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2025-06-05 14:50:19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퀴어>(2024, 루카 구아다니노) 시사회 리뷰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아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그렇게 다정하게만 대해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에게 내린 저주
리는 자신이 퀴어인 것은 ‘저주’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조각처럼 전시된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며 되뇌는 환상, “나는 퀴어가 아니야.”.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한다. “이제 갈게”는 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리는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곁에 있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퀴어,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의 ‘이상함’을 견디지 못한 채 고독 속을 버텨낼 뿐이다. 그리고 그 고독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 아편 중독으로 범죄가 되는 국가에서 도망쳐 살아간다.
육체적 접촉 행위가 아니라면, 타인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리는 성관계에 집착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술과 약물로 버텨낸다. 그 고독한 삶 속에서 리의 바람은 단 하나, ‘텔레파시’이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리의 꿈이다. 그래서, 신비의 약물 ‘야헤’를 찾아간다. 진정한 연결 찾아서. 그렇게 리는 유진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모든 비용을 대줄 테니 자신과 함께 야헤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고. 그리고 단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유진이 없으면, 완전히 무너질 준비가 된 리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린다.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둘은 야헤와 의식을 통해 ‘텔레파시’ 그 이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리는 알고 있음에도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유진의 고백을 듣는다. “나는 퀴어가 아니에요.” 유진은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알아.”라고 담담히 말하는 리. 리의 사랑은 일방적이다. 유진은 리를 사랑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부유한 중년 남성을 통해 스스로는 닿을 수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를 경험을 해보려는 것뿐이다. 여행을 제안한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첫날밤에서부터 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유진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에게 빠져든 건 그의 젊음도, 그의 찬란함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결국 리는 죽을 때까지 유진을 지켜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던 유진의 형체에 권총을 겨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리를 보며, 관객은 두 겹의 감정 사이 놓인다. 노인이 될 때까지 유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리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죽음을 통해 마침내 정서적 해방에 도달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영화는 말한다. 텔레파시를 넘은 진정한 연결, 그곳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도 고독과 공허는 결국 채워지지 못한다고. 그리고, 나 자신이 퀴어라는 감정은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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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말아톤리뷰#영화말아톤
이 영상은 예고편이 아닌 본편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모든 저작권 및 수익은 영화사,제작사,배우 등 원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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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몰락으로 세워진 바빌론,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이자 황금기였던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는 시기상 메이저 스튜디오*의 성립과 쇠퇴가 이루어진 1910년대 말에서 1950년대 말 중 무성영화가 사라지는 19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스튜디오별로 소속되어 이미지 관리까지 받으며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타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려면 스튜디오 간의 협의가 필요하며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스튜디오로부터 스카우트를 받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종의 소속사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하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많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저항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큰 격변기를 맞이한 때이다. 이 변화는 특히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에 화면에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의 찬사를 받던 배우들이 목소리 또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곤혹을 겪은 것이다. 이러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을 유쾌하게 풍자한 영화가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인데 당시 ‘영화로 보는 영화사’로 유명했던 영화인만큼 <바빌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1920~1940년대 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주도했던 영화사로 당시 제작, 배급, 상영 기구를 수직 통합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MGM, RKO, 20세기 폭스)와 상영기구를 갖지 못한 3대 마이너 스튜디오(유니버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콜롬비아)로 분류
영화는 시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실제 인물을 소재로 이용했다. 스타들의 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무성영화의 대스타였으나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스타 존 길버트(John Gilbert, 1897-1936)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결혼을 4번 했던 것부터 자신의 발성에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과 전쟁로맨스 <빅 퍼레이드>(1925)로 초기에 대성공해 관객의 비웃음을 샀던 첫 토키영화는 <위대한 밤(His Glorious Night)>(1929)의 상대역 이름은 ‘캐서린’이라는 점까지 실제 배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완벽히 매치되진 않지만 유독 눈물 연기에 능했던 클라라 보우(Clara Bow, 1905-1965)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배경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성적학대를 일삼는 할리우드의 조롱거리 아버지가 기본적인 배경이다. 클라라 보우와 다르게 추가된 설정은 알마 루벤스와 잔는 이글스를 떠올릴 수 있다. 두 배우 모두 1920년대 유명한 배우였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다른 장편에서 볼 없었던 디에고 칼바의 마누엘 토레스(매니)는 정확히 기존의 인물을 차용했다기보다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등장인물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주 배경시기였던 30년대를 뛰어 1952년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영화관에 앉아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에서 앞서 매니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유성영화, 유성영화’를 외치던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러한 설정들을 따라 스토리를 보자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스타가 되고 싶지만 끼는 있고 지속적인 스타의 자질은 부족한 넬리, 이미 스타가 되어 지속적인 스타의 삶을 원하지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 영화사 고위 직원이 될 만큼 사업 수완은 좋지만 사랑하는 넬리를 스타로 유지시키려는 매니가 중심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세 인물들의 두 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애정하는 대상이 있으며 본인 스스로가 장애물이라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기본적으로 영화를 애정한다. 또한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인물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원인이 본인에게 있으며 그 원인은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욕망과 사랑이라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배설’을 주요 메타포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시작부터 카메라에 묻혀가며 시점샷으로 코끼리의 변을 보여주며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배설’은 파티장에서 영화사 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맞는 소변,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브래드 피트의 뒤로 칸 안에서 거하게 나오는 방귀 소리, 고위층 파티장에서 넬리의 구토, 멕시코로 도망가는 길에 암살자를 마주한 매니의 소변으로 볼 수 있다. 코끼리의 변과 화장실의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배설욕이라면 파티장의 남성은 성욕으로 볼 수 있으며 넬리의 구토는 자신의 본능과 다르게 가식적인 부유층 앞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는 역겨움과 매니는 두려움에서 오는 본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 중에서 파티장을 주로 한 오프닝 시퀀스는 30분가량 지속된다. 하필이면 차에 코끼리를 싣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매니는 ‘할리우드’라는 세계에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과 겹쳐진다. 그리고 광란의 파티장 시퀀스가 끝나고 브래드 피트의 ‘마법과 같은 곳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영화 촬영장이 따라 나오며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대칭을 만든다. 첫 번째로 두 장소 모두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파티장은 키노스코프라는 극 중 영화사의 사장이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사실상 키노스코프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모인 곳이다. 연이어 나오는 촬영장은 잭 콘래드가 영화 촬영 중인 장소이기에 또한 영화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등장한다. 또한 각각 죽음이 연이어 나오는데 다음날 첫 촬영을 앞두고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가깝게 기절한 미성년자 여자 배우와 카메라 운반을 담당했으나 전쟁씬 촬영 중 사고로 사망한 남자 배우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넬리와 매니에게 할리우드에 진입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 인물들의 사건 발단이 되는 동시에 배경 설명을 하기에 과한 시간의 분배처럼 보이지만 ‘바빌론’에 투사하는 당시 할리우드를 설명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빌론은 욕망으로 세워졌고 할리우드 또한 욕망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욕망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개인과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이다. 감독의 최근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 모두 개인의 삶(본능)에 대한 고뇌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위플래쉬>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완벽한 드러머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갈등이라면 <라라랜드>에서는 LA에서 피아니스트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연인의 꿈과 사랑에서의 갈등이며, <퍼스트맨>은 좀 더 지나 첫 우주비행사로서의 도전과 이미 만들어버린 가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빌론>또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지만 개인의 애정과 연관된 본능을 다루며 영화사(史)까지 확장시켜 진행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는 더 심층적인 질문을, 영화 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를 연구한 벤 윌슨은 관능과 혼란스러움이야말로 메트로폴리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각 인물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각자의 본능을 통해 할리우드의 일원이 된다. 영화에 대한 애정들은 영화사의 형태로 남겨졌고 계속 발전하며 변화하는 형태를 요구하는 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욕망(본능)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몰락과 탄생의 반복하며 발전하는 구조다. 즉 더 중요한 일,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매니와 같은 개인의 욕망들이 이루어져 개인은 몰락했지만 어쨌든 영화사(史)라는 바빌론은 세워졌다. 영화는 매니가 1952년도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을 보며 지난날을 복기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매니의 삶(고전 할리우드)을 담아내기도 한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쇠퇴기(1946~1967년)의 영화기도 하다. 따라서 할리우드 시대의 끝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셈이다. 따라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바빌론에 비유한 것은 지리적인 의미의 메트로폴리스인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바빌론>을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라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위플래쉬>라고 생각한다. 극 중 잭이 개봉한 자신의 첫 토키영화의 관객 반응을 살피러 가는 상황에서는 크게 잭의 대사가 웃기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매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재연하는 잭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처럼 연출된 두 장면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잭이 도태된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잘못된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잭의 입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고전 할리우드의 역사,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스펙터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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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까고 쏘고 쑤시는 마블 지저스의 MCU 입성기!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까고, 쏘고, 쑤신다. 연신 쉬지 않는 구강 액션으로 촌철살인을 날린다. 대상은 바로 마블! 나락 끝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는 마블의 현 상황을 이렇게 깔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데드풀은 마블 저격수로 등장해 그 임무를 다한다. 자칭 마블의 메시아이자 마블 지저스라 말하며 이곳을 구원하러 왔다고 하는 그의 모습은 연신 자조적 웃음을 짓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울버린도 데려와야 하고, 폭스 영웅들과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도 소개해야 한다. 가끔 관객들과 대화도 하고, 재도약을 준비하는 마블의 빅픽처를 그려야 한다. 그래서 <데드풀과 울버린>은 보는 재미가 있지만, 때로는 그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데드풀은 이제 데드풀이 아니다. 어벤져스 면접 낙방 이후 상심이 커진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슈트를 벗고 중고차 딜러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산다. 여자 친구도 떠나고, 삶의 의욕이 없어진 그에게 남은 건 소중한 친구들. 이들과 생일파티를 즐기던 그는 시간 변동 관리국(TVA)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미스터 패러독스(매튜 맥퍼딘)는 울버린(휴 잭맨)이 죽고 난 뒤 신성한 타임라인을 누군가는 구해야 한다며, 웨이드에게 의미 있는 임무를 맡기려 한다. 단, 친구들이 있는 세계는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고민에 빠진 데드풀은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타임러퍼를 빼앗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는 살아있는 울버린을 데려오기 위해 타임라인 여행을 하고, 끝내 한 명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근데 하필, 동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술만 퍼마시는 최악의 울버린을 데려온 것. 자신의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던 패러독스는 TVA로 온 이 둘을 변종들의 쓰레기장이라 불리는 보이드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프로페서 엑스의 쌍둥이 동생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를 만난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전 시리즈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 이전 <로키> 시리즈를 통해 등장한 TVA와 마블이 지향하는 멀티버스 세계관을 통해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영역은 확장되고, 그로 인해 다뤄야 하는 것들도 많아졌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야기와 세계관이 더 커지는 건 당연지사지만, 마블에서도 아웃사이더 히어로였던 그에게 이번 확장은 그 자체로 새로움이자 큰 도전이다. 이는 인사이더, 즉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데드풀의 MCU 입성을 위한 통과의례로도 보인다. 초반에 어벤져스 면접 장면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여정은 데드풀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울버린도 동참한다. 울버린의 10번째 스크린 나들이라는 점에서 반가움은 크지만, 한편으로는 <로건>을 통해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캐릭터의 재등장은 우려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숀 레비 감독은 과감히 울버린을 합류시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캐릭터가 곧 20세기 폭스의 마블 히어로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울버린을 통해 디즈니에 흡수된 20세기 폭스에서 선보였던 히어로를 소환하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향수와 자극한다. 극 중 울버린은 쟈니(판타스틱 4), 엘렉트라, 블레이드, 갬블, X-23, 퍼니셔, 데어데블 (퍼니셔와 데어데블은 입으로만 전해진다.) 등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의 뒤편’과 비슷해 보이는 보이드에서 이들을 마주하며, 데드풀과 함께 안내자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산드라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려는 이들을 도와주며 과거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을 일부 씻어낸다. 더 나아가 과거 자신이 해내지 못했던 세상의 위기를 몸 바쳐 막아낸다.
울버린과 20세기 폭스의 히어로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히어로를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리얼 스틸> <프리 가이> 등 중요하고 인기 있는 이들이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자신만의 영웅담을 만들었던 숀 레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궤를 같이한다. 모든 이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 묻어뒀던 영웅들 또한 어벤져스 못지 않은 이들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안티히어로 데드풀, 다크히어로이자 뮤턴트인 울버린은 어벤져스가 아니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최대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벤져스 못지않은 영웅으로 보인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통해 이들은 함께 나온 적이 있는 탄생부터 함께할 운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휴 잭맨과 라이언 레이놀즈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겉모습은 물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데드풀과 울버린은 최적의 파트너다. 아웃사이더이자, 이기적 행동, 힐링 팩터(재생능력), 말 못 할 고통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 아래, 서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연합해 자신들에게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 자체가 큰 재미로 다가온다.
영화는 세계관 확장과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합류도 몸집이 커졌지만 기존 시리즈의 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핏빛 액션과 병맛 코미디, 19금 농담과 욕이 난무하는 콘셉트는 시리즈의 정체성이 되었는데, 감독은 데드풀과 TVA와의 초반 대결 오프닝 장면을 통해 이를 잘 보여준다. 엔싱크의 ‘Bye Bye Bye’에 맞춰 보여주는 버린의 멋진 살육(?) 율동 션은 디즈니에 인수되었어도 그 수위는 예전과 같다고 처음부터 못 박는 것 같다. 이후 보이드에서 설전을 벌이는 데드풀과 울버린의 대결, 카산드라와 한 판 대결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에서도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시리즈의 그 맛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전 시리즈의 쾌감이 이어졌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울버린의 가세와 멀티버스로 인한 세계관 확장에 따라 정작 데드풀다운 맛은 다소 떨어졌다. 특히 해야 하는 이야기가 많은지라 이번 영화에서 데드풀은 호스트 역할에 충실한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의 심리적 고통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그만의 과정과 노력이 등장하지만, 전편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여기에 20세기 폭스 히어로들의 등장도 향수를 자극하지만 <스피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느꼈던 감흥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멀티버스 활용 면에서도 다각도로 머리를 썼지만, 기시감과 피로감은 여전하다. 더불어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이스터에그의 높은 진입장벽, 임팩트가 약한 빌런 활용도 등 마블 영화에서 지적되었던 부분이 반복되는 건 아쉬움을 남긴다.
공교롭게도 영화를 본 당일 美 ‘2024 코믹콘’을 통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빌런 닥터 둠 역을 복귀,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고 공개될 <어벤져스>의 새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울버린(20세기 폭스 히어로 포함) 복귀는 단순한 이벤트성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기존 어벤져스에 데드풀, 울버린 등 뮤턴트들의 합세는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지켜봐야 할 듯. 그러고 보면 일명 마블 심폐소생술 프로젝트의 신호탄을 <데드풀과 울버린>이 한 셈인데, 그럼 별 수 있나! 봐야지! 참고로 쿠키는 두 개다. 하나는 감동 그 자체, 하나는 폭소를 자아낸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참여한 크리스 에반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점: 3.0 / 5.0
한줄평: 마블 지저스가 되기 위한 데드풀의 일보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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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말콤 맥도웰, 패트릭 마지, 마이클 베이츠, 워렌 클라크
시계태엽 오렌지 시놉시스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저택에 침입해 주인과 싸우고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에 검거된다. 살인죄가 적용되어 14년 형을 살게 된 ‘알렉스’. 좀 더 빨리 감옥을 탈출하고자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스탠리 큐브릭. 나는 이 이름을 들으면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질어질하다. 스릴러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영화 <샤이닝>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1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같은 시대를 뛰어넘은 SF 명작과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긴 감독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스탠리 큐브릭’은 충격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샤이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몇 달을 볼까 말까 고민했던 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이 느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역사를 남긴 인물이자 나에게 충격을 선사한 영화인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모든 사람들이 깨면 안 된다고 말하는 벽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차다 못해 산산조각 내버리는 영화 같았다. 1971년 당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만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나, 그에 닿기까지의 과정이 심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 나름 무던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보고 있기 조금 힘든 수준이었다. 우선 절대, 가족과 함께 볼 영화는 아니고... 누구랑... 아니, 그냥.. 혼자 봐야 할 것 같다.
범죄 본능을 가진 주인공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소년 알렉스다. 그는 밤이 되면 친구들과 가벼운 비행을 넘어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보통 이렇게 탈선을 한 주인공이 나오면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간단한 이유라도 있기 마련인데, 알렉스에게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에게 범죄란 본능이다. 폭행하고 갈취하고 추행하는 모든 파렴치한 행동이 그저 즐겁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이런 행동들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 알렉스는 거침없이 일을 저지르다 청소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로도 막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공범인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쓴 알렉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된다. 하지만 ‘갱생’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커다란 조직 안에서도 알렉스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악마라도 들은 거냐?”는 질문에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그는 악의 기질을 타고난 골칫덩이로 보인다.
그렇게 감옥에서의 지겨운 시간이 지나고 알렉스에게 조기 석방의 기회가 생기는데, 그 시점부터 알렉스가 말하는 ‘비극’과 새로운 폭력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영화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강력한 시각적 자극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가장 짧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이것밖에 없다. “미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다른 각도로 미쳤다.”
악과 정반대에 있는 순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흰색 옷을 쫙 빼입은 악마 같은 주인공, 둔탁한 무기들, 지독한 주인공의 눈빛과 시선을 옭아매는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생기 대신 음기가 가득한 배경까지. “이거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에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범죄 장면들은 보는 이의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며 주인공 알렉스에 대한 혐오도와 온갖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다. 배경이 좀 잔잔해지나 싶으면 알렉스가 날뛰고, 날뛰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 눈빛에 사정없이 갈려버리는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 의미로 띠용-하느라 눈이 쉴 틈이 없다.
본능을 뒤바꿀 교화에 대하여
자극적인 사건들과 함께 한숨을 푹푹 내쉬다 보면 어느샌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가닿게 된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초반부엔 살짝 역하게 느껴질 만큼 지독한 폭력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알렉스의 일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것과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우리가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엔 일어나는 것과 같은 루틴이자 본능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에 닿았을 때 알렉스의 폭력적 본능을 교화시킬 새로운 충격요법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본능을 뒤바꿀 새로운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갱생과 폭력의 경계선에서 타고난 본능과 강력한 충격이 부딪히며 이야기는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결국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본능을 바꾼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악의 본능을 타고난 자를 교화시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모두가 내면에 아주 작은 선이라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진실인지. 그리고 그 선을 충격을 통해 발현시킬 수 있는지. 특수한 상황에서 그 본능을 발현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지. <시계태엽 오렌지>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론 결국 변한 것은 없고 남은 건 폭력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스는 그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잠시 본능을 미뤄두는 것일 뿐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본능과 반대되는 가치(선)를 적극적으로 택하진 않는다. 차라리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하면 택했지, 진실된 내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폭력성을 개선하기 위한 교화 프로젝트는 결국 국가폭력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과물은 선인이 아닌 잘못 비틀려버린 악인 한 명뿐이다. 만일 알렉스가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14년 형을 마치고 출소했다면, 그가 진정한 선인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나는 타고난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모두가 선을 품은 채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반대되는 두 개의 본능은 끝없이 부딪힐 거고, 그때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폭력과 피해를 100% 막아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것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의 종류와 적절한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책하고 다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보여주는 폭력은 잘못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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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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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공간에 가득 담긴 유년의 설렘과 아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의 벨파스트. 날이 좋으면 골목에서 함께 춤추며 놀고, 해 질 녘엔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며, 거리의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아끼며 지내던 도시. 어느 날, 종교를 이유로 폭력 사건과 격렬한 충돌, 대립, 갈등이 시내에서 발생하자 9살 소년 '버디(주드 힐)'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런던에서 일하는 '아빠(제이미 도넌)'와 혼자서 육아를 책임져 온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는 정치, 경제적 이유로 이전과 달리 계속해서 싸우기 시작하고, 재미와 환상이 가득한 공간이었던 벨파스트의 골목에는 장벽이 세워지고 전과 다른 긴장감이 맴돈다. 그저 평범하게 하교를 가고 좋아하는 소녀와 데이트를 하고 가족과 함께 즐겁고 싶었던 버디의 일상과 공간은 그렇게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자전적 이야기인 영화 <벨파스트>는 아카데미 시상식 즈음에 개봉하는 작품답게 화려한 문구들로 수식된다. 당장 <벨파스트>는 제75회 영국 아카데미 영국 작품상을 수상했고, 제94회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러나 1시간 반 가량 밖에 되지 않는 흑백 영화가 관객과 비평가의 눈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었던 힘은 이처럼 화려한 수식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평화로운 일상과 예기치 않게 발생한 내전 상황을 담아낸 <벨파스트>의 진짜 힘은 당시 '공간'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9살 아이의 시선으로 차분히 담아내는 '진솔함'이다.
<벨파스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오프닝 시퀀스다. 브래너 감독은 현시점 벨파스트의 다양한 공간을 그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카메라에 담는다. 가장 먼저 현대적인 조선소 일대를 비춘 카메라는 '타이타닉 호텔'의 표지판을 거쳐 오래된 배 건조장의 흔적을 담고, 고풍스러운 건물과 다양한 유적지를 비춘 후 서서히 아기자기하게 주택이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을 비춘다.
이때 카메라는 주택가 거리마다 위치한 벽들과 그 벽에 그려진 강렬하면서도 상흔이 느껴지는 그림을 보여준 후, 거리를 가로막고 있는 그 벽 너머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흑백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태도와 접근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벨파스트라는 공간에 얽히고설킨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묻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오프닝에서 비추는 공간과 건물 하나하나가 벨파스트의 긴 세월을 모두 품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우선 가장 먼저 등장한 조선소는 벨파스트의 영광을 보여준다.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 정치, 경제, 문화의 최대 도시로, 라간(Lagan) 강을 끼고 있어서 조선업이 발달했다. 20세기 초에는 아일랜드 섬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고, 그 당시에 타이타닉 호가 벨파스트의 할랜드 앤 울프 사에서 건조되기도 했다. 반면에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peace line이라 부르는 벽들은 도시의 상처들이다. 1960년대 말 이후부터 가톨릭교도(친아일랜드) 주민과 신교도(친영국) 주민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서, 충돌 소지가 있는 거주 지역 사이에 장벽이 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벽에 그려진 정치적, 역사적 벽화와 조선소는 강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영화는 시작처럼 마지막도 벨파스트의 공간과 함께 한다. 클로징 시퀀스는 도시를 떠난 이들, 남은 자들, 그리고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벨파스트의 조선소를 비추면 끝난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1969년 벨파스트 거리마다 생겨난 장벽들과 그 장벽들로 인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도시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북아일랜드 분쟁'처럼 역사적인 네이밍이 아니라 벨파스트라는 단순하나 명료한 표현이 영화의 제목이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당시 거리의 모습과 분위기를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 오려는 브래너 감독의 노력이 유달리 절실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브래너 감독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아르테미스 파울>, <나일 강의 죽음>을 함께 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짐 클레이와 협업해 언덕과 시골, 부두와 맞닿은 벨파스트의 공간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도시에서의 촬영이 어려워지자 영국 햄프셔에 있는 ‘판버러(Farnborough)’ 국제공항의 활주로 끝에 세트를 지어 벨파스트를 실제로 옮겨오기도 했다.
이때 <벨파스트>는 공들여 그려낸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9살 소년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이를 알 수 있는 영화적 장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버디는 가족의 이야기를 언제나 부모의 대화를 훔쳐 듣거나 그들의 싸움을 몰래 보는 식으로 알게 된다. 또 당시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영국 내의 정치적 이슈, 또 역사적인 이슈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티비 속 뉴스를 통해 단순히 배경과 현황만 알려주며, 당시 격렬했던 북아일랜드 갈등의 원인을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간의 갈등으로 단순화한다. 교회에서 들은 목사의 설교를 버디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나, 영화는 버디에게 굳이 그 답을 찾지 않으려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덕분에 <벨파스트>가 모든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단순히 종교 갈등이라고 볼 수 없다. 영국의 아일랜드 식민지배가 길어진 결과 개신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이 영국 잔류를 희망하고, 가톨릭교도가 다수인 랜드인은 독립국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바라는 것이 기본적인 갈등 구도다. 달리 말해 영화는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종교 분쟁이 될 수도 있고, 식민 지배를 둘러싼 이념의 싸움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거대한 사건을 가장 미시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낸다. 처음으로 폭동을 마주하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의 구호와 외침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슬로 모션으로, 또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속에 버디의 반응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한다. 그가 인생 처음으로 맞이한 삶의 전환점을 강조한다. 이 장면은 잉글랜드로 이주하자는 부모님의 말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버디의 모습과도 이어진다. 그는 잉글랜드로의 이사를 격렬하게 반대한다. 사촌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학교에서 썸을 타고 있던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버디에게는 폭력과 갈등의 현장이 내전의 공포보다는 그저 일상의 파괴로 다가왔던 것이고, 이는 드라마틱하면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힘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벨파스트>는 유머만 조금 부족할 뿐,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또한 <벨파스트>는 흑백 연출을 통해 위기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가능한 진솔하게, 자극적이지 않게 담아낸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분위기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직관적으로 그들의 감정선을 느끼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도시의 역사에 불과했던 사건 속으로 잠시나마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한다. 비록 실제 세상과 다른 옛날 신문 기사 속 흑백 사진에서 오히려 많은 진정성이 느껴지듯이, 흑백이라는 시적인 효과로부터 더욱 현실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는 셈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평범한 가족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다 화려하고 서사시적인 느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던 브래너 감독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울 정도로 강인한 엄마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게 버디를 키우고, 런던에서 목수로 일하는 아빠는 함께 지내지 못하지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고 노력한다. 현실적인 유머가 빛나는 '할머니(주디 덴치)'와 반대로 낭만이 넘치는 '할아버지(시어런 하인즈)'는 버디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흑백 필름은 이러한 관계성에 담긴 진솔함을 그 어떤 방식보다도 효과적으로 끄집어내고, 강조해주는 듯 보인다.
이에 더해 순간적으로 등장하는 흑백 외의 색채는 그 진솔함에 깊이를 더해준다. 벨파스트의 풍경을 비추는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색채가 덧입혀지는 순간은 버디가 가족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순간뿐이다. 이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쌓아 올라가던 버디네 가족 간의 관계성과 감정선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족들이 다 함께 영화를 보는 장면 다음에 가족과의 이별을 그려내는 후반부는 눈물 흘리는 이 하나 없이도, 구슬프다.
그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사실 들쑥날쑥한 평가를 받아왔다. 본작에서도 버디가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 중 하나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 강의 죽음>은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평가는 미묘했다.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아르테미스 파울>은 극장 개봉도 하지 못한 채 디즈니+ 로 직행했다. MCU 페이즈 1에 속한 <토르: 천둥의 신> 역시 독립된 작품으로서는 긍정적인 평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인생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그 공간에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마침내 그 결실을 보는 듯하다. 즉, <벨파스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익숙한 명언이 1승을 추가하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삶은 공간이고 그 공간은 삶의 거울이다. 영화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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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마시고 떠나라…하나가 될 테니
왓챠 오리지널 예능 <조인 마이 테이블>(6부작)에는 만나서 주로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게 전부인데 예사롭지 않다. 그 발걸음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에 가려져 있는 다양한 국가의 이웃과 가족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이주민들은 대한민국의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왜 한국에 정착하게 됐을까. 대학 사제 간인 이금희 아나운서와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의 책을 쓴 박상영 작가가 진행자이자 관찰자로 나섰다. 이주민들이 각자 한국에 오게 된 사연, 자신들의 인생 음식을 담은 초대장을 받은 둘은 해당 이주민이 사는 지역을 여행하고 음식을 맛본다.
1화는 예멘 난민으로 2018년 제주에 정착한 이스마일씨가 주인공. 그는 이주민가정지원센터에서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는 예멘 식당에서 파흐샤(양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찌개)를 먹는다. 이스마일의 초대장을 받은 둘은 제주 무사책방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한다.
그저 걷고 보는 여행이 아니다. 둘은 방문한 지역의 역사성을 짚어내며 동시에 이주민의 고향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커피하우스에서 예멘 커피를 마시면서 2018년 자국 내전 때문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온 이야기를 꺼낸다. 박 작가가 "(예멘이) 단지 아랍국가라는 정보만 있으니까… 특히 예멘에 대해 사람들이 격렬했던 반응은 잘 몰라서, 우리가 아랍에 가진 선입견이나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컸던 것 같다"고 하자 이 아나운서는 "두렵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인간의 최우선적 목표는 생명과 안전이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당시 예멘 난민에 대해 환영하는 의견도 컸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배타적인 시선도 많이 있었다. 둘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 당시 예멘인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 논란이 된 일을 박 작가는 "난민에게 정보만큼 중요한 게 없다. 무전기처럼 생명줄인 것"이라고 잡아준다. 팩트체킹인 셈이다.
온평리 포구를 거닐면서는 제주 고, 양, 부씨의 시조인 삼신과 바다 너머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의 혼인 실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 아나운서가 "국제결혼의 시초?"라고 하자 박 작가는 "사실은 이미 우리 가정들이 다문화 가정"이라며 "(자신의) 충청도 어머니와 경상도 아버지가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다. (둘은) 같은 문화권이라고 볼 수 없다"라며 웃는다.
바로 여기에 <조인 마이 테이블>이 지향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태초에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수 없는 교류를 하고 만남을 주고받은 우리들이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국가와 피부색과 언어와 생각은 다르더라도 우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그렇기에 국가 경계 너머의 누군가를 단순한 몇 갈래의 시선과 선으로 감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진짜 중요한 건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포용력이라는 것을 이 예능은 조용히 역설한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몇 가지의 뉴스와 사건들로만 비쳤을 이주민들의 진짜 이야기가 이 예능을 통해 빛을 낸다.
2화에서는 박 작가가 국내 최대 이주민 밀집 지역인 안산에서 다양한 외국어 간판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글로벌에 와 있네요"라고 말한다. 3화에서는 이 아나운서가 BTS(방탄소년단)가 미국에서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한국어로 한 사실을 전하며 "미국 본토잖아. 미국 사람들이 주로 (방송을) 보는 건데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거야. 이제는 그런 시대인 거지"라고 한다. 세심한 관찰로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미 섞여 있었다.자칫 다큐멘터리처럼만 흘러갈 수 있었던 이 예능의 균형을 잡아주는 건 맛있는 음식 덕택이다. 보글보글 뚝배기에서 끓는 파흐샤, 프라이팬 기름에 척척 볶아진 나시고랭(동남아식 볶음밥),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몇 시간이나 푹 구워진 바비큐의 탐나는 비주얼과 침 고이게 하는 사운드는 이 예능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화에서 파흐샤를 먹던 이 아나운서는 방송 끝에 이렇게 말한다. "평화는 다른 게 아니고 음식이고 사랑이야. 음식하고 사랑만 있으면 평화야" 딱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모두에게 필요한 감수성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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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 가정방문 스릴러 '더 게스트'
피해라 이 영화
더 게스트
-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남은 집 낯선 여자가 나를 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일순간에 게스트 하우스로 변해버린 우리 집... 불편한 가정방문이 낳은 비극 이 영화 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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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아톤리뷰/소개]초원이는 커서 고니가 됩니다. 조승우의 지리는 연기력!
#말아톤#말아톤리뷰#영화말아톤
이 영상은 예고편이 아닌 본편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모든 저작권 및 수익은 영화사,제작사,배우 등 원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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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토라는 남자> 메인 예고편
이렇게 젠틀한 꼰대의 러블리한 모습에 이웃도 고양이도 홀리게 된다는 학계의 정설! 오토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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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상존재> 메인 예고편
인기 개그맨 유세윤은 14살의 어느 날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행동은 점점 사라졌지만 그 당시의 세윤을 목격한 가족들과 그의 지인들에겐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세윤에게 또다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은 점점 더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인기 개그맨 유세윤을 둘러싼 15일간의 기록! ‘그것’의 충격적 정체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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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몰락으로 세워진 바빌론,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이자 황금기였던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는 시기상 메이저 스튜디오*의 성립과 쇠퇴가 이루어진 1910년대 말에서 1950년대 말 중 무성영화가 사라지는 19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스튜디오별로 소속되어 이미지 관리까지 받으며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타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려면 스튜디오 간의 협의가 필요하며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스튜디오로부터 스카우트를 받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종의 소속사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하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많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저항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큰 격변기를 맞이한 때이다. 이 변화는 특히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에 화면에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의 찬사를 받던 배우들이 목소리 또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곤혹을 겪은 것이다. 이러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을 유쾌하게 풍자한 영화가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인데 당시 ‘영화로 보는 영화사’로 유명했던 영화인만큼 <바빌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1920~1940년대 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주도했던 영화사로 당시 제작, 배급, 상영 기구를 수직 통합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MGM, RKO, 20세기 폭스)와 상영기구를 갖지 못한 3대 마이너 스튜디오(유니버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콜롬비아)로 분류
영화는 시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실제 인물을 소재로 이용했다. 스타들의 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무성영화의 대스타였으나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스타 존 길버트(John Gilbert, 1897-1936)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결혼을 4번 했던 것부터 자신의 발성에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과 전쟁로맨스 <빅 퍼레이드>(1925)로 초기에 대성공해 관객의 비웃음을 샀던 첫 토키영화는 <위대한 밤(His Glorious Night)>(1929)의 상대역 이름은 ‘캐서린’이라는 점까지 실제 배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완벽히 매치되진 않지만 유독 눈물 연기에 능했던 클라라 보우(Clara Bow, 1905-1965)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배경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성적학대를 일삼는 할리우드의 조롱거리 아버지가 기본적인 배경이다. 클라라 보우와 다르게 추가된 설정은 알마 루벤스와 잔는 이글스를 떠올릴 수 있다. 두 배우 모두 1920년대 유명한 배우였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다른 장편에서 볼 없었던 디에고 칼바의 마누엘 토레스(매니)는 정확히 기존의 인물을 차용했다기보다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등장인물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주 배경시기였던 30년대를 뛰어 1952년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영화관에 앉아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에서 앞서 매니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유성영화, 유성영화’를 외치던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러한 설정들을 따라 스토리를 보자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스타가 되고 싶지만 끼는 있고 지속적인 스타의 자질은 부족한 넬리, 이미 스타가 되어 지속적인 스타의 삶을 원하지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 영화사 고위 직원이 될 만큼 사업 수완은 좋지만 사랑하는 넬리를 스타로 유지시키려는 매니가 중심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세 인물들의 두 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애정하는 대상이 있으며 본인 스스로가 장애물이라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기본적으로 영화를 애정한다. 또한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인물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원인이 본인에게 있으며 그 원인은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욕망과 사랑이라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배설’을 주요 메타포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시작부터 카메라에 묻혀가며 시점샷으로 코끼리의 변을 보여주며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배설’은 파티장에서 영화사 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맞는 소변,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브래드 피트의 뒤로 칸 안에서 거하게 나오는 방귀 소리, 고위층 파티장에서 넬리의 구토, 멕시코로 도망가는 길에 암살자를 마주한 매니의 소변으로 볼 수 있다. 코끼리의 변과 화장실의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배설욕이라면 파티장의 남성은 성욕으로 볼 수 있으며 넬리의 구토는 자신의 본능과 다르게 가식적인 부유층 앞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는 역겨움과 매니는 두려움에서 오는 본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 중에서 파티장을 주로 한 오프닝 시퀀스는 30분가량 지속된다. 하필이면 차에 코끼리를 싣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매니는 ‘할리우드’라는 세계에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과 겹쳐진다. 그리고 광란의 파티장 시퀀스가 끝나고 브래드 피트의 ‘마법과 같은 곳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영화 촬영장이 따라 나오며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대칭을 만든다. 첫 번째로 두 장소 모두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파티장은 키노스코프라는 극 중 영화사의 사장이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사실상 키노스코프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모인 곳이다. 연이어 나오는 촬영장은 잭 콘래드가 영화 촬영 중인 장소이기에 또한 영화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등장한다. 또한 각각 죽음이 연이어 나오는데 다음날 첫 촬영을 앞두고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가깝게 기절한 미성년자 여자 배우와 카메라 운반을 담당했으나 전쟁씬 촬영 중 사고로 사망한 남자 배우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넬리와 매니에게 할리우드에 진입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 인물들의 사건 발단이 되는 동시에 배경 설명을 하기에 과한 시간의 분배처럼 보이지만 ‘바빌론’에 투사하는 당시 할리우드를 설명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빌론은 욕망으로 세워졌고 할리우드 또한 욕망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욕망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개인과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이다. 감독의 최근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 모두 개인의 삶(본능)에 대한 고뇌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위플래쉬>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완벽한 드러머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갈등이라면 <라라랜드>에서는 LA에서 피아니스트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연인의 꿈과 사랑에서의 갈등이며, <퍼스트맨>은 좀 더 지나 첫 우주비행사로서의 도전과 이미 만들어버린 가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빌론>또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지만 개인의 애정과 연관된 본능을 다루며 영화사(史)까지 확장시켜 진행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는 더 심층적인 질문을, 영화 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를 연구한 벤 윌슨은 관능과 혼란스러움이야말로 메트로폴리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각 인물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각자의 본능을 통해 할리우드의 일원이 된다. 영화에 대한 애정들은 영화사의 형태로 남겨졌고 계속 발전하며 변화하는 형태를 요구하는 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욕망(본능)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몰락과 탄생의 반복하며 발전하는 구조다. 즉 더 중요한 일,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매니와 같은 개인의 욕망들이 이루어져 개인은 몰락했지만 어쨌든 영화사(史)라는 바빌론은 세워졌다. 영화는 매니가 1952년도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을 보며 지난날을 복기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매니의 삶(고전 할리우드)을 담아내기도 한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쇠퇴기(1946~1967년)의 영화기도 하다. 따라서 할리우드 시대의 끝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셈이다. 따라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바빌론에 비유한 것은 지리적인 의미의 메트로폴리스인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바빌론>을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라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위플래쉬>라고 생각한다. 극 중 잭이 개봉한 자신의 첫 토키영화의 관객 반응을 살피러 가는 상황에서는 크게 잭의 대사가 웃기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매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재연하는 잭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처럼 연출된 두 장면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잭이 도태된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잘못된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잭의 입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고전 할리우드의 역사,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스펙터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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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까고 쏘고 쑤시는 마블 지저스의 MCU 입성기!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까고, 쏘고, 쑤신다. 연신 쉬지 않는 구강 액션으로 촌철살인을 날린다. 대상은 바로 마블! 나락 끝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는 마블의 현 상황을 이렇게 깔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데드풀은 마블 저격수로 등장해 그 임무를 다한다. 자칭 마블의 메시아이자 마블 지저스라 말하며 이곳을 구원하러 왔다고 하는 그의 모습은 연신 자조적 웃음을 짓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울버린도 데려와야 하고, 폭스 영웅들과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도 소개해야 한다. 가끔 관객들과 대화도 하고, 재도약을 준비하는 마블의 빅픽처를 그려야 한다. 그래서 <데드풀과 울버린>은 보는 재미가 있지만, 때로는 그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데드풀은 이제 데드풀이 아니다. 어벤져스 면접 낙방 이후 상심이 커진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슈트를 벗고 중고차 딜러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산다. 여자 친구도 떠나고, 삶의 의욕이 없어진 그에게 남은 건 소중한 친구들. 이들과 생일파티를 즐기던 그는 시간 변동 관리국(TVA)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미스터 패러독스(매튜 맥퍼딘)는 울버린(휴 잭맨)이 죽고 난 뒤 신성한 타임라인을 누군가는 구해야 한다며, 웨이드에게 의미 있는 임무를 맡기려 한다. 단, 친구들이 있는 세계는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고민에 빠진 데드풀은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타임러퍼를 빼앗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는 살아있는 울버린을 데려오기 위해 타임라인 여행을 하고, 끝내 한 명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근데 하필, 동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술만 퍼마시는 최악의 울버린을 데려온 것. 자신의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던 패러독스는 TVA로 온 이 둘을 변종들의 쓰레기장이라 불리는 보이드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프로페서 엑스의 쌍둥이 동생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를 만난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전 시리즈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 이전 <로키> 시리즈를 통해 등장한 TVA와 마블이 지향하는 멀티버스 세계관을 통해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영역은 확장되고, 그로 인해 다뤄야 하는 것들도 많아졌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야기와 세계관이 더 커지는 건 당연지사지만, 마블에서도 아웃사이더 히어로였던 그에게 이번 확장은 그 자체로 새로움이자 큰 도전이다. 이는 인사이더, 즉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데드풀의 MCU 입성을 위한 통과의례로도 보인다. 초반에 어벤져스 면접 장면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여정은 데드풀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울버린도 동참한다. 울버린의 10번째 스크린 나들이라는 점에서 반가움은 크지만, 한편으로는 <로건>을 통해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캐릭터의 재등장은 우려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숀 레비 감독은 과감히 울버린을 합류시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캐릭터가 곧 20세기 폭스의 마블 히어로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울버린을 통해 디즈니에 흡수된 20세기 폭스에서 선보였던 히어로를 소환하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향수와 자극한다. 극 중 울버린은 쟈니(판타스틱 4), 엘렉트라, 블레이드, 갬블, X-23, 퍼니셔, 데어데블 (퍼니셔와 데어데블은 입으로만 전해진다.) 등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의 뒤편’과 비슷해 보이는 보이드에서 이들을 마주하며, 데드풀과 함께 안내자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산드라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려는 이들을 도와주며 과거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을 일부 씻어낸다. 더 나아가 과거 자신이 해내지 못했던 세상의 위기를 몸 바쳐 막아낸다.
울버린과 20세기 폭스의 히어로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히어로를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리얼 스틸> <프리 가이> 등 중요하고 인기 있는 이들이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자신만의 영웅담을 만들었던 숀 레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궤를 같이한다. 모든 이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 묻어뒀던 영웅들 또한 어벤져스 못지 않은 이들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안티히어로 데드풀, 다크히어로이자 뮤턴트인 울버린은 어벤져스가 아니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최대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벤져스 못지않은 영웅으로 보인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통해 이들은 함께 나온 적이 있는 탄생부터 함께할 운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휴 잭맨과 라이언 레이놀즈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겉모습은 물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데드풀과 울버린은 최적의 파트너다. 아웃사이더이자, 이기적 행동, 힐링 팩터(재생능력), 말 못 할 고통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 아래, 서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연합해 자신들에게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 자체가 큰 재미로 다가온다.
영화는 세계관 확장과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합류도 몸집이 커졌지만 기존 시리즈의 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핏빛 액션과 병맛 코미디, 19금 농담과 욕이 난무하는 콘셉트는 시리즈의 정체성이 되었는데, 감독은 데드풀과 TVA와의 초반 대결 오프닝 장면을 통해 이를 잘 보여준다. 엔싱크의 ‘Bye Bye Bye’에 맞춰 보여주는 버린의 멋진 살육(?) 율동 션은 디즈니에 인수되었어도 그 수위는 예전과 같다고 처음부터 못 박는 것 같다. 이후 보이드에서 설전을 벌이는 데드풀과 울버린의 대결, 카산드라와 한 판 대결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에서도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시리즈의 그 맛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전 시리즈의 쾌감이 이어졌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울버린의 가세와 멀티버스로 인한 세계관 확장에 따라 정작 데드풀다운 맛은 다소 떨어졌다. 특히 해야 하는 이야기가 많은지라 이번 영화에서 데드풀은 호스트 역할에 충실한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의 심리적 고통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그만의 과정과 노력이 등장하지만, 전편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여기에 20세기 폭스 히어로들의 등장도 향수를 자극하지만 <스피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느꼈던 감흥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멀티버스 활용 면에서도 다각도로 머리를 썼지만, 기시감과 피로감은 여전하다. 더불어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이스터에그의 높은 진입장벽, 임팩트가 약한 빌런 활용도 등 마블 영화에서 지적되었던 부분이 반복되는 건 아쉬움을 남긴다.
공교롭게도 영화를 본 당일 美 ‘2024 코믹콘’을 통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빌런 닥터 둠 역을 복귀,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고 공개될 <어벤져스>의 새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울버린(20세기 폭스 히어로 포함) 복귀는 단순한 이벤트성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기존 어벤져스에 데드풀, 울버린 등 뮤턴트들의 합세는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지켜봐야 할 듯. 그러고 보면 일명 마블 심폐소생술 프로젝트의 신호탄을 <데드풀과 울버린>이 한 셈인데, 그럼 별 수 있나! 봐야지! 참고로 쿠키는 두 개다. 하나는 감동 그 자체, 하나는 폭소를 자아낸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참여한 크리스 에반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점: 3.0 / 5.0
한줄평: 마블 지저스가 되기 위한 데드풀의 일보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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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말콤 맥도웰, 패트릭 마지, 마이클 베이츠, 워렌 클라크
시계태엽 오렌지 시놉시스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저택에 침입해 주인과 싸우고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에 검거된다. 살인죄가 적용되어 14년 형을 살게 된 ‘알렉스’. 좀 더 빨리 감옥을 탈출하고자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스탠리 큐브릭. 나는 이 이름을 들으면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질어질하다. 스릴러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영화 <샤이닝>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1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같은 시대를 뛰어넘은 SF 명작과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긴 감독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스탠리 큐브릭’은 충격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샤이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몇 달을 볼까 말까 고민했던 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이 느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역사를 남긴 인물이자 나에게 충격을 선사한 영화인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모든 사람들이 깨면 안 된다고 말하는 벽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차다 못해 산산조각 내버리는 영화 같았다. 1971년 당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만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나, 그에 닿기까지의 과정이 심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 나름 무던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보고 있기 조금 힘든 수준이었다. 우선 절대, 가족과 함께 볼 영화는 아니고... 누구랑... 아니, 그냥.. 혼자 봐야 할 것 같다.
범죄 본능을 가진 주인공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소년 알렉스다. 그는 밤이 되면 친구들과 가벼운 비행을 넘어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보통 이렇게 탈선을 한 주인공이 나오면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간단한 이유라도 있기 마련인데, 알렉스에게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에게 범죄란 본능이다. 폭행하고 갈취하고 추행하는 모든 파렴치한 행동이 그저 즐겁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이런 행동들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 알렉스는 거침없이 일을 저지르다 청소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로도 막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공범인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쓴 알렉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된다. 하지만 ‘갱생’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커다란 조직 안에서도 알렉스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악마라도 들은 거냐?”는 질문에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그는 악의 기질을 타고난 골칫덩이로 보인다.
그렇게 감옥에서의 지겨운 시간이 지나고 알렉스에게 조기 석방의 기회가 생기는데, 그 시점부터 알렉스가 말하는 ‘비극’과 새로운 폭력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영화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강력한 시각적 자극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가장 짧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이것밖에 없다. “미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다른 각도로 미쳤다.”
악과 정반대에 있는 순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흰색 옷을 쫙 빼입은 악마 같은 주인공, 둔탁한 무기들, 지독한 주인공의 눈빛과 시선을 옭아매는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생기 대신 음기가 가득한 배경까지. “이거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에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범죄 장면들은 보는 이의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며 주인공 알렉스에 대한 혐오도와 온갖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다. 배경이 좀 잔잔해지나 싶으면 알렉스가 날뛰고, 날뛰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 눈빛에 사정없이 갈려버리는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 의미로 띠용-하느라 눈이 쉴 틈이 없다.
본능을 뒤바꿀 교화에 대하여
자극적인 사건들과 함께 한숨을 푹푹 내쉬다 보면 어느샌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가닿게 된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초반부엔 살짝 역하게 느껴질 만큼 지독한 폭력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알렉스의 일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것과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우리가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엔 일어나는 것과 같은 루틴이자 본능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에 닿았을 때 알렉스의 폭력적 본능을 교화시킬 새로운 충격요법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본능을 뒤바꿀 새로운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갱생과 폭력의 경계선에서 타고난 본능과 강력한 충격이 부딪히며 이야기는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결국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본능을 바꾼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악의 본능을 타고난 자를 교화시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모두가 내면에 아주 작은 선이라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진실인지. 그리고 그 선을 충격을 통해 발현시킬 수 있는지. 특수한 상황에서 그 본능을 발현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지. <시계태엽 오렌지>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론 결국 변한 것은 없고 남은 건 폭력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스는 그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잠시 본능을 미뤄두는 것일 뿐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본능과 반대되는 가치(선)를 적극적으로 택하진 않는다. 차라리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하면 택했지, 진실된 내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폭력성을 개선하기 위한 교화 프로젝트는 결국 국가폭력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과물은 선인이 아닌 잘못 비틀려버린 악인 한 명뿐이다. 만일 알렉스가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14년 형을 마치고 출소했다면, 그가 진정한 선인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나는 타고난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모두가 선을 품은 채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반대되는 두 개의 본능은 끝없이 부딪힐 거고, 그때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폭력과 피해를 100% 막아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것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의 종류와 적절한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책하고 다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보여주는 폭력은 잘못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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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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