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4-04-04 10:30:19
작은 식물 하나 키울 마음의 틈을 찾아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리뷰
4월만 되면, 가드닝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와 미팅을 하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연초 협업에 관해 논의 하다가 “4월쯤 일정을 잡으면 어떨까요?” 라는 나의 말에, “초록초록 한 느낌이 나려면 4월은 어려워요.” 라고 하셨다.
‘아니 ! 내 마음 속 4월의 이미지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매년 식목일 즈음엔 봄 옷을 꺼내 입고 벚꽃을 보러 갔다가 추위에 떨었고,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벚꽃나무 사이로 아직 나뭇가지가 앙상한 식물들이 더 많았다. 생각 속 4월의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에 대해 문득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꽃을 보느라 빼앗긴 시선 뒷편으로 ’그렇지 아직 초록은 멀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4월. 하지만 우리는 바람 사이로 따스함이 묻어 나면 본능적으로 초록을 찾게 되는 것일까. 길가에 놓여진 작은 모종을 사고, 흔들리는 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길었던 겨울 동안 봄을 고대 했는지도 모른다. 봄이 온 것 같은데, 아직 차가운 그런 날. 바깥에 흐르는 계절과 상관없이, 집안에 초록을 가득 들여놓은 사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탐나는 때가 바로 4월이다.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읜 폴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을 키워주는 두 이모는 폴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지만 33살의 폴은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웃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그녀의 집은 독특하다. 바닥을 파서 흙은 깔아두고, 집안 가득 마치 식물원처럼, 야외 인 것 처럼 식물을 키우고 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도 피아노 덮개를 여는 순간 가려지는 커다란 피아노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폴의 집과 대조적으로 작은 거울과 자동차 백밀러로 샹들리에를 만들어 집안 구석 구석 햇빛이 들어 오게 만든 마담 프루스트의 집은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폴은 신비로운 그 공간에서,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결심을 하게 된다. 작은 꽃이 그려진 식탁보에 마주 앉아 진짜 허브차와 마들렌 그리고 음악으로 폴은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프로레슬러였던 부모와의 추억이 담긴 아름 다운 장면이었다. 폴은 마담프루스트와 만남을 지속하며 트라우마로 얼룩진 왜곡된 기억, 말을 잃은 채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그리고 마침내 위 층에서 떨어진 피아노에 깔려 그의 부모가 눈앞에서 죽었던 장면을 기억에서 살려낸다.
“네가 추억을 낚고 싶을까봐 필요한 재료를 마련했어.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과거를 마주하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게 된 폴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피아노 뚜껑을 뜯어내 미니정원을 만든다.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간 피아노에 흙을 담고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그리고 그 자리엔 꽃이 자란다. 내 작은 의지로 작은 생명을 키워내는 마음과 행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폴을 보여주는 장면은 뭉클함으로 가득찬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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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 봉준호답게 일탈한 SF 모범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빚을 내어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망한 나머지 사채업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 아예 지구 밖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한 그는 정치인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의 외계 행성 니플하임 식민지 개척단에 합류한다. 티모와는 달리 아무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신체가 출력되는 '익스펜더블'로 자원한다.
온갖 생체 실험에 동원되면 죽고 출력되기를 16번이나 반복하면서도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 덕분에 4년의 항해를 견뎌낸 '미키 17'. 니플하임 행성 탐사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탐사 도중 외계 생명체 ‘크리퍼’를 조우하고, 죽을 위기를 피해 우주선에 간신히 복귀한다. 하지만 우주선에는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었고, 복제 인간이 둘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규칙에 따라 두 미키는 서로를 죽이려 든다.
봉준호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만남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복기해 보면 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한 작품 내에서도 의외의 타이밍에 장르를 변환하거나, 과감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는 것. <기생충>에서는 '부자는 악하고 빈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전개와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전환되는 구성으로 충격을 선사했다. 꼬리칸의 반란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열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는 <설국열차>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그렇기 때문에 <미키 17>은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관습에 구속되지 않는 비틀림'이라는 봉준호의 특징이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의문이었던 것. 워너 브라더스와 협업하고 제작비만 1억 2천만 달러가 투입된 <미키 17>은 <설국열차>나 <옥자>와는 또 다른,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으니까. 규격화된 시스템과 봉준호가 어떤 조화를 보여줄지 걱정 반, 기대 반일 수밖에 없었다.
<미키 17>의 결과물은 전반적으로 할리우드스럽다. 전개는 SF 클리셰에 충실하다. 봉준호라는 명성에 비하면 깊이도 얕아 보인다. 다양한 철학, 종교, 윤리, 정치적 딜레마와 알레고리가 삽입됐지만, 어느 것도 진득이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하다. 디테일로 빚어낸 블랙 코미디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 즉, <미키 17>은 할리우드의 SF 모범생이 전학생 봉준호를 만나 펼쳐 보이는 성실한 일탈의 결과물 같다.
'봉테일'로 빚은 불쾌한 블랙 코미디
<미키 17>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불쾌함이다. 특히 디테일하게 빚어낸 불쾌함을 토대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봉테일'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심에는 3D 생체 프런터가 있다. 이 프린터는 일반 3D 프린터처럼 입력된 설계도대로 인체를 찍어낸다. 그런데 이 프린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그 자체로 기괴한 유머처럼 느껴진다.
프린터가 작동하는 방식부터가 그렇다. 외관은 MRI 기계처럼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겼지만, 정작 작동하는 방식은 옛날 프린터처럼 투박하다. 과거 프린터들은 출력물을 인쇄할 때 종이를 한 번에 매끄럽게 내보내지 않았다. 문서를 한 줄씩 인쇄하면서 덜커덩거리면서 조금씩 종이를 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프린터 또한 덜컹거리면서 미키를 머리부터 서서히 밖으로 뽑아낸다. 마치 종이 문서를 출력하듯이.
이처럼 일반적인 프린터가 작동하는 익숙함과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닌 사람이 출력되다는 낯섦 간의 괴리감은 미묘한 불쾌함을 조성한다. 이 불쾌함은 프린터 사용자들의 태도 때문에 증폭된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하다.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출력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받침대를 뒤늦게 깔거나, 출력이 되는 사이 다른 작업을 하다가 출력물이 이상하다고 짜증을 내는 식이다.
문제는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니라 미키 반스라는 사람이 출력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투박한 작동 방식이라는 디테일의 진가가 드러난다. 단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세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로부터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그로테스크함을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기 때문. 유머러스한 연출도 한 몫하다. '사람을 출력한다'는 사안의 심각성과 가벼운 분위기 사이의 간극 덕분에 불쾌함은 극대화된다.
익숙함+봉준호=특별함
프린터에서 느껴지는 불쾌함, 인간의 존엄성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고 짓밟는 그로테스크함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가짜 임무를 주고 미키를 우주로 내보내서 인체 방사선 실험을 한다. 새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보호 장비 없이 미키를 보내서 대기 상의 바이러스를 파악한 뒤 백신을 만든다. 저녁 만찬에 초대해서는 배양육을 임상실험하고, 부작용이 나타나자 내친김에 신형 진통제 효능까지 시험한다.
이 온갖 생체 실험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일절 불평도,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사채를 빌리고 돈을 갚지 못해 죽을 처지가 되자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으니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다루는 이 대목은 SF 영화의 클리셰에 가깝다.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익스펜더블로 바꾼 것처럼도 보이고, <아바타>에서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기괴함과 유머가 뒤섞인 미묘한 분위기 덕분에 클리셰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된다. 실제로 <미키 17>에서는 돈이 없어서 지구를 떠난다는 클리셰도 마치 생체 프린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채업자 '다리우스'는 돈을 안 받아도 되니 그저 사람이 죽는 모습을 즐기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는 인명 경시 풍조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다른 차원의 효과를 낸다.
<기생충>에서 '박동익'(이선균)이 '김기택'(송강호)의 냄새에 묻은 가난함을 지적하는 것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선악 이분법을 활용하지 않고도 빈부격차를 실감케 한 것처럼, 인간을 액수로 수치화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이 돈이나 다름없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익숙하고 강고한 클리셰의 벽에 봉준호다운 디테일이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키 17>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진다.
SF 모범생을 일탈시키다
클리셰에 봉준호 향을 첨가해 색다른 맛을 내는 방식은 <미키 17>이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유효하다. 사실 앞서 보여준 문제의식에 대한 <미키 17>의 답안은 너무 모범적이고, 순진하기까지 하다. 두 방향의 아가페적 사랑을 해결책으로 내놓기 때문. <미키 17>은 니플하임에 사는 크리퍼처럼 모든 생명을 아끼고, 나샤처럼 타인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면 생명이 경시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극 중 서로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크리퍼와 인간은 정반대 태도를 취한다. 인간은 크리퍼를 전부 죽이려 하지만, 크리퍼는 처음 보는 인간도 죽을까 봐 걱정하면서 구해준다. 또 종족을 위한 길이라며 미키를 17번이나 죽이는 인간들과 달리 크리퍼는 인간에게 잡힌 새끼 한 마리를 구하려고 모든 종족이 전투에 나선다. 즉, 모든 생명을 더한 만큼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옥자>스러운 메시지를 인간과 크리퍼의 대비 속에 담아낸다.
한편 나샤의 사랑은 미키를 변화시킨다. 미키가 무기용 살상가스 테스트를 당할 때, 나샤는 그를 홀로 두지 않는다. 방호복을 입고 실험실 안에 들어가서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준다. 또 티모가 다리우스의 협박 때문에 미키 17을 죽이려 할 때도 나샤는 목숨을 걸고서 그를 구해낸다.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미키 17을 각성시키고, 그가 케네스의 압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힘을 찬양하는 메시지도 사실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봉준호다운 색다름을 엿볼 수 있다. 미키 17과 나샤는 항해 중에 여러 섹스 체위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중 하나가 케네스의 압제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신호로 활용된다. 아가페적 메시지를 순간 에로스적으로 풀어내는 유머 덕분에 진부할 뻔한 장면에 생동감이 깃든 셈이다. 이 또한 봉준호가 할리우드 SF 모범생을 변화시킨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악역을 무찌르는 사랑의 힘
한편, 사랑의 메시지는 정치 풍자의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미키를 출력할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은 그의 기억과 성격이 보존되고 이어진다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마셜 부부가 상징하는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키는 존재 자체로 마셜의 이상에 반하기에, 그의 성장 서사는 그 자체로 케네스의 실패와 퇴락을 뜻하기 때문.
마셜 부부는 인간 중심주의와 우생학을 신봉한다. 식민지 행성 개척 프로젝트도 더 우월한 인류를 만들겠다는 비틀린 신념의 일환이다. '일파'(토니 콜레트)'가 만드는 '소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소스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소스를 즐길 줄 아는 우월한 종자와 즐기지 못하는 열등한 종자로. 더 맛있고 좋은 소스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생학에 기반해 니플헤임 행성을 개척하려는 케네스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케네스가 보기에 복제품이라서 진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미키는 열등한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복사되는 존재이기에 미키는 진정으로 진화할 수 있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만남이 미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 미키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자기가 엄마 차에 있던 빨간 버튼을 누른 순간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엄마가 죽었다고 믿는 것. 버튼이 실제 원인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미키 17은 또 다른 '나'를 만나 달라진다. 그는 우유부단한 자신과 달리 과감한 미키 18을 보면서 모든 미키가 죄책감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케네스와 크리퍼의 전쟁을 막기 위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자폭 버튼도 망설임 없이 누르는 미키 18로부터 자신에게도 있을 가능성을 배운다. 마셜 부부가 등장한 백일몽에서 과거와는 달리 당당히 일파와 맞서는 미키 17의 모습은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함의 힘을 믿다
미키의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격려처럼도 보인다. 현실적으로 대중에 속한 한 개인은 미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네스 같은 독재자의 시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없이 복제된 미키의 집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이, 대중이 미키처럼 자신의 가능성과 힘을 자각할 때, 케네스는 비로소 힘을 잃는다.
일례로 미키와 나샤는 번역기를 만들어 준 과학자 '도로시'(팻시 패런)나 일파의 지시를 불이행한 '지크 요원'(스티브 박) 등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한 평범한 대원들 덕분에 크리퍼를 몰살하려는 케네스의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연인을, 동료를,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이들의 가능성을 믿는, 달리 말해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이야기가 <미키 17>인 셈이다.
다만 사랑이라는 주제와 정치 비판 간의 연결고리가 부각되지 않다 보니 <미키 17>의 의도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협력 과정보다 갈등이 강조된 결과 미키 17의 변화와 성장이 조명받지 못한 것. 그렇다고 두 미키의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나샤의 진짜 연인이 누구인지를 중심으로 둘 중 누가 진짜 '나'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돌연 둘의 갈등을 유야무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대목이 많은 나머지 정치 비판이 일차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케네스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극단주의의 심화라는 정치적 흐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배경이나 개인사가 단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케네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거시적인 정치 흐름이 아닌 특정 정치인만을 겨냥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셈이다.
최고는 아닐지언정
이에 더해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여러 플롯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인상도 짙다. 크리퍼 번역기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눈에 띄는 복선이나 암시 없이 함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식이다. 티모나 카이 같은 미키의 주변 인물들이 명확한 쓰임새 없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전개는 과욕이 아닌가 싶다. 복제 인간 활용법도 '멀티버스의 나'를 등장시킨 MCU의 스토리텔링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서 신선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키 17>을 봉준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SF 영화로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졌지만 특별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예상보다 블랙 코미디에 가까워서 큰 스케일이나 막대한 제작비도 와닿지는 않는다. 클라이맥스를 제외하면 우주선 내부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 그 결과 전반부에 가득한 기괴함의 충격에 비해서는 후반부와 결말의 즉각적인 쾌감이 부족하다.
그 대신 곱씹을수록 풍미는 깊어진다. 봉준호다운 장치가 친절하고 모범적인 상상력 사이로 만든 균열이 덕분에 의도한 맛이 뒤늦게 느껴지는 것. 가까이서 보면 범작이지만, 멀리서 볼 때 수작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거대 자본과 작가의 창조성이 타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처럼 보인다. 이렇게 <미키 17>은 봉준호 스타일로 소화한 할리우드 SF를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봉준호가 제출한 할리우드 SF학 개론 중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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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 속에서 감출 수 없는 실망감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아보자면 하면 뉴트 스캐맨더! 그 이유는 해리포터 기숙사 테스트에서 후플푸프로 나왔고, 이 세계관에서 가장 유명한 후플푸프 출신은 뉴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기대를 하고 보러 갔으나 그 기대 때문인지 실망을 금치 못했던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 컸던 작품이었다.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시놉시스가장 위험한 마법에 맞선, 세상을 구할 전쟁이 시작된다!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 마법사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의 힘이 급속도로 커진다. 덤블도어는 뉴트 스캐맨더에게 위대한 마법사 가문 후손, 마법학교의 유능한 교사, 머글 등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임무를 맡긴다. 이에 뉴트와 친구들은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린델왈드와 추종자들, 그의 위험한 신비한 동물들에 맞서 세상을 구할 거대한 전쟁에 나선다. 한편 전쟁의 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상황 속에서 덤블도어는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서서히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그렇다, 그들은 귀여웠다
사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를 보는 이유는 귀여운 동물들을 구경하는 일 아닐까? 실제 존재하지 않고 마법 세계에만 존재하는 동물들을 연구하고 찾아나서는 동물학자 뉴트와 동물들의 케미 기대하며 보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신비한 동물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도 그 귀여운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지하 감옥에 있는 테시우스를 구하려 가는 장면에서 말이다. 도대체 그 빨간 아이들은 누구일까? 꽃게..? 랍스터? 어쨌든 수백마리의 꽃게들이 요새와 같은 지하감옥을 돌아다니며 죽은 사람들의 사체를 먹고 있었다. 테시우스를 구하러 간 뉴트는 이 아이들의 모방심리를 활용해서 이상한 포즈로 다같이 테시우스가 있는 곳까지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찾아간다. 심지어 테시우스를 구하고 돌아갈 때도 다같이 씰룩이면서 가는데 정말 영화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빵 터졌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피켓과 태디가 뉴트의 지팡이와 함께 간수에게 맡겨진다. 뉴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피켓과 테디는 열심히 나름대로 간수를 속이려고 하던 찰나 졸던 간수가 깨어나면서 동망치는 그 장면 역시 굉장히 귀여웠다. 중간중간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많이 나와서 어두웠던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도대체 신비한 동물이 왜 필요했을까?
사실 이번 작품이 차라리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에 초점을 맞추는 아예 별도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신비한 동물드로가 덤블도어의 이야기를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 사이가 틀어지고 그린델왈드가 마법동물들을 악용하기 시작하면서 덤블도어는 이를 막고 마법세계과 머글세계를 동시에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컨셉으로 가야 이야기 자체도 심도 있고, 캐릭터 간의 서사도 더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비한 동물이 주가 되고 덤블도어가 끼어든 느낌이라 어떤 캐릭터도 그리 영화 속에서 인상적으로 잘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크레덴스가 덤블도어의 가문이라는 사실까지 밝혀내면서 도통 동물들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동물이라는 신비함과 그린델왈드의 음모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잘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캐릭터 간의 합은 어디 있을까?
이번 작품의 문제점이라고 하자면 캐릭터 간의 합이 없다. 각자 각개전투를 한다. 분명히 머글, 동물학자, 위대한 마법사 집안, 오러 국장, 교술, 뉴능한 조수 이렇게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있고 그린델왈드와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와닿지 않는다. 모두가 비밀을 감춘 채 장막 뒤에 있는 느낌이었고, 심지어 그렇다면 결말에서 그간의 비밀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카타르시스라도 전해져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 밍숭맹숭 끝난 느낌에다가 전략이 "무계획이 계획이다. 다중계획이다."였는데 그래도 이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되는데 도대체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으니 집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자꾸 감추려고만 하고 이에 한 서사도 제대로 풀어내지 않아서 밀도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돈 아까울 정도 못 만든 작품은 아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웠을 뿐 재밌는 작품이긴 하다. 그저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보니 쓴소리를 더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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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돌봄'이라는 새로운 부녀 관계
8/10
11살 딸 소피와 30대 초반의 아빠 패터슨이 소피의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부부의 이혼 후 소피가 엄마와 함께 살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여행이다. 행선지는 튀르키예. 매끄럽지만은 않다. 두 개의 침대를 확인하고 예약한 호텔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고, 호텔 바로 옆에서 진행 중인 공사는 부녀의 신경을 긁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행의 기쁨이 더 크다. 패터슨은 다정한 얼굴과 몸짓으로 딸에게 선크림을 발라주고, 소피는 그런 아빠에게 의지하며 둘이 함께 만들 추억에 들뜬 상태다.
11살은 애매한 나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사이 어딘가. 소피는 아빠와 함께 노는 것도 좋지만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며 그들처럼 놀고 싶기도 하다. ‘소피의 오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아빠인 패터슨 역시 그런 소피의 마음을 알고 보호자와 친구 역할을 오가며 소피를 배려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소피와 젊은 아빠라는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미묘하다. 소피가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 청년인 패터슨 역시 소피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부녀 관계를 따뜻하게 담아내는 〈애프터썬〉이 흥미로워지는 건 이 지점이다. 성장 중인 딸과 여전히 방황하며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아빠가 만들어내는 관계에서는 기존의 부녀 관계와는 다른 역동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피 앞에서는 늘 밝고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패터슨은 고통의 시간을 겪는 중이다. 최근 사업에 실패한 패터슨은 미래가 두렵다. 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돈은 넉넉하지 않고, 당장 자신의 미래조차 확신할 수 없다. 딸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소피도 아빠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빠의 간섭과 참견을 귀찮아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활용해 아빠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녀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님에도 말이다.
일상적 배려와 스치듯 지나가는 다정한 말 한마디로 서로를 응원하는 부녀. 그런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는 두 사람의 정체성이 엇갈릴 때마다 찾아온다. 어린이이자 청소년이고, 아빠이자 (위태로운) 청년인 부녀. ‘어린이’와 ‘아빠’, ‘청소년’과 ‘청년’이 만날 때는 좋은 시너지가 난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년’, ‘청소년’과 ‘아빠’가 만나면 불협화음이 난다. 지금 이 순간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돌봄의 화살표가 바뀌기 때문이다. 두 정체성 사이를 오고 가는 둘은 매 순간 서로를 면밀히 탐색하며 미세하게 관계를 협상해야만 한다. 정체성을 오인하면 감정이 상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생긴다.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자는 소피의 제안을 패터슨이 거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린이’ 소피는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가족의 전통을 거부하는 아빠에게 서운하고, ‘청년’ 패터슨은 남들 앞에서 가무를 하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때로는 상처주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부녀 관계의 깊이와 갈등 모두 고조된다. 더불어 패터슨의 아픔과 상처가 서서히 부각되며 소피와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점차 ‘청소년’과 ‘청년’의 관계, 즉 돌봄의 화살표가 딸에게서 아빠를 향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애프터썬〉의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빠에서 딸로 향하는 일방적‧일반적 부녀 관계를 거스르며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아빠/아버지는 늘 강인한 존재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 요구가 내면화되어 남성이 스스로를 그렇게 재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젠더 이원론의 각본에서 태생적‧본질적으로 강한 존재는 없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각본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별자들이 있을 뿐이다. 〈애프터썬〉은 방황하는 청년이라는 보편적 인간에게 ‘아빠’ 정체성을 더함으로써 ‘아빠/아버지’ 역시 취약한 존재임을, 즉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인다.
영화에는 패터슨과의 상호 돌봄 관계가 소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성인이 된 소피가 동성 애인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패터슨과 서로 기대며 버티고 지나온 시간을 바탕으로 성숙한 돌봄의 관계를 꾸렸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돌봄이 필요하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친밀한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만이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돌본다. 이것이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감동적으로 영상화한 영화 〈애프터썬〉의 메시지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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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속으로 떠나는 영화여행 2편 - 유럽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영화의 숲, 할리포레스트입니다.
세계 속으로 떠나는 영화여행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유럽으로 떠날 차례군요.
잠시 여러분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유럽'의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보고 출발해볼까요? 그러면 그 모습이 영화 속에 어떻게 비슷하거나 혹은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포스팅 순서는 개봉순입니다.
*이미지의 출처는 NAVER, GOOGLE입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지극히 제 주관으로 선정한 지역들입니다.
세계 속으로 떠나는 영화여행
2편-유럽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2002)
① 스페인 세비야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2002)
흔히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투우'와 '플라멩코 춤'의 본고장 '세비야'.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이 대도시는 이슬람 양식의 스페인 궁전 '알카사르 왕궁', 이슬람 사원을 뜯어고쳐 만든 '세비야 대성당'등 기독교문화-이슬람문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융화된 지역입니다. 덕분에 누가 봐도 참 이국적인 곳이죠. 이러한 독특한 양식은 계속해서 전해져서 1929년 박람회장으로 지어진 '스페인 광장'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속 아나킨과 파드메의 애정행각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정말 이토록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로맨스에 잘 어울리는 장소는 없을걸요?
스페인 세비야
<라따뚜이>(2007)
② 프랑스 파리
<라따뚜이>(2007)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히는 빛의 도시 '파리'.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속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고, 때로는 총격전이 오가며, 지구 전체에 재난이 찾아올 땐 빠지지 않고 파괴되는 등 우리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매우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1년에도 몇 번씩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파리지만, 그중 가장 '파리'스러운 영화는 <라따뚜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많은 프랑스 요리에 파묻힌 한 생쥐의 인생은 출신 때문에 한계를 짓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누구나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죠. 전 이 영화를 보고 은은한 파리 풍경 속 에펠탑 배경의 저녁 식사를 꿈꾸게 되었답니다.
프랑스 파리
<프로메테우스>(2012)
③ 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쿠틀
<프로메테우스>(2012)
아이슬란드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 덕분에 수많은 영화 제작이 이루어지는 매우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촬영지입니다. SF-공포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2012) 또한 영화 장면 곳곳이 '아이슬란드'에서 제작되었죠. 특히 제일 인상 깊은 오프닝 장면은 아이슬란드는 물론 유럽에서 제일 큰 빙하 '바트나이외쿠틀 빙하' 한가운데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폭포인 '데티포스 폭포'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폭포 위에서는 외계 종족 '엔지니어'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지구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처음 볼 때는 장엄한 장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깨닫는 순간 그건 정말 무서운 행동이랍니다.
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쿠틀
<몬스터 호텔>(2013)
④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몬스터 호텔>(2013)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흡혈귀 '드라큘라'는 19세기 말 소설로 처음 등장했으며, 100년이 지난 지금은 루마니아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아직도 그는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유쾌하게 풀어낸 <몬스터 호텔>에서는 철부지 딸을 키우는 근심 많은 아빠로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죠. 영화 속 '몬스터 호텔'의 모티브는 루마니아 중부지방의 '트란실바니아'에는 '브란성'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이 얼핏 보면 평범한 유럽풍 성같이 보일지도 모르나 이곳은 바로 소설 속 드라큘라가 살았던 곳이거든요. 비록 소설이진 하지만 왠지 이곳은 밤에 가기 무서울 거 같습니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겨울왕국>(2014)
⑤ 노르웨이 송노피오라네
<겨울왕국>(2014)
노래 'Let it go'로 너무나 유명한 <겨울왕국>(2014). 역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애니메이션 흥행 1위 자리에 오른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송네피오라네'지방을 포함한 노르웨이 전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송네피오라네의 빙하가 산을 깎은 자리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만들어진 좁고 긴 만 '송네 피오르'는 길이 200Km, 깊이 1300m에 달하는 거대한 비경이죠. 지금도 전 세계에서 송네 피오르를 보기 위하여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플롬'마을행 열차에 매년 수십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겨울에 간다면 진정한 '겨울왕국'을 느낄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오로라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노르웨이 송노피오라네
<나의 산티아고>(2016)
⑥ 스페인 순례자의 길
<나의 산티아고>(2016)
스페인 북서쪽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성지 순례길의 종착지이기도 하죠. 순례자의 길은 여러 코스가 있으나 제일 유명한 '프랑스 길'은 프랑스 국경도시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며 총 길이는 무려 800km에 달합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관광객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과 이유가 있으며, 이는 순례자의 길을 소재로 하는 영화 <나의 산티아고>(2016)에 잘 반영되어 있죠. 현재는 연간 20만 명이나 되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걷고 있으며, 한국인 순례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답니다. 제가 아마 이 길을 걷게 된다면 인생을 한 번쯤 되돌아볼 때 걷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스페인 순례자의 길
<인페르노>(2016)
⑦ 이탈리아 피렌체
<인페르노>(2016)
음모론의 대명사로 불리는 <다빈치 코드> 3부작의 마지막 3편 <인페르노>. '단테의 신곡'과 '맬서스 트랩'을 주제로 다루는 이 영화는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 '피렌체' 곳곳을 배경으로 합니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다빈치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모여있어서, 아무 방향으로 걸어도 사방에 예술작품들이 줄이어 있는 모습을 자랑하는데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면 피렌체를 한 달이 넘게 돌아다녀도 제대로 다 못 볼 정도라고 하는 말이 과언이 아니랍니다. 영화 속에서의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정신없이 보물찾기를 하지만, 관객들 입장에선 영화 감상에 덤으로 박물관 관람을 추가도 하는 셈이네요.
이탈리아 피렌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
⑧ 아일랜드 먼스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변신 로봇 시리즈 '트랜스포머'. 이 시리즈의 5편인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는 아일랜드 기반의 켈트족 신화 '아서왕 전설'을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은 깎아진 듯한 절벽에서 머리가 3개 달린 기계용과 함께 힘을 합쳐 적을 몰아내죠. 여기서 이 절경의 배경이 된 곳은 아일랜드 남서쪽 '먼스턴' 지방에 위치한 '모허'절벽입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모허 절벽은 아일랜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며, 그동안 수많은 뮤직비디오와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비록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평가가 종합적으론 형편없긴 하지만 이 배경 하나는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아일랜드 먼스턴
<아토믹 블론드>(2017)
⑨ 독일 베를린
<아토믹 블론드>(2017)
남한-북한, 월남-월맹, 동독-서독... 분단국가들은 미국-소련의 대립인 냉전시대를 잘 표현하는 수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특히 동베를린-서베를린으로 도시가 통으로 나뉘어 있던 '베를린'은 독특한 지형 덕분에 할리우드에서 첩보영화의 숱한 소재가 되었죠. <아토믹 블론드>는 소련 붕괴 직전 베를린에서 스파이끼리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네온사인 분위기의 현실적이면서도 잔혹한 당시 냉전시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작중에서 나온 '체크 포인트 찰리'-'베를린 장벽' 등의 장소는 대부분 헐렸지만, 아직도 역사유적을 위해 남겨놓은 일부분의 지역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독일 베를린
세계 속으로 떠나는 영화여행은 3편 '아프리카'로 이어집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숲, 할리포레스트-
▼ 세계 속으로 떠나는
영화여행 3편 아프리카
https://blog.naver.com/hollyforest/221346157916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할리 포레스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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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알 수 있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이라는 영화는 스페인에서 농업을 하는 솔레 가문이 나온다. 복숭아를 재배해서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가족들은 3대째를 거쳐 농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토끼들이 농사를 방해하자 사냥용 총으로 쏴 죽이는데 이 영화 곳곳에서 토끼들의 사체가 나온다. 그 토끼들의 명복을 비는 흑인 노동자의 모습을 본 솔레 가문의 손녀는 그 모습을 따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온다. 바로 누군가가 태양 전지판을 자신들의 땅 근처에서 심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솔레 가족은 거칠게 항의하지만 더 이상 막지 못한다. 자신의 땅에서 대를 이어온 농사를 망치고 싶지 않은 솔레 가족을 보여주면서 스페인의 농업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농업이라는 게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있는 직업이다 보니 스페인에서도 농업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농업인들은 토지를 헐값에 팔기도 하는데 점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느낌이다 보니 자신들이 피 땀 흘려 만든 과일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반밖에 안되는 걸로 생활할 수밖에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과일을 납품받던 대기업에 시위를 하게 된다. 또한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농부라는 직업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학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와 비슷해서 안타깝게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레 가족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대기업의 횡포로 인해 자신들의 밥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두운 이면에 있는 농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토끼들을 죽여야만 했던 것 때문일까? 토끼들의 죽음이 솔레 가족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자신들이 농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방해되는 토끼들을 제거했듯이 자신들의 물건을 납품받던 대기업도 솔레 가족에게는 큰 타격을 준 것이다. 어쩌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둘 다 불쌍한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 게 꼭 쉬운 것만이 아닌 것 같다. 그게 농업이든 학업이든...
스페인에서 농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 저의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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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나를 ‘다이애나’라고 부르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한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짤막한 인터뷰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다이애나 관련 영상을 ‘다’ 보았다고.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납득할 만한 연기력을 처음으로 볼 수 있으려나.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을 꽤 보았다. 2016년 <카페 소사이어티>와 <퍼스널 쇼퍼>, 2018년 <리지>, 2019년 <찰리스 엔젤스(미녀 삼총사 3)>, 2020년 <크리스마스엔 행복이>. 감상은 늘 비슷했다.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그런데 인상적이지도 않다. 꾸준히 작품을 해온다는 건 배우로서 욕심이 있고,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데.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안 보여 내심 응원했던 것 같다. 구설수 말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펜서>를 보던 중 문득 생각했다. 이래서 다이애나비 영상을 ‘모두’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구나. 디테일한 버릇, 몸짓, 말투, 태도까지. 그 인물을 잘 모르는데도 이 사람 특유의 제스처와 걸음걸이, 시선처리까지 한눈에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걸 계산했다면 한계가 있었을 거다. 왜, 그런 캐릭터들이 있지 않은가. ‘나 지금 연기하는 중’ 임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캐릭터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덕분에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애를 쓴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한 인물의 감정선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서 연기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연출.
이제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보려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게다가 실화를 다룬 이야기는 내용을 알고 보아야 더 좋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스펜서>
개봉: 2022.03.16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6분
출연진: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노랗다. 이건 몇 가지 효과를 만드는데 1) 색 바랜 느낌을 준다. 2~30년쯤 지난 옛날의 분위기 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일이 1997년이니,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었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영화의 주요 키워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2) 따뜻하다. 부드러운 햇살이 주는 따스함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삭막하고 엄숙하다. 이미지 간의 대비가 극명한 영화다. 다이애나의 화려한 겉모습과 썩어 문드러진 속(마음, 혹은 신체적 장기)을 대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막한 시작이었다. 배경이 넓게 보이는 롱샷으로. 군용차를 아주 조그맣게 보여준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고요히 울렸다.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드론 같았다. 차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나오는 장면까지 말이다. 멀찍이서 비춘지라 인물 개개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로 한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표정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게다가 똑같은 군복 차림이라서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처럼 턱, 턱, 턱,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널찍한 주방. 철제 테이블이 즐비한 곳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말한다.
Clear.
군인들이 나가고, 요리사들이 들어온다. 새하얀 요리복을 차려입은 그들과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셰프의 지시에 맞춰 움직인다. 무슨 전쟁 중의 만찬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끼리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였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역할, 정해진 준비. 숨이 꽉 막히는 상황. 배경에 깔린 음악이 불안하고도 불편했다.
한편, 다이애나는 홀로 운전 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단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식당에 들어가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길을 잃은 다이애나. 그가 물리적으로 처한 상황은 심리적 상황과 동일하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딴에는 최선의 저항일 수도 있겠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만든 적. 사방에 널린 불편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아주 느지막이, 왕실에 다이애나의 차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위로 타이틀 <SPENCER>가 얹어진다. 현재 ‘다이애나’라고 불리는 그의 가문 이름, ‘왕세자비’에 가려진 그의 뿌리.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이애나’ 혹은 ‘프린세스’가 들어가던 것. 왕실에서의 삶을 이름으로 붙였지, 그의 과거가 담긴 패밀리 네임은 제목으로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펜서> 포스터를 보고서도 누구의 이야기인지 예측할 수 없다. 얼굴도, 익숙한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웅크린 상반신과 끝없이 펼쳐진 드레스 자락만이 마주하는 전부다.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지는 뒷모습.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다. 로비에서 몸무게를 재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다시 몸무게를 재서 얼마나 무게가 늘어났는지 확인한다. 잘 먹었다는 게 그만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의미인 것처럼. 다이애나에겐 곤혹일 수밖에 없다. 명분뿐인 자리에서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무시와 조롱을 묵묵히 견뎌야만 한다. 3일. 3일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되뇌는 수밖에.
이제 환각 같은 일들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제가 앉을 의자에 각자가 맞춰 앉은 식사 자리. 남편 찰스 공이 준 진주 목걸이를 성가시다는 듯 계속 만지작대다 힘으로 뜯어낸다. 자연히 진주들은 하나씩 떨어져 일부는 수프에 퐁당 들어간다. 다이애나는 그것들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딱 하나가 아니라 하나씩 여러 개를.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 보는 사람 눈에는 아름답지만,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겁기만 하다. 목을 감싼 모양새가 목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집’으로 명명해야 하는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상징물. 게다가 진주 목걸이는 찰스가 불륜 상대에게 먼저 준 것이다. 결국 다이애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 답답함. 뭐라도 뱉어내고 싶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얼마 먹지도 못한 수프가 뱉어낼 수 있는 전부다. 차라리 목을 꽉 막고 있는 진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무너진 그를 어떻게든 지탱하는 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들과 함께일 땐 다이애나가 밝다. 평소에도 몸에 밴 웃음기가 있지만, 표정에 생기가 돈다.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왕실을 비꼬는 상황극을 이어간다. 두 아들의 나이대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냥 행복했던 지난날. 자신의 진짜 집이 있던 때. 마구 달릴 수도, 웃을 수도, 있던 때.
두 아들은 현재에 머물면서 다이애나에게 과거를 느끼게 해 준다면, ‘앤 불린’은 말 그대로 과거의 사람이다. 온갖 누명과 추문을 뒤집어쓰고 끝내 사형당한 영국의 16세기경 왕비. 의아한 건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의 후손이라는 거다. 왜 자신의 선조가 아닌 앤 불린의 환영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
아마 자신과 비슷한 삶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둘러싼 헛소문과 음해를 알면서도, 끝내 사형대까지 몰린 사람. 찰스의 경멸 어린 눈빛, 낮잡아 보는 태도, 미친 사람 보듯 하는 왕실의 신하들. 이러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건 생각만큼 어렵다. 게다가 왕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죽게 된 선례가 버젓이 있으니, 압박감은 엄청날 테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존재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셈이다. 사행 집행일에’ 나는 목이 얇으니 금방 죽이겠다’고 농담한 앤 불린의 담대함. 표적이 되었음에도 당당한 자세. 앤 불린은 사형당했으나 불쌍히 여길 사람은 아니다. 왕실이 그를 죽인 건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크리스마스 만찬을 벗어난 다이애나는 자신의 옛날 집으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상태가 나빴다. 꼭 다이애나처럼. 위험한 곳이라고 왕실의 소령에게 알리고, 그는 웃으며 답한다. 썩은 계단을 밟아 죽는 건 다이애나의 선택이라는 듯이. 그곳에서 죽으려던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이 걸어오는 말을 듣고, 꿋꿋이 살아가기로 한다.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
다이애나의 옛날 집 주변에는 허수아비가 있는데, 아버지의 낡고 해진 재킷이 걸려있다. 다이애나는 언젠가 그것을 깨끗이 만들어 놓으라고 재단사 ‘매기’에게 말했다. 하지만 매기 또한 환영이다. 말끔하게 바뀐 줄 알았던 재킷은 여전히 더럽고, 매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앤 불린의 환영으로 생을 다짐한 다음 날, 환영이 아닌 진짜 매기가 나타난다.
환영과 실제의 차이는 화면 구도에서 보였다. 환영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매기의 눈과 몸은 관객, 즉 정면이 아닌 다이애나를 향하기에.
그러니까, 다이애나는 몰랐던 거다. 자신과 몇 없는 주변 인물들 사이를 갈라 치기 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도 있음을. 환영의 여성, 그리고 실존하는 여성에게서 힘을 얻은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꿩 사냥에서 빼내오기로 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평소처럼, 그러니까 ‘미친 것처럼’ 보이면 되었다. 꿩 사냥을 하는 한복판에 나타나 아들 둘이 자신에게로 올 때까지 이곳에 서있겠노라고. 역시나 찰스는 끔찍하다는 얼굴이다. 다이애나는 그 눈빛에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따스한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다. 영화 초반, 다이애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길과는 다르다. 그 길은 하나 빼고 모두 닫혀있었고, 이 길은 모든 방향으로 열렸다. 얼마나 열렸는가 하면 드라이브 스루로 치킨을 주문할 정도로. 그리고 이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한다.
스펜서.
모두가 그를 다이애나라고 칭하지만, 그는 자신을 스펜서라고 칭한다. 엄연히 다른 이름, 다른 존재로.
스펜서의 마지막 표정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파파라치, 교통사고. 이로써 마냥 좋은 결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해방감을 느낀 순간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허수아비처럼 왕실 한 자리를 지키고, 정해진 옷을 순서대로 입어야 하고, ‘좋은’ 겉모습을 꾸며내는 데에 급급한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얻었다면.
끝으로
매기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필요한 것.
Love 사랑
Shock 충격
Laughter 그리고 웃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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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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