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7-04 16:37:30
7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차기작 '감옥' 배경 영화
<위플래시> <라라랜드> <바빌론>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님의 신작소식!
7월 1주차 씨네뉴스 함께해요!
<탈주> <인사이드 아웃 2> 제치고 1위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탈주>가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줄곧 1위를 달려온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을 제치고
개봉 첫날 1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X 정호연 <누군가는 알고 있다> 10월 11일 첫 공개
정호연이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애플 TV+ <누군가는 알고 있다>의 공개 일이 정해졌습니다. 작품은 영국 작가 르네 나이트가 2015년 발표한 동명 소설 원작으로 유명 저널리스트가 어느 무명작가로부터 자신의 비밀이 담긴 소설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심리 스릴러이며, 케이트 블란쳇의 비서 역할을 맡은 정호연은 똑똑하고 활기찬 야망을 가진 여성을 연기한다고 합니다.
<라라랜드> <바빌론> 데이미언 셔젤 차기작 ’감옥’ 배경 영화
‘월드 오브 릴’에 의하면 지난 4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파라마운트와 함께 차기작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감옥 배경의 액션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 장르로 전해지고 있으며 25년에 개봉 목표를 밝혔습니다. 감독은 <위플래시>, <라라랜드>를 평단의 호평과 흥행에 성공했지만 <퍼스트맨>, <바빌론> 흥행에 실패하면서 할리우드에서의 환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입니다.
웨이브, 부천영화제 90개 작품 특별 편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에서 내일(5일)부터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오픈합니다.
장편영화는 총 16편, 단편영화는 총 7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건수 500건 초과 작품은 조기 종영될 수 있습니다. 영화제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팬들은 물론 평소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장르 영화를 원하는 이용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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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애정의 물성, 물성의 애정
감독] 서원태
출연] 정윤철, 임필성, 임대형 등
프로그램 노트] 뉴욕에 5만 5천 점이 넘는 방대한 보유작을 자랑하는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가 있다면, 광주에는 비디오 5만여 점과 책 5만여 권을 평생 수집해온 ‘호모 시네마쿠스’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있다. 그는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1991년, ‘굿펠라스’라는 영화동아리를 결성한 이래 30년 넘도록 광주 지역 영화 운동에 몸담아왔다. 조대영의 방대한 VHS 비디오 수집품 중 약 2만5천 점을 2022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이른바 ‘시네필’ 문화가 싹텄던 1990년대, 남한에서 VHS 비디오는 서구 시네마테크의 셀룰로이드 필름을 대체하는 물리적 지지체였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를 계기로 제작된 〈일시정지〉는 함께 모여 필름 대신 비디오를 보았던 또 다른 ‘굿펠라스’들이 들려주는 ‘비디오 본색’에 대한 이야기다. (신은실)
이 영화는 비디오를 처음 틀었을 때의 컬러 화면으로 시작한다. 순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장면인지 얼떨떨한 동시에, 저 이미지 자체가 진작에 지난 세기의 것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비디오라... 유치원 시절을 떠올린다. 유치원이 마치면 차량 한 대가 아이들을 동네 별로 나누어 1호차, 2호차, 3호차 순서대로 태워 날랐고, 3호차를 탔던 나는 1호차와 2호차로 먼저 떠나는 아이들이 다음 장면을 궁금해할 때 느긋하게 앉아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주로 디즈니 영화나 <호호아줌마> 같은 걸 봤고, 매일 유치원의 일상을 마치는 순간은 어떤 비디오를 틀지 고르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흥미 없던 로봇 만화 같은 것을 무감하게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일시정지를 눌렀을 때 화면에 은색으로 실금처럼 그어져 올라가던 노이즈도. 되감기, 빨리감기, 같은 글자와 그때의 소리들도.
생각해 보니 제목인 ‘일시정지’는 아직 존재하지만 영문 제목에 들어간 ‘rewind’, 되감기라는 단어도 이미 사라진 것 같다. “10초 앞으로” 혹은 “30초 뒤로”가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멀리 보낸다. 신기술은 옛 것이 되고, “첨단 사업 전람회장”을 담은 뉴스는 꼭 박물관에서 미디어 아트로 틀어줄 것만 같다. 비디오도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
이 영화는 비디오 세대를 기억하는, 통사적인 관점에서 비디오 시대를 말해줄 수 있는 여러 명의 감독 인터뷰를 꼼꼼하게 담았다. <말아톤>, <대립군> 등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옛날 이야기 맞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OTT 경쟁 시대인 지금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고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적인 상영 공간이란 부재하는 개념이었다. 80년대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하나둘 늘어나고, 90년대에는 급부상한 비디오 플레이어와 함께 비디오 렌탈점이 성행한다.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성장한다. 비디오가 영화 필름의 질감을 담으려 노력했던 시절이 있는데, 필름과 필름 사이 자신의 무언가를 밀어 넣던 사람들의 노이즈 자글자글한 예술 세계가 있었는데… 이제 어디서 필름 생산을 멈췄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다 못해 캠코더조차 ‘레트로 감성’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터뷰어들이 비디오에, 비디오 가게에 품은 그리움 또한 흥미로웠다. 유튜브만 뒤져도 전문가의 영화 추천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비디오 가게가 장르적 추천 기능을 했고, 좋은 영화를 많이 추천해 주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는 마치 ‘무림고수’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영화 모임 기록도 있고. 서로의 영화 리스트를 직접 볼 수 있고, 얼굴을 맞대며 알 수 있었으니 사실 요즘의 모임들보다 더 솔직하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키워내기 딱 알맞은 자리였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복제하고, 나눠 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관련 영상물이나, 아직 일본 문화가 개봉되기 전의 <러브레터>도 그렇게 번졌다.
과거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이 영화가 과거를 위무하는 데만 그쳤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과거를 위무하는 마음은 이후 세대에게 필연적으로 위화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들의 말에서도 나로서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90년대 ‘에로 영화’와 맞물렸던 비디오 문화의 성행을 말하면서, 에로 영화 사장 이유로 페미니즘과 성 인지 감수성만을 언급했지만, 매체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과 페미니즘이 이유였다면 포르노 시장,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가 없었을 테니까. 우리 사회 성 인지 감수성이 뭐 얼마나 높다고 이럴 때만 “아쉬움”의 사유 자리에 놓이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불어 인터뷰어들 말대로 에로 영화 소비층의 존재가 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점도 분명 있겠지만… 양으로만 기능할 수 있나? 음으로도 기능했다. 언급된 마틴 스콜세이지 같은 헐리우드 감독에 비해 과거 우리 나라 영화 감독을 디깅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은 이유는, 과거 한국 영화의 이미지 브랜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다양한 감수성이 낮은 영화들과 맞닥뜨리거나, 그걸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타령 듣는 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서.
그런 위화감도 잠시, 영화는 과거의 낭만과 풍요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낭만만을 그리지 않고 나아간다. 유해환경 정화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대통령의 “헌법적 능력”까지 써서 “불량 비디오”를 금지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청소년 보호구역에 성인 비디오 가게가 횡행하는 일은 지양해야 옳지만, 이외의 사적인 비디오에 관해서라면, 과연 관에 의해 이렇게 쓸어버리는 형태가 옳은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미풍양속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나, 관이 쓸어버리는 형태도 아름다운지.
그것도 다 옛 일이다. 이제는 물성으로 소유하는 것이 약해진 시대. 책도 영화도 모두 손에 잡히는 물성을 잃고 구독 경제의 사이클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든 스크린에 띄워 볼 수 있지만, 구독을 해지하는 순간 스크린에 띄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구독 경제에 저항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과 영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구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득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는 ‘찜’, ‘보고 싶어요’만 바삐 눌러 놓으면서도.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충격이었다. OTT에서 내려가면 그 영화를 더 볼 수 없고, OTT의 큐레이션은 대체로 작품성과 다양성보다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의 이득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 가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한 고민은 옅어져간다고 느꼈던 어떤 작품들을 떠올렸다.) 기술 발전만 보면 모든 것을 클라우드에 올려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은 오히려 물리 매체로 영화를 보던 시절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이나 폭이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그 사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렇지. 기술의 발전이 꼭 우리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 한복판에 살고 있으니, 자본의 논리를 완전히 제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영화 또한 자본 없이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가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세상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비록 마이너해도,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택을 받지 않아도,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슴슴하다 못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작품들의 자리를 작은 섬처럼 빼꼼 내어줄 필요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안온하게 쉬어 갈 사람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 인터뷰 중 나온 말처럼, 맥락 속에서 아카이브는 살아있을 것이다.
물성 없는 시대, 여전히 애정은 물성에 어린다. 비디오가 없는 시대는 굿즈 포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굿즈를 꼬박꼬박 모으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굿즈들은 집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영화와 눈 맞춘 시간을, 영화가 내게 와 닿고 나를 바꿔준 지점을 기억하고 싶어서. 영화는 스크린 위를 흘러가고, 장면은 짧게 눈 맞춘 후 멀어지지만, 굿즈는 내 손에 남아 있으니까. 이 찐득한 애정을 물성으로 만져보곤 한다…고 얼마 전에 일기처럼 쓴 적이 있다. 언젠가 먼 훗날, 이들이 비디오를 추억하듯 나도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애정의 물성을 이야기하게 될까.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20:00-21:02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43)
7월 5일 17:00-18:02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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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구아다니노의 반짝이는 여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샤이닝>, <캐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취향이 변덕스러운 탓에 장르가 완전히 다른 작품들이지만 하얗게 내리는 눈과 찬 공기를 가르며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감화되고,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가 하면 날이 더워지면서 떠오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톤먼트>, <위대한 개츠비>, <아가씨>, <해변의 폴린>… 여러 작품들이 보고 싶어지지만 내게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서스페리아>이지만, 그가 담아낸 여름이 스크린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은 2017년 개봉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물 속에서 막 건져 올린 듯, 매끈한 빛이 나는 첫사랑의 기억과 겨울을 맞음으로써 상실되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인생 영화’처럼 각인되었다.
미묘한 감정들을 아주 세심하게, 어느 순간엔 재치있게 묘사한 만큼 여운도 길게 남는다. 길게 누워 그리스 신전의 프리즈를 장식한, 디오니소스이 조각상 같은 티모시 샬라메의 외형, 그리고 꾹꾹 눌러 쓴 세심한 편지 같은 그의 연기가 영화에 힘을 실어 준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것은 집 앞 작은 수영장 끄트머리에 기댄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으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악보를 애써 내려다보는 장면, 자전거를 타고 뒤돌아 가려다 아쉬운 듯 한번 더 던지는 눈길 같은 이미지이다.
엘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찰랑이는 물 밖으로 건져 낸 미술품,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식사, 열리고 닫힌 문들이 내리쬐는 햇빛과 더운 공기를 화면 밖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첫사랑의 설렘과 혼란과 같은 감정으로 변모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가진, 화면을 채우는 요소와 색채를 감정과 감상으로 변환시키는 솜씨는 그가 다른 예술이 아니라 영화감독이기에 발산할 수 있는 멋진 능력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첫사랑의 가슴 뛰는 감정과 성장통에 집중한다면 진실된 자아와 욕망의 발견을 다룬 이야기는 <아이 엠 러브>이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윤이 나는 바닥이 깔린 저택, 엠마(틸다 스윈튼)가 저녁 만찬을 위해 손님 자리를 배치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우뚝 선 저택에서 사람들은 스포츠와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은 유산을 상속받을 가족들, 접시를 들고 카펫 위를 걷는 가사도우미들, 고가구, 벽에 걸린 그림들로 채워졌지만 가장 빠르게 와닿는 감정은 만족과 평안이 아니라 공허함 또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다. 예컨대 틸다 스윈튼이 밀라노 대성당의 공중부벽 사이를 지나는 장면에서 감독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성당의 장식 안에 그를 가둔다. 한겨울의 저택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아치와 높은 첨탑마다 서 있는 조각상에 갇혀 있다. 엠마는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텅 빈 삶에서 걸어나온다.
그의 사랑은 어떤 건축물에도 둘러싸여 있지 않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작은 그늘조차 없는 잔디며 풀 위에서 피부를 마음껏 드러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욕망과 해방의 감정이 몰려든다. 단순히 감각적인 장면의 연속이 아니라 영화 전후의 배경의 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종국엔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 그 자체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여름에 시작한 사랑이 겨울에 이르러 끝나고, 벽난로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반면, <아이 엠 러브>는 겨울에서 시작해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가는 엠마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영화에 담은 여름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가 곧 계절 그 자체가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를 헤치며 걸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사랑이 강령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반짝일 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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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고통스러워도 죽음이 있기에 그 고난도 끝이 있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공존하면서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법칙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이란 목적지에 굴복하고 말지만 더 가지기 위해 남들보다 노력하고 경쟁하며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영화 <숨>은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인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장례지도사는 매일 장례식을 치루기 전에 망자들의 육체를 염을 하며 그들의 생전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 사람들이 60대가 돼서 찾아올 때 두 부류가 있는데 부자는 더 가져가지 못해서 괴로워하며 경직되어 죽어간다는데 가난한 자는 편히 극락 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장례지도사들은 매일매일 시체들을 어루만지고 닦고 하여 죽은 자의 넋을 기린다.
원래 인간의 삶은 고통인 걸까? 넝마꾼이라는 파지를 하루 종일 주워 생활을 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 할머니는 한때 사업에 성공했지만 어느 날 사업의 실패로 인해 남의 집 지하에 살며 하루를 근근이 벌어먹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넝마꾼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의미가 할머니의 말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삶을 말하는 듯했다.
빌어먹을 삶도 인생이지만 할머니는 꿋꿋이 파지를 주워 하루 1000원 안팎의 돈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전기세와 가스비도 내지 못하는 실세이다.
인생도 쉼이 필요하다. 장례지도사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장례 일을 매일 하면서 쉬는 날이 업었다고 한다. 하늘도 바라보고 나무도 바라보고 자연 풍경도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부부는 절에 가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세월의 의미들을 되새긴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지 현명한 죽음은 무엇이고 어떤 게 잘 죽는 건지 말이다. 그런데 장례지도사 부부도 여러 생각들을 했는데 나이 80이 되면 내가 해볼 것 다 해보고 살았는데 굳이 삶을 연명할 필요가 있냐고 서로 묻는다.
장례지도사 부부가 말하길 인간의 일부만 자신의 과업을 알아 행하고 죽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살며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삶이란 그 목적을 모르는 여정이라고도 한다.
영화 <숨>에 불교, 기독교 같은 종교가 등장하는데 대중적인 인류의 종교이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걸 알려주는 사후 보험이다. 넝마꾼인 할머니도 자신의 죽음 이후에 하느님이 지으신 천국의 큰 집에 들어간다는 믿음을 목사로 통해 듣고 지금은 매우 힘들게 살고 있지만 사후에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굳건히 한다.
불교를 믿는 장례지도사 부부도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이 고통을 낳는다고 보고 조금 더 내려놓는 삶과 남들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불상 앞에 다짐한다.
인간이 죽고 고스란히 떠난 흔적은 누가 치울까? 그 흔적들과 부패물을 치우는 유품정리사는 그 현장을 목격하며 청소하고 그 집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면서 고인이 간직한 것들을 유족들에게 넘겨주는 유품정리사를 보며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죽음과 오랫동안 방치된 죽음이 엄청 많다고 생각했다.
유품정리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런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것과 그런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고인에게 주는 눈초리들을 치워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서 장례지도사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는데 권력을 행사하며 잘 사는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어느 사람이건 결국 죽으면 작은 관에 자리된다는 대사이다. 어차피 죽음 이후까지 모든 것을 못 가져가면서 어느 사람들은 남들 것을 빼앗고 누려왔었나? 그 사람들마저 죽으면 자신이 가진 것마저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평생을 자만하고 있을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래서 삶도 고통스럽지만 죽음이라는 마지막 목적지가 있어 그 끝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사후세계는 아무도 모르지만 <숨>을 보며 인간의 모든 것이 살기 위하고자 함이고 죽음의 공포를 방지하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싶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큰 평안이자 불멸의 안식처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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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속 감춰진 ‘WOW’ 한 인생 스토리
정말 ‘WoW’한 인생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제목 그대로 평범하지 않은 질환을 가진 한 청년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속 비범한 인생 스토리를 그린다. 가족도 몰랐던 이 청년의 삶은 저마다 고통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큰 의미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평생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게임을 즐기다 세상을 떠난 그의 인생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년의 이름은 두 개다. 실제 삶은 마츠, 그리고 온라인 게임 내에서는 이벨린으로 불린다. 마츠는 태어나면서 뒤셴이란 근육 질환을 가진 채 태어난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이 더디고 자주 넘어지는 건 물론, 휠체어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었으니 바로 ‘WoW’였다. 가족이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25살로 생을 마감한다. 부모는 아들의 부고를 그가 생전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리기로 하고, 아버지 로버트는 글 하단에 메일 주소를 남긴다. 이후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로버트의 메일함에는 마츠를 향한 고마움과 명복을 비는 소식이 도착하고, 이로 인해 가족들은 아들의 또 다른 인생을 알게 된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첫째는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장애인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 둘째는 현실 세계가 아닌 온라인, 그것도 게임 내에서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마츠이자 이벨린의 믿기 힘든 삶을 오롯이 영상으로 옮기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두 고정관념에 쌓여 있는지를 확인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의 온·오프라인 삶 속 비범함을 일깨운다.
일단 마츠의 삶은 암울하다. 점점 죽어가는 근육처럼 마츠의 인생도 점점 행복을 잃어간다. 하지만 ‘WoW’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뒤바뀐다.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말처럼 그는 온라인에서는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역할로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아바타>의 제이크(샘 워싱턴)가 아바타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자유롭게 걷고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그가 온라인상에서 탐정 이벨린으로 살아가면서 페이커처럼 영웅적 성과를 올리는 것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함께 게임을 하는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게임을 통해 빚어진 부모와의 갈등을 봉합해 주고, 자폐증 아들과 소원해진 엄마의 고민을 듣고 이를 도움도 준다. 마치 대화하면서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말했던 이벨린의 고마움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그만큼 마츠는 이벨린이었을 때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긍정적 요소만 나오는 건 아니다. 마츠 또한 인간이기에, 자신과 달리 평범하게 사는 온라인 친구들에게 시기와 질투, 자격지심을 얻는다. 이로 인해 이간질을 서슴없이 하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불편한 행동을 일삼는다.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 실제 삶의 고통이 온라인으로 번진 것. 이때 게임 속 친구들은 자신들이 받은 도움만큼 그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는 등의 과정을 겪기는 하지만, 결국 이들은 다시 이전의 관계를 회복한다. 마치 현실 속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마츠의 숨겨진 인생을 좀 더 흥미롭게 따라가기 위한 형식도 눈에 띈다. 감독은 실제 가족의 인터뷰와 홈비디오 영상을 통해 가족이 생각하는 마츠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상 구현과 마츠의 블로그 글, 온라인 친구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벨린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는 실제 그의 삶을 보여준 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삽입 후 게임에 접속해 몰랐던 이벨린의 생각을 엿보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형식 자체로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나눠 표현한 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며 좀 더 마츠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마츠의 숨겨진 인생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거시적인 성과의 기폭제가 된 건 아니다. 그냥 한 청년의 평범하면서도 놀라운 삶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제목에 낚였다고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듯하다.
마츠는 이벨린으로 살면서 평범한 현실 속 자신을 온라인 상에서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이든 온라인이든 그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다는 걸 영화는 오롯이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모습을 비범하다고 표현한 건 앞서 말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의해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장애인으로서 이런 삶을 살 수 있구나, 너드 커뮤니케이션으로써 활용되는 게임에서 이런 일들일 벌어지는구나 하는 놀라운 그러나 편협한 생각들. 이 생각들로 마츠의 삶이 비범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지만 비범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 비로소 이 작품이 가진 비범함을 알 수 있을 듯하다.사진 제공: 넷플릭스
평점: 3.0 / 5.0
한줄평: 온라인에서도 인생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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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소개서] '팀 버튼'의 캐릭터 소개서
- “어떤 영화를 사랑하게 하는 데에는 스토리, 대사, 연출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그러나 그 중에서도 빼먹을 수 없는 것은 단연 캐릭터이다. 특히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는 작품을 완전히 집어삼키기도 한다.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가 만난다면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그 무엇보다 빛난다. 제대로 설정되기만 한다면,4개의 눈을 가지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괴물들도 충분한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영원히 사랑받는다.[캐릭터 소개서]에서는 영화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강한 애정을 담아 소개한다.뽀글거리는 머리와 아이 같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가방에서 오래된 갈색 노트를 꺼낸다. 노트를 펼치자 눈알 없는 해골들, 입에서 벌레를 내뿜는 유령과 같이 생전 처음보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남들이라면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노트를 얼른 덮어버리려고 하겠지만, 남자는 노트 속 그것들을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괴기스러운 캐릭터들을 창조한 남자는 누구일까?그는 바로 할리우드의 대표 괴짜 감독 ‘팀 버튼’이다.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팀 버튼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배제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정말 미친 듯이 아름다운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팀 버튼의 노트를 펴고 그의 미(美)친 캐릭터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자.
‘첫 번째 캐릭터’<가위손/ 에드워드 시저헨드>팀 버튼 감독의 노트를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한 남자의 그림이다.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초췌한 표정.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시저헨즈’, 가위손이다.- 영화 : 가위손 (1991)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조니 뎁, 위고나 라이더, 다이앤 위스트, 안소니 마이클 홀가위손이라 불리는 그는 인간이 아니고, 창조된 기계였다. 외로운 발명가였던 ‘빈센트’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심장을 가진 기계인 에드워드 즉, 가위손을 창조한다.그러나 빈센트는 에드워드에게 인간과 같은 손을 만들어주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위손 때문에 빈센트와 함께 살던 성에서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그런 그를 화장품 판매원 ‘펙’이 만나게 되고, 그를 마을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마을로 내려온 에드워드는 펙의 딸, ‘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정원을 가꾸고 이발을 해주며 점차 적응하게 된다.그러나 킴의 남자친구 짐이 금고털이에 에드워드를 이용하려 하고, 마을 사람들이 차 사고의 범인으로 에드워드를 의심하는가 하는 등 에드워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짐이 킴을 찾아와 폭행을 하자 결국, 에드워드는 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위손으로 짐을 살해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에드워드는 결국 쓸쓸히 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사랑했던 킴의 모습을 얼음에 조각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게 된다.영화 속 에드워드는 감독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기라도 하듯 기괴한 비주얼을 하고 있다. 새하얀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하며, 손에는 길고 날카로운 가위가 달려있다. 날카로운 가위를 가졌지만 병약하고 소심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관객들로 하여금, 에드워드에 대해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성에 사는 미스터리하고도 외톨이 같은 존재,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진 캐릭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동화 <미녀와 야수>일 것이다. 그러나 두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성을 가진다. 먼저 미녀와 야수에서의 야수는 처음에는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미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점점 따뜻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고 미녀와 결혼하게 되는 행복한 결말까지 맞이한다.반면 가위손 속 에드워드는 순수함과 기대에서 시작해, 시련을 겪었으나 야수와 다르게 결국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와 초월이라는 정서로 끝나게 된다. 에드워드는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겉모습과는 정반대로 그는 마을의 누구보다도, 아니 그 어떤 누군가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에드워드가 가졌던 기대와 희망은 결말을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동화와 다른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 것이다.팀 버튼의 영원한 페르소나 ‘조니 뎁’이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 바로 영화 가위손이다. 록 가수 출신이었던 조니 뎁은 당시에 영화를 몇 편 찍지 않은 신인 중에 신인이었다. 그러나 ‘게리 올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등 당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그는 가위손 역할로 낙점받았다. 팀 버튼을 빠져들게 한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의 눈빛이 아마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광대나 피부 등 조니 뎁만의 특징은 많지만, 특히 그의 눈빛은 그 누구와도 다르다. 체념과 희망, 공허함과 가득함을 동시에 담은 눈빛은 가위손하면 그 어떤 배우도 생각나지 않게 하는 무언가이다.가위손은 팀 버튼 감독이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속 남자는 길쭉한 체형에 날카로운 날들이 손에 달려있었다.
어린 시절 외톨이었던 팀 버튼 감독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난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날 그냥 혼자 두길 바라는 욕망 같은 것이 있었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감독은 에드워드에게 날카로운 날을 달아주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타인과 멀리 떨어지면서도, 그 타인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에드워드에게서 겹쳐 보인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상실을 겪는다. 아버지 같던 빈센트를 잃는 데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킴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게 된다.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해 판단하고, 자신의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데 너무나 익숙한 우리.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화관을 나가면 우리는 금세 감각기관이 판단하는 것을 제외한 것들은 외면할 것이다. 가위에 스쳐 조그만 생채기가 날까 한걸음 떨어지기 이전에, 나의 한걸음이 누군가에게 느껴질 수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두 번째 캐릭터’<잭 스켈링턴>다음으로 노트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허한 구멍만 있고,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이것. 하얀 뼈와 검정 줄무늬 정장은 마치 한몸인 것처럼 붙어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잭 스켈링턴’이다.- 영화 :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1993)
- 감독 : 헨리 셀릭
- 원안: 팀 버튼
- 출연진 : 크리스 서랜던(노래: 대니 엘프먼), 캐서린 오하라, 켄 페이지, 패트릭 스튜어트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에 사는 인기스타이다. 그러나 그는 매번 같은 할로윈 준비를 하면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방황을 하던 그는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가게 된다. 그는 크리스마스 마을을 보며 사라졌던 열정을 되찾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된다. 잭은 자신이 산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락’, ‘쇼크’, ‘배럴’ 세 악동에게 원래의 산타를 조심히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악동들은 악명 높은 악당, ‘우기 부기’에게 말하지 말고 정중히 모시라는 잭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산타를 우기 부기에 넘기게 된다. 잭을 사랑하는 ‘샐리’는 크리스마스에 완전히 빠져 이성을 잃은 그을 막기 위해 안개를 만들면서까지 방해하지만, 잭은 뼈돌프(?) 애완견 제로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발한다.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크리스마스를 상상한 잭의 선물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인형 대신 괴물이, 강아지 대신 구렁이가 들어있는 등 그는 크리스마스를 망쳐버렸다. 그 와중에 샐리는 산타를 구출하려다 오히려 우기 부기에게 잡히고 만다. 잭 역시, 잭의 행동을 크리스마스 테러로 느낀 사람들에 의해 대공포 공격을 당하고 격추당하게 된다. 잭은 떨어진 망가져버린 자신을 보며, 실수를 깨닫고 호박의 왕인 자신의 원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잭은 마을로 돌아가 우기 부기와의 치열한 결투를 통해 샐리와 산타를 구출한다. 잭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산타는 크리스마스를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날로 되돌린다. 산타는 할로윈 마을에 눈을 내려주고, 잭은 샐리와 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해골의 왕이라는 별칭처럼 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 내 사교적이고 인기 많은 리더이다. 할로윈의 준비와 결정을 잭에게 검토받을 정도이다. 그렇게 잭과 작중에서 표면적인 갈등을 보이는 인물은 사실상 우기부기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오히려 완벽한 삶 때문일까? 잭은 내면의 공허함을 겪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해 충동적이지만, 추진력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잭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결국 실패하지만, 잭은 거기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 자신의 역할인 할로윈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즉, 크리스마스를 만드는 잭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잭을 성찰하게 하고, 성장시킨 것이다. 잭은 자신이 망친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잭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상적이고 능력 있는 리더 캐릭터이다. 특히, 모난 점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해당 영화 전후의 팀 버튼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캐릭터성이라고 할 수 있다.즉흥적이지만, 훌륭히 조직을 이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를 떠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잭은 가족과 관련된 내면의 아픔을 갖고 있으며 특정 순간마다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웡카와는 다르다. 잭의 구구절절한 과거 이야기나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영화에서 크게 다루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적극적인 캐릭터의 매력만이 훌륭하게 보여준다. 작중에서 관객은 잭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잭의 기다란 팔다리가 만들어가는 춤과 쾌활하고 능동적 성격은 우리에게 한편의 즐거운 뮤지컬을 보는듯한 느낌을 선사한다.잭의 비주얼로 돌아가 더 알아보자면 먼저 하얀 해골 모양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둥글고 큰 머리에는 코가 없고,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입은 길고 가로로 넓게 벌어져 있으며, 선처럼 가늘게 그어진 이빨이 보인다. 마치 이모티콘처럼 미니멀한 잭의 디자인은 그의 표정이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보여지도록 한다. 이 때문에 잭은 무서운 존재와 친근한 존재를 넘나들게 된다. 할로윈 마을의 인물들이 가진 작은 키와 대비되는 잭의 큰 키는 잭을 돋보이게 하며 그를 자연스럽게 리더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그의 가늘고 긴 팔다리가 만든 몸짓 하나하나는 동작을 경쾌하게 보이게 하며, 그를 우아하고 고딕적으로 느껴지게 한다.해당 작품은 팀 버튼이 원안을 제공했을 뿐, 감독까지 맡지는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격이나 비주얼 등 인물의 캐릭터성을 만드는 데에는 팀 버튼의 아이디어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세심한 캐릭터 설정이 특징인 팀 버튼의 캐릭터답게, 잭이 고민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찾는 모습도 적절히 등장한다. 당신이 뛰어난 미장센에 주제의식이 숨겨지듯이 담긴 영화가 보고 싶다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추천한다.
‘세 번째 캐릭터’
<빅터 프랑켄슈타인>
노트의 왼쪽 아래에는 한 소년이 그려져 있다. 커다란 눈과 언밸런스한 체형은 해당 인물 역시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앞서 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과의 파격적인 비주얼과는 다르게, 해당 캐릭터는 비교적 깔끔하고 얌전해 보이기도 한다. 소년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지금부터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보자.- 영화: 프랑켄위니 (2012)
- 감독: 팀 버튼
- 출연진: 캐서린 오하라, 마틴 쇼트, 마틴 란도우, 찰리 타핸‘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내성적인 소년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는 애완견 ‘스파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파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엄청난 슬픔에 잠긴 빅터는 과학의 힘으로 스파키를 살려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빅터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과 그의 재능으로 번개 실험을 하게 되고 스파키를 되살린다. 그러나 스파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빅터의 친구들, 이웃들이 알게 된다. 다른 아이들도 빅터의 실험을 흉내 내면서 다양한 동물들이 괴물처럼 변하게 되자 결국, 마을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실험이 가져온 결과에 빅터는 책임을 지고 스파키와 함께 마을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역시 실험으로 탄생한 고양이와 박쥐의 충격적인 결합체, ‘미스터 위스커스’는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빅터의 소꿉친구, ‘엘사 반 헬싱’과 스파키의 여자친구, ‘페르사포네’를 풍차로 납치한다. 빅터와 스파키는 엘사와 페스사포네를 구하는 데 성공하지만 빅터는 탈출에 실패한다. 빅터를 구하고자 스파키는 ‘미스터 위스커스’와 다시 한번 대결을 펼치게 된다. 스파키는 대결에서 승리하지만, 풍차에 깔려 다시 한번 죽는다. 그러나 빅터가, 다시 한번 스파키를 살리고 빅터와 스파키가 다시 재회하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프랑켄위니>의 원작은 팀 버튼이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1984년 만든 동명의 실사 단편 영화이다. 1984년 단편 영화 <프랑켄위니>는 장편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애완견 스파키를 잃은 빅터가 번개의 힘을 통해, 스파키를 살린다는 설정은 동일하다. 그러나 박쥐 고양이가 아닌 이웃들이 스파키를 괴물로 오해하며 혼란과 갈등이 생긴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팀 버튼 감독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애완견과 이별한 아픔과, 흑백의 화면처럼 고전 공포 영화 시대의 느낌을 결합해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1930년대 고전 공포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해당 작품을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기획했으나 좋지 못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팀 버튼은 세월이 지나 작품의 스토리를 확장하고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더해 2012년,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팀 버튼의 특징인 자전적인 이야기 구성은 해당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빅터에게는 과학이, 팀 버튼에게는 그림이라는 평생을 바칠만한 취미가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자신만을 전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닌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아마 주인만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특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밖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일이 있었든지, 나라는 이유로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존재를 찾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작품을 보다 보면, 팀 버튼의 B급 유머를 통한 클리셰 비틀기가 적절히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작게 본다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대결구도는 우리에게 흔한 구도이다. 물론 <에이리언 시리즈>, <아바타 시리즈>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의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을 욕심 많고 악한 존재로 묘사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의 피해자로 묘사할 것인지의 차이는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그러나 감독은 작품의 빅터와 미스터 위스커스의 대결에서 빅터를 먼저 리타이어시키고 스파키와 미스터 위스커스를 대립시키면서 인간이 아닌 생명체끼리의 대결을 성사시킨다. 이러한 구도는 클리셰의 전환을 보여줬으며, 특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강아지 vs 고양이의 대결이라는 점 역시 웃음을 유발한다. 작품의 결말 역시 진정한 죽음이니 뭐니 하면서, 스파키를 떠나보내며 작품을 끝내는 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로 살린다는 점 역시 팀 버튼답다는 느낌을 준다.
작중의 빅터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감독의 작품의 많은 인물이 보여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전부 가지고 있다. 죽은 동물을 번개로 되살린다는 점 외에는,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비교적 현실성 있는 설정을 가진 만큼 빅터에 공감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랑하기 때문에 되살린다’라는 간단한 논리구조는 원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와는 다른 숭고한 목적이다. 팀 버튼 감독의 많은 캐릭터는 대부분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앞서 본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도 마찬가지이다. 빅터 역시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스파키에 대한 강한 연대를 보여준다.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 그리고 뒤에 나올 비틀쥬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팀 버튼의 무수한 캐틱터들 중 그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는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가족과 친구, 마을 사람들과도 교류가 적은 편이지만, 오직 한 존재 스파키와의 우정과강한 연대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끈다. 빅터는 스파키에 대한 강한 사랑과 애정으로 다른 것들을 애써 외면한다. 눈이 멀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 본 적이 있던가. 순수함이 보여주는 투명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프랑켄위니>를 통해 한번 느껴보자.
‘네 번째 캐릭터’
<비틀쥬스>어느덧 노트의 마지막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면 두 인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세월이 지나 옷이 달라지고 주름만 생겼지, 똑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까맣게 칠해져있는 눈두덩이와 산발이 된 머리. 숨겨지지 않은 가벼움과 광기는 결코 감출 수가 없다. 마지막 그림의 캐릭터는 ‘비틀쥬스’이다.- 영화 : 비틀쥬스 (1988) / 비틀쥬스 비틀쥬스 (2024)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공동] 마이클 키튼, 위고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단독] 비틀쥬스: 알렉 볼드윈, 지나 데이비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제나 오르테가, 저스틴 서로‘비틀쥬스’는 36년의 세월을 거쳐, 두 영화나 출연한 귀한 몸이다.먼저 1988년에 개봉한 <비틀쥬스>이다. 영화는 ‘아담’과 ‘바바라 메이틀랜드’ 부부가 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결국 알게 되고 유령들의 법에 따라, 자신들의 집에 머무는 유령이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집에 뉴욕 출신의 디츠 가족이 이사 오게 되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집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자신들의 집을 망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아담과 바바라는 자신들의 집을 지키기 위해 디츠 가족을 쫓아내려 하지만, 그들은 겁을 주는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디츠 가족도 그를 보지 못한다.결국, 메이틀랜드 부부는 최후의 방법으로 바이오 엑소시스트 전문가(인간 퇴치사)인 ‘비틀쥬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비틀쥬스는 난폭하고 미치광이 같은 성격의 유령으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비틀쥬스는 디츠 가족 중에 유일하게 유령을 볼 수 있는 딸 ‘리디아’와 결혼해 세상으로 나가려는 다른 목적이 있던 유령이었다. 결국 비틀쥬스가 디츠 가족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자, 메이틀랜드 부부와 리디아는 그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다. 결국, 리디아와 메이틀랜드 부부는 비틀쥬스를 물리친다. 메이틀랜드 부부는 자신들의 집에서 평화롭게 살게 되며, 디츠 가족도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게 된다.다음은 2024년 개봉한 <비틀쥬스 비틀쥬스>이다. 해당 작품은 어머니가 된 ‘리디아’를 중심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리디아는 여행가였던 남편을 잃고, 1편에도 나왔던 새어머니 ‘딜리아’와 딸 ‘아스트리드’와 살고 있다. 전작에 등장한 메이틀랜드 부부는 떠났다는 설정이다. 그러던 중 새 사진을 찍으러 간 리디아의 아빠이자 딜리아의 남편인 찰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족들은 찰스의 장례식을 위해 그들이 살던 윈터 리버로 돌아간다. 그렇게 찰스의 장례식을 마치고, 리디아와 남자친구 로리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가족들은 윈터리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혼자 자전거를 타던 아스트리드는 나무에 부딪히고, 나무 위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과 시간을 보내던 와중 소년은 자신이 유령이며, 아스트리드에게 아빠를 만날 수 있으니 함께 저승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소년을 믿는 아스트리드는 저승에 가지만, 사실 그 소년은 연쇄살인마 출신 유령으로 아스트리드를 제물로 바치고 자신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을 알게 된 리디아는 딸을 위해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 비틀쥬스의 도움으로 리디아는 아스트리드를 구하지만 이번에도 비틀쥬스는 리디아에게 결혼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기지를 발휘해 계약이 무효임을 증명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비틀쥬스가 저승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마이클 키튼’의 미친 연기로 팀 버튼의 이름을 알리는데도 일조한 비틀쥬스는 정말 광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비틀쥬스의 캐릭터성이 악당에서 조력자로 전환되긴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아기 비틀쥬스 출산 공격, 내장 내뿜기, 괴물 선물 등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히는 비틀쥬스의 스킬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비틀쥬스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성격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인간퇴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비틀쥬스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나 비틀쥬스의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는 1편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36년이 지나, 2편이 되어서야 ‘델로레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그의 과거 이야기가 짧게나마 나온다. 비틀쥬스는 수백년 전,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시기, 델로라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하기로 했었다.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던 델로레스가 자신을 포도주로 독살하려는 것을 알게 되자, 델로레스의 머리를 토막내어 함께 저승에 간다. 하지만 2편에서 부활환 델로레스는 어쩐 일인가 비틀쥬스를 아직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를 끊임없이 스토킹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틀쥬스에게 숨겨진 마초적인 매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웠을까. 비틀쥬스는 델로레스에게 도망을 다니며 여전히 리디아에게만 결혼을 요구한다. 이처럼 마초적이면서도 순애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비틀쥬스의 이중적인 캐릭터성은 “그게 비틀쥬스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관객을 수긍하게 한다. 비틀쥬스는 한번 할 때는 제대로 하는 쿨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래전, 자신을 뒤통수친 리디아가 다시 한번 자신을 소환하자 과거를 잊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연쇄살인마 유령을 정의구현하는데 물심양면 돕는다. 물론 그의 도움과 상관없이 이번에도 얼얼한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말이다.저승에서 보내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유연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것도 비틀쥬스가 굉장히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편에서 그는 변변치 않아보이던 인간퇴치사 즉,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36년의 세월이 지나자, 밥을 포함해 많은 직원을 둔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는 점도 그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비틀쥬스는 야심을 갖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이 교활하다고 말하겠지만, 체계적인 계획으로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사실 능력이다. 거의 썩은 듯한 푸석푸석한 피부, 녹색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기괴한 메이크업 그리고 과장된 리액션과 표정까지 비틀쥬스하면 생각나는 비주얼은 이와 같다. 그의 비주얼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막무가내이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작품에 큰 혼란을 유발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비틀쥬스의 다양한 캐릭터성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비틀쥬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사실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담았다는 것이 <비틀쥬스 시리즈>가 공통으로 가진 주제의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가 다소 오글거리고 썩 내키지 않는다면, 비틀쥬스에만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주제와 가치를 오염시키지 않는 선까지만 엇나가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비틀쥬스.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순수와 공포가 공존하는 팀 버튼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해 알아봤다. 부디 그의 캐릭터들과 함께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세계에 마음껏 빠져들고 싶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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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A Quiet Place: Part II, 2020
18년에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두 번이나 했으며, 북미 수익만 $188,024,361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미 절대적인 숫자만 봐도 높은데, 이를 포함한 총 수익 $340,952,971입니다.
제작비 1700만 달러 대비 약 20배로 2배가 총 제작비, 3배부터 흑자인 것을 생각하면 제작사로서는 무조건 만들어야만 하는데요.
그렇게, 등 떠밀려 나온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반응은 억지로 끌려 나온 느낌이 전혀 아닙니다.
다시 북미에서 2주 1위를 했으며, "코로나19"이후 첫 북미 1억 달러 타이틀까지 거며 쥐는 등 관객들에게 3이라는 숫자를 외치게 만들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속편의 평가들이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이번 속편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라는 평가들이 들려오며 전작만큼이나 높은 평가까지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전작을 극장에서 놓쳐버려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존재했기에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과연, 영화는 들려온 평가들처럼 만족스러웠는지?'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작에서 괴물들에게 피난처와 남편 혹은 아빠를 잃게 된 "에블린"과 가족들은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떠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들 "마커스"가 덫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괴물들의 시선을 이끌고 마는데요.
이에 또 한 명의 생존자 "에밋"이 그들을 구해주지만,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른, 다음 영화!
1. 여전히, 신선한 설정!
앞서 말했듯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제목에는 숫자 '2'가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전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후속작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될 요소가 많습니다.
첫 번째, 이 영화의 설정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소리"에 한없이 민감해 이전 장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채 까치발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이들의 행동과 길도 모래가 깔려있는 곳으로 걸어나가고, 목재 바닥으로 되어있는 집에는 색칠되어 있는 곳만 발을 디디는 모습, 그리고 수화로 대화하는 등의 디테일이 설정을 신선하게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속작에서는 이 신선함을 권태감으로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과제로 다가왔을 겁니다.
캐릭터의 눈으로 보세요.
앞서 수화로 말하는 모습은 "소리에 민감한 괴물"의 설정도 있지만, 딸 "리건"의 극 중 설정이 "농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리가 안 들리는데, 이번 속편에서는 "리건"의 시점을 종종 빌려 극의 상황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처음으로 그들이 왔던 날이나 이후 열차에서 괴물을 맞이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분명히, 눈으로는 상황이 보이는데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으니 영화는 전작의 콘셉트를 여전히 신선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증명해냅니다.
2. 배우의 매력은 이미, 다 알죠.
다음으로 두 번째, 커져가는 숫자들입니다.
흔히, 할리우드에서는 숫자가 커질수록 이야기와 캐릭터는 많아지고 스케일도 점점 넓어지는데요.
이런 이유에는 앞서 언급한 권태스러운 신선함을 유지할 또 하나의 방법으로 부득이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기존 시리즈를 이끌어갔던 캐릭터들을 빼내기에는 웬만한 활약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속편은 괴물만큼이나 무서운 생존자들 무리도 있겠지만, "에밋"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출연이 눈에 띕니다.
굴러온 돌이 뺄 수도 있지!
이번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아니더라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은 많이 보았을법한 클리셰입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확장시키려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게는 '이를 어떻게, 혁파할지?'에 대한 고민이 존재했을 겁니다.
이에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의 힘이 느껴지는데, 이번 속편에서 딸 "리건"과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중책을 맡았거든요.
문제는 그가 이전 장에서 나온 캐릭터가 아니기에 별도의 설명부터 해야 하는 피곤함이 앞서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영화는 과거 회상[플래시백]을 사용합니다.
3. '누가 쓰느냐?'에 다르구나...
대개, "플래시백"은 설명도 이뤄지나 감정을 앞세우는데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해당 기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일 텐데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전편에서 관객들에게 깨진 "괴물"의 위상까지 살려내는 간결함을 보여줍니다.
이미, 전작을 챙겨본 관객들이라면 괴물의 약점을 알기에 이미지는 깨지다 못해서 와장창 되었으니 이미지 회복이 시급했을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의 이야기는 "에밋"과의 관계부터 "괴물"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모습까지 설명에 무서운 감정을 일깨우니 영화는 마지막 과제로 부여된 "괴물"의 위상까지 훌륭하게 살려냅니다.
근데, 공포 영화로만 보긴 아쉬운데...
하지만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진정한 매력은 "공포"보다 "성장"에 있습니다.
역시, 전작을 챙겨본 관객들은 알겠지만 딸 "리건"의 행동은 "발암캐"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기에 전작에서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교훈으로 귀결해 이에 대한 호불호도 분명하게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이번 2편에서도 이어지면서, 잊고 있던 "리건"에 대한 혐오도 고개를 드는데요.
물론, 의도에 있어 선하지만 결과가 답답하니 관객들로서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어린아이에게는 험악한 말까지 올라오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 때문인지 이후 "리건"의 모습은 전작보다 자연스러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4. 엄마는 대견스럽구나.
호러 영화의 흥행을 다시 쓴 <그것>시리즈는 "페니 와이즈"라는 무서운 캐릭터도 있지만, 이를 "성장"이라는 테마에 잘 녹여내 호평까지 이끌어낸 영화인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리건"을 비롯하여 "마커스"의 모습에 든든해지는 엔딩을 안겨줍니다.
전작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 영화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호해 줘야 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극 중 괴물을 잡을 방법을 알게 된 "리건"이 라디오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하지만, "마커스"를 비롯해 어른들은 이를 말립니다.
마치, 품 속에 안긴 아기처럼 이들은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입장임을 말하는 것이죠.
언제, 또 이렇게나 컸니?
그렇기에 후반부 다친 어른들을 대신해 자신들의 방법들로 지켜주는 모습은 부모도 아닌데도 말랑말랑한 감정을 일깨우더군요.
무엇보다 카메라가 이를 잘 살리는 것이 성인 배우들의 시점을 아역 배우들의 뒤를 바라보게 만들어 "성장"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 깊이 때려 박아 넣습니다.
전작에서 "샷건"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연출했던 장면처럼 3편에서는 이들의 활약이 기대되는데요.
'과연, 누가 더 불쌍하게 될지?'라는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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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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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고 그들은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치열한 선거판,
그 중심에 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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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밤, 5번의 픽업을 완수하라!
국가 영웅이었던 전직 경찰국장은
도시를 장악한 5대 조직과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마약 운반책이었으나 손을 씻은 그녀의
딸을 볼모로 잡고 위험한 미션을 제안한다.
단 하룻밤, 5대 조직으로부터 5번의 픽업을 하라!
그녀의 킬러 본능이 폭발하고, 도시는 전쟁으로 치닫는데…
오늘 밤, 그녀의 분노가 폭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