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2-11 11:36:27
1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천만영화 합류할까? 690만명 돌파
개봉 20일째인 11일 오전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천만 영화를 향해가고 있는 <서울의 봄>이 개봉 3주차에도 150만여 명의 주말 관객 수를 끌어모으며 식을 줄 모르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편<노량: 죽음의 바다>가 오는 20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오랜만에 붐비는 극장의 관객들을이어서 가져올수 있을까요?
개봉 3주 차를 맞이한 <서울의 봄>의 화력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고 주말 관객 수 1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11일 누적관객 수 7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올해 두 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6일 날 개봉한 <3일의 휴가>, <나폴레옹>이 <서울의 봄>을 꺾지 못하면서 나란히
2,3위를 차지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북미 공개 첫 주에 매출액 10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7월 공개되어 약 754억원의 매출액을 벌어들였고, 국내에서는 지난 10월에
개봉하면서 199만명을 기록중입니다. 한편 영화 <트롤: 밴드 투게더>가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를 꺾고 흥행 반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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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세상의 모든 스텔라를 응원해
제목 ㅣ 사랑에 빠진 스텔라 Stella in Love
감독 ㅣ 실비 베레드
출연 ㅣ 플라비 들랑글, 마리나 포이스, 벤자민 비올레이
시놉시스
스텔라는 올해 마지막 학년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스텔라는 유명한 80년대 파리지앵 클럽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열광적인 밤을 알게 된다. 스텔라의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있고, 스텔라의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번 해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스텔라의 인생 전체가 결정될 것이다. 스텔라는 생각하지 않는 척 한다.
프로그램 노트
200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스텔라>의 속편 격인 작품으로, <스텔라>가 초등학교의 마지막 해 이야기를 다룬 데 비해 6년 후인 고등학교 마지막 해의 이야기를 그렸다. 진로를 고민해야할 고등학교 졸업반인 스텔라지만, 그녀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척 외면한다. 친구들은 공부만 하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스텔라는 1980년대 파리의 전설적인 클럽인 레 뱅 두슈에서 춤꾼 앙드레의 현란한 춤을 목격하고 광란의 밤을 경험한다.
대학에서 무용을 공부하겠다는 꿈도 가져보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히는 스텔라. 과연 성인이 된 스텔라는 어떤 모습일까? <스텔라>에서 나타났던 가족 안에서의 외로움과 사회적으로 소외되어가는 문제들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스텔라를 괴롭히며, 그녀의 성장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1980년대 초반 클럽의 모습과 헤어스타일, 의상 등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실비 베르에이드 감독의 연출도 볼거리이다.
세상의 모든 스텔라를 응원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 내가 과연 뭘 잘하는지에 대한 의문, 어딘가 완벽하지만은 않은 가정사, 친구들과의 갈등, 영화 <사랑에 빠진 스텔라>는 국적과 문화도, 시대도 다르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소재다. 나도 아마 스텔라처럼 영화롭게는 아니지만 이 고등학생 때 분명 이 고민을 하고 갈등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텔라를 조금씩 응원하고 있었다. 그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마지막 장면 마지막 대사가 인상깊었다. 스텔라는 여러 갈등을 해소아닌 해소 한 뒤 "미래 걱정은 나중에" 라고 하고 영화는 끝난다. 그래, 미래 걱정은 나중에!
1980년대 초반 클럽 '레 벵 두슈' 간접 체험
스텔라가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곳이자, [(앙드레와)사랑에 빠진 스텔라]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장소는 '클럽'이다. 사실 클럽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2023년의 클럽 분위기도 모르지만, 영화는 1980년대 초반 클럽의 모습을 꽤나 자주, 많이, 오래 보여주어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스텔라는 학생이지만 짙은 화장을 하고 입장을 하고 그 곳에서 '앙드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앙드레'는 춤과 노래, 음악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고 스텔라는 아마 그런 모습에서 앙드레에게 매력을 느낀 듯 싶다. 앙드레에게 사랑을 빠졌다는걸 보여주자마자 스텔라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안돼! 누가봐도 나쁜 남자의 정석이잖아?"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스텔라는 앙드레를 만났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 마냥 나쁜남자도 아닌 것 같고.
여러모로 다양한 연출
영화는 다양한 연출을 보여준다. 사실 제목은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아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다. 영화에서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많이 들려준다. 그리고 <스타 이즈 본> 과같은 음악 영화에서 보여줄 법한 연출을 보여준다. 바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멜로 가득찬 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클럽에서 춤출때는 약간의 슬로우로도 보여주며 사랑에 빠진 스텔라의 마음을 연출을 통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약 두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인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는 <스텔라>의 속편이라고하는데, <사랑에 빠진 스텔라>를 보고 나니 스텔라가 어렸을 적 모습을 담았다는 <스텔라>도 궁금해졌다. 성장 영화 그리고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 <사랑에 빠진 스텔라> 상영 시간표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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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공자>의, 귀공자에 의한, 귀공자를 위한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불법 복싱 경기를 뛰며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던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어느 날, 평생 본 적 없는 한국인 아버지가 보낸 변호사가 마르코의 앞에 나타나고, 그는 아버지가 자기를 찾는다는 말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마르코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목숨을 건 추격전에 휘말린다. 비행기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는 곧장 마르코의 숨통을 조여 온다. 마르코의 이복형인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도, 필리핀에서 우연히 마르코와 만났던 ‘윤주’(고아라)도 제각각의 이유로 마르코를 쫓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문 모를 추격전의 끝에서 마르코는 자기 인생을 바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또 한 번의 변주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줬던 <신세계>.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박훈정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신세계>와 비교될 운명이었다. 실제로 몇몇은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훈정 감독은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누아르라는 장르 밖으로 나가지는 않되, 그 안에서 변주를 줬다. 일례로 <마녀>는 <신세계>와 달리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객에게 어필했다.
<낙원의 밤>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꾀했다. 한국형 누아르의 관습적인 이야기를 거부했다. 의리와 정을 강조하는 사나이 대신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두 남녀에게 주목했다.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처럼 보이기도 하며, 이성 간의 사랑 같기도 한 이야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였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도 마찬가지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캐릭터다. 공들여 만든 '귀공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장르, 이야기, 메시지를 마음껏 가지고 논다. 귀공자가 한 인물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다만 성공적인 변화인지는 의문이다. '귀공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전반적인 균형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귀공자의 영화
귀공자. 처음 보거나 들으면 꽤 어색한 제목이다. 근래에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서 오글거리거나 과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보다 적확한 제목도 없는 듯하다. 따져 보면 이 영화는 어떤 맥락에서든 귀공자의 영화가 맞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귀공자는 "귀한 집 아들. 또는 귀한 집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귀공자>에는 눈에 보이는 귀한 집 아들과 숨겨진 귀한 집 아들이 있다. 한 이사는 눈에 보이는 귀공자다. 재벌 2세인 그는 이복여동생 '가영'(정라엘)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 중이다. 마르코는 숨겨진 귀공자다. 필리핀에서 병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 마르코는 한 이사의 또 다른 이복동생이자, 귀한 집 아들로 밝혀진다.
<귀공자>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추격전이다. 한 이사는 쫓고, 마르코는 쫓긴다. 한 이사는 급하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 내서 유언 내용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르코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으니. 아버지를 만나는 줄 알았던 마르코는 이내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평생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던 그가 이복형을 위해 순순히 죽을 이유는 없다.
귀공자에 의한 영화
두 귀공자의 갈등을 틈타 속셈을 알 수 없는 세 번째 '귀공자'가 등장한다. 그 역시 귀공자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한다. "생김새나 몸가짐이 의젓하고 고상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그는 마치 제임스 본드 같다. 깔끔한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자랑한다. 일 하는 솜씨도 프로다.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처리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속물적이다. 명품 구두에 피가 튀면 크게 화내며, 빗방울이 떨어지자 양복이 젖을까 봐 추격을 멈추기까지 한다. 그 덕분에 귀공자가 본모습인지, 귀공자를 동경하는 경박함이 진짜 정체인지 알기 어렵다.
그의 행적은 이러한 양면성을 반영한다. 러닝 타임이 지나도 그의 속셈은 오리무중이다. 그는 마르코를 한 이사에게 데려가던 사람들을 습격한다. 마르코를 빼낸 후에는 몸값으로 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한 이사를 협박한다. 그렇다고 마냥 마르코를 돕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친구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마르코에게 총을 겨누기도 한다. 선과 악이 분명한 한 이사와 마르코 사이에서 '귀공자'는 물음표가 가득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도 그의 양면성과 맞닿아 있다. '귀공자'의 계획이 끝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영화 분위기도 그의 행보에 따라 달라진다. 마르코가 추격전에 휘말리는 전반부는 진지한 누아르에 가깝다. 그런데 '귀공자'가 난입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피 튀기는 액션과 만난 그의 유머와 기행이 무거움과 경박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다. 박훈정 표 누아르가 블랙코미디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셈이다.
귀공자를 위한 영화
이들 세 귀공자가 모이면 영화는 마침내 본심을 털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 혼혈 '코피노'가 있다. 전반부는 마르코의 일상을 자세히 비춘다. 그는 불법 복싱으로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다가 끝내 범죄를 저지른다. 아버지의 도움은 없다. 이 대목은 코피노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마르코와 한 이사의 만남도 문제를 고발한다. 한 이사는 마르코를 잡종이라 부르며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기 때문. 이는 서서히 이슈화되는 동남아 차별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귀공자>의 시도는 더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귀공자'는 자기도 코피노라고, 피 튀기는 추격전도 인질극도 다 자기가 계획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 순간 귀공자 3명의 관계가, 익숙한 재벌가 다툼은 다시 쓰인다. 차별하는 한국인과 차별받는 코피노, 그리고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뒤엎으려는 코피노가 새롭게 보인다. 마르코의 진짜 정체를 둘러싼 반전도 허를 찌른다. 귀공자라는 허상조차 막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일말의 아쉬움은 있다. 모든 코피노를 하나의 정체성 안에 가두는 섣부른 일반화가 눈에 띈다. 원색적인 언행을 걸러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귀공자>의 시도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슬픈 열대>가 본래 제목인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 코피노라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귀공자만을 위한 결과
하지만 <귀공자>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다. 과감한 시도는 좋았으나, 의도가 스크린 위에 온전히 구현되지는 않았다. 귀공자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려다 놓친 캐릭터가 많다.
고아라가 연기한 윤주가 대표적이다.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사건의 배경과 전개를 설명하는 기능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퇴장도 작위적이다. 추격전의 흐름을 한 번 더 꼬기 위해 갑자기 사라진다. <마녀>와 <낙원의 밤>에서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을 만든 전력이 있다 보니 이러한 활용법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귀공자'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파생된 문제도 있다. 반전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에게 모든 역할을 몰아준 결과 다른 두 주인공은 그저 소모된다. 우선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닌 신인 강태주를 찾아 놓고도 마르코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그를 진중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설정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야 할 '귀공자'와의 합이 잘 맞지 않는다. 복싱이라는 소재를 액션 영화가 살려내지 못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한 이사 역시 전반부와 후반부의 괴리가 두드러진다. 김강우의 광기 어린 연기는 인상적이지만, 그는 '귀공자' 주도로 장르가 전환될 때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전반부에는 무게감 있는 사이코패스였지만, 후반부에는 무게 잡는 척만 하는 평범한 악역으로 전락한다.
이에 더해 액션 누아르를 표방하는 영화치고 액션씬의 임팩트가 약하다. 카 체이싱 장면의 경우 템포가 다소 느리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비추는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차체를 비추는 앵글은 자동차 광고를 보는 듯하다. 그 결과 역동감이나 박진감이 부족하다. 잔인하게 피 튀기는 액션도 인상적이지 않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정확히 어떤 사건이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박훈정 감독은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 "차별받은 이들이 차별하는 이들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귀공자와 코피노, 두 키워드를 엮어낸 스토리에서 그 의도는 분명하게 읽혔다. 하지만 그 의도가 스크린에서 적절하게 펼쳐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결과 이번에도 박훈정 감독의 변주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날도 다음을 기약한다.
Poor 형편없음
달리 말하면 김선호의, 김선호에 의한, 김선호를 위한 영화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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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
1. 들어가며
조쉬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는 근래 들어 가장 주목받는 뉴욕 출신의 영화 연출가들이다. 사프디 형제의 주요 작품들에선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프디 형제는 사실적 질료를 가공하여 영화를 만든다. 각본에 자전적인 경험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장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이들의 영화에선 존 카사베츠나 다르덴 형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처럼 사실주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초를 교란하는 형식주의적인 스타일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의 영화를 전형적이지 않게 만들어준다.
형제의 공동 연출작 중에서는 2014년 개봉한 <헤븐 노우즈 왓(Heaven Knows What)>부터 본격적으로 전자 음악의 과도한 배치, 다채로운 질감의 조명을 활용하는 미장센 등 특유의 접근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굿타임(Good Time)>(2017)의 놀이 공원 시퀀스, 극 전개를 보조하는 전자 음악의 활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가 배급을 맡은 <언컷 젬스(Uncut Gems)>(2019)는 숱한 단편과 굵직한 장편 등을 통해 쌓아 온 사프디 형제의 연출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이 글은 <언컷 젬스>에서 독특하게 드러나는 사프디 형제의 접근법을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언컷 젬스>는 사실주의적인 토대에 기초한 영화다. 각본, 촬영 장소 등을 살피면 현실적 질료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러한 영화 요소들을 전형적인 방법으로 활용하지 않고, 어딘가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에 활용한다. 이들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 현실과 허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적 현실을 창조해냈다. 이 글은 그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피는 시도이다.
2. <언컷 젬스>의 사실적 영화 요소
우선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형제의 자전적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프디 형제는 유대계 혈통이고,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보석상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경력이 있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의 주인공인 뉴욕에 몸담은 유대인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 역에 아담 샌들러를 내세운다. 자전적 경험을 각본에 녹여냈다는 점은 이 영화를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이 영화처럼 자전적 요소를 살려 영화적 소재로 활용하는 방식은 사실성을 강화하는 접근법이다.
<언컷 젬스>에서 하워드 역을 맡은 아담 샌들러. 그는 실제로도 유대인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미국의 유명 배우인 아담 샌들러는 여러 비전문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하워드의 내연녀 역의 줄리아 폭스(Julia Fox)는 <언컷 젬스>가 첫 연기 데뷔작이며, 극 중 이름 줄리아는 실제 배우의 본명이기도 하다. 하워드가 운영하는 보석상 직원 중에 여시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배역은 실제 주얼리 관련업에 종사했던 막수드 아가자니(Maksud Agadjani)가 연기한다. 실제 삶의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비전문 배우의 기용은 사프디 형제의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주고받는 호흡으로 빚어내는 전개 양상은 극을 효과적으로 지탱하기도 한다.
한편 사프디 형제는 현장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형제가 각각 대학 시절부터 연출한 단편부터, 공동 장편 데뷔작인 <아빠의 천국(Daddy Longlegs)>(2009) 등을 거쳐 <언컷 젬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현실 속 뉴욕을 무대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냈다. 현장 촬영이 불러오는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생생한 현장감을 스크린으로 구현할 수 있고, 실제 삶의 단면과 맞닿은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도 적합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도 하다. <언컷 젬스>는 정밀하게 세트로 구현된 하워드의 보석 가게를 제외하면, 전부 현장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마저도 형제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실제 점포를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세트를 활용하게 되었다.
3. <언컷 젬스>의 세계: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에서 사프디 형제가 구축한 세계는 현실을 재료로 하지만, 온전한 현실 세계가 재현되는 곳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중계되는 전 NBA 선수 케빈 가넷(Kevin Garnett)의 농구 경기는 사프디 형제가 지은 각본이나 촬영한 필름들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경기가 영화에 사용되면서 서사가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스크린 외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과거의 일(실제 농구 경기)이 스크린 내부에서 현존하는 영화적 세계와 호응하게 된다. 즉, 이런 연출은 사프디 형제가 실험적인 시도에 목말라 있다는 걸 드러내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가넷은 이 영화에서 본인 역을 맡아 연기한다. 즉, 영화의 배역을 맡아 본인을 연기하는 가넷과 실제 선수로서의 가넷, 중계 속의 가넷이 공존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기용된 배우는 가넷 외에도 몇 명 더 있다. 영화에는 미국의 알앤비(R&B) 가수 위켄드(The Weeknd)도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 위켄드 역시 극 중 DSLR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의 위켄드, 자신을 연기하는 위켄드와 실제 가수 위켄드 사이를 기묘하게 유영하는 존재다. 래퍼 캐시 아웃(Ca$h Out)도 본인을 연기하며 하워드의 가게에서 보석류를 구매하고자 한다. 한편 하워드가 줄리아와 살던 아파트에 아들과 함께 찾아가는 신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들을 데리고 하워드는 옆집을 찾아가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하워드가 아들에게 옆집 이웃을 왕년에 유명한 작품에 출연했던 코미디 배우라고 소개한다. 출연진 정보에는 33F의 이웃으로만 나오는, 존 아모스(John Amos)라는 배우는 실제로 하워드가 영화에서 언급한 작품에 출연했다.[1] 존 아모스도 본인을 연기한 셈이고, 하워드의 대사는 허구적인 각본이 실제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독특한 형태로 허물어진다.
<언컷 젬스>에서 본인 역을 맡은 농구 선수 케빈 가넷
이제 사프디 형제가 뉴욕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는 사실이 영화 내적으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도입부에 ‘2012년의 뉴욕’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명시하는 문구가 삽입되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는 뉴욕을 배경으로 삼는 수많은 영화들(<스파이더맨> 시리즈, 우디 앨런의 작품이나 각종 로맨스 영화 등)과 비교했을 때 공간 특성을 전혀 살리지 않는다. <언컷 젬스>에선 맨해튼(Manhattan)의 다이아몬드 지구(Diamond District)가 뉴욕이라는 장소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는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힘든 요소들이다. 뉴욕 맨해튼에 자주 갔거나 그곳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관객은 논외로 하자.
결국, 피상적으로는 사프디 형제의 뉴욕이 현실을 옮겨놓은 듯한 현장감 있는 장소로 보일 수 있겠으나, 이들 영화의 뉴욕은 극도의 사실성 재현을 위한 공간보다는 극적 효과를 불러오는 서사적 도구로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다. 게다가 잦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 역시 얼핏 보기엔 영화를 통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위한 노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영화 속 비전문 배우는 앞서 언급했듯 대개 자신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연기에 활용할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각본에 구현된 캐릭터를 표현하는 작업을 수행 중인 셈이다. 이는 사프디 형제가 이전에 연출했던 <헤븐 노우즈 왓>의 홈즈(아리엘 홈즈)도, <굿타임>의 닉(베니 사프디)의 치료 의사도, <언컷 젬스>의 아가자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컷 젬스> 속 비전문 배우의 기용(특히 본인을 연기하게 하는 방식) 및 현실을 스크린에 재소환하는 방식을 다른 영화와 유사한 전형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언컷 젬스>의 가넷과 위켄드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사람―예를 들어,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나 알앤비 가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등―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극의 흐름이 달라지거나 영화를 지탱하는 요소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저들은 본인을 연기할지라도, 영화적 허구에 구속된 캐릭터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2] 그런데 허구의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본인을 연기한다는―일종의 정체성에 관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넷의 실제 경기나 카메라에 찍힌 위켄드의 모습은 허구적 특성을 살려 연기하는 인물과 같은 영화에서 공존한다. 즉, 영화에 현존하는 인물들은 영화를 통한 현실의 사실적 재현의 주체도 아니고 허구적으로 표현된 내러티브에 종속된 도구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발현된다.
4. 나가며
현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으로는 <언컷 젬스> 속 등장인물이 자리 잡은 뉴욕의 특성을 규정할 수 없다. 즉, 이런 모호한 인물들이 유영하는 사프디 형제의 뒤틀린 뉴욕은 전통적인 유형으로 범주화하기엔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사프디 형제의 뉴욕은 뉴욕이지만 뉴욕의 특성이라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영화 서사를 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가넷이나 위켄드는 본인을 연기하는데, 이는 실제 현실에서의 본인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만, 이들이 각각 중계화면에서 경기를 뛰는 모습과 셀러브리티(Celebrity)로서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그 자체로 이들의 현실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 속 현실에 종종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여 스크린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략을 보여준다. 단편 <검은 풍선(The Black Balloon)>(2012)에서 자의로 움직이는 풍선이 그러하고, <헤븐 노우즈 왓>에서 일리야(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던진 휴대폰이 폭죽이 되어 터지는 쇼트 편집을 예로 들 수 있다. <언컷 젬스>는 단순히 현실에 허구를 더하는 시도를 넘어선다. 사실적 요소들에 충실하고,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은 현실과 허구를 모두 점유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프디 형제는 활발히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재능 넘치는 젊은(두 사람 모두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다) 영화 연출자들이기 때문에, 추후 제작될 영화들에서 <언컷 젬스>의 독특한 접근을 어떤 방식으로 변주해나갈지 기대가 많이 된다. 이들의 영화 세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언컷 젬스>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 좌측부터 줄리아 폭스, 케빈 가넷, 아담 샌들러, 위켄드
[1] 극 중 하워드는 코미디 영화 <구혼 작전(Coming To America)>(1988)과 텔레비전 시트콤 <굿 타임스(Good Times)>(1974-1979)를 언급한다.
[2]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오몽(J), 베르갈라(A), 마리(M), 베르네(M), 『영화미학』, 이용주 옮김, 동문선, 2003, pp.89-90.
사진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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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와 상상을 품은 마음에 피어난 기적
“당신은 산타를 몇 살까지 믿었나요?”
산타는 연말이 다가오면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 흐뭇한 주제는 의외로 열띤 대화를 만든다. 산타를 기다리며 지새우던 밤에 대한 기억, 선물을 주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착한 일에 대한 기억 등 ‘산타’라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남긴 기억에 관해서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가 아이들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기대와 설렘,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이의 상상력을 지키기 위한 선의, 순수함에 대한 애정, 돌아갈 수 없는 마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 이것을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산타의 존재를 말한다.
“산타는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상징이오!”
크링글은 산타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워커에게 산타라는 존재, 즉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이기심과 증오를 누를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죠.”
영화는 크링글의 입을 빌려 말했듯, 산타를 믿을 마음의 여유 한 줌 남기지 않은 사회는 이기심과 증오만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잔은 어른처럼 말하는 아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없는, 아이 같지 않은 아이. 그녀는 퍼레이드의 썰매 위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엄마의 선택으로 고용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원하는 선물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엄마가 사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진짜 산타 같은 크링글은 계속해서 수잔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수잔은 크링글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금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산타는 그런 존재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품게 하는. 그리고 기대는 사람들의 일상에 원하는 미래를 상상할 힘을 갖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기대하고, 이루어질 소원을 기대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작은 여유이자, 기쁨일 것이다. 그렇기에 크링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돈과 경쟁, 그 외의 현실은 그에게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익스프레스 백화점 직원들은 본인이 진짜 산타라 주장하는 크링글을 믿지 않았다. 그저 연기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그러고는 산타를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모인 아이들 앞에서 산타는 거짓이라 말하고, 폭행을 사주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크링글을 악으로 끌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가 보여준 미소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경쟁사를 끌어내리며 그를 발판 삼아 그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기심과 증오, 경쟁과 대립뿐이다.
믿는다는 것
크링글의 재판에서 브라이언은 “웃음을 자아내는 거짓을 선택할 것인지,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 판사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크리스 크링글이 산타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믿음’을 가진 마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유약하고 보잘것없던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힘은 바로 '상상력'이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비웃음당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일이다. 영화 속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은 자신이 진짜 산타라고 말하는 크링글을 비웃고, 미쳤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정신 병동에 가둔다. 하지만 그를 믿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달랐다. 그를 믿고, 믿음이 실현되는지 기대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를 응원하며 ‘I BELIEVE’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드리운 표정은 매우 달랐다. 검사와, 익스프레스 사장의 얼굴에는 당장의 경쟁에서 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을 증언하는 증인들, 응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본인의 믿음에 대한 기대와 생동감이 담겨 있었다.
냉소는 현실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과 힘이 정의인 세상은 윤택한 삶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술을 사 먹을 수 있는 하루를.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24일 밤에 산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기 위해 1년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위가 가치를 잃는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선(善)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동전과 명함만 남는 세상에는 온기가 없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온기를 주는 행위다. 삶에서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혼자는 외로울 뿐이다. 부모들이 산타의 도움을 받았듯, 워커가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았듯, 산타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듯, 타인을 믿는 다정함,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정함은 선(善)이 다른 선(善)을 낳도록 도왔다.
믿음이 준 온기는 워커와 수잔에게도 역시 동일했다. 워커는 환상과 신화를 믿는 건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라며, 자신이 믿던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산타를 믿었다. 하지만 살면서 믿음을 주었던 것으로부터 상처를 입었기에 그녀는 믿음을 지웠다.
수잔 역시 믿음을 지웠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상상력의 공간을 지웠다. 워커의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상처를 안은 아이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진짜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없는, 엄마가 주는 ‘가능성’ 안에서만 마음을 키우는 편이 더 이상의 상처를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없던 워커는 크링글을 통해 잊었던 미소를 되찾는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 믿고 싶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된 수잔 역시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았다. 크링글이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에 심은 기대의 씨앗이 믿음이라는 온기를 품고 자라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게 뭐니?’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원하는 것을 생각할 틈을,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준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믿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명하다. 사랑하고 믿는 동안 나를 채우는 행복,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믿을 용기.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충만한 삶을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수잔이 원했던 집과 워커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소원이 이뤄진 모습을 보며, 기적을 만드는 연금술은 사실 무척 간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의 상상력과 그것을 믿을 용기,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상상한 미래 앞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ditor. H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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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뉴욕 다이어리>영화리뷰
<마이 뉴욕 다이어리>(2021.12.9 개봉)
감독: 필라프 팔라도
출연: 시고니 위버, 마가렛 퀄리
1995년, 작가 지망생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의 CEO 마가렛(시고니 위버)의 조수로 입사한다.
설렘에 부푼 마음으로 출근한 첫날, 조안나는 예상과 달리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업무에 당황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잘 알려진 작가 J. D. 샐린저에게로 오는 수많은 팬레터에 그저 양식에 맞춘 건조한 답장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
하지만 문학과 작가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고 싶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평범하기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한 여성의 일화를 통해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따스한 영화다.
특히 책과 작가를 사랑하는 문학청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자랑할 만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단계들에 관해 조명하는 차분하고도 포근한 영화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의 집시 소녀로 얼굴을 알리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용한 희망>에서 어지러운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는
싱글맘을 연기한 마가렛 퀄리가 이번 영화에서는 조안나로 분해 꿈을 가진 젊은 여성을 능숙하게 연기했다.
또한 <에이리언> 시리즈와 <아바타> 등으로 일찌감치 믿을 만한 배우의 대열에 오른 시고니 위버가 CEO 마가렛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화려한 뉴욕의 풍경들 또한 이 영화의 주요한 볼거리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이며 장소적 배경은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길 꿈꾸는 낭만적인 도시 뉴욕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우드톤의 작가 에이전시 사무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소품들과 주인공 조안나의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의상 또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뉴욕의 감성있는 풍경을 담아 많은 영화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과 향수 또한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극 중 조안나가 걷는 빌딩숲, 뉴욕 곳곳의 거리와 카페들은 지금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 시국 속에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저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로와 힐링, 따스함을 자아내는 건 역시 등장인물이다.
CEO 마가렛의 조수가 된 조안나는 물론 뉴욕의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것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겪는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일, 그리고 작가가 되길 원하는 진로 속에서 고민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조안나는 성장해간다.
조안나의 사랑과 일, 그리고 진정 작가가 되길 원하는 꿈 사이에서 그녀는 도전하며 나아간다.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이지만 그 덕분에 과장없고 화려한 치장없이 우리 자신을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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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붉그스름한 군자
감독: 박재민
러닝타임: 4분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험난한 성인식을 치러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 과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 1' 中 <성인식> 스틸컷
옛날 부족국가 시절, 제사는 신을 향한 행위였다.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도 가능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도 있었다. 제물이 희귀할수록 신에게 큰 기쁨을 전달할 것이라 믿었던 부족들의 행위였다. <성인식>은 인신공양까지는 아니고, 하얀 새를 제물로 바친다. 제단 위에서 제사장이 꼬마에게 하얀 새를 공양하라고 한다. 그러나 꼬마는 반대한다. 하얀 새를 제사장에게 던지며 제사장을 제단 밑으로 떨어트린다. <성인식>은 샌드아트와 복합적으로 연출하며 빠른 전개와 인상적인 효과를 보인다. 넘어진 제사장을 목격한 다른 하얀 새를 품고 있던 꼬마들은 각자가 품었던 하얀 새를 풀어준다. 하얀 새들은 자유를 찾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 꼬마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인다.
상영일자: 9/19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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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캐스팅 소개 후에 제대로 있습니다.
블록버스터답게 엔드크레딧이 제법 긴데, 엔드크레딧 후에는 쿠키가 없으니 편하게 나오셔도 될 듯합니다.#분노의질주, #빈디젤, #성강, #샤를리즈테론,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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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빅 피쉬”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넷플릭스, #왓챠, #팀버튼, #판타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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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로 돌아온 애니멀 가족들이 다시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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