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3-11-21 16:32:56
긍정의 농도, <어나더 라운드>
인생을 사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해.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2020
덴마크 | 116분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긍정의 농도, <어나더 라운드>
<어나더 라운드>는 '결핍'에서 출발한다. '부족하다', '사라졌다', '무언가가 없다'란 의미로는 결핍을 설명할 수 없다. 결핍은 단순히 뭔가를 잃었다며 슬퍼하는 감정 따위가 아니다. 인간에게 결핍은 갖고 있던 것을 자기 자신을 포함해 타인에게 빼앗겨 더는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마치 이미 내뱉은 숨을 다시 빨아들이려는 시도와 같달까. 분명 있었지만 없고, 당연하다 여긴 마음을 질책하는. 자의든 타의든 '나'를 지탱하던 힘이 사라진 자리를 상실로 채우는 게 바로 결핍이다.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따라 삶의 과정과 끝이 달라진다.
여기 삶의 의미를 잃은 중년 남성 사인방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선생님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학생들의 불량한 수업 태도보다 선생님으로서 가져야 할 카리스마와 수업 역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업적인 문제는 사실 부가적인 사항에 속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마르틴(매즈 미켈슨)과 체육 선생님인 톰뮈, 심리학 선생님 니콜라이, 음악 선생님 페테르가 가진 진짜 결핍은 '나'란 껍데기 안에 숨긴, '삶의 가치관과 신념이 명확했던 과거를 과거로 둔 자아'에 있다.

그 자아는 기본적으로 지루하다. 아니 열정도 자존감도 차갑게 식어 지루해졌다.
마르틴의 아내는 그에게 "처음 만났을 때의 마르틴은 아니야"란 말로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가끔 열정이 없어 보인다는 학생의 말에 바로 받아치지 못한 건,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한테도 항변하지 못한 이유와 다를 바 없다. 마르틴의 결핍은 무관심과 현실 타협의 교집합으로 탄생했고, 스스로 가정에서조차 웃음 한 번 짓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지루하다는 말을 넘어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한다. 그리고 욱한 마음에, 될 대로 되란 심보로 술병을 학교에 반입한다. 니콜라이의 생일날 들었던,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이론(스코르데루의 가설)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서.
마르틴은 술 한 모금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한 채, 수업에 들어간다. 결과는 대만족.
180도 달라진 마르틴에, 친구들은 물통에 물이 아닌 술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들은 분명한 목적과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을 명시하며 얼토당토않은 실험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가치 있는 연구'로 탈바꿈한다. 삶을 다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의미부여도 빠지지 않는다. 철없는 어른들의 일탈이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젊음의 상징(호수 경기)과 대비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을 족쇄라 탓하는 전자와 인생 자체를 열정과 생기로 가득 채운 후자는 다르니까.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건넨 젊음이란 키워드는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영화가 제시한 젊음은 첫 장면에서부터 명확히 풀이된다.)

이성의 끈인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기와 변화의 주인공, 술병을 옆구리에 낀 채로 세상 당당하게 학교와 집에 출근하는 네 명의 중년 남성. 재미있고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친 삶을 살게 된 이들은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다. 오래전부터 남편이 가족에게 마음을 닫았다고 생각했던 마르틴의 아내 역시 마르틴의 입가에 도는 웃음에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마르틴은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가족에게 무심했으며, 오랫동안 외로움과 무력감에 젖어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통해서 말이다.
육아의 덫에 빠진 니콜라이, 이혼한 뒤 살아있기에 사는 톰뮈,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페테르까지, 회의감과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절여있던 친구들은 다시 널뛰는 심장박동에 취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역시 '연구를 위한' 정직한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 음주를 건강한 자아 찾기를 위한 실험으로 속인 학교 선생님들의 만행은, 결핍을 채우겠단 목적 아래 방향을 잃고 한 명씩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더 큰 결핍을 만들어낸다. 마치 모든 걸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새로운 자극이 위험한 칼날이 되는 순간.
<어나더 라운드>는 네 명의 인물이 기존에 각자 갖고 있던 결핍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궁극의 카타르시스와 진정한 해방을 경험하기 위해 농도 측정기를 버리고 술을 제한 없이 마셨던 친구들은 알코올 중독이란 기로(현실)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그토록 끈끈하게 뭉쳐 진행했던 연구는 주변인들의 신뢰와 함께 끝없이 하늘 위로 비상하던 풍선이 펑! 터지면서 막을 내린다.
결핍이 강력한 독이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괜히 우리가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가끔 외롭고 무력해 우울하다', '밥을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와 같은 철학적이면서도 순식간에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감정적인 말에 익숙할까. 중요한 건, 너무 늦지 않게 원래 자신의 트랙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정확히 0.05%를 유지했던 날을 되짚어보며 무엇이 자신들을 다시금 힘차게 일어나게 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 '결정적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사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말 0.05%의 술기운이었을까. 용기, 희망, 설렘, 흥분, 재미, 벅참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수많은 날것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렸던 삶의 목적, 나아가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꿈일 수도 있다. 젊음은 꿈이며 사랑은 꿈의 내용이란 그의 말은, 누구나 언제든 젊음을 가질 수 있단 얘기니까.
우린 늘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책임진다. 결정과 선택이 출발점이라면 책임은 종점이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종점. 그렇기에 책임지는 일은 성장한다는 의미이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희망을 뜻하며, 더 큰 의미로 삶의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웃집 앞에서 이마에 피를 흘린 채 잠에서 깬 마르틴과 침대에 어린 아들처럼 오줌을 싼 니콜라이가 마주한 책임은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 톰뮈에게 주어진 책임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추락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톰위가 추락을 멈추는 법을 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톰위의 자살은 알코올 중독자의 어두운 미래 중 한 예로 극단적이며 자극적이지만, 영화가 건넨 표면적인 메시지에 불과하다. 비슷해 보이는 인생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누군가의 결말은 될 수 있지만, 그게 나인 이유는 없는 것처럼.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에게 용서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고백한 마르틴의 용기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건 <어나더 라운드>가 준 0.05%의 진짜 힘이다. 우아하면서도 격정적인 그의 춤이 완벽한 노래와 만나 한 편의 짧은 뮤지컬로 펼쳐질 때 우린 마르틴을 감싸고 있는 긍정의 농도가 딱 0.05%란 사실을 눈치챈다. 각자에게 필요한 긍정의 농도가 있으며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을 제법 풍요롭게 할 거란 기분 좋은 예감까지 더하고 나면, <어나더 라운드>의 엔딩은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결핍은 허무와 고독을 동반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오기를 가슴 깊숙이 불어넣어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게 만든다. 완생이란 목표를 가진 인간을 끊기지 않는 트랙에 던져놓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린 이 모든 질주가 '선택과 책임의 쳇바퀴'란 사실을 깨닫고,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마지막 기회란 말은 없다. 잃은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고, 얻은 것을 언제든 잃을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에게만, 결핍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무기로 기능할 것이다. 긍정의 농도를 조율하듯이.
<어나더 라운드>는 알코올 중독에 한정된, 머물러 있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좋은 영화다.
멋진 인생, 멋진 밤. 이 얼마나 멋진 여정인가. 남들이 하는 말은 집어치워.
난 지금 너무 황홀해. 왜냐면 난 지금 터지고 있으니까.
-'What A Life'_Scarlet Pleasure (마지막 엔딩 삽입곡)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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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만큼은 아니어도 능력 좋은 동생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1341만 관객을 동원했던 형('베테랑')만큼은 아니지만, 동생('베테랑2') 또한 능력이 좋다. 이번 추석 개봉영화로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9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해치를 쫓는 내용이다.
'베테랑'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듯, 오프닝부터 유쾌한 티키타카가 펼쳐진다. 강력범죄수사대가 도박판을 뒤엎는 모습을 그리며 여전한 합을 선보인다. 코미디와 액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꽉 찬 시퀀스로 관객의 마음을 정신없이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9년 사이에 서도철이 겪은 세월의 흐름을 담아낸다. 임산부를 죽였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전석우(정만식)의 신변을 해치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해치를 추적한다. 그 사이에 사이버 렉카들의 가짜 뉴스로 피해 입은 이주민 여성을 돕는 아내 주연(진경)의 부탁도 들어줘야 하고, 학교폭력에 휩쓸린 아들 우진(변홍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서도철의 피로감이 피부로 와닿게 표현했고, 관객들은 이를 보며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전작처럼 오늘날 사회적 문제들을 '베테랑2'에서도 짚어낸다. 사이버 렉카, 학폭 문제 등이 다뤄진다. 인기와 화제를 등에 업고 있는, 선악을 불분명한 실체 불명의 빌런과의 싸움 또한 시의적절하다. 이를 통해 옳고 그름이 불분명한 시대, '정의로움'이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류승완 감독이 전작에 비해 "'베테랑2'는 다크 초콜릿"이라고 정의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보인다.
다만, 무게감이 느껴지다 보니 1편처럼 오락영화로 즐기기는 어렵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관객들이 딜레마에 갇힐 수 있어 형사들 관점에서 응원하기가 애매하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이들을 표적 대상으로 삼으며 사적제재를 가하는 해치를 안타고니스트로 설정하여 장르적 쾌감을 충분히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단점이 크게 거슬리는 편은 아니며, 무난하게 넘어갈 수는 있다.
류승완 감독의 장기인 액션의 장점이 도드라진다. 마지막 아트박스 앞 액션 시퀀스까지 인상적인 장면들을 여럿 만들어냈던 '베테랑'의 속편답게 강렬한 음향 효과와 춤추듯 리듬감이 느껴지는 액션 연기가 어우러져 금세 눈과 귀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빗 속 액션장면은 그간 본 적 없는 액션 디자인이 눈을 즐겁게 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전달된다.
9년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황정민은 9년 전에 봤던 서도철 그대로였다. 이번 편에 새롭게 합류한 정해인은 그동안 매력으로 어필했던 호감형 이미지와 미소 속에 감춘 서늘함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비릿함까지 갖추며 이목을 끈다. '어이가 없네' 형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지만, 정해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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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음속 우주, 그 황홀한 다채로움의 단면
7★/10★
러시아 출신의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파리 외곽의 허름한 가가린 아파트. 이곳에 흑인 청년 ‘유리’가 산다. 어릴 때부터 가가린 아파트에서 살아온 유리는 자연스레 우주 비행사를 꿈꾸었고, 아파트는 유리의 꿈과 현실을 동시에 지탱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런 아파트가 안전 점검에서 기준에 미달해 철거가 결정된다. 사실 유리는 이전부터 친구와 함께 아파트를 수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안전 점검 평가 점수를 높여 가가린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유리가 아무리 또래 청년들을 훌쩍 앞지르는 기술과 재능, 열정을 가졌더라도 가난한 흑인 청년이 아파트 철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리의 절친한 친구를 비롯하여 주민들은 하나둘씩 가가린 아파트를 떠난다. 유리도 어릴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그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해, 슬픔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유리는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그러나 유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텅 빈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우주선을 꾸민다. 철거를 결정한 사람들보다 가가린 아파트를 훨씬 더 잘 아는 유리가 만든 아지트는 비밀스럽고도 안락하게 유리의 삶과 꿈을 보듬는다.
유리가 구축한 자신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우주선’은 유리뿐 아니라 다른 소외된 자들이 연결되는 장소로도 기능한다. 마약 판매상, 이주자 2세 여성 등 파리가 품지 못해 떠도는 자들이 유리의 우주선에서 관계 맺으며 국가와 사회 바깥의 삶의 가능성을 잠시나마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취약한 토대로 인해 늘 불안정하다. 결국 유리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끝내 허물어지고야 마는 아파트에서 유리가 그토록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가린 아파트에 살면서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키운 가난한 흑인 청년 유리는 그 추운 곳에서 홀로 남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유리가 창조한 세계를 영화로나마 엿본 자들은 어떻게 해야 또 다른 ‘유리의 우주선’이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파니 라에타르와 제레미 트로윌은 굉장히 영리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유리의 세계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음악과 장엄한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허름한 가가린 아파트와 유리가 만든 우주선을 배경으로 말이다. 철거를 앞둔 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가난한 청년, 그리고 우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가가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유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에 진지했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라는 뜻의 우주는 저 먼 하늘에만 있지 않다. 유리가 그러하듯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있다. 〈가가린〉은 그 황홀한 다채로움의 단면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유리의 우주선이 보낸 SOS 신호가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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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의 기준은 흐릿하고 희망은 또렷하다
도대체 그 '성공'이 뭔가요?
흔히 ‘성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반짝이는 야경을 가진 도시 대게 이런 ‘세련’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이런 성공 판타지에 취해 언어 공부, 스펙 쌓기, 자격증, 대외 활동 등등 바쁘게 살다보면 정작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거였나 하는 소위 말하는 현타,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성공, 꼭 해야할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한다.
아니, 성공의 모습이 꼭 이래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 <김씨표류기>는 이런 질문을 품고있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낸다.
사회적 낙오자가 되고 외딴 섬에 표류된 김씨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김씨의 모습 속에서 누구나 자신의 고민과 방황의 경험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에서 ‘심심함’을 거쳐 ‘몰입’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step 1. 무기력
무기력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연애, 회사, 일, 돈… 모든 방면에서 ‘미달’인 남자 김씨는 무능하고 무력하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리고, 2억의 빚을 지닌채 재취업에 도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들 다 하는데 넌 안되냐"라는 비난을 헤집으며 말 그대로 발버둥 치는데, 정작 돌아오는 건 기계적인 대출 광고 뿐이다.
"희망을 갖자. 대출을 받자"라며 희망을 속삭이지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이 사회에서 남자 김씨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step 2. 심심함
더 이상 빚과 취직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무인도의 김씨는 이제 심심함이라는 사치를 누린다.
“심심하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심심함입니다”
무기력과 심심함은 언뜻 보기엔 비슷할 수 있으나 엄연히 다르다. 둘 다 활기 없이 축 처진 느낌을 연상케하지만, 무기력은 그런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심심함은 현재의 지루함을 바꾸고자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는 상태이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생 버섯 등 아무거나 입에 넣는 김씨. 이런 심심함이 주는 잔잔함과 평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step 3. 공허한 ‘몰입’
공허한 ‘몰입’으로 심심함을 회피하는 둘. 남자 김씨는 처음에는 단순 생존에 몰입한다. 새를 잡고, 고기를 굽고, 오리배로 집을 만들고. 물론 생존에 필요한 일들이지만 이러한 단순 생존 수칙들은 남은 인생을 보낼 동력이 되지 못한다.
여자 김씨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제자리에서 만보를 걷는다. 온라인에서 남을 도용하며 거짓으로 사는 삶.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나름 ‘바쁘게’ 살고 있지만 너무나 공허하고 의미없는, 허상된 생산성과 몰입에 충실한 삶에 그친다.
step 4. 마침내 도달한 진짜 ‘몰입’
이 둘은 각자의, 또 맞닿은 희망을 동력으로 마침내 진실된 ‘몰입’의 상태에 이른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밀 재배를 하는 남자 김씨. 언제 죽어도 좋다던 그가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지으려면 건강해져야 한다며 운동까지 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인터넷 상에서만 생활하던 여자 김씨도 비로소 현실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남자 김씨에 대한 호기심과 그와 소통하겠다는 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마침내 바깥에 있는 김씨의 사진을 찍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인터넷 속 그녀가 아닌 현실의 ‘김정연’이 깨어난 것이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화장실 가는 타이밍도 눈치보더니 그녀가 무려 집 밖을 나서서 남자 김씨가 있는 섬 쪽으로 편지까지 던진다.
이처럼 자신의 진실된 목표와 희망에 ‘몰입’하는 삶은 활기 넘치고 의미있는 변화를 촉구한다.
Hello
How are you
Fine thank you
기어코 둘은 서로를 발견한다.
여자 김씨의 일방적인 호기심을 넘어 이제 둘은 소통하며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다.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던 밤섬은 사라졌고,
인터넷 속 여자 김씨의 삶은 청산되었지만
둘은 서로가 있기에 괜찮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희망을 위해 살아본 뜨거운 마음이 둘에게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씨들을 향해 보낸 응원들이 자신에게도 닿길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고립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
이 둘에게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목표의식이다.
제대로 된 재료 하나 찾기 어려운 밤섬에서 짜장면을 먹겠노라 다짐한 남자 김씨.
직접 면을 뽑기 위해 농사를 짓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추진력을 선보인다. 작지만 원대한 그의 꿈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는 순간순간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된다. 신용불량카드로 오리배에 붙은 새똥을 긁어 발견한 씨앗, 허수아비 머리 깡통 밑 자라난 옥수수, 짜파게티 속 짜장스프…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짜장면을 진심으로 바라는 김씨와 함께 관객은 자연스레 짜장면 영접의 순간을 간절히 소망하게된다.
배달로 뚝딱 얻게되는 짜장면이 아닌 면발 가락 하나하나 직접 만든 수제 짜장면은 더욱 달콤하리라.
여자 김씨를 응원하는 마음도 점차 커진다. 남자 김씨에게 전달할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던지기 위해 한강으로 향하는 그녀. 3년째 은둔 생활을 하는 그녀가, 내 집 화장실 하나 가는 것도 계산하는 그녀가 무려 집 밖으로 나가 한강 다리 위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결심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영화 속 김씨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끝끝내 희망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던 것 처럼
현실 속 우리도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서로 응원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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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 가정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해외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이민자의 삶을 택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수입이 괜찮은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겨우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즘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이민1세대로 타국에 살아남아 2세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처음 이민을 갔던 부모세대들은 그들 자신을 보살피느라 고향에 남은 가족들을 세심히 살피지는 못한다. 늘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 하지만 먼 거리와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계문제 때문에 긴 시간 방문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챙기는 시간까지 더하면 그들이 느끼는 고향의 거리감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이민간 나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세대 보다는 좀 더 적응이 빠르지만 그들의 삶 내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사람의 자녀라면 그는 한국사람 일까, 미국 사람일까. 어쩌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한번즘은 고민하고 있을 질문이다.
미국내 중국계 이민자 빌리 가족의 이야기
영화 <페어웰>은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빌리(아콰피나)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빌리는 아빠(트지마)와 엄마(다이애나 린)과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직 완전한 독립 생활을 하지 못하는 빌리지만 중국에 있는 할머니(자오 슈젠)와 통화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위로 받으며 기운을 내고 생활해 가던 빌리는 할머니가 폐암으로 몇 개월 내에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할머니가 금방 돌아가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머니 본인에게는 하지 못한다. 할머니 외의 모든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 할머니에게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가족들과 빌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빌리의 할머니는 두 아들이 있지만 큰 아들은 일본으로, 작은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따로 살고 있다.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고 20여년이 넘게 중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형제와 친척들과 교류하고, 또 해외의 손주들에게 전화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랜다. 꽤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비추는 할머니의 모습은 시종일관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동안의 외로움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모이게 된 공식적인 이유는 큰 아들의 아들 즉, 할머니의 손자가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할머니가 있는 중국에서 하게 되면서 20여년 동안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결혼식은 아주 기쁜 일이지만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표정은 아주 어둡다. 할머니에게는 그 결혼식이 정말로 축하하는 집안의 경사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환송회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대조되는 모습 자체가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그 행사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합쳐져 따뜻함과 미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한다.
이민자 2세 빌리가 겪는 정체성 혼란
빌리는 할머니와 20여년을 떨어져 살았지만 그에게 할머니는 꽤 소중한 존재다. 늘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은 빌리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단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빌리의 모습은 그가 중국에 있는 가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빌리는 이민자 2세대로써 미국에서조차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이 중국 사람인지 아니면 미국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또한 빌리의 아버지 세대도 이런 혼란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식구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는 중간, 누군가 묻는다. "중국 사람이에요? 아니면 미국 사람이에요?". 빌리의 큰 아빠는 자신은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지만, 빌리의 아빠는 자신은 미국 여권을 들고 다니므로 미국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고국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살게 된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주변인의 태도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빌리가 할머니 댁 근처 호텔로 가서 자신의 방으로 갈 때, 짐을 들어주던 직원이 묻는다. "중국이 더 좋아요? 미국이 더 좋아요?". 이 단순한 질문을 빌리는 회피하려 한다. 사실 주변인의 시선에서는 이 질문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빌리에게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빌리는 중국인이기도 하지만, 미국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직원의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과 동일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는 고국도 소중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인 국가도 소중하다. 어느 것을 선택해 선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들을 작은 에피소드 형태로 보여주며 그들이 항상 처하게 되는 난처한 위치를 관객에게 전한다.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정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빌리
영화는 이런 이민자들의 혼란스런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분명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족이다. 빌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지만 그의 할머니에게는 빌리가 미국 여권을 가졌는지 중국 여권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소중한 손녀이고 가족일뿐이다. 할머니는 영화 내내 빌리를 하나의 가족으로 대한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옆에서 다른 식구들의 밥을 챙기고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한다. 가족 간 티격태격 하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따뜻한 말로 각자를 설득해 나간다. 이것이 영화 <페어웰>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정서다.
사실 누군가 죽을 병에 걸리면 당사자에게 말하지 않는 행위는 전형적인 동양 정서다. 그것도 아주 구세대의 정서라고 볼 수 도 있다. 물론 지역이나 가족의 특성에 따라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페어웰> 안에서는 이것은 꽤 중요한 정서로 인식된다. 그래서 빌리의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차마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던 빌리는 그나마 가족 중 미국적인 정서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계속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부모님과 다른 가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나간다. 하지만 가족 그리고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역시 가족의 전통대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는 결정을 한다. 그렇게 빌리도 그 가족의 일원으로 같은 결정을 내린다.
영화 <페어웰>은 감독인 룰루 왕의 개인적 가족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감독 자신이 중국계 미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왔고, 중국에도 친척들이 있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영화적 감성을 넣어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완성하였다. 또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배우 아콰피나는 과거에는 웃기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절제되고 슬픔을 억누르는 감성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는 무엇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 가정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민자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은 관객들이나, 또 가족 내 이민자가 있는 관객이라면 공감하며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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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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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웰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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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웨어 스페셜>,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아빠의 편지
영화에 대한 내 소감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울었다.
영화 속에 담긴 현실과, 이를 마주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
하도 많이 울고, 감정소비를 심하게 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의 여운을 즐기지도 못하고, 슬픈 감정을 추스르느라 바빴다.
'눈빛'만으로도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행동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배우가 있다.
<노웨어 스페셜>의 주인공 '존' 역할을 맡은 제임스 노턴이 내겐 그런 배우로 다가왔다.
눈앞에 닥친, 그리고 곧 다가올 현실을 바라보는 제임스 노턴의 눈빛과 표정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렸다.
영화는 암에 걸려 살 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청소부 '존'과 그의 4살짜리 아들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은 자신이 떠나고 혼자 남겨질 아들을 위해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기로 한다.
존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아들'을 위한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신중하려고 한다.
마이클에게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려고 한다.
"아직 어린애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훌륭한 애라고 칭찬도 많이 들어요.
사랑이 많고 다정한 아이예요. 행복한 어린아이죠.
저 아이에겐 평범한 가족이 필요해요.
아빠, 엄마가 있는 사랑이 넘치는 집과 전 가져본 적 없는 기회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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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이클의 새 입양가정을 찾아주려고 하지만 역시나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여러 가정을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이클의 반응을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남은 시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더 고민되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존의 눈에는 자꾸 엄마와 함께 있는 마이클 또래의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사실 마이클의 엄마는 마이클을 낳고 얼마 후, 존과 마이클을 떠났다. 아이를 낳고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존은 계속 마이클에게 '평범한 가족', '아빠와 엄마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처음에 존은 아들에게 '아빠가 곧 죽는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 아들이 너무 어리기에.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기에.
- 애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걸 원치 않아요.
아직은 아니에요. 너무 어리다고요.
새 가족과 자기 주변에 또 그런 일이 생기고 자기도 죽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건 애답지 않잖아요.
이런 이유로 '기억상자'에 훗날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담을 것을 권유하는 사회 복지사의 의견을 거절한다.
하지만 마냥 숨길 수만은 없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마이클이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고 아빠에게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
존은 조금 주저하다가 그 딱정벌레는 죽은 것이라고, 죽는다는 것은 몸은 그대로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의 의도와는 다르게 죽음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 트럭은 짐을 잔뜩 싣고 여기저기 다니고,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친구 만나러 멀리 갈 때 차를 타고 다니잖아.
마이클, 나중에 다른 마을에 가서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어?
- 우리 집이 좋아.
육교 위에서 수없이 많은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존은 마이클에게 다른 집에서 살아 보고 싶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마이클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우리 집이 좋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마이클이 '입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존은 애써 담담하게 입양은 다정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이클도 은연중에 아빠와 함께 여러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고, 만나보는 이 과정들이 단순히 놀러가는 것은 아님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이클은 대답한다. 자기는 아빠랑 살고 싶다고.
많은 대사도 없는 장면이다.
소파에서 존이 자고 있고, 마이클은 그런 존에게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담요를 덮어준다.
서툴게 담요를 덮어주는 손길에 잠에서 깬 존은 그런 마이클을 꼭 안는다.
정말 이별이 코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존은 마이클이 훗날 볼 수 있는 '기억상자' 속에 아빠를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을 담는다.
차에서 발견한 엄마의 장갑, 아들이 막 태어났을 때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아들이 아빠의 생일날 준 빨간색 초 하나, 아빠와 아들의 손을 대고 그린 그림, 그리고 나중에 운전면허를 땄을 때 읽으라고 쓴 편지와 같이 아들이 한 해 한 해 커가면서 차근차근 볼 편지 등의 물건을 담는다.
존이 자신의 사정을 아는 친한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되는 것이라고. 공기 중에서 남은 사람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한참 전에 사별한 남편의 칫솔을 최근에서야 버렸다고.
아직 마이클은 온전히 그 감정을 이해하진 못 했을 것이지만, 존은 마이클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 아빠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뜻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널 적시는 빗속에서도 널 지켜볼거야.
(아빠가 죽어도) 너는 아빠에게 말할 수 있어.
아빠는 안 보일 테지만 너의 말을 들을 수 있어.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마이클이 있는 모든 공간에서 계속 그를 지켜볼 것을 약속한다.
아마 마이클은 이런 아빠의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그리고 아빠의 물건들을 오래오래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항상 그의 주변에 있는 아빠처럼, 그도 항상 아빠의 존재를 상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찾는 어느 순간에 존은 바람이든, 빗방울이든, 눈부신 햇살이든, 그 어느 것을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대답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존과 마이클이 찾아간 수많은 가정 중에 어릴 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친 사이에서 임신했다가 주변 어른들의 권유로 반강제로 아기를 없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임신을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아이는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입양아는 못 키우겠다고 떠났고,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존의 결정은 그녀의 가정이었다.
그녀의 집에 마이클을 데려가고, 아들과 아빠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에 아빠에게 보내는 마이클의 눈빛은 마치 '아빠 걱정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테니, 이런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는 걱정하지 말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영화다. 2021년의 마무리에 생각나는 영화를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 이 영화가 먼저 생각날 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하려고 하는 존과 마이클의 이야기를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조용하게 그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인지하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잔잔히 계속 찾아오는 파도가 더 눈에 아른거리듯이, 극장을 떠나서 집에 가는 시간 내내 그저 이 영화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영화의 이야기를 집까지 가져오며 누군가의 현실일지도 모를 이 상황들에 대해 혼자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이 상황을 풀어헤쳐 나가는 아빠인 존, 존이 떠나고 그의 빈 자리를 종종 마주할 아들 마이클, 그런 마이클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새 가정, 이런 이별을 수없이 마주했을 사회 복지사 등.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움, 벅참, 슬픔, 감동 등의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먼저 떠난, 내겐 매우 중요한 존재였던 그 사람이 혹시 가끔씩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라고 내뱉은 내 말을 듣고 혹시 내게 찾아와 주진 않았을지. 그리고 이런 내 말에 가벼운 대답을 해주진 않았을지.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조금의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공기 속에서, 햇살 속에서, 빗속에서 꾸준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전의 일들에 대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는 내게, 그리고 항상 보고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내게 일말의 대답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공기 속에서 항상 아들의 주변에 있을 것을 약속하며, 아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준 아빠의 이별편지와 같은 영화인 <노웨어 스페셜>은 오는 12월 29일에 개봉한다.
다들 2021년을 꼭 이 영화로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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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단하되 느린 '용들의 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적군에게 살해당한 후 마침내 내전 '용들의 춤'을 개시하기로 결심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에마 다시). 하지만 그녀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남편 '다에몬'(맷 스미스)의 독단으로 인해 칠왕국의 비난이 그녀에게 쏠려 버린 것. 심지어 흑색파 가신들마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통치력과 리더십에 의문을 품고, 라에니라는 점점 곤경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전투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가장 든든한 조언자이자 타르가르옌 가문의 큰 어른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이브 베스트)이 녹색파 최강의 드래곤 바가르와 그 기수 '아에몬드 타르가르옌'(이완 미첼)에게 공격당해 사망한 것. 이에 라에니라는 결단을 내린다. 그녀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모든 서자를 불러 모은다. 주인이 없는 드래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고, 단기간에 전력을 강화해 전세를 뒤바꾸기 위해서.
저조한 흥행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후속작이자 프리퀄로 기획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1의 흥행은 놀라웠다. 첫 회부터 1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기록했고, 평균 시청률도 회당 약 1,000만 명 이상을 유지했다. 시청률만 높은 것도 아니었다.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도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2년 만에 돌아온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두 번째 시즌은 실망스럽다. 당장 수치가 시즌 1에 못 미친다. 시즌 2의 첫 회는 약 78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시즌 1 첫 방영 당시의 시청자 수보다 약 22% 감소한 수치다. 평균 시청률도 낮아졌다. 시즌 1의 마지막 화 시청률은 930만 명에 달했는데,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는 890만 명에 그쳤다.
재미와 완성도도 시즌 1에 미치지 못한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기획의 한계가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 이번 시즌은 기존 인물들의 갈등을 일단락하고, 새 캐릭터를 소개하며 다가올 내전, '용들의 춤'을 위해 판을 까는 데 집중했다. 그 대가는 컸다. 캐릭터가 많다 보니 응집력이 약해졌고, 기승전결도 명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시즌 1이 키운 기대감을 미처 이어가지 못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해
물론 <하오스 오브 드래곤> 제작진의 선택도 일견 이해는 된다. <왕좌의 게임> 본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최선의 노력이었기 때문. <왕좌의 게임>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혹평받았다. 캐릭터의 붕괴가 핵심 원인이었다. 외견상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이나, 그 본질은 정치극 혹은 군상극에 가까웠다. 즉, 수많은 캐릭터가 자기 목표를 위해 이합집산하며 펼쳐지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재미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후반부는 스케일을 키우다가 각 캐릭터의 매력을 놓쳤다. 칠왕국의 내전, 밤의 왕과의 전쟁에만 초점을 맞출 뿐 각 캐릭터의 행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 시즌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붕괴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대너리스'(에밀리아 클라크)는 불과 한 회만에 타락해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고, 예언 속 영웅인 '약속된 왕자'로 꾸준히 암시된 '존 스노우'(킷 해링턴)도 본인 역할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본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애쓴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각 인물의 서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다. 그 중심에는 흑색파의 리더인 라에니라와 녹색파의 기둥인 '알리센트'(올리비아 쿡)가 있다. 시즌 1에서 그들은 모성애라는 같은 이유 때문에 충돌했지만, 시즌 2에서는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상이한 방식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로 남거나, 여왕으로 거듭나거나
자기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왕좌를 노렸지만, 전쟁만은 피하려던 알리센트와 라에니라. 내전이 시작된 후에도 두 여성은 비슷한 곤경에 처한다. 전례가 없는 여성 정치인의 통치에 자꾸 분란이 생기니까. 알리센트는 왕대비로서 정국을 주도하려다가 오히려 두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긴다. 라에니라도 휘하 영주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전쟁에 나선 적도, 칼을 휘둘러 본 적도 없는 여왕의 지시에 그들이 끊임없이 반기를 들기 때문.
그러나 난관을 뚫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알리센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어머니다. 그래서 왕의 어머니라는 점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한다. 권력을 빼앗기고, 녹색파 내부의 갈등이 커져도 알리센트는 모성애와 가족애에 호소한다. 일례로 장남이자 왕인 '아에곤 2세'(톰 글린카니)와 차남이자 섭정인 아에몬드가 서로를 죽이려 할 때, 그녀는 정치적 거래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싸움을 말리려 한다.
반면에 라에니라는 점차 여왕으로 거듭난다. 자기 권위와 권력이 타르가르옌 가문의 장녀라는 점에서 비롯함을 돌파구로 삼는다. 특히 타르가르옌 가문이 드래곤 혈통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가문의 서자들, '드래곤의 씨'를 적극 활용한다. 장남 '자캐리스'(해리 콜렛)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드래곤을 길들인 이들을 선별해 전력을 강화한다. 또 자신이 타르가르옌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공표하는 도구로도 이용한다.
이 차이점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작품 외적으로는 여성들이 현실의 역경에 맞서는 여러 방법과 겹쳐 보인다. 라에니라는 조금 더 현대적이고, 알리센트는 비교적 전통적인 여성이니까. 작품 내적으로는 그들의 선택을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어서 더욱 흥미롭다. 원작에서 두 여성은 자기 가치관과 반대되는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라에니라는 승전하고도 여왕이 되지 못하고, 알리센트는 모든 자식을 잃을 운명이니까.
확실한 교통정리
두 여성이 정해진 비극으로 나아갈 것이 정해졌듯이,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도 전면전을 앞두고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일례로 녹색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된다. 특히 아에곤 2세와 아에몬드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섭정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 아에몬드는 형을 죽여서라도 왕좌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한 아에곤은 수도인 킹스랜딩을 떠날 준비를 하며 다음 시즌에서 녹색파가 처할 위기를 암시한다.
독보적인 사고뭉치인 다에몬의 서사도 마침내 정리가 된다. 그는 왕좌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형이자 왕인 '비세리스 1세'의(패디 콘시딘) 명령을 거부하고 정복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시즌 2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왕이자 아내인 라에니라의 장악력이 흔들리자 왕이 되겠다는 야욕을 곧바로 드러낸다. 드라마는 욕망덩어리인 그가 어떻게 욕심을 버리고, 라에니라를 여왕으로 인정했는지를 인상적으로 펼쳐 보인다.
특히 이 부분은 본편과의 연결고리라서 더욱 눈에 띈다. 다에몬은 여러 환상과 암시를 본다. 본인은 물론 '용들의 춤'에 관여된 모두가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서사시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라에니라가 왕좌에 올라야 이 서사시가 비로소 이어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는 <왕좌의 게임>이 '티리온'(피터 딘클리지)의 입을 빌려 이야기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야기의 지평이 넓어지는 지점 또한 인상적이다. 시즌 1이 궁중 암투였다면, 시즌 2는 그 암투가 평민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같이 탐구한다. 그 중심에는 드래곤의 씨 세 명, '휴 해머'(키에론 존 뷰), '울프 화이트'(톰 베넷), '아담 벨라리온'(클린턴 리버티)이 있다. 그들은 전쟁 준비와 식량난 때문에 고통받느니 죽을 각오로 드래곤을 길들이는 데 도전한다. 이는 단순한 권력 투쟁처럼 보이던 '용들의 춤'에 현실감을 더한다.
애초에 가지가 너무 많아
문제는 캐릭터가 너무 많은 나머지 구심점이 약하다는 것. 전개 속도를 고의적으로 늦추면서 캐릭터를 깊이 개발하고 긴장감을 구축했지만, 녹색파와 흑색파 모두 사분오열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난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가지치기는 확실히 했는데, 애초에 가지가 너무 많다 보니 나무가 좀처럼 깔끔해지지 않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방점을 찍어줄 클라이맥스의 부재가 아쉽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한 드래곤들의 전투는 분명 놀라운 스펙터클이다. 본편에서는 드래곤이 일방적으로 군대를 학살하는 묘사가 대다수였고, 드래곤끼리 싸우는 장면은 마지막 시즌 한 에피소드에서만 잠시 등장했다. 그에 반해 이번 시즌은 거대한 드래곤 세 마리가 뒤엉키면서 싸우는, 그 자체로 전율이 이는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드래곤의 전투가 중반부에만 등장하다 보니 시즌을 끝맺었다는 느낌은 덜하다. 여러 캐릭터의 서사가 전쟁이라는 종착점으로 모였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켜 주는 장면이 부족한 것. <왕좌의 게임>이 매 시즌 후반부마다 결정적인 전투 시퀀스를 배치해 시즌을 명확히 끝맺은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차라리 마지막 화에 전투씬을 짧게라도 보여주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게 어땠을까 싶다.
어쩌면 드라마 기획의 근본적인 한계와 과욕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원작 소설의 형식이 한계로 작용한 듯하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근본적으로 더하기의 미덕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 원작 자체가 역사서 형태로 쓰였기 때문에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이야기를 삽입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각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다가 군살이 다소 과하게 붙은 인상이다.
종합적으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단단하고 풍성한 이야기로 무장한 기초 공사, 시즌 3의 전초전에 그친다. 독립된 작품으로 본다면 시즌 1로 인해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못한 속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두 시즌의 만듦새에 따라 더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어벤져스>를 위해 완성도를 희생한 <아이언맨 2>와 유사한 위치인 셈이다.
Acceptable 무난함
드래곤보다는 사람에게 주목한 '용들의 춤' 기초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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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집 - 집 구조를 잘못 지으면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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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이 집 뒤틀린 거.. 아세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딴집에 이사 오게 된 가족.
엄마 ‘명혜’는 이사 온 첫 날부터 이 집이 뒤틀렸다고 전하는 이웃집 여자의 경고와
창고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로 인해 밤잠을 설친다.
아빠 ‘현민’은 그런 ‘명혜’를 신경쇠약으로만 여기고
둘째 딸 ‘희우’는 가족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주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잠겨있던 창고문을 열고 만 명혜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뒤틀린 틈에서 시작된 비극이 가족을 집어삼키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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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제 8일의 밤, 실망스러운 오컬트 영화
넷플릭스에 한국 공포영화 제8일의 밤이 공개되었어요.
예고편에서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뽐냈기 때문에 꽤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와서 번뇌와 번민을 요괴화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오컬트의 분위기도 약하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성민 배우가 열연하고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보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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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침범> 메인 예고편
2025년 가장 밀도 높은 심리 파괴 스릴러 #침범 3월 12일 개봉 확정 & 메인 예고편 공개👥 #somebody #곽선영 #권유리 #이설 #기소유 #심리파괴스릴러 #3월12일극장대개봉 #스튜디오산타클로스 #studiosantacl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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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라일리의 새로운..추억 할머니?' 영상
“ㄱ하니..? 처음 본부에 왔던 날?” 더욱 풍성해진 ‘라일리’의 감정들! (with ‘추억’ 할머니) 6월 12일, 극장에서 [인사이드 아웃 2]와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