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11-18 12:55:53
영화 비공식작전 결말 줄거리 등장인물 | 하정우 주지훈 주연
막강콤피 하정우 주지훈
실화를 다룬 영화 좋아하시나요?!
1986년 레바논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비공식작전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으로
더욱더 몰입도 높았던 영화 비공식작전은
얼마 전 OTT에 풀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작품인데요,
그럼, 영화 비공식작전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스릴러, 액션, 느와르, 첩보, 코미디
감독 : 김성훈
각본 : 김정연, 여미정
출연진 : 하정우, 주지훈
개봉일 : 2023년 08월 02일
평점 : 7.99
스트리밍 : tvN, NETFLIX, Wavve, Watcha, Coupang
기획 의도
“비공식적으로? 알아서 해라?
여기는 하루하루가 지뢰밭이에요”
1987년, 5년째 중동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교관 ‘민준’(하정우).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의 암호 메시지가 들려온다.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희망찬 포부에
가득 찬 그는 비공식적으로 동료를 구출하는
임무에 자원해 레바논으로 향한다.
공항 도착 직후, 몸값을 노리는 공항 경비대의
총알 세례를 피해 우연히 한국인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의 차를 타게 된 ‘민준’.
갱단까지 돈을 노리고 그를 쫓는 지뢰밭 같은
상황 속, 기댈 곳은 유일한 한국인인 ‘판수’
뿐이다. 그런데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수상쩍은
이 인간, 과연 함께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등장인물
이민준 | 하정우
외교관
꿈에 그리던 미국 발령이라는 조건을 걸고
실종된 동료 외교관을 구하는 비공식 작전에
홀로 내전 중인 레바논으로 향한다.
김판수 | 주지훈
택시 기사
아랍어도 잘하고 길도 빠삭하지만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한국인 택시 기사.
여담
영화 비공식작전은 하정우와 주지훈의
배우들을 앞세웠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무난한 스토리와 티켓파워가 있는 주연배우가
있음에도 높은 티켓 가격은, 굳이 영화관에서
봐야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어 흥행에
실패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촬영지는
모로코에서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비공식작전 결말
우여곡절 끝에 오재석 서기관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지만, 한국으로 수송기에 마련된 좌석은
오직 두 자리뿐, 한국에 데려가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던 민준(하정우)은 판수(주지훈)를
먼저 보내고 한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아
감옥에 갇힌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 돌아온 민수는
공항 밖에 마중 나온 판수와 만나게 되면서
훈훈한 결말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역시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의
티격태격 콤비가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로 킬링타임으로 딱 좋습니다.
요즘 많은 OTT에서 풀린 영화 비공식작전
한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한줄평 : 영화관에서 보고 싶지만... 높은 티켓가격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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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보다 나은'이 아닌, '나보다 나은 나'를 꿈꾸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베러맨> 언론 배급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
<베러맨>은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의 전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로, 목소리 연기에 로비 윌리엄스 본인이 참여하였으며, 스스로를 침팬지라고 언급했던 그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주인공 인물이 모션 연기를 통해 침팬지로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 만큼 인물의 성장이 중점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사건에 대한 내면 갈등과 자아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재능은 타고나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로비는 어린 시절부터 끼를 주체하지 못하며 무대에 오르고 급기야 팝밴드 오디션에 합격해 보이밴드그룹 활동을 시작하고, 큰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명성 속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끝나지 않는 비교와 경쟁은 로비를 낙담하게 하고, 팀에서 나와 솔로 활동으로 다시금 도약해보려 하지만, 외부의 수많은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내면에 들어선 불안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 그를 압박해온다.
앞서 로비 윌리엄스가 스스로를 침팬지라고 언급했던 바를 그대로 캐릭터로 활용한 것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 영화는 사건 자체나 그를 둘러싼 어떠한 것, 인물의 행위와 업적에 주목하기보다 영화 속 대중들이 보지 못하는 그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 속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로비의 내면을 <베러맨>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대중은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관객은 로비의 주변 인물처럼 마치 로비와 친밀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로비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모습은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자크 라캉이 제시한 ‘거울 단계’란, 아이가 거울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시기로, 거울을 처음 본 아이가 외부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것처럼 로비는 대중을 비롯해 사회적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을 거울 삼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찰스 호튼 쿨리가 거울자아 이론을 통해 자아는 사회 속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며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을 거울로 여기고 그에 따라 형성된다고 설명했던 것처럼, 로비 또한 내면 자아를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대중과 연예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형성하고, 대중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을 거울로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거울 단계는 자아 인식 뿐만 아니라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로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유년 시절 로비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받았던 아버지는 재능은 선천적이어야 한다며 로비의 재능과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고 심지어는 자신의 꿈을 위해 로비의 곁을 떠난다. 이에 로비는 스스로를 타고난 재능이 없는 아이로, 의기소침한 아이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말에 낙담하는 것도 잠시, 로비는 거리에서 몰래 버스킹을 하고, 팝 밴드의 막내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유명세를 누리게 된 로비는 점점 대중에 시선을 의식하며 이전과 다른 모습들을 가지게 되는데, 대중의 열광과 호응은 그에게 계속해서 불씨를 던지고, 그는 명성과 인기, 부라는 불 속에 점점 타오른다.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던 유명 밴드로서의 삶은 멤버, 그리고 회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는 솔로 복귀를 통해 다시 스타의 덤에 오르지만 그의 내면은 점점 자기혐오와 상처, 불안으로 검게 타들어가 그를 조여온다.
대중 앞에 선 로비가 극심한 환각을 겪고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영화 속 로비의 얼굴과 동일한 얼굴을 하고 서로 다른 차림을 한 침팬지들로, 로비의 페르소나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여러 자아들이다. 특히 그들이 로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여러 자아 사이에서도 그의 불안정하게 왜곡된 자아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타자 인식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고, 자신을 규정하고 평가하던 그는, 어느새 이상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 자기 자신을 왜곡하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넣게 된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로비를 짓누르고 존재는 대중이 아닌 결핍된 자신의 자아, 왜곡 시킨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로비의 불안정한 자아 인식은, 영화의 후반부 로비가 깨진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는데, 여기서 깨진 거울은 여기저기 금이 가 로비의 모습을 왜곡하여 보여주는 존재로, 깨진 거울을 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진실된 본연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로비 윌리엄스가 아버지와 즐겨 불렀던 노래인 ‘My way’ 가 여러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My way'의 가사처럼 사회적 기대나 규범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의 이용이 증가하며 타자의 반응에 따라 왜곡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더욱 쉬워지고, 이상적인 자아의 기준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자신이 이상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여겨 스스로를 비난하고,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제목이 ‘Perfect man’이라던가 ‘The best man’이 아닌, ‘더 나은’이라는 뜻을 가진 ‘better’을 사용한 만큼, 잠시 평가에 대한 욕심과 기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단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꾸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의 나를 다독이며 전진해 보는 건 어떨까? 걸어가는 그 길이 설령 가시밭길 같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면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저마다 지나온 시간 속 각자만의 길이 새겨져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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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차이를 부각하고 있었던 영화 <뮬란>
작년 실사화가 되면서 욕을 엄청나게 먹었던 뮬란. 하지만 뮬란 원작을 보지 않아서 이 논란에 함부로 가세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뮬란>을 찾아봤다. 영화 속 넘버인 Reflection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원작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를 보기 전 뮬란은 여성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디즈니에서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고 구현하는데 있어 그 변화의 시작을 물랸을 꼽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영화 <뮬란> 시놉시스
파씨 가문의 외동딸 뮬란은 자기 주장이 워낙 강해 선을 볼때마다 퇴짜를 맞는 시대를 앞선 여성이다. 한편, 훈족이 국경을 침략하자 뮬란의 연로한 아버지도 징집 명령을 받게되고, 뮬란은 심각한 고심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의 충성심이 워낙 강해서 뮬란의 만류를 뿌리쳤고, 아버지를 대신 하려해도 여자는 절대로 참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뮬란은 남장을 하고 전장에 참가하기로 비장한 결심을 한다.
한편, '파'시 가문의 조상들이 유령으로 환생하여 대책회의를 하게 되고, 결국 천방지축 수호신 무슈가 뮬란을 따라 나서게 된다. 뮬란은 의지가 워낙 강한 여성이라 점점 한 사람의 병사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살얼음판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뮬란은 자신도 모르게 용맹한 중대장 샹에게 사랑을 품게 된다. 용감하게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했지만 여자의 마음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일까?
그러던 중, 뮬란이 속한 부대가 눈덮인 설원을 통과할 무렵 2천여명이 넘는 훈족의 군대에게 추격을 당하게 되고, 뮬란이 눈사태를 일으켜 훈족의 군사들을 무찌르는 기지를 발휘한다. 그러나, 부상당한 뮬란은 치료를 받다가 여자인 사실이 밝혀져 군령을 어긴 죄로 위기에 처하지만, 중대장 샹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한편, 물러간 줄 알았던 훈족의 군사들은 다시 황궁으로 쳐들어와 황제까지 협박하고 나라는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아름다운 영웅 뮬란이 다시 한번 용맹을 발휘하여 황제와 나라를 구하게 되고, 황제는 수많은 백성 앞에서 뮬란을 영웅으로 대접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조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뮬란에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림체가 인상적이었다
요새 디즈니나 다른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엄청난 디테일들을 보여준다. 그럼점이 좋긴 하지만 오래간만에 단조로운 선 중심의 애니메이션인 뮬란을 보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화려함보다는 단조롭고 강렬한 선이 중심이 되는 그림체를 보면서 뭔가 딱딱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어찌보면 투박한 듯한 색감 표현이 정겹게 다가왔다. 처음에 볼때는 약간 어색했지만 영화의 스토리 자체에 집중해서 보기에는 그 집중도를 더욱 높여줬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여성의 능력을 잘 보여준 작품
뮬란을 틀어놓고 여름옷들을 정리하면서 대사를 들을 때는 뮬란이 굉장히 강인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남성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신체적인 조건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빼지 않고 같이 훈련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뮬란을 보면서 어쩌면 드라마 선덕여왕 속의 덕만 캐릭터가 뮬란에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초반 뮬란을 볼 때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 받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응원할 수 있었다. 영화를 가볍게 보면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중국 왕조를 구했기에 신데렐라 구조와는 다르다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한 영화였다
영화를 재밌게 보다가 저녁을 먹으며 다시 이어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엥…? 음…? 이런 감정이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보다보니 당 섭취로 인해 머리 회전이 빨라져서 그런것일까? 옷정리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뮬란은 자신이 여성이기에 중국 왕조를 구할 수 있었다. 2000명이 넘는 군대를 맞이할 때도, 훈족이 궁궐로 쳐들어올때도 뮬란을 제외한 남성 군인들은 그 속에서 힘으로 제압하려는 생각을 했고, 뮬란은 지략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려 했다. 즉, 힘이 주어진 남성 캐릭터들은 육체적인 힘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려 시도했지만 선천적으로 힘이 주어지지 않은 여성캐릭터인 뮬란은 난관 속에서 정공법 보다는 계략과 지략을 이용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캐릭터 설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의 힘으로 중국 왕조를 지켜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을 오히려 구별짓고 있다고 느껴져서 저녁을 먹는 동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지 않았을 때의 뮬란의 이미지가 훨씬 좋았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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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의 반대편에서 쓴 불완전한 SF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간은 AI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전쟁 끝에 AI를 뉴아시아 지역에만 고립시키는 데 성공하자, 미군은 아예 AI를 만든 창조주 '니르마타'를 죽여서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이에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니르마타의 딸로 알려진 '마야'(젬마 찬)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조슈아는 되려 마야와 사랑에 빠지고, 작전 중 그녀가 실종되자 실의에 빠진다.
이후 몇 년이 지나도 니르마타를 찾지 못한 미군은 다시 한번 조슈아를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마야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주기로 약속하면서. 아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전에 합류한 조슈아는 니르마타와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신무기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그는 신무기가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이스)란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 마야의 비밀도 깨달으면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가렛 에드워즈의 <스타워즈> 뒤집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의 감독 가렛 에드워즈와 각본가 크리스 와이츠가 의기투합한 SF 영화 <크리에이터>. 소재나 주제만 놓고 보면 새로운 작품은 아니다. SF 영화사에서 고전으로 기억될 작품이 보여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전쟁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인공지능과 로봇의 인간성에 대한 고찰은 <블레이드 러너>, <A.I.> 등이 다룬 바 있다.
달리 말해 <크리에이터>는 의도와 목적을 찾기 쉬운 영화다. 유사점을 지우고 나면 지향점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가렛 에드워즈의 전작이 <로그 원>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크리에이터>의 성취와 한계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로그 원>은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이후 가장 호평받은 <스타워즈> 영화다. 클래식과 프리퀄 시리즈 간에 연결고리를 더했을 뿐만 아니라, 제다이가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를 두고 <스타워즈> 세계관을 가장 잘 이해한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렛 에드워즈는 <스타워즈>를 가장 확실히 전복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 세계의 모순과 약점을 뼛속까지 알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크리에이터>는 <스타워즈>의 정반대 편에서 자기만의 SF 세계를 '창조'하고픈 야심으로 가득하다. 단지 그 욕망이 스크린 위에 온전히 구현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프런티어 정신의 그림자
<스타워즈> 시리즈는 미국의 신화라고도 불린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이고, 첫 편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스타워즈>가 미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스타워즈>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국의 정체성은 바로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항상 팽창하는 국가였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서부, 알래스카, 하와이, 필리핀, 전 세계, 심지어 달과 우주까지 개척했다. 서부극이 가장 할리우드다운 장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스타워즈>도 마찬가지다. 배경이 우주일 뿐, 새로운 행성과 은하에서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크리에이터>의 전체적인 갈등 구도는 프런티어 정신의 이면,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극 중 전쟁은 외견상 A.I. 와 인류의 전쟁이다. 하지만 덧대어진 여러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고려하면 미국의 여러 대외 분쟁에 대한 비유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크리에이터>는 전지구에 영향력을 투사하려던 미국의 실패 사례를 망라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계단식 농업을 하고, 정글이 가득한 곳에서 인공지능 게릴라와 공습 위주로 전투를 벌이는 미군의 모습은 1960~70년대 베트남에서 싸우던 미군을 닮았다. 인공지능 창조자를 찾는다며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테러와의 전쟁'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말라며 뉴아시아를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탄소 감축을 위해 개발동상국의 산업을 제재하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스타워즈>의 오리엔탈리즘에 도전하다
심지어 <크리에이터>의 고발은 단순히 영토나 대외 분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 국가나 인종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무시하고, 탈취하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미국의 오리엔탈리즘도 꼬집는다. <스타워즈>도 문화적 프런티어 정신의 악영향에서 기실 자유롭지 않다. 핵심 설정인 '포스 The Force'만 해도 동양 사상의 '기氣'를 가져간 셈이고, 포스를 수양하는 제다이도 도사라는 개념을 취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렛 에드워즈는 이처럼 동양의 정신문화를 표면적으로 활용해 쌓아 올린 미국의 신화를 부수려 한다. 타 문화권의 유산을 입맛대로 재단하는 대신, 스크린 위에 온전히 살려내어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SF 세계의 전형에 도전한다. 그 중심에는 조슈아가 있다. 그는 니르마타를 추적하기 위한 첩보원이다. 얼핏 보면 그가 아내를 만난 것도, 잃은 것도, 다시 그녀를 찾아 나서는 것도 다 인공지능 창조주를 찾는 추격전의 일부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조슈아의 서사를 뒤집는다. 그의 첩보극을 개인적인 성찰과 발견의 서사로 다시 쓴다. 니르마타를 찾는 첩보극은 이제 고통의 원인을 찾는 정신적 여정이다. 그는 추격전 끝에 결국 아내와 재회한다. 아내의 모든 비밀도, 아내를 놓아주어야 자기 아픔이 끝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대신 자기 아들의 모습을 한 로봇 알피와 모든 AI를 구해내면 아내를 향한 사랑과 자기 아픔을 승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운다.
동양의 진짜 정신문화를 살리다
이러한 조슈아의 여정을 동양적으로 보면 수행과 득도의 과정과도 같다.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인 보리심(菩提心)이 조슈아의 서사에 반영된 듯 보인다. 보리심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는 대비심(大悲心)에서 비롯되는 마음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조슈아라는 인물은 보살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AI와 가족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AI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실천에 옮겼으므로. 이는 과거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해 차별적으로 수용, 생산한 동양의 문화를 새로이 직시하고 그 정수를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네팔, 티베트 같은 고산지대에서 AI가 승려 복장을 한 모습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더 나아가 이는 <크리에이터>가 나름 색다른 SF 영화로 보이는 이유다. 영화 속에는 AI와 인간의 차이를 결정짓는 기준에 관한 여러 윤리적, 철학적 질문이 등장한다. "인간은 AI와 공존할 수 있는가, 아니면 AI를 파괴해야 하는가?" "AI도 인간처럼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등. 다른 SF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뻔한 질문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이전까지의 영화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차별성을 갖추는 데 성공한다. 동양 철학에 기반해 AI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확실한 대답과 당위성을 내놓기 때문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자기모순
그러나 <크리에이터>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이다. <스타워즈>가 범했던 잘못을 똑같이 반복한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이 뒤섞인 듯한 '뉴아시아'의 지형과 도심만 봐도 실책은 명백하다. 극 중 뉴아시아의 도심은 도쿄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외곽 지역은 베트남이나 중국 남부의 농촌 모습으로 설정돼 있다.
사실 한중일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국가는 국가별로 정체성도, 개성도 확연히 다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대외적으로 한 팀이 되길 바라는 실수를 미국이 반복하는 이유다. 베트남 역시 수백 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바 있다. 그런데 <크리에이터>는 '뉴아시아'라는 이름 하에 상이한 국가의 정체성을 합쳐 버렸다. 이는 아시아 국가를 단순히 '동양'으로 범주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크리에이터>의 핵심 요소인 종교를 활용하는 방식 또한 실수와 몰이해의 연속이다. AI 창조주의 이름인 '니르마타'(निर्माता)는 네팔어로 창조주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문제는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가 네팔에서 태어나기는 했으나, 정작 네팔은 힌두교 인구가 90% 이상인 국가라는 점. 이는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핵심으로 품은 영화에서 간과하기에는 작지 않은 실수다.
또 고산 지대에 위치한 불교 사원은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듯 보이지만, 정작 뉴아시아에 거주하는 AI들은 힌두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이는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와 아시아 지역의 종교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 탄로 나는 대목이다. 물론 영화의 지향점을 고려하면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시각적인 요소가 빚어내는 오해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나 의도에 설득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써먹지 못한 맵시
이에 더해 시각적인 장점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 가렛 에드워즈는 <고질라>나 <로그 원>에서 압도적인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시점으로 스펙터클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웅장한 자연 풍광, 강력한 미군의 공습이 대표적이다. AI 로봇이 농사를 짓고 절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SF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은 점점 모습을 감춘다.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후, 영화의 초점이 멜로드라마로 옮겨 가기 때문.
그 결과 장르 간에 불협화음이 생긴다. 멜로드라마에 집중하다 보니 마야의 비밀, 니르마타의 진짜 정체와 관련된 미스터리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더 나아가 영화의 결말도 아쉬움이 크다.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순간에 로맨스가 부각되다 보니 스스로 잠재력을 제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액션씬도 디테일이 부족하다. 일례로 미군이 AI 마을을 탱크로 습격할 때 미군과 인공지능은 순서대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다. 전투 중 극대화되어야 할 절박함이나 긴장감은 크지 않고, 오히려 템포가 끊긴다는 느낌이 크다. 물론 할리우드 기준으로 적은 제작비(약 8천만 달러)를 고려해야겠지만, 초중반부 좁은 공간에서의 액션씬이나 <로그 원> 속 전투 시퀀스를 떠올려 보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결국 <크리에이터>는 거대한 야심을 지녔고, 그 야심 자체는 시의적절했으나, 야심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미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누군가는 감독의 야심이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레퍼런스 활용이나 블록버스터로서의 미흡함을 지적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Acceptable 무난함
뒤집고 되짚는 과정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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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사라진 거장 피아니스트를 찾아서
시놉시스
뉴욕의 한 음악 비평가가 브라질의 젊은 피아노 거장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방불명 사건 뒤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탐험에 나선다.
EDITOR AMY PICK
쿠바 라틴 재즈를 다룬 <치코와 리타>를 만든 트루에바와 하비에르 마니스칼이 만든 신작 영화로브라질 천재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좇는 영화다. 피아니스트 이름은 ‘테노리우 주니오르’. 남미에서 일어난 군사독재 정권과 문화인들의 탄압과 함께, 당시 테노리오의 동료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역사적 상황들을 단서 조각들로 진실을 맞춰간다.
테노리우 주니오를 찾아서
이 영화의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 1960년대 재즈 삼바의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브라질 음악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그의 선율은 예술적이며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그의 예술성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도 극찬을 보낸다.
그런 브라질의 인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군사독재를 펼치던 브라질 군부에 의해 한밤중에 잡혀간 것.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음악가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 한 가정에서 사라지는 것,
문화와 개인적인 측면에서 상황을 조명하며 지인들이 안고 갈 고통과 그리움을 담아낸다.
다큐멘터리를 뛰어넘어
자칫 지루한 다큐멘터리로 끝날수 있는 영화를 다채롭게 꽉꽉 채워넣었는데,
브라질의 음악 거장들의 인터뷰와 테노리우의 음악을 애니메이션과 결합하여 시청각을 모두 사로잡았다.
또 감독은 수많은 테노리우 지인들의 인터뷰와 당시 감금되었던 수용소를 직접 찾아가 테노리우가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이 관객들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가감없이 던지며 사라진 예술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표한다.
영화, 음악, 미술 LET'S GO
영화는 음악, 인터뷰, 역사,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작화가 조화를 이뤄 재즈와 브라질 역사를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수 있는 영화다. 또한 브라질의 음악이 전세계 음악을 뛰어 넘어 영화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담겨져 있으니 씨네필들이라면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
EDITOR_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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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어느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나사렛 예수>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비교
영화「Jesus of the Nazareth」와 「Jesus Christ Superstar」비교 분석하기
영화「Jesus of the Nazareth」(1977)와 「Jesus Christ Superstar」(1973)는 모두 신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전자는 예수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으며, 후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7일 전부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이 두 편의 영화는 예수의 공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형식, 그리고 성서와 성서 속의 인물들에 대한 해석의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말하자면 고전에 현대적 입맛을 약간 가미한 현대 클래식 음악과 고전을 철저하게 현대적 관점에 따라 과감하게 변용한 록 음악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두 작품은 성서라는 하나의 원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각각 영화의 의도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었다는 점에서 썩 재미있는 비교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중점을 두었던 것은 성서 속의 인물들이 각각의 영화 속에서 어떻게 달리 해석되었는가, 였다. 두 작품 모두 아주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수십 세기에 걸쳐 사랑받아온 예수와 온 세상 사람의 미움을 한 몸에 받던 갸롯 유다였다.
Jesus: 신의 아들이냐, 비극적 인간 영웅이냐!
먼저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해보자. 「Jesus of the Nazareth」의 예수는 성서 속 인물과 꽤 일치한다. 그는 거룩하고 자애로우며 자비심이 넘친다. 고통 받는 이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고 가르침을 설파한다. 제자들을 비롯한 백성들은 그의 숭고함에 매료된다. 이를테면 그는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다.
반면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그려진 예수는 이와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 그는 보다 ‘인간적’이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열중한다. 그러나 백성들을 구제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비탄 속의 백성들이 몰려들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권세와 소임을 버거워한다. 몰려드는 환자들에게 ‘Heal yourselves!’라고 외치는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하기 만한 성자로서의 예수와는 썩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막대한 책임에 고통스러워한다.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의 무릎에 누워 유일한 위안을 청한다. 다소 우유부단하고 나약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도리어 그에게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 심지어는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이를 통해 예수라는 존재와 관객 혹은 신자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진다.
예수는 또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하나님에게) ‘왜 제게 독잔을 내리시나이까!’하고 원망한다.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비극의 주인공과도 같다. 그는 예정된 죽음이라는 비극에 고통스러워하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비극을 내리는 주체인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결국에는,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야기한다. '주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그의 이러한 모습들은 죽음과 삶 속에서 갈등하던 햄릿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Jesus Christ Superstar」에서의 예수는 단순히 인간의 껍질을 쓴 신적인 존재로서의 예수가 아닌, 신성성과 인간성이 양립하는 어떤 비극적 영웅으로서 재탄생한다.
Judas: 어느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한편 2천여 년의 세월에 걸쳐 악인으로 기록되어온 갸룟 유다에 대한 두 영화의 해석 역시 흥미롭다.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유다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성서 속에서 은전 30닢에 눈이 멀어 스승을 적에게 팔아넘긴 도적이었던 유다는 영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악인의 길을 택해야만 했던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탈바꿈한다.
「Jesus of the Nazareth」에서의 유다는 예수의 신실한 제자로, 예수를 진심으로 따르고 사랑했던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예수를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을지도 모른다.
극 중 예수가 자신의 열두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장면을 보면 유다의 예수에 대한 갈망이 잘 드러난다. 한동안 침묵이 감돌다가, 이내 베드로가 "당신은 메시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예수는 '네가 가장 복이 있구나'하고 베드로를 껴안는다. 이때 유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베드로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 중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가 말이다. 이후 카메라는 점점 그들을 멀리 비추고, 스크린 너머에는 예수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유다, 오른쪽에는 베드로라는 극명한 대비가 보여 진다. 하나는 예수의 수제자로서 죽어서도 예수의 뜻을 이어받은 가장 거룩한 성인으로, 다른 하나는 예수를 배반한 배신자, 다시 말해 가장 사악한 악인으로 기록되니 무척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예수에 대한 유다의 시선은 흡사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스승인 예수를 향한 유다의 순수한 숭배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다는 왜 예수를 배신했을까? 필자는 그의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의 원인을 유다의 예수에 대한 ‘유아적인’ 애정과 지나치게 순진했던 이상에서 찾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유다는 예수에 대한 어떤 어린아이 같은 애정을 품고 있다. 그는 예수가 설파한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계 속에서 앞으로의 유대가 나아갈 방향을 찾았고, 그를 통해 이룩될, 해방된 유대를 그린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이 세상에 더욱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훌륭함과 거룩함을 증명해보이기를 바란다.
언뜻 그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보이나 사실 이는 무척 단편적인 발상이다. 어린아이가 제 아버지의 유능함을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만하다. 그의 시야는 좁았고 마음은 급했다. 한시바삐 유대의 평화적 해방을 도모하고 싶은데, 예수는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만 갔으니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그가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학자 출신이었던 것은 이러한 견해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극 중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목수와 어부의 일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태어나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구원하고자하는 예수의 범인류적 차원에서의 뜻을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단 유대백성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의 장기적인 안목을 유다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라’던 예수의 말씀은 유다의 그러한 사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성서 속 유다의 악인으로서의 면모는 실제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제라’라는 새롭게 창조된 인물을 통해 대변된다. 「Jesus of the Nazareth」에서는 이러한 교활한 제라라는 인물을 통해 유다가 선인이었으며 제라를 비롯한 유대 제사장들의 음모에 넘어간 불쌍한 인물로 나타낸다. 예수가 잡혀가 채찍질 당하는 것을 본 유다가 제사장들에게 은전 30닢을 돌려주겠으니 예수를 풀어달라고 간청하자 그를 조소하는 제사장들의 모습은 그가 철저하게 이용당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Jesus Christ Superstar」의 유다 역시 「Jesus of the Nazareth」에서 마찬가지로 유다를 동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유다는 「Jesus of the Nazareth」에서보다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예수를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유다는 예수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값비싼 향유로 예수의 몸을 닦는 막달라 마리아와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는 예수를 질책하는 한편, 예수의 존재로 인해 유대의 백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등, 다소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예수의 태도와는 대비되는 이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신적 존재가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인간(그 것도 예수를 배신한 악인으로 알려져 있는)이 이성적으로 그려지는 아이러니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앞서 「Jesus of the Nazareth」에서 유다가 선인으로 표현되기 위해 ‘제라’라는 인물이 삽입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유다는 ‘신(Jesus)의 뜻에 의해’ 예수를 죽이게 된 운명을 타고난 불쌍한 인물로서의 자신을 어필한다. 으레 다른 성서를 기반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예수를 죽이게 된 죄책감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이때 "Poor Judas!"라고 외치는 앙상블이 울려 퍼진다. 이와 같이 영화의 전반에 울려 퍼지는 유다의 고뇌와 (배신의)결단, 그리고 후회 혹은 신에 대한 원망의 노래는 이러한 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잘 보여준다.
막달라 마리아: 진실된 사랑을 행한 여성제자
이 밖에 성서나 「Jesus of the Nazareth」의 내용과는 달리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비중이 크게 다루어진 것 또한 인상 깊었다. 전자의 작품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마리아는 후자에서 예수에게 가장 진심어린 위로와 위안을 주는 사람이자, 그에게 가장 진실 된 사랑을 느끼는 여인으로 승격된다. 그녀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사람이자, 여느 열두 제자보다도 예수를 믿고 따랐던 여성제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녀의 예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떠올랐는데, 마리아가 수행한 여러 가지 역할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애정은 아마 신에 대한 신앙과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과 인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사랑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리라고 사료된다. 단순히 하나의 구체적인 감정으로 해석되기에는 그녀의 행동들은 다각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비교: 클래식과 록 오페라
두 작품의 형식적인 차이는 이러한 각기 다른 관점의 해석에 걸맞게 나타난다. 「Jesus of the Nazareth」는 기독교 문화를 전도함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성서의 내용을 살려 표현하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영화는 장장 6시간에 걸쳐 다소 엄숙하고 거룩한, 그러나 예수의 위대함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그려냈다. 이때 무조건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를 따라나서기 전에 약 하루 간 갈등하는 장면, 영화를 위해 창조된 인물인 제라, 선한 인물로서의 유다 등 영화적 장치와 현대적 재해석에 의한 약간의 변용이 나타난다.
한편, 「Jesus Christ Superstar」에서는 록 오페라의 이색적인 형식을 차용하여 보다 대중이 성서에 접근하기 쉽도록 성서의 내용을 각색했다. 흥겨운 노래와 춤들, 그리고 현대적 복장과 소품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리로 가게끔 한다. 이 과감한 시도는 성서 속의 인물들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과 맞물린다. 이때 「Jesus Christ Superstar」에서의 현대적 요소들(건축물, 소품, 복장 등)은 스크린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현대의 이야기인지 과거의 이야기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데, 이는 분명히 의도된 장치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할 때 흰옷의 입은 유다는 예수의 존재와 희생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는 비단 예수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관객인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가 어떤 존재였으며 그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 인물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두 작품에서 나타난 예수와 유다에 대한 색다른 시각은 놀랄만하다. 두 작품에서 두 사람은 단순히 선과 악의 차원에서의 평면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성서의 이면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한번 상상해보자.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밖에도 성서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서양 문화권에서 그만큼 기독교 문화가 깊게 뿌리 박고 있음에 기인한다. 수 많은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예수가 되기도 하고, 유다가 되기도 하며, 때론 막달라 마리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 혹은 성서 그 자체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은 서양 사회 전반을 즐겁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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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추억, 그 어디쯤에서 기억될 여행
이 영화는 어느 부녀의 터키 여행을 그린다. 겉보기에는 친구 같아 보이지만 이 부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고 서로 간의 벽이 있다. 어딘가 나이에 비해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와 조숙한 편이지만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딸아이의 여행, 이 여행은 과연 잘 끝날 수 있을까?
1 .영화 속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의 기운
이 영화는 세 가지의 시점을 가진다. 소피와 아빠 캘럼이 여행하는 과거 시점, 어두운 클럽 안에서 해매이고 있는 캘럼의 모습,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여행을 어른이 된 소피가 지켜보는 현재의 시점이 있다. 부녀의 과거 여행 시점에서는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자고 먹고 수영하고 간혹 가다 게임하고 이혼 가정의 부녀가 간만에 만나 할 법한 웬만한 일들을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이들 부녀가 공유하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면 '우울감'이 될 것이다. 소피가 침대에 누워 마치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는 캘럼의 모습을 통해 캘럼이 느끼는 우울함을 소피 또한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캘럼은 소피와 함께 있을 때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은 아빠이지만 혼자 있을 때 그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사람이기에 소피의 말에 캘럼은 찔렸던 듯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캘럼의 우울은 점점 가시화된다. 그에게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데 캘럼은 그 어떤 공동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지난날이 있었지만 안정은 찾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소피와의 관계가 살짝 삐끗하자 갑자기 한밤중에 바다로 성큼성큼 뛰어들어가기도 하고 소피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호텔방에 와 혼자 오열하기도 하는 그의 행동을 통해 그가 소피와의 이번 여행을 끝으로 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2. 클럽씬이 가진 의미
중간중간 등장하는 클럽씬에서 캘럼은 향락적인 불빛이 난무하는 어둠 속에서 해맨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장면은 왜 계속 등장해 몰입을 방해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영화가 가진 루즈함을 전환시키는 화면이기는 하지만 뜬금없고 어둠이 지배해 인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루즈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캘럼이 어둠 속 클럽을 해매는 모습을 통해 마치 소피가 아빠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꿈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클럽 장면에서는 글리치처럼 전개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클럽은 소피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락의 공간에서 춤을 추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빠를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 끝내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는 연출을 통해 소피가 아빠에 대한 기억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길을 잃은 영혼의 종착지처럼 죽은 캘럼의 영혼과 현생의 소피의 영혼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예상해 보건대 현재의 시점에서 캘럼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장면, 여행이 끝나고 소피와의 작별 후 카메라를 끄고 허탈하게 공항 문을 열어 클럽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통해 캘럼은 심연, 소피의 무의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죽었고 여행 직후 죽은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 그들은 계속 여행을 카메라로 기록하는데, 그 녹화된 테이프를 감상하는 현재의 소피 또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그가 느꼈던 우울을 느끼는 듯하다.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 재기발랄한 소피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소피는 무표정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다.
3. 독특한 연출
이 영화는 감정 관계를 명쾌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감정을 다른 물건의 잔상에 숨겨버린다. 꺼진 티비에 비친 부녀의 모습을 관객이 관찰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 보여주기도 하고 거울을 이용하기도 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기도 한다. 직관적인 시각보다는 어떤 물체에 비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연출로 부녀의 시시껄렁한 농담과는 달리 이들 부녀는 각자의 속마음을 한 겹씩 숨기고 있음을 강조한 것 같다. 관객들이 솔직하지 못한 부녀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클럽씬의 묘사만큼이나 독특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연출을 꼽는다면 엔딩 씬의 카메라 워크를 들 수 있겠다. 마지막 씬에서 여행에서 소피와의 작별을 녹화하던 캘럼의 카메라가 녹화를 멈춘다. 이후 카메라의 시선이 녹화본을 보고 있는 어른 소피의 방을 비추고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또다시 옆으로 움직이며 클럽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캘럼의 모습을 논스톱으로 담는다. 이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인데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이 마치 소피 없이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한 캘럼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4. 총평
영화에서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그들의 휴가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왜 우울한 것인지, 이들 부녀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등 디테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불친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상상의 여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여행 막바지에 그들은 춤을 추는데 이 장면에서 가족 간의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을 한다면 이전부터 알 수 없던 춤을 추던 캘럼이 소피와 함께 춤을 추며 자신의 인생의 화양연화를 맞이하는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과거에 소피는 캘럼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함께 춤을 춰주는 소피의 모습을 통해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캘럼이 소피에게만큼은 이해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소피의 이해로 그의 인생은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른이 된 소피에게 큰 잔상을 남겼을 이 여행에서 카메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메라 녹화본을 보면서 아빠와 나눴던 대화, 사춘기 시절 첫 키스를 하며 이성에 눈을 뜨는 과정 등등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 녹화본은 자신은 없는 미래에 남겨질 소피에게 아빠가 전하는 사랑이 담긴 유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녹화본을 보는 소피에게 터키 여행은 여전히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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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저에 탄 소녀 리뷰 - 무엇이 그녀를 불도저에 태웠는가 (스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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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현실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다.
드라마 ‘SKY캐슬’,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강단과 순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혜윤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한다. 실제로 김혜윤은 직접 불도저를 다루며 혜영 역할을 위해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인물의 들끓는 내면을 온몸으로 표출해 열정을 불태웠다.
개성파 연기자 배우 박혁권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경찰수업’, ‘쌍갑포차’ 등의 오만석 배우, 또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예성이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사회를 향한 관점과 인물에 대한 시선으로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성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현재를 가리키는 시의성을 더해 공감을 이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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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방민아 배우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방민아 배우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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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크 로드>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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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X를 날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정체불명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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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제로부터 온 편지> 메인 예고편
1845년, 사제직에 오른 첫 조선인이 탄생한다.
그의 이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천주교를 향한 온갖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그는
서양 성직자 입국 해로 탐색 도중 체포되어,
25년 25일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한국인 사제로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향한 여정을 걸었던 청년 김대건이
2021년,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을 청년들에게
격려와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