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3-11-27 12:15:40
두 번 다시 봄이 빼앗기지 않기를
영화 '서울의 봄' 리뷰
영화 '서울의 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저항시로 알려져 있긴 하나, 영화 속 내용에 대입해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줬다. 시대만 다를 뿐 우리가 빼앗긴 것이 비슷해서였던 것 같다.
'서울의 봄'은 10.26 사태 이후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찾아온 서울의 봄, 그리고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던 197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역사가 스포'이기에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고 이 영화가 어떤 스토리인지는 조금만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궁금했다. 김성수 감독이 실화 바탕으로 제작한 '서울의 봄'을 통해 관객들에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서울의 봄' 안에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살린 건 박정희 전 대통령뿐이다. 하지만 당시 사건에 책임 있는 인물들은 이름만 살짝 바꿨을 뿐 그대로 박제한다. 모두가 다 아는 전두광(황정민)의 비주얼이나 육사 동기이자 친구인 노태건(박해준)과의 대화에서 묻어 나오는 대표 어록들이 강렬하게 박힌다.
특히 김성수 감독과 '서울의 봄' 제작진은 전두광을 필두로 한 조직 하나회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 적과 아군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12월 12일 그날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또 엔딩에서 하나회의 단체사진을 박제해 서울의 겨울을 몰고 왔던 장본인이 전두광 한 명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들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축하기 위해 남겼겠으나, 후세의 사람들은 이를 머그샷으로 기억한다.
하나회뿐만 아니라 1979년 12월 12일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또 다른 이들도 조명한다. '별들의 잔치'임에도 장성들의 뒷목 잡게 만드는 무능함, 악몽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싸우려고 했던 이들을 정치색을 넣지 않고 드라이하게 그려낸다.
리뷰 풀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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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보건교사 안은영>, 진주인공은 젤리들
1. 말주변 2점: 말 많이 안 섞어본 티가 나요
2. 손재주 2점: 그렇다고 전투력도 좋진 않은데
3. 신체능력 3점: 비현실적인 것들을 볼 수 있더라도
4. 포용력 3점: 선생님도 사람이야
5. 고독 감내 5점: 외로움을 견디는 습관
말주변, 말 많이 안 섞어본 티가 나요
원작 소설에서는 은영이 학창 시절에 친한 동급생도 없이 지내다 만화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드라마에서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직장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묘사된다.
혼자 젤리를 보고, 혼자 젤리 문제를 해결하고,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러 다니던 보건교사 안은영.
그래서인지, 너무 솔직한 대답을 하거나 누가 봐도 어색한 거짓말을 하는 등 말주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지하실에 들어간 것을 한문 선생님에게 들켰을 때,
말주변이 좀 더 좋았더라면 "운동 연습하느라고요"보다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손재주, 그렇다고 전투력도 좋진 않은데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한문 선생님과 전통매듭을 공부하는 은영.
한문 선생님은 이런저런 모양의 매듭을 잘도 묶는데, 은영은 계속 엉키고, 엉망이 된다.
매듭 묶기에 연신 고전하던 은영이 원작 소설에서는 "나는 이런 것 말고 전투를 하는 캐릭터라고요"라고까지 말한다.음..... 그렇다고 전투력도 좋은 편은 아닌데. 체력이 남달리 좋은 인물은 아니니까.
신체능력, 비현실적인 것들을 볼 수 있더라도
아마 안은영은 아주 어릴 때부터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 남긴 젤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특수한 능력을 타고났으며, 퇴치 방법도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그러나, 신체능력은 일반인과 비슷하다.학창 시절에는 젤리와 맨손으로 전투(?)를 하다가 얼굴과 온몸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기 일쑤였고, 보건교사가 되어서는 각 반에 심폐소생술 시연을 하기 위해 인체모형을 낑낑거리며 들고 나른다.
슈퍼비전은 가졌지만, 슈퍼파워는 없는 주인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포용력, 선생님도 사람이야
선생님은 뭐든 듣고 이해해주실 거라는 학생에게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일축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유대를 끊으려 할 때는 '우리가 이 유대관계를 함부로 끊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라고 염려하는 한문 선생님과 달리, "아 몰라 썅 그냥 얼른 졸업해버려"라고 일갈한다.
은영의 털털한 화법과 행동으로, 선생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고독 감내, 외로움을 견디는 습관
새엄마가 싸준 고구마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던 소녀.
혼자 살며 학교에 출퇴근하는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친구와 작별할 때, 붙잡고 싶어 하는 모습을 통해 여전히 외롭고, 그 외로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로움을 즐기지 않지만, 참아내는 캐릭터.
다 커서도 외로움은 힘들지만, 습관처럼 견뎌내는 인물.
이 드라마 주인공은
안은영아닌 젤리들소설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챙겨보려는 시청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은영, 한문 선생님, 학생들보다는 젤리를 본다는 기분으로 보세요."
그러면, 감상 후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분명히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봤는데, 캐릭터 연구는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 드는 건 왜일까?
확실한 주인공과 개성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도 이 '캐릭터 연구소'콘텐츠를 뽑아내기가 어려웠다.
소설에 비해 인물들의 대사, 생각, 행동은 많이 각색되거나 축소되었기 때문이다.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인물 묘사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개 방식이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엔 항상 젤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은영이지만 눈에 밟히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젤리.
발 바쁘게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들이지만, 작품을 다 본 후에 남는 것은 젤리들.
가히 특수효과를 보기 위해 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소설에 비해 캐릭터의 매력은 절감되었지만, 다양한 젤리들의 색과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범내려온다 음감님의 싱크로율 높은 브금들
1화의 '두껍아 두껍아'가 신의 한 수였다.
에피소드와 너무 잘 어울리고, '이것은 한국 드라마임'을 알리는 듯 영어가 아닌 우리말 동요가 긴장감 넘치는 버전으로 깔려서 수월하게 몰입된다. 긴박함도 여실히 전달되었다.중독성이 있다고 알려졌던 나는안은영, 젤리 노래보다도, 슬픈 장면에 나오던 어느 음악보다도 두껍아 두껍아하는 이 배경음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멋진 연출이었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볼거리
미스터리하고 역동적인 자기소개 격의 큰 에피소드 하나가 끝나고 나면, 그 뒤의 에피소드들은 힘이 빠진다.
활동적이고 손에 땀을 쥐는 초현실 액션 SF를 기대하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니, 스케일이 비교적 작은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다.
옴 잡이, 정현이, 죽어서 찾아온 친구 등 생각해볼거리가 있고,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인물과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선 두꺼비 젤리 에피소드의 파급력이 정말 강했던 터라, 액션과 스릴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서 뒤로 갈수록 흥미도가 현격이 떨어졌다.
소설에도 없던 이야기들, 떡밥 회수해주실 거죠?
2020년 3분기였던가? 한창 유행하기에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접했고,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봤다.
그런데, 원작을 읽고 드라마를 감상해도 '대체 뭔 소린가,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소설과 다른 전개를 따르는 인물이 있고, 소설에는 언급이 안 된 이야기도 등장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부터 감상한 사람들은 이야기 전개에 불편함을 더 느꼈을 것이다.소설을 읽어도, 드라마를 재주행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스럽고 큼직한 떡밥들을 납득이 가게끔 회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니 이 작품도 시즌2를 기다린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가 보다.
속도를 맞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시즌 마지막 이야기에 다다르고,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끔 어중간하게 마무리를 지어놓는다.강아지들이 훈련받을 때 "기다려"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 이런 기분 아닐까?
이용권 재구매를 노린 시스템이라면 아주아주 영리한 방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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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트 어웨이
캐스트 어웨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흔히 말하듯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정 시간 잃어버린 남자가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덱스(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추락하면서 무인도에 떠밀려 살아난다. 그는 생존을 위해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활동하며 무인도에서 약 4년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뗏목을 묶어 섬을 탈출해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온다.
모두 척 놀랜드가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정작 척 놀랜드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좋아하는 한편, 죽은 사람이 살아온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한다. 척 놀랜드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여기서, 척 놀랜드가 홀로 무인도에서 살았던 4년의 시간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척 놀랜드가 깊은 우울증 또는 정신적 문제로 병원에 입원해 지냈다고 그려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인도의 생활은 척 놀랜드의 상상이거나 비유일 수 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상황은 보통의 사람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하지만 척 놀랜드는 무려 4년을 혼자 살아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척 놀랜드는 바다에 떠내려온 화물에서 배구공을 발견하고,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인격화한다. 배구공의 이름은 '윌슨'이다. 배구공을 만든 제조 회사의 이름이거나, 배구공 브랜드겠지만, 여기서 '윌슨'은 척 놀랜드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척 놀랜드는 항상 '윌슨'을 가까이 두고 생활한다. 그는 윌슨에게 다정하게 말하지만, 어느 때는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윌슨'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자신을 투사해 감정을 발산하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일 수 있거나 이미 정신병 상태에 있는 척 놀랜드가 '윌슨'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현상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뇌 활동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면, 척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매우 단순하면서 황량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척 놀랜드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서, 아침에 일어나 물을 찾아 마시고, 하루 두 끼 또는 세 끼를 위해 채집, 사냥하는 활동을 한다. 그에게는 '문명'에서 비롯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나 대상이 없는데, 그건 그의 뇌 활동 즉 정신의 상태가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암시 또는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4년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외부의 충격에 척 놀랜드는 깨어난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은 문명이 만든 흔적이었고, 그것은 무인도에 갇혀 있던 척 놀랜드에게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가한다. 섬에 갇힌 채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척 놀랜드는 문명의 조각을 보면서 탈출의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탈출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한다.
척 놀랜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섬을 탈출하는 과정은, 척 놀랜드의 정신이 놓인 상태 즉 우울증이나 정신병 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정상의 현실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도 바다 위에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바다는 인간의 의식, 무의식을 상징한다-극적으로 구출된다. 척 놀랜드는 다시 문명사회이자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척 놀랜드와 지금의 척 놀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애인, 친구, 동료들은 돌아온 그를 반겨주지만, 한편으로 그가 사라졌던 시간만큼 낯설고 당혹스러워한다. 깊이 사랑하던 애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동료들은 친절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멀게만 느껴진다. 척 놀랜드가 그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과 공간이 그들과의 유대를 낯설게 하고, 어색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척 놀랜드라는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척 놀랜드는 자신이 떠났던 '문명사회'로 다시 돌아왔지만, 스스로도 그 환경이 어색하고 낯설다. 불과 4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이전과 앞으로도 결코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청년 남성이 군대, 특히 미국에서는 실제 전투에 참가하는 분쟁지역의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낯섦'에 대해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불과 2-3년의 짧은 군복무를 하지만, 그때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는 평생 남게 된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군복무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척 놀랜드는 아마 정신적인 문제로 독방에 갇혀 있었을 수 있고, 그가 겪었던 4년의 시간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걸 바라보는 애인, 동료들의 시선을 척 놀랜드가 모를 수 없고, 그로 인해 감정적 단절과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척 놀랜드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알던 모든 사람과 그가 살던 곳에서 멀리, 아무도 알지 못하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그리고 그 낯선 곳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것은 척 놀랜드가 자신의 삶이 바뀐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깊은 고통과 슬픔을 내재한 채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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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
SYNOPSIS.
안정된 주거 환경을 꿈꾸던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작은 아파트를 마련한다. 하지만 선우가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다리까지 다치게 되면서 전적으로 희서가 대출금과 이자를 떠안게 되자, 둘 사이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집에서 쉬게 된 선우는 일자리를 찾지만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로 두 사람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PROGRAM NOTE.
한 동성 커플의 갈등이 한국 사회의 구조 안에서 발현되는 과정을 담은 <럭키, 아파트>는 한국 퀴어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며,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뛰어난 사회 드라마다. 제약회사 직원인 희서와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잃은 선우는 9년 차 동성 커플이다. 객관적으로 경제적 차이가 나는 상황이지만 서로 크게 티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아파트 구매 자금 대부분을 부담한 희서와 기여도가 거의 전무한 선우 사이 갈등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래층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커플의 간극을 더욱 키운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우가 아파트 가격 하락의 주범으로 찍히며 동 대표 등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반면, 직장에서 겪는 성차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희서는 커플 관계가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선우의 행동을 비판하고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처한다. <럭키, 아파트>의 또 다른 미덕은 갈등과 배제라는 이야기 속에 사랑과 연대라는 희망의 싹을 집어넣는 점이다. 아래층에 살던 할머니의 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친구분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무단침입까지 감행하는 선우는 “왜 그랬냐”는 희서의 질문에 “남 일 같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감동적인 대사는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우리는 매일매일>(2019) 같은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강유가람 감독은 첫 극영화에서도 놀라운 역량을 보여준다. (문석)
몇 년 전 <이태원>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이토록 섬세하게 연출하여 가져다 주는 영화라니. 강유가람 감독의 이름을 그렇게 알았고, 그 후 다큐멘터리 작품만 만나다가, 첫 극영화 연출작이라고 해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공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영화는 희서와 선우가 나란히 앉아 있는 푸른빛 자동차에서 시작하여, 이내 푸른빛 침구와 소파가 놓인 두 사람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머리 아픈 과제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기회여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고, 이 영화 속에도 집값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나 대출이자에 한숨 짓는 희서를 통해 그런 문제의 면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아파트에서 내게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안일에 필요한 도구들은 정갈하고 생활감 있는 위치에 표현되고, 운동 기구도 깔끔히 놓여 있으며, 설거지하는 선우 뒤로 걸려 있는 와인잔 같은 것들은 두 사람이 각자의 삶과 함께하는 삶, 일과 관계의 낭만까지 허투루 하는 구석 하나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집은 사는 사람을 드러내니까.
그런데 그 공간에 자꾸 퍼지는 냄새가 있다. 쓰레기를 비우고 박박 문질러 닦고 락스를 부어 봐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문제를 올곧게 직면하며 정공법으로 해결하려는 선우와, 적당한 불편함을 삼키면서 피할 수 있는 갈등은 최대한 피해 가려는 희서의 방법은 냄새를 두고도 계속 부딪게 된다. 시작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진작 지나간 일, 이미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논하고 있고, 우리 모두 가까운 사람과 싸워 봐서 잘 알듯 그건 필연적으로 '탓'이 된다. 쌓이는 쓰레기를 내어 버리고 바닥을 박박 문대어 닦듯, 좋지 않은 감정도 주기적으로 그래 주어야 하는데, 두 사람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자격: 더 필요한 자에게 더 문턱이 높은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공간인 동시에 거의 어떤 정체성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있다. 어느 동네 산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꼬리표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를 심어주는 '부적절한' 입주자를 걸러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이 단지 내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차별하면서,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말한다든지. 이들에게 아파트는 자본으로 거래한 재화보다는 오히려 봉건시대의 성직이나 성기사직처럼 거의 부여받은 자격에 가깝다.
주거지의 위치나 입지뿐 아니라, 주거지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자격을 요한다. 고공행진이라는 말을 쓰기도 머쓱할 정도의 매매 비용으로 인해, 노동소득만으로 매매할 준비가 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사회에서, 빚도 재산으로 인지하는 이 사회에서, 대출 또한 일정한 자격을 필요로 한다.
사실 고정비를 줄일 필요성이 더 절실한 이들에게 이 문턱은 더 높다. 빈곤은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 혹은 그 돈을 획득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 정도로만 얄팍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이 사회의 천민 자본주의는 너무 쉽게 문턱 아래 있는 사람을 업신여긴다. 게다가 빈곤 문제만 엮여 있지도 않다. 번듯한 직장에서 돈 잘 버는 희서는 물론, 대출 자격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선우도 배우자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이 문턱 앞에서 더욱 불리하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이 공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고 좋은 아파트 사는 게 잘못도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악의조차 없이, 타인에 의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인 이 영화 속 인물 다수가 그렇다. 명백한 성차별 혹은 업무상 클라이언트라는 이유로 갑을 관계처럼 대우하는 의사 앞에서 표정을 마음껏 굳히기도 어려운 희서, 배우자가 있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야 하는 사람들.
가진 자가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숱하게 부정당하는 순간들을 마주했던 인물이지만, 모르는 척 개인정보 유출이라도 해달라는 선우까지도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아파트처럼, 서열화되고 파편화되고 서로를 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유독 중첩되어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도 떠오르게 만든다. 꼭 동성애 커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질문은 자연스레 확장된다. 원가족과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혹은 그렇지 못하거나), 원가족이 찬성하지 않는 결혼으로 새 가정을 이루어 인정받지 못했거나, 1인 가정을 이루어가는 사람... 이 모두가 사후 장례나 청소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얄팍한 세상을 밟고 살아야 한다니. 최대한 모두를 촘촘히 보호할 망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만 보호하는 법으로 남겨두기엔, 그 자격 부여받지 못하거나 걷어차고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니까. 1인 가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가족의 형태와 개념과 사회적 합의가 많이 변해 가는데, 언제까지 저출생 염불만 외고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사랑: 남는 건 그저 소중하게 빛나는 마음뿐
사회의 자장에서 매우 투박하게 다뤄지며 변죽만 울리는 이 문제들을 영화는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이 문제와, 그 안에서 심화되어 가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뒤엉키며 영화는 점점 심란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람을 피로하게 혹은 절망하게 하지 않는다. 시의적절하게 작고 소소하게 기웃거리는 희망은 마지막에 뽀얀 빛을 발한다.
아무도 이 영화에서 법과 제도를 들어엎는 식의 해결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국적이 인도였다 해도, 요즘 인도 영화도 그 정도는 안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과 희망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을 가득 안겨준다.
희망이나 연대는 아주 거대한 단어 같지만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그것들을 보게 한다. 거드는 말 한 마디, 지키는 말 한 마디, 공감의 감탄 하나. 사소한 이웃의 대화. 그런 말이 놓인 자리라면 거기야말로 럭키, 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고 스러져 결국 낡은 사진으로만 남을, 그러나 그 사진이 낡아가도록 바라보는 마음. 다친 데를 감싸 주며 사는 게 결국 사랑일 것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말과 법도에 지치고 밀려 스스로 손톱을 뜯을 때, 손톱을 뜯은 사람을 타박하는 게 아니라 그 손톱을 뜯게 된 과정이 결국 타의에 의한 상처임을 함께 아파하며 감싸 주는 것.
상처는 언젠가 낫는다. 부상도 그렇다. 다만 남는 건 그저 사랑이다.
2024. 05. 02. 21: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157)
2024. 05. 04. 13: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323)
2024. 05. 09.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상영코드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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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배우의 얼굴만 믿고 설계한 것 같은 '설계자'
모델 겸 저승사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검은색 옷 입고 다니는 남자 영일(강동원)이다. 키 크고 얼굴 조막만 하고 잘생겼다. 누가 보면 모델 지망생정도 되는 사람일 것 같지만 아니다. 영일의 직업은 설계자다. 살인처럼 보일 수 있는 사건을 사고로 위장시키는 게 영일의 일이다. 혼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팀원이 있다. 중년의 여성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이다. 매번 찾아오는 의뢰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영일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의뢰를 해결하는 영일의 팀. 모든 사건을 설계자로서 좌지우지한다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영일의 팀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함과 동시에 우연한 사고로 꾸며달라는 요청이었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주영선(정은채)이다. 이 주영선이 누구인가?라는 점이 영일이 받았던 사건들과 의 특이점이다. 바로 주영선은 검찰총장 후보자의 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고위공직자가 되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건인 걸 직감하는 영일. 하지만 시선이 많다는 걸 오히려 역이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영일의 바람과는 다르게 일은 점점 꼬여간다. 설계자의 존재를 설계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영일의 정체. 이 모든 악행을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설계자>를 설계하다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것은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잘 구현됐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핵심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신선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건을 조작하는 주인공(영일)에 관한 영화다. 그럼 1차적으로 사건을 조작할 수 있을까/그렇지 않을까에 대해 서로 대립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지 않을까? 영화는 이 1차적인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가령 영화에서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많다. 이 선택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이 마무리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영화가 인물의 욕망을 단순하게 짠 편이라 영일의 시점만 쫓아가도 이야기의 표면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영화의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면이 많음에도 대략적으로라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까이 있고 그만큼 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재키(이미숙)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사실상 재키가 이 영화에 작동하는 모든 모티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티브? 바로 정서다. 이 영화에서 누가 설계자고 설계자 머리 위에 누가 있고 주인공 영일과 대결하는 흑막이 누구고 이런 거 별로 안 중요하다. 물론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본질이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재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재키의 동선이 영일에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사실상 영화의 플롯이 이것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천의 동선도 이해가 된다. 월천만? 점막과 이치현의 행보까지 영화가 같은 모티브를 인물에게 반복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거 놓치고 영화 보시면 솔직히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사실 안 놓치고 봐도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 그냥 단지 이 캐릭터들이 이 결론에 도달하는 걸 보기 위해 이 영화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른 관점에서 관람하시는 걸 제안하는 바다.
설계자 맞아?
이 영화의 두 번째로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구성 방식이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 치고 굉장히 불친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떻게? 어떤 관객들의 입장에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이게 뭐야?”라고 느낄 만큼 맥이 빠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반적인 플롯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교훈극이 아니다. 여러 사건을 연이어 배치시켜서 이 일들이 만든 정서를 영화의 핵심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말이 좋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지 이 단점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근원적으로 결함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 이유.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전적으로 다른 길만 골랐다. 상업영화의 큰 덕목이 뭘까? 기-승-전-결의 쉬운 플롯과 이에 따른 간단한 결과물이다. <범죄도시 4>나 <파묘> 같은 영화들이 작가로서의 개성을 포기하고 상업성을 택했다는 걸 많은 팬들이 기억할 것이다(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이 부분을 염두하고 싶었다면 그대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 <설계자>는 반대다. 사건들만 연이어 보여줄 뿐 결론을 애매하게 지어 영화의 혼선을 스스로 만든다. 대표적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을 보면 후반부 전개와 아예 통으로 어긋난 것 같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단면을 보여준 다음 그 인물이 그렇게 말하면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에필로그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앞에서 한 인물이 했던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실 그 캐릭터도 똑같은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안에 관객들을 속이는 속임수도 너무 많다. 하우저 TV(이동휘) 같은 캐릭터가 들어간 이유를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왜? 이 인물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인물이 아니니까. 이 인물을 대표하는 집단은 앞에 이미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 상에서 어떤 유효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이 캐릭터의 악행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리액션이 없는 수준이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병폐를 보여주기엔 연출이 생동감 넘치지 못했다. 물론 어떤 영화가 이런 할리우드식 전개를 쫓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상업영화라면 흔히 하는 말처럼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 설계자의 설계 치고 허점이 너무 많다. 이 허점을 하나하나 다 손꼽기엔 너무 많아 적기도 힘들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나만 써보자면, 영일이 기획하는 모든 설계에는 3자가 개입해선 안 된다. 어떤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는 시기도 새벽녘이 아니다(새벽녘이어도 그 근처에 사람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부 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단지 거기에 그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단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선 설계자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일이 설계자라는 것 치고 인간관계성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부실하다. 그나마 재키와의 관계가 특별한 것 말고는 이 사람의 용인술은 극을 이끌기엔 터무니없다. 설정을 뒷받침할 만 당위성을 영화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유. 이 영화에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은 굉장히 낡았다. 예를 들어보자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내용은 이 고위직의 후보로 임명되는 과정을 다 담았다고 보기엔 어렵다. 대통령은 뭐 하고 여, 야 정치인들은 무얼 하는 걸까? 법무부장관은? 이 인물은 본인의 직업인 검사를 잘 활용하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냥 단지 영화가 1차원적으로 줄거리를 전개하기 위해 해당 직업만 가져오니 인물의 개성도 납작해지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재키도 마찬가지고 월천도 마찬가지고 이치현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들을 둘러싼 가장 핵심 설정이 이 영화의 사건들과 계속 대치되는 감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약간 갈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담고 싶은 건지.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건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채로 기능적인 전개만 돋보인다. 각본 상에 있는 설정들이 상호 간에 충돌하며 '서로 틀렸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음향 믹싱이다. 플롯이 친절한 것도 아니고. 어떤 캐릭터는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이물감이 심한 영화에 음향까지 안 들리는 건 영화를 더 조악하게 만드는 요소다. 대표적으로 글쓴이는 탕준상 배우가 말하는 거 못 알아들었다. 이 인물 입에서 중요한 대사가 몇 있는데도, 그걸 강조하는데도 못 알아들었다. 탕준상 배우가 비교적 신인이라? 글쓴이는 강동원, 이미숙, 이종석 배우 같은 베테랑의 입에 나오는 대사도 못 알아들었다. 특히 강동원 배우가 맡은 영일 캐릭터는 감정선이 납작한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저음으로 대사를 전달한다. 믹싱 상태가 좋았어도 안 들린다는 사람 많을 텐데 그마저도 안 좋으니 잘 안 들린다. 그래서 글쓴이가 세 사람을 돌이킬 때 후반부 이미숙 배우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장면 말고는 “두두두두”만 생각난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싶고 장력이 팽팽하려고 해도 영화가 그럴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가 불친절하고 사건마다 개연성이 얼마나 헐렁한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설계자>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헐렁한 이야기 틀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배우가 있다. 바로 김신록 배우다. 이 영화의 조악한 믹싱에도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지 스스로 보여준다. 가령 이치현(이무생)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이 인물은 별다른 연출이 필요 없다. 그냥 말투와 눈빛처리만으로도 이 영화가 기획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대 역인 이무생 배우가 광기를 숨기는 캐릭터라면 이 인물은 광기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회화된 광기여야 적합하다. 그럼 목소리 톤을 높이는 대신 눈을 이용해서 몰아붙이는듯한 연기가 좋겠지? 이 배우는 그걸 그대로 구현한다. 우리가 알던 김신록 배우의 퍼포먼스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모습은 또 아니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난다는 점에선 기록할 만하다.
여전히 4번 타자
이 <설계자>가 개봉하는 현재까지 강동원 배우는 계속해서 패전 투수를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영화의 팬인 글쓴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비슷한 정도의 잘생김을 가지고 있는 누구는 광고모델로 전직했는데, 이 분은 아직도 영화배우잖아? 그래서 글쓴이는 현재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처한 입장이 궁금하다. 과연 좋은 시나리오가 오는데도 이런 선택만 하는 걸까 싶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대참패를 기록한다 하더라도 강동원 배우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강동원 배우의 퍼포먼스가 아쉽지도 않았다. 강동원 배우는 자기의 색을 깔끔하게 소화한다. 영화가 괴작이더라도 강동원 배우는 제 몫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강동원 배우가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를 표하고 싶다. 강동원이라는 이름 하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나 <인랑>, <골든 슬럼버> 같은 영화들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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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변해도 순간은 변하지 않기에
개강 후 처음 보게 된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 힐링 영화로 여러 번 추천을 받았던 영화이다. 원래 로맨스 장르의 영화를 잘 즐겨 보지는 않는 편이라 감상을 계속 미루다가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보게 됐다. 최근 몇 달 동안 선혈이 낭자하고 주인공이 고통을 받는 영화들만 보다가 따뜻한 시선의 영화를 보게 되니 오히려 더욱 처연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아침에 잠에서 깬 한 남성(조엘)이 그 날 출근을 갑자기 그만 두고 몬톡행 열차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엘은 열차 안에서 파란 머리를 한 여자(클레멘타인)와 만나 대화를 하고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어 빙판 위에서 밤을 샌다. 아침이 되어 차 안에서 여자를 기다리던 남자의 장면은 갑자기 차 안에서 울고 있는 남자로 바뀐다. 알고보니 둘은 이미 서로 사랑했다가 헤어진 사이었고, 서로에 대한 기억을 견딜 수 없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의뢰했다. 기억을 지우는 도중 처음에 너같은 사람을 지우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던 조엘은 기억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죽어도 잃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기억 속 첫 클레멘타인의 존재마저 사라지려 하던 찰나, 조엘은 몬톡이라는 역을 머리 속에 깊게 새기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몬톡행 열차를 타 클레멘타인을 두 번째로 처음 만나게 된다.
이 영화 속에는 현재의 장면 사이에 꿈과 비슷한 형태의 과거가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차 안에서 우는 조엘의 모습을 보게 되는 우리는 '사랑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이별하게 된 상황이구나~'라고 처음 받아들이게 되지만, 사실 이는 가장 먼저 삭제될 최근의 과거일 뿐이다. 영화의 이러한 구성은 우리에게 현재와 과거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스스로 쌓은 순간들에 기대며 살아가고 있으며, 엔딩 이후 두 연인이 재결합하더라도 결론이 같을 수 있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본 우리는 오프닝과 완전히 똑같은 후반부 장면에 이르러서 안타까움, 안도, 불안함, 복선에 의한 카타르시스 등이 합쳐진 복합적 감정을 느낀다.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엘의 기억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기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우리는 순간을 각자의 눈으로 어떻게 저장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영화적으로 정말 재밌게 충족시켜준다. 흥미로운 소재를 찍는 더욱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연출(기억을 지우는 회사, 무너지는 공간 등)이 이 영화에 독창성을 부여하고 있다.
기억과 관련된 소재의 영화는 많았지만, 자신의 기억에 상처받은 사람도 납득이 가능한 따뜻한 메세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훌륭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아무래도 후반부 - 엔딩일 것이다. 만약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녹음을 듣고도 눈과 귀가 멀어 조엘을 사랑하겠다고 말했다면 이 영화는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그냥 재밌는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 만약 떠나는 클레멘타인을 조엘이 붙잡지 않았다면,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씁쓸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안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마지막 대사로 '아닌 건 아닌 것'이라는 우리의 이성과 '그래도 다시 한 번'이라는 우리의 감성을 동시에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이는 맹목적이지도, 시니컬하지도 않은 멋진 메세지이기에 공허하게 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에 고마움을 느꼈다. 위에 적은 두 생각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후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라고 제안한다. 사랑을 신성화하지도 격하하지도 않고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면 된다고 말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 동시에 영화도 나를 보고 있었다. 작중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라는 대사처럼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곧 우리도 사라진다.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잘못을 저지른 순간을 끝없이 뒤돌아보며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붙잡고 늘어져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순간이라는 건 만들지 않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것, 우리를 둘러싼 세계, 우리 자신까지도 끝없이 변하고 추해지기도 하며 끝에 가서는 소멸한다.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알 수 없고 얼마나 살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들만큼은 과거 속 그 자리에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한 순간 순간은 인생 전체보다도 더 중요하고 고귀하다. 만약 영원히 반복해도 후회가 없을 순간을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주변의 모두가 뭐라고 비난하더라도 자신에게 당당할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흐름으로 인해 생긴 후회들,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 변해서 다르게 기억되는 순간들 모두 그 당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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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하다고 하기엔 그저 웃긴
공포영화, 그닥 좋아하지도 않아 영화관에서 볼일은 없는 장르라 여겨왔다. 그런데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했던가. 동행자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보게되었다. 결말은 처참했지만.
1. 서론이 너무 길다
이 영화 처음부터 무섭진 않다. 오히려 가족갈등을 보여주느라 한 15분가량을 질질 끈다. 무서운 장면 1도 없이. 아, 언제쯤 무서워지는건가 싶을 때 그제서야 악령이 등장한다. 그런데 무섭긴 한데 뭐랄까 임팩트가 없는 공포랄까. 그저 놀래키는 데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놀랐으니 이 영화의 필요가치는 끝난걸까.
2. 간헐적 공포에 가족애 한 스푼
이 영화의 소재는 유체이탈이다. 유체이탈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유령들에게 쫓긴다는 것이다. 흥미롭지만 대단히 충격적이지는 않았고 모든 장면이 예상가능한 떡밥인데다가 '나 지금부터 너 놀래킬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하라'고 대놓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항상 눈감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언제 놀래킬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오히려 공포영화 쪼랩인 나는 보기 편했던 영화였다. 공포영화 만렙이신 분들은 이런 포인트들이 보기 불편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모든 떡밥 장면들이 가족애로 귀결되는, 가족애로 가득한 휴먼 드라마였다고 해야 맞다. 뜬금없지만 주인공 아들이 그려낸 과거 아버지의 모습이 약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속 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3. 모든 것이 애매한, 그래서 더 웃긴
공포영화라면 사실 무서워야 하는데 오히려 웃긴 포인트들이 많았다. 결말을 가족애로 덮어버리니, 이제 좀 끝나나 싶으면 신파가 공격해 와서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가뜩이나 심각한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코미디인 게 이런 걸까.
심지어 어떤 관객 분은 영화 막판에 호탕하게 웃으시더라. 그 분덕에 공포영화 관람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공포영화가 코미디로 기억된다니,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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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영화정보
제작사: 20세기 폭스, 마브 스튜디오, 클라우디 프로덕션
배급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매튜 본
제작: 매튜 본, 데이빗 리드, 애덤 볼링
각본: 매튜 본, 칼 가이듀섹
원안: 매튜 본
출연진: 해리스 디킨슨, 레이프 파인스,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자이먼 혼수, 스탠리 투치 외
음악: 헨리 잭맨
개봉일자: 2020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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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독점 공개 영상
[2021년 7월, 왓챠 독점 공개]
올 여름, 살인의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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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악몽의 멀티버스' 60초 예고편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극강의 몰입도, 멀티버스의 악몽이 펼쳐진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악몽의 멀티버스’ 60초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