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3-09-30 23:45:11
대의를 위한 희생
드라마 <비밀의 숲 1>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남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내가 해야만 한다.
이것이 나의 시작이길 바란다.
'비밀의 숲'의 슬로건은 내부고발 스릴러이다. 하지만 내부고발 이라는 말은 황시목이 검찰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내부 고발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이창준이었다. 황시목은 이창준의 계획을 실행시켜 줄 존재였던 것이다. 괜히 이창준의 빅 픽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창준이 살인범이라는 죄질이 희석되지는 않는다. 이창준의 박무성이라는 비열한 사람을 죽이는 명분은 망가진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 그래서 이창준의 인형으로서 윤세원이라는 인물이 등장한 것일 테고. 그러나 여진의 대사처럼 그렇게 가족이 살해당해서 가슴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은 널렸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명분만 따지고 본다면 이해를 못할 것은 없고, 결과적으로는 이들의 정의롭다면 정의롭고, 엽기적이라면 엽기적인 내부고발은 절반 이상의 성공은 이루었다. 드라마 상에서만 보았을 때, 더러운 권력의 핵인 이윤범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들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 모든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서 한 남자가 죽어야 했고, 한 여성이 죽음의 문턱에서 해매야 했던 것들이 정당한 방식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나의 내면에서 계속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분명히 잘못 된 방식이었지만 그들의 동기의 원천은 선한 감정에서 출발했기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더 의문이 드는 것은 그들이 살인이라는 비인간적인 화두를 던져서 결국 기득권들을 고발하는 방법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무도 해하지 않고, 비리 파일들만을 가지고 내부 고발을 진행했다면 비리 파일 속 인물들을 모두 구속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후자를 택했다면 오히려 역공을 당해서 이창준이라는 인물까지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오해하지 마시길. 나는 지금 살인자들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박무성과 김가영, 두 피해자들은 결코 인생을 정의롭게 살았다고 평가받을 수는 없는 사람들이기는 하였으나 이들을 죽음으로써 단죄할 사람들은 이들에게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에게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분을 풀 수 있을까? 당연히 살인이라는 방법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박무성과 김가영, 더불어 고위급들이 언젠가 저주 받을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닿게 되었다. 참, 이것이 드라마 상이라지만 살인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나니 쓸데없는 잡념이 생겨서 답답한 마음만 들었다. 검사, 경찰과 같은 정의를 따져야 하는 직업은 정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단한 직업이겠다 하는 오지랖까지 생겨버린다. 정말.
한 가지 재밌었던 부분은 황시목 검사가 마지막에는 환하게 웃었다는 것, 그가 조금씩 감정에 솔직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서동재 검사는 여전히 바뀌질 않았다는 것. 비리 검사는 처음부터 비리 검사이기를 타고 났다는 건가 싶었다. 서동재 검사의 마지막 컷에서는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진심 이 드라마는 스토리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구멍이 없다. 시그널 이후로 참 좋은 드라마 하나 보았다. 그에 상응하는 시청률이 안 나온 것은 좀 아쉽지만 나만 아는 드라마 하지 뭐. 뭐 이젠 다 아는 웰메이드 드라마이지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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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된 ENFJ를 위한 따뜻한 영화 추천
봄바람이 살랑하는 계절이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있는데요! 일교차가 커도 너무 큰 요즘! 날씨 따라 기분도 오락가락, 마음도 싱숭생숭...
나만 이런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문제를 뿌셔뿌셔봐야겠어! 기.승.전.MBTI 가 되는 매직! 이렇게 사람들에게 엠.며.든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제일 낮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형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바로, ISTJ (a.k.a 꼰대) 유형과 상극이라는 ENFJ 유형인데요! 한국인 중 가장 많다는 ISTJ와 상극이어서일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을 좋아하는 이타적인 ENF형은 한국에서 ISTJ들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거나, 외국으로 도피했나 봅니다.
정의로운 사회운동가형 ENFJ는 사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봐도 15위로 굉장히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매우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으며 감성적이지만, 동시에 계획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며 적극적이기도 한 이 유형은 모두의 행복, 즉 이상을 꿈꾸며 나아가는 유형입니다.
진실된 ‘관계’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ENFJ형들을 위해
다양한 유형과 형태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추천 영화와 함께 찾아왔습니다!잇츠 CINE PICK!
금발이 너무해 (2001)코미디, 드라마 | 미국 | 97분 | 12세
감독 : 로버트 루케틱 / 출연 : 리즈 위더스푼, 루크 윌슨, 셀마 블레어"
You must always have faith in yourself.
엘 우즈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금발의 소유자이다. 학교에서 남자는 물론 같은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인 그녀는 장학생이며, 캠퍼스 캘린더의 모델이기도 하다. 거기에 하버드 법대에 다니는 남자 친구 워너가 있어 그야말로 남부러울게 없는 짜릿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자 친구 워너가 특별한 저녁을 함께 하자고 요청한 자리에서 워너는 그녀에게 자신은 미래 지향적인 여자를 원한다며 "지나치게 금발(too blonde)"이라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다.
엘은 비탄에 잠긴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엘, 그녀는 자신은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결심한다. 그리곤 워너가 다니는 하버드 법대에 들어갈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씨네pick : 금발=백치미 라는 말도 되지 않는 속설을 통쾌하게 비꼰 <금발이 너무해>는 2001년도 작품임에도 지금 봐도 매우 트렌디한 영화죠. 금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뻥 차이고, 그 길로 하버드 법대에 입학까지 한 그녀는 여전히 금발미녀라는 이유로 자칭 엘리트들에게 무시 당하고 성희롱까지 당하지만, 세상에 자신이 바비일 수 있어도 남들을 위한 인형이 아니라는 걸 화려하게 증명해내는 매우 클래식하지만 의미있는 영화입니다.엠마 (2020)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 영국 | 124분 | 12세
감독 : 어텀 드 와일드 / 출연 : 안야 테일러 조이, 미아 고스, 빌 나이It's such a happiness when good people get together.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영리하고 예쁜 아가씨 ‘엠마 우드하우스’가 마을 사람들의 중매에 나서면서 자신 역시 감정의 혼란을 겪으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이야기
씨네pick :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의 주인공이자 제인 오스틴이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라고 알려진 ‘엠마’는 중매를 통해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꾸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고 살아온 상류층 숙녀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려운 사람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그녀는 매우 선량하고도 활달한 사람인데요. <엠마> (2020)은 TV드라마, 영화 등 끊임없이 각색된 작품 중 가장 최근 작품인만큼 입체적이고 트위스트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그리고 최근, <퀸즈 캠빗>을 통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안야 테일러 조이’의 통통 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덤!인사이드 아웃 (2015)애니메이션, 코미디 | 미국 | 102분 | 전체
감독 : 피트 닥터 / 출연 : 에이미 풀러, 필리스 스미스, 민디 캘링It's all right,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We'll make you happy!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그곳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들. 이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바쁘게 감정의 신호를 보내지만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자 '라일리’의 마음 속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라일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이 본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엄청난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머릿속 세계에서 본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과연, ‘라일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씨네pick : 작품 자체가 MBTI와 찰떡인 영화죠. 사람은 모두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복합적이라는 것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11살 아이의 ‘감정’을 주로 다루고 있는 감동과 재미를 모두 다 잡은 영화는 가장 창의적이고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평을 받은 작품이니만큼 별다른 추천사가 필요할까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픽사의 크레딧을 빌려 “Please don’t grow up, ever.” 언제까지나 그 때의 모습이길 바라겠습니다.항상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당신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만큼은 씨네픽 추천 영화 속 인물들에게 세상을 맡기고
잠시 영화로운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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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내면을 뒤흔든다
영화 <하얼빈>이 개봉된 후 극장가와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관객은 이 작품을 ‘엄숙하게 다시 써 내려간 독립운동의 한 페이지’라고 평하고, 또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들면서도 담담하게 흘러가는 독특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개봉을 기다려온 사람들 중에는 앞서 안중근을 다룬 여러 작품을 기억하는 이도 있고, 이제 막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사적 역할을 자세히 접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언제 이런 순간이 다시 와도 우리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곱씹으며 극장을 나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무겁고도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영화 속에서 안중근(현빈 분)과 독립 투사들은 러시아와 만주가 뒤섞인 복잡다단한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하얼빈을 활동 무대로 삼는다. 시대는 1909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이미 조선 땅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과 동지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필사의 싸움을 이어간다. 그들은 하얼빈의 얼어붙은 기차역, 어둡고 취약한 뒷골목을 거점 삼아, 비밀리에 정보를 교환하고 작전을 짜낸다. 눈 내리는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국으로부터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거대한 제국의 압박은 점점 더 거칠게 이들을 죄어 온다.
그러나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처절한 현실을 단순히 영웅적 의지로만 채우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눈앞의 죽음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주변을 살펴보면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며,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주장하는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하얼빈>은 ‘독립 투쟁’의 표면 뒤에 묻혀 있는 수많은 난관과 엇갈린 이해관계, 인간적인 번민을 담담하게 그려낸다.독립 투사들의 인간적 번민
이렇듯 실제 역사적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향해 치닫는 과정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안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관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과, ‘한 사람의 인간 안중근’이 겪는 작고 숨 막히는 고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이런 부분에서 <하얼빈>이 이전에 안중근을 다뤘던 영화 <영웅>과 <도마 안중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영웅>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틱한 감정선에 강점을 두어,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와 함께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들로 극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반면 <도마 안중근>은 안중근의 재판 과정과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품고 있던 신념,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부각해, 그가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신앙적·윤리적 갈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완성도를 떠나 이런 시도들은 '안중근' 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에 비해 <하얼빈>의 안중근은 묵묵하고, 동시에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안중근이 태생부터 ‘결단력으로 가득한 의인’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 존재로 나타난다. 스스로가 택한 길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길에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와 가족, 동지들의 희생,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인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영웅서사로만 보면 희생과 결단이 낭만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안중근의 심리적 고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가 비추는 장면들을 보면, 먼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길’이라는 명분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직시하게 된다.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토록 거대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혹은 일이 성공한 뒤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대일까 하는 걱정 또한 안중근의 머릿속에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부의 신념,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겹치며, 그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를 매우 건조하고 진지한 톤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안중근의 인간적 고민들
안중근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 매우 또렷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실패와 죽음을 예견하는 일이다. 배후 세력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지를 안전하게 마련할 방법도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국은 더욱 식민지화되어 간다. 반역자나 스파이의 위협도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너무나도 불리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를 고뇌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가 만일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알을 꽂는다면, 적어도 전 세계에 조선을 도살장에서 끌려가는 짐승 취급하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토는 일본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침략 정책의 주체였으므로, 그를 제거한다는 행동이 동아시아의 정세에 어떤 충격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안중근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즉, ‘나라가 망할지언정, 우리 민족의 끈질긴 투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나와 동시대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다시 안중근을 떠올려야 할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의 행위는 단순히 ‘역사적 의거’가 아니라, 억압받는 개인과 국가가 저항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치열한 대립 구도를 안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때로는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쥐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계엄령이나 내란과 같은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할 정도로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100여 년 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안중근의 ‘간절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총성은 단순한 살상 행위가 아닌, 더 넓고 깊은 맥락에서 ‘정의를 외치는 나팔소리’였고, 그 울림은 우리 사회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독립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암시를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비친다. 역사적으로도 알고 있듯, 안중근 이후로도 독립운동은 수많은 형태로 전개되었다. 만주 벌판을 누비는 무장투쟁 세력부터 해외 각지의 외교 활동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해방’을 꿈꾸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로 그 끈질긴 의지를 오늘의 관객에게도 전해주면서, <하얼빈>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힘들다고 해서, 혹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 서선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이러한 격려는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힘이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의 정치상황
물론 <하얼빈>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느리고, 말 그대로 ‘건조한 듯 진지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투 장면이나 의거 장면에서 극적인 음악과 연출을 더해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우민호 감독은 이를 절제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분에 영화 전체가 허황된 영웅주의에 기댄다기보다는, ‘정말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고민했겠구나’라는 현실감을 심어준다. 관객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 인내 끝에 오는 묵직한 감동이야말로 <하얼빈>이 가진 특별한 강점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안중근을 맡은 현빈의 연기는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말없이 굳센’ 동시에 ‘내면의 흔들림이 분명한’ 상태로 끌고 간다. 대사를 통해 감정을 일거에 폭발시키기보다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다짐을 되뇌는 듯한 미묘한 눈빛 변화로 캐릭터의 심리를 전달한다. 동지로 나오는 조우진, 유지태, 전광렬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거창한 애국심을 노래하기보다, 항시 떠나는 자들의 슬픔을 눈빛으로만 보여주고, 은밀한 접선을 기다리는 초조함을 낮은 목소리로만 드러낸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웅장한 역사극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 역시 이런 연기에 잘 어우러진다. 그는 이미 <내부자들>, <마약왕>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번 <하얼빈>에서는 더욱 절제되고 묵묵하게, 시대의 풍경을 탁하게 그려내면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극적인 클로즈업 대신 인물들을 배경에 작게 배치한 채, 눈 쌓인 하얼빈 거리나 기차역 풍경과 함께 묘사함으로써 시대적 고독과 혹독함을 배가시킨다. 덕분에 영화의 미장센이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서늘한 느낌을 전달한다.
결국, 지금 계엄과 내란의 기운이 감돈다는 뉴스가 흘러나올 정도로 정치적 혼돈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얼빈>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온전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다. 그 정신을 잊은 채, 그저 분열과 힘겨루기에 빠져 있다면, 과연 우리는 100년 전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안중근의 망설임, 결단, 그리고 최후의 총성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혹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이 작품이 단지 ‘역사 재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한 독립군의 정신, 잃지 말아야 할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가 진정한 <하얼빈>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치적 혼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 시점에 더없이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마음 한구석에 새겨야 할 작품이다. 어쩌면 그것이 <하얼빈>이 우리에게 주는 ‘차분하지만 강력한 울림’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만 치부하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도 절실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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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그 이상을 상회하며 끝까지 간다
'반인륜적인 행동'하면 무엇이 있을까? 롤 하다가 상대 팀 라이너에게 부모 욕 하는 뭐 그런 거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묻는 것이다. 아마 범죄라는 이름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사람을 패 죽이거나 살인을 하거나 뭐 그런 것들이 반인륜적 행위에 들어가겠지? 우리 대부분은 이런 행동을 할 일이 없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고 대학생 때 놀고 직장인 때 돈 모아서 결혼 해 잘 사는 게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 또 우리의 일상은 타인을 사랑하기도 바쁘니 누구를 때릴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이런 반인륜적인 행동은 때에 따라서 합리화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승리한 사람의 것!이라는 말 다들 알고 있잖아? 지금 2021년 12월 한국에서 그걸 따지기엔 이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거슬러 올라와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것 같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건 무슨 말을 대서라도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라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세계의 부조리와 함께하고 있다.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근데 세상이 언제 마음대로 됐었나. 이런 부조리에 의한 살육극이 60억 인구 중 한 곳에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뉴스와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마주한다. 이 영화 역시 그것을 소재로 한 스릴러/호러 장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이에 힘입어 올해 국내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이 덕인지 뭔지 나는 이 작품이 생각 외로 너무 좋았어서 4천 5백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여러분도 이 작품을 보는 걸 추천한다. 아, 다행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호러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헌트>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힐러리 당시 후보의 경선이 신물 나게 싫었던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영화였다. 구체적으로, 인간 사냥이라는 키워드를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풍자로 녹여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꽤나 재미있게 봤다. 내가 좋아하는 <킬 빌>에 대한 오마주도 있고 액션도 사실적이라서 몰입하기 좋았다. 또, 올해 개봉했던 작품 <레미제라블>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우발적인 사고가 점점 커져 한 도시에 폭풍이 휘말리는 것이 영화의 플롯이다. 끝도 없이 폭발하는 텐션에 보고 나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뭐 그런 영화였다. 이 작품 역시 좋은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바쿠라우>는 둘을 합친 것 같은 영화다. <헌트>의 강점은 장르영화가 가진 장점, 그러니까 '사람을 사냥한다'라는 점에서 오는 서스펜스라고 생각한다. 또 수위가 갈수록 높아져서 '이러다가 진짜 사람이 더 잔인하게 죽겠다'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게 영화가 가진 장점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이 집중되게 도와준다. <바쿠라우>는 이 <헌트>의 강점을 공유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점점 극단적으로 발산하는 에너지가 몰입을 잘 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강한 에너지가 그냥 자극적이라서 좋은 게 아니다. 사람 목 잘리고 샷건으로 머리가 터지고 하는 장면이 바쿠라우의 시민들이 가진 화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좋은 연출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잔인한 수위와 함께 영화의 엔딩까지도 와르르 폭발하니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안성맞춤이다. 온통 들끓어 오르는 분노가 사람을 사로잡는, 그런 뜨거운 영화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깊은 탐구
여러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모두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그 이유가 어떤 정치인의 사주, 그러니까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헛웃음을 칠 것이다. 요즘은 또 인터넷이 잘 돼있어서 이런 짓을 하면 금방 티가 날 것이다. 이 <바쿠라우>는 한 인물을 지지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말 안 듣는다고 집단학살을 벌인다. 좀 웃기지 않나? 근데 이게 표현을 극단적으로 해서 그렇지 조금만 바꾼다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려고 드는 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이건 물어보나 마나 한 이야기다. 근데 몇몇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못살게 구는 것을 정당화한다. 어느 나라건 이런 다른 사회계층을 모욕하고 혐오하거나 반대 여론을 찍어 누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거부감이 드는 행동에 가하는 정당한 비판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혐오범죄로 이어진다면 당연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 <바쿠라우>는 이런 몰상식한 일을 초극한으로 비꼬며 우리에게 단적으로 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작품은 브라질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엔 긴 것 같으니 다음 문항(?)에 이어 써야 할 것 같다.
왜 허구치고 리얼한가 했네
물론 이 '바쿠라우'라는 도시는 실존하지 않는다. 황석영 작가의 <삼포 가는 길>처럼 가상에 존재하는 도시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벌어 나는 갈등이 브라질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가령 도입부에 바쿠 라우에 물 수급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물 공급 문제는 브라질 동북부의 오랜 과제였다. 1987년 아마존 투루 쿠이 댐의 원주민 주거지 40ha가 댐에 의해 매몰된 전력이 있고 2019년에는 광산 재벌이 댐 공사를 독단적으로 진행하다 256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물을 원활하게 주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던 브라질. 주민들의 땅을 개간해서 물 공급 이슈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거주민들을 내쫓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브라질의 정권을 잡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극우주의를 표방하며 이 원주민들의 거주권 따위 1도 신경 쓰지 않는 행보를 보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살 터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또 있다. 2019년 7월, 한 브라질의 가톨릭 단체는 근래에 원주민들을 살해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발표했다. 2017년엔 110여 명, 2018년엔 135명이 살해당했다고 하니 나름 심각한 문제다. 기록이 2018년까지만 있어서 내가 개인적으로 네이버에 ‘브라질 원주민 살인사건’이라고 검색하니 다른 기록도 나왔다. 2020년에 BBC에 의하면 어떤 아마존 보호 운동가가 총격전에 의해 피습당했으며 비슷한 사례가 6개월간 5번째 기록됐다고 한다. 또한 브라질의 벌목꾼들이 원주민을 살해하고 아마존을 태우는 등 자국민에 대한 살인 행태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근데 설상가상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마존은 파괴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고 하니, 이 사람은 이런 피비린내를 맡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2020년 1월에는 개발업자와(외지인) 원주민간의 법적 분쟁에 있어 전자의 편을 드는 조항을 만들었단 기사까지 있으니 이 <바쿠라우>가 현실을 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심지어 2019년 8월의 연합뉴스 기사에 원주민들이 외지인들을 쫓아냈다는 기록도 있으니 이 영화는 현실을 고도로 비꼰 우화로 보는 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쉽고 간단하게 예술성 있게
'한 정치인에 의해 사주받은 용병들이 마을의 거주민들을 학살한다'가 줄거리의 개괄이다. 간단한 스토리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지만 일단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에너지와 서스펜스가 몰입을 도와줘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 현재 브라질의 정치현실에 대해 비꼬는 화법을 가졌다고 하는 것도 눈치채기 어려운 게 아니다. 킬러들끼리 서로 살인하는데 비해 지역주민들의 유대감이 끈끈한 것만 봐도 어떤 태도로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니 영화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분들이라도 '이건 이 생각으로 만들었겠네' 눈치챌 것이다. 또 액션이나 미술에 있어서도 영화는 간단하고 쉽다. 모든 액션 영화에서, 총기를 실제로 쏠 일은 없지 않은가? 컴퓨터 CG나 미술팀의 열일이 결과물을 만든 것일 텐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아. 충분히 모를 수 있기에 휙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후반부에 어떤 인물이 생각을 갑자기 바꾸는 듯한 장면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나 킬러들이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사람에게 총질한다는 점이 경우에 따라서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듯. 또 현재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바쿠라우의 시장처럼 반지성주의자라고 하니 이런 암시나 비유가 쉽게 딱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브라질의 정세까지 신경 쓸 일은 없을 테니 이 부분을 모른다고 해서 뭐 수준 이하의 인간이 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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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씨는 다운증후군 정신으로 갓생사는 셀러브리티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 역을 맡은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로 출연한 배우가 화제이다. 장애 당사자가 직접 다운증후군 역할을 맡아 열연하였는데, 화면에 등장하는 초상화 그림을 모두 직접 그렸음이 알려지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본명은 정은혜이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담은 <다섯 개의 시선, 2005>의 단편 극영화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로 데뷔하였다. 1990년생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 영화를 찍었고,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들어서는 초상화 작가 정은혜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영화 <니 얼굴, 2020> 포스터
<얼굴은 가장 처음 남에게 보여주는 나의 정체성>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이 보편화되어 남들에게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얼굴은 가장 처음 남에게 보여주는 나의 정체성이다. 은혜의 얼굴은 은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은혜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각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들을 꺼내 이리저리 조합해보며 판단하는데, 머릿속에 다운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 생채기를 내는 오류를 산출하기도 한다.
은혜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으면 휴대폰 카메라로 사람들의 얼굴부터 찍는다. 그리고 약 20분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얼굴을 종이 위에 선으로 옮긴다. 북한강이 보이는 양평 문호리 리버 마켓에서 비, 바람, 눈과 맞서며 손이 툼툼(!)해질 때까지 더운 날에는 시원한 것으로, 추운 날에는 따뜻한 것으로 속을 달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가 그린 초상화는 2000장을 넘겼고, 아직도 매일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은혜는 사람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관찰하며 관계의 부재로 외로웠던 시간들을 20분씩 달랜다. 20분 동안 은혜를 채워준 사람들은 은혜의 눈으로 본 각자의 얼굴을 보며 꽤 오랫동안 은혜를 떠올릴 것이다.
은혜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리며 성장한다.
<신파 없이 장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
다운증후군은 혈액 검사를 통해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임신 중에도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예비 엄마들은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졸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약간의 확률로 다운증후군일 수도 있다는 수치를 받아 들면 아직 태어난 아이에게 세상의 빛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법적으로 다운증후군인지 아닐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확률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된 태아는 죽어도 괜찮은 생명이다. 확실히 다운증후군인 아기가 어쩌다 운이 좋게 죽음을 면하고 엄마 뱃속을 나온다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들은 울음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다. 사람들은 발전된 의학 기술을 두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엄마의 게으름과 무능을 탓하는 말을 먼저 내뱉을 수도 있다.
영화 <니 얼굴>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희생이나 비장애 형제자매의 상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다니다 무너져 내린 가정 경제 시스템 등이 보이지 않는다. 은혜를 중심으로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러다가 자연히 딸려 나와버린 것들은 잔가지 쳐내듯 잘라내 버렸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 영화, 글, 시위 등으로 이미 이전에 충분히 세상에 이야기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하지 않아 우리가 잘 몰랐던 것일 뿐.
영화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 2006>
<다운증후군 정신으로 갓생사는 셀러브리티>
1996년 제49회 칸 영화제에서 다니엘 오떼유와 파스칼 뒤켄이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다니엘 오떼유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파스칼 뒤켄은 벨기에 출신으로 칸의 장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영화 <제8요일, 1996>에서 비장애인과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파스칼 뒤켄은 배우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다운증후군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성찰을 약속하는 박수로 화답하였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의무고용률에 못 미치는 장애인을 고용한 경우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납부하도록 법에 명시하였다. 2021년 한 해 동안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대신 정부에 납부한 돈이 모여 7000억이 넘었다. 장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을 달라고, 가족들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 달라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느라 은혜 엄마는 하얗게 세는 머리를 기를 새가 없었다.
정은혜 작가가 삽화를 그린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람씨의 행복한 직장생활>
앞으로 은혜씨는 청소 담당 직원, 작가, 배우, 크리에이터 등의 사회적 언어로 '다운증후군 정신으로 갓생사는 셀러브리티'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힘들 때는 짜증을 내고, 신이 날 때는 소리 내어 웃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폭풍 뜨개질을 하는 별 것 아닌 것들을 보고 우리들은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면 된다. 인기가 많아서 피곤한 셀러브리티의 숙명을 은혜씨는 투덜대면서 즐길 것이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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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투게더> -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Happy Together)
개봉일 : 1998.08.22 (한국 기준)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양조위, 장첸, 관숙의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다시 시작하자” 보영의 한마디에 아휘는 흔들린다. 보영과 아휘는 연인이지만 연인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전부 내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깨지고 짧은 한마디로 겨우 다시 접합해놓은 사랑.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균열을 풀칠 몇 번으로 이어온, 어쩌면 지겹게도 느껴지는 사랑. 충분히 아프고 또 아팠으니 이 또한 사랑이었겠다.
1995년.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흘러가고 있던 시간을 이 영화를 통해 붙잡아본다. 저녁 8시, 도시는 바쁘게 반짝이고 보영과 아휘는 작은 집안에서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갈라서고, 다시 시작한다.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라곤 한 손에 꼽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돌아갈 고향을 꿈꾸며 아휘는 보영을 놓지 못한다.
보영 역을 맡은 장국영과 아휘 역을 맡은 양조위의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펼쳐지는 97분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며칠 전 4월 1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영혼을 탈탈 털어가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잡아탄 택시 라디오에서 장국영의 To You가 흘러나왔고, 저녁 7시 반쯤이 되어서야 알았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사실 난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는 내가 10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근데 난 왜 성장기를 같이한 것도, 동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닌 저 먼 곳에 있는 그의 눈을 보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걸까. 기분이 묘하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시대를, 발 한번 붙여보지 못한 도시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랑의 형태를 내가 받아들이기 버거울 만큼 아련하고 반짝이게 표현해낸 영화였다.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아프게 가슴을 찔렀던 사랑이 속절없이 절벽 밑으로 추락한다. <해피투게더>는 그 사랑의 단편적인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해피투게더 시놉시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과 ‘아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두 사람은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점차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하지만 ‘보영’의 변심이 두려운 ‘아휘’와 ‘아휘’의 구속이 견디기 힘든 ‘보영’은 또다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다시 시작하자”
보영은 속절없이 깨져버린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다시 시작하자.”.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다 길을 잃은 이별을 선택하지만 보영은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당연하게도 보영의 한마디에 휘둘린다. 사랑하니까, 잊을 수 없으니까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휘는 보영과 이별을 하고 탱고바에서 일하며 보영보단 고향인 홍콩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때 두 사람의 순간들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아휘의 곁을 맴돌던 보영이 아휘의 삶으로 다시 들어온 순간, 화면에 청록빛의 색채가 드리운다.
보영은 아휘에게 담배를 빌리고, 아휘의 담배로 불을 붙이고, 아휘의 침대를 차지한다. 아휘는 보영을 집에 들이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자신은 소파에, 보영은 침대에. 크지 않은 집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명확히 나눠 두려 한다. 하지만 보영은 아휘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와 소파를 붙이고, 좁은 소파에 누운 아휘의 옆을 파고든다.
보영과 아휘의 사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갑과 을에 가까웠다. 헤어지는 것도 다시 만나는 것도 보영의 뜻이었고, 아휘는 그에 따를 뿐이다. 근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휘는 손을 다친 보영을 보살폈고, 돈이 없는 보영에겐 아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휘는 보영의 옷 안에서 여권을 발견하고 그것을 숨겨놓는다. 보영이 가진 대부분의 것들이 아휘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다.
아휘는 보영을 보살피며 지겨울 만큼 끈덕진 사랑을 느낀다. 감기 몸살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날에도 밥이 필요하다는 보영의 한마디에 일어나 밥을 볶았고, 밤중에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보영의 말을 듣고 선반에 담배를 한 움큼 쌓아놓는다. 탱고바에서 일하는 게 싫다는 보영의 말에 설거지 일을 구했고, 아픈 보영을 보살피는 게 행복했다. 손이 낫고 나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면 그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차라리 보영의 손이 낫지 않았으면 하는 슬픈 바람도 가져본다.
“넌 항상 제멋대로 하잖아.”
여러 번 깨어진 사랑에 단단한 신뢰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아휘는 여권을 찾는 보영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여권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휘는 처절하게 사랑의 환부를 잡아보지만, 보영은 그를 외면한다. 두 사람은 또다시 이별을 맞이한다. 몇 번째 이별이었을까.
“네가 불행한 게 느껴져.”
아휘의 친구이자 동료인 ‘장’은 어릴 때 눈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 인물이다. 그는 곧 일을 관두고 세상의 끝에 있는 등대에 갈 거라는 목표를 가진 청년이다. 장은 아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목소리에 묻어나는 슬픔을 가늠해본다. 사랑하는 연인도 들어주지 않았던 아휘의 슬픔. 장은 그것을 담아 세상의 끝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 등대에 도착한 장은 아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음기를 틀어본다. 녹음기 안에 담긴 건 흐느끼는듯한 소리뿐이었다. 그 흐느낌이 말하고 있는 슬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장은 아휘의 흐느낌을 들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휘가 이별의 아픔을 담은 흐느낌을 녹음기 안에 담아내고 있을 때, 보영 또한 이별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끝났다. 아휘는 도살장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물로 씻어내며 보영의 지겨운 에피소드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젠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완전한 끝을 맞이했음을 알게 된 보영은 담배를 잔뜩 사들고 아휘의 집을 찾아가지만 아휘는 떠난 뒤였다. 보영은 담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휘는 보영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그대로 내려놓은 채 혼자 이과수 폭포로 떠난다. 테이블에 놓인 이과수 폭포 램프 안엔 다정하게 앉아있는 두 사람이 그려져있지만 진짜 이과수 폭포 앞엔 아휘 혼자 서있다. 반짝이는 이과수 폭포 램프를 보며 상상했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아휘는 보영을 생각하며 슬픔을 말한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서로의 스텝이 맞춰지지 않은 탱고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춤을 추지만 아휘는 스텝을 자꾸 헷갈린다. 보영은 그런 아휘에게 다시 연습해보라며 홀로 연습할 시간을 주고, 다시 탱고를 춘다. 보영과 아휘는 손을 맞잡고 사랑하다가도 스텝이 엇갈리면 가차 없이 손을 놓았고, 아휘가 다시 스텝을 맞춰오면 잠시 함께 춤을 췄다가, 엇갈리면 다시 놓았다. 지금껏 아휘가 보영의 스텝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휘가 그 노력의 끈을 놓은 순간, 사랑은 정말 끝나버린다.
사랑은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 한마디로 붙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같이 있으면 좋다고,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그 한마디를 왜 그리 아꼈던 것일까.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게 만들 만큼 지독하게 아픈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엔 사랑하는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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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온사인으로 감정 극대화한 영화
네온사인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들!
영화에서 '네온사인'은 퇴폐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를 그리거나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등장인물의 감정상태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죠.
강렬한 네온불빛으로 채워낸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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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건 탈출 게임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 (영화리뷰)[이스케이프 룸2]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 이스케이프 룸2 노웨이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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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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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묵묵히 '물방울'만을 그리며 물방울 작가로 사랑받은 화가 김창열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는 기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예술가인 '인간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아들은 그리움의 시간을 살다 간
그의 삶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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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놈 2 : 렛데어 비 카니지> 첫번째 30초 예고편
'베놈'과 완벽한 파트너가 된 '에디 브룩' 앞에 클리터스 캐서디'가 '카니지'로 등장, 앞으로 닥칠 대혼돈의 세상을 예고한다. 대혼돈의 시대가 시작되고, 악을 악으로 처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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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스페셜 예고편
"비상선언을 선포합니다." 극한의 재난 상황에 맞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비상선언] 스페셜 예고편 공개!