얗게 내리는 눈과 찬 공기를 가르며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감화되고,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가 하면 날이 더워지면서 떠오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톤먼트>, <위대한 개츠비>, <아가씨>, <해변의 폴린>… 여러 작품들이 보고 싶어지지만 내게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서스페리아>이지만, 그가 담아낸 여름이 스크린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은 2017년 개봉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물 속에서 막 건져 올린 듯, 매끈한 빛이 나는 첫사랑의 기억과 겨울을 맞음으로써 상실되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인생 영화’처럼 각인되었다.
미묘한 감정들을 아주 세심하게, 어느 순간엔 재치있게 묘사한 만큼 여운도 길게 남는다. 길게 누워 그리스 신전의 프리즈를 장식한, 디오니소스이 조각상 같은 티모시 샬라메의 외형, 그리고 꾹꾹 눌러 쓴 세심한 편지 같은 그의 연기가 영화에 힘을 실어 준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것은 집 앞 작은 수영장 끄트머리에 기댄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으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악보를 애써 내려다보는 장면, 자전거를 타고 뒤돌아 가려다 아쉬운 듯 한번 더 던지는 눈길 같은 이미지이다.
엘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찰랑이는 물 밖으로 건져 낸 미술품,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식사, 열리고 닫힌 문들이 내리쬐는 햇빛과 더운 공기를 화면 밖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첫사랑의 설렘과 혼란과 같은 감정으로 변모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가진, 화면을 채우는 요소와 색채를 감정과 감상으로 변환시키는 솜씨는 그가 다른 예술이 아니라 영화감독이기에 발산할 수 있는 멋진 능력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첫사랑의 가슴 뛰는 감정과 성장통에 집중한다면 진실된 자아와 욕망의 발견을 다룬 이야기는 <아이 엠 러브>이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윤이 나는 바닥이 깔린 저택, 엠마(틸다 스윈튼)가 저녁 만찬을 위해 손님 자리를 배치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우뚝 선 저택에서 사람들은 스포츠와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은 유산을 상속받을 가족들, 접시를 들고 카펫 위를 걷는 가사도우미들, 고가구, 벽에 걸린 그림들로 채워졌지만 가장 빠르게 와닿는 감정은 만족과 평안이 아니라 공허함 또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다. 예컨대 틸다 스윈튼이 밀라노 대성당의 공중부벽 사이를 지나는 장면에서 감독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성당의 장식 안에 그를 가둔다. 한겨울의 저택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아치와 높은 첨탑마다 서 있는 조각상에 갇혀 있다. 엠마는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텅 빈 삶에서 걸어나온다.
그의 사랑은 어떤 건축물에도 둘러싸여 있지 않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작은 그늘조차 없는 잔디며 풀 위에서 피부를 마음껏 드러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욕망과 해방의 감정이 몰려든다. 단순히 감각적인 장면의 연속이 아니라 영화 전후의 배경의 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종국엔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 그 자체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여름에 시작한 사랑이 겨울에 이르러 끝나고, 벽난로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반면, <아이 엠 러브>는 겨울에서 시작해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가는 엠마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영화에 담은 여름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가 곧 계절 그 자체가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를 헤치며 걸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사랑이 강령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반짝일 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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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둘> -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우리, 둘 (Deux, Two of Us)
개봉일 : 2021.07.28 (한국 기준)
감독 :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레아 드루케, 제롬 바랑프랭, 허브 소근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젊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생의 한순간, 우리, 둘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순간. 니나와 마도는 당신을, 나를,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 둘>은 노년에 접어든 한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며 올해 5월 개봉했던 <슈퍼노바>가 함께 떠올랐다. 모두가 찬란하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느낌이 드는 노년의 사랑.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동성 간의 사랑.
우리가 사랑하고, 너와 내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완전하게 무시하기엔 우리 앞에 놓인 것이 너무도 많기에, 우리를 가릴 수 있는 그늘막 밑으로 숨어들게 되는 사랑. ‘아름다운 우리’가 있지만 당당할 수 없었던 사랑. 늦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행복한 사랑. 자주 다뤄지지 않는 색을 띤 사랑이지만 이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임은 틀림없다.
조금 방심한 채 상영관에 입장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후엔 꽤나 긴 여운에 사로잡혀 니나와 마도의 사랑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니나와 마도에겐 전부인 사랑이지만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세상은 변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사랑에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여전히 짊어지기엔 버거운 사랑과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니나와 마도의 눈빛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흔들림 없이 행복하다기보단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사랑하기에 지켜내야만 하는 우리, 둘. 천천히, 끊임없이 이어지는 니나와 마도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몸짓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니나와 마도의 사랑이 무한하다 한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에,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더욱 숭고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우리, 둘 시놉시스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마도의 생일, 쉽지 않은 고백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마도를 되찾을 플랜을 짜기 시작하는데…
온 세상을 떠나보내도 함께하고 싶은 두 여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니나와 마도는 서로를, 함께하는 우리를 사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니나와 마도를 제외한 세상은 둘을 ‘오래된 이웃’으로만 알고 있다. 마도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숨겼고 프레드릭과 앤은 엄마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삶이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랑하는 우리, 둘.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우리, 둘의 사랑. 두 사람은 짧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사랑을 속삭인다.
니나와 마도는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인생을 실감하며 이제 은퇴를 했으니 둘이 처음 만났던 로마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자녀를 두지 않은 니나는 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집을 팔고 떠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마도는 프레드릭과 앤에게 이사 계획을 밝히려고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마도의 생일날, 마도는 비밀을 털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할머니의 미묘한 불안감을 느낀 손자 테오가 이렇게 묻는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이 사랑은 불안하다. 사실 이 사랑은 언제 끝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나이와 사회적 시선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내일 당장 갑자기 이별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다.
똑딱똑딱 움직이는 마도 남편의 시계 소리, 브레몬트와 니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점점 빠르게 들려오던 세탁기 소리, 프라이팬이 타들어가는 소리, 니나가 찻잔을 톡톡 때리는 소리, 마도가 없어진 날 주위에 들려오던 어지러운 사람들 소리가 주던 불안감. 행복하고 부드럽게 흐르기보단 긴장되고 초조하게 흐르던 순간들. 마도가 쓰러지던 날, 평온했던 두 사람의 시간은 잠시 멈췄다 이내 경직된 상태로 가쁘게 흐른다.
“미안해. 내가 한 말, 진심이 아니었어.”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날, 니나는 마도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친한 이웃일 뿐인 니나는 마도의 옆을 지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니나의 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오래 쓰지 않은 느낌의 침대, 텅 비어버린 냉장고, 깔끔하다 못해 허전한 느낌의 거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마도의 방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흐르는 방 안에서 니나는 여느 날보다 더 길고 느린 밤을 보낸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고 마도가 돌아왔음에도 니나는 마도를 가까이서 만나지 못한다. 니나는 현관문 구멍으로 간병인 뮤리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몰래 들어가 겨우 마도의 손을 잡아본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봐도 마도는 반응이 없다.
“기억 안 나? 우리야.”
가족들은 마도에게 간병인을 붙이지만 마도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를 만나기 위해 매일 문을 두드린다. 마도가 산책 나가는 날, 타이밍 좋게 함께 집안에 들어간 니나는 뮤리엘에게 신발을 건네받아 마도에게 신겨준다. 애정이 가득한 정성스러운 손길에 신발은 부드럽게 마도의 발에 맞아들어간다.
뮤리엘에게 마도는 돌봐야 하는 환자고, 니나에게 마도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뮤리엘이 아무리 오랜 경력의 간병인이라 해도 뮤리엘과 니나의 행동과 눈빛엔 각자 다른 마음이 담겨있다. 그 차이 때문일까, 마도는 니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스스로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된 마도. 두 사람에게도 어슴푸레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내가 마도의 유일한 사랑이죠”
앤은 엄마(마도)의 유일한 사랑이 오래전에 떠난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와 결혼을 했고,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밝혀진 엄마의 비밀은 앤을 혼란스럽게 했고,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앤은 마도를 호스피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니나는 한순간에 마도를 빼앗긴다. 마도의 ‘진짜 유일한 사랑’은 니나인데.. 마도의 남편이 책장에 장식되어 있는 오래된 장식용 시계와 같은 인연이라면 니나는 그 시계를 대신할 모든 것인데, 앤과 프레드릭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노년의 나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에 목숨을 걸고 영원을 맹세하기엔 늦은 순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니나와 마도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둘은 어떻게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호스피스에 들어간 마도는 빙고판을 보며 니나의 번호를 정확히 떠올리고 전화를 건다. 겨우 호스피스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문안엔 희망이 아닌 허망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돈은 뮤리엘이 훔쳐 갔고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로마로 떠나기는커녕 당장 내일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상황. 니나와 마도는 절망적인 현실을 뒤로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20년 전과 같은 음악, 그때처럼 마주 잡은 손. 20년이란 시간에 맞춰 늙어버린 몸은 전보다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마도는 느린 걸음으로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닫는다. 앤이 선물했던 고양이가 복도로 쫓겨나고, 두 사람을 방해하는 현실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다. 니나의 집안엔 이제 마도와 니나뿐이다. 희망도 탈출구도 보이지 않지만, 니나와 마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는 한 그저 서로를,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나의 유일한 사랑인 그녀가 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이자 의미니까.
우리는 연애를 하며 현실적 문제를 맞이했을 때 현실을 따라 사랑을 포기할 것인지, 조금 힘들어도 사랑을 붙잡을 것인지 수없이 고민한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사랑’을 포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은 끝에 결국엔 후회에 도달했다. 사랑을 지키는 힘은 젊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상대와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 둘>을 보며 한 번 더 느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사랑,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랑. 서로의 등을 감싸 안은 팔을 절대로 풀지 않을 사랑. 유한함을 마주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무한한 사랑. 물리적 한계를 마주하기 전까진 이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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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틀 오퍼레이션>이 그려낸 실화의 또 다른 얼굴
“이들은 기록에서 잊혔고, 전쟁사의 언저리에 남겨졌지만, 가이 리치는 그들을 스크린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그러나 그 거대한 전쟁의 이면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작전과 익명에 가까운 요원들이 존재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바로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방식의 전쟁’을 수행했던 이들, 전통적인 규율과 명예로 무장한 군인들과는 달리, 적의 뒤를 치고 선을 넘으며 임무를 완수했던 비정규 전사들의 이야기다.
‘첩보작전 실행부’, 실화에서 출발한 비범한 이야기
영화는 실존했던 비밀 작전 부대, 첩보작전 실행부(SOE, Special Operations Executive)를 바탕으로 한다. 윈스턴 처칠의 지시에 따라 조직된 이 부대는, 당시 "비신사적인 전쟁부(Ministry of Ungentlemanly Warfare)"라 불리며 공식 기록에서조차도 한발 비껴 서 있었다. 이들은 군복도 없이 나치 점령지를 누비며 파괴 공작, 기차 탈선, 항구 봉쇄, 통신 교란 등 전면전이 아닌 후방에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전쟁법의 회색지대를 오가며, 전통적 명예 대신 실전의 효과를 앞세운 그들의 작전은 기존 전쟁 서사의 이면을 비추는 또 다른 기록이다. 영화는 이 비정규전의 실체를 장르 영화의 언어로 복원하고자 한다.
가이 리치, 실화를 장르로 번역하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단순한 역사 재현물이 아니다. 가이 리치는 이 실화를 진중하게 다루기보다, 장르적으로 해석하고 비틀어낸다. 마치 전쟁 다큐멘터리를 액션 스릴러로 리믹스한 듯한 접근이다. 그가 펼치는 전쟁은 참혹함보다 쾌감, 무게감보다는 리듬에 가깝다. 전통적인 전쟁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낯설게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질감이 영화의 개성으로 작용한다. 가이 리치 특유의 빠른 컷 전환, 교차 편집, 캐릭터 중심의 팀플레이는 영화 전체를 활력 있게 밀어붙인다. 각기 다른 기술과 성격을 지닌 요원들은 전장을 마치 범죄 스릴러의 무대처럼 활용하며, 긴장과 유머를 넘나드는 독특한 전쟁극을 구성한다.
스타일의 과잉, 서사의 희미함
그러나 문제는 이쯤에서 시작된다. 리치의 경쾌한 연출이 영화 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동시에 실화의 무게와 서사의 정서적 깊이를 밀어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들이 수행한 임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죽음을 무릅쓴 비정규전, 때로는 비도덕적 수단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했던 현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윤리적 딜레마와 내면의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캐릭터의 유쾌함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입체적인 인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매력적인 설정에 머무른다. 서사의 드라마보다 캐릭터의 ‘쿨함’을 전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관객은 그들이 왜 싸우는가보다 어떻게 싸우는가에만 몰입하게 된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당연히 수반해야 할 역사적 책임감과 윤리적 긴장감도 다소 느슨하게 처리된다. 이는 장르적 선택으로 옹호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실화가 품은 복잡한 층위는 미처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장르적 즐거움과 역사적 진실 사이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스타일리쉬하게 번역하는 영화다. 가이 리치가 다듬어낸 이 비정규전의 서사는 기존 전쟁 영화가 구축해온 영웅주의 서사에서 한발 비켜서 있으며, 더 거칠고, 더 장르적인 방식으로 전쟁의 본질을 되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한 만큼, 더 깊은 내러티브 설득력과 정서적 입체감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이 리치의 다음 영화는 장르의 재미와 실화의 무게를 동시에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균형감이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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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크> 티저 예고편
의문의 공간, 기억을 잃은 채 갇힌 세 남녀! 오직 타인의 목소리에만 의존해 탈출해야 한다? 미스터리 밀실 스릴러 [어웨이크] 티저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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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돌스크에서 온 남자> 예고편
니콜라이는 암스테르담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포돌스크에 살고 있으며, 음악적 성공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지역 신문사의 말단직원일 뿐이다.
갑자기 모스크바의 경찰이 그를 체포하고,
니콜라이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놀이기구에 탄 것 같다.
정말 니콜라이는 경찰서에 있는 것일까?
견장을 차고 있는 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니콜라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